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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사건
'텔레비전방송수신료부과처분취소'에 대한 헌법적 고찰
Ⅰ. 서설 최근 대법원은 “시원적 행정주체인 국가(대한민국)에 대한 침익적 행정처분의 경우에도 처분청은 행정절차법상의 절차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매우 유의미한 판결(대법원 2023.9.21. 선고 2023두39724판결, 이하 ‘본 판결’이라 약칭합니다)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본 판결에 대한 사건의 경위 및 내용을 바탕으로 그간 헌법재판소에서 강조한 행정작용에 대한 적법절차원칙의 중요성 그리고 법적 효과가 귀속되는 당사자라는 지위로서의 국가(대한민국)에 대한 실질적 평등의 원칙이라는 논리와의 정합적 맥락에서 본 판결의 헌법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합니다. Ⅱ. 사건의 경위 대한민국은 “한국방송공사(KBS)로부터 수신료 징수업무를 위탁받은 한국전력공사가 공군 부대에 TV 수신료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행정절차법에 따른 사전통지의무(§21), 의견제출기회의 보장(§22) 및 행정처분의 이유제시 (§ 23) 등의 절차를 이행해야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위법하다”라는 이유로 한국방송공사(KBS)를 피고로 해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영내 독신자숙소 및 외래자숙소에 위치한 TV 수상기에 부과된 수신료 260여 만원의 부과처분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Ⅲ. 판결의 내용 원고 대한민국은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습니다. 이에 피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행정처분 대상이 되는 이해관계인의 범주에서 국가를 제외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행정절차법의 예외 사유에 '국가를 상대로 한 행정행위'가 포함되지 않는바, 국가를 상대로 한 행정처분도 행정절차법을 준수해야 한다”라는 논지 하에 한국방송공사(KBS)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행정절차법의 규정과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 확보라는 행정절차법의 입법취지 등을 고려하면 행정기관의 처분으로 불이익을 입게 되는 국가를 일반 국민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라는 1심과 2심의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입니다. Ⅳ. 판결의 의미 1. 적법절차원칙의 보편적 규범성 확인 대륙법계에 속하는 우리 법제에 있어 영미법계의 적법절차원칙은 다소 어색한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형사소송법 제331조 단서 규정에 대한 위헌심판 (헌재 1992. 12. 24. 92헌가8) 결정에서 적법절차원칙을 과잉금지원칙과 독립된 위헌심사기준으로서 신체의 자유 영역을 넘어서 국가의 모든 공권력 작용을 지도하는 헌법 원리로 설시한 이래로 행정작용 전반에 대한 제한 및 심사기준으로서 적법절차원칙를 원용하고 있습니다. 적법절차원칙은 현재 형사절차와 관련된 사건뿐만 아니라 변호사나 공무원의 징계처분 등에서 적정성의 통제원리로, 조세법률주의 같은 실체적 합법성의 통제원리로 각각 적용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국회의 입법 작용에 대해서도 적법절차원칙의 준수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즉 적법절차원칙은 우리 헌법재판소 판례를 통해 국가작용 전반에 관한 일반적 규범 원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최근(2023. 3. 24.) 개정 및 시행되고 있는 행정절차법(§22①3호)은 ‘인허가 등의 취소, 신분·자격의 박탈 등의 처분을 하는 경우 당사자의 신청이 없는 경우에도 청문을 시행’하도록 개정함으로써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 확보라는 행정절차법의 입법취지 하에 ’적법절차원칙의 일반적 규범성’과 ‘사전적 권리구제 수단으로서의 행정절차의 중요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적법절차원칙은 행정의 법률적합성(행정기본법 §8)을 구성하는 핵심적 통제원리로서 그 체계적 지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본 판례는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침익적 행정처분의 경우에도 적법절차원칙이 그대로 적용되므로 행정절차법상의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의무가 준수되어야 함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2. 당사자인 국가에 대한 실질적 평등의 실현 최근 헌법재판소 (헌재 2022. 2. 24. 2020헌가12)는 “국가를 상대로 하는 당사자소송의 경우에는 가집행선고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행정소송법 §43는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라는 결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재산권의 청구가 공법상 법률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만으로 국가를 상대로 하는 당사자소송에서 국가를 우대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집행가능성 여부에 있어서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판대상조항은 국가가 당사자소송의 피고인 경우 가집행의 선고를 제한해, 국가가 아닌 공공단체 그 밖의 권리주체가 피고인 경우에 비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으므로 평등원칙에 반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본 결정은 공법상의 법률관계에서 대등한 지위의 당사자에 불과한 국가에 대해 합리적 이유 없는 우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편, 본 판결은 통상적으로 행정기관의 국민에 대한 침익적 처분에 의해 법적 효과가 귀속되는 행정주체의 지위가 아니라, 국가가 행정기관의 침익적 처분의 수범자가 되는 경우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일반적 수범자와 달리 취급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최근 판례의 흐름은 국가가 침익적 행정처분과 소송의 당사자인 경우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달리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 판결은 그러한 판례의 논리적 정합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신기훈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
TV수신료
방송법제64조
국가
당사자
신기훈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
2023-11-05
헌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노동·근로
민사일반
파산·회생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파견법상 권리에 미치는 영향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1. 사안의 개요 A 회사는 1993. 9. 17. 설립되어 원청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및 그 자회사인 D 회사로부터 광산 채광업무를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고, 근로자 갑은 2012. 3. 1. A 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당시 계열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2013. 10. 17. 회생절차개시결정, 2014. 3. 18. 회생계획인가결정을 각 받았다.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고용청구권 및 금전채권(파견법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회생채권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의 관리인 역시 원고를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하였다.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는 2015. 3. 6. 종결되었다. 한편 B회사는 2008. 5. 22. 컴프레서 운전용역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역시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로부터 원청 사업장 내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의 운전 및 점검업무 등을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다. 근로자 을은 2008. 6. 1. 에, 근로자 병은 2014. 12. 26.에, 근로자 정은 2016. 8. 13.에 각각 B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로자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와 더불어, 원청 소속의 비교대상 근로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한 것이 파견법 제21조 제1항의 차별에 해당하고 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근로자 을, 병, 정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 및 고용의무 불이행(즉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각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다만, 원고 정의 경우 위 직접고용청구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소일부취하 하였다. 이하 위 근로자 갑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대상판결’이라 한다. ) (사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석 주제와 직접 관련없는 당사자 및 사실관계는 요약 내지 생략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2020나1108 등 판결)은, 위 파견근로자들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형성권이 아닌 청구권이기는 하지만 재산상의 청구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에 기해 직접고용청구권이 불성립하거나 소멸한다는피고 주장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었더라도 이후 회생절차 종결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면 파견근로자는 다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1항의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시행령 제2조의2는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을 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바, 그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같은 법리에 기해 대법원은, 1) 원고 을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기 전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파견근로자이므로 위 원고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해 소멸하였고, 더 이상 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직접고용의무에 터잡아 회생절차개시 후의 직접고용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고, 2)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의 성립요건은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 충족되었으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이를 전제로 한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3) 다만 원고 정은 회생절차가 종결된 후인 2016. 8. 13.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였으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가 적용되지 않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원고 정에게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갑의 경우 항소심에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의 권리소멸 등 주장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에 대한 석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의 직접고용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다만 사용사업주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파견근로자가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이는 구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러한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차별적 처우를 해소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한다고 전제한 다음,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상기 손해배상청구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회생채권 또는 동법 제181조의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본안전 항변을 배척한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3. 평석 가. 파견법 제6조의2의 권리장애 및 권리소멸 효과 현행 파견법 제6조의2 조항은 2006. 12. 21.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된 것이다. 본래 1998년 제정된 파견법(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고용관계를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의제조항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계약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위 개정법 시행일인 2007. 7. 1. 이후부터는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여야 한다’는 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위 개정법의 적용 대상인 파견근로자는 직접고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같은 권리는 청구권인가 형성권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학계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현재는 사용사업주는 물론 파견근로자 역시도 아래에서 살펴볼 이른바 ‘10년 손해배상’을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 청구권설을 지지하는 듯하다. 다만 이같은 파견법상 권리가 청구권이라면 다른 일반채권과 마찬가지로 이행의 문제가 남게 되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고용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을 포함한 파견근로자의 제 권리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바, 적어도 대상판결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필자가 알기로는 이에 대한 학계 및 실무상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먼저 파견근로자의 고용청구권 자체가 회생절차 개시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즉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각호의 사유가 회생절차 개시결정일 이전부터 있었다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에 기해 회생채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사건 원심은 직접고용청구권은 단순히 근로계약관계 형성의 법률효과를 가져올 뿐인 점,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점 등을 근거로 직접고용청구권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채권양도인인 회생채무자에 대해 채권양수인이 갖는 양도통지 이행청구권(대법원 2016마5082 결정), 골프회원권(대법원 89다카4113 판결)과 같은 계약상 급여청구권(비금전채권)에 대해서도 회생채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점,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는 고용의무가 이행된 후 그에 터잡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임금채권이 공익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보다 선행하는 고용청구권 자체의 성질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는 직접고용청구권이 회생채무자의 재산감소와 직결되는 권리임을 더욱 명확히 보여줄 뿐인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는 직접고용청구권 자체의 회생절차상 취급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한 조항이라고 평가된다. 대상판결은 위 파견법 조항이 직접고용의무의 예외규정을 둔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사용사업주에 대하여도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하게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책적 고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앞서 살핀 바와 같이 ①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지 않고, ②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고 ③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다. 요컨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의 직접고용청구권에 대해서는 권리장애적 항변이 되고, 회생개시 이전에 이미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사용사업주는 위 조항을 근거로 권리소멸 항변을 할 수 있음이 명확해졌다.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나. 회생개시결정 전부터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차별이 반복되어 온 경우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 한편 고용청구권 자체의 법적 성질과는 별개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부터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해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고용의무 또는 동법 제21조의 차별이 계속되어 온 경우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회생채권 또는 개시후기타채권(채무자회생법 제181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파견법이 제정된 1998년 당시만 해도 하청 소속 근로자들은 주로 원청과의 묵시적 근로관계(소위 위장도급)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파견법에 기한 권리주장은 묵시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한 예비적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06년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고용 의제가 아닌 고용의무 규정이 도입되자, 이에 착안해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비교대상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차별(불법행위)을 원인삼아 파견근로기간 동안 차별받은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법원은 이미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239024 등 판결) 사용사업주가 파견사업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파견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의무 일부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입장에는 다소의 의문이 있다. 파견근로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권리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침해된 법익이 없는 바, 이같은 경우에도 불법행위와의 경합을 인정한다면 계약법 영역과의 준별이 분명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 전부터 사용사업주의 재산상 청구권(즉 고용의무 또는 차별해소의무)의 불이행이 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관계에 있는 때에는 그 계속으로 회생절차개시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말하는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문제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4. 11. 12.선고2002다53865 판결 참조) 이 문제에 대해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은,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 온 사용사업주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그 차별적 처우를 해소할 의무를 부담하고, 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하는 것이므로,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에 해당하므로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원고 갑의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은, 앞서 본 원고 을, 병의 고용의무가 소멸하거나 발생하지 아니한 이상 피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파견근로자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를 고용의무 불이행(채무불이행)에서 찾든 차별해소의무 위반(불법행위)에서 찾든 간에, 그 요건사실인 근로자파견관계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다면 청구권의 주요한 발생원인은 회생절차개시 전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 갑과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간의 근로자파견관계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이전에 성립해 그 이후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았음에도, 회생절차 관리인이 위 원고를 차별 처우한 것이 회생절차 이전의 차별과 별개인 ‘새로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바, 이 부분 판시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채무자회생법 제251조 본문에서 이른바 실권제도를 둔 것은, 절차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였음에도 절차에 참여하지 아니한 권리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과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권리자로 인하여 회생계획의 수행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가 회생절차에 돌입한 사정은 하청업체인 A, B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다만 당초에는 묵시적 근로관계 주장에 집중한 나머지 파견법상 권리주장에 소홀하였던 것이므로,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보아도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 다. 보론 - 파견법위반(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요건 및 소멸시효 백보를 양보하여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계속된 파견관계에 기해 그 후에도 임금을 차별한 것이 ‘새로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는 사용사업주가 당연히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회생절차개시 여부를 불문하고, 사용사업주가 파견법 제21조의 차별금지를 위반한 사안이라면 일반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사용사업주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책임을 지려면 파견관계 내지 임금 차별에 대해 사용사업주(또는 관리인)의 귀책사유 내지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불법행위를 청구권원으로 삼는다면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파견근로자에게 있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파견근로자의 권리주장은 점차 직고용에서 손해배상청구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용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의제된 경우에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 범위 내에서 임금차액 자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지만, 고용의무 내지 차별금지의무에 터잡아 불법행위로 구성할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라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의 범위 내에서 소급해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있다. 즉 파견근로자는 동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도과만 면한다면, 계약상 권리보다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여기게 된다. (심지어는, 구 파견법에 기해 고용관계가 의제된 파견근로자조차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위 3년 이전에 발생한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의 원심에서는, 이 사건 소제기일로부터 역산하여 3년 이전의 기간에 발생한 원고 갑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로 인해 소멸하였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었다. 원심 및 대상판결은 원고 갑이 위 소제기일로부터 3년 전 당시에 차별적 처우를 당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취지로 피고 회사의 위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기는 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파견법위반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법 제766조 제2항의 장기 소멸시효 규정까지 적용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10년간의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단정하여서는 곤란하다. 다른 법률에 특별히 그보다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그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찰 담합을 원인으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되지만, 장기 소멸시효는 국가재정법 제96조에 따라 5년으로 적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결론 및 향후 과제 그간의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주로 원청과 하청, 하청근로자 간의 법률관계가 진성 도급관계인지 아니면 근로자파견관계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고, 특히 원청회사 사업장 내에서 원청의 일을 도급주는 형태인 소위 사내하청이 파견관계인지 여부, 컨베이어벨트 바깥의 이른바 간접공정에 속한 경우에도 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자주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므로 산업분야 및 사업장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원청 회사에서 파견으로 볼 만한 기준 내지 요소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생산라인 내지 인력구조 자체를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내도급 방식으로 운영되는 중견기업 및 대기업이라면 앞으로도 불법파견에 관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파견근로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그 권리행사의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 및 실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은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 파견법상 권리 역시 변경 내지 소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비단 대상판결의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뿐 아니라,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완성차업계 및 조선업계 등에서는 장기간 업황부진 등으로 회생을 면하기 어려운 회사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청구권 및 그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에 대해 보다 명확히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만 파견법 제21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지, 특히 회생절차에서 선임된 관리인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파견법위반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의 장기 소멸시효는 무엇인지 여부는 향후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파견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 및 그 효과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소멸시효
임금채권
임금차별
불법파견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202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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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사건
공공기관등 게시판 인터넷실명제 사건
1. 대상결정의 개요 가. 사건개요 청구인은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 자유토론 게시판’, ‘서울 동작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그 밖에 공기업·준정부기관 및 지방공사·지방공단 등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자신의 의견을 게시하려고 하였으나, 위 각 게시판의 운영자들이 게시판 이용자가 본인임을 확인하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어서 곧바로 의견을 게시하지 못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심판대상조항이 자신의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대상조항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5(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게시판을 설치·운영하려면 그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을 위한 방법 및 절차의 마련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이하 “본인확인조치”라 한다)를 하여야 한다. 1.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제3항에 따른 공기업·준정부기관 및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사·지방공단(이하 “공공기관등”이라 한다) 다. 결정요지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 언어폭력, 명예훼손, 불법정보 등이 포함된 정보가 게시될 경우 그 게시판에 대한 신뢰성이 저하되고 결국에는 게시판 이용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공공기관등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의 경우 본인확인조치를 통해 책임성과 건전성을 사전에 확보함으로써 해당 게시판에 대한 공공성과 신뢰성을 유지할 필요성이 크며, 그 이용 조건으로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시판의 활용이 공공기관등을 상대방으로 한 익명표현의 유일한 방법은 아닌 점, 공공기관등에 게시판을 설치·운영할 일반적인 법률상 의무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심판대상조항은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이라는 한정적 공간에 적용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한 기본권 제한의 정도가 크지 않다. 그에 반해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 언어폭력, 명예훼손, 불법정보의 유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얻게 되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 조성이라는 공익은 중요하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청구인의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반대의견(재판관 4인)] 심판대상조항은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모든 게시판에서 본인확인을 한 경우에만 정보를 게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본인확인을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서 표현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고, 게시판에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표현의 내용과 수위 등에 대해 자기검열을 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서, 익명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어 청구인의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2. 평석 가. 인터넷실명제의 의의 및 연혁 인터넷실명제 또는 본인확인제란 인터넷 이용자가 인터넷상의 게시판에 글을 게시하거나 자료를 등록하는 경우 또는 뉴스 기사 등에 대하여 댓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서비스 이용자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등 신원정보가 확인된 경우에 한하여 글을 등록하거나 자료를 올릴 수 있게 하여 글의 작성자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실명제의 주요 연혁은 아래와 같다. 나. 익명표현의 자유의 사회적 기능 헌법 제21조 제1항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고자 하는 핵심가치가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나 의견을 외부에 표명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경우에 더 잘 실현될 수 있고, 그것이 실명으로 표현되든 익명으로 표현되든 그 표현방식이나 표현방법은 의사표현자의 선택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표현의 경우, 보복이나 차별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하여 국가권력이나 다수의견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의사를 국가의 정책결정 등에 반영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의 핵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익명표현은 인터넷이 가지는 정보전달의 신속성 및 상호성과 결합하여 현실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하여 현실 공간에서의 경제력이나 권력에 의한 위계구조를 극복하여 계층·지위·나이·성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하여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되게 한다. 따라서 비록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표현이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헌법적 가치를 중시하여 강하게 보호되어야 한다(헌재 2012. 8. 23. 2010헌마47등). 다. 대상결정의 한계와 입법론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익명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위 〈표〉에서 보듯이, 2012. 8. 23. 인터넷게시판을 설치·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본인확인조치의무를 부과한 조항에 대하여(2010헌마47등), 2021. 1. 28. 인터넷언론사가 선거운동기간 중 당해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운영하는 경우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의무를 부과한 조항에 대하여(2018헌마456등) 각 위헌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대상결정은 이러한 익명표현의 자유 강화에 역행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에서 실명게시판 유지의 이유로 우선, 게시판에 언어폭력, 명예훼손, 불법정보 등이 포함된 정보가 게시될 경우 그 게시판에 대한 신뢰성이 저하되고 결국에는 게시판 이용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공공기관등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음을 들었다. 그러나 반대의견이 지적한 것처럼, 심판대상조항과 달리 본인확인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본인확인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공공기관등의 신뢰성과 원활한 업무수행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모든 게시판에서 이용자에 대한 본인확인조치를 요구하고, 결과적으로 본인확인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게시판에서 표현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청구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 심판과정에서 게시판 운영에 대해, 외교부는 실명제 폐지의사를, 경찰청은 실명제 유지의사를, 다수의 지방자치단체는 실명제이든 익명제이든 무차별하다는 의사를 각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인터넷의 동시성, 전파성, 시간·공간의 무제약성이라는 상황적 조건으로 인해 게시판에 위법한 내용이 게시되면 그로 인한 피해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고, 이는 공공기관등의 게시판에 게시된 내용이 추후 삭제되더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음을 들었다. 그러나 익명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사회적 기능을 고려하면, 심판대상조항이 규율하고 있는 공적 영역은 그렇지 않은 영역에 비하여 오히려 자기검열로 위축될 우려가 크므로 익명표현의 자유가 더욱 강하게 보장될 필요가 있는 곳이다. 따라서 반대의견이 밝힌 것처럼 익명표현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더라도, 이는 관리자에 의한 해당 정보의 삭제, 게시판 관리·운영자에 대한 불법정보 취급의 거부·정지 또는 제한명령(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2항, 제3항), 위 정보를 게시한 이용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의 추궁 등의 방법을 강구하는 방식으로 대처하여야지 익명표현의 자유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을 택해서는 아니된다. 위 [표]에서 나타나듯, 헌법재판소가 선거운동기간 중 게시판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3차결정에서 위헌으로 선고한 것처럼 심판대상조항 역시 향후 2차, 3차결정에서 위헌으로 변경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익명표현의 자유가 계속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에는 위헌결정과 달리 기속력이 인정되지 않는 점, 공공기관의 특성에 따라서는 익명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성을 부인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일률적·필요적 실명확인제를 선택적·임의적 실명확인제로 개선함이 타당하다. 현행법하에서는 게시판을 익명제로 운영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 본인확인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광재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인터넷실명제
정보통신망법제44조의5
표현의자유
김광재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2023-07-08
민사일반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와 위법성조각 법리를 구체화
대상판결은 언론에 의한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해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기존 판례에서는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이 이익형량 중 침해행위의 영역으로 고려되었으나 대상판결은 그러한 고려 없이 위법성 조각이 가능하다는 기준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는 구분되는 초상권 침해에 관한 법리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1. 들어가며 사진이나 영상 촬영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이루어진다. 그만큼 초상권에 관한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초상권 침해 문제도 늘고 있다. 동의 없이 얼굴이 촬영되거나 공개되지 않을 권리의 반대편에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놓인다. 특히 언론보도에서는 정확한 내용 전달과 근거 제시, 제3자 피해 방지 등 여러 이유로 보도 대상자의 얼굴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필요한 때가 있다. 하지만 아직 언론소송에서는 초상권 침해보다는 명예훼손이 문제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보도 대상자와 언론사 간의 법익 균형을 찾는 위법성 조각사유 관련 판례도 명예훼손에 관해서는 많이 축적되어 있으나 초상권 침해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 이 사건 1, 2심 법원은 기존 판례의 초상권 침해에 관한 법리를 인용하며, 방송사 기자인 피고들이 원고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초상권 침해에 해당하며 위법성도 조각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본 법무법인은 상고심에서 원고가 공적 인물에 해당하고 이 사건 보도가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므로, 언론의 자유 보호가 원고의 초상권 보호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보도의 위법성이 조각되어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아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하 ‘대상판결’)은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에서의 위법성조각 법리를 기존 판례에 비해 보다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언론의 초상 보도 적법성에 관한 예측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언론이 초상을 적법하게 보도할 수 있는 경계를 보다 뚜렷이 한 만큼 그 경계 범위 안에서의 언론의 자유도 그만큼 더 확보되었다. 2. 사실관계 원고는 어린이 다문화합창단인 레인보우합창단(이하 ‘이 사건 합창단’)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한국다문화센터(이하 ‘이 사건 센터’)의 대표로 있었다. 이 사건 합창단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행사의 애국가 제창을 위해 초대받았다. 원고는 합창 단원의 학부모들에게 참가비 30만 원 납부를 통보했다. 학부모들은 참가비 전액을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지급하기로 한 점을 들어 항의했다. 그 과정에서 한 학부모가 휴대폰을 이용해 위 상황을 약 4분 48초간 동영상(이하 '이 사건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MBC 기자인 피고들은 관련 기사를 작성해 MBC 뉴스데스크에서 방송하도록 하였다. 위 방송 중 약 32초간 이 사건 동영상 일부가 사용되었고, 원고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이하 원고의 얼굴이 공개된 위 약 32초간의 방송을 '이 사건 방송'). 원고는 피고들이 원고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채 이 사건 방송을 한 것이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3. 소송경과 1심은 피고들의 행위가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하여 위법하다고 보았다. 원고가 공적 인물에 해당하지 않고, 공적 인물에 해당하더라도 얼굴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은 아니며,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고도 공익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고, 원고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하였다. 2심은 1심과 달리 원고를 공인으로 볼 여지가 높다고 하였다. 그러나, 공인인 경우에도 이 사건 동영상이 원고의 의사에 반해 촬영되었고, 학부모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 사람들이 원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이 사건 동영상을 원고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게 하는 조치 없이 그대로 방송할 필요성, 보충성, 긴급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원고가 입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보호가치가 공익보다 크거나 우선하므로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4. 대법원 판결의 주요 내용 가. 초상권 침해와 위법성조각 법리 대상판결은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조각 법리에 관해, “초상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따라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그러나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더라도, 그 내용이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표현내용 · 방법 등이 부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초상권 침해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두 방향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구체적 사안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을 통하여 침해행위의 최종적인 위법성이 가려진다. 이러한 이익형량 과정에서 첫째, 침해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침해행위로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의 필요성과 효과성, 침해방법의 상당성 등이 있고, 둘째,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피해법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로 피해자가 입는 피해의 정도 등이 있다.”라고 설시했다. 대상판결은 특히 언론에 의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사건에서 이익형량의 중요한 고려요소로, “그 피해자가 공적 인물인지 일반 사인인지, 공적 인물 중에서도 공직자나 정치인 등과 같이 광범위하게 국민의 관심과 감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인지, 단지 특정 시기에 한정된 범위에서 관심을 끌게 된 데 지나지 않는 인물인지, 그 보도된 내용이 피해자의 공적 활동 분야와 관련된 것이거나 공공성·사회성이 있어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고 공론의 필요성이 있는지, 그리고 공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데에 피해자 스스로 관여한 바 있는지 등”을 제시했다. 나. 이 사안의 경우 대법원은 이 사건 방송으로 원고의 초상권이 침해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피고들의 행위가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하였다. ① 원고가 다문화전문가, 정치인 지지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언론매체에 이름과 얼굴을 알려온 것을 보면 공적 인물로 볼 수 있고, 이 경우 원고의 공적 활동에 대한 의문·의혹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한다. ② 합창단의 참가비 전액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부담함에도, 이 사건 센터가 학부모들에게 참가비를 부담하게 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 사건 방송 전날에는 관련 보도도 방송되었다. 그 보도에서 원고는 스스로 얼굴을 공개하며 반론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사건 방송 내용은 공공성·사회성이 있어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 ③ 이 사건 방송은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합창단의 회계 등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그 보도 내용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공론의 필요성도 인정된다. ④ 이 사건 방송에 원고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기는 했지만, 원고가 스스로 얼굴을 공개하며 반론 인터뷰를 한데다가, 이 사건 방송이 포함된 뉴스의 다른 부분에 원고의 사진과 영상이 사용되었고 자막에도 이름이 표시되었으므로, 설사 원고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게 하였더라도 시청자들은 그 등장인물이 원고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 방송에 원고의 얼굴이 공개됨으로써 원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추가로 발생하였다고 볼 여지는 크지 않다. 피고들이 이 사건 동영상을 악의적으로 편집하거나 왜곡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까지 더하여 보면 그 표현 내용이나 방법이 사회통념상 상당한 범위를 넘었다고 볼 수 없다. ⑤ 이 사건 방송을 통한 피고들의 표현의 자유가 초상권 침해로 원고가 입을 피해보다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이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조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5. 대상판결의 의의 기존의 판례는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 판단 기준으로, 침해행위와 피해이익 간의 이익형량에 다소 추상적인 고려요소만을 제시했다{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4다16280 판결(이른바 “보험회사” 사건)}. 이익형량을 통해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추상적인 고려요소만으로는 과연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로 초상을 촬영·공표하는 것이 적법한지 예측하는 데에는 큰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대상판결은 초상권 침해의 경우 이익형량에 나아가기 전에 그에 앞선 위법성판단기준으로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표현내용·방법 등이 부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즉,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자 공익을 위한 것’이고 그 내용·방법이 부당하지 않은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하여, 상위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기존에 이러한 기준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를 초상권 침해의 독자적 위법성 조각사유로 제시하지는 않았고, 초상권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결부하면서 위 기준을 사생활 침해의 위법성 조각사유로 판시했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0다227455 판결 등). 이와 달리, 대상판결은 사생활의 보호와 초상권을 분리하고 초상권에 관한 독자적인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위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특히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 사건에서 이익형량에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를 제시했다. 즉, 대법원은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경우, 공적 인물인지, 공직자나 정치인 등인지, 공적 활동 분야와 관련된 것이거나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지 등이 이익형량에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에 관한 위법성조각 법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법리는 기존에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사유 중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다(대법원 2016. 5. 27. 선고 2015다33489 판결). 대상판결은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경우에도 위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상판결이 기존 판례에서 이익형량 중 침해행위의 영역에서 고려요소로 언급되었던 침해의 보충성, 긴급성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론보도는 관련자들의 초상을 같이 내보냄으로써 시사성을 확보할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함을 보여주어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음이 고려되어야 하므로, 언론보도가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인 경우에는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을 이익형량의 요소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문건영, “언론에 의한 초상권 침해 판단 기준의 구체화에 관한 연구”, 법조(제69권 제5호), 법조협회(2020. 10.) 229, 230면}. 1심은 이 사건에서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반면, 대상판결은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을 고려요소로 제시하지 않았다. 즉, 이익형량에서 ‘반드시 원고의 초상을 공개했어야 했는지’, ‘이 사건 방송 외에 다른 방법으로 보도내용을 전달할 수는 없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대법원이 대상판결을 통해 보충성과 긴급성을 이익형량의 고려요소에서 배제하는 기준을 제시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대상판결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는 구분되는 초상권 침해에 관한 법리, 언론보도에 의한 초상권 침해의 구체적인 위법성 조각사유 판단기준,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 고려 없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김광중·황예영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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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자유
초상권
뉴스
김광중·황예영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2023-06-04
헌법사건
민법 제815조 제2호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
<사실관계 및 헌법재판소의 결정> 1. 이 사건에서는 6촌인 방계 혈족 사이의 혼인이 무효라고 하여 혼인무효소송이 제기되었는데, 위 혼인의 당사자는 민법 제809조 제1항 및 제815조 제2호가 위헌이라고 주장하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민법 제809조 ①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민법 제815조 혼인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2. 혼인이 제809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 2. 헌법재판소의 결정이유 요지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809조 제1항(금혼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지만 제815조 제2호(무효조항)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고, 위 무효조항은 2024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하였다. 가. 금혼조항은 합헌 이 사건 금혼조항은 근친혼으로 인하여 가까운 혈족 사이의 상호 관계 및 역할 지위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 또한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의 법률상의 혼인을 금지한 것은 근친혼의 발생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므로 입법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친족의 범위 및 양성평등에 기초한 가족관계 형성에 관한 인식과 합의에 기초하여 근친의 범위를 한정한 것이므로 그 합리성이 인정된다. 이 사건 금혼조항이 정한 법률혼이 금지되는 혈족의 범위는 외국의 입법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넓은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 종교 문화적 배경이나 생활양식의 차이로 인하여 상이한 가족 관념을 가지고 있는 국가 사이의 단순 비교가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그리고 근친 사이의 법률상 혼인을 금지하는 외에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다른 수단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이 사건 금혼조항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나. 무효조항은 위헌 현재 우리나라에는 서로 8촌 이내의 혈족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신분공시제도가 없으므로 혼인 당사자가 서로 8촌 이내의 혈족임을 우연한 사정에 의하여 사후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현행 가사소송법에 의하면 아무런 예외 없이 일방당사자나 법정대리인 또는 4촌 이내의 친족이 언제든지 혼인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데 이는 당사자나 그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사건 무효조항의 입법목적은 근친혼이 가까운 혈족 사이의 신분관계 등에 현저한 혼란을 초래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무효로 하더라도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 결국 이 사건 무효조항은 근친혼의 구체적 양상을 살피지 아니한 채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일률적 획일적으로 혼인무효사유로 규정하고 혼인관계의 형성과 유지를 신뢰한 당사자나 그 자녀의 법적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예외조항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으로서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에 대하여는 금혼조항도 위헌이므로 헌법불합치를 선고하여야 한다는 재판관 4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대상결정은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무효로 하는 조항에 헌법불합치결정을 했다. 2024년 12월 31일까지 다음과 같이 개정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방계혈족 사이의 금혼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해야한다. 둘째, 4촌 이내의 방계혈족 사이에 혼인이 이루어진 경우에 2촌까지는 무효로 하고, 그 외에는 혼인 취소 사유로 함이 타당하다. 셋째, 혈족뿐만 아니라 인척 사이의 금혼규정 및 입양으로 인한 법정혈족 또는 인척이었던 자 사이의 금혼규정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평 석> 1. 금혼규정의 위헌 여부 우리 민법상 혈족 사이의 금혼규정은 위 결정이 지적하듯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사이의 혼인은 일반적으로 금지되지만 그 외에는 나라에 따라 차이가 많다. 3촌까지의 혼인을 금지하는 나라가 많으나, 4촌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대만에서는 직계혈족 및 6촌 이내의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은 금지된다. 우리나라처럼 8촌까지의 혼인을 금지하는 나라는 북한 외에는 찾기 어렵다(윤진수, "민법상 금혼규정의 헌법적 고찰", 저스티스 통권 제170-2호, 2019; 현소혜, "현행 민법상 근친혼 제도의 위헌성", 가족법연구 제34권 3호, 2020 참조). 일반적으로 특정인과 친족관계가 있음을 이유로 혼인을 금지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의 근거가 있다고 한다. 첫째, 친족 사이의 혼인은 유전적 질병의 발현 위험을 높인다. 둘째, 가까운 친족 사이의 혼인은 가정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 셋째, 친족 사이의 혼인 금지는 그에 대한 본능적인 도덕적 거부에 기인한다. 대상결정의 다수의견은 주로 둘째의 점을이유로 드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4촌을 넘는 혈족 사이의 혼인이 가정의 안전을 해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근친 사이에서는 유전적인 질병의 열성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남남 사이에 비하여 높고, 따라서 근친이 혼인하여 출생한 자녀가 이러한 유전적인 질병을 나타낼 확률이 높으므로, 이를 금지하는 데에는 유전학적인 근거가 있다. 그런데 4촌을 벗어나면 유전적인 질병의 발현 가능성은 낮아진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몇촌이 넘으면 괜찮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우므로, 헌법재판소가 금혼 규정에 대한 위헌 판단을 회피한 결론은 수긍할 수 있다. 2. 무효조항의 위헌 여부 대상결정의 다수의견은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무효로 하는 것은 당사자나 그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입법자로서는 혼인취소제도를 활용하여 이 사건 금혼조항의 실효성을 담보하면서도 가족의 기능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여 무효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였다. 혼인의 무효 사유와 취소 사유는 일단 하자의 중대성 여부에 따라 구별되지만, 실제로 어떻게 양자를 구별할 것인가는 입법정책의 문제이다. 종래에도 금혼규정 위반의 효과를 혼인 무효로 할 것인가 아니면 취소사유로 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별로 논의가 없었다. 이 점에서 대상결정은 다소 의외이다. 그러나 대상결정은 금혼규정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명확한 결론을 낼 수 없어서 사법적 판단 가능성(justiciability)이 없지만, 무효규정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는 헌법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본 것으로 추측된다. 3. 개정 방향의 제안 대상결정은 위 무효조항은 2024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하였으므로, 그 시한 내에 무효조항을 개정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정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방계혈족 사이의 금혼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하여야 한다. 대상결정에 따른다면 금혼규정을 현재와 같이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다수의견도 인정하는 것처럼 현행 민법의 금혼규정은 매우 넓고, 이를 유지할 현실적인 필요성도 없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것처럼 방계혈족 사이의 금혼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하여야 한다. 둘째, 4촌 이내의 방계혈족 사이에 혼인이 이루어진 경우에 2촌까지는 이를 무효로 하고, 그 외에는 혼인 취소 사유로 함이 타당하다. 다수의견도 근친혼이 가까운 혈족 사이의 신분관계 등에 현저한 혼란을 초래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에는 무효로 할 수 있다고 하였고, 4인의 반대의견도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사이의 혼인은 무효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혈족뿐만 아니라 인척 사이의 금혼규정 및 입양으로 인한 법정혈족 또는 인척이었던 자 사이의 금혼규정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예컨대 형부와 제수와 같은 방계인척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는 것이나, 입양관계가 해소된 후에도 입양에 의한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생각한다(윤진수, 위 논문 참조).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혼인무효
근친혼
민법제809조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2-11-09
공정거래
행정사건
시장지배력 남용으로서 약탈적 가격인하와 이윤압착 문제
[사건경위] 1. 사실관계 2000년대 초 인포뱅크가 이동통신 3사의 문자 전송서비스를 이용한 기업메시징서비스를 처음 출시하였고, 이후 수요가 폭증하자, 다른 중소기업들 뿐 아니라 삼성에스디에스, 에스케이브로드밴드, 원고 엘지유플러스(LGU+), 원고 케이티(KT) 등 대기업들도 기업메시징서비스 생산공급자 또는 재판매업자로서 기업메시징서비스 시장에 신규 진입하였다. 다음카카오는 자사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카카오톡을 이용한 기업메시징서비스를 2014년부터 출시하였다. 기업메시징서비스 대량 수요처는 입찰 방식 등을 통하여 가격인하 경쟁을 유도하였고, 원고 엘지유플러스와 원고 케이티는 각자 대형 고객 유치를 위해 개별적으로 기업메시징서비스 가격을 부가통신사업자들보다 낮게 설정하였고(이하 '이 사건 가격설정'), 이로 인해 원고들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부가통신사업자들이 영업 부진을 겪었다. 2.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 2015년 2월 공정위는 이 사건 관련상품시장을 이동통신 3사의 문자 전송서비스를 이용한 기업메시징서비스로만 정하고, 원고들 각자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된다는 전제에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이 사건 가격설정은 이동통신 3사의 전송서비스 가중평균 가격보다 낮기 때문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독점규제법') 시행령 제5조 제5항 제1호의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의한 부당한 경쟁자 배제(즉, 부가통신사업자 배제)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원고들에게 과징금납부명령과 시정명령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 3. 원심판결 2018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통상거래가격은 '효율적인 경쟁자가 당해 거래 당시의 경제 및 경영상황과 해당 시장의 구조, 장래 예측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여 일반적으로 선택하였을 때 시장에서 형성되는 현실적인 가격'이라고 하고, 공정위가 통상거래가격이라고 주장한 가격이 통상거래가격이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고, 예비적으로 보더라도 공정위의 경쟁제한성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하였다. 4. 대상판결 2021년 6월 대법원은 독점규제법 시행령 제5조 제5항 제1호의 통상거래가격은 비용과는 구별되는 가격의 일종이라는 등의 이유로 '통상거래가격에 비하여 낮은 대가로 공급하는 행위'에는 이른바 '이윤압착행위'도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제에서 대법원은 이 사건 가격설정은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인 이윤압착으로서 중·장기적으로 기업메시징서비스의 가격상승 등 경쟁제한효과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고 하면서, 원심판결을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 [ 판결요지 ] 대법원은 통상거래가격은 비용과는 구별되는 가격의 일종이라는 등의 이유로 ‘통상거래가격에 비하여 낮은 대가로 공급하는 행위’에는 이른바 ‘이윤압착행위’도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제에서 이 사건 가격설정은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인 이윤압착으로서 중·장기적으로 기업메시징서비스의 가격상승 등 경쟁제한 효과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고 하면서, 원심판결을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 [ 평석요지 ] 대상판결의 독창적 이윤압착론은 법리적 혼란만 초래하고 있고, 수직통합사업자의 가격우산 아래 하방시장 경쟁자들이 경쟁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기업메시징서비스 시장에서 특히 카카오와 이동통신사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고, 이 사건 가격설정으로 경쟁이 제한되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가격설정은 적법한 가격경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평석] 1. 문제의 소재 이 사건에는 시장지배력 존부 및 경쟁제한성 존부를 판단하기 위한 관련시장 획정 단계에서부터 카카오톡 기업메시징서비스가 제외되었다는 문제가 있다. 설령 관련시장에서 카카오톡 기업메시징서비스가 제외된다고 하더라도, 엘지유플러스에게는 케이티가 유력 경쟁자이고, 케이티에게는 엘지유플러스가 유력 경쟁자이고, 원고들 모두에게 카카오가 유력 경쟁자이고 에스케이텔레콤이 잠재적 경쟁자인 상황에서, 원고들이 각자 단독으로 어떻게 시장지배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인지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대상판결에 따르면 하나의 관련시장에서 복수의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이 각자 단독으로 시장지배력을 형성하여 각자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 유럽연합,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비교법적 사례는 물론이고 경제학 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독창적인 내용이다. 한편 경쟁법상 약탈적 가격인하(predatory pricing) 문제와 가격·이윤압착(price/margin squeeze) 문제는 서로 구별된다. 시장지배력 남용으로서 가격압착은 1940년대 미국에서 처음 문제되었고, 유럽에서는 2000년대부터 이윤압착이라는 용어로 문제되었다. 약탈적 가격인하는 미국에서 1911년 Standard Oil 판결, 이윤압착은 1945년 Aloca 판결에서 최초로 인정된 이래 오늘날까지 양자의 경쟁법상 쟁점이 다르기 때문에 판례와 학설 모두 양자를 구별해왔다. 원래 의미의 이윤압착은 상방시장의 높은 가격설정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고, 하방시장의 낮은 가격만 문제되는 경우는 이윤압착이 아니라 약탈적 가격인하가 문제된다. 이 사건 가격설정은 상방시장에서 높은 가격설정이 아니므로(엘지유플러스는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전송서비스 판매가격을 인상시킨 적이 없고, 케이티는 오히려 전송서비스 판매가격을 인하시켰다), 이윤압착으로 볼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이 사건 가격설정을 이윤압착으로 잘못 전제하였고, 대상판결이 제시한 독창적 이윤압착론은 경쟁법 기본 원리에 비추어볼 때 극히 이해하기 어렵다. 2.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의 해석론 시장지배력 남용의 하위 유형인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은 약탈적 가격인하로서 '비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해석될 수는 있으나, 어떤 경우에도 '상방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해석될 수 없으므로 이윤압착으로 해석될 수 없다. 첫째, 가격(이윤)압착이란 '상방시장에서 독점력을 가진 수직통합사업자가 (i) 상방시장에서 가격을 너무 높게 설정하거나 또는 (ⅱ) 상방시장에서는 가격을 너무 높게 설정하고 하방시장에서는 가격을 너무 낮게 설정함으로써 경쟁자가 하방시장에서 존속하는데 필요한 이윤을 없애거나 감소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가격(이윤)압착 문제에서 '너무 높은 가격 또는 너무 낮은 가격'이란 관념은 미국과 유럽에서 소송 목적에서 주장된 것일 뿐, 높은 또는 낮은 가격의 기준에 관한 엄밀한 경제이론이나 객관적 판단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윤압착 문제는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처럼 상방시장에서 거래의무 존부와 하방시장에서 약탈적 가격인하 문제로 나누어 접근해야 가격경쟁이 시장지배력 남용으로 오판되는 위험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다. 연방법무부도 연방대법원에 제출한 link Line 사건 정부 의견서에서 종전 Aloca 판결이 이윤압착의 근거로 제시했던 공정가격과 생존이윤 개념은 너무 모호하고 측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장경쟁과 소비자후생과 관련성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EU법원은 미국과 달리 이윤압착을 독자적인 시장지배력 남용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경쟁제한 오판 위험성을 지적하는 유럽 학자들도 있다. 둘째,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팔면 팔수록 손실이 커지는 가격으로 계속 판매하고 있다면, 외견상 가격인하 경쟁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경쟁자를 퇴출시키고 신규진입을 봉쇄하여 관련시장을 독점한 뒤 경쟁이 제한된 상태에서 추후에 가격을 대폭 인상시켜 독점이익을 얻기 위한 약탈적 전략의 일환이라고 의심해 볼 수 있다. 이를 약탈적 가격인하 시나리오라고 하는데, '손실을 초래하는 가격'을 일반적으로 '비용보다 낮은 가격'이라고 하므로,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비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독점규제법에는 배타조건부거래처럼 동일한 행위 유형이 제23조의 불공정거래행위와 제3조의2 제1항의 시장지배력 남용에 모두 규정된 경우도 있으므로, '비용보다 낮은 가격'이 불공정거래행위의 하위 유형인 부당염매 조항(독점규제법 시행령 제36조 제1항 관련 [별표 1의2] 제3호 (가) 목에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비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3. 부당성(경쟁제한성) 판단기준 대상판결은 이 사건 가격설정으로 인한 중장기적 경쟁제한효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경쟁제한성 증명 책임을 부담하는 공정위는 애당초 중장기적 경쟁제한효과를 증명한 바 없다. 이 사건 처분 의결서에서 공정위는 "단기적으로는 피심인의 저가 판매행위로 인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독과점 구조가 고착화됨에 따라 가격인상, 서비스 품질 저하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 우려된다"거나 "피심인은 이 사건 행위를 통해 시장에서 경쟁사업자가 배제된 이후에 기업메시징서비스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이 사건 행위 과정에서 직면했던 손실을 보전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쟁제한성을 막연히 주장했을 뿐이다. 기업메시징서비스 시장에서 중장기적 가격상승 등 경쟁제한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먼저 원고들이 약탈적 가격인하 담합으로 부가통신사업자를 모두를 퇴출시키고, 카카오는 물론이고 에스케이텔레콤 등과 같은 잠재적 경쟁자의 신규진입을 완전히 봉쇄한 다음에, 가격인상 담합까지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시나리오의 성공 가능성은 공동행위에서도 극히 희박하고 단독행위에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4. 결론 대상판결의 독창적 이윤압착론은 법리적 혼란만 초래하고 있고, 수직통합사업자의 가격우산 아래 하방시장 경쟁자들이 경쟁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여하튼 2014년부터 현재까지 기업메시징서비스 시장에서 특히 카카오와 이동통신사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고, 이 사건 가격설정으로 경쟁이 제한되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가격설정은 적법한 가격경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주진열 교수(부산대 로스쿨)
공정거래
시장지배
독점
기업메시징서비스
주진열 교수(부산대 로스쿨)
2022-06-20
노동·근로
민사일반
단체협약상 특별채용 조항의 법적 효력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소외 망인은 자동차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다. 자동차회사가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하여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월 이내 특별 채용하도록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망인의 자녀인 원고는 단체협약에 근거하여 채용에 대한 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 법원과 항소심 법원은 단체협약 특별채용 조항은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현저하게 제한하며,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채용의 공정을 현저하게 침해하여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원고의 채용청구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1. 다수의견 11인의 대법관은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이 민법 제103조에 위배되지 않아 그 효력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다수의견을 개진하였다(파기환송). 첫째,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의 효력에 대한 사법심사는 신중하여야 한다. 둘째, 업무상 재해로 인한 보상책임을 보완하는 특별채용은 근로조건의 기준에 해당한다. 셋째, 사용자는 결격사유에 대한 심사를 통하여 최소한의 업무수행능력을 검증한다. 넷째,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하여 채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법질서에서 예정되어 있다. 다섯째, 별도의 특별채용 절차를 통하여 소수의 인원을 채용한 것으로 인하여 구직희망자들의 현실적 불이익이 크다고 볼 수 없다. 2. 반대의견 2인의 대법관은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이 민법 제103조에 위배되어 무효라는 반대의견을 개진하였다(상고기각). 첫째, 사용자가 장차 새로운 근로관계를 창설할 상대방을 정하는 문제는 근로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하여는 헌법상 특별한 보호가 인정되지 않는다. 둘째,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은 구직희망자들이나 다른 조합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사회질서에 반한다. 셋째, 취업보호에 관한 특별법은 일정한 경쟁을 전제로 하는데, 특별채용조항은 그렇지 않다. 넷째,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은 국제기준이나 정책 방향과 거리가 있다. 다섯째,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의 혜택이 일부에게만 돌아간다. [평석] 1. 단체협약의 법적 성격 단체협약의 법적 성격에 대한 학설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계약설, 법규범설, 복합설). 우선 노동조합과 사용차측의 계약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협약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교섭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을 순수한 법규범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효력에 관하여 민법상 법률행위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고, 사적 자치의 원칙이 존중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에 비하여 열악한 지위를 가지는 노동자인 조합원을 대변하여 근로조건에 협상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본질에 해당한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인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협상하고 그 효력이 조합원에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단체협약의 효력은 조합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근로자보호를 위한 노동법의 정신에 비추어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비조합원에게도 확대된다. 비조합원에 대하여도 단체협약의 효력이 확대되는 국면에서 법규범성을 지닌다. 결국 단체협약의 법적 성격은 협약당사자의 계약이라는 점에서 출발되어야 하고, 근로자보호를 위한 노동법의 정신에 비추어 예외적으로 범규범성이 가미된 것이다(소위 복합설). 사용자와의 대등한 협상력을 보유하기 위하여 법인된 노동조합의 위상에 비추어 노동조합이 현행 재해보상제도의 한계를 의식하고 협상력을 발휘하여 특별채용조항을 얻은 것이므로 특별채용의 혜택이 극소수에게 돌아간다고 하여 그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조합의 기능과 위상만을 강조하여 다양한 형태의 특별채용 조항들의 효력이 곧바로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2.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와 단체협약의 대상 사용자가 다양한 채용방식(공개채용, 제한경쟁, 특별채용)을 선택하여 채용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용자는 원만한 노사관계를 위하여 경영상 판단에 따라 채용의 자유의 일부를 포기할 수 있으며,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전개되는 특별채용으로 인하여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는 채용에 관한 사항을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임의적 교섭사항), 이 부분에 대하여도 협약자치의 효력이 미친다. 따라서 채용에 관한 사항을 단체교섭의 대상에서 전면적으로 배제할 것은 아니다. 3. 특별채용조항의 법적 성격 단체협약상 특별채용조항은 재해보상의 내용을 보충하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므로 규범적 부분이라고 할 것이고, 근로자와 유족은 사용자를 상대로 직접 그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재해보상의 내용을 보충하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라는 단체교섭의 대상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규범적 부분이라고 보아야 하고, 비조합원의 확대 적용의 국면을 감안하더라도 규범적 부분으로 보는 것이 일관성 있는 해석이다. 4. 채용의 공정 고용정책기본법과 직업안정법은 차별금지와 균등한 기회보장을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합리적 사유 있는 차별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마련된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이 위 법률들의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 채용에 관한 공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 원칙을 고수하면 차별적 효과가 영속화되므로,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세밀하게 전개된 적극적 우대조치가 요망된다는 미국의 논의는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의 관점에서도 매우 시사적이다. 5. 특별채용조항의 효력에 대한 판단기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에 대한 유형론은 특별채용조항의 효력의 판단에 있어 유용하지 못하며, 다수의견이 제시한 구체적 사정 요소도 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지침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특별채용조항의 효력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비례의 원칙을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법익균형성과 상당성으로 귀결된다. 보호법익과 피해법익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법익균형성), 피해법익의 정도가 목적, 동기, 방법에 의하여 최소화되어야 한다(상당성). 법익균형성이 충족되는 경우에 비로소 상당성의 판단에 들어가고, 법익균형성이 충족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상당성의 판단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채용의 공정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현실에 있어 보호법익의 중대성이 긍정되어야 비로소 법익균형성의 요건이 충족되고, 특별채용의 비율이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상당성 요건이 충족된다. 기회의 평등의 원칙에 대한 예외는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세밀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6. 특별채용조항에 대한 구체적 검토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은 비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첫째, 산재유족의 생계보호는 사회적 약자의 배려 차원에서 인정되는 압도적 이익이며, 채용의 공정이라는 공익도 압도적 이익이다. 따라서 양자의 법익균형성이 긍정된다. 둘째, 특별채용의 비율이 매우 적어 구직희망자가 감수하여야 할 희생이 그리 크지 않으므로 상당성 요건을 충족한다. 비교법적 이례성이 산재유족 특별조항의 효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며,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노동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노사가 마련한 부득이한 조치이다.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은 비례원칙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왜냐하면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의 보상이라는 이익은 압도적 이익이라고 볼 수 없으나, 채용의 공정이라는 공익은 압도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업무외 사고·질병·사망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은 비례원칙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왜냐하면 업무외 재해에 대한 보상은 사용자의 법적 책임의 영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압도적 이익이라고 볼 수 없으나, 채용의 공정이라는 공익은 압도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노조 추천인 우선채용 조항은 비례원칙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의 조직 강화라는 이익은 압도적 이익이라 보기 어려우나, 채용의 공정은 압도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산재유족 이외의 자에 대한 특별채용 조항은 모두 법익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7.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의 일반적 구속력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의 근거인 비조합원의 보호필요성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한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의 취지에 비추어 노동조합법 제35조의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하더라도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의 효력이 비조합원에게도 인정되어야 한다. 8. 소결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의 효력을 긍정하는 다수의견의 태도는 타당하다. 사회적 약자인 산재유족을 배려하기 위하여 세밀하게 전개된 특별채용조항은 실질적 평등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대상판결로 인하여 다수의 사업장에서 특별채용 조항의 체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져 단체교섭 차질 및 노사관계의 경색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으나,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상판결은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의 효력에 대한 판단이며 그 밖의 경우에 대한 특별채용 조항의 효력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창현 교수 (서강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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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교수 (서강대 로스쿨)
2022-06-07
민사일반
'사정변경의 원칙' 적용론
[사실관계] 원고들은 2015년 8월 26일 해외이주 알선업체인 피고와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을 위한 이민알선업무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은 계약서 작성일부터 원고들의 이민비자 취득일까지 유효하고, 국외알선 수수료는 미화 3만 달러로 하되, 계약 시, 노동허가 취득 시, 이민허가 취득 시로 나누어 미화 1만 달러씩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당시 업무 관행상 통상 2년 정도면 비자발급 절차가 마무리되었는데, 이러한 점은 계약 당시부터 당사자들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원고들은 2016년 5월 미국 이민국의 이민허가를 받고, 국외알선 수수료를 모두 지급하였다. 그런데 기존에는 이민허가를 받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민비자가 발급되었으나, 주한 미국대사관이 갑자기 비숙련 취입이민 신청에 대해 추가 행정검토(AP) 및 이민국 이송(TP) 결정을 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원고들의 비자발급도 중단되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나 비자발급 절차 재개 여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원고들은 2017년 12월 1일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 등을 주장하며 피고에 대하여 이미 지급한 수수료의 반환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의 해지를 인정하였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결정으로 당초 예상했던 기간보다 훨씬 장기간 비자발급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어 원고들이 언제 비자를 발급받을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므로,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았던 원고들의 비자발급 여부에 관하여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이 생겼고,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들에게 최종적인 결정을 기다려서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하였다. [평석] 1. 사정변경의 원칙의 의미 이른바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의 성립 당시에 있었던 환경 또는 그 행위를 하게 된 기초가 되는 사정이 그 후 현저하게 변경되어 당초 정해진 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하는 것이 신의칙과 공평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법률행위의 효과를 신의, 공평에 맞도록 변경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계약준수의 원칙(pacta sunt servanda)에 대한 예외라고 일컬어진다. 대상판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근 대법원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 원칙을 정면으로 적용하여 계약의 해지를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제 사정변경의 원칙에 대한 고민은 그 이론적인 규명을 넘어, 구체적인 사안에서 그 적용을 고려할 수 있는지, 실제 계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실질적으로 논의로 이어져야 하는 시점이다. 근래에 전염병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회 상황이나 기술이 예측할 수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원칙은 향후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2. 인접 개념과의 경계 사정변경의 원칙은 신의칙의 파생 원칙이므로, 민법의 규정과 계약법의 원칙들에 비해 보충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사정의 변경으로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면,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될 국면이 아니다.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의 이행이 여전히 가능한 것을 전제로, 그 내용대로 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부당한지를 따져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행불능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는 것이 종국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는데, 법적으로 이행이 가능한지 여부가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니다. 대상판결에서는 1년 반이 넘도록 비자 업무가 중단된 이유나 절차 재개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비자발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평가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비자가 최종적으로 발급되거나 거절되기 전까지는 일시적, 사실적 불능 상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민국이 재심사를 통해 이민허가를 철회하기 전에 종국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계약 체결 이후의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계약위험의 분배에 대해 당사자들이 합의하였거나 위험의 인수가 계약에 내재되어 있다면, 사정변경의 원칙이 그에 우선할 수는 없다. 사정변경은 계약의 해석으로는 그 위험에 관한 분배를 정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소 고려되는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에 AP/TP 결정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기존에는 2년 정도면 문제없이 비자가 발급되어 왔다는 점을 당사자들이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AP/TP 결정을 받아 절차가 지연됨으로써 발생하는 위험배분에 대해 묵시적으로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는 통상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사정의 변경으로, 어느 일방이 위험을 인수하였다고 할 수 없다. 3. 적용 요건 대상판결이 언급하는 사정변경의 원칙의 요건은 대체로 ① 현저한 사정변경, ② 예견불가능, ③ 계약유지의 부당성으로 요약된다. 이들 세 가지 요건은 독립적이라기보다 상호 연관성이 있다. 현저한 사정변경의 대상은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은 사정으로, 일방 당사자의 주관적이거나 개인적인 사정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상판결에서 2년 정도면 비자발급 절차가 마무리되는 업무 관행은 당사자들이 계약을 체결하며 전제로 한 사정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이른바 동기의 착오로 보아야 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으나, 이 사안은 계약 당시 존재하는 사정에 대한 착오가 아니라 계약성립 이후 객관적인 외부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여 당사자들의 기대가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예견불가능성을 요하는 것은, 당사자가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면 당사자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그에 대비하여 계약을 다른 내용으로 체결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에서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업무처리가 변경된 이유나 비자발급이 언제 재개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었으므로, 이는 당사자들이 계약 당시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이다. 계약을 체결한 시점에 따라 비자업무의 중단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적어도 당사자들의 계약 체결 시점에서는 예견가능성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부당성에 대해 판례는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이는 사정변경의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계약의 구속력을 고집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는 경우를 등가관계의 파괴나 계약목적의 달성 불가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므로, 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부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계약 내용대로라면 원고의 권리구제 방안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비자발급을 기다렸다가 종국적으로 이민비자 취득이 불가능해지면 기납입 수수료의 80%를 환불받는 것이었다. 종국적으로 비자발급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면, 계약의 목적달성이 어렵거나 그로 인한 이익이 상당히 반감될 것이다. 따라서 계약 내용을 강제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4. 인정 효과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으로 인해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계약을 해제·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사정변경의 효과에 관한 논의는 실제 사안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다소 원론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경향이 있는데, 이는 최근까지도 법원이 이 원칙을 인정하는 것에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는 것에 그칠 뿐, 구체적으로 계약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지를 검토한 예는 많지 않다. 대상판결은 계속적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인바, 원고의 수수료 지급에 비해 피고의 급부 이행이 완결되지 않았으므로 원고들이 지급을 완결한 수수료의 일부를 원상회복하여야 한다. 법원은 계약에서 이민허가가 나지 않으면 수수료의 80%를 환불하도록 규정한 것에 비추어 원고들이 기지급한 3만 달러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반환하도록 하였다. 피고가 급부를 이행하기 위해 실제로 지출한 비용이 아니라 그 가치에 대한 당사자들의 평가를 반영한 것은 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쟁점이 된 것은 아니지만, 학설은 대체로 사정변경의 효과로서 계약의 해제·해지 외에 계약의 수정을 인정한다.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전부 해소하는 것 외에 유연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정권의 행사 요건, 절차나 방식, 해제권과의 관계 등 세부적인 검토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이 글에서 이를 모두 다루기는 어려우나, 계약 내용의 수정에는 당사자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고 법원의 자의적인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자 한다. 향후 판례가 축적되고 이를 토대로 한 연구가 계속되어, 사정변경의 원칙이 일반 원칙으로서의 유연성은 유지하되, 그 요건과 효과는 더욱 구체화되어 실효성 있는 규범으로 자리하기를 기대한다.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취업이민
국외알선수수료
사정변경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22-02-14
노동·근로
민사일반
무기계약 전환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차별금지 원칙
Ⅰ. 사실관계 피고는 방송사업 및 문화서비스업, 광고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이고, 원고들은 각각 피고 회사에 기간제근로자로 입사하여, 그때부터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계약을 갱신하면서 계속 피고 회사에서 근로자로 재직하였다. 원고들은 '기간제 및 단기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이라 한다)'에 따라 이 법 시행 이후 2년을 초과하게 된 날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이하 '무기계약직'이라 한다)로 각각 전환되었다. 피고는 원고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매 1~2년마다 원고들과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원고들에게 기본급과 상여금을 지급하였는데, 그 액수는 피고 소속 정규직으로서의 일반직 및 기능직 직원들(이하 '정규직 직원들'이라 한다)에 대한 기본급 및 상여금의 80% 수준이었다. 한편, 피고는 직무수당, 면허수당, 물가수당, 주택수당, 식대 등의 수당을 정규직 직원들이나 원고들에게 동일한 액수와 방식으로 지급하였다. 다만, 정규직 직원들에게 매월 지급한 근속수당은 원고들에게 지급하지 않았고, 정규직 직원들에게는 자가운전 보조금으로 월 30만 원씩 지급하였으나 원고들에게는 월 20만 원씩 지급하였다. 그밖에 원고들의 피고 회사에서의 호봉은 2012년 5월을 기준으로 그 이후 원고들에 대한 호봉 정기승급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고들은 피고가 원고들의 무기계약직 전환 후부터 원고들에 대하여 피고의 '취업규칙'을 적용하여 정규직 직원들과 같은 임금을 지급하여야 하는데도, 원고들을 기간제근로자와 같이 취급하여 위와 같이 처우한 것은 위법한 차별행위로서 기간제법 제8조 또는 근로기준법 제6조의 규정에 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한다. 원심(대전고법 2015. 11. 26. 선고 2014나11589 판결)은 피고의 취업규칙 제2조(직원의 정의) 및 직제규정 제3조(직원)의 문언, 피고가 위와 같은 규정을 마련한 취지나 관행적 의미, 피고 소속 전체 근로자의 공통적인 의사 등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들과 체결한 '고용계약서'는 원고들처럼 기간제에서 전환된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에 대하여 직접 적용되는 근로조건에 관한 준칙인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이후 원고들에게 근속수당을 미지급한 것과 자가운전 보조금의 일부를 미지급한 것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의 내용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무기계약으로 전환된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는,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 내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가 있을 경우 달리 정함이 없는 한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구체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은 사용자가 기간제근로자를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한 경우의 효과에 관하여 그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것만이 무효로 된다거나, 또는 근로계약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존 근로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식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② 기간제법 제8조 제1항의 규정 취지와 공평의 관념 등을 함께 고려하면,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의 근로조건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종 또는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보다 불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해석된다. ③ 기간제법의 목적, 관련 규정 체계와 취지, 제정 경위 등을 종합하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같은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이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기간제법 시행 이후부터 원심 변론종결일에 이르기까지 원고들과 같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정하는 취업규칙을 별도로 마련한 바 없다. 한편, 원고들과 동일한 부서에서 같은 직책을 담당하며 근로를 제공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비교하면, 업무 내용과 범위, 업무의 질이나 양 등 제반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앞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원고들에게는 동일한 부서 내에서 같은 직책을 담당하며 동종 근로를 제공하는 정규직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근로조건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Ⅲ.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은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억제하고 해당 기간제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사용자가 객관적 사유없이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한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에 대하여 기간의 정함 부분을 무효로 하여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효과를 부여하였다. 다만, 이 규정이 무기계약직 전환 후의 근로조건까지 기존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화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법률에 의하여 고용형태뿐만 아니라 근로조건의 내용까지 강제로 정하는 것은 당사자의 계약자유 원칙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기계약직 전환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사용자와 그에 관한 별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즉, 정규직 취업규칙의 적용범위에 무기계약직 전환 근로자를 포함하거나 그 적용에 관한 당사자의 개별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고는 정규직 취업규칙을 무기계약직에게 적용한 바가 없고, 원고들과 고용계약서를 작성하여 근로조건을 결정하였을 뿐이다. 무기계약직 전환 근로자에 대하여 별도의 취업규칙을 두고 있지 않는 경우에는 대법원 판결처럼 곧바로 정규직 직원의 취업규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종전 기간제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 중 기간의 정함을 제외한 나머지 근로조건, 즉 임금, 근로시간, 복무규율, 복리후생 등은 계속해서 그대로 적용된다(독일과 일본의 통설). 기간제근로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더라도 그것이 법률상 당연히 피고의 정규직 직원으로 그 지위가 변경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에 관한 새로운 근로계약의 체결이 있어야 한다. 취업규칙은 반드시 사업 또는 사업장의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사업에서도 직군·직종별, 고용형태별로 복수의 취업규칙이 병존할 수 있다. 또한 명칭에 관계없이 전체 또는 특정 근로자집단에 적용될 근로조건에 관한 준칙을 정한 것이라면 일응 취업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공통적으로 작성되어 특정 근로자집단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표준근로계약서도 취업규칙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원고들의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에도 1~2년마다 작성된 '고용계약서'에 따라 해당 근로자를 처우하였는데, 이 계약서에는 근무 부서 및 업무 내용, 임금·수당 등 급여, 원고들의 의무, 근무시간 및 휴게시간, 휴일 및 휴가, 복리후생 등의 근로조건이 포함되어 있고, 이러한 급여의 기본적인 항목과 구성, 복무규율 등의 근로조건은 모든 '고용계약서'마다 동일한 내용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 사건 '고용계약서'는 일종의 표준계약서이며 해당 근로자집단의 근로조건에 관한 준칙으로서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므로 취업규칙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한편, 대법원은 기간제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 원칙을 정한 기간제법 제8조 제1항이 무기계약직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로 설시하고 있다. 하지만 기간제법은 차별적 처우 금지 및 그 시정절차의 주체가 기간제근로자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무시하고 동 규정을 무기계약직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은 법률을 거스른 해석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이 사건 원심판결은 무기계약직을 사업장내에서 근로자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서는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분류라고 보고 이를 균등처우원칙을 정한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으나, 이 견해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사회적 신분'이란 장기간 점유되어 개인적 노력으로는 회피할 수 없을 정도로 고정화된 개인적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당사자의 사적자치(계약)에 의하여 형성된 고용상 지위에 대해서까지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금지 또는 균등대우 원칙을 정한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헌법의 평등원칙과 민법상 신의칙에 기하여 노동법의 일반원칙으로서 균형처우 원칙을 도출할 수 있다. 즉, 사용자는 업무내용이나 임금·수당 등 근로조건을 정함에 있어서 공정한 재량권행사의 원칙에 따라 무기계약직의 근로조건을 다른 근로자집단의 그것과 비교해서 공정하게 처우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만약 사용자가 무기계약직과 같은 특정 근로자집단의 근로조건을 다른 근로자집단에 비하여 불리하게 정할 경우에는 그와 같은 차이가 어느 정도 합리적 사유에 의하여 정당화되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구체적인 임금액 등 당사자 간의 개별 합의로 정하는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일반 균형처우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박지순 교수 (고려대 로스쿨)
임금
기간제법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근로자
박지순 교수 (고려대 로스쿨)
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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