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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일반
부동산·건축
무단임대행위 후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후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이와 같이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그러나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등을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단임대행위 등 당시 유치권자와 새로운 소유자 간에는 아무런 권리의무관계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판결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1. 사안의 요지 A는 부산 부산진구 일대 주상복합 아파트 신축 분양 사업의 시행자이다. A는 2003. 3.경 B를 시공사로 선정하여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B는 피고를 포함한 18업체에 공정별로 하도급을 주었다. B는 2005. 10.경 기성고율 92.41% 상태에서 부도가 났다. 피고는 공사비를 직접 부담하며 2006. 7.경 공사를 모두 마쳤고 2006. 12.경부터 위 주상복합 아파트 제1305호(이하 “본건 부동산”)를 포함한 6세대에 대하여 유치권을 행사하였다. A는 2006. 2. 23.경 본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였다. 이후 2010. 3. 12. C, 2013. 2. 23. D, 2013. 6. 28. F, 2018. 5. 21. 원고 순으로 본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각 이루어졌다. 한편, 피고는 2007. 10. 4.부터 2012. 2. 3.까지 A, C의 동의 없이 G에게 본건 부동산을 무단 임대하였다가 2012. 2. 4.부터 다시 본건 부동산을 직접 점유하였다. 2. 본건의 쟁점 본건의 쟁점은 2018. 5. 21. 본건 소유권을 취득한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2007. 10. 4.부터 2012. 2. 23.까지 이루어진 피고의 무단 임대행위를 이유로, 민법 제324조 제3항에 의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3. 소송의 경과 가.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은 “피고가 G에게 이 사건 부동산을 임차한 것은 2007. 10. 4.부터 2012. 2. 3.까지이므로, 2018. 5. 21.에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한 원고에게는 위 사유로 인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부산지방법원 2019나46459 판결, 선고일자는 생략하였음, 이하 같음). 나.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원심판결과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324조 제2항을 위반한 임대행위가 있고 난 뒤에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를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였다. 4.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민법 제324조 유치권자의 선관의무 유치권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유치물을 점유하여야 하고, 채무자의 승낙 없이 유치물을 보존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사용하거나 대여 또는 담보제공을 할 수 없다(민법 제324조 제1, 2항). 유치권자가 제324조 제2항을 위반하여 채무자의 승낙 없이 유치물을 사용, 대여, 담보제공 등을 한 경우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24조 제3항). 나. 채무자에 유치물 소유자도 포함되는지 민법 제324조는 “채무자”라고만 규정하고 있어서, 유치물 소유자도 위 채무자에 포함되는지를 견해 대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민법 제324조 제2, 3항은 통상 채무자와 소유자가 동일한 경우를 예상하여 규정된 것일 뿐이고, 채무자와 소유자가 다를 경우에는 오히려 사용, 수익, 처분 권한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만이 사용 승낙을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며 소유자도 민법 제324조의 채무자에 포함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0다94700 판결 참조). 다. 소유권 변동시 새로운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유치권자가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유치물을 사용, 대여 등을 하였으나 그 이후에 소유권의 변동이 발생하면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다시 얻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는 확인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유치권자가 소유권변동 사실을 알 수 없어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거나, 유치권자가 소유권변동을 알게 된 후 곧바로 유치물의 사용 등을 중단하거나, 새로운 소유자의 유치권 소멸청구가 신의칙에 위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유치권자는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기초로 새로운 소유자에 대항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며, 원칙적으로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9나2006117 판결). 라. 유치권소멸청구권의 발생 시기 민법 제324조 제3항은 “유치권자가 전2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에는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리해석하면,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가 같은 조 제2항의 의무를 위반한 때 발생한다고 할 것이다. 마.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채무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형성권(形成權)이다[민법 물권 제3권, 김용덕, 한국사법행정학회(2019. 5.) 제529쪽]. 다만 민법은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법률에 존속기간의 정함이 없는 민사상 형성권에 관하여 그 존속기간을 10년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88다카25342 판결, 대법원 90다카4409 판결 등 참조). 이에 민사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은 10년이라 할 것이다. 한편 상사유치권의 경우 민법상 유치권 규정이 준용될 것이므로(상법 제1조) 상사유치권에 대하여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은 상법상 형성권은 상법 제64조를 유추적용하여 제척기간을 5년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9다271661 판결). 상법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은 5년이라 할 것이다. 바. 대상판결에 대한 의견 1)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할 법률상 근거와 논리에 대한 의문점 대상판결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와 논리가 무엇인가이다. 대상판결은 민법 제324조가 유치물의 소유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새로운 소유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치물의 소유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민법 제324조의 입법취지가 될 수 있을지라도 이것만으로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위반행위 당시 유치권자는 새로운 소유자에게 의무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관계’란 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법률관계의 핵심은 권리와 의무인데 원칙적으로 권리와 의무는 상응한다. 일반적으로 법률은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는 일방이 이를 위반하였을 시 그 의무의 수혜자인 상대방에게 해제권, 취소권, 손해배상청구권 등의 권리를 인정한다. 본 사안에서 유치권자인 피고는 무단임대행위를 할 당시 원고에게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하였고, 원고도 유치물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었다. 앞서 인용한 ‘서울고등법원 2019나2006117 판결’은 소유자의 변경 시 유치권자로 하여금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얻도록 하였는데,이는 유치권자와 종전 소유자 사이에 성립되었던 권리의무관계가 새로운 소유자에게 승계되지 않고 소유권 취득시부터 유치권자가 새로운 소유자에 대해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위반행위 당시 피고가 원고와의 관계에서 의무위반을 하지 아니하였음에도 어떠한 법리에 의해 원고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2) 새로운 소유자의 유치권소멸청구권 취득방법과 이에 관련된 의문점 대상판결은 새로운 소유자가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원시취득하는 것인지 아니면 종전 소유자로부터 승계취득이라는 것인지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판시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의 정확한 입장을 알 수 없지만, 원시취득으로 본다면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있다. 앞서 기재한 바와 같이,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가 민법 제324조 제2항의 의무를 위반한 때” 발생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소유자가 소유권을 취득한 때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원시취득)은 민법 제324조 제3항의 문언에도 반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은 형성권으로서 제척기간은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한 날로부터 10년(민사) 또는 5년(상사)이다. 원시취득으로 본다면, 새로운 소유자는 소유권을 취득한 날에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하므로 소유권 취득시부터 10년 또는 5년 동안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소유자가 변경될 때마다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이 계속 연장되므로 부당하다. 그런데 승계취득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괄승계와 승계취득으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포괄승계는 당사자 지위 승계를 위한 유치권자, 채무자(또는 종전 소유자), 새로운 소유자 3인의 합의가 없거나 상속, 합병,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 지위 승계 등과 같은 법률상 근거가 없으면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정승계로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새로운 소유자에게 이전된다는 논리를 구성한다면, 먼저 형성권인 유치권소멸청구권이 특정승계 방식으로 양도가능한 지부터가 문제된다. 특정승계가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대상판결과 원심판결을 보면 무단임대행위 당시 소유자인 A, C가 양수인 D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양도의사표시를 하였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종전 소유자가 새로운 소유자에게 양도의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승계된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3) 사견 대상판결은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였지만, 민법 제324조 입법취지만 근거로 들고 있을 뿐 이외 다른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하여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물론 대법원이 대상판결이 기재하지 아니한 다른 법률적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등을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단임대행위 등 당시 유치권자와 새로운 소유자 간에는 아무런 권리의무관계가 없다는 점, 위에서 서술한 여러 가지 의문점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판결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유치물
무단임대
유치권소멸청구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2023-11-09
부동산·건축
행정사건
도시계획시설사업에 따른 협의취득의 당연무효와 환매권의 행사 가능 여부
1. 대상판결 개관 가. 사실관계 ○○시장은 1997년 11월 5일 도시계획시설인 '유원지'를 신설하는 내용의 도시계획시설결정이 내려진 ○○시 일대에서 주거시설, 골프장, 의료시설, 상업시설, 스포츠센터 등을 갖춘 휴양형 주거단지 개발사업(이하 '이 사건 사업'이라 한다)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시장은 2005년 11월 14일 이 사건 사업에 관하여 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2007. 1. 19. 법률 제825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6조 및 제88조에 따라 피고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하고 실시계획을 인가·고시하였다(이하 사업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 인가를 합하여 '이 사건 인가처분'이라 한다). 피고는 사업시행지 내의 토지소유자들과 사업부지의 협의매수를 진행하였고, 2006년 5월 18일 원고와 사이에 원고 소유의 토지(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 및 지장물을 매수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토지에 관하여 2006년 5월 19일 피고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고, 피고는 그 무렵 원고에게 매매대금을 지급하였다. 그 후 이 사건 사업을 위하여 토지를 수용당한 토지소유자들이 이 사건 사업의 시행을 위하여 이루어진 이 사건 인가처분 등 총 15개의 처분에 대하여 무효확인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그 소송의 제1심 법원은 2017년 9월 13일 이 사건 인가처분 등 위 15개의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항소심 법원이 2018년 9월 5일 항소기각 판결을, 대법원이 2019년 1월 31일 상고기각 판결을 함으로써 제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이하 '관련사건'이라 한다). 원고는 2016년 4월 20일 관련사건에서 이 사건 인가처분이 당연무효로 확인되었음을 들어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환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나. 소송의 경과 이 사건의 쟁점은 협의취득의 근거가 된 이 사건 인가처분이 당연무효인 경우 그 협의취득도 효력이 없다고 볼 것인지 여부와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 당초의 토지소유자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이라 한다) 제91조 제1항에서 정한 환매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제1심 법원과 원심 법원은 이 사건 사업이 원시적인 불능인 경우에도 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에서 정한 환매권의 요건인 '해당 사업의 폐지', '필요 없게 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의 환매권 행사를 받아들였다(제1심 판결 : 원고 청구 인용, 원심 판결 : 항소기각).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이 사건 인가처분이 당연무효에 해당하는 이상 그 협의취득도 무효로 보아야 하고, 협의취득이 무효인 경우 협의취득일 당시의 토지소유자가 소유권에 근거하여 등기 명의를 회복하는 방식 등으로 권리를 구제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에서 정한 환매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하는 판결을 하였다. 2.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도시계획시설사업의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가 당연무효인 경우 협의취득의 효력 토지보상법에 따른 수용은 재산권의 공권력적·강제적 박탈임에 반하여 협의취득은 사업시행자와 토지 등 소유자 간의 사법상 매매계약이라고 일반적으로 설명되고 있고, 대법원도 이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대표적으로 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6두51719 판결). 대법원은 그 논리적 귀결로 협의취득으로 인한 사업시행자의 소유권 취득은 승계취득이고(위 2016두51719 판결), 당사자 간의 합의로 토지보상법에서 정한 손실보상의 기준에 의하지 않는 매매대금을 정할 수도 있으며(대법원 1998. 5. 22. 선고 98다2242, 2259 판결), 일방 당사자의 채무불이행에 대하여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 또는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7다265389 판결). 그런데 협의취득의 실질을 들여다보면, 협의취득을 사법상 매매계약으로만 취급할 수는 없게 하는 속성을 찾게 된다. 첫째, 토지 등 소유자가 사업시행자와 협의를 하게 되는 배경에는 꽤나 강력한 심리적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시행자가 토지 등 소유자와 협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사업시행자는 사업인정을 받아 곧바로 수용절차로 넘어갈 수 있다(토지보상법 제20조, 제30조, 제45조). 토지 등 소유자로서는 토지 등을 스스로 내어 놓지 않으면 강제로 빼앗기게 되는 셈이다. 'Take it or Leave it' 상황에서 한 선택을 온전히 자발적 또는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둘째, 토지보상법 시행령 제8조에서는 협의의 절차 및 방법 등을 규율하고 있고, 토지보상법 제29조에서는 협의가 성립된 경우 사업시행자가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의 협의성립 확인을 받아 재결과 같은 법적 효과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협의취득의 경우에도 그 사업이 폐지·변경되어 토지 등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경우 환매권을 인정한다(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 이처럼 협의취득에도 여러 공법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이를 사법적 규율의 영역에 머물게 하는 것은 자칫 관련 문제의 해결에 있어 구체적 타당성을 흠결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정책적인 측면에서 사법상 매매계약의 형식을 빌려 필요 이상의 과다한 토지 등을 취득하는 등 재산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협의취득을 사적 자치의 영역에 온전히 맡겨둘 수는 없다고 새기는 것이 헌법상 재산권 보장의 이념에 부합한다(헌법재판소 1994. 2. 24. 선고 92헌가15 내지 17, 20 내지 24 결정). 결국 토지보상법에 따른 협의취득은 공법적 규율을 받아야 하고, 협의취득의 근거가 된 도시계획시설사업의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가 당연무효가 되더라도 그 협의취득은 어디까지나 사법상 매매계약일 뿐이므로 그 처분의 당연무효가 매매계약의 효력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를 구성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에서는 협의취득의 경우에도 공익적 필요성이 있고, 법률에 의거하여야 하며,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위 요건을 결한 경우 그 협의취득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협의취득이 사업시행자가 아닌 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법률에 의거하여야 한다는 요건을, 실시계획인가가 당연무효라는 것은 공익적 필요성 요건을 각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협의취득의 근거가 된 처분이 당연무효이므로 협의취득도 무효라는 법리가 아니라 헌법상 공용수용의 정당화 기제에 준하여 협의취득의 요건을 구성하고서 그 요건을 흠결하였기 때문에 협의취득이 무효로 된다는 법리를 구축한 것은 협의취득의 공법적 성격을 잘 살려낸 것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나.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 환매권의 행사 가능 여부 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에서는 공익사업의 폐지·변경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취득한 토지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 없게 된 경우에 환매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에는 환매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본 대상판결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타당하다. 첫째, 문리해석의 관점에서 '폐지'나 '필요 없게 된'은 처음에는 필요하던 것이 후발적인 사유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이들 어휘는 그 자체로 '사정변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협의취득 당시와 환매권 행사 당시에 사정의 변경이 없이 애당초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에는 이들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새기는 것이 문언에 충실한 해석이다. 나아가 '그 밖의 사유'는 같은 항 제2호에 따라 사업의 완료를 전제로 하므로,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여지도 없다. 둘째, 권리구제의 관점에서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 토지소유자는 계속 보유하고 있는 소유권에 기하여 등기명의를 회복하거나 점유를 이전받을 수 있어 환매권의 이론상 근거인 공평의 원칙을 거론할 필요가 없고, 환매권의 불인정이 토지소유자의 권리구제에 공백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 셋째, 법관념의 측면에서도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는 소유권이전등기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거나 그 효력이 없는 경우와 같다고 볼 것인데, 이러한 경우에 소유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자가 소유권을 돌려받는 환매계약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은 어색하고 지나치게 의제적이다. 다. 대상판결의 의의 토지보상법에 따른 협의취득은 실질적으로 수용의 전단계로서의 공법적 의미를 갖는다. 대상판결에서 이 점을 확인하고 협의취득의 요건을 공용수용의 헌법상 정당화 기제에 기반하여 구성한 것은 자칫 '당사자의 자유의사'라는 도그마에 갇혀 제대로 걸러내지 못할 우려가 있는 '협의취득의 남용'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이론적 기초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정기상 고법판사(수원고법)
토지
토지보상
환매권
도시계획시설
정기상 고법판사(수원고법)
2022-05-02
헌법사건
헌법재판소가 군정법령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가?
[사실관계 및 헌법재판소의 판단]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2016년 11월 24일 울산 중구 소재 이 사건 토지를 경매절차에서 낙찰 받아 그 소유권을 취득하고 2017년 4월 3일 울산광역시 중구를 피고로 하여 아무런 권원 없이 이 사건 토지를 도로 포장 등의 방법으로 점유·사용하고 있으므로 그로 인한 부당이득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사건 토지의 전 소유자가 1945년 8월 10일 재조선 일본인으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고 1945년 9월 7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는데 1945년 9월 25일 공포된 미군정청 법령 제2호에서 일본인의 모든 재산권 이전 행위를 금지하고 1945년 8월 9일 이후에 체결한 재산권 이전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무효로 하였으며 1945년 12월 6일 공포된 미군정청 법령 제33호가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인의 모든 재산은 미군정청이 취득한다고 규정한 점 등을 이유로 청구인들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청구인들은 위 소송 계속 중 위 미군정청 법령들에 대하여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자 위 조항들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위 군정법령은 헌법소원대상성 및 재판의 전제성이 모두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본안에서는 이는 소급입법금지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검토] 1. 헌법제정 전의 법률도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가? 위 결정은 위 법령들은 각 군정장관의 명의로 공포된 것으로 법령(Ordinance)의 형식을 가졌지만 오늘날 법률로 제정되어야 할 입법사항을 규율하고 있으므로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고 제헌 헌법 제100조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법질서 내로 편입되었으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과거 헌법위원회는 1954년 2월 27일 마찬가지로 군정법령인 1947년 12월 15일 공포된 남조선과도정부 행정명령 제9호에 대해 합헌결정을 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는 남조선과도정부 시절의 구 국방경비법에 대하여 성립절차상의 하자가 없다고 하였으며(헌재 2001. 4. 26. 선고 98헌바79·86, 99헌바36 결정) 대법원은 1960년 2월 5일 경향신문 폐간 사건에서 군정법령 제88호에 대해 헌법위원회에 위헌제청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어떤 규범이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당연히 헌법재판소에 의한 위헌법률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 군정법령들은 미군 군정청이 발령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입법부나 공권력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므로 입법자의 권위 보호를 위하여 그 위헌 여부의 판단을 굳이 헌법재판소에 독점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제헌 헌법 제100조가 '현행 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였다고 하여 군정법령이 대한민국의 법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헌법재판소가 위헌심사를 할 수 있다면 일제 강점기의 법률의 위헌 여부도 법원은 판단할 수 없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하여야 하는가? 독일에서는 독일 헌법 시행 전의 법률(vorkonstitutionelles Recht)에 대하여는 일반 법원이 그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1900년 시행된 독일 민법 제1300조는 흠 없는 약혼녀는 약혼자와 동침하였으면 약혼이 해제된 때에는 재산적 손해가 없더라도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1992년 뮌스터 구법원(Amtsgericht)은 위 규정은 헌법에 위반되므로 적용할 수 없다고 하였고(NJW 1993, 1720) 연방헌법재판소도 구법원의 이러한 판단이 타당하다고 하였다(BeckRS 1993, 01691). 2. 한국의 사법부가 군정법령에 대하여 위헌심사를 할 수 있는가? 군정법령의 제정 자체는 미국의 주권에 기한 것이다(헌재 2017. 5. 25. 선고 2016헌바388 결정 참조). 그런데 한국의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우리나라의 헌법에 비추어 군정법령 자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가? 만일 위 법령을 위헌이라고 한다면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2차대전 후에 연합국 점령군이 공포한 직접적 점령법률(unmittelbares Besatzungsrecht) 자체는 연방헌법재판소의 심사대상인 연방법률이나 주 법률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BVerfGE 3, 368 ff). 다만 1948년 정부 수립 후에 한국이 위 군정법령을 적용하였다면 그 적용에 대하여는 헌법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위 군정법령이 적용된 것은 1945년의 일이므로 이에 대하여 우리 헌법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헌법 시행 전에 공포되고 적용이 완료된 법률의 위헌 여부를 현행 헌법에 의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 위 군정법령은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 공포되고 그 적용이 완료되었다. 그런데 그 위헌 여부를 현행 헌법에 의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헌법재판소는 1971년에 제정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 제4항에 근거하여 1977년에 이루어진 수용처분이 문제된 사건에서 위 규정이 위헌이라고 하면서 1987년의 현행 헌법 제76조와 제77조를 원용하였고(헌재ㅤ1994. 6. 30. 선고 92헌가18 결정) 위 특별조치법 제11조 제2항 중 제9조 제1항에 근거하여 1982년에 확정된 유죄판결이 문제된 사건에서 위 규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현행 헌법 제33조 제1·2항을 들고 있다(헌재 2015. 3. 26. 선고 2014헌가5 결정). 그러나 현행 헌법 시행 전에 제정되었고 그 적용도 그 전에 완료된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그 제정 또는 적용 당시의 헌법이 위헌 여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후의 현행 헌법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당시에는 합헌이었던 것이 현행 헌법 시행 후에 소급적으로 위헌인 것이 될 수 있어서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치게 된다. 물론 현행 헌법 시행 전에 제정되었더라도 현행 헌법 시행 후에 적용된 법률에 대하여는 현행 헌법을 기준으로 하여 위헌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례들이 현행 헌법 전에 제정되었고 그 적용도 완료된 사건들에 대하여 현행 헌법을 적용하여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은 문제가 있다(윤진수, 상속관습법의 헌법적 통제, 헌법학연구 23권 2호, 2017, 175면 이하 참조). 다만 과거의 법률이 현재의 헌법이나 그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부당한 경우에는 현재의 헌법에 따라 재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윤진수, 위헌인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 민사법학 81호, 2017, 138면 이하 참조). 실정법의 정의에 대한 위반이 참을 수 없는(unerträglich) 정도에 이르면 부정의한 법은 정의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라드부르흐). 남아프리카 헌법재판소가 1996년 선고한 두 플레시스 판결{Du Plessis and Others v De Klerk and Another, 1996 (3) SA 850}도 그러한 취지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위 군정법령이 공포되었을 당시에는 아예 대한민국 헌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는 현행 헌법 제13조 제2항은 제헌헌법에는 없었고 1962년 헌법에서야 제11조 제2항으로 비로소 도입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위 군정법령이 실정법의 정의에 대한 위반이 참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건 헌재 결정도 1945년 8월 9일 당시 재조선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일본의 패망과 미군정의 수립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소유·관리하던 재산의 자유로운 처분이나 거래가 가능할 것이라고 신뢰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신뢰가 헌법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급입법의 금지를 명하는 위 헌법 규정이 헌법 제정 전에 적용이 완료된 이 사건에 소급적용될 수는 없다.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소급입법
군정법령
헌법소원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02-15
경영판단의 원칙상 배임죄의 고의와 그 제한
Ⅰ. 판결요지 기업의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하고 있어서 경영자가 아무런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없이 선의에 기하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바…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은 유지돼야 할 것이고,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Ⅱ. 경영판단의 원칙의 인정 근거(이상돈, 경영실패와 경영진의 형사책임, 법조, 2003년 5월호 88쪽~92쪽 참조)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기업의 경영자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이해관계없이, 그리고 성실히 회사의 이익에 합치한다는 믿음을 갖고 회사의 경영에 관한 판단을 한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회사에 대해 손해를 초래했더라도 그러한 판단을 한 기업의 경영자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경영판단 원칙의 인정 근거로는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있지만 결국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법적 판단과 기업 경영자의 경영판단은 상이하다는 데 있다. 우선 경영판단은 합리적 경영과 비합리적 경영의 구분이 법적 판단에서의 합법과 불법의 차이만큼 뚜렷하지 않다. 즉, 아무리 충실하게 정보를 수집해 경영에 관한 판단을 내리더라도 실패할 수 있는 반면, 부실한 경영판단도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평균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기업 경영자가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더라도 그것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경우 그 기업 경영자의 결정을 비합리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창의성과 도전정신은 경영인의 중요한 덕목으로 권장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법적 판단은 평균적인 행위자의 입장에서 합법과 불법의 판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영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은 자칫 경영 성패에 따라 그 결론을 달리 할 위험을 안고 있다. 다음으로 경영판단에는 ‘위험감수원칙’이 적용되는 데에 반해 법적 판단에는 ‘위험회피원칙’이 적용된다는 점 역시 경영판단의 중요한 특성이다. 현대사회에서 법은 개인들에게 법익침해의 위험을 회피하도록 요구한다. 위험을 창출하거나 증대시키는 것 혹은 위험을 방치하는 것은 법적 책임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경영판단은 장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에서는 위험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고수익, 고위험’이라는 말처럼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감수할 것까지 요구된다. Ⅲ. 업무상 배임죄의 가벌성 확대와 제한의 필요성 1. 업무상 배임죄의 가벌성 확대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기업의 경영자들이 업무상 배임의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해야 한다. 그런데 판례는 업무상 배임의 구성요건을 완화해 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업무상 배임죄의 처벌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이 같은 판례에 따를 때 기업 경영자들은 경영상의 결정이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가. 임무위배 개념의 불명확성과 손해개념의 확장 현재 통설 및 판례는 신의칙에 의한 사실상의 신임관계를 위배하는 경우까지 업무상 배임죄의 임무위배 행위에 포함시키고 있고, 이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의 신임관계라는 개념은 그 한계를 명백히 하는 것이 쉽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태도에 의할 경우 법률관계가 신속하게 변화하고 그 내용이 복잡다기한 상거래 분야에서는 기업의 경영자로 하여금 어떠한 행위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인지 예측할 수 없게 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한편, 형법 제355조 제2항은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손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하여 손해개념을 확장하면서 자금 유동성의 장애까지 손해로 파악하고 있다(대판 1989. 11. 28. 선고 89도1309, 대판 2001. 11. 13. 선고 2001도3531). 그런데 경영상의 결정은 장래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에 항상 손해 발생의 위험이 수반된다. 따라서 손해발생의 위험까지 업무상 배임죄의 손해개념에 포함시키게 되면 결국 거의 모든 경영상의 결정이 업무상 배임죄의 적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대법원에 의한 고의의 인정 범위 확대 고의란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를 인식하고, 구성요건을 실현하려는 의사이다. 그리고 고의에는 확정적 고의뿐만 아니라 미필적 고의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업무상 배임의 경우에도,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손해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고 경영상의 결정을 내린 경우에는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게 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최근 “배임의 범의는 배임행위의 결과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염려가 있다는 인식과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의 이득을 얻는다는 인식이 있으면 족하다”고 판시해 결과발생의 가능성 혹은 위험에 대한 인식만 있으면 고의가 인정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판 2004. 7. 9. 선고 2004도810). 대법원의 이러한 태도는 고의의 두 가지 요소인 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 중 의지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인식있는 과실을 모두 미필적 고의에 포함시키게 되고, 결국 미필적 고의의 인정범위를 기존의 판례보다 더욱 확대한 것이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따를 경우 기업경영인들에게는 사실상 자동적으로 업무상 배임의 고의가 인정될 수밖에 없다. 2. 업무상 배임의 처벌범위 제한의 필요성 위에서 본 것처럼 현재의 대법원의 태도에 따를 경우, 기업의 경영인은 업무상 배임죄의 구성요건요소 중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본인의 재산상 손해’, ‘고의’라는 요건을 이미 충족한 상태에서 기업 경영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임무위배행위’라는 개념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경영인의 경영상의 실패에 대한 처벌이 강력하게 요구될 경우, 법원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임무위배’가 손쉽게 인정될 위험이 있다. 결국 기업 경영인의 경영판단에 업무상 배임죄에 관한 대법원의 태도를 그대로 관철시킨다면, 기업 경영인의 경우 업무상 배임죄의 처벌범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게 된다. 게다가 기업 경영인에 대해 업무상 배임이 문제되는 것은 주로 그의 경영이 실패했을 경우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영상 결정의 성공여부에 따라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여부가 달라질 우려가 있다. 이는 사실상 기업 경영인에게 책임주의에 반하는 결과책임을 묻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업무상 배임죄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는 기업 경영인의 경영실패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때에는 어떻게든 수정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을 고려할 때 기업 경영인의 경영실패의 책임은 먼저 사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고, 형법에 의한 처벌은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 3. 미필적 고의와 경영상 ‘위험감수원칙’의 충돌 이렇게 기업 경영에 있어서 업무상 배임의 처벌범위가 극도로 확대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미필적 고의와 경영상 위험감수의 요구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즉, 미필적 고의에 대해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 외에 의지적 요소로서 결과발생의 위험을 감수할 것까지 요하는 통설의 견해에 따르더라도 기업 경영자에게는 대부분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영에는 항상 위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자들 중에서 자신의 경영상 결정으로 회사가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경영자는 이윤추구를 위해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험의 감수는 자유경쟁과 이윤추구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 경영자들에게는 당연히 요구되는 자세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감수’는 형법적으로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를 의미하고, 이는 업무상 배임이 문제된 기업 경영인에게 대부분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게 된다. 왜냐하면 형법은 법익침해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경영인에게는 위험을 감수하라는 경영상의 요구와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는 법적 요구가 충돌하게 된다. Ⅳ. 경영판단 원칙에 의한 미필적 고의의 배제 결국 경영상 판단에 적용되는 ‘위험감수원칙’과 미필적 고의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둘 중의 어느 한쪽을 제한해야만 한다. 그런데 만약 기업 경영에서 미필적 고의의 개념을 관철한다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업 경영인들에게 자동적으로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기업 경영자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적게는 한 기업의 몰락, 크게는 국가경제의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에, 합리적인 경영판단에 대해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를 배제하는 것은 형법의 보충성에도 부합하며업무상 배임죄의 처벌 범위 확대에 제동을 거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경영인에게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미필적 고의 이상의 의도적 고의가 필요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법원 역시 본 판결에서 “이러한 경우에까지 고의에 관한 해석기준을 완화해 업무상 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볼 때도 영업이익의 원천인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돼 당해 기업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하여 미필적 고의를 경영판단에까지 관철하는 경우 발생하는 위와 같은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대상 판결에서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진 경영판단에 대해서 업무상 배임의 고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의도적 고의가 필요하다고 판시하면서 미필적 고의를 배제하였다. 그리고 그 요건으로 ‘첫째, 경영자가 개인적 이익을 취할 의도가 없을 것. 둘째,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 셋째, 선의에 기하여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Ⅴ. 맺음말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해 그동안 상법학계에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대법원 역시 2002. 6. 14. 선고 2001다52407판결에서 이 원칙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상법학계와는 달리 형법학계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대법원은 본 판결에서 최초로 형사법에서도 경영판단 원칙을 정면으로 인정하면서 위 원칙의 도입의 필요성 및 그 요건 등을 상세하게 설시하고 있고,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 판결을 출발점으로 해서 앞으로 형법학에서도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2006-06-19
함정수사 허용한계와 위법한 함정수사에 의한 공소제기효과
I. 사실관계 및 판결요지 : 대법원 제3부 2005.10.28선고 2005도1247판결 원심은 피고인 甲, 乙을 히로뽕 수수 및 밀반입 사실로 유죄로 판단하였다. 피고인들은 사전에 히로뽕 매수, 밀반입 의사가 없었으나, 甲의 애인 A가 ‘서울지검 마약반 정보원 B가 다른 정보원의 배신으로 구속되어, 마약반에서 B의 공적을 만들어 빼내려 한다. 이에 필요한 히로뽕을 구해 달라. 검찰이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고 구입자금까지 교부, 甲에게 부탁, 甲은 이들을 돕기로 하고 乙에게 사정을 설명, 히로뽕 매입을 의뢰하여 乙이 히로뽕을 구입, 甲에게 교부, 범행에 이른 것으로 위법한 함정수사를 주장, 상고하였다. 상고심(대법원2004. 5. 14.선고 2004도1066판결)은 위 주장의 가능성을 인정, 함정수사에 의해 범의가 유발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단정한 원심에 심리미진,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판단, 파기 환송하였다. 환송 후 원심(서울고법2005.1.28선고 2004노1222판결)은 사전에 범의를 갖지 않은 자에게 수사기관이 범행을 적극 권유, 범의를 유발, 범행에 이르게 하여, 공소제기 함은 적법한 공소제기로 볼 수 없어, 공소제기절차가 법률규정에 위배되어 공소기각판결을 하였다. 검사가 상고하였다. 상고심은「범의를 가진 자에 대하여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한 수사방법이 경우에 따라 허용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케 하여 범죄인을 검거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함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함정수사에 기한 공소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다」고 하여 상고 기각하였다. II. 대상판례의 검토 1. 함정수사의 의의와 적법성 판단 함정수사(陷穽搜査)란 수사기관 또는 그 협력자가 범행을 유발하여 그 실행을 기다려 이를 체포하는 등의 수사방법으로 구체적인 형태에 따라 영미에서는 sting operation, undercover investigation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통상 뇌물수수, 매춘, 도박, 약물범죄 등 범행이 은밀하게 이루어져 외부포착이 어려운 유형의 범죄행위 검거에 활용되는데, 조직범죄나 테러 등에 대한 수사기법으로서도 활용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다만 수사의 상당성 및 신뢰원칙에 따라,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의 사법적 신뢰(judicial integrity)에 위배될 수 있어, 허용한계와 함께 위법한 함정수사에 대한 법적효과가 주로 논의되어 왔다. 2. 함정수사의 허용한계 가. 기회제공형과 범의유발형 함정수사 함정수사의 허용한계와 관련, 한국 및 일본의 학설, 판례에서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견해(일본하급심판례 중, 함정수사는「국가가 일면에서는 범인을 제조하고 타면에서 이를 체포하는 극단의 모순적 조치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다」고 판시한 예가 있다. 木黃浜地判昭和26·6·19裁判所時報87·3頁; 木黃浜地判昭和26·7·17高刑集4卷14·2083頁)나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견해(다만, 종래 일본최고재판소는「타인의 유혹에 의하여 범의를 발생되거나 강화된 자가 범죄를 실행한 경우, 일본형사법 상 그 유혹자가 경우에 따라서는… 교사범 또는 종범으로 죄책을 부담함은 별론 으로, 그 타인인 유혹자가 일반사인이 아닌 수사기관이라는 점만으로 그 범행 행위자의 범죄구성요건해당성 또는 책임성이나 위법성을 조각하거나 공소제기절차규정에 위반 또는 공소권이 소멸된 것이라 할 수 없음은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最決昭和28·3·5刑集7卷3號482頁; 最判昭和29·8·20刑集8卷8號1239頁; 最決昭和29·9·24裁判集刑事98號739頁; 最決昭和36·8·1裁判集刑事139號1頁)는 찾아보기 어렵고, 통설은 기회제공형 및 범의유발형으로 구분하여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를 위법한 유형으로 판단하고 있다(이재상, 형사소송법 제6판, 서울 : 박영사, 176면 이하; 福井厚, 刑事訴訟法講義 第2版, 東京 : 法律文化社, 2003, 82-83頁; 대법원1963.9.12.선고 63도190판결; 대법원 1982.6.8.선고 82도884판결; 대법원1983.4.12.선고 82도2433판결; 대법원1992.10.27.선고 92도1377판결; 대법원2004. 5. 14.선고 2004도1066판결. 특히 대법원은 기회제공형을 함정수사의 범주에서도 제외한다.; 일본하급심판례로, 東京高判昭和26·11·26高刑集4卷13號1933頁; 東京高判昭和60·10·18刑月17卷10·927頁; 大阪高判昭和63·4·22判タ680號248頁). 앞서와 같이 종래 일본최고재판소는 기회제공형, 범의유발형의 구별 없이 함정수사를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는데, ① 수사절차의 위법이 곧바로 공소제기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고(東京高判昭和26·12·11高刑集4卷14·2074頁), ② 수사기관의 함정설정이 위법하다면, 이를 교사, 종범으로 처벌하거나 ③ 정상사유로의 참작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이 배경이 된 것이다. 그러나 관련판례의 사실관계가 대부분 기회제공형에 해당하고, 최고재판소도 마약거래와 관련 수사정보원을 활용한 사안(最決平成16·7·12刑集58卷5號333頁)에서「직접적 피해자가 없는 약물범죄 등의 수사에서 통상적 수사방법만으로 당해 범죄의 적발이 곤란한 경우, 기회가 있다면 범죄를 행할 의사가 있다고 의심되는 자를 대상으로 함정수사를 행함은 형소법 제197조 1항의 임의수사로서 허용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적법한 함정수사 요건으로 첫째, 약물범죄 등 소위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와 같은 대상범죄에 제한, 그 필요성이 인정되고, 둘째, 통상적 수사기법에 의한 증거수집, 검거가능성이 극히 제한적인 경우, 셋째, 사전에 범행의사가 있다고 의심되는 자를 대상으로 할 것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기존 한국, 일본의 관련판례에서 기회제공형이 대부분으로, 위법한 함정수사의 주장이 피고인의 방어방법으로 과연 어느 정도 유용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나. 미국의 entrapment defense ; subjective test 및 objective test 범의유발형, 기회제공형 함정수사의 구분은 미국의 entrapment defense의 영향이라 하겠다. 미국에서 함정수사의 한계에 관한 논의는 1870년대 후반 주 법원 판례 등에서 확인되는데, 1900년대 초까지 미 판례는 피고인의 범행진행, 가담에 주목, 수사기관의 함정설정에 대해서는 착안하지 않았다(People v. Mills, 178 N.Y. 274, 70 N.E. 786(1904)). 그러나 1932년 Sorrells v. United States(287 U.S. 435, 53 S.Ct. 210, 77 L.Ed. 413(1932))에서 미연방대법원이 후술 주관적 기준을 제시한 이래, 연방하급심 및 주법원에서 이를 원용하기 시작하였다. entrapment defense의 판단요소로 ① 수사기관의 함정설정행위(inducement), ② 함정설정 전 대상자가 갖는 심리적 상태로서의 범행의사(predisposition)를 드는데, 위 판단요소 중, 중점대상에 따라 주관적 기준(subjective test, Sherman-Sorrells doctrine), 객관적 기준(objective test, hypothetical person approach), 절충적 기준으로 구분된다. 미국의 다수설인 주관적 기준은 수사기관의 함정설정에도 불구, 피고인이 이미 범행의사를 갖는 경우(ready and willing by the time), 당해 함정수사는 적법하다는 입장으로 실체형벌법규의 입법자는 수사기관에 의하여 창출된 범죄행위까지 처벌할 것을 상정하지 않은 점을 논거로 한다(실체법적 접근). 이에 따르면, 피고인이 우월적 증명(preponderance of evidence)으로 수사기관에 의한 함정설정을 입증하면, 검찰 측이 합리적 의심이 해소될 정도로(beyond reasonable doubts) 피고인의 사전 범행의사를 입증하는 공방(攻防)구조를 뛴다. 문제는 피고인의 사전 범행의사 입증에 과거 범죄경력, 악성격, 평판, 취향 등 부당한 편견을 야기할 수 있는 성격·유사사실증거 등이 원용되며, 피고인의 심리적 상태라는 모호한 기준에 의존하는 점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반면, 객관적 기준은 entrapment defense는 위법한 수사의 제어를 목적으로, 위법한 수사관행을 법원이 사후적으로 승인할 수 없는 점에서(절차법적 접근), 평균적 일반인을 상정, 수사기관의 구체적 함정설정행위를 고려, 범행의사를 갖지 않은 자가 범행에 이를 정도의 실질적 위험(substantial risk)의 여부를 기준으로 한다(Model Penal Code §2.13). 객관적 기준에 의하면 주관적 기준의 문제점은 어느 정도 해소되지만, 실질적 위험역시 모호한 기준이며, 상습적 범죄자에 대한 대처, 범행의사여부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수사기관의 함정설정에 실질적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는 예와 같이 오히려 부당하게 함정수사가 적법한 것으로 판단될 여지가 대폭 확장될 수 있는 문제점 등이 지적된다. 한편, 우편에 의한 아동포르노물의 유통과 관련(Jacobson v. United States503 U.S. 540, 112 S.Ct. 1535, 118 L.Ed.2d 174(1992)), 미연방대법원은 종전 주관적 기준과 달리, 피고인의 사전 범행의사판단에 수사기관의 함정설정과정, 범행에 개입형태 및 기간 등을 고려하여 객관적 기준을 일부 수용하여 소위 절충적 기준을 취한 바 있다. 3. 위법한 함정수사에 대한 구제 위법한 함정수사(범의유발형)의 구제와 관련, 실체법적 접근에서 ① 가벌적 또는 실질적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견해(신양균, 형사소송법, 서울 : 법문사, 2000, 70면), 절차법적 접근에서 ② 위법한 수사방법으로 국가가 처벌적격을 상실하여 면소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견해, ③ 위법한 수사에 의한 공소제기로 공소기각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견해(백형구, 형사소송법강의 제8정판, 서울 : 박영사, 2001, 365면), ④ 위법한 함정수사에 의한 증거를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을 부인하여야 한다는 견해 등이 제시되는데, ④의 입장(可罰說. 이재상, 전게서, 179면; 石神千織, 搜査節次におけるおとり搜査, 警察學論集 第58卷 9號, 2005, 164-165頁)은 ①설에 대하여는 위법한 함정수사라도 범죄성립요건이 갖추어진 이상, 무죄판단은 곤란하고, ②설에 대하여는 위법한 함정수사가 명문의 면소사유에 해당하지 않고, ③설에 대하여는 위법한 수사에 따른 공소제기 시, 공소기각판결을 한다는 명문규정이 없고, 수사, 공판절차는 독립성을 갖는 점에서 수사절차의 위법이 공소제기에 그대로 인계되지 않는 점(종래 한국 및 일본의 판례 역시 수사절차의 위법과 공소제기효과를 분리시키는 입장을 일관하였다. 대법원 1992.4.24. 선고 92도256 판결 등; 最判昭和41·7·21刑集20卷6號6767頁, 大阪高判昭和63·4·22判タ680·248頁 등) 등을 논거로 비판한다. 그러나 수사, 공판절차가 전혀 무관계한 것은 아니고, 적정절차원칙, 피의자·피고인의 기본권보호라는 점에서 수사절차의 위법이 공소제기효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적 구성은 충분히 가능하고, 정책적 필요성면에서도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과 별도로 수사절차에 중대한 위법이 게재된 때는 이에 따른 공소제기에 대하여 공소기각판결(형소법 제327조 2호)을 할 수 있다고 하겠다(福井厚, 前揭書, 228-229頁). 참고로, 일본 하급심판례 중에 적정절차위반의 함정수사에 따른 공소제기가 무효화될 수 있다고 판시한 예도 있다(東京高判昭和57·10 ·15判時1095號155頁). 4. 대상판례의 의의 방어방법으로 함정수사의 유용성에 대한 의문은 ① 기존 관련판례가 수사기관의 함정설정측면보다는 피고인의 범행의사라는 심리적 상태에 주안을 두어, 대부분 사례가 기회제공형으로 판단되었고, ② 통상 함정수사의 원용 시, 피고인의 유죄인정이 논리적 전제가 되는 점 등에 주로 기인한다. 대상판례는 피고인의 범행의사 고려 시, 범행자금 및 구체적 범행방법제시 및 대가제공 등 수사기관이 범행의 전 과정에 적극 개입한 점을 고려, 위법한 함정수사(범의유발형) 가능성을 지적하여 종래(주관적 기준)와 달리 수사기관에 의한 범행유발의 실질적 위험성을 고려(객관적 기준), 대법원이 판단한 최초의 위법한 함정수사사례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절충적 기준). 아울러, 위법한 함정수사에 따른 공소제기 효과와 관련, 공소제기가 법률의 규정에 위배되어 공소기각판결을 한 원심을 지지하여, 수사절차의 위법과 공소제기효과를 분리하던 기존시각에 변화를 추측케 한다. 장래 판례축적과 함께, 함정수사의 한계에서 수사기관의 함정설정과 관련한 구체적 판단기준과 함께 어떠한 경우에 수사절차의 위법이 공소제기의 효과에 연계될 수 있는지, 추가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2006-01-16
채무자 소유 아닌 부동산에 대한 경매와 담보책임
[事實關係] 대법원판결로부터 파악할 수 있는 사실관계를 이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 건물 및 그 대지는 A 회사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어 있었는데, 그 회사에 대한 채권자의 신청으로 이들에 대하여 강제경매가 실시되었다. 원고는 거기서 이들을 경락받아 경락대금을 완납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피고는 이 경매절차에서 근저당권자로서 9억원을 배당받을 것이었지만, 그에 관한 이의가 제기됨에 따라 그 금액은 공탁되었다. 그런데 그 후 제3자 甲이 이 사건 건물은 애초 A 회사가 아니라 甲의 소유로서 A 회사의 소유권보존등기는 물론 원고의 위 소유권이전등기도 무효라는 이유로 원고를 상대로 위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甲의 승소판결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위 공탁된 배당금에 대한 피고의 출급청구권은 피고가 원인 없이 이득한 것이라고 하여 그 양도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원고는 그 후 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원고승계참가인에게 양도하였다. 原審(大邱高判 2003.9.25, 2002나9203)은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그 이유는 “이 사건 건물에 대한 강제경매절차는 그 개시 당시부터 채무자 소유가 아닌 타인 소유의 부동산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무효이므로, 강제경매절차에서 배당받은 피고는 법률상 원인 없이 이득을 얻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 공탁된 배당금 중 이 사건 건물에 관한 8억9천여만원의 청구권을 양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여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判決趣旨] “경락인이 강제경매절차를 통하여 부동산을 경락받아 대금을 완납하고 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쳤으나, 그 후 강제경매절차의 기초가 된 채무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원인무효의 등기이어서 경매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 경우, 이와 같은 강제경매는 무효라고 할 것이므로 경락인은 경매 채권자에게 경매대금 중 그가 배당받은 금액에 대하여 일반 부당이득의 법리에 따라 반환을 청구할 수 있고, 민법 제578조 제1항, 제2항에 따른 경매의 채무자나 채권자의 담보책임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대법원 1991. 10. 11. 선고 91다21640 판결, 1993. 5. 25. 선고 92다15574 판결 등 참조).” [評釋] 對象判決은 민법 제578조, 제570조의 명문에 반하고, 또한 종전의 판례에도 어긋난다고 여겨지므로, 찬성할 수 없다. 1. 이 사건은 채무자 앞으로 소유권등기가 된 부동산에 대하여 경매가 행하여져서 경락인이 경락대금을 납부하고 그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받았으나 원래 그 경매목적물이 채무자가 아닌 제3자의 소유이어서 경락인이 그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정된 事案에 대한 것이다. 즉 이 사건은 원심판결이 정면에서 설시하는 대로 경매의 목적물이 채무자 아닌 타인에게 속한 경우로서 채무자가 이를 취득하여 경락인에게 이전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 우선 위의 사실관계가 경매의 목적물이 애초 채무자 아닌 타인에게 속하는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아가 大判 76.4.27, 75다2322(要集 민 I-2, 940); 大判 82.12.28, 80다2750(集 30-4, 171) 등 판례는 타인 소유의 부동산이 매매된 경우에 진정한 소유자가 매수인 또는 매도인을 상대로 그 명의의 소유권등기의 말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그 승소의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민법 제570조에서 정하는 “매도인이 그 권리를 취득하여 매수인에게 이전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는 태도를 취하여 왔다(우선 民法注解[IX], 282면 이하(梁彰洙 집필) 참조). 다른 한편 민법 제578조 제1항은 “競賣와 賣渡人의 擔保責任”이라는 표제 아래 “競賣의 境遇에는 競落人은 前8條의 規定에 의하여 債務者에게 契約의 解除 또는 代金減額의 請求를 할 수 있다”고 정한다. 거기서 정하는 ?전8조의 규정? 중에 제570조가 포함됨은 그야말로 계산상으로도 명백하다. 따라서 위의 사실관계에서 민법 제578조, 제570조의 담보책임이 문제되어야 함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대상판결이 “강제경매절차의 기초가 된 채무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원인무효의 등기이어서 경매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 경우”라고 설시하고 있다고 해서, 이것이 경매목적물이 채무자 아닌 타인의 소유에 속한 경우와는 별개임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2. 對象判決이 들고 있는 두 개의 참조판결은 대상판결과 사실관계를 달리하여서, 구속력 있는 선례가 될 수 없다. (1) 우선 大判 91.10.11, 91다21640(集 39-4, 27)은, 강제경매의 채무명의가 된 약속어음공정증서가 위조된 것이어서 그 절차에서의 경락인 앞으로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판결이 확정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위와 같은 사유가 있으면 경락인이 경매목적물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음은 물론인데, 이러한 경우는 제578조 및 제570조 내지 제577조에서 정하고 있는 담보책임의 발생요건의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원고를 위한 구제수단은 담보책임 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한편 대상판결과의 관련에서 의미 있는 것은, 그 판결이 “민법 제578조 제1항, 제2항에서의 담보책임은 매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매절차는 유효하게 이루어졌으나 경매의 목적이 된 권리의 전부 또는 일부가 타인에게 속하는 등의 하자로 경락인이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거나 이를 잃게 되는 경우에 인정되는 것이고, 경매절차 자체가 무효인 경우에는 경매의 채무자나 채권자의 담보책임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고 설시하여서, 명확하게 '경매의 목적이 된 권리의 전부가 타인에게 속하는 하자로 경락인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경우'에는 민법 제578조에서 정하는 담보책임이 발생한다는 태도를 밝히고 있는 점이다. 물론 이 판시도 경매의 무효 여부를 기준으로 한다고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으나, 역시 경매목적물이 타인에게 속하는 경우를 보다 구체적으로 지칭하여 그 경우에는 담보책임이 인정된다고 설시하는 것을 중시하여야 할 것이다. 또 그렇게 보면 이 판결에서 '경매절차 자체'의 무효를 운운하는 것은, 그 사실관계에서 문제된 대로 그 절차를 시동시키는 출발점이 되는 채무명의가 무효인 경우와 같이 경매의 절차적 추행과 관련된 하자가 있는 경우에만 관련된 것이고, 경매목적물이 채무자 아닌 제3자에게 속하는 것과 같이 말하자면 경매에 '공신적 효과'가 없다는 그 실체적 효력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되지 못할 바 없다. (2) 또한 大判 93.5.25, 92다15574(공보 1386)은, 근저당권의 설정자가 목적물인 건물을 헐고 새로 건물을 지었는데 이에 대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지 않고 있던 중 원래의 근저당권자인 피고가 그에 기하여 新建物에 대하여 임의경매를 신청하여 그 경매절차에서 원고가 목적물을 경락받고 경락대금을 납부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이 경우 피고의 근저당권은 동일성을 상실한 신건물에는 효력이 없고, 무효인 근저당권에 기한 임의경매절차에서 경락인은 물론 목적물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도 민법의 규정 어디를 보아도 그로부터 담보책임이 발생한다는 정함을 찾을 수 없다. 한편 이 大判 93.5.25.도 앞의 (1)에서 인용한 大判 91.10.11.의 설시를 그대로 반복하여, '경매의 목적이 된 권리의 전부가 타인에게 속하는 하자로 경락인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경우'에는 민법 제578조의 담보책임이 인정된다는 태도를 확인하고 있다. 3. 이와 같이 대상판결이 참조판결로 인용하는 종전의 재판례들은 오히려 대상판결과는 반대로 경매목적물이 강제경매의 채무자 아닌 제3자에게 속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578조의 담보책임이 인정된다는 태도를 밝혔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이해일 것이다. 이들 외에도 위와 같은 경우에 담보책임을 긍정한다고 보아야 할 재판례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大判 88.4.12, 87다카2641(集 36-1, 153)이 중요하다. 이 판결은, 甲 소유의 부동산이 甲 앞으로 등기되어 있었는데 乙이 서류를 위조하여 자기 앞으로 소유권등기를 이전하고 다시 피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는데, 피고가 丙을 위하여 원고 앞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준 바, 위 근저당권에 기하여 행하여진 임의경매에서 원고가 경락을 받은 사안에 대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결국 경매목적물을 취득하지 못한 원고는 민법 제578조, 제570조의 담보책임에 기하여 피고를 상대로 계약해제에 따르는 원상회복으로서 경락대금 상당액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쟁점은 오히려, 피고와 같은 物上保證人이 민법 제578조 제1항에서 1차적으로 담보책임을 진다고 정하여진 '채무자'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 물상보증인이 동조상의 채무자에 해당함을 긍정하고, “경락인이 그에게 계약해제권을 행사하였으면 물상보증인은 경락인에 대하여 원상회복의 의무를 진다”고 판시하였던 것이다(이에 대한 찬성평석으로 梁彰洙, “他人 所有 物件의 競賣와 物上保證人의 擔保責任”, 판례월보 216호(1988.9), 38면 이하(同, 民法硏究, 제2권(1991), 231면 이하에 再錄) 참조). 만일 對象判決과 같이 언필칭 “경매가 무효”라고 하여서 경락인은 경매채권자에 대하여 그가 배당받은 금액의 반환을 일반 부당이득의 법리에 따라서 청구할 수 있을 뿐이고, 민법 제578조에 따른 경매의 채무자나 채권자의 담보책임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면, 위의 大判 88.4.12.와 같이 물상보증인, 즉 민법 제578조 제1항의 법문으로 말하면 ?경매채무자?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은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4. 경매목적물이 채무자 아닌 제3자의 소유에 속하는 경우에 대하여 담보책임을 인정하더라도 실제 사건의 해결로서는 대상판결의 결론과 같이 배당채권자에 대하여 일반부당이득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1차적인 담보책임자로서의 '채무자'는 특히 그에 대하여 강제경매절차가 진행된 상황이라면 이미 무자력할 것이고, 따라서 결국은 제578조 제2항에 의하여 '대금의 배당을 받은 채권자'로부터 그가 배당받은 금전의 반환을 청구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욱이나 對象判決과 같은 태도에 찬성하기 어렵다. 혹 문제의 핵심이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착잡하게 뒤엉키는 '경매의 무효'(사실 그 의미도 명확한 것은 아니다)의 다양한 경우들에 있어서 이를 간명하고 형평에 맡게 처리할 방도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있다고 한다면, 이는 보다 근원적인 論究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절차의 안정성을 중시하여 경매절차의 효력을 가능한 한 유지하려는 입장(최근의 예를 들면 閔日榮, “競賣와 擔保責任의 法理 ―임차주택의 경매를 중심으로”, 法曹 568호(2004.1), 5면 이하)에서도 경매목적물이 타인에게 속하는 경우에 민법 제578조, 제570조의 담보책임이 아예 인정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한 일이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든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 해석은 쉽사리 취할 것이 아니며, 또 민법 제578조가 立法論的으로 크게 문제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다(그 法意에 대하여는 우선 위의 梁彰洙, 民法硏究, 제2권, 238면 이하 참조).
2004-09-06
제조물책임법상 설계상의 결함
[판결요지] [1] 일반적으로 제조물을 만들어 판매하는 자는 제조물의 구조, 품질, 성능 등에 있어서 현재의 기술 수준과 경제성 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제조하여야 하고, 이러한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으로 인하여 그 사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고, 그와 같은 결함 중 주로 제조자가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채용하였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아니하여 제조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 즉 설계상의 결함이 있는지 여부는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내용,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의 가능성, 대체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설계의 상대적 장단점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 [2] 제조업자 등은 표시상의 결함(지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하여도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이 인정될 수 있고, 그와 같은 결함이 존재여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제조물의 특성, 통상 사용되는 사용형태,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의 내용,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및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의 가능성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 1. 사실관계 주식회사 대한항공 소속 헬기의 조종사들이 시계가 불량한 관계로 시계비행방식을 포기하고 계기비행방식으로 전환하여 기온이 영하 8°C 까지 내려가는 고도 6,000피트 상공을 비행할 때 피토트 튜브(pitot/static tube, 動靜壓管)의 결빙을 방지하기 위한 피토트 히트(pitot heat)를 작동시키지 아니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피토트 튜브가 얼어 헬기의 실제 속도와 달리 속도계에 나타나는 속도가 감소하고, 또한 속도계와 연동하여 자동으로 작동하는 스태빌레이터(stabilator)의 뒷전이 내려가면서 헬기의 자세도 앞쪽으로 기울어졌으나 조종사들이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속도계상 헬기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속도를 증가시키려고 출력을 높임으로써 헬기가 급강하하게 되었으며, 조종사들이 뒤늦게 헬기의 자세를 회복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헬기의 주회전날개 중 하나가 후방 동체에 부딪혀 헬기가 추락하게 되었다. 피해자들은 대한항공(주)에 대하여 제조물에 대한 설계상의 결함 등을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서 주요쟁점은 제조물의 결함 존재 여부였고, 원심은 설계상의 결함 존재에 대한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였으며 대법원에서도 판결요지에서 보는 이유로 설계상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통상적인 안전성을 갖추었다고 하면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 판 결 요 지 - 제조물의 설계상 결함여부는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내용, 예상되는 위험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대체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설계의 장단점 등 여러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 평 석 요 지 -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책임은 제조자의 기대 가능성을 전제로 한 과실 책임의 일환이라고 하고 있지만 제조물책임법 제정이후 설계상의 결함으로서 '합리적 대체설계'의 판단기준과 표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2. 제조물책임과 결함 제조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전제로 하지 않는 엄격책임으로서의 제조물책임은 불법행위법의 특별법으로서 제조물책임법(2000.1.12. 법률 제6109)의 제정으로 새로이 도입되었고 같은 법 부칙 규정에 의하여 2002.7.1. 이후 공급된 제조물에 대하여 적용되는 것이어서 이 사건 헬기에는 적용될 여지는 없다. 다만 제조물책임법의 시행 후의 판단이기 때문에 제조물책임법상의 결함에 대해 염두에 두고 판단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같은 법에서는 결함의 종류로 제조상의 결함과 설계상의 결함, 표시상의 결함을 규정하고, 결함이란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위 사건에서 문제된 것은 설계상의 결함과 표시·경고상의 결함이다. 설계상의 결함에 대하여 제조물책임법 제2조 제2호 나목은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채용하였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아니하여 당해 제조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설계상의 결함을 판단할 때는 어떤 면에서 ‘합리적인 대체설계’라고 평가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할 것이며, 합리적인 대체설계가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체설계에도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와 합리적인 대체설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결함이 부정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업자의 고의 또는 과실 유무와는 관계없이 제조물의 결함만 존재하면 제조업자는 무과실책임으로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제조물에 결함이 있고 그 결함으로 인하여 피해(확대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해당 제조물의 제조업자는 책임을 지게 된다. 제조물책임법은 제2조에서 결함을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어서 제조상의 결함, 설계상의 결함, 지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해 각각 정의하고 있는데 결함의 판단기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3. 결함의 판단기준 제품의 결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표준일탈기준, 소비자기대수준, 위험효용기준, 바커기준(Barker test) 등이 있다. 소비자기대기준은 소비자가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안전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에 결함의 존재를 인정한다. 누가 통상적인 소비자인가가 문제되는데, 그 사회의 통상적인 지식을 구비한 자를 말한다. 따라서 합리적인 소비자가 제조물의 위험한 상태를 예견하고 그로부터 발생가능성 있는 사고의 위험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에 부당하게 위험한 제조물이 되지 않게 된다. 예컨대 예리한 칼과 같이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는 판단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기대수준은 그 기준이 애매하고 주관적이어서 결함판단기준으로서나 책임의 근거로서 그 가치가 점점 감소되고 있으며, 제조자가 명시적·묵시적으로 표시한 제조상의 결함에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소비자기대수준은 현재 독자적인 기준은 되지 않고 위험효용기준의 한 요소로서 이용되고 있다. EC지침은 소비자기대기준을 채택하고 있다(EC지침 제6조). 결함의 판단기준에서 특히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설계상의 결함과 경고상의 결함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위험·효용기준은 제조물의 위험성과 효용성을 비교하여 위험성이 효용성을 능가할 때 그 제품이 결함이 있다고 한다. 위험?효용기준은 결함판단기준으로서 현재 미국 법원의 압도적 견해이다. 바커기준은 캘리포니아 최고법원이 1978년 바커사건에서 엄격책임에 있어서의 ‘부당한 위험’이라는 요건을 배제하면서 새로운 ‘결함의 판단기준’을 보인 것에서 유래한 기준이다. 동법원은 ① 의도된 방법 또는 합리적으로 예상 가능한 방법에 의한 제품사용에 관하여 그 제품이 소비자가 기대하는 통상의 안전성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원고가 입증, ② 제품의 설계가 손해의 원인임을 원고가 입증, ③ 현재의 설계에 의해 초래되는 위험의 중대성 및 개연성, ④ 안전한 대체설계의 기술적 가능성, ⑤ 개선설계에 소요되는 비용, ⑥ 대체설계에 의해 제품 및 소비자에게 생기는 악영향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것을 고려한 후 현재 사용 중인 설계에 의한 이익이 그 설계에 본래 따르는 위험을 상회한다는 사실을 피고가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 설계상의 결함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바커기준은 1차적으로는 소비자기대기준을 고려하고, 이러한 소비자기대기준으로 결함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2차적으로 위험·효용기준을 채택한 것이다. 4. 제조물책임의 결함에 대한 종전 판례의 태도 종전 우리나라의 판례는 제조물책임과 관련하여 과실 책임에 근거한 불법행위의 범위를 이탈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견지해왔고, 결함의 개념이나 유형, 결함의 판단기준을 제시한 사례를 찾기도 어려웠다. 다만 결함에 대하여 대법원은 1992년 변압변류기 폭발사건에서 “제품의 구조, 품질, 성능 등에 있어서 현대의 기술수준과 경제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 또는 하자로 인해 소비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제조업자는 계약상의 배상의무와 별개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대판 1992.11.24, 92다18139). 또한 1995년의 TV 폭발사건(속초지방법원 1995.3.24, 94가합131)에서는 “현대의 기술수준과 경제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이라고 하여, 결함판단기준에 관하여 표면상으로 소비자기대수준을 언급하였다. 우리나라는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고 그에 관한 소송도 그렇게 많지 않고 아직까지 제조물책임법이 적용된 판례도 축적되어 있지 않아서 이번 판결이 향후 제조물책임에서 설계상의 결함에 대한 하나의 잣대 역할을 하리라 본다. 5. 대상판결의 검토 대상판결은 설계상 결함여부는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내용, 예상되는 위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 가능성, 대체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설계의 상대적 장단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 사회통념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 판결에서의 제조물은 제조물책임법 이전에 공급된 것이어서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의 결함으로 인한 책임은 제조자의 기대가능성을 전제로 한 과실 책임의 일환이라고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제조물책임법 제정 이후 설계상의 결함으로서「합리적 대체설계」의 판단기준과 표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만 제조물책임법은 2002.7.1. 이후 공급된 제품에 적용되기 때문에 제조물 계속 감시의무(동법 제4조 제2항)가 동법 시행 이전에 판매된 제품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가 검토되어야 한다. 제조물 계속 감시의무는 제조자가 부담하는 안전에 대한 기본의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므로 제조물책임법 시행 전에 판매된 제품에 관하여도 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설계상의 결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합리적’이라는 용어 속에는 합리적 인간의 행동관점에서 대체설계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또한 합리적인 대체설계라는 것은 결국 위험과 효용을 비교형량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기준에 의한 설계상의 결함을 판단함에는 몇 가지의 요소들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대체설계의 효용성의 문제로서 효용성이 우수하다면 해당제조물에 다소의 결함이 있다고 하여도 이를 결함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지시·경고상의 결함의 문제가 된다. 둘째, 개발위험의 항변과 관련하여 대체설계는 당시의 최고수준의 기술적 가능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대체설계에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하여야 한다. 기술적으로 대체설계의 채용이 가능하다고하여도 경제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넷째, 대체설계에 따른 새로운 위험에 대해서도 평가하여야 한다. 다섯째, 해당 제품에 부착된 지시 및 경고의 정도도 고려하여야 한다. 설계상의 위험에 대한 결정 여부는 제조물의 위험성과 효율성을 비교·교량하여 결정하는 위험·효용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고, 결함 있는 제품을 공급한 제조자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개발, 설계과정에서부터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거래의무에 대한 위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험효용기준에 관해 제품의 효용이 위험을 상회하는데 따른 입증책임은 제조자 측에서 부담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설계상의 결함은 제조상의 결함과는 다른 별도의 이익과 불이익의 평가가 요구되고, 이는 과실에 근거한 책임과 동일한 일반적인 목표를 성취한다고 설명되기도 하는 것이다.
2004-02-09
支出費用의 賠償과 債權者의 損害輕減義務
[사실관계] 원고(건설회사)는 피고(사찰)가 1988년5월17일 소외인 A에게 사건 토지를 임대보증금 3,000만원, 임대기간 19년으로 정하여 임대하여 A가 위 토지를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고 사찰 주변이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자 그 일대에 스포츠타운 및 오피스텔을 건축하고자 피고에게 요청하여 사건 토지를 임대하게 되었다. 피고는 선행 임차인인 A를 상대로 사건 토지의 인도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992년6월25일 패소한 후 원고는 그와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1992년12월10일경 당초 의도했던 대로 사건 토지 위에 스포츠타운 등을 건축하기 위한 공사에 착수하여 대지조성 및 지하굴토작업을 상당부분 진행하였다. 그런데 피고는 1992년11월9일 A에게 사건 토지를 3억5,000만원에 매도하였고 결국 1994년10월18일 A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여 주었다. 원고는 A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된 이후 이를 알면서도 스포츠타운 등의 공사를 계속하다가 A로부터 토지인도 및 시설물 철거를 요구받게 되어 결국 1995년4월25일경 공사를 중단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에게 임대차계약의 존속을 믿고 임차대지상에 스포츠타운 등 시설공사를 위하여 지출한 공사비용 전액에 대하여 배상책임을 묻는다. 원심은 원고의 청구를 인정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1.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하여: 원고가 피고의 채무불이행으로 입게 된 손해는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존속을 믿고 임차대지상에 스포츠타운 등 시설공사를 위하여 지출한 공사비용 상당액이다. 2. 과실상계에 대하여 : 원고는 피고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임차하더라도 이행불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음에도 손해가 발생되지 않거나 발생되더라도 최소한에 그치도록 필요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포츠타운 등 공사를 위한 비용을 지출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에게도 피고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발생 내지 확대에 관하여 과실이 있다고 할 것이고, 이와 같은 과실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으로서는 직권으로 손해배상의 책임 및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 [評釋] I. 債務不履行의 可能性과 信賴投資의 賠償문제 사안에서 원고는 피고의 계약이행 즉 임대차의 목적토지를 지장없이 사용·수익케 할 것으로 믿고 계약의 진행중에 목적토지에 대해 비용을 투자하였다. 이러한 투자비용 이른바 ‘신뢰투자’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들어가는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해제와 아울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 계약이행으로 인하여 채권자가 얻을 이익 즉 이행이익의 배상을 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에 갈음하여 그 계약이 이행되리라고 믿고 채권자가 지출한 비용 즉 신뢰이익의 배상을 구할 수도 있다’(大判 2002년6월11일, 2002다2539)며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진행중인 계약관계에서 채무불이행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채권자의 신뢰투자는 보호되는가? 참고로 개정독일민법은 채무자의 이행을 신뢰하여 지출한 채권자의 지출비용의 배상을 인정하는 규정(동법 제284조)을 신설하였는데 요건으로 비용지출의 ‘정당성’(Billigkeit)을 요구하고 있다. 정당성이 인정되는 기준은 채권자가 비용지출시 채무자가 급부를 이행하리라는데 대해 의심을 할 만한 사정이 있었는가이다. 예컨대 채무자의 이행의 곤란성이 예견된다거나 계약의 유효성이 다투어지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채권자에게 문제들이 해결될때까지 비용의 지출을 중단할 것이 요구된다고 한다. 대상판결에서는 ‘이행불능이 될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라고 표현하여 이행불능의 가능성을 예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채권자의 지출은 배상범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경우 채권자의 지출에는 정당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사안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법리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이행을 신뢰하여 지출한 신뢰투자에 대하여는 비용의 지출시에 채권자가 채무불이행이 일어날 가능성을 알지 못한 경우에 한하여 배상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래 판례가 해온 채권자의 지출이 ‘통상적인 지출비용의 범위내에 속하는가’ 라는 지출비용의 통상성의 판단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II. 債權者의 損害輕減義務의 법리 사안에서 대법원은 원고를 ‘손해가 발생되지 않거나 발생되더라도 최소한에 그치도록 필요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용을 지출했으며 이는 원고에게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발생 내지 확대에 관하여 과실이 있다고 비난하고 이를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하는데 마땅히 참작하여야 할 것이라고 설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채권자는 일반적으로 채무자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회피하거나 경감할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는가가 이론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 비교법적으로도 이러한 채권자의 손해경감의무는 영미법에서는 이른바 손해경감(mitigation)의 법리로 발전하였으며 유엔매매법(제77조)이나 최근의 유럽계약법(Art. 9:505)등에서 규정되어 있고 독일민법도 채권자의 손해경감의무(Schadensminderungspflicht)를 정하고 있다(동법 제254조 제2항). 이미 우리 판례도 다양한 유형에서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확대를 방지할 의무를 채권자에게 부과하고 있으며 이를 다하지 못한 경우 채무자의 손해배상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예컨대 매도인이나 수급인이 하자있는 물건이나 완성물을 인도한 경우에 매수인이나 도급인이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하자를 보수하고 그 비용을 청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하자가 확산된 경우 등에 매수인의 이러한 과실을 참작하여 손해배상범위를 제한한 다수의 사례들이 있다(大判 1993년11월23일, 92다38980, 大判 1990년3월9일, 88다카31886). 또는 도급인이 수급인의 공사중단시 즉시 해제하고 제3자와의 잔여공사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함에도 이를 지체한 경우에 지체기간에 상응하여 지체상금을 인정하지 않기도 하였다(大判 1999년10월12일, 99다14846 등). 또는 채무자의 불이행시에 채권자는 잔여재료나 유휴노동력을 적절히 처분 또는 활용하여 손해를 줄여야 하며 채권자가 태만이나 과실로 인하여 얻지 못한 소득은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 공제되어야 한다고 하였다(大判 2002년5월10일, 2000다37296). 사안에서도 법원은 채권자에게 손해의 확대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감액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이를 위해 기존의 판례들과 같이 과실상계의 법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확대에 기여한 채권자의 행태를 일괄하여 채권자의 과실로서 파악하는 것은 이에 관한 실제적인 법리의 발전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 첫째로 채권자의 손해경감은 이미 발생한 불이행에 대해 그로 인한 손해를 감소시키는 합리적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데 비해, 과실상계의 법리는 채무불이행의 발생 자체에 채권자의 부주의가 기여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이미 발생한 손해의 확대에 관하여는 채권자의 과실의 법리보다는 손해배상의 범위의 제한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사안처럼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이 문제되는 경우에 채권자의 행위에 대한 판단으로 나아가게 되면 채권자의 과실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더욱 부적절해진다. 행위주체에게 어떠한 행위의무가 부과되지 않고 단지 자신에게 돌아올 손익을 계산하여 손해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리를 과실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오히려 흐리기 쉽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과실상계의 법리를 제한없이 계약상의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과실상계이론을 적용하여 법원이 적절하게 채무자의 손해배상액을 감액하는 것은 법원에게 계약당사자간에 합의된 위험의 분배를 변경하는 권한을 허용하고 계약책임의 예측가능성을 해하는 면이 있다. 계약상의 채무의 이행여부의 판단은 원칙적으로 결과의 달성여부 또는 계약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채무자가 다하였는지 등 채무자의 행태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인데, 채권자측의 행태를 이와 동가치의 의미를 갖는 과실로서 파악하여 법원이 그것을 불이행책임의 여부와 금액을 정하는데 채무자의 항변도 필요없이 임의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은 계약책임에 있어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민법상 채권자의 손해경감의무의 법리를 인정한다면 이는 어디에 근거지울수 있는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것은 제393조의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즉 통설은 제393조를 상당인과관계설에 입각하여 해석하면서 인과관계의 상당성의 판단기준으로서 개연성 이외에 규범목적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수용함으로써 상당성의 내용을 풍성하게 할 것을 제안한다(이은영, 채권총론 289면). 바로 이러한 상당성의 내용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서 채권자에게 손해를 경감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 요구될 수 있었는가 즉 손해의 회피가능성이 또 하나의 요소로서 추가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한 판례에서 ‘원고가 주장하는 영업손실 상당의 손해는 원고가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아니한 탓에 발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어 피고의 채무불이행과 상당인과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大判 2002년5월24일, 2000다42540)고 한 것은 흥미롭다. 결국 채무불이행에 있어 과실상계가 적용되는 경우는 불이행 자체의 발생에 대하여 채권자가 공동의 원인제공자인 경우에 한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채무불이행의 발생후에 채권자가 불이행의 결과를 악화시키거나 또는 손해를 경감시킬 수 있는 적극·소극의 합리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는 이를 ‘회피할 수 있었던 손해’로 보아 인과관계의 상당성이 부인되어 제393조 상의 손해배상의 범위안에 들지 않는다고 구성하는 것이 좀 더 명쾌한 이론구성이 되었을 것이다.
2002-12-23
법령의 효력정지를 명하는 가처분
헌법재판소는 2002. 4. 25.에 선고한 2002헌사129 결정에서 軍行刑法施行令 제43조 제2항 본문 중 前段 부분의 효력을 일반적으로 정지하는 가처분결정을 하면서,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에 따라 준용되는 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의 執行停止規定과 민사소송법 제714조의 假處分規定에 의하면, 법령의 위헌확인을 청구하는 헌법소원심판에서의 가처분은 위헌이라고 다투어지는 법령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시킬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가처분에 의하여 임시로 그 법령의 효력을 정지시키지 아니하면 안될 필요가 있을 때에 허용된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은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가처분이 가능한가 하는 헌법소송법 문제 외에도, 우리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구제절차를 담당하는 권한이 헌법재판소와 일반법원간에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1. 事件의 槪要 이 사건 신청인들은 차기전투기 사업(F-X 사업) 시험평가단 부단장에 근무하다가 군사기밀누설 등의 혐의로 특수전사령부 유치장에 구속된 조아무개 공군대령과 그의 부인 문아무개씨이다. 신청인들은 군인의 신분이거나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 미결수용자의 면회 횟수를 주 2회로 제한하는 군행형법시행령 제43조 제2항 본문 중 전단부분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데 이어, 이 규정의 효력을 本案事件의 결정 선고시까지 임시로 정지할 것을 구하는 假處分申請을 하였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認容한 것이다. 심판의 대상이 된 군행형법시행령 제43조 제2항의 全文은 다음과 같다. “미결수용자의 면회횟수는 매주 2회로 하되, 참모총장은 미결수용자의 접견교통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횟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 다만, 변호인과의 면회는 그 횟수를 제한하지 아니한다” 2. 憲法裁判所法上 假處分條項의 類推適用 우리 헌법 제111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을 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법은 이 모든 심판절차에 적용되는 가처분에 관한 일반조항을 두지 않고 정당해산심판과 권한쟁의심판에 대해서만 假處分規定(제57조 및 제65조)을 두고, 헌법소원심판에는 가처분에 관한 규정이 없다. 한편 법원의 제청에 의한 위헌법률심판의 경우에는 裁判停止規定(제42조), 탄핵심판의 경우에는 權限行使停止規定(제50조)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00. 4. 18. 제기된 舊 司法試驗令(2001. 3. 31. 대통령령 제17181호로 폐지된 것) 제4조 제3항 본문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2000헌마262)을 본안으로 한 가처분신청사건(2000헌사471)에서, 2000. 12. 8.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헌법소원심판절차에 있어서도 가처분의 필요성은 있을 수 있고, 달리 가처분을 허용하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가처분이 허용된다”고 판시하면서 위 사법시험령 조항의 효력을 본안의 終局決定 선고시까지 정지하는 가처분결정을 하였고, 이번에 또다시 군행형법시행령 조항에 대하여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위 결정들은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없는 가처분을 헌법소원에 유추적용할 수 있는 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서 論理的 飛躍이 있다고 생각된다. 제도신설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모든 문제점을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立法者가 수행하여야 할 역할이다.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률에 없는 가처분을 하는 것은 재판기관의 권한을 초월한 것이다. ‘필요’하고 굳이 ‘부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法官에 의한 法創造 또는 法獲得의 근거로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3. 行政訴訟法 및 民事訴訟法 規定의 準用 이 사건 결정에서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 준용한다고 한 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은 행정소송의 대상인 行政處分의 執行停止에 관한 규정이고, 민사소송법 제714조는 係爭物에 관한 가처분과 臨時의 地位를 정하는 가처분에 관한 규정이다. 이 조항들은 원래 당해 사건 당사자의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 법원이 임시구제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에 불과하고, 법령의 일반적 효력정지까지 예상하고 있는 규정은 아니다. 당해 사건의 당사자를 구제하기 위한 가처분규정을 근거로 법령의 효력을 정지시킴으로써 당사자가 아닌 일반인에게까지 효력을 미치게 하는 것은 위 법률들에 규정된 假處分制度의 原趣旨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번 결정은 행정소송법의 집행정지규정이나 민사소송법의 가처분규정에는 없는 내용(법령에 대한 효력정지)을 준용한다고 한 결과가 되어, 헌법재판소가 법률상 근거 없는 헌법소원심판에서의 법령의 효력정지 가처분제도를 창설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만에 하나 이러한 法創造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려면, 이것이 명백한 立法의 不備이고, 통상의 입법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재판기관이 이를 보완하지 않으면 제도 본래의 目的을 도저히 달성할 수 없거나 제도의 實效性을 보장할 수 없는 등의 모순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4. 違憲決定 效力의 先取效果 우리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에 의하면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조항은 원칙적으로 그 결정이 있는 날로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위헌법률의 효력을 제정 당시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장래에 향하여 효력을 상실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헌법적합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입법자가 결정할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할 것인데, 우리 입법자는 후자의 입법정책을 채택한 것으로서 이는 헌법에 합치한다(헌법재판소 1993. 5. 13. 선고 92헌가10 결정).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위헌결정시부터 장래를 향하여만 법률의 효력을 상실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규범통제제도 하에서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여부에 대한 종국결정을 하기 전에 가처분으로 당해 법률의 시행 또는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獨逸의 경우에는 위헌결정에 一般的 遡及效가 인정되므로 위헌결정 전에 기존의 법상태에 관하여도 헌법재판소가 미리 관여할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법의 가처분규정(제32조, 제93조의d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절차에서 종국결정 전에 법률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을 하더라도 제도모순의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한편 우리 나라와 같이 법령의 위헌결정에 將來效만 인정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절차에서 가처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며, 헌법재판소는 법령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VfSlg 13706, 1994). 우리 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위헌결정의 소급효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위와 같은 가처분을 허용한다면 법률의 효력상실이라는 위헌결정의 효력을 가처분이라는 별도의 제도로 선취하는 결과가 될 것인데, 이는 우리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과 조화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의 장래무효원칙에 대하여 법원의 판례로 비교적 광범위한 예외가 인정되고 있으므로 법률의 위헌결정 전에 효력을 정지하더라도 제도상 모순이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의 효력은 위헌제청을 한 당해 사건, 위헌결정이 있기 전에 이와 동종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심판제청을 하였거나 법원에 위헌여부심판제청신청을 한 경우의 당해 사건과 따로 위헌제청신청은 하지 아니하였지만 당해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이 재판의 전제가 되어 법원에 계속중인 사건뿐만 아니라 위헌결정 이후에 위와 같은 이유로 제소된 일반 사건에도 미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1993. 1. 15. 선고 91누5747 판결, 2000. 2. 25. 선고 99다54332 판결 등). 그러나 이 판례를 법률의 위헌결정에 대하여 일반적인 소급효를 인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 스스로 “법적 안정성의 유지나 당사자의 신뢰보호를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위헌결정의 소급효를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법치주의의 원칙상 요청되는 바”라고 한다(1994. 10. 25. 선고 93다42740 판결). 헌법재판소도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구체적 타당성의 요청이 현저한 반면에 소급효를 인정하여도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없고 나아가 구법에 의하여 형성된 기득권자의 이득이 해쳐질 사안이 아닌 경우로서 소급효의 부인이 오히려 정의와 평등 등 헌법적 이념에 심히 배치되는 때에도 소급효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위 92헌가10 결정). 요컨대 위헌결정의 소급효가 인정되는 범위는 具體的 規範統制의 實效性 보장을 위하여 이미 제소된 사건에 이를 인정할 필요가 있거나, 아직 제소기간이 渡過하지 않은 사건 중에서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구체적 타당성의 요청이 현저한 경우에 예외적·부분적으로 인정되는 것으로서 가처분에 의한 법령효력정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법률의 효력정지제도를 위헌결정의 장래효 원칙에 대한 하나의 예외적 제도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점은 근본적으로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할 것이며, 입법자의 명시적 수권 없이 법률의 위헌결정 전에 그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5. 憲法訴願의 補充性(前審節次 履行要件) 우리 헌법재판소법은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전에 다른 법률의 구제절차를 모두 거치도록 하는 보충성의 원칙(또는 전심절차 이행요건)을 규정하고 있다(제68조 제1항 단서). 獨逸에서 보충성원칙은 헌법재판소의 업무부담경감과, 기초사실 및 일반법원의 법률적 견해의 전달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기능은 법원이 충분한 심리를 하고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 널리 헌법소원이 행해지는 것이 전제된다. 그러나 우리 헌법소원제도는 독일의 제도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제도적 의의와 기능도 전혀 다르다.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우리 법제(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하에서 보충성원칙의 실제적인 의의는 원칙적으로 법원의 재판관할권에 속하는 사항을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심판관할권에서 배제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헌법소원의 보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법원의 不適法却下 판례가 確立된 事案만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것이므로 헌법소원이 空洞化할 우려가 있다. 그 반면에 보충성원칙의 예외인정범위가 바로 헌법소원의 심판범위를 확보하는 기능, 즉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배분하는 기능을 하므로 예외인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령 자체에 의한 기본권침해가 문제될 때에는 일반법원에 법령 자체의 효력을 직접 다투는 것을 訴訟物로 하여 제소하여 구제를 구할 수 있는 절차가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단서 소정의 구제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헌법소원을 내야 하는 제약이 따르지 않는 이른바 보충성의 예외적인 경우”라고 일관하여 판시하고 있다(88헌마1 결정 이래 확립된 판례). 그러나 법령의 위헌성을 직접 소송물로 하여 일반법원에 제소할 길이 없다는 것이 법원에 의한 권리구제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데 주의하여야 한다. 침해의 직접성이란 법령의 “집행행위가 없어도 직접 침해될 수 있는 경우”를 뜻하는 것이지, 당해 법령의 “집행행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성이 있는 법령에 대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한 국민은, 보충성원칙의 예외가 인정된다면 바로 그 법령조항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도 있고, 집행행위를 기다리거나 집행행위를 촉구한 후에 그 집행행위에 대하여 구제절차를 밟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게 된다. 나아가 독일의 최근 판례와 같이 헌법소원의 보충성원칙을 단순히 전심절차 이행요건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기본권침해를 저지하기 위하여 청구인에게 허용되어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들을 전부 시도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BVerfGE 74, 102(113) 및 기타 다수의 판결), 구제절차란 법원에 의한 권리구제이면 되지 공권력 행사를 소송물로 하여 다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법원에 의한 권리구제를 반드시 거치도록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직접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허용할 것인가(보충성원칙의 예외 인정) 여부의 궁극적 기준은 구체적 사건의 본질이 憲法解釋에 가까운가 아니면 事實認定 및 法律解釋에 가까운가 그리고 어느 재판기관이 이를 담당하는 것이 憲法政策上 바람직한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6. 結 論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법령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그 법령의 적용이 문제된 재판이 사실상 전부 정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행정부도 그 법령에 따른 행정처분을 전혀 할 수 없게 될 것이므로 재판업무와 행정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어차피 위헌으로 결정될 법령이라면 위와 같이 법정책적·법이론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효력정지의 가처분을 선고하지 말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위헌결정을 하는 편이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舊 司法試驗令 사건의 경우, 본안결정을 기다리면 한번의 응시기회를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나, 긴급한 구제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본안사건을 신속하게 심리하였으면 되었을 것이다. 2000. 4. 18. 제기된 본안사건은 젖혀두고, 2000.12.8.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하면서 2001년 실시될 사법시험 제1차 시험 응시기회를 논하는 것은 너무나 옹색한 논리이다. 구 사법시험령 조항에 대한 일반적 효력정지가처분 후 오랜 기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위헌여부에 관한 본안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규범통제제도의 정상적 운영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사건 심판대상인 군행형법시행령 제43조 제2항 본문 중 전단부분은 “미결수용자의 면회횟수는 매주 2회로 하되”라고 규정하여 일견 별도의 집행행위 없이도 기본권을 직접 침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항 본문 중 후단부분은 “참모총장은 미결수용자의 접견교통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횟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여 면회 횟수에 대한 행정청의 재량여지를 인정한다. 조문 전체의 취지로 볼 때 면회 횟수를 주 2회만으로 직접 제한하는 것이 입법자의 의도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헌법소원 본안사건은 침해의 직접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却下되어야 마땅하다. 설령 군행형법시행령 제43조 제2항 본문 중 전단부분이 직접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인정하여도,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인(헌법소원 본안사건의 청구인)들이 먼저 면회를 신청한 후 면회거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이 절차에서 위 군행형법시행령 조항의 위헌·위법 여부가 재판의 전제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법원이 헌법 제107조 제2항에 따라 이를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헌법소원 본안사건의 본질은 청구인들의 접견교통권 보장 필요성과 군행형상의 제한필요성을 개별·구체적으로 비교형량하는 데 있으므로, 이와 같이 個別·具體的인 利益의 比較衡量이 관건인 사건에서의 권리구제는 법원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보충성원칙의 예외를 인정할 때에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機能分擔을 고려하여야 하므로, 이 사건 헌법소원은 법원의 권리구제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제기한 것으로서 不適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건에서 법령의 효력을 일반적으로 정지하는 가처분까지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법령의 효력정지를 명하는 가처분신청을 인용할 만한 사건이 못된다. 이 사건 헌법재판소 결정은 무리한 준용이론을 전개하면서 사실상 입법을 하고 있고, 법원의 관할권과 중첩되는 문제도 야기하였다.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권리침해를 구제하여야 할 기본적 권한과 책임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나누어서 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헌법소원심판에 있어서 가처분제도를 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입법정책판단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헌법소원사건에서도 가처분이 필요한 경우가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으나, 이 제도를 채택하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법령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제도는 그 파장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신중히 검토하여 입법자가 그 채택 여부를 결정하여야 할 사항이다. 가처분에 의하여 법령의 효력을 일반적으로 정지시키는 것은 법적 안정성에 반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처분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 있는지 재판경험에 비추어 충분히 검토하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또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충분히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2002-06-06
보험약관설명의무의 범위 및 무면허운전
【사 실】 소외 홍인의는 1997.3.3 피고회사와의 사이에 자신이 이 사건 화물자동차를 구입하여 피고회사 명의로 등록하고 피고회사의 업무수행을 위한 廢엔진오일 운반용 차량으로 제공하되, 운전사의 고용 및 급여의 지급, 보험계약의 체결, 차량관리 등에 관한 일체의 사항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피고회사는 홍인의에게 이 사건 화물자동차의 운송물량에 따른 운송비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차량운용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홍인의는 피고회사명의로 1997.4.14 피고회사를 기명피보험자로 하여 원고와 이 사건 화물자동차에 관하여 업무용자동차종합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원고회사 소속 보험모집인 소외 정창화가 보험계약자인 피고에게 보험계약의 성질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하지 아니하고 이 사건 피보험자동차를 제1종 보통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고지하였으며, 원고회사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조차도 그렇게 알고 이 사건 보험계약을 정당한 보험계약으로 인정하는 등의 잘못을 범하였다. 홍인의가 고용한 운전사 정명화가 제1종 보통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인 이 사건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본건 사고를 내었다. 원고인 보험회사가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을 근거로 보험금지급채무의 부존재에 관한 확인청구의 소를 제기한데 대하여, 피고는 1. 보험모집인 정창화 및 원고회사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가 잘못을 범하였다는 이유로 원고회사에게 신의칙상 또는 보험계약상 손해배상책임이 있고, 2. 정창화의 잘못된 고지로 인하여 피고회사가 이 사건 피보험자동차를 제1종 보통운전면허 소지자가 운전하는 것이 무면허운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므로 이 사건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신의성실의 원칙 및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6조 제1항, 제2항, 제7조 제2호, 제3호의 규정에 위반되어 무효가 되며, 3. 본건 무면허운전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승낙이 없으므로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적용될 수 없다고 항변하였다. 【판 지】 1. 상법 제638조의3 제1항 및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보험자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에 보험계약자에게 보험약관에 기재되어 있는 보험상품의 내용, 보험료율의 체계, 보험청약서상 기재 사항의 변동 및 보험자의 면책사유 등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지고 있다고 할 것이어서, 만일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위반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한 때에는 그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를 운전하여야 무면허운전이 되지 않는지는 보험자의 약관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2. 자동차종합보험 보통약관상의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은 사고 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시에 무면허운전중이었다는 법규위반 상황을 중시하여 이를 보험자의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유로 규정한 것으로서, 운전자가 그 무면허운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책약관상의 무면허운전에 해당된다. 3. 자동차보험에 있어서 피보험자의 명시적·묵시적 승인하에서 피보험자동차의 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하였을 때 생긴 사고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은 무면허운전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지배 또는 관리가능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으로서,…무면허운전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 승인하에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와 무면허운전자의 관계, 평소 차량의 운전 및 관리 상황, 당해 무면허운전이 가능하게 된 경위와 그 운행 목적, 평소 무면허운전자의 운전에 관하여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취해 온 태도 등의 제반 사정을 함께 참작하여 인정하여야 한다. 기명피보험자의 승낙을 받아 자동차를 사용하거나 운전하는 자로서 보험계약상 피보험자로 취급되는 자(이른바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인 승인이 있다고 할 수 없어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사 명의로 차량을 등록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후 그 업무수행을 위해 차량을 제공하되 운전사의 고용 및 급여 지급 등 일체의 사항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지기로 약정한 자동차 소유자의 승낙 하에 그 피용자가 무면허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해 설】 서론 : 본 판결에는 피보험자의 승낙과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의 관계에 관하여 대체로 3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아래에 판시의 순서에 따라 설명하기로 한다. 1. 보험약관명시설명의무의 범위 보험자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지고 있다(상법 제638조의3,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위반하여 체결한 보험계약도 약관을 보험단체의 법규범으로 보아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법규범설). 상법 제638조의3 제2항이 이 위반에 대하여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계약이 성립한 날부터 1월내에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게 하는데 그친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는 약관 일반에 관한 규정인데 대하여 상법 제638조의3은 보험계약의 약관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보는 것이 법체계상 온당하므로 이 견해도 현행법의 해석으로서 논리에는 맞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약관을 규제하여 특히 보호해야할 보험계약자에게 너무 불리하다. 그래서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에 기하여 이에 위반한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정된 판례이다(대법원 1998.6.23.선고 98다14191판결 ; 대법원 1998.11.27.선고 98다32564판결 ; 대법원 1999.3.9.선고 98다43342, 43359판결 참조). 그러나 본 판결이 어떤 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를 운전하여야 무면허운전이 되지 않는지는 보험자의 약관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점에는 의문이 있다. 이 판결의 태도에는 상술한 법규범설의 영향이 엿보인다. 이 판시에 따르면 어떤 것이 보험자의 약관명시 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될까. 무면허운전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약관의 명시는 될 수 있더라도 약관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은 될 수 없다. 약관의 명시 설명의무는 약관이 당사자간의 계약내용이므로 이 계약에 의해서 어떤 권리의무가 발생하는지를 당사자가 알고 동의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험자에게 부담시킨 것이다. 그런데 보험자측의 보험모집인과 보험자의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조차도 그 내용을 잘못 알고 있었다. 보험자측 스스로도 알지 못한 내용을 보험계약자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계약에 당사자가 내용을 알고 합의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무면허운전에 대한 처벌은 법률의 규정(도로교통법 제109조)에 의한 것이지만 이로 인하여 보험자가 면책되는 것은 당사자가 합의한 보험계약의 조항에 따른 것이다. “보통보험약관이 계약당사자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가 법규범 또는 법규범적 성질을 가진 약관이기 때문이 아니라 보험계약당사자사이에서 계약내용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라는 대법원의 지론(대판 1985.11.26, 84다카2543 ; 동 1986.11.26, 84다카122 ; 동 1989.11.14, 88다카29177 등 다수)에 따른다면, 이러한 약관은 보험계약의 일부로서 당사자를 구속할 수 없을 것이다. 대판 1992.7.28, 91다5624는 은행거래약관을 “설명하여 주지 아니하였다 하여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으나, 이 판결을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약관을 작성한 사업자측도 그 내용을 잘못 이해한 본 판결의 사안과는 역시 다른 경우이었다. 2. 무면허운전의 인식 이 면책약관이 유효하다고 전제한다면, 운전자가 그 무면허운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책약관상의 무면허운전에 해당된다는 것도 대법원의 판례에 따른 것이다(대법원 1991.12.24.선고 90다카23899전원합의체판결 ; 대법원 1993.3.9.선고 92다38928판결 ; 대법원 1997.9.12.선고 97다19298판결 ; 대법원 1998.3.27.선고 97다6308 판결 참조). 그러나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은 사고 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 시에 무면허운전 중이었다는 법규위반상황을 중시하여 이를 보험자의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유로 규정한 것”이라는 설명은 부당하다.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이 사고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원인에 의한 보험사고의 위험을 보험에 의한 보호에서 배제하였다면 보험자는 그 사고로 인한 손해를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 대판 1993.11.23, 93다41549에 의하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차량의 관리자 내지 운전자의 사용자로서 그에게 요구되는 통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에도 운전자의 무면허사실을 알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면책약관은 적용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의견은 보험자의 면책을 피보험자에 대한 제재로 보는 태도로서 무면허운전을 보험금지급의무에서 제외한 보험자측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사법이론과 조화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보험자는 보험계약자에게 제재를 가할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3. 승낙피보험자의 승낙에 의한 무면허운전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을 아무런 제한 없이 적용한다면 무단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한 경우에 자동차보유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면서도 자기의 지배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무단운전자의 운전면허소지의 여부에 따라 보험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어 피보험자에게 너무 가혹하여 불합리하므로 피보험자의 명시적 묵시적 승인 하에 피보험자동차의 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하며, 기명피보험자의 직접적인 승낙이 없고 이로부터 운전승낙을 받은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인 승인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설시도 대법원의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판 1993.12.21, 91다36420와 1994.1.25, 93다37991에 의하면, “승낙피보험자는 원칙적으로 보험계약자나 기명피보험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제3자로 하여금 당해 자동차를 사용, 운전하게 승인할 권한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양승규 교수는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례“라고 비판한다(보험법 제3판, 412면 주19). 그러나 이 판례는 그후에도 이어졌다(대법원 1994.5.24.선고 94다11019판결 ; 대법원1995.9.15.선고 94다17888판결 ; 대법원 1996.2.23.선고 95다49776 ; 대법원 1996.10.20.선고 96다29847판결 ; 대법원 1997.6.10.선고 97다6827 ; 대법원 2000.2.25.선고 99다40548판결 참조). 그러나 본 판결의 사안에서는 기명피보험자인 피고회사가 홍인의에게 운전자의 고용을 인정한 이상 운전자에 대한 운전승인권도 부여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판 1993.1.19, 92다32111에서도 “기명피보험자와 자동차를 빌리는 사람과의 사이에 밀접한 인간관계나 특별한 거래관계가 있어 전대를 제한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추인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전대의 추정적 승낙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다만 이 판결에서는, 무면허운전면책약관이 적용되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기명피보험자의 간접적 승인을 받은 자의 사고에 대하여도 보험자는 보상의무가 있는지가 문제였다. 그런데 위의 대판 2000.2.25, 99다40548에서는 무면허운전면책조항에 관하여 “기명피보험자인 이글렌터카의 영업소장인 김태영은 자동차종합보험약관상 피보험자동차를 운행한 자격이 없는 만 21세 미만자인 김승우 또는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는 최보국을 임차인으로 하여 이 사건 자동차를 대여하고 21세 미만자인 김승우에게 이 사건 차량을 현실적으로 인도해 주었다는 것이므로, 이는 김태영이 그 대여 당시 21세 미만의 자가 김승우 또는 최보국으로부터 지시 또는 승낙을 받아 이 사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승인할 의사가 있었음을 추단할 수 있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 표현이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이웅의 이 사건 자동차의 운전은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아니라 기명피보험자의 묵시적 승인도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위의 97다6827판결에서는 “지입차주의 승낙 아래 무면허로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에는 무면허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는데, 사고를 낸 무면허운전자가 지입차주의 우발적 승인을 받고 운전한 자가 아니고 이 화물자동차를 상시 운전하는 자였다면 기명피보험자인 지입회사의 양해가 있었다고 보아 면책조항의 적용을 인정한 판지는 타당하다. 그리고 홍인의가 실질적으로 본건 화물자동차의 차주이고 피보험자임을 기준으로 하면 그가 고용한 운전자 정명화는 승낙피보험자가 될 것이다. 반대로 형식을 기준으로 피고회사가 차주이고 피보험자라고 한다면 피고회사소유의 본건 화물자동차를 상시로 운전하는 정명화는 적어도 그의 묵시적 승낙을 받은 승낙피보험자가 될 것이다. 본 판결도 제시하고 있는 묵시적 승인 하에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여러 기준들에 의하더라도 최소한 회사의 묵시적 승낙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닐까. 결어 : 본 판결은 보험자의 약관명시 설명의무 위반을 부당하게 부인하고 나서, 그 결과를 승낙피보험자의 개념에 의하여 무리하게 시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에는 찬성하지만 이 결론은 2중의 이론상 오류에 의하여 도달한 것이다.
200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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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년 8월 24일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신동진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층
발행일자
1999년 12월 1일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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