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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금융·보험
민사일반
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민사일반
조세·부담금
국세징수권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조세채권존재확인의 소의 이익
1. 사실관계 피고는 일본에 본점을 둔 외국법인으로 2006년 10월부터 2007년 4월까지 3회에 걸쳐 국내에서 골프장업을 하는 회사의 주식 3만2000주를 양도하였고 위 주식의 양수회사는 원천징수의무자로서 원천징수분 법인세 및 증권거래세 등을 신고·납부하였다. 원고(대한민국) 산하 지방국세청장은 피고가 법인세 신고·납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주식의 취득가액도 적정하지 않다고 보았고 관할 세무서장은 2010년 11월 직권으로 피고를 외국법인 국내지점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후 2011년 3월 납부기한을 2011년 3월 31일로 하여 2006년과 2007년의 법인세를 결정·고지하였다. 이에 불복한 피고가 심판청구를 하였으나 조세심판원은 2012년 7월경 실제 취득가액의 확인자료가 제출되지 않았고 시가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결국 피고의 체납액은 가산금을 포함하여 2015년 5월 약 331억 원에 이르게 되었는데 피고는 국내재산이 없는 한편 일본에서 계속 골프장 사업을 하고 있다. 원고 산하 국세청장은 2015년 6월까지도 일본과의 2010년 이전 과세연도에 대하여 부과한 조세의 위탁징수에 관한 상호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반면, 피고에 대한 국세징수권 소멸시효는 2011년 3월의 납세고지로 중단되었다가 납부기한인 2011년 3월 31일의 다음날부터 다시 진행하게 되었다. 원고는 고액체납자인 피고에 대한 국세징수권 확보를 위해 2014년 12월 일본 소재 피고의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여 납부최고서를 전달하려 했으나 피고가 수령하지 않자 국제등기우편을 통해 송달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조세는 국가존립의 기초인 재정의 근간으로서 세법은 과세관청에 부과권이나 우선권 및 자력집행권 등 세액의 납부와 징수를 위한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여 그 공익성과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다. 따라서 조세채권자는 세법이 부여한 부과권 및 자력집행권 등에 기하여 조세채권을 실현할 수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납세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 다만 납세의무자가 무자력이거나 소재불명이어서 체납처분 등의 자력집행권을 행사할 수 없는 등 국세기본법 제28조 제1항이 규정한 사유들에 의해서는 조세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이 불가능하고 조세채권자가 조세채권의 징수를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충실히 취하여 왔음에도 조세채권이 실현되지 않은 채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 청구는 예외적으로 소의 이익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리고 국가 등 과세주체가 당해 확정된 조세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하여 납세의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조세채권존재확인의 소는 공법상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 3. 평석 가. 확인의 소의 보충성 원칙 위반 여부 각종의 소에서 요구하는 제소의 이익(권리보호이익)은 다른데 민사소송법상 확인의 소의 이익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판례상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함에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일 때에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고(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다14420 판결), 민사상 채권에 대해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로서 그 확정된 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와 청구권 확인의 소 이외에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확인의 소도 허용하였다(대법원 2018. 10. 18. 선고 2015다232316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조세채권의 경우 민사상 채권과 달리 법률에 규정된 과세요건이 충족될 때에 법률상 당연히 성립하고 국세징수법 절차에 따라 자력집행력이 인정되고 있어(헌법재판소 2007. 5. 31. 선고 2005헌바60 결정), 국세징수법은 집행권원 획득을 위한 이행청구의 소 제기와 같은 집행절차는 예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사건 소의 형식이 이행청구가 아니라 확인의 소라고 하더라도 이는 자력집행력을 가지고 있는 조세채권의 본래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서 다른 특별한 사정에 의해 확인의 이익이 인정된다면 소송요건을 갖추는 것이라 할 것이다. 나. 확인의 이익의 존재 여부 확정된 채권을 소멸시효 완성 직전까지 강제집행하지 못한 경우 판례는 강제집행실시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다면 그 이전에 강제집행실시가 가능하였는지에 관계없이 시효중단을 위한 동일 내용의 재판상 청구가 불가피하므로 확정판결이 있었더라도 시효중단을 위한 동일 내용의 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대법원 1987. 11. 10. 선고 87다카1761 판결)고 하여 시효중단을 위한 소제기에 소의 이익을 비교적 넓게 인정하고 있다. 확정된 채권은 판결에 의해 집행권원이 부여된 채권인데 조세채권은 민사집행법에 따른 청구 이의의 소, 제3자 이의의 소와 같이 징수처분에 대하여 불복절차를 마련하고 있고 자력집행권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판결에 집행문을 부여받은 확정된 채권과 법률상 효력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세징수권의 시효중단을 위해 제기된 소에 대해서도 소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국세기본법 제28조는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 ① 납세고지, ② 독촉 또는 납부최고, ③ 교부청구, ④ 압류를 규정하면서 소멸시효에 관하여 제17조 제2항은 이 법이나 세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피고는 납부기한까지 체납액을 완납하지 아니하여 원고가 납부최고서를 송달한 상황이나 이러한 최고 내지 재독촉은 소멸시효 중단사유가 되는 독촉이 아니어서(대법원 1999. 7. 13. 선고 97누119 판결), ①과 ②의 방법에 따른 소멸시효 중단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또한 국내에 소재한 피고의 재산이 없고 한·일간 조세징수 위탁을 통한 징수방법 역시 상호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③과 ④의 방법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국세기본법 제28조에서 열거한 방법을 통한 소멸시효 중단은 불가능하여 소멸시효 완성에 따라 대한민국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함에는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것이다. 다. 당사자소송의 해당 여부 당사자소송은 행정청의 처분 등을 원인으로 하는 법률관계에 관한 소송이나 그 밖에 공법상의 법률관계에 관한 소송으로 그 법률관계의 한쪽 당사자를 피고로 하는 소송이다. 과세처분의 무효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소송의 성격은 처분자체의 무효나 부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로 생긴 조세채무(납세의무)의 부존재확인이고(대법원 1982. 3. 23. 선고 80누476 판결), 납세의무 부존재확인의 소는 공법상의 법률관계 그 자체를 다투는 소송으로서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대법원 2000. 9. 8. 선고 99두2765 판결). 조세채권(부과징수권) 존재확인의 소는 납세의무라는 공법상 법률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이를 다투는 소 역시 당사자소송에 해당할 것이다. 이 사건 소는 국가의 부과처분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확정된 납세의무 또는 징수권한의 확인을 구하는 소송으로 공법상 법률관계에 관한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 라. 당사자 적격의 인정 여부 당사자 적격이란 특정 소송에서 소송을 수행하고 본안판결을 받기에 적합한 자격인데 당사자소송에서 원고와 피고가 될 수 있는 자는 공법상 법률관계의 권리주체이다. 당사자소송의 원고 적격에 관하여 행정소송법에 규정된바 없어 항고소송과 같은 제한 없이 민사소송법이 준용되고 확인의 소에 있어서 원고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불안·위험을 초래하고 있거나 초래할 염려가 있는 자가 피고 적격을 가진다(대법원 2007. 4. 12. 선고 2004두7924 판결). 이 사건에서 대한민국은 국세기본법 제28조 제1항이 열거한 방법을 통한 소멸시효 중단은 불가능하여 대한민국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함에는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원고 적격이 있으며 납세의무자는 그 확인에 대한 반대이익을 가지고 있어 피고 적격이 있다고 할 것이다. 4. 결론 대상판결은 국가가 확보한 국세징수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세기본법상 소멸시효 중단이 불가능하고 조세채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충실히 취하였으나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납세의무자를 상대로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조세채권존재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이 있다고 최초로 판단하였다. 이로써 국가가 더 이상 조세집행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경우 재판상 청구를 통해 조세징수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조성권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민법
조세징수권
국세기본법
법인세법
조성권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2020-05-25
민사일반
상당한 기간 피상속인을 동거·간호한 배우자의 기여분
[대상 결정] 1. 사실관계 가. 피상속인(1918년생 남자)은 1940년 10월 1일 청구외인(1916년생 여자)과 혼인하여 그 사이에 청구인들 9명을 자녀로 두었다. 피상속인은 1971년 초 상대방 A(1944년생 여자)를 만나 중혼적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사이에 상대방 B, C를 자녀로 두었다. 피상속인은 청구외인이 1984년 7월 26일 사망하자 1987년 5월 16일 상대방 A와 혼인신고를 하고 2008년 3월 1일 사망할 때까지 피상속인 소유의 주택에서 함께 살았다. 나. 상속재산으로는 부동산 13건 시가 합계 약 32억원, 상속채무로는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 등 5억원이 있다. 특별수익액은 청구인들 중 3명이 각 1억5900만원, 1억6300만원, 9500만원이고 상대방 A는 5억1200만원, 상대방 B와 C는 각 3억8100만원 상당이다. 다. 피상속인은 2003년 3월부터 사망할 때까지 약 5년 동안 여러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아 왔고 10여회에 걸쳐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상대방 A는 그 대부분의 기간 피상속인을 간호하였다. 라. 상대방 A는 2002년 10월경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2007년 12월경 담도암 판정을 받았으며 이 사건이 대법원에 계속 중이던 2014년 8월 8일 사망하였다. 2. 제1, 2심의 경과 피상속인 상속재산의 적정한 분할을 구하는 청구인들의 본심판청구에 대하여 상대방들은 상당한 기간 투병 중인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하였음을 주장하면서 30%의 기여분을 반심판으로 구하였다(다만 피상속인의 자녀들인 상대방 B, C의 기여분 청구는 여기서의 논의에서는 제외한다). 제1, 2심은 피상속인이 병환에 있을 때 상대방 A가 피상속인을 간호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상대방 A는 피상속인의 배우자로서 통상 기대되는 정도를 넘어 법정상속분을 수정함으로써 공동상속인 사이의 실질적인 공평을 기하여야 할 정도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였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대방 A의 기여분 청구를 배척하였다. 3. 대상 결정의 판단 가. 다수의견의 요지 배우자의 기여분 인정 여부와 그 정도는 민법 제1008조의2의 문언상 가정법원이 배우자의 동거·간호가 부부 사이의 제1차 부양의무 이행을 넘어서 '특별한 부양'에 이르는지 여부와 더불어 동거·간호의 시기와 방법 및 정도뿐 아니라 동거·간호에 따른 부양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규모와 배우자에 대한 특별수익액, 다른 공동상속인의 숫자와 배우자의 법정상속분 등 일체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하여 배우자의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따져서 판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위에서 든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A에게 기여분 청구를 배척한 원심결정에는 잘못이 없다. 나. 소수의견(조희대 대법관)의 요지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상당한 기간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하는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부양한 경우 배우자의 이러한 부양행위는 민법 제1008조의2 제1항에서 정한 기여분 인정 요건 중 하나인 '특별한 부양행위'에 해당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배우자에게 기여분을 인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심결정은 기여분 인정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으므로 파기되어야 한다. [연구] 1. 배우자의 부양행위와 기여분 대상 결정의 소수의견은 ① 다수의견이 배우자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려는 2005년 3월 31일 개정 민법의 입법 취지나 기여분의 인정 여부와 그 정도를 구별해서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1008조의2의 문리적·체계적 해석에 맞지 않고 ② 부부가 동거하고 부양할 의무가 있다는 것과 동거하고 부양할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배우자에 대하여 기여분을 인정하는 것은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③ 배우자의 기여분은 부부공동형성재산의 청산이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배우자와 다른 공동상속인들 사이에서 상속분을 공평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고 ④ 배우자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인구 고령화, 핵가족화, 노인 돌봄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법 제1008조의2 제1항의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는 기여분이 인정될 수 있는 부양행위의 여러 태양 중 하나이고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가 1차적 부양의무로서 성년의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보다 더 높은 정도를 요구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그러한 행위가 신분관계로부터 통상 기대되는 정도를 넘는 '특별한' 부양으로 평가되는 경우에 한하여 기여분을 인정하는 것이 문리적으로나 법률의 일반적인 규정 형식이나 다른 상속 규정들과의 체계적 해석의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또한 기여분이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형평을 위하여 법정상속분을 수정하는 요소라면 동거나 간호의 시기와 방법 및 정도뿐 아니라 그 부양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규모와 배우자에 대한 특별수익액, 다른 공동상속인의 숫자와 배우자의 법정상속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여분 인정 여부를 법원이 후견적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사회 현실의 변화에 따라 배우자 기여분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기여분 인정보다는 '부양의 특별성'에 대한 해석과 구체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법원의 실무에 의하여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고려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러한 점에서 다수 의견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2. 배우자의 상속분 가. 기여분과 특별수익 인정에 관한 실무 경향 종래 상속재산분할을 담당하는 하급심에서는 기여분 인정에 매우 엄격한 경향이 있었고 기여자가 배우자인지 혹은 자녀인지 등 신분상의 지위에 따라 기여분 인정 여부를 달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 하급심에서는 기여분 인정에 관하여 엄격성이 다소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재산적인 기여뿐 아니라 피상속인을 간호하고 부양하는 것과 같은 무형의 비재산적 기여행위에 대하여도 기여분을 인정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서울가정법원 2018. 4. 16.자 2014느합30039 심판, 서울가정법원 2018. 9. 10.자 2016느합93 심판, 부산가정법원 2018. 11. 22.자 2016느합200041 심판 외 다수). 나아가 배우자의 기여분이 직계비속 등 다른 공동상속인들의 기여분보다 인정되는 빈도와 비율이 대체로 높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한편 배우자가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 증여를 받았더라도 그것이 기여의 대가로 평가될 수 있다면 특별수익에서 제외하는 실무례도 보인다. 이는 배우자에 대한 피상속인의 생전 증여가 배우자의 기여나 노력에 대한 보상 내지 평가, 실질적 공동재산의 청산, 배우자 여생에 대한 부양의무 이행 등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는 이유로 생전 증여를 특별수익에서 제외하더라도 자녀인 공동상속인들과의 관계에서 공평을 해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본 대법원 판결(2011. 12. 8. 선고 2010다66644 판결 참조, 다만 위 판결은 기여분을 고려할 수 없는 유류분반환청구에 관한 것이다) 등을 근거로 한다. 나. 상속에 있어서 배우자 보호에 대한 논의 이러한 실무례는 이혼의 경우와 비교하여 상속의 경우 현재의 법정상속분만으로는 배우자 보호에 미흡하므로 생존 배우자의 상속분을 강화하자는 입법론과도 어느 정도 생각이 맞닿아 있다. 2014년 법무부 민법 개정 시안에서는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의 2분의 1을 배우자 몫으로 우선 공제하는 규정(배우자의 선취분)의 도입이 논의된 바 있다. 한편 2018년 7월 13일 공포된 일본의 개정 상속법에서는 배우자의 상속분 인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혼인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일방 배우자가 타방 배우자에게 거주용 부동산을 유증·증여한 경우 그 부동산은 배우자의 특별수익 계산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일본 개정 민법 제903조 제4항 참조). 다. 대상 결정의 기여분 판단 대상 결정은 상대방 A의 특별수익액이 전체 특별수익액의 30%에 해당하는 정도이고 부양 비용을 피상속인의 수입으로 충당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기여분 청구를 배척하였다. 그러나 상대방 A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피상속인과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동거하였고 자신 역시 고령임에도 오랜 기간 80대가 넘는 피상속인의 병시중을 한 점, 상대방 A도 피상속인의 간호 중 암에 걸려 결국 사망하게 된 점, 상대방 A의 특별수익액은 간주상속재산 가액의 11% 정도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기여분을 인정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더구나 대상 결정의 다수 의견이 무형의 비재산적 기여행위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하급심 실무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해당 사안에서는 상대방 A의 기여분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3. 결론 배우자가 장기간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피상속인을 간호한 경우 그 자체로 기여분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부양의 '특별성'을 인정할 만한 여러 요소를 종합해서 판단하여야 한다는 대상 결정의 다수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대상 결정이 부양행위와 같은 무형적 기여행위에 관한 기여분 청구를 배척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되는 것은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기여행위의 '특별성'을 판단하는 법원의 실무가 중요할 것인데 급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긴밀해진 부부관계에서 생존 배우자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동거·간호와 같은 부양행위를 기여분으로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실무가 필요하다. 김성우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상속
간병
유산
부양의무
김성우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2020-01-02
민사일반
준거법의 범위와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 대상판결: 대법원 2016.3.24. 선고 2013다81514 판결 - I. 대상판결의 요지 당사자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계약 당사자는 어느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거나 그중 특정 조항이 당해 계약에 적용된다는 합의를 할 수 있고 그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소송절차에서 비로소 당해 사건에 적용할 규범에 관하여 쌍방 당사자가 일치하는 의견을 진술하였다고 해서 이를 준거법 등에 관한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II. 국제협약이 준거법의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의 당사자가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는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상인법(lex mercatoria 또는 law merchant)과 같은 국제적 관습, UNIDROIT 국제상사계약규칙(UNIDROIT Principles of International Commercial Contracts 1980)과 같은 법원칙 또는 국제물품매매협약(UN Convention on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과 같은 국제협약 등 비국가적 규범도 포함되는지 문제된다. 2. 논의의 실효성 비국가적 규범이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있다면 이는 ‘저촉법적 지정’이 되지만, 만일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없다면 당사자의 합의는 그러한 비국적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실질법적 지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촉법적 지정은 준거법의 지정이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적용은 배제되고 국제적 강행규정만이 적용된다. 그러나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경우에도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계약이 체결된 후에 법이 개정되었다면 개정된 법이 적용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개정되기 전의 법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그 적용이 배제된다. 또한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법원이 규범의 내용을 직권으로 조사해야 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편입된 법규가 계약의 내용이 되므로 당사자가 편입된 법규의 내용에 대하여 주장하고 증명할 책임을 부담한다. 3.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준거법은 특정국가의 법에 한정된다고 본다. 국제사법의 전반에서 언급하고 있는 ‘법’의 전통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는 특정국가의 법이고, 제5조에서 ‘법원은 이 법에 의하여 지정된 외국법’이라고 규정하고 제7조나 제33조 등에서 ‘대한민국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하여 보면 준거법은 외국법이거나 대한민국법으로서 특정국가의 법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준거법의 분열의 한계와 관련하여서 문제가 발생한다. ‘준거법의 분열’이란 하나의 법률관계의 실체적 내용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국제사법 제25조 제2항에서는 “당사자는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준거법의 분열을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 2016.6.23. 선고 2015다5194 판결에서는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만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 선택된 준거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영역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소위 객관적 준거법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비국가적 규범만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거나 비국가적 규범과 특정국가의 법을 모두 지정하는 경우 모두 준거법의 분열이 발생한다. 그러나 준거법의 분열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법의 내용에 차이가 있고, 한 국가의 국내법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동시에 적용되면 적용되는 법률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거나, 생소한 다른 국가의 제도를 국내의 제도에 맞춰야 하는 복잡한 적응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정된 복수의 준거법이 적용되는 부분이 다른 부분과 분리가능하여 상호 모순저촉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 내에서만 준거법의 분열이 허용된다. 그런데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한계를 완전히 무시하고서 준거법의 분열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국제협약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보건대, 위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깊은 고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저촉법적 지정은 할 수 없다고 본다. 참고로 우리의 국제사법의 바탕이 된 유럽공동체(EC)의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협약’(‘로마협약’) 에서는 당사자가 준거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위 로마협약을 개정한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규칙’을 제정되는 과정에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준거법은 특정 국가의 법으로부터만 도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아니하였다. III.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주요사실에 대하여만 변론주의가 적용되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는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실이 주요사실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상판결과 같이 준거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본다면 당사자가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주장 및 증명해야 비로소 법원이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당사자의 주장이 없는 한 법원이 직권으로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2.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1) 주요사실의 의미에 따른 비판 주요사실이라 함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체법상의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말한다(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 즉 권리와 의무의 발생, 변경, 소멸이라는 실체법적 효력을 가져오는 요건사실이 주요사실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지만 ‘절차법-실체법’과 ‘저촉법-실질법’이 대비되고 있는 바와 같이, 저촉법인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절차법과 실체법의 구분과 그 영역을 달리한다(석광현, ‘국제사법 해설’, 법문사, 2013, 4쪽). 그런데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보던지 저촉법으로 보던지 상관없이 국제사법이 실체법이 아니란 점은 명백하므로 국제사법 제25조에 따른 준거법의 지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2) 적용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국제적 분쟁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으로서는 당사자의 주장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이를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법에 따르면 계약에 적용되는 준거법은, 1차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지정한 국가의 법이 되고(제25조 제1항), 이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2차적으로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된다(제26조). 따라서 법원은 직권으로 계약의 1차적 준거법인 당사자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해야 한다. 게다가 대상판결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적용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이고,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는 적용할 법률을 결정하는 합의이므로, 법원은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하는데 있어서 당사자의 주장에 구속받지 아니한다. 덧붙여 대상판결은 당사자가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는 계약의 내용이 되고 계약의 내용은 주요사실이라는 이유로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를 주요사실로서 자백의 대상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당사자의 합의라고 하더라도 모두 주요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법원 판례에서는 소송상 합의인 부제소의 합의를 채권계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2다73821 판결), 이러한 부제소의 합의가 소송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따라서 당사자의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까지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IV. 결론 이상으로 대상판결과 달리, 사견에 따르면 국제협약을 포함한 비국가적 규범은 준거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의 존재는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서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대상판결 중 문제된 판시내용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채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른 아쉬움이 있다. 적지 않은 국제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좀 더 많은 국제사법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국제협약
준거법
국제사법
2017-02-20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1항 위헌 결정에 대한 소고
1. 들어가며 헌법재판소는 최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이라 한다) 제11조 제1항이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제58조 제1항과 똑같은 내용의 구성요건을 규정하면서 법정형만 올려놓은 것은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위배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내용으로 위헌 결정을 하면서, 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과거 결정(헌재 1995. 4. 20. 91헌바11 결정)을 변경하였다. 위 2011헌바2 결정(이하 '대상결정'이라 한다)은 그 판단의 근거로, 불과 4년 전인 2010년 4월 29일 합헌이라고 판단한 특가법 제9조 제2항('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해당 조항과 똑같은 내용의 구성요건을 규정하면서도 법정형을 올려 가중처벌하는 법률조항) 위헌소원 사건(2008헌바170)에서 위헌의 의견을 제시한 재판관 4인의 반대의견을 제시함으로써, 헌법재판소가 형사특별법의 정당성에 관한 기존의 판단 기준을 변경한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2. 결정요지 심판대상조항은 이 사건 마약법조항과 똑같은 내용의 구성요건을 규정하면서 법정형의 하한만 5년에서 10년으로 올려놓았다. 마약류취급자가 아닌 사람이 향정신성의약품을 수입하는 경우 검사는 심판대상조항을 적용하여 기소하는 것이 특별법 우선의 법리에 부합할 것이나, 이 사건 마약법조항으로 기소할 수도 있는데, 어느 법률조항이 적용되는지에 따라 집행유예의 가능성이 달라지는 등 심각한 형의 불균형이 초래된다. 일반법에 대비되는 특별법은 개념적으로 일반법의 모든 구성요건을 포함하면서 그 밖의 특별한 표지까지 포함한 경우를 뜻하므로, 심판대상조항 역시 이 사건 마약법조항의 구성요건 이외에 별도의 가중적 구성요건 표지를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심판대상조항은 그러한 표지 없이 법적용을 오로지 검사의 기소재량에만 맡기고 있어 법집행기관 스스로 법적용에 대한 혼란을 겪을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불이익으로 귀결되며 수사과정에서 악용될 소지도 있다. 결국 심판대상조항은 형사특별법으로서 갖추어야 할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은 것이 명백하므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위배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평등원칙에 위반된다. 3. 평석 (1) 대상결정의 의의 대상결정은 단순히 특가법 마약조항에 대한 위헌 선언으로서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형사특별법이 정당한 입법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처음으로 천명한 데 그 진정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 조건이란 "개념적으로 일반법의 모든 구성요건을 포함하면서 그 밖의 특별한 표지까지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헌재가 적절히 지적하듯이 "만일 구성요건 표지의 추가 없이 법정형만을 가중하려고 한다면 일반법의 법정형을 올리면 되지 따로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기준은 기존 헌재 논리와는 전면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즉 헌재는 2010. 4. 29. 2008헌바170 결정에서 "이 사건 산림자원법 조항에서 가중처벌하는 '차량사용 산림산물 절도죄'의 법정형을 더 중하게 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원칙적으로 이 사건 산림자원법 조항의 법정형을 개정하여야 할 것이고, 이 사건 법률조항과 같이 이 사건 산림자원법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이와 다른 특별한 가중 사유 없이 별도로 재차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아니한 입법방식이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도, 위와 같은 입법방식 자체가 곧바로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당시 헌재의 다수의견(5인)은 ①오히려 가중처벌 할 특정범죄를 특가법 등 단일 법률에 일괄하여 규정함으로써 가중처벌 하는 범죄와 형벌에 대한 예측가능성 및 이에 따른 범죄의 일반예방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②검사가 산림자원법 조항과 특가법 법률조항 중 어느 특별 구성요건을 적용하여 기소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범죄에 대한 법정형이 달라지는 문제는 검사의 기소재량에 의한 결과일 뿐이라고 지적하였다. 반면 반대의견(4인)은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낮은 산림자원법 조항을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법정형이 매우 무거운 특가법 법률조항을 적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법집행기관의 재량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으므로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법적용을 허용하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추가사유 없이 동일한 행위를 가중처벌하는 특가법 조항은 책임원칙에 반한 과중한 형벌을 부과하여 위헌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대상결정에서 헌재는 위 반대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①단순히 법정형만의 가중하는 입법 형식은 정당한 형사특별법으로 평가받을 수 없으며, ②특가법 조항과 그와 구성요건이 똑같은 마약법 조항 중 법적용을 오로지 검사의 기소재량에만 맡김으로써 법집행기관 스스로도 법적용에 대한 혼란을 겪을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사정은 법집행기관이 피의자나 피고인으로부터 자백을 유도하거나 상소를 포기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지적하였다. 4인의 반대의견이 4년 만에 헌재의 공식 입장이 된 것이다. (2) 대상결정의 파장 - 잇따르는 위헌제청 결정 대상결정이 위 2008헌바170 결정의 반대의견을 전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2008헌바170결정이 심판대상으로 삼은 특가법 제9조 제2항도 위헌이라고 판단될 것이 명백하다고 볼 때, 현행 특가법 중 특별 가중사유 없이 법정형만 가중하는 조항으로 남아 있는 것은 제5조의4(상습 강·절도죄 등의 가중처벌) 제1항, 제3항 및 제4항, 제10조(통화위조의 가중처벌)뿐이다. 대상결정 이후 법조계에서는 특별한 가중사유 없이 법정형만 가중한 특가법 법률조항에 관하여 위헌 논란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논란을 반영하듯 일선법원에서 특가법상 단순 가중처벌조항에 관하여 잇따라 위헌제청을 하여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필자는 최근 대상결정을 주요 논거로 삼아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 중 제329조 부분 및 제329조의 미수죄 부분에 관하여 수원지방법원에 위헌제청신청을 하였는데, 위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014년 8월 22일자 및 2014년 9월 24일자로 각 위헌제청 결정을 하였다(2014초기2057 및 2014초기2197). 부산고등법원은 특가법 제10조(통화 위조의 가중처벌)가 형법의 통화위조죄와 똑같은 구성요건을 규정하면서도 법정형만 올려놓은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해당 사건 피고인의 의견을 받아들여 위 조항에 관하여 위헌제청을 결정(2014초기17)하였다고 한다(법률신문 2014. 8. 21.자 보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특가법 제5조의4 제4항(상습 장물취득의 가중처벌)이 형법 제363조의 죄와 똑같은 구성요건을 규정하면서도 법정형만 올려놓은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직권으로 위헌제청을 하였다(중앙일보 2014. 10. 23.자 보도). (3) 주목되는 헌재의 판단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에 관하여는 과거 합헌 결정(헌법재판소 1995. 3. 23. 93헌바59 결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헌재가 대상 결정에서 기존의 91헌바11 결정을 변경한 바 있어 이번에는 과거와 다른 판단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특가법 제10조 및 특가법 제5조의4 제4항에 관하여는 과거 결정례가 없지만, 마찬가지로 대상 결정에서 밝힌 정당한 형사특별법이 갖추어야 할 요건에 비추어보면 특가법 제10조에 대하여도 위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4. 나오며 실무에서는 그동안, 일반법의 구성요건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법정형만 올려놓는 가중처벌 법률조항이 검사의 자의적인 기소재량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이 꾸준히 있어 왔다. 대상결정은 그러한 비판의 입장에서 형사특별법이 갖추어야 한 정당한 요건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본다. 최근 일선 법원이 문제성 단순 가중처벌 법률에 관하여 잇따라 위헌제청 결정을 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미 대상결정의 파장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위헌제청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그래서 더욱 주목된다.
2014-12-04
신용장개설의무와 CISG상 본질적인 계약위반의 의미
I. 대법원 2013.11.28. 선고 2011다103977 판결의 요지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ontracts for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에 의하면, 매수인은 계약과 협약에 따라 물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제53조),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에는 그 지급을 위하여 계약 또는 법령에서 정한 조치를 취하고 절차를 따르는 것이 포함된다(제54조). 그리고 당사자 일방의 계약위반이 그 계약에서 상대방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상대방에게 주는 경우 이는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되며(제25조), 매도인은 계약 또는 협약상 매수인의 의무 불이행이 본질적인 계약위반으로 되는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제64조 제1항 제(가)호]. 따라서 협약이 준거법으로 적용되는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당사자가 대금의 지급을 신용장에 의하기로 한 경우 매수인은 계약에서 합의된 조건에 따라 신용장을 개설할 의무가 있고, 매수인이 단순히 신용장의 개설을 지체한 것이 아니라 계약에서 합의된 조건에 따른 신용장의 개설을 거절한 경우 이는 계약에서 매도인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서 협약 제25조가 규정한 본질적인 계약위반에 해당하므로, 매도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II. 판결의 의미와 쟁점사항 1. 판결의 의미 체약국의 숫자로부터 알 수 있듯이(2014년 4월 1일 현재 80개국) 국제상사에 관한 국제통일법으로서 가장 성공적인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이하 '국제물품매매협약'이라고 한다)이 우리나라에서 2005년 3월 1일 발효되었다. 이 협약의 적용대상이 되는 국제물품거래에 대하여는 특정 국가의 법이 아니라 위 협약이 우선 적용된다. 대상판결은 위 협약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 쟁점사항 국제물품매매협약에서는 계약위반에 따른 구제방법을 매도인이 계약위반한 경우의 구제방법(제45조 내지 제52조)과 매수인이 계약위반한 경우의 구제방법(제61조 내지 제65조)으로 나누고, 매도인과 매수인에게 모두 공통되는 구제방법(제5장)을 규정하고 있다. 구제방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손해배상청구, 이행청구, 대체물지급청구, 계약해제가 있다. 이 중 대상판결에서는 계약해제가 쟁점이었는데, 매수인이 합의된 조건에 따라서 신용장을 개설하지 아니한 것이 '본질적인 계약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아래에서는 대상판결의 이유 및 결론이 정당한지 검토해 보도록 한다. III. 본질적인 계약위반(fundamental breach)의 의미 1. 규정내용 국제물품매매협약 제64조에서는 매수인에게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있는 경우에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제25조에서는 본질적인 계약위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당사자 일방의 계약위반은, 그 계약에서 상대방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상대방에게 주는 경우에 본질적인 것으로 한다. 다만, 위반 당사자가 그러한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였고, 동일한 부류의 합리적인 사람도 동일한 상황에서 그러한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우리 민법에서는 계약해제사유로 이행지체와 이행불능을 규정하고, 판례(대법원 1994.4.12. 선고 93다45480,45497 판결 등)는 불완전이행을 계약해제사유로 인정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본질적인 계약위반이라는 요건은 생소하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해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 규정내용의 기초적 해석 (1)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계약해제의 엄격성 국제물품매매협약 제74조에서는 사소한 계약위반이더라도 손해배상청구를 허용하고 있지만, 제49조 및 제64조에서는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있는 경우에 비로소 계약해제를 허용한다. 국제물품매매거래에서 매수인과 매도인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결과, 일반적으로 매수인은 샘플만 보고서 구매를 결정하고 실제로 인도받을 물품에 대한 검사는 물품이 목적지에 도착하고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만일 물품에 사소한 하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물품의 반송을 위하여 불필요한 운송을 다시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게다가 매수인이나 매도인은 매매계약 후 가격이 변동하면 사소한 하자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자 하는 유혹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제물품매매협약에서는 손해배상을 통하여 손쉽게 구제될 수 있는 사소한 하자에 대하여는 계약해제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본질적인 계약위반'이라는 엄격한 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계약해제를 허용하고 있다. (2) 본질적인 계약위반의 의미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계약해제의 엄격성을 고려하면 원칙적으로 계약의 해제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독일연방법원(clout 171)도 이러한 점을 확인하면서 매수인이 하자있는 물건을 사용할 수 있거나 재판매를 할 수 있다면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제25조의 규정으로부터 좀 더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도출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가) 당사자의 합의: 계약에서 해제사유로 규정하고 있다면 이에 대한 위반은 본질적인 계약위반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당사자의 합의는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고, 계약의 전반적 내용과 문구 및 당사자 사이의 의사표시 등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계약위반의 결과: 계약위반의 결과 상대방에게 발생하는 금전적 손해가 중대하거나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면 본질적인 계약위반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수적 의무의 위반이라도 당사자에게 중대하다면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될 수 있다. (다) 이행불능: 이행불능이 객관적으로 확실하다면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될 것이다. (라) 이행의사의 부재: 채무자가 이행을 명시적으로 거절하고 있거나 이행지체에 따라 이행통지를 하였지만 이행을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채무자에게 이행의사가 없다고 할 것이므로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된다. (마) 하자치유의 제공가능성: 협약 제48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하자의 치유가 가능하고, 이러한 하자치유가 합리적 기간 내에 가능하며, 상대방에게 불합리한 불편을 끼치지 아니한다면 본질적인 계약위반이라고 보기 힘들다. IV. 신용장의 개설과 본질적인 계약위반 1. 매수인의 신용장 개설의 지연 환율이 극심하게 변동하는 경우와 같이 대금지급 시기가 예외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아니라면, 매수인이 대금지급을 지연하더라도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신용장 개설의 지연은 다른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신용장은 대금지급의 수단이기 때문에 매도인으로서는 신용장을 개설받기 전에 물건을 제작하거나 선적준비를 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매도인과 매수인이 신용장 개설시기에 관하여 합의한 것은 매도인에게 선적준비기간을 수여하기 위한 것이므로 신용장 개설이 지연된다는 것은 매도인에게 수여된 선적준비기간을 단축시키는 결과도 가져온다. 이러한 점에서 대금지급수단으로서의 신용장개설이 지연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본질적인 계약위반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대상판결에서 매수인이 신용장 개설을 지체하는 것은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로 판시한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2. 합의된 조건에 따르지 아니한 신용장 개설 매도인과 매수인이 각 다른 국가에 존재하여 동시이행을 확보하기 힘든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신용장은 동시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매수인이 거래은행을 통하여 매도인에게 신용장을 개설하면 매도인은 선적 후 개설은행에 신용장에 기재된 선적서류 등을 제시하여 신용장대금을 지급받고, 매수인은 매도인이 제시한 선적서류 등을 통하여 물품을 수령 및 통관할 수 있으므로 국제물품거래에서의 동시이행이 확보된다. 신용장에 대금지급의 조건으로 기재된 서류들은 매수인과 매도인이 합의하여 결정하는데, 기본적으로 매수인이 물품을 수령하고 통관하는데 필요한 서류라는 점에서 매수인의 이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매수인이 합의된 조건을 변경한다면 매도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매수인이 임의로 신용장 조건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대상판결에서 피고는 당사자의 합의에 부합하는 신용장을 개설하지 아니하고 40피트 컨테이너 포장, 환적(transshipment) 불허, 피고에 의하여 지정된 자가 발행한 검사증명서, 비유전자변형생물체 증명서 등으로 조건을 변경하였다. 컨테이너가 커지면 운송료가 증가하고 포장방법에 변화가 발생하므로 매도인에게 불리하고, 직항선이 없거나 컨테이너와 같은 복합운송의 경우에 환적이 필요하므로 환적을 불허하는 것은 매도인에게 불리하다. 무엇보다 피고에 의하여 지정된 자가 발행한 검사증명서를 조건으로 하면 피고의 의사에 따라서 검사증명서가 발급되지 아니할 수 있으므로, 매도인은 신용장대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즉, 피고가 대금지급의무를 불이행할 가능성이 있다. 위와 같은 중대한 계약위반에 대하여 원고가 합리적인 부가기간을 정하여 그 수정을 요구하였음에도 피고가 이를 거절한 이상 피고에게 의무이행의 의사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피고에게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인정되고 대상판결의 결론에 찬성한다. V. 끝내기 원고의 계약해제를 인정한 대상판결의 결론에는 찬성하지만, '본질적인 계약위반'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아니한 점, 신용장 개설지연이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아니란 취지의 판시를 한 점 및 신용장 조건인 서류가 당사자에게 어느 정도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설시하지 아니하고 본질적인 계약위반을 인정한 점에 대하여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4-06-16
부부간 부양의무는 부모의 성년자 부양의무에 우선 하는가
<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 1968년생인 S(소외인)는 2006 경, 교통사고로 수술 받은 후, 2009. 현재,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동안 Y(피고, S의 처)는 S의 부양(치료)을 중단하게 됨에 따라, X(원고, S의 모, 상고인)는 S를 치료하여 오는 동안 치료비 1억6000여만원을 지출하여 왔다. 이에 X는 수령 보험금을 제외한 나머지 약 8000만원의 지급청구의 소송을 Y를 상대로 제기하였다. 1심과 2심법원은 X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X가 상고하기에 이르렀다. 2. 대판의 요지 : 파기환송; 민법 제826조 제1항에 규정된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로서, 부양을 받을 자의 생활을 부양의무자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보장하여 부부공동생활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1차적 부양의무이고, 반면 부모가 성년자녀에 대하여 직계혈족으로서 민법 제974조 제1호, 제975조에 따라 부담하는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자가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생활을 하면서 생활의 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부양을 받을 자가 그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그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2차적 부양의무이다. 이러한 제1차적 부양의무와 제2차적 부양의무는 의무이행의 정도뿐만 아니라 의무이행의 순위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제2차적 부양의무자는 제1차적 부양의무자보다 후순위로 부양의무를 부담한다. <판례연구> I. 머리 말 1. 이 판결에서의 논의점은 첫째,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성년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에 우선하는가. 둘째,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과거의 부양료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2. 본 논고는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제1차적 부양의무로서, 부모의 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보다 '부양의 순위면'에서 선순위이고, '부양의 정도면'에서 전자는 '혼인의 본질적인 의무'이고, 후자는 '보충적 부양수준'이란 점 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II. 부양의무의 구분과 제1차적 부양·제2차적 부양 1. 부양의무의 구분 ; 부양의무는 ①부부간의 부양(민법 제826조 제1항, 제833조), ②부모의 미성숙자양육(민법 제833조, 제837조), ③호주의 가족부양(1990. 1. 13 삭제, 구민 제797조 참조)과, ④부모의 성년자녀부양(민법제974조 제1호), ⑤직계혈족과 그 배우자간의 부양(민법 제974조 제1호), ⑥생계를 같이하는 친족간의 부양(민법제974조 제3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적부양의 전통적 2원형론(생활유지적 부양과 생활부조적 부양)의 입장에서는 전술한 ① 내지 ③의 부양은 생활유지적 부양·제1차적 부양으로, ④ 내지 ⑥의 부양은 생활부조적 부양·제2차적 부양으로 유형화 하고 있으며, 대상판결의 입장은 사적부양의 전통적 2원형론에 입각한 판시라고 이해된다. 2. 부부간의 부양의무를 제1차적 부양의무로 이해하는 근거 1) 부양관계의 비교: "부부부양과 미성숙자 양육"(전자)과 "성년의 자 부양, 친족부양"(후자)을 비교하면, (1) 부양근거 면에서는 전자는 '당사자의 의사·포태 출산행위'이고, 후자는 '혈연·친족적 신분'이라고 할 수 있다. (2) 부양의무의 발생시기 면에서는 전자는 '혼인성립시·출산시 당연발생'(대판,1994. 5. 13, 91스21)이고, 후자는 '권리자의 부양청구시'이다. (3) 부양의 정도·성격 면에서는 전자는 '같은 정도의 생활보장'-생활유지적 부양(제1차적 부양의무)이고, 후자는 부양의 자력요건 구비시, '생활의 지원'-생활부조적 부양(제2차적 부양의무)이라고 할 수 있다. (4) 민법상의 부양규정에서는 전자는 민법 제826조 제1항, 제833조, 제837조에서, 후자는 민법 제974조, 제975조,제976조, 제977조에서 각 규정하고 있다. 특히 판례는 성년의 자에 대한 부양은 자의 양육(민법 제837조)에 해당하지 않고, 민법 제974조 제1호, 제975조 내지 제977조 규정에 각 해당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판, 1994. 6. 2, 93스11). (5) 가사소송법규정에서는 전자는 마류사건 제1호와 제3호의 가사비송사건으로, 후자는 마류사건 제8호의 가사비송사건으로 따로 규정하고 있다. 2) 부부간의 부양과 미성숙자양육은 제1차적 부양이며, 부모의 성년자부양은 제2차적 부양으로 이해하는 것은, 상술한 ① 부양의 근거, ② 부양의무의 발생시기, ③ 부양의 정도·성격 면에서 서로 구별되고, ④ 민법상의 부양규정의 태도, ⑤ 가사소송법상 가사비송사건의 규정태도에서, 위 양자를 따로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기초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거나, 부부간의 상호부양의무는 혼인의 본질적인 의무로서 "부양법체계상 특별규정"이다. 이에 반하여 성년자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부양법체계상 일반규정"의 적용대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에, 부양의 본질 면에서나 특별법우선의 법리 면에서 전자는 선순위의 제1차적 부양이고, 후자는 후순위의 제2차적 부양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III. 대상판결에서의 논의점 검토 1. 배우자의 부양의무가 부모의 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에 우선여부; 원심은 배우자의 부양의무가 친족간의 부양의무보다 항상 우선한다고 볼 민법상의 근거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반하여 대상판결은 "부부간의 부양의무(제1차적 부양의무)와 부모의 성년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제2차적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이행의 '정도' 뿐만 아니라, 의무이행의 '순서'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제2차부양의무자(X)는 제1차부양의무자(Y)보다 후순위로 부양의무를 부담한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이와 같은 판시는 '부부간의 상호부양의무'는 위의 II의 2의 논거에서 설명한 것 같이,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로서, 요부양자의 생활을 지원하는 '보충적 부양의무'인 '부모의 성년자부양의무'에 우선한다는 전제에 입각한 판시이다. 이러한 판시는 전술한 II의 2에서 논술한 ① 내지 ⑤의 논거에 비추어 보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부부간의 동거·부양·협조의무"는 "광범위한 협조의무"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이는 독립된 별개의 의무가 아닌 점에서(대판,1991. 12. 10, 91므245)도,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친족간의 부양의무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판시부분은 타당하다고 이해된다. 2. 과거의 부양료 청구의 허용 여부; 1) 원심은 X의 구상금청구를 배척하였다. 판례는 과거의 부양료지급의무를 부정하여 왔다(대판 1991.10. 8, 90므781; 동,1991.11.26, 91므375; 동, 2008.6.12, 2005스50). 학설은 대체로 부부간의 과거의 부양료청구를 긍정하고 있다(김주수, 친상법, pp.139~142; 한봉희, 가족법, pp.126~127). 2) 대상판결은 부부간의 과거의 부양료청구는 가사비송사건이 아니고 민사소송사건에 해당하며, 그 액수는 원칙적으로 이행지체에 빠진 것이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행청구 이전의 과거의 부양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3) S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Y는 S를 실제 부양하기도 하였고 S가 계속 요부양상태에 있음을 알고 있으며, X가 S의 부양을 계속한 사실도 알았던 점 등에 비추어, Y는 S의 과거의 부양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이 판시부분은 X의 구상권행사를 인정한 것으로서, 과거의 부양료를 제한적으로 인정한 취지로 일단 이해는 된다 하겠다. 그렇지만 '부부간의 과거의 부양료청구'는 폭넓게 전면적으로 인정하여야 하지 않을까. IV. 맺는 말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혼인의 본질적 효과를 선언한 것으로서, 부양법체계상 '특별한 부양'으로 규정하고 있으며(민법, 제826조 제1항, 제833조), 따라서 '일반적 부양'에 해당하는 '부모의 성년자부양의무'에 우선적으로 이행되어야 함으로 이 판시는 타당하다.
2013-03-18
공무원의 個人的 賠償責任認定의 문제점에 관한 小考
Ⅰ. 判決要旨 [1] 공무원이 직무 수행 중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하는 외에 공무원 개인도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고, 공무원에게 경과실이 있을 뿐인 경우에는 공무원 개인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하는데, 여기서 공무원의 중과실이란 공무원에게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위법·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만연히 이를 간과함과 같은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를 의미한다. [2]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그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였을 경우라고 하더라도 국가는 그러한 직무상의 의무 위반과 피해자가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 경우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위하여는 공무원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의 내용이 단순히 공공 일반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정된 것이어야 한다. Ⅱ. 問題의 提起-공론화를 위한 문제제기 공무원 갑이 내부전산망을 통해 을에 대한 범죄경력자료를 조회하여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죄로 실형을 선고받는 등 실효된 4건의 금고형 이상의 전과가 있음을 확인하고도 을의 공직선거 후보자용 범죄경력조회 회보서에 이를 기재하지 않은 사안에서, 원심(서울고법 2011.4.1. 선고 2010나78588판결)과 대법원은 갑의 중과실을 인정하여 국가배상책임 외에 공무원 개인의 배상책임까지 인정하였다. 불법행위를 한 가해공무원의 개인책임을 고의 또는 중과실의 경우에 인정한 대법원 1996.2.15. 선고 95다38677전원합의체판결이 출현한 이후에 가해공무원의 개인책임은 異論의 여지가 없게 되어 버린 양 느껴진다. 그런데 95다38677전원합의체판결의 기조 그 자체의 문제점은 차치하고서, 그로 인해 행정법에 난맥이 빚어지곤 한다. 가령 公務受託私人을 전적으로 行政主體로만 인식하여, -위법행위를 행한- 한국토지공사에 대해 직접적인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2010.1.28. 선고 2007다82950, 82967판결은, 국가배상법이 배상책임주체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만을 규정한 것에 정면으로 배치되는데(동판결의 문제점에 관해선 졸고, 公務受託私人의 行政主體的 地位의 問題點에 관한 小考, 법률신문 제3989호, 2011.12.5.), 법원의 이런 태도는 실은 95다38677전원합의체판결에서 기인한다 하겠다. 95다38677전원합의체판결이 내려졌을 땐 관련 논의가 매우 치열하였지만, 그 이후엔 그다지 문제제기가 없었다. 향후 국가배상법제의 개혁에서 판례의 태도가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기에, 새롭게 곱씹어 보아야 한다(상론은 졸저, 행정법기본연구, 2009, 159면 이하.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이 글을 통해 다시금 공론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더불어 직무의무의 사익보호성과 관련한 접근에서의 문제점도 살펴보고자 한다. Ⅲ. 職務行爲의 私益保護性과 관련한 接近의 문제점 일찍이 손해발생과 관련하여 직무행위(직무상의 의무)의 사익보호성(제3자성)여부를 효시적으로 논증한 대법원 1993.2.12. 선고 91다43466판결('극동호사건')처럼 사익보호성여부는 국가배상책임성립요건에서 손해의 발생 그 자체와 직결된 문제이다(동 판결은 규제권능의 불행사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에서 관련 규정의 사익보호성을 모색한 점에 획기적인 의의를 갖지만, 직무상의 의무와 해당 직무행위의 재량성을 구별하지 않고 사안을 전적으로 상당인과관계의 차원에서 전개한 논증의 취약점도 있다. 그리하여 김남진 선생님은 재량축소의 관점을 환기시켰다. 김남진, 행정법의 기본문제, 1994, 1045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1994.6.10. 선고 93다30877판결이래로 이를 전적으로 상당인과관계의 차원에서 접근하는데, 대상판결 역시 그러하다(한편 배상책임제한적 기능을 갖는 사익보호성 요구에 대해서, 일부에선 -독일과는 달리- 근거가 없음을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지만, 반사적 이익에 대한 보호배제를 목적으로 하는 이 요구는 모든 국가책임의 본질적 요소라 하겠다(Ossenbuhl, Staatshaftungsrecht, 5.Aufl. 1998, S.57). 독일의 경우에도 개인보호인정의 기준에서 국가책임법과 행정소송법은 동일한 기조에 있으며, 유럽연합법 역시 -공익만이 아니라- 원고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는 규범을 위반한 경우에 한하여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상론은 졸고, 미니컵 젤리로 인한 질식사와 국가배상책임의 문제, 인권과 정의 제419호, 2011.8., 100이하 참조). 직무행위의 사익보호성여부는 어떤 경우에 문제가 되는가? 독일의 경우 행정소송에서 원고적격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수범자(상대방)이론이 있다(대법원 1995.8.22. 선고 94누8129판결을 계기로 우리의 경우에도 불이익처분의 당사자와 관련해선 受範者(相對方)理論이 통용된다고 봄직하다). 이는 부담적 처분의 직접 상대방은 별다른 논증없이 원고적격이 인정되나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나 부작위의 경우 그리고 제3효행정행위에서 그 제3자의 경우엔 원고적격여부가 탐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책임법에도 그대로 접목될 수 있다. 즉, 직무행위(직무상의 의무)의 사익보호성여부는 직무행위가 제3자와 관련성을 가질 경우와 직무행위가 부작위이나 거부처분으로 나타난 경우에 문제된다. 사안과 같이 직무행위가 그것의 직접 상대방과의 관련성만을 지닐 땐 굳이 직무의무(및 그 근거규정)의 사익보호성을 탐문할 필요가 없다. Ⅳ. 공무원의 個人的 賠償責任認定의 문제점 1. 국가배상책임의 본질과 관련한 문제점 95다38677전원합의체판결은 기본적으로 현행법상의 공무원개인의 책임은 면해지지 않는 것(헌법 제29조 제1항 단서)과 국가배상법 제2조 제2항상의 구상조항에 기저에 두었는데, 배상책임의 본질의 문제가 논의핵심이다. 즉, 배상책임의 성질은 공무원 자신의 책임이나 구상에 관한 법상황에 의거하여 가늠할 수 없는 제도의 본질에 해당하기에, 이 문제는 전체의 체계와 그 역사적 연원에 의거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國家無責任에 따른 공무원개인책임형은 사상적으론 "왕은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봉건사상에, 이론적으론 적법한 것만을 위임하였다는 소위 委任理論에 바탕을 두었다(이 위임이론은 18세기에 풍미하였는데, 그 당시에도 "정말 터무니없다"고 표현되곤 하였다). 국가배상시스템은 이런 체제가 극복되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그리고 국가자기책임설은 기본적으로 가해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을 문제 삼지 않는다. 비록 국가의 자기책임까진 가진 않더라도 국가의 책임인수를 바탕으로 한 대위책임에 이르렀다면, 가해 공무원의 개인적 책임 문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즉, 대위책임의 인정은 책임인수를 통한 배상책임자의 바꾼 것이어서 그 자체가 가해 공무원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추궁의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 나아가 배상책임을 자기책임으로 보는 것은, 피해자를 상대로 한 배상책임자로 처음부터 국가만을 상정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 주관적 책임요소를 탈색시킨 국가자기책임설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선택적 청구권을 인정한 동 판례의 다수견해의 기조를 수긍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배상책임의 성질은 일원적으로 보아야 한다. 배상책임의 성질은 求償에 관한 입법상황에 좌우될 수 없는 본질의 문제이다. 요컨대 동 판례의 다수견해는 국가배상법제를 以前 시대로, 과장하면 위임이론이 주효하였던 國家無責任의 시대로 되돌렸다 하겠다. 더군다나 해당 사건이 군인·군무원에 관한 특례를 규정한 과거 유신헌법의 잔영이 顯現된 사건인 점에서 또 다른 문제인식을 불러일으킨다. 2. 헌법차원의 문제점 현행 국가배상법이 명문으로 공무원의 고의와 과실을 규정하고 있는 점에서, 현행 국가배상법상의 배상책임시스템은 분명 대위책임적 구조이다(하지만 지금도 일부 주에서 통용되는 구 동독의 국가책임법은 물론 유럽연합법은 고의와 과실과 같은 주관적 요소를 폐기하였다). 그런데 헌법학의 문헌에선 헌법상의 국가배상책임시스템이 자기책임이라는 입장이 多數이다. 국가배상에서 헌법이 자기책임적 기조를 지향할 경우, 하위법인 국가배상법의 대위책임적 구조는 조화되지 않는다. 이런 괴리는 자칫 국가배상법에 대해 위헌시비를 야기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민법이 -현재에도- 분명 국가무책임에 따른 공무원개인책임을 표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위의 다른 법률(일종의 특별법으로서)이 대위책임적 구조를 성립시켰고, 그런 수정이 헌법차원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1948.7.17.에 시행된 -지금의 제29조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제헌헌법 제27조가 마련된 다음, 국가배상법이 1951.9.8. 제정, 1951.9.8.에 시행되었다(일본도 우리와 동일하게 진행되었는데, 다만 국가무책임설의 모태인 王政을 기반으로 한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국가배상법이 마련되기 전에는 민법의 불법행위론이 주효하였다. 국가배상법제의 형성에서 독일과 다른 역사적 경험은 중요한 착안점을 제공하다. 독일의 경우 그 자체로 대위책임을 표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역사적, 체계적 해석상 대위책임으로 접근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연혁적 관점에서 보자면, 대위책임으로 전개할 필연적 이유가 없다. 국가배상법이 대위책임형을 표방한 것이었다. 헌법상의 배상책임의 성질을 독일과는 달리 국가배상법상의 그것과 분리시켜 검토할 수 있다. 요컨대 헌법이 無責的 국가배상책임을 분명히 표방하기에, 국가배상법 제2조에 의거하여 가해 공무원의 개인적 책임을 전제로 하여 국가책임의 성립을 부정한다든지, 국가가 아닌 공무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든지 하는 것은 그 자체로 違憲을 면치 못한다(참고로 구 동독의 국가책임법은 공무원에 대한 직접적인 손해배상청구권을 명시적으로 배제하였다. 동법 제1조 제2항). Ⅴ. 맺으면서-還曆의 전환점에 선 國家賠償法에 대한 拔本的 改革 여기서의 문제제기가 螳螂拒轍로 치부될지 모르지만, 나름의 의미를 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건축법 제14조상의 건축신고를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봄으로써 도리어 신고제 자체에 逆風을 가져다 줄 대법원 2011.1.20. 선고 2010두14954전원합의체판결에서 그 반대의견이 미래 변화에 대한 희망의 싹이듯이, 95다38677전원합의체판결에는 소중한 반대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 동독의 국가책임법, 유럽연합법 그리고 대위책임구조하에서 나름의 진화를 강구하는 독일 판례의 경향과 비교하면, 우리 국가배상법은 民事不法行爲論的 틀 그것도 우리와 다른 일본 민법의 불법행위론에서 비롯된 정말 불필요한 논의에 너무나 오랫동안 강력하게 포획되어 있다. 비단 법원만이 아니라 행정법학 역시 어제의 행정법학이 오늘은 물론 내일도 그대로이어선 아니 된다. 법학적 체계사고에서의 언명은 미래의 향상된 인식과 바탕규준의 불변성의 유보하에 있기에(Schmidt-Aßmann, Das allgemeine Verwaltungsrecht als Ordnungsidee,2.Aufl., 2004, S.1), 행정법도그마틱의 收藏庫에 들어있는 것들에 대해 변화된 인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인생에서 60년 還曆은 과거를 돌이켜 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타이밍이다. 1951.9.8.에 제정·시행된 국가배상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환력의 전환점에 선 국가배상법에 대해 그것의 拔本的 改革만이 요구된다(필자는 한국행정법학회가 2011.12.9.에 개최한 제1회 행정법분야 연합학술대회에서 기존의 국가배상법제를 전면적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였다. 국가배상법개혁을 통한 법치국가원리의 구체화, 발표문 143면 이하).
2012-01-26
집합건물 경매와 대지권 성립 전 토지에 관한 근저당권 소멸여부
1. 문제의 제기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 제20조(전유부분과 대지사용권의 일체성)는 "① 구분소유자의 대지사용권은 그가 가지는 전유부분의 처분에 따른다. ② 구분소유자는 그가 가지는 전유부분과 분리하여 대지사용권을 처분할 수 없다. 다만, 규약으로써 달리 정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의 취지는 집합건물의 전유부분과 대지사용권이 분리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여 대지사용권 없는 구분소유권의 발생을 방지함으로써 집합건물에 관한 법률관계의 안정과 합리적 규율을 도모하려는 데 있다(대법원 2006. 3.10. 선고 2004다742 판결). 다만, 위와 같은 일체불가분성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구분건물의 대지사용권을 전유부분과 분리처분이 가능케 한 규약이나 공정증서가 있는 때에는 종속적 일체불가분성이 배제되어 전유부분에 대한 경매개시결정과 압류의 효력이 대지사용권에는 미치지 아니한다(대법원 1997. 6.10. 자 97마814 결정). 이러한 경우, 대지사용권을 가지지 못하는 구분소유자가 발생하게 되고, 그 전유부분의 철거를 구할 권리를 가진 자는 그 구분소유자에 대하여 구분소유권을 시가로 매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집합건물법 제7조). 요컨대, 집합건물법상 전유부분과 대지사용권의 분리처분은 강행법적으로 금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집합건물법상 대지권 등기가 경료되기 전에 대지만에 관하여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 전유부분과 대지사용권이 일체로서 경락되었다면, 대지권 성립 전부터 토지만에 관하여 설정되어 있던 근저당권은 특별매각조건으로 정함이 없는 한 소멸한다고 판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나대지상의 근저당권을 합리적 근거 없이 소멸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2. 사실관계 주식회사 대한상호신용금고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지번생략 대 287.5㎡(이하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서울지방법원 강남등기소 1991. 6.19. 접수 제61762호로 채권최고액이 750,000,000원인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쳤다. 그 후 이 사건 토지 지상에는 철근콘크리트조 스라브 위 아스팔트 슁글 4층 다세대주택 1 내지 4층(지하 101호, 102호, 1층 101호, 2층 201호, 202호, 3층 301호, 302호, 4층 401호, 402호 9세대) 각 129.84㎡, 지하층 139.84㎡인 건물 1동(이하 '이 사건 다세대주택')이 건축되어, 서울지방법원 강남등기소 1992. 1.13. 접수 제2555호로 소외 1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가 마쳐졌고, 같은 날 이 사건 토지에 관해서는 이 사건 다세대주택의 대지권의 목적인 취지의 등기가 마쳐졌다. 이 사건 다세대주택 중 ① 지하 102호는 피고 1이 1994. 7.19. 서울민사지방법원 93타경3420 강제경매절차에서 낙찰을 받아 1994. 10.27.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고, ② 4층 401호는 피고 2가 1993. 5.24. 서울민사지방법원 92타경22443 임의경매절차에서 낙찰을 받아 1993. 6. 28.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으며, ③ 4층 402호는 피고 3이 1993. 9.14. 서울민사지방법원 92타경40564 임의경매절차에서 낙찰을 받아 1998. 6.20.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 사건 다세대주택 중 지하 102호, 4층 402호의 낙찰허가결정문에는 입찰가격에 대지권의 가격이 포함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4층 401호의 낙찰허가결정문에는 그러한 기재가 없는 대신 "이 사건 등기부 표시란(대지권의 목적인 토지의 표시)에 기재된 토지에 대한 별도 등기(근저당권 1991. 6.19. 제61762호 7억5,000만원)는 존속시켜 이를 경락인이 인수하도록 한다"는 특별매각조건이 부가되어 있다. 대한상호신용금고는 1998. 10.15. 서울지방법원에 위 근저당권에 기하여 이 사건 토지에 관한 임의경매를 신청하였고, 서울지방법원은 1998. 11.9. 임의경매개시결정을 하였다(98타경84146). 2002. 6.20. 위 서울지방법원 98타경84146 임의경매절차에서 원고는 피고 1의 대지권 지분(287.5분의 27.37)과 피고 2의 대지권 지분(287.5분의 30.13)을, 선정자 2는 피고 3의 대지권 지분(287.5분의 27.37)을 각 낙찰받아 2002. 7.29. 각 지분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한편, 위 임의경매절차에서 지하 101호 소외 2의 대지권 지분(287.5분의 30.13), 2층 201호 소외 3의 대지권 지분(287.5분의 30.13), 3층 302호 소외 4의 대지권 지분(287.5분의 27.37)은 소외 5가 각 낙찰받아 2002. 7.22. 지분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고, 이 사건 토지에 대한 대지권 등기는 2002. 7.22. 이 사건 다세대주택 중 1층 101호(287.5분의 57.5), 2층 202호(287.5분의 27.37), 3층 301호(287.5분의 30.13)만에 관한 대지권이라는 취지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사실관계 하에서 원고는 피고 1, 2에 대하여, 선정자 2는 피고 3에 대하여 각 토지사용료를 청구한 것이다. 3. 대상판결의 요지 구 민사소송법(2002. 1.26. 법률 제6626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608조 제2항 및 현행 민사집행법 제91조 제2항에 의하면 매각부동산 위의 모든 저당권은 경락으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집합건물의 전유부분과 함께 그 대지사용권인 토지공유지분이 일체로서 경락되고 그 대금이 완납되면, 설사 대지권 성립 전부터 토지만에 관하여 별도등기로 설정되어 있던 근저당권이라 할지라도 경매과정에서 이를 존속시켜 경락인이 인수하게 한다는 취지의 특별매각조건이 정하여져 있지 않았던 이상 위 토지공유지분에 대한 범위에서는 매각부동산 위의 저당권에 해당하여 소멸한다. 이 사건 다세대주택 중 지하 102호, 402호의 경매절차에서 피고 1, 피고 3이 각 전유부분과 함께 그 대지권도 경락받았고, 이때 이 사건 토지 중 위 각 피고가 취득한 대지권 지분에 관한 대한상호신용금고의 근저당권도 이미 소멸한 것이다(=원고, 선정자 2의 피고 1, 3에 대한 청구기각). 한편, 401호의 경우 피고 2는 대한상호신용금고의 근저당권을 경락인이 인수한다는 특별매각조건하에 위 401호를 그 대지권과 함께 경락받은 것이므로, 피고 2는 그 후 401호의 대지권에 해당하는 토지공유지분을 경락받은 원고에게 토지사용이익의 부당이득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원고의 피고 2에 대한 청구인용). 4. 검토의견 생각건대, 이 문제를 오로지 특별매각조건의 문제로 풀어내는 것은 지나치게 도식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집행법원이 낙찰허가결정서에 특별매각조건으로 일정한 사항을 기재하는 것과 무관하게 경락인이 인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집행법원이 특별매각조건으로 정하는지 여부에 따라 실체적 권리관계가 변동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본건과 같이 토지만에 관하여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집합건물이 건축되고 각 세대별 소유권보존등기 및 대지권 등기가 이루어지는 경우에, 집합건물등기부등본 표제부 '대지권의 표시'란에는 "별도등기 있음"으로 공시되어 있고, 누구든 대지권의 목적이 된 토지에 설정되어 있는 권리관계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401호의 경우에 비추어 보건대, 집합건물등기부상 "별도등기"로써 대지권의 목적이 된 토지상에 설정된 근저당권의 존재를 알 수 있었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경매법원의 낙찰허가결정에 이 사건 근저당권의 인수여부에 관한 기재가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들이 근저당권의 제한 없이 각 세대의 전유부분과 함께 그 대지권까지 낙찰받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대법원 2007. 4.13. 선고 2005다8682 판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 위 판결에서 대법원은 이미 대지권의 목적이 된 토지상에 가압류결정이 집행되어 있는 경우 그 이후 집합건물이 신축되고 각 세대별 소유권보존등기 및 대지권등기가 경료되고, 이후 이중 일부 세대에 관한 경매절차에서 낙찰받은 자는 위 가압류의 부담을 인수한다고 판시하고 있고, 이러한 법리는 이 사건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 2005다8682 판결에 대한 해설(이규진, 부동산 신소유자의 채권자가 경매신청을 한 경우 선순위가압류등기가 말소촉탁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 대법원 판례해설 제67호, 740면)이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낙찰허가결정에서 선행가압류등기의 존부 및 인수여부에 관한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경락인이 가압류의 부담이 없는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고, 또한 굳이 그 조건을 분류하자면 특별매각조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일 뿐 실무에서 특별매각조건으로서 운용되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이 사건 원심판결의 이유에 의하면 지하 102호 및 402호의 경우 입찰가격에 대지권의 가격이 포함된 점이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르는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보이나, 이는 근저당권의 존속여부와는 무관하다 할 것이다. 구분건물에 대한 경매에 있어서 비록 경매신청서에 대지사용권에 대한 아무런 표시가 없는 경우에도 집행법원으로서는 대지사용권이 있는지 조사해야 하고, 그 결과 전유부분과 불가분적인 일체로서 경매의 대상이 되어야 할 대지사용권의 존재가 밝혀진 때에는 이를 경매 목적물의 일부로서 경매 평가에 포함시켜 최저입찰가격을 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입찰기일의 공고와 입찰물건명세서의 작성에 있어서도 그 존재를 표시해야 할 것인 바(대법원 1997. 6.10.자 97마814 결정), 대지사용권은 전유부분의 처분에 따르는 것이므로 일괄경매를 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전유부분과 대지지분이 일체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전유부분에 대한 경매개시결정과 압류의 효력이 당연히 종된 권리인 대지사용권에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구분건물의 입찰가격에 대지권의 가격을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반면 경락인이 구분건물을 취득하면서 대지권의 가치까지 지불하였다고 하여 이로써 대지권 성립 이전에 대지권의 목적이 된 토지상에 설정된 저당권을 소멸시킬 수는 없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매각부동산 위의 모든 근저당권은 경락으로 소멸한다는 민사집행법 제91조 제2항을 들어 "대지권 성립 전부터 토지만에 관하여 설정된 근저당권이라도 토지공유지분에 대한 범위에서는 매각부동산 위의 부담에 해당하여 소멸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래 나대지상에 설정된 근저당권자는 근저당권의 교환가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경우, 대지상의 건물 축조의 중지까지 구할 수 있는 방해배제권능을 갖는 권리(대법원 2006. 1. 27. 선고 2003다58454 판결)라는 점과도 일치할 수 없는 결론이 아닐 수 없다 할 것이다. 5. 결론 집합건물의 등기부에 대지권을 표시하면서 대지권의 목적이 된 토지상에 설정된 각종 부담을 공시하는 이유는 집합건물을 취득하는 자를 보호함에 있는 것이고, 집합건물의 표제부에 "별도등기 있음"으로 기재하여 이러한 제한물권 또는 가압류 가처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지권 성립 전부터 토지만에 관하여 설정되어 있던 근저당권은 그 이후 이루어진 개개의 집합건물에 대한 경매와는 상관없이 별도등기로써 공시된 물권으로 존속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결과는 구분건물의 경매절차에서 그 인수여부가 특별매각조건으로 정하여져 있었는지 여부와 상관없고, 각 집합건물의 경매절차에서 경락인이 대지권의 가치까지 지불하였는지 여부와도 무관하다 할 것이다. 대상판결에 의하면 대지권 성립 전에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던 근저당권이 그 후에 건축된 집합건물의 대지권 등기 및 집합건물에 대한 한 차례 경매로 인하여 소멸한다는 기이한 결과가 되는 바, 이는 합리적 근거 없이 근저당권이 소멸시키는 것이므로 그 결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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