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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일반
제3자의 채무변제
I. 사건의 소개 대상결정은 공탁관의 불수리처분에 대하여 재단법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신청한 이의를 기각한 결정이다. 신청인의 청구취지는 ‘민법(법률이름을 생략한다) 469 I 단서의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관하여 민법의 다른 규정과의 통일적 해석, 제2항과의 체계적 해석과 ‘당사자 일방’의 의사표시로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실 등을 비추어, 채권자와 채무자가 합의로 금지한 경우에만 제3자변제가 제한된다’로 요약된다. 1. 대상결정의 판단: 대상결정은 ‘① 법정채권의 경우 반대의사의 표시에 의한 제3자변제의 금지에 관하여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없다. ② 469 I 단서의 ‘의사표시’라는 법문을 이유로 이 조항이 법률행위만을 전제한다고 해석할 법적 근거가 없다. ③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과 같은 법정채권의 경우 채권자가 반대의사를 표시하면 제3자변제가 금지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469의 취지와 부합한다. ④ 이 사건 판결금은 제3자변제가 가능한 금전채권이나 채권자의 반대의사가 명백하면 이를 금지하는 것이 손해배상제도의 취지와 위자료의 제재적, 만족적 기능을 충족한다’는 이유로 이의신청을 기각하였다. 제3자변제에 관한 이후의 결정례들도 대상결정을 거의 그대로 모사·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2. 대상결정의 쟁점: 469 I 단서의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핵심쟁점이다. 대상결정은 ① 채권자의 우선보호가 민법 채권편의 원칙이고, ② 제3자변제는 채권의 상대효의 예외로서 그것이 대체로 채권자에게 이익이 되고 채권자의 의사에 합치하는 것을 전제로 채무자와 제3자 사이의 이해관계와 경제적 필요 등을 고려하여 일정한 요건 아래 법률이 승인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이로써 순진하고 소박하게(?) 법문을 있는 그대로 읽어 ‘당사자 일방의 의사표시’가 제469조 제1항 단서에 포함된다는 결론을 연역한다. 하지만 ①은 생경하다: 민법은 채무자를 약자로 설정하고 그의 보호를 우선한다(특히 607와 608, 652). 그리고 ②는 469의 해석·적용이 아니라 있는 법을 왜곡하고 ‘없는 법’을 만든 것이다. 법관은 법을 제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법률을 준수하여야 하는 전문직업인이다(독일기본법 97 I 참조). II. 채권의 존재와 469의 해석 1. 채권의 존재=변제요건: 대상결정은 이 사건 채권이 채무자를 제재하면서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가 현저한 불법행위채권임을 들어 피해자(채권자)에게 결정권(처분권)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채권자에게 지배권을 수여하는 대상결정은 법적 판단이 아니라 국민정서법(?)과 부화뇌동하는 것이다. 469가 위치하는 민법 제3편 제1장 제6절 <채권의 소멸>은 ‘유효한 채권의 존재’만을 전제하고, 약정·법정채권관계와 채무자의 고의·과실을 묻지 않는다. 채권은 가치중립적(wertneutral) 재산권이고 변제는 급부실현이므로 변제자는 중요하지 않다. 469 I 본문도 제3자변제를 당연시한다: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 다만 채무가 성질상 또는 제3자변제를 금지하는 의사표시로 당사자의 인격과 결합된 때에는 그렇지 않다(I 단서). 제3자변제가 채권의 상대효의 예외이고 법률적인 평가에서 ‘제3자변제’를 채무자변제와 ‘등가물’로 볼 수 없다는 대상결정은 469 I 본문에 실린 입법자의 결단을 무시한 것이다. 2. 469의 해석 (1) 469 I 단서의 「당사자의 의사표시」의 의미·내용: 당사자의 의사는 채권발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제3자의 변제를 금지하는 의사이다. 교과서와 주석서는 곽윤직, 채권총론, 1999 [97] (330)을 본받아 “계약으로 발생하는 채권은 계약에 의하여, 그리고 단독행위로 발생하는 채권은 단독행위로 각각 제3자의 변제를 금지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기술한다. 계약과 단독행위가 흔히 채권·채무의 발생원인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유언외에 단독행위로 고유한 의미의 채권관계가 성립하는 경우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스스로 채무를 지는 단독행위는 가능하지 않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의사에 반하여 이익이 강제될 수 없다. 더욱이 표의자가 그의 의사만으로 권리를 취득하고 타인에게 의무를 지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법학과 실무가 단독행위를 형식상 논함에 그치는 이유이다. 채권·채무는 취소, 해제 또는 해지 등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한 형성권의 행사로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새로운 것의 창설이 아니라 이전의 법률관계의 청산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형성권자는 단독으로 제3자의 변제금지효를 만들지 못한다. 형성권은 원칙적으로 조건과 친하지 않고 제3자변제금지는 조건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무권대리행위의 추인은 사후에 대리권을 수여하여 유권대리행위로 전환하는 단독행위이다. 그러나 제3자변제금지를 덧씌운 추인은 변경을 가한 승낙(534)으로 해석된다. (2) 469 II=469 I의 연장 : 「이해관계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는 469 II는 I 본문의 이념을 그대로 계승한 조항이다. 이는 심지어 채무자조차 의사표시만으로는 제3자변제를 막을 수 없음을 천명한다. II는 제3자가 변제를 빌미로 약한 지위의 채무자를 압박하는 불행한 사태의 방지를 규범목적으로 한다. 대상결정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은혜를 거부하는 봉건적 관념이 II의 배경이라고 하지만, 이해관계있는 제3자의 변제도 역시 채무자에게 이익을 준다. 제3자는 제한없이 보증채무를 부담할 수 있고 채권양도와 채무인수로 사실상 변제효를 얻을 수 있는 등 민법상 II의 규정취지가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다(이진기, 민법에서 채무자 아닌 제3자의 행위에 의한 채무변제제도의 연구, 민사법학 66 [2014] 575-618). 교과서와 주석서도 II의 입법태도에 대한 비판일색이다. III. 대상판결의 분석과 평가 1. 사적자치의 왜곡: 의사표시는 표의자만을 구속하는 것이 법의 대원칙이다(111 I). 이를 애써 외면하고 함부로 채권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제3자변제금지효를 긍정한 대상결정은 그가 힘차게 외친 사적자치의 실현과 정반대결과를 부른다. 이는 법원이 주도하여 힘과 복수가 판치는 반문명사회로 돌리고 무법천지를 조장하는 반법률적 조치이다. 2. 제3자변제금지의 이익: 금전채권을 비롯한 대체물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채권에서 제3자변제금지의 이익이 분명하지 않다. 제3자변제금지를 약정하더라도 채무자는 얼마든지 이를 우회할 수 있다. 채무자가 그의 금전으로 직접 변제하는 것과 제3자가 증여한 금전 또는 제3자가 대여한 금전으로 변제하고 제3자가 사후에 금전채무를 면제하여도 외관의 차이가 없고 채권자의 이익상황도 같다. 채권자의 이익은 채권의 실현에 집중되며, 불법행위채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채권자[피해자]의 감정을 엮어 제3자변제를 금지하는 것은 보복이다. 실무도 ‘할아버지’의 지팡이 또는 ‘할머니’의 은비녀 등 감정적 애착이익(Affektionsinteresse) 배상을 배제한다. 3. 제재와 보복: 민사불법행위는 예방, 손해전보와 제재[처벌]를 목적으로 하며, 법원이 그 담당자이다(MunchKomm/Wagner, Vor §823 Rn.38-44). 제재는 가해자에게 위법한 손해의 결과를 귀속하는 것, 즉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이며, 손해전보는 피해자가 손해배상채권의 만족을 얻어 채권이 소멸하는 때에 완결된다. 제재와 감정이 실린 보복은 다른 것이다. 피해자가 직접 행사하는 제재는 법이 금지하는 복수이다. 법은 적법한 권리행사만을 보호한다. 제재기능은 정신적 손해의 배상책임에서 뚜렷하다. 하지만 차액설이 민법의 기본이므로 재산적 손해배상만을 명하여도 제재효가 없다고 할 것이 아니다. 한편 대상결정은 고의의 불법행위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금지를 담은 496을 인용하지만, 이는 오히려 채권자의 보복행위를 막고 피해자가 현실의 손해배상을 얻도록 배려하는 규정이다. 4. 힘든 일반화: 대상결정은 애당초 일반화와 거리가 멀다. 악의로 이행하지 않는 나쁜 채무자도 곳곳에 차고 넘친다. 게다가 대상결정을 동기화하면, 모든 채권자가 일방적 의사표시로 제3자변제를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는 보험금수령을 거부하고 가해자를, 그리고 손해배상책임을 개별화한 대판 2023.06.15., 2017다46274 등[노란봉투판결]이 선고된 지금, 사용자는 불법파업에 주된 책임이 있는 근로자를 끝까지 괴롭힐 수 있게 된다. 이는 채권자의 전횡을 방조하는 무책임한 처사이다. 법원은 대상결정이 구체적 사건에서 예외를 인정한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런데 예외를 만들려면 이를 합리화·정당화하는 사정이 있어야 하나 그러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예외를 위하여 법률과 법리를 비틀어서도 곤란하다. 법원은 법을 어기는 주체가 아니라 법을 지키는 기관이다. IV. 대상결정의 평가: 창의적 재판 또는 함부로 재판? 469 I 단서의 「당사자의 의사표시」를 ‘채권자와 채무자의 합의’로 읽어야 한다(이진기, 읽기 쉬운 민법, 2022, 16 이하). 법률은 채권관계의 구속(vinculum iuris)에서 당사자의 조속한 해방과 자유의 회복을 추구한다. 그리고 채권자의 만족은 채무이행으로 실현된다. 그럼에도 대상결정은 469 I 단서의 적용범위를 넓히기 위하여 짜맞춘 궁색한 변명으로 가득하다. 법관은 법을 말하고 법으로 설득하는 사람이다. 법률을 떠난 법관은 법관이 아니다. 이것이 재판을 정치라고 한 판사가 지탄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좋은 판결은 개인의 사상과 신념이 아니라 법률과 굳건한 법이론을 바탕으로 합리적 상상력을 전개하여야 하는 법관의 숙제이다. 끝으로 대상결정과 같은 식이라면 등기관, 가족관계등록관, 공탁관 등 형식적 심사권을 가진 공무원은 이제 법관이다. 그 선택은 법원의 몫이다. 이진기 교수(성균관대 로스쿨·법학박사)
채무
제3자변제
이진기 교수(성균관대 로스쿨·법학박사)
2023-09-10
가사·상속
민사일반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관한 대법원의 판례변경
1. 사실관계 및 대법원 결정 가. 사실관계 및 1, 2심 결정 남성으로 출생한 신청인은 혼인하여 현재 미성년인 자녀 2명을 두었으나, 이혼한 후 성형외과에서 고환과 음경을 제거하고 여성의 외부 성기 모양을 갖추는 등의 수술을 받아 여성의 옷차림, 머리 모양을 하고 사회적으로 여성으로서 생활하여 왔다. 신청인은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 허가 신청을 하였다. 원심은 신청인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어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것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는 이유로 허가신청을 기각하였다. 이는 종전의 대법원 2011. 9. 2. 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을 따른 것이다. 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 그러나 대상결정은 위 2011년 판례를 변경하면서 원심결정을 파기환송하였다. 그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성전환자도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므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성전환자의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2) 성별정정은 성전환을 마친 성전환자의 실제 상황을 수용하여 공부에 반영하는 것일 뿐 성전환자인 부 또는 모와 그 미성년 자녀 사이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새롭게 초래하거나 권리의무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미성년 자녀가 부 또는 모의 성전환으로 인하여 정신적 혼란과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혼란과 충격은 부 또는 모가 이미 성전환의 과정을 거쳐 그것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3) 국가는 개인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과 관련된 내용을 불법적으로 외부에 노출하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하고, 성전환자라거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하는 쪽의 편견과 몰이해를 바로 잡기 위해 법률적·제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를 부담함에도, 오히려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성전환자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은 성전환자와 그의 미성년 자녀 등이 사회적 편견으로 인하여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여 가족생활의 안정을 보장하여야 하는 국가의 기본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4)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할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성전환자 본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함과 동시에 미성년 자녀가 갖는 보호와 배려를 받을 권리 등 자녀의 복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때에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필요한 일반적인 허가 기준을 충족하였는지 외에도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여부가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성별정정을 허가할 것인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 결정에 대하여는 2011년 판례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이동원 대법관의 반대의견과, 다수의견에 대한 2개의 보충의견이 있었다.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성전환자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을 성별정정 허가를 고려함에 있어서 하나의 고려사유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설시한 점은 찬성하기 어렵다. [ 평 석 ] 1. 종전의 판례 대법원 2006. 6. 22. 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은, 성전환자에 해당함이 명백한 사람에 대하여는 호적의 성별란 기재의 성을 전환된 성에 부합하도록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원심이 인용한 대법원 2011. 9. 2. 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성별정정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하였다. 위 결정이 성별정정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한 이유는,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미성년 자녀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데, 가족관계등록부의 성별정정으로 인하여 미성년 자녀에게 정신적 혼란과 충격을 줄 수 있고 가족관계증명서의 공개로 미성년 자녀가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에 노출되거나 생활상의 곤란이 생긴다는 점 등이었다. 2. 2011년 판례에 대한 비판 그러나 이러한 2011년 판례에 대하여는 비판이 있었다. 필자도 이 사건에 관하여 판례 변경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였고, 이를 논문으로 발표하였다(윤진수,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서울대학교 법학 제61권 3호, 2020). 그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들이 충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성별정정 허가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전의 부 또는 모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별정정 허가 자체가 자녀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기본권 제한에 관한 비례의 원칙 가운데 방법의 적정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2011년 판례는 성별정정을 허용하게 되면 가족관계증명서에 동성혼의 외관이 현출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현행법상 동성혼이 허용되고 있지 않음은 명백하므로, 가족관계등록부의 기재로 인한 ‘동성혼의 외관’은 애초 성립할 여지가 없다. 셋째, 2011년 판례의 진의는 가족관계증명서의 기재에 의하여 부나 모가 성전환을 하였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짐으로써 자녀가 고통을 받을 것임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는 성전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기정사실로 하여, 미성년 자녀가 이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서, 문제가 있는 논증이다. 넷째, 설령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로 인하여 자녀의 복리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하여 성별정정을 허가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양자를 비교하여 본다면,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이 성전환자에게 주는 불이익이 성별정정 허가에 의하여 미성년 자녀가 입는 불이익보다 훨씬 크므로,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것만으로 성별정정을 불허하여서는 안 된다. 다섯째,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은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기본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자녀가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것은 성별정정 허가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의 부모의 성적 변화 때문이므로, 이러한 자녀의 정신적 충격을 이유로 성별정정 허가를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3. 대상결정에 대하여 대상결정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을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면서 2011년 판례를 변경하였다. 이는 대체로 필자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견에 대한 박정화, 노정희, 이흥구 대법관의 보충의견은, 사법은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입법이나 행정과 달리 다수의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소수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할 때 그 존재 의의가 있다고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판시에 적극 동감한다.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성전환자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을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고려함에 있어서 하나의 고려사유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설시한 점은 수긍하기 어렵다. 다수의견의 설시에 따르더라도,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것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성별정정을 불허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지 알기 어렵다. 필자로서는 대법원이 이처럼 판시하였더라도 앞으로 실무에서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4. 입법의 필요성 기본적으로 성전환자에 대하여 성별정정을 허용할 것인지, 허용한다면 어떤 요건을 갖춘 경우에 허용할 것인지 하는 점은 법률로 규정하여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입법자가 입법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법원이 이 문제에 관하여 사법적극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고{윤진수 (김수인 역), “성전환자의 인권 보호에 있어서 법원의 역할”, 민법논고 제7권, 박영사, 2015 참조}, 이를 가리켜 민주주의, 법치주의 및 권력분립주의를 벗어나서 사법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김중권, 성전환에 따른 성별정정허가가 과연 판례법적 사항인가? 법률신문 제5040호, 2002. 12. 8. 12면)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관하여는 가령 생식능력이 없을 것을 요구하여야 하는가 하는 점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쟁점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하여는 빠른 시일 내에 입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성별정정
자녀
성전환자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2-12-14
민사일반
부동산·건축
아파트상가 주차분쟁 해결의 법리
1. 문제제기 아파트와 상가는 하나의 필지에 각기 다른 동으로 건축되어 있는 상황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동으로 각각의 건물임에도 상가 구분소유자들 및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일반인인 상가 이용객들이 지속적으로 아파트 주차 공간을 사용함에 따라 아파트에서는 급기야 주차 공간을 제한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왔다. 이에 상가 구분소유자들은 주차장은 전체 공용부분이고 해당 부분에는 자신들의 지분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 청구권을 행사하며 쌍방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그간 대법원은 상가이용객이 상가 건물과는 동떨어진 아파트 내부 주차공간에 주차를 하고 있는 점, 아파트에서는 일반인 출입시 신분확인을 하는데 상가 손님들에 대해서는 신분 확인이 제한 되는 극히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는 점을 이유로 이른바 수인한도론이라는 법리를 원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수인한도론은 그 자체로 해석에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크고, 그 해석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여 하급심 법원에서는 법관에 따라 우후죽순의 서로 다른 판결들이 속출한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분쟁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건설사들은 위와 같은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아파트와 상가 간의 주차 공간을 구조적으로 분리하여 건축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아파트 주차장과 상가가 연결되지 않은 구조로 만들어지면서 하급심에서는 수인한도론이 아니라 일부 공용부분에 관한 법리가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2. 기존 판례의 경향 1) 원칙적으로 공용부분은 소유한 전유부분 면적 비율에 따라 전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대법원 2012. 12. 13. 선고 2011다89910 판결). 즉 대법원은 "1동의 건물의 구분소유자들이 그 건물의 대지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 각 구분소유자는 별도의 규약이 존재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대지에 대하여 가지는 공유지분의 비율에 관계없이 그 건물의 대지 전부를 용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적법한 권원을 가진다. 이러한 법리는 한 필지 또는 여러 필지의 토지 위에 축조된 수동의 건물의 구분소유자들이 그 토지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대법원 1995. 3. 14. 선고 93다60144판결 등 참조)"라고 판시하여 원칙적으로 아파트 주차장은 전체 공용부분을 전제로 상가 구분소유자 역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2) 그러나 현실적으로 상가 이용객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하게 되자 그 때부터 다음과 같이 수인한도론을 적용하여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49971 판결).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는 단체가 ○○아파트 단지 내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아파트 단지 내 상가건물 구분소유자들의 대지 사용권을 방해하는 침해행위가 되는지에 관하여, ○○아파트 단지 내 상가건물과 그 부속주차장의 위치 및 이용 관계, 아파트 단지 안으로의 출입 통제 방법, 아파트 및 상가건물 부근의 지리적 상황, 아파트 입주자들과 상가건물의 소유자 또는 이용자의 이해득실 기타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3. 대상판결 사실관계 1) 이 사건 단지는 공동주택 용도의 아파트 10개동(1,036세대), 근린생활시설 용도의 상가 1개동, 그 밖에 관리사무소 등으로 구성된 집합건물 단지이다. 원고들은 상가의 구분소유자나 임차인이고, 피고는 집합건물법 제51조에 따라 아파트의 공용부분을 관리 하는 단지 관리단이다. 2) 중략 3)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지하주차장의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자료의 지급을 청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4. 법원판단 1) 집합건물 중 여러 개의 전유부분으로 통하는 복도, 계단, 그 밖에 구조상 구분소유자의 전원 또는 일부의 공용에 제공되는 건물부분과 규약이나 공정증서로 공용부분으로 정한 건물부분 등은 공용부분이다. 집합건물의 공용부분은 원칙적으로 구분소유자 전원의 공유에 속하지만, 일부 구분소유자에게만 공용에 제공되는 일부공용부분은 그들 구분소유자의 공유에 속한다(집합건물법 제3조, 제10조 제1항). 건물의 어느 부분이 구분소유자 전원이나 일부의 공용에 제공되는지 여부는 일부공용부분이라는 취지가 등기되어 있거나 소유자의 합의가 있다면 그에 따르고, 그렇지 않다면 건물의 구조·용도·이용 상황, 설계도면, 분양계약서나 건축물대장의 공용부분 기재내용 등을 종합하여 구분소유가 성립될 당시 건물의 구조에 따른 객관적인 용도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법리는 여러 동의 집합건물로 이루어진 단지 내 특정 동의 건물부분으로서 구분소유의 대상이 아닌 부분이 해당 단지 구분소유자 전원의 공유에 속하는지, 해당 동 구분소유자 등 일부 구분소유자만이 공유하는 것인지를 판단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대법원 2018. 10. 4. 선고 2018다217875 판결,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9다294947 판결 참조). 2)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지하주차장이 아파트 구분소유자만의 공용에 제공되는 일부공용부분이라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였다. 상가는 이 사건 단지의 대로변에 위치하고 단지의 부속상가로 건축되었으나, 아파트 10개동과 상가는 별개의 건물로 신축·분양되고 구조나 외관상 분리·독립되어 있으며 기능과 용도가 다르다. 지하주차장은 구조에 따른 객관적 용도에 비추어 아파트 구분소유자만의 공용에 제공되고 있다. 지하주차장은 이 사건 단지 정문의 출입구로만 들어갈 수 있고 차단기가 설치되어 아파트 입주민과 방문자만 출입할 수 있으나, 지상주차장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지하주차장에는 아파트 10개동의 승강기로 직접 연결되는 출입문이 있고 출입문에는 해당 아파트 동의 입주민만 들어갈 수 있는 출입통제장치가 있으나, 지하주차장과 상가는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아파트 구분소유자는 지하주차장 전체 면적 중 전유부분 면적에 비례하여 분할·산출한 면적을 공용부분으로 분양받았다. 아파트의 집합건축물대장에는 지하주차장에 대해 아파트 구분소유자만이 공유하고 위와 같이 분양받은 면적이 공용부분 면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러한 공용부분 면적을 계산할 때 상가의 연면적은 고려되지 않았다. 반면 상가의 분양계약서와 건축물대장에는 지하주차장이 분양면적이나 공용부분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지하주차장은 대지사용권의 대상이 아니므로, 대지사용권이 있다고 하여 지하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심판결 이유를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판결은 정당하고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고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집합건물법의 대지사용권이나 공용부분 이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5.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사실 일부 공용부분에 관한 판단을 명시한 것으로서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9다294947 판결과 그 결을 같이 한다. 즉 최근 건물들은 대부분 각기 다른 용도의 공간이 혼합되어 있는 이른바 주상복합건물이나 아파트와 상가 건물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성질이 다른 각 단체들 사이의 법적 분쟁은 집합건물법상 관리단은 당연 설립된다는 법리나 한 필지의 대지라고 하더라도 이를 전체 공용부분으로 전제하는 법리에 따른 혼동으로 주택과 상가 사이의 분쟁이 비일비재하게 있어왔다. 더욱이 아파트와 상가 간 주차장에 관한 분쟁에 대한 하급심 판결은 지속적으로 엇갈려 왔는바, 어떤 법원에서는 아파트 입주민이, 또 다른 법원에서는 상가 구분소유자들이 승소하며, 판결들 사이의 불일치가 수 없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결국 수인한도론이라는 불분명한 법리를 적용한 탓이었다. 물론 건설사들 역시 이와 같은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최근에는 아파트 및 상가간의 전용주차장을 설치하고 구조적으로 이를 분리되게끔 건설한 것도 분쟁 종식의 하나의 이유 였으나, 명쾌한 법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대법원이 2021. 1. 14. 선고 2019다294947 판결의 연장선상에서 아파트와 상가의 분쟁을 일거에 해결하는 대상판결을 판시하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상판결은 공용부분에 해당하는 주차장이 아파트와 상가 건물 간에 구조적으로 구분되어 있을 것을 전제로 하여 아파트와 상가 사이에 주차장이라는 공용부분에 대한 사용관계를 명확히 정리한 것으로 2000년대 이후 건축된 대부분의 아파트에 적용되어 이와 같은 분쟁을 일거에 해결하는 아주 중요한 판결에 해당하는 것이다. 6. 마무리하며 결론적으로 현재도 수많은 하급심에 계류되어 있는 이와 같은 아파트 상가와 관련된 각 주차장에 관한 분쟁은 본 대상판결로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보이는 바 각 구분소유자로서는 이와 같은 판결을 숙지하게 되면 더 이상 동일한 분쟁을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형필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상가
주차장
아파트
공용부분
권형필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2022-06-13
민사일반
친손입양, 어제까지는 엄마 오늘부터 언니?
Ⅰ. 사실관계와 법원의 판단 1996년생인 친생모는 2014년 혼인신고를 하고 같은 달 사건 본인(이하 본인)을 낳았다. 외조부모(재항고인)는게 친생모가 생후 7개월이 된 본인을 두고 떠난 때부터 본인을 양육하고 있다. 외조부모는 그들이 친생부모와 교류가 없고 본인이 그들을 부모로 여기며 가족, 친척과 주변사람들도 부모로 대한다고 주장하여 일반입양의 허가를 청구하였다. 2015년 협의이혼한 친생부모는 입양에 동의하였다. 원심(울산지법 2017. 12. 18.자 2017브10 결정)은 1. 친손입양으로 가족 내부질서와 친족관계의 혼란이 분명하고 2. 후견으로 본인의 양육에 관한 법률상·사실상 장애를 제거할 수 있으며, 3. 후일 진실을 안 본인이 받을 충격 등을 고려하면 신분관계를 정확하게 하는 것이 그에게 이롭고, 4. 입양으로 친생부모가 본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하는 것이 본인의 복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입양허가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결정을 유지하였다. 외조부모는 친생부모의 입양동의를 내세워 재항고하였다. 대법원은 친생부모의 생존이 입양장애사유가 아니고 입양이 본인의 복리에 더 이익이 되면 이를 허가하여야 함을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 이로써 외손입양을 불허한 대법원 2010. 12. 24.자 2010스151 결정(친양자입양)과 대법원 2017. 03. 27.자 2016스138 결정(일반입양)은 폐기되었다. Ⅱ. 친손입양의 근거와 판단기준 대상결정은 외관과 달리 만장일치의 결정례이다. 반대의견도 친손입양이 법정친자관계의 의미와 자연스럽게 부합하지 않으며 친생부모의 열악한 사회적·경제적 지위로 인한 양육부족을 이유로 그 지위를 대체하는 입양이 옳지 않고 비밀입양이 장래 본인의 정체성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크므로 그것이 해소될 수 있음이 밝혀진 때에만 이를 허가하여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의 채용을 역설할 뿐이다. 대법원 1991. 05. 28. 선고 90므347 결정은 대를 잇기 위한 재종손의 사후입양이 소목지서에 기초한 관습에 어긋나지만 민법이 입양요건을 완화하고 조손입양이 공서양속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친손입양이 전통과 관습에 반하지 않고 민법도 이를 금지하지 않는다는 대상결정은 그 발전형이다. 그러나 친손입양의 관습에 대한 증거가 없다. 입양이 가족관계의 주춧돌이었던 조선사회도 항렬(行列)을 지키면서 백골입양 등 방계손의 입양사례를 전함에 그친다. 친손입양을 금지하는 법률규정의 존부와 강행법규 위반은 별개의 문제이다. 법률의 금지가 없으므로 친손입양이 허용된다는 주장은 법실증주의적이다. 대상결정은 신분법규정이 강행규정이고 민법에 근거 없는 양손입양은 그 위반으로 무효라는 대법원 1988. 03. 02. 선고 87므105 판결을 살피지 않는다. 대상결정이 언급한 미국과 독일의 혈족입양도 친손입양과 관계없다. 혈족입양이 입양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외국법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인식이 있어야 한다. 1. 입양아동의 복리(the best interest of the child): 친손입양의 무게는 본인의 복리에 집중된다. 공익적·후견적 견지에서 이를 강조한 대법원도 정작 이를 개념정의하지 않는다. 친생부모가 양육·부양하지 않는 이유, 입양의 정보제공과 자발적·확정적 입양동의의사, 양육의사의 부존재, 그리고 입양하는 조부모와 친생부모의 관계 등 대상결정이 서술한 입양요건은 일반입양에서와 같다. 본인의 복리는 객관화하여 검증할 수 없다. 이는 입양으로 자녀의 삶의 조건이 현격히 변경되어 그 인격의 향상이 기대될 때에 긍정된다. 입양은 본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본인의 윤리적·정서적 복리가 입양의 물질적·기능적 효용에 앞서므로 원가정양육이 친손입양에 우선한다(2018. 03. 12. 오스트리아최고법원[OGH] 3 Ob 198/17i 판결). 멀쩡히 친생부모가 있음에도 나은 양육환경을 강조하는 것은 본인의 심리적·정신적 정체성보호에 소홀한 유물론적 태도이다. 그리고 양부모가 제대로 부모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질 때에만 입양을 허가하여야 한다. 입양전 친족관계가 존속하고 본인의 성과 본이 바뀌지 않는 일반입양에서 본인의 정서적 불안은 불 보듯 뻔하다. 부모라 하기에 나이가 많고 게다가 성도 다른 조부모가 버젓이 학부모회에 참석하는 광경은 본인의 행복과 거리가 멀다. 입양전 친족관계의 완전단절을 가져오는 완전입양만을 가진 국가도 한결같이 본인-친생부모관계의 완전절연을 친손입양의 승인조건으로 하고 생부모가 생존한 직계손의 입양을 주저한다. 2010. 08. 23. 스위스연방법원(Bundesgericht) 5A_198/2010판결, 성년의 친손입양을 다룬 2001. 05. 17. 독일 Celle고등법원(OLG) 17 30/01결정과 2016. 02. 23. Koblenz고등법원 7 UF 758/15결정은 조부모가 본인이 출생한 때부터 양육하는 등 부모-자녀관계가 장기간 고착화되고 갈등발생의 염려가 더 이상 없어 친손입양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고 친생부모가 인근에 거주하거나 본인을 방문하는 등 관계를 계속하거나 그의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중대한 갈등위험을 들어 이를 단호히 불허한다. 미국도 친생부모의 부재, 조부모-본인의 특별관계와 법원에 의한 친권박탈명령을 거쳐 친손입양에 문을 열지만 가족갈등의 위험 때문에 특별후견명령(Social Guardianship Order)이 훨씬 선호된다. 2. 친손입양의 이익: 입양은 침해된 과거의 복리를 제거하고 장래의 복리를 위한 제도이고 가정법원의 허가는 그에 개입하는 국가의 후견이다. 미성년후견의 존재는 입양의 장애사유가 아니다. 영속적 부모·자녀관계를 맺는 입양과 친권자 없는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고 대리하는 후견은 다르다. 친손입양으로 후견을 넘는 개선된 환경이 주어져야 하지만 손자녀를 자녀로 바꾸는 이익이 분명하지 않다. 친손입양으로 조부모는 친권자로서 본인의 신원을 확보하여 양육하고 의료결정을 한다. 그뿐이다. 부모·자녀관계의 형성 외에 친손입양의 효과는 미성년후견과 동일하며, 조부모의 양육비부담은 오히려 가중된다. 미국과 유럽의 친손입양은 의료와 자녀수당과 주거수당 등 복지를 위한 사회보장의 혜택과 상속법적 이익을 동반한다. 친손입양은 국가가 최종후견인의 지위에서 아동의 복리를 수호할 의무를 조부모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Ⅲ. 대상결정(2018스5)의 검토와 평가 대상결정은 일반관념과 동떨어지고 이론의 완성도가 낮다. 가르치겠다는 의욕과 사명감에 사로잡힌 공자님 말씀으로 채워진 이유(4. 나, 다, 마, 반대의견 나-마, 바)는 계몽주의적이며 심지어 주석서의 느낌마저 준다. 재판활동은 법률가의 교육을 목적하지 않으며 하여서도 아니된다. 길게 설명한 '아동권리협약'과 '입양특례법'도 친손입양과 직접 관계없는 뻔한 사설이다. 1. 시간의 실패: 본인의 복리는 입양으로 드디어 본격화된다. 친손의 일반입양으로 초래될 수 있는 가족의 내부질서와 친족관계의 혼란을 가볍게 보고 입양후의 복리를 소홀히 한 대상결정은 부주의하고 무책임하다. 친족관계의 존속과 본인의 복리는 조화되기 어렵다. 친손입양으로 어제의 부모가 오늘의 형제자매가 되고 어제의 형제자매가 오늘의 숙질이 되는 잡탕친족관계가 불가피하다. 이는 조부모-본인간에 진정한 부모·자녀관계의 자연스러운 형성을 막는 걸림돌이다. 2. 법이론의 실패: 대상결정은 주로 친양자입양(제908조의2, 완전입양)이 문제된 종전 결정례와 달리 일반입양(제867조)을 관심사로 한다. 이들은 거의 어김없이 '어린 외손' 입양을 청구원인으로 한다. 친손입양된 본인은 친생부모에 대하여 자녀와 형제자매의 이중신분을 가지므로 친족관계의 혼란과 불협화음을 막을 길이 없다. 이를 직면한 대법원은 가족의 내부질서와 친족관계에 혼란이 일어날 수 있음을 들어 친손입양을 불허한 대법원 2017. 03. 17.자 2016스138 결정을 구시대의 관념으로 몰고 불분명한 본인의 복리를 최우선가치로 내세운다. 이어서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의 존중을 판시한 대법원 2019. 10. 23. 선고 2016므2510 전원합의체판결을 제시하여 그러한 혼란과 본인정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추단하여 입양을 불허하는 것은 입양관계인의 판단과 선택권을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입양관계인이 본인은 아니다. 대상결정에서 친손입양의 요건이 되는 부모관계의 완전한 단절에 관한 논거가 부족하다. 또한 입양의 무효, 취소와 파양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끝으로 대상결정을 관철하려면 입양하는 조부모측의 종전 친족관계가 종료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Ⅳ. 마치며 대상결정은 본인의 복리의 이름으로 일반입양에 의한 친손입양을 일반화한다. 그러나 친손의 일반입양을 배척하고 친양자 입양으로 유도함이 옳았다는 아쉬움이 든다. 의욕을 앞세워 신분세탁을 용인한 대상결정은 법실증주의적이며 계몽주의적·유물적이다. 재판은 미래를 선도하는 정책이 아니다. 법관은 조리(Natur der Dinge)와 자연법적 질서에 터잡은 일반상식을 가져야 한다. 이진기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친부모
손주
조부모
복리
입양
이진기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2022-04-18
민사일반
조세·부담금
과세관청이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한 당사자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요건
1. 사실관계 가. 피고회사의 부장인 피고 1은 소외인등과 사이에, 외관상 피고회사가 투자금을 조성해 경유를 수입·판매하여 수익을 내어 이를 투자자들에게 배분하는 것처럼 사업을 진행하되, 실제로는 자력이 없는 명목상의 수입회사를 내세워 수입 및 통관절차를 진행한 후 이를 소외인이 새로 설립한 주식회사 에스OO에 판매 형태로 이전하여, 에스OO이 해당 경유를 시중에, 수입가격에 통관비용, 자동차 주행에 대한 자동차세(이하 '주행세')등 관련 세금, 부대비용 등을 합친 가격(이하 '최소 공급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면서 명목상의 수입회사에 부과될 주행세를 납부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하기로 조세포탈 범행을 계획하였다. 나. 피고 1은 정상적인 경유수입 사업인 것처럼 제안서를 제출하여 2013년 12월경 피고회사로부터 사업시행을 승인받은 후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여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성하였고, 특수목적법인은 에스OO과 수익권거래계약을 체결하여 위 투자금을 에스OO에 지급하기로 하고 경유수입사업의 수익권을 부여받았으며, 피고회사에 자금 지급, 수익금 관리등의 업무를 위탁하였다. 다. 피고 1등은 2013년 12월경 명목상의 수입회사 역할을 할 주식회사 OO오일 명의로 경유수입 중개사와 수입가격 협상을 마친 후 2013년 12월경 OO오일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날 OO오일은 에스OO과 수입된 경유를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에스OO에 판매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였다. 라. 이 사건 경유는 2013년 12월경부터 2014년 3월경까지 OO오일 명의로 3항차에 걸쳐 수입되어, 수입 즉시 에스OO에 이전되었는데, 실제 통관, 품질검사, 이전 등의 업무는 모두 피고1과 에스OO이 수행하였다. 마. 에스OO은 이 사건 경유를 시중에 판매하였는데, 최소 공급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였다. 피고 1등은 에스OO이 위와 같이 하여 얻은 수익을 운영비등 명목으로 에스OO에 일부 지급하고 나머지를 투자자들에게 배분하였다. 바. OO오일과 에스OO은 이 사건 경유에 관한 주행세를 신고·납부하지 않았다. 원고는 명목상의 수입회사인 OO오일을 납세의무자로 파악하여 2014년 2월경부터 2014년 4월경까지 OO오일에 대해 주행세를 부과하였으나, OO오일은 바지회사로서 무자력이었기 때문에 이를 납부할 수 없었고, 2014년 4월경 주행세 체납 등을 이유로 등록이 취소되었다. 사. 피고 1과 소외인은 공모하여, 경유를 수입한 주체는 에스OO임에도 명목상의 수입회사인 OO오일을 내세워 과세관청으로 하여금 주행세를 납부할 자력이 없는 OO오일을 주행세 납부의무자로 오인하여 부과처분을 하게 하는 등 이 사건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실행하였다는 범죄사실로 특가법 위반(조세)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이 선고·확정되었다. 2.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한 당사자를 상대로 과세관청이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에서 과세관청에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이다. 3. 대상 판결의 요지 가. 주행세 납세의무자 (1) 지방세법 제135조,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제3조 제2호에 의하면, 주행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납세의무자에게 부과되는데,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납세의무자는 관세의 납세의무자와 동일하다. 구 관세법 제19조 제1항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자는 관세의 납세의무자가 된다"라고 규정하면서, 제1호 본문에서 "수입신고를 한 물품에 대하여는 그 물품을 수입한 화주"를 들고 있는데, 위 규정에서 관세의 납세의무자인 '그 물품을 수입한 화주'라 함은 그 물품을 수입한 실제 소유자를 의미한다. 다만, 그 물품을 수입한 실제 소유자인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수출자와의 교섭, 신용장의 개설, 대금의 결제 등 수입절차의 관여 방법, 수입화물의 국내에서의 처분·판매 방법의 실태, 당해 수입으로 인한 이익의 귀속관계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11. 27. 선고 2014두2270 판결 등). (2) 위 사실관계를 관련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미 OO오일이 설립되기도 전에 피고 1등이 이 사건 경유의 수입협상을 마치고 유통구조, 판매경로까지 정해둔 사정, OO오일은 명목상의 수입회사로 별다른 자산 없이 급조하여 설립된 것에 불과한 사정, 실제 이 사건 경유는 피고 1과 에스OO의 통제 아래에 있었고, 그 수입, 통관 업무 역시 이들이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사정 등을 알 수 있는바, 이 사건 경유를 수입한 실제 소유자이자 주행세 납세의무자는 에스OO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나. 피고 1의 불법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 인정 여부 (1)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 성립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3. 11. 선고 2017다179, 2017다186(병합) 판결 등). 납세의무는 세법이 정한 과세요건사실이나 행위의 완성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성립하고 과세관청이나 납세의무자의 특별한 행위가 필요 없는 것이고, 과세요건 충족에 의하여 추상적 납세의무가 성립하면 그에 대응하는 국가의 추상적인 조세채권이 성립하는 것이므로, 과세요건사실이나 행위의 완성에 의해 과세요건이 충족되어 과세관청의 납세의무자에 대한 조세채권이 성립한 이상 조세채권의 만족을 위한 당해 조세의 부과·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되었다면 과세관청에 그 조세 상당의 손해가 발생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2) 원심이 인정한 사실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에스OO이 OO오일 명의로 이 사건 경유를 수입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원고의 에스OO에 대한 조세채권은 성립하는 것인데, 피고 1 등이 처음부터 주행세를 포탈하여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진정한 납세의무자를 파악하기 곤란한 외관을 만들어 자력이 없는 OO오일을 납세의무자인 것처럼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원고가 진정한 납세의무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 포탈한 주행세 상당의 이익을 바로 배분하여 실행한 이상 이로써 원고의 이 사건 경유에 관한 주행세의 부과·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결국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한 것은 물론 피고 1 등의 조세포탈 범행 설계·실행이라는 불법행위와 원고의 손해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4. 대상 판결에 대하여 가. 조세채권과 손해배상채권의 관계 세법은 공권력 행사의 주체인 과세관청에 부과권이나 우선권 및 자력집행권 등 세액의 납부와 징수를 위한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여 공익성과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다. 따라서 조세채권자는 세법이 부여한 부과권 및 자력집행권 등에 기하여 조세채권을 실현할 수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납세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대법원 2020. 3. 2. 선고 2017두41771 판결). 한편, 대상 판결에 따르면 조세포탈 범행으로 인하여 조세의 부과·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경우 조세채권자는 조세포탈 범행 설계자들을 대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조세채권자의 손해배상채권은 국세징수법등에 따른 조세채권의 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으로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나. 조세채권자의 채권 소멸시효 조세채권자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조세채권은 5년의 소멸시효(5억 원 이상의 국세와 5,000만 원 이상의 지방세는 10년)가 적용되나(국세기본법 제57조, 지방세기본법 제39조),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고,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다(민법 제766조). 조세채권자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조세포탈 범행 설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조세채권이 아니라,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이므로 그 소멸시효는 민법에 따르고, 소멸시효 기산일은 조세채권자가 조세포탈범행으로 인하여 당해 조세를 징수할 수 없게 된 사실과 조세포탈 범행의 설계자들을 알게 된 때가 될 것이다. 다. 대상 판결의 의의 대상 판결에 따르면, 과세요건사실이나 행위의 완성에 의해 과세요건이 충족되어 과세관청의 납세의무자에 대한 조세채권이 성립한 이상 조세포탈 범행으로 인하여 조세채권의 만족을 위한 당해 조세의 부과·징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되었다면 과세관청에 그 조세 상당액의 손해가 발생한 것이므로, 조세채권자는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한 당사자들을 상대로 하여 납세의무자로부터 징수하지 못한 조세채권 상당액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 판결은 과세관청이 조세포탈 범행을 설계한 당사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에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기준(상당인과관계)을 제시한 최초의 판결로서 의미가 크다. 향후 조세포탈 범행으로 인하여 과세관청이 조세를 징수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조세채권자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대상 판결의 법리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조세채권을 회수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철형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조세포탈
조세채권
손해배상
유철형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2022-02-07
형사일반
친작 여부에 관한 기망과 사법자제 원칙
1. 서론 필자는 일전의 기고(본지 2020.10.19.자 판례평석)에서 이 사건의 두 가지 큰 주제 - (a) 이 사건 그림들이 피고인의 창작인지, (b) 친작이 아닌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기망행위인지 - 중 첫째에 대해 논하였다. 본고에서는 두 번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친작’이다. 법률적 평가인 ‘창작’과 달리 ‘친작’은 순수히 사실의 문제다. 이와 관련하여 ‘작품제작에서 조수의 사용은 관행’이라는 주장이 있다. 평론가 반이정 등이 펼친 이 주장에 의하면 다빈치, 렘브란트 등을 비롯해 우리가 흔히 아는 거장들도 조수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으며 미술계에 그러한 관행이 존재해 온 이상 작품이 친작인지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미술론’과 함께 ‘조수 사용 관행론’은 이 사건 기소를 공격하는 주요 논리이다. 그러나, 조수 사용이 관행이라 하더라도 이로부터 친작의 중요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이 글은 먼저 고지의무를 논하기 위해 작품이 친작인지가 거래상 의미있는 사실인가부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 이 글은 대법원의 사법자제 원칙이 추구하는 결론의 과도함을 지적한다. 2. 친작 여부의 중요성 몇백년간 사라졌다가 최근에 발견된 다빈치의 <구세주(Salvator Mundi)>라는 그림이 2017년 경매에서 미술사상 최고가로 판매된 경위는 미술작품의 제작관행과 시장의 상관관계라는 점에서 연구자들이 주목하였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의 스튜디오는 공동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거장이 중심이 되어 조수, 도제 등 보조자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비싼 가격을 제시하는 일부 고객은 거장의 손길이 더 들어갈 것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싼 그림을 찾는 고객들은 누가 실제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따질 입장은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구세주>를 감정한 전문가들은 이 그림의 얼마만큼이 다빈치의 손으로 그려진 것인가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이 작품을 경매한 크리스티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은 이 작품이 다빈치의 것이라는 “넓은 공감대”가 있다는 정도였다. 이 작품의 제작을 둘러싼 의문은 매수자의 구매의사와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정이었지만, <구세주>는 중동의 한 부호에게 미술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 이 매수자의 구매동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종합하자면, (ㄱ) 작품 제작에 조수를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 (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친작인지 여부는 거래상 유의미하다는 것, 그리고 (ㄷ) 모든 매수자들이 친작 여부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는 것은 아니며 구매동기는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참인 명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전제 사실들로부터 친작 여부의 고지의무에 관하여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3. 고지의무의 인정 여부 고지의무는 미술품을 구매하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문제이다. 잘 알려진 문예비평가인 메이어 아브람스에 따르면 예술을 감상하는 태도에는 네 가지가 있다. (1) 형식주의: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감상해야 하고 다른 외부적 요소를 고려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2) 표현주의: 작품은 작가의 특별하고 심오한 감정의 표현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3) 모방주의: 작품은 실제의 모방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는 입장이다. (4) 실리주의: 작품의 가치는 감상자가 얻는 교훈과 정서를 통해 평가된다는 입장이다. (1) 내지 (4)의 어느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친작의 중요성은 달라진다. 20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있던 미술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형식주의였다. 이 논리를 관철하면 대작이란 사실은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술가의 고뇌와 승화를 생각지 않고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는 입장(2)에서는 그림이 대작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다. 예술이 실제의 모방(3)이라고 보면 작가보다는 작품의 사실성에 더 큰 관심을 둘 것이다. 실리주의(4)에서 보면 친작의 중요성에 대해 작품의 내용과 의도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있을 것이다. 고지의무의 인정근거에 관하여는 “일반거래의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그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는 원칙이 있다. 앞에서 살펴 본 사정을 종합하면, 친작 여부는 “경험칙상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대법원은 ‘미술품을 구매하는 동기나 목적, 용도 등이 다양하고 이 요소들이 제각기 다른 중요도를 가질 수 있으므로, 친작 여부는 일반적으로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하는 원심판단을 수긍하였다. 즉, 친작 여부에 대해 침묵한 것만으로는 기망이 되지 않는다. 4. 사법자제 원칙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결국, 부작위에 의한 기망에 있어서 친작 여부는 고지의무로 격상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사법자제 원칙이다. 대법원은 고지의무에 대하여 판단하는 도입부에서 “위작 여부나 저작권 다툼 등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하였다(법관이 법률의 기준이 아닌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필자는 그 사법관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으나, 지면상 이 점은 다음 기회에 논한다). 친작 여부에 관한 고지의무의 문제에 한정해서 보면 사법자제 원칙은 훈시적인 언급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고지의무의 유무는 굳이 사법자제 원칙을 동원하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자제 원칙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법자제 원칙의 내용은 실제로는 원심의 다음의 언급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원심은 “구매 당시 피해자들이 내심으로 작품이 피고인의 친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작품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닌 이상, 그 제작과정이 피해자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있었다거나 피고인에 의하여 기망당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원심은 단순히 고지의무를 부정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착오 자체를 부정하였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피고인이 그림의 전부를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가격에 매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런데 원심은 그 진술만으로는 친작임을 전제로 매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이어서 위 인용된 설시를 하였다. 그 핵심은 ‘위작 또는 저작권 문제가 아닌 이상’ 실제 사실과 피해자의 인식 간의 괴리가 있었다 해도 착오나 기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작이나 저작권 문제가 아닌 이상 작품의 가치에 대한 착오나 기망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인데, 일회성에 불과한 이 설시를 굳이 하나의 도그마로 완성한 것이 사법자제 원칙이다. 대법원은 ‘위작 여부나 저작권 다툼 등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해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5. 적극적 기망 이 사건에는 소극적 기망 외에 적극적 기망의 요소가 있다. 피고인은 각종 언론, 전시, 판매과정에서 자신이 친작하는 것처럼 행세했다. 공소사실은 소극적 기망과 적극적 기망의 요소들이 섞여 있었는데, 1심과 원심은 공소사실의 요체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공소사실의 많은 부분이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였다”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고심에 이르러 검찰은 피고인이 작품의 저자인 것처럼 행세했다는 ‘묵시적 기망’의 부분에 대해 원심이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묵시적 기망은 작위에 의한 기망의 일종이다. 그것은, 피고인이 그 행위를 통해 친작이라는 외관을 창출했고 피해자들은 그 때문에 원래는 사지 않았을 가격에 작품을 샀다는 것이다. 검찰 주장은, 원심은 공소사실을 부작위에 의한 기망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았을 뿐, 기망행위에 의해 적극적으로 착오가 야기된 측면은 고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대답은 그 점은 원심이 이미 판단했다는 것이다. 부작위에 의한 기망으로 어떻게 작위에 의한 기망을 이미 판단했다는 것인가? 관건은 착오의 부정에 있다. 원심은 위작이나 저작권 문제가 아닌 친작 여부만 가지고는 착오가 될 수 없다고 했고, 대법원은 사법자제 원칙으로 이를 ‘원칙’의 수준으로 격상했다. 그 결과, 피고인이 친작 행세를 했다 해도 피해자는 착오상태에 있지 않고 기망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작 문제도 아니고 저작권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친작 여부의 소극적 기망에 있어 고지의무를 부정한 대법원의 결론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 기망에 대한 일률적 면책까지 시사하는 사법자제 원칙은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관계에 따라서는 친작 여부가 기망·착오·처분과정의 중요한 고리였고 가해자는 의도적으로 이를 이용하였을 수 있다. 사법자제라 하여 이를 모두 불문에 붙인다는 것은 사법의 기능을 지나친 것이다. 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조영남
대작
사기
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2020-10-27
노동·근로
민사일반
사무장병원의 임금 지급의무의 주체에 관한 고찰
1. 들어가며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료기관은 의료인 외에 법률상 인정되는 의료법인·비영리법인 등에 의하여서만 개설이 가능하고 이들을 제외한 비의료인은 개설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사무장병원은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여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무장병원은 우리나라 의료시장에서 인적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하고 비의료인의 경제력에 의존한 기형적인 영리 목적 의료기관을 창출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의료가 지향하는 비영리성과 공공성에 배치되고 의료시장질서에 교란을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사무장병원의 외관을 빌미로 정부로부터 요양급여와 각종 보조금의 혜택을 부정수급하고 허위로 의료보험을 청구하고 있어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에 누수를 가져오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립된 사무장병원에서 근무하는 고용의사를 비롯한 직원들에 대한 임금이 제때에 지급되지 못하는 경우 그와 같은 임금지급채무를 위반한 자가 사무장병원의 실질적 운영자인 비의료인인 사무장인지 아니면 사무장병원의 명의자인 의료인인지가 최근 대법원 판결을 통해 쟁점이 된 바 있다. 비록 사무장병원이 법가치에 반하는 유형이라고 하더라도 임금지급채무의 지급은 근로자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영역이며 동시에 이는 사무장병원 개설·운영 약정의 효력과 사무장병원의 채권·채무관계의 귀속 등과 연계되는 문제이다. 2.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8다263519 판결의 태도 대법원은 2020. 4. 29. 선고 2018다263519 판결에서 "X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피고가 의사인 甲의 명의를 빌려 개설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에 해당하고 원고 등은 형식적으로는 甲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였지만 피고가 X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원고 등을 직접 채용하고 업무와 관련하여 원고 등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지휘·감독하면서 직접 급여를 지급한 사정을 감안하면 원고 등과 피고 사이에 실질적인 근로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피고가 원고 등에 대하여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를 부담한다. 이와 같이 원고 등과의 근로계약에 따른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는 처음부터 피고에게 귀속되는 것이지 X병원의 운영과 손익을 피고에게 귀속시키기로 하는 甲과 피고 사이의 약정에 따른 것은 아니므로 위 약정이 강행법규인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위반되어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원고 등에 대하여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3. 사무장병원 개설·운영 약정의 효력과 사무장병원의 채권·채무관계의 귀속 대상판결과 같이 비의료인이 사무장병원을 설립하기 위하여 의료인과 체결한 동업계약은 강행법규 위반으로 사법상 무효가 된다. 즉 대법원은 사무장병원 개설·운영 약정이 무효이므로 의료기관 운영과 관련하여 얻은 이익이나 취득한 재산, 부담하게 된 채무 등은 모두 의료인 개인에게 귀속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3 9. 23. 선고 2003두1493판결, 대법원 2014. 9. 26. 선고 2014다30568 판결, 대법원 2016. 12. 27. 선고 2013다48241 판결). 대체로 사무장병원의 개설·운영 약정 형태가 의료인과 비의료인의 동업관계인 경우에는 조합계약의 형태로 비의료인이 의료인을 고용하는 경우에는 고용과 손익귀속에 관한 혼합계약 형태로 체결된다. 그렇다면 사무장병원의 개설 및 운영과 관련하여 취득한 재산과 법률행위로 인한 채권·채무 전부가 면허를 가졌다고 하여 명의자인 의료인에게 일률적으로 귀속된다고 보아서는 안 되고 구체적 법률관계에 따라 실제 계약당사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해석을 통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사무장병원 개설·운영 약정의 형태가 조합계약이거나 이와 유사하여 의료인이 의료기관의 운영과 손익에 관여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의료인이 계약당사자로서 채권·채무관계의 귀속 주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비의료인이 자금을 투자하여 시설을 갖추고 의료인을 고용하여 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의료인이 병원 운영이나 손익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급여만을 받는 경우에는 의료인 명의로 대외적인 계약이 체결되었더라도 개개 법률관계마다 실제 계약당사자가 누구인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무효인 사무장병원 개설·운영 약정에 따라 당사자가 이미 급부를 이행하였다면 이는 부당이득이 되어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데(민법 제741조) 강행법규에 해당하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위반하여 급부한 경우에 불법원인급여(민법 제746조)가 되어 그 반환청구가 제한되는지 여부가 문제이다.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위반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당사자간 상호 급부한 것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2003 9. 23. 선고 2003두1493판결, 대법원 2011. 1. 3. 선고 2010다67890 판결). 그러나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위반한 사무장병원 개설·운영 약정은 제103조의 반사회적 행위로서 무효가 되고 이에 따라 이행한 급부의 반환을 구하는 것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허용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제746조 단서(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경우)에 해당하거나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부자의 불법성에 비해 현저히 큰 경우에는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4. 사무장병원 내 근로계약의 효력 근로기준법은 민법의 특별법에 해당하므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계약에 대하여는 근로기준법에 의거하여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사무장병원 개설·운영 약정에 의하여 설립된 사무장병원이 근로기준법 제11조의 요건을 갖춘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해당하는 경우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사무장병원에 근무하면서 근로를 제공하는 직원과 고용의사, 임상병리사, 간호사, 방사선사 등의 보건의료종사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게 된다. 이 때 사무장병원에서 누가 사용자인지 즉 사무장병원의 명의를 빌려준 의사인지 아니면 비의료인인지가 문제된다. 대법원 2011. 10. 27. 2009도2629 판결에서도 비의료인과 의료인 간 동업 형태의 사무장병원에 해당하기 위한 비의료인의 개입 정도는 그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정도를 요구한 바 있는데 이와 같이 비의료인이 근로계약의 체결에 있어서도 주도적 입장에서 관리하고 개입한 사정이 보인다면 근로계약의 실질적 당사자에 해당하므로 사용자로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즉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무장병원의 대외적 법률관계에 있어 사무장병원의 명의자인 의료인에게 일률적으로 귀속된다고 보아서는 안 되고 개별적인 법률관계에 따라 실제 계약당사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는 근로계약의 사용자가 누구인지에 관하여 대법원이 관련 법규의 내용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인다. 5. 대상판결의 검토 대상판결은 의료인과 비의료인이 체결한 사무장병원 개설 약정이 무효이므로 병원 운영과 관련하여 얻은 이익이나 취득한 재산, 부담하게 된 채무 등은 모두 일률적으로 의사 개인에게 귀속된다고 본 일부 대법원 판결들과 달리 대외적으로 비의료인이 의료인 명의로 체결한 고용계약의 귀속 주체를 개별적 법률관계에서 실제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무장병원 개설·운영 약정의 내용과 효력 여하는 비의료인이 의료인 명의로 체결한 임대차, 소비대차, 리스계약, 고용계약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이들 개별적 법률관계에서 발생하는 채권·채무관계는 당해 계약의 해석에 따라 정하여지는 실질적 당사자에게 귀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 다투어진 임금지급의무의 주체에 관하여 보면 원고 등이 甲을 사용자로 하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였으나 실제 비의료인이 원고 등을 비롯한 X병원의 직원들을 채용한 점, 업무수행 과정에서 직원들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지휘·감독한 점,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였고 의료인에게도 매월 약정된 급여를 지급하였던 사정을 종합하면 명의자인 의료인이 아니라 행위자인 비의료인이 당사자로서 고용계약상 임금지급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바 대법원이 사무장병원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누구인지, 직원들의 채용 및 근로계약서 작성 주체가 누구인지, 직원들의 업무를 지휘·감독하고 급여를 지급한 주체가 누구인지 등의 사정을 고려하여 근로계약상 임금지급의무의 귀속 주체를 결정한 것은 해당 근로계약의 실체와 부합하는 판단이라 하겠다. 백경희 교수(인하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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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병원
백경희 교수(인하대 로스쿨)
2020-10-12
민사일반
참가승계와 필수적 공동소송의 심리특칙
I. 사건 및 판결 개요 공사수급인인 원고는 도급인인 피고들을 상대로 공사계약에 따른 정산금의 지급을 구하였다. 이 사건 소송에 참가승계를 한 승계인은 제1심 소송 계속 중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정산금 채권 중 일부에 관하여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은 뒤 제3채무자인 피고들에 대하여 전부금의 지급을 구하면서 참가승계 신청을 하였다. 원고는 참가승계인의 승계사실에 대해 다투지 않았으나 참가한 부분의 청구를 취하하지는 않았다. 제1심은 인정된 정산금 채권이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으로 인하여 참가승계인에게 이전되었음을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승계인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참가승계인과 피고들은 제1심판결 중 자신의 패소 부분에 대해 항소하였으나 원고는 항소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피고들이 참가승계인의 전부명령이 압류 경합으로 무효라고 다투자 원고는 뒤늦게 부대항소를 제기하였다. 종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원고 청구는 분리확정된 것임에도 항소심 법원은 원고의 부대항소를 일부 인용하였다. 이에 피고가 상고를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은 승계인과 피승계인 간에 필수적 공동소송의 법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면서 원고의 부대항소는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참가승계와 필수적 공동소송의 심리특칙', 법조 제740호(2020. 4), 531면 이하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II. 판례 변경의 근거 1. 2002년 개정 민사소송법(이하 '법'이라 함)은 당사자 한쪽을 상대로 하는 편면적 독립당사자참가소송을 허용하고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을 신설하였으며 두 소송절차에서 모두 필수적 공동소송에 관한 법 제67조를 준용하고 있다. 이로써 법률상 양립할 수 없는 청구를 하는 공동소송인들 사이에 필수적 공동소송에 관한 특별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법규적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2. 권리승계형 참가승계에서 피참가인인 원고가 소송탈퇴, 소 취하 등을 하지 않아 승계된 부분에 관한 원고의 청구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 원고의 피고에 대한 청구와 참가승계인의 피고에 대한 청구는 그 주장 자체로 법률상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권리승계형 승계참가의 경우에도 원고의 청구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한 독립당사자참가소송이나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과 마찬가지로 필수적 공동소송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여 같은 소송 절차에서 두 청구에 대한 판단의 모순·저촉을 방지하고 이를 합일적으로 확정할 필요성이 있다. 보충의견에 따르면 법원은 원고와 참가승계인으로 하여금 그들의 청구가 양자 중 어느 쪽인지 분명히 하도록 석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III.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1. 참가승계와 편면참가 (1) 참가승계의 경우 법 제79조의 형식을 빌려 참가하지만 반드시 독립당사자참가의 실질을 갖는 것을 전제하지 않았으므로 법 개정 이전에도 편면참가 형태의 참가승계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참가승계가 독립당사자참가의 실질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참가승계가 독립당사자참가의 실질을 갖기 위해서는 승계사실을 피승계인이 다투어야 하는데 이 경우 승계인은 인지법에 따라 인지를 첩부하고(인지법 제6조 제2항, 제2조) 법원 역시 독립한 민사사건으로 취급하게 된다. 따라서 법 개정에 따라 편면참가가 허용됨으로써 승계인과 피승계인간의 공동소송인들에게 필수적 공동소송에 관한 특별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비로소 마련되었다는 것은 정확한 설명이 될 수 없다. 참가승계의 경우 독립당사자참가의 형식을 빌리는 것일 뿐이며 이 사건 대상판결의 사안과 같이 승계사실의 다툼이 없는 경우에는 개정 전후를 불문하고 독립당사자참가의 실질을 갖지 않는다. (2) 편면참가 제도 하에서도 참가인과 기존 당사자 간의 대립·견제 관계는 여전히 요구된다. 특히 원고의 본소 청구와 독립당사자참가인의 청구가 주장 자체에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경우에 허용되고 편면적 독립당사자참가의 경우에도 이러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은 이 사건 대상 판결도 시인하고 있다. 2. 참가승계와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 (1) 참가승계 유형과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 대법원은 승계인과 피승계인 사이의 청구 내용이 법률상 양립불가능한 관계에 있고 법에서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필수적 공동소송의 심리특칙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 대상 판결의 사안에서 승계인은 원고의 피고에 대한 정산금지급채권 중 일부를 압류 및 전부 받았다는 것을 이유로 참가승계신청을 하였고 피승계인 원고는 이를 다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부된 청구 부분에 대해 소 취하를 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승계사실을 다투지 않는 참가승계의 경우 소송의 외관만 본다면 승계인은 주위적 원고, 피승계인은 예비적 원고의 모습을 한 예비적 공동소송관계로 파악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외관의 모습에 불과하다. (2)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과 필수적 공동소송 1)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은 합일확정의 필요성이 반드시 요구되는 성격의 소송이 아니며 나아가 우연히 하나의 소송절차에서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의 형태로 진행되더라도 언제든지 소취하 등을 통해 단일한 소송의 형태로 전환될 수 있는 매우 탄력적인 공동소송이다(법 제70조 제1항 단서). 따라서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은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인정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이 사안에서 승계인과 피승계인간의 청구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므로 당연히 당해 절차를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으로 간주하여 법 제67조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2) 실정법상의 근거도 없이 승계제도와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제도를 법원의 재량에 따라 임의로 결합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선 두 제도는 그 목적을 달리한다. 참가승계는 승계인이 피승계인의 지위를 이전받았는가 여부가 핵심 쟁점이며 양자 간의 이에 대한 다툼 여부에 따라 독립당사자참가 형태나 혹은 통상 공동소송 형태를 전제로 설계된 제도이다. 반면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은 승계여부가 관건이 아니라 누가 권리자인지(원고 측면) 혹은 누가 책임을 부담하느냐의 문제(피고 측면)이고 제한적인 필수적 공동소송의 심리 원칙을 법에서 명시하고 있어 승계제도와의 결합은 전혀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더구나 법률상 양립불가능한 청구만을 대상으로 하는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제도와 승계제도는 공존하기 어려운 제도임이 분명하다. (3) 필수적 공동소송 심리특칙은 정당한 결론을 위한 필수적 도구인가? 1) 기존의 원고가 승계사실을 다투지 않는데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소를 구성할 현실적인 필요성은 없으며 통상 공동소송 형태의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종전 판례들에 따르더라도 승계사실이 인정되면 원고청구를 기각하고 승계인의 청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오히려 원고와 승계인의 각 청구가 일부씩 인정될 수 있어 이를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 형태로 보는 것보다 유연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2) 문제는 이 사건 대상 판결 사안과 같이 승계인이 승소한 1심 판결에 대해 원고가 항소를 제기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다. 즉 항소심 심리결과 승계사실이 인정되지 않아서 원고청구를 인용해야 하는데 원고가 항소를 제기하지 않아 부당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억울한 원고를 위해 법원이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 법리와 독립당사자참가 법리를 가져와 항소하지 않은 원고에게 승소판결을 해 줌으로써 정당하고 바람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바람직한 결론이라고 도출한 상황은 원고 입장에서만 사물을 볼 때이고 상대방 입장에서는 매우 부당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3. 필수적 공동소송의 심리특칙 적용을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 법 제67조의 적용과 준용을 통해 필수적 공동소송의 심리특칙을 적용하게 되는 상황의 핵심조건은 합일확정의 필요성인데 고유필수적 공동소송의 경우는 실체법상의 관리처분권의 공동 귀속 내지 판결의 모순 저촉을 방지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성(소송법적 이익)을 통해 이 요건이 언제나 충족된다. 유사필수적 공동소송의 경우에는 승소판결에 대세적 효력이 인정되거나 이러한 효력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판결의 모순저촉을 피하기 위해 소송법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 필수적 공동소송의 심리특칙을 준용하거나 유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당사자의 의사에 의해서 필수적 공동소송의 심리특칙 규정의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은 허용되지 않는다. IV. 결론 대상판결의 사안은 합일확정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으며 판결의 대세효도 인정되는 경우도 아니므로 필수적 공동소송의 심리특칙을 적용할 수 없다. 나아가 원고와 승계참가인 사이에 긴장관계도 없으므로 편면참가의 법리를 적용할 수도 없고 원고나 승계인 누구도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을 신청한 바도 없다. 따라서 대상판결은 독립당사자 참가 및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의 법리를 위반하였으며 처분권주의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한충수 교수(한양대 로스쿨)
통상공동소송
필수정공동소송
승계참가인
공동소송인
한충수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0-08-24
금융·보험
민사일반
대리의 본질과 표현대리 및 대리권 남용행위
I. 사실관계와 판시사항 1. 피고 乙은행 ○○지점의 당좌업무 대리 A는 재벌기업 대표이사 B로부터 대가를 약속받고 다른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예금을 유치하여 사업자금으로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원고 甲은 대리인 C를 통해 A와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1억 원을 乙에 예치하였다. A는 그 중 100만 원을 입금 처리하고 나머지는 원장에 기재하지 않은 채 B에게 지급하는 등, 4년간 약 1,066억 원을 예치하여 그 중 512억 원을 B에게 제공하였다. 甲은 乙을 상대로 만기 예금액 및 약정이자의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2. 제1심법원(84가합366)과 원심법원(84나2428)은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법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대리권 남용법리를 적용하여 A의 대리행위에 따른 예금계약의 효과를 乙에게 귀속시킬 수 없으므로 乙은 甲에게 예금을 반환할 책임이 없다고 하면서, 이 부분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대법원은 A가 乙의 당좌업무 대리인으로서 C와 예금계약을 체결한 것은 권한을 넘어선 대리행위이지만, 甲에게 A의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가 성립하여 甲과 乙의 예금계약은 유효하다고 전제하였다. 그러나 A는 예금계약을 통하여 甲의 이익을 꾀한 대리권 남용행위를 하였고 甲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예금계약에 따른 책임을 乙에게 물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86다카1004). II. 평석 1. 우리민법 규정과 대리의 본질 (1) 대리의 본질과 관련하여 우리민법은 대리인행위설의 입장이라고 한다. 대리효과의 귀속은 대리인의 대리의사에 따른 법률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송덕수). 나아가 민법 제114조 이하 규정이 대리의 효과의사대로 법률효과가 발생하도록 하며, 특히 제116조 제1항은 우리민법이 대리인행위설을 취하는 실정법적 근거일 뿐만 아니라(곽윤직, 고상룡), 이에 따르면 대리인행위설만 입론이 가능하다고 한다(지원림). 이에 반하여 독일에서 제안된 행위규율분리설은 수권행위와 대리행위를 단일한 하나의 행위로 파악하고, 대리인의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서 ‘행위’ 측면과 본인에 대한 효과귀속으로서 ‘규율’ 측면을 구분하되, 행위 주체는 대리인이지만 규율의 주체는 본인으로, 규율측면이 본질적인 부분이어서 대리효과가 본인에게 직접 발생한다고 설명한다(이영준). (2) 대리인행위설과 행위규율분리설에 따른 법적 취급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것이 대리권 남용행위와 표현대리이다. 대리권이 적법하게 수여된 경우 다른 요건이 충족되면 대리효과가 귀속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대리권 남용법리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대리권이 수여되지 않았다면 대리효과가 귀속되지 않아야 함에도 그 귀속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표현대리이다. 2. 대리권 남용법리에 대한 대리인행위설 및 행위규율분리설의 입장 (1) 대리권을 적법하게 보유한 대리인이 자기 또는 상대방의 이익을 위하여 대리행위를 한 결과 본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대리권 남용행위라고 한다. 이는 대리행위의 요건을 모두 충족한 상태여서 대리효과의 귀속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상대방이 대리인의 배임의도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까지 대리효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상대방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근거로 대리효과의 귀속을 차단시키는 법률구성을 ‘대리권 남용법리’라고 한다. 이는 대리권 수여라는 측면에서 유권대리로 취급되어야 하지만 대리효과의 귀속이 차단된다는 측면에서는 무권대리가 된다. 이에 대하여 대리인행위설은 비진의표시의 효과에 관한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를 유추적용하거나 신의칙 내지 권리남용금지원칙 위반의 효과에 따라 대리효과의 귀속을 차단한다. 반면 행위규율분리설은 배임행위를 한 대리인을 무권대리로 취급하여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2) 비진의표시 유추적용설은 대리권 남용행위를 비진의표시의 외양과 유사하게 파악하여 대리행위로서는 유효하게 성립하지만, 대리인의 배임의사를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취지를 유추하여 대리행위의 효력을 부정한다. 대다수 판례의 입장이다(74다1452, 97다24382, 2008다13838). 한편 권리남용설 내지 신의칙위반설은 대리인의 배임의사를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지 못함에 중과실이 있는 경우까지 대리효과의 귀속을 인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며, 더욱이 상대방이 본인에 대하여 그 효과를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한다(강태성, 홍성재, 명순구). 법인의 대표권 남용에 관한 사례이지만 판례 중에도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86다카1522, 89다카24360). (3) 행위규율분리설은 대리관계를 대리인의 대리 ‘행위’에 대한 측면과 효과귀속에 대한 본인의 ‘규율’ 측면으로 이해하고, 대리효과 귀속의 본질은 본인과 상대방의 규율에 달렸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대리권 남용행위는 대리권이 있더라도 본인에 대한 대리효과의 귀속이 차단되므로 무권대리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추가적으로 표현대리 규정에 따라 대리효과가 귀속될 수 있다는 입장(손지열)과 배임행위의 명백성을 근거로 구분하는 입장이 있다(백태승). 3. 표현대리에 대한 대리인행위설 및 행위규율분리설의 입장 (1) 우리민법은 표현대리를 대리권수여의 표시(제125조), 대리권의 범위 초과(제126조), 대리권 소멸 후의 대리행위(제129조)로 나누고 있다. 본인이 이러한 각각의 외관을 제공하였으므로 이에 관하여 선의·무과실인 상대방은 대리효과의 귀속을 주장할 수 있다. 표현대리는 대리권이 없다는 측면에서 무권대리이지만, 본인에게 효과가 귀속된다는 측면에서 유권대리로 취급할 수 있다. (2) 대리인행위설에 의하면 표현대리는 무권대리에 속한다(양형우). 우리 판례 역시 명백하게 표현대리가 성립되었다고 하여 무권대리의 성질이 유권대리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83다카1489). (3) 행위규율분리설은 표현대리를 유권대리로 이해한다. 대리의 본질은 본인과 상대방 사이의 규율인데, 표현대리는 본인의 외관 형성과 상대방의 신뢰에 기초하여 본인에게 대리효과를 귀속시키므로 유권대리의 아종이라고 한다. 특히 독일민법에서 인정되는 외부적 수권행위 개념이 유용하다(이영준). 독일민법은 대리권을 수여하는 방법으로 본인이 대리인에게 직접 대리권을 수여하는 방법(내부적 수권행위)과 본인이 대리행위의 상대방이 될 제3자에게 대리권을 수여하는 방법(외부적 수권행위)으로 나누어 규정한다(§167 Abs. 1). 그리고 외부적 수권행위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대리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170), 대리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특별통지와 다수의 제3자에 대한 공고(§171 Abs. 1) 또는 대리권 증서의 교부와 제시(§172 Abs. 1)를 인정하고 있다. 4. 표현대리에 대한 대리권 남용법리의 적용과 판결의 검토 (1) 앞의 판결에서 A는 乙은행의 당좌업무에 관한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 甲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였다. 乙은행은 그 지점장을 통해 A에 대한 대리권의 외관을 제공하였는데 甲이 이를 신뢰하였으므로, A에게 민법 제126조에 따른 표현대리가 성립하여 甲과 乙 사이에 예금계약이 인정되었다. 이에 더하여 A가 甲에게서 예금으로 교부받은 금전을 횡령하고 甲에게 기준을 넘어서는 이자를 지급한 것은 대리권 남용행위이다. 甲이 이러한 A의 배임의도를 알았으니 대리권 남용법리에 따라 乙은행에 대한 A의 대리효과로서 예금계약은 성립할 수 없다. 이것이 판결의 결론이었다. (2) 대리인행위설은 표현대리를 무권대리로 이해하였고 대리권 남용법리는 유권대리에 관하여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논리적으로 무권대리인 A의 표현대리에 대하여 유권대리에 관한 대리권 남용법리는 적용할 수 없다. (3) 행위규율분리설에 의하더라도 표현대리는 유권대리라고 하면서 대리권 남용법리를 적용하면 A의 동일한 행위가 갑자기 무권대리로 변경되는 기이한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유권대리로 취급된 표현대리가 대리권 남용법리의 적용에 의하여 무권대리가 된다면, 그 무권대리는 다시 표현대리의 요건 충족으로 유권대리가 되는 순환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리권 남용법리의 적용으로 이론상 무권대리가 되더라도 대리권 남용행위를 한 대리인에게는 실제로 대리권이 존재하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 그러므로 대리인행위설에 의하면 A의 행위가 무권대리였다가 유권대리로 바뀌고, 행위규율분리설에 의하면 유권대리였다가 무권대리로 변경되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위 판결이 대리인행위설에 따른 것인지, 행위규율분리설에 따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A는 乙은행으로부터 수여받은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 甲과 예금계약을 체결하는 하나의 동일한 행위를 했을 뿐인데, 대리의 본질에 관한 두 견해에 의하여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유권대리 또는 무권대리로 혼란스럽게 법적 성질이 결정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정상현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표현대리
대리권남용
예금계약
정상현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2020-01-20
민사소송·집행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
I. 판결요지와 쟁점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증거로 제출된 중국 행정기구가 발행한 문서에 대하여 '당사자가 외국의 공문서라고 하여 제출한 문서가 진정한 공문서로 추정되기 위해서는 제출한 문서의 방식이 외관상 외국의 공공기관이 직무상 작성하는 방식에 합치되어야 하고, 문서의 취지로부터 외국의 공공기관이 직무상 작성한 것이라고 인정되어야 한다. 법원은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는지를 심사할 때 공문서를 작성한 외국에 소재하는 대한민국 공관의 인증이나 확인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유심증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므로 다른 증거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도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외국 공문서에 대해 국내 공문서의 진정성립 추정규정을 준용하는 것(민사소송법 제356조 제3항)이 타당한지와 대한민국 공관의 인증이나 확인을 거치는 것이 외국의 공문서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인가 하는 점이다. 이 글은 '정선주,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대법원 2016. 12. 15.선고 2016다205373 판결에 대한 비판적 검토-, 민사소송 제23권 제3호, 2019.10.'를 기초로 작성된 것임을 밝혀 둔다. II. 공문서의 진정성립과 법정증거규정 문서가 요증사실의 인정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먼저 문서의 진정성립이 인정되어야 한다. 문서작성자라고 주장되는 자의 의사에 의하여 문서가 작성되었으면 이 문서는 진정성립한 것이다. 문서의 진정성립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에 관하여 민사소송법은 사문서와 공문서를 구분하여 전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진정성립이 증명되어야 하지만(민사소송법 제357조), 후자에 대해서는 일단 진정성립을 추정하고 있다(민사소송법 제356조 제1항). 이 추정규정은 대표적인 법정증거규정이다. 법정증거주의는 증거능력이나 증거가치를 미리 법률로 정해놓고 법관이 여기에 구속되도록 하는 것으로서 자유심증원칙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민사소송절차에서 법관의 자유심증원칙이 자리 잡음에 따라 법정증거규정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몇몇 경우에 아직 그 잔재가 남아있는데 많은 국가에서 공문서의 진정성립과 관련하여서는 법정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은 공문서의 진정성립을 추정하고 있고 미국은 진정성립이 증명된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공문서에 대해 이처럼 법정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정증거규정은 법관의 자유로운 증거평가를 제한하는 측면도 있지만 법관으로 하여금 증거평가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경험칙상 인정될 수 있는 사실을 추정규정으로 법규범화하는 것은 법관의 자의적인 해석을 방지하여 법관의 판단과 일반 경험칙이 상반되는 것을 피함으로써 법적 명확성과 안정성을 꾀하려는 것이다. 입법자는 경험칙을 바탕으로 공문서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단 진정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법규화하여 추정규정을 둠으로써 법관에게 당해 문서를 진정성립한 것으로 취급해도 좋다는 행동양식을 지시해 주고 이를 통해 법관의 판단이 일반 경험칙과 어긋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III.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에 대한 판단 외국 공문서도 증거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먼저 진정하게 성립되어야 하는데 그 판단기준에 대해서는 입법태도가 나누어져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국내 공문서의 진정성립 추정규정을 준용하고 있는 데 비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국내 공문서와는 달리 진정성립의 판단을 법관의 자유심증에 맡기고 있다. 미국 연방증거법은 국내 공문서에 대해서는 진정성립을 바로 인정하는 데 비해 외국 공문서에 대해서는 반드시 서명의 진정성과 서명자나 인증자의 공적 지위의 진정성에 대한 최종적인 인증서가 첨부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당사자에게 문서의 진정성을 증명할 합리적인 기회가 보장된 경우에는 최종적인 인증서 없이도 진정성립을 추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공문서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작성자가 공무원처럼 공적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문서 작성이 작성자의 직무범위 내 활동이어야 하고, 문서가 법정방식을 준수하여야 한다. 이는 외국 공문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많은 국가에서 국내 공문서의 경우 진정성립을 바로 추정하고 있는 것은 제출된 문서가 공문서인지 여부를 외관상 드러나 있는 문서의 작성방식과 취지에 비추어 비교적 쉽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공문서는 표준화된 양식을 따르고 있다. 판결서는 민사소송법 제208조 제1항의 형식을 갖추어야 하며 행정공문서는 행정안전부의 행정업무운영편람의 양식을 따라야 한다. 이처럼 국내 공문서는 그 방식 등이 알려져 있어 공문서인지 여부를 외관상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외관상 드러난 문서의 방식과 취지에 의하여 공무원이 작성한 것이라고 인정하면 우리의 경험칙상 일단 해당 공무원의 의사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외국문서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특정 국가의 공문서의 방식을 국내법원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문서가 외국의 공문서인지 여부를 문서의 방식 등 외관을 통해 판단하기 어렵다. 대법원도 2016. 3. 10. 선고 2013두14269 판결에서 '현실적으로 공문서의 진정성립을 증명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은 난민신청자가 제출한 외국의 공문서의 경우, 반드시 엄격한 방법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서의 형식과 내용, 취득 경위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외국의 공문서임을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외 공문서의 이러한 차이는 외국의 입법자도 인식하여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진정성립을 달리 취급하고 있다. 국내 공문서에 대해서는 진정성립을 바로 추정하거나 인정하는 데 비해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은 법관의 재량에 맡기거나 증명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입법자 또한 국내외 공문서의 차이를 인식하여 형법에서는 공문서위조변조를 사문서의 경우보다 엄하게 처벌하는데(제225조), 외국 공문서는 사문서에 준하여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부동산등기규칙, 재외공관공증법, 외국 공문서에 관한 업무처리지침 등에서는 외국 공문서의 처리에 관하여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데 외국 공문서나 외국 공증인이 공증한 문서의 경우 재외공관 공증법 제30조 제1항에 따라 공증담당영사로부터 문서의 확인을 받거나 아포스티유를 발급받아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외 공문서의 이러한 차이를 인식한다면 우리 민사소송법이 외국 공문서에 대해서도 국내 공문서와 마찬가지로 진정성립을 추정하고 있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외국 공문서는 국내 공문서와는 달리 그 양식 등이 알려져 있지 않아 외관상 드러난 문서의 작성방식과 취지로부터 공문서임을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진정성립에 관하여서는 법관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IV. 영사인증이나 아포스티유의 의미 외국 공문서의 취급과 관련하여 실무에서는 '외국의 공문서인지 여부가 불분명하거나 의심스러운 때에는…(중략)…그 나라에 주재하는 우리나라의 영사 대사 공사에게 조회하여 그 인증으로 추정규정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영사인증이나 아포스티유는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을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방법이다. 영사인증이나 아포스티유가 있으면 해당 외국 공문서는 진정성립한 것이 증명되기 때문에 이때에는 공문서의 진정성립의 추정에 관한 민사소송법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외국 공문서에 대한 인증의 요구를 폐지하는 아포스티유 협약(Apostille Convention, Hague Convention Abolishing the Requirement of Legalisation for Foreign Public Documents)의 가입국이면 해당 국가의 정부가 발행한 아포스티유를 첨부함으로써, 그리고 협약 미가입국은 해당 국가에 주재하는 대한민국 영사의 확인을 받음으로써 당해 외국 공문서는 진정성립이 증명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례나 문헌 등에서 아포스티유나 영사확인을 받은 외국 공문서에 대해 '민사소송법의 진정성립 추정규정이 적용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Ⅴ. 결론 대상판결에서는 중국 공문서가 문제 되었는데 대법원의 판시처럼 '대한민국 공관의 인증이나 확인을 거치는 것'은 당해 문서가 '외국의 공문서'임을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아니다. 영사확인은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이다.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만 아포스티유 가입국이며 중국 본토는 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 공문서의 진정성립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영사의 확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에 관하여 우리 민사소송법이 국내 공문서의 진정성립에 관한 추정규정을 준용하고 있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입법론적으로 외국 공문서의 진정성립에 대해서는 법관이 자유롭게 판단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정선주 교수 (서울대 로스쿨)
외국공문서
법정증거주의
진정성립
공문서
정선주 교수 (서울대 로스쿨)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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