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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노동·근로
행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④ 경고의 처분성과 법률유보의 원칙
경고이든 불문경고이든 상대방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고 이러한 처분은 작용규범에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이 사건 경고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부분은 타당하다. 그러나 「검찰청법」의 일반적인 지휘·감독에 관한 규정은 이 사건 경고의 작용규범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위 규정을 이 사건 경고의 법적 근거로 인정한 부분은 문제가 있다. Ⅰ. 사실관계 1.원고는 2005. 2.경 검사로 임용되어 2015. 8.경부터 2018. 2.경까지 OO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였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2017. 10.경부터 2017. 11.경까지 위 지방검찰청에 대하여 ‘2016. 10.경부터 2017. 10.경까지’를 감사대상기간으로 하는 2017년도 통합사무감사를 실시하였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2017. 11.경 원고에게 이의신청 기회를 부여한 다음, 2017. 12.경 원고에게 21건의 지적사항 및 이에 대한 평정 결과(벌점 합계 10.5점)를 통보하였다. 이를 기초로 검찰총장은 원고가 21건의 수사사무를 부적정하게 처리하여 검사로서 직무를 태만히 한 과오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2018. 1. 18. 원고에게 경고장을 송부하였다(이하 ‘이 사건 경고’라 한다). 2. 원고는 2018. 1. 29. 대검찰청 감찰본부에 다시 지적사항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였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2018. 2.경 21건의 지적사항 중 2건의 지적사항에 대하여는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이 부분에 대한 지적사항을 취소하고, 나머지 19건의 지적사항에 대한 이의신청은 기각하였으며, 지적사항 19건에 대한 벌점을 합계 11점으로 정정하였다. 3. 원고는 검찰총장을 피고로 하여 이 사건 경고에 대하여 항고소송(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사건 경고는 그 자체로 어떠한 법률상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고 단지 사실상 또는 간접적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본안 전 항변을 하는 한편, 이 사건 경고는 그 사유가 존재하고 피고의 재량 범위 내에서 행해진 것으로서 적법하다고 주장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 요지 1.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 함은 원칙적으로 행정청의 공법상 행위로서 특정 사항에 대하여 법규에 의한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률상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으로 일반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어떠한 처분의 근거나 법적인 효과가 행정규칙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처분이 행정규칙의 내부적 구속력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적인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으로 그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면, 이 경우에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2. 검찰총장이 사무검사 및 사건평정을 기초로 「대검찰청 자체감사규정 (대검찰청훈령)」 제23조 제3항, 「검찰공무원의 범죄 및 비위 처리지침 (대검찰청예규)」 제4조 제2항 제2호 등에 근거하여 검사에 대하여 하는 경고는 일정한 서식에 따라 검사에게 개별 통지를 하고, 이의신청을 할 수 있으며, 검사가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으면 1년 이상 감찰관리 대상자로 선정되어 특별관리를 받을 수 있고, 경고를 받은 사실이 인사자료로 활용되어 복무평정, 직무성과급 지급, 승진·전보인사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향후 다른 징계사유로 징계처분을 받게 될 경우에 징계양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검사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3. 검찰총장의 경고는 「검사징계법」에 따른 징계처분이 아니라 「검찰청법」 제7조 제1항, 제12조 제2항에 근거하여 검사에 대한 직무감독권을 행사하는 작용에 해당하므로, 검사의 직무상 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하지 않아 「검사징계법」에 따른 징계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징계처분보다 낮은 수준의 감독조치로서 경고를 할 수 있고, 법원은 그것이 직무감독권자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Ⅲ. 대법원 판결의 쟁점 1. 항고소송의 대상적격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은 본안전 판단사항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 즉, 처분성 유무에 관한 문제인바, 행정소송법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대하여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 참조). 이에 관하여 대법원은 행정청의 어떤 행위를 처분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추상적, 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구체적인 경우 처분은 행정청이 공권력의 주체로서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관련 법령의 내용 및 취지와 그 행위가 주체·내용·형식·절차 등에 있어서 어느 정도로 행정처분으로서의 성립 내지 효력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 여부, 그 행위와 상대방 등 이해관계인이 입는 불이익과의 실질적 견련성, 그리고 법치행정의 원리와 당해 행위에 관련한 행정청 및 이해관계인의 태도 등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5두4397 판결 등 참조),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 함은 원칙적으로 행정청의 공법상 행위로서 특정 사항에 대하여 법규에 의한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적인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으로 그 상대방의 권리 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았다(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1두3532 판결 등 참조). 한편, 대법원은 이 사건 경고와 유사한 행정청의 행위와 관련하여, 군수의 불문경고(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1두3532 판결 참조)나 금융감독원장의 문책경고(대법원 2005. 2. 17. 선고 2003두14765 판결 참조)에 대하여는 표창공적의 사용가능성을 소멸시키고 인사기록카드에 등재되어 표창 대상자에서 제외되거나 임원이나 대표자 선임에서 제외되는 효과 등이 있다는 이유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금융감독원장의 문책경고(상당)(대법원 2005. 2. 17. 선고 2003두10312 판결 참조), 교육장의 경고(대법원 2004. 4. 23. 선고 2003두13687 판결 참조), 장관의 경고(대법원 1991. 11. 12. 선고 91누2700 판결 참조) 등에 대하여는 경고사실이 인사기록부에 기록·유지됨으로 인하여 다른 기관에 취업함에 있어 지장을 받는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상의 불이익에 불과하다거나 경고를 받은 자에게 상위권 평점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상 또는 간접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이유 등으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는 이 사건 경고를 받으면 감찰관리 대상자로 선정되어 특별관리를 받을 수 있고, 인사자료로 활용되어 승진·전보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향후 다른 징계양정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이 사건 경고를 받은 자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생각건대, 경고, 불문경고, 문책경고 등은 그 명칭에 불구하고 모두 행정처분으로 인식될 정도의 외형을 갖추고 있고, 징계에는 해당되나 다른 사유를 감안하거나, 징계를 표창 등을 이유로 감경하거나, 과오는 인정되나 징계를 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는 경우 등에 하는 행정청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그 영향에 있어서 향후 인사 상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피고의 본안 전 항변에 대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판시는 타당하다. 2. 처분의 근거 가. 처분의 근거와 항고소송의 대상적격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은 본안 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행정청의 어떠한 처분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문제이고, 처분의 근거 등 처분의 적법성은 해당 처분에 대하여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이 인정된 후에 본안에 들어가서 판단할 문제이다. 그래서 어떠한 처분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그 처분 근거의 적법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서 관계가 없다(김용섭, “2021년 행정법(Ⅰ) 중요판례평석”, 인권과 정의 통권 제504호, 2022, 83면; 김중권, “불문경고조치의 법적 성질과 관련한 문제점에 관한 소고”, 인권과 정의 통권 제336호, 2004, 133면 참조). 그런데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어떠한 처분의 근거나 법적인 효과가 행정규칙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처분이 행정규칙의 내부적 구속력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적인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으로 그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본안 전 판단 사항인 항고소송의 대상적격과 본안 판단 사항인 처분의 근거는 별개의 문제로 관계가 없는데도 이들을 결부시킨 것은 문제가 있고, 처분의 근거가 행정규칙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시한 것은 법률유보의 원칙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 나. 처분의 근거와 법률유보의 원칙 법률유보의 원칙이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와 그 밖에 국민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행정작용은 법률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행정기본법 제8조 참조). 여기서 행정작용의 권한을 수권하는 법률로는 조직규범만으로는 부족하고 작용규범이 있어야 한다(대법원 2005. 2. 17. 선고 2003두14765 판결 참조). 이러한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반된 처분은 위법하다. 그런데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이 사건 경고를 「검찰청법」 제7조 제1항 및 제12조 제2항에 근거하여 검사에 대한 직무감독권을 행사하는 작용에 해당한다고 봄으로써 위 「검찰청법」의 규정을 이 사건 경고의 법적 근거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위 규정은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행하는 일반적인 지휘·감독에 관한 규정으로, 이 사건 경고에 대한 작용법적 근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위 규정을 이 사건 경고의 법적 근거로 인정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판시 부분은 문제가 있다. Ⅳ. 맺음말 경고이든 불문경고이든 그것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이 사건 경고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부분은 타당하다. 그러나 「검찰청법」의 일반적인 지휘·감독에 관한 규정은 이 사건 경고에 대한 작용규범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위 규정을 이 사건 경고에 대한 작용법적 근거로 인정한 부분은 특별권력관계론에 따른 법률유보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염두에 둔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위 원칙에 대한 심리가 미진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 입법론적으로 본다면 이 사건 경고와 같이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정작용에 대하여는 그에 대한 명확한 작용법적 근거를 법률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철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경고처분
검사징계
대검찰청
직무상위반
이철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2023-05-28
민사소송·집행
부동산·건축
유치권 제도의 불합리성 및 이에 대한 법원의 태도 변화
1. 사실관계 정리 및 원심 판단 피고들은 이 사건 경매절차의 집행법원에 ① 피고 B는 이 사건 부동산 중 4층, 5층 공사와 관련한 2억8000만 원 및 증축 관련하여 2억6000만 원의 공사대금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유치권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유치권 신고서를 ② 피고 C는 이 사건 부동산과 관련한 3억5300만 원의 공사대금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유치권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유치권 신고서를 각 제출하였으나, 피고들은 이 사건 부동산 중 점유하는 부분이나 유치권의 범위를 특정하는 내용을 기재하지는 않았다. 원고는 피고들이 이 사건 부동산 전부에 대하여 유치권을 신고한 것을 전제로 "피고들의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유치권이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한다"라는 청구취지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고, 피고들은 이 사건 부동산의 등기부와 현황이 일치하지 않아 현황을 기준으로 하면 피고 B가 이 사건 부동산 4층, 5층 전부와 7층, 8층 각 일부를, 피고 C는 이 사건 부동산 중 2층, 3층 각 일부를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원심 역시 피고들이 점유하는 부분을 대체로 일치하게 인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위와 같이 '일부 점유'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유치권 부존재확인 청구 '전부'를 기각시켰다. 2. 대법원 판단 대법원에서는 위와 같이 분명하게 점유가 구분되고 '일부분에 한'하여 점유하고 있음이 자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부동산 전체'에 대하여 피고들이 적법한 유치권자라고 판단한 원심에 관하여 이를 지적하면서 파기 환송 판결을 선고하였다. 즉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의 취지는 유치권자의 일부 점유가 인정된다면 그 일부 인정되는 점유를 특정하여 판단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존재확인 소송이라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3. 평석(유치권과 관련된 대법원의 판결 흐름과 이유) 1) 유치권은 사실상 담보물권의 기본질서를 흔들고 있는 제도이다. 우리 법에서 유치권제도는 권리자에게 그 목적인 물건을 유치하여 계속 점유할 수 있는 대세적 권능을 인정한다(민법 제320조 제1항, 민사집행법 제91조 제5항 등 참조). 그리하여 소유권 등에 기하여 목적물을 인도받고자 하는 사람은 유치권자가 가지는 그 피담보채권을 만족시키는 등으로 유치권이 소멸하지 아니하는 한 그 인도를 받을 수 없으므로 실제로는 그 변제를 강요당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우리 법상 저당권 등의 부동산담보권은 이른바 비점유담보로서 그 권리자가 목적물을 점유함이 없이 설정되고 유지될 수 있고 실제로도 저당권자 등이 목적물을 점유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따라서 어떠한 부동산에 저당권 또는 근저당권과 같이 담보권이 설정된 경우에도 그 설정 후에 제3자가 그 목적물을 점유함으로써 그 위에 유치권을 취득하게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저당권 등의 설정 후에 유치권이 성립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유치권자는 그 저당권의 실행절차에서 목적물을 매수한 사람을 포함하여 목적물의 소유자 기타 권리자에 대하여 위와 같은 대세적인 인도거절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실제 경매절차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으로 부동산유치권은 대부분의 경우에 사실상 최우선순위의 담보권으로서 작용하여 유치권자는 자신의 채권을 목적물의 교환가치로부터 일반채권자는 물론 저당권자 등에 대하여도 그 성립의 선후를 불문하여 우선적으로 자기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유치권의 성립 전에 저당권 등 담보를 설정받고 신용을 제공한 사람으로서는 목적물의 담보가치가 자신이 애초 예상·계산하였던 것과는 달리 현저히 하락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유치권제도는 '시간에서 앞선 사람은 권리에서도 앞선다'는 담보물권의 최우선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담보물권의 기본질서가 유치권이라는 물권으로 인하여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대법원 2011. 12. 22. 선고 2011다84298 판결). 2)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대법원은 유치권의 성립범위를 해석을 통해서 제한하여 왔다. 유치권이라는 제도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실무적으로는 사실상 담보물권의 기본질서를 흔들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은 부득이 해석을 통하여 그 범위를 제한하여 왔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대법원 2005. 8. 19. 선고 2005다22688 판결 사건에서 강제경매개시결정의 기입등기가 경료된 이후 발생된 유치권에 관하여는 그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바 대법원은 그 논거로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의 처분행위를 가지고 채권자 및 낙찰자에 대항할 수 없다는 조항(민사집행법 제83조 제4항, 제92조 제1항)을 인용하여 강제경매개시결정의 기입등기가 경료되어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 부동산의 점유가 이전되어 유치권을 취득한 경우 처분금지효에 반하는 처분행위로 해석하여 유치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유치권자가 부동산을 점유하는데 있어서 채무자의 법률행위 개입은 거의 또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치권 성립을 채무자의 처분행위로 간주하여 낙찰자에 대하여 대항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위 판결은 채무자가 점유를 이전한 경우이지만 실무에서는 채무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유치권자의 점유가 개시되게 된다). 그리고 실무에서 유치권자들은 대부분 경매 개시 이후에 점유를 시작하기 때문에 유치권 사건의 거의 70% 이상이 본 대법원 판례로 유치권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대법원 2012. 1. 26. 선고 2011다96208 판결에서는 유치권의 성립요건 중 견련관계에 관하여 건축 공사와 관련된 채권 중에 "건물 '자체'에 관하여 생긴 채권"만이 견련관계가 인정되는 채권으로 한정하여 해석함으로써 유치권의 성립범위를 극단적으로 줄였다. 채권자가 시멘트와 모래 등 건축자재를 공급하여 해당 건축 자재가 사용되어 건물에 부합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히 시멘트와 모래를 납품한 것, 즉 말 그대로 '매매대금 채권(해당 판례에서는 이와 같이 표현)'에 불과하고 건물 자체에 생긴 채권은 아니라고 판단함으로써 결국 견련관계가 인정되는 채권의 범위를 건물 '자체'의 물리적 가치 상승에 일조한 채권으로 한정하여 견련관계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판단한 것이다. 3) 이러한 기조에서 대상판결은 대법원 2013다99409 판결과 더불어 유치권 '부존재확인'소송의 불합리성을 해결한 판례로서 대상판결 역시 유치권자에게 불리하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유치권 부존재 확인 소송이 제기되었을 경우 ① 유치권자가 주장하는 '금액' 중 일부가 인정되는 유형 ② '점유'의 일부가 인정되는 유형 두 가지가 있었다. 종래의 법원은 소송물 자체가 유치권이라는 점, 더 나아가 유치권은 불가분성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부만 인정되더라도 피담보채무의 범위 또는 점유의 범위에 따라 유치권의 존부나 효력을 미치는 목적물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닌 점 등을 이유로 유치권의 피담보채권이나 점유의 구체적인 범위에 관하여 판단하지 않고 유치권을 인정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금액이나 점유 중 일부가 인정되면 유치권 부존재 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를 선고하였는바 극단적으로 유치권자가 주장하는 수억 원의 공사대금채권 중 단 1원이라도 인정된 경우 유치권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패소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였고 실제로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3다99409 판결이 나오기까지 모두 유치권 부존재 확인청구를 기각시킨 것이다(서울고법 2013. 11. 15. 선고 2013나13421판결 등 다수). 또한 점유 역시 마찬가지로 유치권자가 일부만 점유하고 있더라도 유치권이 존재한다는 점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이유로 전부패소 판결을 선고한 것이고 이러한 판단이 대상판결의 원심이었다. 그 이후 유치권자의 일부 '금액'이 인정될 경우와 관련하여 이미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3다99409 판결에서 정리하였는바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유치권 전부의 부존재뿐만 아니라 이 사건 경매절차에서 유치권을 내세워 대항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하는 유치권의 부존재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 등의 이유로 대법원은 금액이 부정되는 부분에 하여 일부패소의 판결을 하여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어느 정도의 불합리한 부분은 해소되었다. 결국 유치권 부존재 확인 사건에서 '일부 점유'가 인정될 경우 어떻게 판결 선고를 하여야 하는지 문제가 남아 있었고 대상판결에서 이를 정리하였던 것이다. 4. 결어 대상판결은 '금액'과 관련된 유치권 부존재확인판결(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3다99409)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대법원은 어찌되었든 유치권 부존재확인 소송의 형태라고 하더라도 일부 인정된 부분만큼만 유치권을 인정하여야 할 뿐 원고의 유치권 부존재확인 청구 전부를 기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 하급심 판례가 들고 있는 법리는 유치권의 불가분성 조항(민법 제321조)이었는 바 유치권 즉 담보물권의 불가분성은 일부 점유를 하더라도 그가 주장하는 유치권 금액 전부에 관하여 주장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서 위 조항이 관련 판결이나 대상판결에는 적용될 여지는 없다. 대상판결로서 유치권부존재확인판결의 불합리성은 모두 정리되었고 그에 더하여 대법원의 유치권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취지 역시 명확해졌다고 보인다. 권형필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경매
유치권
일부점유
권형필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2020-12-24
조세·부담금
명의를 빌린 공급 상대방에 발급한 세금계산서와 매입세액 공제
I. 도입 부가가치세법 제39조 제1항 제2호는 공급의 상대방이‘발급 받은 세금계산서에 필요적 기재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가 사실과 다르게 적힌 경우의 매입세액'을 공제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실제 발생한 매입세액이 세금계산서 기재 미비로 불공제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결과는 매출 자체에 대한 과세이고 납세자에 큰 불이익이 된다. 여기에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이 평석의 목적은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16두62726 판결을 대상으로 이러한 논의를 확장해 보는 것이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타인의 명의를 빌린 공급 상대방에 발급한 세금계산서와 매입세액 공제, 조세법연구 제26권 제2호(2020. 8), 91면 이하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II. 대상판결 1. 사실관계 광고대행업을 하는 원고회사는 직원의 이름을 빌려 사업자등록을 하고 세금계산서 발급이나 부가가치세 신고도 하였다. 2. 쟁점 부가가치세 납세의무는 거래가 실질 귀속하는 원고회사에 생긴다. 과세관청은 원고회사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면서 세금계산서에 직원 이름이 적혔다는 이유로 매입세액을 불공제하였다. 기재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는 거래 상대방의 성명·명칭과 사업자등록번호로 쟁점이 또 나뉜다. 3. 판결 요지 (1) 대법원은 공급 상대방의 성명 등이 임의적 기재사항에 불과하여 사실과 다르더라도 매입세액은 공제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공급하는 사업자의 성명 등이 필요적 기재사항인 것과 구별하는 입장이다. (2) 사업자등록번호의 쟁점에서는 사업의 실질적 주체가 원고회사이므로 등록번호를 누구 이름으로 받든 달리 혼동의 우려가 없는 한 이는 원고회사의 것이라고 한다. 결국 사업자등록번호는 사실과 다르지 않고 성명 등이 잘못 적힌 것은 불공제 사유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파기환송, 원고승소 취지). III. 평석 1. 논의의 배경 매입세액이 불공제되면 부가가치세는 이제 '부가가치'가 아니라 매출에 대한 세금이다. 그만큼 이는 예사롭지 않은 조치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고 또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많다. 대상판결도 그러한 논의의 연장이다. 2. 첫 번째 쟁점 (1) 도입 대상판결은 세금계산서 기재사항 특히 공급하고 받는 사업자에 관한 법의 문구에서 결론을 끌어낸다. 그러나 문언의 차이가 반드시 결론의 다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의 제도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2) 세금계산서 제도의 의의 '실체적' 측면에서 볼 때 부가가치세의 핵심은 각 사업자 단계의 '부가가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다. 이는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공제함으로써 달성된다. 그런데 현실의 법은 나아가 납세의무를 지는 사업자들에게 일정한 협력의무를 지운다. 사업자등록과 세금계산서 수수가 그것이다. 과세행정을 위한 것이지만 법은 위반이 있으면 매입세액 불공제의 불이익으로써 아예 '핵심'을 건드린다. 현실의 세제는 세금계산서를 그만큼 중요히 여긴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과세관청의 '납세자 간 상호검증'과 '소득세 등 세원포착'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이 제도의 의의라고 하고(대법원 2002두5771 전합 판결) 대상판결도 같다. 곧 매입세액 공제의 판단에도 이러한 '상호검증'과 '세원포착'의 고려가 필요하다. (3) '비례의 원칙' 필요적 기재사항 중 하나라도 사실과 다르면 기재된 매입세액을 전혀 공제할 수 없다 함이 과세실무의 기본태도이다. 그러나 필요적 기재사항도 다양하므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혔다 해도 세금계산서의 기능을 해치고 과세행정에 어려움을 야기하는 정도는 같지 않다. 기재된 작성일이 실제와 다르더라도 일정한 경우 매입세액을 공제하는 시행령 규정(제75조 제3호)은 이를 감안한 사례이다. 또 공급하는 사업자가 '사실과 다르게' 적혔다는 사실에 상대방이 선의·무과실이면 공제가 가능하다는 오랜 판례(대법원 83누281 판결)는 당사자들의 관여 정도를 감안한다. 즉 '사실과 다르다'고 늘 공제를 일절 불허하지는 않는다. 이때의 매입세액 불공제가 담세력과 무관한 일종의 제재이므로 '비례 원칙'의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가 '상호검증'이나 '세원 포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개별적 검토의 필요가 있다. 또 그러한 정도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는 입법이나 해석에 타당성이 있음도 물론이다. 반대로 공제를 허용하는 몇몇 경우가 법에 존재하므로 그밖에는 늘 공제를 불허해도 비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많다. 또 예외조항의 경우 말고도 고려할 만한 사정이 다양하므로 비례 원칙에 따른 추가적 입법이나 해석론이 필요한 공간이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대상판결도 그러한 인식과 관련을 맺는다. (4) 구체적 검토 1) '상호검증' 측면 이쪽에서 매입세액으로 공제 받은 금액과 저쪽에서 매출세액으로 신고한 금액이 같은지 맞추어 보는 일이 '상호검증'이다. 이때 공급하는 사업자와 상대방을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2) '세원포착' 측면 '세원포착'이란 숨어 있는 납세의무자를 찾아낸다는 의미일 터이다. 매입세액 공제를 미끼로 공급 상대방이 공급자로부터 제대로 된 세금계산서를 수수하게 함으로써 공급자의 납세의무가 드러나도록 유도한다. 여기서는 공급 상대방보다 공급자의 정보가 충실하게 세금계산서에 담기는 것이 중요하다. (5) 소결론 세원포착의 측면에서 공급자에 관한 정보와 공급 상대방의 정보가 제대로 적히지 않은 세금계산서 중 전자가 세금계산서 제도에 더 큰 해를 끼친다. 즉 둘을 달리 취급하는 대상 판결의 결과는 정당화될 수 있다. 3. 두 번째 쟁점 (1) 도입 대상판결은 사업자등록번호의 문제에서 판단의 주요기준으로 세금계산서에 적힌 공급 상대방의 '사업'이 누구의 것을 가리키는지 따진다. '사업'이 실질 사업자의 것이라면 직원에 부여된 등록번호도 경우에 따라 실질 사업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2) 관련 판결 이러한 명의차용에 관하여는 먼저 나온 대법원 2014도14990 판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세범처벌법 적용이 쟁점인 이 형사판결은 이때 부가가치세와 관련된 모든 행위는 명의 차용인에 귀속된다고 본다. 즉 비록 다른 사람의 명의로 할지언정 사업자등록번호를 부여 받거나 세금계산서를 수수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이러한 차용인의 것이다. (3) 판례 입장의 분석 이러한 입장은 대상판결에 이어진다. 명의대여인 고유의 사업과 혼동될 우려가 없다면 원고회사는 본래의 사업자등록번호와 명의를 빌려서 받은 번호를 모두 자기 것으로서 갖고 있다는 결론이다. 물론 그러한 혼동 가능성의 유무는 법원이 개별 사건에서 판단할 일이다. (4) 검토 이 문제를 세금계산서의 기능과 연관시켜 살펴 보자. 직원에 부여된 사업자등록번호라 해도 공제된 매입세액과 신고된 매출세액의 상호검증에 별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다. 또 공급자는 제대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세원포착에도 어려움이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도 대상판결의 결론은 정당화된다. 다만 이때 원고회사가 직원 이름으로 매출 세금계산서를 발급한다면 이는 '사실과 다른' 것이고 판례(대법원 2016두43077 판결)에 따를 때 공급 상대방의 매입세액 공제로 이어질 수 없다. 이 비대칭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 법의 문구만으로 이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추가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IV. 맺음말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 문제에서 현재의 법이나 실무가 너무 경직되어 있다는 비판은 흔하다. 부가가치세 도입 초라면 몰라도 모든 면에서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현재에도 그러한 태도가 계속되고 있음은 의문이다. 게다가 가산세와 형사처벌까지 있어서 종종 가혹한 결과가 생기고 탄력적 운용도 쉽지 않다. 공제의 범위를 넓힌 대상판결은 이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나아가 비례 원칙을 현실에서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일반론의 정립이 필요하다. 특히 더 넓은 시각에서 관련된 정황에 따라 결론을 달리할 수 있는 입법·해석론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 사실 그러한 논의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닫아 버린다는 점에서도 현재의 '경직'된 법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다. 대상판결이 그러한 이론 정립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라 평가한다면 그 의미와 영향은 앞으로도 계속 논의할 가치가 있다. 윤지현 교수(서울대 로스쿨)
세금계산서
부가가치세법
국세기본법
윤지현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0-11-30
민사일반
‘재판상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
1. 사실 및 논점 (1) 원고는 수원지방법원 2003가합15269호로 피고를 상대로 원고가 피고에게 1997년 2월 말경 6,000만 원, 1997년 4월 초경 1억 원을 각 대여하였다고 주장하며 대여금 1억 6,000만 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청구를 하여, 2004년 11월 11일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선고받고 2004년 12월 7일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원고는 2014년 11월 4일 위 대여금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후 소로서 피고를 상대로 1억 6,000만 원 및 그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이행의 소를 제기하여 원심은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2)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대한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직권으로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후 소의 형태에 관하여 살펴보았는데 이것이 논점이다. 2. 대법원판결이유의 요지 (1) 다수의견의 요지 채권자가 전소로 이행청구를 하여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후 그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후 소를 제기하는 경우, 후 소의 형태로서 항상 전소와 동일한 이행청구만 시효중단사유인 ‘재판상의 청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시효중단을 위해서 오로지 전소와 소송목적이 동일한 이행소송만 제기되어야 한다면 채권자가 실제로 의도하지도 않은 청구권의 존부에 관한 실체 심리가 진행됨으로써 채무자는 전소 판결에 대한 청구이의사유를 조기에 제출하지 아니할 수 없어 법원은 이에 관하여 불필요한 심리를 하여야 하며, 채무자는 중복된 이행판결로 말미암은 이중집행의 위험에 노출되고, 실질적인 채권의 관리·보전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채권자 또한 자신이 제기한 후 소의 적법성이 10년의 경과가 임박하였는지 여부라는 불명확한 기준에 의해 좌우되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효중단을 위한 후 소로서 이행소송 외에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 즉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채권자는 위 두 가지 형태의 소송 중 자신의 상황과 필요에 보다 적합한 것을 선택하여 제기할 수 있는 편익이 생긴다. (2) 소수의견의 요지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再訴)로서 이행소송과 함께 해석을 통하여 다른 형태의 소송을 허용하고자 한다면, ‘청구권 확인소송’으로 충분하다. 입법을 통하여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도입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이를 법률의 해석을 통하여 받아들일 수는 없다. 청구권 확인소송은 전소 판결의 소송목적이자 전소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 그 자체를 대상으로 확인을 구하는 소송이다. 청구권 확인소송과 비교하여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큰 이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리적 측면에서도 청구권 확인소송을 허용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는 반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는 확인의 이익을 비롯하여 법리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적지 않다. 3. 논점의 전개 (1) 상고심의 심리범위 대법원이 판단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상고이유에 대한 것이 아니고 직권으로 판단한 것이므로 상고심의 심리범위에 속하는지 문제된다. 그러나 상고심에서도 직권심리사항에 관해서 사실심리가 가능한 이상(제434조)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후소의 형태가 중복된 소제기의 금지원칙(제259조)의 적용범위 문제라고 한다면 직권심리가 가능하다할 것이다. 따라서 위 대전판은 상고기각의 결론을 달리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 시효중단사유로서의 재판상의 청구 민법 제170조 제1항은 재판상의 청구는 소송의 각하, 기각 또는 취하의 경우에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할 뿐 청구인용판결의 경우에는 그 종류를 물어서 시효중단의 효력을 부정하지 아니하므로 이행소송 이외에도 확인소송이 청구인용판결로 되었다면 당연히 시효중단의 효력이 있다. 문제는 재판상 청구가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할 수 있느냐이다. (3)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확인의 이익 재판상청구가 있으면 소멸시효가 중단된다는 점은 민법 제168조 제1호와 민법 제170조 제1항의 사유이므로 재판상 청구가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것은 위 민법규정의 확인을 구하는 것에 다름이 없으므로 원칙적으로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할 것이다. 판례는 민법 제211조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원고가 소유자인 피고에게 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물건에 관하여 소유권의 핵심적 권능에 속하는 배타적 사용·수익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소극적 확인주장은, 법적 3단 논법의 대전제인 물권법정주의(민 제185조)의 적용을 받는 민법 제211조라는 법규에 대한 확인을 구하는 것이므로 그 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이 없다(대판 2012. 6. 28. 2010다81049 참조)고 하였다. (4) 청구권확인소송의 문제점 채권자가 전소로 이행청구를 하여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후 재차의 이행청구소송이나 확인소송이 허용되는 이유는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해서이다. 따라서 시효중단 목적이 없는 중복된 이행청구소송이나 청구권확인소송은 2중 제소 금지원칙에 위반되어 부적법한 것이다. 따라서 청구권확인소송은 시효중단을 위한 범위에서만 확인의 이익이 있으므로 그렇지 않은 청구권확인소송은 허용되기 어렵다. (5) 시효중단을 위한 확인소송 원고가 이미 확정력 있는 집행권원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집행권원의 범위에 관하여 다툼이 없는 한 새로운 소를 제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부적법하다. 또한 소제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더 간단한 시효중단 방법이 있을 경우, 예컨대 임의경매신청 등으로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는 경우(대판 1991.12.10. 선고 91다17092 참조) 등에는 동일한 소송목적에 대한 소의 반복 제기를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소멸시효의 완성이 임박하고, 소제기보다 간편한 민사집행의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시효중단을 위한 확인소송을 허용하여야 하며, 그 경우의 확인소송은 확인의 이익이 부존재하는 부적법한 확인소송도 허용하여야 할 것이다. 독일 연방통상대법원(BGH) 판례에 따르면, 부적법한 확인하는 소라고 하더라도 실질적 권리자에 의해서 제기되는 한(BGH NJW 2010, 2270 Rn. 38; BeckOK ZPO/Bacher, 31. Ed. 1.12.2018, ZPO § 256 Rn. 13.2.),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중단된다(BGH NJW-RR 2013, 992 Rn. 28; NJW 2004, 3772; BeckOK ZPO/Bacher, 31. Ed. 1.12.2018, ZPO § 256 Rn. 13.2.)고 하였다. 다만 채권이 단지 도산절차에서의 신청에 의해서만 회수될 수 있을 때에는, 확인하는 소로 소멸시효를 중단할 수 없다고 한다( BGH NJW-RR 2013, 992 Rn. 28; BeckOK ZPO/Bacher, 31. Ed. 1.12.2018, ZPO § 256 Rn. 13.2.). 4. 결론 (1) 결국 우리 대법원 판결의‘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독일 판례상 ‘시효중단을 위한 확인소송’과 같다고 평가할 수 있으므로 입법사항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확인소송의 기능은 분쟁의 예방에 있는데 시효중단을 위한 확인소송이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소멸시효에 관한 분쟁해결 기능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법률관계의 분쟁에 관한 확인소송이 아니어서 부적법하다고 하더라도 시효중단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허용할 필요가 있다. (2) 다만 법률상 확인소송으로서는 부적법하므로 이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소멸시효완성의 임박성이나 소제기보다 간단한 민사집행 방법이 부존재하다는 보충성의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여 영구적으로 소멸하지 않는 채권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대전판 2018.7.1., 2018다22008의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각종 채권추심기관의 난립과 횡행을 부추겨 충분한 변제능력이 없는 경제적 약자가 견뎌야 할 채무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지는 사회적 문제가 따르게 때문이다. 대상판결은 시효완성의 임박성이 있는 시점에 시효중단을 위해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하지만 소제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더 간단한 시효중단 방법이 있는 지 등 민사집행 방법의 부존재 요건을 살피도록 설시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강현중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대여금
지연손해금
소멸시효
강현중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2019-02-18
민사일반
준거법의 범위와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 대상판결: 대법원 2016.3.24. 선고 2013다81514 판결 - I. 대상판결의 요지 당사자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계약 당사자는 어느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거나 그중 특정 조항이 당해 계약에 적용된다는 합의를 할 수 있고 그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소송절차에서 비로소 당해 사건에 적용할 규범에 관하여 쌍방 당사자가 일치하는 의견을 진술하였다고 해서 이를 준거법 등에 관한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II. 국제협약이 준거법의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의 당사자가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는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상인법(lex mercatoria 또는 law merchant)과 같은 국제적 관습, UNIDROIT 국제상사계약규칙(UNIDROIT Principles of International Commercial Contracts 1980)과 같은 법원칙 또는 국제물품매매협약(UN Convention on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과 같은 국제협약 등 비국가적 규범도 포함되는지 문제된다. 2. 논의의 실효성 비국가적 규범이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있다면 이는 ‘저촉법적 지정’이 되지만, 만일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없다면 당사자의 합의는 그러한 비국적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실질법적 지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촉법적 지정은 준거법의 지정이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적용은 배제되고 국제적 강행규정만이 적용된다. 그러나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경우에도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계약이 체결된 후에 법이 개정되었다면 개정된 법이 적용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개정되기 전의 법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그 적용이 배제된다. 또한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법원이 규범의 내용을 직권으로 조사해야 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편입된 법규가 계약의 내용이 되므로 당사자가 편입된 법규의 내용에 대하여 주장하고 증명할 책임을 부담한다. 3.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준거법은 특정국가의 법에 한정된다고 본다. 국제사법의 전반에서 언급하고 있는 ‘법’의 전통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는 특정국가의 법이고, 제5조에서 ‘법원은 이 법에 의하여 지정된 외국법’이라고 규정하고 제7조나 제33조 등에서 ‘대한민국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하여 보면 준거법은 외국법이거나 대한민국법으로서 특정국가의 법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준거법의 분열의 한계와 관련하여서 문제가 발생한다. ‘준거법의 분열’이란 하나의 법률관계의 실체적 내용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국제사법 제25조 제2항에서는 “당사자는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준거법의 분열을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 2016.6.23. 선고 2015다5194 판결에서는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만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 선택된 준거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영역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소위 객관적 준거법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비국가적 규범만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거나 비국가적 규범과 특정국가의 법을 모두 지정하는 경우 모두 준거법의 분열이 발생한다. 그러나 준거법의 분열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법의 내용에 차이가 있고, 한 국가의 국내법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동시에 적용되면 적용되는 법률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거나, 생소한 다른 국가의 제도를 국내의 제도에 맞춰야 하는 복잡한 적응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정된 복수의 준거법이 적용되는 부분이 다른 부분과 분리가능하여 상호 모순저촉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 내에서만 준거법의 분열이 허용된다. 그런데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한계를 완전히 무시하고서 준거법의 분열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국제협약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보건대, 위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깊은 고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저촉법적 지정은 할 수 없다고 본다. 참고로 우리의 국제사법의 바탕이 된 유럽공동체(EC)의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협약’(‘로마협약’) 에서는 당사자가 준거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위 로마협약을 개정한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규칙’을 제정되는 과정에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준거법은 특정 국가의 법으로부터만 도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아니하였다. III.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주요사실에 대하여만 변론주의가 적용되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는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실이 주요사실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상판결과 같이 준거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본다면 당사자가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주장 및 증명해야 비로소 법원이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당사자의 주장이 없는 한 법원이 직권으로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2.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1) 주요사실의 의미에 따른 비판 주요사실이라 함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체법상의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말한다(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 즉 권리와 의무의 발생, 변경, 소멸이라는 실체법적 효력을 가져오는 요건사실이 주요사실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지만 ‘절차법-실체법’과 ‘저촉법-실질법’이 대비되고 있는 바와 같이, 저촉법인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절차법과 실체법의 구분과 그 영역을 달리한다(석광현, ‘국제사법 해설’, 법문사, 2013, 4쪽). 그런데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보던지 저촉법으로 보던지 상관없이 국제사법이 실체법이 아니란 점은 명백하므로 국제사법 제25조에 따른 준거법의 지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2) 적용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국제적 분쟁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으로서는 당사자의 주장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이를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법에 따르면 계약에 적용되는 준거법은, 1차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지정한 국가의 법이 되고(제25조 제1항), 이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2차적으로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된다(제26조). 따라서 법원은 직권으로 계약의 1차적 준거법인 당사자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해야 한다. 게다가 대상판결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적용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이고,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는 적용할 법률을 결정하는 합의이므로, 법원은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하는데 있어서 당사자의 주장에 구속받지 아니한다. 덧붙여 대상판결은 당사자가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는 계약의 내용이 되고 계약의 내용은 주요사실이라는 이유로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를 주요사실로서 자백의 대상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당사자의 합의라고 하더라도 모두 주요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법원 판례에서는 소송상 합의인 부제소의 합의를 채권계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2다73821 판결), 이러한 부제소의 합의가 소송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따라서 당사자의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까지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IV. 결론 이상으로 대상판결과 달리, 사견에 따르면 국제협약을 포함한 비국가적 규범은 준거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의 존재는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서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대상판결 중 문제된 판시내용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채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른 아쉬움이 있다. 적지 않은 국제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좀 더 많은 국제사법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국제협약
준거법
국제사법
2017-02-20
원천징수처분취소소송에서 처분사유 추가·변경의 한계
Ⅰ. 사실관계 미국의 사모투자회사인 A의 미국 내 계열사인 B등은, 내국법인인 甲은행의 주식 9999만9916주(이하 '이 사건 주식')의 인수를 위하여 이 사건 주식의 인수에 투자할 펀드투자자를 모집하였고,그 결과 2000. 1. 14.경 영국령인 케이만 군도에 유한파트너십(Limited Partnership, 이하"LP")인 C가 설립되었다. C는 케이만 군도에 설립된 D의 주식을 100% 인수한 다음, D로 하여금 말레이시아라부안에 설립된 E의 주식을 100% 인수하게 하였고, 최종적으로 말레이시아 법인인 E를 통하여 우리나라 법인이 발행한이 사건 주식을 취득하였다. 한편 E는 2005. 4. 15. 원고에게 이 사건 주식을 1651억1475만6621원에 양도하여 이 사건 양도소득을 얻었는데,원고는 한?말레이시아조세조약제13조 제4항에 의하여 주식 양도소득은 양도인의 거주지국에서만 과세된다는 이유로 E에 이 사건 주식 양도대금을 지급하면서 그에 대한 법인세를 전혀 원천징수하지 아니하였다.이에 피고(과세관청)는 2006. 12. 18. E는 조세회피목적으로 설립된 명목상의 회사에 불과하고,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귀속자는C의 투자자 281명이므로, 이들 중 대한민국과 조세조약을 체결하지 않았거나 조세조약상 주식양도소득에 대하여 원천지국 과세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에 거주하는 총 8개국 40명의 투자자가 얻은 양도소득에 대하여 원고에게 원천징수분 소득세 430억1071만7520원을납세고지하는 처분을 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진행경과 및 판시내용 1.제1심판결 내지 상고심 판결의 판시내용 당초 대상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E인지(원고의 주장),아니면 C의 투자자인지(피고의 주장) 여부였다.이에 관하여제1심 및 항소심은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를C의 투자자로 보고 그들을 원천납세의무자로 하여 원고에게 원천징수분 소득세를 납세고지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09. 12. 30. 선고 2008구합17110 판결 및 서울고등법원 2010. 8. 25. 선고 2010누3826 판결). 그러나상고심은,E가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E와 C의 투자자 사이에 있는) C가 오로지 조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설립되어 이 사건 주식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할 능력이 없는 명목상의 영리단체에 불과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이하 "상고심 판결").즉, 상고심 판결은 C의 설립지인 케이만 군도의 법령 내용과 단체의 실질에 비추어 C를 법인세법상 외국법인으로 볼 수 있는지를 심리하여 이 사건 양도소득에 대하여 C를 원천납세의무자로 하여 법인세를 과세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C의 투자자를 원천납세의무자로 하여 소득세를 과세하여야 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환송하여, 사실상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C라는 취지로 판시하였다(대법원 2013. 7. 11. 선고 2010두20966 판결). 2.파기환송심판결 및 대상 판결의 판시내용 이러한경위로 인하여,파기환송심에서는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C의 투자자가 아닌 C라는 점 자체에 관하여는 원?피고 사이에 다툼이 없었다.대신피고는상고심 판결의 취지에 따라, 당초 이 사건 처분에서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 즉,원천납세의무자를 C의 투자자로 보았다가,C로 달리하는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하였다. 이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는피고의 이와 같은 처분사유 추가?변경이 가능한지 여부가 새롭게 쟁점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파기환송심 판결은 "세목은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에 해당하므로 원천징수하는 세금에 관한 처분취소소송에서 과세관청이 처분의 근거 세목을 소득세에서 법인세로 변경하는 것은 처분의 동일성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4. 1. 10. 선고 2013누23272 판결).이에 대하여 피고가 재상고하였는데,대상 판결은 파기환송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세목은 부과처분에서는 물론 징수처분에서도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봄이 상당하므로,당초의 징수처분에서와 다른 세목으로 처분사유를 변경하는 것은 처분의 동일성이 유지되지 아니하여 허용될 수 없다"라고 판시하여 피고의 재상고를기각하였다(대법원 2014. 9. 5. 선고 2014두3068 판결). Ⅲ. 대상판결의평석 1.처분사유 추가?변경의 허용범위(='처분의 동일성'='납세의무의 단위') 과세관청은 원칙적으로 처분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세처분 취소소송의 변론종결시까지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할 수 있다(대법원 1989. 12. 22. 선고 88누7255 판결).여기서 '처분의 동일성'이란 과세단위또는 납세의무의 단위(이하 통틀어 '납세의무의 단위')를 말하고(대법원 1992. 7. 28. 선고 91누10695 판결), 이는 원천징수처분 취소소송에서도 다르지 않다(대법원 1999. 12. 24. 선고 98두16347 판결). 여기서 '납세의무의 단위'란,일반적인 행정소송에서 처분의 동일성의 한계로 논의되는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과 구분되는 세법 특유의 개념으로,강학상으로는 개인단위, 부부단위, 가족단위 등 인적 요소가 결합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물적 요소로서 조세채무의 확정에 있어서 세목, 과세기간, 과세대상에 따라 다른 것과 구분되는 기본적 단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관련하여 대법원은 ①자산소득의 합산과세를 규정한 구 소득세법의 취지에 관하여 세대단위로 담세력을관념하는 것이 개인단위별 과세보다 생활실태에도 합당하다고 판시하여 납세의무의 단위를 인적 요소로 이해하기도 하고(대법원 1983. 4. 26. 선고 83누44 판결 등), ②재산세 등의 과세대상인 주택은 1구를 과세단위로 하여 과세대상으로서 구분된다고 하여(대법원 1991. 5. 10. 선고 90누7425 판결) 이를 물적 요소로 파악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③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일정한 기간을 과세단위로 하는 세목이라고 판시하여(대법원 1996. 2. 23. 선고 95누12057 판결) 이를 시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사례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 동안 이 사건 처분과 같은 원천징수처분에서는 납세의무의 단위가 무엇인지, 특히 과세관청이 소송에서 처분 당시와 비교하여 원천납세의무자를 달리하는 내용의 처분사유 추가?변경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하여는 명시적으로 판단한 바는 없었다. 2.원천징수처분에서의 '처분의 동일성' 범위에 관한 판단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사건상고심 판결과 같은 날 선고된 대법원 2011두7311 판결은(이하 '비교판결')원천징수처분의 취소소송에서 원천납세의무자를 달리하는 내용의 처분사유 추가?변경이 처분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였다.즉,비교판결은 '원천징수하는 법인세에서 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수령자가 누구인지는 원칙적으로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는 전제에서, "원천징수하는 법인세에 대한 징수처분 취소소송에서 과세관청이 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수령자(=원천납세의무자)를 변경하여주장하더라도그로인하여소득금액또는수입금액지급의기초사실이달라지는것이아니라면처분의동일성이유지되는범위내의처분사유변경으로서허용된다"라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은, 비거주자 및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은 강학상 완납적 원천징수의 대상이 되는 소득으로서 원천징수법률관계는원천징수의무자와과세관청사이에만존재하고 원천납세의무자와 과세관청 사이에는 직접적인 법률관계가 없는 점(대법원 1984. 2. 14. 선고 82누177 판결 등),원천징수하는 소득세 또는 법인세는 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을 지급하는 때에 이미 납세의무가 성립하는 동시에 확정되기 때문에(국세기본법 제21조 제2항 제1호 및 제22조 제2항 제3호)'실질적인귀속자'로서 사후적으로 확정될 수밖에 없는 원천납세의무자는 애당초 확정된 세액의 기초사실을 판단하는 요소에 포함될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론적으로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3.대상판결의 문제점 (1) 쟁점 비교판결의 판시내용을 대상판결에서도일관하면, 일응피고가 원천납세의무자를 종전 "C의 투자자"에서 "C"로 달리하는 처분사유 추가?변경이 허용된다고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다만 이 사건과 비교판결 사이에 존재하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는 비교판결의 법리가 이 사건 처분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즉, 비교판결과 이 사건은 과세관청이 케이만 군도에 설립된외국법인(LP)와 그 투자자 중투자자를 주식양도소득의 실질적인귀속자로 보아 원천징수처분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다만, 비교판결에서는 과세관청이 당초 투자자를'법인'으로 보아 법인(원천)세를 원천징수처분한 반면, 이 사건 처분에서는 투자자를'개인'으로 보아 소득(원천)세를 원천징수처분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비교판결에서는과세관청이 원천납세의무자를 'LP의 투자자'에서 'LP'로 달리하는 처분사유 추가?변경을 하더라도, 세목이 여전히 법인(원천)세가 되어 기존 납세고지서상 세목[=법인(원천)세]과 일치한다. 반면 이 사건 처분에서는과세관청이 원천납세의무자를 'C의 투자자'에서 'C'로 달리하는 처분사유 추가?변경을 하게 되면 세목이 법인(원천)세가 되어 기존 납세고지서상 세목[=소득(원천)세]과 불일치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천납세의무자가 원천징수처분의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가 아니고,법인세나 소득세나 동일한 소득과세의 일환인 이상 , 그 소득의 실질 귀속자에 대한 판단이 달라져 그에 따라 처분사유를 변경함에 있어 원천납세의무자의 법적 형식에 따라 자동적으로 뒤따를 뿐인 세목 또한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로 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원고는 종전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9. 12. 24. 선고 98두16347 판결 및 대법원 2001. 8. 24. 선고 2000두4873 판결)를 들어, 세목은 엄연히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세목이 달라지는 경우에는 아무리 원천징수처분이라고 하더라도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이 허용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결국 파기환송심에서는 비교판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천징수처분의 경우'세목'이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이다. (2) 일반적으로 '세목'이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인가? 학설 중에는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로 통상 과세기간, 장소, 소득구분 등을 열거하면서 본세와가산세는 별개라는 점을 예로 들어(대법원 1992. 5. 26. 91누9596 판결) 세목을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라고하거나 ,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로서 세목이 가장 중요하다는 등의 견해가 있다 .우리나라 세법 중 소득에 대하여 과세하는 세목인 소득세 및 법인세를 생각해보면, 납세의무자의 법적 성격이 개인인지 법인인지 여부에 따라 세목이 소득세 또는 법인세로 달라지고, 이에 따라 각각 소득세법 또는 법인세법이 적용되어 과세표준의 산정방법, 세율 등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직접 납세의무자에 대한 과세처분에 있어서 세목은 일응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라는 점에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러나 [국가-원천징수의무자-원천납세의무자] 3자 간의 법률관계가 문제되는 원천징수처분에서도이러한 논리가 그대로 관철될 수 있는지는 이와 구분하여 깊이따져볼 필요가 있다.앞에서도 언급하였다시피,원천징수처분에서는 부과처분과는 달리 애당초 "원천납세의무자"와 과세관청 사이에는직접적인 법률관계가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3) 원천징수처분에서의"세목"이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인가? 대상판결은 "세목"이 부과처분에서뿐만 아니라 원천징수처분에서도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판시하면서도 따로구체적인 설명을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대상판결의 결론은 이론적인 측면에서나 실무적인 관점에서나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면,이 사건에서 처분사유 추가?변경으로 인하여 세목이 소득세에서 법인세로 달라지더라도, 원천징수처분에서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인 "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지급에 관한 기초사실" 즉, 원고가 E로부터 2005. 4. 15. 이 사건 주식을 매수하고 그 대가로 1,651,104,756,621원을 지급한 사실 그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소득세법이나 법인세법이나 모두 비거주자 또는 외국법인이 내국법인의 주식을 양도하여 얻은 소득에 대하여, 과세표준은 지급금액으로, 세율은 10%로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소득세법 제156조 제1항 제5호 및 법인세법 제98조 제1항 제5호),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으로 인하여 세목이 소득세에서 법인세로 달라지더라도 그 세액은 종전과 동일하다. 요컨대,이 사건에서는처분사유의 추가?변경에 따라 원천납세의무자가 C의 투자자에서 C로 달라지더라도 (법원에 의하여 실질과세의 원칙에 따라 사후적으로 확정된 원천납세의무자 및 그에 따른 세목을 제외하고는)원천징수의무를 발생시키는 이 사건 양도소득의 지급에 관한 기초사실,납세자(원천징수의무자),과세표준,세율,세액 중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이 점이 바로 납세의무자가 달라지면 납세자, 과세표준, 세율,세액이 모두 달라지는 부과처분과 확연히 구분되는 원천징수처분만의 특징이다. 또한 대법원이 발간한판례해설에 따르면, 일반 행정소송에서는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처분사유 추가?변경의 한계로 보는 반면, 조세소송에서는 '납세의무의 단위'를 처분사유 추가?변경의 한계로 설정함으로써 납세자의 소송상 방어권 보장보다는 분쟁의 일회적 해결을 더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납세의무의 단위'가'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보다는 그 범위가 더 넓은 개념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 대상판결과 같이 보게 되면 오히려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보다 '납세의무의 단위'를 더 좁게 보는 모순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대상판결이 과세관청의 처분사유 추가?변경으로 인하여 '기본적 사실관계'즉,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지급에 관한 기초사실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음에도불구하고 '납세의무의 단위'의 동일성은 부인함으로써, 분쟁의 일회적 해결보다는 납세자의 방어권 보장을 우선시한 결과를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법원에 의하여 사후적으로 확정될 수밖에 없는 국제조세법률관계에서 분쟁의 일회적 해결보다 납세자의 방어권 보장을 우선할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실무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세조약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도 실질과세의 원칙이 적용되는 이상(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0두11948 판결), 과세관청이 원천징수처분을 하면서 일응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최종적인 귀속자라고 보아 지목한 원천납세의무자는,대법원이 실질과세의 원칙을 적용하여 최종적으로 누구인지 확정하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여 언제든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즉, 여러 나라에 걸쳐 이루어지는 투자관계에 대하여 과세하는 국제조세에서는 국내원천소득의 '실질적인귀속자'를 찾는 과정이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대법원 스스로도 비교판결에서법원에 의하여 사후적으로 확정되는 원천납세의무자는 원천징수처분에서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하여 처분사유 추가?변경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돌이켜 보면, 세목은 원천납세의무자의 법적 성격에 따라 기계적?자동적으로 정하여지는 요소일 뿐이다. 따라서 위와 같이 국제조세에서 원천납세의무자의 변경가능성이 유보되어 있는 이상, 그에 따른 세목 또한 얼마든지 변경될 것이 예정되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한편으로는원천징수처분에서 "원천납세의무자"가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가 아니라고 하면서, 다시 '세목'이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가 된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으로, 이는 모처럼 심도 깊은 이론적?실무적 검토 끝에 선고한 비교판결의 적용범위를 크게 훼손?잠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법원 입장에서 볼 때 비교판결 및 대상판결에서과세관청이 원천납세의무자를 LP가 아닌 LP의 투자자로 보아 원천징수처분을 한 것은 똑같이 위법한처분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대법원이,비교판결과 같이 C의 투자자를 법인으로 보아 당초 법인세로 원천징수처분을 한 경우에는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허용하고,대상판결과 같이 C의 투자자를 개인으로 보아 당초 소득세로 원천징수처분을 한 경우에는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불허하는 것은,원천징수처분 당시 (궁극적으로 원천납세의무자도 아닌) C의 투자자들의 법적 성격이 무엇이었냐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원천징수처분의 위법성을가르는 것이어서 부당하다. 더군다나 과세실무상 현실적으로 사모펀드의 최종투자자의 지분비율, 국적까지는 알 수 있어도 그 법적 성격이 개인인지 아니면 법인인지 여부까지는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은 (미국과 같이 법인과 개인의 세목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실질적인귀속자를새로 지정하여 과세할 수 있는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과세주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것으로서 비교법적으로나 조세정책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Ⅳ.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천징수처분에서 원천납세의무자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하여지는 세목은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파기환송심에서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취지에 따라 과세관청이 원천납세의무자를 C로 달리하는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하는 것은 당연히 허용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은 부과처분과 구별되는 원천징수처분 법률관계의 특성에 대한 심도 깊은 검토 없이, 스스로 선고한 비교판결의 의의를 크게 훼손하면서 부과처분에서의 논의를 원천징수처분에 기계적으로 적용하였다는 측면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또한국제조세에서 원천납세의무자는 사후적으로 얼마든지 변경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고, 이 사건은 E가 국내에서 이 사건 주식을 양도함으로써 국내원천소득이 발생하여 우리나라에 과세권이 존재한다는 점 자체에는 의문이 없는 사안임에도, 대상판결이 단지 세목이라는 과세처분의 형식만을 이유로 수백억 원에 이르는 과세권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글로벌 세수전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요즘, 다른 나라의 법원이라면 과연 어떤 판결을내렸을까?
2015-04-07
진보성이 부정되는 특허권에 기초한 금지청구의 가부
1. 판결의 요지 특허발명에 대한 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특허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되어 그 특허가 특허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하고, 특허권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으로서도 특허권자의 그러한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항변이 있는 경우 그 당부를 살피기 위한 전제로서 특허발명의 진보성 여부에 대하여 심리·판단할 수 있고, 이와 달리 신규성은 있으나 진보성이 없는 경우까지 법원이 특허권 또는 실용신안권침해소송에서 당연히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1992. 6. 2.자 91마540 결정 및 대법원 2001. 3. 23. 선고 98다7209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2. 해설 가. 문제의 소재 특허법에 있어서도 여타의 법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법적 안정성'과 '정의'의 법이념은 늘 긴장관계에 있다. 즉, 특허청의 심사를 거쳐 설정등록된 특허권 및 그에 따른 법률관계의 안정성과 공공의 영역에 속하는 기술은 공중에게 돌려주어 특허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무효심판제도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특허법의 입법자는 무효심판제도를 도입함은 물론 특허권이 소멸한 후에도 무효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하고, 특허무효의 원칙적 소급효를 인정하는 결단을 하였는 바, 이는 법적 안정성보다는 정의를 더 우선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특허청이 심사절차를 거쳐 특허권을 부여해놓고 다시 다른 절차에서 그 특허를 무효로 하는 것을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특허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출원이었음에도 심사상의 한계나 착오로 인하여 특허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 특허권을 행사하여 공중의 자유실시를 제한하는 것 또한 산업발전의 이바지라는 특허법의 목적에 비추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보이고, 이러한 경우 법적 안정성은 특허정의에 한 발 양보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특허제도가 존재하는 한 특허무효심판 내지 소송이라는 후속적 장치는 논리필연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특허무효심판제도는 특허요건을 완벽하게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적인 이유와 특허청은 심사단계에서 특허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발명을 일차적으로 걸러내고, 특허가 부여된 후에 구체적이고 세밀한 영역에서는 이해관계인과 공중이 담당하여야 한다는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는 법경제학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러한 맥락에서 엄연히 별도의 특허무효심판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침해소송에서 해당 특허에 무효사유가 있음을 이유로 권리자의 청구를 배척할 수 있는지, 배척할 수 있다면 그 무효사유에 제한은 없는지 등에 관한 것이고, 이에 대하여는 과거로부터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나. 견해의 대립 침해소송에서의 '무효의 항변 허용 여부'에 대하여, 특허무효의 심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침해소송에서 특허가 무효이므로 침해로 되지 아니한다는 무효의 항변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부정설과, 침해소송에서 특허가 무효이므로 침해로 되지 아니한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긍정설이 대립하였고, 원칙적으로 부정설을 취하면서 신규성 또는 진보성을 결한 특허발명의 경우 권리범위해석론을 통하여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다. 기존 판례 (1) 대법원 1983. 7. 26. 선고 81후56 전원합의체 판결 "등록된 특허의 일부에 그 발명의 기술적 효과발생에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이 아닌 공지사유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 그 공지부분에까지 권리범위가 확장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등록된 특허발명의 전부가 출원 당시 공지공용의 것인 경우에도 특허무효의 심결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권리범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전부 공지인 경우 권리범위를 부정하였다. (2) 신규성 또는 진보성이 부정되는 경우의 주류적인 판례 대법원은 "특허법은 특허가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별도로 마련한 특허의 무효심판절차를 거쳐 무효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특허는 일단 등록이 된 이상 이와 같은 심판에 의하여 특허를 무효로 한다는 심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유효한 것이며, 법원은 위와 같은 특허를 무효로 할 수 있는 사유가 있더라도 다른 소송절차에서 그 전제로서 특허가 당연무효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고, 등록된 특허발명의 일부 또는 전부가 출원 당시 공지공용의 것인 경우에는 특허무효의 심결 유무에 관계없이 그 권리범위를 인정할 수 없다 할 것이나, 이는 등록된 특허발명의 일부 또는 전부가 출원 당시 공지공용의 기술에 비추어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소위 신규성이 없는 경우 그렇다는 것이지, 신규성은 있으나 그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선행기술에 의하여 용이하게 발명할 수 있는 것이어서 소위 진보성이 없는 경우까지 법원이 다른 소송에서 당연히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여 신규성이 없는 경우 그 권리범위를 인정할 수 없으나, 진보성이 없는 특허발명의 경우 침해소송에서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반면,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이 사건 등록고안을 물품의 형에 대한 기술적 고안 뿐만 아니라 그 고안의 용도, 사용가치나 이용목적 등 작용효과의 점까지 종합하여 고찰한다면 그 기술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인용고안으로부터 극히 용이하게 고안해 낼 수 있는 것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이 사건 등록고안은 실용신안법 제32조 제1항 제1호, 제4조 제2항에 의하여 그 등록이 무효라고 할 것이며, 그렇다면 (가)호 고안은 설사 이 사건 등록고안과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그 권리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고 하여 진보성이 없는 경우에도 권리범위를 부정한 판시를 한 적도 있었다. (3) 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0다69194 판결 대법원은 "특허의 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특허권침해소송을 심리하는 법원은 특허에 무효사유가 있는 것이 명백한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할 수 있고, 심리한 결과 당해 특허에 무효사유가 있는 것이 분명한 때에는 그 특허권에 기초한 금지와 손해배상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본 판결은 특허권침해소송에서 권리남용의 법리를 적용한 최초의 판결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위 판결은 과거의 판례와 달리 권리범위를 부정하는 단계를 거치지 아니하고 곧바로 권리남용이라고 판시하였고, 그 무효사유에 진보성이 없는 경우까지 포함하는지는 다소 불명확하였다. 그러나, 특허침해소송을 심리한 지방법원 및 고등법원은 대체로 위 판결에 따라 진보성이 없는 경우에까지 권리남용의 법리를 적용하여 판시하여 왔다. 라. 대상 판결의 의의 대상 판결은 우선, 특허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이전이라 하더라도 특허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되어 그 특허가 특허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여, 권리남용의 법리를 진보성의 영역에까지 명시적으로 확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 할 수 있다. 대상 판결에 따라 앞으로는 침해소송 본안 및 가처분 법원은 물론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도 진보성 결여로 특허무효사유가 존재한다는 항변이 있는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심리·판단할 것으로 예상되고 진보성이 없는 경우 별도로 특허무효심판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게 되어 소송경제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다음으로, 대상 판결은 소위 무효의 항변을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된다. 대상 판결이 "특허는 일단 등록된 이상 비록 진보성이 없어 무효사유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특허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한다는 심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대세적으로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한 점에 비추어 보건대, 특허가 무효이므로 침해가 아니라는 무효의 항변을 채택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한편, 대상 판결이 공지기술제외설에 입각하고 있는지는 다소 불명확하지만, 기존의 판결들이 신규성의 영역에서 "특허무효의 심결 유무에 관계없이 그 권리범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반면, 대상 판결에서는 이러한 설시 없이 곧바로 권리남용의 법리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는바, 이는 공지기술제외설 등의 권리범위해석론으로 해결하려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마. 대상 판결의 문제점 대상 판결은 위와 같이 중요한 의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첫째, 신규성 및 진보성의 영역은 공지기술의 영역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영역의 특허발명은 특허청구범위의 해석상 공지기술참작의 원칙을 적용하여 그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생소하고 불명확한 권리남용의 법리를 도입하여 이를 해결할 당위나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비록 실제 운용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범위를 부정하든 권리남용의 법리를 적용하든 소송 결과에 있어서는 모두 원고 청구 기각이라는 결과가 도출된다 할지라도 특허법이론상 분명히 이를 구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 "특허발명과 대비되는 발명이 공지의 기술만으로 이루어지거나 그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공지기술로부터 용이하게 실시할 수 있는 경우에는 특허발명과 대비할 필요 없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자유기술의 항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자유실시기술의 항변에 대한 판시가 특허법이론상으로도 훨씬 논리적이고 간결하다고 판단된다. 둘째, 차선으로 권리남용의 법리를 적용한다 할지라도 대상 판결에는 '특허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라든가, '특별한 사정' 등의 불명확한 적용요건이 등장하는바, 과연 이러한 요건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떠한 경우 또는 무엇을 말하는지 등 권리남용의 법리의 적용 요건을 좀 더 명확하게 설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대상 판결의 효시격인 대법원 2000다69194 판결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소위 "킬비 사건"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판시한 것으로 보이고, 일본의 경우 위 "킬비 사건"이후 발생한 문제점을 일본 특허법 제104조의3을 신설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하였는바, 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과 한국 특허법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3. 결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특허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에서 진보성 여부에 대하여 심리·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한 점은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아직 특허를 비롯한 지적재산권침해소송 경험이 다소 부족한 침해담당법원이 동일성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서의 신규성 판단에 비하여 비교적 판단이 어려운 진보성 판단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는 다소 염려스러우나, 대법원 판례의 축적과 법원의 노력으로 충분히 해결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대법원이 무효심판제도의 형해화를 방지하고, 구체적 타당성을 꾀하기 위하여 권리남용의 법리를 도입하고, 이를 진보성의 영역에까지 확대한 점은 분명 과거 판례보다 진일보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권리남용의 법리보다는 특허청구범위해석의 대원칙인 공지기술참작의 원칙을 적용하여 권리범위를 부정하는 형식을 취하지 아니한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신규성 또는 진보성이 없는 특허발명의 경우 공지기술참작의 원칙을 적용하여 권리범위를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고, 이것이 자유기술의 항변과도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2012-03-08
공갈행위의 수단으로 상해행위가 행해진 경우, 공갈죄와 상해죄 죄수판단
Ⅰ. 들어가기 형법 학계는 죄수판단에 있어 의사표준설·행위표준설·구성요건표준설·법익표준설 등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판례 역시 이러한 여러가지 기준을 종합하여 죄수를 판단하고 있다. 그만큼 죄수판단은 어느 한 가지 기준으로만 판단하기 어렵고 구성요건과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여 결정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죄수판단은 피고인에게 형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므로 그 판단을 소홀히 할 수 없고 형사법이 추구하는 실체진실과 정당한 형벌의 부과라는 관점에서 명확한 판단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래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상상적 경합과 실체적 경합의 구별은 피고인의 처단형 판단에 있어 큰 차이를 가지고 오므로 그 구별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는 상상적 경합인 경우의 피고인을 실체적 경합범으로 판단하는 경우 뿐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정당한 형벌의 부과라는 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Ⅱ. 상상적 경합과 실체적 경합의 구별 1. 개념구별 상상적 경합이란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형법 제40조)를 말하며 관념적 경합이라고도 한다. 형법은 상상적 경합의 경우는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경합범(실체적 경합)의 경우는 1인에 의해 범해진 ①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수개의 죄(동시적 경합범) 또는 ②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된 죄와 그 판결확정 전에 범한 죄(사후적 경합범)를 말하며(형법 제37조) 사형·무기형이 아닌 동종의 형이면 가장 중한 죄의 장기 또는 다액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도록 하고 있다. 2. 구별기준 상상적 경합의 요건 중 실체적 경합과 형식적으로 구별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는 행위가 1개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1개의 행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한 견해는 법적 평가를 떠나서 사물 자연의 상태에서 사회통념상 행위가 1개인 경우를 의미한다는 견해이고(자연적 행위단일성), 다른 견해는 구성요건적 의미에서 구성요건적 행위가 1개임을 의미한다는 견해를 취한다(구성요건적 행위단일성). 1개의 행위에는 행위가 완전히 동일한 경우는 물론 행위가 부분적으로 동일한 경우도 포함된다. 판례는 상상적 경합과 (실체적) 경합범은 법적 평가를 떠나서 사물 자연의 상태에서 사회통념상 행위가 1개인가 수개인가에 따라 결정된다(대판 1987. 2. 24)고 판시하고 있다. 3. 기존의 판례를 통한 검토 판례는 피고인이 예금통장을 강취하고 예금자 명의의 예금청구서를 위조한 다음 이를 은행원에게 제출 행사해서 예금 인출금 명목의 금원을 교부받았다면 강도, 사문서위조, 동행사, 사기의 각 범죄가 성립하고 이들은 실체적 경합관계에 있다(대법원 1991.9.10. 선고 91도1722 판결)고 판시한 바 있는데, 위조된 사문서를 행사하는 행위와 사기의 행위는 법적 평가를 떠나서 사물 자연의 상태에서 사회통념상 행위로 파악해 보면 하나의 행위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 행위의 수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두 죄의 상상적 경합으로 판단함이 타당하지만 판례는 이를 실체적 경합범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학설은 판례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위조된 사문서 행사행위와 기망행위가 하나의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상적 경합이 타당하다고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판례가 실체적 경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비록 행위의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죄수는 보호법익의 침해에 따른 불법의 평가도 중요한 판단요소이므로 사회적 법익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위조사문서 행사죄와 개인적 법익인 재산적 법익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사기죄는 그 불법의 본질이 다르고 불법 형성의 차원 또한 달라 이를 상상적 경합으로 판단하는 것은 행위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즉 행위의 동일성이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죄수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형벌의 정당한 부과라는 측면에서 죄수의 관점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본다. Ⅲ. 공갈행위를 수단으로 한 상해행위에 대한 대법원의 죄수판단 이 판례의 범죄사실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 오른손으로 목을 붙잡아 뒤로 밀어 넘어 뜨리고 발로 등을 밟고 주먹으로 입술을 1회 때려 피해자에게 치료일수 미상의 치아진탕상 등을 가하고, 위 일시,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겁을 먹게 한 다음 땅에 넘어진 피해자의 바지에서 지갑을 꺼냈다가 피해자가 이를 돌려달라고 하자 돌려 준 후, 피해자로부터 1만원을 교부받아 이를 갈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심은 상해와 공갈의 실체적 경합을 하여 판단을 했지만 대법원은 “공갈죄에 있어서 공갈행위의 수단으로 상해행위가 행하여진 경우에는 공갈죄와 별도로 상해죄가 성립하고, 이들 죄는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Ⅳ. 정당한 형벌의 적용이라는 관점에서 판례비판 1. 정당한 형벌의 적용과 죄수판단 만일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죄가 조세범 처벌법 제9조 제1항 소정의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를 포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진 경우, 조세포탈죄에 사문서위조와 행사죄를 모두 흡수시키거나 상상적 경합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조세범처벌법이 보호하는 법익과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죄가 보호하는 법익은 차원을 달리하므로 아무리 행위의 부분적 동일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이 중복되어 평가되는 부분을 찾을 수 없고 결국 정당한 형벌을 부과하기 위하여 피고인이 발생시킨 불법 모두를 평가해서 처벌을 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판례도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죄가 조세범처벌법 제9조 제1항 소정의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를 포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졌다고 하여 그 조세포탈죄에 흡수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89.8.8. 선고 88도2209 판결)고 하면서 실체적 경합으로 처리했음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2. 대상판결의 문제점 대상판결은 상해죄를 수단으로 공갈행위가 이루어진 것이므로 상상적 경합으로 판단했다. 상해죄의 법정형은 7년이하의 징역형이고 공갈죄는 10년이하의 징역이다. 결국 상상적 경합을 통해 피고인은 공갈죄의 정한 형으로 처단형이 결정되어 실질적으로는 상해죄에 대한 불법형성 부분은 양형에서 고려되는 정도에 불과하게 되는데 이는 정당한 형벌 부과라는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대상판결 사안에서 상상적 경합으로 처리하는 것이 왜 정당한 형벌부과가 아닌가 하는 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 수 있다. 1) 첫째, 만일 위 사안에서 공포심을 유발하는 공갈이 아닌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불가능하게 할 정도라고 판단되는 경우 피고인은 강도상해죄가 성립될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강도상해죄에서 상해는 강도의 수단이 폭행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 하더라도 강도상해죄의 상해에 해당하기 때문이고 이에는 다툼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도상해죄는 형법 제337조에서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는데 대상판결이 공갈죄와 상해죄의 상상적 경합으로 공갈죄에 정한 형으로만 처벌하는 결론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너무나 크다. 대상판결과 동일한 사안에서 만일 검사가 강도상해죄로 기소를 했다면, 경우에 따라 그 상해로 인해 반항이 억압됐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대법원 역시 강도상해죄로 의율하는 것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본 판결의 죄수판단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2) 둘째, 보호법익의 평가를 너무나 단편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피고인이 상해를 가해서 상대방의 생명신체에 대한 보호법익을 침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공갈로 의사결정의 자유가 침해된 것도 분명하다면 상해가 공갈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침해된 법익이 같은 평면적 차원에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영역에서 발생한 것인지를 구분하여 실질적 관점으로 죄수를 판단했어야 한다. 상해로 입은 신체에 대한 법익침해는 피해자의 의사결정의 침해를 받은 것과 명확히 구별된다고 봐야 하고 설사 부분적 행위의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불법이 각각 다른 영역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앞서 본 조세포탈죄나 위조사문서 행사와 사기죄에 관한 판례처럼 실체적 경합으로 판단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Ⅴ. 결 론 독일형법 제52조 제1항은 “동일한 행위가 수개의 형법법규를 위반하거나 또는 동일한 형법법규를 수회 위반한 경우에는 1개의 형만을 선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형법 제40조 역시 상상적 경합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규정의 취지는 피고인은 하나의 행위를 하였는데 그것이 여러 형벌법규에 해당되는 경우는 가장 중한 형벌법규를 적용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상판결과 같이 상해를 수단으로 한 공갈행위가 과연 하나의 행위가 수개의 형벌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수개의 행위로 수개의 형벌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평가할 것인지를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강간 목적으로 피해자를 차에 태워 감금하고 강간을 한 경우 감금죄와 강간죄가 상상적 경합의 관계(대법원 1983.4.26. 선고 83도323 판결)에 있는 것과 대상판결은 구별된다. 이 판결의 경우는 감금과 강간죄의 두 행위가 시간적, 장소적으로 중복되고 감금행위 그 자체가 강간의 수단인 폭행행위를 이루고 있는 경우로서 중한 형인 강간죄로 처벌을 하는 것이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지만, 상해를 수단으로 한 공갈의 경우를 상상적 경합으로 볼 경우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강도상해죄와 비교해 형벌 부과의 정당성이 없고 상해와 공갈의 법익침해의 결과가 명확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이를 상상적 경합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당한 형벌의 적용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상해가 아무리 공갈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체적 경합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본다.
2008-03-13
압류 부동산에 대한 유치권 행사의 효력
Ⅰ. 사실관계 (1) 피고 주식회사 씨.씨(이하 ‘피고’)는 2002. 10. 14. 제1심 공동피고 대명건설(주)(이하, ‘대명건설’)과 대명건설 소유의 이 사건 토지 지상의 상가 신축공사에 관한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2) 대명건설과 이 사건 토지의 종전 소유자와의 사이에 법적 분쟁이 발생하여 피고는 공사에 착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3) 그러던 중 대명건설이 부도가 났고, 이 사건 토지의 근저당권자 우리은행이 부동산임의경매를 신청하여, 2002. 11. 25. 임의경매가 개시되었고, 2002. 11. 27.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경매개시결정 기입등기가 경료되었다. (4) 위 (2)항의 문제가 2003. 4. 초순경 해결되어 피고는 2003. 5. 2.경부터 본격적으로 공사에 착수하여 터파기 공사, 에이치빔 토목공사 등을 실시하였다. (5) 피고는 2003. 7. 초순경 대명건설의 부도 사실을 알고 이 사건 토지상에 가설울타리 및 에이치빔을 비롯한 컨테이너 박스 등의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들 시설물과 이 사건 토지를 점유하면서 공사를 중단하였다. (6) 피고는 2003. 8. 28.경 경매법원에 대명건설에 대한 공사대금채권을 피보전채권으로 하여 이 사건 토지를 유치하고 있다는 내용의 유치권신고를 하였다. (7) 이 사건 토지에 관한 임의경매절차는 진행되어, 원고가 이 사건 토지를 낙찰받아 2004. 3. 25. 낙찰대금을 완납한 후, 피고에 대하여 토지인도를 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Ⅱ. 대상 판결의 요지 채무자(대명건설) 소유의 부동산에 경매개시결정의 기입등기가 경료되어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 채권자(피고)가 채무자로부터 위 부동산의 점유를 이전받고 이에 관한 공사 등을 시행함으로써 채무자에 대한 공사대금채권 및 이를 피담보채권으로 한 유치권을 취득한 경우, 이러한 점유의 이전은 목적물의 교환가치를 감소시킬 우려가 있는 처분행위에 해당하여 민사집행법 제92조 제1항, 제83조 제4항에 따른 압류의 처분금지효에 저촉되므로, 위와 같은 경위로 부동산을 점유한 채권자로서는 위 유치권을 내세워 그 부동산에 관한 경매절차의 매수인(원고)에게 대항할 수 없고, 이 경우 위 부동산에 경매개시결정의 기입등기가 경료되어 있음을 채권자가 알았는지 여부 또는 이를 알지 못한 것에 관하여 과실이 있는지 여부 등은 채권자가 그 유치권을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결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Ⅲ. 수급인의 유치권 1. 유치권 성립 요건 일반적인 유치권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과 수급인에 관련된 부분에 대하여 살펴본다. (1) 유치권이 성립하려면 피담보채권이 유치권의 목적물에 ‘관하여 생긴 것’이어야 한다. 이를 채권과 목적물 사이의 견련관계라고 한다. 채권이 목적물 자체로부터 발생한 경우 견련관계가 인정된다. 또한 채권이 목적물의 반환청구권과 동일한 법률관계나 사실관계로부터 발생한 경우에도 견련관계가 인정된다. 수급인의 공사대금채권이 목적물과 견련관계가 인정되려면 그 목적물에 관하여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공사대금채권을 피담보채권으로 그 건물 자체에 유치권을 행사하여야 하지, 도급인의 다른 건물에 대하여 유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런데, 토지 위에 건물을 신축할 경우 신축된 건물 이외에 토지도 견련관계가 있는 목적물인지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하여 아직 구체적으로 다룬 경우가 없고, 대법원 판례도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은 없는 것으로 보여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토지 위에 건물을 신축할 경우, 기초공사 또는 지하층공사를 위하여 토지를 굴착하는 토목공사가 수반되기 때문에 토지에 관하여도 공사를 진행한 것이므로 토지도 피담보채권인 공사대금채권과 견련관계가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공사대금채권이 목적물 자체로부터 발생한 경우 견련관계가 인정되고, 공사도급계약의 목적은 토지 위에 건물을 신축하여 토지와는 별개인 건물에 대하여 새로운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한 것이며 공사대금채권은 건물의 신축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토지는 공사대금채권과 견련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2) 피담보채권이 ‘변제기’에 있어야 한다. 채권의 변제기가 되기 이전에는 유치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변제기 전에 유치권이 생긴다고 하면 변제기 전의 채무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사대금채권의 변제기는 건물 등 공사의 완공시라 할 것이며, 기성고에 따라 공사대금을 수차례에 나누어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에도 나머지 잔금의 변제기는 건물의 완공시가 된다. 건물의 일부를 완성하였으나 기성고에 대한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할 경우 미완성 건물에 대하여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토지와 독립된 건물로 볼 정도, 즉 기둥과 지붕 그리고 주벽이 이루어진 건물인 경우에는 토지와 독립하여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된 건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미완성 건물은 동산이고 동산에 대하여도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동산인 상태의 건물의 일부는 토지의 부합물로 별도로 소유권 취득 대상이 되지 못하고 토지의 처분과 운명을 같이 하여야 하고 부합물에 대하여 유치권을 행사하는 것은 토지 자체를 점유하여 유치권을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부당하므로 토지와 별도로 유치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3) 유치권자는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 채권자의 점유가 불법행위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어서는 아니된다. 수급인도 유치권을 주장하려면 건물을 계속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 수급인이 일시적으로 점유를 상실하였다가 후에 다시 같은 건물을 점유하게 되는 경우에는 유치권을 취득하게 된다(대법원 판결 1955. 12. 15. 선고 4288민상283). 2. 유치권의 효과 유치권은 물권이므로 채무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대항할 수 있다. 수급인이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동안 건물의 도급인이 이를 제3자에게 양도한 경우 공사대금청구권은 도급인에게 행사하여야 하나, 유치권은 건물의 양수인에게도 주장할 수 있으므로 공사대금을 변제받기 전까지는 양수인에게 건물을 인도할 필요가 없다. 유치권자도 부동산경매절차에서 유치권신고를 할 수 있는데, 유치권신고를 한 유치권자는 경매절차의 ‘이해관계인’으로서 절차상 각종 권한을 부여받는다. ①집행에 관한 이의신청권(민사집행법 제122조), ②부동산에 대한 침해방지신청권(법 제83조), ③경매개시결정에 대한 이의신청권(법 제86조), ④매각기일과 매각결정기일을 통지받을 수 있는 권리(법 제104조), ⑤최저매각가격 외의 매각조건의 변경에 관하여 합의할 수 있는 권리(법 제110조) 등이 그것이다. 유치권자가 경매법원에 유치권신고를 하지 아니한 경우 그 유치권자는 이해관계인으로서의 위와 같은 권한을 행사하지 못할 뿐 여전히 유치권자로서 경락인(매수인)으로부터 피담보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건물의 인도를 거절할 수 있다. Ⅳ. 대상 판결의 검토 대상 판결은 피고가 이 사건 토지에 유치권을 갖는다는 전제 아래 압류의 처분금지효에 저촉되어 매수인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피고가 이 사건 토지에 유치권을 갖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있다. 대상판결의 제1심 법원은 피고가 이 사건 토지에 적법하게 유치권을 취득하였고 유치권으로 원고의 토지인도청구에 대항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창원지방법원 2004가합2007). 제1심 및 원심(부산고등법원 2005나473)에서 원고가, 피고의 이 사건 토지에 대한 유치권 주장에 대하여 공사대금채권을 피보전채권으로 한 토지에 대한 유치권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유치권의 성립 여부에 대하여는 판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 유치권의 성립요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토지는 공사대금채권과 견련관계가 있는 물건으로 볼 수 없고, 동산인 상태의 건물의 일부는 토지의 부합물로 토지와 별도로 유치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피고가 이 사건 토지 위에 건축한 가설울타리, 에이치 빔, 컨테이너 박스 등의 시설물은 토지로부터 독립된 건물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건축물은 아니므로 동산으로 토지에 부착된 부합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대상판결의 사안에 있어서 토지에 대하여는 피고의 유치권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상판결의 논리대로라면 만일 피고가 경매개시결정의 기입등기가 경료되기 이전에 토지를 인도받아 공사를 시작하였다면 건물을 어느 정도까지 건축하였는지 문제가 되지 않고 또한 피고가 유치권신고를 하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공사대금채권을 피담보채권으로 토지에 대하여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어 원고에게 토지의 인도를 거부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야 된다. 그러나, 수급인이 토지에서 건물을 신축하다 경미한 공사를 하다 도급인의 귀책사유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된 경우 토지에 부착된 경미한 부합물에 대한 피담보채권으로 토지 전체에 대하여 유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되어 부당하다고 본다. 이와 반대로 토지에 관하여 경매개시결정의 기입등기 이후에 토지를 인도받아 공사를 시작하여 기둥과 지붕 그리고 주벽이 이루어져 토지와는 독립된 건물이라고 볼 수 있는 정도의 건물을 건축한 수급인은 공사대금채권을 피담보채권으로 건물에 대한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경매개시결정으로 압류의 효력이 생긴 것은 토지이고 그 이후에 건축되어 독립한 소유권의 대상이 된 건물을 점유하는 것은 압류의 처분금지효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토지 인도 청구에 대하여는 건물의 유치권을 행사하는 범위 내에서 토지 인도를 거부할 수 있고, 이는 건물에 관한 유치권 행사에는 토지 점유가 당연히 수반되기 때문인 것으로 토지 자체에 유치권이 성립되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Ⅴ. 결론 대상 판결의 사안에 대하여 피고의 토지에 관한 유치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은 타당하다고 생각하나, 그 이론 구성을 처분금지의 효에 저촉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공사대금채권을 피담보채권으로 한 토지에 대한 유치권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이론 구성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대상 판결은 압류채권자가 수급인이 완성한 건축물을 압류하거나 민사집행법 제81조 제1항 제2호 단서에 의하여 미등기건물에 관하여 압류한 이후 수급인이 유치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그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200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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