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사건의 경위
원고는 2008. 1. 7. 피고 아산시장에게 신규 건조저장시설(DSC)의 사업자인정 신청을 하였지만, 피고는 2008. 4. 21. 원고에 대하여, 농림사업실시규정(2007. 12. 28. 훈령 제1291호, 이하 '이 사건 훈령'이라 한다) 제4조에 의한 2008년도 농림사업시행지침서(이하 '이 사건지침서'라 한다)가 정한 신규 DSC 사업자 인정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위 신청을 반려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아산시 미곡종합처리장(RPC)·건조저장시설(DSC) 운영협의회는, 원고가 논 면적 확보기준에 225ha 미달하였다는 아산시의 검토결과가 적합하다는 판정을 하였다. 신규 DSC 사업자로 인정되면 벼 매입 실적에 따라 매입자금을 지원 받거나 공공비축 산물 벼 매입량이 배정되는 등의 혜택이 있다.
Ⅱ. 원심(대전고등법원 2009.4.30. 선고 2008누3096판결)의 판결요지
2008년도 농림사업시행지침서가 농림부에 의하여 공표됨으로써 신규 RPC 또는 신규 DSC 사업자로 선정되기를 희망하는 자는 이 사건 지침에 명시된 요건을 충족할 경우 사업자로 선정되어 벼 매입자금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보호가치 있는 신뢰를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 사건 지침에 명시되어 있지 아니한 시·군별 신규 DSC 개소당 논 면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의 DSC 사업자 인정신청을 반려한 이 사건 처분은 이 사건 지침이 예기하고 있는 자기구속을 위반한 것이거나 자의적인 조치로서 평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아니하고, 따라서 이 사건 처분 당시 이 사건 지침과 달리 DSC 개소당 논 면적 기준을 적용할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 이 사건에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Ⅲ. 대상판결의 요지
[1] 상급행정기관이 하급행정기관에 대하여 업무처리지침이나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기준을 정하여 발하는 이른바 '행정규칙이나 내부지침'은 일반적으로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므로 행정처분이 그에 위반하였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곧바로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량권 행사의 준칙인 행정규칙이 그 정한 바에 따라 되풀이 시행되어 행정관행이 이루어지게 되면 평등의 원칙이나 신뢰보호의 원칙에 따라 행정기관은 그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서 그 규칙에 따라야 할 자기구속을 받게 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를 위반하는 처분은 평등의 원칙이나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배되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 된다.
[2] 시장이 농림수산식품부에 의하여 공표된 '2008년도 농림사업시행지침서'에 명시되지 않은 '시·군별 건조저장시설 개소당 논 면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신규 건조저장시설 사업자 인정신청을 반려한 사안에서, 위 지침이 되풀이 시행되어 행정관행이 이루어졌다거나 그 공표만으로 신청인이 보호가치 있는 신뢰를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없고, 쌀 시장 개방화에 대비한 경쟁력 강화 등 우월한 공익상 요청에 따라 위 지침상의 요건 외에 '시·군별 건조저장시설 개소당 논 면적 1,000ha 이상' 요건을 추가할 만한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수 있어, 그 처분이 행정의 자기구속의 원칙 및 행정규칙에 관련된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배되거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없다.
Ⅳ. 문제의 제기
법원은 시종 행정규칙의 비법규성에 바탕을 둔 전환규범적 이론구성을 수긍하지 않고, 처음부터 관련 규정의 법적 성질(법규성여부)을 가늠하고 이를 관철하여 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법령보충적 규칙의 존재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을 비롯 대법원 2009.3.26. 선고 2007다88828, 88835판결에 즈음하여, 자기구속의 법리, 평등원칙, 신뢰보호원칙과 같은 전환규범을 매개로 행정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논증한 접근방식(독일의 통설적 기조)이 추가되었다. 법령보충적 규칙의 존재는 독일에서의 규범구체화규칙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행정규칙에 관한 독일식 도그마틱과 이별하게 하는 중요한 단초이다. 요컨대 이런 두 가지의 접근방식의 병존은 부자연스럽다. 이하에선 이런 문제인식을 公論化하기 위하여 관련 규정에 대한 대상판결 등의 접근이 바람직한지를, 우선 이 사건지침서의 법적 성질에 초점을 맞추어 논구하고자 한다(行政規則의 法規性 問題에서 독일식의 전환규범적 접근에 대해 필자는 극히 비판적이다.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및 논의의 시발이 된 판례의 문제점은 다른 곳에서 상론할 예정이다).
Ⅴ. 법원의 기본적 접근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농림사업실시규정 제4조에 의한 2008년도 농림사업시행지침서이다. 원심은 "양곡관리법 제22조는,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미곡의 유통구조개선·품질향상 및 가격안정을 위하여 생산자로부터의 미곡의 매입, 매입한 미곡의 건조·선별·보관·가공 및 판매 등 종합적인 미곡의 유통기능을 담당하는 미곡유통업을 육성하여야 함을 전제로(제1항), 농업협동조합 기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미곡의 유통기능을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미곡종합처리장 등 미곡의 건조·보관·가공·유통·판매시설의 설치 및 미곡의 매입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예산의 범위 안에서 융자하거나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제2항),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융자 및 보조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농림수산식품부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제3항), 위 규정의 위임을 받은 양곡관리법 시행규칙 제9조는, 양곡관리법 제22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미곡의 매입자금을 생산자인 농민과의 계약재배를 통하여 원료 벼를 확보하는 자에게 우선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 각 규정들의 내용을 살펴보아도 양곡관리법 제22조 제3항이 일정한 사항을 행정입법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양곡관리법 및 그 시행규칙이 미곡의 건조·가공 등 미곡의 유통기능을 담당할 미곡유통업을 육성함에 있어 농림수산식품부장관에게 위 법령 내용의 구체적 사항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고 볼 법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위 각 규정의 내용이나 성질, 이 사건 지침서의 취지 및 목적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지침서는 미곡종합처리장 등에 벼 매입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사업목적 달성을 위한 사업대상자 선정 등에 관한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 준칙을 정한 것에 불과하여 대내적으로 행정청을 기속함은 별론으로 하되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기속하는 법규명령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고, 대법원 역시 이를 그대로 수긍하였다.
Ⅵ. 법원의 기본적 접근의 문제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의 始原이 된 '재산제세사무처리규정'의 건을 보면, 모법률인 소득세법은 양도소득세의 양도차익을 계산함에 있어 실지거래가액이 적용될 경우를 대통령령에 위임하였다. 이에 따라 동법시행령(1982.12.31. 대통령령 제10977호로 개정된 것) 제170조 제4항 제2호는 양도소득세의 실지거래가액이 적용될 경우의 하나로서 국세청장으로 하여금 지역에 따라 정하는 일정규모 이상의 거래 기타 부동산투기억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거래를 지정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국세청장이 훈령으로 '재산제세사무처리규정'을 발하였고, 판례는 이것의 법규성을 인정하였다(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판결). 여기선 대통령령이 국세청장의 지정을 언급한 반면, 위의 사안에선 농림수산식품부령이 미곡유통업의 육성과 관련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차이점이 해당 농림사업실시규정과 농림사업시행지침서를 단순한 업무처리지침으로서 비법규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우선 법령보충적 규칙은 본래 침익적 행정에서 문제가 된 반면, 사안에서의 양곡관리법 제22조는 개입(침해)행정이 아니라 급부행정의 문제임을 유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입법자가 융자 및 보조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농림수산식품부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였다는 것은, 그것의 구체화를 행정에 맡긴 것이다. 사실 모법률이 구체적 권한행사를 행정청에게 수권(위임)한 이상, 그것의 구현메카니즘의 형식은 문제되지 않는다. 설령 법률이 정한 형식을 취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것의 법적 성질의 차원이 아닌 그것의 하자의 차원에서만 문제될 뿐인데, 그 문제 역시 다음과 같이 새롭게 보아야 한다. 議會立法의 原則上 위임입법의 법리(위임독트린)는 법률에서 법률하위적 명령으로 위임할 때 즉, 제1차 위임의 경우에만 의미를 갖는다. 행정부에 위임된 이상, 그 행정부안에서의 2차, 3차 위임의 경우에는 포괄위임금지와 같은 위임독트린은 별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재위임의 경우에도 위임독트린을 대입하는 일반적 경향은 재고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여 위임하지 않은 모법률에 비난의 화살을 던지는 것이 正道이다. 요컨대 명시적인 위임수권의 存否만으로 이 사건지침서의 법적 성질을 가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Ⅶ. 맺으면서-농림사업시행지침서의 법적 성질
이 사건지침서에 따르면, 신규 RPC 사업자 인정기준과 DSC 사업자 인정기준을 명확히 구분하여 규정하면서, 신규 RPC 사업자는 시·군별 RPC 개소당 논 면적 3,000ha 이상과 원료 벼 확보가능 논 면적 2,000ha 이상을 확보하여야 하고, 신규 DSC 사업자는 시·군별 신규 DSC 개소당 원료 벼 확보가능 논 면적(RPC 및 DSC 모두 권역 내 RPC, DSC, 임도정공장 등을 종합 검토하되, 도시지역의 경우는 인접한 군의 논 면적을 포함하여 검토할 수 있음) 1,000ha 이상을 확보하도록 지역기준을 설정하고 있으나, 시·군별 DSC 개소당 논 면적에 관하여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또한 DSC 사업자 인정기준에 있어 벼 가공시설 과잉지역 등은 신규 DSC 사업자 신청 및 선정에서 제외한다고 하면서 '선정 제외 지역은 신규 RPC 사업자 인정기준에 준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실 농림사업시행지침서는, 규범이 필요한 일정한 분야에 법률적 규율이 不在할 때 발해지는 法律代位的 規則이라 하겠다. 여기서 법률적 규율의 不在란 그것이 전혀 없는 경우는 물론, 법률적 규정이 있으되 구체화규정이 요구될 정도로 개괄적인 경우도 의미한다. 재량준칙과 법률대위적 규칙이 구별되는 점은, 후자의 경우 정해진 결정규준을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결정규준을 처음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의 "법률대위"가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 것을 뜻한다고 오해해선 아니 된다(김남진/김연태, 행정법Ⅰ, 2011, 173면). 본래 법률대위적 규칙은 독일의 경우 과거 자금조성과 같은 급부행정영역에서 입법의 不備狀況에서 행정이 나름의 지침에 의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인데, 오늘날에는 급부행정영역에서도 법률적 규율이 대폭 증가하여 그 의의가 많이 가시었다. 그리고 본래 그것은 관계법령이 제정되기까지 나름의 행정통제규칙으로 기능할 뿐이고, 당연히 재판규범성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사안의 경우엔 이미 모법률 차원에서 授權이 존재하기에, 독일에서의 법률대위적 규칙적 이해를 아무런 수정 없이 대입해선 아니 된다(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의 구분에서의 실질적 기준설에 의하면, 동지침은 법규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 한편 법률대위적 규칙을 직접적 외부적 구속효를 갖는 법규로 보기도 한다. 홍정선, 행정법원원론(상), 2011, 254면).
독일의 경우, 행정은 立法과 司法사이에 꽉 끼인 존재이고, 명령에 대한 恐怖가 아우러져, 전환규범적 접근에 대해 엉터리라고 酷評이 가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규칙의 태생적 烙印-非法規性-은 여전히 주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대통령제하에서 행정에 대해 나름의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되기에, 독일마냥 행정규칙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여, 그것을 카스트제하의 賤民(Paria)으로 여기기보다는 의회와 행정의 共管的 法定立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김중권, 행정법기본연구Ⅰ, 2008, 409면 이하 참조). 요컨대 농림사업시행지침서는 법령보충적 규칙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