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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건축
공인중개사의 개입하에 장래 계약서 작성이 예정된 경우 계약서를 작성해야 매매계약이 성립하는지 여부
1. 판결 요지 공인중개사의 전달로 당사자 사이에 매매계약의 주요 사항이 합의된 후 가계약금을 주고받은 사안의 매매계약의 성립 여부에 관하여 법원은 ① 송금한 돈이 가계약금으로 명시된 점, ② 공인중개사는 매매 중개를 위임받았을 뿐이고, 매매계약 체결 권한을 위임받은 것은 아닌 점, ③ 공인중개사가 전달받은 매매계약의 매매대금 및 지급기일에 관한 사항을 당사자에게 전달하고 이를 통하여 당사자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주요 사항에 관한 교섭이 이루어진 것에 불과한 점, ④ 공인중개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연락하였을 뿐 직접 연락한 사실이 없고, 당사자들이 참석하여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점을 종합하면, 매매계약서를 작성함으로써 매매계약을 성립시키겠다는 의사였다고 보이고, 이러한 모습이 공인중개사를 통한 부동산 매매의 일반적인 거래관행에도 부합하는 점을 들어 매매계약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2. 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부동산 매매계약의 성립을 부정해야 할 것이다 가. 신중한 접근 우리 삶에서 부동산과 그 매수자금은 제1호 재산이거나 유일한 재산인 경우가 많다. 부동산을 사고파는 것은 실로 결혼만큼 인생에서 어마어마한 일이다. 살면서 그렇게 큰돈이 오고가는 일은 흔치 않다. 이 점만으로도 공인중개사의 개입하에 장래 계약서 작성이 예정된 있는 경우 부동산 매매계약의 성립 여부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나. 주관적 측면 : 당사자의 의사 1) 직접 대면을 통한 신원확인절차 동산과 달리 부동산의 선의취득이 인정되지 않는 우리나라 민법에서 부동산 매매계약은 거액을 지급하고도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계약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사자는 상대방과의 직접 대면을 통해 그 사람이 부동산등기사항증명서상 소유자와 일치한지, 그 사람에게 정당한 대표권이나 대리권이 있는지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이른바 ‘신원확인절차’가 보장되어야 하고 이런 기회도 없이 가계약금이 송금된 사정(주요 사항의 합의 이후)을 가지고 곧바로 매매계약이 성립했다고 본다면 그 의사를 정면으로 왜곡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 결국 당사자는 중개사사무실에서 상대방의 신원확인절차를 염두에 두었다고 할 것이다. 2) 계약서 작성을 통한 계약 성립 실제 부동산 매매 거래에서는 장래 ‘계약서 작성일’을 정해 두고 미리 가계약금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장차 ‘계약서 작성일’을 별도로 설정한 것은 결정적인 대목이고 묵직한 울림을 던지고 있다. 그 함축된 의사를 중개사사무실에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는 각 당사자에게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다.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사적 자치를 대원칙으로 하는 우리 민법에서 계약체결의 자유 중 계약체결방식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다’라는 묵직한 논거로 논란거리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당사자의 의사를 강력하게 반영함으로써 비록 주요 사항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낙성계약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의사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3) 공인중개사의 중개행위의 성격 만약 가계약금 송금 당시 구두로 매매계약이 성립되었다고 새기면, 장래 계약서 작성은 이미 구두 합의된 것을 단순히 문서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국 공인중개사의 가교 역할만으로 계약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셈인데, 이는 ‘알선’이라는 사실행위를 하는 공인중개사에게 ‘법률행위의 대리권’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부당하다. 더군다나 공인중개사법은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대상물의 확인·설명의무(공인중개사법 제25조)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중개의뢰인은 부동산전문가로부터 매물에 대한 확인·설명을 들은 연후에 계약체결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의사로 공인중개사를 개입시켰을 것이다. 4) 폭넓은 계약교섭 단계의 인정 : ‘negotiated’가 아닌 ‘negotiating’ 그리고 비록 주요 사항에 대하여 합의가 있었을지라도 낙성계약의 개념을 맹목적으로 순종하기보다는 우리 민법상 계약체결의 자유(소극적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유)라는 대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당사자 의사를 엄격히 해석해야 할 것이다. 장차 중개사사무실에서 당사자 참석하에 계약서 작성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 이전까지는 매도조건 또는 매수조건 등 계약조건의 교섭 단계에 불과하다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주요 사항에 합의가 있었다고 성급히 더 이상의 협상 자체를 원천 봉쇄시키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최종적·확정적 합의로 매듭졌다고 보면 별도로 계약서 작성일을 설계한 당사자 의도 및 관행과 정면 충돌한다. 오히려 중개사사무실에서 만나 계약서에 최종적으로 서명 또는 날인을 마칠 때까지는 당사자가 민사법 질서를 주도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용인해야 할 것이다. 사적자치 원칙이 지탱하고 있음에도 부동산 가치가 급등락했을 때, 혹은 소유권이전이나 제한물권의 설정 등으로 이미 권리관계가 변동되었거나 상대방이 아무런 권한이 없는 제3자임을 간파했음에도 중개사사무실에서 그와 계약서 작성을 거부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사적자치라는 민법상 대원칙을 제한할 때는 낙성계약이라는 개념에 함몰되어서는 안 되며 더 엄격한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매매계약뿐만 아니라 매매예약이라는 멍에를 덧씌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계약서가 없다면 매매예약 성립도 부정해야 할 것이다. 다. 객관적 측면 : 거래관행 및 거래안전 1) 거래관행 거래관행에 견주어 보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의 계약서 작성행위를 이미 성립한 구두계약과 일치함을 확인하거나 그 구두계약을 문서화하는 증빙서류 쯤으로 여기는 것은 도리어 본말이 전도되는 파격적인 판단이다. 이러한 법리 구성은 기교적이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처음 만져 보는 총만큼이나 매우 조심스러운 느낌이다. 반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 신원확인절차를 거친 후 계약서를 작성함으로써 비로소 계약이 성립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처분문서의 개념을 살리고 거래 실체를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어서 훨씬 자연스럽고 간단 명쾌한 해석이 된다. 2) 거래안전 우리 민법은 법률행위에 따른 부동산 물권변동은 등기하여야 한다는 이른바 형식주의를 취하고 있다(민법 제186조). 부동산등기법에 따라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해야 하고, 만약 첨부정보인 「등기원인을 증명하는 정보」(매매계약서)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등기신청이 각하된다(부동산등기법 제29조 제9호). 매매계약서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매수인은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장차 중개사사무실에 계약서 작성을 예정하고 있음에도 법원이 그 이전 단계에서 낙성계약을 쉽게 긍정한다면 모름지기 판결에 의한 등기(부동산등기법 제23조 제4항)를 하기 위해 등기소송이 남발될 수 있으며 그 판결 여하에 따라 부동산 거래안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이러한 거래 안전 측면에서도 계약서 작성 유무가 계약 성립 여부를 판가름 짓는 잣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계약서’라는 개념이 가지는 숙명(거래안전을 위해서 태어난)일지도 모른다. 매매계약서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매수인은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장차 중개사사무실에 계약서 작성을 예정하고 있음에도법원이 그 이전 단계에서 낙성계약을 쉽게 긍정한다면 모름지기 판결에 의한 등기를 하기 위해 등기소송이 남발될 수 있으며 그 판결 여하에 따라 부동산 거래 안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이러한 거래 안전 측면에서도 계약서 작성 유무가 계약 성립 여부를 판가름 짓는 잣대가 되어야 한다. 3. 결어 ‘인간의 생명은 그 개개인에 있어서는 하나의 우주이고, 지구보다 무거운 것’이라고 한다(헌법재판소 1996. 11. 28. 선고 95헌바1 사형제도 사건). 지구보다 무거운 생명에 못지않게 서민에게는 부동산 특히 아파트 등 주택과 그 매수자금은 우주보다 무거운 재산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재산을 처분함에 있어서 당사자가 직접 만나거나 통화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등 직접적인 교섭행위를 한 적이 없고 오로지 공인중개사로부터 간접적으로 계약의 주요 사항을 전달받고 가계약금을 주고받은 후 장차 중개사사무실에서 계약서 작성을 예정하고 있다면, 매매계약의 성립 여부에 신중하고도 엄격한 판단이 요망된다. 이런 이치에서 '전주지방법원 2021나6726 판결'의 결론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김상철 변호사(법무법인 규원)
부동산
공인중개사
가계약
계약서
김상철 변호사(법무법인 규원)
2022-10-31
부동산·건축
장래의 사정에 대한 쌍방 공통의 동기 착오와 사정변경의 원칙
[사안의 개요 및 소송의 경과] 1. 사안의 개요 원고는 피고로부터 피고 소유 토지를 임차하였는데, 위 임대차계약의 특약사항에는 "① OOO 사업의 견본주택 건축을 목적으로 한다. ② 피고는 계약과 동시에 가건물 건축 인허가에 필요한 제반 서류를 제공한다"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원고는 그 무렵 피고에게 임차보증금 및 임대료 전액을 지급하고 관할구청에 가설건축물 축조신고서를 제출하였으나, 그 신고가 반려되어 견본주택 건축을 할 수 없게 되자 피고를 상대로 기지급한 임차보증금 및 임대료의 반환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2. 소송의 경과 1심에서 원고는, 이 사건 토지를 건축부지로 사용할 수 없게 된 이상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무효 또는 해제되었거나, 착오를 이유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견본주택 설치가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의 동기로서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내용이 되었다 하더라도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원고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체결 당시 중요부분에 대하여 착오를 일으켰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시하고, 나머지 무효·해제 주장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항소심에서 원고는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제 및 해지 주장을 추가하였는데, 법원은 나머지 주장에 대해서는 원심을 그대로 인용하고, 사정변경에 의한 해지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 중 보증금 1억 원 부분을 인용하였다. 3. 판결 요지 대법원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견본주택 건축은 임대차계약에서 매우 중요한 사항인 점, 피고는 이 사건 사업 추진위원으로서 견본주택이 건축되지 않을 경우 원고가 이 사건 토지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임대차계약을 인식하고 있던 점 등에 비추어, 견본주택 건축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으로서, 견본주택을 건축할 수 없어 원고가 임대차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피고가 이 사건 토지를 사용·수익 가능한 상태로 인도한 것으로 볼 수도 없는 이상 위 임대차계약은 사정변경으로 해지되었다고 판시하고,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평석] 1. 문제의 소재 사안에서 원·피고는 계약서에 '견본주택 건축이 목적'임을 명시하였으나 법원은 착오 취소 주장을 가볍게 배척하고 사정변경에 의한 해지만을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종래 계속적 보증계약 등의 사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인정해 오던 사정변경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동기의 착오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상고이유로 삼지 않은 까닭인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동기의 착오에 관한 기존의 판례 이론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이 명시적으로 표시된 동기를 이유로 착오 취소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인지, 만일 착오가 인정된다면 사정변경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① 장래의 사정에 대한 착오 여부, ② 동기의 착오가 쌍방 공통으로 이루어진 경우의 해결방법, ③ 착오가 인정될 경우 사정변경과의 관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장래 사정에 대한 착오의 인정 여부 장래 사정에 대해서도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설과 긍정설이 대립한다. 부정설은 계약체결 시점에 현존하는 객관적 사실이 착오의 대상이며, 장래에 관한 것은 착오가 아니라 신의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긍정설은 장래의 사정도 동기의 착오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사정변경과도 경합할 수 있다고 본다. 판례는 동기의 착오에 관한 사안에서 장래의 사정과 현재의 사정을 특별히 구별하지 않고, 어떠한 사정의 기준 시점보다는 해당 사정의 발생이 미필적임을 당사자가 인식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는 태도를 보인다(이에 관한 상세한 검토는 졸고, '장래사정에 대한 쌍방 공통의 동기 착오와 사정변경의 원칙', 민사법학 제96조, 2021. 9. 참고). 사견으로도 착오, 즉 어떤 사정에 대한 잘못된 인식 자체는 계약 체결 당시 존재하여야 하나, 그 사정 자체가 반드시 현재의 것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축허가, 토지규제, 도시계획 등을 포함하여, 물건의 속성이나 지속성 때문에 그 물건의 사용가능성이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적·법률적 관계라면 장래의 사정도 착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때 착오 여부는 당사자가 계약을 체결한 당시를 기준으로 하여 그러한 사정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그 위험을 인수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사안에서 장래 견본주택을 설치할 것이라는 사정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중요한 부분으로 표시 요건 또한 갖추었지만, 건축가능성은 행정관청의 허가 여부에 달린 것이므로, 통상적인 거래에서의 위험배분과 정보제공의무 등을 고려할 때 주무관청의 담당자가 사전에 허가 여부를 미리 알려주었다든지, 행정법상 어떠한 신청의 수리가 의무적이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이상 착오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법원의 판단은 타당하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특별한 사정의 입증여부에 따라서는 당사자에게 예외적인 확신이나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될 여지도 있는바, 그와 같이 쌍방이 예외적으로 건축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라면 쌍방 공통의 동기 착오가 문제된다. 3. 쌍방 공통의 동기 착오 본래 착오는 일방 당사자의 효과의사와 표시의사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그 효력을 부정하기 위해 논의된다. 따라서 쌍방이 공통으로 동기에 관하여 착오를 일으킨 경우 ① 그 동기가 실현되지 아니할 경우에 관한 계약 내용에 공백이 있을 뿐이므로 법률행위의 보충적 해석을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 ② 쌍방의 공통의 착오는 우리 민법상 법의 흠결이 있는 경우이므로, 독일의 행위기초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 ③ 법률행위의 보충적 해석으로 해결하되 그에 의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 착오 취소, 신의칙, 사정변경의 원칙 등을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 등이 존재한다. 판례는 쌍방 공통의 착오가 문제될 수 있는 사안에서도 이에 관한 특별한 언급 없이 동기의 착오에 관한 법리를 적용한바 있다. 생각건대, 우리나라의 특유한 법제도와 판례에 보다 부합하면서 실질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기에도 용이한 방식을 택하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일차적으로는 법률행위의 보충적 해석으로 계약 내용에 대한 수정을 인정하되, 보충적 해석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착오에 의한 취소 또한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에 찬성한다. 4. 사정변경과의 관계 본래 착오는 계약 성립시를 기준으로 계약의 효력을 판단하는 것이고, 사정변경은 계약의 성립 이후 당사자가 예견하지 못한 사정이 발생하는 경우 계약의 존속이나 효력 여부를 논하기 위한 것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양자의 적용영역이 구분된다. 또한 '사정변경'이라는 언어가 자체가 표상하듯 이는 당연히 실제로 어떠한 외부적 사정의 변경이 있어야 할 것이므로, 사정은 그대로이나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이나 예상과 일치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면 사정변경을 쉽게 인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주택을 건축하기 위하여 도시계획상 특별한 건축제한이 없는 토지를 구입하였는데 이후 도시계획상 건축이 불가능한 토지로 변경된 경우와 같이, 동기의 착오 중에서도 장래에 발생할 객관적인 사정에 관한 주관적 인식에 착오가 있는 경우에는 착오와 사정변경이 경합할 수 있다. 이 때 착오로는 취소만 가능하지만 사정변경의 법리로는 해제·해지 및 수정이 모두 가능하므로, 당사자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법리를 선택하여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가급적 신의성실, 사정변경 등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법리나 조항보다 개별 구체적인 조항을 우선해야 하기 때문에, 착오와 사정변경으로 구하고자 하는 효과가 동일하다면 착오를 우선 적용함이 바람직하다. 5.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장래의 사정이라고 하더라도 계약 체결 당시 그러한 사정이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있었다면, 동기 착오에 관한 나머지 요건을 갖춘 이상 그러한 사실과 인식의 불일치를 이유로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다. 만일 그러한 착오가 일방이 아니라 쌍방 모두에게 존재하였다면 1차적으로는 법률행위의 보충적 해석을 시도하되, 그것만으로 계약 내용을 확정하기 어렵다면 착오로 인한 취소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 경우 사안에 따라 착오와 사정변경의 원칙은 경합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다만 그 적용에 있어서는 개별 법리와 조항을 우선하여야 하므로,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계약을 수정하지 않고 무효화 할 경우라면, 착오에 의한 취소를 먼저 검토함이 논리상 바람직할 것이다. 비록 입법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민법 개정 논의 당시 착오의 요건을 보다 구체화하고 사정변경의 원칙을 명문으로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된 바 있는데, 판례 역시 향후 사정변경의 원칙의 적용 범위를 현실화하고, 동기의 착오는 그 범위를 보다 구체화하여 양자간의 관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인영 교수 (연세대 로스쿨)
임대차
사정변경
동기착오
조인영 교수 (연세대 로스쿨)
2021-11-25
국가배상
부동산·건축
공기연장 간접비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비판적 고찰
I. 대상 판결 국가계약법상 장기계속공사계약에서 총공사기간이 연장된 경우, 공사기간이 변경된 것으로 보아 계약금액 조정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235189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정하였다. "장기계속공사계약에서 이른바 총괄계약은 전체적인 사업의 규모나 공사금액, 공사기간 등에 관하여 잠정적으로 활용하는 기준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계약상대방이 각 연차별 계약을 체결할 지위에 있다는 점과 계약의 전체 규모는 총괄계약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 관한 합의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총괄계약의 효력은 계약상대방의 결정(연차별 계약마다 경쟁입찰 등 계약상대방 결정 절차를 다시 밟을 필요가 없다), 계약이행의사의 확정(정당한 사유 없이 연차별 계약의 체결을 거절할 수 없고, 총공사내역에 포함된 것을 별도로 분리발주할 수 없다), 계약단가(연차별 계약금액을 정할 때 총공사의 계약단가에 의해 결정한다) 등에만 미칠 뿐이고, 계약상대방이 이행할 급부의 구체적인 내용, 계약상대방에게 지급할 공사대금의 범위, 계약의 이행기간 등은 모두 연차별 계약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확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4인의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개진하였다. Ⅱ.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의 문제점 다수의견은 총괄계약의 체결은 긍정하면서도 그 효력 발생의 범위는 제한한다. 그러나,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법률행위가 성립하면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고 다만 그 법률행위의 목적이 불가능하거나 위법하거나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경우에만 효력이 제한된다. 민법의 기본 이념인 사적 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의사의 합치가 있는 경우에는 그 효력을 임의로 제한할 수 없고, 제한하려면 그에 합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더구나 효력을 전부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을 제한하고 있고, 그것도 공사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사대금과 공사기간에 대해 명시적인 규정도 없이 제한하고 있다. 도급인의 입장에서는 일(총공사)의 완성이 중요하고, 수급인의 입장에서는 보수(총공사금액)의 지급이 중요하다. 확정된 총공사에 대해 총공사기간을 정하고 입찰을 진행하여 결정된 총공사금액에 대해 양측이 구속될 의사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권영준 교수, 민법판례연구1). 또한, 다수의견은 총괄계약의 효력이 계약단가에는 미친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계약단가에 확정적 효력이 발생하는데 이에 기초한 총공사금액에 대해 확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장기계속공사의 경우에 총공사에 대한 산출내역서가 계약도서의 하나로 작성되고, 산출내역서에는 총공사를 대상으로 하여 세부 공종별로 계약단가와 수량이 기재되어 있으며, 각 세부공종상 계약단가에 수량을 곱해서 산정된 금액의 그 총합이 바로 총공사금액이 된다. 그러므로 총공사에 대한 계약단가에 대해 확정적인 효력이 발생한다면 이를 토대로 계산되어 산출되는 총공사금액에 대해서도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계약단가와 총공사금액의 관계를 감안할 때 당사자가 계약단가에 대해서만 구속받을 의사였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럽다. 한편, 대법원은 상고심 진행 중 계약조건을 제정한 조달청과 국가계약법을 주관하는 기획재정부에게 당초 총공사기간이 연장되는 경우에 연차별 계약시 그 연장된 기간 중에 발생하는 간접공사비의 반영을 요청할 수 있는지를 질의하였다. 이에 대해 두 기관 모두 '계약상대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하여 당초 총공사기간 내 공사를 완료하지 못하여 총공사기간이 연장된 경우 계약상대자는 연장된 기간에 따른 간접공사비를 새롭게 체결되는 연차별 계약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취지로 회신하였다. 이 주무관청들은 총공사기간의 연장시 그 연장된 기간에 대해 추가 간접비를 청구할 수 있고 그 금액을 연차별 계약시 부기될 총공사금액에 반영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관련 법령과 계약조건을 마련한 측에서 자신이 어떤 의사로 제정한 것인지를 밝힌 것은 '당사자의 의사표시'를 파악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이를 배제하고 독자적인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을 제시한 셈이다. Ⅲ. 건설공사 및 국가계약 법리상 문제점 공사원가 중 간접공사비는 대체로 '공사기간'에 연동하여 증감변동하는 고정비적 성격을 갖는다. 공사기간이 연장되면 간접공사비는 추가로 투입되기 마련이다. 공기연장 사유가 발생하여 공사기간이 연장되는 경우, 그 사유가 존속하는 기간을 포착하여 보상을 해 주거나, 연장된 공사기간에 대해 보상을 해 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국가계약법령은 후자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장된 공사기간에 대해 보상을 할 경우에는 당초 입찰시에 전제로 하였던 총공사기간 이후의 연장된 기간(변경된 부분)을 대상구간으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 대법원 다수의견이 공사기간에 구속력을 인정하는 계속비계약의 경우 현재 법원의 실무는 위와 같이 연장된 기간을 대상구간으로 삼아 보상하고 있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연차별 계약상 연장된 공사기간을 대상구간으로 포착한다. 그러나, 계약당사자들 사이에 당초 총계약금액의 결정에 고려되지 아니한 사정은 당초 총공사기간의 연장이라는 점(입찰과정에서 미리 연차별 계약에 대한 고려를 할 수 없음), 연차별 계약상 계약금액은 그 공사내용에 상응하여 총공사금액이 배분된 것에 불과하고 연차별 공사기간을 고려하여 간접비가 책정되는 것이 아닌 점, 총공사기간이 수 년 연장된 상황에서 연차별 계약기간이 연장되지 않거나 수 개월 연장된 경우에 계약상대자에게 추가로 발생한 비용이 온전히 보상되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다수의견과 같이 연차별 계약상 연장된 공사기간을 보상의 대상구간으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 한편, 국가계약법 시행령과 계약예규(공사계약 일반조건)는 물가변동, 설계변경, 기타변경에 대해서 요건이 충족될 경우 총공사금액의 변경을 명문화하고 있다. 입찰참가자들은 변경의 위험에 대한 대가를 포함하게 되면 경쟁에서 탈락하게 되므로 위 규정들을 신뢰하여 그 대가를 투찰금액에서 제외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발주자는 동일한 기준으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을 제시한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 아울러 발주자는 현실화되지 않은 위험에 대해 예산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해당 사유가 발생하게 되면 발주자로서는 계약금액을 조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후적인 계약금액 변경 가능성은 계약체결 후에도 계약의 등가성을 확보하고 이로써 계약상대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인정된다(권영준 교수). 미국에서도 Equitable Adjustment(형평에 맞는 조정)이라는 명칭으로 인정하고 있다. 즉 계약금액의 조정을 통해서 계약상대자가 당초 누리기로 한 손익을 형평에 맞게 누릴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제시한 공기연장에 대한 계약금액조정 방식은 계약의 등가성을 해치고 당사자간의 형평에 맞지 않는다. 다수의견에는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위험을 일단 계약상대자가 인수하였다는 고려가 숨어 있고, 반대의견에는 계약상대자와 무관하게 발생한 위험을 계약상대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고려가 숨어 있다(권영준 교수). 위험 원인을 제공하거나, 위험과의 거리가 가깝거나, 위험을 좀 더 적은 비용으로 회피할 수 있는 자에게 위험을 부담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것을 감안하면, 발주자의 예산부족으로 인해 기본계획상 사업기간이 연장되고 이후 공사기간이 연장되었다면 총 공사기간 연장으로 인해 실현된 위험, 즉 간접비는 계약상대자보다는 발주자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권영준 교수). IV.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영향 다수의견은 형식상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론으로 접근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당사자의 의사를 배제하였다. 아울러 다수의견은 건설공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메커니즘과 국가계약법령이 예정한 위험배분에 어긋난다.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공공건설의 영역에서는 총공사기간이 수 년 늘어나더라도 연차별 계약상 늘어난 수 개월이라도 보상 받으면 다행인 복불복의 상황이 초래되었다. 장기계속공사계약이 기획재정부의 예산운영의 자의성과 국회의 선심성 공사의 남발의 토대를 제공하는 가운데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비용이 계약상대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을 정당화하고 말았다. 그 부담은 계약상대자뿐만 아니라 하수급인 등의 관계자들에게도 순차로 전가될 것이다.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체제가 유지된다면, 건설공사에 대해서는 장기계속계약제도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김대인 교수, 행정법연구 제61호). 장기계속계약은 전기·가스·수도의 공급과 같이 장기간 공급하더라도 대상물에 변화가 없으며 단위 규격에 대한 대가가 단순하게 정해지 경우에 적합하지, 공사 목적물의 내용이나 대가에 변경에 노출되어 있는 건설공사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 글은 2021년 8월 30일에 있었던 한국건설법학회(회장 윤재윤) 제25회 세미나 발표자료(지하철 7호선 공기연장 간접비 사건, 총괄계약의 구속력을 중심으로)를 정리한 것이다. 이경준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대림산업
공사대금청구
장기계속공사계약
서울시
이경준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2021-11-11
민사일반
헬스클럽의 회비 임의변경조항에 관한 약관법적 문제
[사안의 개요] 1. 피고는 1985년경부터 종합 스포츠센터(이하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원고들은 센터 개관 무렵 또는 그 이후 피고와 사이에 특별회원 가입계약을 체결하면서 입회비 및 보증금을 납부하거나, 입회비 및 보증금을 납부한 자로부터 회원권을 양수받아 이용권한을 취득한 특별회원들이다. 피고는 2011년 2차례에 걸쳐 센터 회원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실시한 후 센터 본관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를 시행하였고, 위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된 2012년 초 원고들을 포함한 특별회원을 대상으로 2차례의 공청회를 실시하여 위 리모델링 공사의 실시 및 물가상승 등 제반 경제적 여건의 변화로 인하여 센터의 특별회원에 대한 보증금을 추가로 부과할 것임을 통지하였다. 이 사건 관련 센터 회칙(이하 '이 사건 회칙') 규정은 아래와 같다. 제17조(회비의 변경조정) 스포렉스의 각종 회비는 공과금의 증액과 물가 및 기타 경제적 여건의 변동 등을 고려하여 조정할 수 있다. 단, 기 납부된 회비에 대하여는 그 권리를 인정한다. 제20조(발효) 본 회칙은 1984년 11월 20일부터 그 효력을 발생한다. 원고들은 이 사건 회칙 제17조가 약관으로서 피고로 하여금 채무의 이행에 관하여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조항이자,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하고 고객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이므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이라 한다)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원고들은 설령 피고가 이 사건 회칙 제17조에 기하여 원고들에게 추가 회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고지한 금액이 지나치게 과다하여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센터가 클럽시설 이용의 대가인 회비를 임의 조절할 수 있도록 클럽규약에 규정되어 있더라도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만 그 회비의 인상 여부 및 인상 범위를 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시설주체가 특별회원들에게 추가로 부과한 회비는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하였다. [연구] Ⅰ. 들어가며 가격조정조항에 따른 사업자의 가격조정은 일방적 급부변경에 해당하고 계약법의 대원칙인 계약준수(pacta sunt servanda)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고객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 사업자가 가격조정을 통해 계약적 등가관계를 훼손하면서 후발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의 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오남용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조정조항에 대하여는 일정 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 제10조 제1호는 채무의 이행과 관련하여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을 무효로 선언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센터 회비 임의변경조항(가격조정조항)의 약관법적 유효성 여부에 관해 다툼이 있는바, 특히 그것의 유효성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이 문제된다. Ⅱ. 가격조정조항이 약관 내용통제의 대상인지 여부 센터 시설의 회비는 회원제 센터이용계약의 급부 또는 반대급부에 해당하므로 약관법에 따른 내용통제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닌지가 문제된다. 계약체결 당시의 회비는 이용자의 회원제 센터이용에 대한 반대급부에 해당하고, 따라서 내용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조정조항에 기반하여 새롭게 형성된 회비는 원래의 계약과는 내용을 달리하는 가격에 관한 부수적 약정이며, 그에 관한 조항은 부수적 대가조항으로서 항상 약관법에 따른 내용통제의 대상이 된다. 일방적 급부변경권은 채권관계의 발생 또는 내용 변경을 위해서는 법률에 정함이 없는 한 당사자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문의 법원칙인 '계약준수의 원칙'을 일탈하는 급부변경조항 내지 가격조정조항은 내용통제를 받아야 한다. Ⅲ. 약관법 제10조 제1호의 '상당한 이유' 상당한 이유의 존부를 판단하기 위해 4가지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가격조정조항이 투명해야 한다. ② 고객이 원래 약정된 급부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보호의 가치가 있는) 이익을 가져서는 안 된다. ③ 사업자 측에 변경을 정당화하는 실체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 ④ 변경이 결과적으로 본래적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성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 1. 가격조정조항의 투명성 상당한 이유의 존부와 관련하여 투명성이 요청되는 이유는 가격'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약관사용자가 나중에 일방적으로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하여 본래의 계약적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투명성과 관련하여 법학 교육을 받지 아니한 평균적인 고객이 '계약체결 시'에 약관조항의 문언을 통해 어려움이 없이 언제 변경을 예상해야 하는지, 약정된 급부의 어떠한 변경이 허용되는지를 쉽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급부변경을 위한 사정이 어느 정도로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야 하는지는 개별 분야의 특수한 사정과 계약기간의 장단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이다. 다만 계속적 계약관계에서는 변경의 사유 및 범위를 확정적으로 정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센터 개장 후 25년여가 지난 시점의 비전형적인 장래사를 약관조항을 통해 사전에 정밀하게 규율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가격조정조항의 투명성과 관련하여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포괄할 수 있고 개별 사안에서 전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구체화할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다. 2. 고객의 본래적 급부수령에 대한 이익 사업자가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시장 여건의 변동으로 인해 급부의 사양(仕樣)을 일관하기 어려운 경우 급부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반면 고객은 여하한 변경 없이 계약상의 급부를 그대로 받는 것에 대한 이익을 가질 수 있다. 급부내용이 변경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가 그러하다. 3. 실체적 변경사유 약관법상의 일반적 투명성 요청과 급부내용의 변경유보는 계약준수의 원칙 및 그로부터 파생되는 계약적 합의는 양 당사자의 합의로만 변경할 수 있다는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이룬다는 점으로부터 약관에 실체적 변경사유가 추상적이나마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4. 등가관계의 유지 가격조정이 계약체결 당시에 존재하던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성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사업자는 가격조정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 가령 계약체결 당시에 고객이 누렸던 가격 관련 유리한 지위는 특약이 없는 한 사용자에 의한 후발적이고 일방적인 가격 인상으로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 등가관계의 파괴는 계약당사자의 이익의 균형을 도모하고자 하는 계약법적 메커니즘을 교란함과 동시에 계약의 실체적 정당성을 위태롭게 한다. 따라서 사업자 측의 원가변동 및 그 밖의 가격변동요인의 기회와 위험은 계약의 양 당사자에게 동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Ⅳ. 나오며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계속적 계약관계로서의 성질을 가진 회원제 센터이용계약에서 사정변경에 따른 가격조정이 문제되었다. 거래당사자는 특약이 없는 한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애초의 가격이 영구적으로 고정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특별회원에 대한 평생무료이용계약이 체결된 바 없다면, 센터의 증·개축으로 인한 회비 인상은 기본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회칙에서는 급부변경의 기본적 요건이 명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비 인상에 즈음하여 수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변경의 사유 및 범위가 통보되었다. 따라서 센터의 일방적 급부변경을 위한 약관조항의 투명성 요청은 물론 실체적 사유도 충족된 것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들이 원래 약정된 급부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특별히 보호의 가치가 있는 이익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센터 시설의 증·개축으로 인한 시설의 편리성 증가는 일반적으로 그 회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센터 시설의 증·개축 관련 비용은 센터와 회원이 분담해야 하고, 회원의 부담부분은 애초의 계약적 등가관계에 해당하는 비율적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회비 인상은 가능하지만, 특별회원에 대한 회비 인상의 범위가 과도하여 본래의 등가관계를 해치고 있다. 결국,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센터 측의 회비조정조항 자체는 약관법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없지만, 센터 측은 특별회원이 부담부분을 잘못 산정하여(실제로 발생한 비용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특별회원에게 전가함으로써) 애초의 계약적 등가관계가 파괴되었다. 필자는 대상판결의 결론에 대하여는 대체로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대법원이 센터 시설의 증·개축과 이로 인해 특별회원이 새롭게 누리게 된 이익을 고려해 적정히 인상된 회비의 '테두리'를 정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이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이 파기환송한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 회비변경조항에 의해 인상된 회비는 본래의 반대급부라고 할 수 없고 부수적 대가이기 때문에 법원에 의한 적정한 회비 인상분 결정은 가능하다고 하겠다. 김진우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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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21-09-27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계약의 해약으로 지급받은 선박선수금이자가 외국법인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
I.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의 요지와 처분의 경위 국내조선사들은 2007년 5월경부터 2011년 1월경까지 외국선주사들로부터 총 12척의 선박건조를 도급받는 계약(이하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위 계약에는 외국선주사들은 선박건조 완료 전에 국내조선사들에게 선박대금 일부를 선수금으로 지급하고, 국내조선사들은 자신들의 사유로 계약이 종료되면 외국선주사들에게 선수금 및 그에 대한 연 6~7%의 이자를 환급하여야 하며, 그 경우 쌍방의 상대방에 대한 모든 의무 및 책임이 면제되고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원고는 국내금융기관으로서 2007년 7월경부터 2011년 3월경까지 위 국내조선사들의 외국선주사들에 대한 선수금 및 그 이자의 지급채무를 보증하였다(이하 '이 사건 보증계약'이라고 한다). 그 후 외국선주사들은 국내조선사들의 선박인도 등이 지연되자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을 해제하였고, 원고는 2009년 6월경부터 2011년 7월경까지 외국선주사들에게 국내조선사들이 수령한 선수금과 그 이자(이하 '쟁점 선수금' 및 '쟁점 선수금이자'라고 한다)를 지급하였다. 피고는 쟁점 선수금이자가 구 법인세법(2011년 12월 31일 법률 제1112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93조 제10호 (나)목 및 구 법인세법 시행령(2010년 12월 30일 대통령령 제22577호로 개정된 것) 제132조 제10항 등(이하 '쟁점 조항'이라고 한다)이 규정하는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데도 원고가 그에 대한 원천징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2009 내지 2011 사업연도 원천징수법인세 및 이에 대한 가산세를 징수·부과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쟁점 조항이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 규정하는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인하여 지급받는 손해배상으로서 그 명목 여하에 불구하고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 배상받는 금전 또는 기타 물품의 가액'에 관하여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인하여 지급받는 위약금과 배상금이 계약상대방의 채무불이행 등으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의 실제 감소액에 대한 배상으로서 순자산의 증가가 없는 경우에는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자체에 대한 손해'에 해당하여 이를 기타소득으로 볼 수 없지만, 이를 초과하여 위약금과 배상금을 지급받았다면 이는 손해의 전보를 넘어 새로운 수입이나 소득을 발생시키므로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서 과세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다음,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선수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통상 부담하게 되는 금융비용과 계약체결 과정에서 지출하게 된 비용 등에 대한 전보로서 지급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선박대금 선지급에 따라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으므로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실제로 입은 손해를 회복시키는 손해배상금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평석 1. 문제의 소재와 이 사건 쟁점 전세계소득에 대해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내국법인과 달리 외국법인은 법인세법에서 규정하는 국내원천소득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납세의무를 부담한다. 구 법인세법 제93조는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의 종류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쟁점 조항은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인하여 지급받는 손해배상으로서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 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 배상받는 금전을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 규정하고 있다. 쟁점 선수금이자는 선박건조계약에 따라 수령한 선수금을 반환하는 경우에 가산하여 지급되는 금액으로서 쟁점 선수금이자가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소득의 지급자인 원고가 원천징수의무를 부담하게 되므로 쟁점 선수금이자가 쟁점 조항의 외국법인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 된다. 2. 선박건조계약과 선수금이자의 성격 선박건조에는 장기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통상 선주사는 선박의 자산가치 등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여 조선사에게 선수금을 지급하는데, 선박건조 과정에서 일정한 문제가 생기면 조선사는 선수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선수금반환의무는 조선사의 요청을 받은 금융기관이 외국선주사와 선박선수금환급보증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담보된다. 조선사와 금융기관은 선수금 반환시에 선수금이자를 가산하여 지급한다. 선수금이자는 선주사가 선수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선박금융비용 등과 연계되어 변동이율 등에 따라 산정된다. 선수금과 선수금이자가 반환되면 선박건조계약상 당사자들은 모두 면책된다. 3.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의 의미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지급받는 손해배상금이어야 한다는 '해약배상 요건' 및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 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 배상받는 금전이어야 한다는 '초과배상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대법원은 외국법인이 고등훈련기 양산참여권의 포기대가로 금전을 받은 사안에서, 위 금전은 해약배상 요건을 충족하고 외국법인 장차 양산사업에 참여하였을 경우 얻은 기대이익에 대한 배상금이므로 초과배상 요건도 해당하여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7두19447 판결).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은 소득세법에서 기타소득으로 규정하는 위약금, 배상금과 거의 동일하게 정의되어 있다(소득세법 시행령 제41조 제8항). 헌법재판소는 위 초과배상에 관하여 계약상대방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의 실제 감소액(적극적 손해)을 넘는 것, 즉 채무가 이행되었더라면 얻었을 재산의 증가액(소극적 손해)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헌법재판소 2010. 2. 25. 선고 2008헌바79 전원재판부 결정). 대법원은 이행지체로 인한 변제기 이후의 지연손해금은 기타소득에 해당하지만(대법원 1997. 3. 28. 선고 95누7406 판결) 법정해제나 약정해제권의 행사에 따른 민법 제548조 제2항의 법정이자는 기타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고(대법원 2014. 12. 11.자 2014두41145 판결), 매매계약의 합의해제에 따라 기지급 금액을 넘는 금원을 지급받는 사안에서는 구체적 내용에 따라 현실적 손해 보전의 경우인지를 따져 기타소득 해당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10두11979 판결, 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8두33470 판결). 대법원은 초과배상 요건에 관하여 일의적 잣대를 택하지 않고 사안에 따라 순자산 증가 여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4. 쟁점 선수금이자가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의 준거법인 영국법에 따르면 쟁점 선수금이자는 영국법상 손해배상예정을 의미하는 Liquidated Damages로서 쟁점 선수금과 그 이자를 환급하는 경우 국내조선사들은 외국선주사들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이 면제되므로 '해약배상'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다툼이 없는 반면 '초과배상' 해당 여부에 대해서는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하고 있다. 긍정설은 외국선주사들은 선박건조계약의 해제로 인하여 국내조선사들에 지급하였다가 돌려 받지 못한 쟁점 선수금 자체의 적극적 손해는 원고로부터 쟁점 선수금 상당액을 지급받으면서 배상받은 것이지만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쟁점 선수금을 다른 곳에 사용하지 못하여 입게 되는 이자 상당액의 소극적 손해를 배상하기 위하여 지급된 것이므로 쟁점 선수금이자는 지급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서는 금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부정설은 일반적인 선박금융구조에 비추어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쟁점 선수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부담하는 금융비용 등을 전보하기 위한 금원으로 실제로 입은 손해는 넘어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 순자산감소를 회복시키는 것이고 가사 쟁점 선수금이자 중 재산상 감소액을 초과하여 손해를 배상하는 금액이 포함되어 있어 이를 기타소득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입증책임은 과세관청이 있으므로 피고가 이를 특정하여 입증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처분 전부가 위법하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의 입장이기도 하다. 5.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선박건조계약의 해제에 따라 원고가 외국선주사들에게 지급한 쟁점 선수금이자가 외국선주사들의 순자산 감소를 회복시키는 손해배상금으로서 초과배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최초의 선례이다. 쟁점 선수금이자의 기타소득 해당 여부를 외국선주사들과 국내조선사들 사이의 거래를 포함하여 선박금융 과정에서 체결되는 모든 거래를 고려하여 원천납세의무자에 해당하는 외국법인의 순자산 증가의 관점에서 쟁점 선수금이자의 성격을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소득과세원칙에 입각하여 국내원천 기타소득의 법리를 발전시켰다고 평가된다. 또한, 절차적 측면에서 쟁점 선수금이자가 외국법인의 순자산을 증가시켰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이 과세관청에 있다고 판단한 부분도 입증책임원칙에 충실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선박금융의 구조에 비추어 쟁점 선수금이자는 일응 순자산감소에 대한 전보로 파악할 수 있지만 유사사건에서는 순자산감소에 대한 회복여부와 입증의 문제는 구체적 사정을 들여다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대상판결의 논거와 결론에 동의한다. 백제흠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인세
원천징수
기타소득
외국법인
백제흠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2021-06-28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카지노 국외모객용역과 고정사업장 판단
Ⅰ. 들어가며 고정사업장은 외국법인의 사업소득에 대한 과세권 행사 여부와 직결되는 중요한 개념이다. 대부분의 조세조약은 원천지국에 외국법인의 고정사업장이 없다면 그 사업소득을 과세할 수 없도록 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대법원 2020. 6. 28. 선고 2017두72935 판결은 고정사업장에 귀속되는 이윤에 관하여 과세실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법리를 제시하였으므로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본다. 자세한 논증은 졸고 '카지노 국외모객용역과 고정사업장 판단', 국제조세연구 제1집(2020. 11. 20.)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Ⅱ.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요지 필리핀 법인인 원고는 외국인 카지노를 운영하는 원고 보조참가인(이하 'A 카지노'라고 한다)과의 사이에서 원고가 A 카지노에 방문할 외국인 고객을 모집하여 주고 해당 고객이 A 카지노에서 잃은 돈의 일부를 수수료로 지급받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는 위 계약에 따라 국외에서 외국인 고객들을 모집해 A 카지노로 유치하였으며 고객들의 게임자금을 A 카지노의 계좌로 송금하였고 고객들이 자금대여를 요청할 경우에 대비하여 담보 등을 설정하거나 정산업무와 고객관리 업무 등을 수행하였다. 한편 원고는 국내에서 A 카지노의 영업장 내 사무실(이하 '쟁점 사무실'이라 한다)에 직원들을 두고 원고가 모집한 고객들에게 칩을 제공하거나 롤링게임에서 발생한 매출액을 확인하기도 하였고 고객들의 항공권 예약 및 안내 업무, 호텔과 식당의 예약 및 안내 업무 등(이하 '편의제공 업무')을 수행하였다. 쟁점 사무실에는 책상, 컴퓨터, 금고, 캐비넷, 출근카드 체크기 등이 있었고 원고의 직원이 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편 원고는 A 카지노로부터 수취한 대가에 관한 세금을 국내에서 신고·납부하지 않았다.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쟁점 사무실을 원고의 국내 고정사업장으로 판단하여 원고가 A 카지노로부터 지급받은 금원에서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금액을 국내 고정사업장에 귀속되는 수입금액으로 보았고 이에 피고 세무서장은 원고에게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를 결정·고지하였다. 2. 고정사업장 관련 원고 측의 쟁점별 주장 원고는 쟁점 사무실 공간이 임시 제공된 것으로서 원고는 그에 대한 처분권한이 없었던 점, 원고가 국내에서 수행한 업무의 내용 또한 예비적·보조적 활동에 불과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쟁점 사무실은 고정사업장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원고는 설령 고정사업장이 존재하더라도 A 카지노에 제공하는 용역의 주된 내용은 원고가 외국에서 카지노 고객을 모집하는 것이므로 방문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한 고정사업장에 귀속될 소득은 미미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A 카지노와 원고 사이의 약정에 따른 모객용역 자체는 원고의 본점에서 제공한 것이므로 원고가 A 카지노로부터 수수한 수수료 전액에 부가가치세를 과세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3. 법원의 판단 1) 파기환송 전 2심의 판단 파기환송 전 2심은 원고의 고정사업장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에 대한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부과처분을 전부 취소하였다. 즉 쟁점 사무실은 원고가 처분권한을 가지는 사업상 고정된 장소이지만 원고의 거의 모든 핵심 업무가 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비용도 대부분 해외에서 지출되고 있으며 편의제공 업무도 반드시 원고의 직원 또는 그 지시를 받는 자가 이행하여야 하는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업활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2) 상고심의 판단 상고심은 원고의 편의제공 업무가 원고가 수행한 모객사업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활동이라고 보아 원고 고정사업장의 존재를 인정하였고 이에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3) 파기환송 후 2심 및 재상고심의 판단 파기환송 후 2심 및 재상고심은 원고 본사와 별도로 원고 고정사업장에 귀속되는 수입금액을 특정하여 법인세를 과세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원고 고정사업장이 원고의 국내 수입금액 전부에 대한 부가가치세 납부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후 정당세액을 산출할 수 없음을 들어 피고의 부과처분 전부를 취소하였다. Ⅲ. 평석 1. 고정사업장 성립 쟁점 기본 고정사업장 성립 요건으로는 물적 시설의 고정적 존재(객관적 요건), 물적 시설 사용권한의 보유 또는 지배(주관적 요건), 물적 시설을 통한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업활동의 수행(기능적 요건)이 요구된다. 이 사건에서는 기능적 요건이 주로 문제되었는데 편의제공 업무가 중단될 경우 고객들이 A 카지노에 방문할 유인이 감소하여 모객사업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어 A 카지노의 도박수입 및 그에 연동되는 원고의 모객수수료 수입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평가는 카지노 산업의 특수성, 원고와 A 카지노간 계약 내용에 터잡은 것이므로 곧바로 다른 사례들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2. 고정사업장 귀속 쟁점 1) 원고 고정사업장 귀속 소득의 구분 대부분의 조세조약은 국내 고정사업장에 귀속되는 사업소득에 한하여 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는 독립기업의 원칙에 따라 정상가격으로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OECD 모델조약 제7조에 대한 주석 문단 15 내지 17은 외국법인 전체의 수행기능, 귀속되는 자산 및 위험 등을 고려하여 고정사업장이 수행하는 비중을 구분한 후 그에 상응하는 소득을 귀속시키도록 하였다. 이 사건에서 원고 고정사업장에 부과될 정당한 법인세 금액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첫째 단계로서 원고의 국내원천소득 중 원고 본사에 귀속될 소득과 원고 고정사업장에 귀속될 소득을 구분하여 산정하고 둘째 단계로서 원고 고정사업장에서 지출된 비용(필요경비 등)을 산정하여 이를 원고 고정사업장의 과세표준에서 공제하게 된다. 그러나 피고는 원고가 국외 비용의 증빙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준경비율을 적용하여 추계로 법인세를 과세하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재상고심은 "원고의 필리핀 본점에 귀속되어야 할 수입금액이 있음이 명백하고 그 액수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것이다. 2) 용역의 공급자 및 공급장소의 검토 부가가치세법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사업장으로 정의하면서 그 사업장 소재지별로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사업장별 과세원칙을 채택하고 있다(부가가치세법 제6조 제1항, 제2항). 하나의 법인이 복수의 사업장을 가진 경우라면 어떤 사업장이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자 또는 공급받는 자인지 검토하여야 하는 것처럼 원고 고정사업장이 성립되더라도 외국법인 본점과 해당 사업장 중 어느 사업장이 용역의 공급자인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공급장소 측면에서 보면 단일한 역무는 그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 물리적으로 어디에서 수행되었는지를 기준으로 그 공급장소가 결정되는데 재상고심은 원고가 국외에서 수행한 부분이 '보다 본질적이고 핵심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원고가 A 카지노에 제공한 전체 용역의 공급장소를 국내로 볼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원고의 편의제공 업무는 고정사업장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업무이기는 하나 원고가 해외에서 수행하는 고객과의 계약체결, 자금대여 및 정산 업무 등에 비하면 모객사업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재상고심은 원고가 A 카지노에 제공한 용역이 하나의 단일한 것이고 그 중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이 국외에서 수행된 것이어서 국내에서 부가가치세를 아예 과세할 수 없다고 본 것인지 아니면 국내 고정사업장 수행 역무와 국외 본점 수행 역무를 단일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전자만 구분해내야 한다고 본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3) 고정사업장 귀속 소득의 증명책임 통설 및 판례에 따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과세관청이 과세요건 사실의 존재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 이 사건에서 재상고심은 고정사업장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과세관청이 주장·증명해야 하는 것임을 최초로 밝혔다. 실제로 과세관청은 세법상 질문·조사권에 기하여 거래상대방들로부터 조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받거나 그 직원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는 점, OECD 모델조세조약 제7조에 대한 주석 문단 25 및 26은 고정사업장 조사라는 이유만으로 특수관계거래 적용 기준과 비교할 때 추가로 서류제출 부담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점, 과세관청은 정당한 자료제출요구에 불응하는 납세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고 최근 관련 규정을 더 강화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재상고심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본다. Ⅳ. 결어 재상고심은 외국법인 고정사업장의 과세표준에 관한 증명책임이 과세관청에게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고 고정사업장이 인정되더라도 그것만으로 국내에서 수취한 대가 전체에 대한 법인세 또는 부가가치세 납세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현행 과세실무에 중요한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은총 변호사 (김·장 법률사무소)
고정사업장
카지노
법인세
사업소득
이은총 변호사 (김·장 법률사무소)
2021-01-18
금융·보험
상사일반
보험수익자 변경에 대한 보험계약자 의사표시의 성격
Ⅰ. 서론 보험계약관계는 기본적으로 보험계약자와 보험자 사이의 계약이다. 하지만 보험계약에서는 피보험자의 개념이 있고 또한 인보험에서는 보험수익자의 개념이 존재한다. 이들 사이의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며 계약을 체결하는 보험자가 당사자들을 조합할 수 있다. 손해보험에서는 보험금을 받기로 되어 있는 자가 피보험자이다. 하지만 인보험에서는 그 사람의 신체에 보험을 붙이는 사람이 피보험자이다. 그리고 보험금을 지급받을 자가 보험수익자가 된다. 이때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보험료를 납부할 의무가 있는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지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그 지정·변경권 행사와 관련하여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 이에 이 글에서는 최근의 대법원 판례를 고찰대상으로 삼아 보험계약자의 보험수익자 지정·변경권의 성질, 내용에 대하여 살펴본다. Ⅱ. 대상판결(대법원 2020. 2. 27. 선고 2019다204869 판결) 1. 사안 2016년 12월 2일경 망인은 보험수익자 변경권을 행사하였다. 이로 인해 보험수익자가 피고에서 원고로 변경되었다. 그 사실을 보험자에게 통지하지는 아니한 상태에서 2017년 10월 8일 망인이 사망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보험금청구권의 양도 및 그에 따른 양도통지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청주지방법원 2018. 5. 15. 선고 2018가단20668 판결)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제2심(청주지방법원 2018. 12. 19. 선고 2018나7420 판결)은 제1심 판결이 부당하다고 하면서 제1심 판결을 취소한 다음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2. 대상판결 보험계약자는 보험수익자를 변경할 권리가 있다(상법 제733조 제1항). 이러한 보험수익자 변경권은 형성권으로서 보험계약자가 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고 그 행사에 의해 변경의 효력이 즉시 발생한다. 다만 보험계약자는 보험수익자를 변경한 후 보험자에 대하여 이를 통지하지 않으면 보험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상법 제734조 제1항). 이와 같은 보험수익자 변경권의 법적 성질과 상법 규정의 해석에 비추어 보면 보험수익자 변경은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보험수익자 변경의 의사표시가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이상 그러한 의사표시가 보험자나 보험수익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보험수익자 변경의 효과는 발생한다. Ⅲ. 보험수익자 지정과 변경 1. 보험수익자의 지정 또는 변경의 권리 생명보험에서는 보험계약자는 그 사정 여하에 따라 보험수익자를 지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데(제733조 제1항) 이것을 보험수익자의 지정·변경권이라 한다. 보험계약자가 이러한 지정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피보험자를 보험수익자로 하고 보험계약자가 이러한 변경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된다. 보험수익자의 지정변경권은 보험자의 동의를 요하지 않고 보험계약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 있으면 되므로 형성권이며 단독행위이다. 2. 지정·변경의 대항요건 보험계약자가 계약성립 후에 보험수익자의 지정·변경을 한 경우에는 보험자의 2중지급 방지를 위해 보험자에 대해 그 지정·변경을 통지하지 않으면 이를 보험자에게 대항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상법 제734조 제1항). 통지는 단지 대항요건이므로 나중의 보험수익자는 전의 보험수익자가 받은 보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Ⅳ. 독일의 법제와 논의 독일에서도 우리와 거의 유사하게 보험수익자 지정 변경을 이해하고 있다. 즉 보험수익자 지정은 계약체결 시에 이루어질 수 있고 그 이후에 이루어질 수 있다. 보험수익자 지정은 1)일방적인, 2)수령을 필요로 하는, 3)형성권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것은 따라서 처분행위이다. 다만 우리와는 다르게 독일에서는 수익자 지정의 의사표시는 수령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수령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내용은 계약법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 보험계약자, 보험자, 제3자에게 있어서 권리를 변경하는 내용은 증빙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Ⅴ. 해석론과 입법론 1. 해석론 생명보험계약에서 보험계약자의 보험수익자 지정은 보험자에게는 통지하여야 대항할 수 있다. 보험계약자의 보험수익자 지정·변경권이 일방적인 권리로서 형성권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와 같이 이해하는 한 보험회사가 보험수익자를 변경할 경우에는 보험회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약관을 두고 있다면 이는 상법 제663조에 반하여 무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원래 타인을 위한 보험에서 보험계약을 해지할 때에는 보험증권을 소지하거나 타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상법 제649조 제1항). 하지만 보험계약자가 기존의 보험수익자에서 새로운 보험수익자로 수익자를 변경함에 있어서는 기존의 보험수익자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보험수익자 변경을 보험회사에 통지하지 아니하였다 하여도 객관적으로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변경하였다면 그 사실을 보험자에게 증명하고 주장하여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그리고 통지는 단지 대항요건이므로 나중의 보험수익자는 전의 보험수익자가 받은 보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구 보험수익자가 신 보험수익자로 적법하게 변경이 된 이상 신 보험수익자가 보험금청구권자가 되기 때문에 신 보험수익자가 구 보험수익자에 대하여 보험금채권의 양도를 구할 법률상의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신 보험수익자는 보험자에게 통지하여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대법원의 판시는 해석론으로서는 타당하다. 2. 비교대상으로서 독일의 내용과 입법론 독일의 경우에도 우리와 유사하게 보험수익자 지정·변경권을 이해하고 있다. 즉 수익자 지정권은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하는 형성권으로 본다. 다만 독일의 경우에는 우리와 달리 수익자 지정의 의사표시는 수령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보험계약자, 보험자, 제3자에게 있어서 권리를 변경하는 내용은 증빙수단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독일의 법제 및 학설 판례에 의하면 본 사안에서는 대법원 판결처럼 판시할 수는 없고 수익자 변경내용은 무효라는 결론이 될 것이다. 보험자에게 도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독일에서는 우리와는 다르게 보험계약법에서 수인의 보험수익자의 청구금액, 상속인간의 보험금청구비율에 대하여 규정을 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수익자 지정·변경권을 형성권으로 보면서도 보험자에게 도달하여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를 참조하여 우리 상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상법 제734조 제1항을 아래와 같이 개정함으로써 수익자 지정·변경을 통지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대항요건이 아닌 내용으로 법률규정에 표현함으로써 민법 제111조가 적용되어 도달주의가 적용되는 것이다. Ⅵ. 결론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에서 보험수익자 지정은 법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보험료를 출연하고 계약을 관리하는 보험계약자에게 보험수익자 지정·변경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일방적인 권리로서 형성권이다. 만일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변경할 경우에는 보험회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약관을 두고 있다면 이는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타인을 위한 보험에서 보험계약을 해지할 때에는 보험증권을 소지하거나 타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보험계약자가 기존의 보험수익자에서 새로운 보험수익자로 변경함에 있어서는 기존의 보험수익자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지정·변경권을 행사한 경우 보험자에게 통지하는 것은 대항요건이다. 따라서 보험자에게 통지하지 않았어도 적법하게 보험수익자를 변경한 경우에는 새로이 지정된 보험수익자가 보험금청구권자가 된다. 그 결과 신 보험수익자는 구 보험수익자에게 보험금채권의 양도를 구할 법률상의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는 그 소를 각하하여야 한다. 독일의 경우에도 우리와 유사하게 보험수익자 지정·변경권을 이해하고 있으며 수익자 지정권은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하는 형성권으로 본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수익자 지정의 의사표시는 수령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독일의 법제 및 학설 판례에 의하면 위의 사안에서는 대법원 판결처럼 판시할 수는 없고 수익자 변경내용은 무효라는 결론이 될 것이다. 수익자 변경의 의사표시가 보험자에게 도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험수익자를 제 때 그리고 제대로 지정하는 것이 생명보험계약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사고는 뜻하지 않게 발생하고 생명보험의 속성상 사망한 후에 보험금이 지급되므로 그 구도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병규 교수 (건국대 로스쿨)
보험수익자
보험금
보험계약자
최병규 교수 (건국대 로스쿨)
2021-01-04
금융·보험
항공·해상
보험계약의 변경과 최대선의의무의 관계
1. 기초사실 원고는 원심 공동피고(이하 '소외 회사'라고 한다)와 원고가 생산하여 브라질 소재 매수인에게 수출한 크레인 자재(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고 한다)를 마산항에서 브라질까지 운송하기로 하는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 소외 회사는 실제 해상운송인인 피고 보조참가인과 이 사건 화물에 관한 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 보험자인 피고는 원고와 이 사건 화물에 대한 해상적하보험계약을 체결하였고 보험증권(이하 '이 사건 보험증권'이라고 한다)에는 "이 보험증권 하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책임 문제는 영국의 법과 관습에 의해 규율된다(All questions of liability arising under this policy are to be governed by the laws and customs of England)"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 사건 선박의 일등항해사는 출항일에 이 사건 화물의 일부가 손상되어 있었다는 취지의 본선수취증(Mate's Receipt)을 발행하였다. 피고 보조참가인은 위와 같은 내용의 본선수취증이 발행되자 소외 회사에게 고장선하증권을 발행하거나 원고로부터 보상장(Letter of Indemnity, LOI)을 발행받아야 무사고 선하증권을 발급받을 것이라고 통지하였다. 그러나 원고는 소외 회사의 보상장 발행 요청을 거절하였다. 소외 회사가 선임한 검정인은 이 사건 화물에 대한 적부와 고박이 통상적인 기후조건 아래에서 해상운송을 감당하기 적절하게 시행되었다고 판단된다는 내용의 검정보고서를 발행하였다. 그러나 소외 회사는 피고에게 검정보고서를 송부하면서 위에서 본 사실관계와 달리 "선적 전까지 이 사건 화물 상태가 양호 또는 정상으로 화물에 이상이 없고 고장 선하증권이나 보상장이 발행되었거나 그러한 사정이 없다"고 알렸다. 한편 소외 회사는 피고에게 반복하여 소외 회사에 대한 대위권 포기특약{Subject To Waiver Of Subrogation Right Against The Named Applicant(forwarder), 이하 '이 사건 대위권 포기특약'이라 한다}을 추가해 줄 것을 요구하였고 피고는 이 사건 대위권 포기특약을 추가하는 것으로 이 사건 보험계약을 변경하였다. 피고 보조참가인의 대리점인 ○○종합물류는 피고 보조참가인에게 무사고 선하증권의 발행을 요청하면서 '무사고 선하증권의 발행으로 인하여 피고 보조참가인이 부담하게 되는 모든 책임에 관하여 피고 보조참가인을 면책시키고 자신이 보상하겠다'는 내용의 보상장을 발행하고 이 사건 선박의 선장을 대리하여 소외 회사에게 무사고 마스터 선하증권(Master B/L)을 발행하였다. 이 사건 선박이 브라질에 도착하여 하역작업을 개시하려고 할 때 이 사건 화물이 손상된 사실이 확인되었다(이하 '이 사건 사고'이라고 한다). 원고는 이 사건 수출계약에 따라 이 사건 사고로 손상된 화물의 수리작업을 진행하고 그 비용을 지출하였다. 원고는 피고에게 이 사건 사고로 인한 손해보상을 청구하였지만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사고에 관하여 보상하지 않겠다는 면책 통보를 하였다. 2. 판결이유 영국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 제17조는 '해상보험계약은 최대선의(utmost good faith)에 기초한 계약이며 만일 일방당사자가 최대선의를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상대방은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영국 해상보험법상 최대선의의무는 해상보험계약의 체결·이행·사고 발생 후 보험금 청구의 모든 단계에서 적용된다. 특히 계약의 체결 단계에서 가장 엄격하게 요구된다. 즉 이러한 최대선의의 원칙에 기초하여 같은 법 제18조는 피보험자가 계약 체결 전에 알고 있는 모든 중요한 사항을 보험자에게 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항이란 보험자가 보험료를 산정하거나 위험을 인수할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그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항을 의미한다. 이처럼 영국 해상보험법상 최대선의의 의무는 보험계약 체결 이후에도 계속되는 공정거래의 원칙(a principle of fair dealing)으로 계약 전반에 있어서 준수되어야 하지만 계약의 이행 단계에서도 최대선의의무를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의무로 인정하면 피보험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초래하고 계약관계의 형평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일단 계약이 성립된 이후에는 계약 상대방의 편의를 증대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정도에는 이르지 않고 상대방에게 손해를 일으키거나 계약관계를 해치지 않을 의무로 완화된다고 보아야 한다{Manifest shipping Co. Ltd v. Uni-Polaris shipping Co. Ltd.(The Star Sea), 2001 Lloyd's C.L.C.608}. 특히 영국 해상보험법상 보험계약 계속 중 기존 계약의 내용을 추가 또는 변경할 때에는 해당 변경사항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만 고지의무를 부담하는 것이지 제18조에 규정된 고지의무와 같이 모든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고지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3.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분석 소외 회사는 피고에게 이 사건 화물에 관하여 보상장 발행 없이 무사고 선하증권이 발행될 것이라고 통지한 후 이 사건 대위권 포기특약을 추가하는 내용으로 보험계약을 변경하였는데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계약체결 후 최대선의의무 위반이 되는지 문제 된다. 대법원은 "영국 해상보험법상 최대선의의무가 보험계약의 전 과정에서 요구된다 하더라도 계약체결 이후 그 의무의 강도와 내용은 완화될 뿐만 아니라 계약변경과 관련해서는 변경되는 내용과 관련한 중요한 사정에 관하여만 고지하면 된다"고 판시하였는데 이는 The Star Sea사건의 영국 판례의 법리를 정확히 기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피보험자 등의 보험계약 체결 후의 행위가 영국법상 계약체결 후 최대선의의무에 반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Carter v. Boehm사건 (1766) 3 Burr 1911'에서 Mansfield경이 설시한 최대선의의무 내지 고지의무의 목적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영국 법원은 보험계약상 고지의무가 요구되는 이유를 사기의 방지와 선의성 제고에 있다고 보고 있고 보험계약 체결 후의 고지의무위반 여부의 실정법적 근거를 영국 해상보험법 제17조뿐만 아니라 동 법 제18조 내지 제20조의 유추적용에서 찾고 있다. 대법원은 보험계약의 변경과 관련하여 고지의무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를 이 사건 보상장이 발행된 일련의 경위가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변경된 사항에 관하여 중요한 사항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이 사건 보상장이 보험계약 변경에 있어 고지대상인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판시한 바와 같이 이 사건 보상장이 송하인인 원고가 아닌 피고 보조참가인의 선박대리점이 소외 회사의 부탁을 받아 발행한 것이고 해상운송 실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보상장도 아니라는 점에서 피고의 계약체결에 결정적 역할을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 보험계약의 체결에 있어 보상장의 제공 여부는 피고의 원고에 대한 대위권행사의 전제가 되는 중요한 문제였다는 점에서 보상장 작성 주체가 원고가 아닌 제3자라고 하더라도 보상장의 발행여부는 신중한 보험자의 계약변경의 결정에 있어 일정한 기여를 할 수는 있다거나 다른 사실과 결합하게 되면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대법원 판시는 영국법상 보험계약 체결 후 고지의무의 법리를 오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영국 법원은 고지의무위반의 성립요건으로서 중요한 사항의 불고지 등으로 인해 보험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Induce)되었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사건 보상장이 발행된 일련의 경위는 신중한 보험자 입장에서 판단할 때 중요한 사항이지만 보상장 발행 여부가 피고의 보험계약 변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한 해석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의 경우 보상장 발행 여부는 계약변경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이지만 그러한 사정이 피고의 보험계약의 변경에 유인의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정원 교수 (부산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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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교수 (부산대 로스쿨)
2020-10-26
고지의무 위반과 보험사고 사이 인과관계 없는 보험계약 해지 가부
Ⅰ. 사안의 개요 1. 원고는 피고(보험회사)와 사이에 자신의 남편을 피보험자로 하는 종신보험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계약체결 당시 남편이 전에 고혈압 진단 및 투약사실이 있었음을 보험회사에 고지하지 아니하였다. 2. 그 후 피보험자는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중 급성 림프아구성 백혈병으로 진단받게 되자 피고에게 이에 대한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3. 그런데, 이 사건 보험계약의 약관 제27조는 고지의무 위반의 경우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할 수 있음을 규정하는 한편, 상법 제651조도 고지의무 위반의 경우에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내에,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에 한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4. 이에 피고는 원고에게 백혈병으로 인한 보험금을 지급하고, 피보험자의 고혈압 진단 및 투약사실에 관한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위 보험계약의 해지를 통보하였다. 5. 그러자 원고는 가사 고지의무 위반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지의무 위반과 보험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피고가 이를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보험계약해지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6. 한편, 상법 제655조는 본문에서 보험사고가 발생한 후에도 보험자가 제651조 등의 규정에 의하여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고 이미 지급한 보험금액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단서에서 "그러나 고지의무에 위반한 사실 또는 위험의 현저한 변경이나 증가된 사실이 보험사고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음이 증명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보험자는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과 보험사고의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불문하고 상법 제651조에 의하여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보험금액청구권에 관해서는 보험사고 발생 후에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고지의무에 위반한 사실과 보험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에 따라 보험금액 지급책임이 달라지고, 그 범위 내에서 계약해지의 효력이 제한될 수 있다. 원고가 지적하는 대법원 1994. 2. 25. 선고 93다52082 판결, 대법원 2001. 1. 5. 선고 2000다40353 판결은 보험사고 발생으로 인한 보험금액청구권의 존부를 다툰 사건으로 보험계약해지의 효력을 다투는 이 사건과는 그 사안을 달리하여 이를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아니하다. Ⅲ. 기존 대법원 판례 입장과 학설 1. 필자가 위 대상판결에 관하여 논하고자 하는 것은 위 대상판결이 기존 대법원 판결의 명시적인 결론과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상법 제655조 단서의 "그러하지 아니하다"의 해석과 관련하여, 기존 대법원 판결은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은 '해지할 수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기존 대법원 판례의 명시적인 입장에 반하는 판결을 하였기 때문이다. 대법원 1992. 10. 23. 선고 92다28259 판결은 「고지의무 위반사실이 보험사고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다는 점, 즉 보험사고의 발생이 보험계약자가 불고지하였거나 불실 고지한 사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증명된 때에는 상법 제655조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보험자는 위 불실고지를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고, 같은 취지의 판결이 대법원 1994. 2. 25. 선고 93다52082 판결, 대법원 1997. 9. 5. 선고 95다25268 판결, 대법원 2001. 1. 5. 선고 2000다40353 판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대법원은 이와 관련하여「고지의무 위반사실과 보험사고 발생과의 인과관계의 부존재의 점에 관한 입증책임은 보험계약자에게 있다할 것이므로, 만일 그 인과관계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위 단서는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대법원 1992. 10. 23. 선고 92다28259 판결 등 참조)고 판시함으로써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를 대폭 확대하면서 인과관계 부존재의 입증책임을 보험계약자에게 지우고 있다. 2. 상법 655조 단서의 해석과 관련하여, 고지의무 위반사실과 보험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 보험자가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는 점에는 별 다툼이 없다. 문제는 위와 같은 경우에 보험자가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느냐를 둘러싸고 해지긍정설과 해지부정설이 대립되는데, 학설은 해지부정설이 다수설이다. 그런데 기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은 어느 쪽에 속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 이에 관하여 학자들은 대법원이 '해지부정설'의 입장이라고 보는 점에 별 다툼이 없다{정찬형, 상법 제651조와 동 제655조 단서와의 관계, '고시연구' 제27권 제4호(2000. 4.), 고시연구사, 제74면 등 참조}. Ⅳ. 평석 가. 우선 기존 대법원 판례가 일관하여 '해지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이를 정반대로 해석하여 '해지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은 기존 판례의 명시적인 판단에 반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 나. 또한 대상판결에 의하면 상법 제655조 단서는 보험금액청구권의 존부를 다투는 경우에는 '해지할 수 없다'고 해석하고, 보험계약 해지의 효력을 다투는 경우에는 '해지할 수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동일한 법조항을 사안에 따라 달리 해석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선뜻 수긍하기 곤란하다. 다. 그리고, 기존 대법원 판례는 고지의무 위반사실과 보험사고 발생과의 인과관계의 부존재의 점에 관한 입증책임을 보험계약자에게 부담시키면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에 관하여 "인과관계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위 단서는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라고 판시하여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를 대폭 확대하였다(대법원 1994. 2. 25. 선고 93다52082 판결 등 참조). 예컨대 접대부가 자신의 직업을 주부라고 허위고지하고 상해보험에 가입한 후 일본에서 접대부 생활을 하다가 새벽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만일 그 인과관계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규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위 단서는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설시한 후 "위 사고의 발생과 피보험자 직업에 관한 고지의무 위반사실과의 사이에 전혀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면서 보험금청구를 인용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대법원 1992. 10. 23. 선고 92다28259 판결). 이는 위 단서가 고지의무 위반사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험자의 해지권을 제한함으로써 보험자에게 불리하게 될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하여 인과관계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위 단서가 적용되지 않게 함으로써 해지권이 제한되는 경우를 최소화해서 양자의 이해를 조화롭게 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기존 대법원 판결이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만 대폭 확대한 결과가 되어 보험금청구권이 인정되는 범위만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은 이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라. 고지의무 위반에 있어서 해지권 제한 사유로 열거되고 있는 것은 세 가지인 바, 그것은 바로 ① 제척기간 경과, ② 보험자의 악의 또는 중과실, ③ 인과관계의 부존재이다{양승규, 보험법(제5판), 삼지원(2005), 124~127면}. 즉 고지의무 위반 사실이 있더라도 보험자가 그 사실을 안 때로부터 1개월이라는 제척기간이 지나면 보험자는 더 이상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는데(상법 651조 제1항), 이는 법률관계를 조속히 안정시켜 보험계약자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둔 해지권 제한 규정이다. 상법 제655조 단서는 제척기간 도과시 해지권을 제한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과관계가 없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익자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해지권을 제한하는 하나의 예외적인 경우를 규정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김용균, "보험사고의 발생과 고지의무위반과의 인과관계", '대법원판례해설' 제18호(1993), 376~377면; 양승규, 위의 책, 124~126면; 손주찬, 제10정증보판 상법(하), 박영사(2002), 532면 등 참조}. 마. 대상판결이 가장 주목한 점은 아마도 보험사고 발생 여부에 따라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지게 된다는 점, 즉 보험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반면, 보험사고가 발생한 후에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고 따라서 인과관계가 부존재하는 한 계속하여 보험계약이 유효하게 존속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에 있는 것 같으나, 이는 위 단서가 인과관계가 없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에까지 해지권을 행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고려하에 그러한 경우에는 해지권을 제한함으로써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규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러한 불공평의 문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제척기간이 경과하였음을 이유로 해지권을 제한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바. 따라서 대상판결과 같이 해석하거나 대상판결과 같은 취지로 위 단서를 개정하려 한다면 이는 해지권 행사를 제한함으로써 보험소비자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위 단서)를 하나 없애는 것이고, 이는 전 세계적인 입법추세인 보험소비자보호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어서 찬성하기 어렵다.
2012-10-11
횡령죄의 미수범 성립 여부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법률신문 9월 6일 자 5면) (1) 사실관계 갑과 A는 "A가 자금을 출연하여 소나무 39주, 팥배나무 1주(이하 P수목으로 약칭함)를 구입하고, 갑이 노동력을 제공하여 P수목에 대한 가식·관리를 하여 쌍방의 협의 하에 제3자에게 처분한 다음 그 수입을 분배한다."는 동업계약을 체결하였다. A는 P수목을 대금 1,200만 원에 매수하였고, 갑은 이를 M토지에 가식(假植)하여 관리해 왔다. 그런데 갑은 A의 허락 없이 C에게 P수목을 대금 1억 9,000만 원에 매도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즉석에서 계약금 명목으로 5,000만 원을 교부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하였다. 갑의 계약체결 사실을 알게 된 A는 C에게 P수목과 관련한 동업계약 사실을 알렸다. 갑과 C와의 P수목 매매는 이로써 무산되었다. (2) 사건의 경과 검사는 갑을 횡령죄와 사기죄로 기소하였다(이하 횡령죄 부분만 고찰함). 제1심은 횡령죄의 기수를 인정하였다. 갑과 검사의 항소에 대해, 항소심법원은 직권으로 판단하여 횡령미수를 인정하였다. 항소심은 횡령 미수의 인정근거에 대해 학술논문에 준하는 정도로 상세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데(춘천지방법원 2010노197), 지면관계로 필자가 임의로 이를 요약한다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가) 판례는 횡령죄를 위험범으로 보고 있다(2008도10971 등). (나) 횡령행위는 정당한 소유자의 본권 침해에 관한 구체적인 재산상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로서 구체적 위험범으로 보아야 한다. (다) 동산과 달리 부동산의 경우에는 소유권의 권리변동에 등기나 명인방법 등의 공시방법이 필요하다. (라) 부동산의 경우에 계약금의 수령만으로는 아직 구체적 위험발생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마) 따라서 갑의 행위는 횡령죄의 실행의 착수에는 해당하나 기수에 이른 것은 아니다. 검사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은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피고인이 보관하던 이 사건 수목을 함부로 제3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수령·소비하여 이 사건 수목을 횡령하였다는 공소사실에 관하여 횡령미수죄를 인정한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횡령죄의 기수시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2. 판례평석 본 판례는 대법원이 횡령죄의 미수범 성립을 긍정한 예로서 특별히 주목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항소심판단의 타당성을 긍정하고 있을 뿐, 독자적인 관점에서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대법원은 단지 '관련 법리'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그 동안 학계의 다수의견과 판례는 횡령죄를 위험범으로 파악해 왔다. 즉 재물에 대한 사실상 또는 법률상 지배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영득의사를 외부로 표현하는 순간 횡령죄는 기수에 이른다는 것이다(소위 표현설). 이에 대해 소수의견은 불법영득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실행의 착수에 해당하며 실제로 재물을 소유권자에 준하여 처분할 수 있게 될 때 기수에 이른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소위 실현설). 본 판례의 사안에서 항소심법원은 종래의 표현설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실현설의 입장에서 피고인의 행위를 횡령죄의 미수범으로 처벌하고 있다. 항소심법원은 점유의 이전이 소유권 이전에 영향을 미치는 동산과 달리 등기나 명인방법에 의하여 소유권 이전이 일어나는 부동산의 경우에는 종래의 위험범설로는 적절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본 판례의 사안에서 갑이 함부로 P수목을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수령하는 행위는 불법영득의사의 발로로서 실행의 착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 명인방법에 의하여 P수목에 대한 소유권이전이 일어나고 있지 않으므로 기수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항소심법원은 이러한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횡령죄를 추상적 위험범과 구체적 위험범의 경우로 나누어 설명한다. 동산의 경우에는 점유가 이미 행위자에게 있으므로 추상적 위험범으로 포착할 수 있지만, 부동산의 경우에는 등기이전이나 명인방법에 의한 인도가 있을 때 비로소 위험발생이 구체화하여 이때에 기수에 이른다는 것이다. 생각건대 항소심법원의 태도 및 이를 유지한 대법원의 태도는 결론에 있어서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논리구성에 백 퍼센트 찬성할 수는 없다. 우선 횡령죄를 구체적 위험범으로 파악하려는 태도는 구체적 위험범의 개념정의에 반드시 부합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구체적 위험범이란 입법자가 법익침해의 위험을 구성요건요소로 명시해 놓은 경우를 말하는데(예컨대 형법 167조 1항의 일반물건방화죄의 경우 참조), 횡령죄의 경우에 이를 나타내는 구성요건표지는 없다. 지금까지 횡령죄를 위험범으로 파악하여 왔던 학계나 판례의 입장은 외국의 해석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독일 형법의 경우 횡령죄는 그 객체가 동산으로 한정된다(독일형법 246조 1항 참조). 독일 형법은 횡령죄의 미수범 처벌규정을 두고 있으나(동조 3항) 동산만을 객체로 하는 관계로 횡령죄의 미수범은 자기 소유의 재물을 타인 소유의 재물로 오인하여 횡령하는 불능미수의 경우에 예외적으로 상정할 수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Nomos Kommentar StGB, 2. Aufl. § 246 Rn. 43). 한편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일본 형법은 횡령죄의 가중형태로 업무상 횡령죄를 처벌하고 있으나 미수범 처벌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또한 횡령죄에는 징역형만 규정되어 있고 벌금형은 배제되어 있다(동법 252조, 253조 참조). 요컨대 독일 형법이나 일본 형법의 경우에는 모두 횡령죄의 미수범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 형법은 횡령죄와 배임죄를 같은 조문(형법 355조)의 제1항과 제2항으로 배치하여 그 법적 성질이 유사함을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업무상 횡령 및 업무상 배임을 같은 조문에서 같은 형으로 가중처벌하고(형법 356조), 미수범도 같은 조문(형법 359조)에 의하여 처벌하고 있다. 또한 횡령죄의 객체는 '재물'로서 동산과 부동산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우리 형법의 구조를 보면, 동산을 객체로 하는 독일 형법의 횡령죄에 관한 해석론이나,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는 일본 형법의 횡령죄에 관한 해석론을 그대로 차용할 수 없음을 즉시 알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민법은 소유권 변동과 관련하여 형식주의를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되는 것이 부동산 물권변동이다(민법 186조 참조). 부동산의 횡령과 관련하여 독일 형법의 해석론은 우리에게 아무런 시사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처럼 부동산을 횡령죄의 객체에 포함시키고 있는 일본 형법의 해석론도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다는 점에서는 참고할 바가 별로 없다. 요컨대 우리 형법 제359조가 규정하고 있는 횡령죄의 미수범 처벌규정은 우리 민법의 물권변동 법리에 맞추어서 새롭게 그 의미가 부각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항소심법원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으며, 대법원 또한 '관련 법리'라는 표현을 통하여 이러한 태도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횡령죄의 미수범 성립을 긍정한 본 판례는 앞으로 실무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횡령죄의 미수감경을 허용한 본 판례는 특히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의 횡령죄 처벌과 관련하여서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본 판례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의문점 한 가지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 형법은 횡령죄와 배임죄의 성질이 유사하다고 보고, 그 처벌을 가능한 한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잘 아는 바와 같이 부동산 이중매매에 관한 배임죄 판례를 보면, 계약금의 수령단계에서는 아직 배임죄의 실행의 착수가 인정되지 않는다(2009도14427). 적어도 중도금 수령단계에 이르러야 미수가 되고, 본등기 또는 가등기가 경료될 때 기수에 이른다(2008도3766). 그런데 본 판례에서는 계약금의 수령만으로 횡령죄의 미수를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차이점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설명할 것인가는 앞으로 연구를 요하는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201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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