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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기사
판결요지
판례해설
판례평석
판결전문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위탁자와 수탁자가 합의한 목적신탁 해지의 위법성
[ 요 약 ] 원고는 B 법인을 2020년에 흡수합병한 법인으로서, B의 주주였던 C는 2017년 3월 B 명의의 계좌로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100억 원을 기부했다. 이 자금은 B에 의해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21개 중소기업에 총 38억 원이 지급되었고, 나머지 62억 원은 2019년 12월 C에게 반환됐다. 과세관청은 이 100억 원을 B의 익금으로 간주하여 2017년도에 26억 원의 법인세를 부과하였고, 반환된 62억 원을 B가 C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2020년에 소득금액변동통지를 하였다. 원고는 불복하여, 기부된 자금이 B의 실질적인 자산으로 귀속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익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기부금 100억 원이 B의 자산으로 회계 처리되지 않고, 외부에 공시된 바도 없으며, B가 자체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 기부금이 B의 익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기부금은 목적에 따라 집행되었으며, 남은 정산금도 C와 B의 합의해지에 따라 반환되었으므로, 신탁재산의 귀속을 재단하는 기준에 따라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원고에 대한 2017년도 법인세 26억 원의 부과처분과 2020년도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을 모두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기부금이 특정 목적을 위해 신탁된 것으로 보아, 신탁법과 신탁법리를 적용하여 법률관계를 판단한 중요한 사례다. Ⅰ. 사건의 개요 1. 원고는 2020년 5월 B를 흡수합병한 법인이다. C는 B의 주주이었던 자이다. 피고는 과세관청이다. C와 B는 중소업체 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C는 2017년 3월 B 명의의 H라는 계좌로 100억 원을 기부하였다. B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총 6회에 걸쳐 21개의 중소업체에 38억 원을 지급하였다. C와 B는 2019년 12월 양해각서를 합의해지하고, B는 같은 날 C에게 100억 원 중 중소업체에 지급된 38억 원을 공제한 나머지 정산금인 62억 원을 반환하였다. 2. 피고는 위 100억 원은 B의 익금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에게 2017년도 법인세 26억 원을 경정·고지하였고, 정산금으로 반환한 62억 원도 B의 익금에 산입할 금액으로서 B가 C에게 배당한 것으로 보아 원고에게 2020년도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를 하였다. 이에 원고는 위 100억 원은 B에 실질적으로 귀속되었다고 볼 수 없어 익금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26억 원의 부과처분은 위법하고, 반환금 62억 원이 익금에 산입할 금액임을 전제로 한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도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3. 제1심은 피고에게 법인세 26억 원의 부과처분과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하였다. 제2심도 원고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여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Ⅱ. 법원의 판단 1. 양해각서의 성격 양해각서에 ‘신탁’, ‘수탁’, ‘수익자’라는 형식적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가 신탁의 성질을 가졌음을 부인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양해각서는 수익자가 없는 이른바 ‘목적신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유형의 신탁은 신탁법 제3조 제1항 단서에 의하여 허용되고 있으므로, 양해각서와 같이 수익자가 구체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신탁의 본질에 반하지는 않는다. 결국 양해각서의 형식과 실질이 모두 신탁 또는 그와 유사한 법률관계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2. 기부금 100억 원이 익금에 해당하는지 여부 기부금 100억 원은 B가 대내외적으로 이를 소유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B의 자산수증이익이나 그 밖의 수익 등 익금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B는 양해각서에서 정한 목적에 따라 100억 원을 관리·집행할 수 있었을 뿐이고, 자기를 위한 용도로는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100억 원은 B의 고유재산과 분리되어 별도로 집행·관리되었고, B의 자산으로 회계 처리되지도 않았으며, 그와 같은 사실이 외부로 공시되어 표시되었다. ② 구법인세법 제5조(2020. 12. 22. 법률 제1765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는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해서는 그 신탁의 이익을 받을 수익자(수익자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신탁의 위탁자 또는 그 상속인)가 그 신탁재산을 가진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③ 100억 원은 양해각서에 따라 중소PP를 위하여 지출되었고, 남은 정산금도 B와 C의 합의해지에 따라 C에게 반환되었다. 당사자의 합의로 양해각서를 해지하는 행위가 신탁의 성질에 반한다거나, 단지 일방의 임의해지를 제한하는 취지의 양해각서 제4조(발효)의 문언을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Ⅲ. 대상 판결에 대한 평석 1. 묵시적인 법률관계를 신탁 법률관계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 대상 판결은 ‘신탁’, ‘수탁’, ‘수익자’ 등과 같은 신탁을 나타내는 형식적 표현이 양해각서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양해각서의 내용이 신탁 법률관계가 가지는 성격인 ‘소유권의 이전’, ‘수탁자의 배타적 관리·처분권’, ‘신탁재산의 분별관리의무’라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보아,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를 신탁법 제3조 제1항 단서의 ‘수익자가 없는 특정의 목적을 위한 신탁’ 이른바 ‘목적신탁’으로 보았다. 즉 C가 B에게 기부한 100억 원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C가 B에게 신탁한 것으로 보았고, 기부금 100억 원에 관한 법률관계에 신탁법과 신탁법리를 적용 또는 유추적용하여 판단하고 있다. 2. 신탁법상 목적신탁의 설정 신탁법은 신탁의 설정방식으로 계약, 유언, 신탁선언 3가지 유형을 정하고 있다(제3조 제1항). 이 3가지 방식 모두 위탁자의 신탁설정 의사표시를 필수요건으로 하고 이러한 신탁설정행위(당사자 간에 신탁이라는 법률관계를 성립시키는 행위)를 신탁행위라고 한다. 법률행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탁행위에 있어서도 의사표시는 명시적으로도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 또한 의사표시가 명시적인지 묵시적인지에 따라 신탁행위의 종류를 구분하지는 않으며, 그 효과에서도 차이가 없다. 당사자들의 언어를 통해서 신탁설정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전체 정황을 통해서 당사자들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고, 이때 신탁설정의사는 특정 용어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행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목적신탁은 공익신탁이 아닌 한 신탁선언에 의해서는 설정할 수 없다(제3조 제1항 단서). 신탁선언에 의해 목적신탁을 설정할 수 있게 한다면, 채무자인 위탁자가 종래 자신의 채권자의 책임재산에 속하던 재산을 이제부터는 독립한 재산으로서 직접 관리하게 된다. 그래서 채무자가 집행면탈 등의 목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탁선언의 방식으로는 목적신탁을 설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3. 목적신탁에서 법인세 납세의무자 구법인세법 제5조 제3항에 의하면,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해서는 수익자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신탁의 위탁자가 법인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 즉 수익자가 없는 목적신탁의 경우 법인세 납세의무자는 위탁자이다. 따라서 위 100억 원의 거래가 B의 익금이 될 수 없다는 원고의 주장은 정당하다. 4. 신탁법상 목적신탁의 종료 신탁이 종료되기 위해서는 우선 종료의 원인이 있어야 한다. 신탁법은 여러 유형의 종료사유를 정하고 있는데, 위탁자가 신탁이익의 전부를 누리는 경우 위탁자는 언제든지 신탁을 종료할 수 있다(제99조 제2항). 신탁의 설정자이면서 신탁재산의 이익을 모두 향수하는 위탁자 겸 수익자가 신탁의 종료를 의욕하는 이상 이를 금지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 위탁자가 별도로 해지권을 유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위탁자에게 신탁의 해지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신탁계약을 통해 독립된 신탁재산이 구성되고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법률관계가 형성되므로, 신탁을 설정한 위탁자라고 하더라도 이를 자의적으로 종료시킬 수는 없다. 또한 신탁행위로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위탁자와 수익자는 합의에 의하여 언제든지 신탁을 종료할 수 있다(제99조 제1항, 제4항). 그러나 이들 규정은 수익자신탁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수익자가 없는 목적신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목적신탁의 경우 위탁자의 임의해지와 위탁자와 수익자의 합의에 의한 종료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신탁관리인이 선임된 목적신탁의 경우 위탁자와 신탁관리인의 합의에 의한 종료는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당사자의 의사에 기한 신탁의 종료에서 어느 경우에 의하건 수탁자는 종료의 합의권자의 범위에서 제외된다. 신탁은 수익자의 이익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신탁재산을 관리하는 제도이므로 수탁자는 합의에 의한 신탁종료시 관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신탁 법률관계를 해석함에 있어 위탁자가 별도로 해지권을 유보하거나 신탁법상 종료사유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탁자와 수탁자가 임의로 합의하여 목적신탁을 해지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은 C와 B의 합의로 양해각서를 해지하는 행위가 신탁의 성질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으나, 사안에서 해지 당사자는 위탁자와 수익자가 아닌 위탁자 C와 수탁자 B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양해각서는 C와 B 사이의 합의해지로 종료될 수 없으므로, B가 C에게 지급한 62억 원은 신탁재산의 반환이나 잔여재산의 귀속이 아니라 B의 자산을 C에게 지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피고가 원고에게 한 2020년도 귀속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은 정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Ⅳ. 대상 판결의 의미 대상 판결은 법인이 아닌 재단을 갈음할 수 있는 목적신탁의 실제 활용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현행 우리법체계에서는 사익 또는 영리를 도모할 목적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사익을 위하여 재단법인에 버금가는 독립재산체를 신탁의 이름으로 창설할 수 있다. 신탁재산의 독립성을 본질로 하는 신탁은 재단법인과 기능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대상 판결을 계기로 목적신탁의 스킴이 제공하는 장점과 매력을 활용하여 그 이용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안성포 교수(전남대 로스쿨)
익금
목적신탁
법인세
기부금
신탁
양해각서
안성포 교수(전남대 로스쿨)
2024-04-14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자기증여의 취급과 일감 몰아주기 증여의제
대상판결은 특수관계법인의 주주가 동시에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에 해당하는 경우 구 상증세법 제45조의3에 따른 증여의제이익을 자기증여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힌 최초의 판결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증여의제이익은 자기증여의 산물로서 애당초 상증세법 제45조의3 제1항에서 정한 과세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적어도 해석으로써 이를 증여세의 부과대상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새겨야 옳다 I. 사실관계 원고는 내국법인 A 및 B의 대표이사로서 2012년과 2013년 기준으로 또 다른 2개의 내국법인을 통해 A의 주식을 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고, B의 주식을 50% 이상 직접 보유하고 있다. A는 2012, 2013 사업연도에 B에게 의약품을 공급했고(이하 ‘이 사건 거래’라 한다) A의 매출액 중 B에 대한 매출액 비율은 2012 사업연도에 94.56%, 2013 사업연도에 98.65%였다. 원고는 구 상속세 및 증여세법(2015. 12. 15. 법률 제1355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상증세법’이라 한다) 제45조의3에 따라 자신이 A의 지배주주 지위에서 B로부터 일정한 이익(이하 ‘이 사건 증여의제이익’이라 한다)을 증여받은 것으로 의제된다는 이유로 2013. 7. 31.과 2014. 6. 27. 피고에게 이 사건 거래와 관련한 증여세를 신고·납부하였다. 이후 원고는 2014. 10. 14. 피고에게 2012년 및 2013년 귀속 증여세를 환급해 달라는 내용의 경정청구를 하였으나, 피고는 2014. 12. 9. 원고의 경정청구를 거부하였다(이하 ‘이 사건 거부처분’이라 한다). Ⅱ. 관련규정 및 쟁점 1. 관련규정 구 상증세법 제45조의3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 의제) ① 법인의 사업연도 매출액 중에서 그 법인의 지배주주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수관계에 있는 법인에 대한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 법인의 업종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법인의 지배주주와 그 지배주주의 친족이 다음 계산식에 따라 계산한 이익을 각각 증여받은 것으로 본다. 2.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 동시에 특수관계법인의 주주인 경우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의제되는 이익이 자기증여에 해당하여 구 상증세법 제45조의3에서 정한 증여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Ⅲ.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 사건 증여의제이익이 자기증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없다고 보아 이 사건 거부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 구 상증세법 제45조의3 제1항에 따른 증여세의 경우 증여자는 특수관계법인이고, 수증자는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다. 증여자인 특수관계법인은 그 주주와 구별되는 별개의 법적 주체이므로, 수증자인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 동시에 특수관계법인의 주주이더라도 증여자와 수증자가 같다고 할 수 없다. ㉯ 특수관계법인은 수혜법인과의 거래로 인하여 손실을 입는 것이 아니므로,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 동시에 특수관계법인의 주주이더라도, 그 거래로 인한 이익과 손실이 함께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에게 귀속되어 그 재산가치가 실질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 ㉰ 2014. 2. 21. 상증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제34조의2 제12항 제3호에서 ‘수혜법인이 특수관계법인과 거래한 매출액에 지배주주 등의 그 특수관계법인에 대한 주식보유비율을 곱한 금액’을 과세제외 매출액에 포함하도록 정하는 등 증여의제이익 계산방법을 종전과 달리 정하였더라도 이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Ⅳ. 해설 1. 구 상증세법상 자기증여의 취급 ‘자기증여’는 말 그대로 자기가 자신에게 증여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성립하기 어렵지만 자본거래 등 복잡한 법률관계가 개재된 경우에는 자기가 자신에게 증여하게 된 꼴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기증여는 구 상증세법 제2조 제3항에서 정한 증여의 개념요소를 충족하지 못한다. ‘증여’는 ‘타인에게’ 재산을 무상으로 이전하는 경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 상증세법이 자기증여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을 두지 않은 것도, 자기증여가 애당초 과세대상인 증여에 해당될 수 없음을 염두에 둔 결과라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런데 증여의제규정을 해석할 경우에는 이러한 논리를 들이댈 수 없다. 증여의제규정은 처음부터 증여의 개념요소를 흠결하는 경우를 규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 상증세법이 증여의제규정에서도 자기증여의 취급에 관하여 침묵하고 있는 이상 자기증여에 대하여 어떠한 증여의제규정을 적용하여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는지 여부는 해석론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① 증여자와 수증자가 실질적으로 동일한지 여부, ② 그 동일성이 해당 규정에 따라 증여세의 부과대상이 될 만한 행위나 사실(과세대상)을 배제시키는지 여부, ③ 그러한 행위나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 해당 규정의 입법취지, 목적 등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살펴 자기증여 해당 여부와 그 비과세 범위를 획정하여야 한다. 2. 일감 몰아주기 증여의제 규정의 의미와 취지 구 상증세법 제45조의3에서 정한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의제, 즉 일감 몰아주기 증여의제는 특수관계법인이 ‘정상적이라고 취급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수혜법인과의 거래를 통해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에게 이익을 증여한 것으로 의제하는 구조이다. 즉, 정상가액에 따른 거래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일정한 범위를 넘는 경우 변칙적인 증여가 있었다고 보겠다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가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상가액에 따른 거래로서 세법상 부당행위계산 부인의 대상이 아니고, 사업의 기회를 주었다고 해서 경제적 이익을 이전한 것은 아니므로 애당초 증여의 개념을 충족하지 않는다. 따라서 완전포괄주의에 따르더라도 이를 증여의 범주에 넣고서 증여세를 부과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증여의제’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3. 대상판결의 논리구조 대상판결에서는 이 사건 증여의제이익이 자기증여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논거로 크게 3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구 상증세법 제45조의3은 특수관계법인과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 간의 관계에서 성립하는데, 특수관계법인은 그 주주와는 별개의 법적 주체라는 것이다. 즉, ‘특수관계법인 ≠ 특수관계법인의 주주’이므로, 특수관계법인의 주주가 동시에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라고 하더라도 증여자와 수증자가 일치하지 않아서 자기증여의 개념요소를 애당초 충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일감 몰아주기가 정상가액에 따른 거래에 해당되는 이상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 동시에 특수관계법인의 주주이더라도 이익과 손실이 함께 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특수관계법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 이익을 볼 수 있으므로, 동일한 법적 주체에게 이익과 손실이 함께 귀속된다는 자기증여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셋째, 대상판결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수혜법인이 특수관계법인과 거래한 매출액에 지배주주 등의 그 특수관계법인에 대한 주식보유비율을 곱한 금액’을 과세제외 매출액에 포함시켜 이를 자기증여로 보는 듯하게 구 상증세법 시행령 규정이 개정되었더라도 이를 확인적 의미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이 규정의 개정을 창설적 의미로 본다면 이로써 그 규정의 시행 전에 일어난 사건에 적용될 법령의 해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특수관계법인의 주주가 동시에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에 해당하는 경우 구 상증세법 제45조의3에 따른 증여의제이익을 자기증여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힌 최초의 판결이다. 증여의제규정에서 자기증여의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를 설시한 판결로서 의의가 있다. 5.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이 사건 증여의제이익은 자기증여의 산물로서 애당초 상증세법 제45조의3 제1항에서 정한 과세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적어도 해석으로써 이를 증여세의 부과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이 규정의 취지나 목적 등에 부합한다고 새겨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 사건 거부처분은 위법하다고 보아야 하고, 대상판결의 결론에 동의하기 어렵다. ① 구 상증세법 제45조의3이 법인격 투과를 본질로 삼고 있는데 수혜법인과 그 지배주주 등 간에는 법인격을 투과시키면서 특수관계법인과 그 주주 간에는 엄격하게 별개의 법인격을 관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②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 특수관계법인의 주주인 경우 그 특수관계법인 지분비율에 상응해서는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 자신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한 것일 뿐이다. 수혜법인의 지배주주 등이 스스로에게 부를 증식할 기회를 마련한 것이므로 부가 이전된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어 ‘증여세의 영역에서’ 과세대상으로 취급될 만한 행위나 사실이 없다. ③ 대상판결이 ㉰의 논거에서 밝힌 상증세법 시행령 규정의 신설이 창설적 의미를 갖는다고 단정할 근거가 없고, 오히려 그 개정 경위나 배경 등을 고려하면 이 규정은 그 신설 이전부터 받아들여졌던 사항을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볼 여지가 많다(지면의 제약으로 이 규정의 개정 경위나 배경 등을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정기상,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자기증여의 취급에 관한 고찰”, 조세법연구 제29권 제2호, 2023, 264면 이하 참조). 정기상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증여세
셀트리온
특수관계법인
정기상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2024-03-31
행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⑩ 복수의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에 적용될 법리
대상판결은 관할 행정청이 인지한 복수의 위반행위 중 일부를 쪼개어 우선 과징금을 부과한 후 나머지 위반행위에 대해 차후에 별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는 없고, 다만 종전 과징금 부과처분 후에야 그 부과 이전에 이루어진 다른 위반행위를 비로소 인지한 경우에 한하여 그에 대한 과징금의 별도·추가 부과를 허용하되 그 양정상 한도액에는 사후적 경합범에 관한 형사법리와 유사한 법리를 적용할 것을 선언한 최초 판례이다. Ⅰ. 사실관계 1. 원고는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이고, 피고(안성시장)는 경기도지사로부터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하 ‘여객자동차법’이라 한다)상 과징금 부과처분 권한을 위임받은 행정청이다. 2. 피고는, 원고가 2008. 1. 1.부터 2017. 5. 31.까지 구 여객자동차법에 따른 인가받지 않은 노선을 운행한 점, 2016. 9. 1.부터 2017. 5. 31.까지 인가받지 않은 정류소에 정차한 점을 이유로 2018. 2. 28. 원고에게 과징금 5,000만 원을 부과하였다. 3. 한편 경기도지사는 2017. 9. 12. 피고에게, 원고가 2016. 3. 1.부터 2017. 9. 11.까지 종점과 정차지 변경 신고 없이 연장 운행을 한 점을 이유로 원고에 대한 행정처분을 요청하였고, 이에 피고는 2018. 4. 19. 원고에게 위 위반행위를 이유로 구 여객자동차법령을 적용하여 과징금 5,000만 원을 부과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Ⅱ. 대법원판결 요지 1. 위반행위가 여러 가지인 경우에 행정처분의 방식과 한계를 정한 관련 규정들의 내용과 취지에다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자가 범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하여 관할 행정청이 구 여객자동차법 제85조 제1항 제12호에 근거하여 사업정지처분을 하기로 선택한 이상 각 위반행위의 종류와 위반 정도를 불문하고 사업정지처분의 기간은 6개월을 초과할 수 없는 점을 종합하면, 관할 행정청이 사업정지처분을 갈음하는 과징금 부과 처분을 하기로 선택하는 경우에도 사업정지처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하여 1회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은 5,000만 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관할 행정청이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의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인지하였다면 전부에 대하여 일괄하여 5,000만 원의 최고한도 내에서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인지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 중 일부에 대해서만 우선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차후에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행정청이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인지하여 그 전부에 대하여 일괄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이 가능하였음에도 임의로 몇 가지로 구분하여 각각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다고 보게 되면, 행정청이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하여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의 최고한도액을 정한 구 여객자동차법 시행령 제46조 제2항의 적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관할 행정청이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가 범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 중 일부만 인지하여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였는데 그 후 과징금 부과처분 시점 이전에 이루어진 다른 위반행위를 인지하여 이에 대하여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종전 과징금 부과처분의 대상이 된 위반행위와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대상이 된 위반행위에 대하여 일괄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하여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처분양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행정청이 전체 위반행위에 대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경우에 산정되었을 정당한 과징금액에서 이미 부과된 과징금액을 뺀 나머지 금액을 한도로 하여서만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다. 행정청이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언제 인지하였느냐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처분상대방에게 부과되는 과징금의 총액이 달라지는 것은 그 자체로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Ⅲ. 대상 판결에 대한 평석 1. 복수의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의 일괄 부과 시 최고 한도액 먼저 1회 부과 가능한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에 관하여, 대상판결은 위반행위가 여러 가지인 경우에 행정처분의 방식과 한계를 정한 구 여객자동차법령의 내용과 취지와 함께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한 사업정지처분 기간의 상한은 6개월인 점 등을 종합하여,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하여 1회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은 5,000만 원이라고 판시하였다. 과징금 부과처분이 사업정지처분을 대체·갈음하는 관계에 있으므로 사업정지처분의 상한과 마찬가지로 과징금에 관해서도 부과 가능한 총액의 최고한도가 정해져 있다고 볼 것인 점, 구 여객자동차법 제88조 제1항, 구 여객자동차법 시행령 제46조 제2항 단서에 의하여 (여러 위반행위를 전제로 한)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을 5,000만 원으로 명시하여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1회 부과 가능한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에 관한 대상판결의 판시 내용은 타당하다. 2. 복수의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 별도 부과의 허용성과 양정 다음으로 관할 행정청이 인지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 중 일부를 쪼개어 우선 과징금 부과처분을 한 후 나머지 위반행위에 대해 차후에 별도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관할 행정청이 이미 인지한 여러 위반행위 모두에 대해 과징금을 일괄하여 부과할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위반행위를 쪼개어 과징금을 별도·분리 부과처분을 하는 것은 최고한도액 규정을 잠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한꺼번에 제재처분(과징금 부과처분)을 받고 조기에 불이익 처분 절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처분상대방의 이익을 침해할 수도 있어서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제시한 ‘이미 인지한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 일괄 부과 원칙’은 타당하다. 마지막으로 대상판결에서는 종전 과징금 부과처분을 한 후에야 부과처분 시점 이전에 이루어진 다른 위반행위를 비로소 인지하여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경우에는 그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금액은 ‘전체 위반행위에 대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경우에 산정되었을 정당한 과징금액 - 이미 부과된 과징금액’을 한도로 하여 부과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관할 행정청이 다른 위반행위를 인지한 시점상 과징금의 일괄 부과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일괄 부과 원칙의 예외는 인정하되, 일괄 부과되었을 경우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처분 상대방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처분양정의 한계를 위와 같이 선언한 대상판결은 역시 타당하다. 예를 들어 A위반행위에 대하여 과징금 2,000만 원이 부과된 후 관할 행정청이 A위반행위 무렵의 다른 B위반행위를 비로소 인지하여 이에 대해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려면, A, B위반행위 전체에 대하여 하나의 과징금을 부과하였을 경우를 가정할 때의 정당한 과징금 3,000만 원을 산출한 후, 거기서 이미 A위반행위에 대하여 부과된 과징금 2,000만 원을 뺀 과징금 1,000만 원을 한도로 B위반행위에 대한 추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3. 대상 판결의 의미 구 여객자동차법령에 의한 과징금 부과처분은 사업(영업)정지처분에 갈음하여 부과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결정재량과 과징금액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재량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재량행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재량적인 과징금 부과처분에 있어서 과징금을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부과할 것인지에 관한 재량에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대상판결은 선언하고 있다. 즉, 대상판결은 과징금 부과처분에 관한 재량권 일탈·남용의 세부 척도로서, ① 관할 행정청이 이미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인지한 이상 일부 위반행위별로 쪼개어 편의적으로 과징금을 별도로 분리하여 부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② 이미 이루어진 과징금 부과처분을 기준으로 관할 행정청이 그 부과처분 이전에 발생한 다른 위반행위를 그 부과처분 이후에 인지하여 불가피하게 과징금의 별도·분리 부과처분이 이루어지게 되더라도, 모든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의 일괄 부과처분이 이루어질 경우에 준수해야 할 (가정적인) 정당한 부과 금액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원칙을 선언한 것이다. 위 ①의 원칙은, 검사가 범죄사실의 전부를 알면서도 수사 기법상 사후에 누락된 사건을 기소하였다면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공소권 남용이론과 유사한 면이 있다. 또한 위 ②의 원칙은 형사재판에서 「형법」 제39조 제1항에 의하여 사후적 경합범(「형법」 제37조 후단)에 대한 형의 양정을 하는 법리와 유사하다. 다만, 행정제재처분에 관하여 형사법리를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는 향후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대상판결은 수회 경합된 위반행위에 대하여 1회 부과 가능한 과징금 최고한도액에 관한 종전 판례(대법원 1995. 1. 24. 선고 94누6888 판결)의 태도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관할 행정청이 인지한 복수의 위반행위 중 일부를 쪼개어 우선 과징금을 부과한 후 나머지 위반행위에 대해 차후에 별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는 없고, 다만 종전 과징금 부과처분 후에야 그 부과 이전에 이루어진 다른 위반행위를 비로소 인지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과징금의 별도·추가 부과를 허용하되, 그 양정상 한도액에는 사후적 경합범에 관한 형사법리와 유사한 법리를 적용할 것을 선언한 최초 판례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은상 교수(서울대 로스쿨)
여객자동차법
복수의위반행위
과징금
사업정지처분
이은상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12-17
헌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금융·보험
민사일반
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Ⅰ. 서론 대법원은 2003. 사업자등록명의를 대여해 준 형식상 수입신고 명의인이 관세납부의무자인 ‘물품을 수입한 화주’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면서 관세법에도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된다고 판시한 이래(대판 2003. 4. 11. 2002두8442), 실질과세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은 관세법에도 동 원칙이 적용됨을 거듭 밝혀왔다(대판 2010. 4. 15. 2009두21260, 2016. 9. 30. 2015두58591 등). 실질과세 원칙이 헌법상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을 조세법률관계에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대판 2012. 1. 19. 2008두8499) 조세법률관계의 일종인 관세법률관계에도 적용됨은 당연하다. 최근 대법원은 관세의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에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하여 과세가격을 재구성한 판결(대판 2022. 11. 17. 2018두47714. 이하 ‘대상판결’)을 선고하였는바, 이를 살펴본다. 이하 필자의 사견임을 밝힌다. 대상판결은 실질과세 원칙을 관세법상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 결정에 적용한 많지 않은 판결 중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으나, 본건 물품의 무상계약으로서의 실질을 고려하지 않고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함으로써, 대법원이 그간 거듭 밝혀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에 벗어난 판시를 한 아쉬움이 있다. Ⅱ.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1. 사실관계 의약품 원료 등을 수입하여 의약품을 제조·판매하는 원고는 2004년 일본법인 A사와 효소계 원료의약품에 관한 독점구매계약(이하 ‘본건 계약’)을 체결하면서 연간 기준물량 이상을 구매하면 구입물량의 일정비율을 ‘무료샘플(Free Sample)’로 무상제공 받는 특약(이하 ‘본건 특약’. 원고는 그 후 4차에 걸쳐 무료샘플 제공 수량을 변경하는 내용으로 본건 특약을 갱신하였다.)을 하고, 2014년 무상제공 받은 원료의약품(이하 ‘본건 물품’)에 관하여 임의의 가격인 5000엔/BU(Billion Unit)을 수입신고가격으로 하여 수입신고를 하였다. 피고는 2015년 원고에 대한 관세조사 후 본건 물품이 무상 수입물품으로서 관세법 제30조 제1항의 ‘우리나라로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위 수입신고가격을 부인하고, 동법 제31조에 따라 유상구매한 원료의약품의 거래가격을 과세가격으로 하여 원고에 대하여 관세 등 합계 1억8291만4840원을 경정, 고지하였다(이하 ‘본건 과세처분’). 원고는, 본건 계약이 1년 단위로 잠정적인 기본가격을 설정하고 일정 수량 이상을 구입한 경우 사후적으로 할인물량을 추가 공급함으로써 최종 가격이 결정되는 연간 구매계약이고, 본건 특약은 ‘가격조정약관’으로서 ‘수량할인’을 규정한 것으로서, 본건 물품의 실제지급가격은 유상구매물량의 대가인 ‘총 지급액’을 유상구매물량과 무상제공물량(본건 물품)을 합한 ‘총 구매물량’으로 나눈 금액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본건 과세처분에 불복하였다. 2. 원심판결(서울고판 2018. 5. 11. 2017누82446)의 요지 세계관세기구 관세평가기술위원회 예해 4.1이 규정하는 가격조정약관은, 수입물품의 가격결정 요소인 생산소요비용 등이 사후 변경되어 ‘수입물품의 대가’가 변경되는 경우로서 과세가격의 임의적인 변경을 방지하기 위해 수입 전에 계약상 그 취지가 명시되어 있어야 하는데, 본건 계약상 유상물품의 ‘기본가격(Base Price)’은 한화로 정하고‘실제가격(actual price)’은 기본가격에 발주 당시 환율을 적용한 일본 엔화로 계산하기로 약정하였을 뿐 기본가격이 구입물량에 따라 조정 가능함을 약정하지 않은 점, 그에 따라 유상 수입물품의 실제가격이 수입신고 되었을 뿐 가격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원고는 본건 물품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임의의 가격인 5000엔을 거래가격으로 수입신고한 점, 본건 물품의 무상제공으로 총 지급액이 낮아지더라도 이는 본건 특약에 따른 결과일 뿐인 점 등을 고려할 때 본건 특약은 가격조정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 세계관세기구 관세평가기술위원회 권고의견 15.1에 의하면 수량할인은 판매자가 기준연도 동안의 구매수량에 따라 물품가격에서 공제하기로 허용한 금액으로 고정가격표에 따라 물품가격을 책정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인정되는데, 본건 특약상 무료샘플 수량을 제외한 연간 구매수량을 기준으로 무료샘플 제공 수량을 정한 점, 본건 계약상 실제가격이 발주 당시 환율로 계산한 일본 엔화로 확정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본건 특약이 수량할인을 규정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에 더하여 본건 특약이 본건 물품을 ‘무료샘플’로 표현하여 당사자 간 무상제공에 관하여 합의한 것으로 보이는 점, 본건 계약 무렵 본건 특약에 따라 무료샘플 공급과 선택적·병행적으로 판매사원들에게 무상 일본관광이 제공된 점 등을 보면, 본건 물품을 무상 수입물품으로 보고 관세법 제31조에 따라 동종·동질물품인 유상 구매물품의 수입신고가격으로 과세가격을 결정한 본건 과세처분은 적법하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본건 특약은 연간 구매수량이 1688 BU 미만인 경우 연간 구매수량의 10% 또는 11%, 그 이상인 경우 구간별로 더 큰 비율로 추가 공급함을 규정하여 반드시 일정 비율의 물품이 추가 공급됨을 예정하고 있어 본건 계약은 원고 주장과 같은 실제지급가격 산정 방식을 내용을 하는 연간 구매계약에 해당하고, 추가공급 물품이 연간 구매수량의 10% 이상으로 적지 않아 본건 물품이 대가 없이 공급된 무상 수입물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심판결에는 무상성, 실질과세 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Ⅲ. 평석 1. 관세법상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과세가격 결정방법 관세의 과세표준은 수입물품의 가격 또는 수량으로 하고(관세법 제15조), 수입물품의 과세가격은 우리나라에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대하여 구매자가 실제로 지급하여야 할 가격에 구매자가 부담하는 수수료 등을 더하여 조정한 거래가격으로 한다(동법 제30조). 무상 수입물품은 우리나라에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포함되지 않는바(동법 시행령 제17조 제1호), ‘판매(sell)’는 대가를 지급하는 유상계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상 수입물품은 과세가격 결정의 원칙을 규정한 관세법 제30조가 아닌 동법 제31조부터 제35조까지에서 규정한 과세가격 결정방법을 순차적으로 적용하여 과세가격을 결정한다. 2. 본건 계약의 실질 내용 국세기본법 제14조 제2항은 “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은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그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한다”고 규정하는바, 관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인 동법 제30조 이하의 규정, 특히 무상 수입물품인지 여부가 쟁점인 본건과 관련하여 동법 제30조, 동법 시행령 제17조 제1호의 규정은 본건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본건 계약의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과 관련하여, 납세의무자가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법률관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가장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과세관청으로서는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함을 거듭 밝혀 왔는바[대판 1991. 5. 14. 90누 3207, 2009. 4. 9. 2007두26629, 2012. 1. 19. 2008두8499(전합) 등],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대상판결처럼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에 따라 납세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될 수 있는 본건에서도 달리 볼 이유는 없으므로 위 판결 취지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본건 특약상 본건 물품은 ‘무료샘플’로서 원고가 이에 대하여 별도의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는바, 본건 특약이 형식상 무상 수입물품에 관하여 규정한 것임은 다툼의 여지가 있기 어렵다. 원심판결이 인정한 앞서 본 사실관계에 더하여 원고가 본건 계약 당시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 부과 쟁점을 제외하고는, 원심판결처럼 본건 물품을 무상으로 보 든 대상판결처럼 유상으로 보든 원고의 총 지급액은 차이가 없어 원고가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적 목적이 동일한 점을 고려할 때, 본건 계약 내지 특약의 실질 내용 역시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임이 명백하다 할 것이다. 아울러 의료법과 약사법은 2010. 경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을 제공한 의약품공급자와 더불어 이를 받은 의료인 등까지 처벌하도록 한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하면서도 ‘견본품 제공’ 등에 대하여는 예외를 인정하였고(의료법 제23조의5, 제88조, 약사법 제47조, 제94조), 본건 무렵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제약기업에 의한 천문학적 액수의 무료샘플 제공이 이루어졌는바, “무료샘플藥, 결국은 약가부담 가중 ‘부메랑’”, 약업신문 2014. 4. 24.자 참조. 무료샘플의 제공이 제약업계의 오랜 관행임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지 아니하는 한편, 원고가 선택하였음이 명백한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를 부인하면서 본건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하는 판단을 하였는바, 이는 대법원이 그간 거듭 천명해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법리에 반하는 판단으로 보여진다. 3. 본건 물품의 과세가격 결정 위와 같이 본건 계약은 형식으로나 실질 내용으로나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임이 명백하므로, 원심이 적절히 설시한 바와 같이 가격조정약관 또는 수량할인의 법리를 적용하여 본건 물품을 유상물품이라 보기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관세법 제31조에 따라 동종·동질물품인, 본건 계약에 따라 공급된 유상물품의 거래가격을 기초로 과세가격을 정하여 한 본건 과세처분은 적법하다고 보아야 한다. Ⅳ. 결론 헌법상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은 관세법률관계에서도 구현되어야 하므로 관세법에 명문 규정이 없더라도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대상판결은 실질과세 원칙을 관세법상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 결정에 적용한 많지 않은 판결 중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으나, 본건 계약의 문언 및 이행 과정 등에서 드러난 본건 물품의 무상제공 계약으로서의 실질을 고려하지 않고 본건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함으로써, 대법원이 그간 거듭 밝혀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에 벗어난 판시를 한 아쉬움이 있다. 이상욱 법무담당관(관세청·변호사)
수입
관세
무료샘플
실질과세
이상욱 법무담당관(관세청·변호사)
2023-05-21
민사일반
부동산·건축
매수인의 등기부취득시효 완성과 매도인에 대한 원소유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
[사실관계] 이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사실관계 등을 요약·정리한다. 1. 이 사건 임야는 1917년 10월 갑 앞으로 사정(査定)되었다. 그 후 지적공부가 멸실되었다가 1977년 3월 소유자 기재가 비어 있는 채로 임야대장이 복구되었다. 2. 피고(대한민국)는 1986년 12월에 위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그리고 1997년 12월 을에게 이를 5천여만 원에 매도하고 1998년 1월 을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다. 3. 그 사이에 갑은 사망하고 그의 재산을 상속한 원고(여럿이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가 2017년 4월에 이르러 피고와 을을 위 보존등기와 이전등기의 각 말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사건의 제1심법원은 동년 12월에 피고에 대한 청구를 인용하고, 을에 대한 청구는 민법 제245조 제2항에 따른 등기부취득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이유로 이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을의 등기부취득시효 완성으로 원고는 소유권을 상실하였다면, 피고에 대한 등기말소청구에 그 권원이 과연 인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어쨌거나 위 판결은 항소가 제기되지 않아 2018년 1월 그대로 확정되었다. 4. 원고는 동월 다시금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소를 제기하면서 국가배상청구를 하였으나 2019년 1월 제1심에서 패소하였다. 원고는 항소한 후에, 피고가 을로부터 수령한 위 매매대금 상당액의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는 청구를 추가하였다. 시효취득자는 무권리자의 양도행위로 목적물을 인도받고 또 등기를 얻어서 10년간 이를 ‘보유’함으로써 취득시효의 요건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종전 소유자는 양수인에 대하여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고 따라서 그에게 무슨 ‘손실’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물론 양도인에 대해서도 그가 수령하였던 매매대금에 대하여 이를 부당이득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10년이 흐르고 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해서, 돌연 같은 내용의 권리가 부당이득의 이름으로 종전 소유자에게 부여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은 위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인용하였다. 즉, 이 사건 토지에 관한 피고 및 을의 소유권등기는 모두 무효인데, 선행소송에서 을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등기부취득시효 완성을 이유로 기각하는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피고는 법률상 원인 없이 을로부터 받은 매매대금 상당의 이익을 얻었고, 원고는 이 사건 토지의 소유권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침해부당이득으로 5천여만 원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단] 파기환송 “적법한 원인 없이 타인 소유 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친 무권리자가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각 등기는 실체관계에 부합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이다. 따라서 이 경우 원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또 무권리자가 제3자와 체결한 매매계약의 효력이 원소유자에게 미치지도 아니하므로, 무권리자가 받은 매매대금이 부당이득에 해당하여 이를 원소유자에게 반환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한편 무권리자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한 제3자나 그 후행등기 명의인이 과실 없이 점유를 개시한 후 소유권이전등기가 말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유의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선의로 점유를 계속하여 10년이 경과한 때에는 민법 제245조 제2항에 따라 바로 그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고(대법원 1999. 12. 10. 선고 99다25785 판결 등 참조), 이때 원소유자는 소급하여 소유권을 상실함으로써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이는 민법 제245조 제2항에 따른 물권변동의 효과일 뿐 무권리자와 제3자가 체결한 매매계약의 효력과는 직접 관계가 없으므로, 무권리자가 제3자와의 매매계약에 따라 대금을 받음으로써 이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원소유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가 받은 매매대금 5천여만 원은 이 사건 토지를 을에게 매도한 것에 대한 대가일 뿐 이후 피고가 원고 또는 그 선대에게 이 사건 토지 소유권의 상실이라는 손해를 가하고 법률상 원인 없이 얻은 부당이득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심판결에는 부당이득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평석] I. 들어가기 전에 1. 이 평석의 대상이 된 대법원판결(이하 ‘대상판결’)은, 민법 제245조 제2항에서 정하는 이른바 등기부취득시효에서 제기될 수 있는 부당이득문제 중 어느 하나에 대하여 태도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소유자가 아님에도 등기부에 소유자로 등기된 사람과의 사이에 부동산을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여 그로부터 등기를 이전받은 사람(이하 ‘양수인’)에 있어서 나중에 등기부취득시효가 완성한 경우에, 원래의 소유자, 즉 그 시효취득으로 소유권을 상실한 사람이 위 매도인(이하 ‘양도인’)에 대하여 그가 받은 매매대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청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2. 대상판결은 그러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긍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 위와 같은 권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태도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나는 그 태도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Ⅱ. 등기부취득시효에서 양수인의 부당이득 문제 - 독일의 경우 1. 우리 민법상 부당이득제도의 해석 운용에서 많은 참고가 되는 독일민법(부당이득제도를 계약·불법행위 등과 나란히 채권의 독립적 발생원인으로 정면에서 규정한 것은 비교법적으로는 스위스가 처음이고,독일이 그에 이어진다)을 살펴보면, 취득시효와 관련하여서 논의되는 것은 오히려 취득시효로 소유권을 상실한 사람이 시효취득자에 대하여 부당이득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아가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면 부동산 자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2. 나에게는 놀랍게도, 제2차 세계대전까지 독일의 최고법원인 ‘제국법원(Reichsgericht)’은 1930년 10월 6일의 판결(RGZ 130, 69)에서 동산의 취득시효 사안에서 이를 긍정하여, 시효취득자가 종전 소유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 없이’ 인도를 받았다면 그 후에 독민 제937조 제1항(10년의 자주점유를 요건으로 정한다)에 의하여 취득시효가 완성하였더라도 부당이득을 이유로 부동산 자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 판결은 관련 학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위 판결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 긍정설이 부정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위 판결도 지적하는 대로(위 판결집, 73면), 소유권 취득의 물권행위에 하자가 없어서 소유권 이전을 인정하더라도 원인행위가 효력이 없으면 부당이득으로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물권변동에 관한 독일 특유의 입장(부당이득에 관한 이른바 공평설의 밑바탕!)에 입각하여, 취득시효로써 소유권은 물론 인정되지만 그 요건의 일부인 소유권등기가 ‘법률상 원인 없는’ 행위에 기하여 이루어졌다면 마찬가지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무겁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보다 구체적으로는, 동산의 시효취득은 앞서 본 대로 10년의 자주점유를 요건으로 하는데, 위와 같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인정되면 그것은 30년의 소멸시효에 걸려서(2002년 개정 전의 독민 제195조) 원래의 소유자가 권리를 회복할 법적 가능성을 훨씬 오래 가지게 되는 실익이 있다. 비록 부동산의 취득시효는 앞서 본 대로 30년의 자주점유를 요하여 그 점에서는 동산의 경우와 차이가 있지만, 부당이득과 관련하여서도 동산취득시효와 부동산취득시효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원고가 행위무능력(독민 제105조 제1항에 의하면 행위무능력자의 법률행위는 무효이다)의 상태에서 1908년 피고에게 증여한 그림들의 반환이 청구된 사건에서 원심법원이 취득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한 것을 파기환송하였다. 3. 그러나 현재의 연방통상대법원(Bundesgerichtshof)는 2016년 1월 22일의 판결(BGHZ 208, 316; NJW 2016, 3162)에 이르러 지상권의 취득시효(부동산에 대한 제한물권의 취득시효에 대하여는 독민 제900조 제2항 참조)가 인정된 사건을 판단하면서 소유자의 지료 상당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부인하는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앞서의 제국법원 판결이 나오고 무려 85년도 더 지난 후이었다. 그 이유 중 중요한 것은 취득시효제도의 목적이 법적 안정성에 있다는 점이다. 즉 소유권을 원시적으로 시효취득하는 사람은 그의 취득행위상의 하자로부터 발생하는 대항사유도 역시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첫째, 민법전에서 부합·혼화·가공에 대하여는 제951조(우리 민법 제261조 해당)에서, 유실물 습득에서는 -우리 민법과는 달리- 제977조에서 권리상실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명문으로 규정함에 반하여 취득시효에 대하여는 그러한 규정이 없다는 것, 둘째, 소멸시효 규정에 대한 2002년의 민법 개정으로 이제 부당이득반환청구권도 3년 또는 10년의 소멸시효에 걸쳐서(민법 제195조, 제199조 제3항) 종전의 판례가 들었던 권리 회복 가능성의 점에서의 차이가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위 판결에서 보이는 학설 상황의 그 사이의 변화로서 이제는 부정설이 긍정설보다 큰 차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Ⅲ. 등기부취득시효에서 양도인의 부당이득 문제 1. 이상에서 다룬 독일 판례의 굴절에 대하여는 보다 상세한 다른 글을 기약하거니와,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취득시효 자체가 그 안에 종전 소유자에 대하여 그 소유권 취득에 관한 ‘법률상 원인’을 담고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이에 대하여는 곽윤직 편집대표, 민법주해[XVII], 2005, 253면 말미 이하(양창수 집필) 참조). 그렇다면 이제 종전 소유자는 시효취득한 양수인이 아니라 양도인에 대하여는 그가 수령한 매매대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청구할 수 있다고 할 것이 아닌가? 양도인은 타인 소유의 물건을 권한 없이 매도하여 인도 및 등기 이전함으로써 양수인이 시효취득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여 결국 종전 소유자로 하여금 그 소유권을 상실하게 하였고 그러한 손실에 기하여 매매대금 상당의 이득을 얻은 것이 아닌가? 2. 나는 위와 같은 부당이득 문제에 대하여 앞서 본 『민법주해』에서 다음과 같이 적으면서 그것이 부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병이 을에게 갑의 소유권을 매도하고 대금을 수령한 것으로는, 갑이 여전히 소유권을 가지는 이상 갑에게 무슨 「손실」이 있다고 할 수 없어서 갑에 대하여 그 매매대금에 관하여 부당이득반환책임을 지게 된다고 할 수 없는데, 나아가 나중에 갑이 소유권을 상실한 것이 을의 시효취득으로 인한 것인 이상 그를 이유로 돌연 병의 매매대금 취득이 부당이득이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254면) 즉 취득시효의 효과로서 문제되는 소유권의 귀속은 종국적이며, 종전 소유자의 소유권 상실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포함하여 다른 법적 형식으로도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 소유의 물건이 소유자 아닌 사람에 의하여 권한 없이 제3자에게 양도되었는데 양수인의 선의취득으로 종전 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한 경우에 그가 양도인에 대하여 ‘양도로 취득한 것’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처리될 수는 없다. 이 경우에는 무권리자의 처분행위가 애초 유효하였던 것으로서, 선의취득제도의 취지에 좇아 그로 인한 권리 상실의 말하자면 ‘대가’ 또는 ‘보상’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이는 법적 성질로 보면 이른바 침해부당이득에 해당한다. 이는 선의취득의 경우가 아니라 무권리자의 처분행위가 권리자에 의하여 추인됨으로써 소급적으로 유효하게 되는 경우에도 크게 다를 바 없다(이상은 무권리자의 유효한 처분에서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정하는 독민 제816조에 대한 통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취득시효의 경우는 그렇게 볼 수 없다. 시효취득자는 무권리자의 양도행위로 목적물을 인도받고 또 등기를 얻어서 10년간 이를 ‘보유’함으로써 취득시효의 요건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종전 소유자는 양수인에 대하여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고 따라서 그에게 무슨 ‘손실’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물론 양도인에 대해서도 그가 수령하였던 매매대금에 대하여 이를 부당이득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10년이 흐르고 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해서, 돌연 같은 내용의 권리가 부당이득의 이름으로 종전 소유자에게 부여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한편 양도인은 대체로 위 취득시효기간이 진행되는 10년 정도 어느 누구로부터도 매매대금의 반환을 청구받지 아니하여서, 만일 누구에게 그 반환을 청구할 권리가 성립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소멸시효가 완성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양수인이 목적물을 시효취득하였다는 사정에 기하여 이를 종전 소유자에게 반환하여야 할 것인가? 대상판결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부정되는 이유와 관련하여 “종전 소유자의 소유권 상실은 민법 제245조 제2항에 따른 물권변동의 효과일 뿐 무권리자와 제3자가 체결한 매매계약의 효력과는 직접 관계가 없으므로, 무권리자가 제3자와의 매매계약에 따라 대금을 받음으로써 이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원소유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라고 설시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문제상황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3. 취득시효에서 제기되는 위와 같은 부당이득 문제, 그리고 그에 대하여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견해를 밝힌 경우는 위 문헌이 발간되던 당시에 국내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유감스럽게도 사태는 그 후에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별로 달라진 바 없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그러한 부당이득 문제가 실제로 발생함을 보여준다. 다른 모든 학문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법학에서도 상상력은 필요하고 문제의 발견 내지 인식은 그 해결의 출발점인 것이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전 대법관)
토지
등기부취득시효
시효취득
부당이득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전 대법관)
2023-05-10
부동산·건축
행정사건
손실보상금 채권에 관한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인한 피수용자의 당사자적격 상실 여부
1. 사실관계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2012년 4월 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하 ‘피고’)가 시행하는 본건 보금자리주택사업에 관하여 주식회사 씨○○○○○(이하 ‘원고’)가 운영하는 공장 영업시설을 이전하게 하고 원고의 영업손실에 대한 보상금을 68억2575만 원으로 정하는 내용의 수용재결을 하였다. 원고는 위 보상금을 이의를 유보하고 수령한 뒤 2012년 5월 22일 보상금의 증액을 구하는 본건 소를 제기하였다. 원고의 채권자들은 본건 소 제기일 이후부터 원심판결 선고일 이전까지 사이에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실보상금 채권에 관하여 압류·추심명령(이하 '본건 추심명령'이라 한다)을 받았다. 2. 소송의 경과 1심과 2심은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피고는 2심 선고시까지 본건 추심명령에 관하여 어떠한 주장도 하지 아니하였으나, 2심 판결에 대하여 상고를 하면서 추가적으로 본건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원고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되었다고 주장하였다. 3. 본 사안의 쟁점 본 사건의 주요 쟁점은 본건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원고가 본건 보상금 증액 청구 소송을 수행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는지 여부이다. 4. 대상판결 요지 대상판결은 (i)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 제85조 제2항은 토지소유자 등이 보상금 증액 청구의 소를 제기할 때 사업시행자를 피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보상금 증액 청구의 소는 당사자소송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재결을 다투는 항고소송의 성질을 가진다는 점, (ⅱ) 행정소송법 제12조 전문은 (항고소송인) “취소소송은 처분 등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금전채권을 가지고 있는 제3자는 재결에 대하여 간접적이거나 사실적·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질 뿐 법률상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점, (ⅲ) 보상금 증액 청구 소송은 토지보상법 제34조, 제50조 등에 규정한 재결절차를 거친 뒤 그 재결에 대하여 불복이 있을 때만 제기할 수 있다는 점, (ⅳ) 손실보상금 채권은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 또는 행정소송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존부 및 범위가 확정된다는 점, (v) 채권자가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채권자가 손실보상금 채권의 확정을 위한 절차에 참여할 자격까지 취득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본건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원고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어서 대상판결은 종전에 손실보상금 채권에 관하여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을 경우 원고인 채무자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는 취지로 판단한‘대법원 2013. 11. 14. 선고 2013두9526 판결’(이하 ‘종전 대법원 판결’)의 견해를 변경하였다. 소제목 5.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가. 추심명령에 의한 채무자의 이행의 소 당사자적격 상실 여부 금전채권에 대하여 (가)압류만 이루어진 경우 채무자는 제3채무자로부터 현실적으로 급부를 받는 것이 금지될 뿐이고 제3채무자를 상대로 이행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23888 판결). 한편 민사집행법 제229조 제2항은 “추심명령이 있을 때에는 압류채권자는 대위절차 없이 압류채권을 추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금전채권에 대하여 추심명령이 이루어진 경우, 압류채권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추심권한을 취득한다는 점에서는 다툼이 없을 것이나 채무자가 이행의 소에 관한 당사자적격을 상실하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채무자의 이행의 소에 관한 당사자적격이 인정되면서 별도로 추심채권자도 추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23888 판결’은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으면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의 소는 추심채권자만이 제기할 수 있고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라고 판시하였다. 하지만 위 대법원 판례는 추심명령이 있으면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만 판시하였을 뿐, 이에 대하여 구체적인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하고 있어 의문이 남는다. 안상철 대법관도 대상판결에서 보충의견으로, “민사소송에 관한 판례의 법리는 그 자체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판시하며 위 대법원 판례가 변경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 나. 종전 대법원 판결 요지 종전 대법원 판결은 위 민사소송에 관한 대법원 판례 법리를 그대로 인용하며, ‘원심판결 선고 당시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원고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되었으나 원심 판결 선고 이후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원고의 당사자적격이 회복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다. 종전 대법원 판결의 판단이유 손실보상금 증감 청구의 소는 실질적으로는 재결의 효력을 다투는 형식적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 그런데 피수용자가 손실보상금 증액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를 하는 경우, 법원은 민사소송상 금전지급을 명하는 이행판결의 주문과 같이 “피고는 원고에게 손실보상금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라고 선고한다. 추측건대 종전 대법원 판결은, 공법관계와 사법관계라는 차이는 있지만 손실보상금 증액청구의 소의 승소판결과 민사소송상 금전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보아, 손실보상금 증액청구 소송에서도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을 시 채무자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는 민사소송 판결의 법리를 적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라. 종전 대법원 판결에 의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1) 피수용자의 손실보상금 증액 청구 불가능 토지수용으로 인한 피수용자의 손실보상금 채권은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의 수용재결로 인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나, 사업인정의 고시가 있으면 수용대상 토지에 대한 손실보상금의 지급이 확실시된다 할 것이므로 사업인정 고시 후 수용재결 이전 단계에 있는 피수용자의 손실보상금 채권은 피압류채권의 적격이 있다(대법원 1998. 3. 13. 선고 97다47514 판결 등).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용재결 이전에 손실보상금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을 경우, 피수용자는 변제 등의 방법으로 압류 및 추심명령을 취소 또는 해제하지 않는 이상 당사자적격을 상실하여 손실보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피수용자가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는 상태에서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하거나 피수용자가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하여 진행 중인 과정에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이루어진다면 당사자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소 각하 판결이 이루어질 것이다. 소 각하 판결 이후 피수용자가 압류 및 추심명령을 취소 또는 해제한 뒤 다시 소를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법원은 토지보상법 제85조 제1항에서 정한 제척기간이 도과하여 재차 소 각하 판결을 할 것이다. 결국 채권자의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피수용자는 손실보상금 증액의 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2) 채권자의 손실보상금 증액의 소 제기 가능 여부 피수용자가 손실보상금 증액의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추심명령 이후 추심채권자가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의 당사자적격을 취득하거나 채권자대위권에 기하여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추심채권자가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토지보상법 제85조 제2항은 손실보상금 증액 청구 소송의 당사자를 토지소유자 및 관계인, 사업시행자로 정하고 있다. 관계인이란 “사업시행자가 취득하거나 사용할 토지에 관하여 지상권·지역권·전세권·저당권·사용대차 또는 임대차에 따른 권리 또는 그 밖에 토지에 관한 소유권 외의 권리를 가진 자나 그 토지에 있는 물건에 관하여 소유권이나 그 밖의 권리를 가진 자”를 말한다(토지보상법 제2조 제5호). 추심채권자는 금전채권자에 불과하고 토지에 관한 권리를 가진 자가 아니므로 관계인에게 해당하지 아니한다. 또한 채권자대위권은 사법관계를 규율하는 민법상 권리라는 점에서, 공법관계인 행정소송을 채권자대위권에 근거하여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래된 대법원 판결이기는 하지만, 대법원 1956. 7. 6. 선고 4289행상33 판결은 ‘행정소송은 행정청 또는 그 소속기관으로부터 위법한 처분을 받은 자만이 제기할 수 있고 그 이외의 자가 대위하여 제기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상판결도 ‘토지소유자 등에 대하여 금전채권을 가지고 있는 제3자는 … 토지소유자 등을 대위하여 보상금 증액 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한편‘서울고등법원 2015. 4. 21. 선고 2014누7291 판결’(피고가 상고를 하지 아니하여 항소심에서 판결이 확정되었다)은 ‘수용으로 인하여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이행불능이 된 경우 토지의 매수인이 손실보상금의 반환청구권(대상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채권자대위권에 근거하여 손실보상금 증액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으나, 이는 타당한지 의문이다. 6. 결어 토지보상법 제85조 제2항은 손실보상금 증액의 소 당사자를 토지소유자 및 관계인으로 정하고 있고,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토지소유자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고 볼 근거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토지소유자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된다고 보면, 토지소유자나 추심채권자는 손실보상금 증액을 청구할 수 없어서 위법·부당한 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을 다툴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에 대상판결의 논리가 타당하다고 사료된다. 배상현 변호사(OCI 주식회사)
압류
손실보상금
토지보상
추심
배상현 변호사(OCI 주식회사)
2023-03-23
금융·보험
민사일반
민법 제923조 친권 소멸 후 자녀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과 민법 제974조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부양의무
1. 사실관계 및 대법원의 판결 소외 망 A는 1993년 피고와 혼인하여 자녀로 B(1993년생)와 C(1997년생)를 둔 뒤 1998년 이혼하였는데, A가 2011년 추락 사망하여 피고는 2012. 6. 27. B, C의 친권자로서 A의 사망보험금으로 약 1억7000만 원을 원고(보험회사)로부터 수령하였다. 그 후 A가 자살한 것으로 밝혀져 원고는 피보험자의 고의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보험계약 내용에 따라 2012. 12. 27. B와 C를 상대로 보험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 2015년 원고 승소판결이 확정되었고, 원고는 그 직후 채무자 B와 C, 제3채무자 피고, 피압류채권 ‘B와 C의 피고에 대한 보험금반환청구권’으로 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으며, 위 명령은 피고에게 송달되었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추심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은 자녀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행사상의 일신전속권이므로 피압류채권으로서 적격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추심명령이 무효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항소심은 제1심과 마찬가지로 반환청구권이 일신전속권이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일신전속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B는 성년이 된 후 피고의 반환의무를 면제하였거나 B(자녀)의 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고, C의 보험금은 피고가 모두 소비하였으므로 반환할 보험금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원고가 상고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자녀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일신전속권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원심의 부가적·가정적 판단 부분은 수긍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 가. 부모와 성년 자녀 사이의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가 민법 제974조 제1호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대법원 1994. 6. 2.자 93스11 결정,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다96932 판결, 대법원 2013. 8. 30.자 2013스96 결정, 대법원 2017. 8. 25.자 2017스5 결정). 그런데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에 대하여는 친권자의 의무라는 견해 등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직계혈족간 부양의무를 규정한 민법 제974조 제1호라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민법 제975조와 관계에서 ‘부양을 받을 미성년 자녀가 자기의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부모가 부양의무를 이행할 책임이 있는지’가 문제 된다. 이런 이유로 종래 민법 제974조 제1호가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라고 해석하는데 망설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 친권자는 자녀가 그 명의로 취득한 특유재산을 관리할 권한이 있는데(민법 제916조), 그 재산 관리 권한이 소멸하면 자녀의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을 하여야 한다(민법 제923조 제1항). 여기서 관리의 계산이란 자녀의 재산을 관리하던 기간의 그 재산에 관한 수입과 지출을 명확히 결산하여 자녀에게 귀속되어야 할 재산과 그 액수를 확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 친권자가 자녀의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을 하는 경우 그 자녀의 재산으로부터 수취한 과실은 그 자녀의 양육, 재산관리의 비용과 상계한 것으로 본다는 민법 제923조 제2항의 규정을 고려하면, 대법원이 이 사건 판결에서 지적하다시피 친권자는 자녀의 특유재산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임의로 사용할 수 없음은 물론 자녀의 통상적인 양육비용으로도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 원칙이고, 친권자가 자신의 자력으로는 자녀를 부양하거나 생활을 영위하기 곤란한 경우 또는 친권자의 자산, 수입, 생활 수준, 가정 상황 등에 비추어 볼 때 통상적인 범위를 넘는 현저한 양육비용이 필요한 경우 등과 같이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자녀의 특유재산을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라. 결국 부모는 부양받을 미성년 자녀가 자기의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부양의무가 발생하는데, 그 근거는 민법 제974조 제1호 직계혈족 간 부양의무라고 봄이 타당하다.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특별 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 민법 제923조 규정이 우선 적용되므로 민법 제975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판시를 한 것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의도하지 않은 성과라 할 만하다.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다. 3. 피압류 적격에 관한 판단 : 일신전속권인지 여부 가. 친권자의 특유재산반환의무는 민법 제923조 제1항의 계산 의무 이행 여부를 불문하고 그 재산 관리 권한이 소멸한 때 발생하고, 이에 대응하는 자녀의 친권자에 대한 반환청구권은 재산적 권리로서 일신전속적인 권리가 아니므로 자녀의 채권자가 그 반환청구권을 압류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 나. 자녀의 특유재산반환청구사건은 가사소송법이나 가사소송규칙 그 밖의 법률에서 가정법원의 전속관할에 속하는 가사사건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민사사건으로 지방법원에서 심리 재판해야 한다.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일신전속권이 아니라는 판시만 한 것은 법률심으로서 대법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방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친권 소멸 후 자녀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에 대해 명확히 판단하고, 간접적으로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를 밝히는 데 일조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4. 피압류채권의 존부에 관한 판단 가. 직권조사사항 :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으면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의 소는 추심채권자만이 제기할 수 있고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하여야 할 것(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23888 판결 등)이므로 당사자적격에 관한 사항은 소송요건에 관한 것으로서 직권조사사항이고(대법원 1994. 9. 30. 선고 93다27703 판결 등) 변론주의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 나. B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의 존부 (1) 대법원은 B가 2012. 8. 22. 성년에 달한 후 묵시적으로 특유재산반환의무를 면제하거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원심의 판단을 근거로 B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소멸되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채권을 대상으로 한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서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2) 그러나, B가 성년에 달하기 2개월 전에 피고가 법정대리인(친권자)으로서 보험금을 수령한 점, B가 성년에 달하고 4개월 후 원고가 B와 미성년자인 C를 상대로 보험금 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한 점을 고려하면 B가 특유재산반환의무를 면제하거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한 것은 원고의 보험금을 회수하려는 일련의 노력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 다. C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의 존부 (1) 대법원은 C의 특유재산반환청구권과 관련하여 A가 사망한 2011년부터 2017년 군입대 전까지 C는 피고 및 피고의 재혼 남편 X와 함께 살아온 점, 피고가 소득활동을 하였으나 교육비, 생활비를 포함하여 C의 양육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보험금에서 충당한 점, 피고의 재혼 남편 X가 C의 2017년 1학기 대학등록금을 대신 지급한 점 등을 종합하여 C가 성년에 달하여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발생한 2017. 7. 2. 무렵에는 피고가 C의 양육비 등으로 보험금을 모두 소비하여 C에게 반환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2) 민법 제974조 제1호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이란 며느리와 시부모 관계, 사위와 장인·장모 관계, 계친자 관계(계부와 처의 자녀 사이, 계모와 남편의 자녀 사이)를 의미한다. 물론 직계혈족간은 부모자식간, 조부모와 손자녀간 등 직계혈족 사이를 의미한다. 한편, 민법 제833조는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당사자간에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 피고의 재혼 남편 X는 피고의 남편으로서 C와는 민법 제974조 제1호에서 정한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에 해당하여 서로 부양의무가 있다. 만약 피고가 사망하였다면 배우자 관계가 소멸하여 (X가 재혼하지 않는 이상) X와 B, C는 단순 인척 관계에 불과하므로 X는 B, C와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하여 부양의무가 발생하지만(대법원 2013. 8. 30.자 2013스96 결정), 피고가 생존해 있는 한 X는 B, C와 생계를 같이 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이므로 부양의무가 발생한다. 한편, X는 피고의 남편으로서 부부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X와 피고가 공동으로 부담하므로 X가 C를 부양한 것은 민법상 부양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C는 부당이득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피고는 자신의 재혼 남편 X가 C를 부양한 것을 이유로 C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의무의 면책을 주장할 수는 없다. 5. 결론 특유재산반환청구사건은 가사사건이 아니라 일반 민사사건이므로 대법원이 상고기각으로 자판을 할 것이 아니라 파기환송하여 사실심에서 B와 C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권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인 사실 심리를 한 후 판단하도록 했어야 한다.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일신적속권이 아니라는 판시만 한 것은 법률심으로서 대법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방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친권 소멸 후 자녀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에 대해 명확히 판단하고, 간접적으로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를 밝히는 데 일조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반환청구권
재산관리
친권자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2022-12-18
자기관련성 요건 충족 여부 판단에서의 반사적 이익
Ⅰ. 들어가며 필자는 그동안 세계헌법대회(2018년 서울) 조직위원장 활동, 교과서('신헌법입문', '헌법학', '헌법재판요론'), 학술서적('기본권총론', '국가권력규범론', '헌법재판론') 출간 등으로 평석발표활동이 부득이 미루어지다가 법률신문을 통해 본격 재개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저술활동 등에 쏟은 지난 시간이 소중하고 값진 것이지만 판례평석작업이 법리발달에 기여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법학자로서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평석의 다양한 패러다임을 시도해 보는, 예를 들어 한 결정에서 많은 쟁점들 중 하나의 법리적 쟁점을 두고 집중하여 다루는 평석도 의미있다고 본다. 이는 실무에서 판단논증을 보다 더 정교히 하게 하는 발전을 도모하는 집약적 평석 효과를 거두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하 평석도 그러한 방향성을 띤 것이다. Ⅱ. 평석의 대상과 취지 분석대상의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2021년 6월 24일 선고한 2020헌마651결정인데, 여기서는 이 결정에 대해 본안판단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고 청구요건인 자기관련성이 청구인 이용자들에게 없다고 본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살펴본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라고도 함)는 자기관련성 요건 충족 여부 판단에서 반사적 이익이라서 부정된다는 판시를 하곤 하여 의아스럽게 하였는데 바로 이 결정에서도 그러하였다. 그래서 판례가 혼란을 보여주는 반사적 이익의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살펴보고자 한다. Ⅲ. 사건개요와 심판대상 사건은 논란이 많았던 사안으로, 승합자동차의 모빌리티 서비스(운전자의 알선 포함 승합자동차 대여 서비스)사업을 제한(운전자 알선이, 관광목적으로 승차정원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인 승합자동차를 임차하는 경우로 대여시간 6시간 이상이거나, 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로 한정하여 인정되고 그 외 경우에는 금지)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2020. 4. 7. 법률 제17234호로 개정된 것) 제34조 제2항 단서 제1호 '바'목 해당 규정에 대하여 그 사업을 수행하는 회사, 그 회사 직원들, 그 서비스 운전자들, 그 서비스 이용자들이 2020년 5월 1일 청구한 헌법소원사건이다. Ⅳ. 결정요지, 해당 각하결정 이유 헌재는 먼저 적법요건에 대한 판단으로 위 이용자들(이하 '청구인 이용자들')의 심판청구는 기본권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부적법하다고 하여 각하하였다. 헌재는 그 이유로 그들이 이전에 위 제한 없이 운전자 알선 포함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자동차 대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자동차대여사업자의 영업 방식을 규율하는 법적 여건에 따른 반사적 이익 내지 사실상 혜택에 따른 것이므로 법적 여건의 변화로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불이익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반사적 이익의 축소 내지 사실적인 불편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청구인…이용자들의 심판청구는 기본권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지 아니하여 부적법하다"라고 판시하였다. 바로 이 부분이 필자가 평석할 주대상이다. 이어 회사의 청구 부분에 대해 본안으로, 1.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 위배 여부, 2.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하여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였는지 여부, 3.신뢰보호원칙 위반 여부를 판단하였는데 모두 그 준수를 인정하여 합헌성인정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결정을 하였다. Ⅴ. 평석 - 청구인 이용자에 대한 판단 부분 1. 반사적 이익과 자기관련성 헌재는 청구인 이용자들의 위 불이익은 '반사적 이익의 축소 내지 사실적인 불편'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자기관련성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이에 관해서는 다음의 두 법리를 살피는 것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1) 첫째, 반사적 이익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흔히 반사적 이익이란 개인적 공권이 아닌, 권리성을 가지지 않는 이익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반사적 이익이라고 한다면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권(이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헌법이 보호하는'이란 말없이 그냥 '기본권'이라고도 함)의 문제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2) 둘째, 자기관련성의 개념이다. 기본권침해(제한)의 자기관련성이란 어떤 특정의 기본권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본인 자신에게 침해되는 것을 말한다. 기본권의 제한을 가져오는 공권력행사나 불행사가 향해지고 영향을 미치는 대상, 객체가(기본권제한의 효과가 귀속되는 주체가) 청구인 본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모순성 반사적 이익인지 여부는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권이 존재하는지 여부의 문제이고 기본권침해(제한)의 자기관련성은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권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침해(제한)되면 그 침해가 청구인 자신에게 그 효과가 발생하는 것인지 하는 문제이므로 양자는 별개의 것이다. 따라서 반사적 이익이라고 보면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권이 아니라서 기본권침해가능성이 아예 없어 기본권침해의 자기관련성이 부정되는 이유로 반사적 이익임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결국 반사적 이익이라고 하면서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반사적 이익 문제는 기본권침해의 관련성요건과 별개로 요구되는 청구요건인 '기본권침해의 존재(가능성)' 문제이다. 반면 자기관련성이란 제한이 가해지는 바로 그 사람 자신에게 제한효과가 오고 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그리하여 자기성(자기귀속성)이 자기관련성의 핵심이라고 한다. 필자는 반사적 불이익이라고 헌재가 판단한다면 그것은 기본권의 침해가 아니어서 침해가능성 요건의 결여로 보아야 하고 자기관련성 요건의 결여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정재황, 헌법재판론, 제2판, 박영사, 2021, 925면, 951-952면; 정재황, 헌법재판요론, 박영사, 2021, 244면). 헌재가 반사적 이익이라고 보아 기본권침해가능성이 없다고 제대로 구분한 결정례들(예를 들어 헌재 1999. 11. 25. 99헌마163; 2000. 1. 27. 99헌마660; 2008. 2. 28. 2006헌마582)이 있으나 반사적 이익, 사실적 이해관계라고 본 뒤 자기관련성이 없다고 각하한 모순적인 결정들을 보여주었다(예를 들어, ① 헌재 2017. 12. 28. 2015헌마997. [판시] LPG 연료 사용가능 자동차 범위를 제한하는 시행규칙조항에 대하여 LPG자동차로 개조하는 사업체 직원, LPG충전소 사업자가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에서 따라 간접적, 사실적, 경제적 이해관계만을 가질 뿐이므로 자기관련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부적법하다, ② 헌재 2006. 10. 26. 2004헌마13. [판시] 국가의 유아에 대한 사립유치원 교육비지원은 사립유치원 경영자가 얻게 되는 반사적이고 간접적인 이익에 불과하므로, 그 상한 이상 지원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3. 검토사항 반사적 이익이라고 본 헌재의 판단을 일단 그대로 두고 논증의 정연성을 보기로 했지만 사실 반사적 이익인지 여부의 판단기준이 문제된다. 전통적 설명에 따르면 반사적 이익인지 여부의 구분기준이 법이 그 이익을 개인의 이익으로서 법적으로 보호해주려는 의도를 가진 것인지 여부에 두고 그런 의도가 없는 이익이 반사적 이익이라는 것이다. 본 사안에서 청구인 이용자들이 입은 불이익을 반사적인 것으로 보는 논증을 청구인 회사에도 그대로 적용하면 위 서비스 사업을 제한하는 것이 청구인 회사에게도 반사적 이익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이제까지 그러한 규제가 없어서 그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그 이익은 규제가 없다는, 법적 여건에 따른, 반사적 이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경우에도 서비스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한다면 쉽사리 반사적 이익이라고만 할 것인지 의문이다. 앞으로 연구과제이다. 4. 논증의 치밀성의 필요성 사실 위 3.에서 지적한 문제는 별도로 따져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 평석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구분기준에 따를 것인지, 또 반사적 이익으로 볼 것인지 하는 판단 자체에 대한 평가는 일단 접어둔다(위 판시에서 이에 대한 설시도 그리 많지 않다). 그리하여 헌재가 반사적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침해되는 기본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아예 기본권의 제한이라는 문제가 나온다고 볼 수 없고 기본권 제한의 자기관련성이라는 별개의 문제에 연결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논증상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Ⅵ. 결어 본고에서는 평석을 위와 같이 한정하긴 했지만 본 사안은 근본적으로 공권, 기본권이 무엇인가 하는 기초적인 질문을 하게 하고(기본권의 공권성에 대한 근본적 검토 등에 대해서는 정재황, 헌법학, 2021, 428면 이하 참조) 반사적 이익의 개념, 판단기준 등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헌법재판법리가 절차법적인 것이나 기본권보장의 보루이므로 그 법리의 적용에 있어서 논증이 보다 더 정확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국민의 기본권보장에 더욱 만전을 기하고 법리의 정교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재황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정재황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20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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