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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⑨ 행정처분의 이유제시와 하자의 치유
불법에 가담한 원장에게도 책임을 묻고 있는 대상판결은 그 방향성 측면에서 타당하고 의미가 적지 않다. 다만, 이유제시의 하자에 대한 판단은 법리적 관점에서 정치성이 아쉬워 보인다. 이러한 논리적 불완전함은 치유 규정의 미비에도 기인함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입법론적으로 조사 시기나 자료수집의 한계가 존재하고 그럼에도 처분을 늦출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 제1심 변론 종결 시까지 처분 근거의 보완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I. 사실관계 원고들 6인은 사립유치원의 각 원장이며, 모든 유치원은 설립자 1인에게 귀속되어 있다. 피고(부산광역시 교육감)는 2017. 2. 감사를 통해 2014∼2016년 원장들이 거액의 비자금을 설립자의 계좌로 전달한 정황을 확인한 후, 2017. 3. 설립자와는 별도로 원고들에게 다음 각호의 처분을 하였다(이하, 사안을 단순화함). 1. 방과 후 과정 운영비를 학부모에게 환불할 것 2. 정원 외 원아 운영으로 수령한 지원금을 교육청에 반환할 것 3. 미지급된 보결수당을 해당교원에게 환불할 것 4. 직원(설립자의 친인척)에게 부적절하게 지급한 금액을 교비회계로 회수할 것 5. 허위 또는 과다 회계서류를 작성하여 주거래업체로부터 부당하게 수령한 금액을 교비회계로 회수할 것 (항소심은 1∼5 모두 위법, 상고심은 1∼2는 위법, 3∼5는 적법으로 판단함) II. 대법원판결의 요지 원심(항소심)은 피고가 처분 시 총액만 제시하였고 금액 산정의 자료가 부족한 경우 추정을 가미하여 공백을 메우는 방식을 사용하는 등,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절차적 위법으로 보았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원고들이 그 산정방식 등을 충분히 알 수 있어서 불복하는 데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처분의 근거와 이유제시가 불충분하여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절차상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 추산의 방식으로 위반 금액을 특정하였다는 사정은 그 액수의 타당성 등에 관한 실체적 위법 사유에 해당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에 따른 위반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원심은 설립자가 자발적으로 응하지 않을 경우 원고들에 대한 시정명령은 이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립자에 대한 처분으로 족하다는 점에서 위법하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교비회계에 속하여야 할 수입이 결과적으로 설립자에게 귀속되었다고 하여 그 결과를 초래한 원장의 교비회계 관리 업무가 소멸되지는 않는다.… 설립자에 대한 시정명령으로 원장에 대한 시정명령이 실익이 없거나 법령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III. 대상판결의 평석 1. 이 사건 판결의 의미 일반적으로 조세사건에서는 실질과세의 원칙에 따라서 형식적 명의자의 경우 구제를 해주는 것이 대법원의 기본입장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명의자인 유치원 원장이 불법에 적극 가담하였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항소심에서 원고들에 대한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고 본 점에 비추어, 종래의 판례는 설립자에게만 책임을 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말미암아 과거 양자의 관계는 종속성이 강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 판결을 계기로 어느 정도 대등해짐으로써 유치원의 회계는 더욱 투명해질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시정명령의 대상에서 원장을 제외할 경우 불법 편취의 관행이 더욱 만연될 수 있음을 고려한 대법원의 판결은 의미가 크고 타당하다. 다만, 처분의 절차적 위법이 명확해 보임에도 적법하다고 결론지은 것은, 다분히 방향성 제시의 필요에 의한 정책적인 판단이라 평가할 수 있을듯 하다. 이하에서는 논제에 따라서 절차 하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 행정절차로서 이유제시제도와 하자에 대한 판례의 기본입장 처분의 이유(제시)는 “이유제시 사후추완”과 “처분 사유 추가변경”의 문제영역에서 공통분모에 해당한다. 이는 절차법과 실체법의 경계영역에 위치하며, 법도그마적 관심뿐만 아니라 실무상으로 중요성을 띠고 있다. 이유제시의 절차적 하자와 실체적 하자가 결합하는 경우도 충분히 상정 가능하나 본 판결은 전자와 관련된다. 불이익 처분에 대한 이유제시는 법치국가의 본질적 요소이다.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은 처분에 있어 근거와 이유가 제시되어야 함을 예정하고 있다. 다만 이유제시의 정도, 하자가 있는 경우 치유가 가능한지 여부,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시기는 언제까지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판례는 처분이 실체적으로 적법하여도 절차의 하자만으로 취소되는 것으로 보는 한편, 이유제시 하자의 치유는 행정쟁송제시 전까지로 제한함으로써, 판례가 행정절차를 중시한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인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법원이 행정절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음을 본 판결에서 엿볼 수 있다. 3. 절차적 하자에 대한 비교법적 검토 절차의 하자로 위법하게 된 처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각국의 법체계마다 상이하다. 독일의 경우 실체적으로 올바른 결정이 있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그 결정에 도달하는 방법과 형태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 법원은 우선적으로 행정청이 헌법과 수권 규범상의 내용을 준수하였는지를 심사한다. 독일 행정절차법상 절차의 하자는 사실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 치유될 수 있고(제45조 제2항), - 더 나아가 치유되지 않거나 치유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 종국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이 명백할 경우에는 절차의 위반만을 이유로 한 취소를 인정하지 않는다(제46조). 다만, 절대적 절차 하자는 행정절차법 제46조가 적용되지 않는다. 예컨대, 환경영향평가 실시되지 않았고 치유되지 않은 경우, 사안 결정에 영향을 주었는지와는 무관하게 취소청구권이 존재한다(환경권리구제법 제4조 제1항). 이와 함께, 치유로 말미암아 인용되지 못해 발생한 손해는 행정청 측에서 부담토록 하여 행정능률 및 소송경제와 권리구제의 균형을 일정부분 도모하고 있다(행정절차법 제80조 제1항, 행정법원법 제155조 제4항, 제161조 제2항). 이에 반해 미국의 경우 절차를 통해 정의를 추구하며, 권리보호는 실체법보다는 권한 행사 때 요구되는 절차적 사항을 통해 실현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수권 규범에는 행정청이 유념하여야 할 실체적 요구사항들이 거의 담겨져 있지 않으므로, 결국 행정 결정에 대한 법원의 감독은 내용에 대한 적법성 심사가 아니라 절차의 엄격한 통제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어느 법체계에서도 절차법과 실체법 양자에 대한 통제를 동시에 극대화하기는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에서는 인과관계의 요소를 고려하여 절차상의 하자가 없었더라도 계쟁 처분이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명백히 존재할 때에는 권리 침해가 인정되지 않으며, 다만 그 입증책임은 행정청이나 법원이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유럽사법재판소 2020.5.20.(C-535/18): 2013.11.7(C-72/12) 참조]. 이는 독일의 입장과 괘를 같이 하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4. 절차적 하자에 대한 이 사건 판결의 평가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산출 근거를 누락함은 물론이고 몇몇 항목은 추산에 의한 방식으로 총액만을 제시한 처분에 이유제시의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수긍키 어려우며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물론 대법원의 이와 같은 접근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만일 이유제시의 하자를 인정하고 절차적 위법만을 이유로 처분을 취소할 경우 소멸시효의 문제에 직면한다. 지방재정법상 금전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며 이는 부정수급액을 지급한 때부터 진행한다는 점이다. 즉, 반환명령일을 기준으로 이미 시효가 지난 경우 회수가 불가능하게 된다. 사정판결의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절차의 하자가 종국적 처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명백히 인정될 경우에는 이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서만 처분의 취소를 구하지 못한다는 논리에 입각하여 결정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판례가 절차하자의 독자적 위법성을 인정하고 행정절차를 중시한다는 인식이 정착되어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에 배치되는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근래 불충분한 이유제시가 문제 된 대표적 사안에서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치의 의미를 알 수 있어서 불복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으므로 처분의 이유제시 의무를 위반한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판지를 이어오고 있다(2007두20348: 2019두49359). 즉, 하자를 인정한 후 치유의 문제로 해결하는 대신, 아예 이유제시 하자의 위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회수조치 시 총액만을 제시하였음에도 위 2007두20348판결을 인용하며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단정하였다. 이러한 상투적 논리라면 그 어떠한 처분도 이유제시에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적법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와 같은 법리구성이 적절하지 않음은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의 입법 취지를 살려서 절차의 하자가 있음을 전제하고, 치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올바르다. 즉, 본 사안에서는 제1심 변론 중반 이후 산출 근거가 제시되었으므로, 이유제시의 하자를 인정한 후 - 추완된 자료가 적정하다는 전제하에 - 그 하자가 치유되었다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제시 하자의 치유 시기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82누420판결 이후로 행정쟁송제기시까지인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에 따를 경우 이 사건에서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하자의 치유 시기를 쟁송제기시까지로 하는 것이 모든 사안에서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행정청이 이유제시를 위한 자료확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사건의 경우 편취금액의 항목이 다양하고 수십억에 이르는 등 사안이 복잡하여 산출 근거를 위한 처분청의 조사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반면 소송단계에서 법원이 증거를 보강하는 것은 용이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멸시효의 문제 등을 감안할 때 처분을 마냥 방치해 둘 수도 없다. 지출된 총액만을 기재하여 불가피하게 한 번에 처분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안에서는 소송 과정에서도 치유를 인정함으로써 그 시기를 늦추어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 소송의 어느 단계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문제 된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처럼 절차 하자의 치유 시기를 사실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를 하나의 대안으로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항소심 단계에서도 이유제시를 허용하자는 것인데 소송경제 또는 행정능률의 측면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1심부터 심리가 충실히 되어 당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1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가 적절하다고 보인다. IV. 맺음말 “니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원님재판이 떠올려진다. 이 사건 대법원판결을 이에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무엇보다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은 별개로서 상호 구분되는 것이 마땅하다. 일벌백계의 명목으로 추산방식으로 총액만 기재한 행정처분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유제시의 하자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절차의 하자를 인정하고 치유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논리적, 법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이 사건에서 절차 하자에 대한 대법원의 무리한 해석은 하자의 치유에 대한 명문 규정이 흠결된 점에 기인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입법적인 해결이 바람직하다. 치유 시기를 - 1심 변론 종결 시까지로 - 늦추는 한편, 치유로 패소한 원고의 손해는 피고가 부담하게 하는 보완이 필요하다. 이로써 일회적 분쟁 해결의 절차경제와 권리구제의 양 이념이 다소간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 단서에, 이유제시를 위한 자료수집이 어렵고, 그럼에도 처분을 해야 할 부득이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 1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 보완하여 제출 가능하다는 규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요컨대, 추산에 의한 처분으로 불가피하게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법 위반의 정도와 비난 가능성의 경중을 떠나서- 행정청은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에 관한 법적 분쟁의 판단에서도 법원 역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이상학 교수(대구대 법학부)
이상학 교수(대구대 법학부)
2023-11-26
민사일반
법인의 물적분할시 적격분할 요건인 ‘독립된 사업부문’, ‘포괄적 승계’, ‘직접 사용’, ‘분할대가 전액이 주식’의 해석
- 대법원 2018. 6. 28. 선고 2016두40986 판결 - 1. 사실관계 원고는 2008년 5월 1일 A공장의 화학제품제조 사업부문과 도시개발 사업부문을 물적분할(이하 ‘이 사건 분할’)하여 D회사를 설립하고 2008년 5월 6일 분할등기를 마쳤다. 원고는 이 사건 분할이 구 법인세법(2009. 12. 31. 법률 제989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법’) 제47조 제1항의 적격분할 요건을 충족하였다고 보아 2008 사업연도 법인세 신고 시 분할로 인한 자산양도차익 약 7485억원을 손금산입하였고, 폐석회처리 등 공사비용을 통상적인 비용으로 손금처리하였다. 피고는 2013년 8월 22일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분할이 적격분할에 해당하지 않고, 폐석회처리 등 공사비용이 토지의 자본적 지출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위 자산양도차익과 공사비용을 손금불산입하여 2008사업연도 법인세 약 3000억원(가산세 포함)을 경정고지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물적분할은 분리하여 사업이 가능한 독립된 사업부문을 분할하는 것으로서, 분할하는 사업부문의 자산·부채가 포괄적으로 승계되고, 분할신설법인이 분할등기일이 속하는 사업연도 종료일까지 승계받은 사업을 계속 영위하며, 분할법인이 받은 분할대가 전액이 분할신설법인의 주식인 경우 과세이연 규정이 적용된다. ‘분리하여 사업이 가능한 독립된 사업부문’의 요건{법 시행령(2009. 2. 4. 대통령령 제2130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시행령’) 제82조 제3항 제1호}은 기능적 관점에서 분할 이후 기존의 사업활동을 독립하여 영위할 수 있는 사업부문이 분할되어야 함을 뜻한다. 개별 자산만 이전하여 사실상 양도차익을 실현한 경우와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독립적으로 사업이 가능하면 단일 사업부문의 일부 분할도 가능하다. ‘분할하는 사업부문의 자산 및 부채가 포괄적으로 승계될 것’의 요건(시행령 제82조 제3항 제2호)은 독립된 사업부문 요건을 보완하는 것으로서, 해당 사업활동에 필요한 자산·부채가 분할신설법인에 한꺼번에 이전되어야 함을 뜻한다. 다른 사업부문에 공동 사용되는 자산·부채 등 분할하기 어려운 것은 승계되지 않더라도 기업의 실질적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다. ‘승계받은 사업을 계속 영위할 것’의 요건(법 제46조 제1항 제3호, 시행령 제83조 제4항, 제80조 제3항)은 분할 전후 사업의 실질적 동일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으로서, 처분 또는 직접 사용 여부는 입법 취지와 해당 사업내용을 고려하여 실제의 사용관계를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분할대가 전액이 주식’의 요건(법 제47조 제1항 괄호 안, 제46조 제1항 제2호)은 분할법인이 분할되는 사업부문의 자산·부채를 분할신설법인으로 이전하는 대가로 분할신설법인 주식만을 취득하여야 한다는 것으로서, 지분관계의 계속성을 규정한 것이다. 이 사건 분할은 조직형태의 변화가 있을 뿐 기업의 실질적인 동일성은 계속 유지되어 구 법인세법령에 정한 과세이연 요건을 모두 충족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3. 평석 가. 물적분할 시 과세이연 규정의 취지 및 해석원칙 법인의 물적분할 시 분할로 발생한 자산양도차익에 대하여는 법인세가 과세되는 것이 원칙이나 법 제46조 제1항, 제47조, 시행령 제82조 제3항, 제83조, 법 시행규칙(2010. 6. 30. 기획재정부령 제15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1조의2는 분할법인이 분할신설법인의 주식 전부를 취득하는 적격분할 요건을 갖춘 경우 주식의 가액 중 물적분할로 발생한 자산의 양도차익 상당의 금액에 대하여 과세이연의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과세이연 규정은 1998년 12월 28일 법인세법 개정으로 합병·분할 등 기업조직재편 세제 도입 시 마련된 것으로서, 그 취지는 회사가 기존 사업의 일부를 별도의 완전 자회사로 분리하는 조직형태의 변화가 있었으나 지분관계를 비롯한 기업의 실질적인 이해관계에 변동이 없는 때에는 과세의 계기로 삼지 않음으로써 회사분할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상 조세법규의 해석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문대로 해석할 것이고, 합리적 이유 없이 확장해석 또는 유추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나. ‘분리하여 사업이 가능한 독립된 사업부문’을 분할한 것인지 ‘독립된 사업부문’의 분할은 그 문언상 분할대상이 분리하여 사업이 가능한 독립된 사업부문이기만 하면 되고, 분할 당시 분할신설법인에 무엇이 승계되는지, 분할신설법인이 분할 이후 어떠한 방식 또는 형태로 사업을 영위하는지는 위 요건과 무관하다. 시행령 제82조 제3항은 그 사업부문이 분할법인에 존재하던 동종의 사업부문 전체일 것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A공장 화학제품제조 사업부문과 도시개발 사업부문은 기존의 다른 사업무문에서 독립하여 사업활동 영위가 충분히 가능한 사업이고, 이들 사업부문의 내용과 기능적 특성상 D회사가 고용 일부를 승계하지 않고, 화학제품 제조를 원고에게 위탁하여 생산된 제품의 대부분을 원고에게 판매하더라도 분할 전 사업부문을 해체한 것이라 볼 수 없다. 다. ‘분할하는 사업부문의 자산 및 부채가 포괄적으로 승계’된 것인지 분할하는 사업부문의 필수적인 자산 또는 영업활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자산이 승계되었다면 ‘자산이 포괄적으로 승계’된 것이고, 분할하는 사업부문의 자산 전부가 승계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 분할계약서상 원고의 폐석회처리 협약에 의한 의무, 폐석회 매립공사 관련 채무, 지하폐석회 처리 관련 채무는 A공장 부지와 관련된 채무로서 모두 D회사에 승계되었다. 현금은 법인 계좌로 입금되는 순간 A사업부문 매출이건, A사업부문 자산을 담보로 차입한 것이건 다른 현금과 혼화되어 A사업부문만의 현금이라 볼 수 없다. 원고가 이 사건 분할을 앞두고 회사채 상환, 법인세 납부 등 일반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A공장 부지를 담보로 차입한 차입금 채무는 원고의 다른 사업부문에도 공통적으로 관련된 것으로서 그 중 회사채 상환 등으로 사용될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만 D회사에 승계시킨 것은 요건 불비로 보기 어렵다. 분할신설법인에 승계시키는 현금이 얼마인지에 따라 자산양도차익은 달라지지 않고, 상법 제530조의9 제2항은 분할시 분할신설법인과 분할법인의 연대책임을 배제할 수 있으므로, 차입금 중 일부만 승계되었다거나 원고의 연대책임을 배제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조세회피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시행령 제82조 제3항 제2호는 분할하는 사업부문의 인력 또는 직원의 포괄적 승계를 요건으로 하지 않으며, 이 사건 분할 시 A공장 화학제품제조 사업부문의 직원들이 D회사로의 승계를 반대하였는데 당시 선고된 판결들에 따라 직원들에게 승계를 강제할 수 없었다. D회사가 원고의 인력을 대부분 승계하지 않아 적격분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없다. 라. 분할신설법인이 ‘승계한 고정자산가액의 1/2 이상을 승계한 당해 사업에 직접 사용’한 것인지 D회사는 원고로부터 A공장 화학제품제조 사업부문을 분할받은 후 자신의 비용으로 원재료를 구입하여 자신의 사업장에서 설비를 갖추고 자신의 명의로 화학제품을 제조하였고, 원고로부터 도시개발사업 대상토지인 A공장 부지의 소유권을 이전받아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여 시행자로 지정받음으로써 승계한 고정자산을 실제 사용하였다. D회사가 그 사용방식에 있어 업무위탁을 하였다고 달리 볼 수 없다. D회사가 승계받은 사업을 계속 영위하면서 금융기관 대출채무의 담보를 위해 신탁등기를 설정하였더라도 승계사업의 폐지로 간주되는 고정자산의 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 마. 분할법인이 분할신설법인으로부터 받은 ‘분할대가의 전액이 주식’인지 원고는 분할계약에 따라 분할대가로 D회사로부터 주식만을 받았고, 원고가 분할 직전 대출받은 차입금 중 일부가 D회사에 승계되지 않았다는 사정은 자산·부채의 포괄적 승계요건과 관련된 것일 뿐 분할대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4. 결론 법인세법상 분할제도가 도입된 이래 적격분할 요건에 관한 판단기준이 정립되지 않아 실무상 논란이 되어 왔는데, 대상판결은 물적분할 시 과세이연 제도의 취지가 기업의 실질적인 이해관계의 변동이 없는 때 과세의 계기로 삼지 않음으로써 회사분할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 취지 및 사업부문의 내용과 기능적 특성 등을 고려하여 적격분할의 요건인 ‘독립된 사업부문’, ‘포괄적 승계’, ‘직접 사용’, ‘분할대가 전액이 주식’의 의미에 관하여 해석함으로써 그 판단기준을 최초로 정립하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조성권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분할법인
지분
법인세
조성권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2018-10-08
민사일반
준거법의 범위와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 대상판결: 대법원 2016.3.24. 선고 2013다81514 판결 - I. 대상판결의 요지 당사자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계약 당사자는 어느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거나 그중 특정 조항이 당해 계약에 적용된다는 합의를 할 수 있고 그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소송절차에서 비로소 당해 사건에 적용할 규범에 관하여 쌍방 당사자가 일치하는 의견을 진술하였다고 해서 이를 준거법 등에 관한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II. 국제협약이 준거법의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의 당사자가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는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상인법(lex mercatoria 또는 law merchant)과 같은 국제적 관습, UNIDROIT 국제상사계약규칙(UNIDROIT Principles of International Commercial Contracts 1980)과 같은 법원칙 또는 국제물품매매협약(UN Convention on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과 같은 국제협약 등 비국가적 규범도 포함되는지 문제된다. 2. 논의의 실효성 비국가적 규범이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있다면 이는 ‘저촉법적 지정’이 되지만, 만일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없다면 당사자의 합의는 그러한 비국적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실질법적 지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촉법적 지정은 준거법의 지정이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적용은 배제되고 국제적 강행규정만이 적용된다. 그러나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경우에도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계약이 체결된 후에 법이 개정되었다면 개정된 법이 적용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개정되기 전의 법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그 적용이 배제된다. 또한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법원이 규범의 내용을 직권으로 조사해야 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편입된 법규가 계약의 내용이 되므로 당사자가 편입된 법규의 내용에 대하여 주장하고 증명할 책임을 부담한다. 3.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준거법은 특정국가의 법에 한정된다고 본다. 국제사법의 전반에서 언급하고 있는 ‘법’의 전통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는 특정국가의 법이고, 제5조에서 ‘법원은 이 법에 의하여 지정된 외국법’이라고 규정하고 제7조나 제33조 등에서 ‘대한민국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하여 보면 준거법은 외국법이거나 대한민국법으로서 특정국가의 법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준거법의 분열의 한계와 관련하여서 문제가 발생한다. ‘준거법의 분열’이란 하나의 법률관계의 실체적 내용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국제사법 제25조 제2항에서는 “당사자는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준거법의 분열을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 2016.6.23. 선고 2015다5194 판결에서는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만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 선택된 준거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영역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소위 객관적 준거법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비국가적 규범만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거나 비국가적 규범과 특정국가의 법을 모두 지정하는 경우 모두 준거법의 분열이 발생한다. 그러나 준거법의 분열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법의 내용에 차이가 있고, 한 국가의 국내법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동시에 적용되면 적용되는 법률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거나, 생소한 다른 국가의 제도를 국내의 제도에 맞춰야 하는 복잡한 적응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정된 복수의 준거법이 적용되는 부분이 다른 부분과 분리가능하여 상호 모순저촉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 내에서만 준거법의 분열이 허용된다. 그런데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한계를 완전히 무시하고서 준거법의 분열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국제협약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보건대, 위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깊은 고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저촉법적 지정은 할 수 없다고 본다. 참고로 우리의 국제사법의 바탕이 된 유럽공동체(EC)의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협약’(‘로마협약’) 에서는 당사자가 준거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위 로마협약을 개정한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규칙’을 제정되는 과정에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준거법은 특정 국가의 법으로부터만 도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아니하였다. III.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주요사실에 대하여만 변론주의가 적용되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는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실이 주요사실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상판결과 같이 준거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본다면 당사자가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주장 및 증명해야 비로소 법원이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당사자의 주장이 없는 한 법원이 직권으로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2.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1) 주요사실의 의미에 따른 비판 주요사실이라 함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체법상의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말한다(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 즉 권리와 의무의 발생, 변경, 소멸이라는 실체법적 효력을 가져오는 요건사실이 주요사실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지만 ‘절차법-실체법’과 ‘저촉법-실질법’이 대비되고 있는 바와 같이, 저촉법인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절차법과 실체법의 구분과 그 영역을 달리한다(석광현, ‘국제사법 해설’, 법문사, 2013, 4쪽). 그런데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보던지 저촉법으로 보던지 상관없이 국제사법이 실체법이 아니란 점은 명백하므로 국제사법 제25조에 따른 준거법의 지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2) 적용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국제적 분쟁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으로서는 당사자의 주장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이를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법에 따르면 계약에 적용되는 준거법은, 1차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지정한 국가의 법이 되고(제25조 제1항), 이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2차적으로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된다(제26조). 따라서 법원은 직권으로 계약의 1차적 준거법인 당사자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해야 한다. 게다가 대상판결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적용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이고,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는 적용할 법률을 결정하는 합의이므로, 법원은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하는데 있어서 당사자의 주장에 구속받지 아니한다. 덧붙여 대상판결은 당사자가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는 계약의 내용이 되고 계약의 내용은 주요사실이라는 이유로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를 주요사실로서 자백의 대상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당사자의 합의라고 하더라도 모두 주요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법원 판례에서는 소송상 합의인 부제소의 합의를 채권계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2다73821 판결), 이러한 부제소의 합의가 소송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따라서 당사자의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까지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IV. 결론 이상으로 대상판결과 달리, 사견에 따르면 국제협약을 포함한 비국가적 규범은 준거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의 존재는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서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대상판결 중 문제된 판시내용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채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른 아쉬움이 있다. 적지 않은 국제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좀 더 많은 국제사법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국제협약
준거법
국제사법
2017-02-20
국제소송에서 입증의 정도의 성질결정과 준거법
Ⅰ. 사안의 개요 한국보험회사인 피고는 윤OO과 원양통발어업용인 한국선적의 선박에 대해 선체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영국 협회기간약관을 적용하기로 했는데, 위 약관은 영국법준거약관을 두고, "해상 … 또는 기타 항해 가능한 수면에서의 고유의 위험"과, "선장 … 의 과실"을 부보위험 중 하나로 규정한다(제6조 제1항, 제2항 제3호). 당사자는 보험금 중 일정금액을 원고에게 직접 지급한다는 특약을 체결했다. 위 선박은 파퓨아 뉴기니아에 정박하다가 부산항을 향해 항해하던 중 산호초 지대에서 표류한 결과 인도네시아 부근에서 침몰했다. 원고는 보험금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Ⅱ. 소송의 경과 1. 원심판결(부산고등법원 1999.4.2. 선고 97나13696 판결) 원심법원은 사고원인은 협회기간약관 제6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위험에 해당하고, 선장 등이 선박 출항에 앞서 선저부분에 대한 조사·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이 있는데, 이는 선박침몰의 근인 중 하나로서 위 약관 제6조 제2항 제3호 소정의 위험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대부분 인용했다. 원심법원은 영국법준거약관의 효력을 전면 긍정하고 영국 해상보험법 및 관습에 의하면, 보험의 목적에 생긴 손해가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입증책임은 피보험자가 부담한다고 보고, 그 증명의 정도는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로 족하다고 했다. 2. 대법원 판결의 요지 영국 해상보험법 및 관습에 의하면, 보험의 목적에 생긴 손해가 부보위험인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입증책임은 피보험자가 부담하고, 그 증명의 정도는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로 충분하다.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영국법준거약관의 유효성과, 객관적 입증책임(또는 증명책임)이 보험계약의 준거법에 따른다는 점은 대법원판례에 의해 확립되었다. 여기에서는 첫째, 보험계약의 국제성과 둘째, 입증의 정도(또는 증명도)의 준거법을 다룬다. 미리 밝혀둘 것은, 국제민사소송에서 증거에 관한 다양한 문제는 절차의 문제로서 법정지법에 의한다는 점이다. 즉 증명의 대상(자백의 효력 등), 증거방법(허용되는 증거방법, 증거방법에 대한 제한, 증언거부권의 종류와 범위), 증거조사와 증거의 평가(자유심증주의 여부) 등은 법정지법에 따른다. 2. 이 사건 보험계약은 국제계약인가 국제사법상 당사자는 채권계약의 준거법을 자유로이 지정할 수 있는데 이것이 '당사자자치'의 원칙이다. 문제는 순수한 국내계약에서 당사자자치의 허용 여부인데, 국제사법은 이를 허용하지만 그 경우 국내적 강행규정은 여전히 적용된다(제25조 제4항). 이는 당연히 적용되었을 강행규정을 당사자들이 합의로써 잠탈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준거법합의(또는 그것과 관할합의/중재합의) 외에 외국적 요소가 없다면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합의해도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석광현, 법률신문 제3920호 참조). 이 사건에서 보험의 목적은 한국선적의 원양어업용 선박이므로 보험계약의 국제성은 애매하다. 필자는 수입중인 적하에 대한 보험계약의 국제성과, 해외 재보험계약의 체결을 위해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필요성을 긍정했지만, 한국선적 선박에 대한 보험계약에서 그 소재지를 고려하여 국제성을 판단할지는 불분명하다. 필자처럼 비교적 넓게 사안의 국제성을 인정하면 몰라도, "국제사법 제1조에 비추어 … 거래 당사자의 국적·주소, 물건 소재지, 행위지, 사실발생지 등이 외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곧바로 내국법을 적용하기보다는 국제사법을 적용하여 그 준거법을 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을 적용하여 준거법을 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함으로써 명문 근거가 없는 '합리성의 기준'에 의해 국제사법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대법원 2008.1.31. 선고 2004다26454 판결의 취지를 보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건 소재지'는 국제물권법을 상정한 것이므로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① 외국적 요소의 존재와 ② 합리성의 기준이라는 양 요건의 충족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 3. 입증의 정도의 준거법 가. 입증의 정도에 관한 법계의 차이 민사소송법상 어떤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하려면 법관의 의심에 침묵을 명할 정도의 확신, 즉 '고도의 개연성'의 확신이 필요하다(실제로 법관들이 그에 따르는지는 의문이지만). 반면에 영미 민사소송에서 요구되는 통상의 입증의 정도는 '증거의 우월' 또는 '우월한 개연성'이므로 법원은 원·피고 주장의 개연성을 형량하여 어느 것이 50%를 초과하면 이를 증명된 것으로 취급할 수 있다(차이의 유래는 Habscheid/호문혁(역), 서울대 법학 통권 85·86호(1991.8.), 122면 이하 참조). 나. 입증의 정도의 준거법 문제는 입증의 정도의 준거법이다. 독일에는 이를 절차로 보아 법정지법(lex fori)을 적용하는 절차법설과 실체로 보아 당해 법률관계의 준거법(lex causae)을 적용하는 실체법설이 있다. 절차법설의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입증의 정도는 소송에서 법관의 지위 및 확신(또는 심증)의 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둘째, 독일법에서 입증의 정도는 법관의 인적(또는 내부적) 확신의 형성인데, 실체 준거법인 외국법이 다른 기준을 요구하면 독일 법관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외국법의 내용을 확정할 수 없는 경우 더욱 그렇다. 세째, 입증의 정도는 법정지법에 따르는 증거의 평가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네째, 입증의 정도에 관하여 외국법을 적용하면 외국인 원고에게 입증의 정도를 완화하게 되어 내국인 피고에게 불이익을 주고 내국인차별을 초래한다. 실체법설의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입증의 정도는 입증책임처럼 실체법과 상호의존적이고 실체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책임법에서 입증의 정도를 낮추면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이를 높이면 축소되므로 입증의 정도는 결국 책임을 결정한다. 둘째, 어느 당사자가 부담하나라는 경직된 구조를 취하는 입증책임과 달리 입증의 정도는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입증책임보다도 실체법에 더 밀접하다. 독일에서는 과거 절차법설이 우세했으나 근자에는 실체법설도 유력해지고 있다. 모두 일리가 있지만,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법관의 확신의 형성과 그 정도를 다른 법에 종속시키는 것은 부적절하고, 법관에게 입증의 정도를 준거법에 따르게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실제적 이유로 절차법설이 설득력이 있다(우성만, 판례연구 제18집(2007), 459면 동지). 증명의 개념을 법관의 내부적 확신의 형성으로 파악하는 민사소송법 원칙을 법치국가적 관념에 근거한 소송법상 원칙으로 보아 절차법설 취하기도 한다. 소송법에서 당해 법률관계의 준거법이 규율하는 사항의 범위를 너무 확대하면 국제사법이 매우 복잡하게 되어 실무로부터 외면당할 우려도 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준거법의 함의(含意)를 모르고 외국법을 지정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외국법이 규율하는 사항의 범위를 제한할 필요도 있다. 4.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이 입증의 정도의 준거법을 밝힌 것은 큰 의의가 있으나 타당성은 의문이고 ① 외국적 요소의 존재와 ② 합리성의 충족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우리 법원은 영국법준거약관의 효력이 인정되면 입증책임, 사실상의 추정과 입증의 정도가 모두 영국법에 의한다고 보는 듯하다. 대상판결도 입증의 정도의 성질결정에 대한 고민 없이 너무 쉽게 영국법을 적용했다. 더욱이 보험계약의 국제성이 부정되면 영국법이 준거법이더라도 입증의 정도는 한국법에 따라야 한다. 5. 관련문제: CISG와 손해 입증의 정도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UN협약'('CISG' 또는 '협약')상 계약위반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손해의 발생과 범위 및 손해와 계약위반간의 인과관계 등을 입증함으로써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협약은 손해의 확실성의 정도를 명시하지 않으므로 독일 등의 유력설은 이를 손해의 입증의 정도로서 절차로 보아 법정지법을 적용한다. 그러나 협약의 기초를 이루는 일반원칙인 '합리성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Schwenzer도 동지). CISG AC 의견 No. 6과 UNIDROIT 국제상사계약원칙(제7.4.3조 제1항)도 같다. 아니면 협약의 목표인 규범통일이 위태롭다. 우리 판례는 민법상 기발생 손해와 장래 발생할 손해의 입증의 정도를 구별한다. 대법원 1992.4.28. 선고 91다29972 판결은 "장래의 얻을 수 있었을 이익에 관하여는 증명도를 과거사실에 대한 입증의 경우보다 경감하여 채권자가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을 구체적이고 확실한 이익의 증명이 아니라 합리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이익의 증명으로 족하다"고 함으로써 채권자를 위해 일실이익의 입증의 정도를 완화했다(매매계약의 준거법은 한국법이었던 듯하다). 법원이 협약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도 같은 구별을 할지는 불분명하다. 협약 자체로부터 합리적 확실성의 기준을 도출하지 않는다면 이는 성질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대상판결처럼 실체법설을 따르면 입증의 정도는 매매계약의 보충적 준거법에 의하게 되어 법원에 부담스럽다(우리 법원이 다룬 사건에는 보충적 준거법이 중국법, 캘리포니아주법, 퀸즐랜드주법, 스페인법과 싱가포르법인 사건이 있다). 반면에 절차법설은 매매계약의 보충적 준거법에 관계없이 대법원판결의 법리를 따를 수 있으므로 법원의 부담을 덜어 준다.
2011-07-25
입찰 담합으로 인한 손해액 산정 기준
1. 들어가며 2001년부터 약 9년간 계속되었던 군용 유류 담합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얼마 전 선고되었다. 담합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기준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 실제 손해와 가장 가까운 금액을 산정하기 위한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자료와 공방이 오고갔다. 필자는 국가측의 항소심 소송수행자로서 위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정리하여 향후 유사사례 해결에 도움이 되고자 본 판례평석을 기고하게 되었다. 2. 사실관계 피고들인 주식회사 A,B,C,D,E는 국가인 원고에게 군용유류를 납품하는 정유 업체이다. 군용유류 구매절차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계법'이라 한다), 같은 법 시행령(이하 '국계령'이라 한다)의 적용을 받는데, 원칙적으로 경쟁입찰에 의한다. 원고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피고들과 입찰을 통하여 75건 금액 합계 약 712,845,810,000원(1998년 약 320,303,582,000원, 1999년 약200,132,950,000원, 2000년 약 192,409,278,000원)의 군용유류 구매계약을 체결하였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피고들이 위 기간 동안 입찰물량을 나누어 낙찰받기로 한 후, 유종별 낙찰예정업체, 낙찰단가, 들러리 가격 등을 사전에 합의하고, 그 합의된 내용대로 응찰하여 원고와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독점 규제법'이라 한다.) 제19조 제1항 제1호에 정한 부당한 공동행위를 하였다고 보아 피고들 합계 약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다.(이후 피고들은 이에 불복하여 결과적으로 납부한 과징금은 총 936억 1000만원이다.) 이와 더불어 피고들 및 피고들의 경영이사들은 독점규제법위반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 판결은 확정되었다. 원고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피고들에게 165,967,357,805원(그 중 82,857,611,115원은 98년분, 66,596,222,979원은 99년분, 8,965,745,626원은 2000년분) 및 지연손해금을 청구하였다. 3. 사건의 쟁점 및 손해액 산정의 방법론 가. 사건의 쟁점 피고들의 담합행위 여부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심결 및 관련 판결에 의해 확정된 이상 피고들의 위법한 담합행위로 인하여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그 책임 범위는 '피고들의 담합행위로 인하여 형성된 가격'(낙찰가격)과 '피고들이 담합이 없었을 경우에 형성되었으리라고 인정되는 가격'(경쟁가격)과의 차액이 될 것인데, 이 사건에서는 피고들의 담합이 없었을 경우에 형성되었을 가격을 추정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 나. 손해액 산정의 방법론 1) 표준시장 비교 방법(원고측 제시) 표준시장 비교 방법(yarkstick method)은 입찰 담합이 없었던 시장을 표준으로 삼아서 그 시장에서의 가격과 입찰 담합이 있었던 시장에서의 가격을 비교함으로써 담합으로 인한 가격 인상분을 파악하여 손해액을 추정하는 방법이다. 원고는 피고들에 의하여 과점되고 있는 국내 유류시장의 특성상 유류 시장 전체에 걸친 가격 담합이 존재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국내 유류 시장을 기준으로 경쟁 시장 가격을 산정할 수는 없고, 아시아 최대의 유류 완제품 국제 시장인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유류를 구입하여 국내에서 원고에게 공급할 때까지 드는 비용을 산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형성된 거래가인 MOPS 가격에 운임보험료, 신용장 개설료, 통관료, 국내운반비, 저유비, 품관비, 첨가제가격, 일반관리비, 이윤, 석유기금, 관세 등의 부대비용을 더하여 가상의 경쟁시장 가격을 추정하였다.(이하 'MOPS 가격 비교 방법'이라 한다) 2) 중회귀분석을 통한 이중차분법(감정인단 및 피고들 제시) 감정인단 및 피고들은 통계학적 추론방법을 적용한 계량경제학적 분석방법, 즉,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변수로 설정하고 중회귀분석(multiple regression analysis)이라는 통계학적 추론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담합이 가격에 미친 영향과 담합 이외의 경제적 요인들이 가격에 미친 영향을 분리하여,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담합이 없었을 경우에 형성되었을 가격'(but for price)을 추정해 내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4. 1심 및 대상 판결의 요지 가. 1심 판결의 요지(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1. 23. 선고 2001가합10682 판결) 1심은 ① 완전경쟁시장(싱가포르 현물시장)을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하게 되면 결국 '다른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담합이 없었을 경우에 형성되었을 가격과 실제 구매가격과의 차액'이 아닌 '완전경쟁시장에서 형성되었을 가격과 실제 구매가격과의 차액 전체'를 피고들에게 부담시키는 결과가 되며, ②군납 유류시장과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특수성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변수들의 효과를 적절히 감안하지 아니한 채 두 시장을 단순히 비교하는 표준 시장 비교 방법은 타당하지 않다고 하면서, 이 사건에서는 낙찰가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을 도입한 중회귀분석 모형을 설정한 다음 이중차분법에 따라 담합의 효과를 추정해내는 방법, 즉 '중회귀분석을 통한 이중차분법'에 의하여 손해액을 계산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따라 1심 법원은 감정인단의 결과를 원용하되, ①추정모형으로는 통상 최소자승법(ordinary least squares method)을 채택하고, ②담합효과는 1998년과 1999년은 동일하게, 2000년은 이와 다르게 설정하는 모형을 채택하며, ③유찰수의계약 자료는 모두 모형에서 제외하는 변형을 가하여 최종적인 손해액을 80,997,385,398원으로 계산하여 판결하였다. 나. 대상 판결의 요지 항소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을 변경하였다. 즉, 계량경제학상의 중회귀 분석을 통한 손해액 산정 방법이 그 자체로서 매우 합리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①경제적 논증에 대한 규범적 통제의 어려움, ②이 사건 각 모형에 의하여 추정된 각 손해액의 편차가 5.5배를 초과할 정도로 매우 큰 점, ③우리의 손해배상제도가 3배 배상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계량경제학적 손해액 산정 방법을 도입할 경우 위와 같은 불확실성의 혜택(benefit of doubt)이 피고들에게 돌아가 과소 배상의 위험이 있어 이 사건 손해액의 산정 방법으로 위 방법을 채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이 있다고 하였다. 한편, 원고의 MOPS 가격 비교 방법에 대하여는 ①원고의 산정 방식의 현실 적합성에 대하여 9년에 걸친 비교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는바, 담합이 없었던 2001년 내지 2009년까지의 유종별 실제 낙찰 평균가는 MOPS 가격 비교 방법에 따른 경쟁가격 평균가의 94.39% 내지 103.72%사이에서 결정되어 그 정확도가 매우 높고, ②국내의 대량수요처 및 원고도 예정 가격 결정시 MOPS 가격 비교 방법을 기초 자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③분석자의 가치관과 무관하게 객관적 현실에서의 적합성을 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고의 MOPS 가격 비교 방법을 담합 기간의 가상 경쟁 가격을 추정하는 일응의 기준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판시를 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이에 따라 원고의 산식을 기준으로 통계적 편차를 반영하여 최종적인 손해액을 130,992,430,066원(1998년은 73,994,790,469원, 1999년은 60,657,670,018원, 2000년은 6,657,089,641원)으로 확정하였다. 5. 평석 가. 판결 이유 분석 불법행위 손해로 인한 재산상 손해는,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였을 재산상태와 그 위법행위가 가해진 현재의 재산상태의 차이를 말한다(차액설). 이러한 대전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원·피고들은 담합행위(이 사건에서의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형성되었을 가상 경쟁가격을 각자 다른 방식에 의해 추정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가상 경쟁가격을 정확하게 산출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원은 손해액 산정에 다소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지만, 위 손해액 산정은 이론적 근거와 자료의 뒷받침 아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에 의하여 정당하게 추정되었다고 평가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법리의 이면(裏面)에는 피고들의 잘못된 행동이 정확한 손해액을 산정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원고의 손해액 입증책임(burden of proving)은 그만큼 경감되어야 하고, 그만큼의 부정확성은 잘못한 행동을 한 자가 감수하여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참고로 이러한 측면은 담합으로 인한 손해배상액 추정 법리가 발달한 미국법원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고전적인 원칙(ancient principle)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법원은 원고의 MOPS 가격 비교 방법이 위에서 보았던 이유에 따라 현실을 개연성 있게 반영할 수 있고, 그 결과 또한 신뢰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한편, 법원은 계량경제학적 방법이 담합으로 인한 손해액을 추정하는 방법으로서의 훌륭함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량경제학적 방법은 그 자체로 방법적·현실적 한계가 있다. 즉, 이 사건에서 유류가격 형성에 미치는 변수는 연구진 마다 15개에서 20개가 제시되었으며, 분석자의 가치관에 따른 변수선택으로 모델 구성이 달라져 그 결과는 5.5배가량의 차이를 낳았다.(18,841,570,000원에서 112,008,785,163원의 스펙트럼이 존재하였다) 여기서 법원은 어느 모델이 정답이라고 평가하기 곤란하며, 모델을 선택한 후 그 변수를 변경하는 것(1심 법원)은 합리적인 규범 판단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본 것이다. [변론 과정에서 미국의 유사 사례로서, 법원은 담합으로 인한 손해액 산정에서 다양한 변수의 통제가 어렵다면 계량 경제학적 방식을 채택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시가 제시된 바 있다.(Miller v. Holzmann, 563 F.Supp.2d 54,109)] 나. 평가 본 판례는 담합으로 인한 손해액 산정 방법에 관하여 일종의 표준시장 비교 방법을 채택한 선진적인 사례이다. 법원은 계량 경제학적 방식의 그 자체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의 현실적 적용의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표준시장 비교 방법의 합리성과 현실적합성을 실증적인 방법을 통해 확인하였다. 또한 본 사건은 전문 감정에 대해서 법원의 규범적 평가의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판시하였는바, 전문·기술적 소송이 점차 증가하는 요즘의 추세에서 전문·기술적 감정을 어떻게 통제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2010-02-01
위장납입의 형법상 죄책
I. 사건의 개요와 논점 피고인은 유상증자금 300억 7000만원을 일괄 납입·예치하고, 그 은행으로부터 주식납입금보관증명서를 발급받은 다음, 위 회사 우선주 유상증자를 마친 후, 다음날 증자대금으로 납입한 300억 7000만원을 직접 인출해간 방법으로 위 회사의 증자 대금의 납입을 가장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은 또한 주금을 가장납입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무사를 통해 정을 모르는 등기공무원에게 주금납입보관증명서 등 유상증자등기에 필요한 관계 서류를 제출하게 하였고, 등기공무원으로 하여금 위 회사의 발행주식 총수 및 자본의 총액에 대한 허위사실의 등기를 경료하게 하여 공정증서원본인 상업등기부에 불실의 사실을 기재하게 하고, 같은 일시, 장소에서 위 등기 공무원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불실의 사실이 기재된 상업등기부를 비치하게 하였다. 또한 피고인은 이미 법인의 소유의 돈으로서 회사의 운영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돈에 대해, 보관하는 것을 기화로 다음날 그 돈을 법인의 업무와 아무런 관계없는 용도인 채무변제에 사용하기 위하여 법인계좌에서 인출하여 300억 7000만원을 횡령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상법 제628조의 납입가장죄가 성립하는지 여부, 둘째 위장납입을 한 후 발급받은 주금납입보관증명서를 공무원에게 제출하여 상업등기부에 등기하게 하고 이를 비치한 것이 공정증서불실기재죄(형법 제228조) 및 동행사죄(제229조)에 해당하는지 여부, 셋째 위장납입한 돈을 인출하여 회사의 업무가 아닌 위장납입시의 채무변제를 위해 사용한 경우 업무상횡령죄(형법 제 356조 제1항,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제3조)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이다. 평석대상 전원합의체 판결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쟁점에서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갈렸던 바, 이 차이를 중점으로 검토하기로 한다. II. 상법상 납입가장죄의 성부 가장납입이란 회사를 설립함에 있어서 주금이 납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납입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발기인이 설립등기를 하는 회사범죄의 일종이다. 가장납입 중의 한 형태인 위장납입(=‘견금’)은 발기인이 보관은행 외의 제 3자로부터 금전을 차입하여 주금액을 납입하고, 설립등기를 마친 후 이를 즉시 인출하여 차입금을 변제하는 유형을 말한다. 판례는 견금 등의 행위에 대하여 “납입가장죄는 회사의 자본충실을 기하려는 법의 취지를 유린하는 행위를 단속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므로, 당초부터 진실한 주금납입으로 회사의 자금을 확보할 의사 없이 형식상 또는 일시적으로 주금을 납입하고 이 돈을 은행에 예치하여 납입의 외형을 갖추고, 주금납입증명서를 교부 받아 설립등기나 증자등기의 절차를 마친 다음 바로 그 납입한 돈을 인출한 경우에는, 이를 회사를 위하여 사용하였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사의 자금이 늘어난 것이 아니어서, 상법 제628조의 납입가장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판 1982.4.13. 선고 80도537판결; 대판 1993.8.24, 93도 1200판결). 학계의 통설 역시 가장납입을 한 사안에 대하여 납입가장죄를 인정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당해 사안에서는 피고인이 회사를 위해서 자본금을 사용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데 원심이 이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채증법칙을 위반하였다고 판시하였다. III. 상법상 납입가장죄와 별도로 형법상 공정증서부실기재죄·동행사죄의 성립 여부 공정증서불실기재죄란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신고를 하여 공정증서원본 등에 부실의 사실을 기재하게 하는 것이다. 사안에서의 문제가 되는 상업등기부는 상법에 의하여 등기할 사항을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법원이 등기하게 하는 장부로서, 등기된 사항은 상법상의 여러 효력을 부여받게 되는 바, 권리의무관계를 증명하는 공정증서원본의 일종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가장납입을 한 것이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신고를 한 것인지 여부이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회사를 위하여 사용하였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실질적으로 회사의 자본이 늘어난 것이 아니어서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가 성립하고, 다만 납입한 돈을 곧바로 인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인출한 돈을 회사를 위하여 사용한 것이라면 자본충실을 해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주금납입의 의사 없이 납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여 기존의 판례와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 반대의견은 “견금 방식의 가장납입의 경우에도 납입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하는 종래 대법원의 견해를 따르는 한 납입이 완료된 것은 진실이고, 따라서 등기공무원에 대하여 설립 또는 증자를 한 취지의 등기신청을 함으로써 상업등기부원본에 발행주식의 총수, 자본의 총액에 관한 기재가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이를 두고 ‘허위신고’를 하여 ‘불실의 사실의 기재’를 하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동행사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고 판시한다. 판례의 다수의견은 가장납입의 경우 실질적으로 자본이 늘어난 것이 아니어서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는데, 이러한 논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위장납입을 한 경우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장납입이 유효한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납입이 유효하다고 하다면, “당사자들의 합의 없이 이루어진 소유권이전등기라도 하더라도 민사실체법상의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것이라면 이를 부실등기라고 할 수 없다.”(대판 1980.12.9. 선고, 80도1323판결)는 판례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에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의 성립이 부정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상법학계의 통설인 ‘납입무효설’과는 달리, “위장납입은 금원의 이동에 따른 현실의 불입이 있는 것이고, 주금납입의 가장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주관적 의도에 불과하고, 이러한 내심적 사정은 회사의 설립이나 증자와 같은 집단적 절차의 일환을 이루는 주금납입의 효력을 좌우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일관되게 ‘납입유효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판 1983.5.24 선고 82누522 판결). 그 결과 납입가장죄와 별도로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동행사죄가 성립하다는 다수의견은,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것을 부실의 등기라고 보지 않고, 위장납입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기존의 판례와 긴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점에서 반대의견의 입장이 ‘납입 유효설‘을 취하는 이전의 판례와 논리가 일관된다. 그리고 상사법적으로 유효한 행위를 형법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법질서의 통일성이나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에 타당하지도 않다(단, 학계 통설에 따라 ‘납입무효설’을 취할 경우에는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죄의 ‘부실’을 주장할 근거가 더욱 강해질 것이다). IV. 업무상횡령죄의 성부 이 사안에서 피고인은 위장납입의 형태로, 돈을 회사에서 인출하여 제3자의 채무를 갚는데 사용하였다. 피고인의 이 행위가 업무상횡령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먼저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타인으로부터 금원을 차용하여 주금을 가장납입한 직후 이를 인출하여 차용금변제에 사용한 경우 상법상의 납입가장죄와 별도로 회사재산의 불법영득행위로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한 이전의 대법원 1982. 4. 13. 선고 80도537 판결, 2003. 8. 22. 선고 2003도2807 판결 등을 변경하기로 결정한다. 즉, 다수의견은 이 경우 “피고인에게 회사의 돈을 임의로 유용한다는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할 것이고, 이러한 관점에서 상법상 납입가장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이상 회사 자본이 실질적으로 증가됨을 전제로 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여 업무상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소수의견은 “주금납입과 동시에 그 납입금은 회사의 자본금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기관이 이를 인출하여 자신의 개인 채무의 변제에 사용하는 것은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불법영득의사의 발현으로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파악하면서, 위장납입이 유효한 이상 납입금은 이미 회사의 재물로서 타인의 재물이 되며, 따라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설시하고 있다. 생각건대, 대법원이 위장납입의 유효성을 확고하게 인정하고 있는 한, 위장납입으로 회사에 주금이 입금 되었다면 바로 그 주금은 타인의 재물로 되며, 타인의 재물을 임의로 유용하여 빼가는 경우 불법영득의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리고 반대의견이 지적한대로 납입행위 이후 반환행위 이전에 회사의 채권자가 주금 납입금에 관한 회사의 예금채권에 대하여 압류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납입의 사법적 효력을 인정하되 그와 별도로 납입금을 인출하여 제3자에게 변제하는 행위를 횡령행위로 보는 것이 가장납입을 전후한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V. 맺음말 전원합의체 판례의 다수의견은 ‘납입유효설’을 취하는 기존의 대법원의 판례와 논리적으로 충돌한다. ‘납입유효설’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가장납입행위는 상법상 납입가장죄와 형법상 업무상횡령죄로 의율되는 것이 옳고,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의 성립은 부정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단, 상법학계의 ‘납입무효설’을 취할 경우에는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가 성립하고 업무상횡령죄의 성립은 부정되는 결론이 논리적일 것이다.
2005-11-07
채무자 소유 아닌 부동산에 대한 경매와 담보책임
[事實關係] 대법원판결로부터 파악할 수 있는 사실관계를 이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 건물 및 그 대지는 A 회사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어 있었는데, 그 회사에 대한 채권자의 신청으로 이들에 대하여 강제경매가 실시되었다. 원고는 거기서 이들을 경락받아 경락대금을 완납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피고는 이 경매절차에서 근저당권자로서 9억원을 배당받을 것이었지만, 그에 관한 이의가 제기됨에 따라 그 금액은 공탁되었다. 그런데 그 후 제3자 甲이 이 사건 건물은 애초 A 회사가 아니라 甲의 소유로서 A 회사의 소유권보존등기는 물론 원고의 위 소유권이전등기도 무효라는 이유로 원고를 상대로 위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甲의 승소판결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위 공탁된 배당금에 대한 피고의 출급청구권은 피고가 원인 없이 이득한 것이라고 하여 그 양도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원고는 그 후 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원고승계참가인에게 양도하였다. 原審(大邱高判 2003.9.25, 2002나9203)은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그 이유는 “이 사건 건물에 대한 강제경매절차는 그 개시 당시부터 채무자 소유가 아닌 타인 소유의 부동산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무효이므로, 강제경매절차에서 배당받은 피고는 법률상 원인 없이 이득을 얻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 공탁된 배당금 중 이 사건 건물에 관한 8억9천여만원의 청구권을 양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여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判決趣旨] “경락인이 강제경매절차를 통하여 부동산을 경락받아 대금을 완납하고 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쳤으나, 그 후 강제경매절차의 기초가 된 채무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원인무효의 등기이어서 경매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 경우, 이와 같은 강제경매는 무효라고 할 것이므로 경락인은 경매 채권자에게 경매대금 중 그가 배당받은 금액에 대하여 일반 부당이득의 법리에 따라 반환을 청구할 수 있고, 민법 제578조 제1항, 제2항에 따른 경매의 채무자나 채권자의 담보책임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대법원 1991. 10. 11. 선고 91다21640 판결, 1993. 5. 25. 선고 92다15574 판결 등 참조).” [評釋] 對象判決은 민법 제578조, 제570조의 명문에 반하고, 또한 종전의 판례에도 어긋난다고 여겨지므로, 찬성할 수 없다. 1. 이 사건은 채무자 앞으로 소유권등기가 된 부동산에 대하여 경매가 행하여져서 경락인이 경락대금을 납부하고 그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받았으나 원래 그 경매목적물이 채무자가 아닌 제3자의 소유이어서 경락인이 그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정된 事案에 대한 것이다. 즉 이 사건은 원심판결이 정면에서 설시하는 대로 경매의 목적물이 채무자 아닌 타인에게 속한 경우로서 채무자가 이를 취득하여 경락인에게 이전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 우선 위의 사실관계가 경매의 목적물이 애초 채무자 아닌 타인에게 속하는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아가 大判 76.4.27, 75다2322(要集 민 I-2, 940); 大判 82.12.28, 80다2750(集 30-4, 171) 등 판례는 타인 소유의 부동산이 매매된 경우에 진정한 소유자가 매수인 또는 매도인을 상대로 그 명의의 소유권등기의 말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그 승소의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민법 제570조에서 정하는 “매도인이 그 권리를 취득하여 매수인에게 이전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는 태도를 취하여 왔다(우선 民法注解[IX], 282면 이하(梁彰洙 집필) 참조). 다른 한편 민법 제578조 제1항은 “競賣와 賣渡人의 擔保責任”이라는 표제 아래 “競賣의 境遇에는 競落人은 前8條의 規定에 의하여 債務者에게 契約의 解除 또는 代金減額의 請求를 할 수 있다”고 정한다. 거기서 정하는 ?전8조의 규정? 중에 제570조가 포함됨은 그야말로 계산상으로도 명백하다. 따라서 위의 사실관계에서 민법 제578조, 제570조의 담보책임이 문제되어야 함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대상판결이 “강제경매절차의 기초가 된 채무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원인무효의 등기이어서 경매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 경우”라고 설시하고 있다고 해서, 이것이 경매목적물이 채무자 아닌 타인의 소유에 속한 경우와는 별개임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2. 對象判決이 들고 있는 두 개의 참조판결은 대상판결과 사실관계를 달리하여서, 구속력 있는 선례가 될 수 없다. (1) 우선 大判 91.10.11, 91다21640(集 39-4, 27)은, 강제경매의 채무명의가 된 약속어음공정증서가 위조된 것이어서 그 절차에서의 경락인 앞으로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판결이 확정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위와 같은 사유가 있으면 경락인이 경매목적물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음은 물론인데, 이러한 경우는 제578조 및 제570조 내지 제577조에서 정하고 있는 담보책임의 발생요건의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원고를 위한 구제수단은 담보책임 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한편 대상판결과의 관련에서 의미 있는 것은, 그 판결이 “민법 제578조 제1항, 제2항에서의 담보책임은 매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매절차는 유효하게 이루어졌으나 경매의 목적이 된 권리의 전부 또는 일부가 타인에게 속하는 등의 하자로 경락인이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거나 이를 잃게 되는 경우에 인정되는 것이고, 경매절차 자체가 무효인 경우에는 경매의 채무자나 채권자의 담보책임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고 설시하여서, 명확하게 '경매의 목적이 된 권리의 전부가 타인에게 속하는 하자로 경락인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경우'에는 민법 제578조에서 정하는 담보책임이 발생한다는 태도를 밝히고 있는 점이다. 물론 이 판시도 경매의 무효 여부를 기준으로 한다고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으나, 역시 경매목적물이 타인에게 속하는 경우를 보다 구체적으로 지칭하여 그 경우에는 담보책임이 인정된다고 설시하는 것을 중시하여야 할 것이다. 또 그렇게 보면 이 판결에서 '경매절차 자체'의 무효를 운운하는 것은, 그 사실관계에서 문제된 대로 그 절차를 시동시키는 출발점이 되는 채무명의가 무효인 경우와 같이 경매의 절차적 추행과 관련된 하자가 있는 경우에만 관련된 것이고, 경매목적물이 채무자 아닌 제3자에게 속하는 것과 같이 말하자면 경매에 '공신적 효과'가 없다는 그 실체적 효력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되지 못할 바 없다. (2) 또한 大判 93.5.25, 92다15574(공보 1386)은, 근저당권의 설정자가 목적물인 건물을 헐고 새로 건물을 지었는데 이에 대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지 않고 있던 중 원래의 근저당권자인 피고가 그에 기하여 新建物에 대하여 임의경매를 신청하여 그 경매절차에서 원고가 목적물을 경락받고 경락대금을 납부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이 경우 피고의 근저당권은 동일성을 상실한 신건물에는 효력이 없고, 무효인 근저당권에 기한 임의경매절차에서 경락인은 물론 목적물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도 민법의 규정 어디를 보아도 그로부터 담보책임이 발생한다는 정함을 찾을 수 없다. 한편 이 大判 93.5.25.도 앞의 (1)에서 인용한 大判 91.10.11.의 설시를 그대로 반복하여, '경매의 목적이 된 권리의 전부가 타인에게 속하는 하자로 경락인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경우'에는 민법 제578조의 담보책임이 인정된다는 태도를 확인하고 있다. 3. 이와 같이 대상판결이 참조판결로 인용하는 종전의 재판례들은 오히려 대상판결과는 반대로 경매목적물이 강제경매의 채무자 아닌 제3자에게 속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578조의 담보책임이 인정된다는 태도를 밝혔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이해일 것이다. 이들 외에도 위와 같은 경우에 담보책임을 긍정한다고 보아야 할 재판례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大判 88.4.12, 87다카2641(集 36-1, 153)이 중요하다. 이 판결은, 甲 소유의 부동산이 甲 앞으로 등기되어 있었는데 乙이 서류를 위조하여 자기 앞으로 소유권등기를 이전하고 다시 피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는데, 피고가 丙을 위하여 원고 앞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준 바, 위 근저당권에 기하여 행하여진 임의경매에서 원고가 경락을 받은 사안에 대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결국 경매목적물을 취득하지 못한 원고는 민법 제578조, 제570조의 담보책임에 기하여 피고를 상대로 계약해제에 따르는 원상회복으로서 경락대금 상당액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쟁점은 오히려, 피고와 같은 物上保證人이 민법 제578조 제1항에서 1차적으로 담보책임을 진다고 정하여진 '채무자'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 물상보증인이 동조상의 채무자에 해당함을 긍정하고, “경락인이 그에게 계약해제권을 행사하였으면 물상보증인은 경락인에 대하여 원상회복의 의무를 진다”고 판시하였던 것이다(이에 대한 찬성평석으로 梁彰洙, “他人 所有 物件의 競賣와 物上保證人의 擔保責任”, 판례월보 216호(1988.9), 38면 이하(同, 民法硏究, 제2권(1991), 231면 이하에 再錄) 참조). 만일 對象判決과 같이 언필칭 “경매가 무효”라고 하여서 경락인은 경매채권자에 대하여 그가 배당받은 금액의 반환을 일반 부당이득의 법리에 따라서 청구할 수 있을 뿐이고, 민법 제578조에 따른 경매의 채무자나 채권자의 담보책임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면, 위의 大判 88.4.12.와 같이 물상보증인, 즉 민법 제578조 제1항의 법문으로 말하면 ?경매채무자?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은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4. 경매목적물이 채무자 아닌 제3자의 소유에 속하는 경우에 대하여 담보책임을 인정하더라도 실제 사건의 해결로서는 대상판결의 결론과 같이 배당채권자에 대하여 일반부당이득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1차적인 담보책임자로서의 '채무자'는 특히 그에 대하여 강제경매절차가 진행된 상황이라면 이미 무자력할 것이고, 따라서 결국은 제578조 제2항에 의하여 '대금의 배당을 받은 채권자'로부터 그가 배당받은 금전의 반환을 청구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욱이나 對象判決과 같은 태도에 찬성하기 어렵다. 혹 문제의 핵심이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착잡하게 뒤엉키는 '경매의 무효'(사실 그 의미도 명확한 것은 아니다)의 다양한 경우들에 있어서 이를 간명하고 형평에 맡게 처리할 방도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있다고 한다면, 이는 보다 근원적인 論究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절차의 안정성을 중시하여 경매절차의 효력을 가능한 한 유지하려는 입장(최근의 예를 들면 閔日榮, “競賣와 擔保責任의 法理 ―임차주택의 경매를 중심으로”, 法曹 568호(2004.1), 5면 이하)에서도 경매목적물이 타인에게 속하는 경우에 민법 제578조, 제570조의 담보책임이 아예 인정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한 일이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든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 해석은 쉽사리 취할 것이 아니며, 또 민법 제578조가 立法論的으로 크게 문제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다(그 法意에 대하여는 우선 위의 梁彰洙, 民法硏究, 제2권, 238면 이하 참조).
2004-09-06
제조물책임법상 설계상의 결함
[판결요지] [1] 일반적으로 제조물을 만들어 판매하는 자는 제조물의 구조, 품질, 성능 등에 있어서 현재의 기술 수준과 경제성 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제조하여야 하고, 이러한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으로 인하여 그 사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고, 그와 같은 결함 중 주로 제조자가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채용하였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아니하여 제조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 즉 설계상의 결함이 있는지 여부는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내용,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의 가능성, 대체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설계의 상대적 장단점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 [2] 제조업자 등은 표시상의 결함(지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하여도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이 인정될 수 있고, 그와 같은 결함이 존재여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제조물의 특성, 통상 사용되는 사용형태,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의 내용,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및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의 가능성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 1. 사실관계 주식회사 대한항공 소속 헬기의 조종사들이 시계가 불량한 관계로 시계비행방식을 포기하고 계기비행방식으로 전환하여 기온이 영하 8°C 까지 내려가는 고도 6,000피트 상공을 비행할 때 피토트 튜브(pitot/static tube, 動靜壓管)의 결빙을 방지하기 위한 피토트 히트(pitot heat)를 작동시키지 아니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피토트 튜브가 얼어 헬기의 실제 속도와 달리 속도계에 나타나는 속도가 감소하고, 또한 속도계와 연동하여 자동으로 작동하는 스태빌레이터(stabilator)의 뒷전이 내려가면서 헬기의 자세도 앞쪽으로 기울어졌으나 조종사들이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속도계상 헬기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속도를 증가시키려고 출력을 높임으로써 헬기가 급강하하게 되었으며, 조종사들이 뒤늦게 헬기의 자세를 회복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헬기의 주회전날개 중 하나가 후방 동체에 부딪혀 헬기가 추락하게 되었다. 피해자들은 대한항공(주)에 대하여 제조물에 대한 설계상의 결함 등을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서 주요쟁점은 제조물의 결함 존재 여부였고, 원심은 설계상의 결함 존재에 대한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였으며 대법원에서도 판결요지에서 보는 이유로 설계상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통상적인 안전성을 갖추었다고 하면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 판 결 요 지 - 제조물의 설계상 결함여부는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내용, 예상되는 위험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대체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설계의 장단점 등 여러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 평 석 요 지 -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책임은 제조자의 기대 가능성을 전제로 한 과실 책임의 일환이라고 하고 있지만 제조물책임법 제정이후 설계상의 결함으로서 '합리적 대체설계'의 판단기준과 표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2. 제조물책임과 결함 제조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전제로 하지 않는 엄격책임으로서의 제조물책임은 불법행위법의 특별법으로서 제조물책임법(2000.1.12. 법률 제6109)의 제정으로 새로이 도입되었고 같은 법 부칙 규정에 의하여 2002.7.1. 이후 공급된 제조물에 대하여 적용되는 것이어서 이 사건 헬기에는 적용될 여지는 없다. 다만 제조물책임법의 시행 후의 판단이기 때문에 제조물책임법상의 결함에 대해 염두에 두고 판단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같은 법에서는 결함의 종류로 제조상의 결함과 설계상의 결함, 표시상의 결함을 규정하고, 결함이란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위 사건에서 문제된 것은 설계상의 결함과 표시·경고상의 결함이다. 설계상의 결함에 대하여 제조물책임법 제2조 제2호 나목은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채용하였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아니하여 당해 제조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설계상의 결함을 판단할 때는 어떤 면에서 ‘합리적인 대체설계’라고 평가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할 것이며, 합리적인 대체설계가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체설계에도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와 합리적인 대체설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결함이 부정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업자의 고의 또는 과실 유무와는 관계없이 제조물의 결함만 존재하면 제조업자는 무과실책임으로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제조물에 결함이 있고 그 결함으로 인하여 피해(확대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해당 제조물의 제조업자는 책임을 지게 된다. 제조물책임법은 제2조에서 결함을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어서 제조상의 결함, 설계상의 결함, 지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해 각각 정의하고 있는데 결함의 판단기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3. 결함의 판단기준 제품의 결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표준일탈기준, 소비자기대수준, 위험효용기준, 바커기준(Barker test) 등이 있다. 소비자기대기준은 소비자가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안전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에 결함의 존재를 인정한다. 누가 통상적인 소비자인가가 문제되는데, 그 사회의 통상적인 지식을 구비한 자를 말한다. 따라서 합리적인 소비자가 제조물의 위험한 상태를 예견하고 그로부터 발생가능성 있는 사고의 위험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에 부당하게 위험한 제조물이 되지 않게 된다. 예컨대 예리한 칼과 같이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는 판단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기대수준은 그 기준이 애매하고 주관적이어서 결함판단기준으로서나 책임의 근거로서 그 가치가 점점 감소되고 있으며, 제조자가 명시적·묵시적으로 표시한 제조상의 결함에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소비자기대수준은 현재 독자적인 기준은 되지 않고 위험효용기준의 한 요소로서 이용되고 있다. EC지침은 소비자기대기준을 채택하고 있다(EC지침 제6조). 결함의 판단기준에서 특히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설계상의 결함과 경고상의 결함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위험·효용기준은 제조물의 위험성과 효용성을 비교하여 위험성이 효용성을 능가할 때 그 제품이 결함이 있다고 한다. 위험?효용기준은 결함판단기준으로서 현재 미국 법원의 압도적 견해이다. 바커기준은 캘리포니아 최고법원이 1978년 바커사건에서 엄격책임에 있어서의 ‘부당한 위험’이라는 요건을 배제하면서 새로운 ‘결함의 판단기준’을 보인 것에서 유래한 기준이다. 동법원은 ① 의도된 방법 또는 합리적으로 예상 가능한 방법에 의한 제품사용에 관하여 그 제품이 소비자가 기대하는 통상의 안전성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원고가 입증, ② 제품의 설계가 손해의 원인임을 원고가 입증, ③ 현재의 설계에 의해 초래되는 위험의 중대성 및 개연성, ④ 안전한 대체설계의 기술적 가능성, ⑤ 개선설계에 소요되는 비용, ⑥ 대체설계에 의해 제품 및 소비자에게 생기는 악영향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것을 고려한 후 현재 사용 중인 설계에 의한 이익이 그 설계에 본래 따르는 위험을 상회한다는 사실을 피고가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 설계상의 결함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바커기준은 1차적으로는 소비자기대기준을 고려하고, 이러한 소비자기대기준으로 결함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2차적으로 위험·효용기준을 채택한 것이다. 4. 제조물책임의 결함에 대한 종전 판례의 태도 종전 우리나라의 판례는 제조물책임과 관련하여 과실 책임에 근거한 불법행위의 범위를 이탈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견지해왔고, 결함의 개념이나 유형, 결함의 판단기준을 제시한 사례를 찾기도 어려웠다. 다만 결함에 대하여 대법원은 1992년 변압변류기 폭발사건에서 “제품의 구조, 품질, 성능 등에 있어서 현대의 기술수준과 경제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 또는 하자로 인해 소비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제조업자는 계약상의 배상의무와 별개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대판 1992.11.24, 92다18139). 또한 1995년의 TV 폭발사건(속초지방법원 1995.3.24, 94가합131)에서는 “현대의 기술수준과 경제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이라고 하여, 결함판단기준에 관하여 표면상으로 소비자기대수준을 언급하였다. 우리나라는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고 그에 관한 소송도 그렇게 많지 않고 아직까지 제조물책임법이 적용된 판례도 축적되어 있지 않아서 이번 판결이 향후 제조물책임에서 설계상의 결함에 대한 하나의 잣대 역할을 하리라 본다. 5. 대상판결의 검토 대상판결은 설계상 결함여부는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내용, 예상되는 위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 가능성, 대체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설계의 상대적 장단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 사회통념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 판결에서의 제조물은 제조물책임법 이전에 공급된 것이어서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의 결함으로 인한 책임은 제조자의 기대가능성을 전제로 한 과실 책임의 일환이라고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제조물책임법 제정 이후 설계상의 결함으로서「합리적 대체설계」의 판단기준과 표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만 제조물책임법은 2002.7.1. 이후 공급된 제품에 적용되기 때문에 제조물 계속 감시의무(동법 제4조 제2항)가 동법 시행 이전에 판매된 제품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가 검토되어야 한다. 제조물 계속 감시의무는 제조자가 부담하는 안전에 대한 기본의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므로 제조물책임법 시행 전에 판매된 제품에 관하여도 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설계상의 결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합리적’이라는 용어 속에는 합리적 인간의 행동관점에서 대체설계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또한 합리적인 대체설계라는 것은 결국 위험과 효용을 비교형량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기준에 의한 설계상의 결함을 판단함에는 몇 가지의 요소들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대체설계의 효용성의 문제로서 효용성이 우수하다면 해당제조물에 다소의 결함이 있다고 하여도 이를 결함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지시·경고상의 결함의 문제가 된다. 둘째, 개발위험의 항변과 관련하여 대체설계는 당시의 최고수준의 기술적 가능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대체설계에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하여야 한다. 기술적으로 대체설계의 채용이 가능하다고하여도 경제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넷째, 대체설계에 따른 새로운 위험에 대해서도 평가하여야 한다. 다섯째, 해당 제품에 부착된 지시 및 경고의 정도도 고려하여야 한다. 설계상의 위험에 대한 결정 여부는 제조물의 위험성과 효율성을 비교·교량하여 결정하는 위험·효용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고, 결함 있는 제품을 공급한 제조자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개발, 설계과정에서부터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거래의무에 대한 위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험효용기준에 관해 제품의 효용이 위험을 상회하는데 따른 입증책임은 제조자 측에서 부담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설계상의 결함은 제조상의 결함과는 다른 별도의 이익과 불이익의 평가가 요구되고, 이는 과실에 근거한 책임과 동일한 일반적인 목표를 성취한다고 설명되기도 하는 것이다.
2004-02-09
공소장변경과 공소시효만료여부의 계산
Ⅰ. 사안 검사는 ‘피고인이 1995년 7월 하순 무렵 한 병원 지하 문서고에 들어가 병록 지 22매를 절취하였다’는 내용을 공소사실로 하여 2000. 2. 20.(범죄행위시로부터 약 4년 7월 경과) 피고인에 대하여 절도죄(법정형이 6년 이하이므로 공소시효는 5년이다. 형법 제229조,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4호)로 공소를 제기하였다가 항소심 계속 중인 2001. 3. 21.(범죄행위시로부터 약 5년 8월 경과)에 이르러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종전의 절도죄에서 ‘피고인이 1995년 7월 하순 무렵 한 병원 지하 문서고에 들어가 건조물에 침입하였다’는 내용의 건조물침입죄(법정형이 3년 이하이므로 공소시효는 3년이다. 형법 제229조,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5호)로 변경하는 공소장변경신청을 하자, 항소심 법원은 2001. 3. 22.(범죄행위시로부터 약 5년 8월 경과)에 열린 제4회 변론기일에서 검사의 공소장변경신청을 허가한 후 공소장 변경을 이유로 피고인에 대한 제1심판결을 파기한 다음 변경된 공소장기재 공소사실에 대한 범죄의 증명이 있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하였다. 피고인이 상고하였다. Ⅱ. 재판요지(파기자판) ⓐ 공소장 변경이 있는 경우에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고 공소장 변경시를 기준으로 삼을 것은 아니지만(대법원 1982. 5. 25. 선고 82도535 판결, 1992. 4. 24. 선고 91도3105 판결 등 참조), ⓑ 공소장변경절차에 의하여 공소사실이 변경됨에 따라 그 법정형에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변경된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이 공소시효기간의 기준이 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 공소제기 당시의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면 공소제기 당시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변경된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면 공소제기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는 공소시효의 완성을 이유로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 (중략) 피고인에 대한 변경된 공소사실인 건조물침입죄의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이어서 범죄행위의 종료일로부터 3년의 기간이 경과하면 그 공소시효가 완성됨이 명백한 바(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5호), 피고인에 대하여 건조물침입의 범죄행위가 종료된 때로부터 3년이 훨씬 지난 2000. 2. 20. 이 사건 공소가 제기되었으므로 이 사건 공소 제기 당시 변경된 공소사실인 건조물침입죄에 대하여는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이다. (중략) 검사의 항소이유는 제1심판결에는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는 것이나 ⓓ 검사가 원심에 이르러 피고인에 대한 공소장을 변경함으로써 심판의 대상이 달라지게 되어 제1심판결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이를 파기하기로 한다. Ⅲ. 평석1. 판례의 취지: 본 판결과 종래의 3개의 판결(1981.2.10. 선고 80도3245 판결 사기, 배임 공1981, 13706; 1982.5.25. 선고 82도535 판결 간첩, 일반이적, 반공법위반, 국가보안법위반 공1982, 623; 1992.4.24. 선고 91도3105 판결 분묘발굴, 매장및묘지등에관한법률위반 공1992, 1770)은 모두 “ⓐ 공소장 변경이 있는 경우에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더욱이 본 판결의 재판요지 ⓓ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공소사실이 변경되면 심판의 대상은 변경후의 ‘공소장기재 공소사실’(이하 ‘공기실’로 약칭함)이 될 터인데 왜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새롭게 심판의 대상으로 등장한 공소장 변경시’가 아니라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므로 차후의 분석을 진행하기에 앞서 이 두 가지 의문을 좀 더 분명히 밝혀 볼 필요가 있다. “ⓒ 공소제기 당시의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면 공소제기 당시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변경된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면 공소제기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는 공소시효의 완성을 이유로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2001년의 본 판결에 주목하고 여기에 종전의 3개의 판결내용을 더하여 분석하면 대법원의 의도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1954년에 제정된 신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방어권강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당사자주의를 대폭 도입하고 그 일환으로 공소장변경제도를 도입하였으므로 이제 심판의 대상은 공기실(공소장기재 공소사실)로 설정하여야 한다. 만약 공소장변경으로 공기실이 변경되면 ‘변경후의 공기실’이 심판의 대상으로 전면(前面)에 부상(浮上)한다. 따라서 소송조건의 존부는 원칙적으로 변경후의 공기실을 대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재판요지 중 ⓑ의 부분이 이점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공소장 변경이 있는 경우에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 부분의 판시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것은 ‘변경전의 공기실’(당초의 공기실)에 대한 공소제기의 효력, 특히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력(법 제253조 제1항)이 ‘변경후의 공기실’에 대하여도 미치므로 변경후의 공기실에 대한 공소시효만료여부는 ‘공소시효의 기산점인 범죄행위 종료시로부터 기소시’까지를 계산(이른바 기소시 기준설)하면 되고 ‘공소시효의 기산점인 범죄행위 종료 시로부터 변경시’까지를 계산할 것(이른바 변경시 기준설)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 공소장 변경이 있는 경우에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다소 애매한 표현의 정확한 의미는 바로 ‘기소시에 발생하는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변경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서뿐만 아니라 변경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도 미친다’는 취지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판례의 입장은 ‘심판의 대상론’과 관련이 있음에 틀림없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심판의 대상론’에 기울어진 입장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2. 심판대상론과의 관련성: 심판의 대상에 관한 공소사실대상설과 소인대상설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검토하여 한국 대법원이 심판대상론에 임하는 입장을 가늠하여보자. 현행법상의 심판의 대상에 관하여 구법시대와 같이 공소사실대상설을 취하면 소송계속(訴訟繫屬)되는 것은 공소사실이기 때문에 공소의 제기가 있은 후 공소사실이 변경되어도 ‘변경전의 공기실’(최초의 공기실)과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있는 전범위(이른바 실체개념으로서의 ‘공소사실’)에 걸쳐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이 미친다. 예를 들어 변경전의 공기실이 절도이고 변경후의 공기실이 단순횡령인 경우 범행종료시로부터 단순횡령으로 변경시까지의 기간을 계산하면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어도 절도에 대한 공소제기로 발생한 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절도와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단순횡령에 대하여도 미치므로 변경후의 공기실인 단순횡령에 대한 공소시효만료여부는 범행종료시로부터 절도에 대한 공소제기시까지만 계산(기소시 기준설)하면 되고 범행종료시로부터 변경시까지 계산할 필요가 없다. 다음에 순수한 소인(訴因)(현재의 공기실)대상설의 입장에 서서 이 문제에 접근하여 보자. ‘공소제기의 효력’(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그 일부이다)이 미치는 것은 소송계속 된 당해 소인에 한정된다. 이 설에 의하면 공소장이 변경되면 변경후의 공기실에 대하여 새로 공소가 제기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게 된다. 따라서 변경전의 공기실에 대한 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변경후의 공기실에까지 미치지 아니한다. 공소장변경으로 새로운 심판의 대상으로 부상한 변경후의 공기실에 대하여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는지 여부는 범행종료시로부터 새로운 심판의 대상이 등장한 시기, 즉 변경시까지를 계산하여 판단(변경시 기준설)하여야 한다. 소인대상설론자가 과연 이렇게 주장할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순수한 소인대상설의 이념형은 논리구조상 위와 같이 주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면 이제 한국 대법원의 심판대상론은 어떤 것인지를 음미하여 보자. 3. 판례설의 음미: 공소사실이 변경되면 ‘변경된 공소사실(변경후의 공기실: 필자)에 대한 법정형(이른바 법정형설)이 공소시효기간의 기준이 된다’는 재판요지 ⓑ 부분은 소인(정확히는 공기실)대상설에 기울어진 판시이다. 그러나 ‘기소 시에 발생하는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변경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서뿐만 아니라 변경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도 미친다’는 재판요지 ⓐ 부분의 판시는 다시 구법시대의 공소사실대상설의 사고방식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여기서 심판대상에 관한 한국판례의 입장을 “(현재의) 공기실은 현실적 심판의 대상이고 현실적 심판의 대상과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부분은 ‘잠재적 심판의 대상’”이라고 보는 이원설로 분석(예를 들어 이재상, 『형사소송법(제5판)』(박영사, 1996), 379쪽)할 소지가 생긴다. 그러나 재판요지 ⓒ 부분의 판시는 ‘잠재적 심판의 대상론’의 면모를 손상시키는 내용의 것이다. 왜냐하면 ⓒ 부분의 판시는 결과적으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부분(변경후의 공기실)은 잠재적으로도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 부분의 논증은 ‘변경후의 공소사실만을 놓고 공소시효완성여부를 따져 볼 때 최초의 기소시점에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라면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과를 부여할 대상이 이미 소멸하였으므로 수소법원으로서는 면소판결을 선고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취지인데 그 논증 속에는 이미 ‘변경후의 공기실’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소인(정확히는 공기실)대상설’의 면모가 풍기고 있다. ⓐ 부분의 판시에서 드러나듯이 ‘판례가 심판의 대상에 관하여 이원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석의 유효성이 점차 희석화되고 있는 실정에 있다’는 점이다.
2002-02-21
계약해제를 이유로 한 대금반환청구소송의 소송물
【사실관계】 X는 Y와 특정 토지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일정한 매매대금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Y의 기망으로 인해 매매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유를 간과하고 체결하였다고 하여, X는 Y를 상대로 당해 계약을 해제하고, 원상회복으로 기지급한 매매대금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전소). 이에 대해서는 Y의 기망행위는 인정되지 않고 당해 매매계약이 유효하다는 이유에서 X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내려지고 확정되었다. 그러자 X는 또다시 당해 계약이 유효함을 전제로 Y의 후발적인 이행불능을 원인으로 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그 원상회복으로서 기지급한 매매대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후소). 이러한 후소는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는 가가 문제되었는데, 원심은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에서 전소판결의 기판력이 후소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Y 상고, 파기환송. 【판지】 “계약해제의 효과로서의 원상회복은 부당이득에 관한 특별규정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고(대법원 1997.12.9. 선고 96다47586 판결 등 참조), 부당이득반환청구에서 법률상의 원인 없는 사유를 계약의 불성립, 취소, 무효, 해제 등으로 주장하는 것은 공격방법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그 중 어느 사유를 주장하여 패소한 경우에 다른 사유를 주장하여 청구하는 것은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다…X가 전소에서 주장하였던 무효 또는 기망에 의한 의사표시의 취소의 효과로서 구하였던 매매대금반환의 성질은 부당이득반환이라고 할 것이고, 후소에서 계약해제의 효과인 원상회복으로서 구하는 것도 같은 성질의 것이라 할 것이므로, 이는 결국 전소의 소송물인 부당이득반환 청구권의 존부에 관한 공격방법을 후소에 다시 제출하여 전소와 다른 판단을 구하는 것이어서 전소의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심이, 그 소송물이 서로 다르다고 단정하여 X의 이 사건 청구를 인용한 것은 소송물이나 기판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질렀다 할 것이다.” 【평석】 판지에 찬성한다. 1. 본판결의 의의 본판결은 소송물이나 기판력의 범위확장에 관해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인색하다고도 할 수 있는 판례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획기적인 선례라고 할 수 있다. 판지는 간단히 말해 전소는 기망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와 그에 따른 대금반환청구이고, 후소는 후발적인 이행불능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와 그에 따른 대금반환청구이지만, 양소의 소송물이 같으므로 후소는 전소의 기판력에 저촉된다는 입장이다. 이 평석에서는 본판결이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을 동일한 것으로 본 이유를 고찰하고, 약간의 사견을 추가할 예정이다. 단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소송물의 기준이 그대로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를 정하는 기준과 항상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후자가 넓을 수도 있지만, 일단 소송물이 같다면 당연히 후소는 전소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 판례는 소송물=기판력의 객관적 범위(민사소송법202조1항)라는 도식을 존중하는 입장이므로, 기판력의 저촉을 도출하기 위해 소송물의 동일성을 도출하려는 논리를 구사하려는 경향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도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에 관해서는 추후에 논하기로 하고, 일단 이 평석에서는 본판결에서 문제된 소송물의 동일성 여부에 관해 논의해 보기로 하겠다. 아울러 이 사건에서는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관해서도 문제되었다. 즉 매매계약의 이행불능이라는 사유는 전소판결의 기준시 후에 발생한 것인가의 유무 그리고 그러한 사실의 존부에 관한 X의 과실의 유무에 관한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판결의 방론에서, “한편 원심은 부가적으로, X가 매매계약이 확정적으로 이행불능이 되었음을 전소의 변론종결일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설시하였는데, 판결의 기판력은 그 소송의 변론종결 전에 있어서 주장할 수 있었던 모든 공격 및 방어방법에 미치므로(대판 1980.5.13, 80다473) 전소의 변론종결일 전의 이행불능을 내세워 해제권을 행사하는 것은 기판력에 의해 차단된다”고 판시하였다. 2. 소송물의 동일성 여부 - 판례의 입장 - 전소의 소송물과 후소의 소송물이 같다면 당연히 후소는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의해 각하를 면할 수 없다(전소판결 확정전이라도 중복제소가 되어 각하된다). 소송물은 전부는 아니지만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나 중복제소의 문제를 해결시 중요한 하나의 기준이 됨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소송물의 기준에 관해서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구소송물론의 논쟁이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본판결과 유사한 판례의 입장을 통해 본판결이 내려진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소송물론에 관해서는 과연 누구를 위한 논쟁인가, 논쟁다운 논쟁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단순히 논리성·체계성을 강조하는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판례가 구소송물론을 취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기타 법원의 실무운영을 둘러 싼 문제)가 발생하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논해야 한다고 평가하고 싶다. 먼저 본판결에서 인용하고 있는 대판 1997.12.9, 96다47586에서는 “계약해제의 효과로서의 원상회복의무를 규정한 민법 제548조 제1항 본문은 부당이득에 관한 특별 규정의 성격을 가진다”고 판시하고 있다(이 판결은 대판 1962.3.29, 61다1429에 따른 것이지만 어느 쪽도 아쉽게도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이유가 설시되어 있지 않다). 본판결은 이를 토대로 계약해제에 의한 원상회복청구는 부당이득반환청구이고, 부당이득반환의 이유인 계약의 불성립, 취소, 무효 등은 공격방어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에 관한 이러한 해석은 다른 판례를 통해 생성·발전된 것일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판례에는 직접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의 소송물을 다룬 것이 없다. 부당이득은 아니지만 본판결과 비슷한 논리를 전개한 것으로 다음의 두 가지 부분에 대한 판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등기청구소송에 관한 것이다. 즉 대판 1981.12.22, 80다1548에서는 “말소등기청구사건에 있어서의 소송물은 당해 등기의 말소등기청구권이고 그 동일성식별의 표준이 되는 청구원인, 즉 말소등기청구권의 발생원인은 당해 ‘등기원인의 무효’에 국한되는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또한 대판 1982.12.14, 82다카148,149에서도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전소의 변론종결 전까지 주장할 수 있었던 무효사유는 그것이 무권대리행위, 불공정한 법률행위이거나 또는 통모허위표시에 의한 매매무효를 이유로 하거나 간에 다같이 청구원인인 등기원인이 무효임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독립된 공격방법에 불과하여 서로 별개의 청구원인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말소등기청구소송에만 국한된 것이지만, 아무튼 현재 확고한 선례로 자리잡고 있다. 부당이득반환청구권과 말소등기청구권의 관계에 대해, 판례가 말소등기청구라는 하나의 권리관계에 대해 초점을 맞춘 입장이라면, 판례가 전자의 경우에도 동일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다음으로 행정소송에 관한 것이지만, 대판 1992.2.25, 91누6108에서도, “과세처분무효확인소송의 경우 소송물은 권리 또는 법률관계의 존부확인을 구하는 것이며, 이는 청구취지만으로 소송물의 동일성이 특정된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당사자가 청구원인에서 무효사유로 내세운 개개의 주장은 공격방어방법에 불과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 판례도 그 근거로 하는 것은 앞서 본 말소등기청구에 관한 법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특히 이혼소송의 소송물을 민법 제840조 6호로 보고, 동조 1호 내지 5호는 예시적인 사유로 해석해 나가고 있는 점에 입각하여, 대판1963.1.31, 62다812와의 대비에서 본 대판1994.5.10, 93므1051에서 도 위와 같은 판례의 입장이 엿보인다고 생각한다. 3. 사견 - 본판결의 사정(射程) 본판결은 결국 위와 같은 두 가지 부분에 관한 판례의 입장이 배경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판결로 인해 말소등기청구권, 과세처분무효확인청구권 그리고 부당이득반환청구권에 관해 동일한 처리를 제시한 것이 되었다. 위와 같은 판례의 입장에 관해서는 소송물론의 입장에서, 판례는 신소송물론 특히 일지설을 옹호하는 입장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판례는 어디까지나 구소송물론의 입장에서 소송물을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소등기청구에 관한 전게 대판 1981.12.22, 80다1548의 해설(노경래, 대법원판례해설제1호138면)도 “구소송물론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소송물 자체와 그 발생원인이 되는 청구원인 및 청구원인을 이유있게 하는 공격방법을 상호 기능적으로 구분하므로서” 라고 평가하고 있다. 구소송물론에 입각하여 소송물의 동일성을 판단하되, 소송물이 동일하다면 그 이유가 되는 공격방어방법이 달라도 동일한 권리관계임을 인정한다는, 말하자면 특정 권리관계에 관해 소송물의 범위를 넓게 본다는 입장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일본의 판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본판결의 경우, 일본의 대심원판결1928.8.1, 민집7-687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영향이 있다 하여 본판결의 의의가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판례는 앞서서도 지적했지만 논리일관된 입장이고, 이러한 흐름속에 나온 것이 본판결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판결의 실천적인 의의는, 앞으로 대법원의 소송물에 관한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본판결을 포함한 판례의 입장은 특정 청구권(말소등기청구권 또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 등)이 주장되고 그 청구권을 근거짓는 또다른 실체법상의 청구권이 없는 경우라면, 그 청구권을 주장하는 소의 소송물은 그 공격방어방법에 관계없이 동일하다는 견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리에 선다면 본판결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 해결에 있어 귀중한 선례로 작용할 것이다. 먼저 아직 선례는 없지만, 임대차종료를 이유로 하는 부동산의 인도청구 시, 수개의 종료원인이 있어도 그것은 독립된 공격방어방법에 불과하고 소송물은 하나로 판단해야 하는 근거로 작용할 것이다. 다음은 기존의 판례의 입장으로서 말소등기청구와는 달리 이전등기청구소송에 관해서는 각 등기원인마다 소송물이 별개라는 입장(대판 1997.4.25, 96다32133 등), 신체의 상해를 이유로 하는 불법행위소송시 손해를 적극적, 소극적 재산상의 손해 및 정신적 손해로 3분하는 입장(대판 1976.10.12, 76다1313 등) 등은 앞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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