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판결의 요지
경영상의 판단과 관련하여 기업의 경영자에게 배임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업무상배임죄에 있어서 고의의 입증 방법과 마찬가지의 법리가 적용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기업의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하여 있어서 경영자가 아무런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선의에 기하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바, 이러한 경우에까지 고의에 관한 해석기준을 완화하여 업무상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임은 물론이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도 영업이익의 원천인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어 당해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므로, 현행 형법상의 배임죄가 위태범이라는 법리를 부인할 수 없다 할지라도,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 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II. 경영판단의 항변
1. 의의
통상 ‘경영판단의 법칙(Business Judgment Rule)’이라 불리는 경영판단의 항변은 형사상의 배임의 성부 및 민사상 손해배상에 있어, 그 행위를 한 기업의 결정권자, 소위 경영진의 본인인 회사에 대하여 손해를 가하려고 한 의도로서의 고의의 판단을 함에 있어, 기업의 경영이라는 것이 고도의 기술적인 영역이 내재하고, 아울러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어서, 그 경영의 판단에 있어서의 최종적인 결과로서는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가 경영진의 고의 내지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경영상의 사정을 고려할 때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었으나, 여타의 추가적인 사정으로 인한 것이어서 그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항변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항변은 반드시 고려하여야 한다는 자연과학적인 법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인(Agent)인 경영진의 배임행위에 대하여, 대리인의 행위의 합리성이 담보된다면 여러 가지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대안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한 것이 결과적으로 주주가치 내지 그 기저가 되는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현실적인 금전적인 손해를 가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불행한 결과가 발생한 것이고, 이로 인한 비용은 대리인 비용으로 주주들이 부담하여야 하는 것이 적절한 손해 귀속의 판단이라고 하는 항변인 것이다.
2. 경영 판단의 항변의 인부에 관한 논란
종래 국내에서는 경영판단의 항변을 우리 법원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학설 상으로는 이사의 단순한 경영상의 판단을 잘못한 것은 임무해태로 보지 않는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영판단의 항변(Business Judgment Defense)은 이사의 고의 또는 과실의 판단에 있어서의 고려 요소로서 명시적으로 자구를 법원이 사용하고 있는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과실 판단을 하기 위하여는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요소이고, 실제로 법원이 ‘대기업의 회장 등이 경영상의 판단이라는 이유로 甲 계열회사의 자금으로 재무구조가 상당히 불량한 상태에 있는 乙 계열회사가 발행하는 신주를 액면가격으로 인수한 것’이 배임죄가 성립된다고 하면서,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과 사이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포함한다. ‘(대법원 2004.6.24. 선고 2004도520 판결 등 다수 판결)’고 하여 명시적으로 경영판단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설시를 하지는 않으나, 신임관계를 저버린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었다는 항변과 관련하여 판단하였을 것이므로, 우리 법원이 종전에 경영 판단의 항변을 고려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보인다.
III. 경영판단의 합리성의 판단 요소
1. 경영 판단의 항변에 있어서의 주장 요소
위 판결에서 법원은 (1)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2) 판단 대상인 사업의 내용, (3)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4)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영진 측의 소송대리인은 위 각 사항 중의 일부 또는 전부에 관한 항변을 통하여, 배임죄의 고의의 인식이 존재하지 않거나, 내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합리적으로 의심이 없는 수준의 입증이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없음을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2.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통상 기업의 의사결정은 대표이사 내지 실질적인 경영을 지시하는 사실 상의 업무지시자와 같은 상층 경영진의 검토 지시로 인한 하향식(downstream) 내지 실무자 선에서 상층으로의 상향식(upstream)의 의사 흐름에 의하여 개시된 사안이, 내부적인 실무자 선에서의 검토 및 검토 내용에 대한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여, 내부적인 기업 지배 구조 상에서의 이사회 내지 경영위원회 등에서 결의가 이루어 지고, 이렇게 이루어진 결의가 실행이 되는 개시(Initiation), 검토(Review), 결의(Decision Making), 실행(Execution)의 각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와 같은 내부적인 의사 결정의 흐름에 있어서, 예를 들어 영업 실무자가 당해 기업이 전략적인 제휴 관계를 맺기 위하여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여 인수하게 되는 경우와 역으로 경영진 미팅에서 지분 인수 논의가 나오고, 이에 대하여 실무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정된 내용인데, 추후 당해 지분의 가치가 폭락하는 경우에 내부 의사결정에서 요구되는 모든 절차가 마쳐 졌고, 그 인수 가치의 평가의 적정성이 담보되는 등 판단에 명백한 위법성이 존재하지 않는 한, 당해 경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달리, 경영층의 지시에 의해서 검토가 이루어 졌고, 실무자들의 반대 내지 외부 전문가들의 명백한 합리적인 논거에 기한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결정이 이루어 진 경우에는 경영 판단의 합리성이 의심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다른 요소 들을 고려하여 예를 들어 정실 내지 계열회사 관계의 존재, 내지 금전적인 거래의 존재 등으로 인하여, 경영진이 본인인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고도 그 손해를 본인에게 가한다는 인식이 없는 한 단순한 합리성의 결여 만으로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3. 판단 대상인 사업의 내용
각 사업에서의 합리성의 판단은 그 대상 사업에 따라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사이클이 매우 큰 산업 형태인 조선업의 경우에는 호황기를 지나 불황기에 이르게 되면, 수주율이나 도크의 가동율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고려를 하지 않고, 불황기에 호황 사이클의 도래를 예상하고 투자하였는데, 예상과 달리 사이클의 회전이 늦어져서 손해를 가한 경우에는 이를 임무를 해태한 경우라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본 건에서의 보증보험회사의 경우에는 보증보험 자체가 담보력이 부족한 기업이나 개인의 신용을 보완해 줌으로써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된 회사로서, 어느 정도 보험 사고의 발생이 그 사업의 특성 상 예견되어 있어 보증금액의 상환이 확실한 경우에 한하여 보증할 임무가 있다고 할 수 없음에도 이러한 특성을 무시하고 판단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경영판단의 적법성을 고려함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소로서, 만일 이러한 요소가 고려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당해 판단이 위법함을 면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4.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다음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소가 기업이 처한 전체적인 상황이다. 회사의 손해 내지 이익의 발생은 당해 기업 자체의 판단에 의한 결과로 귀속되는 것이기는 하나, 당해 기업의 손익은 반드시 전체적인 시장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서 예측하기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시장 상황의 변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이를 당해 기업의 경영진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 일시적인 효과를 주는 경제적 변수를 제거하더라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을 하는 경우인지 여부를 따져야 할 것이므로, ‘제거 판단(but for test)’를 하여서 만일 그러한 ‘외생 변수’를 모두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합리적인 예측으로 제거 가능한 손해를 무시하고 그러한 의사 결정을 하였다고 한다면, 그러한 의사 결정을 경영진의 의도가 본인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판단될 수 있을 것이다.
5. 손해발생의 개연성과 이득획득의 개연성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손해가 발생하였거나, 할 개연성이 존재하거나, 내지 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거래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손해를 끼치는 것처럼 ‘위태범’으로서의 최소한 손해발생 등의 개연성이 존재하여야 할 것인바,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한 경우 뿐만 아니라 재산상의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가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실제에 있어 정상적인 경영 상의 판단은 ‘제한적인 합리성(Restricted rationality)’에 근거하여 이루어 지는 것으로, 당해 시점에 있어서의 판단의 적부를 추후에 추가된 자료를 근거로 하여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경영 판단 항변은 배임죄의 손해 요건과 관련하여, 손해가 발생할 것이 당해 의사 결정의 시점에서 있어서 예견된다는 사정이 내부의 실무자 검토 내지 외부 전문가 검토에서 드러나거나, 아니면, 외부에서 당해 기업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는 객관적인 제3자로서의 투자기관에서의 평가 등을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함에 있어서도 위에서 언급한 제한적인 합리성을 갖춘 판단으로 인정된다면 항변으로서는 족하다고 생각한다.
IV. 본 판례의 의의
본 판례는 경영상의 판단에 있어서, 경영 판단의 항변을 받아들여 엄격한 해석기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기업이라는 집단이 가지는 ‘위험 인수자(risk taker)’로서의 속성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향후 판례의 전개를 통하여 금번 대법원 판결에서 판단의 요소로 제시한 (1)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2) 판단 대상인 사업의 내용, (3)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4)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 등이 좀더 풍부하고 섬세하게 검토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