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사 실
A회사는 1971년 설립 이래 구조적 부실의 징후가 나타났고 특히 1997년도에 이르러 경영상태 및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A회사 집단의 회장 B는 “위와 같은 실상이 알려질 경우 대외신인도 추락과 이에 따른 금융기관 상대 신용자금 차입조건 악화 또는 자금차입 중단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경영진에게 당기순이익을 가공 계상하여 마치 흑자가 난 것처럼 조작하여 A회사를 경영상태 및 재무구조가 양호한 우량기업으로 위장할 것을 지시”함에 따라, 대표이사 피고Y1과 당시 재무담당 전무이사이던 Y2는 1997년도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하여 1998년3월1일 일간지에 공시하였다.
원고 X은행은 A회사에게 1998.4.9.(제1대출)과 1998.5.6.(제2대출)에 각각 200억 원씩 만기를 2년으로 대출하였는데, A회사가 1999.7. 소위 워크아웃 결정에 의하여 기업개선작업 대상이 됨에 따라 제대로 변제되지 못하고 막대한 손실(제1대출에서 170억여 원, 제2대출에서 188억원)을 입었다. X은행은 2002.12.13. Y1과 Y2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피고들은 “상법 제401조가 정한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책임은 성질상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책임에 대한 특칙이어서 그로 인한 제3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에는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소멸시효기간 3년이 적용된다 할 것인바, …원고는 늦어도 1999.11.22.에는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할 것이어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한 2002.11.23.에 시효로 소멸되었다”고 주장하였다.
Ⅱ 판결요지
“상법 제401조는 …위 이사의 악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임무 해태행위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제3자의 손해에 대하여 그 이사가 손해배상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 위 법조의 취지라 할 것이다(대법원 1985. 11. 12. 선고 84다카2490 판결 등 참조). 이처럼 상법 제401조에 기한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상법이 인정하는 특수한 책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반 불법행위책임의 단기소멸시효를 규정한 민법 제766조 제1항은 적용될 여지가 없고, 달리 별도로 시효를 정한 규정이 없는 이상 일반 채권으로서 민법 제162조 제1항에 따라 그 소멸시효기간은 10년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면서, 원심(서울고판 2004. 10. 22. 2003나80743 손해배상(기))의 “피고1, 피고2는 연대하여 원고에게 위 손해액의 범위 내에서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2,000,000,000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판단을 지지하고 상고를 기각하였다.
Ⅲ 평 석
1. 서 론
본 판결은 이사의 분식회계 관여행위와 기업어음회전매입의 방식으로 융자한 금융기관인 회사채권자의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해서도 판시했는데, 여기서는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의 소멸시효에 관한 판시 부분만을 검토하기로 한다. 이 소멸시효는 상법 제401조가 규정하는 책임의 법적성질 및 이 규정의 적용범위와 관련된 뿌리 깊은 문제이다.
2. 제401조 책임의 법적성질
1) 판례의 법정 책임설
대법원은 본 판결에서도 상법 제401조가 규정하는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책임은 불법행위 책임이 아니라 상법이 규정한 특수한 책임이라는 법정책임설을 바탕으로 불법행위에 관한 민법 제766조의 단기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척하고 일반 채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민법 제162조 제1항을 적용하였다. 제401조 책임의 법적성질을 논하는 것은 이 책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법이 규정하지 아니한 사항을 판단하는 기준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이 해결에 있어서 법정책임설은 법이 정한 것 이외에 아무런 기준을 제시할 수 없으므로 무력하다. 이사의 경제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크기 때문에 제3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규정되었다는 본 판결의 설명도 제3자를 어느 정도 보호할 것인지의 법적 기준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법정책임설은 이 책임의 법적 성질 규명을 거부하는 법실증주의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2) 불법행위 책임설
이러한 판례의 입장에 반대하여 제401조의 책임을 불법행위법에 기초를 두고 설명하는 견해가 있는데, 명칭도 불법행위 특칙설, 특수불법 행위설 등 다양하고 같은 명칭이더라도 그 내용은 동일하지 않다. 민사책임을 이미 채권·채무관계에 있는 당사자간에 한쪽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책임을 지는 채무불이행책임과 이러한 관계가 없는 자가 타인에게 고의나 과실로 손해를 입혀서 책임을 지는 불법행위책임으로 분류한다면, 회사의 이사와 회사채권자간에는 채권·채무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행위책임에 속한다고 풀이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면 제401조는 민법의 불법행위책임의 특별법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정책임설의 입장인 본 판결의 원심(서울고판 2004.10.22, 2003나80743)은 “그 요건도 회사의 임무에 관하여 이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을 요구하여, 피해자인 제3자의 손해에 관하여 고의·과실을 요구하는 민법상 불법행위책임과는 달리 정하고 있으므로 제401조의 책임에 불법행위책임의 소멸시효에 관한 민법 제766조를 적용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① 이런 주장은 법의 문언에만 얽매이고 실질적이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제401조가 이사의 임무해태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제3자의 손해에 대한 책임을 규정한다면서 제401조 책임의 성립에 제3자의 손해에 대하여 이사의 고의나 과실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상당인과관계에 있는 손해라 함은 행위시에 행위자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손해를 뜻하므로 사실관계의 인정이 아니라 책임논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는 임무해태와 상당인과관계에 있는 제3자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함은 이사가 행위시에 예상했거나 예상할 수 있었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뜻이고 고의 또는 과실로 발생하게 한 손해를 배상한다는 뜻이다. 일본 최고재판소 대법정 昭和44[1969].11.26. 판결(民集23권11호 2150면)도 법정책임설의 입장에서 이와 유사한 표현을 하였다. 다만 이 판결은 피해자에게 이사의 손해발생에 대한 고의나 과실을 주장·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② 본 건 원심처럼 제401조와 불법행위 일반원칙과의 요건 상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같은 불법행위법에 속하는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를 부인하는 논거가 될 수 없다. 특별법의 요건이 일반법의 요건과 다를 수 있음은 당연하고, 오히려 특별법은 일반법과 달리 규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③ 일본 최고재판소 昭和49[1974].12.17. 판결(民集28권10호 2059면)은 위의 대법정 판결에 따라 법정책임설의 입장에서 일본상법 舊 제266조의 제1항(2005년에 제정된 회사법 제429조 제1항 - 우리나라 상법 제401조)의 책임은 불법행위책임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일본민법 제724조(우리나라 민법 제766조)를 유추적용 할 실질적 이유가 없는지 검토하였다(落合誠一의 평석, 회사판례백선 제4판, 유비각 1983, 117면은 이를 높이 평가한다).
3) 채권자대위권설
우리나라의 제401조 제1항이나 일본상법 구 제266조의3 제1항이 모방했다고 생각되는 독일 주식법 제93조 5항도 (그 2항에서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을 규정한 후) “회사의 배상청구권은 회사의 채권자가 회사로부터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회사의 채권자에 의해서도 행사될 수 있다. 단 이것은 제3항 이외의 경우에는 이사가 통상 그리고 양심적인 영업지휘자의 주의를 심히 위반한 때에 한하여 적용된다…”고 하여 채권자대위권에 가까운 성질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일본상법 구 제266조의3 1항은 “이사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그 이사는 제3자에 대하여도 또한 연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하였었다(졸저 판례연습 회사법 전정증보판, 삼우사 2003, 479면 참조). 일본의 2005년에 제정된 회사법 제429조 제1항과 우리나라 상법 제401조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
이와 같은 연혁적 바탕에서 제401조를 이해하면 제3자의 이사에 대한 청구권은 회사의 제399조에 기한 위임계약상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 행사하는 것이고, 이 제3자의 회사에 대한 채권 또는 회사의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면 행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프랑스 회사법 제247조도 이사의 책임은 범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이 경우에는 10년) 손해발생원인을 안 때부터 3년의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한데 이어, 파산법 제180조 2항도 이사의 회사채권자들에 대한 책임은 파산선고일 또는 정리계획 확정일로부터 3년의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독일 주식법 제93조 4항은 5년의 소멸시효기간을 규정하고 있다.
3. 상법 제401조의 적용범위
본 사안에서 X은행은 Y1과 Y2의 허위 재무제표 작성과 공시에 의하여 A회사의 재무상태를 잘못 판단하고 A회사에게 융자한 채권을 변제받지 못하여 손해를 입었다. 그러므로 X의 손해는 A회사의 손해를 거치지 않고 입은 직접손해이다. 제401조가 직접손해에도 적용되는지에 관하여는 학설이 대립되어 있는데, 위에 인용한 일본 최고재판소 대법정 판결은 방논으로 직접손해 포함설을 취하고 우리나라 통설과 판례(대판2003.4.11, 2002다70044)도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 昭和47年(1972)9月22日 판결도 “원심은 피고(E회사의 대표이사)가 E회사에게는 대금을 지불할 자력이 없는 사정을 알면서도 F로 하여금 원고로부터 본건 패널을 매입하도록 하여 원고에게 그 대금상당액의 손해를 주었다는 취지를 인정하고 있다…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불법행위(민법의 규정에 기한다)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하였다.
본 판결이 인용한 우리나라 대법원 1985.11.12선고, 84다카2490판결도 원고가 광업권 등을 G회사에 매도하기로 하여 이전등록에 필요한 일체의 서류를 교부하고 여러 차례 피고(G회사의 대표이사)에게 이전등록을 촉구하였으나 피고가 이를 해태하고 있던 도중, 광해가 발생하여 원고가 이로 인한 손해를 부담하게 되자 상법 제401조에 기해 피고에게 그 배상을 청구한 사건인데, “통상의 거래행위로 인하여 부담하는 회사의 채무를 이행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단순히 그 이행을 지체하고 있는 사실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실만으로는 이를 임무을 해태한 위법한 경우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우리나라 상법 제401조에 해당하는 일본 상법 구 제266조의3 제1항을 昭和25년(1950) 개정하기 전의 대심원 판례도 간접손해한정설을 취했었다(대판 大正15[1926].1.20, 대판 昭和8[1933].2.14. ; 대판 昭和15[1940].12.18).
이사의 회사에 대한 임무해태를 요건으로 하는 제401조는 회사는 손해를 입지 않았는데 제3자에게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대하여 규정한 것이 아니다. 이 경우에는 실제상으로도 상법 제401조를 적용하여 Y의 경과실에 의한 책임을 배제할 이유도 없다.
4. 결 어
본 사안에서도 X은행에 대한 Y1과 Y2의 책임에는 상법 제401조가 아니라 민법의 불법행위 일반원칙이 적용되며, 따라서 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적용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