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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금융·보험
민사일반
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민사소송·집행
조세·부담금
가집행선고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에 있어서 원천징수세액의 처리
Ⅰ. 서론 원천징수란 소득금액을 지급하는 자(원천징수의무자)가 그 상대방(원천납세의무자)으로부터 세액을 과세관청을 대신하여 징수하는 것을 말한다. 원천납세의무자는 국가에 대하여 조세법상의 법률관계를 갖지 않으나 원천징수를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원천징수의무자가 소득금액을 지급하면서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지급하면 원천징수의무자의 원천납세의무자에 대한 채무는 모두 변제로 소멸한다(대법원 2001. 7. 10. 선고 2001다16449 판결). 원천납세의무자가 원천징수의무자로부터 지급받은 소득이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으로 확정된 경우 원천납세의무자의 부당이득반환의무 범위가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실제 수령금액인지, 원천징수세액을 포함한 전체 소득금액인지에 대한 다툼이 있다. 이는 잘못 징수·납부된 원천징수세액에 대한 환급청구권과도 관련된 문제다. Ⅱ. 원천징수와 부당이득 반환 1. 원천납세의무자의 부당이득반환의무 범위 원천납세의무자에게 지급된 소득이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경우 그 반환은 근본적으로 부당이득 반환이다. 원천납세의무자는 실제로 지급받은 돈을 반환하면 되고 원천징수세액으로 공제된 돈에 대하여는 아무런 이득을 취득하지 않았으므로 반환의무가 없다. 이는 변제자가 채무자를 대위하여 채무자의 제3자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였는데 그 채무가 존재하지 아니하여 대위변제가 성립하지 않은 경우 채무자에게 변제금원 반환의무가 없는 것과 같다.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8다290436 판결은 주식회사가 법률상 원인 없이 대표이사에게 특별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를 지급하였다가 원천징수세액을 포함한 전액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한 사안에서 대표이사는 원천징수세액을 제외하고 실제 지급받은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2. 원천징수세액의 처리 가. 국가의 부당이득반환의무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납세의무자로부터 원천징수대상이 아닌 소득에 대하여 세액을 징수·납부하였거나 징수하여야 할 세액을 초과하여 징수·납부하였다면 국가는 원천징수의무자로부터 이를 납부 받는 순간 아무런 법률상의 원인 없이 그 원천징수세액 상당의 부당이득을 보유하게 된다(대법원 2002. 11. 8. 선고 2001두8780 판결). 따라서 국가는 원천징수의무자에게 원천징수세액 상당의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한다. 나. 환급청구권의 귀속 관계 국세기본법은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징수하여 납부한 세액에서 환급받을 환급세액이 있는 경우 그 환급액은 그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징수하여 납부하여야 할 세액에 충당하고 남은 금액을 환급하되 그 원천징수의무자가 그 환급액을 즉시 환급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나 원천징수하여 납부하여야 할 세액이 없는 경우에는 즉시 환급한다고 정하고(제51조 제5항) 환급금은 납세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고 정하면서(제51조 제6항) '납세자'란 납세의무자와 세법에 따라 국세를 징수하여 납부할 의무를 지는 자를 말한다고 정하고 있다(제2조 제10호). 이에 따르면 잘못 징수·납부한 원천징수세액에 대한 환급청구권은 납세자인 원천징수의무자에게 귀속되고 원천납세의무자에게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대법원도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납세의무자로부터 잘못 징수·납부한 원천징수세액에 대한 환급청구권은 원천납세의무자가 아닌 원천징수의무자에게 귀속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2. 11. 8. 선고 2001두8780 판결). Ⅲ. 원천징수와 가지급물 반환 1. 대상판결: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5다35270 판결 가. 사안 지급자가 제1심의 가집행선고에 따라 임의로 지연손해금 100을 가지급하면서 원천징수세액 20(기타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율 20%)을 공제한 나머지 80을 실제로 지급하였는데 상소심에서 지연손해금 70이 의무 없는 것으로 확정되고 그 부분에 대한 가집행선고가 취소됨에 따라 가지급물 반환범위가 문제된 사안이다. 나. 판시요지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지연손해금의 현실적인 지급은 원천징수의무가 발생하는 소득금액의 지급에 해당하고 지급자가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라 지연손해금을 실제로 지급하면서 공제한 원천징수세액도 가지급물에 포함된다. 2. 평석 가. 가지급물 지급과 원천징수의무 1) 대상판결의 판시요지 수급자가 가집행선고 판결에 의하여 지급자로부터 실제로 지연손해금에 상당하는 금전을 수령하였다면 비록 본안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의 실현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정도로 성숙·확정된다고 해야 하므로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지연손해금의 현실적인 지급은 원천징수의무가 발생하는 소득금액의 지급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제된 원천징수세액 20을 포함한 지연손해금 100이 가지급물이다. 2) 검토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임의지급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천징수세액을 포함한 전체 소득금액을 실제로 지급하여야 하고 소득세액 징수는 본안판결 확정 후 다른 절차를 통해야 한다는 것은 원천징수세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상판결의 판시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하여는 판례평석이 공간되었고 실무상 대상판결의 적용에 의문이 없다. 나. 가집행선고의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과 원천징수세액 1) 가지급물 반환의 법적 성질 가집행선고에 따른 변제의 효력은 그 가집행선고가 취소되는 것을 해제조건으로 발생한다(대법원 1995. 12. 12. 선고 95다38127 판결). 따라서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라 금원을 지급받았다가 그 가집행선고가 실효됨에 따라 금원의 수령자가 부담하게 되는 원상회복의무는 성질상 부당이득 반환채무다(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1다81320 판결). 2) 대상판결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방법 가지급물 액수가 100(= 실제로 지급된 소득 80 + 원천징수세액 20)이므로 이 금액에서 정당한 지연손해금 30(= 실제로 지급된 소득 중 정당한 24 + 납부된 원천징수세액 중 정당한 6)을 뺀 나머지 70이 가집행선고 취소에 따라 법률상 원인이 없게 되는데 이 70은 실제로 지급된 소득 56(= 80-24)과 과다하게 납부된 원천징수세액 14(=20-6)로 구성된다. 따라서 수급자가 실제로 지급받은 가지급물 중 56을, 국가가 원천징수세액으로 납부된 가지급물 중 14를 각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 대상판결에서는 지급자가 원천징수세액 14를 국가로부터 환급받기로 하여 가지급물 반환신청에서 제외한 까닭에 이 부분 가지급물 반환주체에 관하여는 명시적인 판시가 없었다. 3) 검토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만을 지급하더라도 전체 소득금액 지급채무에 대한 변제로 유효하고(대법원 2001. 7. 10. 선고2001다16449 판결) 이는 가집행선고에 따른 지급이라 하여 달리 볼 것이 아니다. 따라서 원천징수세액 20을 포함한 전체 소득금액이 지급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때 원천징수세액 20은 실제로 지급된 것이 아니라 지급된 것으로 인정될 뿐이므로 그 인정효과가 상실되었을 때 실제로 지급된 것과는 달리 취급된다. 대위변제가 성립하지 않은 경우 채무자가 아니라 변제금원을 수령한 제3자가 변제자에 대하여 부당이득 반환의무를 부담하는 것처럼(대법원 1990. 6. 8. 선고 89다카20481 판결) 가집행선고가 취소되어 가지급물 지급의 변제효과가 상실된 경우 원천징수세액을 실제로 수령한 국가가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공제된 원천징수세액도 가지급물에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고 하여 수급자에게 공제된 원천징수세액에 대하여도 가지급물 반환의무가 발생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대상판결은 원천징수세액 부분도 가지급물 지급의 효력이 있고 가집행선고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대상이 된다고 본 것이고 이를 종래의 대법원판결에 비추어보면 지급자에 대한 원천징수세액 상당의 가지급물 반환의무(세액환급의무)는 국가에게 있음을 전제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상판결이 별다른 설명 없이 "공제한 원천징수세액도 가지급물에 포함된다", "피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라고 설시한 까닭에 수급자의 가지급물 반환의무가 공제된 원천징수세액에까지 미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어 아쉽다. Ⅳ. 결론 수급자가 지급자로부터 지급받은 소득을 법률상 원인이 없는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할 경우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실제 수령금액을 반환하면 되고 이는 가집행선고의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에 있어서도 같다.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5다35270 판결은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수급자에 대한 실제 금원의 지급과 국가에 대한 원천징수세액의 납부가 모두 가지급물 지급에 해당하고 가집행선고 판결이 취소된 경우 가지급물 반환의무로 수급자는 실제로 받은 돈을, 국가는 납부된 원천징수세액을 지급자에게 반환(환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 이정훈 고법판사(서울고법)
원천징수세액
가지급물반환
가집행선고취소
이정훈 고법판사(서울고법)
2020-11-09
민사일반
상속 시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의 적용 여부
- 대법원 2017. 1. 12. 선고 2014두43653 판결 - 1. 사실관계 A그룹 회장이자 원고의 부(父)인 B는 1975년 12월 27일경부터 A그룹 부회장인 C 등 23명에게 A산업 주식회사의 주식 13만3265주(이하 ‘이 사건 주식’)를 명의신탁하였다. B가 1996년 11월 2일 사망함에 따라 원고는 이 사건 주식을 상속하였으나 원고 앞으로 명의개서하지 않았다. 피고들은 구 상속세 및 증여세법(2002. 12. 18. 법률 제6780호로 개정된 것, 이하 ‘구 상증세법’) 제41조의2 제1항(이하 ‘이 사건 규정’), 부칙 제9조를 적용하여 원고가 2005년 1월 1일 명의수탁자인 C 등 23명에 대하여 증여한 것으로 의제하여 위 C 등 23명에게 각 증여세를 부과하고, 명의신탁자인 원고에게도 연대납세의무자로서 각 증여세(이하 ‘이 사건 각 처분’)를 부과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이 사건 규정 중 두 번째 괄호 안에 ‘그 재산이 명의개서를 요하는 재산인 경우에는 소유권취득일이 속하는 연도의 다음 연도 말일의 다음날을 말한다’고 한 부분(이하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은 명의신탁의 합의가 없더라도 증여의제 대상이 되도록 한 예외적인 규정으로서 주식을 취득한 자에게 명의개서를 할 특별한 의무가 부여되었다고 명확하게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어야 하는데, 주식이 명의신탁되어 명의수탁자 앞으로 명의개서가 된 후에 명의신탁자가 사망하여 주식이 상속된 경우에는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의 적용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3. 평석 가.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의 신설 경위 및 해석 원칙 (1) 신설 경위 2002년 12월 18일 법률 제6780호로 이 사건 규정이 개정되기 전에는 ‘주식 등 부동산 이외의 재산의 소유명의를 실제소유자가 아닌 사람 명의로 주주명부 등에 등재한 경우’, 즉 본래적 의미의 명의신탁만이 증여의제 규정의 적용대상이었고, 대법원은 이 경우 ‘실질소유자와 명의자가 명의신탁 합의를 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96. 5. 31. 선고 95누13531 판결 등 다수). 그런데 주주가 주식을 양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명의개서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과세당국이 주식 등 변동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고, 장기간 명의개서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그 실질이 명의를 신탁한 경우와 같으므로, 이러한 명의개서해태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위해 비록 명의신탁 합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를 명의신탁으로 의제하여 과세를 강화하기 위하여 2002년 12월 18일 이 사건 규정의 두 번째 괄호 안으로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이 신설되었다. 다만 선의의 양도자를 보호하기 위해 양도자가 양도소득세 또는 증권거래세의 과세표준 등과 소유권변경내역을 과세관청에 신고하는 경우 조세회피목적의 추정이 번복되어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하였다(구 상증세법 제41조의2 제2항 단서). (2) 해석 원칙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은 주식취득의 상대방이 주식취득자와 명의신탁 합의를 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귀책사유가 적은 경우에도 명의신탁 합의를 한 명의수탁자의 경우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불이익을 가하는 특별규정이라는 점에서 이를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유추해석이나 확장해석은 엄격하게 절제되어야 한다. 나.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이 상속으로 주식을 취득한 경우에도 적용되는지 여부 (1) 의의 당초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은 주식을 양수한 자가 장기간 명의개서를 하지 아니하고 주식 양도인 명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를 적용대상으로 하여 신설된 규정이므로, 그 입법취지상 이미 명의수탁자 앞으로 명의개서가 된 후에 명의신탁자가 사망하여 주식이 상속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 (2) 입법취지 등을 고려한 해석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을 입안한 기획재정부에서 작성한 2002 간추린 개정세법을 보면, 그 입법취지를 “매매에 의하여 주식의 소유권을 취득하였음에도 명의개서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실질이 명의를 신탁한 경우와 같으므로 이를 명의신탁으로 의제하여 과세를 강화하되, 선의의 양도자에게 증여세가 과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식양도에 따른 양도소득세 또는 증권거래세를 신고하는 경우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여 ‘매매’로 주식을 취득한 경우를 적용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세청이 2011년 5월 20일 신설한 상증세법 기본통칙 45조의2~4도 “그 소유권 취득일이 속하는 연도의 다음 연도 말일까지 실제 소유자 명의로 명의개서를 하지 아니하고 종전소유자의 명의로 둔 경우에는 취득일이 속하는 연도의 다음연도 말일의 다음날에 종전소유자에게 명의신탁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여,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이 취득자가 종전소유자에게 명의신탁한 것으로 보아 적용되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다. 또한,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의 입법 당시 선행 입법례인 부동산의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제10조 및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 제2조 제1항이 3년간 장기 미등기시 명의신탁과 동일하게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점이 고려되었는데, 부동산 장기미등기로 인한 과징금의 경우 소유권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한 자에 한하여 부과되고 상속으로 인한 취득의 경우는 과징금 부과대상에서 제외되는 점과의 균형상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도 상속으로 인한 취득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3) 상속 시 적용된다고 볼 경우의 문제점 만약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이 상속으로 주식을 취득한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볼 경우 다음과 같은 법리적 모순 및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째로, 기존 명의신탁 관계에서 명의신탁자가 사망하면 상속인과 기존 명의수탁자 사이에도 위 명의신탁 관계가 그대로 승계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대법원 1981. 6. 23. 선고 80다2809 판결 등 다수)인데, 만약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이 상속으로 주식을 취득한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본다면 상속인이 실명전환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존 명의신탁 관계가 그대로 존속함에도 불구하고 상속인과 기존 명의수탁자 사이에 재차 새로운 명의신탁이 성립한 것으로 의제되는 모순된 결과가 초래된다. 둘째로, 기존 명의수탁자는 최초 명의신탁 시 이미 1차례의 증여세 납세의무를 부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의신탁자가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발생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재차 증여세를 부담하게 된다면, 이는 단일한 행위(최초 명의신탁)에 대하여 추가로 담세력을 인정할 여지가 없음에도 중복된 납세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서 이중과세에 해당한다. 특히 여러 차례의 상속이 일어난 경우를 가정하면 명의수탁자로서는 증여세를 3차례 혹은 그 이상 부담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되는데, 현재 이러한 경우를 예정한 감면규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셋째로, 구 상증세법 제41조의2 제2항 단서는 ‘선의의 양도자’의 경우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의 적용을 스스로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고 있는데 반해 기존 명의신탁 관계가 상속으로 승계된 경우에 대해서는 그러한 배제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이 상속으로 주식을 취득한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볼 경우 기존 명의수탁자에게는 명의신탁자의 상속인으로 하여금 상속인 명의로 명의개서를 할 것을 강제할 어떠한 권원도 없음에도, 상속인이 명의개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증여세를 재차 부담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여 자기책임의 원칙에 반하여 부당하다. 넷째로, 2015년 12월 15일 법률 제7010호로 개정된 상증세법 제45조의2 제3항은 명의개서해태 시에도 조세회피목적이 추정되지 않아 과세가 배제되는 경우로서 기존의 일정한 요건을 갖춘 ‘양도’ 외에 일정한 요건을 갖춘 ‘상속’의 경우도 추가로 신설했고, 위 개정법 시행 이후 신고하는 분부터 적용되는데(부칙 제3조 제2항), 이는 창설적 규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 결론 대상판결은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의 경우 명의신탁 합의가 없더라도 증여의제 대상이 되도록 한 예외적인 규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따라서 주식을 취득한 자에게 명의개서를 할 특별한 의무가 부여되었다고 명확하게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이고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주식이 명의신탁되어 명의수탁자 앞으로 명의개서가 된 후 명의신탁자가 사망하여 주식이 상속된 경우에는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의 적용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함으로써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하려는 대법원의 입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연대납세의무
명의수탁자
상솟세및증여세법
명의신탁
상속
2017-03-27
重大明白性說의 墨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小考
Ⅰ. 判決要旨 하자 있는 행정처분이 당연무효로 되려면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이어야 할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하므로, 행정청이 위법하여 무효인 조례를 적용하여 한 행정처분이 당연무효로 되려면 그 규정이 행정처분의 중요한 부분에 관한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그에 따른 행정처분의 중요한 부분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귀착되고, 또한 그 규정의 위법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그에 따른 행정처분의 하자가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으로 귀착되어야 하는바, 일반적으로 조례가 법률 등 상위법령에 위배된다는 사정은 그 조례의 규정을 위법하여 무효라고 선언한 대법원의 판결이 선고되지 아니한 상태에서는 그 조례 규정의 위법 여부가 해석상 다툼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였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이상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조례에 근거한 행정처분의 하자는 취소사유에 해당할 뿐 무효사유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Ⅱ. 問題의 提起- 빈약한 行政行爲瑕疵論 행정법의 존재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 수 있다. 권리구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되는 행정작용 특히 행정행위의 위법성이나 적법성을 설득력있게 판단하는 것이 그 이유가 된다. 따라서 행정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行政行爲瑕疵論이다. 아무리 법치국가원리를 구체화한 것이 행정법이라고 강변한들, 行政行爲瑕疵論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법치국가원리는 바르게 구현될 수가 없다. 이처럼 行政行爲瑕疵論이 행정법의 시작과 마침을 함께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주소는 그것의 위상에 맞지 않다. 90년 중반에 나온 박흥대 판사의 논문(행정행위의 무효화 사유, 재판자료 제68집(1995.05): 행정소송에 관한 제문제(하) 181~219면)을 제외하고선 행정행위의 하자 전반을 다룬 문헌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行政行爲瑕疵論의 핵심적 물음인 무효의 판단기준과 관련해서도, 과거 대법원 1995.7.11. 선고 94누4615판결의 반대의견을 기화로 중대명백성설의 문제점에 관해 일련의 문헌에서 매우 활발히 논의되곤 하였지만, 그런 분위기가 이어지지도 않고 있다(최근의 문헌으로 金南辰, '중대·명백설'의 맹종에서 벗어나야, 법률신문 제3207호, 2003.10.2.). 빈약한 行政行爲瑕疵論은 다름 아닌 行政法의 機能不全을 야기한다. 독일의 경우 重大明白性說의 명백성기준에 대해선 예전부터도 Wolff, Forsthoff, Thieme, Martens 등 상당수의 학자들이 異議를 제기하였는데, 최근 다시금 Leisner가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Nichtigkeit eines Verwaltungsakts (nur) bei Offensichtlichkeit der besonders schweren Fehlerhaftigkeit? - Kritik an der Evidenzlehre zu § 44 Abs. 1 VwVfG, DO˙˙V 2007, 669ff.). 이에 필자는 최근의 비판을 바탕으로 일련의 글을 통해 중대명백성설을 타개하고 行政行爲瑕疵論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시도를 하였다(行政行爲瑕疵論의 改革에 관한 小考, 공법연구 제39집 제1호, 2010.10.; 行政行爲의 違法事由의 批判的 分析에 관한 小考, 법조 2010.11.). 이하에선 문제인식을 확산시킬 公論의 場을 만들기 위하여 기왕의 발표를 바탕으로 管見을 제시하고자 한다. Ⅲ. 重大明白性說의 出處 무효인 행정행위는 독일 행정법의 전형적인 법적 모습이다. 그것은 독일에서 행정재판의 발전에 맞춰 전개되어 왔다. Otto Mayer가 '무효인(nichtig) 행정행위'의 법형상을 처음으로 도입하였는데, 그는 무효와 취소의 구분을 일차적으로 귀속문제로 바라보았다(Deutsches Verwaltungsrecht Bd.Ⅰ, 3.Aufl., 1923, S.95). 일찍이 행정행위의 무효에 관해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한 Heike는 "행정행위가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조직권의 남용을 지니고 있을 때 그 행정행위는 무효가 된다"는 Hatschek의 기술을(Lehrbuch des deutschen und preußischen Verwaltungsrecht, 7.Aufl., 1931, S.102) 중대명백성설의 시발점으로 여겼다(Die Evidenztheori als heute maßgebliche Lehre vom nichtigen Verwaltunsakt, DO˙˙V 1962, S.416). 이를 계기로 중대명백성설이 등장하여 바이마르시대이후엔 그것이 일반적으로 문헌상으로 성립하였으며, 특히 1945년 이후 일련의 학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은 이미 1950년대에 통설의 위치를 점하였다. 아울러 많은 고등행정법원 역시 1950년대에 중대명백성설을 동원하였으며,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연방행정법원의 차원에서도 그것을 받아들였다(BVerwG, NJW 1971, 578). 이런 기조에서 독일 행정절차법은 중대명백성설을 일반원칙으로 명문화하였다(동법 제44조 제1항). 아울러 이런 독일의 흐름은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전해졌다. Ⅳ. 重大明白性說에서 明白性要請의 法的 問題點 판례는 하자가 외관상으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을 '하자의 명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선 인식주체의 불확정성, 명백성 의미의 불명확성, 명백성기준의 필요성 그리고 명백성기준의 위헌성의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다. 중대명백성설에선 명백성기준의 척도를 편견이 없는 판단능력이 있는 평균적인 관찰자로 삼는다. 이에 대해 Leisner는 내부자나 관련자가 아니고선 평균적 관찰자로선 제반 고려상황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중대명백성설이 심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또한 사실 기껏해야 법관이 제반 고려상황을 잘 안다는 점에서 명백성요구 규정 자체가 실행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하였다. Martens는 평균관찰자가 실제로 유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그런 인조인간의 정신능력한계로 여전히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Die Rechtsprechung zum verwaltungsverfahrensrecht, NVwZ 1990, S.624(625)). 판례는 하자가 외관상으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을 '하자의 명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독일 판례 역시 관례적으로 "중대한 하자상태(위법성)가 곧바로 떠올라야(나타나야) 한다"(Vgl. OVG Lu˙˙neburg DO˙˙V 1986, 382), "행정행위를 보면 위법성(하자상태)을 금방 알아 챌 수 있어야 한다"(Vgl. BSG 17, 83)고 판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선 '명백하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 자체가 명백하지 않다는 비판을 충분히 자아낼 수 있다. 명백성요구는 일반적으로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구체적으론 행정의 집행적 이익과 시민의 신뢰보호를 위하여 도입되었다. 그런데 주로 부담적 행정행위가 문제되는 상황에서 명백성요구는 일종의 행정청의 特權을 인정한 것이다. 법치국가원리가 무색할 정도로 하자가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행정청의 보호에 이바지하는 명백성기준을 추가로 요구한다는 것은 법치국가원리 자체를 도외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필칭 명백성기준에서 추구되는 시민의 신뢰보호는 헌법적 근거를 둔 행정법일반원칙인 신뢰보호원칙에 의해서 충분히 강구될 수 있다. 요컨대 명백성기준으로 말미암아, 중대한 하자의 행정행위라 하더라도 하자의 명백성이 부인되면 통용상의 특권·존속특권(이른바 공정력)을 누리는데, 이는 명백히 행정의 법률적합성의 원칙을 훼손한다(일찍이 Thorsten Quidde, Zur Evidenz der Fehlerhaftigkeit, DO˙˙V 1963, 339ff.는 부담적 행정행위의 경우엔 하자의 중대성만으로 충분하지만, 수익적 행정행위의 경우엔 중대성만으론 불충분하고 명백성기준이 추가되어 중대명백성설이 통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Ⅴ. 代案으로서의 新重大性說 무효기준과 관련하여 주요 행정법문헌상의 입장을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重大明白性說을 고수하는 입장과 그것에서 벗어난 입장으로 나뉘며, 또한 후자는 명백성요건보충설을 취하는 입장과 구체적 가치형량설을 취하는 입장으로 나뉜다. 필자로선 重大明白性說에서 명백성요청만을 삭제하여 重大性만을 유일한 무효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데 重大明白性說이 지배하는 우리나 일본에서의 기왕의 논의는 중대한 하자의 명백성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정작 하자의 중대성의 의미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었다(기왕의 重大性說의 내용역시 명칭에 상응하지도 않다). 판례 역시 "법규의 중요한 부분", "행정처분의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 규정"을 위반한 것을 하자의 중대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법규의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과연 설득력있게 획정하고 판단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충분한 근거의 제시가 없는 이런 식은 접근은 법원의 판단에 대한 설득력을 제고하지 못한다. 독일의 경우 현행 법질서와 그것의 바탕이 되는 공동체적 가치관과의 불일치가 존재하되, 그 모순이 행정행위가 (그것으로써) 의도한 법효과를 가진다고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때, 비로소 그 하자가 (심히) 중대하게 된다(BVerwG NVwZ 1984, 578). 이 같은 독일의 중대성인정공식은 우리의 경우에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새로운 접근을 강조하기 위해 필자는 이를 新重大性說이라 명명한다. 무효기준에서 독일처럼 중대명백성설을 취하는 유럽공동체법의 경우에도 중대성인정은 독일식의 접근을 한다). 그리고 여기서 판단규준과 관련해선, 일정한 법규정 그 자체와의 위반이 우선되진 않고, 전체적으로나 일정한 측면에서 법질서의 바탕이 되고 이를 지지하는 목적관과 가치관에 대한 위반 -특히 중요한 헌법원칙에 대한 위반- 및 이들에 대한 불일치(모순)의 정도가 결정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Vgl. BVerwGE 8, 332; BVerwG DVBl. 1985, 624). 그러나 중대성판단이 위반법규정의 위계에 전적으로 좌우되어선 아니 된다. 따라서 헌법위반만이 무효를 초래하진 않으며, 아울러 헌법위반 모두를 필연적으로 무효가 초래될 수밖에 없는 중대한 것인 양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독일의 경우 법치국가원리를 표방하는 그들 기본법 제20조 제3항과 같은 헌법규정의 위반 그 자체만으로도 바로 무효가 도출되진 않는다(BVerwG NJW 1984, 2113). 대법원 1995.7.11. 선고 94누4615 판결에서 다수의견(중대명백성설)과 반대의견(명백성보충요건설)은 공히 하자의 중대성을 인정하였고, 대상판결을 비롯한 근거법령의 위헌, 위법에 따른 행정처분의 효력이 문제된 사안에서도 판례는 하자의 중대성을 전제로 그것의 명백성만을 문제로 삼았다. 하지만 과연 행정행위의 잠정적인 통용이나마 용인하는 것이 법치국가원리적 질서와 요청과 불일치하다고 여겨질 정도, 그 하자가 '심히' 중대한 것인지 매우 의문스럽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법률적 수권이 결코 주어지지 않은 소위 無法의 행정처분(gesetzloser VA)이라도 결코 무효일 필요는 없으며, 위헌인 법률에 의거한 행정처분은 원칙적으로 기껏해야 취소가능할 뿐이라고 한다(Stelkens/Bonk/Sachs, VwVfG, §44 Rn.105). Ⅵ. 맺으면서-향상된 인식에 따른 전환요구 외국의 법제와 이론을 우리의 자산으로 만듦에 있어, 작가 崔仁勳의 「원시인이 되기 위한 문명한 의식」에서의 지적: "외국문화는 어떤 것이든지 받아들여도 좋다. 다만 原物形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요소로 분해해서 구조식을 알아내고, 다음에는 소재는 국산자재든 수입자재든 간에 완제품을 국내생산을 하여 저렴한 가격으로(즉, 정신적 낭비-외국숭배·물신숭배를 줄이고) 지식시장에 내놓는 일이 바른 태도일 것이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실정법의 존재로 重大明白性說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지만, 行政行爲瑕疵論이 전적으로 도그마틱에 맡겨져 있는 우리로선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것과 단호하게 결별할 수 있다(後發의 利點). 향상된 인식에 따른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
2010-11-08
공정위의 과징금감액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의 대상적격
Ⅰ. 서 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감액처분 자체에 대해 무효확인 내지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부적법하다고 본 대법원의 판단이 있었는바, 본 판결의 시사점, 특히 판시 중 ‘별도로 감액처분 자체의 무효확인 내지 취소를 구하는 소를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관해 논의의 초점을 두고자 한다. Ⅱ. 이 사건의 사실관계 및 대법원 판결의 요지 1. 사실관계 (1) 원고 등 5개 정유사의 군납유류 구매입찰 담합건에 대해 피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원고 등 5개 정유사의 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제19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2000년 10월17일 시정명령, 수명사실 공표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을 내림. (2) 그 중 과징금납부명령에 대해 원고 등 5개 정유사가 이의신청을 하자 피고는 2001년 2월28일 원고에 대해 과징금부과율 2.5%를 적용해 17,820,000,000원을 부과하는 등으로 과징금을 재산정함. 이에 원고는 서울고등법원 2001누4803호로 위 이의신청결과 재산정된 과징금납부명령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판결을 받았고, 대법원 2002두5627호로 상고했음. 대법원은 2004년 11월12일 선고로 ‘원고가 입찰담합에 참여자로서 가담한 부분에 관한 과징금을 산정함에 있어, 원고가 입찰계약을 체결한 부분보다 낮은 부과기준율을 적용하지 않은 것은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 재량권 일탈, 남용의 처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위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함. (3) 피고는 위 파기, 환송사건인 2005누489호 소송이 계속 중인 2004년 12월29일 원고가 단순 참가한 부분에 대해 1.9%의 과징금부과율을 적용해 당초 과징금 중 일부를 취소함으로써 14,369,000,000원의 과징금액이 남게 되었음. (4) 이에 원고는 2004년 12월29일자 감액처분 자체를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삼아, 위 과징금부과율 1.9%도 과다하다는 이유로 주위적으로는 위 감액처분 자체의 무효확인을, 예비적으로는 위 감액처분 자체의 취소를 구함. 2.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 판결은 “과징금 감액처분으로도 아직 취소되지 않고 남아있는 부분이 위법하다 하여 다투는 경우 항고소송의 대상은 당초 부과처분 중 감액처분에 의하여 취소되지 않고 남은 부분이고, 감액처분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법리는 감액처분 자체에 위법사유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그에 대한 별도의 쟁송수단을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당초 과징금 부과처분 중 취소되지 않고 남은 부분인 14,369,000,000원의 과징금 부과처분에 대한 항고소송이 서울고등법원 2005누489호로 계속 중인 사정 등을 감안하면, 이와 별도로 감액처분 자체의 무효확인 내지 취소를 구하는 취지의 이 사건 주위적겳뭔炷?청구에 관한 소를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의 이 사건 주위적겳뭔炷?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판시하여 같은 취지로 소각하 판결을 한 원심을 그대로 유지함 Ⅲ. 평 석 1. 과징금 부과처분의 직권취소 및 변경 종래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징금 부과처분에 대한 취소판결이 확정되면 비로소 과징금을 재산정하는 방식을 취해 왔으나, 최근에는 대법원에서 과징금 부과처분을 파기, 환송하는 판결이 선고되면 파기환송심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기존 부과금액 중 대법원 판결 취지에 비추어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일부 금액을 취소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공정위 2004. 12. 29.자 제2004-385호 의결 3개 정유사업자의 과징금 재산정의 건, 2007. 4. 10. 제2007-228호 의결 A㈜에 대한 과징금 납부명령 직권취소에 대한 건 등). 이는 장기간 행정소송에 따른 처분의 불확정한 상태를 조기에 확정하고, 고등법원 확정판결 선고까지 상당기간이 소요됨에 따라 발생하게 될 과징금 환급가산금 증가로 인한 국고 손실을 방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2. 과징금 감액처분의 대상적격 행정처분, 특히 조세 감액경정처분과 관련해 종래 판례는 일관되게 “감액경정처분은 당초처분의 일부 효력을 취소하는 처분으로, 소송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경정처분으로 인하여 감액되고 남아있는 당초의 처분”이라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2007. 10. 26. 2005두3585 판결 외 다수). 이에 대해 학설은 판례가 역흡수설 또는 일부취소설을 따른 것이라는 등의 논의를 해 왔고, 2002년 12월18일 개정 국세기본법 제22조의 2에 “세법의 규정에 의하여 당초 확정된 세액을 감소시키는 경정은 그 경정에 의하여 감소되는 세액 외의 세액에 관한 이 법 또는 세법에서 규정하는 권리겴퓜グ喚瓦?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는 명문규정을 두었다. 한편 공정거래법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으로 과징금을 재산정겙㉭輪求?처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초의 과징금 부과처분과 변경된 감액처분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문은 없고, 이에 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과징금 감액처분은 당초 부과된 과징금의 일부를 취소함으로써 피심인에게 이익이 되는 처분이라는 점에서, 원칙적으로는 그 취소를 구할 소의 이익이 없다고 봄이 타당함은 조세소송의 경우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과징금 부과처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된다는 특성을 고려할 때, 과징금 감액처분 자체에 대한 소제기를 인정해야 할 필요성은 조세소송의 그것과는 다를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하에서 “감액처분 자체의 무효확인 내지 취소를 구하는 소를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의미하는 바에 관해 살펴보고자 함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3. 감액처분 자체에 대한 대상적격을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 (1) ‘특별한 사정’에 관한 종래 논의 종래 조세소송에 관한 판례들은 감액경정처분 자체에 대해 별도의 소송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감액경정처분 자체에 위법사유가 존재하여 그에 대하여 별도의 쟁송수단을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유보를 하고 있다(대법원 1996. 7. 30. 95누6328 판결 등). 판례 중에는 감액경정처분이 국세심판소의 결정취지에 어긋나거나 혹은 그 결정 자체에 위법사유가 존재한다는 사유가 있으면 감액경정처분도 독립하여 취소소송의 대상이 되는 듯한 판시를 한 것도 있으나(대법원 1982. 3. 9. 80누253 판결 등), 위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는 경우에 관해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밝히고 있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2) 과징금 감액처분에 대해 ‘특별한 사정’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 조세의 감액경정처분에 대하여 판례가 ‘특별한 사정’을 비교적 좁게 파악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세부과처분은 법령의 적용에 의해 과세표준이 정해지면 이에 따라 부과액이 기계적으로 계산된다는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징금 부과처분의 경우에는 위반행위에 의해 취득한 이득의 규모, 위반행위의 내용 및 정도, 위반행위의 기간 및 회수 등을 의무적으로 참작하도록 하므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량이 폭넓게 개입된다는 점이 과세처분의 그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가 당초 관련매출액 200억원, 기본 과징금부과율 5%, 조사단계 협조를 이유로 한 임의적 감경율 20% 기준으로 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고등법원에서 관련매출액을 200억 원으로 삼은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선고된 이후 관련매출액은 50억원으로 줄였지만 기본 과징금부과율을 10%로 올리고 임의적 감경은 없는 것으로 하여 과징금을 5억원으로 감액하는 처분을 한 경우를 살펴보자. 이 경우 고등법원의 판결에서 과징금부과율에 대한 아무런 판단이 없었다면 감액처분은 판결의 취지에 저촉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과징금이 5억원으로 감액됐음에도 불구하고 감액처분 시 적용된 기본부과율 및 임의적 감경율 산정이 재량의 일탈겞꼬?등으로 위법한 경우가 있을 것이고, 이 경우에는 감액처분을 다시 소송으로 다툴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물론 이 경우에도 그 대상이 되는 과징금은 감액처분 후 잔존하는 5억 원이 된다). 실제로 최근 군납유류 입찰담합 사건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재산정, 감액한 과징금납부명령이 여전히 파기환송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액수 또한 과다해 위법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05. 11. 30. 선고 2004누24457 판결, 현재 대법원 2006두675호로 계속 중). 당초 처분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전부승소의 판결이 선고된 경우에 원고로서는 상고이익이 없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상고하지 않는 한 소송이 종료되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는데, 그 후에 과징금 감액처분이 내려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과징금부과처분에 관한 취소소송이 확정되기 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감액경정처분을 하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할 것이므로 감액처분을 하는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에 물론 공정거래위원회가 확정판결의 취지에 따라 재량권을 정당하게 행사해서 당초의 과징금을 감액한 적정한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할 것으로 기대되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감액된 과징금부과처분도 다시 재량의 일탈겞꼬?등의 사유로 위법한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감액처분이 종전 처분에 대한 일부 취소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감액처분 자체에 재량의 일탈겞꼬育繭遮?위법사유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별도의 소송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는 감액처분에 대한 불복의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에게 액수 산정의 재량이 부여되고 있는 과징금부과처분에 있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당초 과징금액의 일부를 취소하는 감액처분을 한 경우에, 그 감액처분 자체에 재량의 일탈, 남용과 같은 위법사유가 존재한다면 원칙적으로 ‘감액처분 자체에 대하여 별도의 쟁송수단의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본 판결의 사안과 같이 당초 처분 중 잔존하는 과징금 부과처분을 다투는 별도의 소송이 제기돼 있다는 등의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감액처분 자체에 대해서는 무효확인 내지 취소를 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보다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Ⅳ. 결 어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공정거래법상 과징금 감액처분의 영역에서도 조세부과처분 등과의 통일적 이해를 바탕으로 당초처분과 변경처분의 관계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록 판결문에서 감액처분 자체에 대한 불복을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를 계기로 향후 과징금 부과처분의 광범위한 재량성을 고려해서 보다 합리적인 불복 기회를 보장해 주는 사례가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8-06-02
공서양속에 반하는 이자약정에서 임의로 지급된 초과 이자의 반환청구
[판결취지] 금전소비대차계약과 함께 이자의 약정을 하는 경우, 양쪽 당사자 사이의 경제력의 차이로 인해 그 이율이 당시의 경제적·사회적 여건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초과해서 현저하게 고율로 정해졌다면, 그와 같이 허용할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하는 부분의 이자 약정은 대주가 그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얻고 차주에게는 과도한 반대급부 또는 기타의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므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여 무효인 부분의 이자 약정을 원인으로 차주가 대주에게 임의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통상 불법의 원인으로 인한 재산 급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나, 불법원인급여에 있어서도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경우이거나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그것보다 현저히 커서 급여자의 반환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에는 급여자의 반환청구가 허용된다고 해석되므로(대법원 1993.12.10. 선고 93다12947 판결 등 참조), 대주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초과하는 이율의 이자를 약정하여 지급받은 것은 그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얻고 차주에게는 과도한 반대급부 또는 기타의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서 그 불법의 원인이 수익자인 대주에게만 있거나 또는 적어도 대주의 불법성이 차주의 불법성에 비하여 현저히 크다고 할 것이어서 차주는 그 이자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평 석] 1. 금전소비대차에서 행하여진 이자약정이 공서양속에 위반하는 것을 이유로 일부무효인 경우에는 차주가 그 무효부분의 이자를 임의로 지급하였어도 부당이득을 이유로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이번 대법원판결의 취지에 찬성한다. 필자는 1998년 초에 폐기되기까지 시행되던 이자제한법(이하 「종전의 이자제한법」이라고 한다) 아래에서도 임의로 지급된 제한 초과의 이자에 대하여 차주는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번 판결은 기본적으로 그와 입장을 같이하는 것이다. 다만 필자는 다수판결과 같이 굳이 불법원인급여에서의 이른바 위법성비교론을 적용하여 그 결론을 정당화할 필요는 없고, 이 사건과 같은 경우는 민법 제746조 단서에서 명문으로 정하는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 그대로 해당한다고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는 결론에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사소한 것인지도 모른다. 2. 종전의 이자제한법 아래서 채무자가 그 법 소정의 제한이율을 넘는 이자를 임의로 채권자에게 지급한 경우에, 채무자는 이를 반환청구할 수 있는지의 문제에 대하여 판례가 일관하여 이를 부인하여,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하였음은 소수의견에서 밝히는 대로이다. 나아가 大判 62.4.26, 4294민상1542(集 10-2, 248)이 채무자가 채권자와 합의하여 제한초과의 이자채권을 상계한 경우에도 그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당시의 다수설은 제한초과의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하여 판례의 태도에 찬성하였다. 이 입장에서는 나아가 이러한 반환청구를 인정하면 오히려 서민들의 신용획득을 막게 되는 폐해를 가져온다고 하거나, 또는 일단 임의로 지급한 이자를 나중에 반환청구하는 것은 선행행태에 모순되는 것으로서 신의칙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들기도 하였다. 3. 판례가 종전의 이자제한법 아래서 위와 같은 태도를 취한 것에는 일본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추측된다. 일본의 舊 利息制限法(1877년 제정)은 그 제한에 위반하는 약정의 효력에 대하여 “재판상 무효인 것으로 하고 각 그 제한까지 삭감하여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제2조). 여기서 ‘재판상 무효’의 의미에 대하여는 논의가 있었으나, 판례는 초과이자의 지급은 소구할 수 없으나 임의로 지급한 것의 반환도 청구할 수 없다고 해석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자제한법이 제정되기 전에 시행되던 利息制限令(1911년 制令 제13호)은 제한 위반의 이자약정은 「무효」라고만 규정하였음에도, 日政時代 이래 판례는 그 적용에 있어서 위의 일본판례와 같은 태도를 취하였고, 이는 종전의 이자제한법 아래서도 견지되었다. 그 후 일본에서는 1954년에 ‘이식제한법’이 새로 제정되면서, 제한초과의 이자를 임의로 지급한 경우에는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었다(제1조 제2항). 그런데 그 후 일본의 最裁判(大法廷) 1964.11.18(民集 18, 1868)은 위 규정은 반환청구에만 적용이 있으며 제한초과이자는 원본에 충당된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最裁判(大法廷) 1968.11.13(民集 22, 2526)은 위와 같이 초과지급부분을 원본에 충당하여 가서 결국 원본이 완제된 후에는 이제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 이유는 위의 규정은 원본채권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원본채권이 없어지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위 규정은 “판례입법이라고 할 일련의 판결에 의하여 사실상 개정된 것에 가깝게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林良平 등, 債權總論, 제3판(1996), 56면). 4. 생각해 보면, 불법원인급여는 급부가 범죄를 조장한다든가 도덕관념에 비추어 용납될 수 없는 행위(또는 그러한 행위의 지속)를 유인하는 등으로 급여의 원인에 윤리적인 비난을 가할 수 있는 경우에 한정하여 인정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제한이율을 넘는 이자를 지급하여서라도 금융을 얻으려 하였던 차주가 그 약정대로 이자를 지급한 것에 윤리적인 비난가능성이 있다고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러니 그의 이자지급에 무슨 「불법의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전의 판례에 반대하여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는 제한초과의 이자가 임의로 지급되더라도 “그 불법원인은 이자수령자에게만 있을 뿐”이라고 하여(민법 제746조 단서) 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제한초과의 이자를 지급한 것은 단순한 비채변제로서 당연히 반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환청구를 인정한다고 해서 서민들의 신용획득을 막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오늘날의 사정 아래서는 입증되지 아니한 가설에 그친다. 오히려 채무자를 과도한 이자의 부담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종전의 이자제한법의 입법취지는 제한초과이자를 임의로 지급한 경우에도 그에게 반환청구를 인정하는 방법으로 관철되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채무자는 同法의 보호를 받고, 오히려 이자를 약정대로 지급한 채무자는 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것은 균형에도 맞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는 이 경우 채무자의 초과이자지급이 단순한 비채변제라고 해도 채무자는 그 지급의무가 없음을 알면서 이를 지급하였으므로 그는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민법 제742조 참조). 그러나 비채변제의 반환청구가 배제되려면, 변제자가 지급 시에 채무의 부존재를 확정적·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어야 하고, 단지 채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나 그것을 인식하였어야 했다는 과실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설령 변제자가 채무 없음을 적극적으로 인식하였다고 해도 채무자가 변제해야 할 만한 합리적 사정이 있으면 반환청구는 배제되지 않는다고 해야 하는데, 그 합리적 사정이란 통상 전형적인 힘의 불균형이 있으면 긍정되어야 하는 것이다(이상에 대하여는 民法注解[XVIII], 392면 이하(梁彰洙 집필) 참조). 5. 이자제한법이 폐지되어 이자 제한의 강행규정이 없어진 이상 이제 과도한 이자에 대한 규율은 민법 제103조의 문제가 되었다. 물론 민법 제104조의 적용도 고려될 수 있으나, 그 주관적 요건을 주장·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통상 민법 제103조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 외국의 예를 보면, 원래 이자제한법이 없는 한편 우리 민법 제103조와 제104조와 동일한 내용의 규정을 그 민법 제138조 제1항, 제2항으로 두고 있어서 우리의 법상태에 가장 가깝다고 할 독일의 경우에도, 과도한 이자에 대한 판단기준은 위 민법 제138조 제1항이라고 한다(우선 Palandt, BGB, § 138 Rn.25(65.Aufl., 2006, S.129) 참조). 그런데 독일에서는 그러한 과도한 이자를 이유로 위 민법 제138조 제1항이 적용되는 경우(이른바 폭리적 소비대차 Wucherdarlehen 또는 과도한 이자약정 uberhohte Verzinsung)에는 이번의 대법원판결이 과도한 이자약정부분만을 무효로 하는 것과는 달리 이자약정을 포함하여 소비대차계약 전부가 무효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주가 바로 원본의 반환을 청구할 수는 없고 借主는 약정기한까지 원본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러한 민법 제138조 제1항의 적용으로 의도하는 차주의 보호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貸主는 그에 대하여 아무런 이자도 청구하지 못하며, 이는 이자약정(이 역시 무효인 것이다)에 기하여서는 물론이고 부당이득을 이유로 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대주가 이제 과도이율이 아니라 통상적 이율에 의하여 산정한 원본 사용료 상당의 금전의 지급청구를 부당이득으로 청구할 수 있음을 승인하는 것은 스스로 불법을 저지른 사람에게 법의 구조를 거부하는 불법원인급여제도의 정신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상이 판례(BGH NJW 1989, S.3217 등)의 태도이고 학설에서도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견해이다(우선 Larenz/Canaris, Lehrbuch des Schuldrechts, Bd.II/2, 13. Aufl.(1994), § 68 III 3 c (S.163f.) 참조). 그리고 독일에서는 위와 같이 양속 위반을 이유로 무효인 소비대차에서 차주가 이미 지급한 이자는 당연히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우선 Palandt, 전게서, § 817 Rn.10(S.1212), Rn.21(S.1213)를 보라). 위와 같은 폭리적 소비대차는 이자를 지급하였고 이제 그 반환을 구하는 차주의 입장에서는 애초 독일민법 제817조 제2문에서 정하는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데 異論이 없다. 독일민법 제817조는 그 제1문에서 “급부의 목적이 수령자가 그 급부를 수령함으로써 법률상의 금지 또는 선량한 풍속에 위반하게 되는 것인 때에는 급부수령자는 반환의 의무를 진다”고 하고, 이어서 제2문은 “급부자도 역시 이러한 위반을 범하게 되는 때에는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고 정한다. 이 제812조 제2문이야말로 불법원인급여로 인한 반환청구 배제를 정하는 것으로서 우리 민법 제746조에 해당하는 것이다(이와 같이 불법원인급여에 관한 법규정에서 원칙/예외의 구성은 우리 민법 제746조와는 반대이다). 그런데 폭리적 소비대차의 경우에 借主는 동 제1문에서 정하는 바의 위반을 범한 것이 아니므로, 위 제2문의 ‘역시’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Larenz/Canaris, 전게서, 동소 참조). 6. 우리의 경우에 민법 제103조를 적용하되 과도한 이자약정에 대하여 과도한 부분에 한한 무효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 법원의 일부무효법리 운용의 실태에 비추어, 또한 이자제한에 관한 법적 규율의 역사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는 태도이다. 그런데 그 경우에 그 무효인 부분에 해당하는 이자가 이미 지급되었으면 借主는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야 함은 이자제한법이 있거나 없거나 다를 바 없으며, 이는 독일의 예에 의해서도 뒷받침되는 바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다수의견이 말하는 바와 같이 차주에게도 「불법의 원인」이 있는데 그 불법성의 정도가 貸主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물론 그러한 이른바 위법성비교론은 이번 판결이 말하는 대로 大判 93.12.10, 93다12947(集 41-3, 319)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이래 大判 97.10.24, 95다49530(공보 하, 3570)(사기도박의 피해자가 도박채무의 변제로 유일한 재산인 주택을 양도한 사안); 大判 99.9.17, 98도2036(공보 하, 2267)(포주가 보관 중인 윤락녀의 화대를 임의소비하여 횡령죄로 기소된 사안에서, 원심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반환청구할 수 없으므로 포주가 애초부터 그 금전의 소유자라고 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파기하였다) 등에서 적용되어, 불법원인급여제도의 허점을 메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필자도 그 자체에는 찬성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폭리적 이자약정의 경우에는 독일에서와 같이 그 불법성이 폭리를 취하는 측에게만 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7. 한편 국회는 2007년 3월 6일에 이자제한법을 통과시켜 약 9년만에 이자에 대한 일반적 규제를 부활시켰다. 그 중에는 “채무자가 최고이자율을 초과하는 이자를 임의로 지급한 경우에는 초과 지급된 이자 상당 금액은 원본에 충당되고, 원본이 소멸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제2조 제4항). 이 법은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나, 그 시행 전에 성립한 대차관계도 그 시행일 후부터는 이 법에 따라야 한다(부칙 제1항, 제2항). 그러므로 실제 사건에서 위의 새로운 이자제한법 규정에 의한 원본충당이 아니라 이 대법원판결이 밝힌 반환청구 허용의 법리가 적용되는 예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대법원판결은 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의 효과 일반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공서양속의 위반은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에는 暴利型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 그러한 유형에서는 비록 민법 제104조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민법 제103조의 적용으로 무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의 논리를 보다 일반화하면, 이러한 폭리형 법률행위로 불이익을 당한 당사자는 자신이 행한 급부를 부당이득을 이유로 폭리자에 대하여 반환청구할 수 있으며, 불법원인급여는 그 청구를 배제할 사유가 못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법 제104조가 직접 적용되는 경우에도 타당함은 물론이다.
2007-04-02
이른바 처분적 시행규칙의 문제점에 관한 소고
Ⅰ. 事案의 槪要 우리나라 제지 생산·판매업체인 동아제지(주) 등은 2002. 9. 30. 무역위원회에 대하여 인도네시아 및 중국으로부터 정보용지 및 백상지가 정상가격 이하로 수입되어 국내산업이 실질적인 피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관세법의 관련 규정에 따라 위 물품에 대한 덤핑방지관세부과에 필요한 조사를 하여 줄 것을 신청하였다. 무역위원회는 2002. 11. 14. 조사대상물품을 인도네시아·중국산 정보용지 및 백상지로서 일정한 것과 조사대상공급자로서 일정한 업체(원고)로 하여 덤핑사실과 실질적인 피해 등의 사실에 관한 조사개시결정을 하였다. 무역위원회는 이 사건 덤핑 및 산업피해 조사와 관련하여 조사신청회사들과 원고들 사이에 쟁점이 되었던 문제에 관하여, 원고인 인도네시아 4개 업체에 대한 조사를 한 다음에, 2003. 9. 24. 조상대상물품의 덤핑수입으로 인하여 동종 물품을 생산하는 국내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있다고 판정하고, 이에 따라 국내산업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하여 원고들이 공급하는 물품에 대하여 각 8.22%, 에이프릴이 공급하는 물품에 대하여 2.80%, 중국 4개 업체가 공급하는 물품에 대하여 5.50% 내지 8.99%의 덤핑방지관세를 향후 3년간 부과할 것을 피고(재정경제부장관)에게 건의하기로 결정하였다. 피고(재정경제부장관)는 위 건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2003. 11. 7. 원고들이 공급하는 물품에 대하여 2003. 11. 7.부터 2006. 11. 6.까지 8.22%의 덤핑방지관세율을 부과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 재정경제부령 제330호 ‘관세법 제51조의 규정에 의한 인도네시아·중국산 정보용지 및 백상지에 대한 덤핑방지관세 부과에 관한 규칙’(이하 위 규칙 중 원고들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 사건 규칙’이라 한다)을 제정·공포하고 같은 날 관보에 게재하였다. 이에 원고들은 주위적으론 피고가 2003. 11. 7. 제정·시행한 ‘관세법 제51조의 규정에 의한 인도네시아·중국산 정보용지 및 백상지에 대한 덤핑방지관세부과에 관한 규칙’ 중 원고들에 해당하는 관련 규정 부분의 무효확인을 구하였고, 예비적으론 피고가 2003. 11. 7. 제정·시행한 ‘관세법 제51조의 규정에 의한 인도네시아·중국산 정보용지 및 백상지에 대한 덤핑방지관세부과에 관한 규칙’ 중 원고들에 해당하는 관련 규정 부분의 취소를 구하였다. Ⅱ. 被告의 본안전 항변에서의 주장 이 사건 규칙은 일반적·추상적인 법령으로 규칙 시행만으로는 원고들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므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볼 수 없고, 가사 이 사건 규칙이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규칙의 무효 확인보다는 위 규칙에 따라 수출물품에 대하여 관세가 부과되는 경우 이를 다투는 것이 더 발본색원적인 수단이므로 이 사건 소가 분쟁해결을 위한 직접적이고도 유효·적절한 수단이라 할 수 없어 그 확인의 이익이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 Ⅲ. 對象判決의 (處分性與否의 물음과 관련한) 要旨 이 사건 규칙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보건대, 행정입법이나 조례가 집행행위의 개입 없이도 그 자체로서 직접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의무나 법적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등의 법률상 효과를 발생하는 경우 그 조례 등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인바(대법원 1996. 9. 20. 선고 95누8003 판결 참조), 관세법 제53조 제1항은 재정경제부장관은 덤핑방지관세의 부과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조사가 종결되기 전이라도 그 물품과 공급자 또는 공급국 및 기간을 정하여 잠정적으로 추계된 덤핑차액에 상당하는 금액 이하의 잠정덤핑방지관세를 추가하여 부과할 것을 명하거나 담보의 제공을 명하는 조치(잠정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관세법 제54조 제1항, 제2항은 당해 물품의 수출자 또는 재정경제부장관은 덤핑으로 인한 피해가 제거될 정도의 가격수정이나 덤핑수출의 중지에 관한 약속을 제의할 수 있고, 위 약속이 수락된 경우 재정경제부장관은 잠정조치 또는 덤핑방지관세의 부과 없이 조사가 중지 또는 종결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 관세법은 조사대상공급자에게 덤핑방지관세의 부과 절차상 잠정조치의 대상 또는 협상 상대방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점 및 관세법 제50조 제1항 소정의 관세율표에 의한 기본세율 및 잠정세율과는 달리 덤핑방지관세는 덤핑으로 인하여 국내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그 물품과 공급자 또는 공급국을 지정하여 당해 물품에 대하여 부과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물품의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규칙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또한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규칙에 대하여 항고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위 규칙이 유효함을 전제로 하여 향후 조사대상물품을 수입하는 수입자들에게 부과될 관세부과처분과 관련된 모든 분쟁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 사건 소는 분쟁해결을 위한 직접적이고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의 본안전 항변은 이유 없다. Ⅳ. 對象判決의 問題點 대상판결은 자신의 논증의 출발점을 이른바 ‘두밀분교통폐합조례사건’에 두고 있다. 동 사건에 관한 대법원 1996. 9. 20. 선고 95누8003 판결은 이제까지 의례적 논의에 머물렀던 이른바 ‘처분적’ 명령(조례)의 존재를 처음으로 시인하였다(한편 곧바로 처분성이 인정되는 양 誤解를 낳는 ‘처분적’ 명령(조례)이란 용어는 하루바삐 시정되어야 한다. 日人學者(山田 晟)의 ‘ドイツ法律用語辭典’(1984)에서도 ‘Mabnahmegesetz’을 措置法으로 바르게 옮겨 놓고 있다(p.251)). 종래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법규헌법소원심판이 적어도 조례의 경우에는 보충성의 원칙으로 인해 더 이상 허용되지 않게 되었다. 법원으로선 법규헌법소원심판에 대해서 처분성확대를 통해 크로스카운터 펀치를 날린 셈이다. 그 후 대법원 2003. 10. 9. 자 2003무23 결정에서 특정 ‘고시’(항정신병 치료제의 요양급여 인정기준에 관한 보건복지부 고시)의 처분성이 인정되었다(당해 결정에 대한 동지적 평석으로는 박해식, 고시의 처분성과 제약회사의 당사자적격, 대법원판례해설 제47호, 2003. 하반기, 642면 이하 참조). 이제 대상판결을 통해서 법규명령의 전형인 시행규칙까지도 처분성의 인정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95누8003 판결이후 10년 만에 ‘조치적(처분적)’ 명령이 행정작용형식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이를 두고서 결과적으로 법규에 대한 헌법재판의 가능성을 축소하긴 했지만, 법원이 전향적으로 처분성확대를 도모하였다고 호평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행의 공법질서 특히 규범체계로선 심각한 난맥상에 처하게 되었다. 입법자가 선택한 규범으로서의 법적 성격이 법원의 판단에 의해서 부인되는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종래 법형식의 선택이 법적으로 특히 권리구제의 측면에서 어떤 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리고 법형식과 그 실질이 불일치할 때 무엇이 최종적인 가늠자가 되는지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殆無하였다. 이하에선 이런 문제점을 중심으로 전개하고자 한다(95누7994·95누8003판결의 문제점에 관해선, 졸고, ‘措置的 命令 내지 個別事件規律的 命令에 대한 權利保護에 관한 小考’, 법조, 2002.11. 90면 이하; 김남진 교수 역시 법규명령이나 조례가 ‘처분’의 성질을 갖는다 하더라도, ‘규범통제’라는 正道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역설한다. 동인, ‘행정상 확인소송의 가능성과 활용범위’, 고시연구, 2005.5, 22면 주15)). Ⅴ. 권리구제방도를 嚮導하는 行政作用形式 행정작용형식의 체계는 이론적으로 다양한 착안점에서 전개할 수 있다. 공통된 적법성요건, 공통된 법효과와 공통된 하자효과가 독립된 작용형식을 성립케 하는 유형화징표이다. 본시 연계된 효과(Wirkungen)와 법적 결과(Rechtsfolgen)에 의해서 鑄造된 작용형식이 문제되었기에, 작용형식은 본래 하자유형체계에서 비롯되었다. 공법에선 오래 전부터 현행 법질서와의 모든 相違를 ‘법하자’(Rechtsfehler) 즉, ‘위법’(Rechtswidrigkeit)으로 여겼다. 하자결과(Fehlerfolgen)의 개념이란, 절차법이나 실체법에 반하는 국가행위의 법적 운명에 관한 물음 즉, 법하자에 대한 제재수단에 관해서 추상적으로 만들어진 집합명사이다. 요컨대 현행의 권리보호체제하에서 하자결과(효과)에는 무효, 消效可能性(취소가능성, 폐지가능성), 무결과(Folgenlosigkeit, 대단치 않음, 유효) 뿐만 아니라, 원상회복청구권(부작위청구권도 포함하여)과 (원상회복불가능시엔) 손실보상청구권도 포함된다. 그리하여 하자결과의 관점에서 행정의 작용형식체계는 행정행위, 법률하위적 규범, 공법계약, 그리고 사실행위의 네 가지 유형으로 완성된다(상세는 졸고, 行政의 作用形式의 體系에 관한 小考, 공법연구 제30집 제4호, 2002.6., 297면 이하 참조). 그에 따른 권리구제방도와 관련해서 행정행위, 법률하위적 법규범에 대해선 각기 항고소송, 규범통제가, 공법계약과 사실행위에 대해선 당사자소송(독일의 경우엔 일반이행소송)이 강구된다(이를테면 법형식과 권리구제방도의 牽聯關係). 요컨대 입법자는 그가 택한 法形式을 통해서 司法的 권리보호의 방법을 정한 셈이 된다(Mutius, Rechtsnorm und Verwaltungsakt, in: FS fur H.J. Wolff z.75. Geburtstag, 1973, S.181). Ⅵ. 行政作用形式의 가늠잣대-形式인가 實質인가 ? 작용형식을 정한다 함은, 해당 행정작용을 지배하고 그에 대한 법적 판단을 내리는 법제도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법형식과 실질(실체)이 交錯할 때 무엇이 가늠자가 되어야 하는가? ‘두밀분교통폐합조례’와 이른바 ‘법규명령형식의 행정규칙’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판례는 기본적으로 실질에 절대적 비중을 둔다. 독일의 경우에, 이 문제는 우리나 일본에서와는 다른 의미에서, 형식적 행정행위냐 아니면 실질적 행정행위냐를 둘러 싼 논의가 전개되었다. 독일의 과거 지배적 입장은 실질을 규준으로 삼았지만, 오늘날의 지배적 입장은 형식을 규준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행정행위와 같은 ‘個別事件的 規律’이 법률, 법규명령, 조례의 형식으로 발해진 경우에 내용적으론 행정행위에 해당할 순 있겠지만, 결코 형식적으로는 행정행위가 아니며, 따라서 행정행위처럼 쟁송취소의 대상은 될 수가 없고, 규범통제의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한다. 반면 만약 법규명령으로 발해야 할 것을 잘못하여 법규명령 대신에 행정행위로 발하였다면, (위법한 행정행위로서) 그것의 쟁송취소가 허용되고 이유있게 된다고 한다. 즉, 행정행위와 명령의 구분을 위해선 우선적으로 문제의 규율의 외부적 형식에 좌우되어야 하되, 다만 그 형식이 다의적이거나-형식선택의 자유를 전제로 하여-권리보호를 제한하기 위한 명백한 형식남용이 있는 경우에만 규율의 실질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된다. Ⅶ. 맺으면서-處分性認定의 限界 일찍이 95누8003 판결이 취한 처분성인정의 공식-다른 집행행위의 매개 없이 그 자체로서 직접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성격-자체가 문제점을 내포한다. 법효과란 궁극적으로 법규범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과거보다 도드라진 법(권리)인식으로 인하여 결과를 선취한 것은 아닌지 저어된다. 그리고 대상판결의 시행규칙이 관세법 제51조에 의한 위임규정인 점에서, 대상판결이 처분성논증에서 제시한 법효과가 과연 동 시행규칙으로부터 구체적 직접적으로 발생하는지 의문스럽다. 결과를 선취하여 이를 법적 성격에 바로 직결시키는 판례의 경향은, 개별공시지가결정, 관리처분계획, 도시계획변경입안제안의 거부 등의 경우에서도 확인된다. 물론 이런 기조에 벗어나서 환지계획의 처분성을 정당하게 부정하기도 하였다. 입법, 판례, 법학계, 행정실무, 어느 누구도 행정법도그마틱의 造形에 관해서 독점을 누리지 못하고 나름대로 각기 분화되어 무엇이 행정법인지를 공동으로 결정한다(Bachof, VVDStRL 30(1972), S.224f.). 사실 행정법의 작용형식의 유지, 체계화, 적응화 그리고 창설은 전통적으로 판례와 행정법학이 담당한 소임이나, 이는 입법자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경우에만 자명하게 통용된다(Ossenbuhl, Eine Fehlerlehre fur untergesetzliche Normen, NJW 1986, S.2805(2806)) 권리구제의 확대를 도모하기 위한 처분성의 확대인정 자체는 異論이 있을 순 없지만, 법집행행위를 무색케 만드는 과도한 처분성인정은 규범통제의 항고소송화는 물론, 행정법도그마틱의 不全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 요컨대 처분성인정에서 미미해선 아니 되지만(過少禁止), 지나쳐서도 아니 된다(過剩禁止). 政策法院이 立法法院으로 誤解되어선 아니 된다.
2006-07-27
현역복무부적합전역 사유 해당 여부
Ⅰ. 대상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1989년 및 1990년에 부하장교였던 사람의 처를 그 부하장교에게는 알리지도 아니하고 사적으로 세 번씩이나 만나 저녁식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고 손이나 어깨를 만지는 신체접촉을 한 데 이어, 몇 년에 걸쳐 사적으로 전화통화까지 하였고, 1997년경에는 회식을 빌미로 2~3차례에 걸쳐 부하장교들의 부인들과 포옹을 하고 뺨을 비비며 입을 맞추는 등 군장교로서 있어서는 아니되는 행위를 하였는바, 위와 같은 원고의 행위는 군장교로서의 품위를 손상하고 군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행위로서 그 사생활이 방종한 것에 해당하고 그 자체로서 근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군의 위신을 손상하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원고는 군인사법(이하 “법”이라함) 제37조 제1항 제2호, 법시행령 제49조 제1항 제1호, 법시행규칙 제56조 제2항 제1호에서 정한 사생활이 방종하여 근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군의 위신을 손상하게 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1심:서울행정법원 2002.6.5.선고 2002구합2819판결). 2. 항소심 및 대법원 판결요지 1) 원심 판결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항소심에서 새로이 제기된 원고의 주장에 대해 “현역복무부적합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원회“라 함)의 조사가 전역심사위원회(이하 ”심사위원회“라 함)의 심사의 예비절차에 해당한다고 보거나 심사위원회의 심사가 조사위원회의 조사의 재심절차에 해당한다고 볼 것으로서 조사위원회의 조사와 심사위원회의 심사는 전체로서 현역복무부적합 여부에 따라 전역 여부를 결정하고자 하는 하나의 처분절차를 구성하는 것이므로 그 절차의 정당성도 처분과정 전부에 대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인바(대법원 1994.8.23.선고 94다7553판결 참조), 비록 앞의 처분과정에 절차위반의 하자가 있더라도 그 뒤의 처분과정에서 보완이 되었다면 절차위반의 하자는 치유된다”라고 판시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03.5.30.선고 2002누10973판결). 2) 원심의 판시 소위가 사생활이 방종하여 근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군의 위신을 손상하게 한 때에 해당되고, 이 사건 전역처분이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거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대법원 2004.2.13.선고 2003두6696판결). - 판 결 요 지 - 부하장교였던 사람의 처를 사적으로 만나 식사하고 술을 마시고 신체접촉을 하고 회식을 빌미로 부인들과 포옴하고 입을 맞추는 등 군장교로서 아니되는 행위를 한바 이와같은 행위는 군장교로서의 품위를 손상하고 군기강을 문란케하는 행위로서 군인사법 제37조1항, 법시행령제49조11항 등 현역복무부적합전역 사유에 해당한다. - 연 구 요 지 - 직업에 있어서 그 직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 생존 내지 생활의 주된 근거를 잃게 하는 중대한 불이익처분이 분명하지만 군인의 직무나 근무조건 등이 여타 직업과는 현저히 다른 특수성이 있음을 고려햐여 그 신분유지에 대하여 임용권자에게 폭넓은 재량을 인정하는 종래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판결이다. Ⅱ. 현역복무부적합전역제도 1. 제도의 취지 현역복무부적합전역제도란 능력의 부족으로 당해 계급에 해당하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자와 같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현역복무에 적합하지 아니하는 자를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현역에서 전역시키는 제도를 말한다(졸저,「군인사법」, 법률문화원, 2004. 550면). 이 제도는 군인의 직무를 수행할 적격을 갖추지 못한 자를 직무수행에서 배제함으로써 군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인사상의 제도로서 일반 사회질서를 해친 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이나 군 내부에서 군율을 어긴 자에 대한 제재의 성격을 가지는 징계제도와는 그 제도적 취지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대법원 2001.5.29.선고 99두9636판결). 2. 현역복무부적합 사유 법시행령 제49조 제1항에서 현역복무부적합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즉 ①능력의 부족으로 당해 계급에 해당하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자(제1호) ②성격상의 결함으로 현역에 복무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자(제2호) ③직무수행에 성의가 없거나 직무수행을 포기하는 자(제3호) ④기타 군 발전에 저해가 되는 능력 또는 도덕상의 결함이 있는 자(제4호). 또한 동조 제2항에서는 현역복무에 적합하지 아니한 자의 기준에 관하여는 국방부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법시행규칙 제56조에서는 시행령 제49조 제2항에서 위임된 사항인 현역복무에 적합하지 아니한 자의 기준 및 심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3. 법적성질 현역복무부적합 여부의 판정은 어떠한 법적성질을 가지는 것일까? 현역복무부적합 판정 여부는 자유재량행위이다. 판례도 “현역복무부적합 여부를 판정함에 있어서는 참모총장이나 전역심사위원회 등 관계기관에서 원칙적으로 자유재량에 의하여 판단할 사항으로서 군의 특수성에 비추어 명백한 법규위반이 없는 이상 군당국의 판단을 존중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1997.5.9.선고 97누2948판결 ; 대법원 1980.9.9.선고 80누291판결). 4. 절차 현역복무부적합자로 전역을 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①소속 지휘관의 조사위원회 설치권자에 대한 보고(법시행규칙 제58조 제1항) ②조사위원회에의 회부·조사·의결 및 조사위원회 설치권자에 대한 보고(동 제61조) ③조사위원회 설치권자의 전역심사위원회의 설치권자에 대한 보고(동 제67조) ④전역심사위원회 회부·심사 ⑤임용권자의 전역명령 순으로 진행되나, 예외적으로 시행규칙 제57조 제1호 내지 제5호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는 ①소속 지휘관의 참모총장에 대한 보고 또는 참모총장의 직권탐지 ②참모총장의 전역심사위원회 회부?심사 ③임용권자의 전역명령 순으로 진행된다(김의환, “군인사법개정으로 징계처분 중 감봉이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변경된 경우 …”, 대법원 판례해설(통권 제36호), 법원도서관, 2001. 590면). 각군참모총장에게 일정한 자에 대하여 조사위원회에의 회부?조사 등의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바로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 규정을 둔 취지는 지휘권 확립차원에서 객관적으로 보아 부적합성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조사위원회의 별도의 조사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대법원 2001.5.29.선고 99두9636판결). 5. 지원전역(志願轉役) 법시행규칙 제63조는「조사 또는 심사대상자는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기 전에 법 제35조에 의하여 지원전역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은 전역심사위원회에서 부적합자로 판정되어 전역 당할 위험에 있는 군인에게 지원전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이 심사위원회의 의결에도 불구하고 조사대상자에 대하여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지원전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서울행정법원 2003.2.7.선고 2002구합30081판결). Ⅲ. 쟁점 1. 현역복무부적합사유 해당 여부 판례에 나타난 현역복무부적합사유를 보면 자신이 일으킨 교통사고에 대하여 부하장교의 제의에 따라 부하장교가 운전한 것으로 사고를 조작하고 상급부대에 허위보고를 한 행위(서울행정법원 2002.3.12.선고 2001구35422판결), 부하장교들에게 폭언, 폭언, 구타행위를 하고 금품을 수수한 행위(서울행정법원 2003.1.16.선고 2002구합4198판결), 여러 차례에 걸쳐 부하 장교의 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들 몰래 애인관계로 사귀자는 등의 말을 하는 등 성희롱을 한 행위(서울행정법원 2002.1.25.선고 2001구33853판결), 비서실장인 원고가 진급을 위하여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고 있는 진급심사 대상자들에게 마치 진급여부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령관에 대한 뇌물 공여 여부나 그 액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만한 언행을 하고 나아가 사령관에게 진급청탁 명목으로 뇌물을 공여하도록 한 행위(서울행정법원 1999.3.11.선고 98구18939판결), 지휘관에게 진급 청탁 목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행위(서울행정법원 1998.11.26.선고 98구11266판결), 지시불이행, 명정추태, 여자관계비위 및 사생활방종(서울고등법원 1998.6.3.선고 98누1910판결), 공금을 횡령하고 민간인 물건을 절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당한 사유없이 휘하 사병들을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하여 지휘계통을 어지럽히고 군기를 문란하게 한 행위(대전고등법원 1997.6.20.선고 96구2703판결), 부하에 대한 가혹행위, 영관장교로서의 품위손상, 종교행사방해, 명정추태, 횡령(서울고등법원 1997.6.12.선고 96구43982판결), 여자와 동거하다가 유산을 강요하고 결별한 이후 음독자살을 기도하는 부도덕한 행위(대법원 1997.5.9.선고 97누2948판결), 사조직에 가입한 행위(서울고등법원 1996.10.9.선고 95구10299판결) 등이 있다. 위 대상판결의 사실관계에 나타난 행위는 현역복무부적합사유에 해당된다. 2. 시효제도 적용 여부 현역복무부적합전역사유에 시효제도가 적용되는가? 현역복무부적합심사제도는 국가방위와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하여 무력을 행사하는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으로서 현역복무부적합사유의 존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법상 기간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형사처벌이나 징계처분을 할 수 없는 사유에 대하여도 현역부적합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서울행정법원 2002.3.12.선고 2001구35422판결). 대상판결에서도 일부 행위는 1989년, 1990년, 1997년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부적합 판정의 사유로 삼고 있으므로 현역복무부적합전역제도에는 시효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Ⅳ. 대상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지금까지 일반직 공무원이나 사법상의 근로관계에서의 직권면직에 있어서는 그 사유인정이나 적용에 관하여 비교적 엄격한 태도를 보인 것과는 달리 현역 군인에 대한 군인사법상의 전역처분에 대하여는 상당히 폭넓은 재량을 인정하여 왔다. 특히 부적합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그 판단을 원칙적으로 군당국의 자유재량에 의하여 판단할 사항으로서 군의 특수성에 비추어 명백한 법규위반이 없는 이상 군당국의 판단을 존중해왔다. 대상판결은 직업군인에 있어서도 그 직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 생존 내지 생활의 주된 근거를 잃게 하는 중대한 불이익 처분임이 분명하지만, 군인의 직무나 근무조건 등이 여타 직역과는 현저하게 다른 특수성이 있음을 고려하여(법 제1조), 그 신분 유지에 대하여 임용권자에게 폭넓은 재량을 인정하는 종래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판결이다. 대상판결은 군 조직 및 임무수행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으로 타당한 판결로 보여진다.
2004-04-19
자동차 '운행'으로 인한 사고의 의미
Ⅰ. 사안 및 판결의 검토 1. 사안의 요약 원고는 보험회사로서 오토바이 소유자인 소외 J와 그 오토바이에 대하여 자동차책임보험(대인보험 Ⅰ)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위 보험기간 중인 2001. 8. 초순경 J는 오토바이를 자신의 주거지 앞 골목길 맞은편 건물 담벼락에 세워 놓은 뒤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아니하였고 그러던 중 오토바이 앞·뒤 바퀴가 모두 터져 바람이 빠졌고 J는 이를 알고도 그대로 방치하였다. 한편 위 골목길은 승용차 한대가 빠져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같은 달 19. 저녁 위 골목길에서 놀던 세살된 여자아이 H가 위 오토바이에 올라타다가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이에 깔려 H가 사망하였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함). 이에 원고는 이 사건 사고는 자동차책임보험에서 보상책임을 부담하는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므로 보험금지급채무가 없다는 취지의 채무부존재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H의 아버지인 피고는 반소로서 원고에게 책임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2. 제1심 및 항소심의 판단 본 사안에 대하여 제1심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운행’의 의미는 자동차에 계속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자동차 고유의 각종 장치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각각의 사용목적에 따라 사용 또는 관리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할 것이고, 자동차가 반드시 주행상태에 있지 아니하더라도 자동차의 운송수단으로서의 본질과 관련하여 자동차에 의하여 작출된 위험성이 종료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상태가 자동차의 사용 또는 관리에 해당된다고 보아 이를 자동차의 운행이라 볼 수가 있다”고 전제하고 “이 사건 사고 당시 오토바이의 앞·뒤 바퀴가 터진 상태로 지면에 거의 수직으로 주차되어 있어서 작은 충격에도 넘어질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주택가로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곳이므로 주차된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등의 경우에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다칠 가능성이 있는 곳이므로 위와 같이 오토바이를 주차하여 놓은 것은 오토바이의 운송수단으로서의 본질과 관련한 위험이 종료하지 아니한 것으로 볼 것이어서 운행에 해당된다”라고 판시하면서 피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편 이에 대하여 항소심은 “J가 오토바이를 주택가 골목길에 열흘 이상 주차하여 두었다고 하여 H가 주차중인 오토바이에 올라가려다가 오토바이가 쓰러지면서 다치게 된 이 사건 사고를 오토바이의 운행으로 인한 사고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였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원고의 책임보험 약관에 의하면 원고는 피보험자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짐으로써 입은 손해를 보상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3조에서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부상하게 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2조 제2호에서 ‘운행’이라 함은 ‘사람 또는 물건의 운송여부와 관계없이 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사용 또는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원심에서 인정한 사실에다가 J가 위 오토바이의 앞·뒤 바퀴에 바람이 빠지는 바람에 외발이 받침대에 비하여 오토바이의 차체가 상대적으로 낮아져서 거의 수직으로 세워진 탓으로 오토바이가 쓰러질 위험성이 높아졌음에도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서 매일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어주기만 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사건 사고는 J가 오토바이를 소유, 사용, 관리함에 있어서 주차시킬 때에 지켜야 할 주의를 소홀히 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원고가 보험계약에 따라 보상책임을 부담하는 ‘이 사건 오토바이의 소유, 사용, 관리로 인한 사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면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Ⅱ. ‘운행’이란 개념의 해석 1. 운행의 개념에 관한 학설 등에 관하여 자동차의 ‘운행’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하여는 다음 네 가지 학설이 있는 데 ① 당해장치인 원동기에 의하여 육상을 이동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원동기설 ② 당해장치를 반드시 원동기에 한하지 아니하고 조향, 제동, 기관, 기타 주행과 관련된 주행장치를 포함한다는 주행장치설 ③ 당해장치를 고정장치로 보는 것으로 원동기 및 주행장치 이외에 자동차의 고정장치인 문이나 화물자동차의 적재함의 측문 혹은 후문, 크레인차의 크레인 등을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도 운행이라고 보는 고유장치설 ④ 주·정차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차고를 출발하여 다시 차고에 들어갈 때까지의 일련의 운전행위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차고출입설 등이 있다. 위 학설중 ④번으로 갈수록 사고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확대되게 된다. 이러한 학설 모두 차량의 외부적·객관적 상황을 중시한 것은 사실이나 이와 함께 차량운행자의 주관적 운행의사 또한 운행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참작하고 있다. 2. 운행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검토 먼저 운행과 관련된 대법원의 입장은 대체적으로 ③번 고유장치설에 입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대법원은 “운행이라 함은 사람 또는 물건의 운송여부와 관계없이 자동차를 당해 장치의 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바 당해 장치란 운전자나 동승자의 화물과는 구별되는 당해 자동차 고유의 장치를 말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각종장치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각각의 사용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경우에는 운행 중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대법원 1993. 4. 27. 선고 92다8101호 판결, 1988. 9. 27. 선고 86다카2270판결, 1980. 8. 12. 선고 80다904 판결 등 다수)라는 취지로 해석하면서 “화물하차작업 중 화물고정용 밧줄에 오토바이가 걸려 넘어져 사고가 발생한 경우, 화물고정용 밧줄은 물건을 운송할 때 일반적·계속적으로 사용되는 장치가 아니고 적재함과 일체가 되어 설비된 고유장치라고도 할 수 없다”(대법원 1996. 5. 31. 선고 95다19232 판결), “트레일러로 견인되는 적재함에 부착되어 있는 쇠파이프를 철거하는 수리작업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자동차의 운행중 일어난 사고로 볼 수 없다”(대법원 1996. 5. 28. 선고 96다7359 판결), “인부가 통나무를 화물차량에 내려놓는 충격으로 지면과 적재함 후미 사이에 걸쳐 설치된 발판이 떨어지는 바람에 발판을 딛고 적재함으로 올라가던 다른 인부가 땅에 떨어져 입은 상해를 입은 경우 위 발판은 자동차에 계속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장치가 아니다”(대법원 1993. 4. 27. 선고 92다8101호 판결 참조)라고 판시하였는데 이러한 판례들은 대법원의 기본적 시각이 고유장치설에 의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일부 판결에서는 차고출입설에 입각한 듯한 판결도 보이는데 “자동차는 운전사가 이를 교통에 쓰기 위하여 도로에 두어 그것에 의하여 작출되는 위험한 상태가 계속되는 한 운행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도로로부터 끌어내어 차고 내지는 도로 이외의 장소에 둘 때 비로서 운행은 차단된다고 하여야 할 것인 바…레미콘트럭으로 시멘트를 운반하다가 이를 일시 도로변에 주차하였고 위 트럭의 주차 중에 발생한 것이라고 하여도 이는 트럭의 운행 중에 생긴 사고로 보아야 할 것”(대법원 1984. 5. 16. 선고 83가합4449 판결)이라는 취지는 차고출입설에 의하여 설명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주차와 관련된 사례에 있어서는 “트럭이 미등 및 차폭등을 켜지 않은 채 도로가에 주차하여 둠으로써 사고가 발생하였다면, 이는 트럭운전사의 트럭운행과 관련하여 발생한 것”(대법원 1993. 2. 9. 92다31101 판결)이라고 판시함으로써 차량이 일반의 교통에 제공되는 도로에 주차된 경우에는 대체로 운행상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Ⅲ. 본 사안에 있어 ‘운행’의 해당여부 앞에서 살핀 이 사건 사고가 자동차의 ‘운행’ 중 사고에 해당하는 지에 대하여는 위 학설 및 판례 외에 오토바이의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점들이 추가적으로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1. 일시적 주차, 차량의 방기 또는 차고지 해당여부 먼저 이 사건 사고에 있어서 위 오토바이가 운행상태에 있었는지 아니면 운행을 종료한 상태인지가 의문이다. J는 오토바이를 차량통행이 적은 골목길의 건물 맞은 편에 세워 놓은 뒤 보름가까이 오토바이를 운전하지 아니하였다. 또한 일상적인 차량관리를 하지 아니하여 앞·뒤 바퀴가 모두 터져서 정상적인 운전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방치하였다. 그렇다면 비록 J가 정기적으로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이미 위 오토바이는 운행을 종료한 상태가 아닌지 또 추후 운행할 의사도 없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나아가 위 오토바이가 차고지에 입고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다. 오토바이의 속성상 특별한 차고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오토바이는 자신의 집안에 여유가 있다면 집안에 또는 집 주변의 공터에 오토바이를 주차하여 놓으면 결국 차고지에 입고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J의 주거지를 좀 더 정밀히 조사하여 오토바이를 세워 놓은 곳을 일응 차고지로 볼 수 있다면 자동차의 운행은 종료한 것으로 보았어야 할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2. 정상적인 운행가능여부와 운행의사의 존재여부 이 사건 사고 당시 위 오토바이는 차량의 앞·뒤 바퀴가 모두 터져서 정상적인 운행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즉 J가 오토바이를 다시 운행하기 위해서는 오토바이를 자체적으로 수리하거나 근처의 오토바이 수리업자에게 끌고 가거나 수리업자를 불러 위 오토바이의 양 바퀴의 구멍난 곳을 모두 때우고 바람을 채운 후에야 정상적인 운행이 가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사건 사고 당시에는 J의 주관적 의사나 객관적인 상황 모두 오토바이의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결론-사고에 대한 가치평가 본 사안에 있어 위 오토바이는 사고 당시 정상적인 운행이 종료되었고 또한 장래 정상적인 운행도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이 사건 사고는 마치 골목길에 세운 가구나 전자제품이 쓰러져서 근처에 있는 아이들이 다치거나 사망한 사고와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는 책임보험에서 예정하고 있는 자동차로 인한 고유의 위험에서 발생하는 보험사고로 볼 수는 없고 결국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할 책임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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