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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7) 의료법
[민사판례] 1. 비의료인으로부터 고용된 의료인 의료기관 개설 불가(대법원 2022. 4. 14 선고 2019다299423 판결) 가. 사실관계 종합병원을 개설·운영하는 피고는 소외 회사로부터 운영자금을 차용하면서 병원 운영 등에 대해 합의하였다. 이후 피고는 소외 회사가 지정한 의사인 원고와 병원 시설 일체 등을 양도하기로 예약하고, 원고가 예약완결 의사표시를 하면 피고는 병원 개설자를 피고에서 원고로 변경해야 한다는 자산양수도예약을 체결하였고 병원 부지와 건물은 소외 회사의 자회사에 매도하면서 자회사에 소유권이전등기도 마쳐주었다. 원고는 피고에게 예약완결 의사표시를 하면서 소외 회사로부터 양수한 소외 회사의 피고에 대한 대여원리금채권으로 피고의 양도대금채권과 상계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였으나 피고가 이에 응하지 않자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의료기관 명의변경 절차 이행을 청구하였다. 나. 사건 경과 1심 및 원심은 장차 의료법인이 병원을 운영하도록 할 계획 아래 일시적으로나마 원고가 개설자 지위를 가질 의사로 자산양수도예약 등을 체결한 것으로서 자산양수도예약 등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여 무효라는 피고 항변을 배척하고, 원고와 피고 사이의 자산양수도계약에 따라 피고는 병원 개설자를 피고에서 원고로 변경하는 절차를 이행하라는 원고 청구를 받아들였다. 다. 대법원판결 요지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서 금지되는 의료기관 개설행위는, 비의료인이 그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 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료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여 시설을 갖추고 유자격 의료인을 고용하여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 신고를 한 행위는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의 개설로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의료인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에 해당하고, 개설 신고가 의료인 명의로 되었다거나 개설 신고 명의인인 의료인이 직접 의료행위를 하였다 하여 달리 볼 수 없다. 한편 비의료인이 이미 개설된 의료기관의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인수하고 개설자의 명의변경 절차 등을 거쳐 그 운영을 지배·관리하는 등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개설·운영행위와 단절되는 새로운 개설·운영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서 금지하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에 해당한다.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원고가 일시적으로 병원 개설자 지위를 가질 의도로 자산양수도예약 등을 체결하였다는 사정을 들어 병원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려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비의료인이 형식적으로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하기 위하여 내세우는 명의인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같은 사정만을 내세워 자산양수도예약 등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으니, 그와 같은 판단에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라. 평석 의료법 제33조 제2항은 의료기관 개설 자격 제한 규정으로써, 의료인이나 의료법인 등이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운영하는 경우, 소위 사무장 병원에 의해 초래될 국민 보건위생상의 중대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규정이며, 판례는 이를 강행법규로 보고 이에 위반하여 이루어진 약정을 무효로 판단하고 있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서 금지되는 의료기관 개설행위의 의미가 ‘비의료인이 그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 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임은 다수의 판례(대법원 2020. 6. 11. 선고 2016두52897, 대법원 2018. 11. 29. 선고 2018도10779 등)를 통해 분명히 정리되었다. 그러나 실제 의료기관 개설행위를 살펴보면, 실질은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명의를 빌리거나 의료인을 고용한 것으로서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이나 형식적으로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행위로 가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편법적인 방법이 성행하고 있으며 여러 사람이 금전 관계 등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사실관계를 파악하여 불법적인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 여부를 명확히 판단함으로써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를 방지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대상판결은 수사기관의 소외 회사 관계자들과 원고에 대해 의료법 위반 혐의없음 처분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비의료인의 개설행위임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증거를 충분히 살펴 원고와 피고 사이의 자산양수도예약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다. 2. 의사의 과실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 필요 (대법원 2022. 12. 29. 선고 2022다264434) 가. 사실관계 다발성 간농양 진단을 받은 망인(갑)을 상대로 피고 병원 의료진이 경피적 배액술만 시도하고 외과적 배액술을 시도하지 않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사안에서 유족들인 원고들의 의료과실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나. 사건 경과 1심에서는 피고들의 과실을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으나, 원심에서는 간농양 배농 방법 중 외과적 배액술을 고려할 만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망인에 대한 외과적 수술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할 만한 피고의 입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피고에게 외과적 배액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다. 대법원판결 요지 갑이 발열, 오한, 근육통 등을 이유로 피고 병원 응급실에 내원하였고, 피고 병원 의료진이 다발성 간농양으로 진단 후 농양에 배액관을 삽입하는 경피적 배액술을 계속 시도하다가 갑이 사망한 사안에서, 피고 병원 의료진이 망인에게 경피적 배액술을 계속 유지한 것이 갑의 증상이나 상황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라거나, 갑의 상황, 당시의 의료수준, 의사의 지식·경험에 따라 선택 가능한 진료 방법 중 합리적인 재량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과실로 볼 만한 정도라고 평가하기 어렵고, 특히 경피적 배액술로도 갑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을 당시를 기준으로 갑에 대한 외과적 배액술의 실시가 실제 가능한 상태였는지, 수술기술이나 방법, 수반되는 위험성은 무엇인지, 수술적 조치를 받았더라면 사망의 결과에 이르지 않았을 것인지 등을 해당 분야 전문의의 감정 등을 거쳐 확인한 후, 당시 갑의 임상상태나 의학상식에 비추어 경피적 배액술 외에 외과적 배액술을 실시하는 것이 통상의 의사라면 당연히 선택할 만한 정도였는지를 면밀히 살펴 해당 조치를 취하지 않은 피고 병원 의료진의 과실 유무를 판단하였어야 했음에도, 갑에 대한 외과적 수술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피고 병원의 입증이 부족하다면서 수술적 배농을 실시하지 않은 것에 곧바로 과실이 있음을 인정한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 라. 평석 대상판결은 의사가 진찰·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할 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의사가 행한 의료행위가 그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환자를 진찰·치료하는 등의 의료행위에 있어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점, 의사의 질병 진단 결과에 과실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 요법으로서 몇 가지의 조치가 의사로서 취할 조치로서 합리적인 것인 한 그 어떠한 것을 선택할 것이냐는 해당 의사의 재량의 범위 내에 속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또한 대상판결은 환자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에 관하여 의료상의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그 경우에도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막연하게 중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무과실의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과관계 추정의 한계를 밝힘으로써 기존 판례(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45185 판결, 대법원 2007. 5. 31. 선고 2005다5867 판결 등)의 법리를 다시 확인한 것이다. [형사판례] 3. 한의사의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은 한의사의 면허 외 의료행위가 아니므로 의료법 위반죄 성립되지 아니함 (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16도21314 전원합의체 판결) 가. 사실관계 한의사인 피고인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여 한 한의학적 진단행위에 대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한 의료법 위반죄로 기소되었다. 나. 사건 경과 1심 및 원심은 한의사가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0도10352 판결 법리에 따라 한의사인 피고인에 대해 의료법 제27조 제1항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다. 대법원판결의 요지 한의사가 의료공학 및 그 근간이 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발, 제작된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의 특성과 그 사용에 필요한 기본적·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추어 의료전문가인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전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에 비추어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는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0도10352 판결의 ‘종전 판단기준’과 달리, 한방의료행위의 의미가 수범자인 한의사의 입장에서 명확하고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관점에서, 진단용 의료기기가 한의학적 의료행위 원리와 관련 없음이 명백한 경우가 아닌 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됨을 의미한다(이하 ‘새로운 판단기준’). 한의사가 의료공학 및 그 근간이 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발·제작된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는 앞서 본 ‘새로운 판단기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이와 달리 진단용 의료기기의 사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종전 판단기준’이 적용된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0도10352 판결을 비롯하여 같은 취지의 대법원판결은 모두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하기로 한다.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판단기준에 따르면,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여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촬영하여 화면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이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대하여 ‘한의사가 서양 의료기기인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하여 진료행위를 한 것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반대의견이 있었다. 라. 평석 대상판결은 의사와 한의사를 구별하는 이원적 의료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의료행위의 가변성, 과학기술의 발전, 교육과정의 변화,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 가능성 및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 관점 등을 고려하여,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의 허용 여부에 관하여 위와 같은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대상판결은 한의사로 하여금 침습 정도를 불문하고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라 의료법 등 관련 법령이 한의사에게 명시적으로 사용을 금지하지 않은 것이고 본질이 진단용인 의료기기에 한정하여, 그 특성 및 사용에 관한 기본적·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추어 한의사가 사용하더라도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전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에 비추어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함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한의사가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이를 사용하더라도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 본문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4. 죽음이 예상되는 환자들이 입원한 호스피스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간호사의 사망진단은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의료법 위반 (대법원 2022. 12. 29 선고 2017도10007 판결) 가. 사실관계 호스피스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인 피고인이 부재중에 입원환자가 사망한 경우 간호사인 피고인들에게 환자의 사망 여부를 확인한 다음 사망진단서를 작성하여 유족들에게 발급하도록 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한 의료법 위반 및 이에 대한 교사로 기소되었다. 나. 사건 경과 1심에서는 간호사인 피고인들이 죽음이 예정되어 있던 환자가 야간에 사망한 경우, 사망을 확인(검안)하고, 그 사망 얼마 전 의사인 피고인이 미리 작성해 놓은 그 환자의 사망원인에 따라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행위는 의사 면허가 없는 자가 의료행위를 하였다는 구성요건에는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사회상규에는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행위로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이를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피고인들에 대하여 선고유예(벌금 각 30만 원 또는 각 100만 원)를 선고하였다. 다. 대법원 판결 요지 환자가 사망한 경우 사망 진단 전에 이루어지는 사망징후관찰은 구 의료법 제2조 제2항 제5호에서 간호사의 임무로 정한 ‘상병자 등의 요양을 위한 간호 또는 진료 보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망의 진단은 의사 등이 환자의 사망 당시 또는 사후에라도 현장에 입회해서 직접 환자를 대면하여 수행하여야 하는 의료행위이고, 간호사는 의사 등의 개별적 지도·감독이 있더라도 사망의 진단을 할 수 없다. 사망의 진단은 사망 사실과 그 원인 등을 의학적·법률적으로 판정하는 의료행위로서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이 사망의 진단 결과에 관한 판단을 표시하는 사망진단서의 작성·교부 주체를 의사 등으로 한정하고 있고, 사망 여부와 사망 원인 등을 확인·판정하는 사망의 진단은 사람의 생명 자체와 연결된 중요한 의학적 행위이며, 그 수행에 의학적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어떠한 시술행위가 무면허로 행하여졌을 때에는 그 시술행위의 위험성 정도, 일반인들의 시각, 시술자의 시술 동기, 목적, 방법, 횟수, 시술에 대한 지식수준, 시술경력, 피시술자의 나이, 체질, 건강상태, 시술행위로 인한 부작용 내지 위험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간호사인 피고인들의 행위가 전체적으로 의사 등이 하여야 하는 사망의 진단에 해당한다고 보아 피고인들을 유죄로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 라. 평석 대상판결은 의사가 간호사로 하여금 의료행위에 관여하게 하는 경우에도 그 의료행위는 의사 등의 책임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고 간호사는 그 보조자로 보면서, 간호사가 의사 등의 진료를 보조하는 경우 모든 행위 하나하나마다 항상 의사 등이 현장에 입회하여 일일이 지도·감독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 등이 진료의 보조행위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을 하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의사 등이 그의 주도로 의료행위를 실시하면서 그 의료행위의 성질과 위험성 등을 고려하여 그중 일부를 간호사로 하여금 보조하도록 지시 내지 위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기존 판례(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0도5964 판결, 대법원 2015. 6. 23. 선고 2014다15248 판결 등)의 법리를 다시 확인하였다. 대상판결은 사망진단이라는 의료행위의 성질 및 간호사에 의한 사망진단이나 검안행위를 허용하지 않는 의료법 취지를 고려하면 사망진단은 의사 등이 환자의 사망 당시 또는 사후에라도 현장에 입회해서 직접 환자를 대면하여 수행하여야 하는 의료행위이고, 간호사는 의사 등의 개별적 지도·감독이 있더라도 사망의 진단을 할 수 없음을 밝힘으로써, 의료행위의 성질, 위험성, 관련 법령의 취지 등을 고려하여 어떠한 의료행위의 경우 간호사로 하여금 이를 보조하게 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의료행위를 판단함에 있어서 일정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 진단서 발급 의료기관을 소개하고 그 비용을 환자로부터 지급받은 경우 의료법 제27조 제3항 위반죄 성립되지 아니함(대법원 2022. 10. 14 선고 2021도10046 판결) 가. 사실관계 손해사정사가 보험금 청구·수령 등 보험처리에 필요한 후유장애 진단서 발급의 편의 등 목적으로 환자에게 특정 의료기관·의료인을 소개·알선·유인하면서 그에 필요한 비용을 대납하여 준 후 그 환자가 수령한 보험금 중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지급받았다. 나. 사건 경과 1심 및 원심은 의료법 제27조 제3항 위반죄는 성립하지 않으나,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다. 대법원판결 요지 의료법 제27조 제3항의 규정·내용·입법 취지와 규율의 대상을 종합하여 보면, 위 조항에서 정한 ‘영리 목적’은 환자를 특정 의료기관·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에 대한 대가로 그에 따른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으로, 이때의 ‘대가’는 간접적·경제적 이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적어도 소개·알선·유인행위에 따른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의료기관·의료인 측으로부터 취득한 이익을 분배받는 것을 전제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러므로 손해사정사가 보험금 청구·수령 등 보험처리에 필요한 후유장애 진단서 발급의 편의 등 목적으로 환자에게 특정 의료기관·의료인을 소개·알선·유인하면서 그에 필요한 비용을 대납하여 준 후 그 환자가 수령한 보험금에서 이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경우, 이는 치료행위를 전후하여 이루어지는 진단서 발급 등 널리 의료행위 관련 계약의 성립 또는 체결과 관련한 행위이자 해당 환자에게 비용 대납 등 편의를 제공한 행위에 해당할 수는 있지만, 그와 관련한 금품수수 등은 환자의 소개·알선·유인에 대하여 의료기관·의료인 측이 지급하는 대가가 아니라 환자로부터 의뢰받은 후유장애 진단서 발급 및 이를 이용한 보험처리라는 결과·조건의 성취에 대하여 환자 측이 약정한 대가를 지급한 것에 불과하여, 의료법 제27조 제3항의 구성요건인 ‘영리 목적’이나 그 입법 취지와도 무관하므로, 위 조항이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라. 평석 의료법 제27조 제3항은 “누구든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따른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위 조항은 환자와 특정 의료기관·의료인 사이에 치료위임계약의 성립 또는 체결에 관한 중개·유도 또는 편의를 도모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 대가 지급 원인 및 주체를 불문하고 대가를 지급받는 경우를 모두 의료법 제27조 제3항 위반행위가 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위반행위의 범위가 매우 넓어져서, 환자의 필요에 따라 치료 위임계약의 편의를 도모하고 환자로부터 그 비용을 지급받는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제공 행위가 모두 위 의료법 위반행위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위반행위의 범위를 명확히 확정할 필요가 있었다. 대상판결은 의료법 제27조 제3항의 ‘영리목적’ 및 그 ‘대가’의 의미를 동 조항의 입법 취지와 규율 대상을 고려하여 합목적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의료법 제27조 제3항이 금지하는 행위의 태양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행정판례] 6.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은 대물적 성격을 가지므로 폐업한 요양기관에서 발생한 위반행위를 이유로 폐업한 요양기관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의료기관에 대하여 업무정지 처분은 위법 (대법원 2022. 1. 27. 선고 2020두39365 판결) 가. 사실관계 의사인 원고는 병원을 개설·운영하다가 폐업하였고, 폐업 후 두 달 뒤에 새로운 병원을 개설·운영하였다. 원고는 폐업한 병원에서 병원이 아닌 곳에서 진료하고 원외처방전을 발급한 것이 문제가 되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새로 개설한 병원에 대해 10일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게 되자 해당 처분을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나. 사건 경과 1심 및 원심은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은 요양기관의 영업 자체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고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폐업한 요양기관에 대하여는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 없고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은 처분의 대상이 아닌 다른 요양기관에 대한 것이므로 처분이 위법하다고 보아 처분을 취소하였다. 다. 대법원판결의 요지 요양기관이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 비용을 부담하게 한 때에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85조 제1항 제1호에 의해 받게 되는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은 의료인 개인의 자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요양기관의 업무 자체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 비용을 부담하게 한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그 요양기관은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그 처분대상도 없어졌으므로 그 요양기관 및 폐업 후 그 요양기관의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하여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는 없다. 라. 평석 대상판결은 침익적 행정행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하고 그 행정행위의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되며, 그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이 전적으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해석이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서는 아니 된다는 기존 법리에도 부합하는 타당한 판결이다. 한편, 대상판결에서는 구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7호에 의하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인이 속임수 등 부정한 방법으로 진료비를 거짓 청구한 때에는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고 이와 같이 요양기관 개설자인 의료인 개인에 대한 제재 수단이 별도로 존재하는 이상, 위와 같은 사안에서 제재의 실효성 확보를 이유로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85조 제1항 제1호의 ‘요양기관’을 확장 해석할 필요도 없다는 사유를 기재하고 있다. 그러나 설령 제재의 실효성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는 별도의 입법을 통해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보이며 단지 제재의 필요성을 이유로 하여 해당 처분의 성격과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는 해석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차효진 변호사(법무법인(유) 세종)
사무장병원
의료기관개설
의료법제33조제2항
차효진 변호사(법무법인(유) 세종)
2023-11-26
가사·상속
민사일반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관한 대법원의 판례변경
1. 사실관계 및 대법원 결정 가. 사실관계 및 1, 2심 결정 남성으로 출생한 신청인은 혼인하여 현재 미성년인 자녀 2명을 두었으나, 이혼한 후 성형외과에서 고환과 음경을 제거하고 여성의 외부 성기 모양을 갖추는 등의 수술을 받아 여성의 옷차림, 머리 모양을 하고 사회적으로 여성으로서 생활하여 왔다. 신청인은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 허가 신청을 하였다. 원심은 신청인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어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것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는 이유로 허가신청을 기각하였다. 이는 종전의 대법원 2011. 9. 2. 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을 따른 것이다. 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 그러나 대상결정은 위 2011년 판례를 변경하면서 원심결정을 파기환송하였다. 그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성전환자도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므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성전환자의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2) 성별정정은 성전환을 마친 성전환자의 실제 상황을 수용하여 공부에 반영하는 것일 뿐 성전환자인 부 또는 모와 그 미성년 자녀 사이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새롭게 초래하거나 권리의무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미성년 자녀가 부 또는 모의 성전환으로 인하여 정신적 혼란과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혼란과 충격은 부 또는 모가 이미 성전환의 과정을 거쳐 그것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3) 국가는 개인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과 관련된 내용을 불법적으로 외부에 노출하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하고, 성전환자라거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하는 쪽의 편견과 몰이해를 바로 잡기 위해 법률적·제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를 부담함에도, 오히려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성전환자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은 성전환자와 그의 미성년 자녀 등이 사회적 편견으로 인하여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여 가족생활의 안정을 보장하여야 하는 국가의 기본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4)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할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성전환자 본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함과 동시에 미성년 자녀가 갖는 보호와 배려를 받을 권리 등 자녀의 복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때에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필요한 일반적인 허가 기준을 충족하였는지 외에도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여부가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성별정정을 허가할 것인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 결정에 대하여는 2011년 판례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이동원 대법관의 반대의견과, 다수의견에 대한 2개의 보충의견이 있었다.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성전환자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을 성별정정 허가를 고려함에 있어서 하나의 고려사유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설시한 점은 찬성하기 어렵다. [ 평 석 ] 1. 종전의 판례 대법원 2006. 6. 22. 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은, 성전환자에 해당함이 명백한 사람에 대하여는 호적의 성별란 기재의 성을 전환된 성에 부합하도록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원심이 인용한 대법원 2011. 9. 2. 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성별정정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하였다. 위 결정이 성별정정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한 이유는,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미성년 자녀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데, 가족관계등록부의 성별정정으로 인하여 미성년 자녀에게 정신적 혼란과 충격을 줄 수 있고 가족관계증명서의 공개로 미성년 자녀가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에 노출되거나 생활상의 곤란이 생긴다는 점 등이었다. 2. 2011년 판례에 대한 비판 그러나 이러한 2011년 판례에 대하여는 비판이 있었다. 필자도 이 사건에 관하여 판례 변경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였고, 이를 논문으로 발표하였다(윤진수,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서울대학교 법학 제61권 3호, 2020). 그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들이 충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성별정정 허가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전의 부 또는 모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별정정 허가 자체가 자녀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기본권 제한에 관한 비례의 원칙 가운데 방법의 적정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2011년 판례는 성별정정을 허용하게 되면 가족관계증명서에 동성혼의 외관이 현출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현행법상 동성혼이 허용되고 있지 않음은 명백하므로, 가족관계등록부의 기재로 인한 ‘동성혼의 외관’은 애초 성립할 여지가 없다. 셋째, 2011년 판례의 진의는 가족관계증명서의 기재에 의하여 부나 모가 성전환을 하였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짐으로써 자녀가 고통을 받을 것임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는 성전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기정사실로 하여, 미성년 자녀가 이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서, 문제가 있는 논증이다. 넷째, 설령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로 인하여 자녀의 복리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하여 성별정정을 허가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양자를 비교하여 본다면,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이 성전환자에게 주는 불이익이 성별정정 허가에 의하여 미성년 자녀가 입는 불이익보다 훨씬 크므로,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것만으로 성별정정을 불허하여서는 안 된다. 다섯째,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은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기본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자녀가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것은 성별정정 허가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의 부모의 성적 변화 때문이므로, 이러한 자녀의 정신적 충격을 이유로 성별정정 허가를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3. 대상결정에 대하여 대상결정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을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면서 2011년 판례를 변경하였다. 이는 대체로 필자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견에 대한 박정화, 노정희, 이흥구 대법관의 보충의견은, 사법은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입법이나 행정과 달리 다수의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소수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할 때 그 존재 의의가 있다고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판시에 적극 동감한다.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성전환자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을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고려함에 있어서 하나의 고려사유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설시한 점은 수긍하기 어렵다. 다수의견의 설시에 따르더라도,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것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성별정정을 불허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지 알기 어렵다. 필자로서는 대법원이 이처럼 판시하였더라도 앞으로 실무에서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4. 입법의 필요성 기본적으로 성전환자에 대하여 성별정정을 허용할 것인지, 허용한다면 어떤 요건을 갖춘 경우에 허용할 것인지 하는 점은 법률로 규정하여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입법자가 입법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법원이 이 문제에 관하여 사법적극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고{윤진수 (김수인 역), “성전환자의 인권 보호에 있어서 법원의 역할”, 민법논고 제7권, 박영사, 2015 참조}, 이를 가리켜 민주주의, 법치주의 및 권력분립주의를 벗어나서 사법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김중권, 성전환에 따른 성별정정허가가 과연 판례법적 사항인가? 법률신문 제5040호, 2002. 12. 8. 12면)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관하여는 가령 생식능력이 없을 것을 요구하여야 하는가 하는 점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쟁점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하여는 빠른 시일 내에 입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성별정정
자녀
성전환자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2-12-14
가사·상속
민사일반
성전환에 따른 성별정정허가가 과연 판례법적 사항인가?
Ⅰ. 사실관계과 경과 甲은 남성으로 출생하였으나 어린 시절부터 여성으로의 귀속감을 가지고 사춘기가 되어 얼굴 형태와 체격, 목소리가 남성적으로 변해가는 것에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甲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긴 채 생활하다 혼인하였으나 성정체성 문제로 혼인한 지 약 5년 10개월 만에 이혼하였고, 외국에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성의 옷차림, 머리 모양을 하고 사회적으로 여성으로서 생활하고 있다. 甲은 미성년 자녀 2명을 두고 있는 상태에서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 허가 신청(이하 '이 사건 허가 신청'이라 한다)을 하였다. 하급심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를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의 독자적인 소극요건으로 본 대법원 2011. 9. 2.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을 인용하여 甲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을 이유로 이 사건 성별정정허가 신청을 불허하였다. Ⅱ. 대상판결(다수의견)의 요지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도 부모로서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하며(민법 제913조), 친권을 행사할 때에도 자녀의 복리를 우선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민법 제912조),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성전환자의 기본권의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와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법익의 균형을 위한 여러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판단하지 아니한 채 단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을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하여서는 아니 된다.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할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성전환자 본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함과 동시에 미성년 자녀가 갖는 보호와 배려를 받을 권리 등 자녀의 복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때에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필요한 일반적인 허가 기준을 충족하였는지 외에도 미성년 자녀의 연령 및 신체적·정신적 상태, 부 또는 모의 성별정정에 대한 미성년 자녀의 동의나 이해의 정도, 미성년 자녀에 대한 보호와 양육의 형태 등 성전환자가 부 또는 모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 성전환자가 미성년 자녀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과 형성·유지하고 있는 관계 및 유대감, 기타 가정환경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여부가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성별정정을 허가할 것인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Ⅲ. 대법원 2011.9. 2.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다수의견)의 요지 성전환수술에 의하여 출생 시의 성과 다른 반대의 성으로 성전환이 이미 이루어졌고, 정신과 등 의학적 측면에서도 이미 전환된 성으로 인식되고 있다면 전환된 성으로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활동을 하는 데에까지 법이 관여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성전환자가 혼인 중에 있거나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을 정정하여 배우자나 미성년자인 자녀의 법적 지위와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곤란을 초래하는 것까지 허용할 수는 없으므로, 현재 혼인 중에 있거나 미성년자인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은 허용되지 않는다. Ⅳ. 문제의 제기-판례 변경의 허용성 문제 대상판결에서 1인의 대법관(이동원)만이 대법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에 입각하여 반대하고 나머지 대법관들은 다수의견 및 다수의견 보충의견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대법원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에서의 반대의견 특히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다는 사정을 성별정정의 독자적인 소극적 요건으로 설정할 것은 아니고 고려할 요소로 접근해야 한다는 양창수, 이인복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10여 년이 지나서 다수의견이 된 것이다. 판례는 과거사를 다루지만 과거분석과 과거평가로부터 현재는 물론, 미래를 결정한다. 여기서 개별 구체적 타당성을 목표로 하는 이상, 판례가 시대상황에 맞춰 부단히 기왕의 입장을 바꾸는 것은 자연스럽고 나아가 요구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유의할 점이 있다. 과연 그런 변경이 전체 법질서에서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의 물음인데, 이는 해당 사법적 활동이 민주주의, 법치주의 및 권력분립주의에 저촉되지 않는지를 검토하면서 얻어질 수 있다. 성별정정의 문제는 단지 등록기록의 정정에 그치지 않고 향후 가족 및 혼인의 개념과 의의와 관련해서 법적, 법외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판례에 의한 성별정정허가제는 허용된 법관의 법형성을 넘어선 것이다. 의회가 입법보다 앞서는 사회의 변화에 둔감하여 자신의 임무를 심각하게 방기하고 있는 점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법치주의 및 권력분립주의를 벗어나서 사법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Ⅴ. 판례에 의한 성별정정허가의 법적 정당성 문제 가족관계등록법 제104조(구 호적법 제120조) 제1항이 등록기록의 정정의 사유를 '등록부의 기록이 법률상 허가될 수 없는 것 또는 그 기재에 착오나 누락이 있다고 인정한 때'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2006. 6. 22. 선고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 이래로 판례는 성전환에 따른 성별정정허가의 근거를 가족관계등록법 제104조에 두고 있다. 그리고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대법원 호적예규 제716호 2006. 9. 6.)'이 제정되었다. 문헌상으로도 시인되고 입법자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지속적 판례'가 성립하면, 판례의 사실적 구속성은 규범적 구속성으로 응축될 수 있으며, 이 경우 판례법적 원칙은 추정적으로뿐만 아니라 법 그 자체로부터 구속성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전환에 따른 성별정정허가제는 일종의 판례법에 해당한다. 국가의 공권력행사는 민주적 정당성을 필요로 하는데 그 기제가 법률이다. 즉 국가의 공권력행사는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성전환에 따른 성별정정허가를 이렇게 판례법적으로 접근하는 것 즉, 판례에 의한 성별정정허가의 허용성은 법률유보의 원칙의 차원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법관은 '법의 입(bouche de la loi)'으로서만 기능하며, 법의 해석·구체화·적용은 현행 법질서를 넘어 새로운 법질서를 제시하는 양상인 법정립(입법)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역시 법의 후속적 형성(Rechtsfortbildung)이란 법원의 임무와 권능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들 기본법 제20조 제3항의 법관의 법·법률의 구속에 의해 도출된 한계 역시 강조하였다(Vgl. BVerfGE 34, 269(286ff.)). 성(性)의 변경은 특정인의 개인사에 그치지 않고, 공동사회의 지배적 법 에토스(Ethos)는 물론, 기왕의 법질서에 대해서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판례법이 법률유보를 대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성별정정의 문제는 단지 등록기록의 정정에 그치지 않고 향후 가족 및 혼인의 개념과 의의와 관련해서 법적, 법외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여기서 단순히 신청인의 행복추구권만을 극대화시켜서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판례에 의한 성별정정허가는 허용된 법관의 법형성을 넘어선 것이다. Ⅵ. 미성년 자녀의 존재와 관련해서 성별정정허가의 재량적 접근의 문제 대상판결은 미성년 자녀의 존재와 관련한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성별정정허가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는데, 이런 논증은 미성년 자녀가 존재함에 따른 개별구체적인 사정을 최대한 반영하여 개별적 정의의 차원에서 성별정정허가의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런 논증은 기본적으로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여 개별사건에 알맞고 합사실적인(실체에 맞는) 최적의 해결책을 발견하고자 하는 재량 메커니즘에서 행해진다. 결국 대상판결은 법관의 성별정정허가를재량인양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량적 접근은 정형성과 형식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신분관계의 설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성별정정허가의 기준이 입법을 통해 명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전환자의 기본권의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와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법익의 균형을 위한 여러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법관의 판단 자체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고조시킬 뿐이다. 미성년 자녀가 존재한 상황에서 행해진 성별정정불허가 자체가 오히려 사법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 Ⅶ. 맺으면서 - 대법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의 바람직하지 않은 나비효과 혼돈에서의 나비효과는 초기조건의 아주 작은 차이가 최종 현상에서 아주 커다란 차이를 낳는다고 주장한 프랑스 수학자 푸앵카레의 '초기조건의 민감성(sensitivity on initial conditions)'에서 비롯되었다. 성전환자의 성별정정과 관련하여 지금의 입법부재의 상황을 초래한 초기조건이 바로 대법원 2004스42전원합의체결정이다. 성전환자의 성별정정과 관련하여 일찍이 1972년에 스웨덴에서 입법이 마련된 이래 대부분 국가는 관련 입법을 두고 있다. 일본에서는 성전환에 따른 호적변경이 2001년에 법원에 의해 허용되지 않은 후 2003년에 관련 법률(性同一性障害者の性別の取扱いの特例に関する法律)이 제정되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1980년 성전환법(TSG)을 대체하는, 신고에 의해 성별전환이 가능하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성자기결정법(Selbstbestimmungsgesetz)의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일찍이 입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지만('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의 問題點에 관한 小考, 법률신문 제3493호, 2006. 9. 25.), 아쉽게도 그 이후 해당 지침이 참조조문에서 사라지는 데 그쳤다. 의회가 입법보다 앞서는 사회의 변화에 둔감하여 자신의 임무를 심각하게 방기하고 있는 점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법치주의 및 권력분립주의를 벗어나서 사법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성별정정
자녀
성전환자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2022-12-08
민사일반
의료사고
의료과오소송에서 증명책임의 경감
1. 사실관계 원고는 2013년 7월경 피고로부터 추간판 절제술과 인공디스크 삽입술 등을 시행 받았다. 피고가 시행한 전방 경유 요천추 추간판 수술(이하 '전방 경유술'이라고 한다)의 대표적인 합병증은 비뇨기관과 성기관 등에 분포하는 상하복교감신경총의 손상이고 위 신경총에 손상이 가해지는 경우 남성에게는 역행성 사정이 발생하는바 원고는 위 수술 후 사정장애 및 역행성 사정 등의 증상(이하 '이 사건 장해'라고 한다)을 보이고 있다. 2. 소송의 경과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인천지방법원은 2014가합3052 판결로 원고가 이 사건 수술 직후 그 장해 진단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부위의 밀접한 연관성 등으로 미루어 이 사건 수술과 장해 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재되었을 가능성이 희박한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장해는 피고가 이 사건 수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의 과실에 의하여 초래된 것이라고 추정함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2016. 12. 8. 선고된 2016나2021634 판결(이하에서는 '원심판결'이라고 한다)에서 제1심 판시와 비슷한 이유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으나 대법원은 2019. 2. 14. 선고 2017다203763 판결(이하에서는 '대상판결'이라고 한다)로 원심이 의료소송에서의 증명책임, 과실과 인과관계의 추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이 사건 수술 과정에서 피고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음을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3. 대상판결의 요지 가. 의료과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 의료행위 과정에서 저질러진 과실 있는 행위를 증명하고 그 행위와 결과 사이에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증명책임이 완화된다. 나.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서 일반인으로서는 의사의 과실, 그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문제된 증상 발생에 관하여 의료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을 증명함으로써 그와 같은 증상이 의료과실에 기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을 가지고 막연하게 중대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지는 않는다. 의료행위로 후유장해가 발생한 경우 후유장해가 당시 의료수준에서 최선의 조치를 다하는 때에도 의료행위 과정의 합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면, 후유장해가 발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행위 과정에 과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없다. 다. 피고가 전방 경유술을 택한 것이 의사에게 인정되는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거기에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할 수 없고 수술 중에 위 신경총이 손상되어 이 사건 장해가 발생하였다고 보더라도 그것만으로 피고의 과실을 추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장해는 전방 경유술에 따른 일반적 합병증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원심으로서는 신경손상을 예방하기 위하여 피고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 신경손상과 그로 인한 역행성 사정 등의 결과가 수술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의 범위를 벗어나 피고의 의료상 과실을 추정할 수 있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 4. 검토 의료행위의 전문성과 진료과정의 밀실성, 그에 따른 증거의 편재성 등으로 일반인이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 발생 사실을 명확히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소송을 통한 손해의 공평 분담을 위해서는 환자 측의 증명책임을 경감시키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대법원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실상 추정론'에 근거하여 간접사실에 경험칙을 적용하여 과실과 인과관계를 동시에 추정하는 방식으로 과실 등에 대한 증명책임을 경감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일반인의 상식'에 기초하여 과실을 증명한 후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방식에 따른 대법원 1995. 2. 10. 선고 93다52402 판결이 선고되었고 영미법상의 일반상식론(Common knowledge theory) 또는 사실추정칙(Res Ipsa Loquitur Doctrine)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위 판결은 그 의미 등에 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의료소송에서의 증명책임 경감에 관한 획기적인 판례로서 수많은 관련 사건에서 인용되고 있다. 한편 위 93다52402 판결 이후에도 간접사실에 의하여 과실과 인과관계를 동시에 추정하는 방식을 보충적 또는 병존적으로 사용하는 판결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간접사실들이 의사의 과실을 추정할 수 있는 정도로 개연성이 담보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거나 발생된 악결과가 통상의 합병증인 경우에는 과실 추정이 불가하다고 하는 등으로 증명도를 더 높임으로써 증명책임 경감에 역행하는 듯한 재판례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대상판결 역시 그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바 그 판결에는 아래와 같은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대상판결은 판시내용 등으로 미루어 간접사실에 의한 동시추정 방식에 따른 것으로 보임에도 그와 관계없는 93다52402 판결을 원용함으로써 증명책임 경감의 방식에 혼란을 야기한다. 위 판결과 Common knowledge theory나 Res Ipsa Loquitur Doctrine의 연관성으로 미루어 그 법리는 극히 예외적인 의료과오사건에 적용될 수 있을 뿐임에도 그와 무관한 사안에까지 무분별하게 그 판지를 원용함으로써 과실 증명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93다52402 판결이 의사의 과실이 명백한 일부 사안에서라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일반인의 상식에 반하는 과실'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그에 따른 의료행위 준칙을 제시하는 노력을 하든가 증명책임 감경에 관하여 종전의 동시추정의 방식으로 일원화하는 결단을 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동시추정의 방식에 과도한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45185 판결은 동시추정의 방식을 채용하면서도 '막연하게 중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 및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하였고 그 입장은 그대로 대상판결에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나 동시추정의 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밝힌 재판례 사안들 대부분은 '다른 원인 개입가능성의 배제 불가'라는 사정과 관련되어 있는바 인과관계만 인정되면 무제한 확장이 가능한 '다른 원인'의 인정 여부에 관하여 법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다는 점, 진료 정보와 의학지식 측면에서 현저하게 열세인 환자 측에게 그 개입가능성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은 위험영역설이나 증거거리설에 비추어 너무 부당하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2002다45185 판결 입장은 부당하고 이와 궤를 같이하는 대상판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셋째, 환자 측에게 의사의 과실 등과 관련하여 너무 높은 증명도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상판결은 피고가 신경손상 위험이 없는 후방 경유술이 가능함에도 그 위험이 따르는 전방 경유술을 시행한 것은 의사의 재량으로 과실 인정과는 무관하고 후유장해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한 그 발생사실만으로 의료행위 과정에 과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재량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부과되거나 그 수위가 더 높아져야 하는 점, 후유장해가 발생한 영역이 의사가 지배하는 범위 안에 있는 점, 정보나 증거 측면에서 후유장해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 범위 내라는 의사의 증명이 환자가 그 반대사실을 증명하는 것보다 훨씬 용이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장해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 범위 내라는 사실에 관한 증명책임을 의사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옳다고 보여지므로 위 장해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대상판결의 견해에는 역시 동의할 수 없다. 나아가 환경정책기본법 제44조와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6조, 제조물책임법 제3조와 제3조의2,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조 등에서 무과실책임이나 인과관계의 추정 등을 규정하고 있는 점, 의료소송의 경우 진료계약이 체결된 사람들 사이의 분쟁일뿐더러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이나 치과 보철치료 등과 같이 결과채무로 파악할 수 있는 의료행위가 적지 않는 등 의료소송에서의 증명책임이 환경침해소송 등보다 더 높아야 할 이유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과실 등에 관한 증명책임 전환에 관한 법해석론 또는 입법론적 검토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김태봉 교수(전남대 로스쿨)
의료소송
입증책임
의료과실
김태봉 교수(전남대 로스쿨)
2020-10-15
민사일반
상당한 기간 피상속인을 동거·간호한 배우자의 기여분
[대상 결정] 1. 사실관계 가. 피상속인(1918년생 남자)은 1940년 10월 1일 청구외인(1916년생 여자)과 혼인하여 그 사이에 청구인들 9명을 자녀로 두었다. 피상속인은 1971년 초 상대방 A(1944년생 여자)를 만나 중혼적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사이에 상대방 B, C를 자녀로 두었다. 피상속인은 청구외인이 1984년 7월 26일 사망하자 1987년 5월 16일 상대방 A와 혼인신고를 하고 2008년 3월 1일 사망할 때까지 피상속인 소유의 주택에서 함께 살았다. 나. 상속재산으로는 부동산 13건 시가 합계 약 32억원, 상속채무로는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 등 5억원이 있다. 특별수익액은 청구인들 중 3명이 각 1억5900만원, 1억6300만원, 9500만원이고 상대방 A는 5억1200만원, 상대방 B와 C는 각 3억8100만원 상당이다. 다. 피상속인은 2003년 3월부터 사망할 때까지 약 5년 동안 여러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아 왔고 10여회에 걸쳐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상대방 A는 그 대부분의 기간 피상속인을 간호하였다. 라. 상대방 A는 2002년 10월경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2007년 12월경 담도암 판정을 받았으며 이 사건이 대법원에 계속 중이던 2014년 8월 8일 사망하였다. 2. 제1, 2심의 경과 피상속인 상속재산의 적정한 분할을 구하는 청구인들의 본심판청구에 대하여 상대방들은 상당한 기간 투병 중인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하였음을 주장하면서 30%의 기여분을 반심판으로 구하였다(다만 피상속인의 자녀들인 상대방 B, C의 기여분 청구는 여기서의 논의에서는 제외한다). 제1, 2심은 피상속인이 병환에 있을 때 상대방 A가 피상속인을 간호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상대방 A는 피상속인의 배우자로서 통상 기대되는 정도를 넘어 법정상속분을 수정함으로써 공동상속인 사이의 실질적인 공평을 기하여야 할 정도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였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대방 A의 기여분 청구를 배척하였다. 3. 대상 결정의 판단 가. 다수의견의 요지 배우자의 기여분 인정 여부와 그 정도는 민법 제1008조의2의 문언상 가정법원이 배우자의 동거·간호가 부부 사이의 제1차 부양의무 이행을 넘어서 '특별한 부양'에 이르는지 여부와 더불어 동거·간호의 시기와 방법 및 정도뿐 아니라 동거·간호에 따른 부양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규모와 배우자에 대한 특별수익액, 다른 공동상속인의 숫자와 배우자의 법정상속분 등 일체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하여 배우자의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따져서 판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위에서 든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A에게 기여분 청구를 배척한 원심결정에는 잘못이 없다. 나. 소수의견(조희대 대법관)의 요지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상당한 기간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하는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부양한 경우 배우자의 이러한 부양행위는 민법 제1008조의2 제1항에서 정한 기여분 인정 요건 중 하나인 '특별한 부양행위'에 해당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배우자에게 기여분을 인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심결정은 기여분 인정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으므로 파기되어야 한다. [연구] 1. 배우자의 부양행위와 기여분 대상 결정의 소수의견은 ① 다수의견이 배우자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려는 2005년 3월 31일 개정 민법의 입법 취지나 기여분의 인정 여부와 그 정도를 구별해서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1008조의2의 문리적·체계적 해석에 맞지 않고 ② 부부가 동거하고 부양할 의무가 있다는 것과 동거하고 부양할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배우자에 대하여 기여분을 인정하는 것은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③ 배우자의 기여분은 부부공동형성재산의 청산이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배우자와 다른 공동상속인들 사이에서 상속분을 공평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고 ④ 배우자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인구 고령화, 핵가족화, 노인 돌봄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법 제1008조의2 제1항의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는 기여분이 인정될 수 있는 부양행위의 여러 태양 중 하나이고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가 1차적 부양의무로서 성년의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보다 더 높은 정도를 요구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그러한 행위가 신분관계로부터 통상 기대되는 정도를 넘는 '특별한' 부양으로 평가되는 경우에 한하여 기여분을 인정하는 것이 문리적으로나 법률의 일반적인 규정 형식이나 다른 상속 규정들과의 체계적 해석의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또한 기여분이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형평을 위하여 법정상속분을 수정하는 요소라면 동거나 간호의 시기와 방법 및 정도뿐 아니라 그 부양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규모와 배우자에 대한 특별수익액, 다른 공동상속인의 숫자와 배우자의 법정상속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여분 인정 여부를 법원이 후견적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사회 현실의 변화에 따라 배우자 기여분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기여분 인정보다는 '부양의 특별성'에 대한 해석과 구체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법원의 실무에 의하여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고려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러한 점에서 다수 의견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2. 배우자의 상속분 가. 기여분과 특별수익 인정에 관한 실무 경향 종래 상속재산분할을 담당하는 하급심에서는 기여분 인정에 매우 엄격한 경향이 있었고 기여자가 배우자인지 혹은 자녀인지 등 신분상의 지위에 따라 기여분 인정 여부를 달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 하급심에서는 기여분 인정에 관하여 엄격성이 다소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재산적인 기여뿐 아니라 피상속인을 간호하고 부양하는 것과 같은 무형의 비재산적 기여행위에 대하여도 기여분을 인정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서울가정법원 2018. 4. 16.자 2014느합30039 심판, 서울가정법원 2018. 9. 10.자 2016느합93 심판, 부산가정법원 2018. 11. 22.자 2016느합200041 심판 외 다수). 나아가 배우자의 기여분이 직계비속 등 다른 공동상속인들의 기여분보다 인정되는 빈도와 비율이 대체로 높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한편 배우자가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 증여를 받았더라도 그것이 기여의 대가로 평가될 수 있다면 특별수익에서 제외하는 실무례도 보인다. 이는 배우자에 대한 피상속인의 생전 증여가 배우자의 기여나 노력에 대한 보상 내지 평가, 실질적 공동재산의 청산, 배우자 여생에 대한 부양의무 이행 등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는 이유로 생전 증여를 특별수익에서 제외하더라도 자녀인 공동상속인들과의 관계에서 공평을 해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본 대법원 판결(2011. 12. 8. 선고 2010다66644 판결 참조, 다만 위 판결은 기여분을 고려할 수 없는 유류분반환청구에 관한 것이다) 등을 근거로 한다. 나. 상속에 있어서 배우자 보호에 대한 논의 이러한 실무례는 이혼의 경우와 비교하여 상속의 경우 현재의 법정상속분만으로는 배우자 보호에 미흡하므로 생존 배우자의 상속분을 강화하자는 입법론과도 어느 정도 생각이 맞닿아 있다. 2014년 법무부 민법 개정 시안에서는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의 2분의 1을 배우자 몫으로 우선 공제하는 규정(배우자의 선취분)의 도입이 논의된 바 있다. 한편 2018년 7월 13일 공포된 일본의 개정 상속법에서는 배우자의 상속분 인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혼인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일방 배우자가 타방 배우자에게 거주용 부동산을 유증·증여한 경우 그 부동산은 배우자의 특별수익 계산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일본 개정 민법 제903조 제4항 참조). 다. 대상 결정의 기여분 판단 대상 결정은 상대방 A의 특별수익액이 전체 특별수익액의 30%에 해당하는 정도이고 부양 비용을 피상속인의 수입으로 충당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기여분 청구를 배척하였다. 그러나 상대방 A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피상속인과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동거하였고 자신 역시 고령임에도 오랜 기간 80대가 넘는 피상속인의 병시중을 한 점, 상대방 A도 피상속인의 간호 중 암에 걸려 결국 사망하게 된 점, 상대방 A의 특별수익액은 간주상속재산 가액의 11% 정도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기여분을 인정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더구나 대상 결정의 다수 의견이 무형의 비재산적 기여행위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하급심 실무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해당 사안에서는 상대방 A의 기여분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3. 결론 배우자가 장기간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피상속인을 간호한 경우 그 자체로 기여분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부양의 '특별성'을 인정할 만한 여러 요소를 종합해서 판단하여야 한다는 대상 결정의 다수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대상 결정이 부양행위와 같은 무형적 기여행위에 관한 기여분 청구를 배척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되는 것은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기여행위의 '특별성'을 판단하는 법원의 실무가 중요할 것인데 급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긴밀해진 부부관계에서 생존 배우자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동거·간호와 같은 부양행위를 기여분으로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실무가 필요하다. 김성우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상속
간병
유산
부양의무
김성우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2020-01-02
헌법사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검토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11일 재판관 7대2의 결정으로 형법상 자기낙태죄 조항(제269조 제1항)과 업무상승낙낙태죄 조항(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2017헌바127, 이하 '대상결정'). 다만, 위헌의견 7인 중 4인이 ‘헌법불합치 및 계속적용’을 주장하여 결국 주문(主文)은 '헌법불합치 및 2020년 12월 31일까지 계속적용'이 선택되었다.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7년 전에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었고(2012. 8. 23. 2010헌바402, 이하 '종전결정'), 당시에는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이 4대4로 나누어졌었다. 대상결정에 대해서는 앞으로 여러 관점에서 상세한 분석과 검토가 이루어지겠지만, 여기서는 우선,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몇 가지 쟁점들에 대해 그 의미와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기본권의 충돌'에 대한 이해의 변화(?)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심사에서 종종 '기본권의 충돌'을 검토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법률의 위헌심사에서 기본권충돌을 언급하는 것은 기본권충돌이 문제되는 상황과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기본권충돌은 충돌하는 기본권의 조정을 위한 입법단계에서 혹은 입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일반법원의 재판이나 재판소원) 충돌하는 두 기본권을 조정하는 원리이고, 일단 입법이 이루어진 후 그 법률의 위헌성을 심사하는 단계에서는 대립하는 기본권이 이미 공익(입법목적)으로 전환되어 과잉금지원칙(또는 과소보호금지원칙)의 적용만이 문제될 뿐 기본권충돌 논의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한수웅, 헌법학, 법문사(제5판), 516-517면).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심사에서 기본권충돌을 언급하면서도 사안을 과잉금지원칙에 의해 심사하였고, 기본권충돌의 해결방안으로 제시되는 ‘실제적 조화의 원리’도 결국 과잉금지원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함으로써(2013. 6. 27. 2012헌바37, 판례집 25-1, 506, 512), 법률의 위헌심사에서 기본권충돌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상결정의 다수의견(헌법불합치의견)은 '심사기준' 항목에서 '이 사안은 국가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확정적으로 만들어 놓은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인지 여부에 대한 것이다. 자기낙태죄 조항의 존재와 역할을 간과한 채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직접적인 충돌을 해결해야 하는 사안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하여 앞에서 본 학설의 비판을 수용하는 듯한 설시를 하였다. 다만, 법률의 위헌심사에서도 기본권충돌 논의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견해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바(과잉금지원칙은 자유권 행사가 공익침해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간접적으로 대립당사자의 자유를 훼손하는 경우 적용되는 것이어서, 자유권 행사가 직접적으로 대립당사자의 자유를 훼손하는 기본권충돌의 경우에는 문제되는 충돌 상황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므로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에서도 기본권충돌은 의미가 있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김하열, '자유권 제한입법에 대한 위헌심사', 동아법학 제56호, 1-35면), 기본권충돌 논의가 부적절한 이유에 대해 다수의견이 보다 분명하고 상세하게 설시할 필요는 있었다. 이 부분은 기본권충돌에 관한 종래 헌법재판소 입장과 명백히 구별되는 것으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2. '자기결정권'인가, '자기운명결정권'인가? 헌법재판소는 간통죄(2011헌가31등), 성매매(2013헌가2), 혼인빙자간음죄(2008헌바58등), 연명치료중단(2008헌마385) 등의 사건에서 '자기운명결정권'이란 표현을 사용한 바 있고, 낙태죄에 대한 종전결정에서도 '자기운명결정권'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대상결정에서는 청구인이 '자기운명결정권'을 주장했음에도 위헌의견과 합헌의견 모두 '자기결정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기결정권과 자기운명결정권은 완전히 호환가능한 개념인가? 두 표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인가? 자기결정권과 자기운명결정권은 의미도 다르고 보호영역도 달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기결정권의 보호영역은 자기운명결정권보다 훨씬 넓다. 자기결정권에는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이 모두 포함될 수 있어서, 그 자유박탈의 의미가 매우 추상적이다. 반면, 자기운명결정권의 경우 그 제한의 의미는 무겁고 심각하게 느껴진다. 헌법재판소가 성적자기결정권이 문제된 사건들을 자기운명결정권으로 표현하고 낙태가 문제된 사건에서 자기결정권으로 표현한 것은 어딘지 기이하다. 하나의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것, 그의 부모가 되는 것, 그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가는 것, 아니면 그 모든 가능성들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결정만큼 운명적인 결정이 또 있겠는가? 자기운명결정권이란 표현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경우가 아닐까? 3. 위헌의견에 대하여 다수의견(헌법불합치의견)은 낙태죄 조항이 입법목적 정당성과 수단적합성은 인정되지만 침해최소성과 법익균형성을 위반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하였는데, 그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자기결정권에는 여성이 출산 여부를 결정할 권리도 포함된다. (2)인간생명의 발달 단계에 따라 보호를 달리하는 것은 가능하다. (3)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임신 22주)가 보호의 정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4)태아의 착상시부터 독자적 생존가능시기까지는('결정가능기간') 사회적, 경제적 사유로 인해 낙태갈등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에게 낙태를 허용하여야 한다. (5)낙태죄 조항이 모든 낙태에 대해 예외없이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태아는 생존을 위해 모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독자적 생존가능시기를 기준으로 태아의 생명권 제한에 규범적 판단을 달리하는 것은 가능한 입론으로 보인다. 다만, 낙태죄 조항이 위헌인 이유 또는 그 범위가 불명확하다. 특히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대해 예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일정한 규율영역으로 확정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는 입법자에게 명확한 입법지침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단순위헌의견은 위에서 본 다수의견 논거들에 동의하면서, 더 나아가 임신 전체 기간을 3분기(trimester)로 나누어 제1분기(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동안에는 아무런 제한없이 낙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기간에 자유로운 낙태가 허용되어야 하는 이유는 '태아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 수술이 가능한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임신기간을 3분기로 나누는 것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며, 낙태가 허용되어야 하는 사유로 안전한 낙태를 드는 것은 '1분기에는 왜 태아의 생명침해가 정당화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임신여성에게 안전하기 때문이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부당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4. 합헌의견에 대하여 합헌의견은 태아는 그 시기를 불문하고 생명보호 필요성에 있어 출생한 사람과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므로 위헌의견에서 말하는 결정가능기간이나 3분기에 의한 구분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임신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본다. 다만, 합헌의견은 대상결정의 사안을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충돌'이라고 하였으나, '낙태의 자유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통해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함으로써, 명시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본권의 충돌 상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5. 주문의 문제점 대상결정이 자기낙태죄가 위헌으로 판단되면 논리적으로 위헌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형법 제270조 제1항을 굳이 '의사' 부분으로만 심판대상을 한정한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입법개선이 필요한 헌법불합치 주문을 내면서 형법 제270조 제1항 전부가 아닌 '의사' 부분만 헌법불합치를 선언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대상결정은 형벌조항에 대해 계속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는데, 위헌으로 판단된 형벌조항의 계속적용을 명하는 것은 법치주의원리에 위반되고, 형벌조항은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이 상실되도록 한 헌법재판소법의 명문규정에도 반한다(제47조 제3항). 위헌인 형벌조항을 계속적용하는 도중에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경우 그 개선입법이 당연히 소급하는지, 소급한다면 그 시기는 어디까지인지도 문제되는데,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개선입법이 헌법재판소의 취지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 그 개선입법의 위헌 여부가 다시 문제될 수 있고 개선입법이 재차 위헌으로 결정될 경우 그 소급효의 범위 또한 다시 문제된다. 헌법재판소는 법적공백의 방지를 명분으로 헌법불합치 주문을 선택하지만 헌법불합치결정과 개선입법 사이에, 혹은 그 이후까지 법적 규율의 불확정으로 인해 법적안정성이 위협받는다. 무엇보다도 대상결정의 헌법불합치의견은 스스로 낙태죄 조항의 실효성을 부인하고 그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하였음에도, 단순위헌결정으로는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되어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긴다고 한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이는 헌법불합치결정이 위헌결정의 효력에 관한 명시적인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이른바 법률의 흠결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예외적인 주문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구체적 검토 없이 헌법불합치 주문을 남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상결정에서는 위헌의 영역을 특정하여(예컨대, 독자적 생존가능시기) 한정위헌을 선고하거나, 위헌 영역을 특정하기가 불가능하다면 단순위헌을 선고했어야 할 것이다. 전상현 교수 (서울대 로스쿨)
형법
의사낙태죄
낙태
전상현 교수 (서울대 로스쿨)
2019-06-17
행정사건
행정청의 재량과 판단여지
- 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3두21120 - Ⅰ. 사실관계 및 소송경과 원고는 서울에서 OOO안과를 운영하면서 눈미백수술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었다. 피고 보건복지부장관은 2010년 3월 23일 눈미백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민원제기 등을 함에 따라 그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신의료기술평가를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안과, 성형외과, 연구방법론 전문가 등 총 7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수술의 안정성·유효성을 평가하도록 하고, 2011년 2월 25일 위 평가결과를 토대로 최종심의를 하였다. 피고 보건복지부장관은 2011년 3월 3일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심의결과에 따라눈미백수술이 안정성이 미흡한 의료기술이고, 국민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원고에게 눈미백수술의 중단을 명하였다. 원고는 서울행정법원에 중단명령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기각판결(서울행정법원 2012. 2. 22, 2011구합17233)을 받았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여 승소판결을 받았다(서울고법 2013. 8. 30, 2012누9213). 이에 대하여 피고는 상고하였으며,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대법원 2016. 1. 28, 2013두21120). Ⅱ. 대법원 판결의 요지 의료법 제53조 제1항, 제2항, 제59조 제1항의 문언과 체제, 형식,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의료법의 목적 등을 종합하면, 불확정개념으로 규정되어 있는 의료법 제59조 제1항에서 정한 지도와 명령의 요건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행정청이 어떠한 종류와 내용의 지도나 명령을 할 것인지의 판단에 관해서는 행정청에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다.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평가나 신의료기술의 시술로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지에 관한 판단은 고도의 의료·보건상의 전문성을 요하므로, 행정청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목적에서 의료법 등 관계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에 대하여 전문적인 판단을 하였다면,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거나 판단이 객관적으로 불합리하거나 부당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행정청이 전문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재량권의 행사로서 한 처분은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거나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는 등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 아닌 이상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Ⅲ. 평석 의료법 제53조 제1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54조에 따른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등에 관한 평가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의료법 제59조 제1항은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보건의료정책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법률요건에 “안전성·유효성” 및 “국민건강에 중대한 위해”라는 불확정법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법률요건에 불확정법개념이 사용된 경우에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되는지 또는 이와 구별되는 개념인 ‘판단여지’가 인정되는지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특히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행정재량은 법률효과에 가능규정이 사용된 경우뿐만 아니라(효과재량), 법률요건에 불확정법개념이 사용된 경우에도 인정되었다(요건재량). 그러나 전후(戰後) 실질적 법치국가의 구축과정에서 판례와 학설은 행정재량을 축소시키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시도는 특히 법률요건 부분에서 행정재량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재량이란 법률효과 부분에 가능규정을 두어 2개 이상의 동가치적인 행위사이에 선택권을 부여한 경우에 주어지며, 법률요건 부분에서 사용되는 불확정법개념은 하나의 올바른 해석과 적용만을 허용하고, 이것은 완전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관철되었다. 법률요건에 부여되는 요건재량은 불확정법개념의 구체화 과정이며 이는 단순한 인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인식의 영역에서는 법률효과의 영역과는 달리 어떠한 선택이 있을 수 없으며, 단지 하나의 올바른 판단만이 존재한다. 불확정법개념의 적용에 있어서 법적·사실적 문제는 그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기술분야의 평균적이고 지배적인 견해에 따라 충분하게 특정화된 내용으로 구체화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다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행정청에게 판단여지가 부여될 수 있는바, 이는 행정재량과 상이한 논리적 구조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여지이론은 전후 독일의 학설과 판례에 의하여 발전 되었는바(이에 대하여 상세히는 정하중, 행정법의 이론과 실제, 191면 이하), 오늘날 다수설인 판단수권설에 따르면 행정청의 판단여지는 불확정법개념의 포섭과정에서 주어진다. 확인된 사실관계가 법률요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는 인식작용으로서 하나의 올바른 판단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경우에 ‘안정성·유효성의 인정’과 ‘안정성·유효성의 부정’의 두 가지 판단이 동시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둘 중에 하나의 판단만이 옳으며 또한 허용되는 것이다. 포섭에 있어서 하나의 올바른 판단에 대한 최종적 인식의 권한은 일반적으로 법원에게 주어지나, 법률요건에 불확정법개념이 사용된 경우에는 행정의 전문성과 책임성, 경험, 행정조직의 구성 등을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행정청에게 마지막 인식의 권한이 부여된다는 것이 판단여지의 이론의 핵심이다. 행정청은 유일하게 적법하다고 판단되는 결정에 도달하기 위하여 주어진 법률요건의 의미를 철저히 파악하여야 하나 한계적인 상황에서는 의심이 발생할 수 있다. 판단여지란 그 의심이 근거가 있고, 행정청에 의하여 내려진 결정이 타당하다면 법원이 행정청의 판단을 적법하다고 수인하는데 있다. 독일의 실무에서 판단여지가 인정되는 대표적인 경우들로 ① 비대체적 결정, ② 합의제 행정기관의 구속적 가치평가, ③ 예측결정, ④ 행정정책적인 결정 등이 있다. 판단여지가 인정되어 사법심사가 제한되는 경우에 있어도 법원은 ① 합의제 행정기관이 적법하게 구성되었는지 여부, ② 법에서 규정된 절차의 준수여부, ③ 일반적으로 인정된 평가기준이 준수되었는지 여부, ④ 사안과 무관한 고려 내지는 자의성 개입 여부에 대하여 심사를 하여야 하며, 이러한 한계를 넘는 경우에는 행정청의 결정은 위법하게 된다(정하중, 행정법개론, 11판, 176면) 우리 판례는 지금까지 법률효과에 가능규정이 사용된 경우뿐만 아니라(대판 1994.10.11, 93누22678 ;2002. 11. 8, 2001두1512), 대상판결과 같이 법률요건에 불확정개념이 사용된 경우에도 행정재량을 인정하고(대판 2000. 10. 27, 99누264 ; 2005. 7. 14, 2004두6181) 재량의 일탈·남용의 법리에 의하여 사법통제를 하여왔다. 그러나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법이론적 관점에서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재량의 일탈·남용 법리는 법률효과의 선택과 관련하여 발전된 재량의 하자이론으로서, 법률요건의 포섭과 관련하여 적합한 통제기준이 될 수 없다. 법률요건에 포섭은 하나의 올바른 판단을 전제로 하는 인식작용으로서, 여기서는 재량의 일탈·남용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정청의 판단이 판단여지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졌는지 여부가 심사대상이 되는 것이다. 법률요건에 행정재량을 부인하고 아주 한계적인 상황에서만 판단여지를 인정하게 된 배경은 재량이 광범위하게 행사되어 행정권한이 남용되었던 시대에 대한 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독일에서 부분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판단여지설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고 있지 않은 사법부가 지나치게 행정을 통제함으로써 행정이 활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주된 논거로 하고 있으나,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그나마 위에서 언급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된 판단여지를 기본권보호의 관점에서 더욱 제한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법률효과뿐만 아니라 법률요건에도 재량을 인정하는 법리는 결과적으로 행정부에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하게 되어,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도’를 발생시킨 원인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판례는 대상판결과 같이 재량의 일탈과 남용을 개념적 구별 없이 함께 나열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관련 처분이 재량의 일탈에 해당하는지 남용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재량의 일탈, 남용 및 해태는 재량의 하자의 별개 유형으로서 향후 엄격하게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정하중(서강대 로스쿨 명예교수)
눈미백수술
신의료기술
행정재량
정하중 명예교수 (서강대 로스쿨)
2017-08-29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원칙적으로 '불가'… 예외사유는 '확대'
-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 568 전원합의체 판결- 1. 들어가면서 대법원은 1965년 혼인파탄에 책임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한 이후 엄격한 유책주의를 유지해 왔다. 대법원은 유책배우자가 청구한 이혼사건을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에 회부하여 판례변경 여부를 검토하기 위하여 지난 6월 공개변론까지 열었다. 이번 대법원 선고에 나타난 대법관들의 입장은 팽팽하게 나뉘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6명의 대법관 등 7명은 유책주의 입장에서 종전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다수의견)이었고, 주심 대법관을 포함한 6명은 파탄주의 입장에서 종전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반대의견)이었다. 2. 전원합의체 판결의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1976년 3월 9일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로서 그 사이에 성년인 자녀 3명을 두고 있는데, 원고는 2000년 1월경 집을 나와 원고의 딸을 출산한 여자와 동거하고 있고, 피고는 원고가 집을 나간 후 혼자서 세 자녀를 양육하였다. 피고는 직업이 없고 원고로부터 생활비로 지급받은 월 100만 원 정도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그나마 2012년 1월경부터는 원고로부터 생활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피고는 원심 변론종결 당시 만 63세가 넘는 고령으로서 위암 수술을 받고 갑상선 약을 복용하고 있는 등 건강이 좋지 아니하며 원고와의 혼인관계에 애착을 가지고 혼인을 계속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3. 유책주의의 예외 대법원은 "상대배우자도 이혼의 반소를 제기하고 있는 경우 혹은 오로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표면적으로는 이혼에 불응하고 있기는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혼인의 계속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행위를 하는 등 그 이혼의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는 비록 혼인의 파탄에 관하여 전적인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라 할지라도 이를 인용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1987.4.14. 선고 86므28 판결 등). 4. 이른바 '유책성 풍화론'을 적용한 판결 대법원은 가출한 처(A녀)가 기형인 혼외자를 출산한 후 이혼청구를 한 사례에서 'A녀와 남편의 혼인관계는 11년이 넘는 장기간의 별거 등 A녀로 하여금 현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남편의 책임이 경합하였다고 할 것인 점, A녀와 남편 사이의 부부공동생활 관계의 해소 상태가 장기화 되면서, A녀의 유책성도 세월의 경과에 따라 상당 정도 약화되고, A녀가 처한 상황에 비추어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법적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현 상황에 이르러 A녀와 남편의 이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파탄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의 법적·사회적 의의는 현저히 감쇄되고, 쌍방의 책임의 경중에 관하여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 역시 곤란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이는 점, A녀와의 이혼을 거절하는 남편의 혼인계속의사는 일반적으로 이혼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반드시 참작하여야 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A녀와 남편이 처한 현 상황에 비추어 이는 혼인의 실체를 상실한 외형상의 법률혼관계만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보이고, 남편의 혼인계속의사에 따라 현재와 같은 파탄 상황을 유지하게 되면, 특히 A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계속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참작하여 보면, A녀와와 남편의 혼인은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할 것이며,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목적과 민법의 지도이념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A녀의 유책성이 반드시 A녀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아니 될 정도로 중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A녀와 남편의 혼인에는 민법 제840조 제6호에서 정한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이혼원인이 존재한다'고 판결함으로써(대법원 2009.12.24. 선고 2009므2130 판결) 유책주의의 완화하였다. 5.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내용 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유책배우자라도 재판상 이혼이 불가능할 경우 상대방에게 진솔한 마음과 충분한 보상을 통하여 협의상 이혼(2014년 기준 이혼 중 77.7%가 협의상 이혼)을 할 수 있는 점, 이혼당사자에게 재산분할청구권과 면접교섭권이 부여되고 여성의 법적 지위가 개선되었지만 파탄주의 입법례에서 두고 있는 가혹조항이 없고 이혼 후 부양 등 입법적조치가 부족한 점, 간통죄가 폐지된 상황에서 중혼에 대한 형사제재가 없는 점, 우리사회에 여전히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미흡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로 인하여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생계유지가 곤란한 경우가 엄연히 존재하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민법 제840조 6호 이혼사유에 관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아니하는 종래의 대법원판례를 변경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①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는 물론, ② 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③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 전원합의체의 반대의견도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제6호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만, ㉠ 이혼으로 인하여 파탄에 책임 없는 상대방 배우자가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심히 가혹한 상태에 놓이는 경우, ㉡ 부모의 이혼이 자녀의 양육, 교육, 복지를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 혼인기간 중에 고의로 장기간 부양의무 및 양육의무를 저버린 경우, ㉣ 이혼에 대비하여 책임재산을 은닉하는 등 재산분할, 위자료의 이행을 의도적으로 회피하여 상대방 배우자를 곤궁에 빠뜨리는 경우 등과 같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한다면 상대방 배우자나 자녀의 이익을 심각하게 해치는 결과를 가져와 정의·공평의 관념에 현저히 반하는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 제도를 형해화할 우려가 있으므로, 그와 같은 객관적인 사정이 부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제6호 이혼사유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혼인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라. 전원합의체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다수의견은 원칙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되, 예외 사유(위 ① 내지 ③)가 있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반대의견은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제6호 이혼사유에 해당하고, 예외 사유(위 ㉠ 내지 ㉣)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혼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6.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 가.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기본적으로 유책주의를 유지함으로써 간통죄 위헌판결 후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사회적 수용능력을 고려하면서도 경직된 유책주의의 예외를 사실상 확대함으로써 유책주의적 수요와 파탄주의적 수요를 절충한 제한적 유책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나. 또한, 파탄주의를 지지한 반대의견도 이른바 가혹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사유(위 ㉠ 내지 ㉣)를 제시함으로써 파탄주의로 전환되더라도 종전 혼인과 가족제도에 주는 영향이 크지 않음을 시사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예외사유에 해석과 적용 단계에서 반대의견도 상당부분 녹아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7. 사견(이혼 후 부양)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모두 현행 민법상 이혼 후 상대방 배우자에 대한 부양에 관한 규정이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사견으로는 현행 민법 하에서도 민법 제826조 1항과 제977조의 합리적인 해석을 통하여 이혼 후 부양문제를 해결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다수의견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혼인은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여 부부의 실체를 이루는 신분상 계약'이기 때문에 혼인해소 전에 부부사이의 협의(협정)나 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부부간 부양의 정도와 방법을 정할 때 '이혼 후 부양'에 관하여 정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협의이혼을 하면서 이혼 후 자녀의 양육비 명목 또는 배우자의 생활비 명목으로 일정한 재산을 이전해 주거나 일정 기간 금전을 지급하거나 두 가지가 병행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재판상 이혼절차에서도 위와 같은 취지로 조정이 성립되는 경우도 많다.
2015-09-21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의 노동능력 상실률 판단
1. 서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이하 CRPS라 약칭함)이란 골절, 외상, 수술 등에 의해 생기는 통증질환으로 극심한 통증 외에도 감각이상, 평범한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이질통, 운동장애, 경련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병증성 통증질환의 일종이다. CRPS가 난치성으로 진행될 경우, 영구적으로 고가의 비용이 소요되는 치료를 받아야 하며, 심각한 후유장애가 남게 되므로 교통사고 등으로 CRPS가 발병한 사안에서 인과관계, 손해배상의 범위 등에 대한 많은 법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법원은 인천지방법원 2003나5313 판결에서 최초로 사고로 CRPS가 발병한 환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판단을 하였는데, 위 판결에서는 맥브라이드표에 CRPS에 대한 항목이 없는 관계로 해당 환자에 대하여 맥브라이드표 관절강직 항목을 적용한 장해율을 준용하여 산정한 일실수입을 인정하였다. 상급심인 대법원 2005다51808 판결도 인천지방법원 2003나5313 판결을 그대로 확정시켰고, 이후 실무에서는 CRPS 환자에 대한 일실수입 산정 시 맥브라이드표를 적용하여 왔으며, 구체적 장해율은 통증으로 인하여 발생한 관절의 운동범위의 제한(관절강직) 내지 말초신경 항목을 준용하여 왔다. 2. 대법원 2012. 4. 13. 선고 2009다77198 판결 대상판결은 신체감정의가 맥브라이드표를 유추 적용하여 평가한 CRPS 환자의 장애율을 기초로 해당 환자의 노동능력상실률을 73%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대하여, 노동능력상실률은 단순한 의학적 신체기능장애율이 아니라 피해자의 연령, 종전 직업의 성질과 직업경력 및 기능숙련 정도, 신체기능장애 정도 및 유사 직종이나 타 직종에의 전업가능성과 그 확률, 기타 사회적·경제적 조건 등을 모두 참작하여 경험칙에 따라 정한 수익상실률로서 법관의 자의가 배제된 합리적이고 객관성 있는 것임을 요한다는 대법원 87다카229 판결 등을 원용한 후, 맥브라이드표에는 CRPS는 물론 통증에 대한 항목 자체가 전혀 없는 반면, A.M.A. 지침은 CRPS의 판정 기준과 신체장애율을 규정하고 있는 점, 해당 환자의 노동능력상실률이 약 13% 정도라는 한국배상의학회의 사실조회결과 등을 언급하면서, CRPS 또는 그와 유사한 통증장해에 대해서 따로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아무런 내용이 없어 기존의 항목 중 어떤 항목을 어느 정도로 유추 적용하는지에 따라 판정 결과에 현저한 차이가 발생하는 맥브라이드표를 사용하여 CRPS 환자의 노동능력상실률을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3. 평석 가. A.M.A. 방식과 노동능력상실률 대상판결이 선고된 이후 하급심에서는 신체감정의에게 A.M.A. 방식에 의하여 산정된 장애율을 확인하고 있고, 맥브라이드표를 유추적용하여 평가한 신체감정의의 장해율 평가를 배척하고 A.M.A. 방식에 의하여 산정된 장애율을 그대로 해당 환자의 노동능력상실률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직업 및 연령에 따른 노동능력상실률을 표시한 기준인 맥브라이드표와는 달리 A.M.A.표는 순수 의학적인 방법으로 신체기능장애율을 표시한 것이고 직업 및 기타 사항을 고려한 노동능력상실률은 신체기능장애율을 기초로 2차적으로 정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A.M.A.표상의 기준이나 비율로 노동능력감퇴를 직접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대상판결도 그 판단의 대전제로서 노동능력상실률은 단순한 의학적 신체기능장애율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므로, 별다른 고려 없이 A.M.A.표에 따라 산정된 장애율을 그대로 일실수입 산정의 기초자료로 활용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나. 적절한 노동능력상실률 판단 미국과 같이 A.M.A.표에 따른 신체기능장애율을 노동능력상실률로 환산하는 별도의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그와 같은 기준이 없으므로 신체감정의에게 A.M.A.표에 따른 신체기능장애율과 맥브라이드표를 유추 적용하여 평가한 노동능력상실률을 함께 물어보는 것이 현 상황에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로, 첫째, A.M.A.와 맥브라이드표에 의한 평가를 모두 요구함으로써 노동능력상실률은 단순한 의학적 신체기능장애율이 아니라 피해자의 연령, 직업경력, 기타 사회적, 경제적 조건 등을 모두 참작하여 경험칙에 따라 정한 수익상실률이라는 대상판결에 부합하는 노동능력상실률 판단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둘째 신체감정의에게 A.M.A.표와 맥브라이드표 양자의 평가를 모두 요구할 경우 A.M.A.표에 규정된 CRPS의 신체기능장애율이 맥브라이드표에 의한 노동능력상실률 평가가 자의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지침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신체감정의는 A.M.A.표에 의하여 산정된 의학적 신체기능장애율을 기초로 거기에 다른 임상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맥브라이드표의 항목을 준용할 개연성이 크며, 그럴 경우 대상판결과 같이 맥브라이드표에 의하여 평가된 노동능력상실률과 A.M.A. 방식에 의하여 산정된 장애율 간에 60% 가량의 차이가 나게 될 위험이 줄게 될 것이다. 셋째, 신체감정의가 A.M.A.표에 의하여 산정된 의학적 신체기능장애율과 전혀 동떨어진 노동능력상실률을 맥브라이드 방식에 의하여 평가할 시, 법원은 신체감정의에 대한 사실조회촉탁 등의 방법으로 그 평가의 근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사실조회회신을 통하여서도 신체감정의의 평가가 납득되지 않는다면 신체감정회신의 증명력을 배척하고 신체재감정촉탁을 할 수 있을 것이므로 CRPS 사건에 있어서 어느 정도 확립된 업무처리기준을 세울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대상판결의 원심에서는 신체감정의의 맥브라이드표를 유추적용한 노동능력상실률과 한국배상의학회의 A.M.A.표에 따른 신체기능장애율만이 변론에 현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와 같은 상황에서 재판부는 증거의 신빙성 판단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신체감정의가 회보한 A.M.A.표에 의한 신체기능장애율과 거기에 다른 임상적 상황을 고려하여 맥브라이드표를 준용한 노동능력상실률 간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장해율 판단은 사실상 의학적 판단사항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A.M.A.표를 고려하여 준용한 맥브라이드표에 따른 노동능력상실률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본다. 다. A.M.A. 5판과 A.M.A. 6판에 대하여 보험사 측에서는 실무상 CRPS 환자에 대한 노동능력상실률 판단의 기준으로 A.M.A. 5판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단83913 판결을 자주 원용하곤 하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단83913 판결의 요지는 손해배상의 영역에서는 현재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A.M.A. 6판이 아닌 오로지 외부에 드러난 타각적 징후만을 기준으로 CRPS인지 여부를 진단하는 A.M.A. 5판에 따라 장애율 등을 판단하여야 한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최신 의학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이 A.M.A.의 하나의 장점이란 점을 고려해 볼 때, 유독 CRPS에서만 이미 개정되어 사용되지 않는 기준인 A.M.A. 5판 기준을 사용하여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단83913 판결은 전 세계 통증전문의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준인 수정된 국제통증학회 기준과 수정된 국제통증학회 기준이 그 전제로 삼고 있는 Bruehl의 임상검사결과에 의학적으로 분명한 오류가 있다는 전제 하에 논리전개를 하고 있는데, 법관이 노동능력상실률을 평가·판정함에 있어서는 자의가 배제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에 의하여야 할 것이고, 법관의 규범적 평가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감정의의 의학적 판단사항을 존중하는 것이 대부분의 실무상 관행인 점에 비추어 볼 때, 수정된 국제통증학회 기준 및 이를 기초로 한 A.M.A. 6판에 의학적 오류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단83913 판결의 판시가 과연 규범적으로 합당한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손해배상사건에서 신체감정의에게 A.M.A.표에 의한 장애율을 확인할 때에는, 이미 개정되어 사용되지 않는 기준인 A.M.A. 5판이 아닌, 세계 대부분의 통증전문의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정된 국제통증학회 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A.M.A. 6판을 기준으로 물어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부분의 통증전문의들은 A.M.A. 6판에 의한 평가가 타당하다는 의학적 소견을 피력하고 있고, 실무에서도 A.M.A. 6판을 장애율 평가의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예가 많다. 4. 결론 대상판결 이후 CRPS 환자에 대한 신체감정 시 A.M.A. 방식에 의하여 산정한 신체기능장애율을 문의하고 있는데, 일실수입은 노동능력상실률을 기초로 산정되는 것이고, A.M.A.표는 순수 의학적인 방법으로 표시된 신체기능장애율이란 점이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미국과 같이 직업과 기타 사항을 고려하여 신체기능장애율을 노동능력상실률로 환산하는 별도의 기준이 없으므로, 신체감정의에게 A.M.A.표에 따른 장애율과 맥브라이드표를 준용한 노동능력상실률을 모두 문의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증거조사방식이 노동능력상실률은 신체기능장애율과 다르지만 맥브라이드표 유추적용시 신체감정의가 어떤 항목을 어느 정도로 유추적용하는지에 따라 판정결과에 현저한 차이가 날 수 있음을 우려한 대상판결의 취지에 부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13-10-17
부부간 부양의무는 부모의 성년자 부양의무에 우선 하는가
<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 1968년생인 S(소외인)는 2006 경, 교통사고로 수술 받은 후, 2009. 현재,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동안 Y(피고, S의 처)는 S의 부양(치료)을 중단하게 됨에 따라, X(원고, S의 모, 상고인)는 S를 치료하여 오는 동안 치료비 1억6000여만원을 지출하여 왔다. 이에 X는 수령 보험금을 제외한 나머지 약 8000만원의 지급청구의 소송을 Y를 상대로 제기하였다. 1심과 2심법원은 X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X가 상고하기에 이르렀다. 2. 대판의 요지 : 파기환송; 민법 제826조 제1항에 규정된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로서, 부양을 받을 자의 생활을 부양의무자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보장하여 부부공동생활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1차적 부양의무이고, 반면 부모가 성년자녀에 대하여 직계혈족으로서 민법 제974조 제1호, 제975조에 따라 부담하는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자가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생활을 하면서 생활의 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부양을 받을 자가 그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그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2차적 부양의무이다. 이러한 제1차적 부양의무와 제2차적 부양의무는 의무이행의 정도뿐만 아니라 의무이행의 순위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제2차적 부양의무자는 제1차적 부양의무자보다 후순위로 부양의무를 부담한다. <판례연구> I. 머리 말 1. 이 판결에서의 논의점은 첫째,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성년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에 우선하는가. 둘째,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과거의 부양료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2. 본 논고는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제1차적 부양의무로서, 부모의 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보다 '부양의 순위면'에서 선순위이고, '부양의 정도면'에서 전자는 '혼인의 본질적인 의무'이고, 후자는 '보충적 부양수준'이란 점 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II. 부양의무의 구분과 제1차적 부양·제2차적 부양 1. 부양의무의 구분 ; 부양의무는 ①부부간의 부양(민법 제826조 제1항, 제833조), ②부모의 미성숙자양육(민법 제833조, 제837조), ③호주의 가족부양(1990. 1. 13 삭제, 구민 제797조 참조)과, ④부모의 성년자녀부양(민법제974조 제1호), ⑤직계혈족과 그 배우자간의 부양(민법 제974조 제1호), ⑥생계를 같이하는 친족간의 부양(민법제974조 제3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적부양의 전통적 2원형론(생활유지적 부양과 생활부조적 부양)의 입장에서는 전술한 ① 내지 ③의 부양은 생활유지적 부양·제1차적 부양으로, ④ 내지 ⑥의 부양은 생활부조적 부양·제2차적 부양으로 유형화 하고 있으며, 대상판결의 입장은 사적부양의 전통적 2원형론에 입각한 판시라고 이해된다. 2. 부부간의 부양의무를 제1차적 부양의무로 이해하는 근거 1) 부양관계의 비교: "부부부양과 미성숙자 양육"(전자)과 "성년의 자 부양, 친족부양"(후자)을 비교하면, (1) 부양근거 면에서는 전자는 '당사자의 의사·포태 출산행위'이고, 후자는 '혈연·친족적 신분'이라고 할 수 있다. (2) 부양의무의 발생시기 면에서는 전자는 '혼인성립시·출산시 당연발생'(대판,1994. 5. 13, 91스21)이고, 후자는 '권리자의 부양청구시'이다. (3) 부양의 정도·성격 면에서는 전자는 '같은 정도의 생활보장'-생활유지적 부양(제1차적 부양의무)이고, 후자는 부양의 자력요건 구비시, '생활의 지원'-생활부조적 부양(제2차적 부양의무)이라고 할 수 있다. (4) 민법상의 부양규정에서는 전자는 민법 제826조 제1항, 제833조, 제837조에서, 후자는 민법 제974조, 제975조,제976조, 제977조에서 각 규정하고 있다. 특히 판례는 성년의 자에 대한 부양은 자의 양육(민법 제837조)에 해당하지 않고, 민법 제974조 제1호, 제975조 내지 제977조 규정에 각 해당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판, 1994. 6. 2, 93스11). (5) 가사소송법규정에서는 전자는 마류사건 제1호와 제3호의 가사비송사건으로, 후자는 마류사건 제8호의 가사비송사건으로 따로 규정하고 있다. 2) 부부간의 부양과 미성숙자양육은 제1차적 부양이며, 부모의 성년자부양은 제2차적 부양으로 이해하는 것은, 상술한 ① 부양의 근거, ② 부양의무의 발생시기, ③ 부양의 정도·성격 면에서 서로 구별되고, ④ 민법상의 부양규정의 태도, ⑤ 가사소송법상 가사비송사건의 규정태도에서, 위 양자를 따로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기초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거나, 부부간의 상호부양의무는 혼인의 본질적인 의무로서 "부양법체계상 특별규정"이다. 이에 반하여 성년자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부양법체계상 일반규정"의 적용대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에, 부양의 본질 면에서나 특별법우선의 법리 면에서 전자는 선순위의 제1차적 부양이고, 후자는 후순위의 제2차적 부양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III. 대상판결에서의 논의점 검토 1. 배우자의 부양의무가 부모의 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에 우선여부; 원심은 배우자의 부양의무가 친족간의 부양의무보다 항상 우선한다고 볼 민법상의 근거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반하여 대상판결은 "부부간의 부양의무(제1차적 부양의무)와 부모의 성년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제2차적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이행의 '정도' 뿐만 아니라, 의무이행의 '순서'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제2차부양의무자(X)는 제1차부양의무자(Y)보다 후순위로 부양의무를 부담한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이와 같은 판시는 '부부간의 상호부양의무'는 위의 II의 2의 논거에서 설명한 것 같이,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로서, 요부양자의 생활을 지원하는 '보충적 부양의무'인 '부모의 성년자부양의무'에 우선한다는 전제에 입각한 판시이다. 이러한 판시는 전술한 II의 2에서 논술한 ① 내지 ⑤의 논거에 비추어 보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부부간의 동거·부양·협조의무"는 "광범위한 협조의무"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이는 독립된 별개의 의무가 아닌 점에서(대판,1991. 12. 10, 91므245)도,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친족간의 부양의무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판시부분은 타당하다고 이해된다. 2. 과거의 부양료 청구의 허용 여부; 1) 원심은 X의 구상금청구를 배척하였다. 판례는 과거의 부양료지급의무를 부정하여 왔다(대판 1991.10. 8, 90므781; 동,1991.11.26, 91므375; 동, 2008.6.12, 2005스50). 학설은 대체로 부부간의 과거의 부양료청구를 긍정하고 있다(김주수, 친상법, pp.139~142; 한봉희, 가족법, pp.126~127). 2) 대상판결은 부부간의 과거의 부양료청구는 가사비송사건이 아니고 민사소송사건에 해당하며, 그 액수는 원칙적으로 이행지체에 빠진 것이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행청구 이전의 과거의 부양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3) S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Y는 S를 실제 부양하기도 하였고 S가 계속 요부양상태에 있음을 알고 있으며, X가 S의 부양을 계속한 사실도 알았던 점 등에 비추어, Y는 S의 과거의 부양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이 판시부분은 X의 구상권행사를 인정한 것으로서, 과거의 부양료를 제한적으로 인정한 취지로 일단 이해는 된다 하겠다. 그렇지만 '부부간의 과거의 부양료청구'는 폭넓게 전면적으로 인정하여야 하지 않을까. IV. 맺는 말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혼인의 본질적 효과를 선언한 것으로서, 부양법체계상 '특별한 부양'으로 규정하고 있으며(민법, 제826조 제1항, 제833조), 따라서 '일반적 부양'에 해당하는 '부모의 성년자부양의무'에 우선적으로 이행되어야 함으로 이 판시는 타당하다.
20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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