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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회생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파견법상 권리에 미치는 영향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1. 사안의 개요 A 회사는 1993. 9. 17. 설립되어 원청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및 그 자회사인 D 회사로부터 광산 채광업무를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고, 근로자 갑은 2012. 3. 1. A 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당시 계열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2013. 10. 17. 회생절차개시결정, 2014. 3. 18. 회생계획인가결정을 각 받았다.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고용청구권 및 금전채권(파견법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회생채권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의 관리인 역시 원고를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하였다.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는 2015. 3. 6. 종결되었다. 한편 B회사는 2008. 5. 22. 컴프레서 운전용역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역시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로부터 원청 사업장 내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의 운전 및 점검업무 등을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다. 근로자 을은 2008. 6. 1. 에, 근로자 병은 2014. 12. 26.에, 근로자 정은 2016. 8. 13.에 각각 B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로자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와 더불어, 원청 소속의 비교대상 근로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한 것이 파견법 제21조 제1항의 차별에 해당하고 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근로자 을, 병, 정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 및 고용의무 불이행(즉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각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다만, 원고 정의 경우 위 직접고용청구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소일부취하 하였다. 이하 위 근로자 갑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대상판결’이라 한다. ) (사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석 주제와 직접 관련없는 당사자 및 사실관계는 요약 내지 생략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2020나1108 등 판결)은, 위 파견근로자들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형성권이 아닌 청구권이기는 하지만 재산상의 청구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에 기해 직접고용청구권이 불성립하거나 소멸한다는피고 주장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었더라도 이후 회생절차 종결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면 파견근로자는 다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1항의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시행령 제2조의2는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을 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바, 그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같은 법리에 기해 대법원은, 1) 원고 을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기 전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파견근로자이므로 위 원고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해 소멸하였고, 더 이상 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직접고용의무에 터잡아 회생절차개시 후의 직접고용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고, 2)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의 성립요건은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 충족되었으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이를 전제로 한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3) 다만 원고 정은 회생절차가 종결된 후인 2016. 8. 13.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였으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가 적용되지 않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원고 정에게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갑의 경우 항소심에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의 권리소멸 등 주장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에 대한 석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의 직접고용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다만 사용사업주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파견근로자가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이는 구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러한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차별적 처우를 해소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한다고 전제한 다음,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상기 손해배상청구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회생채권 또는 동법 제181조의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본안전 항변을 배척한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3. 평석 가. 파견법 제6조의2의 권리장애 및 권리소멸 효과 현행 파견법 제6조의2 조항은 2006. 12. 21.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된 것이다. 본래 1998년 제정된 파견법(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고용관계를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의제조항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계약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위 개정법 시행일인 2007. 7. 1. 이후부터는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여야 한다’는 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위 개정법의 적용 대상인 파견근로자는 직접고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같은 권리는 청구권인가 형성권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학계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현재는 사용사업주는 물론 파견근로자 역시도 아래에서 살펴볼 이른바 ‘10년 손해배상’을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 청구권설을 지지하는 듯하다. 다만 이같은 파견법상 권리가 청구권이라면 다른 일반채권과 마찬가지로 이행의 문제가 남게 되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고용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을 포함한 파견근로자의 제 권리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바, 적어도 대상판결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필자가 알기로는 이에 대한 학계 및 실무상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먼저 파견근로자의 고용청구권 자체가 회생절차 개시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즉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각호의 사유가 회생절차 개시결정일 이전부터 있었다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에 기해 회생채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사건 원심은 직접고용청구권은 단순히 근로계약관계 형성의 법률효과를 가져올 뿐인 점,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점 등을 근거로 직접고용청구권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채권양도인인 회생채무자에 대해 채권양수인이 갖는 양도통지 이행청구권(대법원 2016마5082 결정), 골프회원권(대법원 89다카4113 판결)과 같은 계약상 급여청구권(비금전채권)에 대해서도 회생채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점,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는 고용의무가 이행된 후 그에 터잡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임금채권이 공익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보다 선행하는 고용청구권 자체의 성질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는 직접고용청구권이 회생채무자의 재산감소와 직결되는 권리임을 더욱 명확히 보여줄 뿐인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는 직접고용청구권 자체의 회생절차상 취급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한 조항이라고 평가된다. 대상판결은 위 파견법 조항이 직접고용의무의 예외규정을 둔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사용사업주에 대하여도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하게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책적 고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앞서 살핀 바와 같이 ①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지 않고, ②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고 ③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다. 요컨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의 직접고용청구권에 대해서는 권리장애적 항변이 되고, 회생개시 이전에 이미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사용사업주는 위 조항을 근거로 권리소멸 항변을 할 수 있음이 명확해졌다.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나. 회생개시결정 전부터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차별이 반복되어 온 경우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 한편 고용청구권 자체의 법적 성질과는 별개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부터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해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고용의무 또는 동법 제21조의 차별이 계속되어 온 경우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회생채권 또는 개시후기타채권(채무자회생법 제181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파견법이 제정된 1998년 당시만 해도 하청 소속 근로자들은 주로 원청과의 묵시적 근로관계(소위 위장도급)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파견법에 기한 권리주장은 묵시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한 예비적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06년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고용 의제가 아닌 고용의무 규정이 도입되자, 이에 착안해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비교대상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차별(불법행위)을 원인삼아 파견근로기간 동안 차별받은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법원은 이미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239024 등 판결) 사용사업주가 파견사업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파견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의무 일부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입장에는 다소의 의문이 있다. 파견근로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권리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침해된 법익이 없는 바, 이같은 경우에도 불법행위와의 경합을 인정한다면 계약법 영역과의 준별이 분명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 전부터 사용사업주의 재산상 청구권(즉 고용의무 또는 차별해소의무)의 불이행이 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관계에 있는 때에는 그 계속으로 회생절차개시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말하는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문제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4. 11. 12.선고2002다53865 판결 참조) 이 문제에 대해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은,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 온 사용사업주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그 차별적 처우를 해소할 의무를 부담하고, 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하는 것이므로,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에 해당하므로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원고 갑의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은, 앞서 본 원고 을, 병의 고용의무가 소멸하거나 발생하지 아니한 이상 피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파견근로자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를 고용의무 불이행(채무불이행)에서 찾든 차별해소의무 위반(불법행위)에서 찾든 간에, 그 요건사실인 근로자파견관계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다면 청구권의 주요한 발생원인은 회생절차개시 전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 갑과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간의 근로자파견관계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이전에 성립해 그 이후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았음에도, 회생절차 관리인이 위 원고를 차별 처우한 것이 회생절차 이전의 차별과 별개인 ‘새로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바, 이 부분 판시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채무자회생법 제251조 본문에서 이른바 실권제도를 둔 것은, 절차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였음에도 절차에 참여하지 아니한 권리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과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권리자로 인하여 회생계획의 수행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가 회생절차에 돌입한 사정은 하청업체인 A, B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다만 당초에는 묵시적 근로관계 주장에 집중한 나머지 파견법상 권리주장에 소홀하였던 것이므로,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보아도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 다. 보론 - 파견법위반(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요건 및 소멸시효 백보를 양보하여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계속된 파견관계에 기해 그 후에도 임금을 차별한 것이 ‘새로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는 사용사업주가 당연히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회생절차개시 여부를 불문하고, 사용사업주가 파견법 제21조의 차별금지를 위반한 사안이라면 일반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사용사업주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책임을 지려면 파견관계 내지 임금 차별에 대해 사용사업주(또는 관리인)의 귀책사유 내지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불법행위를 청구권원으로 삼는다면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파견근로자에게 있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파견근로자의 권리주장은 점차 직고용에서 손해배상청구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용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의제된 경우에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 범위 내에서 임금차액 자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지만, 고용의무 내지 차별금지의무에 터잡아 불법행위로 구성할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라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의 범위 내에서 소급해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있다. 즉 파견근로자는 동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도과만 면한다면, 계약상 권리보다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여기게 된다. (심지어는, 구 파견법에 기해 고용관계가 의제된 파견근로자조차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위 3년 이전에 발생한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의 원심에서는, 이 사건 소제기일로부터 역산하여 3년 이전의 기간에 발생한 원고 갑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로 인해 소멸하였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었다. 원심 및 대상판결은 원고 갑이 위 소제기일로부터 3년 전 당시에 차별적 처우를 당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취지로 피고 회사의 위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기는 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파견법위반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법 제766조 제2항의 장기 소멸시효 규정까지 적용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10년간의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단정하여서는 곤란하다. 다른 법률에 특별히 그보다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그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찰 담합을 원인으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되지만, 장기 소멸시효는 국가재정법 제96조에 따라 5년으로 적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결론 및 향후 과제 그간의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주로 원청과 하청, 하청근로자 간의 법률관계가 진성 도급관계인지 아니면 근로자파견관계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고, 특히 원청회사 사업장 내에서 원청의 일을 도급주는 형태인 소위 사내하청이 파견관계인지 여부, 컨베이어벨트 바깥의 이른바 간접공정에 속한 경우에도 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자주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므로 산업분야 및 사업장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원청 회사에서 파견으로 볼 만한 기준 내지 요소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생산라인 내지 인력구조 자체를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내도급 방식으로 운영되는 중견기업 및 대기업이라면 앞으로도 불법파견에 관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파견근로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그 권리행사의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 및 실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은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 파견법상 권리 역시 변경 내지 소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비단 대상판결의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뿐 아니라,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완성차업계 및 조선업계 등에서는 장기간 업황부진 등으로 회생을 면하기 어려운 회사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청구권 및 그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에 대해 보다 명확히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만 파견법 제21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지, 특히 회생절차에서 선임된 관리인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파견법위반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의 장기 소멸시효는 무엇인지 여부는 향후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파견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 및 그 효과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소멸시효
임금채권
임금차별
불법파견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2023-08-13
기업법무
민사일반
사해행위취소와 기초적 법률관계론의 적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
Ⅰ.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甲은 2001년 5월경 소외 주식회사 B의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원고에게 주식회사 B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였고, 이에 따라 2002년 10월 18일경 원고와 甲은 각자 보유한 주식을 서로 또는 서로가 지정한 자에게 양도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하였다. 합의의 이행 결과, 甲은 주식회사 B 발행주식 308,000주를, 乙은 147,000주를, 주식회사 A는 35,000주를 각자 명의로 보유하게 되었다. 이후 甲, 乙, 주식회사 A(이하 '甲 등'이라 한다)는 2006년 9월 5일경 소외 주식회사 C에게 자신들 명의의 주식회사 B 발행주식 합계 490,000주를 444억 6,799만 원에 매도하고, 주식회사 C에게 위 의무이행의 담보를 위하여 각 보유주식에 관한 근질권을 설정하여 주면서 해당 주권을 인도하였는데, 주식회사 C는 2013년 3월 29일경 이 사건 근질권을 실행하겠다는 내용을 통보한 뒤 2013년 4월 5일경 위 주식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다. 이에 원고는 甲 등이 주식회사 C에 매도한 주식회사 B 발행주식 합계 490,000주 중 350,000주(이하 '이 사건 주식'이라 한다)가 원고로부터 甲 등에게 명의신탁되어 있던 것임을 전제로, 원고가 甲 등에 대하여 갖는 불법행위 내지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甲 등이 2011년 5월경부터 2011년 8월경까지 자신들 소유의 부동산에 관하여 피고 1, 2, 3, 4와 체결한 증여계약, 매매계약 등을 모두 취소하고, 그에 기한 각 등기를 말소하라는 취지의 이 사건 사해행위취소의 소를 제기하였다. 2. 제1심 및 원심의 판단 제1심 법원은 이 사건 주식처분 및 근질권 설정행위가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주식회사 C가 이 사건 주식의 소유권을 취득함에 따라 甲의 원고에 대한 주권인도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보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해당 손해배상채권은 사해행위보다 늦게 성립한 것이어서 원칙적으로 피보전채권이 될 수 없고, 기초적 법률관계론을 적용하더라도 손해배상채권 성립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이 있었다고 볼 수 없으며, 가까운 장래에 손해배상채권 발생의 개연성이 현실화된 경우라고 평가하기도 어려워 피보전채권이 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가 항소하였으나, 원심 법원 또한 제1심 판결과 동일한 이유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 파기환송 대법원은 이 사건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이 피보전채권 성립시기의 예외 요건을 갖추었다는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원고의 손해배상채권이 사해행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2006년 9월 5일경의 근질권설정계약에 따른 기초적 법률관계가 존재하였고, 근질권 실행을 통해 가까운 장래에 손해가 발생하리라는 고도의 개연성이 있었으며, 실제로 근질권이 실행되어 이 사건 주식의 소유권이 주식회사 C에게 이전됨으로써 그 개연성이 현실화된 바, 원고의 甲 등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피보전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Ⅱ. 대상판결의 평석 1. 명의신탁된 주식에 대한 담보권 설정과 불법행위책임 대상판결은 피보전채권으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채권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양자 간 부동산 명의신탁에서 수탁자의 처분행위가 갖는 의미를 고려할 때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한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종래의 명의신탁이론에 의하면 대내적 관계에서는 소유권이 신탁자에게 있으나, 대외적 관계에서는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수탁자가 임의로 신탁부동산을 처분하면 그 취득자는 선·악의를 불문하고 적법하게 소유권을 취득한다. 따라서 유효한 명의신탁의 경우, 수탁자의 임의처분 행위는 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고, 횡령이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법질서 위반행위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부동산실명법상 무효인 양자 간 명의신탁관계에서도 수탁자의 임의처분 행위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에 따라 수탁자로부터 신탁부동산을 넘겨받은 제3자는 유효하게 소유권을 취득하는 바, 신탁부동산의 임의처분은 신탁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대법원 2021. 6. 3. 선고 2016다34007 판결).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볼 때, 대상판결에서도 주식양도계약의 체결, 근질권의 설정, 유질계약의 실행을 거쳐 원고가 명의신탁 해놓은 주식의 소유권을 상실하게 된 이상 甲의 행위는 위법하다고 해석할 여지가 크다. 2. 명의신탁된 주식에 대한 명의이전의무의 이행불능 시기 대상판결은 근질권의 실행 시점에 이행불능과 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였으나, 이행불능이란 사회의 일반적인 관념으로 보아 채무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단순히 절대적,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6다200729 판결 등), 이행불능 시기를 근질권 설정 시점으로 앞당겨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등기이전과 관련하여 판례는 제3자 앞으로 된 담보를 말소하거나 가압류, 가처분 집행을 해제할 자력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이행불능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대법원 1991. 7. 26. 선고 91다8014 판결, 대법원 2006. 6. 16. 선고 2005다39211 판결 등). 이 사건 근질권은 주식양도의무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유질계약을 포함하고 있었던 바, 금전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통상의 근질권처럼 피담보채무를 변제함으로써 말소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식에 대한 명의이전청구권이 소멸하여야지만 말소될 수 있는 매우 특수한 성질의 것이다. 그렇다면 담보 설정의 경위와 내용 그리고 양도의 대상이 된 주식의 수 등에 비추어볼 때 이 사건 근질권 설정 당시부터 명의신탁 해지에 따른 주식이전의무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평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3.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시기 손해배상청구권은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 성립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11. 19. 선고 2018다240462 판결 등). 물론 채권적 효력만 있는 이 사건 주식양도계약 내지는 근질권설정계약을 체결한 것만으로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하여 주식의 소유권이 주식회사 C에게 이전되어야만 비로소 재산권에 대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사건 근질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그 설정과 동시에 교환가치가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소유권 상실의 위험이 발생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현대 리스크 매니지먼트에서는 이러한 위험성도 얼마든지 금전적으로 환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으로 볼 여지가 크다. 이후 근질권이 실행되어 재산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더 이상 확대될 손해가 없는 상태로 손해가 확정된 것일 뿐이다. 이와 달리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시기를 주식회사 C가 이 사건 주식의 소유권을 취득한 시점으로 본 대상판결의 판단은 지나치게 보수적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 이행불능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기초적 법률관계 가사 주식회사 C가 이 사건 주식의 소유권을 취득한 시점에 손해배상청구권이 성립하였다고 보더라도, 채권 성립의 기초가 된 법률관계를 근질권 설정으로 본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은 주식에 대한 명의이전의무가 이행불능됨에 따라 발생한 2차적 권리이고, 명의이전청구권을 발생시킨 법률관계는 원고와 甲 사이의 명의신탁 약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피보전채권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존재하는 채권임을 고려할 때, 채무자 甲이 제3자인 주식회사 C에게 근질권을 설정해준 행위는 손해배상채권 성립의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지표이지, 그 자체로 손해배상채권이 발생하게 된 기초적 법률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즉, 기초되는 법률관계는 원고와 채무자 甲 사이의 명의신탁관계로, 채무자 甲의 주식회사 C에 대한 근질권 설정행위는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자료로, 유질계약의 실행으로 인한 소유권 이전은 손해가 현실화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5.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말소될 개연성이 거의 없는 이 사건 근질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근질권의 설정 시점에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규범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기초적 법률관계론이라는 예외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 이 경우 보호의 필요성이 큰 채권자가 피보전채권의 예외 요건까지도 증명하여야 하는 부담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구분의 실익이 있다. 견해를 달리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시기를 근질권 실행 시점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이 주식에 대한 명의이전청구권의 변형물임을 감안할 때, 그 기초되는 법률관계는 주식에 대한 명의신탁관계로 봄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즉, 대상판결의 결론에는 동의하는 바이나, 그러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대하여는 다소 이견이 있다. ※ 위 내용은 필자의 "사해행위취소와 기초적 법률관계론: 명의신탁된 주식에 대한 근질권의 사례 -대법원 2019. 12. 13. 선고 2017다208294 판결-", 저스티스 통권 제186호, 2021. 10. 판례평석을 요약한 것이다. 백명헌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사해행위취소
명의신탁
주식
백명헌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2022-01-17
민사일반
증권발행시장에서의 전문가책임
[사안의 개요] 1. XX이쿼티는 M&A를 목적으로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회사로, 2009년 11월 상장회사인 주식회사 씨모텍의 최대주주로부터 지분과 경영권을 300억원에 매수하였다. XX이쿼티는 인수자금 대부분을 차입금으로 조달하였으나 자본금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공시하였다. XX이쿼티가 씨모텍의 이사회를 장악한 다음 씨모텍은 바로 약 300억원을 유상증자하였고, 다시 유상증자를 계획하여 2011년 1월 약 286억원을 유상증자하였다. 2차 유상증자 직후 씨모텍은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매매거래가 정지되고 상장폐지되었다. 그 과정에서 XX이쿼티의 실제 사주들이 1차 및 2차 유상증자 대금을 포함, 씨모텍의 자산에 대해 거액의 횡령, 배임행위를 하였음이 밝혀졌다. 씨모텍은 기업회생을 신청하였으나 결국 청산되었다. 2. 2차 유상증자 당시 D증권은 증권인수인으로서 증권신고서에 인수인 의견을 작성하였는데, 씨모텍의 최대주주 변경에 따른 경영불안 리스크를 언급하면서 특히 XX이쿼티의 인수자금 조달에 대하여 "전체 300억원에 대해서 30억원 자기자본과 270억원 외부차입금으로 조달하였음. 외부조달자금 270억원은 220억원이 자본금으로 전환되었고, 나머지 50억원에 대해서도 자본금으로 전환할 예정임"이라고 기재하였다. 그런데 XX이쿼티는 외부차입금이 전혀 자본금으로 전환되지 않은 상태였다. 금융감독원은 D증권에 대하여 기업실사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차입금의 자본금 전환여부를 등기부등본 등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관련자의 보고만 믿고 인수인 의견란에 사실과 다르게 기재하였다는 이유로 기관주의 및 과태료 5000만원을 부과하였다. 또한 증권선물위원회는 D증권에 대하여 과징금 4억여원을 부과하였다. [소송의 경과] 1. 2차 유상증자에 참여하였다가 손해를 본 186명은 2011년 10월 D증권을 상대로 증권관련 집단소송을 제기하였다. 집단소송에 대한 법원 허가를 거쳐 본안판결이 2020년 2월 27일 대법원에서 확정되었고, 2021년 5월 분배절차가 종료되었다. 2. 법원은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최대주주인 XX이쿼티의 자본금 전환 여부는 투자자들의 투자판단에 영향을 주는 중요사항에 해당한다고 보고, D증권이 법인등기부등본을 확인하지도 아니한 것은 증권인수인으로서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D증권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한편, 집단소송으로 청구할 수 있는 총원의 범위는 2차 유상증자에 참여해 씨모텍 주식을 취득하여 매매거래정지일까지 계속 보유한 자로 한정하였다. 손해액은 발행가액(2390원)과 청산금(약 6원)의 차액을 총원의 보유주식수에 곱한 145억원이며, 법원은 손해분담의 공평을 이유로 D증권의 손해배상책임을 총 손해의 10%로 제한하였다. [평석] 1. 사안은 증권사기에 대하여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담당한 증권회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증권관련 집단소송으로, 실제 위법행위자들의 책임재산이 부족하여 인수인인 증권사에게 책임을 물었다. 거의 10년의 소송 끝에, 법원은 인수인 증권사가 책임이 있다고 하였으나, 286억원 유상증자에 9000여명이 참여한 증권사기에 대하여 인정된 손해액수는 145억원에 불과하고 증권사는 그 중 10%만 책임을 지게 되었다. 2. 이론적으로는 주식발행시장에서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모두 공시되면 투자자들이 이를 읽고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하여 증권사기꾼이나 경제성 없는 회사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투자자들은 스스로 판단을 하지 않고 증권시장의 여러 전문가들에게 기댄다. 재무정보에 대하여는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을, 공모주식의 가치와 위험에 대하여는 인수증권사의 의견을, 채무증권의 상환가능성은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를, 구조화증권의 구조는 법무법인의 법률의견서를 믿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들이 발행시장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수행하여 증권사기꾼의 시장진입을 사전에 걸러낼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반면, 문지기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전문가들에게 지나치게 엄중한 책임을 물으면 전문가의 활동비용을 증가시켜 자본시장을 위축시키게 된다. 대상판결이 D증권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책임액수를 손해의 10%로 한정한 것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한 것이다. 3. 대상판결은 손해배상액의 제한요소로 다음을 들었다. ① 손해의 상당 부분은 XX이쿼티 측의 씨모텍 자산에 대한 대규모 횡령, 배임행위로 인한 것이다. ② D증권이 XX이쿼티 측의 횡령, 배임행위에 관여하거나 알고도 방치한 것은 아니다. D증권이 기업실사 과정에서 주의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어도 손해 전부를 배상케 하는 것은 공평에 반한다. ③ D증권은 증권인수업무의 대가로 수수료 약 4억8000만원을 받기로 했고 씨모텍이 회생절차에 들어가 이 중 약 1억원만을 받았으며, 이 금액을 초과하는 과태료 및 과징금을 냈다. 그런데 D증권의 인수인으로서의 문지기책임은 이 사건 유상증자와 같은 증권사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사를 철저히 하는 것이고 단순히 '인수인의 의견'에 잘못 기재한 책임만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는 90%의 책임을 면할 정도는 아니다. 증권사들이 사용하는 인수계약서에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경우 책임을 발행인에게 전가하는 면책약정(indemnification)을 두는데, 상대적 이익비율(발행인의 공모금액과 인수증권사의 수수료수익의 비율)에 따라 책임을 분담하기로 하거나, 인수증권사는 수수료 금액을 한도로 책임을 진다고 정하기도 한다. 미국 SEC와 법원은 이러한 면책약정은 문지기책임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공서에 반하여 무효라고 본다. 이 점에서 책임감경이유로 D증권의 수수료 수익을 언급한 것은 아쉽다. 또한 D증권의 잘못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것을 감경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4. 법원은 다양한 사건에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소송이나 금융투자상품소송에서는 피해자에게 전혀 과실이 없는데도 또는 위반자의 행위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약한 사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책임 원칙'의 논리로 투자 액수가 크거나 투자대상이 복잡할수록, 위험한 투자대상에 투자할수록 책임제한비율이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피고가 그러한 위험한 투자대상에 투자하도록 원고들을 위법하게 유인한 행위자 아닌가? 자기책임 원칙은 투자자가 애초에 인수하려고 한 위험을 넘어서까지 손해배상을 해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 인수한다고 인식한 위험의 범위에 대해 피고가 사기를 친 경우에 적용될 것은 아니다. 또한, 증권의 유통구조상 다액의 피해에 불구하고 극히 일부 피해자들만 소를 제기하므로, 지나친 책임제한은 시장참여자들에게 위법행위를 해도 제한된 책임만 진다는 잘못된 인식을 준다. 전문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문지기 역할을 장려하려면 오히려 징벌적 손해배상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5.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들에게는 과실이나 손해방지가 가능한 지위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데도 손해액의 90%를 부담시켰다. 고의의 위법행위자가 별도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D증권에게 손해 전체를 배상하라는 것은 일견 형평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D증권이 부담하지 아니하는 손해는 위법행위자가 아니라 결국 피해자들이 고스란히 부담하는 결과에 비추어 볼 때, D증권의 입장이 아니라 전체의 맥락에서 형평에 대해 고민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6. 마지막으로, 동일한 주식을 유통시장에서 취득한 자는 자본시장법의 특칙과 집단소송을 이용할 수 없어 배상을 받는 데에 한계가 있다. 사안에서 집단소송의 총원을 2차 유상증자 참여자 중 거래정지일까지 주식을 보유한 자로 한정하였는데, 거래정지일 이전에 주식을 처분한 자는 손해가 없으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면 이 주식에 대한 손해는 누가 구할 수 있는가? 법원은 자본시장법 제125조의 특칙을 발행시장 취득자에게 한정하므로(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3다88447판결 등) 전득자는 민법 제750조로 손해배상을 구해야 하는데, 유통시장 취득의 경우 증권신고서를 믿고 거래한 것이 아니어서 인과관계가 부정된다. 그러나 상장법인이 추가로 유상증자를 하는 경우 추가 유상증자분이 상장되면 기존 주식과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가격에 거래되므로, 추가 유상증자를 위한 증권신고서의 부실기재 내용은 해당 종목의 시장가격에 완전히 반영된다. 부실기재 발각 전 부양된 주가에 주식을 취득한 자들은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되는 투자자의 지위를 취득한 자로 볼 수도 있다. 전득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지 아니하면 위법은 있는데 아무도 배상을 못받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김연미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자본시장법
집단소송
주가조작
씨모텍
증권거래
김연미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2021-12-23
민사일반
파산·회생
채무자회생법의 공법상 계약에의 적용
I. 사실관계 및 판결요지 1. 사실관계 피고(지방자치단체)는 A사와 사이에 '지하주차장 건설 및 운영사업' 실시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민간투자법)'상의 수익형 민자사업(BTO, Build-Transfer-Operate)방식의 실시협약이다. A사는 위 실시협약에 따라 지하주차장을 건축하였고, 피고로부터 지하주차장에 대한 관리운영권을 설정받았다. 피고는 A사로부터 관리운영권을 양수한 B사와 사이에 동일한 내용의 변경협약을 체결하였고, B사는 C보험회사로부터 145억원을 대출받고 B사가 가지는 관리운영권에 관하여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다. 이후 B사는 파산선고를 받았고, B사의 파산관재인은 피고에게 실시협약의 해지통지를 하였다. C보험회사도 파산선고를 받았는데, C보험회사의 파산관재인(원고)은 B사의 파산관재인이 갖는 해지시 지급금 채권(106억원)에 대하여 근저당권에 기한 물상대위에 의한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았다. 원고는 위 전부명령을 받은 금액의 일부인 50억원에 대해서 피고를 상대로 전부금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2. 판결요지 1심과 2심에서는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 제335조 제1항의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면서 파산관재인의 해지권을 부인하였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도 같은 취지에서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 판결(대상판결)에서는 다수의견, 별개의견, 반대의견이 나누어 졌는데,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파산관재인의 해지권을 부인한다는 결론에서는 동일하지만, 다수의견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논거로 하는 반면에 별개의견은 채무자회생법의 적용자체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논거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반대의견은 위 실시협약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하고 파산관재인의 해지권이 인정된다고 보면서, 실시협약이 공법상 계약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점은 이러한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다. 다수의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다수의견]① 파산 당시 B사와 피고(지자체) 사이의 법률관계는 상호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는 법률관계라고 할 수 없고, ② B사와 피고 사이의 법률관계 사이에 성립·이행·존속상 법률적·경제적으로 견련성이 없으며, ③ 오히려 피고가 B사의 파산 이전에 이미 관리운영권을 설정해 줌으로써 위 실시협약에서 '상호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는 채무로서 서로 성립·이행·존속상 법률적·경제적으로 견련성을 갖고 있어서 서로 담보로서 기능하는 채무'의 이행을 완료하였다고 봄이 타당하고, 따라서 파산 당시 B사와 피고 사이의 법률관계는 채무자회생법 제335조 제1항에서 정한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B사의 파산관재인의 해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Ⅱ.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대상판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채무자회생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공법상 계약'의 법리에 관해서 다수의견, 별개의견, 반대의견 간에 치열한 의견대립이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에 제정된 행정기본법에 공법상 계약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는 등 공법상 계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나온 위 대상판결은 공법과 사법간의 관계에 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대상판결에 대한 상세한 평석으로 김대인, '채무자회생법의 공법상 계약에의 적용에 대한 고찰', 법학논집 제26권 제1호, 2021 참고). 1. 공법상 계약에 대한 사법규정의 적용 대상판결의 다수의견, 별개의견, 반대의견은 모두 민간투자법상 실시협약이 공법상 계약에 해당한다는 전제하에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공법상 계약에 채무자회생법과 같은 사법규정이 어느 정도 적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별개의견은 사법규정이 '유추적용'된다고 보고 있는 반면에, 반대의견은 사법규정이 '직접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반대의견에서는 독일 연방행정절차법에서 공법상 계약에 민법이 준용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조문이 없으므로 민법 등의 사법규정이 공법상 계약에 '직접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공법상 계약(행정계약)에 관한 일반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프랑스의 경우에도 쟁점사안별로 민법의 적용여부를 별도로 판단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반대의견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공법상 계약에 민법 등 사법규정이 유추적용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사안별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별개의견이 타당하다. 2. 채무자회생법의 적용여부 채무자회생법 제335조 제1항이 공법상 계약에 적용 또는 유추적용되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별개의견에서는 실시협약의 공법상 계약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면서 이를 부인하고 있는데, 이를 인정할 경우 사업시행자가 자신에게만 귀책사유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고에게 사업시행자 지정처분 취소처분을 강제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서 불합리하고, 행정주체로 하여금 기투입 민간투자금의 상각잔액인 해지시 지급금을 일시에 지급하라고 하는 것은 민간투자사업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공익에 중대한 침해를 초래하는 때에 해당되어 채무자회생법의 유추적용을 부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별개의견이 공법상 계약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채무자회생법의 적용여부를 치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결론적으로 이 사안의 경우에는 채무자회생법의 유추적용을 긍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첫째, 민간투자법을 제3자(사업시행자의 대주가 대표적이다)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주무부처의 해지권한만을 독점적으로 인정하는 취지라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실시협약의 체결이 사업시행자지정이라는 행정처분과 함께 이루어지는 특수성이 있지만 실시협약의 '계약'으로서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민간투자법제에 의하면 사업자귀책이 있더라도 해지시 지급금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자체에게 해지시 지급금의 지급의무가 발생한다는 점을 채무자회생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3. 채무자회생법의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해지요건의 충족여부 다수의견은 채무자회생법의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투자법에서는 사업시행자에게 설정되는 관리운영권이 '물권'임을 명시하고 있고 있는 것이 실시협약의 공법상 특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시설물의 관리·운영 단계에서 정한 쌍방이 부담하는 의무가 존재하더라도 이는 민간투자법에 의하여 법률상 부과되는 것이거나 관리운영권이라는 물권이 부여됨에 따라 이를 방해하지 않아야 할 상대방의 소극적인 의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거나 가정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채무에 해당하여 그 의무들 사이에 '대등한 대가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투자법에서 관리운영권을 '물권'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시설물 건설에 따른 대가지급이 보다 명확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지를 무상 사용 및 수익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 매년 사용료 인상에 대한 협조의무 등 다양한 의무가 주무부처에게 부여되는 것도 이러한 관리운영권이 제대로 보장되기 위한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사업시행자가 관리운영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주무부처의 의무는 실시협약의 '주된 채무'라고 보아야 한다.(황창용, '파산절차상 미이행쌍무계약으로서의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 성균관법학, 제29권 제3호, 2017)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보는 반대의견이 타당하다. 다만 반대의견이 관리운영권의 공법적 특성이 채무자회생법 해석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치밀하게 고려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있다. 4. 나가며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이 채무자회생법의 적용과정에서 공법상 계약의 특성을 고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매우 의미있는 접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이상훈,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의 미이행 쌍무계약 해당 여부에 관한 대법원 2021. 5. 6. 선고 2017다273441 판결의 쟁점과 함의', 사법 통권 제57호, 2021). 그러나 공법상 계약이라고 해서 행정주체의 우월적인 지위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며, 공익보호와 국민의 권익보호간의 균형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파산관재인의 해지권을 부인하고 사업시행자와 대주에게 모든 리스크를 전가하는 방식보다는 지자체가 사업시행자에게 갖는 손해배상채권의 공제를 허용하는 등 해지시 지급금의 규모를 적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궁극적으로 공법과 사법의 상호보완을 통해 종합적인 질서(Auffangordnung)로 나아가는 방향에서 공법상 계약을 볼 필요가 있다. 김대인 교수(이화여대 로스쿨)
파산
채무자회생법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김대인 교수(이화여대 로스쿨)
2021-10-25
민사일반
관급공사 도급계약에서 발생하는 간접비에 대한 소고
우선 지면상 ① 국가계약법(이하 관급공사 도급계약에 적용되는 각 법률 및 법령을 통칭하여 '국가계약법')상 다년도계약 체결 방식은 계속비계약과 장기계속계약으로 나뉜다는 점 ② 장기계속계약에서 수급인 측의 귀책사유 없이 총공사기간이 연장될 경우 추가 간접비가 발생하는 구조와 이를 청구하기 위한 요건 및 필요성 등에 대해서는 상세히 논하지 못함과 각주로 처리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함을 미리 밝힌다. 다만 독자의 이해를 위하여 예를 들어 7년의 장기계속계약에서는 7년을 명시한 총괄계약이 먼저 체결되고 이후 매년 1년짜리 차수별계약이 별도로 체결되면서 그 해의 공사비용도 정산하여야 하는데 간접비의 경우는 누구의 책임으로 공사가 지연되었는지를 함께 밝혀야 하기 때문에 해당 연도에 발생한 추가 간접비를 청구하지 못한 채로 다음 연도로 넘어가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는 점 정도만 간략히 기재한다. I. 대상판결(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235189 전원합의체 판결) 사건의 경과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공사(이하 '이 사건 공사')의 수급인인 원고들은 이 사건 공사기간이 약 2년간 연장됨에 따른 추가 간접비를 청구하게 되었다. 1·2심에서는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대상판결은 장기계속계약에서의 총괄계약에 기재된 총공사기간이나 총공사금액에는 법적 구속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II. 대상판결의 분석 1. 대상판결에서의 쟁점 대상판결에서는 장기계속계약 방식의 관급공사 도급계약에서 이미 지난 차수의 공사기간에서 발생한 추가 간접비를 총괄계약 종료 전이기만 하면 청구할 수 있는지가 주요 다툼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 장기계속계약에서 총괄계약과 각 차수별 계약의 법리적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구체적으로는 총괄계약상 총공사기간의 계약상 구속력이 인정될 수 있는지)로 쟁점이 집중되었다. 2.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요지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장기계속계약에서의 총괄계약상 전체적인 사업 규모나 공사금액, 공사기간 등에 대해서는 구속력이 직접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예산일년주의나 차수별 준공대가 수령 전 계약금액 조정 신청의무 조항 등을 들었다. 반면 소수의견은 총공사기간 등에 구속력이 인정된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이는 계약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3. 다수의견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 대상판결은 아래와 같은 점들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가. 처분문서 해석의 법리에 반하는 결과 - 계약 당사자들의 의사 및 실무례 대상판결은 국가계약법상 계약이 공공기관 등과 계약 상대방이 대등한 지위에서 체결하는 사법상 계약임을 강조하고 있다. 위와 같은 결론과 처분문서 해석에 관한 대법원의 태도를 종합하면 총공사기간의 구속력에 대하여 계약의 양 당사자가 어떠한 의사를 가지고 있었는지와 통상 실무상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지에 의하여 계약이 해석되어야 한다. 총공사기간 7년의 장기계속계약이 체결될 때 당사자들이 '7년짜리 계약을 1년으로 쪼개어 체결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1년짜리 계약을 체결하다 보니 7년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의 문제이다. 실무상 당사자들은 총공사기간 동안 하나의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전제로 현장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이 통상적이고 차수별계약이라는 형식적인 시간대 별로 나누어진 공사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계약 상대방에 대한 불이익을 금지하는 일반조항을 후퇴시키는 결과 발생 총공사기간의 구속력 유무에 대한 결론과 무관하게 국가계약법상 일반원칙은 여전히 관급공사 도급계약에 적용된다. 국가계약법 제5조는 계약 상대방에 대한 불이익을 금지하는 대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계약법과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가계약법상 다년도계약은 예산이 확보된 계속비계약에 의하는 것이 원칙이나 장기계속계약은 오로지 발주자의 사정이나 편의에 의하여 체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계속비계약이 아닌 장기계속계약 방식으로 계약이 이행됨에 따라서 수급인인 민간 사업자가 입게 될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장기계속계약 제도는 일본의 회계법에 규정된 것을 도입한 것인데 일본의 경우는 장기계속계약의 적용범위를 전기·가스·수도 및 공공전기통신 역무 등 해당 연도에 이루어진 역무 범위를 특정하기 쉬운 종류에 한정시키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형공사에까지 확대시키고 있어 계약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해주어야 할 필요성은 더욱 크다. 따라서 해당 차수별 기간으로 계약상 권리의무를 제한하는 법리를 장기공사에 적용함에는 매우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국가계약법상 장기계속공사계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청구는 각 차수별 준공대가 수령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간접비를 청구하는 경우까지 형식적으로 적용하게 된다면 발주자 측의 일방적 사정으로 장기계속계약 방식을 택하는 것이 현실인 점을 고려할 때 계속비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보다 불리한 조건을 계약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결과가 되어 부당특약금지의 원칙에 반하게 된다. 다. 국가계약법상 계약금액 조정 관련 조항의 규정 목적(예산 확보로 인한 결과 및 부실공사 방지)에 반하는 결과 발생 국가계약법상 계약금액 조정 제도를 둔 이유는 ① 세수의 증가로 계약금액을 증액해 줄 예산 재원의 확보 ② 건설비용의 증가에 따라 계약금액을 증액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부실공사 방지에 있다. 간접비는 차수별계약의 특정 기간에만 영향을 미치는 비용이 아님에도 그 시적 한계만을 강조하여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는 그만큼의 부실공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높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장기계속계약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계약방식으로 인하여 계약의 적정한 이행이라는 대원칙이 훼손되는 결과까지 입법자가 의도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라. 국가계약법상 사인으로서의 지위와 공적기관으로서의 지위가 적용되어야 할 영역이 오히려 바뀐 해석 국가계약법에는 발주자에게 공적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강조하는 영역이 있다. 계약금액의 조정과 관련된 부분이 그러한 영역 중 하나이다. 대상판결은 발주자가 예산을 확보하여 둔 경우보다 더 가혹하고 불리한 결과를 계약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내하도록 하고 있다. 이미 불리한 지위에서 장기계속계약을 체결한 사인에게 재차 사적자치의 원칙을 강조하여 간접비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이러한 영역에서의 해석상 타당한지 의문이다. 대상판결의 결론은 국가계약법이 예정하는 강조점(공적기관으로서의 지위에서 계약금액 조정에 성실히 응할 의무의 존재)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마. 간접비 리스크의 부정적 영향 발생 대상판결에 따르더라도 계약 상대방이 매 차수별 준공시마다 간접비를 발주자에게 청구하면 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증명의 어려움인데 추가 간접비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액수 외에도 계약 상대방의 귀책사유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야 한다. 둘째는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이다. 관급 공사의 수주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건설업계에서 위 처분은 사실상 사형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정도로 기업의 존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계약 상대방으로서는 남은 계약기간 동안 발주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분쟁의 소지가 발생하더라도 매년 발주자에게 불리한 사유를 주장하면서 간접비를 청구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그런데 간접비 청구 포기는 배임의 문제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어서 선택을 어렵게 한다). 이와 같은 리스크로 인하여 건설회사들로서는 공사입찰에 참여할지 여부에 대해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우량한 업체의 경우 리스크를 부담하기 싫어 입찰을 포기하게 되고 리스크에도 불과하고 일단 낙찰을 받기에 급급한 업체들만이 입찰에 참가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이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사의 경우 더욱 그러할 것이다) 국가계약법이 이와 같은 결과를 의욕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III. 맺으며 법리적인 관점에서만 볼 때 대상판결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국가계약법상 장기계속계약 방식이 대규모 공사에 대해서도 도입되어 버린 점, 수없이 체결되었고 앞으로도 체결되어야 할 장기계속계약들의 이행 실무, 국가계약법상 계약금액 조정 관련 조항은 부실공사를 방지함에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소수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최근 발의된 국가계약법 개정안에는 장기계속계약상 총공사기간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바 이는 사법적 판단을 회피하기 위한 개정이 아니라 사법적 판단을 열어주기 위한 개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준민 교수 (전남대 로스쿨·변호사)
공사대금청구
장기계속공사계약
대림산업
서울시
이준민 교수 (전남대 로스쿨·변호사)
2020-09-14
계획변경신청거부의 허용에 관한 문제점
Ⅰ. 사실관계 (1) 甲조합은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X시 ○○구 임야 3만8728㎡ 외 3필지(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에 관하여 도시계획시설에서 해제하여 줄 것을 신청하였으나, 乙시장은 甲조합에게 도시계획시설의 해제신청권이 없음을 이유로 거부회신을 하였다. (2) 이에 甲조합은 乙시장의 거부회신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원심은 제1심 판결을 인용하여 乙시장의 회신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 요지 도시계획구역 내 토지 등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과 같이 당해 도시계획시설결정에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으로서는 도시시설계획의 입안권자 내지 결정권자에게 도시시설계획의 입안 내지 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있다. 또한 이러한 신청에 대한 거부행위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 Ⅲ. 평석 1. 문제의 소재 사회적 리스크(risk)를 줄이기 위한 행정계획의 특성상 계획의 '보장'이라는 측면과 계획의 '변경'이라는 측면이 늘 긴장·대립하고 있다. 전자의 문제는 계획보장청구권의 문제이고, 후자는 계획변경청구권의 문제이다. 대법원은 종래 국민에게는 원칙적으로 행정계획의 변경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판시한 바 있다. 즉 "도시계획과 같이 장기성·종합성이 요구되는 행정계획에 있어서 그 계획이 일단 확정된 후에 어떤 사정의 변동이 있다고 하여 지역주민에게 일일이 그 계획의 변경 또는 폐지를 청구할 권리를 인정해 줄 수도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1두1192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을 비롯한 일련의 판결에서 이러한 원칙에 대한 예외적 판결이 확대되고 있어, 다소 우려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이에 대한 법리적 문제점을 검토하기로 한다. 2. 계획변경신청(청구)권의 허용 여부 계획변경신청(청구)권의 허용 여부에 대하여 학설은 대립하고 있다. 위 판례와 같이 도시계획입안의 '제안'권이나 재판청구권의 보장 등을 이유로 계획변경신청권을 인정하는 견해가 있으나, 이에 대한 반론도 유력하다. 즉 이러한 도시계획변경청구권을 허용하는 것은 계획행정청에 계획의 형성적 자유(소위 계획재량)를 보장한 계획의 법리에 모순되며, 이를 확대하는 경우에는 계획재량을 부당하게 제약하여 난개발을 허용할 우려도 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이에 대한 상세는 졸고, '계획변경청구권의 법적 쟁점', 토지공법연구 제48집, 2010. 2, 49-68면 참조). 한편, 대법원은 계획변경청구권을 부인하면서도, 대상판결 이전에도 주민들의 도시계획입안제안권에 근거하여 예외를 허용한 바 있다. 즉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26조에 따른 주민의 도시관리계획변경에 대한 입안의 거부행위가 관계 규정에 따라 법규상 신청권이 인정되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이다(대법원 2004. 4. 28. 선고 2003두1806 판결). 나아가 대법원은 도시관리계획 구역 내 토지 등을 소유하고 있는 주민의 납골시설에 대한 도시관리계획의 입안제안을 반려한 군수의 처분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0. 7. 22. 선고 2010두5745 판결). 판례는 위에서 언급한 사례 외에도 몇 가지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첫째, 변경신청거부가 사실상 수익처분의 거부에 해당하는 경우에 처분성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03. 9. 23. 선고 2001두10936 판결). 즉 도시이용계획변경신청을 거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당해 행정처분 자체를 거부하는 결과가 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그 신청인에게 국토이용계획변경을 신청할 권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둘째, 도시계획결정의 지정해제 신청에 대한 거부회신의 경우에도 동일한 취지의 판시를 하고 있다. 즉 문화재보호구역 내에 있는 토지소유자 등으로서는 위 보호구역의 지정해제를 요구할 수 있는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있다고 판시하였다(위 2003두1806 판결). 이러한 입장은 완충녹지지정의 해제신청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대법원 2012. 1. 12. 선고 2010두5806 판결). 그 밖에 위 2010두5806 판결에서는 재판의 전제도 되지 아니한 장기미집행의 도시계획시설의 경우에 대해서도 이러한 예외의 법리를 적용하여 신청권을 인정하고 있다. 계획변경신청권의 예외적 법리를 공식화하여 이를 확대하는 판례의 입장에 대해서는 법리적으로 몇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계획변경신청권을 인정하는 견해는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전제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나, 이러한 법리를 인정하는 외국의 입법례는 거의 없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이러한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Stuer, Bau- und Fachplanungsrecht, 4. Aufl., 2009, Rn. 1173), 사업시행자가 사업계획안을 제출하는 경우에 그 계획의 확정을 신청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대상판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해관계인을 포함한 주민은 도시·군관리계획의 입안권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단지 '제안권'만 가지고 있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26조 참조). 이러한 도시·군관리계획의 입안을 제안 받은 자는 그 처리 결과를 제안자에게 알려야 하지만(동조 제2항), 이러한 제안권 자체가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관리계획의 입안권을 제약하는 해석은 지방자치단체의 계획고권(計劃高權·Planungshoheit)을 중대하게 제약할 수도 있다. 도시계획의 '입안권'과 '결정권'은 계획행정청의 형성적 자유(Gestaltungsfreiheit)에 관한 것이다. 계획변경청구권에 상응하는 계획보장청구권도 일반적으로 허용될 수 없고, 이에 대한 손해전보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 견해이다. 둘째, 계획의 '신청권'은 계획의 '청구권'과 구별되어야 한다. 특히 판례는 거부처분의 신청권, 즉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의 논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청권의 개념은 학계에서 '원고적격' 내지 '본안문제'와 혼동의 우려가 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따라서 이러한 신청권을 근거로 계획변경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계획변경'신청'권의 용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적절하지 않고, 이러한 용어에서 개인의 주관적 공권을 인정하기 어렵다. 요컨대 위에서 설시된 예외에 관한 판례들의 입장은 구체적 타당성을 앞세운 다소 무리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예외의 법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위 완충녹지지정의 해제신청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는 거부회신의 위법성을 판단하면서 '형량명령'의 법리를 적용하고 있다(위 대법원 2010두5806 판결). 이러한 해석은 형량명령의 법리에 관한 오해이며, 법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3. 결론 계획변경신청권의 예외를 확대하여 인정하는 판례이론은 무리한 법리의 적용이며 모순이다.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판례의 논증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익적 논거나 행정계획의 법리,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계획고권 등에 비추어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계획변경청구권을 허용하는 것은 계획행정청의 형성적 자유나 지방자치단체의 계획고권을 중대하게 제약할 수 있다. 생각건대 쟁송제기기간이 도과하지 않는 한, 도시계획결정 그 자체를 다툴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계획변경의 문제는 실제 '불가쟁력'이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다른 방식으로 권리구제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확정된 도시계획결정을 실행하지 않는 경우에 실효의 법리나 손실보상 등의 논거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점은 대상 판결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도시·군계획시설부지의 매수청구권(제47조), 도시·군계획시설결정의 실효(제48조)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장기미집행의 도시계획시설에 대해서는 이러한 조항을 충분히 적용하여 당사자의 권리구제에 기여할 수 있다. 독일의 Schmidt-Aßmann 교수는 "행정법의 개혁은 처음부터 행정법의 도그마틱(Dogmatik)"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Ders., Verwaltungsrechtliche Dogmatik, Tubingen 2013, S. 3). 이러한 행정법의 도그마틱은 대부분 '행정작용론' 내지 '행위형식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행정계획은 특수한 행정작용의 하나이다. 대법원은 동아시아의 국가 중에서 가장 진취적으로 행정계획의 법리를 수용하여 발전시켰고, 지금까지 상당한 이론적 발전을 거둔 바 있다. 향후 행정계획에 관한 보다 정치(精緻)하고 발전된 법리를 담은 대법원 판례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2015-07-13
도시계획변경결정의 위법성판단 및 사법적 통제기준
Ⅰ. 事件의 槪要 피고 행정청(경기도지사)은 1999. 7. 6. 성남시 분당구 동원동 85 일원 21필지에 대한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지역으로 지정·결정하였다가 그보다 규제가 엄한 보전녹지지역으로 지정·결정하는 내용으로 도시계획변경결정을 하고, 그 내용을 성남도시계획변경(재정비)결정을 고시(경기도고시 제1999-751호), 이를 같은 달 10일자 관보에 게재하였다. 이에 원고는 용도지역변경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제1심인 수원지방법원에서 기각되었고, 이에 원고가 항소 및 상고를 제기하자 원심 및 상고심도 원고의 주장을 각각 기각하였다. Ⅱ. 判決의 要旨 1. 原審判決의 要旨 이 사건 토지가 도시계획상 용도지역이 자연녹지이기에 이를 신뢰하고 매입 또는 보유하였으므로 보전녹지로 용도 변경하는 이 사건 결정이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 원심판결은 주변의 자연녹지지역의 무질서한 개발·인구집중 등을 방지하기 위해 보전녹지지역으로 계획변경결정을 하였으므로 이 사건 결정에 신뢰보호의 원칙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원심은 어떠한 토지를 어떠한 용도지역으로 지정하는지 여부는 그 토지에 대한 도시계획상의 필요에 의해 정하여지는 것이고, 다른 지역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있음에 비해 위 동원동 85 일원에 대하여서만 규제내용이 강화되는 방향의 도시계획이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형평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계획변경결정으로 인해 원고들이 토지이용을 제한당하는 결과를 초래, 원고들이 당초 예상하였던 규모의 물류창고를 건축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이 입게 될 불이익(사익)보다 도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해야 할 공익상의 목적이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어 사건 결정에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2. 大法院判決의 要旨 대법원판결은 행정청이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지역으로 지정·결정하였다가 그보다 규제가 엄한 보전녹지지역으로 지정·결정하는 내용으로 도시계획을 변경한 경우, 행정청이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지역으로 결정한 것만으로는 그 결정 후 그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한 자에게 용도지역을 종래와 같이 자연녹지지역으로 유지하거나 보전녹지지역으로 변경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공적인 견해표명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토지소유자가 당해 토지 지상에 물류창고를 건축하기 위한 준비행위를 하였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지역에서 보전녹지지역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도시계획변경결정이 행정청이 공적인 견해표명에 반하는 처분을 함으로써 그 견해표명을 신뢰한 개인의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신뢰보호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 원심판단을 수긍하였다. 또한 도시계획변경결정 당시 도시계획법령에 의하면 위와 같은 용도지역지정행위나 용도지역변경행위는 전문적·기술적 판단에 기초하여 행하여지는 일종의 行政計劃으로서 裁量行爲라 할 것이지만, 행정주체가 가지는 이와 같은 계획재량은 그 행정계획에 관련되는 자들의 이익을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공익 상호간과 사익 상호간에도 정당하게 비교·교량해야 하고 그 비교·교량은 비례의 원칙에 적합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므로, 만약 행정주체가 행정계획을 입안·결정함에 있어서 이익형량을 전혀 행하지 아니하였거나 이익형량의 고려대상에 마땅히 포함시켜야 할 중요한 사항을 누락한 경우 또는 이익형량을 하였으나 그것이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게 된 경우에 그 행정계획결정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Ⅲ. 評 釋 1. 事件의 爭點 이 사건의 쟁점은 우선 당해 토지의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에서 보전녹지로 변경하는 결정이 신뢰보호의 원칙을 침해하였는지 여부와 당해 계획변경결정이 행정청의 계획재량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경우에 그 위법성을 어떠한 기준에 의해 판단하였는지 등에 있다. 2. 計劃變更과 信賴保護 (1) 信賴保護原則의 要件 대법원판례에 의하면 신뢰보호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 (a) 행정청이 개인에 대해 신뢰의 대상이 되는 공적인 견해표명(行政廳의 先行措置)이 있어야 하며 (b) 행정청의 견해표명이 정당하다고 신뢰한 데 대해 그 개인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고(信賴의 保護價値性), (c) 그 개인이 위 견해표명을 신뢰하고 이에 따라 어떠한 행위를 하였어야 하며(因果關係) (d) 행정청이 위 견해표명에 반하는 처분을 함으로써 그 견해표명을 신뢰한 개인의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돼야 한다(선행조치에 반하는 행정조치로 인한 개인의 권익침해). 대법원은 행정청이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에서 규제가 보다 엄한 보전녹지로 변경 결정한 경우, 행정청이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지역으로 결정한 것만으로는 그 결정 후 그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한 자에게 용도지역을 종래와 같이 자연녹지지역으로 유지하거나 보전녹지지역으로 변경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공적인 견해표명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즉 판례는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지역으로 결정한 행정청의 선행조치 자체에 대해 변경결정이 불가함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사건 토지를 자연녹지로 존치하기로 한 용도지역결정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적인 견해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보아, 신뢰보호의 원칙 중 (a)요건을 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판례는 法理論的 誤謬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피고의 애초의 계획결정, 즉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지역으로 결정한 것 자체는 행정청의 先行措置로 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學說 및 判例는 이러한 선행조치를 비교적 넓게 이해하고 있다. 즉 신뢰의 대상이 되는 행정기관의 선행조치로는 행정처분 등 대부분의 고권적 조치뿐만 아니라, 확언·행정지도 등도 포함한다. 또한 이러한 선행조치는 반드시 명시적·적극적 언동에 제한되지 않으며, 묵시적인 언동도 포함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이 사건에서 피고 행정청의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지역으로 지정·결정하는 행위는 불특정다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구체적 조치로서 일반처분이며, 이는 행정청의 선행조치가 되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계획은 安定性과 可變性을 특징으로 한다. 즉 계획은 한편으로 법치국가원리에 상응하는 연속성을 가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변성을 가진다. 그러나 계획이 취소·변경되거나,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경우에는 計劃主體와 計劃受範者 사이의 리스크(risk)의 分散이 필요하다. 한편, 대법원판례의 입장에 따르면, 일정한 법형식을 가진 計劃決定은 그 可變性으로 인해 선행조치로서 인정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원고가 이러한 계획결정을 신뢰한 것에 대해 그 귀책사유를 묻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안을 보면 이러한 계획결정을 신뢰해 일정한 준비행위를 하였다는 점에서 선행조치에 대한 신뢰와 원고의 준비행위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충분히 성립한다. 그리고 원고는 피고 행정청의 선행조치에 반하는 계획변경결정으로 인해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다. 이와 같은 논리를 전개하면, 원고는 적어도 신뢰보호원칙의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요컨대 대법원은 원고의 신뢰보호이익을 정확히 심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여기에서 爭點이 되는 것은 행정청의 선행조치에 대한 이러한 原告의 信賴利益과 공익적 목적(공공복리)을 위한 피고 행정청의 計劃變更決定 사이의 衡量이다. 계획수범자의 계획존속에 대한 신뢰이익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계획변경의 이익 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면, 일반적인 計劃存續請求權(Planfortbestandsanspruch)은 인정되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단지 행정청의 선행조치에 대한 신뢰에 기초해 토지를 매입해서 준비행위를 한 정도에 그치므로 원고의 재산권보호의 가치가 공익에 비해 우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이 사건의 핵심은 信賴保護原則의 限界에 있다. (2) 信賴保護原則의 限界 그러나 신뢰보호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한 요건을 모두 충족하더라도, 행정청이 앞서 표명한 견해에 따른 행정처분을 함으로써 공익 또는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어서는 안된다. 이는 신뢰보호원칙의 소극적 요건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원고는 신뢰보호의 원칙을 들어 그 행정처분의 위법을 주장할 수는 없다. 대법원판례는 이 사건에서 계획변경을 통해 달성하려는 이익(공익)과 개인의 신뢰보호이익 사이의 형량을 통해 전자가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즉 무질서한 개발·인구집중 등을 방지하기 위해 보전녹지지역으로 계획변경결정을 하였다고 판시, 행정청의 선행조치에 기인한 준비행위라는 ‘사익’보다는 ‘공익’이 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3) 補償問題 행정계획은 그 가변성을 인해 사회사정의 변화에 따라 계획변경이 불가피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개인은 대체로 計劃變更이 불가피한 ‘公益(公共福利)’의 중요성으로 인해 計劃保障請求權(Plangewahrleistungsanspruch)을 주장하기 어렵다. 다만, 계획의 존속에 대한 손실보상 내지 손해배상 등이 검토될 수 있다. 이 경우 경계이론의 입장에서는 ‘特別한 犧牲’(Sonderopfer)인지 여부가 關鍵이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 대한 補償規定이 없는 경우에 특히 문제가 된다. 학설은 위헌무효설, 유추적용설(간접효력설), 직접효력설 등으로 나누어진다. 분리이론의 입장에서는 헌법 제23조 제3항의 손실보상 또는 소위 調整的 補償義務 있는 內容制限規定(ausgleichspflichtige Inhalts- und Schrankenbestimmung)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될 것이다. 3. 計劃規範의 本質에 대한 法理誤解 대법원은 일련의 판례를 통해 계획규범의 특성을 인정하고 있다. 즉 “행정계획이라 함은 행정에 관한 전문적·기술적 판단을 기초로 해서 도시의 건설·정비·개량 등과 같은 특정한 행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관련되는 행정수단을 종합 조정함으로써 장래의 일정한 질서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기준으로 설정된 것이다”고 하여 ‘계획’의 다의성에도 불구하고 간명하고도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또한 위 판결에서 계획행정청이 비교적 ‘광범위한 形成의 自由’를 가진다고 하여 계획규범의 특성을 분명히 설시하고 있다. 그러나 計劃裁量(Planungsermessen)은 통상적인 행정재량(법효과재량)과는 구별돼야 한다. 독일의 통설 및 판례는 행정재량을 조건프로그램에 기초한것으로 보고, 계획재량을 목적프로그램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여 구별하고 있다. 또한 계획규범의 구조는 包攝(Subsumption)의 영역이 아니라, 다원적인 법률관계를 전제로 한 衡量이 문제가 된다. 또한 현대사회의 분쟁에서 상호 대립하는 법익은 절대적 우위가 아니라 상대적 우위이다. 따라서 개별적 상황에서 해당 법익을 서로 비교·형량하여야 한다. 대법원판례는 절대적 우위를 전제로 한 “利益衡量”(Interessenabwagung) 내지 “法益較量”(Guterabwagung)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는 적절하지 않다. 독일에서는 절대적 가치우열을 전제로 하는 “利益衡量”(Interessenabwagung) 내지 “法益較量”(Guterabwagung)의 방식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우열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空虛한 公式”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판례는 법이론과 관련된 표현의 정확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 4. 計劃裁量의 司法的 統制尺度 계획행정청은 대체로 광범위한 형성의 자유를 가지므로 이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즉 계획재량은 행정청의 자유로운 판단영역으로서 행정소송의 한계의 영역이다. 행정재량도 처음에는 사법통제가 배제되는 영역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행정재량에 대한 사법심사의 강도(밀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현행 행정소송법 제27조는 재량의 일탈·남용에 대한 사법적 심사가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다. 계획재량은 다원적인 법률관계를 전제로 하므로, 계획결정과 관련된 이해관계인이 다수 존재한다. 따라서 계획결정에 있어서 관련된 公·私 諸利益을 모두 형량하여야 한다(소위 형량명령). 따라서 계획결정을 함에 있어 형량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衡量의 不行使), 형량을 해야 할 관련된 제 이익의 요소 중 일부를 누락하거나(衡量의 欠缺), 그러한 제 이익의 형량을 잘못 한 경우(誤衡量), 그리고 형량의 결과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는 경우(형량불비례)에는 衡量瑕疵로서 위법성이 인정된다. 다만, 대법원은 계획재량의 사법적 통제를 행정재량에 대한 통제와 마찬가지로 裁量瑕疵論에 따라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Ⅳ. 맺음말 이상의 고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법원판례는 계획규범의 본질과 특수성을 면밀히 고려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현상은 일련의 대법원판례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현대국가는 흔히 “衡量國家”(Abwagungsstaat)라고 한다. 특히 대규모국책사업과 같은 중요한 계획결정은 불가피하게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러한 이익충돌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대행정분쟁은 ‘多元的 法律關係’로 특징된다. 우선 당해 사건에 대한 대법원판례는 신뢰보호의 원칙의 문제를 판단함에서 있어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신뢰보호원칙의 요건을 形式論理的으로 끼워 넣은 것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은 法理論的으로 해당 요건을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하고, 신뢰보호원칙의 한계에서 관련된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것이 더 타당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오늘날 계획결정은 개인의 권익침해 내지 제약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에, 당해 사안처럼 계획변경에 대한 신뢰보호문제는 행정의 투명성을 위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법원판례는 “行政計劃”의 특성을 도외시하고 되풀이해서 ‘행정재량’과 동일하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문제는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에 대한 판례이론의 변경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先行判例’에 대한 존중 못지않게 선행판례에 대한 철저한 이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6-05-22
차임감액확인청구사건
최근 우리들의 생활 패턴이 많이 바뀌었다. 물건에 대한 권리관념은 소유권이 아니라 그 실질적 사용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주택은 물론, 사무실, 자동차 등등 임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일본은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있어 우리나라보다 한발 더 앞서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서민들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종래부터 주택임대차와 관련한 차지차가법을 실시하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차지차가법 32조에서는 차임이 ‘불상당하게 되었을 때’는 당사자는 차임증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주택임대차보호법 7조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11조에는 차임이 ‘상당하게 되지 아니한 때’는 당사자는 차임의 증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어 그 내용이 동일하다. 그런데, 위 규정들은 임차인을 보호하는 기능이 강하다. 최근 일본에는 임차인의 다양한 요구에 맞추어 각 임차인에 적합한 사양으로 건축된 주택들이 널리 보급되어지는 추세에 있다. 이러한 임차인 선택사양 주택을 흔히 order-lease, order-made 임대라 하는데, 위와 관련한 주택임대차의 경우에도 위 차지차가법 32조가 그대로 적용되는지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이와 관련된 차임감액확인청구사건이 있어 소개한다. 이 건은 임차인인 원고(X)가 임대인인 피고(Y)의 소유지상에서 건강센터(공중욕장)를 영업하기 위하여 X가 지정하는 사양으로 Y가 건축한 욕장용 건물을 임차한 사례이다. 임대차 계약서에는 차임과 관련하여, ‘차임이 토지 또는 건물에 대한 공과금, 토지 또는 건물의 가격, 기타의 경제사정의 변동에 의해, 또는 주위 동종 건물의 차임에 비교하여 현저하게 불상당한 것으로 되었을 때’ 차임의 개정에 대하여 협의하는 것으로 하여, 차임의 감액을 현저하게 불상당한 것으로 되었을 때에 한정하는 약정이 있었다. X는 임차후 차지차가법 32조에 근거하여 차임의 감액청구권을 행사하고, 당초의 약정차임이 감액되었다는 내용의 확인을 구하였다. 본 판결은 차임감액을 제한하는 당사자 사이의 약정의 효력을 긍정하면서, 이건에서는 차임이 아직 현저하게 불상당한 것으로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하여 X의 항소를 기각하였다(1심에서도 X의 청구가 기각되었다). 본 판결은 그 이유로서 ‘소위 order-lease, 또는 order-made 임대에 있어서 당해 건물의 범용성이 한정되어 있을 때에는 임대인이 그 건물을 다른 임차인에게 임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 임대차계약이 기간의 도중에서 종료한 경우, 임대인이 건축비 등의 투하자본을 회수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그 차임이 예정된 계약기간의 도중에 빈번하게 혹은 대폭으로 감액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와 같이 범용성이 한정되어 있는 건물을 다액의 자금을 투자하여 건축하고, 그 자금을 회수하는 리스크를 임대인이 지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생각하면, 그 경우의 차임의 감액청구권을 통상의 건물을 전제로 하는 임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정하는 것은 공평에 반한다. 차지차가법 32조에는 계약의 조건에 구애됨 없이 차임의 증감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통상의 범용성 있는 건물의 임대이고, 임대인이 다른 임차인에게도 임대할 수 있어 그 투하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당사자간의 공평을 꾀한 것이다. 범용성이 한정된 order-lease, 또는 order-made 임대에서 당사자간의 공평을 꾀하기 위해서는 차임액의 감액을 제한하는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과 판시하였다. order-lease, 또는 order-made 임대는 임차인의 영업에 적합한 건물을 임대인의 쪽에서 건축하여 하는 임대차이다. 건물의 범용성을 희생으로 하여 임차인 영업의 이익을 꾀하는 것이므로 그 투하자금의 회수리스크를 임대인에게만 지우는 상태에서는 계약은 성립하지 않고, 그 리스크를 임차인의 쪽에서 지도록 여러 가지 약정이 오고간다. 이 건의 약정도 그 하나의 예이다. 그 외에도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다액의 보증금, 위탁금을 보관시켜 두고, 임차인이 계약기간 도중에 임대차를 해약할 때에는 건축자금으로 아직 상각되지 않은 금액에 대응하는 보증금 등의 반환채무를 소멸시킨다고 하는 약정도 있다. 이것들은 투하자금의 회수 리스크를 임차인에게 부담시키는 약정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일본재판실무에서는 위 임대차 계약기간 도중의 해약시에 보증금, 위탁금 등의 반환청구권을 소멸시키는 특약을 유효한 것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계약기간중의 전 차임과 임대차 목적물의 대가 및 기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참작해 볼 때 그 차임이 적정하고 합리적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일본의 차지차가법 또는 우리나라의 주택임대차보호법,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의 실정법에 구애됨 없이 차임의 감액을 제한하는 당사자 사이의 특약을 유효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정법을 적용할 것인지, 또는 당사자 사이의 약정을 존중할 것인지는 모두 법이 추구해야만 하는 공평의 관점에서 판단할 일이기 때문이다.
200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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