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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해설
판례평석
판결전문
노동·근로
민사일반
파산·회생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파견법상 권리에 미치는 영향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1. 사안의 개요 A 회사는 1993. 9. 17. 설립되어 원청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및 그 자회사인 D 회사로부터 광산 채광업무를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고, 근로자 갑은 2012. 3. 1. A 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당시 계열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2013. 10. 17. 회생절차개시결정, 2014. 3. 18. 회생계획인가결정을 각 받았다.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고용청구권 및 금전채권(파견법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회생채권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의 관리인 역시 원고를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하였다.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는 2015. 3. 6. 종결되었다. 한편 B회사는 2008. 5. 22. 컴프레서 운전용역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역시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로부터 원청 사업장 내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의 운전 및 점검업무 등을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다. 근로자 을은 2008. 6. 1. 에, 근로자 병은 2014. 12. 26.에, 근로자 정은 2016. 8. 13.에 각각 B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로자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와 더불어, 원청 소속의 비교대상 근로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한 것이 파견법 제21조 제1항의 차별에 해당하고 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근로자 을, 병, 정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 및 고용의무 불이행(즉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각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다만, 원고 정의 경우 위 직접고용청구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소일부취하 하였다. 이하 위 근로자 갑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대상판결’이라 한다. ) (사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석 주제와 직접 관련없는 당사자 및 사실관계는 요약 내지 생략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2020나1108 등 판결)은, 위 파견근로자들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형성권이 아닌 청구권이기는 하지만 재산상의 청구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에 기해 직접고용청구권이 불성립하거나 소멸한다는피고 주장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었더라도 이후 회생절차 종결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면 파견근로자는 다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1항의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시행령 제2조의2는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을 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바, 그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같은 법리에 기해 대법원은, 1) 원고 을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기 전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파견근로자이므로 위 원고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해 소멸하였고, 더 이상 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직접고용의무에 터잡아 회생절차개시 후의 직접고용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고, 2)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의 성립요건은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 충족되었으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이를 전제로 한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3) 다만 원고 정은 회생절차가 종결된 후인 2016. 8. 13.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였으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가 적용되지 않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원고 정에게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갑의 경우 항소심에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의 권리소멸 등 주장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에 대한 석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의 직접고용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다만 사용사업주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파견근로자가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이는 구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러한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차별적 처우를 해소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한다고 전제한 다음,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상기 손해배상청구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회생채권 또는 동법 제181조의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본안전 항변을 배척한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3. 평석 가. 파견법 제6조의2의 권리장애 및 권리소멸 효과 현행 파견법 제6조의2 조항은 2006. 12. 21.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된 것이다. 본래 1998년 제정된 파견법(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고용관계를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의제조항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계약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위 개정법 시행일인 2007. 7. 1. 이후부터는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여야 한다’는 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위 개정법의 적용 대상인 파견근로자는 직접고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같은 권리는 청구권인가 형성권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학계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현재는 사용사업주는 물론 파견근로자 역시도 아래에서 살펴볼 이른바 ‘10년 손해배상’을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 청구권설을 지지하는 듯하다. 다만 이같은 파견법상 권리가 청구권이라면 다른 일반채권과 마찬가지로 이행의 문제가 남게 되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고용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을 포함한 파견근로자의 제 권리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바, 적어도 대상판결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필자가 알기로는 이에 대한 학계 및 실무상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먼저 파견근로자의 고용청구권 자체가 회생절차 개시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즉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각호의 사유가 회생절차 개시결정일 이전부터 있었다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에 기해 회생채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사건 원심은 직접고용청구권은 단순히 근로계약관계 형성의 법률효과를 가져올 뿐인 점,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점 등을 근거로 직접고용청구권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채권양도인인 회생채무자에 대해 채권양수인이 갖는 양도통지 이행청구권(대법원 2016마5082 결정), 골프회원권(대법원 89다카4113 판결)과 같은 계약상 급여청구권(비금전채권)에 대해서도 회생채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점,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는 고용의무가 이행된 후 그에 터잡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임금채권이 공익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보다 선행하는 고용청구권 자체의 성질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는 직접고용청구권이 회생채무자의 재산감소와 직결되는 권리임을 더욱 명확히 보여줄 뿐인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는 직접고용청구권 자체의 회생절차상 취급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한 조항이라고 평가된다. 대상판결은 위 파견법 조항이 직접고용의무의 예외규정을 둔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사용사업주에 대하여도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하게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책적 고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앞서 살핀 바와 같이 ①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지 않고, ②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고 ③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다. 요컨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의 직접고용청구권에 대해서는 권리장애적 항변이 되고, 회생개시 이전에 이미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사용사업주는 위 조항을 근거로 권리소멸 항변을 할 수 있음이 명확해졌다.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나. 회생개시결정 전부터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차별이 반복되어 온 경우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 한편 고용청구권 자체의 법적 성질과는 별개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부터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해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고용의무 또는 동법 제21조의 차별이 계속되어 온 경우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회생채권 또는 개시후기타채권(채무자회생법 제181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파견법이 제정된 1998년 당시만 해도 하청 소속 근로자들은 주로 원청과의 묵시적 근로관계(소위 위장도급)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파견법에 기한 권리주장은 묵시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한 예비적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06년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고용 의제가 아닌 고용의무 규정이 도입되자, 이에 착안해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비교대상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차별(불법행위)을 원인삼아 파견근로기간 동안 차별받은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법원은 이미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239024 등 판결) 사용사업주가 파견사업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파견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의무 일부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입장에는 다소의 의문이 있다. 파견근로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권리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침해된 법익이 없는 바, 이같은 경우에도 불법행위와의 경합을 인정한다면 계약법 영역과의 준별이 분명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 전부터 사용사업주의 재산상 청구권(즉 고용의무 또는 차별해소의무)의 불이행이 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관계에 있는 때에는 그 계속으로 회생절차개시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말하는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문제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4. 11. 12.선고2002다53865 판결 참조) 이 문제에 대해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은,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 온 사용사업주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그 차별적 처우를 해소할 의무를 부담하고, 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하는 것이므로,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에 해당하므로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원고 갑의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은, 앞서 본 원고 을, 병의 고용의무가 소멸하거나 발생하지 아니한 이상 피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파견근로자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를 고용의무 불이행(채무불이행)에서 찾든 차별해소의무 위반(불법행위)에서 찾든 간에, 그 요건사실인 근로자파견관계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다면 청구권의 주요한 발생원인은 회생절차개시 전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 갑과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간의 근로자파견관계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이전에 성립해 그 이후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았음에도, 회생절차 관리인이 위 원고를 차별 처우한 것이 회생절차 이전의 차별과 별개인 ‘새로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바, 이 부분 판시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채무자회생법 제251조 본문에서 이른바 실권제도를 둔 것은, 절차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였음에도 절차에 참여하지 아니한 권리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과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권리자로 인하여 회생계획의 수행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가 회생절차에 돌입한 사정은 하청업체인 A, B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다만 당초에는 묵시적 근로관계 주장에 집중한 나머지 파견법상 권리주장에 소홀하였던 것이므로,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보아도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 다. 보론 - 파견법위반(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요건 및 소멸시효 백보를 양보하여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계속된 파견관계에 기해 그 후에도 임금을 차별한 것이 ‘새로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는 사용사업주가 당연히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회생절차개시 여부를 불문하고, 사용사업주가 파견법 제21조의 차별금지를 위반한 사안이라면 일반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사용사업주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책임을 지려면 파견관계 내지 임금 차별에 대해 사용사업주(또는 관리인)의 귀책사유 내지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불법행위를 청구권원으로 삼는다면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파견근로자에게 있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파견근로자의 권리주장은 점차 직고용에서 손해배상청구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용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의제된 경우에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 범위 내에서 임금차액 자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지만, 고용의무 내지 차별금지의무에 터잡아 불법행위로 구성할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라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의 범위 내에서 소급해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있다. 즉 파견근로자는 동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도과만 면한다면, 계약상 권리보다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여기게 된다. (심지어는, 구 파견법에 기해 고용관계가 의제된 파견근로자조차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위 3년 이전에 발생한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의 원심에서는, 이 사건 소제기일로부터 역산하여 3년 이전의 기간에 발생한 원고 갑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로 인해 소멸하였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었다. 원심 및 대상판결은 원고 갑이 위 소제기일로부터 3년 전 당시에 차별적 처우를 당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취지로 피고 회사의 위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기는 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파견법위반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법 제766조 제2항의 장기 소멸시효 규정까지 적용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10년간의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단정하여서는 곤란하다. 다른 법률에 특별히 그보다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그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찰 담합을 원인으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되지만, 장기 소멸시효는 국가재정법 제96조에 따라 5년으로 적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결론 및 향후 과제 그간의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주로 원청과 하청, 하청근로자 간의 법률관계가 진성 도급관계인지 아니면 근로자파견관계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고, 특히 원청회사 사업장 내에서 원청의 일을 도급주는 형태인 소위 사내하청이 파견관계인지 여부, 컨베이어벨트 바깥의 이른바 간접공정에 속한 경우에도 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자주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므로 산업분야 및 사업장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원청 회사에서 파견으로 볼 만한 기준 내지 요소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생산라인 내지 인력구조 자체를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내도급 방식으로 운영되는 중견기업 및 대기업이라면 앞으로도 불법파견에 관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파견근로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그 권리행사의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 및 실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은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 파견법상 권리 역시 변경 내지 소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비단 대상판결의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뿐 아니라,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완성차업계 및 조선업계 등에서는 장기간 업황부진 등으로 회생을 면하기 어려운 회사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청구권 및 그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에 대해 보다 명확히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만 파견법 제21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지, 특히 회생절차에서 선임된 관리인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파견법위반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의 장기 소멸시효는 무엇인지 여부는 향후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파견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 및 그 효과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소멸시효
임금채권
임금차별
불법파견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2023-08-13
형사일반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②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과 위법성 판단
Ⅰ. 판례평석의 배경과 쟁점의 소재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많은 자유에 대한 제한 현상이 행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를 둘러싼 자유의 제한과 처벌이 강화되고 있다. 동법상의 역학조사거부에 대한 대법원과 원심의 판결을 소개하고, 역학조사의 성격과 위법성 판단기준 등과 관련하여 비판적인 판례평석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대상판결은 형사법원의 처분 등에 대한 선결문제 심사문제를 담고 있으며, 형사법과 행정법의 학문접경지대의 간학문적인 영역에 위치하여 행정법적 쟁점을 많이 담고 있다. 소송물이론과 비례의 원칙, 행정절차 등 쟁점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점들을 제대로 규명하고 있지 못한 대법원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Ⅱ. 사실관계 '○○○○○ 센터'(이하 '이 사건 센터'라고 한다)는 △△△△△회(명칭 생략)가 운영하는 수련시설이다. 2020년 11월 27일부터 2020년 11월 28일까지 이 사건 센터에서 '□□□□□□ 역량 개발 행사'(이하 '이 사건 행사'라고 한다)가 개최되었는데, 이 사건 행사에 참석한 공소외 1이 2020년 12월 3일 대구광역시 ◇◇구보건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라고 한다) 양성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센터 시설을 관리하던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3일 상주시의 코로나19 관련 역학조사 담당자인 공소외 2로부터 이 사건 행사 기간에 이 사건 센터 시설에 출입한 자들의 명단과 해당 시설에 종사하는 자들의 명단(위 각 명단을 합하여 이하 '이 사건 명단'이라고 한다)을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아울러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4일 이 사건 명단을 제출해 달라는 상주시장 명의의 공문을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상주시장의 '역학조사를 거부'하였다. 결국 피고인들은 역학조사 거부로 인한「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이라고 한다) 위반죄로 기소되어 유무죄 판결에 대한 심리를 받게 되었다.[1] [각주1] 저자가 공소사실의 취지를 요약하였음을 밝힌다.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충실하되,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여 판결할 수 있도록 심리방식과 내용을 개선하여야 한다. Ⅲ. 대법원 판결요지[2] 1. 침익적 행정행위와 행정형벌의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해석의 원칙[3] 헌법은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범죄와 형벌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3조 제1항).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 그중에서도 특히 형벌에 관한 법률은 국가기관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지 않도록 명확하여야 한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결정해 나가기에 충분한 기준이 될 정도의 의미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형벌법규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 될 수 있으므로[4], 불명확한 규정을 헌법에 맞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확장해석금지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5] [각주2] 대법원 2022. 11. 17. 선고 2022도7290 판결 [각주3]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저자가 역시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부기하였음을 밝힌다. [각주4] 헌법재판소 2016. 11. 24. 선고 2015헌가2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각주5] 대법원 2021. 1. 28. 선고 2020도2642 판결 참조 2. 감염병예방법의 역학조사에 관한 구성요건과 행정형벌 규정의 해석의 범위 감염병예방법상의 문언과 체계 등을 종합하면, 감염병예방법상 ‘역학조사’는 일반적으로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에서 정의한 활동을 말하고, 여기에는 관계자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 실시하는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활동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수범자의 예견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 범위가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따라서 형벌법규의 구성요건적 요소에 해당하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의 ‘역학조사’는,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의 정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제29조,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주체, 시기, 대상,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활동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6] [각주6] 필요한 범위 내의 판결요지만 적시하기로 한다. ‘요구나 제의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침’을 뜻하는 ‘거부’의 사전적 의미 등을 고려하면,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나 그의 공범에 대하여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가 실시되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원심판결의 하자에 대한 법리상의 검토 (1) 원심판결인 대구지법 2022. 5. 26. 선고 2021노3395 판결은 상주시장 측의 위와 같은 요청을 거부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7] [각주7] 저자가 원심판결을 축약하였다. (2) 그러나, 쟁점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에 해당하여야 한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역학조사의 주체, 시기,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심리한 다음, 그 결과를 토대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그런데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에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의 의미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Ⅳ. 이 사건 판결에 대한 평석 1. 행정형벌에서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가부 (1) 형사법원에서 처분의 위법성 판단가능성과 선결문제 형사법원이 처분의 위법성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는지 선결 문제가 걸려있다. 다수설에 의하면 처분의 구성요건적 효력으로 논의된다. 행정소송법 제11조에서 형사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판단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이 없지만, 다수설과 판례는 처분의 위법성을 심사하여 형벌부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8] [각주8] 대법원 2017. 9. 21. 선고 2014도12230 판결, 대법원 2016. 12. 29. 선고 2014도16109 판결, 대법원 1992. 8. 18. 선고 90도1709 판결 등 (2) 범죄의 개방적 구성요건 행정형벌의 요건은 개방적 구성요건이다. 행정형벌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형벌의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행정법적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 역학조사 명령이 위법하다면 거부하더라도 무죄를 판결하여야 하고, 반대로 역학조사 명령이 적법하다면 이에 대한 거부는 유죄로 판결하여야 할 것이다. (3) 처분의 소송물과 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심사 범위에 대한 비판 처분의 위법성에 관한 소송물은 견해의 대립이 있지만,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라고 보는 것이 다수설과 판례[9]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심리함에 있어서 처분의 위법성일반을 전반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은 소송물에 관한 오해를 하고 있다. 행정소송의 소송물은병합 사건이라 하더라도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므로 대법원은 역학조사의 위법성 전반에 관한 법률을 검토하였어야 한다. [각주9] 대법원 2004. 3. 18. 선고 2001두194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7. 5. 16. 선고 96누8796 판결, 대법원 1990. 3. 23. 선고 89누5386 판결, 대법원 1989. 4. 11. 선고 87누647 판결 등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역학조사 명령의 위법성을 다음과 같이 검토해 보았어야 한다. 대법원은 보다 행정법과 연결된 문제 있어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할 수 있도록 성숙하게 발전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2.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을 위한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 심사기준 (1) 역학조사의 성격 역학조사는 행정법상 행정조사에 해당한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약칭: 감염병예방법) 제18조에 의하면 역학조사는감염병이 발생하여 유행할 우려가 있거나, 감염병 여부가 불분명하나 발병원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행정청이 지체 없이 역학조사를 하여야 하도록 하고 있다. 역학조사는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임의조사가 아니라 권력적 사실행위인 강제조사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동법 제18조 제3항에 의하면 1호상의 정당한 사유 없이 역학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회피하는 행위, 2호상의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 3호상의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행위 등에 대하여는 동법 제79조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그 자체는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수인하명과 순수사실행위가 결합된 합성행위로서 전체적으로 행정소송법 제2조의 처분과 동일한 성격에 해당하는 기타 행정작용에 속한다. 역학조사를 명령의 형태로 발부하는 경우에는 행정청의 행정행위로서 처분에 해당하게 된다. (2) 역학조사의 내용상의 위법성과 비례의 원칙 등 역학조사와 같은 행정조사는 실정법상으로는 「행정조사기본법」의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행정조사는 법률의 우위원칙상 동 법 등을 위반해서는 안 되고, 나아가 법률의 규정이 있어야만 하는 법률유보의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역학조사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18조에 규정이 있다. 그밖에도 비례의 원칙에 의하여 행정조사가 과잉조사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동법은 제4조 제1항에서 행정조사는 조사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실시하여야 하도록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동 규정은 다른 목적 등을 위하여 조사권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되도록 목적구속성의 원칙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이나 원심은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역학조사의 절차상의 위법성과 감염병예방법 및 행정조사기본법 준수 등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 제9조 내지 제13조상의 다양한 조사방법으로 수행될 수 있다. 「행정조사기본법」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제17조상의 서면에 의한 사전통지, 제24조 등에 의한 조사결과의 통지 등의 절차준수가 적법절차의 원리상 요구된다. 대법원이나 원심은 역시 이 부분을 포함하여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걸쳐 심리하였어야 한다. Ⅴ. 결론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 임하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하며,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대법원이나 원심이나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보다 행정법적으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성봉근 교수(서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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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봉근 교수(서경대)
20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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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의 본질과 표현대리 및 대리권 남용행위
I. 사실관계와 판시사항 1. 피고 乙은행 ○○지점의 당좌업무 대리 A는 재벌기업 대표이사 B로부터 대가를 약속받고 다른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예금을 유치하여 사업자금으로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원고 甲은 대리인 C를 통해 A와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1억 원을 乙에 예치하였다. A는 그 중 100만 원을 입금 처리하고 나머지는 원장에 기재하지 않은 채 B에게 지급하는 등, 4년간 약 1,066억 원을 예치하여 그 중 512억 원을 B에게 제공하였다. 甲은 乙을 상대로 만기 예금액 및 약정이자의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2. 제1심법원(84가합366)과 원심법원(84나2428)은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법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대리권 남용법리를 적용하여 A의 대리행위에 따른 예금계약의 효과를 乙에게 귀속시킬 수 없으므로 乙은 甲에게 예금을 반환할 책임이 없다고 하면서, 이 부분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대법원은 A가 乙의 당좌업무 대리인으로서 C와 예금계약을 체결한 것은 권한을 넘어선 대리행위이지만, 甲에게 A의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가 성립하여 甲과 乙의 예금계약은 유효하다고 전제하였다. 그러나 A는 예금계약을 통하여 甲의 이익을 꾀한 대리권 남용행위를 하였고 甲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예금계약에 따른 책임을 乙에게 물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86다카1004). II. 평석 1. 우리민법 규정과 대리의 본질 (1) 대리의 본질과 관련하여 우리민법은 대리인행위설의 입장이라고 한다. 대리효과의 귀속은 대리인의 대리의사에 따른 법률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송덕수). 나아가 민법 제114조 이하 규정이 대리의 효과의사대로 법률효과가 발생하도록 하며, 특히 제116조 제1항은 우리민법이 대리인행위설을 취하는 실정법적 근거일 뿐만 아니라(곽윤직, 고상룡), 이에 따르면 대리인행위설만 입론이 가능하다고 한다(지원림). 이에 반하여 독일에서 제안된 행위규율분리설은 수권행위와 대리행위를 단일한 하나의 행위로 파악하고, 대리인의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서 ‘행위’ 측면과 본인에 대한 효과귀속으로서 ‘규율’ 측면을 구분하되, 행위 주체는 대리인이지만 규율의 주체는 본인으로, 규율측면이 본질적인 부분이어서 대리효과가 본인에게 직접 발생한다고 설명한다(이영준). (2) 대리인행위설과 행위규율분리설에 따른 법적 취급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것이 대리권 남용행위와 표현대리이다. 대리권이 적법하게 수여된 경우 다른 요건이 충족되면 대리효과가 귀속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대리권 남용법리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대리권이 수여되지 않았다면 대리효과가 귀속되지 않아야 함에도 그 귀속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표현대리이다. 2. 대리권 남용법리에 대한 대리인행위설 및 행위규율분리설의 입장 (1) 대리권을 적법하게 보유한 대리인이 자기 또는 상대방의 이익을 위하여 대리행위를 한 결과 본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대리권 남용행위라고 한다. 이는 대리행위의 요건을 모두 충족한 상태여서 대리효과의 귀속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상대방이 대리인의 배임의도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까지 대리효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상대방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근거로 대리효과의 귀속을 차단시키는 법률구성을 ‘대리권 남용법리’라고 한다. 이는 대리권 수여라는 측면에서 유권대리로 취급되어야 하지만 대리효과의 귀속이 차단된다는 측면에서는 무권대리가 된다. 이에 대하여 대리인행위설은 비진의표시의 효과에 관한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를 유추적용하거나 신의칙 내지 권리남용금지원칙 위반의 효과에 따라 대리효과의 귀속을 차단한다. 반면 행위규율분리설은 배임행위를 한 대리인을 무권대리로 취급하여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2) 비진의표시 유추적용설은 대리권 남용행위를 비진의표시의 외양과 유사하게 파악하여 대리행위로서는 유효하게 성립하지만, 대리인의 배임의사를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취지를 유추하여 대리행위의 효력을 부정한다. 대다수 판례의 입장이다(74다1452, 97다24382, 2008다13838). 한편 권리남용설 내지 신의칙위반설은 대리인의 배임의사를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지 못함에 중과실이 있는 경우까지 대리효과의 귀속을 인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며, 더욱이 상대방이 본인에 대하여 그 효과를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한다(강태성, 홍성재, 명순구). 법인의 대표권 남용에 관한 사례이지만 판례 중에도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86다카1522, 89다카24360). (3) 행위규율분리설은 대리관계를 대리인의 대리 ‘행위’에 대한 측면과 효과귀속에 대한 본인의 ‘규율’ 측면으로 이해하고, 대리효과 귀속의 본질은 본인과 상대방의 규율에 달렸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대리권 남용행위는 대리권이 있더라도 본인에 대한 대리효과의 귀속이 차단되므로 무권대리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추가적으로 표현대리 규정에 따라 대리효과가 귀속될 수 있다는 입장(손지열)과 배임행위의 명백성을 근거로 구분하는 입장이 있다(백태승). 3. 표현대리에 대한 대리인행위설 및 행위규율분리설의 입장 (1) 우리민법은 표현대리를 대리권수여의 표시(제125조), 대리권의 범위 초과(제126조), 대리권 소멸 후의 대리행위(제129조)로 나누고 있다. 본인이 이러한 각각의 외관을 제공하였으므로 이에 관하여 선의·무과실인 상대방은 대리효과의 귀속을 주장할 수 있다. 표현대리는 대리권이 없다는 측면에서 무권대리이지만, 본인에게 효과가 귀속된다는 측면에서 유권대리로 취급할 수 있다. (2) 대리인행위설에 의하면 표현대리는 무권대리에 속한다(양형우). 우리 판례 역시 명백하게 표현대리가 성립되었다고 하여 무권대리의 성질이 유권대리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83다카1489). (3) 행위규율분리설은 표현대리를 유권대리로 이해한다. 대리의 본질은 본인과 상대방 사이의 규율인데, 표현대리는 본인의 외관 형성과 상대방의 신뢰에 기초하여 본인에게 대리효과를 귀속시키므로 유권대리의 아종이라고 한다. 특히 독일민법에서 인정되는 외부적 수권행위 개념이 유용하다(이영준). 독일민법은 대리권을 수여하는 방법으로 본인이 대리인에게 직접 대리권을 수여하는 방법(내부적 수권행위)과 본인이 대리행위의 상대방이 될 제3자에게 대리권을 수여하는 방법(외부적 수권행위)으로 나누어 규정한다(§167 Abs. 1). 그리고 외부적 수권행위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대리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170), 대리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특별통지와 다수의 제3자에 대한 공고(§171 Abs. 1) 또는 대리권 증서의 교부와 제시(§172 Abs. 1)를 인정하고 있다. 4. 표현대리에 대한 대리권 남용법리의 적용과 판결의 검토 (1) 앞의 판결에서 A는 乙은행의 당좌업무에 관한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 甲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였다. 乙은행은 그 지점장을 통해 A에 대한 대리권의 외관을 제공하였는데 甲이 이를 신뢰하였으므로, A에게 민법 제126조에 따른 표현대리가 성립하여 甲과 乙 사이에 예금계약이 인정되었다. 이에 더하여 A가 甲에게서 예금으로 교부받은 금전을 횡령하고 甲에게 기준을 넘어서는 이자를 지급한 것은 대리권 남용행위이다. 甲이 이러한 A의 배임의도를 알았으니 대리권 남용법리에 따라 乙은행에 대한 A의 대리효과로서 예금계약은 성립할 수 없다. 이것이 판결의 결론이었다. (2) 대리인행위설은 표현대리를 무권대리로 이해하였고 대리권 남용법리는 유권대리에 관하여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논리적으로 무권대리인 A의 표현대리에 대하여 유권대리에 관한 대리권 남용법리는 적용할 수 없다. (3) 행위규율분리설에 의하더라도 표현대리는 유권대리라고 하면서 대리권 남용법리를 적용하면 A의 동일한 행위가 갑자기 무권대리로 변경되는 기이한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유권대리로 취급된 표현대리가 대리권 남용법리의 적용에 의하여 무권대리가 된다면, 그 무권대리는 다시 표현대리의 요건 충족으로 유권대리가 되는 순환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리권 남용법리의 적용으로 이론상 무권대리가 되더라도 대리권 남용행위를 한 대리인에게는 실제로 대리권이 존재하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 그러므로 대리인행위설에 의하면 A의 행위가 무권대리였다가 유권대리로 바뀌고, 행위규율분리설에 의하면 유권대리였다가 무권대리로 변경되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위 판결이 대리인행위설에 따른 것인지, 행위규율분리설에 따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A는 乙은행으로부터 수여받은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 甲과 예금계약을 체결하는 하나의 동일한 행위를 했을 뿐인데, 대리의 본질에 관한 두 견해에 의하여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유권대리 또는 무권대리로 혼란스럽게 법적 성질이 결정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정상현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표현대리
대리권남용
예금계약
정상현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2020-01-20
전문직직무
행정사건
교장승진임용제외의 처분성 문제
- 대법원 2018.3.27. 선고 2015두47492판결 - Ⅰ. 사실관계와 하급심의 태도 갑은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된 후 2011.9.1. 교감으로 승진임용되어 A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한다. B광역시교육감은 매년 1월 31일을 기준으로 경력, 근무성적, 연수성적을 평정하여 그 평정을 합산한 점수가 높은 승진후보자의 순서대로 승진후보자 명부를 작성하는데, 2014.1.31.자 ‘교육공무원(초등학교교장) 승진후보자 명부’에 갑이 순위 10번으로 등재되어 있다. 2014년 3월 1일 B광역시교육청 관내 초등교장 18명을 대통령이 신규 승진임용하였는데, 갑은 포함되지 않았다. 갑이 제기한 교장임용거부처분무효확인의소에서, 피고 교육부장관이 “원고에게는 자신을 교장으로 임용 또는 임용제청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법규상, 조리상 신청권이 없으므로 위와 같은 신청권을 전제로 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하였는데, 하급심은 이를 수긍하였고(서울행정법원 2015.1.22. 선고2014구합63909판결, 서울고법 2015.7.9. 선고 2015누33839판결),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역시 동일하였다. Ⅱ. 판결요지 [1] 항고소송은 처분 등의 취소 또는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고(행정소송법 제12조, 제35조), 불이익처분의 상대방은 직접 개인적 이익의 침해를 받은 자로서 원고적격이 인정된다. [2] 교육공무원법 제29조의2 제1항 등에 따르면 임용권자는 3배수의 범위 안에 들어간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승진임용 여부를 심사하여야 하고, 이에 따라 승진후보자 명부에 포함된 후보자는 임용권자로부터 정당한 심사를 받게 될 것에 관한 절차적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임용권자 등이 자의적인 이유로 승진후보자 명부에 포함된 후보자를 승진임용에서 제외하는 처분을 한 경우에, 이러한 승진임용제외처분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지 않는다면, 달리 이에 대하여는 불복하여 침해된 권리 또는 법률상 이익을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따라서 교육공무원법상 승진후보자 명부에 의한 승진심사 방식으로 행해지는 승진임용에서 승진후보자 명부에 포함되어 있던 후보자를 승진임용인사발령에서 제외하는 행위는 불이익처분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인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교육부장관은 승진후보자 명부에 포함된 후보자들에 대하여 일정한 심사를 진행하여 임용제청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승진후보자 명부에 포함된 특정 후보자를 반드시 임용제청을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교육부장관이 임용제청을 한 후보자라고 하더라도 임용권자인 대통령이 반드시 승진임용을 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공무원 승진임용에 관해서는 임용권자에게 일반 국민에 대한 행정처분이나 공무원에 대한 징계처분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광범위한 재량이 부여되어 있다. 따라서 승진후보자 명부에 포함된 후보자를 승진임용에서 제외하는 결정이 공무원의 자격을 정한 관련 법령 규정에 위반되지 아니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춘 사유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증명이 있다면 쉽사리 위법하다고 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 Ⅲ. 쟁점과 문제점 자유권이 국가에 대한 방어권적 성격을 갖기에 불이익한 처분에 대해 당사자는 별다른 논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원고적격이 인정된다는 것이 수범자(상대방)이론인데(김중권, 행정법, 2019, 731면). 대상판결은 일찍부터 필자가 주장한 수범자이론(상대방이론)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수범자이론은 자신에 대한 거부처분이나 제3자효 행정행위를 다투는 경우는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다(독일의 통설과 판례). 따라서 사안이 거부처분의 상황이라면 수범자이론에 의하더라도 당연히 원고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하급심과 상고심의 접근태도가 다르다. 하급심은 사건명칭처럼 사안을 거부처분의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한 데 대해서, 상고심은 사건명칭을 동일하게 사용하면서도 거부처분의 차원에서 논증하지 않았다. 기왕의 거부처분인정의 공식에 입각하지 않고, 승진후보자 명부에 포함된 후보자는 임용권자로부터 정당한 심사를 받게 될 것에 관한 절차적 기대를 하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교장승진임용제외를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지 않는다면, 달리 이에 대하여는 불복하여 침해된 권리 또는 법률상 이익을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논거로 교장승진임용제외를 행정처분으로 보았다. 교원소청심사는 물론 하급심의 태도가 기왕의 판례에 의거한 의당 자연스러운 점에서 권리구제의 보충성을 내세워 논증한 대상판결의 접근이 사안의 본질에 비추어 타당한지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Ⅳ. 사안이 승진임용거부의 상황인가? 교장임용절차는 교육부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용한다. 교장임용절차는 2원화되어, 하나는 승진후보자명부에 의한 승진심사방식으로 행해지고, 다른 하나는 공모절차의 방식으로 행해진다. 공모절차는 지원(응모)에 의해 개시되기에, 일종의 신청에 의한 절차진행인 데 대해서 승진임용절차는 행정청의 직권적인 절차진행이다. 승진임용절차인 사안에서 대상판결이 거부처분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타당하다. 승진임용제외로부터 직접적인 법적 불이익의 발생이 논증되는 한, 이상의 수범자이론을 그대로 적용하더라도 문제가 없다. 반면 공모절차를 밟는 총장임용절차에서의 임용제청제외 및 임용제외는 거부처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신청권의 존부를 검토하지 않고, 처분성을 논증한 대법원 2018.6.15. 선고 2016두57564판결은 이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상론 김중권, 법조 제733호, 2019년 2월 28일). Ⅴ. 승진임용제외의 처분성 논증의 문제점 1. 절차적 기대를 출발점으로 하는 것의 문제점 처분성을 논증하는 데 대상판결은 절차적 기대(권)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거부처분의 인정에서 대법원 1984.10.23. 선고 84누227판결에서 연유한 신청권의 의미에 대해 판례는 그동안 순전히 절차적 의미로 접근한다. 신청권을 순전히 절차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남소의 우려와 함께 법률관계의 왜곡을 가져다준다(김중권, 행정법, 734면). 대법원 1991.2.12. 선고 90누5825판결의 응답신청권을 무하자재량행사청구권으로 이해하여 그것을 실체적 법효과와 유리되게 이해한 것이 그 예이다. 승인임용에서 제외(탈락)된 상황은, 공직취임의 저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단순한 배제라는 사실적 효과가 아니라 불임용의 법효과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당한 심사에 관한 절차적 기대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 권리구제의 보충성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의 문제점 자신을 상대방으로 하지 않는 법적 행위로 인해 빚어진 결과적 상황에 즈음하여, 그 법적 행위(다른 사람에 대한 승진임용)를 직접 다투지 않고, 자신에게 빚어진 결과적 상황을 문제삼기 위해서는 그런 상황을 자신의 법률상 이익(권리)의 침해에 설득력 있게 연관지울 수 있게 하는 메커니즘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런 연결고리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추단적(묵시적) 행정행위의 존재이다. 행정의 추단적 용태로부터 행정행위의 개념적 징표를 충족하는 법적으로 의미있는 공법적 의사표시가 도출될 수 있을 때, 추단적 행정행위가 존재할 수 있다(김중권, 행정법, 214면). 가령 보조금반환요구(결정)는 보조금지급결정의 묵시적 폐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여러 명이 한정된 허가를 신청하여 일부에 대해 허가가 발해진 경우 다른 이에 대한 거부처분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리고 종종 (후속) 행정사실행위를 위한 법적 근거가 되는 추단적 행정행위가 사실행위로부터 생겨나기도 한다(예: 경찰관이 행한 수신호). 물론 표시행위에 대해 법률상 일정한 형식(서면, 공증증서, 고시 등)이 규정된 때는 추단적 행정행위는 배제된다(판례는 공공용물의 성립과 폐지에서 묵시적 공용지정(개시)행위나 공용폐지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대법원 2016.5.12. 선고 2015다25524판결 등). 추단적 행정행위의 존재는 후속 행정행위를 발하기 위한 중간단계로서 특별한 의의를 지녀서, 경우에 따라서는 명시적 처분에 담겨질 수 있다. 대상판결처럼 굳이 권리구제의 보충성의 차원에서 처분성을 논증할 필요가 없다. Ⅵ. 맺으면서-배타적 경쟁자소송에 관한 진전된 논의가 필요하다 사안의 소송은 잠재적 경쟁관계에 있는 대상자 가운데 탈락한 자가 제기하는 배타적 경쟁자소송이다. 법정요건이나 자격을 구비한 이상, 원고적격은 문제되지 않는데, 소송대상, 소송형식, 취소판결의 효력 등에서 검토할 사항이 많다(김중권, 행정법, 742면). 특히 공무원법상의 경쟁자소송에서는 임용처분이 내려지면 공직의 안정성의 원칙에서 권리보호의 필요성이 문제될 수 있다. 독일은 공직의 안정성의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판례변경(BVerwGE 138, 102) 을 통해 잠정적인 권리구제가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탈락된 지원자가 타인에 대한 임용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교육공무원법
승진
승진심사
임용권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2019-03-04
민사일반
준거법의 범위와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 대상판결: 대법원 2016.3.24. 선고 2013다81514 판결 - I. 대상판결의 요지 당사자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계약 당사자는 어느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거나 그중 특정 조항이 당해 계약에 적용된다는 합의를 할 수 있고 그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소송절차에서 비로소 당해 사건에 적용할 규범에 관하여 쌍방 당사자가 일치하는 의견을 진술하였다고 해서 이를 준거법 등에 관한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II. 국제협약이 준거법의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의 당사자가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는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상인법(lex mercatoria 또는 law merchant)과 같은 국제적 관습, UNIDROIT 국제상사계약규칙(UNIDROIT Principles of International Commercial Contracts 1980)과 같은 법원칙 또는 국제물품매매협약(UN Convention on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과 같은 국제협약 등 비국가적 규범도 포함되는지 문제된다. 2. 논의의 실효성 비국가적 규범이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있다면 이는 ‘저촉법적 지정’이 되지만, 만일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없다면 당사자의 합의는 그러한 비국적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실질법적 지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촉법적 지정은 준거법의 지정이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적용은 배제되고 국제적 강행규정만이 적용된다. 그러나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경우에도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계약이 체결된 후에 법이 개정되었다면 개정된 법이 적용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개정되기 전의 법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그 적용이 배제된다. 또한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법원이 규범의 내용을 직권으로 조사해야 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편입된 법규가 계약의 내용이 되므로 당사자가 편입된 법규의 내용에 대하여 주장하고 증명할 책임을 부담한다. 3.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준거법은 특정국가의 법에 한정된다고 본다. 국제사법의 전반에서 언급하고 있는 ‘법’의 전통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는 특정국가의 법이고, 제5조에서 ‘법원은 이 법에 의하여 지정된 외국법’이라고 규정하고 제7조나 제33조 등에서 ‘대한민국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하여 보면 준거법은 외국법이거나 대한민국법으로서 특정국가의 법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준거법의 분열의 한계와 관련하여서 문제가 발생한다. ‘준거법의 분열’이란 하나의 법률관계의 실체적 내용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국제사법 제25조 제2항에서는 “당사자는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준거법의 분열을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 2016.6.23. 선고 2015다5194 판결에서는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만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 선택된 준거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영역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소위 객관적 준거법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비국가적 규범만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거나 비국가적 규범과 특정국가의 법을 모두 지정하는 경우 모두 준거법의 분열이 발생한다. 그러나 준거법의 분열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법의 내용에 차이가 있고, 한 국가의 국내법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동시에 적용되면 적용되는 법률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거나, 생소한 다른 국가의 제도를 국내의 제도에 맞춰야 하는 복잡한 적응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정된 복수의 준거법이 적용되는 부분이 다른 부분과 분리가능하여 상호 모순저촉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 내에서만 준거법의 분열이 허용된다. 그런데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한계를 완전히 무시하고서 준거법의 분열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국제협약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보건대, 위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깊은 고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저촉법적 지정은 할 수 없다고 본다. 참고로 우리의 국제사법의 바탕이 된 유럽공동체(EC)의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협약’(‘로마협약’) 에서는 당사자가 준거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위 로마협약을 개정한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규칙’을 제정되는 과정에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준거법은 특정 국가의 법으로부터만 도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아니하였다. III.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주요사실에 대하여만 변론주의가 적용되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는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실이 주요사실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상판결과 같이 준거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본다면 당사자가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주장 및 증명해야 비로소 법원이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당사자의 주장이 없는 한 법원이 직권으로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2.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1) 주요사실의 의미에 따른 비판 주요사실이라 함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체법상의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말한다(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 즉 권리와 의무의 발생, 변경, 소멸이라는 실체법적 효력을 가져오는 요건사실이 주요사실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지만 ‘절차법-실체법’과 ‘저촉법-실질법’이 대비되고 있는 바와 같이, 저촉법인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절차법과 실체법의 구분과 그 영역을 달리한다(석광현, ‘국제사법 해설’, 법문사, 2013, 4쪽). 그런데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보던지 저촉법으로 보던지 상관없이 국제사법이 실체법이 아니란 점은 명백하므로 국제사법 제25조에 따른 준거법의 지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2) 적용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국제적 분쟁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으로서는 당사자의 주장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이를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법에 따르면 계약에 적용되는 준거법은, 1차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지정한 국가의 법이 되고(제25조 제1항), 이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2차적으로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된다(제26조). 따라서 법원은 직권으로 계약의 1차적 준거법인 당사자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해야 한다. 게다가 대상판결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적용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이고,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는 적용할 법률을 결정하는 합의이므로, 법원은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하는데 있어서 당사자의 주장에 구속받지 아니한다. 덧붙여 대상판결은 당사자가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는 계약의 내용이 되고 계약의 내용은 주요사실이라는 이유로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를 주요사실로서 자백의 대상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당사자의 합의라고 하더라도 모두 주요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법원 판례에서는 소송상 합의인 부제소의 합의를 채권계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2다73821 판결), 이러한 부제소의 합의가 소송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따라서 당사자의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까지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IV. 결론 이상으로 대상판결과 달리, 사견에 따르면 국제협약을 포함한 비국가적 규범은 준거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의 존재는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서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대상판결 중 문제된 판시내용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채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른 아쉬움이 있다. 적지 않은 국제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좀 더 많은 국제사법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국제협약
준거법
국제사법
2017-02-20
관세소송 중 다른 품목번호를 처분사유로 추가할 수 있는지 여부
1. 서론 관세소송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품목분류가 적절한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 사건도 있다. 산업기술의 발달로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유형의 물품이 수입되는 경우가 많지만, 해당 물품을 품목분류표상 어느 항목으로 분류할지가 소송으로 다투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소송과정에서 처분청이 당초 주장하였던 품목분류 번호를 변경하거나, 다른 품목번호를 추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최근 이 쟁점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었는바, 소송 진행 중에 처분청이 다른 품목번호를 처분사유로 추가·변경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를 살펴본다. 2. 대상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이 사건 소송의 대상 물품인 유기금속화학증착장비(MOCVD: Metal Organic Vaper Deposition)에 사용되는 서셉터(Susceptor)에 대하여, 관세율표 품목분류 제6909.19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원고가 상고이유로 주장한 처분사유의 추가·변경 법리 위반의 점에 대하여는, 상고심에 이르러 비로소 주장된 것이라는 이유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원심(광주고등법원 2013. 7. 25. 선고 2012누1739 판결)은 "이 사건에서 피고가 이 사건 물품이 관세율표 중 6903.10-3000호(기타 내화성의 도자제품 중 반응그릇)에 해당함을 전제로 이 사건 처분을 하였음은 앞서 본 바와 같으나, 그 후 소송 과정에서 피고가 이 사건 물품이 관세율표의 다른 호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변경 전후에 있어서 같은 행위에 대한 법률적 평가만 달리 하는 것일 뿐 기본적 사실관계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공격방어방법을 추가한 것에 불과하여 허용된다"고 판단하였다. 품목번호의 변경이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으로 허용되는지에 대하여, 대법원 판단이 없는 것은 아쉬우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쟁점에 대해 검토한다. 3. 평석 (1) 품목분류의 의미와 법률상 효력 수입물품에 대한 품목분류는 국내로 수입하는 물품에 대하여 관세율을 결정하기 위해 적용하는 세관절차이다. 세계관세기구(World Customs Organization)에서 정한 '통일상품명 및 부호체계에 관한 국제협약'(The 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Harmonized commodity and coding System, 약칭 HS협약)에 따라 품목분류 번호가 결정된다. 세계관세기구는 HS 품목분류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기 또는 수시로 HS 관세율표해설서를 발행하고 있고, 세계관세기구 회원국들은 이들 간행물 전부 또는 일부를 국내법으로 수용하여 품목분류의 실무지침으로 활용하고 있다. HS 관세율표해설서는 세계관세기구가 승인한 HS 품목분류에 관한 공식 해설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구 관세법 제85조 제1항, 시행령 제99조 제1항에 따라 '품목분류 적용기준에 관한 고시'(관세청 고시)를 마련하여 위 HS 관세율표 해설서를 그대로 인용하여 같은 내용의 해설서를 두고 있다. 따라서 '품목분류 적용기준에 관한 고시'는 상위법령으로부터 관세율표상 품목분류의 적용기준에 관한 위임을 받아 품목분류의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기 위하여 마련된 규정으로서 상위법령의 내용과 결합하여 대외적인 효력을 가지게 되는 법규명령이고(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592 판결), 위 고시 제3조 [별표]에 규정된 관세율표해설서도 법규명령으로 효력이 있다. (2) 처분사유의 추가 변경에 대한 법리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은 행정청이 처분 이후 처분의 법률적 근거와 사실적 근거를 추가겢允펯변경 또는 보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절차경제의 관점과 국민의 권리보호의 관점이 충돌한다. 판례는 기본적 사실관계에 동일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는 다른 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도 있으나,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다는 것은 처분사유를 법률적으로 평가하기 이전의 구체적인 사실에 착안하여 그 기초인 사회적 사실관계가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한 것을 말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6두4899 판결). 따라서 기본적 사실관계와 동일성이 없는 별개의 사실을 들어 처분사유로서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판례상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은 사례로는, 의료보험요양기관 지정취소처분에서, 당초의 처분사유인 본인부담금 수납대장을 비치하지 아니한 사실과 새로 주장한 관계서류 제출명령에 위반하였다는 사실(대법원 99두6392 판결), 거부처분 당시의 처분사유인 배치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유와 새로 추가한 개발제한구역 지정 당시 거주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사유(대법원 2007두9365판결)등이 있다. 원심법원은 품목번호 변경은 새로운 처분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당초처분사유인 '내화성의 도자제품 중 반응그릇'과 추가된 처분사유인 '실험실용·화학용이나 기타의 공업용 도자제품' 또는 '석제품 또는 기타 광물성 재료의 제품'은 법률적 평가만 달리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제품은 품목분류표상 완전히 다른 물품이다. 만일 원심과 같은 논리라면, 수입된 물품은 특정되어 있으므로 품목번호는 이것 아니면 저것 이라는 주장을 끝도 없이 이어갈 수 있다. 이 세상의 어떤 물건이라도 품목번호표 중 어느 한 항목에는 해당하기 때문이다. (3) 대상 판결의 사례 검토 이 사건 물품은 일응 제8486.90-2010호의 '반도체 웨이퍼 상에 막을 형성하거나 금속을 증착하는 기계 부분품 및 부속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은 다툼이 없다. 그런데 관세율표 제84류의 주는 "제68류의 밀스톤 등 물품과 제69류의 도자제의 기계류와 도자제 부분품은 제84류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재판과정에서는 이 사건 물품의 제조과정, 물품의 특성, 제84류와 제68류 내지 제69류의 차이점 등에 대한 심리가 이루어졌고, 도자제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증인신문과 전문가 진술서가 제출되었다. 하급심의 판단은 서로 엇갈렸다. 1심은 관세율표 제6903호의 도자제품(내화제품)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형된 고형물을 만든 후, 그 고형물의 입자 상호간에 화학적 변이, 부분적 융용의 결과로 밀접하게 결합하여 모양이 고정(경화)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 물품의 제조과정은 이미 소성·가공과정을 거쳐 모양이 고정된 인조흑연 기판의 표면에 탄화규소의 막을 형성할 뿐이므로 소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6903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하였다. 원심 재판과정에서 처분청은 이 사건 물품은 제6903호이나, 만일 이 번호가 아니라면 제6909호(실험실용·화학용이나 기타의 공업용 도자제품) 또는 제6815호(석제품 또는 기타 광물성 재료의 제품)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추가하였다. 원심 법원은 당초의 처분사유인 제6903호에 해당하지 않지만, 추가된 처분사유인 제6909호나 제6815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제6903호와 제6909호 및 제6815호는 물품의 특성이 서로 다르다. 특히 품목분류를 통해 관세율표상 세율이 정해지는 점, 이러한 품목분류가 과세요건이 되는 점, 과세요건의 증명책임은 처분청에 있는 점,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은 납세의무자의 절차적 권리보장과 관련되는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하면, 품목번호의 변경은 신중히 취급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처분청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처분사유를 여러 가지로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관세부과처분은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므로 법령에 근거하여 신중히 행해져야 한다. 만일 부과처분이 잘못되었다면, 설령 절차적 잘못이라도 취소되어야 한다. 법원은 납세의무자의 권리구제기관이지 행정청의 잘못된 처분을 추인해 주는 곳이 아니다. 4. 결론 이 사건 재판에서, 처분청이 부과근거로 삼은 품목번호가 잘못되었다는 점이 밝혀졌음에도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었다. 처분청이 심리 과정에서 당초의 품목번호 A가 잘못되었다면, 또 다른 품목번호인 B 또는 C 라고 주장하였는데, 법원은 처분청이 추가로 주장한 또 다른 품목번호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원고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이런 논리는 상식에도 맞지 않고, 처분사유의 추가 변경에 관한 법리에도 위배된다. 원심법원은 조세소송의 소송물은 정당한 세액이라는 논리에 기대어, 관세소송에서도 부과금액을 변경하지 않는 한 처분사유는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하였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결과중심적인 사고거나 행정편의적인 태도다. 당초 품목번호가 잘못되었다면 부과처분은 취소되어야 한다. 만일 처분청이 다른 품목번호에 해당한다고 견해를 바꾼다면, 당초 처분을 취소하고 다시 과세할 것이지, 재판과정에서 처분사유의 추가를 허용할 것은 아니다.
2014-07-07
저작권법 제35조의3 ‘공정이용’ 조항의 신설에 따른 제28조 적용범위의 재조정
I. 사건개요 공소외 법인의 대표이사인 피고인은 식약청으로부터 '리프니놀―초록입홍합 추출 오일복합물'을 개별인정형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의학저널에 실린 피해자들의 논문 전체를 허락 없이 그대로 복제·첨부하였다. 이에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하였고 원심에서 피고인은 저작권법상 공정이용의 법리와 제28조의 소정의 권리제한 등을 주장하면서 다투었지만 법원은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피고인이 상고하였지만 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1도5835 판결(이하, '대상판결'로 줄임)은 상고를 기각하였다. II. 대상판결의 요지 [1] 저작물의 공정이용은 저작권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라고 하는 대립되는 이해의 조정 위에서 성립하므로 공정이용의 법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그 요건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을 것이 필요한데, 구 저작권법(2009. 3. 25. 법률 제952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은 이에 관하여 명시적 규정을 두지 않으면서('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에 관한 규정은 2011. 12. 2. 법률 제11110호로 개정된 저작권법 제35조의3으로 비로소 신설되었다) 제23조 이하에서 저작재산권의 제한사유를 개별적으로 나열하고 있을 뿐이므로, 구 저작권법하에서는 널리 공정이용의 법리가 인정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2] 구 저작권법(2009. 3. 25. 법률 제952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8조는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인용의 목적이 보도·비평·교육·연구에 한정된다고 볼 것은 아니지만, 인용의 '정당한 범위'는 인용저작물의 표현 형식상 피인용저작물이 보족, 부연, 예증, 참고자료 등으로 이용되어 인용저작물에 대하여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즉, 인용저작물이 주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종인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어야 하고, 나아가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인지는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III. 평석 1.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저작권법 제28조의 인용의 '정당한 범위'와 관련하여 피인용저작물이 인용저작물과의 관계에서 '부종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른바 '주종관계설')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제28조의 요건인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 인용의 목적이나 저작물의 성질 등 6가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이른바 '종합고려설'의 관점을 재확인하였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비록 2011년 저작권법(12월 2일 개정법)에서 신설된 제35조의3 '공정이용' 조항의 적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건은 아니었지만, 제35조의3 신설조항과 제28조 기존규정 간에 그 적용범위를 둘러싸고 앞으로 전개될 해석 방향과 관련하여 일정한 적용 기준을 암시하고 있다. 2. 이른바 '주종관계설'의 기원과 그 의미 우리나라 판결들 중 인용의 '정당한 범위'와 관련하여 인용저작물과의 관계에서 피인용저작물이 '부종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는 '주종관계'를 최초로 밝힌 것은 '사진저작물의 인용'에 관한 대법원 1990. 10. 23. 선고 90다카8845 판결(이하, '① 판결'로 줄임)이다. 위 ① 판결에서의 '주종관계' 법리는 '패러디 몽타주 사진' 사건에 관한 일본 최고재판소 1980(昭和55)년 3월 28일 판결에서 유래한다. 위 사건은 일본의 구 저작권법 제30조 제1항 제2호의 "자기의 저작물 중에 정당한 범위 내에서 절록(節錄) 인용"하는 경우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한 해석론을 전개한 판결이었다. 우리의 구 저작권법인 1957년 저작권법 제64조 제1항 제2호도 "자기의 저작물 중에 정당한 범위 내에 있어서 절록 인용하는" 경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었다. 이 조항에 관해 대법원 1991. 8. 27. 선고 89도702 판결(이하, '② 판결'로 줄임)은 '노가바 패러디' 사건에서 "자기의 저작물 중에… 절록 인용하는 것"이란 타인의 저작물을 종된 자료로 인용하거나 설명하는 자료로 삽입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현행 저작권법 제28조나 일본의 현행 저작권법 제32조 그 어디에도 구법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은 "자기의 저작물 중에"라는 전제조건이 요구되고 있지 않아서 과연 현행법 하에서도 '주종관계'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현행 저작권법에서도 '주종관계'라는 조건이 요구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이론(異論)없이 수긍되어 왔다. 문제는 자기의 저작물 중에 타인의 저작물을 종적 관계로 끌어들이는 '삽입(Insert)형' 인용이 아니라,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자기의 저작물이 존재하지 않거나 설령 존재하더라도 사소한 상태에서 오로지 타인의 저작물을 전부 인용하는 '전유(Appropriation)형' 인용의 경우에 발생한다. 3. 이른바 '종합고려설'의 등장과 그 전개 '전유형(專有型)' 인용이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규정에 의해 해결 가능하다는 것을 최초로 판시한 것은 후술하는 '썸네일 이미지'에 관한 대법원 2006. 2. 9. 선고 2005도7793 판결이다. 특히 위 판결에서 '종합고려설'이 크게 주목 받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종합고려설'이 맨 처음 제시된 것은 '대입 본고사 입시문제' 사건에 관한 대법원 1997. 11. 25. 선고 97도2227 판결(이하, '③ 판결'로 줄임)이다. 위 ③ 판결에서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인지 여부는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의 여부 등 6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주종관계'에 관해서는 '인용된 내용과 분량'을 판단하면서 "개개 문제의 질문을 만들기 위해 그 질문의 '일부분으로' 대학입시문제를 인용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간접적이지만 여전히 피인용저작물이 '부종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썸네일 이미지' 사건에서 대법원 2006. 2. 9. 선고 2005도7793 판결(이하, '④ 판결'로 줄임)은 위 6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피인용저작물의 '부종적 성질'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요건의 해석에 관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즉, 위 ④ 판결로 인해 자기의 저작물(인용저작물) 중에 타인의 저작물(피인용저작물)을 종적 관계로 끌어들이는 '삽입(Insert)형' 인용 뿐 아니라 자기의 저작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오로지 타인의 저작물을 전부 인용하는 '전유(Appropriation)형' 인용도 제28조의 적용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4. 저작권법 제35조의3 '공정이용' 조항의 신설에 따른 제28조 적용범위의 재조정 문제는 제35조의3 '공정이용' 조항이 신설됨으로써 제28조의 적용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하는 논의가 재론(再論)되었다는 점이다. '썸네일 이미지' 사건에 관한 위 ④ 판결처럼 '삽입형' 뿐 아니라 '전유형' 인용까지 모두 제28조에 의해 해결 가능하다는 취지라면,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관한 한 신설된 제35조의3 조항은 별다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종합고려설'의 관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대입 본고사 입시문제' 사건에 관한 위 ③ 판결처럼 피인용저작물의 '부종적 성질'을 간접적으로 설시한 것이 아니라 위 ① 판결에서처럼 명시적으로 강조하였다. 즉, 대상판결은 인용의 정당한 범위와 관련하여 인용저작물과의 관계에서 피인용저작물이 '부종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는 '주종관계'를 명시한 위 ① 판결의 판시취지와,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인지 여부는 6가지 요소의 '종합적 고려'에 의해 판시해야 한다는 위 ③ 판결의 판시취지를, 모두 강조하면서 결합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로써 대상판결은 제28조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는 인용저작물과 피인용저작물 간의 '주종관계'를 전제로 한 '삽입형' 인용만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고, 이와 달리 제35조의3 '공정이용' 조항에는 제28조가 적용될 수 없는 이용(利用) 양태가 적용 가능하다는 것, 예컨대 '전유형' 인용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함으로써, 제35조의3 조항에 관한 향후 해석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썸네일 이미지' 사건에 관한 위 ④ 판결은 이제 그 역사적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5. 소결 지금까지 제28조의 인용 규정은 공표된 저작물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인용(引用)이 아닌 저작물 이용(利用) 일반에 대해서까지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제35조의3 신설조항은 그 공표 여부에 관계없이 저작물의 이용(利用) 일반에 대해서도 적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대상판결은 '삽입형' 인용에 대해서는 제28조의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설시함으로써, '전유형' 인용(引用) 내지 이용(利用) 일반에 대해서는 제35조의3 조항이 적용 가능하다는 쪽으로 그 해석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013-12-09
법인이 양심의 자유와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
1. 들어가는 말 헌법재판소는 2012. 8. 23. 방송법 제100조 제1항 제1호가 정하고 있는 '시청자에 대한 사과'의 제재조치가 법인인 방송사업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법률신문 8월27일자 5면 보도). 다만 위헌법률심판제청법원(이하 '위헌제청법원')이 위헌사유로 든 양심의 자유에 대하여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 이 결정에 대하여는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으나, 이 글에서는 논의를 한정하여 법인에게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와 인격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헌법재판소 결정요지 헌법재판소는 법인도 법인의 목적과 사회적 기능에 비추어 볼 때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격권의 한 내용인 사회적 신용이나 명예 등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법인이 이러한 사회적 신용이나 명예 유지 내지 법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위하여 의사결정이나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법인의 인격권의 한 내용을 이룬다고 할 것이고,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방송사업자의 의사에 반한 사과행위를 강제함으로써 방송사업자의 인격권을 제한한다고 보았다. 3. 평석 가. 법인이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 위헌제청법원인 서울행정법원은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방송통신위원회라는 행정청이 권력작용을 통해 방송사업자에 대하여 그 신념에 반하여 자기의 행위가 심의규정 위반행위가 된다는 윤리적 판단을 형성·강요하여 사과의 의사를 외부에 표시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양심의 자유의 왜곡·굴절이며 이중인격 형성을 강요하는 것으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함을 위헌제청이유로 들고 있다. 위헌제청법원은 법인에게도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는 전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인이 기본권의 성질상 허용되는 경우에는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으나, 양심의 자유는 성질상 법인에게 인정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법인은 공공의 문제와 관련하여 일정한 회사 정책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연인이 아니어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양심을 향유할 수도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도 없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이 방송사업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한 위헌제청이유를 명시적으로 소개하면서도,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이 방송사업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판단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입장이 법인에 대한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관한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인지, 시청자에 대한 사과의 제재조치가 언론사의 양심의 자유와는 관련성이 적은 문제라고 보아서 양심의 자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764조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에 사죄광고를 포함시키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가 문제된 1991. 4. 1. 선고 89헌마160 결정에서, 사죄광고의 강제는 양심도 아닌 것이 양심인 것처럼 표현할 것의 강제로 인간양심의 왜곡·굴절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형성의 강요인 것으로서 침묵의 자유의 파생인 양심에 반하는 행위의 강제금지에 저촉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정신적 기본권의 하나인 양심의 자유의 제약이며, 법인의 경우라면 그 대표자에게 양심표명의 강제를 요구하는 결과가 된다고 하여 사죄광고의 위헌성을 매우 강조한 것과 비교하여 보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 법인에 대하여는 양심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에 관한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추측을 하여 본다. 참고로 필자는 이 사건 심판대상법률의 소관청인 방송통신위원회를 대리하여, 법인은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와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나. 법인이 헌법상의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 인격권이란 일반적으로 권리주체와 분리될 수 없는 인격적 이익, 즉 생명, 신체, 건강, 명예, 정조, 성명, 초상 등의 향유를 내용으로 하는 권리를 말한다고 한다(권영성, 헌법학원론, 2009, 449면 등). 우리 헌법은 법인 내지 단체의 기본권 향유능력에 대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자연인에게 적용되는 헌법상의 기본권이 법인에게 당연히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성질상 법인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에 한하여 법인에게 적용되는 것이다(헌재 1991. 6. 3. 90헌마56). 따라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생명권, 신체의 자유, 혼인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자연인인 사람을 전제로 하는 기본권이나 사람의 감성과 관련한 기본권과 같이 자연인으로서 누리는 기본권은 기본권의 성질상 법인에게 적용될 수 없다. 평등권,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의 자유, 재산권, 언론·출판의 자유, 재판을 받을 권리 등 자연인인 사람을 전제로 하지 않거나, 사람의 감성과 무관한 기본권만이 성질상 법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인격권을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기본권이라고 보아왔다(헌재 1999. 5. 27. 97헌마137; 헌재 2002. 7. 18. 2000헌마327; 헌재 2003. 6. 26. 2002헌가14 등 다수). 그런데 법인은 감성을 가진 자연인이 아니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기본권을 향유하는 주체가 아니므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인격권을 가진다는 것은 논리 모순이다. 물론 법인에게도 인격권 유사의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 사건 결정 또한 법인도 법인의 목적과 사회적 기능에 비추어 볼 때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격권의 한 내용인 사회적 신용이나 명예 등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김종대 헌법재판관은, "법인은 결사의 자유를 바탕으로 하여 법률에 의해 비로소 창설된 법인격의 주체여서 관념상 결사의 자유에 앞서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할 수 없고, 그 행동영역도 법률에 의해 형성될 뿐이므로, 자연인처럼 감성에 바탕을 둔 기본권영역은 상정할 수 없거니와 상정할 필요도 없다. …… 법인은 헌법상 기본권인 인격권을 누릴 수는 없지만, 법률에 의하여 법인에게 인격권 유사의 내용이 인정될 수 있으므로 그 범위 내에서 법인은 법률적 수준의 인격권적 권리를 누릴 수는 있을 것이다."고 하여 다수의견에 반대의견을 피력하였다. 매우 타당한 지적이라고 본다. 법인의 명예보호는 헌법상 기본권에서 직접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법률상의 권리로서 입법자의 입법형성의 재량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2-09-24
선박보험계약에서의 영국법의 적용범위
Ⅰ. 사실관계 가. 주식회사 신흥은 2006. 5. 23. 리스회사인 한국캐피탈로부터 이 사건 선박 등을 리스하고, 2006. 6. 2. 한화손해보험(주)와 피보험자 : 소유자(owner) 한국캐피탈, 관리자(manager) 피고, 보험기간 : 2006. 5. 26. 12:00부터 2007. 5. 26. 12:00까지, 보험목적물 : 선체 및 기관, 보험가액 : 16억2,000만원 등으로 정하고 1983년 협회선박보험약관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하는 선박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나. 이 사건 보험계약의 현상검사와 관련한 워런티 약관조항은 신흥(주)가 2006. 7. 2.까지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현상검사와 그에 따른 권고사항을 이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다. 신흥(주)는 2007. 5. 2.에 이르러서야 KOMOS(한국해사감정)으로부터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현상검사를 받았고, 한편 이 사건 선박은 같은 달 6월 목포항을 떠나 태안반도 인근 모래채취구역으로 예인되던 중 505 현성호와 충돌하는 1차사고를 당하였고, 그 후 같은 해 6. 27. 제2대양호와 충돌하는 2차사고를 당하였다. 라. 신흥(주)는 위 각 충돌사고로 이 사건 선박이 손상되자 200. 7. 3.부터 같은 달 20일까지 선박수리업자로부터 수리를 한 후, 2007. 7. 27. 한화손해보험회사에게 위 각 충돌사고로 인한 이 사건 선박의 수리비 1억7509만9100원에 상당하는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보험자는 신흥(주)가 2006. 7. 2.까지 현상검사를 받아야 하는 이 사건 워런티 조항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그 지급을 거절하여 소송이 제기되었다. Ⅱ. 대법원 판결요지 영국 해상보험법상 워런티(warranty) 제도는 상법에 존재하지 아니하는 낯설은 제도이고 영국 해상보험법상 워런티 위반의 효과는 국내의 일반적인 약관해석 내지 약관통제의 원칙에 비추어 이질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워런티라는 용어가 해상보험 거래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하더라도 해상보험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없거나 워런티에 관한 지식이 없는 보험계약자가 워런티의 의미 및 효과에 관하여 보험자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할 경우 워런티 사항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어떠한 불이익을 받는지에 관하여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위반 즉시 보험금청구권을 상실할 위험에 놓일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상실 사실조차 모른 채 보험사고를 맞게 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보험자는 보험계약자가 워런티의 의미 및 효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할 의무를 부담하고, 보험계약자가 해상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형 해운회사나 무역회사와 같이 해상보험계약의 전담부서에 전문가를 두어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험자의 별도 설명 없이도 워런티의 내용과 효과를 잘 알고 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험회사가 영국법 준거약관에 의하여 영국 해상보험법이 적용되는 워런티(warranty) 약관 조항을 사용하여 해상운송업자인 보험계약자와 선박에 관한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보험계약자가 일정 기한까지 선박에 대한 현상검사와 그에 따른 권고사항을 이행할 것을 워런티 사항으로 정한 사안에서, 보험회사가 워런티의 의미와 효과에 관하여 보험계약자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가 위 워런티 약관 조항의 의미와 효과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므로, 그 경우 위 약관 조항 전체가 처음부터 보험계약에 편입되지 못한다.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근래 156인의 판사들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 관한 성명서와 관련하여 사법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법원은 해상보험사건에 특유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해상보험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영국보험자협회의 해상보험약관에는 영국법준거조항이 삽입되어 있고, 해상보험관련 대법원판결 중 대법원 1991.5.14. 선고 90다카25314 판결을 비롯한 대부분은 대법원판결은 영국의 법률과 관습을 전면적으로 우리나라의 법원(法源)으로 인정하여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류적 판결과 다른 취지의 판결이 속속 판시되고 있다. "이 보험증권에 포함되어 있거나 또는 이 보험증권에 첨부되는 어떠한 반대되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보험은 일체의 전보청구 및 결제에 관해서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만 의한다"는 영국법준거조항이 삽입된 사건에서 대법원 1998. 7. 14. 선고 96다39707 판결은 "보험계약의 보험목적물이 무엇인지 여부에 관한 사항이나 보험자의 설명의무와 같은 보험계약의 성립 여부에 관한 사항"에는 우리나라의 법률이 적용된다고 하고, 대법원 2001. 7. 27. 선고 99다55533 판결은 "협회선급약관상의 표준규격선박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보험자인 원고에게 지체 없이 위반의 사실을 통지하고 보험료 등에 관하여 협의하여야 하며, 보험계약자가 계속담보를 받는 사유의 발생을 알았음에도 보험자에게 지체없이 이를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더 이상 계속담보조항에 따른 보험계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는 조항과 관련하여 설명의무의 대상이라고 보았다. 또한 대법원 2004. 11. 11. 선고 2003다30807 판결은 약관의 구속력의 근거에 관하여 의사설을 취하는 입장에서 전세계 선박보험실무에서 통용되고 있는 1982년 영국의 협회선박보험약관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하기로 하는 합의가 없다고 하고 상법 제703조의2는 제1호를 적용하였고(이 판결의 평석으로는 한창희, 해상보험약관의 구속력, 최기원편 상사편례연구(Ⅶ)), 박영사, 2007, 248면 이하 참조), 이 글의 연구대상판결인 해상보험상 난제인 워런티의 의미와 효과에 관하여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보험계약에 편입되지 못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 대상판결에 대하여서는 법원이 주류적 판결과 달리 약관규제법이 적용되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우리 법원에서 다루어지는 해상보험사건은 영국법준거지정 외에는 외국적 요소가 없는 순수 국내계약이어서 국제사법 제25조 제4항에 따라 약관규제법과 같은 우리나라 강행규정이 적용된다는 것을 근거로 볼 수 있다는 견해(석광현, 외국법제로의 과도한 도피와 국제사법적 사고의 빈곤, 법률신문 3926호)가 제시되고 있고, 국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해상보험분야에서 판결의 목적인 정의와 형평의 구현에 있어 글로벌 스탠다드인 영국해상보험법제와 우리법의 조정과 관련한 법원의 고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해상보험에서 전통적인 워런티개념의 현대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이에 비추어 이 판결의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 의미있는 작업일 것으로 판단된다. 2. 영국 보험법상 최악의 특징인 워런티의 개혁논의 워런티는 보험자가 워런티에 관한 사항을 알든 모르든 피보험자는 워런티를 정확히 지켜야 하고, 이를 위반하게 되면 그 사유와 시기와 관련 없이 보험자는 바로 그 시점부터 보험계약상의 일체의 책임을 면하는 것으로, 보험계약자의 주요관심사인 보장범위의 정확한 한계획정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하여 왔다. 그러나 (1) 워런티위반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요구되지 않고, (2) 워런티 위반이 있으면 손해발생 전에 그 위반이 교정되더라도 그 위반이 교정되어 워런티가 충족되었다는 항변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워런티의 효과의 지나친 엄격성에 대한 완화노력이 각국에서 행해지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의 법원(法源)으로서의 지위가 인정되는 영국법과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살펴본다. 가. 영국 영국에서는 소비자보험의 영역에서 워런티의 효과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법률개정위원회는 수년간의 검토를 거쳐 워런티가 중요한 위반이 아닌 한 워런티로 분류되어서는 아니되고, 그 위반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한 워런티위반을 이유로 보험금지급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권고하고, 나아가 보험계약자에게 서면으로 워런티의 내용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받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보험자는 워런티위반을 이유로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금융감독청의 보험영업행위준칙(ICOBS) 제8.1.2조는 워런티위반과 손해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한 보험자는 보험금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보험인 해상보험영역은 보험영업행위준칙이 적용되지 않지만, 소비자보험의 변화에 상당한 정도 영향을 받고 있고, 2003년 국제선박보험약관은 위반하였더라도 치유가 허용되는 조항(제10·11·32조), 위반과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만에 대해서만 면책으로 하는 조항(제14조 제3항) 등을 두어 1906년 영국해상보험법상의 워런티의 엄격성을 완화하고 있다. 나. 미국 미국은 해상보험분야는 연방법원의 관할이고 연방 해상보험법은 제정되어 있지 않으며, 해상보험에서 영국법의 적용범위와 관련하여 연방대법원의 1955년의 Wilburn Boat사건 이전에는 영국법원의 판례가 미국법원에 의하여 선례로 인정되었지만, 이 판결 이후에는 주법의 적용이 가능해졌지만, 주마다 통일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Wilburn Boat사건판결에 대하여 튜레인 대학교의 데이비스 교수는 "해상법의 전국적 통일에 역행하는 매우 잘못된 판결"이라고 하고, 그랜트와 블랙(Grant and Black)은 "일관되게 문제가 있고 환상에 젖은 것"이라고 하였으며, 커리(Currie)는 불만족스러운 판결이라고 하였다. 3. 선박보험사건에 영국법의 적용범위 이 연구대상판결은 1982년 영국의 협회선박보험약관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하기로 하는 합의가 없다고 하여 약관 전체 조항의 편입을 부정한 대법원 2004. 11. 11. 선고 2003다30807 판결 이후 5년만의 해상보험관련 대법원판결로 워런티가 해상보험거래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워런티의 의미와 효과에 대하여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의 대상인 중요한 사항이고, 보험계약자가 해상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형해운회사나 무역회사와 같이 해상보험계약의 전담부서에 전문가를 두어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설명의무의 제외대상인 워런티의 내용과 효과를 잘 알고 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다. 우리판결에 따라 워런티에 관하여 법원(法源)의 지위가 인정되는 영국 해상보험법상 우리의 약관규제법에 해당하는 불공정계약조항법(Unfair Contract Terms Act)은 보험약관에는 적용이 없고, 기업보험인 해상보험에는 설명의무나 워런티의 엄격성을 제한하고 있는 영업행위준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연구대상판결은 상법에 존재하지 아니하는 낯설은 제도인 영국해상보험법상의 워런티의 효과를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를 적용하여 구체적인 타당성을 구현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석광현교수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영국의 해상보험법을 전면적으로 우리의 법원(法源)으로 인정하던 대다수의 판결방향을 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수정하고 있고, 미국의 Wilburn Boat사건이후 나타나고 있는 법적 안정성의 파괴로 인한 혼란이 우려된다. 5년의 간격을 두고 대법원은 두 판결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의 해상보험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약관의 구속력의 근거와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에 대하여 영국법이 아닌 우리 법을 적용하고 있지만, 해상보험의 국제성에 비추어 옳다고 할 수 없고, 너무 안이하였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4. 맺음말 워런티는 영국 해상보험법상 가장 매력없는 개념으로 전세계에서 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항에서 이 연구대상판결이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를 적용하여 워런티의 엄격성을 완화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는 점에서 법원의 고심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의 지위가 인정되는 영국해상보험법상의 워런티의 효과를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의 대상으로 본 것은 해상보험의 국제성에 반하는 것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해상보험의 국제성과 우리사법(司法)인프라의 미비라는 점을 유념하여야 하지만, 판결의 목적이 정의와 형평의 구현을 위한 구체적 타당성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해상보험에서 영국법과 우리법의 조정은 향후에도 해상보험을 연구하는 학계와 실무계가 풀어야할 어려운 과제라고 판단된다.
2012-02-20
공무수탁사인의 행정주체적 지위의 문제점에 관한 小考
Ⅰ. 事案과 經過 피고 토지공사는 2003. 3. 14.경부터 2004. 1. 29.경까지 원고 1, 2 주식회사에게 6차례에 걸쳐 관련 보상절차가 완료되었다는 이유로 이 사건 토지상의 각 건물에 대한 철거와 지장물을 이전할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계고를 하였다. 위 원고들이 이에 응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토지 및 그 지상 공장건물 등을 계속 사용·수익하자, 피고 토지공사는 2004. 1. 30. 피고 3 주식회사와 행정대집행 철거도급계약을 체결한 다음 2004. 2. 5.부터 2004. 2. 9.까지 사이에 피고 2를 행정대집행 책임자로 삼아 피고 토지공사의 직원들과 피고 3 주식회사에서 고용한 인부들을 지휘·감독하여 이 사건 토지상의 공장건물 내부에 있던 영업시설물 등을 반출함과 아울러 공장건물을 철거하는 한편 반출물건 중 일부와 철거잔존물을 파주시 교하읍 ○○리에 있는 적치장으로 이전하는 방법으로 행정대집행을 실시하였다. 원고는 여기서의 행정대집행의 위법을 내세워 토지공사와 그의 직원 및 토지공사와 철거도급계약을 맺은 주식회사를 상대로 국가배상책임을 구하였다. Ⅱ. 判決要旨 한국토지공사는 구 한국토지공사법(2007. 4. 6. 법률 제834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4조에 의하여 정부가 자본금의 전액을 출자하여 설립한 법인이고, 같은 법 제9조 제4호에 규정된 한국토지공사의 사업에 관하여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제89조 제1항, 위 한국토지공사법 제22조 제6호 및 같은 법 시행령 제40조의3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본래 시·도지사나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의 업무에 속하는 대집행권한을 한국토지공사에게 위탁하도록 되어 있는 바, 한국토지공사는 이러한 법령의 위탁에 의하여 대집행을 수권받은 자로서 공무인 대집행을 실시함에 따르는 권리·의무 및 책임이 귀속되는 행정주체의 지위에 있다고 볼 것이지 지방자치단체 등의 기관으로서 국가배상법 제2조 소정의 공무원에 해당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 Ⅲ. 問題의 提起 여기서 문제는 공무수탁사인인 격인 토지공사에 대해 통상의 가해공무원의 개인책임마냥 고의 또는 중과실의 경우에만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아니면 이런 제한 없이 즉, 경과실의 경우에도 물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원심(서울고등법원 2007. 10. 4. 선고 2006나37894(본소), 2006나37900(반소)판결)은 한국토지공사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 의하면, 피고 토지공사가 토지개발사업을 행하는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공익사업법 제89조의 규정에 의한 대집행 권한을 피고 토지공사에 위탁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규정에 따라 대집행 권한을 위탁받은 피고 토지공사는 그 위탁범위 내에서는 공무원으로 볼 수 있다고 하여, 토지공사는 물론 기타의 피고(토지공사의 대집행실무책임자, 위탁받은 민간업체 및 그 대표자) 역시 고의 또는 중과실의 경우에만 직접적 배상책임을 진다고 보았다. 반면 대상판결은 공무수탁사인격인 토지공사를 국가배상법상의 단순한 공무원이 아닌 행정주체로 봄으로써, 고의나 중과실과 같은 귀책사유의 제한을 고려할 필요 없이 곧바로 즉, 경과실만으로도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공무수탁사인의 법적 지위와 관련하여 간단치 않는 문제가 있다(공무수탁사인을 포함한 공무수행상의 민간전문가의 문제는 졸고, 행정법집행에서의 민간전문가의 참여, 공법연구 제40집 제1호(2011.10.) 참조). Ⅳ. 公務受託私人의 法的 地位 1. 行政主體說의 問題點 종래 독일의 'Verwaltungstrager'를 행정주체로 옮겼다. 독일의 문헌이 공무수탁사인 역시 'Verwaltungstrager'의 일종으로 들기에 자연 공무수탁사인에 대해서도 행정주체적 지위를 부여하여 왔다. 법에서 권리(법)주체는 권리의무의 귀속주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행정주체설을 단순 대입하면 공무수탁사인의 경우 귀속주체인 이상 그의 위법한 행위로 인한 배상책임은 국가배상차원에선 그 스스로 가져야 한다는 논증이 성립한다. 행정주체로서의 공무수탁사인과 관련한 이런 인식(행정주체=배상책임주체)은 별다른 의문 없이 보편적으로 문헌에서(최근의 예로 정하중,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의 의미, 법률신문 제3965호(2011.9.5.); 박균성, 공무수탁자의 법적 지위와 손해배상책임, 행정판례연구 제15집 제1호, 2010.6, 151면 이하; 정남철, 행정대집행과 국가배상책임, 행정판례연구 제15집 제1호, 2010.6, 189면 이하) 받아들여지고 있다(이에 대한 문제제기로 김중권, 2010년도 주요 행정법(행정)판결의 분석과 비판에 관한 소고, 안암법학 제35호, 2011.5.31., 96면 이하. 홍준형 교수 역시 행정주체설에 대해 강한 의문을 피력한다. 동인, 사인에 의한 행정임무의 수행 : 공무수탁사인을 둘러싼 법적 쟁점을 중심으로, 공법연구 제39집 제2호(2010), 639면). 그런데 기왕의 논의는 조직법상의 의미, 작용법상의 의미 그리고 책임법상의 의미를 구분하지 않았다. 공무수탁사인이 행정주체가 되어 -지방자치단체, 공공조합, 영조물법인, 공재단처럼- 간접적인 국가행정의 일환이 되나, 이는 조직법상의 의미이다(Klement, Hochstrichterliche Rechtsprechung zum Verwaltungsrecht: Ungereimtes in der Beleihungsdogmatik des BGH, VerwArch 2010, 112(119); Maurer, Allg. VerwR, 2009, §21 Rn.11). 작용법의 차원에선 그것은 고유한 직무담당자(Amtstrager)이다. 즉, 공무수탁사인은 헌법 제29조와 국가배상법 제2조상의 직무를 집행한다. 직무담당자로서 공무수탁사인을 설정하면, 그의 행위에 따른 법적 효과는 당연히 위탁자(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게 귀속하며, 이는 국가책임법의 차원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즉, 공무수탁사인에게 공임무를 위탁한 자가 공무수탁사인의 위법한 직무행위에 대해 배상책임을 진다. 사실 행정절차법은 물론 행정소송법상으로 공무수탁사인이 행정청마냥 동일하게 피고가 되기에 행정주체설이 결정적으로 한계가 가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주체설에 사로잡힌 나머지 행정소송상의 이런 취급을 소송수행상의 편의상의 것으로 오해하였다. 2. 獨逸에서의 論議 독일의 경우 통설(Maurer, Allg. VerwR, §23 Rn.59, §26 Rn.43; Ossenbuhl, Staatshaftungsrecht, 5.Aufl., 1998, 16f.; Freitag, Das Beleihungsverhaltnis, 2004, S.25)과 판례(BGHZ 49, 108(115); BGHZ 122, 85(87))는, 그들 판례에서 전개된 위탁이론(Anvertrauenstheorie)과 그들 기본법상 배상책임주체로 국가와 공공단체만이 규정되어 있는 점에 의거하여, 공무수탁사인에게 위탁한 행정주체('Verwaltungstrager')가 배상책임을 진다고 본다. 그 결과 공무수탁사인은 국법적 의미에서의 공무원이나 행정보조인과 동일하게 설정되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독일에선 일부문헌에서 반대주장이 제기되었다. Frenz는 기본법 제34조의 책임이 사법의 권리주체에게도 이전될 수 있음을 들어, 고권적 권능을 독립되게 행사하는 공무수탁사인이 스스로 책임을 진다고 주장하였다(Ders., Die Staatshaftung in den Beleihungstat bestanden, 1992, S.148ff.). 즉, 공무수탁사인에로의 책임의 원칙적인 이전이 독립된 행정주체로서의 공무수탁사인의 법적 지위의 논리적 결과라고 본다(Frenz의 반론에 공감하여, Schmidt am Busch는 민간의 자원을 가능한 효과적으로 투입하기 위하여, 그리고 -바뀐 국가임무에 상응하여- 필연적인 행정단위의 독자성을 감안하여 책임을 공무수탁사인에게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Ders., Die Beleihung: Ein Rechtsinstitut im Wandel, DOV 2007, 533(542)). 반대론에 의하면 임무수행과 관련하여 제1차적 권리보호(행정소송)이든 제2차적 권리보호(국가책임)이든 동일인을 피고로 삼을 수 있다. Ⅴ. 公務受託私人이 賠償責任主體가 될 수 있는가? 배상책임주체와 관련해서, 우리의 경우 -독일과는 마찬가지로- 헌법이 국가와 공공단체만을 규정하고, 우리의 국가배상법제에 해당하는 독일 민법 제839조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지만 국가배상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만을 규정하고 있다. 설령 행정주체로서의 공무수탁사인을 인정하더라도, 그는 처음부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 다른 위상을 갖는다. 요컨대 배상책임은 신분법적 의미상의 공무위탁적 고권주체와 관련이 있다. 나아가 배상책임주체가 이처럼 명문화된 이상, 독일에서의 반대주장이 우리에게 통용되는 데는 극복될 수 없는 장애가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이 점은 동일하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공무수탁사인을 배상책임주체차원에서 전개한 것은 깊이 재고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물론 원심은 토지공사(피고1)를 비롯한 피고(피고2-피고 토지공사의 업무 담당자, 피고3-피고 토지공사와 사이에 용역계약을 체결한 법인, 피고4-그 법인 대표자)를 국가배상법의 차원에서 -판례가 인정하는- 가해공무원의 개인책임가능성에 의률하여 접근한다. 특히 대법원은 토지공사를 행정주체이자 원(1차)공무수탁사인으로 설정하기에, 그 토지공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자 및 그의 대표자를 마치 복(2차)공무수탁사인이자 그 집행공무원으로 보는 셈이다. 그런데 전적으로 사인인 이들을 국가배상책임에 의률하여 접근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문제가 있을뿐더러,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과 비교하여 요구되는 과실정도가 높다. 사실 판례는 법인이 공무수탁사인인 경우 해당 법인과 그 업무담당자를 구분하여 고찰하고 있다. 그런데 법인이 공무수탁사인에 해당하면 직무행위의 기준이 되는 직무담당자는 그 수탁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자(그 법인의 직원)이지 결코 해당 법인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직무담당자는 반드시 자연인만 될 수 있기 때문이다(BGH, Urt. v.22.2.2006, NVwZ 2006, 966; BGHZ 170, 260(266 Rn.18)). Ⅵ. 맺으면서-誤解의 軸 직무담당자의 공무원적 지위인정은 공권력주체(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책임귀속 즉, 국가책임을 성립시키기 위함이다. 결코 그의 개인적 책임을 국가배상법차원에서 묻기 위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사안을 가해공무원의 개인책임의 능부차원에서 접근하였고, 그 결과 -대상판결이- 공무수탁사인을 국가배상법에 위배되게 배상책임주체로 인정하였다. 그런데 2009.10.21.의 국가배상법개정에서 공무수탁사인을 명시적으로 공무원과 병렬적으로 규정하였다. 개정전의 사안이지만, 그에 관한 행정주체적 접근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 이 모든 요령부득의 논증은 국가배상법의 본지에서 벗어나 가해공무원의 직접적 배상책임을 인정하여 국가배상책임의 본질마저 오해하게 한 대법원 1996.2.15. 선고 95다38677전원합의체판결에서 비롯되었다. 이 판결을 극복하지 않고선 우리 네 국가책임법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고 하겠다(이런 사정에 관해선 김중권, 행정법기본연구Ⅱ, 2009, 159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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