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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임대행위 후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후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이와 같이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그러나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등을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단임대행위 등 당시 유치권자와 새로운 소유자 간에는 아무런 권리의무관계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판결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1. 사안의 요지 A는 부산 부산진구 일대 주상복합 아파트 신축 분양 사업의 시행자이다. A는 2003. 3.경 B를 시공사로 선정하여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B는 피고를 포함한 18업체에 공정별로 하도급을 주었다. B는 2005. 10.경 기성고율 92.41% 상태에서 부도가 났다. 피고는 공사비를 직접 부담하며 2006. 7.경 공사를 모두 마쳤고 2006. 12.경부터 위 주상복합 아파트 제1305호(이하 “본건 부동산”)를 포함한 6세대에 대하여 유치권을 행사하였다. A는 2006. 2. 23.경 본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였다. 이후 2010. 3. 12. C, 2013. 2. 23. D, 2013. 6. 28. F, 2018. 5. 21. 원고 순으로 본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각 이루어졌다. 한편, 피고는 2007. 10. 4.부터 2012. 2. 3.까지 A, C의 동의 없이 G에게 본건 부동산을 무단 임대하였다가 2012. 2. 4.부터 다시 본건 부동산을 직접 점유하였다. 2. 본건의 쟁점 본건의 쟁점은 2018. 5. 21. 본건 소유권을 취득한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2007. 10. 4.부터 2012. 2. 23.까지 이루어진 피고의 무단 임대행위를 이유로, 민법 제324조 제3항에 의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3. 소송의 경과 가.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은 “피고가 G에게 이 사건 부동산을 임차한 것은 2007. 10. 4.부터 2012. 2. 3.까지이므로, 2018. 5. 21.에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한 원고에게는 위 사유로 인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부산지방법원 2019나46459 판결, 선고일자는 생략하였음, 이하 같음). 나.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원심판결과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324조 제2항을 위반한 임대행위가 있고 난 뒤에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를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였다. 4.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민법 제324조 유치권자의 선관의무 유치권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유치물을 점유하여야 하고, 채무자의 승낙 없이 유치물을 보존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사용하거나 대여 또는 담보제공을 할 수 없다(민법 제324조 제1, 2항). 유치권자가 제324조 제2항을 위반하여 채무자의 승낙 없이 유치물을 사용, 대여, 담보제공 등을 한 경우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24조 제3항). 나. 채무자에 유치물 소유자도 포함되는지 민법 제324조는 “채무자”라고만 규정하고 있어서, 유치물 소유자도 위 채무자에 포함되는지를 견해 대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민법 제324조 제2, 3항은 통상 채무자와 소유자가 동일한 경우를 예상하여 규정된 것일 뿐이고, 채무자와 소유자가 다를 경우에는 오히려 사용, 수익, 처분 권한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만이 사용 승낙을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며 소유자도 민법 제324조의 채무자에 포함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0다94700 판결 참조). 다. 소유권 변동시 새로운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유치권자가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유치물을 사용, 대여 등을 하였으나 그 이후에 소유권의 변동이 발생하면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다시 얻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는 확인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유치권자가 소유권변동 사실을 알 수 없어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거나, 유치권자가 소유권변동을 알게 된 후 곧바로 유치물의 사용 등을 중단하거나, 새로운 소유자의 유치권 소멸청구가 신의칙에 위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유치권자는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기초로 새로운 소유자에 대항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며, 원칙적으로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9나2006117 판결). 라. 유치권소멸청구권의 발생 시기 민법 제324조 제3항은 “유치권자가 전2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에는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리해석하면,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가 같은 조 제2항의 의무를 위반한 때 발생한다고 할 것이다. 마.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채무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형성권(形成權)이다[민법 물권 제3권, 김용덕, 한국사법행정학회(2019. 5.) 제529쪽]. 다만 민법은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법률에 존속기간의 정함이 없는 민사상 형성권에 관하여 그 존속기간을 10년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88다카25342 판결, 대법원 90다카4409 판결 등 참조). 이에 민사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은 10년이라 할 것이다. 한편 상사유치권의 경우 민법상 유치권 규정이 준용될 것이므로(상법 제1조) 상사유치권에 대하여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은 상법상 형성권은 상법 제64조를 유추적용하여 제척기간을 5년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9다271661 판결). 상법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은 5년이라 할 것이다. 바. 대상판결에 대한 의견 1)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할 법률상 근거와 논리에 대한 의문점 대상판결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와 논리가 무엇인가이다. 대상판결은 민법 제324조가 유치물의 소유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새로운 소유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치물의 소유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민법 제324조의 입법취지가 될 수 있을지라도 이것만으로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위반행위 당시 유치권자는 새로운 소유자에게 의무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관계’란 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법률관계의 핵심은 권리와 의무인데 원칙적으로 권리와 의무는 상응한다. 일반적으로 법률은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는 일방이 이를 위반하였을 시 그 의무의 수혜자인 상대방에게 해제권, 취소권, 손해배상청구권 등의 권리를 인정한다. 본 사안에서 유치권자인 피고는 무단임대행위를 할 당시 원고에게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하였고, 원고도 유치물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었다. 앞서 인용한 ‘서울고등법원 2019나2006117 판결’은 소유자의 변경 시 유치권자로 하여금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얻도록 하였는데,이는 유치권자와 종전 소유자 사이에 성립되었던 권리의무관계가 새로운 소유자에게 승계되지 않고 소유권 취득시부터 유치권자가 새로운 소유자에 대해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위반행위 당시 피고가 원고와의 관계에서 의무위반을 하지 아니하였음에도 어떠한 법리에 의해 원고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2) 새로운 소유자의 유치권소멸청구권 취득방법과 이에 관련된 의문점 대상판결은 새로운 소유자가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원시취득하는 것인지 아니면 종전 소유자로부터 승계취득이라는 것인지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판시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의 정확한 입장을 알 수 없지만, 원시취득으로 본다면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있다. 앞서 기재한 바와 같이,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가 민법 제324조 제2항의 의무를 위반한 때” 발생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소유자가 소유권을 취득한 때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원시취득)은 민법 제324조 제3항의 문언에도 반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은 형성권으로서 제척기간은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한 날로부터 10년(민사) 또는 5년(상사)이다. 원시취득으로 본다면, 새로운 소유자는 소유권을 취득한 날에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하므로 소유권 취득시부터 10년 또는 5년 동안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소유자가 변경될 때마다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이 계속 연장되므로 부당하다. 그런데 승계취득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괄승계와 승계취득으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포괄승계는 당사자 지위 승계를 위한 유치권자, 채무자(또는 종전 소유자), 새로운 소유자 3인의 합의가 없거나 상속, 합병,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 지위 승계 등과 같은 법률상 근거가 없으면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정승계로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새로운 소유자에게 이전된다는 논리를 구성한다면, 먼저 형성권인 유치권소멸청구권이 특정승계 방식으로 양도가능한 지부터가 문제된다. 특정승계가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대상판결과 원심판결을 보면 무단임대행위 당시 소유자인 A, C가 양수인 D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양도의사표시를 하였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종전 소유자가 새로운 소유자에게 양도의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승계된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3) 사견 대상판결은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였지만, 민법 제324조 입법취지만 근거로 들고 있을 뿐 이외 다른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하여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물론 대법원이 대상판결이 기재하지 아니한 다른 법률적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등을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단임대행위 등 당시 유치권자와 새로운 소유자 간에는 아무런 권리의무관계가 없다는 점, 위에서 서술한 여러 가지 의문점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판결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유치물
무단임대
유치권소멸청구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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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민사일반
지식재산권
특허침해소송과 권리범위확인 심판 법리의 혼선
1. 판결의 요지 (1) 대상판결의 사안과 판지 자체는 매우 간단하다. 즉, 원고가 A 상표에 대해 선출원(2014. 9. 5.), 선등록(2014. 12. 18.)을 마친 상태에서 피고가 A와 유사한 상표를 그와 유사한 지정상품에 후출원(2016. 8. 10.) 후등록(2017. 8. 8.) 받아 사용하고 있다면, 피고의 행위는 비록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하는 것이라 해도 원고의 선출원 등록상표에 저촉되고 그 자체로 상표권 침해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2) 대상판결은 나아가 위와 같은 저촉과 침해의 법리가 특허법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분명히 하면서(보충의견) 그 근거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바, 대상판결의 의의는 정작 이 부분에서 더 두드러져 보인다. 대상판결의 판시 중 특허권 저촉관계의 법률효과 부분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① 특허법 제98조의 해석 특허법 제98조는, '후출원 특허발명이 선출원 특허발명과 이용관계에 있는 경우, 비록 후출원 발명이 특허를 받았다 하더라도 선출원 특허권자의 허락 없는 실시는 침해를 구성한다'고 하고 있으나 선, 후출원 발명이 서로 동일한 저촉관계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위 규정에는 본래 이용과 저촉의 경우 모두 선출원 권리자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었다가 1986년 법 개정 시 이용만 남겨두고 저촉이 삭제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삭제가 저촉관계에서 선출원 권리자의 동의 없는 실시를 정당한 것으로 하려는 반성적 고려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없고, 특허법 등에서 선, 후출원 경합 시 선출원에 우선권을 주는 것은 기본적 법리이므로 결국 이용 외에 저촉관계의 경우에도 선출원 권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석되며, 동의 없는 실시는 선출원 특허권의 침해가 된다. ② 중용권(특허법 제104조)와의 관계 특허권의 저촉으로 인해 후출원 특허가 무효로 되는 경우, 후출원 특허권자는 특허법 제104조에 의한 통상실시권(중용권)을 가지게 되지만, 위 중용권은 후출원 특허발명의 실시가 침해를 구성함을 전제로 한 항변에 해당하며 그 성립요건이 온전히 주장·증명된 경우에 한해 인정되는 것이므로 중용권의 성립 가능성과 후출원 특허의 침해 인정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2. 검토 가. 특허법 제98조의 해석에 관한 기존 논의 저촉관계인 후출원 특허발명의 실시가 선출원 특허발명의 침해를 구성하는지를 두고는 침해설과 비 침해설이 대립하고 있다. 침해설의 주된 논거는, ① 선출원 특허발명을 단지 이용하는 데 불과한 후출원 특허발명이 침해라면 선출원 특허발명과 동일한 후출원 특허발명을 실시함은 당연히 침해로 보아야 한다는 것, ② 선행권리 우선 취급은 지적재산권법 전반에서 기본원리이므로 당연히 특허권의 저촉관계에서는 별도의 무효심판이 없더라도 선출원 권리를 우선시 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반면 비침해설은 ① 특허법 제98조에서 명시적으로 제외된 저촉을 포함시키는 것은 해석의 범위를 넘는다는 것, ② 중용권과의 관계에서, 후출원 특허가 등록무효 되기 전에는 침해를 구성하였다가 등록무효로 된 이후에는 중용권에 기해 침해를 구성하지 않게 되어 논리에 어긋난다는 것, ③ 종래 판례가 등록특허 사이의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 청구는 부적법하며 다만 이용발명의 경우에만 예외로 하고 있다는 것 등을 논거로 한다. 나. 대상판결의 입장 및 권리범위확인 심판과의 관계 대상판결은 비 침해설의 논거 중 ①, ②를 침해설의 입장에서 명백히 배척하고 있는 반면(다만, 그 당부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③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후출원 특허발명의 실시가 무효심판 등을 거치지 않고도 선출원 특허발명의 침해가 된다는 대상판결의 판지는 "권리 대 권리 간의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 청구는 상대방의 등록권리를 등록무효절차 없이 사실상 부인하는 것이 되어 부적법하다"는 확고한 판례들(대법원 1986. 3. 25. 선고 84후6 판결 외 다수)과 맞지 않는다. 결국 대상판결은 특허 침해소송과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적용되는 법리가 서로 상충하는 '또 하나의' 국면을 창출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런 부조화 상황은 이미 다른 국면에서도 있어 왔다. 침해소송에서는 특허발명의 진보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대법원 2012. 1. 19. 선고 2010다95390 전원합의체 판결),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는 특허발명의 진보성을 판단하여 그 권리범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 그 예이다(대법원 2014. 3. 20. 선고 2012후4162 전원합의체 판결).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은 그 결론이 선행 판결과 모순됨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편, 권리범위 판단과 침해 판단의 차별 취급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입론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대개 현실에서 권리범위확인 심판이 침해소송의 전제로 혹은 그와 병행해서 활용되고, "권리범위에는 속하나 침해는 아니다"라거나 "권리범위에는 속하지 않지만 침해이다"라는 말은 실시권의 존재 등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납득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 방향성과 혼란 상황 이처럼 대법원이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는 특허권의 실체적 효력 유무에 대한 판단을 제한하면서 침해소송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배경에는, 권리범위확인 심판이 장기적으로는 폐지되어야 할 제도로서, 무효심판이나 침해소송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위상이나 영향력을 부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법원판례해설 제100호, 제108호, 사법지 제57호 등에서 발견되는 해당 판례들에 대한 재판연구관들의 해설 참조).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인식의 실효성이나 일관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판례들도 혼재한다. 그런 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대법원 2014. 3. 20. 선고 2012후4162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은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진보성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하여 권리범위확인 심판의 역할을 축소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초래하기 쉽다. 어떤 발명에 진보성이 없어 무효라고 믿는 이해관계인이라면 어차피 소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을 청구하기보다는 궁극적·대세적으로 특허권을 부정할 수 있고 훨씬 높은 협상력을 주는 무효심판 청구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진보성 판단을 허용치 않는다면, 특허권자로서는 자유롭게 심판을 청구하더라도 그 절차에서 진보성 부재 판단을 받을 위험이 사라지고, 이는 해당 심판절차를 이용하는 강한 매력요인이 될 것이다. 그 결과 위 판결은 무효심판 절차의 유지·활성화에 기여하는 면보다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의 활성화에 봉사하는 면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② 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6후366 판결 등: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피고는 특허권 침해소송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유기술의 항변을 통해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실질적으로 해당 발명에 진보성 부재로 인한 무효사유가 있다는 항변과 다르지 않은바, 이로써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진보성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한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입지를 다시 스스로 축소한 셈이 되었다. ③ 대법원 2014. 3. 20. 선고 2011후3698 전원합의체 판결: 상표의 사용에 의한 식별력 획득이 쟁점이 된 사안에서, 등록 당시 식별력이 없던 상표이더라도 권리범위확인 심결 시까지 사용에 의해 식별력을 획득하였다면 권리범위를 가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식별력 부재로 무효사유가 명백한 상표를 근거로 권리행사를 하는 경우 상대방이 권리남용의 항변을 할 수 있거니와(대법원 2012. 10. 18. 선고 2010다103000 전원합의체 판결), 어차피 무효로 될 상표임에도 그 식별력 판단 시점을 굳이 심결 시까지로 늦추어 권리범위를 인정함으로써 권리범위확인 심판제도의 독자성을 필요 이상 강조하고 분쟁의 1회적 해결을 도외시 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3. 결론 대상판결은 저촉관계에 관한 특허법 제98조의 해석기준을 제시한 외에, 침해소송과 권리범위확인 심판의 위상 차별화를 암묵적으로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극복해야 할 법리상 난점을 안고 있는 데다가, 상충하는 여러 판례들이 뒤섞여 일관성이 희석되고 실효성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① 대법원이 권리범위확인 심판의 역할 축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면, 이를 명확히 표현하고 침해판단과 구별 취급할 합당한 법리를 제시하는 한편, 그 방향성과 충돌하는 판례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②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침해소송과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모두 자유기술의 항변이 가능하다고 한 예처럼 통일된 법리를 적용해 나가는 한편, 대상판결의 취지와 어긋나는 종전 판례들(등록 특허 사이에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은 부적법하다는 것들)도 모두 대상판결의 취지대로 변경하는 편이 합당해 보인다. 조영선 교수(고려대 로스쿨)
특허법
상표권
상표
특허
상표권침해
조영선 교수(고려대 로스쿨)
2022-07-11
민사일반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의 소송요건
I. 사건의 개요 및 경과 소외 1은 2010년 8월 15일 건국훈장 4등급 애국장 포상대상자로 결정되었다. 소외 1의 자녀로는 장남 소외 4, 장녀 소외 2, 차녀 소외 5가 있었다. 장남 소외 4와 그의 배우자 및 자녀들, 차녀 소외 5와 그의 배우자는 위 포상대상자 결정일 이전에 모두 사망하였고, 소외 5의 자녀로는 소외 6이 유일하게 생존해 있었다. 원고는 소외 4의 손자이자 소외 1의 증손자이다. 소외 6은 2010년 8월 30일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소외 1의 손자로서 구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2012. 2. 17. 법률 제113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이라고 한다)에 따른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신청을 하였다. 광주지방보훈청장은 2011년 11월 24일 소외 6을 독립유공자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하는 결정을 하였다. 한편 소외 3은 2011년 11월 25일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자신이 소외 1의 장녀 소외 2의 자녀로서 소외 1의 손자녀 중 선순위자라고 주장하면서 독립유공자 유족등록신청을 하였으나, 광주지방보훈청장은 2011년 11월 30일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소외 3은 광주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독립유공자등록거부취소의 소를 제기하여 전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위 판결은 이후 항소 및 상고를 거쳐 그대로 확정되었다. 원고는 검사를 상대로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법원은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은 원고에게 당사자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의 소를 각하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내용 대상판결에서는 원고가 소외 1과 친족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 되었다. 다수의견은 종전의 판례와 달리, 민법 제777조 소정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법률상 이해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별개의견은 판례 변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다수의견과 같이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의 원고적격을 엄격하게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Ⅲ. 분석 및 검토 1. 판례 변경의 배경 민법 제865조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는 친생관계존부확인의 소'라는 표제 아래, 제1항에서 "제845조, 제846조, 제848조, 제850조, 제851조, 제862조와 제863조의 규정에 의하여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여 친생자관계존부의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제865조가 인용하고 있는 민법의 조문들은 대부분 친자관계의 당사자 또는 그의 직계존속·직계비속에 대하여 원고적격을 인정한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제3자가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되는 경우는 제862조의 '이해관계인'이 유일하다. 이해관계인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친자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친생자관계에 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지거나 넓어질 수 있다. 종전의 판례는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의 원고적격을 판단할 때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달리 취급하여 왔다. 제777조 소정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는 그와 같은 신분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소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하여, 소송요건의 문턱을 낮추어놓았다(대법원 1981. 10. 13. 선고 80므6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8. 10. 20. 선고 97므1585 판결). 반면 그러한 친족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는 친생자관계 존부의 확정판결에 의해 특정한 권리를 얻거나 특정한 의무를 면하게 되는 등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어야만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여, 소송요건의 문턱을 높여놓았다(대법원 1976. 7. 27. 선고 76므3 판결; 대법원 1990. 7. 13. 선고 90므88 판결). 제777조에서 정한 친족이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었던 구 인사소송법이 폐지된 뒤에도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유지되었다(대법원 2004. 2. 12. 선고 2003므2503 판결).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제777조 소정의 친족이 그와 같은 신분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였다. 이 점에 관하여는 별개의견도 견해를 같이하였다. 이러한 대상판결의 결론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종전 대법원 판례의 근거가 되었던 구 인사소송법 제35조 및 제26조는 폐지되었고, 그밖에 제777조 소정의 친족을 달리 취급할 근거는 희박하기 때문이다. 2.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에 관한 '이해관계'의 내용과 정도 이 사건의 원고는, 소외 1과 소외 2 사이의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게 되면 자신이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른 독립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고의 기대와 달리, 위와 같은 확인을 받더라도 원고는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될 수 없었다.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 요구되는 이해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아가 이 사건의 원고에게 그러한 이해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지를 두고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다수의견은 제865조의 이해관계인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친생자관계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일정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등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원고는 소외 1과 소외 2 사이의 친생자관계에 관하여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별개의견은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 판결을 통해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의 기재를 바로잡아야 할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이 있어야' 이해관계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별개의견은 원고적격을 판단하는 단계에서 원고가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라 독립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심리할 것은 아니고, 판결 결과에 따라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면 이해관계인으로서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추상적인 법리 차원에서 보면, 다수의견이 말하는 '법률상 이해관계'와 별개의견이 말하는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 사이에 큰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판단 기준을 실제로 적용하는 국면에서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큰 차이를 보였다. 다수의견은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의 결과에 따라 원고의 법적 지위가 달라질 수 있는 정도의 확실하고 중대한 이해관계를 요구하였다. 반면 별개의견은 소송의 결과가 원고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연성 내지 가능성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필자는 다수의견이 별개의견보다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확인의 이익의 일반 이론에 비추어, 이해관계인은 사실상의 이해관계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또한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의 심리가 친자관계 당사자에게 미칠 수 있는 불이익한 영향을 고려하면, 이해관계의 의미를 더욱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별개의견이 제시한 판단 기준에 따르면,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 요건이 소송요건으로서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는 해당 친생자관계의 존부에 관하여 친자관계의 당사자 사이, 혹은 그 소송의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있을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별개의견과 같이 그 소송의 결과가 원고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다소 불확실한 개연성만으로 확인의 이익을 긍정하게 되면, 확인의 이익이 없어 소가 각하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입해 보면, 다수의견의 타당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건에서 소외 2가 소외 1의 친생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그 결과 원고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다. 어차피 원고는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는다고 하여, 원고가 부양의무를 면하게 된다거나 상속관계에서 유리하게 된다는 등의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친자관계의 당사자인 소외 1과 소외 2는 이미 사망하였고, 원고는 소외 1의 증손자에 불과하다. 소외 1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바로잡고자 하는 원고의 희망이 '법률상 이해관계' 혹은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에 이른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원고에게 이해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소를 각하한 다수의견의 결론에 찬성한다. 이소은 임상교수(서울대 로스쿨)
친족관계
친생자관계존부확인소송
민법
친생자관계
이소은 임상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09-23
민사일반
후순위저당권자는 소멸시효 원용할 수 없는가?
[사실관계]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이번 평석이 필요한 한도에서 간추리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A는 B에 대한 대여금채권의 담보로 B 소유의 부동산에 가등기를 경료받고, 나아가 이 거래에 적용이 있는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이 요구하는 청산금의 지급 없이 위 가등기에 기하여 본등기를 경료하였다. 그 후 원고가 채무자 B와의 대위변제약정에 기하여 위 차용금을 변제하였다. 그럼에도 A는 B와의 합의 아래 C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고, 피고는 C로부터 근저당권을 설정받았다. 피고의 근저당권에 기하여 행하여진 경매절차에서 피고에게 일정액을 배당하는 배당표가 작성되었으나, 원고가 이에 배당이의를 함으로써 이 사건 소송에 이르렀다. 원고 청구를 일부 인용한 원심판결에 대하여 쌍방이 상고하였다. 피고의 상고이유는 원고의 B에 대한 채권은 시효소멸하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부분 주장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시요지]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이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시효로 채무가 소멸되는 결과 직접적인 이익을 받는 사람에 한정된다. 후순위담보권자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하면 담보권의 순위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피담보채권에 대한 배당액이 증가할 수 있지만, 이러한 배당액 증가에 대한 기대는 담보권의 순위 상승에 따른 반사적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판례공보 2021년 상권, 673면). [평석] 1. 이 사건에서 원고는 B와의 약정에 기하여 B의 채무금을 변제함으로써 변제자대위에 기하여 담보가등기권을 당연히 취득하였다(변제자대위 및 그로 인하여 원고가 취득하는 채권의 범위에 관한 판시가 원고 상고이유에 대한 주요 부분을 이룬다). 그리하여 애초 그보다 늦게 설정된 피고의 근저당권은 원고의 권리에 열후하는 말하자면 제2순위의 담보권이 된다. 그 경우에 선순위인 담보가등기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주장을 위와 같이 후순위담보권을 가지는 피고가 할 수 있는가? 즉 피고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하여 시효원용권을 가지는가? 2. 종전에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우리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다고 이해되어 왔다(최근에도 송덕수, 민법총칙, 제4판(2018), 505면은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의 어느 시점부터 대법원은 시효원용권자의 범위를 획정하는 작업을 정면으로 수행하여, 시효소멸을 소송상 주장하였음에도 그에게 시효원용권을 부정하여 시효소멸의 주장을 배척하는 구체적인 재판례를 축적하여 갔다. 이로써 판례는 상대적 소멸설로 입장을 전환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에는 그것이 과연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한 법률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하는 데 필요한 절차(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단서 제3호), 즉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거쳤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이 점에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3.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상대적 소멸설의 입장을 전제로 하더라도, 후순위담보권자는 이에 해당하여 시효원용권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하에서는 저당권을 염두에 두고 논의하기로 한다. (1) 선순위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소멸하는 경우에 그 저당권의 당연 소멸로 후순위저당권의 순위가 상승하는 것은 후순위저당권자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향유하는, 그리하여 어떻게 보더라도 현실인 이익이다. 그 경우 후순위저당권자는 그러한 순위의 상승을 단순히 기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의문이 없는 저당권에 관한 법리, 즉 '순위상승의 원칙'(우선 곽윤직·김재형, 물권법, 제8판[전면개정] 보정판(2015), 453면 참조)의 적용에 의하여 발생하는 그야말로 법적인 이익인 것이다. 이것을 '반사적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법논의에서 극력 피하여야 할 언어의 오용이 아닐까? 만일 그것이 단순한 기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 저당권이 설정된 목적물의 제3취득자가 그 피담보채권의 시효소멸로 누리게 되는 저당권의 당연 소멸, 그리하여 이러한 법적 부담으로부터의 해방도 역시 '단순한 기대'에 그친다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제3취득자도 역시 통상적으로는 저당권 등의 존재를 알면서(적어도 등기부를 통하여 알 수 있었으면서) 이를 물적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하여 목적물을 취득하였을 것임에도 그 후 위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그러한 '반사적 이익'을 얻는 것에 불과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대법원 1995. 7. 11. 선고 95다12446판결(공보 2761면)은 이 사건에서와 같이 가등기담보권이 설정되어 있던 사안에서 제3취득자의 시효원용권을 긍정한다. 시효이익 포기의 상대효를 다루는 근자의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5다200227판결(공보 하, 976면)도 제3취득자의 시효원용권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2) 시효원용권 인정 여부의 법문제에 대하여 우리 판례는 일본의 그것에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판시는 최고재 1999(平成 11). 10. 21. 판결(민집 53-7, 1190)의 태도와 일치하고, 그 이유 설시도 위 일본 판결("선순위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하면 후순위저당권의 순위가 상승하고 이로써 피담보채권에 대한 배당액의 증가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배당액 증가에 대한 기대는 저당권의 순위 상승에 의하여 초래되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로부터 그대로 따왔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제2차 대전 이전, 특히 1920년대 말까지의 엄격한 해석을 1945년부터의 최고재가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애초 대심원의 판례상 시효원용권이 모두 부정되었던 물상보증인, 담보부동산의 제3취득자 및 사해행위의 수익자 등에 대하여 모두 1960년대 중반부터 하나씩 긍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시효원용권자 여하에 관한 판례의 흐름은 위와 같이 일찍부터 채택되어온 [직접성] 공식의 실질적 해체의 역사이다. 그 공식은 그 기원(起源)에 있어서는 일정한 자를 제외한다는 의미를 가졌었으나, 현재는 전에 부정되었던 자 전부에 시효원용권이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판례의 변경은 다른 법문제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金山直樹, 時效における理論と解釋(2009), 319면 이하). 이러한 입장 전환을 선도한 것은 다름아닌 일본 법학자 와가쓰마 사카에(我妻榮)인데, 그 주장의 요지는 "시효의 원용이 시효로 인한 권리의 득상이라는 일반적 법률효과와 개인의 의사 사이의 조화를 도모하는 제도라고 한다면, 이들 관계자 각자에게 원용의 자유를 인정하고 시효의 효과를 상대적·개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 그 목적에 적합하다"고 전제한 다음, "시효에 의하여 직접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면하는 자 외에도 이 권리 또는 의무에 기하여 다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자도 포함한다고 봄이 옳다"는 것이다(新訂 民法總則(1965), 445면 이하. 이는 "抵當不動産の第三取得者の時效援用權"이라는 1936년 논문으로 소급될 수 있다). 위와 같은 흐름을 반영하여 후순위저당권에 대하여도 이를 긍정하는 학설이 유력하였다(川島武宜, 幾代通 등). 그럼에도 최고재의 위 1999년 판결은 이를 부정한 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학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예를 들면 金山直樹, 前揭書, 320면 이하[처음 발표는 2000년]. 위 판결에 대한 평석의 목록은 森田宏樹, "時效の援用權者", 民法判例百選 제1권, 제8판(2018), 86면 이하를 보라). 한편 일본은 2017년의 민법개정(시행은 금년 4월부터)으로 시효의 원용에 관한 제145조에서 시효원용권자를 "당사자(소멸시효에 있어서는 보증인, 물상보증인, 제3취득자 기타 및 권리의 소멸에 관하여 정당한 이익을 가지는 자)"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개정 전과 같이 그 구체적인 범위를 해석에 맡기는 취지라고 한다. 4. 후순위담보권자에게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의 시효원용권을 부정한 것은 종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판단으로서 하급심이나 거래실무 등에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러한 입장에는 쉽사리 찬성할 수 없다. 애초 시효소멸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받는지, 간접적으로만 미치는지의 구분 자체가 그야말로 형식적 기준이므로(법논의에서 드물지 않은 그 가장이유(假裝理由, Scheinbegrundung)!), 그 적용은 가급적 피하여야 할 것이다.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소멸시효
근저당권
후순위저당권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2021-05-03
민사소송·집행
민사일반
피참가인이 승계참가를 다투지도 않고 소송에서 탈퇴하지도 않는 경우 승계참가인과 피참가인의 소송관계
1. 사실 공사수급인 원고는 도급인 피고를 상대로 공사계약에 따른 정산금의 지급을 구하였다. 원고 승계참가인(이하 '승계참가인')은 원고의 피고에 대한 정산금채권에 관하여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은 뒤, 제1심 소송 계속 중 제3채무자인 피고에 대하여 전부금의 지급을 구하면서 승계참가신청을 하였다. 원고는 승계참가인의 승계 여부에 대해 다투지 않았으나 승계참가한 부분의 소를 취하하지 않았다. 제1심은 인정된 정산금채권 전부가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으로 인하여 모두 승계참가인에게 이전되었음을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승계참가인의 피고에 대한 청구를 인용하였다. 승계참가인과 피고는 제1심판결 중 패소부분에 대해 항소하였고, 원고는 항소하지 않았다. 원심 계속 중 원고는 부대항소를 제기하였다. 원심은 승계참가인의 전부명령이 무효라고 판단하고, 원고의 부대항소를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고 승계참가인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유의 요지 승계참가에 관한 민사소송법 규정과 2002년 민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다른 다수당사자 소송제도와의 정합성, 승계참가인과 피참가인인 원고의 중첩된 청구를 모순 없이 합일적으로 확정할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소송이 법원에 계속되어 있는 동안에 제3자가 소송목적인 권리의 전부나 일부를 승계하였다고 주장하며 소송에 참가한 경우, 원고가 승계참가인의 승계 여부에 대해 다투지 않으면서도 소송탈퇴, 소 취하 등을 하지 않거나 이에 대하여 피고가 부동의하여 원고가 소송에 남아 있다면 승계로 인해 중첩된 원고와 승계참가인의 청구 사이에는 필수적 공동소송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67조가 적용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2002년 민사소송법 개정 후 피참가인인 원고가 승계참가인의 승계 여부에 대하여 다투지 않고 그 소송절차에서 탈퇴하지도 않은 채 남아있는 경우 원고의 청구와 승계참가인의 청구가 통상공동소송 관계에 있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2004. 7. 9. 선고 2002다16729 판결,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65850 판결, 대법원 2014. 10. 30. 선고 2011다113455, 113462 판결을 비롯하여 그와 같은 취지의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이를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3. 연구 (1) 승계참가라 함은 소송계속 중에 계쟁물이 양도되었을 때 그 양수인이 그 때까지 형성된 유리한 소송상태를 이용하기 위하여 스스로 소송절차에 참가하는 것을 말한다. 권리와 의무는 표리관계이므로 권리의 양수인은 물론이고 실체법상 채무의 승계인도 종전 소송수행과정에서의 유리한 소송상태를 이용하기 위하여 이 참가 방식으로 참가할 수 있다(제81조). 판례는 채권의 경우에도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경우에는 독립당사자참가가 가능하다고 하였다(대법원 1996.6.28. 선고 94다50595 판결). 그러므로 채무의 승계는 별론으로 하고라도 채권양도의 경우 양도된 채권의 귀속에 관하여는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으므로 양도인과 양수인의 지위는 동일채권자의 지위를 동시에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동관계에 있다할 수 없고 대립·견제의 관계에 있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 판례는 양도인과 양수인의 사이에서 대립·견제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공동관계에 있으므로, 만약 피승계인 원고에 대한 승계참가가 이루어졌으나 피고의 부동의로 원고가 탈퇴하지 못한 경우에는 원고의 청구와 승계참가인의 청구는 서로 대립·항쟁하는 관계가 아니므로 통상의 공동소송관계에 있다고 하였다(대법원 2004.7.9. 선고 2002다16729 판결). 그러나 피승계인 원고가 승계참가인의 승계사실 자체를 다투는 경우에는 전형적인 3면소송이 성립함은 물론이지만 그렇지 않고 승계를 다투지 아니하더라도 채권의 귀속에 관하여서 양도인과 양수인의 지위는 동일채권자의 지위를 같이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 대립·항쟁하는 관계에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2)(가) 2002년 민소법 개정 이전에는 채권의 귀속 자체가 누구에게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채권양도인인 원고가 채권양수인인 참가인이 소송에 참가할 때 참가를 다투었느냐는 형식에 따라 통상의 공동소송과 독립당사자참가 소송으로 구분하였다. 그 이유는, 2002년 개정 민소법 이전에 독립당사자 참가인은 원·피고 양쪽에 대하여 필수적으로 다 참가를 하여야 독립당사자참가가 가능한데 원고가 참가인의 채권양수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참가인이 원고에 대한 확인할 이익이 없게 된다면 원고에 대하여 참가를 할 수 없어 양 쪽 참가가 불가능하므로 그 경우에는 참가인은 피고에 대한 개별적 소송 밖에 할 수 없게 되고, 이것을 피고의 입장에서 볼 때 참가인과 원고의 공동소송으로 보았는데 당시에는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 규정이 없었던 이유에서 이를 통상의 공동소송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채권에 관한 양도인과 양수인의 대립·견제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아니하였다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 2002년 개정 민소법 이후에는 독립당사자 참가에서 한 쪽 참가(제79조 제1항)가 가능하고, 예비적·선택적 형식으로 공동소송(제70조 제1항)을 제기할 수 있게 됨으로써 채권의 귀속에 관한 대립·견제의 실체법적 관계는 그대로 소송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고가 다투지 아니하는 승계참가를 한 참가인과 원고의 관계를 구태여 실체법적 법률관계에 맞지 않는 통상의 공동소송관계로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예컨대 채권양수인은 독립당사자소송의 한 쪽 참가에 의하여 채무자에게 양수금을 청구할 수도 있고, 채무자인 피고에 대하여 채권양도인인 원고와 선택적 원고로서 양수금을 청구할 수도 있는데 어느 경우에나 제79조 제2항이나 제70조 제1항 단서에 의하여 필수적 공동소송에 대한 특별규정인 제67조가 준용됨으로써 채권양수인과 채무자인 피고에 대한 관계에서는 물론 채권양도인인 원고와의 사이에서도 채권의 귀속에 관한 합일·확정의 소송관계를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현행 민사소송법 하에서 '승계참가 이후 피참가인이 승계참가를 다투지 않고 소송에서 탈퇴하지도 않는 경우'의 소송관계 (가) 예를 들어 소송 계속 중에 원고는 채권양도인, 참가인은 채권양수인, 피고는 채무자로서 원고의 피고에 대한 대여금청구사건에 참가인이 승계참가를 하였는데 원고가 채권양도계약의 무효를 이유로 소송에 탈퇴하지 않은 경우를 가정한다. 제1심에서 심리한 결과 채권양도 계약이 무효이어서 양도채권은 원고에게 귀속된다는 이유로 원고 전부 승소, 참가인 전부 패소의 판결이 선고되었고, 이에 대하여 원고는 항소를 제기하지 않고 참가인만 항소를 제기한 경우에 통상의 공동소송설에 의하면 공동소송인 독립의 원칙이 적용되어 원고승소판결은 제1심에서 확정되고 항소심에서는 참가인과 피고의 소송만 계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항소심의 심리에서 채권양도계약이 유효로 판명되더라도 참가인 승소판결만 가능하고 제1심에서의 원고 승소판결은 취소할 수 없다. (나) 그 결과 피고는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채무에 관하여 양립할 수 없는 채권자인 원고와 참가인에게 중복채무를 부담한다는 도저히 승복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승복할 수 없는 결론은 어떤 법적 방법에 의해서도 시정할 수 없다. 즉, 이것은 재심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함은 물론 그 채권양도계약이 변론 종결 이후의 사유도 아니어서 청구 이의의 사유(민사집행법 제44조)에도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 이 사건에서도 통상공동소송설에 의하면 원고의 부대항소는 부적법하여 원고의 청구는 제1심에서 청구기각 판결은 확정되었고, 참가인의 청구는 원심에서 청구기각 판결로 확정됨으로써 양도채권의 귀속자는 누구인지 불분명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라) 합일확정설(독립당사자참가의 경우나 선택적공동소송은 모두 제67조를 준용하므로 이를 통합하여 '합일확정설'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에 의하면 원고의 부대항소는 적법하지만 그렇지 않고 부대항소가 없더라도 피고의 항소 유무를 떠나 사건 전부가 항소심에 이심되어 합일·확정 판결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아니한다. (마) 승계참가에서 통상공동소송설을 따르는 경우의 이와 같은 모순은 채권양도에서 채권자체의 귀속의 성질이 무엇인가에 관한 오해가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승계참가는 채권의 귀속에 관한 대립 ·견제의 실체법적 본질이 반영되어야할 것이므로 합일확정설에 따라 '승계참가 이후 피참가인이 승계참가를 다투지 않고 소송에서 탈퇴하지도 않는 경우'의 소송구조는 필수적 공동소송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강현중, 민사소송법(7판) 900면은 일찍이 이를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종전 통상의 공동소송설을 변경한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타당하다. 강현중 변호사 (前 사법정책연구원장, 법무법인 에이펙스 고문)
승계참가
통상공동소송
필수적공동소송
강현중 변호사 (前 사법정책연구원장, 법무법인 에이펙스 고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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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일반
대리의 본질과 표현대리 및 대리권 남용행위
I. 사실관계와 판시사항 1. 피고 乙은행 ○○지점의 당좌업무 대리 A는 재벌기업 대표이사 B로부터 대가를 약속받고 다른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예금을 유치하여 사업자금으로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원고 甲은 대리인 C를 통해 A와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1억 원을 乙에 예치하였다. A는 그 중 100만 원을 입금 처리하고 나머지는 원장에 기재하지 않은 채 B에게 지급하는 등, 4년간 약 1,066억 원을 예치하여 그 중 512억 원을 B에게 제공하였다. 甲은 乙을 상대로 만기 예금액 및 약정이자의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2. 제1심법원(84가합366)과 원심법원(84나2428)은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법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대리권 남용법리를 적용하여 A의 대리행위에 따른 예금계약의 효과를 乙에게 귀속시킬 수 없으므로 乙은 甲에게 예금을 반환할 책임이 없다고 하면서, 이 부분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대법원은 A가 乙의 당좌업무 대리인으로서 C와 예금계약을 체결한 것은 권한을 넘어선 대리행위이지만, 甲에게 A의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가 성립하여 甲과 乙의 예금계약은 유효하다고 전제하였다. 그러나 A는 예금계약을 통하여 甲의 이익을 꾀한 대리권 남용행위를 하였고 甲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예금계약에 따른 책임을 乙에게 물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86다카1004). II. 평석 1. 우리민법 규정과 대리의 본질 (1) 대리의 본질과 관련하여 우리민법은 대리인행위설의 입장이라고 한다. 대리효과의 귀속은 대리인의 대리의사에 따른 법률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송덕수). 나아가 민법 제114조 이하 규정이 대리의 효과의사대로 법률효과가 발생하도록 하며, 특히 제116조 제1항은 우리민법이 대리인행위설을 취하는 실정법적 근거일 뿐만 아니라(곽윤직, 고상룡), 이에 따르면 대리인행위설만 입론이 가능하다고 한다(지원림). 이에 반하여 독일에서 제안된 행위규율분리설은 수권행위와 대리행위를 단일한 하나의 행위로 파악하고, 대리인의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서 ‘행위’ 측면과 본인에 대한 효과귀속으로서 ‘규율’ 측면을 구분하되, 행위 주체는 대리인이지만 규율의 주체는 본인으로, 규율측면이 본질적인 부분이어서 대리효과가 본인에게 직접 발생한다고 설명한다(이영준). (2) 대리인행위설과 행위규율분리설에 따른 법적 취급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것이 대리권 남용행위와 표현대리이다. 대리권이 적법하게 수여된 경우 다른 요건이 충족되면 대리효과가 귀속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대리권 남용법리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대리권이 수여되지 않았다면 대리효과가 귀속되지 않아야 함에도 그 귀속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표현대리이다. 2. 대리권 남용법리에 대한 대리인행위설 및 행위규율분리설의 입장 (1) 대리권을 적법하게 보유한 대리인이 자기 또는 상대방의 이익을 위하여 대리행위를 한 결과 본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대리권 남용행위라고 한다. 이는 대리행위의 요건을 모두 충족한 상태여서 대리효과의 귀속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상대방이 대리인의 배임의도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까지 대리효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상대방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근거로 대리효과의 귀속을 차단시키는 법률구성을 ‘대리권 남용법리’라고 한다. 이는 대리권 수여라는 측면에서 유권대리로 취급되어야 하지만 대리효과의 귀속이 차단된다는 측면에서는 무권대리가 된다. 이에 대하여 대리인행위설은 비진의표시의 효과에 관한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를 유추적용하거나 신의칙 내지 권리남용금지원칙 위반의 효과에 따라 대리효과의 귀속을 차단한다. 반면 행위규율분리설은 배임행위를 한 대리인을 무권대리로 취급하여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2) 비진의표시 유추적용설은 대리권 남용행위를 비진의표시의 외양과 유사하게 파악하여 대리행위로서는 유효하게 성립하지만, 대리인의 배임의사를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취지를 유추하여 대리행위의 효력을 부정한다. 대다수 판례의 입장이다(74다1452, 97다24382, 2008다13838). 한편 권리남용설 내지 신의칙위반설은 대리인의 배임의사를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지 못함에 중과실이 있는 경우까지 대리효과의 귀속을 인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며, 더욱이 상대방이 본인에 대하여 그 효과를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한다(강태성, 홍성재, 명순구). 법인의 대표권 남용에 관한 사례이지만 판례 중에도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86다카1522, 89다카24360). (3) 행위규율분리설은 대리관계를 대리인의 대리 ‘행위’에 대한 측면과 효과귀속에 대한 본인의 ‘규율’ 측면으로 이해하고, 대리효과 귀속의 본질은 본인과 상대방의 규율에 달렸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대리권 남용행위는 대리권이 있더라도 본인에 대한 대리효과의 귀속이 차단되므로 무권대리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추가적으로 표현대리 규정에 따라 대리효과가 귀속될 수 있다는 입장(손지열)과 배임행위의 명백성을 근거로 구분하는 입장이 있다(백태승). 3. 표현대리에 대한 대리인행위설 및 행위규율분리설의 입장 (1) 우리민법은 표현대리를 대리권수여의 표시(제125조), 대리권의 범위 초과(제126조), 대리권 소멸 후의 대리행위(제129조)로 나누고 있다. 본인이 이러한 각각의 외관을 제공하였으므로 이에 관하여 선의·무과실인 상대방은 대리효과의 귀속을 주장할 수 있다. 표현대리는 대리권이 없다는 측면에서 무권대리이지만, 본인에게 효과가 귀속된다는 측면에서 유권대리로 취급할 수 있다. (2) 대리인행위설에 의하면 표현대리는 무권대리에 속한다(양형우). 우리 판례 역시 명백하게 표현대리가 성립되었다고 하여 무권대리의 성질이 유권대리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83다카1489). (3) 행위규율분리설은 표현대리를 유권대리로 이해한다. 대리의 본질은 본인과 상대방 사이의 규율인데, 표현대리는 본인의 외관 형성과 상대방의 신뢰에 기초하여 본인에게 대리효과를 귀속시키므로 유권대리의 아종이라고 한다. 특히 독일민법에서 인정되는 외부적 수권행위 개념이 유용하다(이영준). 독일민법은 대리권을 수여하는 방법으로 본인이 대리인에게 직접 대리권을 수여하는 방법(내부적 수권행위)과 본인이 대리행위의 상대방이 될 제3자에게 대리권을 수여하는 방법(외부적 수권행위)으로 나누어 규정한다(§167 Abs. 1). 그리고 외부적 수권행위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대리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170), 대리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특별통지와 다수의 제3자에 대한 공고(§171 Abs. 1) 또는 대리권 증서의 교부와 제시(§172 Abs. 1)를 인정하고 있다. 4. 표현대리에 대한 대리권 남용법리의 적용과 판결의 검토 (1) 앞의 판결에서 A는 乙은행의 당좌업무에 관한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 甲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였다. 乙은행은 그 지점장을 통해 A에 대한 대리권의 외관을 제공하였는데 甲이 이를 신뢰하였으므로, A에게 민법 제126조에 따른 표현대리가 성립하여 甲과 乙 사이에 예금계약이 인정되었다. 이에 더하여 A가 甲에게서 예금으로 교부받은 금전을 횡령하고 甲에게 기준을 넘어서는 이자를 지급한 것은 대리권 남용행위이다. 甲이 이러한 A의 배임의도를 알았으니 대리권 남용법리에 따라 乙은행에 대한 A의 대리효과로서 예금계약은 성립할 수 없다. 이것이 판결의 결론이었다. (2) 대리인행위설은 표현대리를 무권대리로 이해하였고 대리권 남용법리는 유권대리에 관하여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논리적으로 무권대리인 A의 표현대리에 대하여 유권대리에 관한 대리권 남용법리는 적용할 수 없다. (3) 행위규율분리설에 의하더라도 표현대리는 유권대리라고 하면서 대리권 남용법리를 적용하면 A의 동일한 행위가 갑자기 무권대리로 변경되는 기이한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유권대리로 취급된 표현대리가 대리권 남용법리의 적용에 의하여 무권대리가 된다면, 그 무권대리는 다시 표현대리의 요건 충족으로 유권대리가 되는 순환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리권 남용법리의 적용으로 이론상 무권대리가 되더라도 대리권 남용행위를 한 대리인에게는 실제로 대리권이 존재하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 그러므로 대리인행위설에 의하면 A의 행위가 무권대리였다가 유권대리로 바뀌고, 행위규율분리설에 의하면 유권대리였다가 무권대리로 변경되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위 판결이 대리인행위설에 따른 것인지, 행위규율분리설에 따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A는 乙은행으로부터 수여받은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 甲과 예금계약을 체결하는 하나의 동일한 행위를 했을 뿐인데, 대리의 본질에 관한 두 견해에 의하여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유권대리 또는 무권대리로 혼란스럽게 법적 성질이 결정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정상현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표현대리
대리권남용
예금계약
정상현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2020-01-20
민사일반
주택·상가임대차
임대차계약 종료 후 임차인의 목적물 계속점유와 실질적 이득
1. 판결의 소개 가. 사안의 개요 ① 원고들은 2015년 2월 1일 피고에게 이 사건 점포를 보증금 5000만원, 월 차임 150만원(부가가치세 별도), 임대기간 2015년 2월 1일부터 2016년 2월 27일까지로 정하여 임대하는 내용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그 무렵 피고에게 위 점포를 인도해 주었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는 월 임대료를 3회 이상 연체 시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특약이 있었다. ② 피고는 2015년 3월 3일 및 2015년 4월 7일 원고들에게 각 150만원을 차임 명목으로 지급하였을 뿐 그 외에는 차임을 지급하지 않았다. ③ 원고들은 2015년 12월 2일 피고에게 차임 연체를 이유로 임대차계약 해지통고를 하였고, 위 해지통고는 2015년 12월 3일 피고에게 송달되었다. ④ 피고는 이 사건 점포에서 커피전문점 영업을 하다가 2016년 9월 28일 폐업신고를 하였고, 이후에도 이 사건 점포에 영업비품들을 그대로 비치하는 등 이 사건 점포를 계속하여 점유하였다. 원고들은 피고에 대하여 임대차계약 종료에 따른 목적물반환청구, 임대목적물 인도완료일까지 연체차임 지급 또는 차임상당 부당이득반환의 청구를 하였다. 나. 소송의 경과 ① 제1심 판결 : 청구 전부인용 피고가 보증금반환과의 동시이행항변을 하지 않았고, 원고들의 청구는 전부인용되었다. ② 원심판결 : 청구 일부인용 1심 전부승소판결에 따라 가집행이 이루어져 2017년 9월 26일 이 사건 점포는 원고들에게 반환되었다. 피고는 2016년 9월 28일 이후로는 더 이상 이 사건 점포를 사용·수익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피고는 원고들로부터 보증금 5000만원에서 연체차임 등을 공제한 금원을 반환받을 때까지 목적물반환청구에 응할 수 없다는 동시이행항변을 하였다. 그러나 원심은 2016년 9월 28일 이후 피고가 더 이상 이 사건 점포를 사용·수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아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피고의 부당이득반환의무가 계속 발생하므로 이를 보증금에서 공제하면 보증금이 모두 소멸하였다고 보아 피고의 동시이행항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③ 대상판결 : 파기환송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법리를 근거로 2016년 9월 28일 이후 피고가 더 이상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그 이익을 반환하여야 한다(민법 제741조), 여기에서 이익이라 함은 실질적인 이익을 의미하므로, 임대차계약관계가 소멸된 이후에 임차인이 임차건물 부분을 계속 점유하기는 하였으나 이를 본래의 임대차계약상의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하지 아니하여 실질적인 이득을 얻은 바 없는 경우에는, 그로 인하여 임대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임차인의 사정으로 인하여 임차건물 부분을 사용·수익하지 못하였거나 임차인이 자신의 시설물을 반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2. 문제의 제기 대상판결의 법리는 매우 간명하다. 임차인이 영업을 목적으로 임차를 하였는데 임대차계약 종료 후 영업을 하지는 않지만 영업에 필요한 자신의 시설물을 아직 반출하지 않고 임차목적물을 마치 창고처럼 활용한 경우에도 임차인은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시(이른바 '실질적 이득론')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종전 대법원 판례 중에도 비슷한 판시를 한 것이 있다(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8554 판결, 대법원 1992. 4. 14. 선고 91다45202·45219 판결). 그런데 이러한 법리가 항상 타당한가? 임대보증금이 아예 없거나 연체차임 등의 공제로 인해 임차인이 영업을 종료한 시점에서 임대보증금이 모두 소멸하여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동시이행관계가 문제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임차목적물을 단순 점유하거나 소극적·부수적으로 사용·수익하는 임차인도 위 판시에 따라 차임상당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임대차종료 후 목적물을 반환하지 않고 있는 임차인은 그 목적물을 사용·수익하지 않고 단순 점유하는 경우에도 임대인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임대인은 임대차계약에 따라 임차인에게 사용·수익 '가능성'을 급부한 것이므로, 임대차계약이 종료하면 임차인은 사용·수익 '가능성'을 급부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 판례가 확립한 실질적 이득론은 동시이행항변권이 존재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예외법리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임차목적물을 단순 점유하거나 소극적·부수적으로 사용·수익하는 경우까지 임차인에게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지우는 것은 임차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임차인이 임대인을 이행지체에 빠트리더라도 보증금에 대한 법정이자 상당의 지연손해금과 임차목적물의 사용수익 이익이 서로 맞비기는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임차인은 여전히 불리할 수 있다. 3. 동시이행항변권의 존재 : 필요조건? 충분조건? 다만 동시이행항변권의 존재는 실질적 이득론을 적용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사료된다. 임차인이 목적물을 단순 점유하거나 소극적·부수적으로 사용·수익하는 것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한 방편이라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임차인은 임대인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원칙으로 돌아가 임차인은 - 설령 목적물을 실질적으로 사용·수익하지 않더라도 -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가령 ① 임차인의 영업종료 시점 또는 임대차종료 시점 중 나중 시점에서의 잔존 임차보증금이 매우 소액이어서 임대인이 이를 지급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면 임차목적물에서 임차인이 영업을 종료한 후에도 임차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를 계속 인정함이 타당하다. ② 또한 임차인이 이전부터 계속 차임을 연체해 오고 있었고 임대차계약 종료 전에 이미 폐업을 하였으며 사업부도로 연락이 두절된 경우처럼, 설령 임대인이 보증금의 변제제공을 하더라도 임차인이 목적물을 반환하지 않을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에는 시설을 반출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둔 임차인을 굳이 보호할 필요성은 없다. ③ 또한 임차인의 연체차임 누적액이 이미 보증금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경우 비록 임대인이 명시적으로 공제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에게 동시이행항변권이 있으므로 이를 이유로 '실질적 이득'이 있는 경우에만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겠다는 임차인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고 사료된다.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동시이행항변권의 존재를 이유로 임차인이 부당이득반환을 거부한다면 이는 동시이행항변권의 법률효과를 남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생각의 확장 임차목적물을 단지 소극적·부수적으로 사용·수익하는 임차인은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대상판결의 판시는 다른 쟁점에 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보증금이 있는 건물소유 목적의 토지 임대차에서 임차인이 자기 소유 건물을 단순 점유하고 있는 경우 임차인은 건물이 놓인 토지를 단순점유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토지를 점유할 뿐만 아니라 사용·수익하고 있는 것인가? 임차인이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임차인이 건물을 사용·수익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건물을 소유하는 것 자체만으로 그 건물이 놓인 토지를 (실질적으로) 사용·수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에 따라 토지에 대한 차임상당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하여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 경우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 및 매매대금지급의무와 임차인의 건물 소유권이전등기 및 인도의무가 동시이행관계에 놓이고, 임차인으로서는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과 건물매매대금을 지급받기 위한 방편으로 '건물'을 '소유(+단순 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임차인의 토지 사용·수익은 소극적·부수적 사용·수익에 불과하므로 임차인은 토지 사용·수익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러한 결론은 토지 임대차에 관하여 보증금이 없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판례는 건물 소유자는 그 건물이 놓인 부지를 점유하고 사용·수익한다는 명제를 일관되게 적용하여 토지임차인 겸 건물소유자의 부당이득반환의무를 긍정하는 취지로 보인다(대법원 1998. 5. 8. 선고 98다2389 판결, 대법원 2001. 6. 1. 선고 99다60535 판결). 그러나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임대차 종료 후 임차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와 관련하여 판례가 취하는 실질적 이득론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재고를 요한다. 최준규 교수 (서울대 로스쿨)
상가
임대차
임대료
최준규 교수 (서울대 로스쿨)
2019-12-12
민사일반
‘재판상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
1. 사실 및 논점 (1) 원고는 수원지방법원 2003가합15269호로 피고를 상대로 원고가 피고에게 1997년 2월 말경 6,000만 원, 1997년 4월 초경 1억 원을 각 대여하였다고 주장하며 대여금 1억 6,000만 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청구를 하여, 2004년 11월 11일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선고받고 2004년 12월 7일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원고는 2014년 11월 4일 위 대여금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후 소로서 피고를 상대로 1억 6,000만 원 및 그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이행의 소를 제기하여 원심은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2)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대한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직권으로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후 소의 형태에 관하여 살펴보았는데 이것이 논점이다. 2. 대법원판결이유의 요지 (1) 다수의견의 요지 채권자가 전소로 이행청구를 하여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후 그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후 소를 제기하는 경우, 후 소의 형태로서 항상 전소와 동일한 이행청구만 시효중단사유인 ‘재판상의 청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시효중단을 위해서 오로지 전소와 소송목적이 동일한 이행소송만 제기되어야 한다면 채권자가 실제로 의도하지도 않은 청구권의 존부에 관한 실체 심리가 진행됨으로써 채무자는 전소 판결에 대한 청구이의사유를 조기에 제출하지 아니할 수 없어 법원은 이에 관하여 불필요한 심리를 하여야 하며, 채무자는 중복된 이행판결로 말미암은 이중집행의 위험에 노출되고, 실질적인 채권의 관리·보전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채권자 또한 자신이 제기한 후 소의 적법성이 10년의 경과가 임박하였는지 여부라는 불명확한 기준에 의해 좌우되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효중단을 위한 후 소로서 이행소송 외에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 즉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채권자는 위 두 가지 형태의 소송 중 자신의 상황과 필요에 보다 적합한 것을 선택하여 제기할 수 있는 편익이 생긴다. (2) 소수의견의 요지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再訴)로서 이행소송과 함께 해석을 통하여 다른 형태의 소송을 허용하고자 한다면, ‘청구권 확인소송’으로 충분하다. 입법을 통하여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도입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이를 법률의 해석을 통하여 받아들일 수는 없다. 청구권 확인소송은 전소 판결의 소송목적이자 전소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 그 자체를 대상으로 확인을 구하는 소송이다. 청구권 확인소송과 비교하여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큰 이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리적 측면에서도 청구권 확인소송을 허용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는 반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는 확인의 이익을 비롯하여 법리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적지 않다. 3. 논점의 전개 (1) 상고심의 심리범위 대법원이 판단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상고이유에 대한 것이 아니고 직권으로 판단한 것이므로 상고심의 심리범위에 속하는지 문제된다. 그러나 상고심에서도 직권심리사항에 관해서 사실심리가 가능한 이상(제434조)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후소의 형태가 중복된 소제기의 금지원칙(제259조)의 적용범위 문제라고 한다면 직권심리가 가능하다할 것이다. 따라서 위 대전판은 상고기각의 결론을 달리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 시효중단사유로서의 재판상의 청구 민법 제170조 제1항은 재판상의 청구는 소송의 각하, 기각 또는 취하의 경우에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할 뿐 청구인용판결의 경우에는 그 종류를 물어서 시효중단의 효력을 부정하지 아니하므로 이행소송 이외에도 확인소송이 청구인용판결로 되었다면 당연히 시효중단의 효력이 있다. 문제는 재판상 청구가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할 수 있느냐이다. (3)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확인의 이익 재판상청구가 있으면 소멸시효가 중단된다는 점은 민법 제168조 제1호와 민법 제170조 제1항의 사유이므로 재판상 청구가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것은 위 민법규정의 확인을 구하는 것에 다름이 없으므로 원칙적으로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할 것이다. 판례는 민법 제211조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원고가 소유자인 피고에게 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물건에 관하여 소유권의 핵심적 권능에 속하는 배타적 사용·수익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소극적 확인주장은, 법적 3단 논법의 대전제인 물권법정주의(민 제185조)의 적용을 받는 민법 제211조라는 법규에 대한 확인을 구하는 것이므로 그 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이 없다(대판 2012. 6. 28. 2010다81049 참조)고 하였다. (4) 청구권확인소송의 문제점 채권자가 전소로 이행청구를 하여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후 재차의 이행청구소송이나 확인소송이 허용되는 이유는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해서이다. 따라서 시효중단 목적이 없는 중복된 이행청구소송이나 청구권확인소송은 2중 제소 금지원칙에 위반되어 부적법한 것이다. 따라서 청구권확인소송은 시효중단을 위한 범위에서만 확인의 이익이 있으므로 그렇지 않은 청구권확인소송은 허용되기 어렵다. (5) 시효중단을 위한 확인소송 원고가 이미 확정력 있는 집행권원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집행권원의 범위에 관하여 다툼이 없는 한 새로운 소를 제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부적법하다. 또한 소제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더 간단한 시효중단 방법이 있을 경우, 예컨대 임의경매신청 등으로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는 경우(대판 1991.12.10. 선고 91다17092 참조) 등에는 동일한 소송목적에 대한 소의 반복 제기를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소멸시효의 완성이 임박하고, 소제기보다 간편한 민사집행의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시효중단을 위한 확인소송을 허용하여야 하며, 그 경우의 확인소송은 확인의 이익이 부존재하는 부적법한 확인소송도 허용하여야 할 것이다. 독일 연방통상대법원(BGH) 판례에 따르면, 부적법한 확인하는 소라고 하더라도 실질적 권리자에 의해서 제기되는 한(BGH NJW 2010, 2270 Rn. 38; BeckOK ZPO/Bacher, 31. Ed. 1.12.2018, ZPO § 256 Rn. 13.2.),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중단된다(BGH NJW-RR 2013, 992 Rn. 28; NJW 2004, 3772; BeckOK ZPO/Bacher, 31. Ed. 1.12.2018, ZPO § 256 Rn. 13.2.)고 하였다. 다만 채권이 단지 도산절차에서의 신청에 의해서만 회수될 수 있을 때에는, 확인하는 소로 소멸시효를 중단할 수 없다고 한다( BGH NJW-RR 2013, 992 Rn. 28; BeckOK ZPO/Bacher, 31. Ed. 1.12.2018, ZPO § 256 Rn. 13.2.). 4. 결론 (1) 결국 우리 대법원 판결의‘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독일 판례상 ‘시효중단을 위한 확인소송’과 같다고 평가할 수 있으므로 입법사항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확인소송의 기능은 분쟁의 예방에 있는데 시효중단을 위한 확인소송이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소멸시효에 관한 분쟁해결 기능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법률관계의 분쟁에 관한 확인소송이 아니어서 부적법하다고 하더라도 시효중단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허용할 필요가 있다. (2) 다만 법률상 확인소송으로서는 부적법하므로 이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소멸시효완성의 임박성이나 소제기보다 간단한 민사집행 방법이 부존재하다는 보충성의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여 영구적으로 소멸하지 않는 채권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대전판 2018.7.1., 2018다22008의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각종 채권추심기관의 난립과 횡행을 부추겨 충분한 변제능력이 없는 경제적 약자가 견뎌야 할 채무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지는 사회적 문제가 따르게 때문이다. 대상판결은 시효완성의 임박성이 있는 시점에 시효중단을 위해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하지만 소제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더 간단한 시효중단 방법이 있는 지 등 민사집행 방법의 부존재 요건을 살피도록 설시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강현중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대여금
지연손해금
소멸시효
강현중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2019-02-18
민사일반
사기죄와 피기망자의 처분의사
- 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판결 - Ⅰ. 개요 1. 사실관계(쟁점 검토에 필요한 범위에서 최대한 단순화하였다) 피고인은 토지거래허가에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서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하게 하고, 이를 이용하여 위 토지에 관하여 피고인을 채무자로 하여 대부업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주고, 근저당권자로부터 금전을 차용하였다. 2. 쟁점 피고인의 행위는 기망행위에 의해 유발된 착오로 인하여 피기망자가 내심의 의사(토지거래허가 신청)와 다른 처분문서(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서명?날인함으로써 재산상 손해를 초래한 이른바 ‘서명사취’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종래 사기죄의 구성요건인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인정되려면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였고(대법원 87도1042 판결, 대법원 99도1326 판결, 대법원 선고 2011도769 판결 등), 서명?날인을 한 피기망자가 처분결과를 인식하지 못한 서명사취 사안에서 사기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다(대법원 87도1042 판결). 대상판결의 제1심 및 원심은 종전 판례에 따라 사기의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대상판결에서는,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는지, 서명사취 사안에서도 사기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고,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1. 다수의견(7명) 1) 사기죄의 본질과 그 구조, 처분행위와 그 의사적 요소로서 처분의사의 기능과 역할, 기망행위와 착오의 의미 등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고, 이러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피기망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면 처분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의사는 인정된다. 다시 말하면 피기망자가 자신의 작위 또는 부작위에 따른 결과까지 인식하여야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피기망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결과 내심의 의사와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초래되었다면 그와 같은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을 한 피기망자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 아울러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결과, 즉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그 법적 효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그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피기망자의 처분의사 역시 인정된다. 2. 반대의견(6명) 1) 절도죄와 구별되는 사기죄의 본질, 처분행위와 그 의사적 요소로서 처분의사의 의미 등에 비추어 볼 때,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되려면 처분결과에 대한 피기망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2)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 피기망자에게는 자신이 서명 또는 날인하는 처분문서의 내용과 그 법적 효과에 대하여 아무런 인식이 없으므로 처분의사와 그에 기한 처분행위를 부정함이 옳다. Ⅲ. 대상판결의 검토 1.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 유무와 사기죄의 성립 여부 1)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347조). 판례와 학설은 이를 풀어 사기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으로 ① 행위자의 기망행위, ② 피기망자의 착오 및 ③ 그에 따른 처분행위, ④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 ⑤ 그 사이에 순차적인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2)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는 기망, 착오,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으로 이어지는 사기죄의 구조에서 위 구성요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처분행위가 사기죄의 ‘기술된 구성요건’이냐 ‘기술되지 않은 구성이냐’에 대한 논의가 있으나, 범죄 구조상 처분행위가 사기죄의 성립에 필요한 구성요건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또한 사기죄의 구성요건으로서 처분행위는 사기죄와 절도죄를 구별하는 역할을 한다. 본질적으로 사기죄는 피기망자(주로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이고, 절도죄는 피해자가 아니라 범죄행위자의 행위에 의하여 재물을 탈취하는 범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기죄를 자기손상범죄, 절도죄를 타인손상범죄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3) 처분행위와 관련하여, 피기망자에게 처분행위에 관한 주관적 인식, 즉 처분의사가 있어야 하는지, 그렇다면 처분의사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견해의 대립이 있다. 이 견해 대립은 사기죄의 처벌 범위를 달리 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4)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모두 처분행위가 인정되려면 이에 관한 처분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입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처분의사의 구체적 의미에 관하여, 다수의견은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인식’으로 충분하다고 해석하는 반면, 반대의견은 ‘그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 즉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만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다수의견은 처분‘행위’에 관한 인식에, 반대의견은 ‘처분’행위에 관한 인식에 강조점을 둔다.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처벌 여부를 달리 보는 행위로는 ① 본건과 같은 서명사취 사안, ② 변종 보이스피싱 행위(예: 세금환급을 해 준다고 속이고 피해자를 현금인출기로 유인해 피해자 계좌에서 보이스피싱 계좌로 돈을 이체하도록 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다수의견에 의하면, 위 사안에서 피해자(피기망자)는 어떠한 처분문서에 관한 서명?날인 행위 또는 현금인출기 작동 행위를 한다는 점에 관한 인식이 있었으므로, 처분의사가 인정되고, 사기죄가 성립한다. 반면 반대의견에 의하면, 피해자(피기망자)는 처분문서의 내용과 같은 재산의 이전 또는 보이스피싱 계좌로의 자금 이체라는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었으므로, 처분의사가 인정되지 않아,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반대의견에 의하면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해 피해자를 더 심한 착오에 빠뜨리는 행위를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고 비판한다. 반면 반대의견은, 처벌의 공백은 특별 입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데도(예: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등) 다수의견이 형법의 보장적 기능을 훼손하면서까지 범죄 구성요건을 무리하게 확대해석한다고 비판한다. 2. 서명사취 관련 법률관계 1) 대상판결에 따라 이제 서명사취의 방법으로 재산을 취득하는 행위도 사기죄로 처벌될 수 있다. 그런데 판례는 명의인을 기망하여 문서를 작성케 하는 행위는 서명?날인이 정당하게 성립되었다고 하더라도 명의인을 이용하여 서명?날인자의 의사에 반하는 문서를 작성케 한 것이므로 사문서위조죄가 성립한다고 본다(대법원 2000도778 판결 등). 그렇다면 서명사취의 방법으로 처분문서를 작성케 하고 이를 이용하여 타인의 재산을 취득하는 경우 사문서위조죄, 동 행사죄와 사기죄가 함께 성립할 수 있다. 2) ‘서명사취’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인장사취’가 있다. 이는 용도 등을 속여 타인으로부터 도장을 받은 후 임의로 타인 명의의 문서를 작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인장사취 행위가 문서위조죄에 해당함은 물론이나, 사기죄 성립에 관하여는 판례가 이를 부정하였다(대법원 81도1732 판결). 반면 이제 서명사취의 경우는 피해자의 서명?날인행위가 처분행위로 인정됨으로써 사기죄가 성립하게 되었다. 사기죄 성립 여부에 있어서 서명사취와 인장사취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셈이다. 3) 다만 서명사취의 방법으로 작성하든, 인장사취의 방법으로 작성하든 그 문서는 모두 명의자의 의사에 반하여 작성된 위조문서라는 점은 같다. 따라서 설령 피해자 명의의 처분문서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서명사취 또는 인장사취에 의한 위조문서임이 밝혀진 경우에는 그 처분문서 내용과 같은 법률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처분문서의 내용과 같은 법률효과가 발생할 수도 없다. 실제로 대상판결 사안에서 피해자 소유 토지에 설정된 근저당권설정등기는 민사소송을 통하여 근저당권 설정에 관한 의사 합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소된 것으로 보인다. Ⅳ. 사견 처분행위는 범죄행위자의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의 행위로서 책임주의 원칙과 관련이 없어, 피해자의 주관적 인식을 범죄행위자의 고의와 같은 정도로 엄격하게 해석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기망행위가 어느 수준 이상 지능적이 되면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사기죄의 근본 취지에 반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다수의견에 공감한다. 다만 반대의견이 민사법 분야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기본 범죄의 해석론을 너무 쉽게 변경한다고 우려한 뜻은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예컨대 이제 서명사취로 인한 피해자의 처분문서 작성행위는 민사법적으로는 법률효과를 발생케 하는 법률행위가 아니면서, 형사법적으로는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에 해당하게 되었다. 이 간극을 매끄럽게 해석하는 것도 향후의 과제라고 본다.
토지거래허가
토지소유자
대부업자
근저당권
사기죄
김일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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