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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법무
상사일반
선하증권상 정당한 소지인 관련 운송물 불법인도사건
I. 사실관계 한국의 피고 갑(매수인)은 을(매도인)로부터 석탄을 구입하고(제1계약), 을은 이행을 위해 다시 E로부터 석탄을 구입하게 되었다(제2계약). E는 해외에 있는 원고와 매매계약을 최종적으로 체결했다(제3계약). 갑은 운송을 위하여 K와 운송계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K는 원고로부터 석탄을 선박에 실었다. 운송인인 K는 선하증권을 발급하게 되는데, 원고가 처음 이를 수령하여 가지고 있었다. 선하증권에는 송하인란에 “을을 대리한 E”로 되어있다. 석탄이 한국에 도착하자 피고 갑은 선하증권의 상환 없이 K로부터 운송물을 수령해갔다. 매매대금은 을이 E에게 주었다. 잔금을 받지 못한 원고는 손해배상청구를 매수인 갑과 운송인 K에게 제기했다. 원고는 자신이 실질적인 소유자이자 송하인이고 제3매매계약에서 E에 대한 대금 지급을 담보 받기 위하여 선하증권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선하증권에 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피고는 이 화물의 송하인은 을인데 원고는 을의 배서 없는 선하증권을 소지한 자이므로 정당한 소지인이 아니므로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급심은 송하인은 원고가 아니라 을이라고 확정하면서 원고가 송하인으로서 선하증권을 소지했다는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원고는 E로부터 대금을 수령할 필요가 있었고, 송하인의 대리인인 E는 운송인과 상의하여 선하증권의 발행을 원고에게 해주라고 한 것으로 보아, 담보의 목적상 정당한 권리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II. 대법원의 판단 1. 선하증권에 대한 정당한 권리자가 되는 방법 “운송인이 송하인에게 선하증권을 발행·교부하는 경우 송하인은 선하증권 최초의 정당한 소지인이 되고, 그로부터 배서의 연속이나 그 밖에 다른 증거방법에 의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음을 증명하는 자는 그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 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70064 판결 등 참조). 이때 그 소지인이 담보의 목적으로 선하증권을 취득하였다고 하더라도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므로(대법원 1997. 4. 11. 선고 96다42246 판결 등 참조), 송하인으로부터 담보의 목적으로 선하증권을 취득한 자는 그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에 화체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송하인과의 법률관계, 선하증권의 문언 등에 따라 송하인을 대신하여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을 교부받을 권한이 있는 자가 선하증권에 관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경우에도 위와 같은 법리가 동일하게 적용되고, 그로부터 담보의 목적으로 선하증권을 취득한 자도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 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2. 선하증권과 상환하지않은 운송인의 책임 “한편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운송물을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인도함으로써 운송물에 관한 선하증권 소지인의 권리를 침해하였을 때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고(대법원 2001. 4. 10. 선고 2000다46795 판결 등 참조), 이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선하증권에 화체되어 그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이전된다(대법원 1992. 2. 14. 선고 91다4249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은 선하증권과의 상환 없이 운송물이 인도됨으로써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 운송인 또는 운송인과 함께 그와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3. 사안의 경우 원심은, 을에게 이 사건 각 석탄을 매도한 E는 매매대금을 지급받기 위한 수단으로 선하증권을 교부받기로 되어있었고, 이를 위해 선하증권의 문언에 송하인을 대신한다고 표시된 것이므로 이 선하증권을 교부받을 권한이 있는 자로서 그 정당한 소지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사건 각 석탄의 소유자로서 E에게 위 석탄을 매도한 원고가 그 매매대금을 지급받기 위한 담보로 선하증권을 취득한 이상 원고도 그 정당한 소지인에 해당하므로, 위 선하증권이 무단으로 인도됨으로써 성립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을로부터 석탄을 매수한 피고로서는 선하증권을 교부받은 다음 그와 상환하는 방법으로 석탄을 인도받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그와 같은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운송인으로부터 석탄을 인도받아감으로써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의 권리를 침해하였으므로 피고는 운송인과 함께 원고에게 공동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 원심의 판단에 선하증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상고를 기각한다. III. 의견 1. 선하증권의 기능 선하증권은 운송계약을 증명하는 기능을 한다. 개품운송에는 특별하게 운송계약서가 발행되지 않는다. 선하증권의 내용이 운송계약을 대신하는 기능을 한다. 선하증권은 운송물에 대한 수령증으로서 기능을 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운송물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기능이다. 이를 소지하면 소유자와 유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선하증권은 상환성이 있기 때문에 소지하고 있는 사실이 수하인으로 하여금 대금을 지급할 것을 강요하게 되어 담보로서의 성질도 가진다. 운송인은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한다. 선하증권이 발행되면 소지인이 수하인이 되고 운송인은 선하증권소지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선하증권은 송하인에게서부터 수하인에게로 인도된다. 2. 선하증권상의 송하인-CIF의 경우 송하인은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된다. CIF 계약에서는 매도인이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된다. 매도인과 선적인이 일치한다. 선하증권의 송하인란에는 매도인이면서 선적인이 기재된다. 운송인은 이런 선하증권을 매도인에게 넘겨준다. 선하증권을 손에 넣은 매도인은 이를 화환 신용장과 함께 은행에 제시하고 대금을 매수인으로부터 수령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선하증권은 운송물이 화체된 것으로 운송물인도청구권이 표창되어있고 이와 상환하여서만 운송물을 운송인이 소지인에게 넘기도록 되어있다. 운송인은 선하증권을 은행에게 넘겼고 그 대신 수하인이 지급할 대금을 은행으로부터 수령한다. 은행은 수하인이 대금을 가지고 올 것으로 기대한다. 만약 나타나지 않으면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해서 운송물을 자신이 찾아오게 된다. 이렇게 선하증권은 담보로서 기능한다. 3. 선하증권상의 송하인-FOB의 경우 FOB 계약에서는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송하인은 매수인이 된다. 운송물을 선적한 자는 FOB 계약에서는 매도인이 된다. 송하인과 선적인이 분리된다. 이 경우에도 선하증권을 매도인이 수중에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는 상품의 대금을 매수인으로부터 수령할 수 있다. 선하증권의 상환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1) 송하인이 매수인이므로 송하인란에 매수인을 적고, 매수인이 이를 수령하여 매도인에게 배서양도하는 방법이 있다. (2) 송하인란에 매도인을 적는 방법이다. 매도인에게 처음부터 선하증권이 발급되게 하는 것이다. (3) 송하인란에는 매수인을 적고, 실제로 수령은 매도인이 하게 하는 것이다. (1)의 방법은 정상적인 방법이다. (2)는 송하인은 매수인임에도 불구하고 매도인이 적히는 것은 맞지 않지만, 실무에서 흔히 보는 예이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매도인은 송하인인 매수인의 대리인의 지위에 있다고 보았다. (1)의 경우 매도인은 위 CIF의 경우와 같이 선하증권을 은행에 제시하고 대금을 받게 된다. (2)의 경우는 선하증권의 첫 소지인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양도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서양도가 필요 없다. (3)의 경우는 송하인은 매수인이 되어있는데 은행에 선하증권을 들고 온 사람은 매도인이 되어서 문제가 발생한다. 배서양도가 안되어있다면, 매도인은 자신이 선하증권의 권리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4. 선하증권관련 대리권의 행사 선하증권은 운송물을 선적한 다음 선장이 발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선장은 선박소유자 혹은 운송인(용선자)의 대리인이다. 임의대리인으로 선박소유자나 운송인으로부터 지정을 받게 되고, 그는 법정 된 범위의 대리권을 가진다. 재판상 재판 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 재판 외의 행위에는 법률행위뿐만 아니라 선하증권의 발급과 같은 사실행위도 포함된다. 현실적으로 선박이 떠난 다음에야 선적된 화물량 등이 확정되므로 선장은 선하증권에 서명할 권한을 선박대리점에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복대리가 되는 것이다. 선하증권을 건네줄 당사자를 택할 대리권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5. 사안의 경우 (1) 송하인적격 이 사안은 FOB 계약이다. 선하증권에 송하인란에 기재된 것은 “매도인의 대리인 E”라고 적혀있었다. 위의 예에서 (2)를 택한 것이다. 그러면서 선하증권의 발급은 E에게 석탄을 제공한 자인 원고에게 된 것이다. 지시식 선하증권이기 때문에 E가 배서하고 서명하여 원고에게 선하증권이 이전되었어야한다. 송하인으로부터 원고에게 본 선하증권을 넘긴다는 내용의 배서를 받지 않았으니까 원고는 효력이 없는 선하증권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의문이 생긴다. (2) 적법한 선하증권 소지인인가? 대법원은 유통선하증권이라도 반드시 배서양도가 아니라도 달리 실질적으로 권리를 양도받았음이 입증된다면 충분하다고 보았다(2003. 1. 10. 선고 2000다70064 판결). 1992년 피배서인의 이름이 없는 약식배서도 유효한 배서라고 대법원은 보았다. 본 판결에서 FOB 계약임에도 왜 수출자(매도인)가 송하인란에 기재되었는지는 다투지않았다. 다만, 송하인으로 기재된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송인이 선하증권을 곧바로 원고(송하인에게 석탄을 매각한 자)에게 발급해도 수령자는 정당한 소지인이 되는지를 보았다. 원고는 송하인들에게 운송물을 제공할 의무가 있고 대금확보를 위해서 선하증권이 필요한 자였고, 당사자들이 선하증권을 원고에게 건네줄 합의를 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비록 배서양도가 송하인으로부터 없었지만 정당하게 선하증권을 소지할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3) 대리권 송하인의 대리인 자격을 가진 E가 원고에게 선하증권을 넘기는 합의에 관여되었다. 이 선하증권의 권리행사와 관련 그가 송하인과 같은 권한이 있는지? 원매도인에게 선하증권을 발급해줄 것을 운송인과 합의할 권한이 있다고 보았다. 하급심에서 다루어졌고 대법원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이다. (4) 선하증권의 상환성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그 상환성 때문에 운송인은 반드시 선하증권과 상환하여 운송물을 넘겨야 한다. 선장이나 대리점은 매수인(수입자)이니까 운송물의 인도를 요구하면 그자가 소유자이니까 덜컥 운송물을 내어준다. 운송계약의 뒤에는 항상 매매계약이 있다. 수출자는 매매대금을 받기 위해 선하증권을 발급받아 담보로 가지고 있다. 그냥 운송물을 내어주면 매도인은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대금을 납부하고 선하증권을 찾아가기를 소지인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이를 확인해야 한다. (5) 요약 및 결론 FOB계약에서 송하인은 수입자가 된다. 그러나, 실무상 통상 수출자가 송하인난에 적힌다. 대법원은 이 때 수출자는 수입자의 대리인의 지위에 있다고 한다. 수출자에게 운송물을 제공한 자가 바로 선하증권을 소지한다고 해도 정당한 소지인이 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대법원은 소지할 이유가 충분하다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매도인으로서 대금수령확보를 위하여 선하증권을 담보로 소지하고 있을 필요성이 있다는 점, 당사자들이 선하증권을 그에게 발급해주기로 했다는 약정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반드시 배서양도가 아니라도 적법한 소지인이 될 수 있고, 운송계약에서 송하인이 아니어도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첫 수령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준 점에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통상 선하증권관련 운송물의 불법인도 사건은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창고업자나 선박대리인의 과실이 개입된 것이지만, 이 사건은 수하인 자체가 불법을 저지른 사안인 점에서 특이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선하증권을 상환하지 않은 운송인과 수하인은 정당한 선하증권소지인에게 공동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 주의해야할 사항이다. 이 사안은 신용장이 개입되지않은 거래이다. 만약 신용장이 발행되었다면, 대금지급의무자가 명확하게 기재되었을 것이다. 수출자 혹은 E는 대금을 수입자로부터 받는 구조하에서 선하증사권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본 사례와 같이 운송계약 선하증권을 가지고 원 수출자(매도인)인 원고가 대금을 수령하는 구도는 만들기 어렵다고 보인다. 김인현 교수(고려대 로스쿨)
운송
선하증권
운송물
김인현 교수(고려대 로스쿨)
2023-11-19
금융·보험
민사일반
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형사일반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②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과 위법성 판단
Ⅰ. 판례평석의 배경과 쟁점의 소재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많은 자유에 대한 제한 현상이 행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를 둘러싼 자유의 제한과 처벌이 강화되고 있다. 동법상의 역학조사거부에 대한 대법원과 원심의 판결을 소개하고, 역학조사의 성격과 위법성 판단기준 등과 관련하여 비판적인 판례평석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대상판결은 형사법원의 처분 등에 대한 선결문제 심사문제를 담고 있으며, 형사법과 행정법의 학문접경지대의 간학문적인 영역에 위치하여 행정법적 쟁점을 많이 담고 있다. 소송물이론과 비례의 원칙, 행정절차 등 쟁점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점들을 제대로 규명하고 있지 못한 대법원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Ⅱ. 사실관계 '○○○○○ 센터'(이하 '이 사건 센터'라고 한다)는 △△△△△회(명칭 생략)가 운영하는 수련시설이다. 2020년 11월 27일부터 2020년 11월 28일까지 이 사건 센터에서 '□□□□□□ 역량 개발 행사'(이하 '이 사건 행사'라고 한다)가 개최되었는데, 이 사건 행사에 참석한 공소외 1이 2020년 12월 3일 대구광역시 ◇◇구보건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라고 한다) 양성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센터 시설을 관리하던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3일 상주시의 코로나19 관련 역학조사 담당자인 공소외 2로부터 이 사건 행사 기간에 이 사건 센터 시설에 출입한 자들의 명단과 해당 시설에 종사하는 자들의 명단(위 각 명단을 합하여 이하 '이 사건 명단'이라고 한다)을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아울러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4일 이 사건 명단을 제출해 달라는 상주시장 명의의 공문을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상주시장의 '역학조사를 거부'하였다. 결국 피고인들은 역학조사 거부로 인한「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이라고 한다) 위반죄로 기소되어 유무죄 판결에 대한 심리를 받게 되었다.[1] [각주1] 저자가 공소사실의 취지를 요약하였음을 밝힌다.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충실하되,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여 판결할 수 있도록 심리방식과 내용을 개선하여야 한다. Ⅲ. 대법원 판결요지[2] 1. 침익적 행정행위와 행정형벌의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해석의 원칙[3] 헌법은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범죄와 형벌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3조 제1항).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 그중에서도 특히 형벌에 관한 법률은 국가기관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지 않도록 명확하여야 한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결정해 나가기에 충분한 기준이 될 정도의 의미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형벌법규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 될 수 있으므로[4], 불명확한 규정을 헌법에 맞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확장해석금지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5] [각주2] 대법원 2022. 11. 17. 선고 2022도7290 판결 [각주3]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저자가 역시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부기하였음을 밝힌다. [각주4] 헌법재판소 2016. 11. 24. 선고 2015헌가2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각주5] 대법원 2021. 1. 28. 선고 2020도2642 판결 참조 2. 감염병예방법의 역학조사에 관한 구성요건과 행정형벌 규정의 해석의 범위 감염병예방법상의 문언과 체계 등을 종합하면, 감염병예방법상 ‘역학조사’는 일반적으로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에서 정의한 활동을 말하고, 여기에는 관계자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 실시하는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활동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수범자의 예견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 범위가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따라서 형벌법규의 구성요건적 요소에 해당하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의 ‘역학조사’는,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의 정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제29조,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주체, 시기, 대상,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활동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6] [각주6] 필요한 범위 내의 판결요지만 적시하기로 한다. ‘요구나 제의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침’을 뜻하는 ‘거부’의 사전적 의미 등을 고려하면,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나 그의 공범에 대하여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가 실시되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원심판결의 하자에 대한 법리상의 검토 (1) 원심판결인 대구지법 2022. 5. 26. 선고 2021노3395 판결은 상주시장 측의 위와 같은 요청을 거부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7] [각주7] 저자가 원심판결을 축약하였다. (2) 그러나, 쟁점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에 해당하여야 한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역학조사의 주체, 시기,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심리한 다음, 그 결과를 토대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그런데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에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의 의미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Ⅳ. 이 사건 판결에 대한 평석 1. 행정형벌에서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가부 (1) 형사법원에서 처분의 위법성 판단가능성과 선결문제 형사법원이 처분의 위법성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는지 선결 문제가 걸려있다. 다수설에 의하면 처분의 구성요건적 효력으로 논의된다. 행정소송법 제11조에서 형사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판단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이 없지만, 다수설과 판례는 처분의 위법성을 심사하여 형벌부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8] [각주8] 대법원 2017. 9. 21. 선고 2014도12230 판결, 대법원 2016. 12. 29. 선고 2014도16109 판결, 대법원 1992. 8. 18. 선고 90도1709 판결 등 (2) 범죄의 개방적 구성요건 행정형벌의 요건은 개방적 구성요건이다. 행정형벌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형벌의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행정법적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 역학조사 명령이 위법하다면 거부하더라도 무죄를 판결하여야 하고, 반대로 역학조사 명령이 적법하다면 이에 대한 거부는 유죄로 판결하여야 할 것이다. (3) 처분의 소송물과 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심사 범위에 대한 비판 처분의 위법성에 관한 소송물은 견해의 대립이 있지만,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라고 보는 것이 다수설과 판례[9]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심리함에 있어서 처분의 위법성일반을 전반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은 소송물에 관한 오해를 하고 있다. 행정소송의 소송물은병합 사건이라 하더라도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므로 대법원은 역학조사의 위법성 전반에 관한 법률을 검토하였어야 한다. [각주9] 대법원 2004. 3. 18. 선고 2001두194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7. 5. 16. 선고 96누8796 판결, 대법원 1990. 3. 23. 선고 89누5386 판결, 대법원 1989. 4. 11. 선고 87누647 판결 등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역학조사 명령의 위법성을 다음과 같이 검토해 보았어야 한다. 대법원은 보다 행정법과 연결된 문제 있어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할 수 있도록 성숙하게 발전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2.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을 위한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 심사기준 (1) 역학조사의 성격 역학조사는 행정법상 행정조사에 해당한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약칭: 감염병예방법) 제18조에 의하면 역학조사는감염병이 발생하여 유행할 우려가 있거나, 감염병 여부가 불분명하나 발병원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행정청이 지체 없이 역학조사를 하여야 하도록 하고 있다. 역학조사는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임의조사가 아니라 권력적 사실행위인 강제조사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동법 제18조 제3항에 의하면 1호상의 정당한 사유 없이 역학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회피하는 행위, 2호상의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 3호상의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행위 등에 대하여는 동법 제79조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그 자체는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수인하명과 순수사실행위가 결합된 합성행위로서 전체적으로 행정소송법 제2조의 처분과 동일한 성격에 해당하는 기타 행정작용에 속한다. 역학조사를 명령의 형태로 발부하는 경우에는 행정청의 행정행위로서 처분에 해당하게 된다. (2) 역학조사의 내용상의 위법성과 비례의 원칙 등 역학조사와 같은 행정조사는 실정법상으로는 「행정조사기본법」의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행정조사는 법률의 우위원칙상 동 법 등을 위반해서는 안 되고, 나아가 법률의 규정이 있어야만 하는 법률유보의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역학조사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18조에 규정이 있다. 그밖에도 비례의 원칙에 의하여 행정조사가 과잉조사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동법은 제4조 제1항에서 행정조사는 조사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실시하여야 하도록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동 규정은 다른 목적 등을 위하여 조사권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되도록 목적구속성의 원칙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이나 원심은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역학조사의 절차상의 위법성과 감염병예방법 및 행정조사기본법 준수 등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 제9조 내지 제13조상의 다양한 조사방법으로 수행될 수 있다. 「행정조사기본법」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제17조상의 서면에 의한 사전통지, 제24조 등에 의한 조사결과의 통지 등의 절차준수가 적법절차의 원리상 요구된다. 대법원이나 원심은 역시 이 부분을 포함하여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걸쳐 심리하였어야 한다. Ⅴ. 결론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 임하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하며,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대법원이나 원심이나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보다 행정법적으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성봉근 교수(서경대)
신천지
코로나
역학조사
성봉근 교수(서경대)
2023-03-09
민사일반
준거법의 범위와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 대상판결: 대법원 2016.3.24. 선고 2013다81514 판결 - I. 대상판결의 요지 당사자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계약 당사자는 어느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거나 그중 특정 조항이 당해 계약에 적용된다는 합의를 할 수 있고 그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소송절차에서 비로소 당해 사건에 적용할 규범에 관하여 쌍방 당사자가 일치하는 의견을 진술하였다고 해서 이를 준거법 등에 관한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II. 국제협약이 준거법의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의 당사자가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는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상인법(lex mercatoria 또는 law merchant)과 같은 국제적 관습, UNIDROIT 국제상사계약규칙(UNIDROIT Principles of International Commercial Contracts 1980)과 같은 법원칙 또는 국제물품매매협약(UN Convention on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과 같은 국제협약 등 비국가적 규범도 포함되는지 문제된다. 2. 논의의 실효성 비국가적 규범이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있다면 이는 ‘저촉법적 지정’이 되지만, 만일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없다면 당사자의 합의는 그러한 비국적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실질법적 지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촉법적 지정은 준거법의 지정이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적용은 배제되고 국제적 강행규정만이 적용된다. 그러나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경우에도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계약이 체결된 후에 법이 개정되었다면 개정된 법이 적용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개정되기 전의 법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그 적용이 배제된다. 또한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법원이 규범의 내용을 직권으로 조사해야 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편입된 법규가 계약의 내용이 되므로 당사자가 편입된 법규의 내용에 대하여 주장하고 증명할 책임을 부담한다. 3.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준거법은 특정국가의 법에 한정된다고 본다. 국제사법의 전반에서 언급하고 있는 ‘법’의 전통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는 특정국가의 법이고, 제5조에서 ‘법원은 이 법에 의하여 지정된 외국법’이라고 규정하고 제7조나 제33조 등에서 ‘대한민국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하여 보면 준거법은 외국법이거나 대한민국법으로서 특정국가의 법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준거법의 분열의 한계와 관련하여서 문제가 발생한다. ‘준거법의 분열’이란 하나의 법률관계의 실체적 내용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국제사법 제25조 제2항에서는 “당사자는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준거법의 분열을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 2016.6.23. 선고 2015다5194 판결에서는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만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 선택된 준거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영역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소위 객관적 준거법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비국가적 규범만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거나 비국가적 규범과 특정국가의 법을 모두 지정하는 경우 모두 준거법의 분열이 발생한다. 그러나 준거법의 분열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법의 내용에 차이가 있고, 한 국가의 국내법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동시에 적용되면 적용되는 법률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거나, 생소한 다른 국가의 제도를 국내의 제도에 맞춰야 하는 복잡한 적응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정된 복수의 준거법이 적용되는 부분이 다른 부분과 분리가능하여 상호 모순저촉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 내에서만 준거법의 분열이 허용된다. 그런데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한계를 완전히 무시하고서 준거법의 분열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국제협약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보건대, 위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깊은 고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저촉법적 지정은 할 수 없다고 본다. 참고로 우리의 국제사법의 바탕이 된 유럽공동체(EC)의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협약’(‘로마협약’) 에서는 당사자가 준거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위 로마협약을 개정한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규칙’을 제정되는 과정에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준거법은 특정 국가의 법으로부터만 도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아니하였다. III.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주요사실에 대하여만 변론주의가 적용되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는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실이 주요사실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상판결과 같이 준거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본다면 당사자가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주장 및 증명해야 비로소 법원이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당사자의 주장이 없는 한 법원이 직권으로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2.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1) 주요사실의 의미에 따른 비판 주요사실이라 함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체법상의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말한다(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 즉 권리와 의무의 발생, 변경, 소멸이라는 실체법적 효력을 가져오는 요건사실이 주요사실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지만 ‘절차법-실체법’과 ‘저촉법-실질법’이 대비되고 있는 바와 같이, 저촉법인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절차법과 실체법의 구분과 그 영역을 달리한다(석광현, ‘국제사법 해설’, 법문사, 2013, 4쪽). 그런데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보던지 저촉법으로 보던지 상관없이 국제사법이 실체법이 아니란 점은 명백하므로 국제사법 제25조에 따른 준거법의 지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2) 적용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국제적 분쟁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으로서는 당사자의 주장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이를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법에 따르면 계약에 적용되는 준거법은, 1차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지정한 국가의 법이 되고(제25조 제1항), 이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2차적으로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된다(제26조). 따라서 법원은 직권으로 계약의 1차적 준거법인 당사자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해야 한다. 게다가 대상판결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적용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이고,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는 적용할 법률을 결정하는 합의이므로, 법원은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하는데 있어서 당사자의 주장에 구속받지 아니한다. 덧붙여 대상판결은 당사자가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는 계약의 내용이 되고 계약의 내용은 주요사실이라는 이유로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를 주요사실로서 자백의 대상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당사자의 합의라고 하더라도 모두 주요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법원 판례에서는 소송상 합의인 부제소의 합의를 채권계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2다73821 판결), 이러한 부제소의 합의가 소송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따라서 당사자의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까지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IV. 결론 이상으로 대상판결과 달리, 사견에 따르면 국제협약을 포함한 비국가적 규범은 준거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의 존재는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서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대상판결 중 문제된 판시내용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채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른 아쉬움이 있다. 적지 않은 국제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좀 더 많은 국제사법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국제협약
준거법
국제사법
2017-02-20
원천징수처분취소소송에서 처분사유 추가·변경의 한계
Ⅰ. 사실관계 미국의 사모투자회사인 A의 미국 내 계열사인 B등은, 내국법인인 甲은행의 주식 9999만9916주(이하 '이 사건 주식')의 인수를 위하여 이 사건 주식의 인수에 투자할 펀드투자자를 모집하였고,그 결과 2000. 1. 14.경 영국령인 케이만 군도에 유한파트너십(Limited Partnership, 이하"LP")인 C가 설립되었다. C는 케이만 군도에 설립된 D의 주식을 100% 인수한 다음, D로 하여금 말레이시아라부안에 설립된 E의 주식을 100% 인수하게 하였고, 최종적으로 말레이시아 법인인 E를 통하여 우리나라 법인이 발행한이 사건 주식을 취득하였다. 한편 E는 2005. 4. 15. 원고에게 이 사건 주식을 1651억1475만6621원에 양도하여 이 사건 양도소득을 얻었는데,원고는 한?말레이시아조세조약제13조 제4항에 의하여 주식 양도소득은 양도인의 거주지국에서만 과세된다는 이유로 E에 이 사건 주식 양도대금을 지급하면서 그에 대한 법인세를 전혀 원천징수하지 아니하였다.이에 피고(과세관청)는 2006. 12. 18. E는 조세회피목적으로 설립된 명목상의 회사에 불과하고,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귀속자는C의 투자자 281명이므로, 이들 중 대한민국과 조세조약을 체결하지 않았거나 조세조약상 주식양도소득에 대하여 원천지국 과세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에 거주하는 총 8개국 40명의 투자자가 얻은 양도소득에 대하여 원고에게 원천징수분 소득세 430억1071만7520원을납세고지하는 처분을 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진행경과 및 판시내용 1.제1심판결 내지 상고심 판결의 판시내용 당초 대상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E인지(원고의 주장),아니면 C의 투자자인지(피고의 주장) 여부였다.이에 관하여제1심 및 항소심은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를C의 투자자로 보고 그들을 원천납세의무자로 하여 원고에게 원천징수분 소득세를 납세고지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09. 12. 30. 선고 2008구합17110 판결 및 서울고등법원 2010. 8. 25. 선고 2010누3826 판결). 그러나상고심은,E가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E와 C의 투자자 사이에 있는) C가 오로지 조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설립되어 이 사건 주식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할 능력이 없는 명목상의 영리단체에 불과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이하 "상고심 판결").즉, 상고심 판결은 C의 설립지인 케이만 군도의 법령 내용과 단체의 실질에 비추어 C를 법인세법상 외국법인으로 볼 수 있는지를 심리하여 이 사건 양도소득에 대하여 C를 원천납세의무자로 하여 법인세를 과세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C의 투자자를 원천납세의무자로 하여 소득세를 과세하여야 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환송하여, 사실상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C라는 취지로 판시하였다(대법원 2013. 7. 11. 선고 2010두20966 판결). 2.파기환송심판결 및 대상 판결의 판시내용 이러한경위로 인하여,파기환송심에서는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C의 투자자가 아닌 C라는 점 자체에 관하여는 원?피고 사이에 다툼이 없었다.대신피고는상고심 판결의 취지에 따라, 당초 이 사건 처분에서 이 사건 양도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 즉,원천납세의무자를 C의 투자자로 보았다가,C로 달리하는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하였다. 이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는피고의 이와 같은 처분사유 추가?변경이 가능한지 여부가 새롭게 쟁점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파기환송심 판결은 "세목은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에 해당하므로 원천징수하는 세금에 관한 처분취소소송에서 과세관청이 처분의 근거 세목을 소득세에서 법인세로 변경하는 것은 처분의 동일성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4. 1. 10. 선고 2013누23272 판결).이에 대하여 피고가 재상고하였는데,대상 판결은 파기환송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세목은 부과처분에서는 물론 징수처분에서도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봄이 상당하므로,당초의 징수처분에서와 다른 세목으로 처분사유를 변경하는 것은 처분의 동일성이 유지되지 아니하여 허용될 수 없다"라고 판시하여 피고의 재상고를기각하였다(대법원 2014. 9. 5. 선고 2014두3068 판결). Ⅲ. 대상판결의평석 1.처분사유 추가?변경의 허용범위(='처분의 동일성'='납세의무의 단위') 과세관청은 원칙적으로 처분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세처분 취소소송의 변론종결시까지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할 수 있다(대법원 1989. 12. 22. 선고 88누7255 판결).여기서 '처분의 동일성'이란 과세단위또는 납세의무의 단위(이하 통틀어 '납세의무의 단위')를 말하고(대법원 1992. 7. 28. 선고 91누10695 판결), 이는 원천징수처분 취소소송에서도 다르지 않다(대법원 1999. 12. 24. 선고 98두16347 판결). 여기서 '납세의무의 단위'란,일반적인 행정소송에서 처분의 동일성의 한계로 논의되는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과 구분되는 세법 특유의 개념으로,강학상으로는 개인단위, 부부단위, 가족단위 등 인적 요소가 결합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물적 요소로서 조세채무의 확정에 있어서 세목, 과세기간, 과세대상에 따라 다른 것과 구분되는 기본적 단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관련하여 대법원은 ①자산소득의 합산과세를 규정한 구 소득세법의 취지에 관하여 세대단위로 담세력을관념하는 것이 개인단위별 과세보다 생활실태에도 합당하다고 판시하여 납세의무의 단위를 인적 요소로 이해하기도 하고(대법원 1983. 4. 26. 선고 83누44 판결 등), ②재산세 등의 과세대상인 주택은 1구를 과세단위로 하여 과세대상으로서 구분된다고 하여(대법원 1991. 5. 10. 선고 90누7425 판결) 이를 물적 요소로 파악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③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일정한 기간을 과세단위로 하는 세목이라고 판시하여(대법원 1996. 2. 23. 선고 95누12057 판결) 이를 시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사례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 동안 이 사건 처분과 같은 원천징수처분에서는 납세의무의 단위가 무엇인지, 특히 과세관청이 소송에서 처분 당시와 비교하여 원천납세의무자를 달리하는 내용의 처분사유 추가?변경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하여는 명시적으로 판단한 바는 없었다. 2.원천징수처분에서의 '처분의 동일성' 범위에 관한 판단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사건상고심 판결과 같은 날 선고된 대법원 2011두7311 판결은(이하 '비교판결')원천징수처분의 취소소송에서 원천납세의무자를 달리하는 내용의 처분사유 추가?변경이 처분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였다.즉,비교판결은 '원천징수하는 법인세에서 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수령자가 누구인지는 원칙적으로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는 전제에서, "원천징수하는 법인세에 대한 징수처분 취소소송에서 과세관청이 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수령자(=원천납세의무자)를 변경하여주장하더라도그로인하여소득금액또는수입금액지급의기초사실이달라지는것이아니라면처분의동일성이유지되는범위내의처분사유변경으로서허용된다"라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은, 비거주자 및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은 강학상 완납적 원천징수의 대상이 되는 소득으로서 원천징수법률관계는원천징수의무자와과세관청사이에만존재하고 원천납세의무자와 과세관청 사이에는 직접적인 법률관계가 없는 점(대법원 1984. 2. 14. 선고 82누177 판결 등),원천징수하는 소득세 또는 법인세는 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을 지급하는 때에 이미 납세의무가 성립하는 동시에 확정되기 때문에(국세기본법 제21조 제2항 제1호 및 제22조 제2항 제3호)'실질적인귀속자'로서 사후적으로 확정될 수밖에 없는 원천납세의무자는 애당초 확정된 세액의 기초사실을 판단하는 요소에 포함될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론적으로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3.대상판결의 문제점 (1) 쟁점 비교판결의 판시내용을 대상판결에서도일관하면, 일응피고가 원천납세의무자를 종전 "C의 투자자"에서 "C"로 달리하는 처분사유 추가?변경이 허용된다고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다만 이 사건과 비교판결 사이에 존재하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는 비교판결의 법리가 이 사건 처분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즉, 비교판결과 이 사건은 과세관청이 케이만 군도에 설립된외국법인(LP)와 그 투자자 중투자자를 주식양도소득의 실질적인귀속자로 보아 원천징수처분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다만, 비교판결에서는 과세관청이 당초 투자자를'법인'으로 보아 법인(원천)세를 원천징수처분한 반면, 이 사건 처분에서는 투자자를'개인'으로 보아 소득(원천)세를 원천징수처분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비교판결에서는과세관청이 원천납세의무자를 'LP의 투자자'에서 'LP'로 달리하는 처분사유 추가?변경을 하더라도, 세목이 여전히 법인(원천)세가 되어 기존 납세고지서상 세목[=법인(원천)세]과 일치한다. 반면 이 사건 처분에서는과세관청이 원천납세의무자를 'C의 투자자'에서 'C'로 달리하는 처분사유 추가?변경을 하게 되면 세목이 법인(원천)세가 되어 기존 납세고지서상 세목[=소득(원천)세]과 불일치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천납세의무자가 원천징수처분의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가 아니고,법인세나 소득세나 동일한 소득과세의 일환인 이상 , 그 소득의 실질 귀속자에 대한 판단이 달라져 그에 따라 처분사유를 변경함에 있어 원천납세의무자의 법적 형식에 따라 자동적으로 뒤따를 뿐인 세목 또한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로 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원고는 종전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9. 12. 24. 선고 98두16347 판결 및 대법원 2001. 8. 24. 선고 2000두4873 판결)를 들어, 세목은 엄연히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세목이 달라지는 경우에는 아무리 원천징수처분이라고 하더라도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이 허용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결국 파기환송심에서는 비교판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천징수처분의 경우'세목'이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이다. (2) 일반적으로 '세목'이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인가? 학설 중에는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로 통상 과세기간, 장소, 소득구분 등을 열거하면서 본세와가산세는 별개라는 점을 예로 들어(대법원 1992. 5. 26. 91누9596 판결) 세목을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라고하거나 ,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로서 세목이 가장 중요하다는 등의 견해가 있다 .우리나라 세법 중 소득에 대하여 과세하는 세목인 소득세 및 법인세를 생각해보면, 납세의무자의 법적 성격이 개인인지 법인인지 여부에 따라 세목이 소득세 또는 법인세로 달라지고, 이에 따라 각각 소득세법 또는 법인세법이 적용되어 과세표준의 산정방법, 세율 등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직접 납세의무자에 대한 과세처분에 있어서 세목은 일응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라는 점에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러나 [국가-원천징수의무자-원천납세의무자] 3자 간의 법률관계가 문제되는 원천징수처분에서도이러한 논리가 그대로 관철될 수 있는지는 이와 구분하여 깊이따져볼 필요가 있다.앞에서도 언급하였다시피,원천징수처분에서는 부과처분과는 달리 애당초 "원천납세의무자"와 과세관청 사이에는직접적인 법률관계가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3) 원천징수처분에서의"세목"이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인가? 대상판결은 "세목"이 부과처분에서뿐만 아니라 원천징수처분에서도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판시하면서도 따로구체적인 설명을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대상판결의 결론은 이론적인 측면에서나 실무적인 관점에서나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면,이 사건에서 처분사유 추가?변경으로 인하여 세목이 소득세에서 법인세로 달라지더라도, 원천징수처분에서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인 "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지급에 관한 기초사실" 즉, 원고가 E로부터 2005. 4. 15. 이 사건 주식을 매수하고 그 대가로 1,651,104,756,621원을 지급한 사실 그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소득세법이나 법인세법이나 모두 비거주자 또는 외국법인이 내국법인의 주식을 양도하여 얻은 소득에 대하여, 과세표준은 지급금액으로, 세율은 10%로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소득세법 제156조 제1항 제5호 및 법인세법 제98조 제1항 제5호),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으로 인하여 세목이 소득세에서 법인세로 달라지더라도 그 세액은 종전과 동일하다. 요컨대,이 사건에서는처분사유의 추가?변경에 따라 원천납세의무자가 C의 투자자에서 C로 달라지더라도 (법원에 의하여 실질과세의 원칙에 따라 사후적으로 확정된 원천납세의무자 및 그에 따른 세목을 제외하고는)원천징수의무를 발생시키는 이 사건 양도소득의 지급에 관한 기초사실,납세자(원천징수의무자),과세표준,세율,세액 중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이 점이 바로 납세의무자가 달라지면 납세자, 과세표준, 세율,세액이 모두 달라지는 부과처분과 확연히 구분되는 원천징수처분만의 특징이다. 또한 대법원이 발간한판례해설에 따르면, 일반 행정소송에서는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처분사유 추가?변경의 한계로 보는 반면, 조세소송에서는 '납세의무의 단위'를 처분사유 추가?변경의 한계로 설정함으로써 납세자의 소송상 방어권 보장보다는 분쟁의 일회적 해결을 더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납세의무의 단위'가'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보다는 그 범위가 더 넓은 개념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 대상판결과 같이 보게 되면 오히려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보다 '납세의무의 단위'를 더 좁게 보는 모순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대상판결이 과세관청의 처분사유 추가?변경으로 인하여 '기본적 사실관계'즉,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지급에 관한 기초사실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음에도불구하고 '납세의무의 단위'의 동일성은 부인함으로써, 분쟁의 일회적 해결보다는 납세자의 방어권 보장을 우선시한 결과를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자가 법원에 의하여 사후적으로 확정될 수밖에 없는 국제조세법률관계에서 분쟁의 일회적 해결보다 납세자의 방어권 보장을 우선할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실무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세조약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도 실질과세의 원칙이 적용되는 이상(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0두11948 판결), 과세관청이 원천징수처분을 하면서 일응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의 최종적인 귀속자라고 보아 지목한 원천납세의무자는,대법원이 실질과세의 원칙을 적용하여 최종적으로 누구인지 확정하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여 언제든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즉, 여러 나라에 걸쳐 이루어지는 투자관계에 대하여 과세하는 국제조세에서는 국내원천소득의 '실질적인귀속자'를 찾는 과정이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대법원 스스로도 비교판결에서법원에 의하여 사후적으로 확정되는 원천납세의무자는 원천징수처분에서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하여 처분사유 추가?변경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돌이켜 보면, 세목은 원천납세의무자의 법적 성격에 따라 기계적?자동적으로 정하여지는 요소일 뿐이다. 따라서 위와 같이 국제조세에서 원천납세의무자의 변경가능성이 유보되어 있는 이상, 그에 따른 세목 또한 얼마든지 변경될 것이 예정되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한편으로는원천징수처분에서 "원천납세의무자"가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가 아니라고 하면서, 다시 '세목'이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가 된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으로, 이는 모처럼 심도 깊은 이론적?실무적 검토 끝에 선고한 비교판결의 적용범위를 크게 훼손?잠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법원 입장에서 볼 때 비교판결 및 대상판결에서과세관청이 원천납세의무자를 LP가 아닌 LP의 투자자로 보아 원천징수처분을 한 것은 똑같이 위법한처분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대법원이,비교판결과 같이 C의 투자자를 법인으로 보아 당초 법인세로 원천징수처분을 한 경우에는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허용하고,대상판결과 같이 C의 투자자를 개인으로 보아 당초 소득세로 원천징수처분을 한 경우에는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불허하는 것은,원천징수처분 당시 (궁극적으로 원천납세의무자도 아닌) C의 투자자들의 법적 성격이 무엇이었냐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원천징수처분의 위법성을가르는 것이어서 부당하다. 더군다나 과세실무상 현실적으로 사모펀드의 최종투자자의 지분비율, 국적까지는 알 수 있어도 그 법적 성격이 개인인지 아니면 법인인지 여부까지는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은 (미국과 같이 법인과 개인의 세목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실질적인귀속자를새로 지정하여 과세할 수 있는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과세주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것으로서 비교법적으로나 조세정책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Ⅳ.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천징수처분에서 원천납세의무자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하여지는 세목은 납세의무의 단위를 구분하는 요소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파기환송심에서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취지에 따라 과세관청이 원천납세의무자를 C로 달리하는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하는 것은 당연히 허용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은 부과처분과 구별되는 원천징수처분 법률관계의 특성에 대한 심도 깊은 검토 없이, 스스로 선고한 비교판결의 의의를 크게 훼손하면서 부과처분에서의 논의를 원천징수처분에 기계적으로 적용하였다는 측면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또한국제조세에서 원천납세의무자는 사후적으로 얼마든지 변경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고, 이 사건은 E가 국내에서 이 사건 주식을 양도함으로써 국내원천소득이 발생하여 우리나라에 과세권이 존재한다는 점 자체에는 의문이 없는 사안임에도, 대상판결이 단지 세목이라는 과세처분의 형식만을 이유로 수백억 원에 이르는 과세권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글로벌 세수전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요즘, 다른 나라의 법원이라면 과연 어떤 판결을내렸을까?
2015-04-07
국가기관도 항고소송의 당사자 될 수 있나
1. 사실관계 및 쟁점 대상판결은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원고가 되어 '국민권익위원회'를 상대로 동 위원회가 경기도 선관위원장에게 한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항고소송의 사안이다. 원고가 취소를 구하는 처분은 피고가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국민권익위원회법') 제62조 제7항에 근거하여 원고에게 한 이른바 '신분보장조치요구 처분'이다. 대상판결의 이해를 위하여 국민권익위원회법이 정한 절차에 대해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다. 동법은 부패의 예방 및 부패행위의 규제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으로(제1조), 부패행위의 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규정을 두고 있다. 즉, 누구든지 동법에 따른 신고를 하였다는 이유로 당해 조직에서 징계조치 등 신분상 불이익을 받지 아니하고(제62조 제1항),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한 처분을 받은 경우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신분보장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으며(동조 제2항), 국민권익위원회는 신고 내용에 대한 조사 결과 그 내용이 타당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소속기관의 장 등에게 적절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으며(동조 제7항), 그와 같은 요구에 불응할 경우 과태료는 물론 형사처벌의 제재까지 규정하고 있다(제90조, 제91조). 위 사건의 경우 하남시 선관위 직원 A는 하남시 선관위가 K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절차의 처리과정에서 부패행위가 있었다는 취지로 피고 위원회에 신고하였다. 경기도 선관위는 동 사건과 관련하여 A가 TV 인터뷰 등에서 선관위의 입장과 다른 발언을 하였다는 사실 등을 이유로 A에 대한 징계요구 조치를 하였고, 피고 위원회는 A의 신분보장조치 요청에 따라 원고(경기도 선관위원장)에 대해 징계요구 조치의 철회를 명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는 그와 같은 조치가 부당하다며 서울행정법원에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항고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의 위 조치의 처분성 여부 및 국민권익위원회법의 해석 등과 관련하여서도 많은 쟁점들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법인격이 없는 국가기관인 경기도 선관위원장에게 항고소송의 당사자능력 및 원고적격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2. 소송의 경과 위 청구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원고는 국가의 산하기관에 불과할 뿐 항고소송의 원고가 될 수 있는 당사자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위 청구를 각하하였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은 "국가기관이 다른 국가기관에 대하여 한 조치라도 그것이 일반국민에 대한 행정처분 등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권리의무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조치의 위법성을 제거할 다른 법적 수단이 없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국가기관의 지위에서 그 조치를 한 국가기관을 상대로 법원에 소를 제기하여 다툴 수 있는 당사자능력과 당사자적격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고, 대법원도 그와 같은 결론을 긍정하였다. 3.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 판결은 법인격이 인정되지 않는 국가기관에 대해 항고소송의 당사자능력 및 원고적격을 인정한 최초의 판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기존의 판결 가운데 국가에 대해 항고소송의 원고적격을 인정한 사례는 있었지만, 법인격이 없는 국가기관에 대해 항고소송의 원고적격을 인정한 경우는 없었다). 다만 대상 판결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① 우선 위 판결의 사실관계를 보면, 법원은 위 사건의 특수한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여 예외를 인정한 것이지, 국가기관의 항고소송에서의 원고적격을 일반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국민권익위원회법에 의하면 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신고와 관련하여 신고자의 소속기관의 장에 대해 신분보장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그 불이행시 과태료 및 형사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까지도 가능함에도, 그와 같은 조치에 대해 아무런 불복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현행법상 국가기관이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 일정한 의무부담을 명하고, 그 불이행시 형사처벌까지 규정하면서도 이에 대해 아무런 불복방법을 규정하지 않은 경우는 아주 이례적인 것으로, 그와 같은 점이 위와 같은 판결을 불가피하게 한 주된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런 점에서 법원이 향후 다른 사례에서도 위 판결과 같이 국가기관에게 항고소송의 당사자능력 및 원고적격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의문이라고 생각된다. ② 다만 법원이 위와 같은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위 판결이 1회성의 판결에 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한다. 국가 내지 국가기관 상호간의 항고소송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그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실제로 기존 판결 가운데 국가기관이 아닌 국가에 대해서는 항고소송의 원고적격을 인정한 사례는 이미 있었다(서울행정법원 2009구합6391 판결,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또한 학설상으로는 행정소송법 제3조 제4호가 정한 기관소송 가운데 동일한 공법인 내의 기관간의 분쟁은 순수한 기관소송이나 법인격을 달리하는 기관간의 소송(가령 지방자치법 제169조 제2항의 소송, 지자체의 장이 주무부장관의 시정명령에 불복하여 대법원 제기하는 소송)의 실질은 항고소송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나아가 학설 가운데에는 행정소송법이 기관소송에 대해 법률이 정한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하여 이른바 '기관소송 법정주의'를 취한 것을 비판하고(행정소송법 제45조), 이를 개괄주의로 변경하여 기관소송을 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입법론상의 비판이 많은데, 위 판결은 그와 같은 비판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처럼 학설 및 판례는 이미 사인이 아닌 국가의 경우 항고소송의 당사자적격을 인정하고 있는 점, 현행법이 기관소송을 지나치게 좁게 인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존재하는 점 등에 비추어, 국가기관에 대해 항고소송의 원고적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는 앞으로도 꾸준히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③ 오늘날 사회현상 내지 사회구조는 날이 갈수록 복잡다단해지고 있으며, 사회의 발전을 반영하는 법현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와 같은 복잡성의 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사법의 준별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국가는 단일한 공권력 주체라는 근대국가 형성초기의 신념은 깨져가고 있으며, 주권국가 내부의 권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세분화/배분되는 과정에서 국가권력 내부의 다양한 층위에서의 이해충돌의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분쟁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필요성도 증가하고 있다(기관소송이나 권한쟁의심판도 그런 맥락에서 인정된 제도인데, 가령 독일의 경우에도 국가기관간의 권한쟁의심판제도가 인정된 것은 1949년 독일기본법이 처음이며, 1919년 바이마르 헌법도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분쟁에 관해서만 규정하고 있었을 뿐 국가기관 내부의 이해충돌은 오로지 정치적 힘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미 우리 대법원 판례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기본권의 대사인효를 인정함으로써 헌법상의 기본권은 더 이상 국가와 국민 사이의 관계만을 규율하는 규범이 아니고 기본권이 사법의 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날로 증대하고 있는 것처럼, 공법적 분쟁 역시 국가와 사인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혹은 공공단체 내부에서도 다양한 법률적 분쟁의 가능성 및 그에 대한 사법적 개입의 필요성 역시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좀 더 거시적인 시야에서 본다면, 본건과 같은 판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볼 여지도 없지 않다. ④ 다만 대상판결과 같은 예외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대상판결의 항소심 판결이 일응의 기준을 제시하였지만 여전히 다소 추상적인 측면이 있다), 혹은 이를 판례의 축적을 통하여 발전시킬지 아니면 기관소송 개괄주의의 도입과 같이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인지는 향후의 과제로 남는다. 대상판결은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2013-10-24
부부간 부양의무는 부모의 성년자 부양의무에 우선 하는가
<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 1968년생인 S(소외인)는 2006 경, 교통사고로 수술 받은 후, 2009. 현재,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동안 Y(피고, S의 처)는 S의 부양(치료)을 중단하게 됨에 따라, X(원고, S의 모, 상고인)는 S를 치료하여 오는 동안 치료비 1억6000여만원을 지출하여 왔다. 이에 X는 수령 보험금을 제외한 나머지 약 8000만원의 지급청구의 소송을 Y를 상대로 제기하였다. 1심과 2심법원은 X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X가 상고하기에 이르렀다. 2. 대판의 요지 : 파기환송; 민법 제826조 제1항에 규정된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로서, 부양을 받을 자의 생활을 부양의무자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보장하여 부부공동생활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1차적 부양의무이고, 반면 부모가 성년자녀에 대하여 직계혈족으로서 민법 제974조 제1호, 제975조에 따라 부담하는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자가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생활을 하면서 생활의 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부양을 받을 자가 그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그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2차적 부양의무이다. 이러한 제1차적 부양의무와 제2차적 부양의무는 의무이행의 정도뿐만 아니라 의무이행의 순위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제2차적 부양의무자는 제1차적 부양의무자보다 후순위로 부양의무를 부담한다. <판례연구> I. 머리 말 1. 이 판결에서의 논의점은 첫째,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성년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에 우선하는가. 둘째,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과거의 부양료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2. 본 논고는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제1차적 부양의무로서, 부모의 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보다 '부양의 순위면'에서 선순위이고, '부양의 정도면'에서 전자는 '혼인의 본질적인 의무'이고, 후자는 '보충적 부양수준'이란 점 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II. 부양의무의 구분과 제1차적 부양·제2차적 부양 1. 부양의무의 구분 ; 부양의무는 ①부부간의 부양(민법 제826조 제1항, 제833조), ②부모의 미성숙자양육(민법 제833조, 제837조), ③호주의 가족부양(1990. 1. 13 삭제, 구민 제797조 참조)과, ④부모의 성년자녀부양(민법제974조 제1호), ⑤직계혈족과 그 배우자간의 부양(민법 제974조 제1호), ⑥생계를 같이하는 친족간의 부양(민법제974조 제3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적부양의 전통적 2원형론(생활유지적 부양과 생활부조적 부양)의 입장에서는 전술한 ① 내지 ③의 부양은 생활유지적 부양·제1차적 부양으로, ④ 내지 ⑥의 부양은 생활부조적 부양·제2차적 부양으로 유형화 하고 있으며, 대상판결의 입장은 사적부양의 전통적 2원형론에 입각한 판시라고 이해된다. 2. 부부간의 부양의무를 제1차적 부양의무로 이해하는 근거 1) 부양관계의 비교: "부부부양과 미성숙자 양육"(전자)과 "성년의 자 부양, 친족부양"(후자)을 비교하면, (1) 부양근거 면에서는 전자는 '당사자의 의사·포태 출산행위'이고, 후자는 '혈연·친족적 신분'이라고 할 수 있다. (2) 부양의무의 발생시기 면에서는 전자는 '혼인성립시·출산시 당연발생'(대판,1994. 5. 13, 91스21)이고, 후자는 '권리자의 부양청구시'이다. (3) 부양의 정도·성격 면에서는 전자는 '같은 정도의 생활보장'-생활유지적 부양(제1차적 부양의무)이고, 후자는 부양의 자력요건 구비시, '생활의 지원'-생활부조적 부양(제2차적 부양의무)이라고 할 수 있다. (4) 민법상의 부양규정에서는 전자는 민법 제826조 제1항, 제833조, 제837조에서, 후자는 민법 제974조, 제975조,제976조, 제977조에서 각 규정하고 있다. 특히 판례는 성년의 자에 대한 부양은 자의 양육(민법 제837조)에 해당하지 않고, 민법 제974조 제1호, 제975조 내지 제977조 규정에 각 해당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판, 1994. 6. 2, 93스11). (5) 가사소송법규정에서는 전자는 마류사건 제1호와 제3호의 가사비송사건으로, 후자는 마류사건 제8호의 가사비송사건으로 따로 규정하고 있다. 2) 부부간의 부양과 미성숙자양육은 제1차적 부양이며, 부모의 성년자부양은 제2차적 부양으로 이해하는 것은, 상술한 ① 부양의 근거, ② 부양의무의 발생시기, ③ 부양의 정도·성격 면에서 서로 구별되고, ④ 민법상의 부양규정의 태도, ⑤ 가사소송법상 가사비송사건의 규정태도에서, 위 양자를 따로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기초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거나, 부부간의 상호부양의무는 혼인의 본질적인 의무로서 "부양법체계상 특별규정"이다. 이에 반하여 성년자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부양법체계상 일반규정"의 적용대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에, 부양의 본질 면에서나 특별법우선의 법리 면에서 전자는 선순위의 제1차적 부양이고, 후자는 후순위의 제2차적 부양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III. 대상판결에서의 논의점 검토 1. 배우자의 부양의무가 부모의 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에 우선여부; 원심은 배우자의 부양의무가 친족간의 부양의무보다 항상 우선한다고 볼 민법상의 근거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반하여 대상판결은 "부부간의 부양의무(제1차적 부양의무)와 부모의 성년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제2차적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이행의 '정도' 뿐만 아니라, 의무이행의 '순서'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제2차부양의무자(X)는 제1차부양의무자(Y)보다 후순위로 부양의무를 부담한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이와 같은 판시는 '부부간의 상호부양의무'는 위의 II의 2의 논거에서 설명한 것 같이,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로서, 요부양자의 생활을 지원하는 '보충적 부양의무'인 '부모의 성년자부양의무'에 우선한다는 전제에 입각한 판시이다. 이러한 판시는 전술한 II의 2에서 논술한 ① 내지 ⑤의 논거에 비추어 보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부부간의 동거·부양·협조의무"는 "광범위한 협조의무"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이는 독립된 별개의 의무가 아닌 점에서(대판,1991. 12. 10, 91므245)도,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친족간의 부양의무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판시부분은 타당하다고 이해된다. 2. 과거의 부양료 청구의 허용 여부; 1) 원심은 X의 구상금청구를 배척하였다. 판례는 과거의 부양료지급의무를 부정하여 왔다(대판 1991.10. 8, 90므781; 동,1991.11.26, 91므375; 동, 2008.6.12, 2005스50). 학설은 대체로 부부간의 과거의 부양료청구를 긍정하고 있다(김주수, 친상법, pp.139~142; 한봉희, 가족법, pp.126~127). 2) 대상판결은 부부간의 과거의 부양료청구는 가사비송사건이 아니고 민사소송사건에 해당하며, 그 액수는 원칙적으로 이행지체에 빠진 것이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행청구 이전의 과거의 부양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3) S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Y는 S를 실제 부양하기도 하였고 S가 계속 요부양상태에 있음을 알고 있으며, X가 S의 부양을 계속한 사실도 알았던 점 등에 비추어, Y는 S의 과거의 부양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이 판시부분은 X의 구상권행사를 인정한 것으로서, 과거의 부양료를 제한적으로 인정한 취지로 일단 이해는 된다 하겠다. 그렇지만 '부부간의 과거의 부양료청구'는 폭넓게 전면적으로 인정하여야 하지 않을까. IV. 맺는 말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혼인의 본질적 효과를 선언한 것으로서, 부양법체계상 '특별한 부양'으로 규정하고 있으며(민법, 제826조 제1항, 제833조), 따라서 '일반적 부양'에 해당하는 '부모의 성년자부양의무'에 우선적으로 이행되어야 함으로 이 판시는 타당하다.
2013-03-18
선박보험계약에서의 영국법의 적용범위
Ⅰ. 사실관계 가. 주식회사 신흥은 2006. 5. 23. 리스회사인 한국캐피탈로부터 이 사건 선박 등을 리스하고, 2006. 6. 2. 한화손해보험(주)와 피보험자 : 소유자(owner) 한국캐피탈, 관리자(manager) 피고, 보험기간 : 2006. 5. 26. 12:00부터 2007. 5. 26. 12:00까지, 보험목적물 : 선체 및 기관, 보험가액 : 16억2,000만원 등으로 정하고 1983년 협회선박보험약관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하는 선박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나. 이 사건 보험계약의 현상검사와 관련한 워런티 약관조항은 신흥(주)가 2006. 7. 2.까지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현상검사와 그에 따른 권고사항을 이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다. 신흥(주)는 2007. 5. 2.에 이르러서야 KOMOS(한국해사감정)으로부터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현상검사를 받았고, 한편 이 사건 선박은 같은 달 6월 목포항을 떠나 태안반도 인근 모래채취구역으로 예인되던 중 505 현성호와 충돌하는 1차사고를 당하였고, 그 후 같은 해 6. 27. 제2대양호와 충돌하는 2차사고를 당하였다. 라. 신흥(주)는 위 각 충돌사고로 이 사건 선박이 손상되자 200. 7. 3.부터 같은 달 20일까지 선박수리업자로부터 수리를 한 후, 2007. 7. 27. 한화손해보험회사에게 위 각 충돌사고로 인한 이 사건 선박의 수리비 1억7509만9100원에 상당하는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보험자는 신흥(주)가 2006. 7. 2.까지 현상검사를 받아야 하는 이 사건 워런티 조항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그 지급을 거절하여 소송이 제기되었다. Ⅱ. 대법원 판결요지 영국 해상보험법상 워런티(warranty) 제도는 상법에 존재하지 아니하는 낯설은 제도이고 영국 해상보험법상 워런티 위반의 효과는 국내의 일반적인 약관해석 내지 약관통제의 원칙에 비추어 이질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워런티라는 용어가 해상보험 거래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하더라도 해상보험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없거나 워런티에 관한 지식이 없는 보험계약자가 워런티의 의미 및 효과에 관하여 보험자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할 경우 워런티 사항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어떠한 불이익을 받는지에 관하여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위반 즉시 보험금청구권을 상실할 위험에 놓일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상실 사실조차 모른 채 보험사고를 맞게 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보험자는 보험계약자가 워런티의 의미 및 효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할 의무를 부담하고, 보험계약자가 해상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형 해운회사나 무역회사와 같이 해상보험계약의 전담부서에 전문가를 두어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험자의 별도 설명 없이도 워런티의 내용과 효과를 잘 알고 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험회사가 영국법 준거약관에 의하여 영국 해상보험법이 적용되는 워런티(warranty) 약관 조항을 사용하여 해상운송업자인 보험계약자와 선박에 관한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보험계약자가 일정 기한까지 선박에 대한 현상검사와 그에 따른 권고사항을 이행할 것을 워런티 사항으로 정한 사안에서, 보험회사가 워런티의 의미와 효과에 관하여 보험계약자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가 위 워런티 약관 조항의 의미와 효과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므로, 그 경우 위 약관 조항 전체가 처음부터 보험계약에 편입되지 못한다.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근래 156인의 판사들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 관한 성명서와 관련하여 사법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법원은 해상보험사건에 특유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해상보험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영국보험자협회의 해상보험약관에는 영국법준거조항이 삽입되어 있고, 해상보험관련 대법원판결 중 대법원 1991.5.14. 선고 90다카25314 판결을 비롯한 대부분은 대법원판결은 영국의 법률과 관습을 전면적으로 우리나라의 법원(法源)으로 인정하여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류적 판결과 다른 취지의 판결이 속속 판시되고 있다. "이 보험증권에 포함되어 있거나 또는 이 보험증권에 첨부되는 어떠한 반대되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보험은 일체의 전보청구 및 결제에 관해서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만 의한다"는 영국법준거조항이 삽입된 사건에서 대법원 1998. 7. 14. 선고 96다39707 판결은 "보험계약의 보험목적물이 무엇인지 여부에 관한 사항이나 보험자의 설명의무와 같은 보험계약의 성립 여부에 관한 사항"에는 우리나라의 법률이 적용된다고 하고, 대법원 2001. 7. 27. 선고 99다55533 판결은 "협회선급약관상의 표준규격선박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보험자인 원고에게 지체 없이 위반의 사실을 통지하고 보험료 등에 관하여 협의하여야 하며, 보험계약자가 계속담보를 받는 사유의 발생을 알았음에도 보험자에게 지체없이 이를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더 이상 계속담보조항에 따른 보험계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는 조항과 관련하여 설명의무의 대상이라고 보았다. 또한 대법원 2004. 11. 11. 선고 2003다30807 판결은 약관의 구속력의 근거에 관하여 의사설을 취하는 입장에서 전세계 선박보험실무에서 통용되고 있는 1982년 영국의 협회선박보험약관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하기로 하는 합의가 없다고 하고 상법 제703조의2는 제1호를 적용하였고(이 판결의 평석으로는 한창희, 해상보험약관의 구속력, 최기원편 상사편례연구(Ⅶ)), 박영사, 2007, 248면 이하 참조), 이 글의 연구대상판결인 해상보험상 난제인 워런티의 의미와 효과에 관하여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보험계약에 편입되지 못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 대상판결에 대하여서는 법원이 주류적 판결과 달리 약관규제법이 적용되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우리 법원에서 다루어지는 해상보험사건은 영국법준거지정 외에는 외국적 요소가 없는 순수 국내계약이어서 국제사법 제25조 제4항에 따라 약관규제법과 같은 우리나라 강행규정이 적용된다는 것을 근거로 볼 수 있다는 견해(석광현, 외국법제로의 과도한 도피와 국제사법적 사고의 빈곤, 법률신문 3926호)가 제시되고 있고, 국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해상보험분야에서 판결의 목적인 정의와 형평의 구현에 있어 글로벌 스탠다드인 영국해상보험법제와 우리법의 조정과 관련한 법원의 고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해상보험에서 전통적인 워런티개념의 현대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이에 비추어 이 판결의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 의미있는 작업일 것으로 판단된다. 2. 영국 보험법상 최악의 특징인 워런티의 개혁논의 워런티는 보험자가 워런티에 관한 사항을 알든 모르든 피보험자는 워런티를 정확히 지켜야 하고, 이를 위반하게 되면 그 사유와 시기와 관련 없이 보험자는 바로 그 시점부터 보험계약상의 일체의 책임을 면하는 것으로, 보험계약자의 주요관심사인 보장범위의 정확한 한계획정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하여 왔다. 그러나 (1) 워런티위반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요구되지 않고, (2) 워런티 위반이 있으면 손해발생 전에 그 위반이 교정되더라도 그 위반이 교정되어 워런티가 충족되었다는 항변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워런티의 효과의 지나친 엄격성에 대한 완화노력이 각국에서 행해지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의 법원(法源)으로서의 지위가 인정되는 영국법과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살펴본다. 가. 영국 영국에서는 소비자보험의 영역에서 워런티의 효과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법률개정위원회는 수년간의 검토를 거쳐 워런티가 중요한 위반이 아닌 한 워런티로 분류되어서는 아니되고, 그 위반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한 워런티위반을 이유로 보험금지급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권고하고, 나아가 보험계약자에게 서면으로 워런티의 내용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받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보험자는 워런티위반을 이유로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금융감독청의 보험영업행위준칙(ICOBS) 제8.1.2조는 워런티위반과 손해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한 보험자는 보험금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보험인 해상보험영역은 보험영업행위준칙이 적용되지 않지만, 소비자보험의 변화에 상당한 정도 영향을 받고 있고, 2003년 국제선박보험약관은 위반하였더라도 치유가 허용되는 조항(제10·11·32조), 위반과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만에 대해서만 면책으로 하는 조항(제14조 제3항) 등을 두어 1906년 영국해상보험법상의 워런티의 엄격성을 완화하고 있다. 나. 미국 미국은 해상보험분야는 연방법원의 관할이고 연방 해상보험법은 제정되어 있지 않으며, 해상보험에서 영국법의 적용범위와 관련하여 연방대법원의 1955년의 Wilburn Boat사건 이전에는 영국법원의 판례가 미국법원에 의하여 선례로 인정되었지만, 이 판결 이후에는 주법의 적용이 가능해졌지만, 주마다 통일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Wilburn Boat사건판결에 대하여 튜레인 대학교의 데이비스 교수는 "해상법의 전국적 통일에 역행하는 매우 잘못된 판결"이라고 하고, 그랜트와 블랙(Grant and Black)은 "일관되게 문제가 있고 환상에 젖은 것"이라고 하였으며, 커리(Currie)는 불만족스러운 판결이라고 하였다. 3. 선박보험사건에 영국법의 적용범위 이 연구대상판결은 1982년 영국의 협회선박보험약관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하기로 하는 합의가 없다고 하여 약관 전체 조항의 편입을 부정한 대법원 2004. 11. 11. 선고 2003다30807 판결 이후 5년만의 해상보험관련 대법원판결로 워런티가 해상보험거래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워런티의 의미와 효과에 대하여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의 대상인 중요한 사항이고, 보험계약자가 해상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형해운회사나 무역회사와 같이 해상보험계약의 전담부서에 전문가를 두어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설명의무의 제외대상인 워런티의 내용과 효과를 잘 알고 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다. 우리판결에 따라 워런티에 관하여 법원(法源)의 지위가 인정되는 영국 해상보험법상 우리의 약관규제법에 해당하는 불공정계약조항법(Unfair Contract Terms Act)은 보험약관에는 적용이 없고, 기업보험인 해상보험에는 설명의무나 워런티의 엄격성을 제한하고 있는 영업행위준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연구대상판결은 상법에 존재하지 아니하는 낯설은 제도인 영국해상보험법상의 워런티의 효과를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를 적용하여 구체적인 타당성을 구현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석광현교수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영국의 해상보험법을 전면적으로 우리의 법원(法源)으로 인정하던 대다수의 판결방향을 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수정하고 있고, 미국의 Wilburn Boat사건이후 나타나고 있는 법적 안정성의 파괴로 인한 혼란이 우려된다. 5년의 간격을 두고 대법원은 두 판결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의 해상보험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약관의 구속력의 근거와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에 대하여 영국법이 아닌 우리 법을 적용하고 있지만, 해상보험의 국제성에 비추어 옳다고 할 수 없고, 너무 안이하였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4. 맺음말 워런티는 영국 해상보험법상 가장 매력없는 개념으로 전세계에서 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항에서 이 연구대상판결이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를 적용하여 워런티의 엄격성을 완화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는 점에서 법원의 고심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의 지위가 인정되는 영국해상보험법상의 워런티의 효과를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의 대상으로 본 것은 해상보험의 국제성에 반하는 것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해상보험의 국제성과 우리사법(司法)인프라의 미비라는 점을 유념하여야 하지만, 판결의 목적이 정의와 형평의 구현을 위한 구체적 타당성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해상보험에서 영국법과 우리법의 조정은 향후에도 해상보험을 연구하는 학계와 실무계가 풀어야할 어려운 과제라고 판단된다.
2012-02-20
납세자에 대한 신의칙 적용에 관해
I. 일반론 - 세법상 신의성실의 원칙 국세기본법(이하 '국기법') 제15조는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에 관한 규정으로, 일반적으로 이른바 '금반언 원칙'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과세관청이나 납세자가 일정한 언동(이하 '선행언동')을 한 후 이를 뒤집고 다른 언동(이하 '후행언동')을 한 경우 실체적 진실 또는 '실질'에 부합하는 후행언동과, 부합하지 않는 선행언동 중 어느 것에 따라 세법상의 법률효과를 부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원칙으로 운용되어 왔다. 이러한 신의칙을 과세관청에 대하여 적용하는 것은 행정법학에서 흔히 '신뢰보호 원칙' 또는 '확약의 법리'로 불리는 경우의 한 예에 불과하다. 반면 '납세자에 대한 신의칙 적용'(이하 '납세자 신의칙 적용')이란, 납세자의 후행언동이 '실질'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세법의 적용에 있어서는 납세자의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하여 후행언동의 존재를 무시하고 선행언동을 근거로 과세하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국기법 제15조를 하나의 일반적 과세근거로 보는 것과 같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종래 논란이 되어 왔던, 실질과세 원칙에 근거하여 민사법상 유효한 법률행위의 존재를 무시하고 세금을 물릴 수 있는가의 문제와, 신의칙에 근거하여 '실질'에 부합하는 후행언동의 존재를 무시하고 세금을 물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같은 차원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II.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1. 사실관계 (1) '실질': 갑은 강제집행면탈 목적으로 자신이 대주주 겸 대표이사인 을 회사 소유의 부동산을 2001.11. 처남인 원고에게 명의신탁하였으나, 그 후에도 을 회사는 위 부동산을 종전과 같이 사용하였으며 이를 위해 갑과의 임대차 계약 체결을 가장하였다. (2) 원고의 선행언동: 명의수탁자 원고는 자신이 위 부동산을 임대업에 공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과세관청 피고에게 부동산임대업 등의 사업자등록을 신청한 후, 위 부동산을 을 회사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가장하고 그 매입세액 상당액을 2001년 제2기 부가가치세 표준에서 공제하여, 결국 2억 3천만 원이 넘는 세액을 환급 받았다. 대신 원고는 을 회사로부터의 임대료 상당액에 대하여 2003년 제2기까지 부가가치세를 신고납부하였다(다만 원심 대전고판 2006.8.24. 96누314에 따르면 실제 세금을 부담한 것은 을 회사였다). (3) 원고의 후행언동: 2004년 제1기 부가가치세로 신고한 금액 중 일부를 납부하지 않은 원고에게 피고가 미납세액의 징수고지를 하자 원고는 2004년 제2기에 와서 아예 폐업 신고를 하였다. 다시 피고는 이른바 '폐업시 잔존재화 자가공급 의제규정'(부가가치세법 제6조 제4항 전문)에 근거, 위 부동산을 원고가 시가로 '공급'한 것으로 보아 관련된 부가가치세 1억 1천만 원을 원고에게 부과하는 내용의 처분을 하였다(이하 '본건 과세처분'). 이에 대하여 원고는, 위 부동산은 명의신탁된 것이고 을 회사와의 임대차 계약도 가장행위에 불과하여 원고 스스로 부동산임대업을 영위한 바 없기 때문에, 결국 원고에게 위 공급의제 규정이 적용될 수 없어 본건 과세처분은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본건 과세처분에 불복하였다. 2. 원심 판결의 내용 원심 법원은 납세자 신의칙 적용과 관련된 대법원 판례(아래 3.항 참조)를 전제한 후 위 1.항의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 원고의 선행언동이 '피고의 실지조사권을 방해하여 조세과징권의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은 아니고 따라서 원고의 후행언동이 '심한 배신행위'에 해당하지는 않으며, 특히 실지조사권이 있는 피고는 본디 해당 사안의 '실질을 조사하여 과세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므로 피고가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본건 과세처분을 한 이상 선행언동에 대한 피고의 신뢰에 보호가치가 있다고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결국 원심 법원은 원고의 후행언동이 신의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아 본건 과세처분을 취소하였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일반론으로서, 납세자 신의칙 적용은 '조세법률주의에 의하여 합법성의 원칙이 강하게 작용하는 조세실체법과 관련한 신의성실의 원칙의 적용은 합법성을 희생해서라도 구체적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적용된다고 할 것인바, 납세의무자에게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모순되는 행태가 존재하고, 그 행태가 납세의무자의 심한 배신행위에 기인하였으며, 그에 기하여 야기된 과세관청의 신뢰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였다(확립된 판례이다). 이어 대법원은 원심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더라도 이러한 '사실에 나타난 원고의 모순된 언동과 그에 이르게 된 경위 및 비난가능성의 정도, 이 사건 2004년 제2기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의 성격과 피고의 신뢰에 대한 보호가치의 정도, 부가가치세 등과 같이 원칙적으로 납세의무자가 스스로 과세표준과 세액을 정하여 신고하는 신고납세방식의 조세에 있어서 과세관청의 조사권은 2차적·보충적인 점 등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본건 과세처분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부동산임대업 영위는 가장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 위반이라고 보아, 본건 과세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III. 평석 1. 쟁점의 정리 원고가 부동산임대업을 실제로 영위하지 않아 부가가치세법상 납세의무자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고에 대한 본건 과세처분이 국기법 제15조의 적용요건을 충족한다는 이유로 결국 적법한 것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이 사건의 쟁점이다. 2. 신의칙 적용 제한에 관한 검토의 필요성 이 쟁점에 관한 대법원 판례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지만, 실제로 과세처분을 유지하는 결과가 나온 경우로서 공간된 것은, 대상판결 전에는 1990년의 어느 한 사건이 유일하다(대판 1990.8.24. 89누8224). 대법원이 분식회계에 대하여 납세자에게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는 등(대판 2006.1.26. 2005두6300) 비교적 최근까지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가 계속되어 왔으나, 2009년 대상판결 선고에 이어 심지어 조세심판원이 대상판결의 취지를 다른 세목에도 확장하는 재결을 하는 등(조세심판원 2010.6.7.자 2009전2367 결정은 신의칙을 근거로, 과세관청이 위 원고에게 임대 수입에 관한 종합소득세를 부과한 처분까지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최근 이 쟁점에 관한 실무의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납세자 신의칙 적용이란 결국, 본질적으로 불확정개념인 '신의칙'의 적용에 따라 세금의 부과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조세법률주의를 최고의 지도원리로 삼고 있는 현재의 이론 체계 하에서는, 이에 대한 일정한 제한 원리를 세울 필요가 있다(조세법률주의 개념에 대한 최근의 이론적 비판은 여기서는 이 글의 목적상 논외로 한다). 3. 금반언 원칙으로서의 신의칙 적용에 관한 제한 가능성 (1) 이론적 문제점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반언 원칙으로서의 신의칙을 납세자에 적용하는 것은 신의칙 적용이 없었더라면 납세의무가 없을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 논리적인 근거는 아마도 상법 제24조가 정하는 명의대여자의 연대납세의무나, 보다 일반적으로 민상법에서 인정하는 표현책임 -민법 제125조 이하의 표현대리나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의 책임 등- 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납세의무자가 존재하는 경우에 신의칙의 적용은 마치 국기법의 연대납세의무나 제2차 납세의무와 같은, 납세의무의 인적 확장에 유사한 결과를 낳는다. 이와 같이 납세자에 대한 신의칙 적용이 개념적·논리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고 할 것은 없다. 그러나 위의 연대납세의무나 표현책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납세의무의 확장에 관하여는 분명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며, 특히 이러한 필요성은 세법의 영역에서 더 현저하다. 조세법률주의의 핵심은 납세자의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과세요건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 반드시 법률에 명확한 내용으로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국기법 제15조만으로는 도저히 그러한 요구가 충족되었다고 하기 어려우며, 그렇다고 그 하위 법령에 어떤 구체화된 세부적 적용 기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국기법 제14조 실질과세 원칙에 관한 대법원 판례(종래 자주 인용되어 오던 것으로서 대판 1991.5.14. 90누3027과 이를 재확인한 최근의 대판 2009.4.9. 2007두26629 등)와 비교하여 보면 이러한 문제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즉 대법원은 실질과세 원칙과 관련하여서는 이 법원칙이 구체적 과세의 근거가 될 수는 없으며, 조세회피 행위를 부인하고 과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별적·구체적 과세근거 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 그렇다면 유독 신의칙과 관련하여 국기법 제15조만에 의하여 과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일관성이 없다. 따라서 기존의 판례나 이론체계와의 조화를 고려하는 이상 그 동안 대법원이 취하여온 소극적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나, 반면 1990년 이후 최초로 이러한 과세를 긍정한 대상판결의 입장에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이론적 문제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2) 신의칙 적용의 기준 어쨌든 현실적으로 신의칙 적용에 따른 과세를 긍정하는 대법원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은 당분간은 없는 듯하다. 따라서 이 원칙이 다시 논란이 되기 시작한 현재로서는, 그 적용의 범위나 요건을 분명히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문제되는 것은 이 원칙의 적용요건으로서 대법원이 제시하고 있는 '심한 배신행위'라든지 '보호가치'와 같은 개념이 너무나 불명확하고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낳는다는 점이다. 이 요건들이 지금까지와 같이 단순히 이 원칙의 적용을 사실상 배제하는 방향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의칙 적용을 가능하게도, 불가능하게도 하는 의미를 갖는다면 이러한 점은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조금 다른 기준들을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1) 선행언동으로 인한 결과의 원상회복 문제 납세자 신의칙 적용에 관한 현재의 판례를 확립한 대판(전) 1997.3.20. 95누18383의 소수의견은, 납세자가 적어도 과세처분 취소소송의 사실심 변론 종결시까지는 선행언동의 결과를 스스로 제거(즉 '원상회복')을 하거나 아니면 선행언동에 따른 과세를 당하거나를 양자택일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 결과이며, 따라서 원상회복이 없으면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견해는 무엇보다 그 적용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으며, 세금과 관련된 분쟁의 공평한 해결이라는 측면에서도 일단 수긍할 수 있는, 비교적 균형 잡힌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판결의 다수의견은 사실심 변론종결 후의 원상회복을 고려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였으나, 이른바 후발적 경정청구(국기법 제45조의2 제2항)가 인정되고 있는 현행 법제 하에서는 이러한 지적이 문제될 여지도 작아졌다. 2) 선행언동이 세금과 관련된 것인지 여부 다음으로 선행언동의 동기를 따지는 방법이다. 즉 선행언동이 세금과 전혀 무관한 혜택을 얻을 의도에서 행하여진 것이라면, 세금을 동원하기보다는 그 다른 혜택과 관련된 법령에서 정하여진 제재에 의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대로 선행언동으로 세금 관련 혜택을 얻은 것이라면, 이때는 세금을 신의칙 위반 행위에 대한 하나의 '제재'로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물론 세금에 관한 종래의 혜택을 박탈하고 가산세를 부과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부과제척기간 적용 등의 이유로 이러한 대처가 불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신의칙에 따른 과세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이는 상증법 제45조의2 증여의제 규정의 해석론에 유사하다). 3) 대상판결과의 관련 이들 중 어느 쪽으로 보나 대상판결의 결론 자체는 정당화된다. 즉 이들 기준들은 현재 대법원의 입장과 크게 다른 결과를 낳지 않는 반면, 그러한 결과에 도달함에 있어 현재의 판례보다 훨씬 더 명확한 판단기준을 제공한다. 물론 해석론으로 이와 같은 구체적인 적용기준을 도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이는 무엇보다 신의칙에 따라 과세 여부를 결정하는 대법원의 입장 자체에 근본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드러낼 따름이다. 4. 금반언 원칙을 넘어선 신의칙 적용의 가능성에 대한 제한 금반언 원칙에서 더 나아가, 신의칙이 납세자의 사회통념상 용납되지 않는 행위 일반에 적용되어, 국기법 제15조에 따라 납세자에게 세금과 관련된 불이익 -예컨대 소득 없는 사람에게 소득세를 부과하거나 세액계산 과정에서 특정 조문의 적용을 배제하는 등 세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세법을 해석- 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제시될 여지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과세 역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우선 국기법 제15조가 독립된 과세근거가 될 수 없다는 앞에서의 논의는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러한 의미에서 물리는 세금은, 표현책임 등과 같은 기존의 다른 개념으로도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고, 순수하게 신의칙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로 밖에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법치행정의 원리상 이러한 제재의 부과에 대하여는 역시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세가 혹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적용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보충적으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항상 우선되어야 한다. 즉 신의칙에 위반된 납세자의 행위에 대하여 법령에 형벌이나 행정벌, 가산세 등 별도의 제재에 관한 규정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입법자가 그러한 유형의 행위를 미리 예견하고 그에 대하여 법질서 보호를 위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제재를 사전에 마련하여 둔 경우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입법자가 정한 바를 넘어 과세관청이나 법원이 구체적 근거 규정 없이 납세자에게 세금과 관련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조세법률주의는 물론) 입법자의 의도에도 어긋나는 것이 된다(이태로·안경봉, 조세법강의(제4판), 2001, 37쪽 역시 납세자가 신의칙 위반 행위로 조세법상 각종 불이익한 처분을 받게 된다는 점을 들어, 이러한 신의칙 적용은 '사실상 극히 제한'된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금반언과 무관한 신의칙의 납세자에 대한 적용은 (혹시 가능하다 고 보더라도) 어디까지나 보충적인 것으로서, 납세자의 행동이 국고의 일실을 결과하고 이러한 일실의 결과가 정의에 현저히 어긋날 뿐 아니라, 특히 입법자가 미리 마련하여 놓은 제재가 전혀 적용될 수 없어 신의칙 적용이 이에 대응할 유일한 수단인 경우에 한하여 가능하다고 하여야 한다(물론 비례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과 같은 공법상의 일반 원칙들의 적용도 받는다). IV. 대상 판결에 대한 평가 및 결론 기존의 판례나 이를 전제로 한 논의 하에서 대상판결의 결론은 대체로 타당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혹시 이 판결의 취지가 신의칙 위반에 대한 과세의 범위를, 우리 세법 체계에 조화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넓히는 방향으로까지 작용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이 점에서 최근의 조세심판원 결정에는 우려되는 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행정부의 과세권 행사에 입법부의 구체적 권한 부여(즉 법률의 근거 규정)가 필요하다고 보는 체계를 갖고 있는 경우, 납세자의 행위가 신의칙에 위반되었다는 막연하고 불확정한 이유만으로 행정부나 법원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무제한 허용하는 것이 곤란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의칙의 구체적 적용범위 제약을 위한 논의는 앞으로도 활발하게 이어져야 할 것이다.
2010-10-11
국제항공운송사고로 인한 손해배상과 국제사법적 사고의 빈곤
Ⅰ. 사안의 개요 피고(중국국제항공공사)는 한국에도 영업소를 둔 중국 법인으로 이 사건 항공기의 운송인이고, 한국인인 망 A, 그 자녀들인 망 B와 C('망인들')는 출발지를 베이징, 도착지를 부산으로 하는 항공운송계약을 피고와 체결하고 항공기에 탑승했다. 항공기는 2002. 4.15. 베이징을 출발하여 김해공항에 착륙 시도 중, 항공기의 꼬리부분에서 부는 바람(배풍)의 강도가 커서 선회비행 시 활주로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면 즉시 이를 중단하고 고도를 높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선회비행을 계속하다가 김해공항 부근 돗대산 중턱에 부딪혀 추락했다. 망 A의 모이자 망 B와 C의 외조모인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망인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단독 상속인으로서 손해배상을 청구함과 동시에, 유족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Ⅱ. 각급 법원의 판단 1. 1심판결 1심판결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은 한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사고에 관하여 항공여객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이므로 국제사법(제32조)에 의하여 한국법이 적용된다. 또한 한국은 1967년 1월 '1929. 10.12.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의 통일에 관한 협약('바르샤바협약')을 개정하기 위한 의정서'('헤이그의정서')에 가입했으므로 바르샤바협약은 헤이그의정서에 의하여 개정된 내용대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개정협약'), 국제항공운송에 관한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일반법인 민법에 대한 특별법으로 우선 적용되는데 중국도 바르샤바협약에 미가입한 채 헤이그의정서의 체약국이 되었고, 이 사건 항공운송계약은 헤이그의정서가 적용되는 국제항공운송이므로 이 사건에는 개정협약이 적용된다. 피고는 자신 및 그 고용인 또는 대리인들이 사고 발생을 방지하기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거나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점에 관하여 주장·입증이 없으므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망인들과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피고는, 개정협약(제22조 제1항)에 따른 책임제한(승객당 250,000 프랑스 골드프랑)을 주장하나, 사고경위에 비추어 기장 등의 행위는 '무모하게 그리고 손해가 아마 발생할 것이라는 인식으로써 행하여진 것'이므로 책임제한규정을 원용할 권리가 없다(제25조). 2. 원심판결 원심판결도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보았으나 개정협약은 언급하지 않았다. 3. 대법원판결 대법원판결은 준거법을 논의하지 않았다. 대법원판결은 항공기사고로 인한 불법행위의 경우 통상의 교통사고와 달리 위자료 산정에 있어 참작할 특수한 사정이 있음을 강조하고, 사실심 법원은 그 사정도 함께 참작하여 직권에 속하는 재량으로 위자료 액수를 정해야 하는데, 원심은 재량의 한계를 일탈했다는 이유로 원심판결 중 위자료에 관한 원고 패소부분을 파기했다. 이는 원고의 청구를 불법행위로 성질결정하고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본 것이다. 준거법이 중국법이면 위자료 산정도 중국법에 의하는데 중국 최고법원의 해석에 따르면 사망자 본인의 위자료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서울고등법원 2009. 6.19. 선고 2006나30787 판결).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대상판결은 모두 한국법을 적용하여 위자료를 포함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이 결론은 정당화될 여지도 있지만 논거는 의문이다(논거가 없는 대법원판결 제외). 이하 ① 청구원인 ② 개정협약의 적용근거와 ③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위자료 등)와 범위의 준거법을 살펴본다. 2. 청구원인에 관한 논점 가. 청구원인 항공운송사고에서 피해자(또는 그 상속인)는 청구원인으로서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을 선택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다만 판결문상으로는 청구원인이 애매하다. 왜냐하면 1심판결과 원심판결은 "이 사건은 … 항공여객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고 있는 사건"이라고 판시하고, 나아가 "… 피고는 위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 망인들 및 원고가 입은 손해를 …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으며, 원심판결은 결론에서 '불법행위일'이라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1심판결과 원심판결이 불법행위의 연결원칙을 정한 국제사법 제32조만을 언급하므로 불법행위책임을 다룬 것으로 보이고, '항공기사고로 인한 불법행위의 경우'라는 설시를 보면 대법원판결도 같다. 계약관계가 없는 원고가 유족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근거는 불법행위책임이다. 나. 청구원인과 준거법 국제사법상 청구원인은 준거법 결정 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불법행위의 준거법은 국제사법 제32조에 의해, 계약의 준거법은 제25조에 의해 결정된다. 양자의 준거법이 다르면 청구권경합 여부의 판단이 어렵다. 1심판결과 원심판결이 채무불이행책임에도 제32조가 적용되는 듯이 설시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책임을 묻든 이는 개정협약이 정한 조건 및 제한 하에서만 허용되므로(제24조 제1항. 대법원 1986. 7.22. 선고 82다카1372 판결), 준거법 결정의 실익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개정협약이 손해배상책임의 모든 측면을 규율하는 것은 아니고, 아래에서 보듯이 승객의 사망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을 규율하지 않으므로 그의 준거법 결정은 실익이 있는데 이는 계약책임인가 불법행위책임인가에 따라 다르다(개정협약 제17조는 독자적 청구기초를 창설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3. 개정협약 적용의 근거 조약의 적용범위를 정한 규정은 조약의 적용범위를 정함과 동시에, 법정지 국제사법에 대한 특칙이다. 그 한도 내에서는 조약이 국제사법에 우선한다. 즉 어떤 항공운송계약이 개정협약이 규율하는 국제항공운송계약에 해당되면 우리 국제사법의 연결원칙에 우선하여 개정협약이 적용된다. 이 사건에 개정협약이 적용되는 것은 그 요건이 구비되기 때문이지 불법행위(또는 계약)의 준거법이 한국법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1심판결(원심판결과 대법원판결은 아님)은 준거법이 한국법이라고 본 뒤 이어서 개정협약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혹시 준거법이 한국법이면 한국이 가입한 조약이 적용되고, 준거법이 외국법이면 그 외국이 가입한 조약이 적용된다고 본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이 사건에서 한중 모두 개정협약의 당사국이므로 실익은 없다). 왜냐하면 과거 개정협약에 가입한 한국과 바르샤바협약에 가입한 미국 간 국제항공운송에 개정협약을 적용한 대법원 판례(위 대법원 82다카1372 판결 등)의 이론적 근거로서 그런 견해가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한국법이 준거법인 경우 한국이 가입한 조약이 국내법에 대한 특별법으로서 적용되자면 그것이 조약의 적용범위에 속할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다만 이는 1999년 3월 미국에서 몬트리올 추가의정서(No. 4)의 발효로 해소되었다). 4. 항공운송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 국제사법(제32조)상 불법행위의 준거법은 불법행위의 요건과 효과를 규율한다. 그에는 불법행위능력, 위법성, 인과관계, 귀책사유, 손해배상청구권자, 청구권의 양도가능성과 상속가능성, 손해배상의 방법, 종류, 범위, 금액과 금지청구권 등이 포함된다. 가. 개정협약의 규정 바르샤바협약은(개정협약도) 국제항공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의 모든 측면을 규율하지는 않는다(제21조, 제22조 제1항, 제25조과 제28조 제2항은 법정지법에 의할 사항을 명시한다). 다만 제24조 제2항의 해석은 논란이 있다. 왜냐하면 "제18조 및 제19조에 정하여진 경우에는, 책임에 관한 소는 명의의 여하를 불문하고 본 협약에 정하여진 조건 및 제한 하에서만 제기할 수 있고"(제24조 제1항), "전항의 규정은 제17조에 정하여진 경우에도 적용된다. 다만 소를 제기하는 권리를 가진 자의 결정 및 이러한 자가 각자 가지는 권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제2항) 때문이다. 즉 바르샤바협약은(개정협약도) 승객의 사망 또는 신체상해로 인한 손해에서 손해배상청구권자와 손해배상의 종류, 범위 등을 규율하지 않는데, 이는 항공사에 대해 누가, 어떤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는지는 규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규정한 이유는 1929년 당시 많은 국가에서, 특히 영미법계국가에서 승객 사망 시 손해배상규칙이 발전하지 못했고 있더라도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나. 개정협약상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의 준거법 따라서 개정협약상 승객의 사망 또는 신체상해를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청구를 하는 경우 위 사항들(이 사건에서 망인들과 원고의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의 준거법이 문제된다. 그것이 법정지법에 의한다는 점은 널리 승인되나 법정지법이 국제사법인지 실질법(민법 등)인지는 세계적으로 논란이 있다. ①설(법정지 국제사법설): 이는 법정지 국제사법을 적용하여, 협약이 없었더라면 적용되었을 준거법에 의한다. 법정지가 한국이면 불법행위의 연결원칙을 정한 국제사법(제32조)에 의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지도적인 Zicherman v. Korean Air Lines 사건 판결(516 U.S. 217, 229 (1996))은 이를 명시했고 동경지재 1997. 7.16. 판결도 같다(양자는 결국 자국법을 적용했다). 양자는 1983. 9.1. 자행된 구 소련의 야만적인 KAL 007기 격추에 기초한 사건이었다. 그 논거는 개정협약은 일부규칙만의 통일을 의도하는 점과,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은 실무상 중요하므로 ②설을 취할 의도라면 제24조 제2항에서 그를 명시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②설을 따르면 법정지와 사건 간의 관련성이 희박할 수 있고 법정지쇼핑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②설(법정지 실질법설): ②설의 논거는, 국제항공운송계약에 대해 국제사법에 의해 결정된 준거법을 적용하는 데 따른 법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국제적 통일규범을 제정하려는 바르샤바협약의 근본목적에 있다(Mankiewicz). 이는 제24조 제2항이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을 묵시적으로 법정지법에 회부했다고 본다(독일은 바르샤바협약시행법률(DGWB) 제1조에서 독일 항공운송법을 적용하도록 입법적으로 해결했고 영국도 같다). 이는 법적용이 쉽고, 동일 법정지에 제소된 사건에 동일한 실질법을 적용하는 장점이 있다. 별 논의는 없지만 한국에도 ②설이 있고(김두환, 김종복), 1989년 리비아 트리폴리공항 부근 KAL기 추락사고에서 서울민사지법 1993. 1. 15. 선고 91가합55778 판결도 ②설을 취한 것 같다. 생각건대 개정협약의 취지상 ②설이 옳아야겠지만 문언상 ①설이 설득력이 있다. 더욱이 개정협약이 연결원칙을 두지 않으면 일반원칙에 의해야 한다. 문제는 ①설의 경우 망인들(원고는 아님)의 손해배상청구를 계약책임에 종속적으로 연결할지(국제사법 제32조 제3항) 여부이다. 특정국가의 법이 운송계약의 준거법이면 종속적 연결을 하겠지만, 계약이 분열되어 일부는 특정국가의 법에, 다른 일부는 조약에 따를 경우 긍정설(①-1)과 부정설(①-2)이 가능하다. ①설의 경우 준거법이 외국법이면 반정(renvoi)이 문제되나 종속적 연결 시 이는 배제된다. 이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준거법을 다투지 않았다면 준거법의 사후적 합의(국제사법 제33조)를 인정할 수도 있다. 입법론으로는 독일식 해결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피해자가 계약책임을 묻는다면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은 계약의 준거법에 의한다. 2007년 12월 한국에서 발효된 1999년 몬트리올협약(제29조)은 개정협약(제24조)을 수정하여 계약책임과 불법행위책임에 몬트리올협약이 적용되고 제24조 제2항의 예외가 수화물 및 화물손해에도 적용됨을 명시하고, 징벌배상을 배제하나(개정협약상 징벌배상을 배제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위 쟁점은 몬트리올협약에서도 여전히 문제된다. 어느 견해든 법정지가 중요하므로 국제재판관할을 정한 개정협약(제28조 제1항)을 주목해야 하는데 몬트리올협약(제33조)은 제5관할을 추가했다. 다. 대상판결의 태도 대상판결은 모두 한국법을 적용하였으므로 결론은 ②설과 같다. 하지만 대상판결(대법원판결 제외)은 불법행위지법으로서 한국법을 적용했으므로 ②설은 아니고, 오히려 우리 국제사법을 적용한 점에서 ①설처럼 보이나 종속적 연결을 외면한 점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대상판결의 결론은 ①설을 따르면서 국제조약이 적용되는 사안에서 종속적 연결을 배척하고 행위지법원칙을 적용한 것(①-2)과 같지만 대상판결이 이런 논리에 입각한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이런 태도는 위 서울민사지법 1993년 판결과는 다르다. 만일 종속적 연결을 긍정하면(①-1) 운송계약의 준거법과 불법행위의 준거법도 중국법일 수도 있다. 5. 맺음말 1심판결은 불법행위의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본 뒤 개정협약을 적용했고, 대상판결은 모두 제24조 제2항을 외면했다. 그러나 개정협약을 적용한 뒤, 제24조 제2항의 해석상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에 대해 불법행위지법(아니면 법정지 실질법)인 한국법을 적용하되, 전자라면 종속적 연결을 검토했어야 한다(계약책임을 물었다면 그 준거법에 따랐어야 한다). 제24조 제2항의 의미는 우리 법원이 벌써 정리했어야 마땅한 쟁점이다. 1983년 KAL 007기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지도적 판결과 일본의 하급심판결이 나왔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하급심판결(서울고등법원 1998. 8. 27. 선고 96나37321 판결 등)은 있었지만 위 쟁점은 무시되었다. 이는 우리 법률가의 국제조약에 대한 이해 부족과 국제사법적 사고의 빈곤에 기인한다. 우리 항공사들은 세계 유수의 항공사로 성장했건만 우리 법률가는 대부분 여전히 국내법에 매몰되어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 모두가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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