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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과 인과관계 없는 취약점도 과징금 부과 대상인가
2016년 2,500만 건의 고객정보를 유출 당한 인터파크에게 방통위는 44억 8,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개인정보 유출 관련 정부가 부과한 과징금액으로는 역대 최고 금액이다(참고로 민사에서 최대 배상금액을 기록한 소송은 단연 신용카드 3사 개인정보유출 사건이다). 인터파크는 방통위의 과징금 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서울행정법원 및 항소심 서울고등법원에서 패소했다. 소송에서는 인터파크의 법위반행위와 해킹 간 인과관계 여부가 주된 쟁점이었다. 법원은 방통위 처분을 지지하면서 “유출사고가 난 이상 이것과 법위반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본고에서는 이 쟁점에 대해 살펴본다. 인터파크가 당한 해킹의 유형은 APT(Advanced Persistent Threat) 공격이다. 이는 해커가 특정 목표 대상을 정한 후 그 허점을 집요하게 노려 침입하는 기법이다. 해커는 인터파크 직원 A의 가족사진을 가지고 화면보호기(SCR 파일)를 만들고 여기에 악성코드를 심어 A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면서, 마치 A의 친동생이 보내는 것처럼 발신 이메일 주소를 위장하고 동생의 어투까지 흉내냈다. A는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화면보호기의 확장자가 EXE가 아니라 SCR이라서 A는 별 의심을 하지 않고 첨부파일을 열었을 것이나, SCR 파일도 악성코드 유포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특정 공격을 위해 특별 제작된 악성코드는 백신에도 탐지되지 않는다. 해커는 악성코드를 감염시킨 A의 PC를 거점으로 삼아 DB 관리자 직원 B의 PC에 원격 데스크탑 접속했다. 당시 B가 퇴근한 시간이었는데, 그때까지 DB 서버와의 접속이 유지된 터미널이 B의 PC에 그대로 떠 있었다고 한다. 자동 로그아웃(이하 ‘idle timeout’) 설정이 제대로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해커는 DB 서버에 손쉽게 침입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 인터파크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 바로 이번 사고이다. 정보통신망법의 위임을 받아 개인정보의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의 내용을 정한 방통위 고시는 개인정보처리시스템에 idle timeout 설정을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한 법상 의무를 위반하면 그 자체로 과태료, 개인정보 유출까지 되면 과징금 부과 대상이다. 부수적으로, A의 PC를 손에 넣은 해커가 인터파크 사내 네트워크를 스캔했더니 업무용 파일서버가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패스워드 장부 엑셀파일이 있었다. 직원들이 수많은 인터파크 서버들의 접속계정을 외우기 어려워 이를 메모해둔 것이었다. 다만, 개인정보가 유출된 DB 서버의 접속 패스워드는 여기에 없었다고 한다. 즉, 패스워드 장부 노출이라는 법위반행위와 개인정보 유출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방통위는 idle timeout 미설정은 물론 및 패스워드 장부 노출까지 모두 처분원인사실로 삼아 과징금을 부과했다. 인터파크는 행정소송에서 idle timeout 미설정은 APT 해킹의 핵심 원인이 아니다, 나아가 패스워드 장부 노출과 개인정보 유출은 인과관계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인터파크를 패소시킨 1심 및 항소심 법원은 인과관계 자체가 과징금 부과 요건이 아니라고 근거법률을 해석했다. 개정 전 법조문은 “법상 '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경우에는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구조로서 '미조치'가 '유출'의 원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명확했다. 이와 달리 2014년 개정된 법조문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유출' 한 경우로서 법상 '조치'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유출'이라는 결과와 '미조치' 행위가 인정되기만 하면 둘 사이의 인과관계는 요구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해킹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즉 ‘인과관계’ 없는 사업자의 위반행위까지 과징금 처분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본 법해석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사료된다. 민사와 형사의 영역에서는 자신의 행위와 인과관계 없는 결과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형법 제17조(인과관계) 및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모두 ‘인과관계’를 법적 책임의 성립요건으로 요구한다. 이것이 법의 대원칙이다. 행정상의 제재 또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마찬가지이다. 행정상 금전제재는 크게 과징금과 과태료로 나뉜다. 일반론적으로, 단지 절차를 위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행정질서벌의 일종인 과태료(가벼운 제재)가 부과되는데 그치는 반면, 행정목적을 침해하는 결과까지 야기한 행위에 대해서는 행정벌의 일종인 과징금(무거운 제재)이 부과된다. 정보통신망법 또한 이 체계에 따라 과태료와 과징금의 각 구성요건이 차등되어 있다. 사업자가 단지 idle timeout과 같은 법상 조치를 불이행한데 그쳤다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받지만(제76조 제1항 제3호), 더 나아가 개인정보 유출(해킹)이라는 결과까지 야기했다면 관련매출액에 비례하는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제64조의3 제1항 제6호). 해킹을 당했다는 결과에 대해 사업자에게 과징금이라는 법적 책임을 지우려면, 마땅히 사업자의 행위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법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해석으로 사료된다(만약 해킹과의 인과관계를 불문하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꾼다면 굳이 행정질서벌을 운영할 필요가 없으니 과태료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균형에 맞을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부합하도록 개정 전 정보통신망법 제64조의3 제1항 제6호는 ‘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누출’이라는 형식으로 규정함으로써 미조치가 해킹의 원인을 제공했어야 한다는 요건을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3. 11. 21. 방통위가 입법예고한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에서 “현재 대규모 개인정보 누출 등 침해사고 발생시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 위반과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움” 이라는 이유를 들어 과징금 부과요건 중 ‘인과관계’ 요건을 삭제할 것이 제안되었다. 참고로 이때까지는 개인정보 유출(해킹) 사고에 대해 과징금 처분이 내려진 전력이 없었다(2014. 6. 26. 비로소 첫 과징금 사건인 KT 마이올레 사건의 방통위 처분이 내려졌다). 위 방통위가 제안한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제64조의3 제1항 제6호 개정안은 독자적인 법안으로 국회에 발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고, 대신 2014. 5. 2.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대안법안의 일부로서 반영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 대안법안의 의안원문 및 이에 관한 국회 검토보고서, 소관위 회의록 등 가운데 ‘인과관계’ 입증 없이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기재는 어디에도 없다. 즉, ‘인과관계’ 요건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라도 되었는지 의문이다. 참고로 그 당시는 신용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 사실이 2014. 1. 8.자 검찰 발표에 의해 알려진 이래 국회에서 앞 다투어 개인정보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이 발의된 시점이어서, 위 대안법안에는 무려 18건의 발의안이 통합되어 있었다(예컨대 300만 원 이하 법정손해배상 규정도 이 때 신설된 것이다). 따라서 입법자의 의도에 ‘인과관계’ 요건 삭제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는 불명확한 측면이 있으며, 만약 진정한 입법의도가 그러했다면 위헌 소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과징금 부과요건에서 ‘인과관계’를 뺄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요건과 균형이 맞지 않게 된다. 정작 본인의 정보를 유출 당한 이용자는 사업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사업자의 과실과 해킹 간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못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 행정청은 피해자인 일반 국민들보다 현저히 강력한 조사권한을 가졌음에도 ‘인과관계’ 요건 입증을 생략하고 과징금이라는 공법적 제재를 손쉽게 부과할 수 있어야 하는지, 응보와 억지가 피해배상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가치인지는 심히 의문스럽다. 향후 만약 행정청이 ‘인과관계’ 요건 입증을 생략하고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이번 판결이 해석한 입법의도와는 오히려 반대로,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별도로 인과관계 요건을 입증하는데 곤란을 겪어 이용자 구제에 흠결을 낳을 수도 있다. 한편, 만약 본고의 주장에 따라 ‘인과관계’를 여전히 현행법상 과징금 부과요건으로 해석할 경우, 인터파크 사건에서 두 처분사유와 해킹 사이의 인과관계는 존재하는가. 제1처분사유와 해킹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는 곧 “Idle timeout 조치를 취했을 때 인터파크가 당한 유형의 APT 해킹을 통상 막을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점철된다. 이는 세부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인터파크 사건의 경우, 해커가 DB 관리자 B의 PC(관리용 단말기)에 원격 데스크탑으로 접속해보니 마침 B가 퇴근하여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망분리 프로그램 및 DB 서버 접속 터미널이 로그아웃 되지 않고 그대로 떠 있었다. 이와 달리, 위 망분리 프로그램 및 DB 서버 접속 터미널에 최대접속시간이 설정되어 있었고 해커가 B의 PC에 접속했을 때 위 터미널이 로그아웃 된 상태였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해커가 DB 서버에 침입할 수 있었을지 여부가 관건이다. 만약 예컨대 해커가 B의 PC에 키로거 등을 용이하게 설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해커로서는 수고스럽더라도 위 PC에 키로거를 심어 내부망 ID·PW 및 DB 서버 ID·PW를 도청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 경우 idle timeout 조치를 했었더라도 해킹은 막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싸이월드 판결은 DB 서버 계정 ID·PW가 해커에게 이미 도청당한 상태에서 idle timeout 설정은 무용지물이라는 이유로 그 미설정과 해킹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한바 있었다. 달리 가정하여, 만약 해커가 B의 PC 제어권한을 완전히 탈취하지 못했거나, 또는 해커의 관점에서 우연히 접속해 본 B의 PC가 DB 관리자의 것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DB 서버 접속 터미널이 idle timeout 되지 않고 그대로 떠 있었던 것이 해킹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셈이므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적어도 두 번째 처분사유와 해킹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DB 서버의 관리자 비밀번호는 문제된 패스워드 장부 엑셀파일에 쓰여 있지 않았고, 해커는 다른 경로로 DB 서버에 침입했으므로, 위 패스워드 장부 엑셀파일이 노출된 것은 DB 서버 해킹의 원인과 무관하다. 해킹과 인과관계 없는 위반행위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인터파크의 입장에서는 다른 경로로 해킹을 당했다는 우연한 사정으로 인해, 해킹의 원인이 아닌 행위에 대해서까지 경한 과태료 대신 중한 과징금을 부과 받게 된 셈이다. 요컨대, 정부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이것을 과징금 부과요건에서 뺀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정부의 역할은 침해사고 원인조사의 실효성을 높임으로써 해킹과 ‘인과관계’ 있는 취약점이 무엇이었는지를 현장에서 밝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 고시는, idle timeout과 같은 지엽적인 의무를 나열할 것이 아니라, 로그(Log) 보존 등 사고조사에 꼭 필요한 조치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향후 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승재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개인정보유출
과징금
인터파크
전승재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2019-12-23
MBC 이상호 기자의 '삼성 X파일'의 보도 사건
I. 들어가는 말 2005년 보도된 '삼성 X파일'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 그룹 회장 비서실장, 중앙일보 회장이 특정 후보에게 불법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검찰 고위간부에게 '떡값'을 제공하자고 공모하는 대화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비밀조직이 불법적으로 도청한 파일이다. 이러한 불법을 범한 관련자들은 공소시효가 경료하여 처벌될 수 없었다. 그러나 '삼성 X파일'을 입수하여 보도한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제1심 무죄판결 및 제2심 징역 1년과 형 선고유예 판결 이후 대법원은 유죄판결을 확정하였다. 2010년 12월 16일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피고인측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진술한 바 있다. 이 사건의 헌법적 쟁점은 '통신비밀의 보호와 언론의 자유라는 두 가지 헌법적 기본권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며, 형법적 쟁점은 '불법 감청·녹음에 관여하지 않은 언론이 그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 인정할 수 있는가'이다. 대법원의 8 대 5 다수의견은 위법성조각을 인정하지 않았다. 필자는 소수의견에 동의하고 있는 바, 이하에서는 다수의견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평석을 전개한다. II. 통신의 비밀보호와 언론의 자유의 균형? 다수의견은 불법도청에 관여하지 않은 언론의 도청결과물 보도의 위법성조각의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설정하였다. 다수의견이 설정한 첫 번째 요건이 특히 문제이다. 이 요건은 (i)그 보도의 목적이 불법 감청·녹음 등의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한 것으로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경우, (ii)불법 감청·녹음 등에 의하여 수집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이 이를 공개하지 아니하면 공중의 생명겱택펯재산 기타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 등과 같이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 등 두 가지로 구성된다. 도청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점을 보도할 경우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이 부수적으로 공개될 수밖에 없는 바, (i)의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ii)의 경우이다. 다수의견이 상정하고 있는 허용상황은 임박한 범죄모의 통신 또는 대화로 사실상 한정된다. "기타 공익"이라는 포괄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문언해석상 이 경우도 그 앞에서 예시적으로 제시된 "공중의 생명·신체·재산"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한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와 같은 수준의 긴급한 상황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다수의견의 기준에 따르면 특정 대권후보에게 불법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검찰 고위간부에게 '떡값'을 제공하자고 공모하는 '삼성 X파일'의 대화내용은 공개가 허용되는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삼성 X파일'의 내용처럼―소수의견이 제시한 요건인―"통신비밀의 내용이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과 여론의 형성을 요구할 만한 중요성"을 갖고 있더라도 그 내용의 보도는 위법성조각을 검토할 여지가 애초부터 봉쇄되는 바, 언론의 자유의 범위는 대폭 축소된다. III. 중대범죄를 모의한 공적 인물의 인격권에 대한 과잉보호 1. 인색한 사회상규성 판단 대법원이 여러 판결을 통하여 정립한 사회상규성 인정요건은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법익과의 법익균형성, 긴급성,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 다섯 가지이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긴급성 인정의 요건을 매우 좁게 설정하고 있다. 필자는 정당행위의 긴급성은 정당방위가 요구하는 엄격한 '현재성'이 아니라 긴급피난이 요구하는 느슨한 '현재성'과 유사하게 이해되어야 하고 주장한 바 있다. 긴급피난에서는 '지속적 위험'(Dauergefahr), 즉 과거부터 계속된 침해가 앞으로도 반복된 우려가 있는 상황이 인정되면 위난의 현재성이 충족된다. '삼성 X파일' 사건의 경우를 보면, 1997년 대선 이후 8년이 지났지만 권·언·검의 유착문제는 보도시점까지 계속 문제가 되고 있었고, '삼성 X파일' 속의 등장인물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해지면서 향후 유사한 사례가 재발될 가능성이 존재하였던 반면, 권·언·검의 유착을 해결할 법적·제도적 장치는 취약 또는 부재하였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볼 때 긴급성 요건을 충족된다. 한편, 다수의견은 이상호 기자가 '삼성 X파일' 소지인에게 사례비를 지급했다는 점을 주목하는 데, 이는 이 기자가 '삼성 X파일' 관련 범죄를 고발하는 공익이 아니라 특종이라는 사익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러나 취재사례비는 언론계의 관행이며 불법도 아니다. 이 기자는 1,000달러를 문화방송의 자금으로 지급하고 영수증까지 발부하였던 바, 사례비 지급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보도행위의 동기와 목적이 완전히 공익을 위한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종을 내겠다는 사적 동기와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도행위 전체를 파악하여 공익적 동기와 목적이 지배적이라면 그 정당성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수의견은 이상호 기자의 보도가 녹음테이프 원음의 직접 방송, 녹음테이프에 나타난 대화 내용의 인용 및 실명의 거론을 금지하는 서울남부지방법원의 가처분결정을 위배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 가처분결정은 도청자료의 존재나 그 내용에 대한 보도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문화방송은 녹음테이프의 원음을 공개하는 대신 안기부 작성의 녹취보고서를 중심으로 도청자료의 존재 및 그 내용을 보도하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실명공개의 상당성과 보충성이다. 이번 사건에서 이상호 기자의 보도로 통신의 비밀이 침해된 사람들은 모두 공적 인물이었고, 그들이 나눈 대화내용은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모의였으며, 그들의 실명은 다른 언론의 보도 및 법원의 가처분결정 과정에서 이미 공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기자의 실명공개가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을 결여했고 보충성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파악하는 것은 중대범죄를 모의한 공적 인물의 인격권에 대한 과잉보호이다. 물론 이상호 기자의 보도가 실명을 공개하지 말라는 가처분결정의 일부를 위배한 것은 사실이나, 언론의 자유의 의미를 고려할 때 가처분이라는 잠정적 사법판단 위배를 형사불법으로 바로 연결시키는 논리는 동의할 수 없다. 게다가 '삼성 X파일' 보도 당시 시점에는 가처분결정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더욱 그러하다. 2. 형법 제310조의 유추적용 형법 제310조에 따라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경우 그것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 처벌되지 않는다. 특히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공적 인물이고 언론·표현 행위가 공적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 언론·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완화된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김일성 조문편지' 결정에서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다(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1999. 6. 24. 97헌마265 결정). 그리고 대법원도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은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밝히면서, 명예훼손죄를 사용한 언론의 자유 제약을 경계한 바 있다(대법원 2008. 9. 25. 선고 2008도4889 판결). 물론 통비법 위반죄와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보호법익과 구조가 다르다. 전자는 통신의 비밀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후자는 명예를 보호법익으로 한다. 전자는 불법하게 획득한 통신비밀을 공개·보도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적시된 사실을 어떻게 획득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러나 양 죄의 보호법익은 모두 인격권에 속하며, 이 법익침해의 주체가 언론일 경우 침해되는 법익과 언론의 자유 사이의 형량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볼 때 불법 감청·녹음에 관여하지 않은 언론이 그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형법 제310조의 법리를 유추적용하여 위법성조각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Ⅳ. 다수의견의 우려에 대한 답변 다수의견은 통신의 비밀 보호 쪽으로 강하게 치우친 정당화요건을 설정하고 '삼성 X파일'의 보도가 위법하다고 판단하면서, 이러한 보도행위가 허용될 경우 발생할 가상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 즉,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이 공적 인물의 통신과 대화를 불법도청한 후 그 내용을 도청과 관계없는 언론 등 제3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전달하여 공개하는 것도 정당화되어 결국은 통신의 비밀 침해가 예방·방지될 수 없다는 우려이다. 먼저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는 불법도청을 행한 국가기관 종사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다. '삼성 X파일'과 같이 공소시효가 경료할 때까지 범죄인을 방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다수의견이 우려하는 가상 상황은 '삼성 X파일' 보도사건과 달리 국가기관이 통신 또는 대화의 공개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언론을 이용한 경우이다. 이 때 언론의 보도행위는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의 연장으로 보아야 하며, 보도행위의 상당성 평가는 '삼성 X파일' 보도의 경우와 달라져야 한다. 요컨대, 다수의견이 상정하는 가상 상황의 경우는 사회상규성을 인정할 수 없으며, 이는 소수의견의 상당성 판단요건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엄격히 해석함으로써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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