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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일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절도)죄에 대한 누범가중
Ⅰ. 사실관계 피고인은 1996년 3월 28일 절도죄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08년 6월 27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위반(절도)죄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2011년 10월 28일 특가법위반(절도)죄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2018년 8월 14일 그 형의 집행을 종료하였다. 피고인은 2019년 5월 16일 00:30경 한 마트 야외 천막행사장에서, 피해자 A, B가 영업을 마치고 퇴근하여 관리가 소홀한 틈을 이용하여 행사장 천막을 젖히고 안으로 침입하여 그곳에 있는 A, B 소유의 물건들을 절취하였으며, 그 해 5월 18일에는 피해자 C의 집에 이르러 재물을 절취할 생각으로 시정되지 않은 현관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C의 주거에 침입하여 방 안에 보관 중인 C 소유의 현금 1200만 원을 절취하였고, 그때부터 그 해 6월 17일까지 사이에 위와 같은 방법으로 9회에 걸쳐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거나, 절취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Ⅱ. 소송의 경과 1. 제1심과 제2심 제1심(의정부지방법원 2019. 8. 29. 선고 2019고단2688 판결)에서는 피고인의 행위에 대하여 특가법 제5조의4 제5항 제1호를 적용하여 법정형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에 대하여 누범(형법 제35조)가중('징역 2년 이상 40년 이하')과 경합범(형법 제37조 전단, 제38조 제1항 제2호)가중('징역 2년 이상 60년 이하')을 한 후 형법 제42조 단서에 따라 처단형을 '징역 2년 이상 50년 이하'로 산정하였고, 양형기준의 유형-영역에 입각하여 권고형의 범위를 '징역 2년 이상 7년 4월 이하'로 정한 후, 선고형을 '징역 2년'으로 선택하였다. 공소제기된 죄명이 ‘상습절도죄’가 아니어서 제6항이 아닌 제5항이 적용법조가 되었다. 제2심(의정부지방법원 2019. 11. 28. 선고 2019노2555 판결)에서는 제1심의 사실인정에 관한 다툼은 없고 징역 2년을 선고한 것도 마찬가지이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 토대하여 법리오해의 위법을 인정하여 제1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특가법 제5조의4 제5항은 (형법 제8조 단서에서 규정한) '타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누범가중에 관한 특별한 규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2016년 현행법으로 개정되기 전의 특가법 제5조의4 제5항에는 '가중처벌한다'는 문언이 없었던 점과 동조항 각호의 법정형은 이미 누범으로 가중처벌할 것을 예정하여 정해진 것인 점 등을 보태어 보면, 동조항위반죄에 대하여 형법 제35조의 누범규정을 또다시 적용하는 것은 동일한 사유로 법정형을 반복하여 가중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 동조항 제1호 위반죄에 대하여는 형법 제35조 소정의 누범가중을 하지 않아야 한다." 2. 대법원판결 "특가법 제5조의4 제5항 제1호는 입법취지가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절도사범에 관한 법정형을 강화하기 위한 데 있고, 조문의 체계가 일정한 구성요건을 규정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적용요건이나 효과도 형법 제35조와 달리 규정되어 있다. 그 규정의 이러한 입법취지, 형식 및 형법 제35조와의 차이점 등에 비추어 보면, 그 규정은 형법 제35조(누범) 규정과는 별개로 '형법 제329조부터 제331조까지의 죄(미수범 포함)를 범하여 세 번 이상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그 누범기간 중에 다시 해당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형법보다 무거운 법정형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구성요건을 창설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그 규정에 정한 형에 다시 형법 제35조의 누범가중한 형기범위 내에서 처단형을 정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이 사건 법률규정이 누범가중에 관한 특별규정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특가법위반(절도) 부분에 대하여 형법 제35조의 누범가중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원심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파기환송판결)." Ⅲ. 사안의 분석 피고인과 검사는 제1심 판결에 대하여 항소하면서 각각 '양형과중'과 '1. 몰수에 관한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2. 양형과경'만을 항소이유로 들었고, 본고의 논점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제2심에서는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이유에 관하여는 따로 언급함이 없이 직권으로 본고의 논점에 관하여 설시하고 있다. 제2심에서는 처단형이 '징역 2년 이상 30년 이하'로 되고 그에 대해 양형기준상 권고형의 범위 안에서 법원은 파기자판을 통하여 선고형으로 '징역 2년'을 선택한 것 같다. 제1심과 제2심은 모두 처단형-권고형의 하한을 선고형으로 선택한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그 법리상 근거는 다르다. 특가법 동조항의 '가중처벌한다'는 문구는 형법 제35조 제2항의 '가중한다'와 같은 의미이고, 동조항 각호의 법정형은 이미 누범가중을 행한 형량이므로 중복하여 가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2심의 취지이다. 대법원은 동조항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제2심과 달리 이해하는 논거로 ① 입법취지, ② 조문의 체계, ③ 적용요건이나 효과에 있어서 형법 제35조와의 차이를 들고 있다. ①은 특가법 제1조(목적)에 토대한 본래의 동법 제정취지를 가리키며, ②와 ③은 동법 동조항 본문의 전단(前段)인 '형법 제329조부터…다시 이들 죄를 범하여' 부분의 의미에 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논거이다. 즉 대법원은 전단 요건을 갖춘 사람에 대하여 각호에서 법정형을 구분 규정한 것으로 보고, 그런 사람으로서 누범 요건까지 충족시킨 경우에는 각호의 법정형에 대하여 다시 누범가중을 하여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창설규정설). 그에 대하여 제2심에서는 일반법규정인 형법상 누범 요건을 갖춘 사람이 그에 더하여 전단 요건까지 갖춘 경우에 관하여 각호에서 법정형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특별규정설). 이러한 견해의 대립은 동조항 문언을 이해하는 관점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해석론에 입각해서는 시비를 가리기 어렵다. Ⅳ. 죄형균형과 명확성의 요청 1. 돌이켜보면, 2016년 개정 전에는 본법 제5조의4 제1항부터 제4항까지 상습-공동범죄를 규정하고, 제5항에서는 현행법과 같은 형태의 본문 규정을 두면서 '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형과 같은 형에 처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었던 까닭에 절도죄로 제5항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제1항의 상습절도죄의 형인 '무기 또는 3년 이상(3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였다. 그랬던 것을 2016년 동조항 제1호에서 '2년 이상 20년 이하'로 개정하였다. 현행법은 개정 전 법의 지나친 중형규정을 책임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형벌을 적정하게 조정한 것이다. 오히려 동조항에 명문상 ‘누범’ 문구가 없었다면 창설규정설에 따른 해석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특가법 동조 제6항에서는 '3년 이내에'로 명시하고 있고 제5항에서는 '누범으로'로 규정되어 있는 현재의 입법하에서 제6항 구성요건의 성격에 관하여 대법원은 창설규정설(독립구성요건설)을 택하고 있으며(대판 2006. 4. 28, 2006도1296), 그 제2심(부산지판 2006. 2. 3, 2005노3952)에서는 특별규정설(특별법규정설)을 택하고 있다. 2005년 8월 4일 '사회보호법폐지법률'이 공포-시행되면서 그 날짜로 특가법 동조 제6항이 신설되어 시행되었고, 동조 제1항부터 제5항은 1980년 12월 18일 입법시부터 유지되어 온 규정들이다. 규정 신설시(2005. 8. 4.)부터 지금까지 ‘누범’ 문구가 없는 제6항에 관한 대법원 판지가 누범 문구가 명시되어 있는 제5항에 관해서도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특가법 동조 제1항에 관하여는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2014헌가16 등)이 있었고 동조 제6항에 관하여는 2015년 11월 26일 위헌결정(2013헌바343)이 있어서 국회는 2016년 1월 6일 두 위헌결정을 수용하고 동조 제3항과 제4항을 제5항 제2호와 제3호로 옮겨 동조 전체를 현행 법문으로 개정하면서 전체적으로 법정형을 조정하였다. 책임주의와 죄형균형의 원칙에 비추어 종전 법정형은 과중하다는 점이 반성적으로 고려된 것이다. 국회의 개정이유를 고려한 새로운 해석이 요구된다. 2. 본법 제5조 제5항의 문언은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불명확한 규정이다. 동조항은 '…로 세 번 이상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그 집행이 끝나거나 면제된 후 3년 내에 다시 동죄를 범한 경우에는 다음 각호의 형으로 처벌한다'로 개정하여 그 적용요건을 구체화함으로써 규정의 명확성을 기하고 각호의 중한 형이 적용되는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본건에 있어서 만일 피고인이 누범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본법이 아닌 형법상 절도죄가 적용되어야 하나, 피고인의 2019년 범죄사실은 누범 요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동조항 제1호의 형이 처단형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정영일 명예교수(경희대 로스쿨)
특가법제5조의4
누범가중
절도죄
정영일 명예교수(경희대 로스쿨)
2022-09-22
소비자·제조물
제조물책임법의 적용범위와 소비자로서의 양계업자
이병준 교수(한국외대 로스쿨) · 김세준 교수(경기대 법학과) Ⅰ. 대상판결 1. 사실관계 원고 양계업자는 피고 동물의약품 제조사로부터 의약품을 공급받아 사육하고 있는 닭들에게 투여하였는데, 해당 의약품에 계란에 있어서는 안 되는 성분이 들어 있었고 이로 인하여 결국 원고는 계란을 공급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어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2. 대법원 판시 내용 대법원에서는 일단 "제조업자 등이 합리적인 설명, 지시, 경고 기타의 표시를 하였더라면 당해 제조물에 의하여 발생될 수 있는 피해나 위험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때에는 그와 같은 표시상의 결함(지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하여도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그와 같은 결함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 때에는 제조물의 특성, 통상 사용되는 사용형태,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의 내용,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및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의 가능성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존의 법리를 전제로 하였다(대법원 2003. 9. 5. 선고 2002다17333 판결, 대법원 2008. 2. 28. 선고 2007다52287 판결 등 참조). 그러면서 해당 사안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피고가 제조·판매한 엔로트릴은 가축의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동물약품으로, 주된 소비자는 원고와 같은 양계업자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가축 사육업자들이지만 최종적인 소비자는 일반 시민들이므로, 이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축산식품의 잔류 동물약품에 의한 오염 여부는 그에 따른 상당한 책임 문제가 수반되는 사육업자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 사항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동물약품의 전문 제조·판매업자인 피고로서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것으로, 휴약기간 미준수의 경우 식육 등 축산식품에 약물이 잔류될 수 있어 '시간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준수'하도록 한 엔로트릴의 권고사항에 비추어도 그러하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동물약품 안전사용을 위한 10대 수칙'에서 휴약기간 동안 사료 통, 축사, 사료저장고 등을 완전히 청소한 후 약제가 들어있지 않은 사료와 물만 먹이라는 주의사항을 둔 것도 잔류 동물약품으로 인한 축산식품 오염의 위험성이 축산식품의 생산·판매 및 그 전제 되는 동물약품의 구입·이용에 있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됨을 나타낸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위와 같은 사유들은 그 직접 소비자인 사육업자들로서도 엔로플록사신에 표시된 휴약기간의 철저한 준수 외에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계분을 통한 간접 섭취 등 구체적 사육환경 하에서 휴약기간 준수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관리상 주의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정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내용의 소비자 측 귀책사유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앞서 본 엔로플록사신의 특성, 예상 가능한 사용형태, 그 안전성 혹은 위험성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와 인식의 정도,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및 그 위험회피를 위한 표시 등 조치의 난이도 및 신뢰 혹은 기대 가능성 등에 비추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나마 그 간접 섭취(투약)에 따른 휴약기간의 변동(조정) 가능성을 전혀 언급하지 아니함에 따른 '제조물 책임법'상 표시상의 결함 및 피고의 책임을 전적으로 배제할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Ⅱ. 평석 대표적인 소비자 불법행위법으로서 제조물책임법이 있다. 그런데 제조물책임법을 살펴보면 어디에도 소비자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대상 판결에서는 양계업자를 달걀을 낳는 닭에 사용된 의약품의 소비자로 표현하면서 피고 제약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다른 요건이 충족되었다는 전제하에 양계업자가 제조물책임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와 양계업자를 소비자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1. 제조물책임법상 손해배상청구권자 제조물책임법 제3조 제1항은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그 제조물에 대하여만 발생한 손해는 제외한다)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정의규정도 제조업자에 관해서만 규정할 뿐(제2조 제3호), 동법에 따라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자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통상 매수인은 민법의 매매계약에 규정된 하자담보책임에 기해 충분한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자와 계약관계에 놓이지 않은 제3자, 즉 소비자를 보호대상으로 생각한다. 제3조 제1항에서 제조물에 대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를 제외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매매계약관계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는 하자담보책임이 적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대부분의 국내문헌은 특별한 고찰 없이 제조물책임법상 손해배상청구권자를 소비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제조물책임법이 소비자 안전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라는 사고를 기초로 하는 결과이지만 특별한 근거는 없는 해석이다. 제조물책임법에서 주된 보호대상이 소비자라고 하여, 소비자가 아닌 자가 보호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즉 제조물책임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대상이 주로 소비자일 뿐 그 범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유의하여야 한다. 이에 더하여 법문언상으로도 아무런 제한이 없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정이유에서도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한 생명, 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해에 대하여 제조업자 등이 무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조물책임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도모하고 국민생활의 안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며 제품의 안전에 대한 의식을 제고하여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려는 것"라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취지에 따르는 경우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이기만 하면 제3조 제1항의 책임을 제조업자에게 물을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대법원 판시내용에서 손해배상책임의 청구자 지위를 소비자로 표현하는 부분은 의문이 든다. 즉 대법원에서는 동물약품의 주된 소비자는 양계업자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가축 사육업자들이지만 최종적인 소비자는 일반 시민들이라고 보고 있다. 2. 유럽연합과 독일법의 시각 유럽연합과 독일 제조물책임법에 의하면 하자 있는 제조물에 기하여 다른 물건에 대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 물건이 통상적으로 사적인 이용 내지 소비를 위한 것이고 손해를 입은 자가 이를 위하여 실제로 사용한 경우에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 즉 생명과 신체에 대하여 발생한 손해와 달리 재산상 손해에 대하여 소비물이고 실제로 소비하였을 것을 요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양 요건이 중첩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므로 영업상 사용하는 제품인 경우에는 비록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 내지 소비를 하였더라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적인 목적의 제품이더라도 영업상 사용한 경우에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 규정의 입법목적을 쉽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입법이유에서는 영업 또는 직업상 제조물을 사용하는 자는 그 법률관계를 계약법적으로 제대로 규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자의 계약상대방뿐만 아니라 계약관계에 놓이지 않은 제3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위 입법이유가 모든 경우에 타당한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 법과 달리 이 규정을 통하여 재산상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는 사적인 이용 내지 소비로 제한된다. 그리고 사적 이용 내지 소비가 인정하기 위해서는 제조물이 영업 또는 직업목적이 아닌 영역에서 이용 내지 소비되어야 한다. 이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지위가 인정되기 위하여 피해자가 소비자이어야 하는지에 관하여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연합 내지 독일법상으로는 양계업자는 영업목적으로 이용한 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조물책임법에 기한 책임을 묻지 못한다. 3. 결론 제조물책임법에서는 손해배상청구의 주체를 특별히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기만 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지위에 있게 된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해당 사안에서 표시상의 결함을 인정하는 한편 사업을 목적으로 의약품을 구입한 양계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다만 판시내용에서 양계업자를 소비자로 표현한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의약품을 구매하여 사용 내지 소비하였더라도 그 목적이 영리적인 것에 있는 한 사업자이지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사용 내지 소비하는 행위가 이루어지더라도 사업 내지 직업 목적으로 한 경우에는 사업자이고 사적인 목적으로 한 경우에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무리 방론적인 설명에서 사용된 것이라도- 양계업자를 법률적 개념인 소비자로 표현한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제조물책임법을 대표적인 소비자 불법행위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마치 소비자인 경우에만 청구주체가 되는 것으로 오인할 여지가 있다. 한편 비교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유럽연합과 독일의 입법자는 재산상 손해의 경우 영리목적으로 사용한 경우에는 보호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소비재를 소비목적으로 실제로 사용 내지 소비한 경우에 대하여만 제조물책임을 긍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은 입법차원의 문제이므로 대상 판결에서 고민해야 할 사항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병준 교수(한국외대 로스쿨)·김세준 교수(경기대 법학과)
제조물책임
표시상결함
소비자
이병준 교수(한국외대 로스쿨)·김세준 교수(경기대 법학과)
2022-09-19
민사일반
조세·부담금
과세관청이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한 당사자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요건
1. 사실관계 가. 피고회사의 부장인 피고 1은 소외인등과 사이에, 외관상 피고회사가 투자금을 조성해 경유를 수입·판매하여 수익을 내어 이를 투자자들에게 배분하는 것처럼 사업을 진행하되, 실제로는 자력이 없는 명목상의 수입회사를 내세워 수입 및 통관절차를 진행한 후 이를 소외인이 새로 설립한 주식회사 에스OO에 판매 형태로 이전하여, 에스OO이 해당 경유를 시중에, 수입가격에 통관비용, 자동차 주행에 대한 자동차세(이하 '주행세')등 관련 세금, 부대비용 등을 합친 가격(이하 '최소 공급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면서 명목상의 수입회사에 부과될 주행세를 납부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하기로 조세포탈 범행을 계획하였다. 나. 피고 1은 정상적인 경유수입 사업인 것처럼 제안서를 제출하여 2013년 12월경 피고회사로부터 사업시행을 승인받은 후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여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성하였고, 특수목적법인은 에스OO과 수익권거래계약을 체결하여 위 투자금을 에스OO에 지급하기로 하고 경유수입사업의 수익권을 부여받았으며, 피고회사에 자금 지급, 수익금 관리등의 업무를 위탁하였다. 다. 피고 1등은 2013년 12월경 명목상의 수입회사 역할을 할 주식회사 OO오일 명의로 경유수입 중개사와 수입가격 협상을 마친 후 2013년 12월경 OO오일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날 OO오일은 에스OO과 수입된 경유를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에스OO에 판매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였다. 라. 이 사건 경유는 2013년 12월경부터 2014년 3월경까지 OO오일 명의로 3항차에 걸쳐 수입되어, 수입 즉시 에스OO에 이전되었는데, 실제 통관, 품질검사, 이전 등의 업무는 모두 피고1과 에스OO이 수행하였다. 마. 에스OO은 이 사건 경유를 시중에 판매하였는데, 최소 공급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였다. 피고 1등은 에스OO이 위와 같이 하여 얻은 수익을 운영비등 명목으로 에스OO에 일부 지급하고 나머지를 투자자들에게 배분하였다. 바. OO오일과 에스OO은 이 사건 경유에 관한 주행세를 신고·납부하지 않았다. 원고는 명목상의 수입회사인 OO오일을 납세의무자로 파악하여 2014년 2월경부터 2014년 4월경까지 OO오일에 대해 주행세를 부과하였으나, OO오일은 바지회사로서 무자력이었기 때문에 이를 납부할 수 없었고, 2014년 4월경 주행세 체납 등을 이유로 등록이 취소되었다. 사. 피고 1과 소외인은 공모하여, 경유를 수입한 주체는 에스OO임에도 명목상의 수입회사인 OO오일을 내세워 과세관청으로 하여금 주행세를 납부할 자력이 없는 OO오일을 주행세 납부의무자로 오인하여 부과처분을 하게 하는 등 이 사건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실행하였다는 범죄사실로 특가법 위반(조세)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이 선고·확정되었다. 2.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한 당사자를 상대로 과세관청이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에서 과세관청에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이다. 3. 대상 판결의 요지 가. 주행세 납세의무자 (1) 지방세법 제135조,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제3조 제2호에 의하면, 주행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납세의무자에게 부과되는데,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납세의무자는 관세의 납세의무자와 동일하다. 구 관세법 제19조 제1항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자는 관세의 납세의무자가 된다"라고 규정하면서, 제1호 본문에서 "수입신고를 한 물품에 대하여는 그 물품을 수입한 화주"를 들고 있는데, 위 규정에서 관세의 납세의무자인 '그 물품을 수입한 화주'라 함은 그 물품을 수입한 실제 소유자를 의미한다. 다만, 그 물품을 수입한 실제 소유자인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수출자와의 교섭, 신용장의 개설, 대금의 결제 등 수입절차의 관여 방법, 수입화물의 국내에서의 처분·판매 방법의 실태, 당해 수입으로 인한 이익의 귀속관계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11. 27. 선고 2014두2270 판결 등). (2) 위 사실관계를 관련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미 OO오일이 설립되기도 전에 피고 1등이 이 사건 경유의 수입협상을 마치고 유통구조, 판매경로까지 정해둔 사정, OO오일은 명목상의 수입회사로 별다른 자산 없이 급조하여 설립된 것에 불과한 사정, 실제 이 사건 경유는 피고 1과 에스OO의 통제 아래에 있었고, 그 수입, 통관 업무 역시 이들이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사정 등을 알 수 있는바, 이 사건 경유를 수입한 실제 소유자이자 주행세 납세의무자는 에스OO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나. 피고 1의 불법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 인정 여부 (1)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 성립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3. 11. 선고 2017다179, 2017다186(병합) 판결 등). 납세의무는 세법이 정한 과세요건사실이나 행위의 완성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성립하고 과세관청이나 납세의무자의 특별한 행위가 필요 없는 것이고, 과세요건 충족에 의하여 추상적 납세의무가 성립하면 그에 대응하는 국가의 추상적인 조세채권이 성립하는 것이므로, 과세요건사실이나 행위의 완성에 의해 과세요건이 충족되어 과세관청의 납세의무자에 대한 조세채권이 성립한 이상 조세채권의 만족을 위한 당해 조세의 부과·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되었다면 과세관청에 그 조세 상당의 손해가 발생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2) 원심이 인정한 사실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에스OO이 OO오일 명의로 이 사건 경유를 수입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원고의 에스OO에 대한 조세채권은 성립하는 것인데, 피고 1 등이 처음부터 주행세를 포탈하여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진정한 납세의무자를 파악하기 곤란한 외관을 만들어 자력이 없는 OO오일을 납세의무자인 것처럼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원고가 진정한 납세의무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 포탈한 주행세 상당의 이익을 바로 배분하여 실행한 이상 이로써 원고의 이 사건 경유에 관한 주행세의 부과·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결국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한 것은 물론 피고 1 등의 조세포탈 범행 설계·실행이라는 불법행위와 원고의 손해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4. 대상 판결에 대하여 가. 조세채권과 손해배상채권의 관계 세법은 공권력 행사의 주체인 과세관청에 부과권이나 우선권 및 자력집행권 등 세액의 납부와 징수를 위한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여 공익성과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다. 따라서 조세채권자는 세법이 부여한 부과권 및 자력집행권 등에 기하여 조세채권을 실현할 수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납세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대법원 2020. 3. 2. 선고 2017두41771 판결). 한편, 대상 판결에 따르면 조세포탈 범행으로 인하여 조세의 부과·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경우 조세채권자는 조세포탈 범행 설계자들을 대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조세채권자의 손해배상채권은 국세징수법등에 따른 조세채권의 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으로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나. 조세채권자의 채권 소멸시효 조세채권자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조세채권은 5년의 소멸시효(5억 원 이상의 국세와 5,000만 원 이상의 지방세는 10년)가 적용되나(국세기본법 제57조, 지방세기본법 제39조),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고,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다(민법 제766조). 조세채권자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조세포탈 범행 설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조세채권이 아니라,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이므로 그 소멸시효는 민법에 따르고, 소멸시효 기산일은 조세채권자가 조세포탈범행으로 인하여 당해 조세를 징수할 수 없게 된 사실과 조세포탈 범행의 설계자들을 알게 된 때가 될 것이다. 다. 대상 판결의 의의 대상 판결에 따르면, 과세요건사실이나 행위의 완성에 의해 과세요건이 충족되어 과세관청의 납세의무자에 대한 조세채권이 성립한 이상 조세포탈 범행으로 인하여 조세채권의 만족을 위한 당해 조세의 부과·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되었다면 과세관청에 그 조세 상당액의 손해가 발생한 것이므로, 조세채권자는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한 당사자들을 상대로 하여 납세의무자로부터 징수하지 못한 조세채권 상당액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 판결은 과세관청이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한 당사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에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기준(상당인과관계)을 제시한 최초의 판결로서 의미가 크다. 향후 조세포탈 범행으로 인하여 과세관청이 조세를 징수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조세채권자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대상 판결의 법리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조세채권을 회수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철형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조세포탈
조세채권
손해배상
유철형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2022-02-07
형사일반
링크행위가 공중송신권의 방조인지 여부
1. 사안의 개요 피고인은 자신이 개설하여 운영하는 이른바 '다시보기 링크사이트'인 이 사건 사이트 게시판에, 성명불상의 정범들이 저작재산권자의 이용허락 없이 해외 동영상 공유사이트에 업로드한 영상저작물(드라마·영화 등)에 연결되는 링크를 2015년 7월 25일부터 2015년 11월 24일까지 총 450회에 걸쳐 게시하였다. 이에 검사가 피고인을 저작권법 위반 방조죄(정범들의 공중송신권 침해행위를 방조)로 기소한 사안이다. 원심은, 링크를 하는 행위만으로는 공중송신권 침해행위의 실행 자체를 용이하게 한 것이 아니고 단지 공중송신권이 침해되고 있는 상태를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제1심의 무죄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대법원은, 저작권 침해물 링크 사이트에서 침해 게시물에 연결되는 링크를 제공하는 경우 등과 같이, 링크 행위자가 정범이 공중송신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그러한 침해 게시물 등에 연결되는 링크를 인터넷 사이트에 영리적·계속적으로 게시하는 등으로 공중의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침해 게시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의 링크 행위를 한 경우에는 침해 게시물을 공중의 이용에 제공하는 정범의 범죄를 용이하게 하므로 공중송신권 침해의 방조범이 성립한다는 이유로, 이와 다른 취지의 종전 판례(대법원 2015. 3. 12. 선고 2012도13748 판결)를 변경하고, 저작권법 위반 방조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였다. 2. 링크행위가 공중송신권의 방조인지 가. 링크행위의 정범 여부 대법원 2009. 11. 26. 선고 2008다77405 판결, 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0637 판결 등은 인터넷 링크는 서버에 저장된 개개의 저작물 등의 웹 위치 정보나 경로를 나타낸 것에 불과하여 링크를 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이 규정하는 복제 및 전송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바 있고, 이에 대하여는 별다른 이설은 보이지 않는다. 나. 링크행위가 공중송신권 침해의 방조가 될 수 있는지 여부 1) 종전 대법원 2015. 3. 12. 선고 2012도13748 판결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의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인데, 링크를 하는 행위 자체는 위와 같이 인터넷에서 링크하고자 하는 웹페이지 등의 위치 정보나 경로를 나타낸 것에 불과하여, 인터넷 이용자가 링크 부분을 클릭함으로써 저작권자로부터 이용 허락을 받지 아니한 저작물을 게시하거나 인터넷 이용자에게 그러한 저작물을 송신하는 등의 방법으로 저작권자의 복제권이나 공중송신권을 침해하는 웹페이지 등에 직접 연결된다고 하더라도 그 침해행위의 실행 자체를 용이하게 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링크 행위만으로는 위와 같은 저작재산권 침해행위의 방조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2) 업로드행위(복제)에 대한 방조 여부 이미 끝나버린 업로드(복제)행위를 그보다 나중 시점에 링크를 거는 행위에 대하여는 방조가 성립할 수 없을 것이고, 이에 대하여도 이견이 보이지 않는다. 3) 공중송신권의 의미와 종전 판결에 대한 비판론 저작권법 제2조 제7호는 '공중송신'을 '저작물, 실연·음반·방송 또는 데이터베이스를 공중이 수신하거나 접근하게 할 목적으로 무선 또는 유선통신의 방법에 의하여 송신하거나 이용에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중송신행위는 '송신행위'와 '이용에 제공하는 행위' 두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이용 제공 행위'와 관련하여, ①업로드가 완료되더라도 업로드된 콘텐츠가 인터넷 상에 존속하는 동안은 여전히 '이용 제공'이 계속되고 있고, 이러한 계속적 행위를 조력하는 것은 방조라는 견해, ②업로드에 의한 '이용제공' 행위에 대하여도 링크행위가 그 이용제공 실행행위 자체를 용이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존재하였다(다만, 이 견해도 링크 이후 이용자가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송신과 복제행위에 대하여 방조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4) 이 전원합의체 판결의 태도 및 이에 대한 평가 '공중송신(전송)'이란 용어 자체로 '송신'행위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지만, 저작권법은 '송신'의 예비행위라고 볼 수 있는 '이용제공'까지 행위태양에 포함시켰다. 침해물에의 링크행위가 공중송신권 침해의 방조행위인지는 결국 위 ①이용 제공 행위, ②송신행위로 구별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먼저 '이용 제공 행위'를 방조한다고 보면 가벌의 필요가 있는 행위를 보다 쉽게 처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미 업로드 행위가 끝난 상태에서 링크행위자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설명하기가 애매한 면이 있다. 링크행위로 인하여 더 많은 사람이 침해게시물에 접근할 수 있게 되지만, 링크행위의 유무와 관계 없이 이용 제공 행위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판결의 다수의견은 링크행위와 정범의 범죄 실현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방조가 성립한다고 하면서 링크를 영리적·계속적으로 제공한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경우 이러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링크를 영리적·계속적으로 제공하는 경우 등과 같은 링크 행위의 유형은 공중의 구성원이 침해 게시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로 정범의 범죄 실현에 대한 구체적·인과적 기회증대를 인정할 수 있거나 방조범의 확정적인 고의를 추단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인과적 '기회증대'를 인과관계라고 보는데 의문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회증대'를 인과관계로 본다면 '계속적' 제공은 이에 해당할 수 있지만 '영리적' 제공이 이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판결의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의 태도가 일반적인 방조범의 성립과 종속성, 죄수 등의 법리에 반하고, 법원으로 하여금 방조범의 성립이 문제될 때마다 그 성립요건을 일일이 정해야만 하는 부담을 지우며,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른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였다. 다음으로 '송신행위'를 방조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 이 판결의 반대의견은 송신은 업로드를 기초로 파일 전송 프로그램을 통해 '기계적'으로 구현되는 결과에 지나지 않고, 링크행위가 이러한 송신행위 자체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송신행위가 아무리 기계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해도 링크행위로 인하여 사용자가 클릭 등의 행위를 함으로써 이러한 기계적 송신행위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링크행위는 송신행위를 용이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송신행위를 방조한다고 구성하게 되면 원칙적으로 정범의 이러한 송신행위를 일일이 특정해야 하는 현실적인 번거로움이 생기게 된다. 다운로드받는 사용자를 정범으로 하여 복제의 방조범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처벌의 필요성이 있는 행위이고 송신행위의 방조로는 볼 수 있다면 송신행위를 일일이 특정하는 것보다는 전단계의 이용제공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볼 현실적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용제공행위에 대한 방조범의 성립을 긍정한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으나, '영리적·계속적' 제공과 같은 요건을 둘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남는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위와 같은 요건을 두지 않더라도 '영리적·계속적'인 링크 사이트가 단속의 대상이 될 것이므로 큰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21도10903 판결은 "피고인들이 이 사건 사이트를 운영하던 도중에 대법원 2015. 3. 12. 선고 2012도13748 판결이 선고되었지만, 이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변경되었다. 법률 위반 행위 중간에 일시적으로 판례에 따라 그 행위가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었던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자신의 행위가 처벌되지 않는 것으로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아, 링크사이트 운영 중 링크행위가 방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적이 있더라도, 형법 제16조(자기가 한 행위가 법령에 따라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않는다)의 법률의 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구민승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영화
불법유통
저작권법
구민승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2022-01-24
기업법무
상사일반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 침해와 금지청구
1. 사안의 개요 피고 회사는 원고 회사와 소외인(피고 회사의 종전 대표이사) 사이 자산양도계약에 따라 원고 회사의 종전 상호(○○○ 주식회사)와 같은 명칭으로 설립되어 원고 회사로부터 도메인이름(*********.co.kr 등) 등 그 영업 자산 일체를 양도받았으나, 원고 회사가 주주총회 특별결의 없이 자산을 양도하였다는 이유로 자산양도계약이 무효가 되었다. 피고 회사는 원고로부터 도메인이름의 반환을 요구받자 이를 반환하지 않을 생각으로 피고 회사 대표이사의 아들인 피고 2에게 이를 이전하고는 영업에 사용하였다. 이에 원고 회사가 피고 회사와 피고 2에 대하여 도메인이름 등록이전과 도메인이름과 상호의 사용금지 등을 구하는 것이 이 사건 사안이다. 원고 회사는 ⅰ) 피고2에 대한 도메인이름 등록이전 청구는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이하 '인터넷주소법') 제12조에 근거하여, ⅱ) 피고들에 대한 도메인이름과 상호의 사용금지 청구는 ①원상회복청구권 또는 방해배제청구권 또는 ②상법 제23조 또는 ③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나목에 근거하여 청구하였다. 도메인이름과 상호의 사용금지 청구의 청구취지는 "피고들은 '○○○' 등의 문자를 피고 회사의 인터넷 도메인이름 및 전자우편(e-mail) 주소의 이름으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되고, 피고 회사의 광고 또는 홍보 일체 수단으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이다. 참고로 위 자산양도계약이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지 않아 무효라는 이유로 피고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일부 도메인이름에 관하여 원고 회사에게 등록이전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된 바 있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2다5810 판결, 대구지법 2013. 2. 8. 선고 2012나11189 판결). 2. 판결의 검토 가. 이 사건에서의 어려운 선결 쟁점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권리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등록기관에 대한 도메인이름의 등록­사용에 관한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상호에 관한 권리이다.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는 채권적 권리라는데 별다른 이설은 보이지 않는데, 도메인이름에 관한 양도계약이 무효이므로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는 양도인인 원고 회사에게 당연 복귀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상호에 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하여는 견해가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원고 회사의 상호를 변경하고 이를 피고 회사가 사용한다는 계약도 무효이므로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와 마찬가지로 원고 회사가 상호권자라는 견해이다. 다른 하나는 원고 회사는 원고 회사와 소외인 사이의 계약에 따라 2007년 8월 30일경 상호를 변경하였고, 피고 회사는 위 시점부터 위 계약이 무효로 확정된 2013년 6월 27일경까지 약 6년간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상호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상호에 화체된 신용 등은 피고 회사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무효로 된 계약의 당사자는 피고 회사가 아니므로 원고가 피고 회사에 상호권을 이전하도록 청구할 권원이 존재하지 않고, 나아가 피고 회사의 상호사용에 의해 장기간 형성되어 온 신용을 하루아침에 원고에게 반환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가의 관점에서 보면 후자의 견해도 일리가 있다. 게다가 피고 회사나 소외인이 원고 회사의 주총 특별결의가 없었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고, 피고 회사나 소외인이 원고 회사에게 위 계약의 대가로 지급한 돈의 반환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정도 있다. 하지만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는 원고 회사에게, 상호에 관한 권리는 피고 회사에게 귀속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고, 이에 대법원은 2016년에 접수된 사건을 5년간이나 심리한 끝에 결국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원고 회사의 손을 들어 주는 선택을 하였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 본다. 나. 피고 2에 대한 인터넷주소법 제12조에 기한 등록이전청구 가부 인터넷주소법 제12조 제1항은 "누구든지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의 도메인이름 등의 등록을 방해하거나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얻는 등 부정한 목적으로 도메인이름 등을 등록·보유 또는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은 제1항을 위반하여 도메인이름 등을 등록·보유 또는 사용한 자가 있으면 그 도메인이름 등의 등록이전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과 같이 계약이 무효가 되어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가 원고에게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사례에서 인터넷주소법을 적용하여 그 등록이전을 구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선례나 이를 명시적으로 논하는 견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상호에 관한 권리가 피고 측에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①사이버스쿼팅행위(도메인이름의 무단점유)를 막고자 제정된 것으로 보이는 인터넷주소법의 적용범위를 이 사건과 같이 계약법의 법리에 의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에까지 굳이 확장하여 적용할 필요가 없다(인터넷주소법을 적용하면 도메인이름 반환의무를 지는 자의 동시이행항변은 가능한지 등의 많은 의문이 발생할 수 있음). ②이 사건 도메인이름이 원고에게 귀속되는 것은 계약법의 법리에 따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실체적으로 보면 피고들이 상당기간 사용하여 그 신용이 화체된 도메인이름을 원고에게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자산양도계약이 무효이므로 원고가 상호에 대한 권리자이고, 피고 회사에 대하여 도메인이름을 처분해서는 안 된다는 가처분결정과 원고에게 도메인이름을 반환하라는 법원 판결 이후에도 피고 2에게 도메인이름 등록이전이 계속된 점 등을 들어, 피고 2가 부정한 목적으로 도메인이름을 자신의 명의로 등록이전을 하였다"고 보았다. 다. 피고 회사에 대한 도메인이름과 상호의 사용금지 청구에 대하여 1) 원상회복청구권 또는 방해배제청구권에 기한 청구 대법원은 "도메인이름에 관하여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는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거나 이후 도메인이름을 직접 등록·보유 또는 사용하여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하여 침해의 우려가 있는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다. 이때 위와 같은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 청구를 할 수 있는지는 침해행위의 양태, 피침해이익의 성질과 그 정도에 비추어 그 위법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와 함께 그 침해가 이루어진 후에는 손해배상만으로 피해 회복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지 여부와 침해의 우려가 있는 행위를 금지 또는 예방함으로써 보호되는 권리자의 이익이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침해자의 손실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였다. 그러면서 원고 회사가 피고 회사를 상대로 도메인이름을 인터넷 웹사이트 주소로 사용하는 행위의 금지청구를 긍정하였으나, 그 밖에 '○○○' 등의 문자를 피고 회사의 전자우편 주소나 광고 또는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를 근거로는 위 행위에 대한 금지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결이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위 법리는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하여 이익형량을 통해 손해배상청구 외에 금지청구를 인정한 대법원 2010. 8. 25.자 2008마1541 결정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위 종전 대법원 판결이 부정경쟁행위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민법상 불법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금지청구권을 이끌어 냈다. 위 판결은 불법행위에 대한 일반적인 금지청구권을 인정할 필요성은 있지만 이에 관한 근거가 부족하여 금지청구권 규정이 있는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를 근거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 판결이 '민법상 불법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위 판결이 나온 지도 이미 10년이 넘어 실무적으로 정착이 된 이상,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의 침해의 경우로 한정하기 보다는 위법행위 일반으로 확대하였어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2) 상법 제23조의 상호사용금지청구권에 기한 청구와 부정경쟁방지법에 기한 청구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판결은 상호에 관한 권리가 원고 회사에 있다고 보고 있으므로 상법 제23조 제1항(누구든지 부정한 목적으로 타인의 영업으로 오인할 수 있는 상호를 사용하지 못한다)의 상호사용금지청구권에 기한 금지 청구를 인정하였고, 주지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나목에 기한 금지 청구는 부정하였다. 3) 피고 2에 대한 청구에 대하여 한편, 대법원은 피고 2는 도메인이름이나 상호를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피고 2에 대한 이 부분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3. 이 판결의 의의 이 사안에서 상호에 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이 판결은 인터넷주소법 제12조에 기한 이전등록청구가 불법행위의 영역인 사이버스쿼팅이 아니라 이 사건과 같이 계약이 무효가 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밝힌 최초의 사례이다. 또한 비록 도메인이름에 관한 권리의 침해의 경우로 제한되기는 하였지만 위법행위에 대하여 이익형량에 따라 금지청구가 긍정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구민승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도메인이름
등록이전
상호
구민승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2021-09-09
형사일반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
Ⅰ. 공소사실의 요지 36세의 남성인 피고인은 2014년 7월 중순경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하여 알게 된 14세의 여성인 피해자에게 다른 사람의 사진을 마치 자신의 사진인 것처럼 가장하여 전송하면서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생인 A(가상의 인물)'라고 거짓으로 소개하고 채팅을 통해 피해자와 사귀기로 하였다. 피고인은 2014년 8월 초순경 피해자에게 "사실은 나(A)를 좋아해서 스토킹하는 여성이 있는데 나에게 집착을 해서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 우리 그냥 헤어질까"라고 거짓말하면서 "스토킹하는 여성을 떼어내려면 나의 선배와 성관계를 하고 그 장면을 촬영하여 스토킹 여성에게 보내주면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였다. 피해자는 피고인과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피고인의 제안을 승낙하였고 피고인은 마치 자신이 A의 선배인 것처럼 행세하며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Ⅱ. 판결이유 대법원 2001. 12. 24. 선고 2001도5074 판결 등(이하 '종전 판례')에서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제5항, 형법 제302조의 '위계'의 개념에 대하여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는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오인·착각·부지란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착각·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착각·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원심에서는 본 사안에 대하여도 위와 같은 법리에 따를 때 피고인의 행위가 위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피고인의 위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제5항 위반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종전 판례를 변경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위계'라 함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왜곡된 성적 결정에 기초하여 성행위를 하였다면 왜곡이 발생한 지점이 성행위 그 자체인지 성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인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발생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오인·착각·부지에 빠지게 되는 대상은 간음행위 자체일 수도 있고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이거나 간음행위와 결부된 금전적·비금전적 대가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 Ⅲ. 평석 1. 종전 판례에 대한 학계의 비판 종전 판례의 입장에 대하여는 위계의 개념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그 요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김성천·박찬걸·이덕인·조국·최은하 등). 첫째, 미성년자에 대한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처벌하는 취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 능력을 발달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는 미성년자를 충분히 보호하기 위한 것임에도 종전 판례는 그러한 입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능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될 정도의 미성년자만을 본 죄의 보호대상으로 삼았다. 둘째, 대법원에서 형법 제302조 등에서 위계와 병렬하여 행위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위력'의 개념에 대하여는 비교적 폭넓게 해석하면서도 '위계'에 대하여는 그와 반대로 제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은 균형 있는 해석이 아니다. 셋째, 삭제된 구 형법 제304조에서는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위계에 의한 간음을 범죄화하면서 혼인을 빙자한 경우를 위계의 구체적인 행위 태양으로 명시하였는데 혼인의 빙자에 의한 오인·부지·착각은 성행위의 동기 부분에서의 착오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형법 입법자의 의사는 '위계'의 개념에 동기의 착오를 일으킨 경우도 포함하고자 하였던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다. 2.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 가. 대상판결은 위와 같은 학계의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위계' 개념에 대한 종전 판례의 입장을 변경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타당한 방향의 변경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남기고 있다. 나. 종전 판례가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입장의 단초는 청소년보호법 제7조 제5항의 법정형이 제1항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의 경우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보호의 필요가 크다 하더라도 폭행·협박에 의하여 성관계를 맺는 행위와 성관계에 이르는 과정에서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행위의 불법의 정도가 동일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우므로 종전 판례는 그와 같은 형벌체계상의 불균형을 위계의 개념을 축소해석하는 방법으로 해소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같은 취지로, 한영수). 물론 대상판결에서도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야 함을 지적함으로써 위계 개념이 지나치게 확장해석되는 결과를 방지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무엇이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루는지는 개별 판단자에 따라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과 같이 성행위의 상대방이 사이버 공간의 1인 2역 연기를 통하여 가상의 인물로 가장한 경우 '위계'를 인정하는 결론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아마도 그러한 사안의 힘이 만장일치에 의한 판례 변경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령 명문대생을 동경하는 고등학생에게 명문대 재학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유혹한 경우 상대방과의 배타적인 애정 관계가 성행위의 필수 조건이라고 믿는 고등학생에 대하여 양다리임을 속이고 성행위로 나아간 경우 등은 어떠한가? 이러한 경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에 있어서 착오를 일으켰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나 그러한 사안이 최소 2년 6월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정도에 이르는 것인지에 대하여 대상판결 사안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죄형균형의 원칙에 합치되는 법해석과 적용을 위해서는 무엇이 위 조항에 따른 처벌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중요한 동기'의 착오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히 분별해 낼 수 있는 추가적인 판단기준이 요청된다. 종전 판례는 일단 동기의 착오를 일으킨 경우를 위계 개념으로 끌어들이게 된다면 그 안에서 가벌적인 동기의 착오 유발 행위와 불가벌적인 동기의 착오 유발 행위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전제 하에 구체적 타당성을 양보하고 경직되어 보이나마 제한해석을 통해 법적 안정성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대상판결은 불확실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느슨한 판단기준 하에 사안별로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최적의 판단을 얻어 나가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대상판결에서 '중대한 동기'에 관한 사안별 유형화 작업마저도 구체적 타당성에 반하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보는지는 반드시 분명하지 않다. 만일 미성년자의 특수성을 고려한 구체적 타당성 확보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여서 유형화 작업조차도 그러한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에 상응하여 처벌의 하한 또한 유연하게 열어두는 입법적인 시정이 필요할 것이다. 다. 대상판결은 위계에 의한 간음이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능력이 취약한 피해자를 보호 대상으로 하는 것임을 위계의 개념을 확장하는 강력한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실정법상 처벌 근거의 부재는 별론으로 성년자에 대한 위계에 의한 간음이 반드시 가벌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온전한 행사능력을 가진 주체의 자기책임은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자기결정권의 행사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데 위계는 이러한 자율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인간의 성관계에서 사용되는 위계는 '낭만적 유혹'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서 국가가 간섭할 영역이 아니라는 관념 또한 항상 타당하지는 않다. 예컨대 원치 않는 임신을 우려하여 콘돔을 착용하지 않으면 성관계를 가지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상대방이 그에 응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콘돔을 뺀 상태에서 삽입을 한 경우 성인 여성이 성관계에 이르게 된 판단의 착오가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자기책임의 영역에 있는 위험으로 치부되는 것이 타당한가? 물론 성인에 대한 위계에 의한 간음의 가벌성을 인정할 경우에는 그 위계의 범위는 미성년자에 대한 위계의 경우보다 좁게 설정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판단자에게 또 다른 구분선을 요구한다. 이미 하나의 구분선을 긋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또 다른 구분선을 긋는 것이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어떠한 방식이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는 실정법상 성인에 대한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모두 폐지한 현 시점에서는 즉각적인 고민의 대상이 아니지만 추후 비동의간음죄의 입법이 현실화된다면 곧바로 수면 위의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홍진영 교수 (서울대 로스쿨)
간음죄
미성년자
성관계
홍진영 교수 (서울대 로스쿨)
2020-11-19
형사일반
술에 취한 자에 대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I. 사실관계 군인신분의 피고인은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처 그리고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다음 날 새벽 처가 먼저 잠이 들고 피해자도 안방으로 들어가자 피해자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그 후 피해자가 실제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술에 취하지 아니하여 준강간의 대상이 될 수 없음에도 만취되어 항거불능상태에 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피해자를 1회 간음하였다. II. 소송경과 및 판결요지 군검찰은 피고인을 강간혐의로 기소하였다. 이후 제1심 공판과정에서 공소장을 변경하여 준강간혐의를 추가하였으며 보통군사법원은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고 준강간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피고인은 피해자가 술에 취해있지 않았다는 사정 등을 이유로 항소하였고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가 여러 정황에 비추어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에 군검사는 다시 공소장을 변경해 준강간죄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준강간미수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였다. 고등군사법원은 준강간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는 대신 준강간미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피고인은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로 피해자를 간음하였지만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경우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해 준강간죄의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행위 당시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은 있었으므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 III. 평석 1. 대법원 다수의견의 취지 피해자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고 잠이 들어 있어서 그러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을 하였는데 피해자가 실제로는 그러한 상태에 있지 않았을 경우 이와 관련해 형법 제27조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 단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대상판결은 이 조문을 동 사안에 적용하고 있다. 즉 이 사안은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해 준강간의 '결과발생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면서 동시에 '위험성'이 인정되므로 불능미수 법리로 해결할 수 있는 케이스라는 것이다. 2. 다수의견에 대한 반론의 검토 (1)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의 의미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논거로 미수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실행행위를 종료하지 못하거나 실행행위를 종료했으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데 대상사건은 이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실행행위도 종료되었고 그로 인하여 결과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반대의견도 기본적으로 같다. 준강간죄는 구성요건결과의 발생을 요건으로 하는 결과범이자 보호법익의 현실적 침해를 요하는 침해범이므로 준강간죄에서 구성요건결과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간음이 이루어졌는지, 즉 그 보호법익인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수란 실행에 착수하여 범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를 모두 충족시킨 경우를 말한다.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에는 행위주체·실행행위·인과관계·결과 등이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을 총칭하여 '구성요건적 결과'라고 한다. 형법 제25·26·27조 각각의 미수범의 성립요건에서 결과의 의미는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의 일부로서의 결과나 결과범에서 말하는 결과가 아니다. 이때의 결과는 '구성요건적 결과'를 뜻하는 것이다.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미수범 처벌규정이 존재하는 때에는 미수범이 성립된다. 피해자를 협박하여 그의 재산상의 처분행위로 재물을 영득했다고 하더라도 만일 피해자가 의사의 자유가 침해되어 재산상 처분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행위자를 불쌍하게 여겨 재물을 교부한 것이라면 공갈죄는 미수에 그친다. 침해범과 위험범의 차이에 주목하고자 하는 반대의견의 관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침해범과 위험범의 구별은 범죄의 성질이 법익침해를 본질적 요건으로 하는가에 따른 것에 불과하고 현주건조물방화죄처럼 위험범이지만 일정한 결과의 발생을 요하는 구성요건도 존재하며 따라서 준강간죄가 위험범이 아닌 침해범이기 때문에 구성요건적 결과의 발생여부를 간음이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논증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요컨대 침해범이라는 특성이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을 다르게 해석해야 할 합당한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침해범의 경우 대체로 행위자가 '의욕한 바', 예컨대 사망이나 간음이 곧 '구성요건적 결과'인 것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법리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2) '결과발생의 불가능성'의 판단방법 대법원 반대의견은 결과발생의 불가능 여부는 실행의 수단이나 대상을 착오한 행위자가 아니라 통찰력이 있는 일반인의 기준에서 보아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결과발생의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따라서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결과발생의 개연성이 존재하지만 특별히 행위 당시의 사정으로 인해 결과발생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는 불능미수가 아니라 장애미수가 될 뿐이라고 하며 대상사건은 불능미수로 의율할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 그 취지는 일반적으로 혹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만취한 상태의 피해자에 대한 간음은 실행행위가 종료되기 전에 사전적 관점에서 판단하면 준강간의 실현가능성에 있어서 결과발생이 가능한 경우에 해당하지만 사안의 경우 사후적으로 밝혀보니 피해자가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아서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이것은 우연한 사정이 개입하여 그렇게 된 것일 뿐 규범적으로 판단할 때에는 '결과발생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후적으로 밝혀진 결과에 따라서 '결과발생의 불가능' 여부가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대의견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그렇게 되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모든 미수범 사안은 애당초 결과발생이 불가능한 미수유형으로 분류되어 불능미수범으로 의율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위자가 실행행위를 할 당시에 결과발생이 불가능했는지 여부는 그 당시 행위자에게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가 있었는지 여부의 판단문제로 귀결되며 이는 일반적으로 결과가 발생할 수 없음을 알면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관념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행위자의 인식을 넘어선 사정들, 즉 사후적으로 밝혀진 점들에 의해 확정되는 문제이므로 불능미수 조문의 적용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사실판단 문제이다. 따라서 결과발생의 불가능 여부는 실행행위 당시 행위자의 예측이나 인식과는 무관하게 사후적으로 증거에 의해 밝혀질 수밖에 없다. 소송법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불능미수는 법률상 형의 가중·감면의 이유되는 사실로서 이는 범죄사실 자체는 아니지만 범죄사실의 존부만큼 피고인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유이므로 법률상 증거능력이 있고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친 증거에 의한 입증을 필요로 하는 '엄격한 증명'의 대상이고 따라서 불능미수가 인정되기 위해서 입증되어야 할 사실인 '결과발생의 불가능성'은 사후적 판단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울러 반대의견의 논지대로 사전적 관점에 의해서 결과의 실현가능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 실제로 불능미수가 성립될 수 있는 사안은 매우 축소되어 발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위 통찰력 있는 평균인의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결과발생이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행위자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사례는 그에게 '현저한 착오'가 없는 이상 관념하기 힘들다. 만일 이처럼 '현저한 착오'가 있는 경우만 불능미수가 인정된다면 피고인에게 불리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바 착오의 의미를 '현저한 착오'로 축소해석하는 것은 법문언의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유추해석하는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 3. 맺음말 불능미수는 실행의 착수단계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이미 결과발생의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결과불법이 거의 소멸했거나 '법익평온상태의 교란'이라는 가장 약한 형태의 결과불법만 인정된다. 다만 행위자의 의사를 고려했을 때 착오가 없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합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법익에 대한 '잠재적' 위험성은 인정되며 이러한 결과불법의 구조로 인해 결과발생이 가능해서 법익에 대한 '현실적' 위험성이 있는 장애미수에 비해 결과불법이 감경된다. 대상판결의 사실관계를 보면 피고인은 간음의 고의로 실행의 착수를 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발생의 불가능성이 인정되며 대법원의 판단에 의하면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으므로'준강간의 불능미수가 성립될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따라서 피고인을 준강간의 미수범으로 의율한 대법원의 판단은 타당하다고 할 것이며 그 처벌은 합당한 법리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안성조 교수 (제주대 로스쿨)
준강간죄
장애미수
불능미수
준강간미수
취업제한
간음
안성조 교수 (제주대 로스쿨)
2020-11-16
기업법무
형사일반
채용비리와 업무방해
I. 대상판례 회사의 직원을 채용함에 있어 피고인(상무이사 D) 외 3인의 면접위원(A·B·C)이 면접을 실시하였는데 A가 채점표를 제출하고 먼저 면접장소를 떠난 후 D가 면접점수와 무관하게 자신이 임의로 순위를 정한 명단을 B·C에 제시하여 이들의 동의를 받고 그에 따라 최종합격자를 결정하였으며 대표이사인 E도 이러한 채용을 양해한 사안에서 검사가 A 또는 E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였는데, 대법원은 (i) 직원채용업무는 대표이사에 귀속되고 A의 업무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직원채용에 관한 업무'가 아니라 직원채용을 위한 '면접업무'이며 (ii) 채점표를 제출하고 면접장소를 이탈함으로써 A의 면접업무는 종료되었으므로 그 후 D가 합격자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더라도 A에게 오인·착각·부지(이하 '오인')를 일으켰다고 할 수 없고 (iii) 대표이사 E도 위와 같은 채용방식을 양해하였으므로 E에게 오인을 일으켰다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무죄 취지로 판단하였다. II. 검토 1. 판례의 유죄법리 채용비리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었다. 종래 판례는 이를 업무방해죄로 의율하여 왔다. 그리하여 점수조작으로 필기시험에 합격시켜 면접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면접위원으로 하여금 응시자의 정당한 자격 유무에 관하여 오인을 일으키게 하는 위계로 면접업무의 적정성 또는 공정성을 저해하여 면접위원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고(2009도8506) 특정인이 부정하게 포함된 사정안에 대해 심의·의결을 하게 하는 것은 교무위원들의 입학사정업무의 적정성이나 공정성을 방해한 것이라고 한다(2017도19499). 요컨대 심사(면접이나 사정)의 대상자나 심사자료의 내용에 조작이 있으면 이를 토대로 하는 심사위원에 대한 업무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비록 채용권한은 대표자에게 있고(2005도6404) 심사위원의 업무는 그로부터 위임된 업무이지만 이는 독립된 업무로서 대표자와의 관계에서도 타인의 업무에 해당하여 대표자의 지시에 의한 경우도 마찬가지라 한다(2017도19499, 2009도8506, 92도255). 2. 채용비리는 업무방해 문제인가 가. 엄격해석의 요청 이와 같이 우리 판례는 채용비리를 업무방해죄로 의율하고 있지만, 업무방해죄를 형법상 구성요건으로 규정한 입법례는 일본형법 정도가 발견되고 독일형법도 프랑스형법도 그러한 규정이 없다. 일본형법의 업무방해죄는 원래 노동쟁의를 대상으로 만들어졌었다. 우리 형법은 법문상 그러한 제한이 없지만 노동쟁의와 관련하여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사례가 많았는데 근자에 이르러 실무상 채용비리로 그 적용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채용비리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업 및 경제활동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되기 때문에 법률에 특별한 제한이 없는 한 기업은 누구를 고용할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가령 특정한 사상이나 신조를 이유로 고용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위법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례이다. 미국법에서도 업무방해죄 규정이 발견되지 아니하고 나아가 사기업이 부정한 고용을 하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되는 사례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 자체가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 사기업에서의 채용비리를 형사처벌하는 것 또한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우리 업무방해죄를 운용함에 있어 가급적 그 적용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며 이를 채용비리에 적용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나. 공정성과 불법의 주소 우리 판례는 업무의 적정성 내지 공정성이 방해된 경우에도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법리가 확고하다(2006도1721 등). 그러나 업무방해죄의 연혁과 입법례들을 살펴볼 때 이러한 법리가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대체로 업무수행 자체가 방해된 경우들이 실무상 문제되고 있으며 학설도 업무의 내용적 적정이나 공정이 방해된 경우는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채용비리가 사회적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당한 다른 지원자들 나아가 공정함이 저해된 사회가 피해자이다. 채용비리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채용비리를 행한 회사나 면접위원들의 이익이 침해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판례가 이들을 피해자로 한 업무방해죄로 의율하는 사이 정작 채용비리의 트리거가 된 청탁자(대체로 유력자)들은 처벌의 그물에서 벗어나고 있다. 공정성이라는 명분이 착시현상을 일으켜 공정의 피해자라기보다 오히려 가해자라 할 수 있는 회사 등을 보호하는 업무방해죄로 달려간 것이다. 사회적 분노는 불법을 구성할 수 있지만 그 불법을 담는 구성요건이 아닌 엉뚱한 구성요건을 끌어오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 만일 채용비리의 불법이 회사나 면접위원들에 대한 것이라면 이들은 자신들의 업무가 방해되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법상 이러한 청구가 받아들여질지는 매우 의문이다. 채용비리의 불법은 업무방해에 있지 않다. 3. 판례 유죄법리의 이론적 난점 나아가 판례에 따라 채용비리를 업무방해로 의율한다 하더라도 그 법리(이하 '유죄법리')에는 여러 난점이 있다. 가. 업무의 타인성 채용절차는 다양하지만 필터링-서류전형-1차 면접-2차 면접의 단계를 거치고 각 단계마다 평가자(이하 '면접위원')의 평가를 토대로 인사팀이 사정표를 작성하고 이 표를 토대로 결정권자가 단계별 합격자를 결정하는 구조가 전형적이다. 유죄법리는 면접위원의 업무는 대표이사에 대해서도 독립된 타인의 업무이므로 대표이사나 인사팀의 점수조작은 면접위원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한다. 위 법리는 결국 위임인(대표이사)의 방해로 수임인(면접위원)이 수임업무를 적정하게 행하지 못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임인의 방해로 수임인의 업무가 적정하지 못한 결과로 되었더라도 선관의무(민법 제681조) 위배가 있다고는 할 수 없어 위임계약상 책임질 일이 없는 수임인이 어떠한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도 없다. 면접업무는 적어도 공정성에 관한 한 타인의 업무라고 하기 어렵다. 나. 업무의 내용범위 면접위원의 업무는 공정한 채용업무가 아니라 면접업무 자체이다. 대상판례는 이를 인정하고 면접업무가 종료된 이후에는 그 단계 채용절차가 끝나지 않았더라도 당해 면접업무에 대한 방해는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면접종료 후 사정표를 조작하여 결국 불공정한 채용업무가 되더라도 면접위원에 대한 업무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에 유죄법리는 다음 단계의 면접위원에 대한 위계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최종면접에 부정이 있는 경우나 특별채용 또는 서류전형만 있는 경우에는 적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앞서 본 바와 같이 채용업무의 공정성은 면접업무가 아니라면 면접업무는 주어진 대상자에 대한 면접평가 자체에 그치지 나아가 전단계에서의 대상자 선정이 정당했는지 여부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유죄법리가 말하는 응시자 자격에 관한 위계는 업무범위 밖의 사항에 대한 것이고 이로써 면접업무의 공정성이 저해된다고도 할 수 없다. 유죄법리를 관철한다면 전단계의 조작은 이후의 모든 업무에 대한 방해가 된다고 하게 된다. 회사의 업무는 대체로 많은 사람이 협동하여 수행되는데 누군가 자신의 업무를 부정하게 행하였다면 이후에 관여하는 수많은 직원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게 되며 회사에 대하여 범죄(가령 배임)를 저지른 사람은 언제나 업무방해죄를 동시에 범한 것이 된다. 이러한 결론은 타당하지 않다. 다. 위계의 상대방 대표자의 의사는 법인의 의사로 평가된다. 대표자가 기망행위자와 동일인이거나 공모하는 등 기망행위를 안 경우에는 착오가 있다고 할 수 없어 법인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2016도18986). 마찬가지로 대표자가 채용비리에 관여한 경우에 회사에 대한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면접위원에 대한 죄가 독립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고 보는 유죄법리에 의하더라도 면접위원이 공모·양해한 경우는 그에 대한 업무방해도 성립하지 않는다(2009도8506). 사장과 직원이 공모하여 점수를 조작하여 면접시험을 보게 한 사안에서 위계의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판례(2005도6404)도 같은 궤에 있다. 이 판례는 면접위원들은 공모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이들에 대한 위계도 부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회사(인사팀)의 부정이 면접업무에 대한 방해는 아니라는 것으로 위계인데 양해했다기보다 위계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저변에서 발견된다. III. 결론 채용비리는 비난받을 행위이다. 그러나 이를 회사나 면접위원에 대한 업무방해로 구성하는 것은 엉뚱한 곳에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대상판례가 업무방해죄의 적용을 엄격하게 한 점에서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면접위원에 대한 업무방해죄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모든 관여자가 똘똘 뭉쳐 비리를 저지른 경우에는 오히려 무죄가 되고 관여자가 적을수록 많은 죄가 성립하는 역전현상은 해결하지 못하였다. 채용비리는 업무방해로 의율할 것이 아니다. 이상원 교수(서울대 로스쿨)
채용비리
업무방해
채용
이상원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0-10-29
지식재산권
형사일반
상표권 계약위반과 권리소진
1. 서론 상표권 계약위반의 경우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는가? 용어부터 생소한 권리소진(權利消盡)의 원칙(the rule of exhaustion) 또는 최초판매이론(the first sale doctrin)이란 특허권이나 상표권 또는 저작권의 행사로 인해 제작된 물품이 시장에 유통되는 경우 해당 권리자가 이에 대하여 재차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론상 상품이 유통되는 모든 단계에서 상표권자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상표권자가 상품을 판매한 경우 상표권은 완전히 행사된 것으로 소진되고 이후 상표권자는 그 상품이 추가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법원 및 학계는 권리소진의 원칙을 받아들여 지식재산권과 소유권 사이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런데 통상사용권자가 상표권자와의 계약에 위반하여 상품을 판매한 경우에도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는지는 일률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로서 국내에서는 아직 논의가 충분하지 않고 대법원 판례도 없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2008년 Quanta 판결 및 2017년 Lexmark 판결, 그리고 유럽사법재판소(CJEU)의 2009년 Dior v. Copad 판결 등에서 활발한 논의가 있는데 위 각 사안은 특정한 계약위반의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14446 판결은 계약위반과 상표권의 소진에 관한 일반적인 판단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상표권 계약위반과 권리소진{사법 제52호(2020. 7.)}'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2. 사안의 개요 'Metrocity' 브랜드 상표권자는 통상사용권자와 상표권사용계약을 체결하며 인터넷쇼핑몰에서의 판매를 제한하였다. 이후 통상사용권자가 계약조건을 위반하여 인터넷쇼핑몰울 운영하는 피고인에게 시계를 공급하고 피고인이 인터넷으로 판매하였는데 검찰은 피고인이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인터넷으로 상품을 판매한 것은 상표권 침해죄에 해당한다고 기소하였다. 피고인은 상표권 소진 주장 및 침해 고의가 없다는 주장을 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유죄를 인정하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며 '계약상 부수적인 조건을 위반하여 상품이 유통된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권리소진의 원칙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고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 상표의 주된 기능인 상표의 상품출처표시 및 품질보증 기능의 훼손 여부, 상표권자가 상품 판매로 보상을 받았음에도 추가적인 유통을 금지할 이익과 상품을 구입한 수요자 보호의 필요성 등을 종합하여 상표권의 소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고 피고인의 고의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3. 대상판결의 검토 가. 학설 국내 상표법 분야에서는 '계약의 본질적 내용을 기준으로 권리소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된바 있으나 본격적인 논의는 찾기 어렵다. 특허법 분야에서는 계약위반은 채무불이행 문제일 뿐이라는 견해와 특허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고 저작권법 분야에서는 이용방법과 조건을 구분하는 견해, 저작권의 본래적 내용 여부를 구분하는 견해 등 다양한 의견이 국내 및 일본에서 제시되고 있다. 나. 국내의 판결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도3445 판결은 상표의 권리소진과 그 적용 범위를 명시한 최초의 판결이고 이후 병행수입에 관한 일련의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6. 10. 13. 2006다40423 판결 등)이 있었으나 계약위반과 상표권의 소진에 관한 판례는 없었다. 하급심에서는 특허법원 2018. 10. 10. 선고 2018나1343 손해배상 사건 등에서 계약위반과 상표권의 소진이 문제되었으나 대법원의 법리 설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 외국의 판결 먼저 미국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특허품의 자유로운 유통을 허용하기 위해 최초판매의 원칙이 생성되어 왔는데 종래 미국의 판례는 특허권자가 적법한 제한을 가하여 특허품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특허권이 소진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해 왔으나 연방대법원의 2008년의 Quanta 판결, 2017년 Lexmark 판결을 통해 권리소진을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된다. 2008년 연방대법원의 Quanta v. LG 판결은 일부 계약조건에 위반된 경우에도 권리소진을 인정했으나 이는 허락된 판매(Authorized Sale)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된 사안으로 계약위반과 권리소진을 직접 다룬 것은 아니었다. 이후 2017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Lexmark 판결에서 "특허권자가 특허품을 판매하기로 결정하면 특허권자가 부과하는 어떠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해당 특허권은 소진된다"고 판단하여 권리소진의 적용범위를 넓혔으나 Lexmark case는 '특허권자에 의해' 최종소비자에게 판매가 적법하게 이루어졌고 다만 판매 후의 반환조건(post sale restriction, PSR)만이 추가된 것이므로 통상사용권자에 의해 판매된 우리 대상판결의 사안과는 차이가 있다. 2009년 유럽사법재판소(CJEU)의 Copad v. Dior 판결은 소위 '선택적 판매망(selective distribution)'에 관한 것으로 대상판결 사안과 유사하다. 선택적 판매망 시스템이란 특정한 양적·질적 조건을 충족하는 허가받은 판매업자에게만 물품을 공급하고 해당 판매업자는 소비자 또는 (위 네트워크 내의) 허가받은 재판매업자에게만 물품을 공급하기로 하는 약정을 말하는데 CJEU는 위 사건에서 고급 브랜드(luxury brand)의 선택적 공급 약정(할인매장에서의 판매 금지) 위반은 채무불이행(breach of contract) 뿐만 아니라 상표권 침해(infringement)에도 해당하고 제3자에 대해서도 침해금지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단지 라이선스 계약 위반 때문이 아니고 사치품에 있어서 할인매장 판매는 상표의 명성을 손상시키는 것으로서 유럽상표지침 7(2)에 규정된 권리소진의 예외조항 중 품질손상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다만 사치품이 아닌 일반 제품에까지 위 법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특허와 관련된 2003년 5월 27일 오사카 고등재판소 판결이 계약 위반과 관련된 쟁점을 다루며 '특허권자는 라이선스 계약에서 라이선스 범위를 한정할 수 있으나 특허발명의 실시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부수적 조건의 위반은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며 특허침해가 아니다'고 한 바 있다. 라. 종합적인 검토 먼저 계약 조건에 위반하여 통상사용권자가 물품을 유통한 경우 항상 권리소진의 원칙이 배제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계약 위반행위에 대해 지식재산권 침해를 인정하는 범위는 제한하여 해석해야 한다. 모든 계약위반의 경우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당사자들의 합의로 지식재산권 침해가 성립하는 범위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계약위반으로 규율할 수 있는 문제이며 거래의 안전을 보호할 필요도 있다. 계약을 위반하여 상품이 유통되었다고 해도 이는 진정상품에 해당하여 사실상 상품출처의 혼동이나 품질에 대한 오인의 우려가 없으며 앞서 본 미국 및 유럽의 판결 역시 계약조건 위반만으로 바로 권리침해를 인정하지 않고 권리소진 원칙의 이론적 배경, 해당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충돌하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상표사용계약에 있어서 지정상품, 존속기간, 지역 등 통상사용권의 범위는 통상사용권계약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므로 이를 넘는 통상사용권자의 상표 사용행위는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통상사용권자가 계약상 부수적인 조건을 위반하여 상품을 양도한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양도행위로서 권리소진의 원칙이 배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 판단기준으로는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 상표의 주된 기능인 상표의 상품출처표시 및 품질보증 기능의 훼손 여부, 상표권자가 상품 판매로 보상을 받았음에도 추가적인 유통을 금지할 이익과 상품을 구입한 수요자 보호의 필요성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권리소진이 인정되었다. 4. 결론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14446 판결은 계약위반과 권리소진의 판단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국제적인 논의에서도 한걸음 더 나아간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상표법은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 사용자의 업무상 신용 유지를 도모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고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상표법 제1조) 권리소진 원칙의 적용에 있어서도 충돌하는 이익 사이의 균형 있는 조화가 필요하다. 다만 구체적인 사안별로 계약위반과 권리소진의 원칙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나 위 판결을 계기로 향후 더 발전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민상 부장판사 (창원지법·前 대법원 재판연구관)
상표법
상표권침해
통상사용권자
김민상 부장판사 (창원지법·前 대법원 재판연구관)
2020-09-10
형사일반
준강간죄의 미수는 언제, 어떻게 성립하는가?
1. 사실관계와 소송경과 상근예비역인 피고인은 2017년 4월 17일 오후 10시 30분경 자신의 집에서 피고인의 처, 그리고 피해자(여·22세)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피고인의 처가 먼저 잠든 후인 오전 2시경 피해자가 안방으로 들어가자 피해자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실제로 만취상태가 아니어서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항거불능상태에 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피해자의 옆에서 그의 가슴을 만지고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음부를 만지다가 바지와 팬티를 벗긴 후 피해자를 1회 간음하였다. 군검사는 피고인을 강간혐의로 기소하였다가 이후 공소장을 변경하여 준강간혐의를 추가하였으며, 제1심인 보통군사법원은 준강간혐의만 유죄로 판단하여 징역형을 선고하였다. 피해자가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항소심과정에서 군검사는 다시 공소장을 변경해 준강간을 주위적 공소사실로, 준강간 미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였다. 고등군사법원이 준강간 미수를 유죄로 인정하자 피고인은 실제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상고하였다. 2. 대법원판결: 준강간의 불능미수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피해자가 항거불능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준강간죄에서 규정하고 있는 구성요건 결과의 발생이 처음부터 불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은 있었으므로 사안을 준강간죄의 불능미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시하였다. 이에 대한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구성요건충족 문제와 형법 제27조 결과발생불가능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다고 하면서, 간음행위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있다면 미수범으로 볼 수 없는 것이고, 만약 그와 같은 침해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론하였다. 3. 준강간 미수의 성부 (1) 문제제기 사안의 유형은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고의를 지니고 실행하였으나 외부 상황에 대한 행위자의 착오가 있어 실제로는 법익침해가 없었던 경우'로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강간의 고의를 갖고 피해자를 겁박하여 성관계를 맺었지만 실제로는 피해자도 내심으로 관계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적 자결권침해가 없었던 경우, 떨어져 있는 지갑을 훔칠 의도로 식당에서 가지고 나왔으나 실제 그것이 행위자 자신의 지갑이었던 때, 주거침입을 할 의도로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그 곳이 다른 보행로에 불과했던 상황 등이다. 대법원 다수의견의 논리대로라면 이러한 모든 경우가 불능미수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며 단지 위험성요건으로만 가벌성을 제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반대의견은 이를 불합리하게 여겨, 다수의견이 '결과의 불발생'과 '결과발생의 불가능'을 혼동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2) 준강간 미수의 성립 여기서는 형법학방법론의 근원적인 시각차이가 드러난다. 행위자의 행위속성을 중심으로 가벌성을 결정하는 시각(ex ante)과, 발생한 결과에 주목하여 그로부터 죄책을 추론하는 방식(ex post)의 차이이다. 양자 모두 의미가 있으며 적지 않은 예외도 있지만, 적어도 근대 이후 형사사법은 가시화된 결과 자체의 의의보다는 행위자에게 그 결과를 귀속시킬 수 있는지를 가리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요약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범죄체계론도 고의나 과실을 통해 발현된 불법행위를 확인하고, 구성요건적 결과가 그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는 작업에 해당한다. 여기서 '미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거나, 결과와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어 행위불법과 결과불법 간의 부합이 불완전하지만 가벌성을 인정해야 하는 유형이다. 미수의 성립여부 및 그 종류를 평가하는 데에서 행위속성을 우선 감안하는 것이 불가피한 이유이다. 단지 결과가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벌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미수개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안에서 피고인의 행위내용은 피해자가 술에 취해 항거불능상태인 것으로 생각하여 간음한 것이다. 이로부터 그가 갖고 있던 준강간 고의가 확인되며 그에 이어 간음을 완료하였기 때문에 준강간의 실행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피해자가 위 행위당시 실제로 항거불능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준강간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게 만든 미수의 조건이 될 뿐이다. 따라서 사안은 준강간 자체가 성립하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준강간 미수가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법원의 결론은 이 점에서 타당하다. 4. 미수의 유형 (1) 문제제기 어떠한 종류의 미수로 볼 것인가 하는 물음은 남아 있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이를 실행수단이나 대상의 착오로 인해 처음부터 구성요건이 충족될 가능성이 없지만 위험성이 있으므로 불능미수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의견은 행위가 종료된 사후적 시점에서 가능성을 판단하게 되면, 형법에 규정된 모든 형태의 미수범은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사태라고 볼 수 있기에, '결과불발생'과 '결과발생불가능'을 가려내지 못해 장애미수와 불능미수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2) 사실적 가능성과 규범적 가능성 형법 제27조 불능미수규정의 '결과발생의 불가능성'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견해대립이 있다. 사실적 가능성설은 (불)가능성을 자연과학적·사실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견해이다. 결과발생이 가능한지를 과학적으로 따져 그것이 가능한 경우를 장애미수,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불능미수로 나눈다. 예컨대 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소매치기를 시도한 경우에, 그로부터 절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위험성이 있는 행위이므로 가벌적인 불능미수가 된다. 규범적 가능성설은 장애미수와 불능미수를 가리는 기준인 (불)가능성을 규범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근래의 견해이다. 가능성 판단의 준거점을 결과가 불발생한 시점이 아니라 실행행위 당시로 앞당겨서, 행위 자체의 객관적인 속성에 비추어 구성요건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보편적인 통찰력에 따라 판단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금품을 훔치는 행위는 규범적인 시각에서 결과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이나, 마침 주머니가 비어 있는 것은 결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 장애이므로 이는 장애미수이다. (3) 규범적 검토의 필요성 사실적 가능성설은 중요한 평가지표를 행위 자체의 반가치성으로부터 찾는 근대적 형법원칙에서 벗어나, 사후적 시각에서 가능성평가를 함으로써 실행 외부의 변수에 따라 미수유형을 좌우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 총을 발사한 순간 가능성판단은 유보되며, 행위자가 잘못 겨누어 피해자를 명중시키지 못했다면 장애미수가 되지만, 총알이 피해자에게 정확히 맞았으나 그가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면 불법성이 더 낮은 불능미수로 판단하는 불합리에 이른다. 이 견해에 따르면 모든 미수사안이 불능미수로 포섭될 수도 있다. 미수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의 법리이므로, 사후적 시각에서 결과가 없게 된 인과적인 이유를 소급하여 따진다면 언제나 결과발생을 불가능하게끔 하는 사실적인 조건과 만나기 때문이다. 짧은 과도로 복부를 찔러 사람을 죽이지 못한 경우도 살인을 하기에 사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였으며, 경찰에게 저지당해 절도를 못하게 된 것도 결과발생이 사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불합리를 배제하려면 가능성표지를 평가하는 시점이 행위당시의 실행행위 자체를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 즉 불능미수가 되기 위해서는 행위 속성 그 자체에 결과에 이를 수 없게끔 하는 유인이 이미 내재되어 있어야만 한다. 판시된 사안에서 만약 피해자가 실제로 명정상태에 빠져 있었다면 고의에 의한 행위자의 행위는 준강간 결과를 가능하게 할 불법성을 표출한 것이다. 즉 규범적으로 보아 결과발생이 가능한 행위였다. 마침 피해자가 항거불능상태가 아니었던 사실은 이와 같은 행위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게 한 장애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안은 준강간죄의 장애미수로 보아야 한다. 5. 요약과 결론 피고인이 준강간의 고의를 가지고 실행을 마쳤지만 피해자가 실제로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었던 경우, 행위자가 드러낸 행위속성으로부터 범죄의 유무와 종류를 판단해야 한다는 원리에서 볼 때 이는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준강간의 미수인 것이며 이 점에서 대법원 판단은 타당하다. 그러나 바로 같은 이유에서, 실행 당시 행위 자체의 규범적인 속성을 판단한다면 사례는 준강간의 불능미수가 아니라 장애미수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 두 가지 논점은 범죄체계에서 가벌성 여부와 종류를 확인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은 '드러난 결과 현상으로부터 역추론하는 방식'이 아니라, '행위자가 수행한 행위 자체로부터 평가받아야 함'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홍영기 교수 (고려대 로스쿨)
준강간죄
취업제한
준강간미수
불능미수
장애미수
간음
홍영기 교수 (고려대 로스쿨)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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