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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금융·보험
민사일반
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부동산·건축
행정사건
손실보상금 채권에 관한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인한 피수용자의 당사자적격 상실 여부
1. 사실관계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2012년 4월 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하 ‘피고’)가 시행하는 본건 보금자리주택사업에 관하여 주식회사 씨○○○○○(이하 ‘원고’)가 운영하는 공장 영업시설을 이전하게 하고 원고의 영업손실에 대한 보상금을 68억2575만 원으로 정하는 내용의 수용재결을 하였다. 원고는 위 보상금을 이의를 유보하고 수령한 뒤 2012년 5월 22일 보상금의 증액을 구하는 본건 소를 제기하였다. 원고의 채권자들은 본건 소 제기일 이후부터 원심판결 선고일 이전까지 사이에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실보상금 채권에 관하여 압류·추심명령(이하 '본건 추심명령'이라 한다)을 받았다. 2. 소송의 경과 1심과 2심은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피고는 2심 선고시까지 본건 추심명령에 관하여 어떠한 주장도 하지 아니하였으나, 2심 판결에 대하여 상고를 하면서 추가적으로 본건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원고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되었다고 주장하였다. 3. 본 사안의 쟁점 본 사건의 주요 쟁점은 본건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원고가 본건 보상금 증액 청구 소송을 수행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는지 여부이다. 4. 대상판결 요지 대상판결은 (i)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 제85조 제2항은 토지소유자 등이 보상금 증액 청구의 소를 제기할 때 사업시행자를 피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보상금 증액 청구의 소는 당사자소송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재결을 다투는 항고소송의 성질을 가진다는 점, (ⅱ) 행정소송법 제12조 전문은 (항고소송인) “취소소송은 처분 등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금전채권을 가지고 있는 제3자는 재결에 대하여 간접적이거나 사실적·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질 뿐 법률상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점, (ⅲ) 보상금 증액 청구 소송은 토지보상법 제34조, 제50조 등에 규정한 재결절차를 거친 뒤 그 재결에 대하여 불복이 있을 때만 제기할 수 있다는 점, (ⅳ) 손실보상금 채권은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 또는 행정소송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존부 및 범위가 확정된다는 점, (v) 채권자가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채권자가 손실보상금 채권의 확정을 위한 절차에 참여할 자격까지 취득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본건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원고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어서 대상판결은 종전에 손실보상금 채권에 관하여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을 경우 원고인 채무자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는 취지로 판단한‘대법원 2013. 11. 14. 선고 2013두9526 판결’(이하 ‘종전 대법원 판결’)의 견해를 변경하였다. 소제목 5.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가. 추심명령에 의한 채무자의 이행의 소 당사자적격 상실 여부 금전채권에 대하여 (가)압류만 이루어진 경우 채무자는 제3채무자로부터 현실적으로 급부를 받는 것이 금지될 뿐이고 제3채무자를 상대로 이행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23888 판결). 한편 민사집행법 제229조 제2항은 “추심명령이 있을 때에는 압류채권자는 대위절차 없이 압류채권을 추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금전채권에 대하여 추심명령이 이루어진 경우, 압류채권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추심권한을 취득한다는 점에서는 다툼이 없을 것이나 채무자가 이행의 소에 관한 당사자적격을 상실하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채무자의 이행의 소에 관한 당사자적격이 인정되면서 별도로 추심채권자도 추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23888 판결’은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으면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의 소는 추심채권자만이 제기할 수 있고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라고 판시하였다. 하지만 위 대법원 판례는 추심명령이 있으면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만 판시하였을 뿐, 이에 대하여 구체적인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하고 있어 의문이 남는다. 안상철 대법관도 대상판결에서 보충의견으로, “민사소송에 관한 판례의 법리는 그 자체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판시하며 위 대법원 판례가 변경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 나. 종전 대법원 판결 요지 종전 대법원 판결은 위 민사소송에 관한 대법원 판례 법리를 그대로 인용하며, ‘원심판결 선고 당시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원고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되었으나 원심 판결 선고 이후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원고의 당사자적격이 회복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다. 종전 대법원 판결의 판단이유 손실보상금 증감 청구의 소는 실질적으로는 재결의 효력을 다투는 형식적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 그런데 피수용자가 손실보상금 증액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를 하는 경우, 법원은 민사소송상 금전지급을 명하는 이행판결의 주문과 같이 “피고는 원고에게 손실보상금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라고 선고한다. 추측건대 종전 대법원 판결은, 공법관계와 사법관계라는 차이는 있지만 손실보상금 증액청구의 소의 승소판결과 민사소송상 금전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보아, 손실보상금 증액청구 소송에서도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을 시 채무자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는 민사소송 판결의 법리를 적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라. 종전 대법원 판결에 의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1) 피수용자의 손실보상금 증액 청구 불가능 토지수용으로 인한 피수용자의 손실보상금 채권은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의 수용재결로 인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나, 사업인정의 고시가 있으면 수용대상 토지에 대한 손실보상금의 지급이 확실시된다 할 것이므로 사업인정 고시 후 수용재결 이전 단계에 있는 피수용자의 손실보상금 채권은 피압류채권의 적격이 있다(대법원 1998. 3. 13. 선고 97다47514 판결 등).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용재결 이전에 손실보상금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을 경우, 피수용자는 변제 등의 방법으로 압류 및 추심명령을 취소 또는 해제하지 않는 이상 당사자적격을 상실하여 손실보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피수용자가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는 상태에서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하거나 피수용자가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하여 진행 중인 과정에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이루어진다면 당사자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소 각하 판결이 이루어질 것이다. 소 각하 판결 이후 피수용자가 압류 및 추심명령을 취소 또는 해제한 뒤 다시 소를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법원은 토지보상법 제85조 제1항에서 정한 제척기간이 도과하여 재차 소 각하 판결을 할 것이다. 결국 채권자의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피수용자는 손실보상금 증액의 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2) 채권자의 손실보상금 증액의 소 제기 가능 여부 피수용자가 손실보상금 증액의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추심명령 이후 추심채권자가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의 당사자적격을 취득하거나 채권자대위권에 기하여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추심채권자가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토지보상법 제85조 제2항은 손실보상금 증액 청구 소송의 당사자를 토지소유자 및 관계인, 사업시행자로 정하고 있다. 관계인이란 “사업시행자가 취득하거나 사용할 토지에 관하여 지상권·지역권·전세권·저당권·사용대차 또는 임대차에 따른 권리 또는 그 밖에 토지에 관한 소유권 외의 권리를 가진 자나 그 토지에 있는 물건에 관하여 소유권이나 그 밖의 권리를 가진 자”를 말한다(토지보상법 제2조 제5호). 추심채권자는 금전채권자에 불과하고 토지에 관한 권리를 가진 자가 아니므로 관계인에게 해당하지 아니한다. 또한 채권자대위권은 사법관계를 규율하는 민법상 권리라는 점에서, 공법관계인 행정소송을 채권자대위권에 근거하여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래된 대법원 판결이기는 하지만, 대법원 1956. 7. 6. 선고 4289행상33 판결은 ‘행정소송은 행정청 또는 그 소속기관으로부터 위법한 처분을 받은 자만이 제기할 수 있고 그 이외의 자가 대위하여 제기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상판결도 ‘토지소유자 등에 대하여 금전채권을 가지고 있는 제3자는 … 토지소유자 등을 대위하여 보상금 증액 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한편‘서울고등법원 2015. 4. 21. 선고 2014누7291 판결’(피고가 상고를 하지 아니하여 항소심에서 판결이 확정되었다)은 ‘수용으로 인하여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이행불능이 된 경우 토지의 매수인이 손실보상금의 반환청구권(대상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채권자대위권에 근거하여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으나, 이는 타당한지 의문이다. 6. 결어 토지보상법 제85조 제2항은 손실보상금 증액의 소 당사자를 토지소유자 및 관계인으로 정하고 있고,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토지소유자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고 볼 근거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토지소유자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고 보면, 토지소유자나 추심채권자는 손실보상금 증액을 청구할 수 없어서 위법·부당한 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을 다툴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에 대상판결의 논리가 타당하다고 사료된다. 배상현 변호사(OCI 주식회사)
압류
손실보상금
토지보상
추심
배상현 변호사(OCI 주식회사)
2023-03-23
국가배상
'보안업무규정(대통령령)'에 의한 신원조사는 위법
1. 사실관계 및 대상판결 가. 원고는 영국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여권발급신청을 하였다가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로부터 신원조사 회보가 늦어져 출국할 수 없었음을 이유로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원고는 해외여행자에 대한 신원조사를 규정한 보안업무규정 제31조 제2항 제3호는 모법인 안기부법에 근거가 없거나 그 위임범위를 일탈하였으므로 위 규정을 근거로 신원조사를 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하였으나, 서울지방법원은 1997년 5월 9일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고(96가합60720), 서울고등법원은 1998년 2월 5일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97나23480). 나. 대법원은 2000년 12월 8일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는데(98다12041 판결, 이하 '대상판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구 안기부법(1999년 1월 21일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제1항 제1호, 제2항, 구 보안업무규정(1999년 12월 7일 대통령령 제1660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1조 제1항, 제2항 제3호 등에 의하면, 해외여행자에 대한 신원조회(신원조사의 오기로 보인다) 업무는 구 안기부가 법률에 근거하여 담당하던 고유업무의 하나로서 구 보안업무규정 제31조 제1항이 모법의 근거가 없다거나 그 위임의 범위를 일탈하였다고 볼 수 없다. 2. 관련 법리 가. 헌법 제14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거주·이전의 자유에는 국내에서의 거주·이전의 자유 이외에 해외여행의 자유가 포함된다(대법원 2008. 1. 24. 선고 2007두10846 판결). 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등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고(헌법 제37조, 법률유보원칙),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헌법 제75조, 포괄위임금지원칙). 법률의 시행령은 모법인 법률에 의하여 위임받은 사항이나 법률이 규정한 범위 내에서 법률을 현실적으로 집행하는 데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만을 규정할 수 있을 뿐, 법률에 의한 위임이 없는 한 법률에 규정되지 아니한 새로운 내용을 규정할 수는 없다. 법률의 위임 없이 법률이 정하지 아니한 내용을 규정한 시행령 조항은 그 자체로 무효이며, 이와 같이 무효인 시행령 조항에 기초한 행정처분은 그 법적 근거를 상실하여 위법하다(대법원 전원합의체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대법원 전원합의체 2015. 8. 20. 선고 2012두23808 등). 3. 구 안기부법 등의 내용 및 관련 비판 가. 대상판결에서 언급한 구 안기부법과 구 보안업무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 위 가.의 규정에서 보듯이 구 보안업무규정은 신원조사에 관하여 규정하였으나, 구 안기부법은 신원조사에 관하여 전혀 규정하지 않았고 대통령령에의 위임규정도 두지 않았다. 이것은 법률인 국정원직원법(제8조의2)에서 국정원직원에 대한 신원조사를 규정하고 절차 등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는 것과 명확히 구별된다. 다. 대상판결과 달리, 다수의 견해는 보안업무규정의 신원조사 규정이 모법의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① 국회입법조사처는 현행 법률체계를 살펴보면, (공무원 임용예정자에 대한) 신원조사제도를 명시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으며, 신원조사제도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회를 통과한 법률에 정하여야 하는데 행정규칙에서 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 기본권제한의 법률유보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이슈와 논점, 2015년 8월 7일). ②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상판결을 언급하고도, 국가정보원법은 신원조사 제도에 대한 명시적 위임 근거를 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보안업무규정'에 따른 신원조사 제도 개선 권고, 2018년 12월 27일). ③ 송준종 변호사는 대상판결을 언급하고도, 신원조사는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였다(국가인권위회, '신원조사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청문회' 자료집, 2005년 1월 18일 27면). 4.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는 위법 가.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신원조사를 받아야 하고 받지 않으면 해외여행을 할 수 없으므로, 신원조사는 해외여행의 자유를 제한한다. 나. 해외여행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구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에 관하여는 구 안기부법에 신원조사에 관한 근거 규정도 없고, 대통령령에의 위임규정도 없다. 다. 따라서 법률의 위임 없이 법률이 정하지 아니한 신원조사를 규정한 구 보안업무규정의 신원조사 규정은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어 그 자체로 무효이며, 무효인 보안업무규정에 기초한 신원조사는 그 법적근거를 상실하여 위법하다. 5.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대상판결에는 위 1. 나.와 같이 판시한 근거 내지 이유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마치, 음주를 하고(법률에 위임 규정을 두고) 운전을 해야(대통령령에 규정해야) 음주운전이 되는데(위법하지 않은데), 음주를 하지 않았음에도(법률에 위임 규정이 없음에도) 운전을 하였으므로(대통령령에 규정하였으므로) 음주운전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것과 유사하며, 납득하기 어렵다. 위 4.에서 본 바와 같이 구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는 위법이므로, 대상판결은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하였어야 할 것이다. 나. 대상판결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등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동안 학문적 비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필자도 열람·복사 청구를 하여 대상판결을 입수하였다). 대상판결은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의 법률적 근거 유무에 관한 유일한 판결로 보이고 선례적 가치가 충분하므로 마땅히 공개되어야 한다. 다. 국정원은 대상판결을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가 법률적 근거가 있다는 점에 대한 근거로 계속 이용하고 있다. 국가인권위회의 위 청문회(2005년 1월 18일)에서, 국정원은 대상판결을 신원조사의 법적근거로 주장하였다(위 청문회 자료집, 3면). 2020년 12월 31일 보안업무규정이 개정되었다(대통령령 제31354호). 개정 과정에서 국정원의 입법예고에 대해,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보안업무규정의 신원조사 규정은 위법이므로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미반영으로 회신하면서 국정원의 신원조사 업무는 대상판결 등을 통해 합법적인 업무로 인정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라. 대한민국 모든 판사들은 임용되기 직전에 신원진술서를 작성·제출하여 국정원의 신원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 신원진술서를 토대로 존안자료가 작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1997년 3월 17일 기사의 '공무원은 임용 순간부터 존안자료 기록이 시작된다'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 그리고 이와 같이 작성·업데이트된 존안자료가 이후 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에게 국정원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위 한겨레 기사의 "안기부 전직 실장급 간부는 '존안자료야말로 안기부가 가진 힘의 실질적 원천이다'고 말한다"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 결국 국정원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상판결을 비공개로 함으로써 학문적 비판은 피하면서, 신원조사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받을 때는 대상판결을 국정원에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 대상판결은 그보다 약 20년과 15년 이후에 선고된 위 2016두32992, 2012두23808 전원합의체판결 등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변경(폐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16두32992 판결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이 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이를 시행령에 위임하는 명문의 규정도 두고 있지 않음에도, 법외노조 통보를 규정한 노동조합법 시행령이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어 그 자체로 무효라고 판시하였고, 2012두23808 판결도 유사하다. 6. 결어 '보안업무규정(대통령령)'에 의한 신원조사는 위법하다. 대상판결은 더 이상 원용되지 않아야 하며, 공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무효인 보안업무규정의 신원조사규정을 즉시 삭제해야 한다. 엄기섭 변호사 (법무법인 동인)
여권
신원조사
출국
국가배상
엄기섭 변호사 (법무법인 동인)
2021-10-14
민사일반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의 소송요건
I. 사건의 개요 및 경과 소외 1은 2010년 8월 15일 건국훈장 4등급 애국장 포상대상자로 결정되었다. 소외 1의 자녀로는 장남 소외 4, 장녀 소외 2, 차녀 소외 5가 있었다. 장남 소외 4와 그의 배우자 및 자녀들, 차녀 소외 5와 그의 배우자는 위 포상대상자 결정일 이전에 모두 사망하였고, 소외 5의 자녀로는 소외 6이 유일하게 생존해 있었다. 원고는 소외 4의 손자이자 소외 1의 증손자이다. 소외 6은 2010년 8월 30일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소외 1의 손자로서 구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2012. 2. 17. 법률 제113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이라고 한다)에 따른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신청을 하였다. 광주지방보훈청장은 2011년 11월 24일 소외 6을 독립유공자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하는 결정을 하였다. 한편 소외 3은 2011년 11월 25일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자신이 소외 1의 장녀 소외 2의 자녀로서 소외 1의 손자녀 중 선순위자라고 주장하면서 독립유공자 유족등록신청을 하였으나, 광주지방보훈청장은 2011년 11월 30일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소외 3은 광주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독립유공자등록거부취소의 소를 제기하여 전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위 판결은 이후 항소 및 상고를 거쳐 그대로 확정되었다. 원고는 검사를 상대로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법원은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은 원고에게 당사자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의 소를 각하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내용 대상판결에서는 원고가 소외 1과 친족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 되었다. 다수의견은 종전의 판례와 달리, 민법 제777조 소정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법률상 이해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별개의견은 판례 변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다수의견과 같이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의 원고적격을 엄격하게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Ⅲ. 분석 및 검토 1. 판례 변경의 배경 민법 제865조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는 친생관계존부확인의 소'라는 표제 아래, 제1항에서 "제845조, 제846조, 제848조, 제850조, 제851조, 제862조와 제863조의 규정에 의하여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여 친생자관계존부의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제865조가 인용하고 있는 민법의 조문들은 대부분 친자관계의 당사자 또는 그의 직계존속·직계비속에 대하여 원고적격을 인정한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제3자가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되는 경우는 제862조의 '이해관계인'이 유일하다. 이해관계인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친자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친생자관계에 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지거나 넓어질 수 있다. 종전의 판례는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의 원고적격을 판단할 때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달리 취급하여 왔다. 제777조 소정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는 그와 같은 신분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소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하여, 소송요건의 문턱을 낮추어놓았다(대법원 1981. 10. 13. 선고 80므6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8. 10. 20. 선고 97므1585 판결). 반면 그러한 친족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는 친생자관계 존부의 확정판결에 의해 특정한 권리를 얻거나 특정한 의무를 면하게 되는 등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어야만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여, 소송요건의 문턱을 높여놓았다(대법원 1976. 7. 27. 선고 76므3 판결; 대법원 1990. 7. 13. 선고 90므88 판결). 제777조에서 정한 친족이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었던 구 인사소송법이 폐지된 뒤에도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유지되었다(대법원 2004. 2. 12. 선고 2003므2503 판결).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제777조 소정의 친족이 그와 같은 신분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였다. 이 점에 관하여는 별개의견도 견해를 같이하였다. 이러한 대상판결의 결론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종전 대법원 판례의 근거가 되었던 구 인사소송법 제35조 및 제26조는 폐지되었고, 그밖에 제777조 소정의 친족을 달리 취급할 근거는 희박하기 때문이다. 2.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에 관한 '이해관계'의 내용과 정도 이 사건의 원고는, 소외 1과 소외 2 사이의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게 되면 자신이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른 독립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고의 기대와 달리, 위와 같은 확인을 받더라도 원고는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될 수 없었다.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 요구되는 이해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아가 이 사건의 원고에게 그러한 이해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지를 두고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다수의견은 제865조의 이해관계인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친생자관계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일정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등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원고는 소외 1과 소외 2 사이의 친생자관계에 관하여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별개의견은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 판결을 통해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의 기재를 바로잡아야 할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이 있어야' 이해관계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별개의견은 원고적격을 판단하는 단계에서 원고가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라 독립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심리할 것은 아니고, 판결 결과에 따라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면 이해관계인으로서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추상적인 법리 차원에서 보면, 다수의견이 말하는 '법률상 이해관계'와 별개의견이 말하는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 사이에 큰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판단 기준을 실제로 적용하는 국면에서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큰 차이를 보였다. 다수의견은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의 결과에 따라 원고의 법적 지위가 달라질 수 있는 정도의 확실하고 중대한 이해관계를 요구하였다. 반면 별개의견은 소송의 결과가 원고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연성 내지 가능성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필자는 다수의견이 별개의견보다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확인의 이익의 일반 이론에 비추어, 이해관계인은 사실상의 이해관계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또한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의 심리가 친자관계 당사자에게 미칠 수 있는 불이익한 영향을 고려하면, 이해관계의 의미를 더욱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별개의견이 제시한 판단 기준에 따르면,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 요건이 소송요건으로서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는 해당 친생자관계의 존부에 관하여 친자관계의 당사자 사이, 혹은 그 소송의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있을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별개의견과 같이 그 소송의 결과가 원고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다소 불확실한 개연성만으로 확인의 이익을 긍정하게 되면, 확인의 이익이 없어 소가 각하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입해 보면, 다수의견의 타당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건에서 소외 2가 소외 1의 친생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그 결과 원고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다. 어차피 원고는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는다고 하여, 원고가 부양의무를 면하게 된다거나 상속관계에서 유리하게 된다는 등의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친자관계의 당사자인 소외 1과 소외 2는 이미 사망하였고, 원고는 소외 1의 증손자에 불과하다. 소외 1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바로잡고자 하는 원고의 희망이 '법률상 이해관계' 혹은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에 이른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원고에게 이해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소를 각하한 다수의견의 결론에 찬성한다. 이소은 임상교수(서울대 로스쿨)
친족관계
친생자관계존부확인소송
민법
친생자관계
이소은 임상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09-23
행정사건
재량통제와 직권탐지주의
Ⅰ. 사건의 개요 원고는 가축분뇨를 저장탱크에 일시 저장한 후에 위탁업체가 이를 수거하는 방식으로 가축분뇨 배출시설 설치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이를 가축분뇨를 해당 시설에서 완전히 분해하여 배출하는 방식의 '액비화 처리시설(이하 '이 사건 시설'이라 한다)'을 설치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원고는 가축분뇨 처리를 위한 이 사건 시설 등 공작물을 추가로 설치하기 위하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이라 한다) 제56조 제1항에 따라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피고 행정청은 이 사건 시설이 ○○저수지와 인접하여 수질오염의 우려가 있고 인근 주민들에게 악취 등 피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원고의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거부(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는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원심은 이 사건 처분에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하였다(광주고법 2020. 9. 25. 선고 2019누12288 판결).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를 원심법원에 환송하였다. Ⅱ. 판결 요지 '환경오염 발생 우려'와 같이 장래에 발생할 불확실한 상황과 파급효과에 대한 예측이 필요한 요건에 관한 행정청의 재량적 판단은 그 내용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하였다거나 상반되는 이익이나 가치를 대비해 볼 때 형평이나 비례의 원칙에 뚜렷하게 배치되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폭넓게 존중하여야 한다. 그리고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였다는 사정은 그 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자가 주장·증명하여야 한다. Ⅲ. 평석 1. 문제의 소재 대상판결은 재량통제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주고 있다. 대법원은 법률의 구성요건에 규정된 불확정개념을 근거로 재량행위를 판단하고 있으며,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환경이익의 중요성을 고려한 판단은 이해되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있다. 선행판례도 대체로 같은 입장이다(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9두45579 판결; 대법원 2017. 3. 15. 선고 2016두55490 판결 등).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재량행위의 특성과 환경이익의 우월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허가신청의 거부에 대한 권리구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2. 개발행위허가의 법적 성질과 재량행위의 논증방식 대상판결은 국토계획법상 개발행위허가를 '재량행위'로 보고 있다. 그 논거로 허가기준 및 금지요건이 불확정개념으로 규정된 부분이 많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행위는 건축물의 건축 또는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등이 대부분이다. 국토계획법 제58조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행정청은 상대방의 신청이 이러한 기준에 적합한지를 심사하여 개발행위허가를 발급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소위 '요건재량설'을 따른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러한 논거는 적절하지 않다. 국토계획법상 개발행위허가는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를 억제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면제하는 '예외적 승인(Ausnahmebewilligung)'에 해당한다(상론은 졸저, 한국행정법론, 법문사, 2020, 120면 참조). 예외적 승인은 재량행위에 해당한다. 예컨대 개발제한구역 내의 개발행위허가가 여기에 해당한다(대법원 2004. 3. 25. 선고 2003두12837 판결). 판례는 이를 '예외적 허가'라고 부르고 있다. 재량행위와 재량하자에 관한 이론은 오래전에 한국행정법에 도입되었으나,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자유재량과 기속재량의 구분은 19세기 독일의 고전학파 이론에서 연유하고 있다(Otto Mayer, Deutsches Verwaltungsrecht, Bd. I, 3. Aufl., S. 99 f.). 이러한 이론은 일본을 거쳐 도입된 것인데, 이를 한국 행정법의 고유한 이론으로 보는 것은 오해이다. 판례는 다행히 '재량행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 '기속재량'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독일에서는 '결정재량'과 '선택재량'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Maurer/Waldhoff, Allgemeines Verwaltungsrecht, 19. Aufl., § 7 Rn. 7). 판례 중에는 '선택재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대법원 2015. 11. 19. 선고 2015두295 전원합의체 판결). 이러한 용어 사용이 독일 학설의 입장을 반영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판례에서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재량 구분을 도입하는 것은 재량통제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법리를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3. 재량하자의 판단과 직권탐지주의의 적용 대법원은 재량하자에 관한 치밀한 논증을 하지 않고 있다.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타당한가? 행정소송법 제26조는 직권심리주의(직권증거조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즉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고,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에 대하여도 판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두고 대법원 판례의 주류는 대체로 변론주의의 예외로 이해하고 있다(대법원 1988. 4. 27. 선고 87누1182 판결; 대법원 2000. 3. 23. 선고 98두2768 판결 등). 그러나 일부 판례는 행정소송상 '직권탐지주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적도 있다(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두18035 판결). 행정소송은 민사소송과 달리 권리구제의 기능뿐만 아니라 행정의 적법성 통제의 기능을 수행한다(행정소송법 제1조 참조). 법원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관한 판단에 직권탐지주의를 적용하여 해당 처분의 위법 여부를 적극적으로 심사하여야 한다. 이는 변론주의가 적용되는 민사소송과 구별되는 점이다. 행정소송에서 당사자의 주장이나 사실 등에 의존하지 않고 직권탐지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판결의 정당성 확보라는 공익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심은 원고가 가축분뇨 정화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원고의 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러한 거부처분이 수질오염 방지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도 유효·적절한 수단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피고는 이 사건 시설이 인근 마을의 농업용수 취수원과 관광자원 등으로 활용되는 ○○저수지와 불과 24m로 인접해 있으며, 시설이 노후되거나 시설 관리자가 무단방류하는 경우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거부처분을 하였다. 대상판결은 개발행위허가 또는 그 거부에 대해 재량행위를 인정하는 법적 근거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법원은 해당 처분이 어떠한 재량하자에 해당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판례는 대체로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하는지를 포괄적으로 심사하고 있다. 원고가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거부처분의 재량권 일탈·남용을 주장하였다면, 법원은 원고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이라도 이에 대해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해야 한다. 피고 행정청의 주장에 비추어 재량권의 행사는 존재하며, 재량권의 유월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재량권의 '남용(Mißbrauch)'이다. 재량권의 남용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재량의 수권 목적이 중요하다. 법률이 수권한 재량규정의 취지나 목적에 위배되게 재량권이 행사되었는지를 심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거 법령에서 재량의 수권 목적을 검토해야 한다. 대상판례는 그러한 논증을 하지 않고 환경이익의 우월이나 재량의 성격 등을 포괄적인 근거로 삼아 원심을 파기하였다. 이 사건의 처분은 예컨대 국토계획법 제58조 제1항 제4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하천·호소·습지의 배수 등 주변환경이나 경관과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심사해야 한다. 이 사건의 시설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원심은 이 사건 시설이 기존의 수거 방식보다 환경상 위해 우려가 적다고 판단하였다. 액비화 처리 시설은 가축분뇨를 퇴비나 액비 등으로 자원화하고 자연순환농업을 활성화하여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이다. 이러한 시설이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기존 방식보다 환경상 위해를 더 크게 주는지는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않았다. 대상판결은 이 부분에 대한 논증도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시설의 입지나 무단방류의 가능성만을 고려하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대상판결은 개발행위허가의 성질을 먼저 규명하고 재량행위를 논증하여야 하며,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심사를 원고의 증명책임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직권탐지주의를 적용하여 그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향후 재량행위에 대한 사법심사에 발상(發想)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남철 교수(숙명여대 법학부)
가축분뇨
저수지
악취
수질오염
환경오염
정남철 교수(숙명여대 법학부)
2021-05-27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소프트웨어 도입대가의 구별기준
I. 서론 대상판결에서는 '내국법인이 외국법인으로부터 수입하는 소프트웨어 대가의 법적성격'이 무엇인지 문제되었다. 이는 최근 납세자와 과세관청 간 다툼이 첨예하게 발생하는 쟁점이다. 대법원은 2000. 1. 21. 선고 97누11065 판결 등을 통해 그 판단기준을 제시한 바 있는데, 대상판결은 그 판단기준을 적용한 최근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Ⅱ.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원고는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미국 PTC 그룹의 자회사로서 PTC와 소프트웨어 배급계약을 체결한 다음 PTC에 PTC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이하 '쟁점 소프트웨어'라 한다)의 국내 판매 및 유지보수 용역 수입에 대하여 소프트웨어 도입대가 및 라이선스 수수료 명목으로 지급하였다(이하 '쟁점 지급금'이라 한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원고는 쟁점 지급금이 범용화된 것으로서 불특정 다수인에게 판매되는 '상품'의 수입대가라고 주장하였다. 이 경우 PTC의 사업소득이 되어 PTC의 고정사업장이 없는 국내에서는 과세권이 없게 된다. 반면 피고는 소프트웨어에 포함된 '노하우'에 대한 도입대가로 보고 원고에게 원천징수세액 및 그 가산세를 부과하는 과세처분을 하였다. 이 경우 PTC의 국내원천 사용료소득이 되므로 국내에서 15%의 세율로 원천징수 되기 때문이다. 제1심 판결은 쟁점 소프트웨어 도입이 노하우를 도입한 것이므로 피고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보았다. 대상판결은 제1심판결의 결론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하였다. Ⅲ. 평석 1. 소프트웨어 도입대가의 소득 구분 기준 가. 관련 법리 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나목에서는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으로 '산업상·상업상·과학상의 지식·경험에 관한 정보 또는 노하우'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통상 '노하우'라 일컫는 발명, 기술, 제조방법, 경영방법 등에 관한 비공개 기술정보를 사용하는 대가를 말하므로 내국법인이 외국법인으로부터 도입한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도입 가격, 특약 내용 기타 제반 사정에 비추어 그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단순히 상품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노하우 또는 그 기술을 도입한 것이라면 그 도입대가는 그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인 사용료소득에 해당하여 법인세법 제98조에 정한 원천징수의무자인 내국법인에 대하여 법인세를 징수할 수 있다(대법원 97누11065 판결 등). 나. 구체적인 판단기준 1) 핵심적 판단기준 가장 핵심적인 판단기준으로서 소프트웨어에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도입자가 노하우를 '전수'받아 사용하여야 한다(조인호, 대법원판례해설 제34호, 594쪽 참조). 사용료소득은 '노하우 전수에 대한 대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선 해당 소프트웨어에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노하우란 '공개되지 아니한 고도의 기술적 정보'를 의미하므로 다른 업체가 통상적으로 보유하는 전문적 지식, 특별한 기능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사용료소득이 아니다(대법원 1986. 10. 28. 선고 86누212 판결 등). 소프트웨어에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위해서는 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국내 기술수준으로는 불가능한지 여부가 '일응'의 기준이 되지만 그러한 이유만으로 노하우 전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고도의 기술로써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라 하더라도 수입하는 자가 '상품'으로 사용하는 데 그친다면 노하우의 전수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소프트웨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것이나 제작자의 노하우가 반영되어 있게 마련이므로 단순히 제품을 정하여진 용법에 따라 '사용'하였다는 이유만으로는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앞의 판례해설 594, 595쪽 참조). 따라서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공개된 기능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상품의 수입'으로 보아야 하고 소프트웨어 제작기법 또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지 않은 산업상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노하우의 전수'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내도입자가 공급자와 판매대리점 계약을 체결하여 공개된 기능 그대로의 소프트웨어를 수입하여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에게 판매한 정도에 그친 경우에는 노하우의 전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1997. 12. 23. 선고 97누2986 판결 참조). 판매대리점은 수입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역할만을 수행하므로 그 과정에서 비공개 기술정보 등 노하우가 전수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비공개원시코드 자체의 이전이 이루어져 해당 소프트웨어의 제작기법이 전수되는 경우에는 노하우 전수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특정 고객의 특수한 요구에 맞게 소프트웨어를 개작하여 수입하는 경우 노하우 전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노하우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채 개별적으로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수입대가가 사용료소득에 해당한다고 보아 과세하려면 과세관청으로서는 먼저 해당 소프트웨어에 '어떤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그 노하우가 수입자에게 '전수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2) 부수적 고려사항 소프트웨어 대가가 고가라는 이유만으로 노하우 도입의 근거로 볼 것은 아니다(앞의 판례해설, 595쪽). 소프트웨어가 단순 상품으로 거래되는 경우에도 고가인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밀준수의무 존재만으로는 노하우 전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대법원 97누2986 판결 참조). 소프트웨어 제품 거래계약에 비밀준수의무 등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노하우 도입과 무관하게 불법복제 또는 역전환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공급자 입장에서 구매자의 권리를 제한하는데 그 취지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앞의 판례해설, 595, 596쪽). 교육, 유지보수, 컨설팅 용역이 제공되었다는 사정 역시 소프트웨어를 상품으로서 수입하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노하우 도입의 독자적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교육 용역은 사용방법이 복잡한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도 고객의 필요에 따라 제공될 수 있다. 유지보수 용역 또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업데이트, 패치, 오류시정 등을 위한 목적에서 제공되는 것이므로 상품으로 수입되는 경우에도 제공될 수 있다. 컨설팅 용역은 고객의 컴퓨터 환경을 점검하여 필요한 환경설정 등을 해주는 것으로서 소프트웨어에 내장된 기능을 활용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는 상품 수입 시에도 가능하다. 2.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① 노하우 전수에 관한 입증이 영업비밀에 해당하여 어렵다는 이유로 '어떤 노하우 도입이 있었는지'에 관한 입증책임을 전도하고 ② 상품 수입 시에도 나타날 수 있는 부수적·지엽적 사정들만을 이유로 노하우 도입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 대상판결은 과세관청의 입증책임과 관련하여 "쟁점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단순한 상품의 수입과는 구별되는 노하우 또는 그 기술의 도입에 해당한다는 점을 주장·증명하면 충분하고 해당 노하우 또는 기술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주장·증명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그와 같이 노하우 또는 기술의 구체적인 내용은 일반적으로 영업비밀로 분류되어 과세관청이 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과세관청은 각 소프트웨어별로 어떠한 노하우가 '포함'되어 '전수'되었는지 여부를 입증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이다. 만약 이러한 입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상품 수입시에도 나타나는 사정들만 존재한다면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한 과세관청을 패소시켜야 하고 영업비밀에 해당하여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그 입증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대법원 판례법리에서 과세관청에게 입증을 요구하는 '노하우의 포함 및 전수'는 결코 납세자의 영업비밀까지 침해하라는 것이 아니다. 과세관청으로서는 지사와 본사 사이에서 '어떠한 노하우가 전수'되었는지 입증하면 충분하고 이는 영업비밀과 무관하다. 뿐만 아니라 대상판결이 노하우 도입으로 본 논거를 살펴보면 모두 상품 수입 시에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거나 판단 근거가 불분명해 보인다. 대상판결이 주된 근거로 든 국내에서의 개발·공급이 힘들다는 사정, 교육·유지보수·컨설팅 용역이 제공된 사정, 비밀유지약정이 존재하는 사정 등은 노하우 도입 시에만 나타나는 사정이 아니고 상품 수입 시에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사정에 해당한다. 오히려 쟁점 소프트웨어는 사전 제한 없이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상대로 공개된 기능 그대로 판매된 것으로 보이는데 사용료소득의 개념에 해당하는 산업상 노하우에 관한 '비공개' 기술정보가 전수되었다고 볼 수 없다. Ⅳ. 결론 최근 해당 쟁점과 관련한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동일한 쟁점임에도 사실관계 또는 어떤 판단기준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그 판단이 엇갈리는 사례들이 병존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대법원의 판시법리가 워낙 간략한 탓에 기인한 것으로서 구체적인 판단기준들을 중심으로 한 대법원의 새로운 법리(세부법리) 판시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임한솔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법인세
노하우
사용료소득
임한솔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2021-04-12
헌법사건
헌법재판소가 군정법령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가?
[사실관계 및 헌법재판소의 판단]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2016년 11월 24일 울산 중구 소재 이 사건 토지를 경매절차에서 낙찰 받아 그 소유권을 취득하고 2017년 4월 3일 울산광역시 중구를 피고로 하여 아무런 권원 없이 이 사건 토지를 도로 포장 등의 방법으로 점유·사용하고 있으므로 그로 인한 부당이득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사건 토지의 전 소유자가 1945년 8월 10일 재조선 일본인으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고 1945년 9월 7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는데 1945년 9월 25일 공포된 미군정청 법령 제2호에서 일본인의 모든 재산권 이전 행위를 금지하고 1945년 8월 9일 이후에 체결한 재산권 이전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무효로 하였으며 1945년 12월 6일 공포된 미군정청 법령 제33호가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인의 모든 재산은 미군정청이 취득한다고 규정한 점 등을 이유로 청구인들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청구인들은 위 소송 계속 중 위 미군정청 법령들에 대하여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자 위 조항들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위 군정법령은 헌법소원대상성 및 재판의 전제성이 모두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본안에서는 이는 소급입법금지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검토] 1. 헌법제정 전의 법률도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가? 위 결정은 위 법령들은 각 군정장관의 명의로 공포된 것으로 법령(Ordinance)의 형식을 가졌지만 오늘날 법률로 제정되어야 할 입법사항을 규율하고 있으므로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고 제헌 헌법 제100조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법질서 내로 편입되었으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과거 헌법위원회는 1954년 2월 27일 마찬가지로 군정법령인 1947년 12월 15일 공포된 남조선과도정부 행정명령 제9호에 대해 합헌결정을 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는 남조선과도정부 시절의 구 국방경비법에 대하여 성립절차상의 하자가 없다고 하였으며(헌재 2001. 4. 26. 선고 98헌바79·86, 99헌바36 결정) 대법원은 1960년 2월 5일 경향신문 폐간 사건에서 군정법령 제88호에 대해 헌법위원회에 위헌제청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어떤 규범이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당연히 헌법재판소에 의한 위헌법률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 군정법령들은 미군 군정청이 발령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입법부나 공권력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므로 입법자의 권위 보호를 위하여 그 위헌 여부의 판단을 굳이 헌법재판소에 독점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제헌 헌법 제100조가 '현행 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였다고 하여 군정법령이 대한민국의 법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헌법재판소가 위헌심사를 할 수 있다면 일제 강점기의 법률의 위헌 여부도 법원은 판단할 수 없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하여야 하는가? 독일에서는 독일 헌법 시행 전의 법률(vorkonstitutionelles Recht)에 대하여는 일반 법원이 그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1900년 시행된 독일 민법 제1300조는 흠 없는 약혼녀는 약혼자와 동침하였으면 약혼이 해제된 때에는 재산적 손해가 없더라도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1992년 뮌스터 구법원(Amtsgericht)은 위 규정은 헌법에 위반되므로 적용할 수 없다고 하였고(NJW 1993, 1720) 연방헌법재판소도 구법원의 이러한 판단이 타당하다고 하였다(BeckRS 1993, 01691). 2. 한국의 사법부가 군정법령에 대하여 위헌심사를 할 수 있는가? 군정법령의 제정 자체는 미국의 주권에 기한 것이다(헌재 2017. 5. 25. 선고 2016헌바388 결정 참조). 그런데 한국의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우리나라의 헌법에 비추어 군정법령 자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가? 만일 위 법령을 위헌이라고 한다면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2차대전 후에 연합국 점령군이 공포한 직접적 점령법률(unmittelbares Besatzungsrecht) 자체는 연방헌법재판소의 심사대상인 연방법률이나 주 법률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BVerfGE 3, 368 ff). 다만 1948년 정부 수립 후에 한국이 위 군정법령을 적용하였다면 그 적용에 대하여는 헌법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위 군정법령이 적용된 것은 1945년의 일이므로 이에 대하여 우리 헌법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헌법 시행 전에 공포되고 적용이 완료된 법률의 위헌 여부를 현행 헌법에 의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 위 군정법령은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 공포되고 그 적용이 완료되었다. 그런데 그 위헌 여부를 현행 헌법에 의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헌법재판소는 1971년에 제정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 제4항에 근거하여 1977년에 이루어진 수용처분이 문제된 사건에서 위 규정이 위헌이라고 하면서 1987년의 현행 헌법 제76조와 제77조를 원용하였고(헌재ㅤ1994. 6. 30. 선고 92헌가18 결정) 위 특별조치법 제11조 제2항 중 제9조 제1항에 근거하여 1982년에 확정된 유죄판결이 문제된 사건에서 위 규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현행 헌법 제33조 제1·2항을 들고 있다(헌재 2015. 3. 26. 선고 2014헌가5 결정). 그러나 현행 헌법 시행 전에 제정되었고 그 적용도 그 전에 완료된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그 제정 또는 적용 당시의 헌법이 위헌 여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후의 현행 헌법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당시에는 합헌이었던 것이 현행 헌법 시행 후에 소급적으로 위헌인 것이 될 수 있어서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치게 된다. 물론 현행 헌법 시행 전에 제정되었더라도 현행 헌법 시행 후에 적용된 법률에 대하여는 현행 헌법을 기준으로 하여 위헌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례들이 현행 헌법 전에 제정되었고 그 적용도 완료된 사건들에 대하여 현행 헌법을 적용하여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은 문제가 있다(윤진수, 상속관습법의 헌법적 통제, 헌법학연구 23권 2호, 2017, 175면 이하 참조). 다만 과거의 법률이 현재의 헌법이나 그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부당한 경우에는 현재의 헌법에 따라 재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윤진수, 위헌인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 민사법학 81호, 2017, 138면 이하 참조). 실정법의 정의에 대한 위반이 참을 수 없는(unerträglich) 정도에 이르면 부정의한 법은 정의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라드부르흐). 남아프리카 헌법재판소가 1996년 선고한 두 플레시스 판결{Du Plessis and Others v De Klerk and Another, 1996 (3) SA 850}도 그러한 취지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위 군정법령이 공포되었을 당시에는 아예 대한민국 헌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는 현행 헌법 제13조 제2항은 제헌헌법에는 없었고 1962년 헌법에서야 제11조 제2항으로 비로소 도입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위 군정법령이 실정법의 정의에 대한 위반이 참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건 헌재 결정도 1945년 8월 9일 당시 재조선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일본의 패망과 미군정의 수립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소유·관리하던 재산의 자유로운 처분이나 거래가 가능할 것이라고 신뢰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신뢰가 헌법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급입법의 금지를 명하는 위 헌법 규정이 헌법 제정 전에 적용이 완료된 이 사건에 소급적용될 수는 없다.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소급입법
군정법령
헌법소원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02-15
민사일반
조세·부담금
국세징수권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조세채권존재확인의 소의 이익
1. 사실관계 피고는 일본에 본점을 둔 외국법인으로 2006년 10월부터 2007년 4월까지 3회에 걸쳐 국내에서 골프장업을 하는 회사의 주식 3만2000주를 양도하였고 위 주식의 양수회사는 원천징수의무자로서 원천징수분 법인세 및 증권거래세 등을 신고·납부하였다. 원고(대한민국) 산하 지방국세청장은 피고가 법인세 신고·납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주식의 취득가액도 적정하지 않다고 보았고 관할 세무서장은 2010년 11월 직권으로 피고를 외국법인 국내지점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후 2011년 3월 납부기한을 2011년 3월 31일로 하여 2006년과 2007년의 법인세를 결정·고지하였다. 이에 불복한 피고가 심판청구를 하였으나 조세심판원은 2012년 7월경 실제 취득가액의 확인자료가 제출되지 않았고 시가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결국 피고의 체납액은 가산금을 포함하여 2015년 5월 약 331억 원에 이르게 되었는데 피고는 국내재산이 없는 한편 일본에서 계속 골프장 사업을 하고 있다. 원고 산하 국세청장은 2015년 6월까지도 일본과의 2010년 이전 과세연도에 대하여 부과한 조세의 위탁징수에 관한 상호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반면, 피고에 대한 국세징수권 소멸시효는 2011년 3월의 납세고지로 중단되었다가 납부기한인 2011년 3월 31일의 다음날부터 다시 진행하게 되었다. 원고는 고액체납자인 피고에 대한 국세징수권 확보를 위해 2014년 12월 일본 소재 피고의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여 납부최고서를 전달하려 했으나 피고가 수령하지 않자 국제등기우편을 통해 송달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조세는 국가존립의 기초인 재정의 근간으로서 세법은 과세관청에 부과권이나 우선권 및 자력집행권 등 세액의 납부와 징수를 위한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여 그 공익성과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다. 따라서 조세채권자는 세법이 부여한 부과권 및 자력집행권 등에 기하여 조세채권을 실현할 수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납세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 다만 납세의무자가 무자력이거나 소재불명이어서 체납처분 등의 자력집행권을 행사할 수 없는 등 국세기본법 제28조 제1항이 규정한 사유들에 의해서는 조세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이 불가능하고 조세채권자가 조세채권의 징수를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충실히 취하여 왔음에도 조세채권이 실현되지 않은 채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 청구는 예외적으로 소의 이익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리고 국가 등 과세주체가 당해 확정된 조세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하여 납세의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조세채권존재확인의 소는 공법상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 3. 평석 가. 확인의 소의 보충성 원칙 위반 여부 각종의 소에서 요구하는 제소의 이익(권리보호이익)은 다른데 민사소송법상 확인의 소의 이익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판례상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함에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일 때에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고(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다14420 판결), 민사상 채권에 대해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로서 그 확정된 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와 청구권 확인의 소 이외에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확인의 소도 허용하였다(대법원 2018. 10. 18. 선고 2015다232316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조세채권의 경우 민사상 채권과 달리 법률에 규정된 과세요건이 충족될 때에 법률상 당연히 성립하고 국세징수법 절차에 따라 자력집행력이 인정되고 있어(헌법재판소 2007. 5. 31. 선고 2005헌바60 결정), 국세징수법은 집행권원 획득을 위한 이행청구의 소 제기와 같은 집행절차는 예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사건 소의 형식이 이행청구가 아니라 확인의 소라고 하더라도 이는 자력집행력을 가지고 있는 조세채권의 본래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서 다른 특별한 사정에 의해 확인의 이익이 인정된다면 소송요건을 갖추는 것이라 할 것이다. 나. 확인의 이익의 존재 여부 확정된 채권을 소멸시효 완성 직전까지 강제집행하지 못한 경우 판례는 강제집행실시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다면 그 이전에 강제집행실시가 가능하였는지에 관계없이 시효중단을 위한 동일 내용의 재판상 청구가 불가피하므로 확정판결이 있었더라도 시효중단을 위한 동일 내용의 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대법원 1987. 11. 10. 선고 87다카1761 판결)고 하여 시효중단을 위한 소제기에 소의 이익을 비교적 넓게 인정하고 있다. 확정된 채권은 판결에 의해 집행권원이 부여된 채권인데 조세채권은 민사집행법에 따른 청구 이의의 소, 제3자 이의의 소와 같이 징수처분에 대하여 불복절차를 마련하고 있고 자력집행권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판결에 집행문을 부여받은 확정된 채권과 법률상 효력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세징수권의 시효중단을 위해 제기된 소에 대해서도 소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국세기본법 제28조는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 ① 납세고지, ② 독촉 또는 납부최고, ③ 교부청구, ④ 압류를 규정하면서 소멸시효에 관하여 제17조 제2항은 이 법이나 세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피고는 납부기한까지 체납액을 완납하지 아니하여 원고가 납부최고서를 송달한 상황이나 이러한 최고 내지 재독촉은 소멸시효 중단사유가 되는 독촉이 아니어서(대법원 1999. 7. 13. 선고 97누119 판결), ①과 ②의 방법에 따른 소멸시효 중단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또한 국내에 소재한 피고의 재산이 없고 한·일간 조세징수 위탁을 통한 징수방법 역시 상호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③과 ④의 방법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국세기본법 제28조에서 열거한 방법을 통한 소멸시효 중단은 불가능하여 소멸시효 완성에 따라 대한민국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함에는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것이다. 다. 당사자소송의 해당 여부 당사자소송은 행정청의 처분 등을 원인으로 하는 법률관계에 관한 소송이나 그 밖에 공법상의 법률관계에 관한 소송으로 그 법률관계의 한쪽 당사자를 피고로 하는 소송이다. 과세처분의 무효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소송의 성격은 처분자체의 무효나 부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로 생긴 조세채무(납세의무)의 부존재확인이고(대법원 1982. 3. 23. 선고 80누476 판결), 납세의무 부존재확인의 소는 공법상의 법률관계 그 자체를 다투는 소송으로서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대법원 2000. 9. 8. 선고 99두2765 판결). 조세채권(부과징수권) 존재확인의 소는 납세의무라는 공법상 법률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이를 다투는 소 역시 당사자소송에 해당할 것이다. 이 사건 소는 국가의 부과처분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확정된 납세의무 또는 징수권한의 확인을 구하는 소송으로 공법상 법률관계에 관한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 라. 당사자 적격의 인정 여부 당사자 적격이란 특정 소송에서 소송을 수행하고 본안판결을 받기에 적합한 자격인데 당사자소송에서 원고와 피고가 될 수 있는 자는 공법상 법률관계의 권리주체이다. 당사자소송의 원고 적격에 관하여 행정소송법에 규정된바 없어 항고소송과 같은 제한 없이 민사소송법이 준용되고 확인의 소에 있어서 원고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불안·위험을 초래하고 있거나 초래할 염려가 있는 자가 피고 적격을 가진다(대법원 2007. 4. 12. 선고 2004두7924 판결). 이 사건에서 대한민국은 국세기본법 제28조 제1항이 열거한 방법을 통한 소멸시효 중단은 불가능하여 대한민국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함에는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원고 적격이 있으며 납세의무자는 그 확인에 대한 반대이익을 가지고 있어 피고 적격이 있다고 할 것이다. 4. 결론 대상판결은 국가가 확보한 국세징수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세기본법상 소멸시효 중단이 불가능하고 조세채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충실히 취하였으나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납세의무자를 상대로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조세채권존재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이 있다고 최초로 판단하였다. 이로써 국가가 더 이상 조세집행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경우 재판상 청구를 통해 조세징수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조성권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민법
조세징수권
국세기본법
법인세법
조성권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2020-05-25
민사일반
주택·상가임대차
임대차계약 종료 후 임차인의 목적물 계속점유와 실질적 이득
1. 판결의 소개 가. 사안의 개요 ① 원고들은 2015년 2월 1일 피고에게 이 사건 점포를 보증금 5000만원, 월 차임 150만원(부가가치세 별도), 임대기간 2015년 2월 1일부터 2016년 2월 27일까지로 정하여 임대하는 내용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그 무렵 피고에게 위 점포를 인도해 주었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는 월 임대료를 3회 이상 연체 시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특약이 있었다. ② 피고는 2015년 3월 3일 및 2015년 4월 7일 원고들에게 각 150만원을 차임 명목으로 지급하였을 뿐 그 외에는 차임을 지급하지 않았다. ③ 원고들은 2015년 12월 2일 피고에게 차임 연체를 이유로 임대차계약 해지통고를 하였고, 위 해지통고는 2015년 12월 3일 피고에게 송달되었다. ④ 피고는 이 사건 점포에서 커피전문점 영업을 하다가 2016년 9월 28일 폐업신고를 하였고, 이후에도 이 사건 점포에 영업비품들을 그대로 비치하는 등 이 사건 점포를 계속하여 점유하였다. 원고들은 피고에 대하여 임대차계약 종료에 따른 목적물반환청구, 임대목적물 인도완료일까지 연체차임 지급 또는 차임상당 부당이득반환의 청구를 하였다. 나. 소송의 경과 ① 제1심 판결 : 청구 전부인용 피고가 보증금반환과의 동시이행항변을 하지 않았고, 원고들의 청구는 전부인용되었다. ② 원심판결 : 청구 일부인용 1심 전부승소판결에 따라 가집행이 이루어져 2017년 9월 26일 이 사건 점포는 원고들에게 반환되었다. 피고는 2016년 9월 28일 이후로는 더 이상 이 사건 점포를 사용·수익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피고는 원고들로부터 보증금 5000만원에서 연체차임 등을 공제한 금원을 반환받을 때까지 목적물반환청구에 응할 수 없다는 동시이행항변을 하였다. 그러나 원심은 2016년 9월 28일 이후 피고가 더 이상 이 사건 점포를 사용·수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아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피고의 부당이득반환의무가 계속 발생하므로 이를 보증금에서 공제하면 보증금이 모두 소멸하였다고 보아 피고의 동시이행항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③ 대상판결 : 파기환송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법리를 근거로 2016년 9월 28일 이후 피고가 더 이상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그 이익을 반환하여야 한다(민법 제741조), 여기에서 이익이라 함은 실질적인 이익을 의미하므로, 임대차계약관계가 소멸된 이후에 임차인이 임차건물 부분을 계속 점유하기는 하였으나 이를 본래의 임대차계약상의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하지 아니하여 실질적인 이득을 얻은 바 없는 경우에는, 그로 인하여 임대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임차인의 사정으로 인하여 임차건물 부분을 사용·수익하지 못하였거나 임차인이 자신의 시설물을 반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2. 문제의 제기 대상판결의 법리는 매우 간명하다. 임차인이 영업을 목적으로 임차를 하였는데 임대차계약 종료 후 영업을 하지는 않지만 영업에 필요한 자신의 시설물을 아직 반출하지 않고 임차목적물을 마치 창고처럼 활용한 경우에도 임차인은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시(이른바 '실질적 이득론')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종전 대법원 판례 중에도 비슷한 판시를 한 것이 있다(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8554 판결, 대법원 1992. 4. 14. 선고 91다45202·45219 판결). 그런데 이러한 법리가 항상 타당한가? 임대보증금이 아예 없거나 연체차임 등의 공제로 인해 임차인이 영업을 종료한 시점에서 임대보증금이 모두 소멸하여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동시이행관계가 문제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임차목적물을 단순 점유하거나 소극적·부수적으로 사용·수익하는 임차인도 위 판시에 따라 차임상당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임대차종료 후 목적물을 반환하지 않고 있는 임차인은 그 목적물을 사용·수익하지 않고 단순 점유하는 경우에도 임대인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임대인은 임대차계약에 따라 임차인에게 사용·수익 '가능성'을 급부한 것이므로, 임대차계약이 종료하면 임차인은 사용·수익 '가능성'을 급부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 판례가 확립한 실질적 이득론은 동시이행항변권이 존재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예외법리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임차목적물을 단순 점유하거나 소극적·부수적으로 사용·수익하는 경우까지 임차인에게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지우는 것은 임차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임차인이 임대인을 이행지체에 빠트리더라도 보증금에 대한 법정이자 상당의 지연손해금과 임차목적물의 사용수익 이익이 서로 맞비기는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임차인은 여전히 불리할 수 있다. 3. 동시이행항변권의 존재 : 필요조건? 충분조건? 다만 동시이행항변권의 존재는 실질적 이득론을 적용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사료된다. 임차인이 목적물을 단순 점유하거나 소극적·부수적으로 사용·수익하는 것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한 방편이라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임차인은 임대인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원칙으로 돌아가 임차인은 - 설령 목적물을 실질적으로 사용·수익하지 않더라도 -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가령 ① 임차인의 영업종료 시점 또는 임대차종료 시점 중 나중 시점에서의 잔존 임차보증금이 매우 소액이어서 임대인이 이를 지급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면 임차목적물에서 임차인이 영업을 종료한 후에도 임차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를 계속 인정함이 타당하다. ② 또한 임차인이 이전부터 계속 차임을 연체해 오고 있었고 임대차계약 종료 전에 이미 폐업을 하였으며 사업부도로 연락이 두절된 경우처럼, 설령 임대인이 보증금의 변제제공을 하더라도 임차인이 목적물을 반환하지 않을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에는 시설을 반출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둔 임차인을 굳이 보호할 필요성은 없다. ③ 또한 임차인의 연체차임 누적액이 이미 보증금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경우 비록 임대인이 명시적으로 공제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에게 동시이행항변권이 있으므로 이를 이유로 '실질적 이득'이 있는 경우에만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겠다는 임차인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고 사료된다.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동시이행항변권의 존재를 이유로 임차인이 부당이득반환을 거부한다면 이는 동시이행항변권의 법률효과를 남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생각의 확장 임차목적물을 단지 소극적·부수적으로 사용·수익하는 임차인은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대상판결의 판시는 다른 쟁점에 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보증금이 있는 건물소유 목적의 토지 임대차에서 임차인이 자기 소유 건물을 단순 점유하고 있는 경우 임차인은 건물이 놓인 토지를 단순점유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토지를 점유할 뿐만 아니라 사용·수익하고 있는 것인가? 임차인이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임차인이 건물을 사용·수익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건물을 소유하는 것 자체만으로 그 건물이 놓인 토지를 (실질적으로) 사용·수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에 따라 토지에 대한 차임상당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하여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 경우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 및 매매대금지급의무와 임차인의 건물 소유권이전등기 및 인도의무가 동시이행관계에 놓이고, 임차인으로서는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과 건물매매대금을 지급받기 위한 방편으로 '건물'을 '소유(+단순 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임차인의 토지 사용·수익은 소극적·부수적 사용·수익에 불과하므로 임차인은 토지 사용·수익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러한 결론은 토지 임대차에 관하여 보증금이 없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판례는 건물 소유자는 그 건물이 놓인 부지를 점유하고 사용·수익한다는 명제를 일관되게 적용하여 토지임차인 겸 건물소유자의 부당이득반환의무를 긍정하는 취지로 보인다(대법원 1998. 5. 8. 선고 98다2389 판결, 대법원 2001. 6. 1. 선고 99다60535 판결). 그러나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임대차 종료 후 임차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와 관련하여 판례가 취하는 실질적 이득론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재고를 요한다. 최준규 교수 (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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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규 교수 (서울대 로스쿨)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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