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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인의 등기부취득시효 완성과 매도인에 대한 원소유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
[사실관계] 이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사실관계 등을 요약·정리한다. 1. 이 사건 임야는 1917년 10월 갑 앞으로 사정(査定)되었다. 그 후 지적공부가 멸실되었다가 1977년 3월 소유자 기재가 비어 있는 채로 임야대장이 복구되었다. 2. 피고(대한민국)는 1986년 12월에 위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그리고 1997년 12월 을에게 이를 5천여만 원에 매도하고 1998년 1월 을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다. 3. 그 사이에 갑은 사망하고 그의 재산을 상속한 원고(여럿이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가 2017년 4월에 이르러 피고와 을을 위 보존등기와 이전등기의 각 말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사건의 제1심법원은 동년 12월에 피고에 대한 청구를 인용하고, 을에 대한 청구는 민법 제245조 제2항에 따른 등기부취득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이유로 이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을의 등기부취득시효 완성으로 원고는 소유권을 상실하였다면, 피고에 대한 등기말소청구에 그 권원이 과연 인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어쨌거나 위 판결은 항소가 제기되지 않아 2018년 1월 그대로 확정되었다. 4. 원고는 동월 다시금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소를 제기하면서 국가배상청구를 하였으나 2019년 1월 제1심에서 패소하였다. 원고는 항소한 후에, 피고가 을로부터 수령한 위 매매대금 상당액의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는 청구를 추가하였다. 시효취득자는 무권리자의 양도행위로 목적물을 인도받고 또 등기를 얻어서 10년간 이를 ‘보유’함으로써 취득시효의 요건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종전 소유자는 양수인에 대하여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고 따라서 그에게 무슨 ‘손실’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물론 양도인에 대해서도 그가 수령하였던 매매대금에 대하여 이를 부당이득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10년이 흐르고 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해서, 돌연 같은 내용의 권리가 부당이득의 이름으로 종전 소유자에게 부여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은 위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인용하였다. 즉, 이 사건 토지에 관한 피고 및 을의 소유권등기는 모두 무효인데, 선행소송에서 을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등기부취득시효 완성을 이유로 기각하는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피고는 법률상 원인 없이 을로부터 받은 매매대금 상당의 이익을 얻었고, 원고는 이 사건 토지의 소유권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침해부당이득으로 5천여만 원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단] 파기환송 “적법한 원인 없이 타인 소유 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친 무권리자가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각 등기는 실체관계에 부합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이다. 따라서 이 경우 원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또 무권리자가 제3자와 체결한 매매계약의 효력이 원소유자에게 미치지도 아니하므로, 무권리자가 받은 매매대금이 부당이득에 해당하여 이를 원소유자에게 반환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한편 무권리자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한 제3자나 그 후행등기 명의인이 과실 없이 점유를 개시한 후 소유권이전등기가 말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유의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선의로 점유를 계속하여 10년이 경과한 때에는 민법 제245조 제2항에 따라 바로 그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고(대법원 1999. 12. 10. 선고 99다25785 판결 등 참조), 이때 원소유자는 소급하여 소유권을 상실함으로써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이는 민법 제245조 제2항에 따른 물권변동의 효과일 뿐 무권리자와 제3자가 체결한 매매계약의 효력과는 직접 관계가 없으므로, 무권리자가 제3자와의 매매계약에 따라 대금을 받음으로써 이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원소유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가 받은 매매대금 5천여만 원은 이 사건 토지를 을에게 매도한 것에 대한 대가일 뿐 이후 피고가 원고 또는 그 선대에게 이 사건 토지 소유권의 상실이라는 손해를 가하고 법률상 원인 없이 얻은 부당이득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심판결에는 부당이득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평석] I. 들어가기 전에 1. 이 평석의 대상이 된 대법원판결(이하 ‘대상판결’)은, 민법 제245조 제2항에서 정하는 이른바 등기부취득시효에서 제기될 수 있는 부당이득문제 중 어느 하나에 대하여 태도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소유자가 아님에도 등기부에 소유자로 등기된 사람과의 사이에 부동산을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여 그로부터 등기를 이전받은 사람(이하 ‘양수인’)에 있어서 나중에 등기부취득시효가 완성한 경우에, 원래의 소유자, 즉 그 시효취득으로 소유권을 상실한 사람이 위 매도인(이하 ‘양도인’)에 대하여 그가 받은 매매대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청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2. 대상판결은 그러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긍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 위와 같은 권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태도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나는 그 태도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Ⅱ. 등기부취득시효에서 양수인의 부당이득 문제 - 독일의 경우 1. 우리 민법상 부당이득제도의 해석 운용에서 많은 참고가 되는 독일민법(부당이득제도를 계약·불법행위 등과 나란히 채권의 독립적 발생원인으로 정면에서 규정한 것은 비교법적으로는 스위스가 처음이고,독일이 그에 이어진다)을 살펴보면, 취득시효와 관련하여서 논의되는 것은 오히려 취득시효로 소유권을 상실한 사람이 시효취득자에 대하여 부당이득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아가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면 부동산 자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2. 나에게는 놀랍게도, 제2차 세계대전까지 독일의 최고법원인 ‘제국법원(Reichsgericht)’은 1930년 10월 6일의 판결(RGZ 130, 69)에서 동산의 취득시효 사안에서 이를 긍정하여, 시효취득자가 종전 소유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 없이’ 인도를 받았다면 그 후에 독민 제937조 제1항(10년의 자주점유를 요건으로 정한다)에 의하여 취득시효가 완성하였더라도 부당이득을 이유로 부동산 자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 판결은 관련 학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위 판결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 긍정설이 부정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위 판결도 지적하는 대로(위 판결집, 73면), 소유권 취득의 물권행위에 하자가 없어서 소유권 이전을 인정하더라도 원인행위가 효력이 없으면 부당이득으로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물권변동에 관한 독일 특유의 입장(부당이득에 관한 이른바 공평설의 밑바탕!)에 입각하여, 취득시효로써 소유권은 물론 인정되지만 그 요건의 일부인 소유권등기가 ‘법률상 원인 없는’ 행위에 기하여 이루어졌다면 마찬가지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무겁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보다 구체적으로는, 동산의 시효취득은 앞서 본 대로 10년의 자주점유를 요건으로 하는데, 위와 같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인정되면 그것은 30년의 소멸시효에 걸려서(2002년 개정 전의 독민 제195조) 원래의 소유자가 권리를 회복할 법적 가능성을 훨씬 오래 가지게 되는 실익이 있다. 비록 부동산의 취득시효는 앞서 본 대로 30년의 자주점유를 요하여 그 점에서는 동산의 경우와 차이가 있지만, 부당이득과 관련하여서도 동산취득시효와 부동산취득시효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원고가 행위무능력(독민 제105조 제1항에 의하면 행위무능력자의 법률행위는 무효이다)의 상태에서 1908년 피고에게 증여한 그림들의 반환이 청구된 사건에서 원심법원이 취득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한 것을 파기환송하였다. 3. 그러나 현재의 연방통상대법원(Bundesgerichtshof)는 2016년 1월 22일의 판결(BGHZ 208, 316; NJW 2016, 3162)에 이르러 지상권의 취득시효(부동산에 대한 제한물권의 취득시효에 대하여는 독민 제900조 제2항 참조)가 인정된 사건을 판단하면서 소유자의 지료 상당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부인하는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앞서의 제국법원 판결이 나오고 무려 85년도 더 지난 후이었다. 그 이유 중 중요한 것은 취득시효제도의 목적이 법적 안정성에 있다는 점이다. 즉 소유권을 원시적으로 시효취득하는 사람은 그의 취득행위상의 하자로부터 발생하는 대항사유도 역시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첫째, 민법전에서 부합·혼화·가공에 대하여는 제951조(우리 민법 제261조 해당)에서, 유실물 습득에서는 -우리 민법과는 달리- 제977조에서 권리상실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명문으로 규정함에 반하여 취득시효에 대하여는 그러한 규정이 없다는 것, 둘째, 소멸시효 규정에 대한 2002년의 민법 개정으로 이제 부당이득반환청구권도 3년 또는 10년의 소멸시효에 걸쳐서(민법 제195조, 제199조 제3항) 종전의 판례가 들었던 권리 회복 가능성의 점에서의 차이가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위 판결에서 보이는 학설 상황의 그 사이의 변화로서 이제는 부정설이 긍정설보다 큰 차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Ⅲ. 등기부취득시효에서 양도인의 부당이득 문제 1. 이상에서 다룬 독일 판례의 굴절에 대하여는 보다 상세한 다른 글을 기약하거니와,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취득시효 자체가 그 안에 종전 소유자에 대하여 그 소유권 취득에 관한 ‘법률상 원인’을 담고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이에 대하여는 곽윤직 편집대표, 민법주해[XVII], 2005, 253면 말미 이하(양창수 집필) 참조). 그렇다면 이제 종전 소유자는 시효취득한 양수인이 아니라 양도인에 대하여는 그가 수령한 매매대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청구할 수 있다고 할 것이 아닌가? 양도인은 타인 소유의 물건을 권한 없이 매도하여 인도 및 등기 이전함으로써 양수인이 시효취득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여 결국 종전 소유자로 하여금 그 소유권을 상실하게 하였고 그러한 손실에 기하여 매매대금 상당의 이득을 얻은 것이 아닌가? 2. 나는 위와 같은 부당이득 문제에 대하여 앞서 본 『민법주해』에서 다음과 같이 적으면서 그것이 부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병이 을에게 갑의 소유권을 매도하고 대금을 수령한 것으로는, 갑이 여전히 소유권을 가지는 이상 갑에게 무슨 「손실」이 있다고 할 수 없어서 갑에 대하여 그 매매대금에 관하여 부당이득반환책임을 지게 된다고 할 수 없는데, 나아가 나중에 갑이 소유권을 상실한 것이 을의 시효취득으로 인한 것인 이상 그를 이유로 돌연 병의 매매대금 취득이 부당이득이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254면) 즉 취득시효의 효과로서 문제되는 소유권의 귀속은 종국적이며, 종전 소유자의 소유권 상실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포함하여 다른 법적 형식으로도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 소유의 물건이 소유자 아닌 사람에 의하여 권한 없이 제3자에게 양도되었는데 양수인의 선의취득으로 종전 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한 경우에 그가 양도인에 대하여 ‘양도로 취득한 것’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처리될 수는 없다. 이 경우에는 무권리자의 처분행위가 애초 유효하였던 것으로서, 선의취득제도의 취지에 좇아 그로 인한 권리 상실의 말하자면 ‘대가’ 또는 ‘보상’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이는 법적 성질로 보면 이른바 침해부당이득에 해당한다. 이는 선의취득의 경우가 아니라 무권리자의 처분행위가 권리자에 의하여 추인됨으로써 소급적으로 유효하게 되는 경우에도 크게 다를 바 없다(이상은 무권리자의 유효한 처분에서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정하는 독민 제816조에 대한 통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취득시효의 경우는 그렇게 볼 수 없다. 시효취득자는 무권리자의 양도행위로 목적물을 인도받고 또 등기를 얻어서 10년간 이를 ‘보유’함으로써 취득시효의 요건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종전 소유자는 양수인에 대하여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고 따라서 그에게 무슨 ‘손실’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물론 양도인에 대해서도 그가 수령하였던 매매대금에 대하여 이를 부당이득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10년이 흐르고 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해서, 돌연 같은 내용의 권리가 부당이득의 이름으로 종전 소유자에게 부여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한편 양도인은 대체로 위 취득시효기간이 진행되는 10년 정도 어느 누구로부터도 매매대금의 반환을 청구받지 아니하여서, 만일 누구에게 그 반환을 청구할 권리가 성립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소멸시효가 완성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양수인이 목적물을 시효취득하였다는 사정에 기하여 이를 종전 소유자에게 반환하여야 할 것인가? 대상판결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부정되는 이유와 관련하여 “종전 소유자의 소유권 상실은 민법 제245조 제2항에 따른 물권변동의 효과일 뿐 무권리자와 제3자가 체결한 매매계약의 효력과는 직접 관계가 없으므로, 무권리자가 제3자와의 매매계약에 따라 대금을 받음으로써 이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원소유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라고 설시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문제상황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3. 취득시효에서 제기되는 위와 같은 부당이득 문제, 그리고 그에 대하여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견해를 밝힌 경우는 위 문헌이 발간되던 당시에 국내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유감스럽게도 사태는 그 후에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별로 달라진 바 없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그러한 부당이득 문제가 실제로 발생함을 보여준다. 다른 모든 학문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법학에서도 상상력은 필요하고 문제의 발견 내지 인식은 그 해결의 출발점인 것이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전 대법관)
토지
등기부취득시효
시효취득
부당이득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전 대법관)
2023-05-10
지식재산권
정정심결의 재심사유 배제 판결 문제점
Ⅰ. 들어가기 대법원은 2020. 1. 22. 선고 2016후2522 사건에서, 상고심에서 재심사유로 규정된 특허심판원의 '정정 심결'에 대하여 이것이 있다할지라도 '재심 사유'로 취급하지 아니하고 '정정 전 명세서 등'에 의하여 '법률심'은 물론 '사실심'까지도 심리하는 대변혁을 가져오는 판결을 했었다. 이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Ⅱ. 전원합의체 판결의 문제점 1. 이 사건 판결의 결론 이 사건의 전원합의체 판결(2016후당2522. 이하, '이 사건 판결'이라 한다)에 있어서의 결론은 "특허권자가 정정심판을 청구하여 특허무효심판에 대한 심결취소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 이후에 특허발명의 명세서 또는 도면(이하 '명세서 등'이라고 한다)에 대하여 정정을 한다는 심결(이하 '정정심결'이라고 한다)이 확정되더라도 정정 전 명세서 등으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행정소송법 제8조에 따라 심결취소소송에 준용되는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8호가 규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2. 문제의 판결문 문구 이 사건 판례는 "특허의 정정제도는 종전 특허발명과 실질적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정정사항은 정정 후 명세서 등의 내용을 구성하고, 정정심결이 심결취소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 전에 이루어진 경우 그와 같이 정정된 명세서 등이 사실심 법원의 심리·판단의 대상이 된다. 결국 (중략) 정정을 인정하는 내용의 심결이 확정되었다고 하여, 정정 전의 명세서 등에 따른 특허발명의 내용이 그에 따라 '확정적으로 변경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점은 '특허의 정정제도는 종전 특허발명과 실질적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하 이 사건 판례상 '가정'이라 한다)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정정심결 요건은 명세서나 도면 내에서 확장·변경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청구범위를 감축하는 범위'(이하, 법률상 '요건'이라 한다)인데, 이들 양자 개념이 상이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Ⅲ. 정정심판의 '정정요건'과 '실질적 동일성'의 차이 1. 특허법 제136조의 정정심판 규정 가. 특허법 제136조(정정심판)의 동일성 요건 관련 규정 1) 특허법 제136조 제1항 제2호(동일성 범위) [심판편람] 정정시 '잘못된 기재를 정정하는 경우'에서 "잘못된 정정이라 함은 착오 등에 의하여 불명확하게 된 것을 명세서 또는 도면의 기재를 본래의 의미를 나타내도록 내용의 자구, 어구 등을 바르게 고치는 것이므로 정정 전의 기재내용과 정정후의 기재 내용이 '동일한 의미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2) 특허법 제136조 제1항 제3호(동일성 범위) [심판편람] 정정시 '분명하지 아니하게 기재된 사항을 명확하게 하는 경우'란 "문언상 그 자체의미가 명확하지 않거나 명세서 또는 도면의 기재불비로 인해 생긴 불명료한 기재를 본래의 의미로 명확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3) 특허법 제136조 제1항 제1호(감축 범위) 청구범위를 감축하는 경우는 동법 ③항에서는 "제1항에 따른 명세서 또는 도면의 정정은 특허발명의 명세서 또는 도면에 기재된 사항의 범위에서 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으며, ④항에서는 "제1항에 따른 명세서 또는 도면의 정정은 청구범위를 실질적으로 확장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다. 4) 특허법 제136조 제4항(확장/변경금지) 따라서, 특허법 제136조(정정심판) ①, ③항과 ④항은 각각의 취지나 의미가 다른 조항이며, 이들 법조항의 공통점이 발명의 '실질적 동일성'이 아니라, 각각 별개의 '정정 요건'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 특허법 제136조(정정심판)의 정정범위 상기 제136조(정정심판) ①, ③항과 ④항의 의미를 살펴보면, 발명A+B로부터 아래 큰 원(명세서 및 도면) 내에서의 청구항 감축(A+B, A+B+C)과 큰 원 외에서의 청구항 감축(A+B+C)에서 '감축'이라는 개념은 동일하지만, C의 구성이 발명의 명세서 및 도면 내·외에 있느냐에 따라 정정 가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정정심결의 요건> 2. 발명의 '실질적 동일성'에 대한 의미 가. 발명의 '동일성'에 대한 사용된 대법원 판례 판례상 이의 용어는 ⅰ) 발명이 동일하다(93후1940 판결)와 ⅱ) 양 발명은 동일성이 있는 발명이다(2006후3052 판결)와 ⅲ) 양 발명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발명이다(2017후424 판결)라고 사용하고 있다. 나. 발명의 동일성 영역 구분 두 발명의 차이가 과제해결을 위한 구체적 수단에서 주지관용기술의 부가·삭제·변경 등에 지나지 않아 새로운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정도의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이라면 두 발명은 서로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대법원 2010후2179 판결 등 참조). <정정의 감축범위가 동일성 범위 내인 경우> 상기 A+B의 기술에 대응하여 A+B에 α(주지/관용기술)를 부가하여 감축하였다하더라도 여전히 '동일성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다. 발명의 상위개념과 하위개념의 동일성 차이 공지의 발명에 구성요건이 상위개념으로 기재되어 있고 위 상위개념에 포함되는 하위개념만으로 구성된 특허발명에 예측할 수 없는 현저한 효과가 있음을 인정하기 어려워 그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공지의 발명으로부터 특허발명을 용이하게 발명해 낼 수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선행발명에 특허발명을 구성하는 하위개념이 구체적으로 개시되어 있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그 특허발명이 출원 전에 공지된 발명과 동일성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1후2375 판결). 3. 발명의 '동일성'과 청구범위의 '감축'과의 차이 이 사건 판결은 정정요건을 '실질적 동일성'으로 전제하고 있으나, 청구범위의 감축이 명세서 등의 범위 내에서 정정될 경우에는 상기 '감축범위'는 발명의 '동일성 범위'를 벗어나므로, 도저히 맥을 같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질적 동일성과 감축범위와의 비교> 4. 이 사건 판례문구의 반대 해석 이 사건 판례에서, 발명의 '동일성'을 전제조건으로 한 것에 대하여 반대로 해석하면 결국, 상기와 같이 '실질적으로 동일하지 않는 발명(예로서, 상기 실무적 예시 및 정정 요건 그림 참조)'에 대하여는 이 사건 판례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바(재심사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의 판례에 혼동의 우려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정요건 또한 부분적으로 발명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잘못 기재된 사항을 정정하는 경우 및 분명하지 아니하게 기재된 사항을 명확하게 하는 경우)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것(감축 사항)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Ⅴ. 결론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사건 판결은 이 사건 판례상 '가정'과 법률상 '요건'과는 그 법리와 실무가 일치되지 않는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제안컨대 정정제도에서 '발명의 동일성'을 '전제'로 한 판결은 논리는 물론 합리성(후속 조치의 일관성)이 결여된 판결로서, 아래와 같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다시 변경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째 방안(현행 실무를 정립하는 방안) : 정정의 범위가 '발명의 동일성 범위'로 심결된 것인지를 1차 판단한다. 그 다음 동일하지 않을 경우에는 재심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그래야 대법원의 부담경감 및 법률심에 한 할 수 있다. 둘째 방안(정정심결의 취지와 대법원 실무를 일치시키는 방안) : 재판의 공정성·신속성·경제성을 위하여 대법원 상고 중에 '정정심결'이 있는 경우에는 있는 그대로 '정정 후 명세서 등'으로 '사실심'과 '법률심'을 모두 심리·판결한다. 필자는 우리의 특허재판(사실심과 법률심)이 모두 3심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바람으로써 후자를 건의하고 싶다. 박대진 변리사(특허법인 아주)
특허발명
특허
특허의정정
박대진 변리사(특허법인 아주)
2022-05-09
엔터테인먼트
형사일반
미술품거래에서 사기죄의 성립범위
Ⅰ. 공소사실의 요지 검사는 '유명가수인 피고인 甲은 화투를 응용한 그림을 직접 그리다가 2009년부터 2015년 4월경까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직업화가 A에게 그리고 2015년 4월부터 2016년 3월경까지는 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생 B에게 자신의 이전 작품과 같이 그려오게 하거나 작품아이디어를 얘기하여 그에 따른 그림을 그려오게 한 뒤 일부 그림의 경우 자신이 배경 덧칠작업 등을 하였고 모든 그림에 자신의 서명을 하여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인 것처럼 전시한 후 2011년 9월경부터 2016년 4월경까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지 않은 채 총 20명의 구매자(피해자)에게 작품을 판매하여 총합계 1억8000만원 상당을 편취하였다'고 하면서 甲을 일반사기죄로 기소하였다. Ⅱ. 소송경과 및 판결요지 1. 1심법원과 2심법원 1심법원은 "회화에 있어서는 창작적 표현작업을 주로 한 자를 작가로 보아야 하기에 A와 B를 단순히 '조수'에 불과하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그들을 '작가'로 보아야 하고 미술품거래에서 '친작인지 여부'는 구매 여부의 판단이나 가격의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설명가치 있는 정보에 해당되기에 이를 고지하지 않고 판매한 것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구매자들을 부작위에 의하여 기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면서 사기죄 유죄판결을 하고 경합범 가중을 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10월의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서울중앙지법 2017. 10. 18. 선고 2016고단5112 판결). 이에 반해 2심법원은 "미술작품의 컨셉트와 소재를 피고인이 정했다는 것을 이유로 피고인을 작가(저작자)로 보아야 하고 A와 B는 보조자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거나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많은 구매자들의 진술이 증거로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팬이라서 甲의 그림을 갖고 싶었고 미술계에서 보조 조수가 있다는 것을 몇 십년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는 구매자 X1의 진술 그리고 '작품경향이 독특하고 甲의 작품의 경우 수집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구매한 것이다. 당해 사안과 같은 경우 누구를 작가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 미술계에서 확립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구매자 X2(미술관 큐레이터)의 진술을 근거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미술작품에 관한 피해자들의 착오를 제거해 주어야 할 보증인적 지위에 있다거나 보조자 사용 사실에 관하여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있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이를 고지하지 아니함으로써 재물을 편취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모든 구매자들과의 관계에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서울중앙지법 2018. 8. 17. 선고 2017노3965 판결). 2. 대법원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검사는 ①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권은 대작화가인 공소외 1 등에게 귀속되고 피고인 1은 저작자로 볼 수 없으므로 항소심판결에는 저작물·저작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② 항소심이 피고인 1에게 자신이 직접 그린 친작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고 이 사건 공소사실 중에는 고지의무 위반 외에도 이른바 묵시적 기망행위에 관한 부분도 있는데 이에 대하여 판단을 유탈한 것은 위법하다는 것을 이유로 상고하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저작권법에 의하면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기여하지 아니한 자는 비록 저작물의 작성 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소재 또는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관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저작물의 저작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미술저작물의 저작자 아닌 자가 마치 저작자인 것처럼 행세하여 그 미술품을 판매하였다면 이는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일반원칙을 설시하면서도 ① 검사는 이 사건을 사기죄로 기소하였을 뿐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기에 이 사건 형사재판에서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정면으로 문제 되었다고 볼 수 없고 이제 와서 검사가 항소심에 저작물·저작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심판의 대상에 관한 불고불리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②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 ③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는 사기죄에서의 법률상 고지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Ⅲ. 평석 1. 사안의 쟁점 당해 사건에서 검사는 甲을 상습사기죄로 기소하지 않고 일반사기죄로 기소하였기에 일관된 판례태도에 의하면 당해 사안의 경우 각 구매자에 대한 범행 간에 시간적 근접성이 인정되고 범행방법의 동일성이 인정되더라도 피해자(구매자)가 다르기에 연속범(행) 또는 접속범(행)으로(학계에서는 연속범이라고 지칭하고 있고 판례는 접속범이라고 지칭하고 있음) 인한 사기죄의 포괄일죄가 성립할 수 없고 수개 사기죄의 실체적 경합이 문제된다. 따라서 당해 사안의 경우 검사는 원칙적으로 개개 구매자에 대한 거래행위별로 사기죄의 성립여부를 입증해야 하고 법원 또한 개개 거래행위별로 사기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당해 사안을 '설명가치를 가지는 묵시적 기망행위를 통한 작위에 의한 사기죄' 성립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으로 검토해야 할지 아니면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 성립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으로 검토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1심법원과 2심법원의 태도에 따라 당해 사안을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 성립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으로 검토하면 핵심쟁점은 '미술품거래에서 누가 작가(저작자)인지가 거래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인지', '중요한 사항이라면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은 甲을 미술품의 저작자로 볼 수 있는가'이다. 왜냐하면 甲이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았을지라도 미술품의 (단독)저작자로 인정된다면 甲이 직접 그리지 않았음을 구매자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 단독저작자인 것처럼 행세한 것)은 기망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판단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불고불리의 원칙과 사법자제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대법원 이 사건에서는 사기죄의 실체적 경합이 문제되기에 개개 거래행위별로 사기죄 성립여부가 입증·판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심법원은 대부분의 구매자들이 '甲이 직접 그리지 않았다면 구매하지 않았거나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일괄적으로 검토하여 전부유죄판결을 하였고 반대로 2심법원은 다른 일부 구매자(X1과 X2)의 진술을 근거로 그 구매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무죄판결을 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모든 구매자(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사기죄의 성립요건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전부무죄판결을 하였다. 대법원은 A와 B를 저작자(또는 공동저작자)로 보아야 한다는 뉘앙스로 설시하고 '누가 저작자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법적 평가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검사는 이 사건을 사기죄로 기소하였을 뿐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기에 이 사건 형사재판에서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정면으로 문제 되었다고 볼 수 없고 이제 와서 검사가 원심에 저작물·저작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심판의 대상에 관한 불고불리원칙에 반하는 것'이고 '누가 저작자인지에 관한 논란은 미학적인 평가 또는 작가에 대한 윤리적 평가에 관한 문제로 보아 예술 영역에서의 비평과 담론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고 이에 대한 사법판단은 그 논란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여 저작권 문제가 정면으로 쟁점이 된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누가 저작자인지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항소심판결에서 나타나는 일괄적 검토의 오류에 대해서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상고기각을 하였다. 이 사건에서 '누구를 저작자로 보아야 하는가'는 사기죄 성립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핵심쟁점이었다. 불고불리의 원칙은 심판대상에 관한 것이고 심판대상이 된 행위 및 범죄에서 그 범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어느 쟁점과 관련하여 법질서의 통일성을 위해 다른 법률상의 법리를 참조하여 판단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 아니다.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법적 평가의 문제라고 밝힌 '누가 저작자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당해 사안에서는 저작권법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당해 사안에서 대법원은 '누가 저작자인가'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적절하게 불고불리의 원칙과 사법자제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당해 사건에서 대법원이 최상급 법원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박경규 부연구위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사기
조영남
대작
박경규 부연구위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21-02-08
형사일반
친작 여부에 관한 기망과 사법자제 원칙
1. 서론 필자는 일전의 기고(본지 2020.10.19.자 판례평석)에서 이 사건의 두 가지 큰 주제 - (a) 이 사건 그림들이 피고인의 창작인지, (b) 친작이 아닌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기망행위인지 - 중 첫째에 대해 논하였다. 본고에서는 두 번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친작’이다. 법률적 평가인 ‘창작’과 달리 ‘친작’은 순수히 사실의 문제다. 이와 관련하여 ‘작품제작에서 조수의 사용은 관행’이라는 주장이 있다. 평론가 반이정 등이 펼친 이 주장에 의하면 다빈치, 렘브란트 등을 비롯해 우리가 흔히 아는 거장들도 조수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으며 미술계에 그러한 관행이 존재해 온 이상 작품이 친작인지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미술론’과 함께 ‘조수 사용 관행론’은 이 사건 기소를 공격하는 주요 논리이다. 그러나, 조수 사용이 관행이라 하더라도 이로부터 친작의 중요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이 글은 먼저 고지의무를 논하기 위해 작품이 친작인지가 거래상 의미있는 사실인가부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 이 글은 대법원의 사법자제 원칙이 추구하는 결론의 과도함을 지적한다. 2. 친작 여부의 중요성 몇백년간 사라졌다가 최근에 발견된 다빈치의 <구세주(Salvator Mundi)>라는 그림이 2017년 경매에서 미술사상 최고가로 판매된 경위는 미술작품의 제작관행과 시장의 상관관계라는 점에서 연구자들이 주목하였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의 스튜디오는 공동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거장이 중심이 되어 조수, 도제 등 보조자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비싼 가격을 제시하는 일부 고객은 거장의 손길이 더 들어갈 것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싼 그림을 찾는 고객들은 누가 실제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따질 입장은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구세주>를 감정한 전문가들은 이 그림의 얼마만큼이 다빈치의 손으로 그려진 것인가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이 작품을 경매한 크리스티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은 이 작품이 다빈치의 것이라는 “넓은 공감대”가 있다는 정도였다. 이 작품의 제작을 둘러싼 의문은 매수자의 구매의사와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정이었지만, <구세주>는 중동의 한 부호에게 미술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 이 매수자의 구매동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종합하자면, (ㄱ) 작품 제작에 조수를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 (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친작인지 여부는 거래상 유의미하다는 것, 그리고 (ㄷ) 모든 매수자들이 친작 여부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는 것은 아니며 구매동기는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참인 명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전제 사실들로부터 친작 여부의 고지의무에 관하여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3. 고지의무의 인정 여부 고지의무는 미술품을 구매하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문제이다. 잘 알려진 문예비평가인 메이어 아브람스에 따르면 예술을 감상하는 태도에는 네 가지가 있다. (1) 형식주의: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감상해야 하고 다른 외부적 요소를 고려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2) 표현주의: 작품은 작가의 특별하고 심오한 감정의 표현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3) 모방주의: 작품은 실제의 모방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는 입장이다. (4) 실리주의: 작품의 가치는 감상자가 얻는 교훈과 정서를 통해 평가된다는 입장이다. (1) 내지 (4)의 어느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친작의 중요성은 달라진다. 20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있던 미술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형식주의였다. 이 논리를 관철하면 대작이란 사실은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술가의 고뇌와 승화를 생각지 않고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는 입장(2)에서는 그림이 대작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다. 예술이 실제의 모방(3)이라고 보면 작가보다는 작품의 사실성에 더 큰 관심을 둘 것이다. 실리주의(4)에서 보면 친작의 중요성에 대해 작품의 내용과 의도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있을 것이다. 고지의무의 인정근거에 관하여는 “일반거래의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그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는 원칙이 있다. 앞에서 살펴 본 사정을 종합하면, 친작 여부는 “경험칙상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대법원은 ‘미술품을 구매하는 동기나 목적, 용도 등이 다양하고 이 요소들이 제각기 다른 중요도를 가질 수 있으므로, 친작 여부는 일반적으로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하는 원심판단을 수긍하였다. 즉, 친작 여부에 대해 침묵한 것만으로는 기망이 되지 않는다. 4. 사법자제 원칙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결국, 부작위에 의한 기망에 있어서 친작 여부는 고지의무로 격상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사법자제 원칙이다. 대법원은 고지의무에 대하여 판단하는 도입부에서 “위작 여부나 저작권 다툼 등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하였다(법관이 법률의 기준이 아닌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필자는 그 사법관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으나, 지면상 이 점은 다음 기회에 논한다). 친작 여부에 관한 고지의무의 문제에 한정해서 보면 사법자제 원칙은 훈시적인 언급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고지의무의 유무는 굳이 사법자제 원칙을 동원하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자제 원칙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법자제 원칙의 내용은 실제로는 원심의 다음의 언급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원심은 “구매 당시 피해자들이 내심으로 작품이 피고인의 친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작품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닌 이상, 그 제작과정이 피해자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있었다거나 피고인에 의하여 기망당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원심은 단순히 고지의무를 부정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착오 자체를 부정하였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피고인이 그림의 전부를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가격에 매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런데 원심은 그 진술만으로는 친작임을 전제로 매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이어서 위 인용된 설시를 하였다. 그 핵심은 ‘위작 또는 저작권 문제가 아닌 이상’ 실제 사실과 피해자의 인식 간의 괴리가 있었다 해도 착오나 기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작이나 저작권 문제가 아닌 이상 작품의 가치에 대한 착오나 기망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인데, 일회성에 불과한 이 설시를 굳이 하나의 도그마로 완성한 것이 사법자제 원칙이다. 대법원은 ‘위작 여부나 저작권 다툼 등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해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5. 적극적 기망 이 사건에는 소극적 기망 외에 적극적 기망의 요소가 있다. 피고인은 각종 언론, 전시, 판매과정에서 자신이 친작하는 것처럼 행세했다. 공소사실은 소극적 기망과 적극적 기망의 요소들이 섞여 있었는데, 1심과 원심은 공소사실의 요체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공소사실의 많은 부분이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였다”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고심에 이르러 검찰은 피고인이 작품의 저자인 것처럼 행세했다는 ‘묵시적 기망’의 부분에 대해 원심이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묵시적 기망은 작위에 의한 기망의 일종이다. 그것은, 피고인이 그 행위를 통해 친작이라는 외관을 창출했고 피해자들은 그 때문에 원래는 사지 않았을 가격에 작품을 샀다는 것이다. 검찰 주장은, 원심은 공소사실을 부작위에 의한 기망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았을 뿐, 기망행위에 의해 적극적으로 착오가 야기된 측면은 고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대답은 그 점은 원심이 이미 판단했다는 것이다. 부작위에 의한 기망으로 어떻게 작위에 의한 기망을 이미 판단했다는 것인가? 관건은 착오의 부정에 있다. 원심은 위작이나 저작권 문제가 아닌 친작 여부만 가지고는 착오가 될 수 없다고 했고, 대법원은 사법자제 원칙으로 이를 ‘원칙’의 수준으로 격상했다. 그 결과, 피고인이 친작 행세를 했다 해도 피해자는 착오상태에 있지 않고 기망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작 문제도 아니고 저작권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친작 여부의 소극적 기망에 있어 고지의무를 부정한 대법원의 결론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 기망에 대한 일률적 면책까지 시사하는 사법자제 원칙은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관계에 따라서는 친작 여부가 기망·착오·처분과정의 중요한 고리였고 가해자는 의도적으로 이를 이용하였을 수 있다. 사법자제라 하여 이를 모두 불문에 붙인다는 것은 사법의 기능을 지나친 것이다. 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조영남
대작
사기
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2020-10-27
형사일반
그림 대작 사건 - 현대미술론의 수용인가?
1. 서론 가수 조영남이 화가를 써서 그린 그림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판매했다고 해서 사기로 기소된 사건은 세간을 들끓게 했다. 이에 대한 입장은 미술계에서도 양분되었고 평론가들은 나름대로 예술관을 내세워 사건을 논하였는데, 특히 일부는 현대미술이라는 현상 자체가 개념-실행의 분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어서 예술의 핵심은 개념에 있고 실행은 누가 하던 상관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평론가 진중권은 1심이 기망행위를 인정한 것은 법원이 '현대미술'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면서 대법원에서 피고인의 무죄가 확정된 것은 '한국의 법원과 미술계가 비로소 현대미술의 개념에 눈을 뜬 사건'이라고 환영하였다. 마찬가지로 피고인은 이번 판결을 통해 자신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실제 제작은 전업화가 등을 사용하는 창작방식이 인정받았다고 하면서 문제된 작품들에 대해 당당히 자신을 작가로 표방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언론도 이러한 시각을 여과없이 전달하였으며 법률가들 중에도 비슷한 시각을 공유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이 사건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그러한 이해와는 정반대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설시되어 있다. 이것은 판결에서 비상하게 공을 들여 말하고 있는 저작권 법리 부분이다. 여기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이 작품들의 작가라는 원심의 판단에 대해 사실상 긍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이 사건 판결의 의미를 분명히 해서 이를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가 양산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2. 원심 판결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공소외인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한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한 것이 신의칙상 고지의무 위반으로서 기망행위라는 것이다. 1심은 (1) 피고인은 자신이 창작하지 않은 작품을 (2) 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채 판매한 것이 기망행위라고 판단하였다. 피고인을 무죄라고 본 원심의 판결이유는 크게 두 부분 (a) 이 그림들은 피고인이 창작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b) 이 사건 거래에서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각각 1심의 판단 (1)과 (2)에 대응하는 것이다. 즉, 원심은 1심의 (1)과 (2)를 모두 배척하였고, 원심 판결이유 (a)와 (b)는 병렬적으로 무죄 결론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a)와 (b) 중 어느 하나가 배척되더라도 두 가지 모두가 배척되지 않은 이상 원심의 무죄결론은 유지될 수 있는 구조였다. 원심은 판결이유 (a), 즉 이 작품들은 피고인이 창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상당한 정성을 쏟았다. 여기서 원심은 일부 평론가의 논리와 흡사하게 현대미술에서 개념-실행이 분리되는 점을 언급하고 미술사상 저명 화가들의 이름을 들면서 이들의 창작에서 조수의 사용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점을 지적하였다. 미술이론적 설명을 넘어 원심은 공소외인이 한 작업은 '밑그림의 제작'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피고인의 창작적 기여에 대해 세세하게 설시하였다. 그 다음 판결이유 (b), 즉 신의칙상 고지의무가 있는가의 점에 대해서는 위 (a)의 논의와는 별개로, 피해자들의 구매동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친작인지 여부가 거래의 주된 요소라고 말하기 어렵고 '친작이 아니었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진심이 아니었을 가능성, 그리고 고지의무의 구체적 범위와 이행방식을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그 의무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원심이 확정됨에 따라 대부분은 원심판결의 (a)와 (b)가 모두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 사건을 두고 세간에서 떠들썩하게 전개된 입론들은 모두 (a)에 관련된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을 보면 대법원은 (a)에 대한 원심의 판단을 긍정하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이 원심을 인용한 것은 (b), 즉 신의칙상 고지의무의 존부에 관해 사법자제의 원칙을 선언하면서 원심의 결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원심판결은 (a)와 (b)가 모두 배척되지 않은 이상 인용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대법원이 (a)에 대한 원심판단을 긍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심의 무죄 결론은 유지될 수 있었다. 3. 검찰 상고이유 제1점 상고심에 이르기 전까지 저작권은 전혀 논점이 아니었다. 관건은 어디까지나 친작이 아님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기망행위인가였고 저작권은 논외라는 점에 대해서 아무도 이론이 없었다. 원심은 분명하게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저작권을 보유하였는지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저작권에 대한 판단 자체를 거부하였다. 그런데 원심에서 패한 검찰의 상고이유 제1점은 '원심판결에 나타난 저작자, 저작물에 관한 법리오해'였다. 저작자와 저작물에 대한 주장은 검찰 스스로도 한 적이 없고 원심도 판단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 상고이유 제1점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저작권법에 존재하는 '2인 이상이 저작물의 작성에 관여한 경우 그중에서 창작적인 표현형식 자체에 기여한 자만이 그 저작물의 저작자가 되고,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기여하지 아니한 자는 비록 저작물의 작성 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소재 또는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관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저작물의 저작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법리 때문이다. 원심은 판결이유에서 피고인이 아이디어 내지 컨셉트를 기여하였음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원심의 판단은 '공소외인들은 보수를 받고 피고인의 창작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작품제작에 도움을 준 기술적인 보조자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원심이 스스로 인정한 이 사실을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기여하지 아니한 자는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하였더라도 저작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위 공식에 대입하면 피고인은 저작자가 아니며 오히려 공소외인이 저작자가 된다. 그 때문에 검찰의 상고이유 제1점은 친작 여부의 고지의무가 아니라 저작자 결정에 관한 법리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4. 대법원의 판단 검찰 상고이유 제1점은 불고불리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었다. 검찰이 이를 모른 것은 물론 아니었다. 저작권 법리와 원심의 판결이유를 대조하면 적어도 문언상으로 선명하게 원심의 자가당착이 나타났고 검찰은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상고이유 제1점은 그대로 배척해 버려도 무방한 것이었지만 대법원은 그러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를 배척하기 전에 이 사건의 저작권적 함의에 대해 비중있게 설시를 하였다. 대법원은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기여하지 아니한 자는 비록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하였더라도 저작자가 아니다'라는 바로 그 법리를 언급한 다음, '저작자 아닌 자가 마치 저작자인 것처럼 행세하여 그 미술품을 판매하였다면 이는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하였다. 대법원은 저작자의 결정이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지만 "원심이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피고인이라고 본 것이나 그와 같은 창작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한다고 기술한 데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원심은 작품의 저작자가 피고인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왜 대법원은 원심이 그런 판단을 했다고 본 것인가? 원심은 그 판결이유에서 이 작품들은 피고인의 창작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결이유 중 고지의무의 불인정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저작권 법리에 판결이유의 절반을 할애하면서도 이 그림들이 피고인의 창작이라는 원심의 판단은 끝내 긍정하지 않았다. 5. 이 사건의 저작권적 함의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면'하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운 사정이 존재한다. 출발은 물론 저작인격권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저작재산권과 달리 저작인격권은 일신전속적이며 양도, 포기할 수 없다. 피고인이 대가를 주고 작품을 인도받았다 해도 여기에 수정·서명을 하여 자기 작품으로 공표한 행위는 저작인격권의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넘기 어려운 장애가 있다. 첫째, 업무상 저작물의 경우는 저작인격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1심은 피고인과 공소외인 간의 법률관계는 고용이 아닌 대등관계로 보았다. 그러나 원심은 고용은 아니더라도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제작을 지시하고 공소외인은 이의없이 따르는 관계였다고 시사하고 있다. 둘째는 저작인격권이 아무리 일신전속적이라 해도 이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동의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한다. 이 사건에서 묵시적 동의의 존재는 검찰이 저작권법 위반을 기소하지 않은 배경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의 저작권 설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저작권법 위반은 별론, 저작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합의로도 변경 못하는 강행규정이기 때문이다. 저작권 제도가 개념예술을 중핵으로 하는 현대미술론에 호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현대미술이 개념이 예술이라고 주장한다면 저작권은 표현에 예술의 영혼이 있다고 본다. 개념이 아닌 표현형식을 보호한다는 것은 저작권 제도의 철학적 기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사건에서 현대미술론이 수용되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찾아보기 어렵다. 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사기
대작
조영남
안태용 변호사(서울회)
2020-10-19
지식재산권
투여용법, 투여용량에 관한 의약용도발명의 진보성 판단
- 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4후2702 판결 - 1.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 2015. 5. 21. 선고 2014후768 전원합의체 판결은 의약이라는 물건의 발명에서 투여용법과 투여용량은 의료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의약이라는 물건이 효능을 온전하게 발휘하도록 하는 속성을 표현함으로써 의약이라는 물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발명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후 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4후2702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 한다)은 “특정한 투여용법과 투여용량에 관한 용도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출원 당시의 기술수준이나 공지기술 등에 비추어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하 ‘통상의 기술자’라 한다)이 예측할 수 없는 현저하거나 이질적인 효과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투여용법과 투여용량에 관한 의약용도발명의 진보성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2. 청구항 분석을 통한 이 사건 특허발명의 성격 이 사건 특허발명의 청구항 1은 ‘유리염기 또는 산부가염의 형태의 하기 일반식 (I)의 (S)-N-에틸-3[(1-디메틸아미노)에틸]-N-메틸-페닐-카르바메이트 및 전신 경피투여에 적합한 약학적 담체 또는 희석제를 포함하는 전신 경피투여용 약학조성물’ 이다.(그림) 발명의 특허성 판단에 적용될 기준을 찾기 위하여, 이 사건 특허발명의 성격을 위 청구항의 기재에 의하여 파악하면, 이 사건 특허발명은 그 청구범위가 전체적으로 물건의 발명 형태로 기재되어 있고, 의약물질의 쓰임새로서 그 권리범위를 특정하는 요소로서 경피투여라는 용도가 그 부가요소로 포함되어 있는 의약용도발명이다. 3. 의약용도발명의 진보성 판단 기준 가. 구성의 곤란성 의약의 용도발명에서 통상의 발명과 같은 의미에서 구성의 곤란성이 필요한지는 주장·증명책임의 소재와 관련하여 소송실무상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여기에는 의약용도발명을 통상의 발명과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제1설), 원칙적으로 구성의 곤란성이 없고 예외적으로 구성의 곤란성을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제2설), 의약의 용도별로 개별적으로 구성의 곤란성을 판별해야 한다는 견해(제3설) 등이 가능하다. 대상판결은 선택발명에 관한 판시(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1후2740 판결 등)와 같이 구성의 곤란성에 관한 아무런 언급 없이 효과의 현저성이 필요하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살피건대, 의약의 용도발명은 선택발명에서의‘후행물질’을 ‘용도’로 바꾼 것일 뿐 발명의 본질상 선택발명과 마찬가지로 ‘발명’즉‘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서 고도한 것’이 아닌 ‘발견’에 대하여 정책적인 이유로 특허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선택발명과 동일한 판단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 점, 의약개발 과정에서 적절한 투여용법과 투여용량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통상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다는 경험칙이 존재한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제2설 또는 제3설을 따를 경우, 의약의 용도발명에서 구성의 곤란성이 없다는 점은 민사소송법상 사실상의 추정의 하나로서 일응의 추정에 해당하므로, 당해 용법용량의 한정을 방해하는 취지의 기재나 기술적 편견 등 구성의 곤란성을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을 특허권자가 주장, 증명하여야 할 것이다{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투여용량에 관한 의약용도발명의 진보성이 최초로 문제된 사안에서, 특허법원 2017. 2. 3. 선고 2015허7889 판결(대법원 2017. 6. 29.자 2017후547 판결로 상고기각)은 투여용량 등을 최적화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통상의 기술자의 통상의 창작능력 범위 내에 속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 나. 효과의 현저성 대상판결은 특정한 투여용법과 투여용량에 관한 용도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출원 당시의 기술수준이나 공지기술 등에 비추어 통상의 기술자가 예측할 수 없는 현저하거나 이질적인 효과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효과의 현저성은 미국 특허법 제101조에 규정된 유용성과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우리나라 특허법상 산업상 이용가능성에 대응되는 미국법상의 유용성이 있다고 하여 진보성 판단 시 곧바로 효과의 현저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효과의 현저성 없이 구성의 곤란성만으로 진보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의약 발명의 경우 인체에 사용될 것이 예정되어 있으며 인체에서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발명의 목적이자 본질적인 특성이기 때문에, 구성의 곤란성만으로 쉽게 진보성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효과의 현저성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는 견해가 가능하다. 의약용도발명은 명세서에 선행발명과 비교될 수 있는 발명 효과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비교실험자료 또는 대비결과까지 기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이러한 효과에 대해서 추후 입증이 가능한 선택발명과 달리, 효과에 대한 추후 입증이 불가능하다. 이는 선택발명에서 효과는 구성이 아닌 반면, 의약용도발명에서의 용도는 그 자체가 구성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차이다. 4. 대상판결의 검토 가. 대상판결은 비교대상발명 1, 4 및 경피흡수제의 공지, 공연실시 사실만으로는 이 사건 특허발명의 리바스티그민의 경피흡수성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다만, 경피흡수성의 예측가능성은 화합물 사이의 침투율 등 경피흡수성의 실증적 대비 등 당해 기술분야에서 사실문제로서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이 부분 대법원 판시는 별도의 사실이나 증거는 적시하지 않고, 논리학상 RA7의 높은 지질용해도 등의 성질은 경피흡수성에 대한 관계에서 참인 명제의 충분조건으로 볼 수 없다는 근거를 내세워 원심의 판단과 결론을 달리하였는바, 그 논증과정이 향후 투여용량, 방법에 관한 사안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될 정도로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 대상판결은 ‘통상의 기술자가 비교대상발명들로부터 경피투여 용도를 쉽게 도출할 수 없고, 경피투여 용도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볼 만한 사정도 보이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이 부분 판시는 의약의 용도발명에서 원칙적으로 구성의 곤란성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견해(제2, 3설)에 따를 때, 구성의 곤란성의 존재에 관한 주장·증명책임의 소재와 관련하여 다소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즉, 통상의 기술자가 경피투여 용도를 쉽게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에 관하여 특허를 무효하는 사람이 아니라 특허권자가 이를 주장, 증명하는 것으로 심리, 판단이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다. 대상판결은‘경피투여 용도는 출원일 당시의 기술수준이나 공지기술 등에 비추어 통상의 기술자가 예측할 수 없는 이질적인 효과라고 보아야 하므로, 이 사건 특허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용도는 발명을 한정하는 구성이고 용도 자체를 바로 효과로 보기는 어려운바, 이 사건 특허발명의 명세서에 기재된 작용효과인 경피투여하였을 경우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의 활성에 대한 장기간의 일정한 억제 활성이 유지되며, 활성의 시작은 느린데 이것은 화합물의 안정성(tolerability)를 생각할 때 특히 유리하다는 점을 실험결과를 통한 정량적인 데이터로 보여주고 있는 부분을 대비 대상으로 삼아 비교대상발명들과 효과상 차이를 비교,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5. 결론 대상판결은 의약이라는 물건발명에서 구성으로 한정된 투여용법, 투여용량에 관한 진보성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하였는바, 이는 용량발명 등 의약용도발명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진보성 판단 기준으로 볼 수 있다. 의약용도발명이 발명의 본질상 선택발명과 동일한 판단 기준을 가져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 및 의약개발 과정에 존재하는 경험칙에 비추어 정당한 판시로 이해된다. 다만 각국의 산업발달 단계, 특허의 본질과 제도적 기능에 대한 이해, 특허를 둘러싼 정책적인 요소 등을 고려하여 진보성의 수준과 폭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결론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대상판결의 구체적인 판단 이유에서는 구성의 곤란성 유무에 관한 주장·증명책임의 소재가 분명치 않고 효과의 현저성 판단에서도 대비 대상을 삼은 효과가 적절한지 또한 효과의 이질적인 효과가 존재한다고 볼 만한 객관적 근거와 논증이 다소 명확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한동수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진보성
특허발명
의약용도발명
한동수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2018-04-10
부정사용취소심판에 있어 상표의 동일성 판단기준
1. 사안의 개요 및 대상판결의 요지 피고는 등록상표(상표등록 제0834637호, 지정상품 캐디백, 보스톤백 등; 이하 '이 사건 등록상표')의 상표권자로서 이 사건 등록상표를 <그림1>과 같은 형태로 변형한 상표(이하 '실사용상표')를 이 사건 등록상표의 지정상품인 캐디백 등에 사용하였다. 이에 <그림2>와 같은 형태의 상표(이하 '대상상표')를 역시 캐디백 등에 사용하고 있던 원고는 피고의 행위가 상표권자가 고의로 지정상품에 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를 사용함으로써 수요자로 하여금 상품의 품질의 오인 또는 타인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과의 혼동을 생기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2호에 근거하여 이 사건 등록상표에 대한 취소심판을 제기하였다. 특허심판원은 실사용상표들은 이 사건 등록상표의 동일성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는 이유로 심판청구를 기각하였으나, 특허법원은 실사용상표들은 변용의 정도가 지나쳐 이 사건 등록상표의 통상의 사용범위 내에서 변경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심결을 취소하였다. 이에 피고는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2호의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 상표권자가 등록상표를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그와 유사한 상표를 사용한 것인지는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3호의 불사용취소심판에서의 상표 동일성 판단기준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실사용상표가 등록상표를 타인의 상표와 동일 또는 유사하게 보이도록 변형한 것이어서 그 사용으로 인하여 대상상표와의 관계에서 등록상표를 그대로 사용한 경우보다 수요자가 상품출처를 오인·혼동할 우려가 더 커지게 되었다면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는 그 실사용상표의 사용을 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의 사용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2. 평석 가.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2호에서의 상표의 동일성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2호는 상표권자가 고의로 지정상품에 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거나 지정상품과 유사한 상품에 등록상표 또는 이와 유사한 상표를 사용함으로써 수요자로 하여금 상품의 품질의 오인 또는 타인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과의 혼동을 생기게 한 경우를 상표등록의 취소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상표권자가 자신의 등록상표를 그 사용권 범위를 넘어 부정하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타인의 상표의 신용이나 명성에 편승하려는 행위를 방지하여 거래자와 수요자의 이익보호는 물론 다른 상표를 사용하는 사람의 영업상 신용과 권익도 아울러 보호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위 조항의 요건 중 상표권자가 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를 사용한 것인지 여부가 주된 쟁점이 된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상표권자인 피고가 사용한 실사용상표가 이 사건 등록상표의 동일성의 범위 내에 있는지, 아니면 그 변형의 정도가 지나쳐 동일성의 범위를 벗어난 유사상표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된 것이다. 나.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3호와의 관계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3호는 상표권자·전용사용권자 또는 통상사용권자중 어느 누구도 정당한 이유 없이 등록상표를 그 지정상품에 대하여 심판청구일전 계속하여 3년 이상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경우를 상표등록의 취소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상표권자가 등록상표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등록된 형상과 동일하게 사용하는 경우뿐 아니라 이를 일부 변형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상당히 존재하는바, 대법원은 "등록상표를 그 지정상품에 사용하는 경우라 함은 등록상표와 동일한 상표를 사용한 경우를 말하고, 동일한 상표라고 함은 등록상표 그 자체뿐만 아니라 거래 사회통념상 등록상표와 동일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상표를 포함하나, 유사상표를 사용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후665 판결 등). 여기서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2호와 제3호의 상표 동일성 판단기준을 동일하게 보아야 하는지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양자의 기준을 동일하게 본다면 불사용취소심판에서 사회통념상 등록상표와 동일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상표로 인정된 상표의 사용은 부정사용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반면, 양자의 기준을 다르게 본다면 불사용취소를 면하는 경우에도 부정사용취소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된다. 이는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 실사용상표가 등록상표와 동일성의 범위 내에 있는지를 판단할 때, 대상상표(즉, 타인의 상표)와의 유사성 여부를 고려할 것인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즉, 대상상표를 전제로 하지 않는 불사용취소심판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도 대상상표는 상표 동일성 판단의 고려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인 반면, 양자의 기준을 다르게 본다면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는 실사용상표와 대상상표의 유사성을 고려할 여지가 있게 되는 것이다. 다. 상표의 '동일성' 개념의 통일적 해석 여부에 대한 논의 위 문제에 관하여 종래의 판결 중에는 명시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 없었으나, 불사용취소심판과 관련하여 동일성 범위 내의 사용으로 인정된 상표의 사용을 부정사용으로 본 사례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판례는 양자의 기준을 동일하게 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해석되고 있었다(원유석, 등록상표의 불사용취소와 부정사용취소의 실무적 재검토, 사법논집 제49집, 43면). 학설은, 불사용취소심판에서 상표등록취소를 일단 면하였던 자가 다시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는 취소를 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양자의 기준을 동일하게 보아야 한다는 견해(박준석, 판례상 상표의 동일·유사성 판단기준, 사법논집 제39집, 505면)도 있으나,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의 상표 동일성은 불사용취소심판에서의 동일성의 범위보다 좁은 개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다(문삼섭, 상표법, 제2판, 951면). 라.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 실사용상표가 등록상표와 동일한 것인지 여부는 불사용취소심판에서의 동일성 판단기준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 실사용상표와 등록상표의 동일성 여부 판단에 대상상표와의 관계를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대상판결의 판단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부정사용취소심판의 목적이 등록상표를 보유하고 있음을 기화로 이를 변형하여 사용함으로써 수요자의 오인·혼동을 불러일으킨 상표권자를 제재하기 위하여 오인·혼동 야기 수단이 된 등록상표를 취소하고자 하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표의 동일성 여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도 대상상표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부정사용 취소사유의 요건을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상표의 동일성 판단에 있어서는 대상상표를 고려함이 없이 등록상표와 실사용상표만을 비교하고, 그 결과 동일성을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되는 상표에 대해서만 오인·혼동 가능성을 판단하는 경우, 대상상표를 염두에 두고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등록상표를 변형하여 오인·혼동의 우려가 현존하는 사안임에도 부정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부당한 결론이 도출될 우려가 있다. 또한, 불사용취소심판에 있어 상표의 동일성의 범위를 넓게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등록상표를 어느 정도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아 이러한 경우까지 상표를 취소하는 것은 상표권자에게 가혹하다는 고려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러한 상표 동일성의 판단기준을 부정사용취소심판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수요자들의 오인·혼동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대상상표와 유사하게 등록상표를 변형하여 사용한 상표권자까지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당초 불사용취소심판에서 상표 동일성의 범위를 확대하여 인정하는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이 경우 불사용취소심판에서는 실사용상표가 등록상표와 동일성의 범위에 있는 것으로 인정받아 취소를 면한 상표권자가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는 상표가 취소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으나, 대상판결이 판시하였듯이 양 제도는 그 취지가 서로 다른 것이므로 이러한 결과가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간 부정사용취소심판에 있어 실사용상표와 등록상표의 동일성 판단기준에 대하여 실무상 혼란이 있었으나, 대상판결로써 이러한 혼란이 해소되고, 나아가 대상판결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개별 사안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부정사용취소심판에서 상표 동일성을 판단함에 있어 실사용상표와 대상상표와의 유사성을 어느 정도나 고려해야 하는지, 대상상표가 수요자들에게 알려진 정도에 따라 동일성 여부에 대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 등 세부적인 문제는 향후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고 할 것인바, 앞으로 판결의 축적을 통하여 구체적인 기준이 확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4-01-27
항소심서 후발적 예비적 공동소송 가능한가
Ⅰ. 사안의 개요 1. 사실관계 X는 약속어음 배서와 대환대출 등으로 A에 대한 대여금 또는 구상금 등(이하 '이 사건 대여금'이라고 한다)으로서 3억 5,500만원의 채권을 갖고 있었다. 이를 담보하기 위하여 A는 X에게 A가 임대사업을 위하여 건축한 이 사건 아파트 중 아직 임대하지 않은 101동 802호를 비롯한 총 16세대의 아파트를 X가 임차인을 물색하여 임대한 후 그들로부터 임차보증금을 수령하여 이 사건 대여금의 변제에 충당하기로 하는 내용으로 대물변제예약과 유사한 계약(이하 '이 사건 대물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그 후 A는 이 사건 대물아파트에 관하여 원고 및 원고가 지정한 X-2부터 X-16 총 15명을 임차인으로 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여 주었다. A는 1998. 10.경 부도를 내면서 자금난 등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회사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2004. 9. 10. 이 사건 아파트의 건축 등에 대한 연대보증사인 Y와 사이에 위 부동산에 대해 A가 가진 권리 및 의무를 지위 승계하고 양도·양수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양도·양수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양도계약'이라 한다). 2. 사건의 경과 (1) 제1심 X 및 X-2부터 X-16은 X를 선정당사자로 선정하여 Y에게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X(원고, 선정당사자)는, ① 피고는 위 임대보증금반환채무의 승계인으로서 원고 및 선정자들(원고를 제외한 나머지 선정자들을 말한다. 이하 같다)에게 각 임대보증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② 피고는 A의 원고에 대한 이 사건 대여금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였으므로 원고 및 선정자들에게 인수채무금(임차보증금 상당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① 주장에 대하여, 원고 및 선정자들이 A에게 현실로 임차보증금을 지급한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하여, ② 주장에 있어서 원고에 대하여는, A가 이 사건 대여금채무를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선정자들에 대하여는 A가 부담하는 채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원고(선정당사자)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2) 원심(제2심) 제2심에 이르러 원고는 A에 대한 이 사건 대여금 청구를 추가하면서 이를 주위적으로 구하고, 원고 및 선정자들의 위 각 임대보증금반환청구는 예비적으로 구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원고의 대여금 청구를 전부 인용하면서, 원고 및 선정자들의 각 임대보증금반환 청구에 관하여는 원고의 대여금 청구를 인용하는 이상 나아가 살펴볼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원고의 대여금 청구와 선정자들의 각 임대보증금반환 청구는 민사소송법 제70조 소정의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의 관계에 있는 바(원고의 임대보증금반환 청구는 원고의 대여금 청구와 객관적·예비적 병합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은 동일한 법률관계에 관하여 모든 공동소송인이 서로간의 다툼을 하나의 소송절차로 한꺼번에 모순 없이 해결하는 소송형태로서 모든 공동소송인에 관한 청구에 관하여 판결을 하여야 하고, 그 중 일부 공동소송인에 대하여만 판결을 하거나, 남겨진 자를 위한 추가판결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민사소송법 제70조 제2항).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으로서는 원고의 대여금 청구를 모두 인용하더라도 다른 공동소송인인 선정자들의 각 임대보증금반환 청구에 관하여도 판결을 하였어야 함에도 이와 달리 선정자들의 예비적 청구에 관하여는 판결을 하지 않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Ⅱ. 평석 1. 관련 제도의 이해 (1) 2002년 개정 민사소송법에서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의 신설 2002년 개정 민사소송법에서 70조에서, 공동소송인 가운데 일부의 청구가 다른 공동소송인의 청구(원고 측)와 법률상 양립할 수 없거나 또는 공동소송인 가운데 일부에 대한 청구가 다른 공동소송인에 대한 청구(피고 측)와 법률상 양립할 수 없는 경우에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의 형태로 소를 제기할 수 있는 특별규정을 신설하였다. 원고 측(능동형)의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도 허용하고 있고, 후발적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도(68조의 준용) 허용하고 있다(민사소송법 70조 1항, 이하 민사소송법 조문). 그리고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이더라도 모든 공동소송인에 관한 청구에 대하여 판결을 하여야 한다(70조 2항). (2) 선정당사자제도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사람은 선정당사자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53조 1항). 선정당사자는 선정자 모두를 위하여 당사자로서 소송수행을 할 수 있는 자격(당사자적격)을 취득하고, 동시에 자기 고유의 소송수행권도 보유한다. 선정당사자는 선정자의 대리인이 아니라 당사자 본인이다. 소송상의 청구는 선정당사자가 하는 것이고, 선정자는 소송상의 청구를 하는 당사자가 아니다. 선정행위는 선정자 자신의 권리에 대하여 관리처분권을 부여하는 사법상의 행위가 아니고, 단순히 소송수행권을 부여하는 소송행위이므로 선정자는 계쟁권리에 관한 실체적인 관리처분권을 상실하지는 않는다. 한편, 선정자가 그 소송에 관한 소송수행권을 상실하는가에 대하여는, 선정에 영향없이 선정자는 여전히 소송수행권을 보유한다는 견해(유지설)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는 견해(상실설)의 대립이 있다. 선정자의 권리·의무의 내용을 주문에 표시하는 방식은 개별적 기재방식과 포괄적 기재방식이 있는데, 모두 적법하다고 할 것이다. 포괄적 기재방식에 의할 때에는 판결의 이유(보통은 별지로 기재한다)에서 선정자별 권리 범위를 특정하여야 한다. 판결문의 당사자표시에 있어서는 선정당사자만을 표시하고, 선정자목록을 판결문 뒤에 별지로 첨부한다. 선정당사자가 받은 판결의 효력은 선정자에게도 미치게 된다(민소법 218조). 일부 선정자의 소변경과 일부 선정자의 청구에 대한 반소는 그 선정자가 선정한 선정당사자만이 또는 그 선정당사자에 대하여서만 하면 된다고 본다. 그렇게 새기지 않으면 선정에 의한 절차의 간이화는 의미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2. 대상판결에 대한 의문 (1) 사안을 예비적 공동소송 관계로 볼 것인가? 원고(선정당사자) 및 선정자들은 제1심에서는 각 임대차계약에 의한 각 임대보증금의 반환을 구하다가 제2심에 이르러 선정자들을 제외한 원고가 약속어음 배서와 대환대출 등으로 말미암은 A에 대한 대여금청구를 추가하면서 이를 주위적으로 구하고(이하 ①청구라고 한다), 원고 및 선정자들의 위 각 임대보증금반환청구(위 대여금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대물계약을 체결하였고, 대물아파트에 관한 각 임대보증금반환청구)는 예비적으로 구하는 것(이하 ②청구라고 한다)으로 변경하였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예비적 청구를 원고(선정당사자)의 청구 부분과 선정자들의 청구 부분으로 둘로 쪼개, 원고의 대여금 청구와 선정자들의 각 임대보증금반환 청구는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고, 원고의 임대보증금반환 청구는 원고의 대여금 청구와 객관적·예비적 병합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아래 그림 참조). 우선, 제기할 문제점은 선정자를 당사자로 볼 것인가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선정당사자만이 당사자이고, 선정자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 특별히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선정자들 ②청구 부분을 독립된 당사자의 청구로 보아 선정당사자의 ①청구와의 관계를 복수의 당사자(비록 예비적이지만, 공동소송) 관계로 포착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안에서 선정자들을 당사자로 포착하였기 때문에 선정자들의 ②청구에 대하여 선정당사자의 ①청구를 주위적으로 보면서 그 관계를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의 관계에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선정자를 위해 당사자로서 소송수행을 하는 선정당사자가 소송중에 자기 청구를 내세우는 형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최초의 사안인 것 같다. 보통 선정당사자가 소송 중인데 선정자가 스스로 별도의 소를 제기하면 이는 중복된 소제기로(259조) 허용되지 않는 것 등이 이론적으로 문제된 경우인데, 위 사안은 이러한 경우와 다르다. 굳이 선정당사자의 ①청구와 선정자들의 ②청구 부분을 복수의 당사자 내지는 공동소송의 관계로(즉,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 보려고 한다면, 선정자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위 경우는 실질적으로 소송의 목적이 되는 법률관계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 뒤, 선정자들의 ②청구 부분의 원고가 선정당사자가 아니고 선정자들이라고 하여야 이론적 정합성이 있게 된다. (2) 후발적 예비적 공동소송을 항소심에서도 인정할 것인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원·피고 사이에 소송계속 중 후발적으로도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할 수 있다(70조 1항 본문, 68조 준용).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였다가 다른 사람이 주위적 원고가 되고, 종전의 원고가 예비적 원고가 되는 후발적 예비적 공동소송도 가능하다. 그런데 선정자들의 ②청구 부분의 원고가 선정당사자가 아니고, 선정자들이라고 보아 일단 공동소송의 형태를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사안에서 예비적 공동소송을 허용하는 것에 문제가 남는다. 왜냐하면, 민사소송법 68조를 보면,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할 수 있는 시점을 제1심 변론종결시까지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위 사안은 분명 항소심에서 원고(선정당사자)를 주위적 원고로 하는 주위적 청구를 추가하면서, 원고(선정당사자)와 선정자들을 예비적 원고로 하는(제1심에서 심판이 있었던 청구를 예비적 청구로 하는) 내용이다. 사안은 제1심 변론종결시까지만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할 수 있다는 68조 명문의 규정에 어긋난다. 물론 항소심에서도 상대방이 동의하면, 예비적 공동소송이 가능하다는 입장(강현중, 민사소송법(2002), 207면)도 없지 않지만, 판례가 이러한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고, 만약 명문의 규정과 달리, 항소심에서도 예비적 공동소송을 허용하는 입장이라면, 적어도 그에 대한 상세한 설시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는 것에 비추어 원심 및 대법원은 제1심 변론종결시까지만 예비적 공동소송이 가능하다는 명문의 규정을 간과한 듯하다. 3. 마치며 원심이 사안의 소송관계의 전제를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으로 보면서,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은, 2002년 신설된 예비적 공동소송과 별도로, 종전의 강학상 주장된 주관적·예비적 병합을 인정한 것(즉, 주위적 청구가 인정되면,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 더 나아가 심판할 필요가 없는 것)일 수 있지만, 그 보다는 신설된 예비적 공동소송에서 모든 공동소송인에 관한 청구에 대하여 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규정(70조 2항)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선정당사자 및 선정자의 지위에 관한 아무런 설시 없이 위 소송관계를 (예비적)공동소송 관계로 포착하였고, 또한 후발적 예비적 공동소송을 항소심 단계에서 허용한 원심의 판단을 바로잡지 못하였다. 항소심에서 예비적 공동소송이 이루어진 것은 민사소송법 68조 명문의 규정에 어긋남에도, 나름의 이론 전개를 하여 시기적으로 항소심에서도 예비적 공동소송이 허용될 수 있음을 나타내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당연히 사안의 소송관계의 전제를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판단한 것은 잘못이다. 사견으로는 사안에서 선정당사자의 ①청구와 선정자들의 ②청구 부분의 관계를 단일한 당사자 사이의 객관적·예비적 병합으로 포착하고, 객관적·예비적 병합에서는 주위적 청구가 인용되면,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 더 나아가 심판할 필요가 없게 되므로 예비적 청구를 판단하지 않은 부분에 한정해서 본다면, 원심에서 예비적 청구를 판단하지 않은 것은 문제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2010-08-12
사행성 게임장 사업자의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Ⅰ. 사건의 개요 원고는 성인용 릴게임기를 설치하여 구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에 의한 일반게임장을 영위하는 사업자로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의 부가가치세를 신고함에 있어서 게임기 이용자의 현금투입액에서 경품으로 지급한 상품권 금액을 차감한 가액을 과세표준으로 하여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였다. 과세처분청은 원고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여 상품권 매입가액을 배당률로 나눈 금액을 매출액으로 산정하고 사업장 이용자들이 게임기에 투입한 금액 전액을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 되는 수입금액으로 하여 원고에게 부가가치세를 경정 고지하였다.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소정의 절차를 거쳐 부가가치세 부과처분취소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으나 기각 당하자 상고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요지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는 소득세·법인세와 달리 실질적인 소득이 아닌 형식적인 거래의 외형에 대하여 부과하는 거래세의 형태를 띠고 있어 비용공제의 개념이 없고, 사업자의 손익 여부와 무관하게 부과되는 점, 상품권을 경품으로 제공하는 게임장에서 게임업자가 게임기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게임기 이용이라는 용역뿐이고 상품권은 게임기 이용 후 게임기 이용자별로 게임의 우연한 결과에 따라 부수적으로 제공되는 경품으로서 법 제13조 제3항 소정의 장려금적 성격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점, 구 게임제공업소의 경품취급기준은 게임업자가 경품을 쉽게 현금화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사실상 환가가 보장되더라도 상품권을 현금과 동일시 할 수 없는 점 및 게임업자로서는 스스로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지 않는 상품권을 구입하여 경품으로 제공한 결과로 그 매입세액을 공제받지 못하는 것인 점 등을 종합하여 고려하면, 상품권을 경품으로 제공하는 게임장에서의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을 산정함에 있어서 게임기 이용자들이 게임기에 투입한 총금액에서 게임업자가 게임기 이용자들에게 경품으로 제공한 상품권의 액면가액 또는 그 취득가액을 공제할 수는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Ⅲ. 평석 1. 게임장 사업에 대한 과세표준의 쟁점 게임장 사업은 고객들로 하여금 게임기 등이 설치된 일정한 물리적 장소에 입장하여 그곳에 설치된 다수의 게임기를 이용하여 게임을 할 수 있게 하는 사업이다. 게임은 아케이드 비디오게임, 성인전용 릴(Reel)게임, 스크린경마게임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구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게임기에 투입한 금액에 따른 시간만큼 게임물 자체를 즐기게 하는 오락을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 게임장의 기본 영업형태이다. 이 경우 게임기에 투입된 현금액을 게임장 이용에 대한 대가로서 파악할 수 있으므로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산정에 있어서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그런데 상당수 게임장이 과당경쟁을 하면서 운영자의 승률조작 또는 고배당 연타기능 등 실질적으로는 사행성 있는 게임물을 제공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사행성 게임물을 제공하는 사업자의 경우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산정과 관련해서 현금 투입 후에 게임기 이용자가 당첨금으로 수취해가는 상품권 상당액을 공제하여야 하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2. 게임의 원리 및 성질 게임장에서 제공하는 게임물 중 배당표에 해당하는 일정한 그림의 배열이 배당라인에 형성되면 베팅에 대한 배당을 받게 되는 게임을 릴게임이라 하는데 ‘바다이야기’ 등이 이에 속한다. 릴게임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게임장에 입장한 이용자들이 일정한 현금을 게임기에 투입하면 게임을 할 수 있는 크레딧(credit)으로 적립되고 게임기 이용자는 적립된 크레딧을 사용하여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베팅을 한 번 하면 크레딧창의 점수 중 100점이 베팅창으로 이동하고 크레딧창에서 100점이 감소하면서 화면 상단에 이미지가 나타나고 게임이 진행된다. 베팅을 한 결과 게임조건이 충족되면 당첨되어 윈(win)창에 점수가 누적되는데 크레딧창의 점수 또는 윈창의 점수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시간이나 횟수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게임을 할 수 있다. 이용자는 게임기 이용자가 획득할 수 있는 상품권의 양을 나타내는 윈창의 점수가 쌓이면 이를 상품권 액면액으로 환산하여 상품권 버튼을 눌러서 액면가 5,000원짜리 상품권을 배출할 수 있다. 게임장에는 통상 30대 내지 50대 정도의 게임단말기가 설치되어 있고 사업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게임장 전체의 개인단말기는 평균 배당률(미리 정해진 환수율로 통상 97% 이상으로 고정되어 있다)을 보장하도록 중앙통제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다. 당첨될 경우 지급하는 경품용 상품권은 현금투입액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매회 짧은 시간에 이용자가 설정한 게임조건(베팅액)과 게임의 결과가 일치한다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우발적·일시적으로 그 지급여부가 결정된다. 따라서 당첨을 위한 게임기 이용자의 숙련된 게임기술은 전혀 필요 없으며 우연에 의해 각 이용자의 당첨 여부 및 확률이 다르게 결정된다. 이와 같이 릴게임은 그 실질에 있어서 사행성의 원리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게임기 이용자들도 게임물을 단순히 오락으로서 즐기기보다는 게임조건을 적중시켜 상품권 배당을 받는 데 주된 관심을 가지고 게임장을 이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또 게임기 이용자가 획득한 상품권은 게임장 인근 별도의 환전소에서 손쉽게 현금으로 환전이 가능하다. 3. 게임장 사업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가. 과세표준계산의 일반 원칙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에 대한 부가가치세의 과세표준은 ‘공급가액’이다. 공급가액은 부가가치세를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부가가치세법 제13조 제2항 및 동조 제3항에 의하면 에누리액, 환입된 재화의 가액, 공급받는 자에게 도달하기 전에 파손·훼손 또는 멸실된 재화의 가액 등은 과세표준에 포함하지 않는다. 이와 다르게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한 후 사업자가 제공한 공급가액에 대한 대손금·장려금과 이와 유사한 금액은 과세표준에서 공제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부가가치세법은 과세표준에 포함하지 않는 항목과 과세표준에서 공제하지 않는 항목만을 예외적으로 열거하여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게임장 사업자는 부가가치세 납부를 위하여 게임기 이용자로부터 부가가치세를 거래징수 해야 하지만 게임장의 구조상 거래징수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리하여 과세처분청은 게임기 이용자의 투입금액 전액을 부가가치세가 포함된 공급대가로 보고 있다. 나. 과세표준 산정에 있어서 상품권 지급액의 포함 여부 부가가치세법상 게임장의 공급대가 계산에 있어서 게임기에 투입된 현금총액에서 상품권의 지급액을 공제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그 동안 하급심 판결이 크게 대립하고 있었다. 공제설은 부가가치세의 과세대상이 되는 과세거래는 게임기 이용이라는 용역의 제공부분에 한정되어야 하고, 게임기에 투입한 총 금액 중 상품권의 액면가에 해당하는 부분은 과세표준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견해이다(서울행정법원 2008. 1.9. 선고 2007구합33245 판결 등). 반면에 불공제설은 게임기 이용자들이 게임기에 투입하는 현금은 게임기 이용이라는 용역과 상품권이라는 재화를 공급받는 것 전체에 대한 대가로서 게임장 사업자로부터 지급받는 경품은 현금이 아니라 일종의 재화이므로 이를 사업자의 공급가액에서 공제할 수 없다는 견해이다(서울행정법원 2007. 12.11. 선고 2007구합12057 판결 등). 4. 주제판결에 대한 검토 가. 게임장 사업자가 제공하는 용역의 실질 게임 사업장에는 수 십대의 게임기들을 통제하는 중앙컴퓨터에 평균배당률이 미리 입력되어 있어서 게임기 이용자가 투입한 돈은 배당률에 해당하는 만큼 게임기 이용자들에게 배당이 된다. 어떤 게임기 이용자가 게임결과 투입금액보다 많은 배당(당첨금)을 받는 경우 그 돈은 외관상 게임장 사업자로부터 온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게임결과 자신의 투입금액보다 적은 배당을 받아 돈을 잃은 다른 게임기 이용자로부터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게임장 사업자는 게임기 이용자들의 전체 투입금액 중 평균 배당률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을 차지하게 된다. 게임장 사업자가 사업 목적으로 하는 점포 내에 설치된 게임기 등 당해 시설물을 이용시켜서 대가를 얻는다 함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게임장 사업자가 제공하는 용역의 실질은 게임기 이용자들 사이에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도록 하는 장소 및 수단을 마련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나. 게임기 이용의 대가 게임장 사업의 경우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의 기초가 되는 공급가액을 각 게임기별로 산출하지 아니하고 게임장 전체를 통한 총 현금투입액에 의하여 계산한다. 그런데 게임장 사업자가 사전에 전체 게임기를 통제하는 중앙컴퓨터에 평균배당률을 입력하여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게임기 이용자가 투입하는 금액 중 평균배당률에 해당하는 금액은 무조건 게임기 이용자에게 상품권 형태로 반환하게 되어 있다. 게임장 사업자와 게임기 이용자들 사이에 투입되는 금액 중 평균배당률에 해당하는 일정 금액의 반환은 이미 사전에 확정된 것이며 실제로 그 나머지 금액만 게임장 사업자가 용역을 제공해주고 받는 수입이 된다. 게임기 이용자들도 게임기에 투입하는 금액 중 자신이 당첨되어 게임기에서 배출되는 상품권가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이 실질적으로 게임기 이용을 위하여 지급한 금액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다. 경품용 상품권의 성격 부가가치세법 제13조 제3항은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한 후의 그 공급가액에 대한 대손금·장려금과 이와 유사한 금액은 과세표준에서 공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장려금이란 판매촉진·시장개척 등의 목적으로 다량 구매자나 고정거래처의 매출에 따른 반대급부로서 거래수량이나 거래금액에 따라 지급하는 금품을 말한다. 종전에 게임장에서 당첨된 이용자는 사행성 간주 게임물이 아닌 한 경품용 상품권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개정된 경품취급기준은 2007. 4.28.부터 경품용 상품권을 지급할 수 없게 하였다). 상품권이란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정해진 액수의 무기명채권으로서 그 자체가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체물이지만 현행법상 상품권의 판매를 과세거래인 재화의 공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상품권은 일반적으로 거래의 지불수단에 불과하므로 어음·수표 등 화폐대용증권과 마찬가지로 과세거래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여야 한다. 주제판결은 게임기 이용자가 게임조건을 충족할 경우에 한하여 상품권을 지급받게 되기 때문에 게임에서 정한 요건 충족시 이용자에게 지급되는 상품권 등은 단순한 시상금 내지 장려금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상품권이 장려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첫째, 상품권은 게임기 이용과 별도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게임기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게임기로부터 배출되는 것이지 게임기의 이용이라는 용역의 제공이 완료된 후 별도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본래 장려금은 일반적으로 거래 상대방의 판매실적에 따라 일정률로 지급되는 것을 말한다. 게임기에 더 많은 금액을 투입하는 이용자가 게임장 사업자에게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품권의 획득은 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게임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셋째, 게임기 이용자는 자신의 투입금액 보다 더 큰 금액의 상품권을 받을 수 있는데 이 경우 판매실적 보다 더 많은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은 부가가치세법상 장려금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넷째, 사행성 게임의 경우 실제 게임기 이용자가 게임을 하는 주된 목적은 상품권을 얻는데 있다. 통상적으로 장려금은 재화나 용역의 공급 외에 부수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상품권은 장려금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음으로 게임기 이용자가 게임기에 투입한 금액의 일부는 상품권의 공급에 대한 대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과 관련된 대가성이 있는지 여부는 당초부터 계약에 의하여 지급할 것이 예정되어 있는가 여부에 따라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게임기의 이용과정에서 애당초 상품권의 배출이 필수적으로 예정되어 있고 게임기 이용과 일체로서 이루어지고 있어 실질적으로 게임기 이용료와 직접적인 대응관계에 해당한다. 비록 게임기 이용이라는 용역과 경품용 상품권이라는 재화를 구분하여 따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기 이용자가 투입하는 현금은 용역과 재화를 공급받는 것 전체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또한 이용자가 게임기에 투입한 금액과 인출되는 상품권 매수, 베팅금액, 배당금액 등의 자료는 메인 서버의 매장관리 프로그램에 의하여 기록 및 관리 되므로 과세표준 산출을 위해 게임기에 투입한 금액과 상품권지급액은 구분되어 계산될 수 있다. 라. 결론 부가가치세는 소득과세와 달리 매출 외형에 과세하는 조세라는 점에서만 보면 불공제설의 논리는 단순 명료해 보이는 점이 있다. 그러나 경품용 상품권은 부가가치세법상 과세표준에서 공제하지 아니하는 장려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경품용 상품권은 실질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금전대용증권에 해당하므로 부가가치세법 해석상 별도로 과세대상인 재화의 공급을 구성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게임기에 투입하는 금액에서 배출된 상품권의 가액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이 게임장 사업자의 공급대가로서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을 구성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주제판결의 논지에 반대한다.
2008-12-04
법원에 현저한 사실〈하〉-대법원 96년7월18일 선고 94다20051판결을 중심으로
法律新聞 第2527號 法律新聞社 法院에 顯著한 事實〈下〉-大法院 96年7月18日 宣告 94다20051판결을 중심으로 文一鋒 〈군산지원판사〉 ============ 14면 ============ 우리나라의 판례를 보면 , ①55세까지인 성인남자나 여자의 가동연한(대판1966년12월6일, 66다1708, 집14 ③민305; 1967년11월14일, 67다1618, 민판집121-78; 1970년3월10일, 69다1887, 민판집149-133; 1987년12월8일, 87다카522, 공1988년, 261), ②각종통계에 의한 생존년수(대판1960년7월7일 4292민상467, 민판집44-85) 또는 한국인 간이생명표에 의한 남녀별 각 연령별 평균여명(대판1963년10월31일, 63다558, 민판집71-733; 1984년11월27일, 84다카1349, 집32④민127), ③국내법인 소유명의로 등기된 대지가 歸屬財産이 아님(대판1959년7월30일 4291민상551, 민판집33-858)은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고, ④본건 처분금지가처분신청을 심판한 법관으로 구성된 원심법원이 위 가처분신청사건에 대한 판결과 같은 날짜로 피보전권리가 없다고 인정되는 내용의 본안판결을 한 이상 본건 가처분신청사건에 있어서의 신청인의 피보전권리는 일응 없는 것이라고 함이 원심에서의 현저한 사실이고(대판 1966년10월20일, 66다1832, 집14③민326), ⑤경기중학교장이 실시한 1968년도 제1학년 입학선발고사답안을 채점함에 있어서 예능과목 13문제에 대하여는 (2), (3)의 그림 두가지를, 19문제에 대하여는 (1),(2),(3)의 세가지를 모두 정답으로 함이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대법원에 현저한 사실이고(대판 1969년11월11일 68누58, 59, 60, 행판집28-527), ⑥교통사고로 사망한 공군 전투기조종사의 일실이익을 산정함에 있어 피해자가 전역한 후 민간 항공사의 조종사로 취업하였을 때의 예상소득을 추정하면서, 1991년도 직종별임금실태조사보고서상의 직종분류의 기준이 된 경제기획원 발행의 개정 한국표준직업분류(1974년 제3차 개정판)에 의하면 분류번호 04번의 「항공기 및 선박고급승무원」의 직무내용에 피해자의 업무내용과는 판이한 선박 및 호버크래프트의 지휘 및 항해, 선상에서 기관실 활동의 지휘및 감독, 해상 활동 및 필수품 또는 기계 검사, 정박중인 화물선의 복구 및 보수작업을 지휘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음이 당원에 현저하다(대판 1994년9월30일, 93다29365, 공1994년, 2824)고 한다. 그러나 경매절차에서 경매신청인이 경매기일변경신청을 하는 경우에 경매기일이 예외없이 변경되는 것이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대판 1984년7월10일, 84다카440, 공1984년, 1346). ①②의 판결에 대하여는 간이생명표에 의한 평균여명, 가동연령은 경험칙으로 보아야 한다는 비판(《이시윤 5백59면》)이 있고 ③의 판결의 경우 귀속재산인지의 여부는 그 전제사실에 따른 법적판단이므로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볼 수 없고, 위 판결은 귀속재산이라는 자백이 법원에 현저한 사실에 배치되어 효력이 없다고 하기 위하여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한 것으로 보이나, 이른바 권리자백으로서 구속력이 없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것이고 ④의 판결은 다른 사건에서 증거조사를 통하여 알게 된 사실을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보는 문제가 있고 ⑤의 판결은 예능문제의 정답을 정하는 재량의 범위에 대하여 도대체 「대법원」이 직무상 어떠한 것을 알고 있었는지 매우 의문스럽고, 이 또한 법적판단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⑥의 판결은 대상판결과 마찬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본의 판례를 보면, ①원고들이 피고들로부터 자신의 실용신안권을 침해받았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의 상고심에서 위 실용신안등록을 무효로 하는 심결이 확정된 것은, 同小法廷이 이미 선고한 판결에 비추어 현저하다고 하고(日最判昭和57년3월30일判示 1038호 288항) ②피상고인 소유의 立木의 관리처분권에 관하여 소외 A가 대리권을 가지고 있는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피상고인의 선대의 사망 후 피상고인과 A와의 사이에 유산의 관리처분권을 둘러싸고 심각한 분쟁이 생겨 현재 동법원에 이에 관한 소송이 계속하고 있음은 현저한 사실이라고 한 원심판결을 수긍하였고(日最判昭和28년9월11일裁判集民事9호901항) ③동일거래에 관한 민·형사사건이 구성원의 과반수를 같이 하는 두 법원에 계속하는 경우에 형사사건에서 무죄판결을 한 사실 및 판결이유중에서 일정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민사사건이 계속하는 법원에 현저하다고 하고(日最判昭和31년7월20일民集10권9호947항) ④전후의 맥아더 연합국최고사령관의 書簡의 취지에 관한 解析指示가 최고재판소에 대하여 행하여져 있는 사실이 현저한 사실이라고 한다(日最判昭和35년4월18일民集14권6호905항). (3)法院에 顯著한 事實의 法的 效果 법원에 현저한 사실은 증명을 요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방은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 진실에 반하다는 것을 주장·입증할 수 있고(《강현중 5백92면》; 김홍규, 제4판 민사소송법, 1995년, 5백99면; 《정동윤 4백87면》), 상대방이 그 현저성을 부인하더라도 법원은 그것이 현저한 사실이라면 그 사실을 그대로 판결의 기초로 할 수 있다(《강현중 5백92면》), 법원에 현저한 사실을 사실인정의 자료로 이용하는 때는 당사자의 검증가능성을 보증하고, 상고심의 현저성의 판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그 입수방법을 판결이유중에 설시하여야 한다(小室直人, 注解民事訴訟法(4), 412항). 어느 사실이 법원에 현저하다고 하는 것은 당해 심급에 한하는 것이므로, 제1심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도 항소심 법원에는 현저하지 않을 수 있다(그 逆도 가능). 이 경우 항소심은 제1심의 견해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그 사실에 관하여 증거조사를 하여야 한다(《송상현 6백45면》은 제1심의 사실인정을 그대로 따라가느냐는 제2심의 자유라고 한다). 상고심은 항소심이 사실확정으로서 현저한 사실의 존재를 확정함에 구속되고, 다만 그 개념이 제대로 평가되었는지, 정당하게 적용되었는지에 관하여는 법률문제로서 심사할 수 있다(《MunchKomm-ZPO/Prutting §291 Rn. 16, 17》;《Stein/Jonas/Leipold §29, Rn, 8, 9》). 현저한 사실은 당사자도 알고 있는 것으로 전제된다거나(《정동윤 486면》), 변론주의의 본질을 진실발견을 위한 합목적적인 수단으로 보는 경우에는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는 점을 우선시켜야 된다거나(김홍규 5백99면), 또는 「법원에서 현저한 사실은 당사자가 이를 변론에서 원용하였던가 현출되지 아니하였다 하여서 그 소송법상의 성질이 변경될리 없고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는 효력에 어떠한 영향도 받을 바 아니라」는 (대판 1963년11월28일, 63다494, 집11②민265)이유로 당사자의 주장이 없어도 당연히 판결의 기초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견해도 주장된다. 그러나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도 변론주의 아래에서는 당사자 보호의 필요상 주요 사실인 경우에는 당사자의 주장이 있어야 한다(《강현중 5백91면》; 《송상현 6백45면》; 《이시윤 5백58면》; 대판1965년3월2일 64다1761, 카1891). 또한 당사자들의 법적심문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법원은 법원에 현저한 사실을 변론에 현출하여 당사자들에게 그 사실이 법원에 현저하지 않다거나 법원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바와는 다른 상태에 있음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김홍규 5백99면; 장석조, 민사소송에서의 법적청문청구권, 69면). 법원에 현저한 사실에 반하는 자백에는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함이 통설·판례이다(대판1959년7월30일, 4291민상551, 민판집33-858(위 판결이 수록된 집7민188에는 위 설시부분이 누락되어 있다); 김홍규 5백70면; 《송상현 4백67면》; 《이시윤 5백54면》; 《정동윤 4백82면》; BGH VersR 1970, 827;NJW 1979, 2089;《Munchkomm-ZPO/Prutting §288 Rn, 35》; 《Stein/Jonas/Leipold §288 Rn 22》). 그러나 진실에 반하는 사실에 대하여도 자백이 허용되는데, 이러한 否定說에 따른다면 受訴法院이 직무상 그 사실을 지득하였는가 하는 우연에 따라 자백의 허용여부가 결정되는 기이한 결론에 이르게 되므로, 공지의 사실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적어도 법원에 현저한 사실에 반하는 자백의 경우에는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변론주의에 관한 本質說을 강조하여 동일한 결론을 도출하는 입장으로는 《강현중 5백85면》). 3, 對象判決의 檢討 (1)대상판결은 변론에 현출되지는 않았으나 원심법원에 비치하고 있는 직종별임금실태조사보고서와 한국직업사전의 각 존재 및 그 기재내용을 원심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보고 있다. 이러한 판시내용은 이미 한국표준직업분류의 내용을 대법원에 현저하다고 한 위 93다29365판결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종별임금실태조사보고서와 한국직업사전등(이하 위 조사보고서등이라고 한다)이 어느 법원에 비치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법원의 기록 자체에 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극단적으로는 법원의 서가에 꽂혀 있는 모든 서적의 존재와 내용이 법원에 현저한 사실의 자료가 되고 말 것이다. 위 조사보고서등은 그 내용의 진실성이나 공공성등이 충분히 보장되기는 하지만 법원의 업무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구입하여 비치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여 법원의 업무와 관련하여 필요적으로 작성·보관되는 법원의 기록과는 질적으로 판이한 것이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상판결이 한편으로는 위 84다카1349 판결과는 달리 정당하게도 법원에 현저한 사실은 법관이 직무상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임을 전제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위 조사보고서등의 존재와 기재내용이 법원에 현저함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경력이 있는 법관이라면 위 조사보고서등이 존재한다는 것쯤은 충분히 경험으로 알 수 있고, 또한 그 일부기재내용도 어느 정도는 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관에게 재판업무 또는 司法行政과 관련하여 그 기재내용을 숙지하여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는 이상, 단순히 위 조사보고서등이 법원에 비치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법원이 그것을 직무상의 경험에 의하여 당연히 알고 있는 것으로 전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만약 어느 법관의 업무에 도움이 되도록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 내용을 숙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직무상 지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물론 다른 사건에서 증거조사를 통하여 알게 된 사실도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보는 견해에 의하는 경 ============ 15면 ============ 우 원심이 문제가 된 내용을 이미 다른 사건을 처리하면서 지득한 바가 있다면 원심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상판결을 보면 그런 사정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만연히 원심법원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만을 근거로 하여 법원의 기록도 아닌 위 조사보고서등의 각 존재 및 그 기재내용을 원심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2)만약에 위 조사보고서등의 각 존재 및 그 기재내용을 원심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대개는 일실이익의 산정의 기초가 되는 월수입을 주요사실로 보지만(다만 《이시윤 4백30면》은 간접사실로 본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가 주장하는 월수입의 범위내에서 그 수입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그에 관한 구체적인 주장이 없어도 무방하므로, 원고의 주장 없이도 이를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은 여기에서는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장의 요부와는 관계없이 법적심문청구권의 요청상 어떠한 사실이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하는 사정은 변론에 현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이러한 요청은 법원에 현저한 사실은 주장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입장에서 더 크다고 할 것이다), 원심은 위 조사보고서등의 각 존재 및 그 기재내용을 변론에 현출시키지 않은 채 그에 따라 판결을 함으로써 사실인정의 문제에 있어서 당사자, 특히 원고의 법적심문청구권을 침해하는 뜻밖의 판결을 하였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이에 대하여는 반대의견이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므로 이를 참조). 또한 그 동안 실무상 위 조사보고서등을 서증으로 제출받아 증거조사한 다음 이 증거에 의하여 월수입을 인정하여 왔는데, 위 조사보고서등의 각 존재및 그 기재내용이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동안의 관행은 불요증사실을 증거에 의하여 인정한 잘못된것으로 되고, 앞으로는 위 조사보고서등이 비치되어 있는 법원에서는 이를 서증으로 제출받지 말고 법원에 현저한 사실로서 확정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3)다만 대상판결이 추구하고자 하는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달리 법리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 하나는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이 적절하게도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석명권을 적절히 행사하여 이를 변론에 현출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민사소송법은 법원에서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제265조), 특히 판례(예컨대 대판1987년12월22일, 85다카2453, 공1988년 323)에 따르면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은 손해액에 관한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이 미흡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직권으로라도 손해액을 심리판단하여야 하므로, 당사자가 위 조사보고서등을 서증으로서 제출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법원이 이에 대하여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하여 변론에 현출시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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