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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④ 경고의 처분성과 법률유보의 원칙
경고이든 불문경고이든 상대방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고 이러한 처분은 작용규범에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이 사건 경고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부분은 타당하다. 그러나 「검찰청법」의 일반적인 지휘·감독에 관한 규정은 이 사건 경고의 작용규범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위 규정을 이 사건 경고의 법적 근거로 인정한 부분은 문제가 있다. Ⅰ. 사실관계 1.원고는 2005. 2.경 검사로 임용되어 2015. 8.경부터 2018. 2.경까지 OO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였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2017. 10.경부터 2017. 11.경까지 위 지방검찰청에 대하여 ‘2016. 10.경부터 2017. 10.경까지’를 감사대상기간으로 하는 2017년도 통합사무감사를 실시하였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2017. 11.경 원고에게 이의신청 기회를 부여한 다음, 2017. 12.경 원고에게 21건의 지적사항 및 이에 대한 평정 결과(벌점 합계 10.5점)를 통보하였다. 이를 기초로 검찰총장은 원고가 21건의 수사사무를 부적정하게 처리하여 검사로서 직무를 태만히 한 과오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2018. 1. 18. 원고에게 경고장을 송부하였다(이하 ‘이 사건 경고’라 한다). 2. 원고는 2018. 1. 29. 대검찰청 감찰본부에 다시 지적사항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였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2018. 2.경 21건의 지적사항 중 2건의 지적사항에 대하여는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이 부분에 대한 지적사항을 취소하고, 나머지 19건의 지적사항에 대한 이의신청은 기각하였으며, 지적사항 19건에 대한 벌점을 합계 11점으로 정정하였다. 3. 원고는 검찰총장을 피고로 하여 이 사건 경고에 대하여 항고소송(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사건 경고는 그 자체로 어떠한 법률상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고 단지 사실상 또는 간접적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본안 전 항변을 하는 한편, 이 사건 경고는 그 사유가 존재하고 피고의 재량 범위 내에서 행해진 것으로서 적법하다고 주장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 요지 1.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 함은 원칙적으로 행정청의 공법상 행위로서 특정 사항에 대하여 법규에 의한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률상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으로 일반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어떠한 처분의 근거나 법적인 효과가 행정규칙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처분이 행정규칙의 내부적 구속력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적인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으로 그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면, 이 경우에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2. 검찰총장이 사무검사 및 사건평정을 기초로 「대검찰청 자체감사규정 (대검찰청훈령)」 제23조 제3항, 「검찰공무원의 범죄 및 비위 처리지침 (대검찰청예규)」 제4조 제2항 제2호 등에 근거하여 검사에 대하여 하는 경고는 일정한 서식에 따라 검사에게 개별 통지를 하고, 이의신청을 할 수 있으며, 검사가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으면 1년 이상 감찰관리 대상자로 선정되어 특별관리를 받을 수 있고, 경고를 받은 사실이 인사자료로 활용되어 복무평정, 직무성과급 지급, 승진·전보인사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향후 다른 징계사유로 징계처분을 받게 될 경우에 징계양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검사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3. 검찰총장의 경고는 「검사징계법」에 따른 징계처분이 아니라 「검찰청법」 제7조 제1항, 제12조 제2항에 근거하여 검사에 대한 직무감독권을 행사하는 작용에 해당하므로, 검사의 직무상 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하지 않아 「검사징계법」에 따른 징계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징계처분보다 낮은 수준의 감독조치로서 경고를 할 수 있고, 법원은 그것이 직무감독권자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Ⅲ. 대법원 판결의 쟁점 1. 항고소송의 대상적격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은 본안전 판단사항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 즉, 처분성 유무에 관한 문제인바, 행정소송법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대하여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 참조). 이에 관하여 대법원은 행정청의 어떤 행위를 처분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추상적, 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구체적인 경우 처분은 행정청이 공권력의 주체로서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관련 법령의 내용 및 취지와 그 행위가 주체·내용·형식·절차 등에 있어서 어느 정도로 행정처분으로서의 성립 내지 효력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 여부, 그 행위와 상대방 등 이해관계인이 입는 불이익과의 실질적 견련성, 그리고 법치행정의 원리와 당해 행위에 관련한 행정청 및 이해관계인의 태도 등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5두4397 판결 등 참조),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 함은 원칙적으로 행정청의 공법상 행위로서 특정 사항에 대하여 법규에 의한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적인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으로 그 상대방의 권리 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았다(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1두3532 판결 등 참조). 한편, 대법원은 이 사건 경고와 유사한 행정청의 행위와 관련하여, 군수의 불문경고(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1두3532 판결 참조)나 금융감독원장의 문책경고(대법원 2005. 2. 17. 선고 2003두14765 판결 참조)에 대하여는 표창공적의 사용가능성을 소멸시키고 인사기록카드에 등재되어 표창 대상자에서 제외되거나 임원이나 대표자 선임에서 제외되는 효과 등이 있다는 이유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금융감독원장의 문책경고(상당)(대법원 2005. 2. 17. 선고 2003두10312 판결 참조), 교육장의 경고(대법원 2004. 4. 23. 선고 2003두13687 판결 참조), 장관의 경고(대법원 1991. 11. 12. 선고 91누2700 판결 참조) 등에 대하여는 경고사실이 인사기록부에 기록·유지됨으로 인하여 다른 기관에 취업함에 있어 지장을 받는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상의 불이익에 불과하다거나 경고를 받은 자에게 상위권 평점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상 또는 간접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이유 등으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는 이 사건 경고를 받으면 감찰관리 대상자로 선정되어 특별관리를 받을 수 있고, 인사자료로 활용되어 승진·전보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향후 다른 징계양정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이 사건 경고를 받은 자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생각건대, 경고, 불문경고, 문책경고 등은 그 명칭에 불구하고 모두 행정처분으로 인식될 정도의 외형을 갖추고 있고, 징계에는 해당되나 다른 사유를 감안하거나, 징계를 표창 등을 이유로 감경하거나, 과오는 인정되나 징계를 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는 경우 등에 하는 행정청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그 영향에 있어서 향후 인사 상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피고의 본안 전 항변에 대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판시는 타당하다. 2. 처분의 근거 가. 처분의 근거와 항고소송의 대상적격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은 본안 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행정청의 어떠한 처분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문제이고, 처분의 근거 등 처분의 적법성은 해당 처분에 대하여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이 인정된 후에 본안에 들어가서 판단할 문제이다. 그래서 어떠한 처분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그 처분 근거의 적법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서 관계가 없다(김용섭, “2021년 행정법(Ⅰ) 중요판례평석”, 인권과 정의 통권 제504호, 2022, 83면; 김중권, “불문경고조치의 법적 성질과 관련한 문제점에 관한 소고”, 인권과 정의 통권 제336호, 2004, 133면 참조). 그런데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어떠한 처분의 근거나 법적인 효과가 행정규칙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처분이 행정규칙의 내부적 구속력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적인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으로 그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본안 전 판단 사항인 항고소송의 대상적격과 본안 판단 사항인 처분의 근거는 별개의 문제로 관계가 없는데도 이들을 결부시킨 것은 문제가 있고, 처분의 근거가 행정규칙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시한 것은 법률유보의 원칙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 나. 처분의 근거와 법률유보의 원칙 법률유보의 원칙이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와 그 밖에 국민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행정작용은 법률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행정기본법 제8조 참조). 여기서 행정작용의 권한을 수권하는 법률로는 조직규범만으로는 부족하고 작용규범이 있어야 한다(대법원 2005. 2. 17. 선고 2003두14765 판결 참조). 이러한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반된 처분은 위법하다. 그런데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이 사건 경고를 「검찰청법」 제7조 제1항 및 제12조 제2항에 근거하여 검사에 대한 직무감독권을 행사하는 작용에 해당한다고 봄으로써 위 「검찰청법」의 규정을 이 사건 경고의 법적 근거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위 규정은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행하는 일반적인 지휘·감독에 관한 규정으로, 이 사건 경고에 대한 작용법적 근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위 규정을 이 사건 경고의 법적 근거로 인정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판시 부분은 문제가 있다. Ⅳ. 맺음말 경고이든 불문경고이든 그것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이 사건 경고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부분은 타당하다. 그러나 「검찰청법」의 일반적인 지휘·감독에 관한 규정은 이 사건 경고에 대한 작용규범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위 규정을 이 사건 경고에 대한 작용법적 근거로 인정한 부분은 특별권력관계론에 따른 법률유보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염두에 둔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위 원칙에 대한 심리가 미진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 입법론적으로 본다면 이 사건 경고와 같이 상대방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정작용에 대하여는 그에 대한 명확한 작용법적 근거를 법률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철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경고처분
검사징계
대검찰청
직무상위반
이철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2023-05-28
정보통신
헌법사건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 제공요청 규정의 위헌성
1. 사안의 개요 청구인들은 검사 또는 군수사기관의 장을 포함한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요청에 따라 자신들이 가입한 전기통신사업자가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일 등의 통신자료를 제공하였음을 알게 되자 1) 위 수사기관 등의 각 통신자료 취득행위(이하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라 한다)와 2) 그 근거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중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을 포함한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한 정보수집을 위한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관한 부분(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결정의 요지 헌법재판소는 1)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에 관한 심판청구는 각하하였고, 2)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는 2023. 12. 31.을 시한으로 잠정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3. 평석 가. 결정의 배경 헌법재판소는 2012년 유사한 사건에서 통신자료 취득행위와 구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에 관하여 모두 각하결정을 한 바 있다(헌재 2012. 8. 23. 2010헌마439). 그러나 그 이후에도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도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한 수사기관 등(여기에는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수사처 등이 포함된다)의 통신자료 취득에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계속하여 제기되었다. 대상결정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2016년 및 2022년 청구된 합계 4건의 헌법소원심판 사건을 병합하여 판단에 이른 것이다. 대상결정은 심판대상조항이 통신자료 제공 이후에도 정보주체에게 이를 통지하는 절차를 두고 있지 않아 적법절차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심판대상조항이 적법절차원칙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은 타당하나 대상결정에 따른 후속입법에 있어서는 쟁점이 되었던 다른 위헌사유들도 진지하게 검토하여 헌법적으로 최적화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 적법요건 대상결정은 적법요건에 관한 중요 쟁점을 몇 가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먼저 이에 관하여 본다. 헌법재판소는 우선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 부분은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고 이 점은 2012년 결정과 같은 취지이다.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의 고권적 작용으로 인하여 청구인의 법률관계 내지 법적 지위를 불리하게 변화시켜야 하는데 통신자료를 제공요청하고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이를 자발적으로 제공받은 것은 임의수사에 불과하여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만 권리보호이익 흠결을 이유로 각하해야 한다는 별개의견도 제시되었다). 2012년 결정과 달라진 부분은 통신자료 제공과 취득의 근거규정인 심판대상조항의 직접성에 관한 판단으로서 이로 인하여 대상결정의 본안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헌법소원의 적법요건 중 기본권침해의 직접성만큼 논란이 많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명시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 외에 경우에 따라서는 판례의 태도에서 일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다고 보인다. 법률조항은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그 자체에 의하여 자유의 제한, 의무의 부과, 권리 또는 법적 지위의 박탈을 일으키는 경우 그 직접성이 인정될 수 있다. 사안에서는 공권력주체인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제공요청과 사적 행위자인 전기통신사업자의 제공행위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 집행행위의 실행이 있어야 비로소 기본권 제한이 발생하므로 원칙적으로는 기본권침해의 직접성이 없게 된다. 2012년 선행결정은 특히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 제공행위가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취지로 판시하였다. 그러나 ‘사인(私人)의 행위’는 공권력작용이 아니므로 집행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례들(가령 헌재 1996. 4. 25. 95헌마331)에 비추어 보더라도 직접성 판단에 있어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반면 대상결정은 적어도 영장주의나 사후통지 등 절차와 관련하여서는 법률에서 그 제도를 두지 않아 기본권 침해가 직접 문제 된다고 할 수 있고, 집행행위로 인하여 비로소 기본권 제한이 발생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통신자료 취득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불복수단이 존재하는지가 불분명”하고, “이용자는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제공요청의 직접적인 상대방이 아니어서 다른 절차를 통해 권리구제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직접성의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아 기존 판례를 변경하였다. 공권력작용과 사인의 행위가 결합된 형태의 집행행위에 이러한 법리가 향후 일관되게 적용될 것인지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일부 청구인들은 통신자료 취득시점으로부터 1년이 도과한 이후에 심판청구를 하였으나, 사후통지를 받지 못한 이상 기간도과에 청구인들이 책임질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본 점도 눈에 띈다. 다. 기본권 침해 여부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에 의하여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제한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심판대상조항의 통신자료는 정보주체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기입일·해지일’을 뜻하므로 사안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제한이 발생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청구인들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외에 통신의 비밀 제한도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이에 관하여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 이는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가 “구체적인 통신관계의 발생으로 야기된 모든 사실관계, 특히 통신관여자의 인적 동일성·통신장소·통신횟수·통신시간 등 통신의 외형을 구성하는 통신이용의 전반적 상황(헌재 2018. 6. 28. 2012헌마538)”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일 수 있으나 더 명시적인 논거와 판단기준이 드러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심판대상조항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는 명확성원칙, 과잉금지원칙, 영장주의, 적법절차원칙을 기준으로 검토되었다. 명확성원칙과 관련하여서는 심판대상조항 중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부분만이 문제 되었으나 일반인도 그 취지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아 명확성원칙 위반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과잉금지원칙과 관련하여서는 통신자료로서 제공되는 정보의 범위, 제공요청의 사유, 통신자료의 사전·사후 관리 등이 집중적으로 고려되었는데, 법정의견은 이 모든 사항과 관련하여 필요 이상의 기본권 제한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반면, 별개의견(재판관 이종석)은 통신자료로서 ‘만능키’와 같은 주민등록번호도 수집할 수 있고, 개인정보에 관한 보관기간이나 폐기절차 등 사후관리방법도 부재하는 이상 과잉금지원칙 위반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필자는 선행정보가 후속정보의 대규모 수집,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오늘날의 정보통신환경을 고려할 때 별개의견이 제시한 논거들에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상결정은 절차적 통제원칙들인 적법절차원칙과 영장주의의 관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적법절차원칙의 ‘절차적’ 요청으로 적절한 고지와 의견 및 자료 제출의 기회 부여를 들고 있고 제도와 사안에 따라 그 구체적 요구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보고 있다. 대상결정은 심판대상조항이 사전고지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 것은 물론, 통신자료 제공 이후 사후통지절차조차 두고 있지 않아 적법절차원칙상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타당하다고 평가된다. 재판관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영장주의에 관하여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대상결정은 심판대상조항에 따른 통신자료 제공요청은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헌재 2018. 6. 28. 2012헌마191)과 달리 임의수사에 불과하여 영장주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간략히 판시하는 데 그쳤으나, 기실 이는 상당한 논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특히 대상결정이 나오기 이전에 통신자료 취득에 관하여 영장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상당수 발표되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오동석, 황성기, 차진아, 임규철. 반대견해로는 이기수, 유주성). 영장주의 적용론은 정보제공 여부를 결정할 지위에 있는 전기통신사업자가 당해 개인정보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과 제3자인 전기통신사업자조차 정보제공 여부의 타당성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2다105482 판결 참조)을 주된 논거로 한다. 위와 같은 논쟁의 배경에 행정상의 인신구속 등에 관하여도 영장주의의 적용이 검토되고 있는 상황(헌재 2020. 9. 24. 2017헌바157 등 보충의견 참조)을 더하여 보면, 대상결정 중 영장주의에 관한 판시와 논증은 충분치 못하였다고 보인다. 통신자료의 취득이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등 보다 강력한 기본권제한조치들과 빈번하게 결부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라. 향후의 과제 대상결정은 사후통지절차의 흠결에 초점을 두고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는바, 적용시한인 2023. 12. 31. 이전에 개정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기통신사업법에 관한 개정안은 이미 수차례 제안된 바 있고 전기통신사업법 자체의 전면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입법자는 개정과정에 있어 헌법재판소가 직접적인 헌법불합치사유로 거론한 ‘최소한의 사후통지절차’를 마련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통신자료의 범위, 적절한 사전적 통제수단의 필요성, 보관기간이나 절차의 마련 등 대상결정에서 검토되었던 다른 위헌사유들을 진지하게 검토하여 헌법적으로 최적화된 대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조동은 교수(서울대 로스쿨)
통신자료
개인정보
수사
조동은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2-01
형사일반
‘원격의료’ 규정은 원격의료를 금지하는가
1. 시작하며 원격의료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온 문제이고, 최근에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그에 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 원격의료에 관련해서는 의료법 제17조 및 제17조의2와 의료법 제34조가 주로 문제 된다. 의료법 제17조와 제17조의2는 의료인이 환자를 '직접 진찰'한 후 진단서, 처방전 등을 작성해야 한다는 규정(이하 '직접진찰 규정'이라고 함)이고, 의료법 제34조는 '원격의료'에 관한 규정(이하 '원격의료 규정'이라고 함)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원격의료와 관련하여 의사가 전화로 환자를 진찰한 후 처방전 등을 발행한 사례가 주로 문제 되었다. 수사기관은 이러한 비대면진찰에 대해서 직접진찰 규정 위반으로 기소하였고, 헌법재판소 역시 2012. 3. 29. 선고 2010헌바83 결정에서 '직접 진찰'은 '대면 진찰'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이 2013. 4. 11. 선고 2010도1388 판결에서 '직접 진찰'이 '대면 진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자, 이후 검찰은 유사 사례에서 적용 법조를 변경하여 원격의료 규정 위반으로 기소하였고, 대법원은 2020. 11. 5. 선고 2015도13830 판결에서 의료인이 전화를 이용하여 원격지 환자를 상대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시하였다. 이하에서는 위 2020년 대법원 판결 내용을 중심으로 원격의료 규정의 해석과 관련한 쟁점을 짚어 보기로 한다. 2. 원격의료 규정에 대한 해석상의 논란 원격의료 규정은 2002년 개정 의료법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현행 의료법 제34조에 따르면, 의료인은 제33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할 수 있고(제1항), 원격의료를 행하거나 받으려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시설과 장비를 갖추어야 하며(제2항), 원격의료를 하는 자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여 진료하는 경우와 같은 책임을 진다(제3항). 그리고, 의료법 제33조 제1항은 의료인으로 하여금 각호의 예외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개설된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의 해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의료법 제34조에 의해서 의료인과 환자 간의 원격의료가 전면 금지되는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형벌법규는 죄형법정주의원칙에 따라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고,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의료법 제34조의 제목은 '원격의료'로 되어 있으나, 실제 그 내용은 의료인 간의 원격자문에 관한 것이다. 또한, 의료법 제34조 제1항은 제33조 제1항에 대한 예외로 되어 있는데, 의료법 제33조 제1항은 의료업 수행에 관한 장소적 제한 규정이지 의료인의 진료방식에 관한 것은 아니다. 그에 따라, 이러한 규정만으로는 의료인과 환자 간의 원격의료가 금지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둘째, 의료인이 개설된 의료기관 내에서 원격지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하였을 경우에도 처벌대상이 되는지에 관해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 특히, 대형 의료기관의 경우와 같이 의료인이 의료기관 내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의료(원격검사 또는 원격모니터링)를 수행할 경우에는 더욱 논란이 커질 수 있다. 의료법 제33조 제1항은 "의료인은…그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의료인으로 하여금 개설된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수행하라는 의미이지, 진료의 방식을 '대면 진료'로 제한하는 규정은 아니다. 또한, 위 규정만으로 환자에게 의료기관 방문의무를 부담시킬 수는 없고, 의료법 어디에도 의료인으로 하여금 환자를 의료기관에 방문하도록 권유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셋째, 의료법 제33조 제1항에서는 의료기관 내 진료원칙에 대한 예외를 두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제1호('응급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제2호('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하는 경우'), 제3호('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요청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진료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의료법 위반에 해당하는가?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의 대부분은 환자측의 요청이나 공익적 필요에 의해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앞으로도 상당한 논쟁이 될 수 있다. 3. 대법원의 판단 한의사가 전화를 통해 원격지 환자를 진찰하고 한약을 처방한 사안에서, 대법원 2020. 11. 5. 선고 2015도13830 판결은, "의료인이 전화 등을 통해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료법 제33조 제1항에 위반되는 행위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은 그 이유로, 1) 의료법 제34조 제1항이 의료인이 원격지에서 행하는 의료행위를 의료법 제33조 제1항의 예외로 보면서, 이를 의료인 대 의료인의 행위로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는 점, 2) 현재의 의료기술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의료인이 전화 등을 통해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행할 경우, 일반적인 의료행위와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부적정한 의료행위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국민의 보건위생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다. 또한, 위 사건에서 원심(의정부지방법원 2015. 8. 28. 선고 2014노2790 판결)은, 피고인이 환자의 요청으로 전화로 환자를 진료하였더라도, 이는 의료법 제33조 제1항 제2호에서 정한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는데,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도 정당하다고 하였다. 위 대법원 판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의료법 제34조 제1항 및 제33조 제1항의 해석상 의료인과 환자 간 전화를 통한 원격의료는 의료법에 위반된다. 2) 의료인이 개설된 의료기관 내에서 원격지 환자를 진료하더라도 처벌대상에 해당된다. 3) 환자 측의 요청에 따라 원격진료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의료법 제33조 제1항 위반에 해당된다. 4. 대법원 판결에 대한 평가 위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대법원이 원격의료의 허용 여부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였다고 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백경희, '전화를 활용한 진료의 허용 가능성에 관한 고찰', 2021. 8. 9.자 법률신문).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해석상의 논란은 쉽게 정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석상 상당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문제임에도 구체적인 논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결론을 도출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판결 내용에 있어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원격의료 규정의 입법취지와 그 배경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2002년 입법 당시의 법률안 심사보고서 등에 따르면, 당시 입법자는 구 의료법 제18조(현재의 직접진찰 규정) 해석상 원격의료가 금지된다고 보고(이러한 해석은 당시 대법원의 입장과는 배치된다), 이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기 위하여 원격의료 규정을 도입한 것이지, 원격의료를 전면 금지하기 위하여 규정을 신설한 것이 아니었다. 둘째,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는 의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환자측의 요청에 따라 원격진료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는데, 이러한 판단은 의료법 제33조 제1항의 문언에 반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제33조 제1항 각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외사유가 '특별한 사정'에 해당되지 아니한다면 과연 어떤 사유가 그에 해당할지 분명하지 않다. 셋째, 원격의료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일관되지 아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직접진찰 규정의 해석에 관한 2013. 4. 11. 선고 2010도1388 판결에서 대법원은 원격의료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더니, 위 사건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평가를 하고 있다. 다만, 위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전화를 이용한 원격의료의 경우에만 적용되는지, 아니면 그 외에 다른 정보통신수단을 통한 원격의료 전반에 그대로 통용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추가 연구와 활발한 토론을 기대해 본다. 현두륜 변호사 (법무법인 세승)
전화진료
원격의료
의료법
현두륜 변호사 (법무법인 세승)
2022-02-28
형사일반
정당한 이유 없는 증언거부와 참고인진술조서의 증거능력
I. 사실관계 피고인 A는 2017년 3월 27일 오후 7시10분경 고양시 소재 노상에서 甲으로부터 640만 원을 지급받기로 하고 甲에게 필로폰 약 41.5g을 교부하여 필로폰을 매매하였다. 甲은 검찰 수사에서 "피고인으로부터 필로폰을 입수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여 이 사건 참고인진술조서가 작성되었다. 甲은 2017년 4월 24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제1심은 2017년 10월 13일 징역 4년을 선고하였고, 제2심은 2018년 1월 31일 검사의 공소장변경을 이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甲이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상고하였으나, 2018년 5월 15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판결이 선고되었다. 한편 피고인 A에 대한 2017년 11월 24일 제1심 제5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甲은 선서 및 증언을 거부하였다. 현재 자신의 관련 사건이 항소심 계속 중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제1심은 2018년 2월 7일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검사가 항소하였다. 검사는 원심에서 다시 甲을 증인으로 신청하였고, 甲은 2018년 6월 19일 원심 제2회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선서를 거부하기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선서를 거부한다"라고 진술하면서 선서 및 증언을 거부하였다. 이때는 이미 甲 사건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어 甲의 증언거부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Ⅱ. 소송의 경과와 쟁점 1. 원심의 판단 甲의 원심에서의 증언거부는 자신의 관련 사건이 확정된 후이므로 형사소송법 제148조에 따른 증언거부권은 인정되지 않고, 형사소송법 제150조에 의하면 증언을 거부하는 자는 거부사유를 소명하여야 하는데 甲은 "선서를 거부하기로 판단하였다"라고만 하였다. 따라서 甲의 증언거부는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경우는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검사가 작성한 甲에 대한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설령 이와 달리 보더라도 형사소송법 제314조 단서에 따라 甲의 검찰에서의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 2. 대법원의 판단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참고인이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하여 피고인이 반대신문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도, 피고인이 증인의 증언거부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증인이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하여 증언을 거부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에서 그 증인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는 증거능력이 없다. 3. 쟁점 '피고인 유죄' 취지의 진술을 담은 참고인진술조서에 관하여 법정에서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여야 할 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 그 참고인진술조서를 법 제314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Ⅲ. 평석 1. 증언거부를 다르게 보아야 하는 이유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진술조서를 작성한 후에 참고인이었던 증인의 법정증언을 확보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특히 증인이 법정에 나올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이것이 바로 형사소송법 제314조가 규정하고 있는 바다. 제314조는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야 할 자가 "사망, 외국거주, 소재불명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의 예외인정 요건을 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망이나 외국거주, 소재불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판례가 이미 자세하게 설시한 바 있다.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는 그와 같은 판례의 해석론에 기초할 때, 물리적으로 출석이 불가능한 경우나 출석하더라도 진술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기억능력 자체가 없어진 경우라면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 외에 증인이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제314에서 말하는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중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첫째, 사망, 외국거주, 소재불명이라는 사유와 증언거부는 불능의 정도와 의미가 다르다. 앞의 것을 사실적 불능이라고 하면 뒤의 것은 법률적 불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증인의 증언거부 상황은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위험에 속한다. 수사기관 앞에서 진술할 때처럼 증인이 법정에서 같은 진술을 해 줄 것인가는 수사기관의 부담이고, 책임이다. 진술증거만이 존재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특히, 증인의 진술 변경, 은닉 또는 도피뿐만 아니라 증언거부 등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수사기관의 조서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이는 법이 예정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셋째, 참고인이 나중에 진술 태도를 바꿀지 안 바꿀지는 수사기관이 그를 직접 증인으로 부를 때도 마찬가지로 부담해야 할 위험이다. 증인으로 나와서 진술하겠다고 했다가 정작 증언대에서는 증언을 거부하는 경우도 우리는 수사기관에게 불리하게 평가한다. 증언을 못 들은 것으로 간주한다. 증언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참고인진술조서라고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더라도 그 위험은 고스란히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한다. 조건을 못 맞추면 조서는 증거로 쓸 수 없다. 넷째, 제312조 제4항과 제314조에는 한편으로는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신문 결과도 증거로 쓰일 길을 열어두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요건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입법자의 결단이 들어 있다. 두 조항을 해석할 때는 따라서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제312조 제4항 자체가 벌써 예외규정이다. 직접심리주의의 예외이다. 그런데 거기 덧붙여 또 하나 '진술 불능의 예외'를 둔 것이 제314조이다. '예외에 대한 또 하나의 중대한 예외'라고 본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입법자의 의사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다. 요컨대, 증인이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정당한 증언거부권의 행사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제314조의 필요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그 증인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을 적은 참고인진술조서를 제314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2. 판결의 취지 대상판결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증거는 참고인진술조서에서 수사 당시 참고인이었던 증인이 피고인으로부터 마약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법상으로 그 진술을 증거로 쓰기 위해서는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그 진술자가 법정에 나와서 조서의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 주어야 할 참고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는 때이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진술을 해 놓고도 그 진술의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지 않기로 변심한 참고인이 피고인만큼이나 괘씸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조서를 증거로 제출해 놓고 제314조에 따라 증거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사기관의 주장은 우리 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 우리 법은 증인의 진술이 법정에 현출되고 이에 관해서 피고인이 반대신문할 기회를 주는 것을 원칙적인 증인신문의 모습이라고 본다. 참고인을 수사기관 앞에 소환해서 진술을 들은 다음 조서를 작성해 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외다. 그래서 조건이 까다롭다. 성립의 진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반대신문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참고인의 진술을 듣는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따라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참고인을 증인으로 불러서 법정증언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판결처럼 조서를 작성해서 증거자료로 제출하는 것이다. 둘 다 똑같이 위험부담이 있다. 증인이 나중에 진술을 거부할 위험이다. 이 위험은 피할 방법이 없다. 재판장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감치에 처하는 것은 별론이다. 어떻게 하든 실제로 그 증인의 증언을 들을 방법은 없는 것이다. "당신은 말을 안 할 이유가 없어. 말을 해야 돼"라고 증언을 강제할 수 없다. 마찬가지다. 증언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해서 미리 작성한 조서를 증거로 받아달라고 할 수는 없다. 검사가 참고인의 결정적인 진술을 들었다고 해서 유무죄 판단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건 재판준비에 지나지 않고, 법정에서 잘해야 한다. 참고인진술조서의 준비가 다가 아니다. 제312조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그마저 못 갖추면 제314조라는 더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제314조를 좁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314조를 직접주의의 예외에 대한 또 하나의 중대한 예외라고 대상판결이 설시한 것은 이런 취지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희균 교수 (서울시립대 로스쿨)
증언거부
형사소송법제314조
형사소송법
마약류관리법
김희균 교수 (서울시립대 로스쿨)
2021-10-07
형사일반
친작 여부에 관한 기망과 사법자제 원칙
1. 서론 필자는 일전의 기고(본지 2020.10.19.자 판례평석)에서 이 사건의 두 가지 큰 주제 - (a) 이 사건 그림들이 피고인의 창작인지, (b) 친작이 아닌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기망행위인지 - 중 첫째에 대해 논하였다. 본고에서는 두 번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친작’이다. 법률적 평가인 ‘창작’과 달리 ‘친작’은 순수히 사실의 문제다. 이와 관련하여 ‘작품제작에서 조수의 사용은 관행’이라는 주장이 있다. 평론가 반이정 등이 펼친 이 주장에 의하면 다빈치, 렘브란트 등을 비롯해 우리가 흔히 아는 거장들도 조수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으며 미술계에 그러한 관행이 존재해 온 이상 작품이 친작인지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미술론’과 함께 ‘조수 사용 관행론’은 이 사건 기소를 공격하는 주요 논리이다. 그러나, 조수 사용이 관행이라 하더라도 이로부터 친작의 중요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이 글은 먼저 고지의무를 논하기 위해 작품이 친작인지가 거래상 의미있는 사실인가부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 이 글은 대법원의 사법자제 원칙이 추구하는 결론의 과도함을 지적한다. 2. 친작 여부의 중요성 몇백년간 사라졌다가 최근에 발견된 다빈치의 <구세주(Salvator Mundi)>라는 그림이 2017년 경매에서 미술사상 최고가로 판매된 경위는 미술작품의 제작관행과 시장의 상관관계라는 점에서 연구자들이 주목하였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의 스튜디오는 공동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거장이 중심이 되어 조수, 도제 등 보조자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비싼 가격을 제시하는 일부 고객은 거장의 손길이 더 들어갈 것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싼 그림을 찾는 고객들은 누가 실제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따질 입장은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구세주>를 감정한 전문가들은 이 그림의 얼마만큼이 다빈치의 손으로 그려진 것인가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이 작품을 경매한 크리스티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은 이 작품이 다빈치의 것이라는 “넓은 공감대”가 있다는 정도였다. 이 작품의 제작을 둘러싼 의문은 매수자의 구매의사와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정이었지만, <구세주>는 중동의 한 부호에게 미술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 이 매수자의 구매동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종합하자면, (ㄱ) 작품 제작에 조수를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 (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친작인지 여부는 거래상 유의미하다는 것, 그리고 (ㄷ) 모든 매수자들이 친작 여부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는 것은 아니며 구매동기는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참인 명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전제 사실들로부터 친작 여부의 고지의무에 관하여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3. 고지의무의 인정 여부 고지의무는 미술품을 구매하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문제이다. 잘 알려진 문예비평가인 메이어 아브람스에 따르면 예술을 감상하는 태도에는 네 가지가 있다. (1) 형식주의: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감상해야 하고 다른 외부적 요소를 고려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2) 표현주의: 작품은 작가의 특별하고 심오한 감정의 표현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3) 모방주의: 작품은 실제의 모방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는 입장이다. (4) 실리주의: 작품의 가치는 감상자가 얻는 교훈과 정서를 통해 평가된다는 입장이다. (1) 내지 (4)의 어느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친작의 중요성은 달라진다. 20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있던 미술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형식주의였다. 이 논리를 관철하면 대작이란 사실은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술가의 고뇌와 승화를 생각지 않고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는 입장(2)에서는 그림이 대작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다. 예술이 실제의 모방(3)이라고 보면 작가보다는 작품의 사실성에 더 큰 관심을 둘 것이다. 실리주의(4)에서 보면 친작의 중요성에 대해 작품의 내용과 의도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있을 것이다. 고지의무의 인정근거에 관하여는 “일반거래의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그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는 원칙이 있다. 앞에서 살펴 본 사정을 종합하면, 친작 여부는 “경험칙상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대법원은 ‘미술품을 구매하는 동기나 목적, 용도 등이 다양하고 이 요소들이 제각기 다른 중요도를 가질 수 있으므로, 친작 여부는 일반적으로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하는 원심판단을 수긍하였다. 즉, 친작 여부에 대해 침묵한 것만으로는 기망이 되지 않는다. 4. 사법자제 원칙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결국, 부작위에 의한 기망에 있어서 친작 여부는 고지의무로 격상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사법자제 원칙이다. 대법원은 고지의무에 대하여 판단하는 도입부에서 “위작 여부나 저작권 다툼 등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하였다(법관이 법률의 기준이 아닌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필자는 그 사법관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으나, 지면상 이 점은 다음 기회에 논한다). 친작 여부에 관한 고지의무의 문제에 한정해서 보면 사법자제 원칙은 훈시적인 언급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고지의무의 유무는 굳이 사법자제 원칙을 동원하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자제 원칙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법자제 원칙의 내용은 실제로는 원심의 다음의 언급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원심은 “구매 당시 피해자들이 내심으로 작품이 피고인의 친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작품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닌 이상, 그 제작과정이 피해자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있었다거나 피고인에 의하여 기망당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원심은 단순히 고지의무를 부정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착오 자체를 부정하였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피고인이 그림의 전부를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가격에 매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런데 원심은 그 진술만으로는 친작임을 전제로 매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이어서 위 인용된 설시를 하였다. 그 핵심은 ‘위작 또는 저작권 문제가 아닌 이상’ 실제 사실과 피해자의 인식 간의 괴리가 있었다 해도 착오나 기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작이나 저작권 문제가 아닌 이상 작품의 가치에 대한 착오나 기망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인데, 일회성에 불과한 이 설시를 굳이 하나의 도그마로 완성한 것이 사법자제 원칙이다. 대법원은 ‘위작 여부나 저작권 다툼 등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해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5. 적극적 기망 이 사건에는 소극적 기망 외에 적극적 기망의 요소가 있다. 피고인은 각종 언론, 전시, 판매과정에서 자신이 친작하는 것처럼 행세했다. 공소사실은 소극적 기망과 적극적 기망의 요소들이 섞여 있었는데, 1심과 원심은 공소사실의 요체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공소사실의 많은 부분이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였다”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고심에 이르러 검찰은 피고인이 작품의 저자인 것처럼 행세했다는 ‘묵시적 기망’의 부분에 대해 원심이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묵시적 기망은 작위에 의한 기망의 일종이다. 그것은, 피고인이 그 행위를 통해 친작이라는 외관을 창출했고 피해자들은 그 때문에 원래는 사지 않았을 가격에 작품을 샀다는 것이다. 검찰 주장은, 원심은 공소사실을 부작위에 의한 기망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았을 뿐, 기망행위에 의해 적극적으로 착오가 야기된 측면은 고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대답은 그 점은 원심이 이미 판단했다는 것이다. 부작위에 의한 기망으로 어떻게 작위에 의한 기망을 이미 판단했다는 것인가? 관건은 착오의 부정에 있다. 원심은 위작이나 저작권 문제가 아닌 친작 여부만 가지고는 착오가 될 수 없다고 했고, 대법원은 사법자제 원칙으로 이를 ‘원칙’의 수준으로 격상했다. 그 결과, 피고인이 친작 행세를 했다 해도 피해자는 착오상태에 있지 않고 기망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작 문제도 아니고 저작권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친작 여부의 소극적 기망에 있어 고지의무를 부정한 대법원의 결론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 기망에 대한 일률적 면책까지 시사하는 사법자제 원칙은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관계에 따라서는 친작 여부가 기망·착오·처분과정의 중요한 고리였고 가해자는 의도적으로 이를 이용하였을 수 있다. 사법자제라 하여 이를 모두 불문에 붙인다는 것은 사법의 기능을 지나친 것이다. 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조영남
대작
사기
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2020-10-27
형사일반
그림 대작 사건 - 현대미술론의 수용인가?
1. 서론 가수 조영남이 화가를 써서 그린 그림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판매했다고 해서 사기로 기소된 사건은 세간을 들끓게 했다. 이에 대한 입장은 미술계에서도 양분되었고 평론가들은 나름대로 예술관을 내세워 사건을 논하였는데, 특히 일부는 현대미술이라는 현상 자체가 개념-실행의 분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어서 예술의 핵심은 개념에 있고 실행은 누가 하던 상관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평론가 진중권은 1심이 기망행위를 인정한 것은 법원이 '현대미술'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면서 대법원에서 피고인의 무죄가 확정된 것은 '한국의 법원과 미술계가 비로소 현대미술의 개념에 눈을 뜬 사건'이라고 환영하였다. 마찬가지로 피고인은 이번 판결을 통해 자신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실제 제작은 전업화가 등을 사용하는 창작방식이 인정받았다고 하면서 문제된 작품들에 대해 당당히 자신을 작가로 표방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언론도 이러한 시각을 여과없이 전달하였으며 법률가들 중에도 비슷한 시각을 공유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이 사건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그러한 이해와는 정반대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설시되어 있다. 이것은 판결에서 비상하게 공을 들여 말하고 있는 저작권 법리 부분이다. 여기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이 작품들의 작가라는 원심의 판단에 대해 사실상 긍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이 사건 판결의 의미를 분명히 해서 이를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가 양산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2. 원심 판결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공소외인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한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한 것이 신의칙상 고지의무 위반으로서 기망행위라는 것이다. 1심은 (1) 피고인은 자신이 창작하지 않은 작품을 (2) 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채 판매한 것이 기망행위라고 판단하였다. 피고인을 무죄라고 본 원심의 판결이유는 크게 두 부분 (a) 이 그림들은 피고인이 창작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b) 이 사건 거래에서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각각 1심의 판단 (1)과 (2)에 대응하는 것이다. 즉, 원심은 1심의 (1)과 (2)를 모두 배척하였고, 원심 판결이유 (a)와 (b)는 병렬적으로 무죄 결론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a)와 (b) 중 어느 하나가 배척되더라도 두 가지 모두가 배척되지 않은 이상 원심의 무죄결론은 유지될 수 있는 구조였다. 원심은 판결이유 (a), 즉 이 작품들은 피고인이 창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상당한 정성을 쏟았다. 여기서 원심은 일부 평론가의 논리와 흡사하게 현대미술에서 개념-실행이 분리되는 점을 언급하고 미술사상 저명 화가들의 이름을 들면서 이들의 창작에서 조수의 사용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점을 지적하였다. 미술이론적 설명을 넘어 원심은 공소외인이 한 작업은 '밑그림의 제작'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피고인의 창작적 기여에 대해 세세하게 설시하였다. 그 다음 판결이유 (b), 즉 신의칙상 고지의무가 있는가의 점에 대해서는 위 (a)의 논의와는 별개로, 피해자들의 구매동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친작인지 여부가 거래의 주된 요소라고 말하기 어렵고 '친작이 아니었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진심이 아니었을 가능성, 그리고 고지의무의 구체적 범위와 이행방식을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그 의무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원심이 확정됨에 따라 대부분은 원심판결의 (a)와 (b)가 모두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 사건을 두고 세간에서 떠들썩하게 전개된 입론들은 모두 (a)에 관련된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을 보면 대법원은 (a)에 대한 원심의 판단을 긍정하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이 원심을 인용한 것은 (b), 즉 신의칙상 고지의무의 존부에 관해 사법자제의 원칙을 선언하면서 원심의 결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원심판결은 (a)와 (b)가 모두 배척되지 않은 이상 인용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대법원이 (a)에 대한 원심판단을 긍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심의 무죄 결론은 유지될 수 있었다. 3. 검찰 상고이유 제1점 상고심에 이르기 전까지 저작권은 전혀 논점이 아니었다. 관건은 어디까지나 친작이 아님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기망행위인가였고 저작권은 논외라는 점에 대해서 아무도 이론이 없었다. 원심은 분명하게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저작권을 보유하였는지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저작권에 대한 판단 자체를 거부하였다. 그런데 원심에서 패한 검찰의 상고이유 제1점은 '원심판결에 나타난 저작자, 저작물에 관한 법리오해'였다. 저작자와 저작물에 대한 주장은 검찰 스스로도 한 적이 없고 원심도 판단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 상고이유 제1점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저작권법에 존재하는 '2인 이상이 저작물의 작성에 관여한 경우 그중에서 창작적인 표현형식 자체에 기여한 자만이 그 저작물의 저작자가 되고,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기여하지 아니한 자는 비록 저작물의 작성 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소재 또는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관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저작물의 저작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법리 때문이다. 원심은 판결이유에서 피고인이 아이디어 내지 컨셉트를 기여하였음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원심의 판단은 '공소외인들은 보수를 받고 피고인의 창작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작품제작에 도움을 준 기술적인 보조자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원심이 스스로 인정한 이 사실을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기여하지 아니한 자는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하였더라도 저작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위 공식에 대입하면 피고인은 저작자가 아니며 오히려 공소외인이 저작자가 된다. 그 때문에 검찰의 상고이유 제1점은 친작 여부의 고지의무가 아니라 저작자 결정에 관한 법리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4. 대법원의 판단 검찰 상고이유 제1점은 불고불리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었다. 검찰이 이를 모른 것은 물론 아니었다. 저작권 법리와 원심의 판결이유를 대조하면 적어도 문언상으로 선명하게 원심의 자가당착이 나타났고 검찰은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상고이유 제1점은 그대로 배척해 버려도 무방한 것이었지만 대법원은 그러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를 배척하기 전에 이 사건의 저작권적 함의에 대해 비중있게 설시를 하였다. 대법원은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기여하지 아니한 자는 비록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하였더라도 저작자가 아니다'라는 바로 그 법리를 언급한 다음, '저작자 아닌 자가 마치 저작자인 것처럼 행세하여 그 미술품을 판매하였다면 이는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하였다. 대법원은 저작자의 결정이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지만 "원심이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피고인이라고 본 것이나 그와 같은 창작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한다고 기술한 데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원심은 작품의 저작자가 피고인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왜 대법원은 원심이 그런 판단을 했다고 본 것인가? 원심은 그 판결이유에서 이 작품들은 피고인의 창작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결이유 중 고지의무의 불인정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저작권 법리에 판결이유의 절반을 할애하면서도 이 그림들이 피고인의 창작이라는 원심의 판단은 끝내 긍정하지 않았다. 5. 이 사건의 저작권적 함의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면'하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운 사정이 존재한다. 출발은 물론 저작인격권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저작재산권과 달리 저작인격권은 일신전속적이며 양도, 포기할 수 없다. 피고인이 대가를 주고 작품을 인도받았다 해도 여기에 수정·서명을 하여 자기 작품으로 공표한 행위는 저작인격권의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넘기 어려운 장애가 있다. 첫째, 업무상 저작물의 경우는 저작인격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1심은 피고인과 공소외인 간의 법률관계는 고용이 아닌 대등관계로 보았다. 그러나 원심은 고용은 아니더라도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제작을 지시하고 공소외인은 이의없이 따르는 관계였다고 시사하고 있다. 둘째는 저작인격권이 아무리 일신전속적이라 해도 이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동의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한다. 이 사건에서 묵시적 동의의 존재는 검찰이 저작권법 위반을 기소하지 않은 배경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의 저작권 설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저작권법 위반은 별론, 저작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합의로도 변경 못하는 강행규정이기 때문이다. 저작권 제도가 개념예술을 중핵으로 하는 현대미술론에 호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현대미술이 개념이 예술이라고 주장한다면 저작권은 표현에 예술의 영혼이 있다고 본다. 개념이 아닌 표현형식을 보호한다는 것은 저작권 제도의 철학적 기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사건에서 현대미술론이 수용되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찾아보기 어렵다. 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사기
대작
조영남
안태용 변호사(서울회)
2020-10-19
지식재산권
형사일반
상표권 계약위반과 권리소진
1. 서론 상표권 계약위반의 경우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는가? 용어부터 생소한 권리소진(權利消盡)의 원칙(the rule of exhaustion) 또는 최초판매이론(the first sale doctrin)이란 특허권이나 상표권 또는 저작권의 행사로 인해 제작된 물품이 시장에 유통되는 경우 해당 권리자가 이에 대하여 재차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론상 상품이 유통되는 모든 단계에서 상표권자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상표권자가 상품을 판매한 경우 상표권은 완전히 행사된 것으로 소진되고 이후 상표권자는 그 상품이 추가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법원 및 학계는 권리소진의 원칙을 받아들여 지식재산권과 소유권 사이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런데 통상사용권자가 상표권자와의 계약에 위반하여 상품을 판매한 경우에도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는지는 일률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로서 국내에서는 아직 논의가 충분하지 않고 대법원 판례도 없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2008년 Quanta 판결 및 2017년 Lexmark 판결, 그리고 유럽사법재판소(CJEU)의 2009년 Dior v. Copad 판결 등에서 활발한 논의가 있는데 위 각 사안은 특정한 계약위반의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14446 판결은 계약위반과 상표권의 소진에 관한 일반적인 판단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상표권 계약위반과 권리소진{사법 제52호(2020. 7.)}'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2. 사안의 개요 'Metrocity' 브랜드 상표권자는 통상사용권자와 상표권사용계약을 체결하며 인터넷쇼핑몰에서의 판매를 제한하였다. 이후 통상사용권자가 계약조건을 위반하여 인터넷쇼핑몰울 운영하는 피고인에게 시계를 공급하고 피고인이 인터넷으로 판매하였는데 검찰은 피고인이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인터넷으로 상품을 판매한 것은 상표권 침해죄에 해당한다고 기소하였다. 피고인은 상표권 소진 주장 및 침해 고의가 없다는 주장을 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유죄를 인정하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며 '계약상 부수적인 조건을 위반하여 상품이 유통된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권리소진의 원칙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고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 상표의 주된 기능인 상표의 상품출처표시 및 품질보증 기능의 훼손 여부, 상표권자가 상품 판매로 보상을 받았음에도 추가적인 유통을 금지할 이익과 상품을 구입한 수요자 보호의 필요성 등을 종합하여 상표권의 소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고 피고인의 고의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3. 대상판결의 검토 가. 학설 국내 상표법 분야에서는 '계약의 본질적 내용을 기준으로 권리소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된바 있으나 본격적인 논의는 찾기 어렵다. 특허법 분야에서는 계약위반은 채무불이행 문제일 뿐이라는 견해와 특허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고 저작권법 분야에서는 이용방법과 조건을 구분하는 견해, 저작권의 본래적 내용 여부를 구분하는 견해 등 다양한 의견이 국내 및 일본에서 제시되고 있다. 나. 국내의 판결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도3445 판결은 상표의 권리소진과 그 적용 범위를 명시한 최초의 판결이고 이후 병행수입에 관한 일련의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6. 10. 13. 2006다40423 판결 등)이 있었으나 계약위반과 상표권의 소진에 관한 판례는 없었다. 하급심에서는 특허법원 2018. 10. 10. 선고 2018나1343 손해배상 사건 등에서 계약위반과 상표권의 소진이 문제되었으나 대법원의 법리 설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 외국의 판결 먼저 미국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특허품의 자유로운 유통을 허용하기 위해 최초판매의 원칙이 생성되어 왔는데 종래 미국의 판례는 특허권자가 적법한 제한을 가하여 특허품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특허권이 소진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해 왔으나 연방대법원의 2008년의 Quanta 판결, 2017년 Lexmark 판결을 통해 권리소진을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된다. 2008년 연방대법원의 Quanta v. LG 판결은 일부 계약조건에 위반된 경우에도 권리소진을 인정했으나 이는 허락된 판매(Authorized Sale)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된 사안으로 계약위반과 권리소진을 직접 다룬 것은 아니었다. 이후 2017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Lexmark 판결에서 "특허권자가 특허품을 판매하기로 결정하면 특허권자가 부과하는 어떠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해당 특허권은 소진된다"고 판단하여 권리소진의 적용범위를 넓혔으나 Lexmark case는 '특허권자에 의해' 최종소비자에게 판매가 적법하게 이루어졌고 다만 판매 후의 반환조건(post sale restriction, PSR)만이 추가된 것이므로 통상사용권자에 의해 판매된 우리 대상판결의 사안과는 차이가 있다. 2009년 유럽사법재판소(CJEU)의 Copad v. Dior 판결은 소위 '선택적 판매망(selective distribution)'에 관한 것으로 대상판결 사안과 유사하다. 선택적 판매망 시스템이란 특정한 양적·질적 조건을 충족하는 허가받은 판매업자에게만 물품을 공급하고 해당 판매업자는 소비자 또는 (위 네트워크 내의) 허가받은 재판매업자에게만 물품을 공급하기로 하는 약정을 말하는데 CJEU는 위 사건에서 고급 브랜드(luxury brand)의 선택적 공급 약정(할인매장에서의 판매 금지) 위반은 채무불이행(breach of contract) 뿐만 아니라 상표권 침해(infringement)에도 해당하고 제3자에 대해서도 침해금지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단지 라이선스 계약 위반 때문이 아니고 사치품에 있어서 할인매장 판매는 상표의 명성을 손상시키는 것으로서 유럽상표지침 7(2)에 규정된 권리소진의 예외조항 중 품질손상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다만 사치품이 아닌 일반 제품에까지 위 법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특허와 관련된 2003년 5월 27일 오사카 고등재판소 판결이 계약 위반과 관련된 쟁점을 다루며 '특허권자는 라이선스 계약에서 라이선스 범위를 한정할 수 있으나 특허발명의 실시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부수적 조건의 위반은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며 특허침해가 아니다'고 한 바 있다. 라. 종합적인 검토 먼저 계약 조건에 위반하여 통상사용권자가 물품을 유통한 경우 항상 권리소진의 원칙이 배제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계약 위반행위에 대해 지식재산권 침해를 인정하는 범위는 제한하여 해석해야 한다. 모든 계약위반의 경우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당사자들의 합의로 지식재산권 침해가 성립하는 범위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계약위반으로 규율할 수 있는 문제이며 거래의 안전을 보호할 필요도 있다. 계약을 위반하여 상품이 유통되었다고 해도 이는 진정상품에 해당하여 사실상 상품출처의 혼동이나 품질에 대한 오인의 우려가 없으며 앞서 본 미국 및 유럽의 판결 역시 계약조건 위반만으로 바로 권리침해를 인정하지 않고 권리소진 원칙의 이론적 배경, 해당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충돌하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상표사용계약에 있어서 지정상품, 존속기간, 지역 등 통상사용권의 범위는 통상사용권계약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므로 이를 넘는 통상사용권자의 상표 사용행위는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통상사용권자가 계약상 부수적인 조건을 위반하여 상품을 양도한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양도행위로서 권리소진의 원칙이 배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 판단기준으로는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 상표의 주된 기능인 상표의 상품출처표시 및 품질보증 기능의 훼손 여부, 상표권자가 상품 판매로 보상을 받았음에도 추가적인 유통을 금지할 이익과 상품을 구입한 수요자 보호의 필요성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권리소진이 인정되었다. 4. 결론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14446 판결은 계약위반과 권리소진의 판단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국제적인 논의에서도 한걸음 더 나아간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상표법은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 사용자의 업무상 신용 유지를 도모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고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상표법 제1조) 권리소진 원칙의 적용에 있어서도 충돌하는 이익 사이의 균형 있는 조화가 필요하다. 다만 구체적인 사안별로 계약위반과 권리소진의 원칙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나 위 판결을 계기로 향후 더 발전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민상 부장판사 (창원지법·前 대법원 재판연구관)
상표법
상표권침해
통상사용권자
김민상 부장판사 (창원지법·前 대법원 재판연구관)
2020-09-10
형사일반
수사기관이 체포현장에서 피의자로부터 임의 제출받은 휴대폰의 저장정보까지 영장없이 탐색할 수 있는가
1. 사실관계 피고인은 2018년 3월 26일 08:14경 서울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휴대전화기의 카메라를 이용하여 성명불상의 여성 피해자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2018년 3월 20일부터 같은 달 26일까지 18회에 걸쳐 카메라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소속 사법경찰관은 2018년 3월 26일 08:14경 ◇◇역 승강장에서 피고인이 휴대전화로 여성 승객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였다고 의심하고 피고인을 불러 세워 신분증 제시와 검문이유를 밝히며 범행을 추궁하였다. 경찰관은 부인하는 피고인으로부터 휴대전화기를 제출받아 카메라 사진폴더를 확인하였으나 여성 신체사진이 저장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최근 실행 프로그램을 확인하였고 피고인의 무음 촬영 애플리케이션 구동 사실을 인지하고 해당 사진폴더를 열어 보려고 하였으나 잠겨 있었다. 이에 경찰관은 피고인에게 비밀번호를 요구하여 계속된 추궁 끝에 결국 비밀번호를 풀었고 불법촬영된 영상이 있음을 확인한 후 현행범 체포와 임의제출에 의한 휴대전화기 압수를 집행하였다. 경찰관은 임의제출물로 압수한 휴대전화기에 관하여 사후 압수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계속 보관하고 있다가 2018년 4월 1일 위 지하철경찰대에서 휴대전화 저장정보를 다시 탐색하여 피고인이 촬영한 모든 영상을 캡처·출력하고 영상파일을 CD에 복제하였다. 2. 재판경과 및 대상판결의 요지 1심에서는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피고인에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으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①체포현장에서 임의제출 형식에 의한 압수수색은 이미 체포되었거나 체포 직전의 피의자에게 임의적 제출의사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그 실질은 형사소송법(이하 '법'이라고 한다) 제216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압수한 것으로서 사후영장을 발부받지 못하였고 현행범 체포현장에서 법 제218조에 따른 임의제출물 압수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임의제출에 의한 압수절차와 효과에 대한 피고인의 인식 또는 경찰관의 고지가 없었다고 보이는 등 압수된 휴대전화기에 대하여 경찰관의 강제수사 또는 피고인의 임의적 제출의사 부재가 의심되는 반면 이를 배제할 검사의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이유로 이 사건 휴대전화기 자체는 적법절차로 수집한 증거가 아니어서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고, ②2차 증거에 해당하는 휴대전화기에 기억된 저장정보(영상) 역시 영장 없이 탐색하여 출력·복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아니하여 적법절차로 수집한 증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의정부지법 2019. 8. 22. 선고 2018노2757 판결). 그러나 대법원은 "범죄를 실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의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고(법 제212조)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등이 유류한 물건이나 소유자·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으므로(제218조) 현행범 체포현장이나 범죄 현장에서도 소지자 등이 임의로 제출하는 물건은 법 제218조에 의하여 영장 없이 압수하는 것이 허용되고 이 경우 검사나 사법경찰관은 별도로 사후에 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며 항소심 판결과 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3. 피체포자의 휴대폰 속에 저장된 정보의 '영장 없는 수색' 허부에 대한 국내외 동향 (1) 미국 연방대법원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미 Riley 판결에서 '체포에 수반하는 영장 없는 수색'으로 압수된 피체포자의 휴대폰이라 하더라도 경찰은 사생활 보호가치가 있는 개인 정보가 다량 저장된 휴대폰의 데이터를 영장 없이 수색할 수 없고 수색 전에 일반적으로 영장을 발부받기를 주문하여 수사기관에 의한 휴대폰의 저장정보 검색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하였다(2014년 Riley v. California 판결). 이러한 Riley 판결은 개인의 정보보호와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피체포자의 휴대폰을 영장없이 수색할 권한이 원칙적으로 경찰에게 없다고 선언한 획기적인 판결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제한 없이 가택 수색이 가능한 '일반적 가택 수색영장'에 저항한 것처럼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는 집안보다 훨씬 많은 양의 사생활 보호가치가 있는 정보가 저장된 휴대폰 데이터에 대한 수사기관의 영장 없는 수색에 저항할 것을 촉구한 셈이다. (2) 국내 하급심 최근 하급심 판결에서는 "수사기관이 긴급체포 현장에서 법 제218조에 따라 피의자로부터 임의제출의 방법으로 휴대폰을 확보하는 것은 영장주의의 원칙을 무력화할 위험이 있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설령 법 제216조에 의하여 긴급체포 현장에서 영장 없이 적법하게 휴대전화 자체를 압수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전자정보까지 영장 없이 압수·수색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피의자의 긴급체포라는 상황에서 엄격한 제한 하에 이루어져야 할 예외적인 압수·수색임에도 영장 없는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을 허용하게 되면 수사기관은 사실상 전자정보에 대한 포괄적이고 무제한적인 수색을 할 수 있게 되므로 영장 없이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자정보에 대하여 압수·수색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다만 증거인멸 방지나 용의자 긴급추적 등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판시하였다(서울중앙지법 2019. 10. 8. 선고 2019고합441 판결). 4. 평석 및 결론 (1) 대상판결은 임의제출물 압수에 관한 기존 판례의 논거에 배치 기존 판례에서는 임의제출의 의미·효과 등에 관한 검찰수사관의 고지 또는 피고인의 인식, 피고인이 체포당시 범행을 부인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임의제출물로 인정하였다(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도 13726). 그러나 대상판결에서와 같이 이미 수사기관이 부인하는 피의자로부터 위법하게 사실상 휴대폰을 압수하고 휴대폰 저장정보에 대한 탐색·수색을 먼저 마친 상태라면 그 이후에 이루어진 현행범 체포상태에서의 임의제출에 의한 휴대폰 압수에 임의성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상 영장주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수사기관에 의한 실질적인 강제 압수수색 이후 이루어진 임의제출물 압수를 허용하는 대상판결의 입장이 지속된다면 압수·수색 영장 및 사후영장제도를 사실상 형해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2) 정보화시대의 필수품인 휴대폰의 저장정보에 관한 수사기관의 검색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필요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상이 된 인공지능(AI)이 수사도구로서 상당히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휴대폰 데이터(문자·음성언어·사진·동영상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영역에서도 AI의 이미지 인지 및 분석 기술 등이 활용될 수 있으므로 방대한 개인정보에 대한 사생활 보호를 위해 휴대폰 저장정보의 압수·수색에 대한 적법절차의 원리를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항소심은 경찰관이 현행범 체포시 법 제216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휴대폰 자체를 체포현장에서 영장 없이 긴급 압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휴대폰 속에 저장된 정보까지 영장 없이 탐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막대한 양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는 휴대폰 저장정보를 영장 없이 압수수색하는 현재의 수사관행은 개인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긴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휴대폰 저장정보 압수수색에 대한 사전 영장이 필요하다"고 주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휴대폰을 압수하고 영장 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수사관행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 의식없이 '체포현장에서도 소지자 등이 임의 제출하는 물건은 법 제218조에 의하여 영장 없이 압수하는 것이 허용되고 사후에 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기존 입장(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도13726 판결)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휴대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국내외의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매우 유감스러운 판결이다.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전향적인 하급심 판결의 취지를 수용하여 우월적 지위에 있는 수사기관이 수사편의를 위하여 임의제출 형식으로 압수한 휴대폰 속 개인정보를 영장 없이 투망식 탐색을 하는 수사관행에 제동을 걸고 원격 데이터 삭제 등 긴급상황이 아니라면 휴대폰 저장정보의 압수수색에 대한 사전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기대한다. (3) 결론 : 법률개정 필요 대법원이 대상판결과 같은 입장을 고수하여 휴대폰 압수수색에 대한 수사기관의 실무관행을 법치국가원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힘들다면 국민을 위한 검·경 개혁 차원에서 국회에서의 관련 법률 개정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존 형사소송법은 유체물(물건)을 압수수색 대상으로 전제한 규정으로 법 제정자가 예상하지 못한 휴대폰(이른바 스마트폰)의 등장에 맞추어 휴대폰에 저장된 디지털 정보의 압수수색에 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민감정보가 다수 포함된 휴대폰 저장정보의 압수수색에 대하여 영장주의가 적용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입법자가 수사기관에게는 피체포자의 휴대폰을 영장 없이 탐색할 권한이 원칙적으로 없다고 선언하여야 할 것이다. 김영규 변호사 (법무법인 대륙아주)
불법촬영
저장정보
영장없는수색
영장주의
김영규 변호사 (법무법인 대륙아주)
2020-08-20
조세·부담금
형사판결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 해당되는지
[판결요지] 형사사건의 재판절차에서 납세의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한 판단을 기초로 판결이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관세법 제38조의3 제3항 및 관세법 시행령 제34조 제2항 제1호에서 말하는 ‘최초의 신고 또는 경정에서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이 그에 관한 소송에 대한 판결에 의하여 다른 내용의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평석요지] 후발적 경정청구 관련 규정의 문언과 판례의 법리, 입법취지, 후발적 경정청구사유를 확대하고 있는 최근 판례 경향 등을 종합하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민사판결, 형사판결, 조세소송 판결 등 판결의 유형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판결의 주문과 이유에서 당초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의 존부나 법률효과 등이 다른 것으로 확정되었는지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따라 확정된 판결에 의하여 거래 또는 행위 등의 존부나 법률효과 등이 다른 것으로 확정되었다면 판결 유형에 관계없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로 봄이 타당하다. 대상 판결은 그동안 명시적인 판단이 없었던 형사판결에 대하여 형사판결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한 최초의 판결로서는 의미가 있으나, 문제가 있는 판결이므로 조속히 변경될 필요가 있다. 1. 사실관계 가. 원고는 런던에 유학생으로 체류 중이던 2009. 4.경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한 후 국내 소비자들이 영국산 의류, 신발, 가방 등 물품을 주문하면 영국 현지에서 이를 구입하여 국내 소비자들에게 배송해 주었다. 원고는 위와 같이 배송한 물품에 대해 국내 소비자들을 납세의무자로 하여 소액물품 감면대상에 해당한다고 수입신고를 하였다. 나. 피고는 원고가 부정한 방법으로 관세를 포탈하였다는 이유로 2012. 11. 19. 원고에게 관세를 부과하였다. 한편,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는 2012. 4. 12. 원고가 관세 부과대상인 물품을 수입하여 국내 거주자에게 판매하였으면서도 부정한 방법으로 관세를 감면받았다는 혐의로 원고를 관세법위반죄로 기소하였다. 다. 제1심은 원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은 물품을 수입한 실제 소유자는 피고인이 아닌 국내 소비자들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고, 대법원이 2017. 5. 31. 검사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위 무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관련 형사판결’). 원고는 2017. 7. 18. 피고에게 관련 형사판결을 근거로 관세법에 따른 경정청구를 하였으나 피고가 이를 거부하였다. 2. 대상 판결의 요지 형사사건의 재판절차에서 납세의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한 판단을 기초로 판결이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형사판결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관세법에서 말하는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① 형사소송은 국가 형벌권의 존부 및 적정한 처벌범위를 확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서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에 관해 발생한 분쟁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소송이라고 보기 어렵고, 형사사건의 확정판결만으로는 사법상 거래 또는 행위가 무효로 되거나 취소되지도 아니한다(‘이유①’). ② 조세포탈죄의 성립 여부 및 범칙소득금액을 확정하기 위한 형사소송절차라고 하더라도 과세절차와는 그 목적이 다르고 그 확정을 위한 절차도 별도로 규정되어 서로 상이하다. 형사소송절차에서는 대립 당사자 사이에서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의 취소 또는 무효 여부에 관하여 항변, 재항변 등 공격·방어방법의 제출을 통하여 이를 확정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이유②’). ③형사소송절차에는 엄격한 증거법칙 하에서 증거능력이 제한되고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만 유죄의 인정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형사소송에서의 무죄 판결은 그러한 증명이 없다는 의미일 뿐이지 공소사실의 부존재가 증명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대법원 2006. 9. 14. 선고 2006다27055 판결)(‘이유③’). 3. 평석 가.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의 범위 (1) 민사판결 대상 판결과 그 이전의 판결들은 국세기본법과 관세법, 지방세기본법에서 정한 후발적 경정청구사유 중 하나인 ‘거래 또는 행위 등이 그에 관한 소송에 대한 판결에 의하여 다른 것으로 확정된 경우’란 ‘최초의 신고 등이 이루어진 후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여 그에 관한 소송에서 판결에 의하여 그 거래 또는 행위 등의 존부나 그 법률효과 등이 다른 내용의 것으로 확정됨으로써 최초의 신고 등이 정당하게 유지될 수 없게 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일관되게 해석해 오고 있다(대법원 2006. 1. 26. 선고 2005두7006 판결, 대법원 2017. 9. 7. 선고 2017두41740 판결 등). 민사판결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 해당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다. (2) 조세소송 판결 대법원은 지급수수료의 손금귀속시기만을 한 달씩 늦춘 과세관청의 손금귀속방법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여 1992 내지 1995 사업연도의 법인세 부과처분을 취소한 확정판결이 1996 사업연도 귀속 지급수수료에 대하여 구 국세기본법 제45조의2 제2항 제1호, 제5호 소정의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원고의 법인세 신고 당시의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그 손금귀속시기만을 달리 본 피고의 손금귀속방법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여 부과처분을 취소한 위 확정판결은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8. 7. 24. 선고 2006두10023 판결). 그러나 납세자와 과세관청 사이에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였고, 그 판결에 의하여 손금귀속시기가 다른 것으로 확정되었으므로 이러한 조세소송 판결은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인 판결로 봄이 타당하다. (3) 형사판결 대상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 대법원은 형사판결이 국세기본법 제45조의2 제2항 제1호의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고, 심리불속행으로 2개의 판결을 하였는데(대법원 2009. 1. 30. 선고 2008두21171 판결, 대법원 2007. 10. 12. 선고 2007두13906 판결), 그 판결에 따르면 대법원은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는 형사판결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 (1)항에서 본 바와 같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 관한 일관된 판례의 입장에 의하면, 형사판결이라고 하더라도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에 관한 분쟁에 관련된 형사소송이고, 그 거래 또는 행위 등의 존부나 법률효과 등이 다른 것으로 확정되었다는 점이 판결의 주문이나 이유에서 명확하게 확인되는 형사판결이면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인 판결로 봄이 관련 법리에 부합하고 타당하다. (4) 결어 후발적 경정청구 관련 규정의 문언과 일관된 판례의 법리, 입법취지, 후발적 경정청구사유를 확대하고 있는 최근 판례 경향 등을 종합하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민사판결, 형사판결, 조세소송 판결 등 판결의 유형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판결의 주문과 이유에서 당초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의 존부나 법률효과 등이 다른 것으로 확정되었는지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따라 확정된 판결에 의하여 거래 또는 행위 등의 존부나 법률효과 등이 다른 것으로 확정되었다면 판결 유형에 관계없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로 봄이 타당하다. 나. 대상 판결의 문제점 대상 판결이 들고 있는 세 가지 이유는 아래와 같이 부당하다. 이유①에 대하여 보면, 조세 관련 형사소송은 그 목적이 국가 형벌권의 존부 및 적정한 처벌범위를 확정하는 데에 있다고 하더라도 조세채무와 관련한 납세자와 과세관청을 포함한 정부(국가)와 사이에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에 관해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이다. 또한 사법상 거래의 무효 또는 취소는 판결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상의 행위를 함으로써, 예를 들면, 계약 해제 통지, 취소 통지 등 민법 제103조, 제104조, 제107조 내지 제110조, 제543조 내지 제546조 등에 규정된 요건을 충족함으로써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고, 판결은 이를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이유②에 대하여 보면, 목적과 절차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형사소송절차에서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의 존부나 법률효과 등이 당초 과세 당시와 다르게 확정되었다면 이러한 내용을 사후적으로 과세에 반영하는 것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에 관한 판례의 법리에 부합한다. 또한 조세 관련 형사소송절차도 피고인(납세자)과 국가라는 대립 당사자 사이에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에 관한 분쟁을 확정하는 절차(현행 형사소송법은 당사자주의 입장. 대법원 2013. 8. 14. 선고 2012도13665 판결 등)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이유③에 대하여 보면, 국세기본법 제45조의2 제2항 제1호의 법문상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인 판결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유죄 판결이냐 무죄 판결이냐가 아니라, 그 판결의 확정으로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의 존부나 법률효과 등이 다른 내용의 것으로 확정된 것이냐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유③도 타당하지 않다. 또한 무죄 판결의 경우에도 행위의 존부가 아니라 법령의 해석으로 무죄가 되는 경우도 있고(대상 판결의 경우 납세의무자가 달라짐), 이러한 경우 법률효과가 달라지게 되므로 이에 따라 당초 과세를 경정할 필요가 있다. 다. 대상 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후발적 경정청구에 관한 세법 규정의 문언과 달리 후발적 경정청구사유를 넓게 인정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국세기본법 제45조의2 제2항 제1호의 판결에 대해서는 그 범위를 좁게 해석해 오고 있다. 대상 판결은 형사판결이 후발적 경정청구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한 최초의 판결로서는 의미가 있으나, 관련 형사판결에서 원고가 납세의무자가 아니라고 확정되었음에도 처분을 유지하는 등 문제가 있는 판결이므로 조속히 변경될 필요가 있다. 유철형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관세법
경정청구
과세
유철형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2020-07-16
전문직직무
형사일반
영장재판에서의 공무상비밀누설
Ⅰ 판결의 내용 1. 사안의 개요 피고인 A는 법원의 형사수석부장판사이고, 피고인 B와 C는 그 법원의 영장전담판사이다. 2016.4.경부터 소위 정운호 게이트(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정운호와 전·현직 부장판사의 유착 의혹 등)가 불거져 검찰수사가 진행되었다. B, C와 또 다른 영장전담 한모 판사는 2016.5.~8.경 각자의 영장재판기일에 정운호, 전직 부장판사인 최모 변호사, 현직 김모 부장판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청구서 등과 그 수사기록을 검토하였다. 그 검토를 토대로 다음 내용을 포함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수사기록의 해당부분을 직접 복사하여 A에게 보고하였다. 즉, ①"수사기록에 의하면, 수원 사건 관련 최모 변호사가 항소부 배당 전에 보석으로 빼낼 수 있는 재판부 등을 언급하였고...(생략)...보석 확답도 받았으며 보석청구서 접수 당일 담당재판부와 식사한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정운호 중앙 사건 관련해서도 자신은 작업할 줄 아는 변호사라면서 50억원을 요구하였고, 배당 담당직원에게 작업하여 원하는 재판부로 배당한 다음 인사권자를 통해 재판부에 얘기하겠다거나, 관련 부장판사나 주심판사도 잘 알고 지내면서 자주 식사하는 사이라는 말도 하였다고 한다", ②"수사기록에는 최모 변호사와 법원 관계자 사이의 통화내역이 붙어있지 않고, 이모 부장판사와의 문자메시지만 첨부되어 있다...(생략)...", ③"수사기록에 의하면, 최모 변호사의 남편은 대여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다액의 현금, 수표, 3만달러, 메모지, USB(9개)를 검찰에 임의로 제출하였고...(생략)...", ④"수사기록에 의하면, 관련자는 차량대금 5,000만원을 포함하여 모두 2억원을 김모 부장판사에게 전달하였다고 진술하고 있고, 현재 혐의내용은 합계 2억 1,500만원을 수수한 것인데 계좌추적 결과 현금 2억 5,400만원이 김모 부장 측 계좌에 입금된 사실이 확인된다. 또한 정운호 측의 민사소송 관련하여 정운호 측 담당자는 정운호로부터 담당 재판부에 작업을 다 해놓고 골프접대를 했다는 말을 수회 들었다고 한다" A는 위와 같의 4차례의 보고를 토대로 각 그 다음날 보고서를 작성하여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송부하였다. (위 개요는 공소사실 중 제1심 재판부가 사실로 인정한 부분만을 요약하였음) 2. 판결요지 A, B, C가 공모하여 수사기밀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함으로써 공무상비밀을 누설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제1심 재판부는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다. A와 B, C간 공모를 인정하지 않았고, 또한 그 보고내용이 실질적으로 보호할 가치 있는 공무상비밀에 해당하지 않거나, 사법행정상의 필요에 따른 정당한 직무행위로서의 보고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Ⅱ 검토 1. 이 사건의 쟁점 2016년 부장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고액수임 및 현직 법관에 대한 뇌물수수나 로비의혹 등이 보도되면서 소위 정운호 게이트에 관한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현직 법관의 연루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에 법원행정처와 영장전담판사가 부정한 목적으로 수사기록 상의 수사기밀을 공유하는 등 누설했는지 여부가 극렬하게 다투어졌다. 이하에서는, 재판부가 무죄이유로 삼은 부분, 즉 ①피고인들이 보고한 내용이 공무상비밀인가, ②그러한 보고가 직무행위로서 정당한가, ③피고인들간 공모가 인정되는가에 관하여 살펴본다. 재판과정에서 다루어졌던 기타 쟁점들에 대하여는 논외로 한다. 2. 공무상비밀누설 여부 가. 법의 규정 형법 제127조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당시 A가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수사정보는, 언론에서 이미 보도되었거나 보도예정인 기사와 유사했고, 검찰의 언론브리핑이나 수사담당검사를 통해 파악한 내용과도 유사했으므로, 실질적으로 비밀로서 유지·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보았다. 나아가 A는 법원행정처 차장에게만 보고하였고 그 자료가 법관징계나 언론대응 등의 사법행정 용도로만 이용되었으므로, 그 누설로 수사기능이 위협받는 결과를 초래하지도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나. 비밀의 보호필요성 유무 영장재판은 심리가 비공개로 이루어지고 밀행적으로 처리될 뿐만 아니라 그 발부·기각에 대한 이유도 상세하게 기재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영장재판을 위해 제출된 수사기록상의 정보들은 수사담당자 및 영장전담판사와 그 필수조력자 사이에서만 공유되고 외부에 누설되어서는 아니된다. 일부 녹취자료나 수사상황이 언론에 보도되었거나 보도예정이었더라도, 사적인 취재·추측에 의한 언론보도는 수사기록에서 확인된 공적정보와 그 신뢰가치 면에서 차이가 크다. 또한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등이 친분을 이용해 수사담당검사로부터 얻어낸 상세한 수사상황 정보는 또다른 공무상비밀누설 행위로 얻어낸 비밀자료일 뿐으로서, 그렇게 사적으로 확보한 정보와 수사기록상 공적정보가 유사하다고 하여 실질적 보호가 불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다. 수사기록상의 정보는 객관적·일반적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으로서, 실질적으로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고인들이 보고서에 담은 수사기밀은 비밀로서의 보호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다. 국가기능의 위협 초래 여부 재판부가 인정했듯이, 이 사건 수사가 진행될 즈음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몇몇 보고서에는 수사를 진행하는 검찰과 검찰총장을 압박하는 방안이나 언론의 관심을 법원에서 검찰로 돌리는 방안 및 그 실행을 위한 일부 과격한 표현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수사대상이던 김모 부장판사는 그 즈음 법원행정처 윤리감사실 조사를 통해 수사상황 중 일부를 알게 되어 선제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위 보고서들의 내용대로 수사가 방해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보고서들이 사법행정권의 최고 정점인 법원행정처에서 다수 판사들의 관여하에 작성된 사정 등을 더해보면, 수사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추상적 위험범). 3. 직무상 정당행위 여부 재판부는, B·C의 보고와 A의 보고는 그 목적과 단계를 달리하는 별개의 직무행위로서 각기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즉,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A는 형사수석부장판사로서 사건의 경위와 실체를 신속·정확히 파악하여 법원행정처에 보고할 필요가 있었고, B와 C는 A의 요구에 응하거나 통상적인 예에 따라 사법행정사무의 일환으로 주요내용을 보고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각종 법원예규와 지침은 법관 비위 등과 관련한 중요사항을 상급 사법행정기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보고에 관한 예규(2018년 폐지)’는 법관 등 관련사건에서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이 ‘처리되어 종국된 경우’ 그 사건의 요지 등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사정이 위와 같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보고의 범위와 내용이라고 할 것이다. 수사의 밀행성이나 영장재판의 비공개 및 재판의 독립 등의 견지에서 그 보고는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더구나 법원행정처 차장 등도 모두 현직 법관 신분인 점을 고려하면, 법관비위에 대한 수사상황은 그 비밀보장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 이 사건 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피고인들이 보고한 내용은 사법행정사무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들의 보고에는 관련자의 자세한 진술내용이나 증거의 내용, 그 확보상황 등까지 포함되어 있고 수사기록의 해당부분이 복사첨부까지 되어있다. 이러한 내용은 사법행정상의 보고와는 무관한 내용임이 명백하다. 나아가 위 예규의 ‘처리되어 종국된 경우’ 규정과 관련하여, 피고인들의 보고시점이 적절했는지에 관하여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피고인들의 보고행위는 사법행정상의 직무행위를 일탈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4. 공범 성립 여부 재판부는, 공소장의 ①법원행정처의 의도(수사기밀을 빼내어 수사 무마 및 검찰 압박 등), ②A의 의도(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수사기밀을 수집하여 보고), ③A의 지시에 따른 B와 C의 승낙이라는 각각의 사실과 그 연결고리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즉 법관비위에 관한 사항은 사법행정담당자가 관련내용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해야 하므로, 수석부장인 A는 그 의무를 이행했을 뿐이고, B와 C도 통상적인 예에 따라 해당법원의 공보업무 등의 책임자인 A에게 주요사항을 보고했을 뿐이라고 강조하였다. B와 C는 자신들의 보고를 토대로 A가 법원행정처에 순차 보고하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위 인정사실에 따르면, B와 C로서는 A에게 보고된 내용이 법원행정처에 순차 보고되는 것을 사전에 전제했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의 각종 예규와 지침에 따라 수석부장은 사법행정상 중요사건에 관하여 대법원장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고, 피고인들은 그러한 사법행정상의 보고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B, C는 자신들이 A에게 먼저 보고하고, 이를 토대로 A가 법원행정처에 순차보고하는 것에 대한 공모에 가담했다고 볼 수도 있다. 재판부는, 위와 같이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A, B, C 3인의 공모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무상비밀누설죄가 목적범이 아닌 이상, 검찰수사의 무마·압박 등의 ‘의도’와는 별론, 수사기록 상의 비밀을 순차 보고하는 방식으로 그 누설자체를 공모했는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3인의 공모 대신에 A와 B, A와 C간의 2인 공모 여부도 검토되어야 한다. Ⅲ 결론 제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보고가 통상적인 예에 따른 사법행정상의 정당한 직무보고라고 보았지만, 쉽사리 동의할 수 없다. 재판내용에 관한 사법행정상의 보고는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수사의 밀행성이 요구되는 영장재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기 때문이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심리를 통해 정의와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하는 결론이 도출되기를 희망한다. 최창석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신광렬
공무상비밀누설
조의연
성창호
부장판사
최창석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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