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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와 위법성조각 법리를 구체화
대상판결은 언론에 의한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해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기존 판례에서는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이 이익형량 중 침해행위의 영역으로 고려되었으나 대상판결은 그러한 고려 없이 위법성 조각이 가능하다는 기준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는 구분되는 초상권 침해에 관한 법리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1. 들어가며 사진이나 영상 촬영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이루어진다. 그만큼 초상권에 관한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초상권 침해 문제도 늘고 있다. 동의 없이 얼굴이 촬영되거나 공개되지 않을 권리의 반대편에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놓인다. 특히 언론보도에서는 정확한 내용 전달과 근거 제시, 제3자 피해 방지 등 여러 이유로 보도 대상자의 얼굴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필요한 때가 있다. 하지만 아직 언론소송에서는 초상권 침해보다는 명예훼손이 문제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보도 대상자와 언론사 간의 법익 균형을 찾는 위법성 조각사유 관련 판례도 명예훼손에 관해서는 많이 축적되어 있으나 초상권 침해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 이 사건 1, 2심 법원은 기존 판례의 초상권 침해에 관한 법리를 인용하며, 방송사 기자인 피고들이 원고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초상권 침해에 해당하며 위법성도 조각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본 법무법인은 상고심에서 원고가 공적 인물에 해당하고 이 사건 보도가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므로, 언론의 자유 보호가 원고의 초상권 보호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보도의 위법성이 조각되어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아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하 ‘대상판결’)은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에서의 위법성조각 법리를 기존 판례에 비해 보다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언론의 초상 보도 적법성에 관한 예측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언론이 초상을 적법하게 보도할 수 있는 경계를 보다 뚜렷이 한 만큼 그 경계 범위 안에서의 언론의 자유도 그만큼 더 확보되었다. 2. 사실관계 원고는 어린이 다문화합창단인 레인보우합창단(이하 ‘이 사건 합창단’)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한국다문화센터(이하 ‘이 사건 센터’)의 대표로 있었다. 이 사건 합창단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행사의 애국가 제창을 위해 초대받았다. 원고는 합창 단원의 학부모들에게 참가비 30만 원 납부를 통보했다. 학부모들은 참가비 전액을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지급하기로 한 점을 들어 항의했다. 그 과정에서 한 학부모가 휴대폰을 이용해 위 상황을 약 4분 48초간 동영상(이하 '이 사건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MBC 기자인 피고들은 관련 기사를 작성해 MBC 뉴스데스크에서 방송하도록 하였다. 위 방송 중 약 32초간 이 사건 동영상 일부가 사용되었고, 원고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이하 원고의 얼굴이 공개된 위 약 32초간의 방송을 '이 사건 방송'). 원고는 피고들이 원고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채 이 사건 방송을 한 것이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3. 소송경과 1심은 피고들의 행위가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하여 위법하다고 보았다. 원고가 공적 인물에 해당하지 않고, 공적 인물에 해당하더라도 얼굴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은 아니며,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고도 공익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고, 원고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하였다. 2심은 1심과 달리 원고를 공인으로 볼 여지가 높다고 하였다. 그러나, 공인인 경우에도 이 사건 동영상이 원고의 의사에 반해 촬영되었고, 학부모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 사람들이 원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이 사건 동영상을 원고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게 하는 조치 없이 그대로 방송할 필요성, 보충성, 긴급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원고가 입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보호가치가 공익보다 크거나 우선하므로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4. 대법원 판결의 주요 내용 가. 초상권 침해와 위법성조각 법리 대상판결은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조각 법리에 관해, “초상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따라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그러나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더라도, 그 내용이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표현내용 · 방법 등이 부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초상권 침해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두 방향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구체적 사안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을 통하여 침해행위의 최종적인 위법성이 가려진다. 이러한 이익형량 과정에서 첫째, 침해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침해행위로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의 필요성과 효과성, 침해방법의 상당성 등이 있고, 둘째,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피해법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로 피해자가 입는 피해의 정도 등이 있다.”라고 설시했다. 대상판결은 특히 언론에 의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사건에서 이익형량의 중요한 고려요소로, “그 피해자가 공적 인물인지 일반 사인인지, 공적 인물 중에서도 공직자나 정치인 등과 같이 광범위하게 국민의 관심과 감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인지, 단지 특정 시기에 한정된 범위에서 관심을 끌게 된 데 지나지 않는 인물인지, 그 보도된 내용이 피해자의 공적 활동 분야와 관련된 것이거나 공공성·사회성이 있어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고 공론의 필요성이 있는지, 그리고 공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데에 피해자 스스로 관여한 바 있는지 등”을 제시했다. 나. 이 사안의 경우 대법원은 이 사건 방송으로 원고의 초상권이 침해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피고들의 행위가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하였다. ① 원고가 다문화전문가, 정치인 지지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언론매체에 이름과 얼굴을 알려온 것을 보면 공적 인물로 볼 수 있고, 이 경우 원고의 공적 활동에 대한 의문·의혹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한다. ② 합창단의 참가비 전액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부담함에도, 이 사건 센터가 학부모들에게 참가비를 부담하게 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 사건 방송 전날에는 관련 보도도 방송되었다. 그 보도에서 원고는 스스로 얼굴을 공개하며 반론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사건 방송 내용은 공공성·사회성이 있어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 ③ 이 사건 방송은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합창단의 회계 등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그 보도 내용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공론의 필요성도 인정된다. ④ 이 사건 방송에 원고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기는 했지만, 원고가 스스로 얼굴을 공개하며 반론 인터뷰를 한데다가, 이 사건 방송이 포함된 뉴스의 다른 부분에 원고의 사진과 영상이 사용되었고 자막에도 이름이 표시되었으므로, 설사 원고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게 하였더라도 시청자들은 그 등장인물이 원고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 방송에 원고의 얼굴이 공개됨으로써 원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추가로 발생하였다고 볼 여지는 크지 않다. 피고들이 이 사건 동영상을 악의적으로 편집하거나 왜곡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까지 더하여 보면 그 표현 내용이나 방법이 사회통념상 상당한 범위를 넘었다고 볼 수 없다. ⑤ 이 사건 방송을 통한 피고들의 표현의 자유가 초상권 침해로 원고가 입을 피해보다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이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조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5. 대상판결의 의의 기존의 판례는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 판단 기준으로, 침해행위와 피해이익 간의 이익형량에 다소 추상적인 고려요소만을 제시했다{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4다16280 판결(이른바 “보험회사” 사건)}. 이익형량을 통해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추상적인 고려요소만으로는 과연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로 초상을 촬영·공표하는 것이 적법한지 예측하는 데에는 큰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대상판결은 초상권 침해의 경우 이익형량에 나아가기 전에 그에 앞선 위법성판단기준으로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표현내용·방법 등이 부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즉,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자 공익을 위한 것’이고 그 내용·방법이 부당하지 않은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하여, 상위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기존에 이러한 기준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를 초상권 침해의 독자적 위법성 조각사유로 제시하지는 않았고, 초상권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결부하면서 위 기준을 사생활 침해의 위법성 조각사유로 판시했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0다227455 판결 등). 이와 달리, 대상판결은 사생활의 보호와 초상권을 분리하고 초상권에 관한 독자적인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위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특히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 사건에서 이익형량에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를 제시했다. 즉, 대법원은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경우, 공적 인물인지, 공직자나 정치인 등인지, 공적 활동 분야와 관련된 것이거나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지 등이 이익형량에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에 관한 위법성조각 법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법리는 기존에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사유 중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다(대법원 2016. 5. 27. 선고 2015다33489 판결). 대상판결은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경우에도 위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상판결이 기존 판례에서 이익형량 중 침해행위의 영역에서 고려요소로 언급되었던 침해의 보충성, 긴급성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론보도는 관련자들의 초상을 같이 내보냄으로써 시사성을 확보할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함을 보여주어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음이 고려되어야 하므로, 언론보도가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인 경우에는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을 이익형량의 요소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문건영, “언론에 의한 초상권 침해 판단 기준의 구체화에 관한 연구”, 법조(제69권 제5호), 법조협회(2020. 10.) 229, 230면}. 1심은 이 사건에서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반면, 대상판결은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을 고려요소로 제시하지 않았다. 즉, 이익형량에서 ‘반드시 원고의 초상을 공개했어야 했는지’, ‘이 사건 방송 외에 다른 방법으로 보도내용을 전달할 수는 없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대법원이 대상판결을 통해 보충성과 긴급성을 이익형량의 고려요소에서 배제하는 기준을 제시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대상판결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는 구분되는 초상권 침해에 관한 법리, 언론보도에 의한 초상권 침해의 구체적인 위법성 조각사유 판단기준,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 고려 없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김광중·황예영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공익
언론의자유
초상권
뉴스
김광중·황예영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2023-06-04
민사소송·집행
부동산·건축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지료지급의무
[사실관계]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평석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발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고들은 2014년경 이 사건 임야의 지분 일부를 경매로 취득한 다음,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분묘의 기지(基地) 점유에 따른 원고들의 소유권 취득일 이후의 지료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20년 이상 평온·공연하게 이 사건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여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였으므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1심(수원지법 여주지원 이천시법원 2016. 5. 3. 선고 2015가소53727 판결)은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는 경우에도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으나, 원심(수원지법 2017. 4. 20. 선고 2016나58055 판결)은 분묘기지권자는 적어도 토지 소유자가 지료 지급을 청구한 때로부터는 그 분묘 부분에 대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는 것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에 피고는,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 경우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판시요지] [다수의견] 관습법으로 인정된 권리의 내용을 확정함에 있어서는 그 권리의 법적 성질과 인정 취지,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량 및 전체 법질서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지 않고 성립하는 지상권 유사의 권리이고, 그로 인하여 토지 소유권이 사실상 영구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시효로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사람은 일정한 범위에서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형평에 부합한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 관습법으로 인정되어 온 역사적·사회적 배경, 분묘를 둘러싸고 형성된 기존의 사실관계에 대한 당사자의 신뢰와 법적 안정성, 관습법상 권리로서의 분묘기지권의 특수성, 조리와 신의성실의 원칙 및 부동산의 계속적 용익관계에 관하여 이러한 가치를 구체화한 민법상 지료증감청구권 규정의 취지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시효로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사람은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에 관한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이에 대하여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여 성립하는 토지 이용관계에 관해서도 법정지상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부터 지료를 지급하여야 한다는 대법관 이기택·김재형·이흥구의 별개의견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시효취득한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에게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대법관 안철상·이동원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평석] 1. 대법원 판례에 따른 분묘기지권의 유형은, 토지 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타인 토지에 분묘를 설치하는 경우인 승낙형 분묘기지권, 토지소유자가 그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후 분묘기지에 대한 소유권을 유보하거나 또는 분묘를 따로 이장한다는 특약을 함이 없이 위 토지를 매매 등을 원인으로 처분하여 타인이 위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한 경우인 양도형 분묘기지권,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 경우인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으로 구분된다. 이 사건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 함)은 위 유형중 마지막 유형인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한 사안이다. 다수의 대법원 판결이 분묘기지권을 관습법상 물권으로 인정하였음에도 구 장사등에 관한 법률(법률 제6158호, 이하 '장사법'이라 함) 시행 시점인 2001년 1월 13일을 전후하여 분묘기지권, 특히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관습법으로 여전히 보아야 하는지 또는 종전에 그러한 관습이 있었는지에 관한 꾸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대법원은, 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재차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는 점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관습 또는 관행으로서 법적 규범으로 승인되어 왔으며, 이러한 법적 규범이 장사법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여, 장사법 시행 전 설치된 분묘에 있어서는 분묘기지권에 여전히 관습법적 효력이 있다고 하였고 대상판결 역시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한편,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는 경우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의무 여부에 관하여는 분묘기지권이 성립됨과 동시에 그 지급의무가 발생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1992. 6. 26. 선고 92다13936 판결과 이에 배치되는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1995. 2. 28. 선고 94다37912 판결 등이 정리되지 아니한 채 공존하여 그 지료 지급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었는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인 대상판결을 통하여 이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최초로 이를 판시하였다고 평가되는 1927. 3. 8. 선고된 조선고등법원 1926년민상제585호 판결 이래, 해방 후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거듭됨에 따라 확립된 관습법으로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다수의견의 보충의견도 같은 취지이다). 다만 위 조선고등법원 판결은 당시 조선사회의 분묘 수호와 봉사를 위한 토지 사용권의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관습과 근대적 취득시효 제도를 결합하여 시효에 의한 분묘기지권의 취득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인데(이에 관한 논의는 줄인다), 이처럼 최초 판시된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 관습에만 근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웠던 까닭에,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효력 범위에 관하여 관습의 존재가 확인되지 아니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지료 부분은 분묘기지권의 내용으로 정해지지 아니한 공백으로 보고 해석으로 보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 민법 제1조에서 민사에 관한 법원의 순위를 법률, 관습법, 조리 순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관습법상 권리의 내용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으며 관습법상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충하기 위한 법규범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일 것이다. 대법원은 종전부터 분묘기지권은 지상권과 유사한 물권으로 보고 있으므로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있어서의 지료 부분도 지상권 또는 법정지상권을 유추적용할 것인지 논의되나,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다른 분묘기지권 유형과는 달리 인정되어 온 역사적·사회적 배경 등에 비추어 지상권의 법리를 그대로 차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한편, 유추적용할 법규범 또는 관습법이 없다면 다음으로 조리에 의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높은 지가(地價), 타인 토지를 사용하려면 지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사회구성원의 일반적 관념 또는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제한과 봉제사 등 분묘 수호 목적의 영위 사이의 형평에 관한 사회적 인식 등에 비추어 보면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또한 그 유상성은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4.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유상성이 인정된다면, 지료지급 시기 또는 범위가 문제된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그 성립 시부터 지료 지급의무를 인정하게 된다면 소멸시효를 적용하더라도 언제나 적어도 10년분의 지료를 준비하지 않은 이상 그 분묘기지권의 소멸에 대한 위험을 분묘기지권자가 경황없이 부담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별개의견은, 취득시효가 완성되기 전에는 분묘 소유자가 분묘를 타인 소유 토지에 설치하여 분묘기지를 최초 점유를 할 시점부터 부당이득이 발생하고, 분묘기지권에 대한 취득시효의 완성으로 이미 발생하였던 부당이득반환의무가 지료 지급의무로 변하게 될 뿐이라는 논지를 밝히기도 하는데, 취득시효의 완성으로 적법한 권원이 된 분묘기지권에 부당이득의 면을 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분묘기지권자가 토지 소유자로부터의 분묘기지 사용에 관한 동의를 증명하지 못한 경우 주로 주장되는 사정도 있으므로 시효완성으로 소급하여 인정되는 분묘기지권 성립 시인 분묘기지에 대한 점유 시점부터 모든 지료를 지급하라고 하는 것 또한 분묘기지권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는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견이, 다른 부동산물권과 목적상 구별되는 분묘기지권의 특성 및 지료의 부담에 따른 그 존속 여부 등을 고려하여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지료 지급 발생 시를, 분묘를 설치한 때부터 지료를 정하는 판결이 확정되는 때까지의 다양한 시점 중 지료 지급청구 시점으로 정한 것은, 형평의 원칙 등에 따른 조리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고 달리 자의적이라고 볼 사정을 찾을 수 없다. 5. 결론적으로 다수의견인 대상판결의 판시를 지지한다. 한편, 대상판결로 인하여 지료 지급과 관련한 소가 증가하더라도 분묘의 이전과 관련한 분쟁에서 조정률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있어서 지료 지급을 특별히 인정하지 않았던 실무례에 따라 분묘기지권자가 당장 토지 사용이 아쉬운 토지 소유자의 분묘 이전 요구에 과도한 분묘 이전비용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그 지료 지급이 인정됨으로써 당사자간 분묘 이전과 관련한 협의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 것이다. 김상헌 교수 (제주대 로스쿨)
분묘기지권
시효취등
관습법
토지사용료
지료
토지
김상헌 교수 (제주대 로스쿨)
2021-10-18
민사일반
채권양도금지특약에 반한 채권양도의 효력
1.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피고(농협)는 2009년 5월 농산물 유통센터 신축공사에 관하여 A건설사와 총계약금액 249억원의 공사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공사계약서에는 'A사는 이 계약에 의하여 발생한 공사대금채권을 제3자에게 양도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A사는 2010년 10월 B사에 공사대금채권 중 5억원을 양도하고 피고에게 이를 통지하였다. 그 후 A사는 공사 중 부도처리되었고 회생절차를 거쳐 원고가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되었다. 그 후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A사가 양도한 공사대금채권을 포함한 공사대금의 지급을 구하자 피고는 공사대금채권이 B사에 양도되었음을 이유로 원고의 지급청구를 거절한다. 원심은 A사가 피고의 동의없이 공사대금채권을 B사에 양도한 것은 계약상의 채권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로서 그 효력이 없으며 금지특약이 채권의 증서인 도급계약서 자체에 명시되어 있어 손쉽게 알 수 있었으므로 B사가 양도금지특약을 알지 못한 데에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을 정당하다고 보아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고 이에 대하여는 4인의 소수의견이 반대를 표시하였다. 2. 대법원의 판결 요지 [다수의견]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하여 이루어진 채권양도는 원칙적으로 그 효력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의 법리는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 이유로서 1) 제449조 제2항의 '양도하지 못한다'라는 명시적 규정, 또 이를 전제로 해야 거래안전 보호를 위한 단서 규정의 해석도 자연스러우며 이러한 해석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인격적 연결과 채권자의 재산이라는 양 측면을 가진 지명채권의 본질과 특성을 잘 반영할 수 있다. 2) 채권관계는 물권과 달리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결정한 계약내용인 금지특약은 존중되어야 하고 당연히 허용되는 금지특약을 민법이 명문으로 정한 것은 그 효력이 당사자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까지 미치도록 하려는 것이다. [소수의견]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라도 채권은 양도인으로부터 양수인에게 이전하는 것이고, 채권양도의 당사자가 아닌 채무자의 의사에 따라 채권양도의 효력이 좌우되지 않는다. 즉 양수인은 채무자에게 채무 이행을 구할 수 있고 채무자는 양도인이 아닌 양수인에게 채무를 이행할 의무를 진다. 그 이유로서, 1) 계약은 당사자만을 구속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당사자 간의 반대의사가 채권의 양도성 자체를 박탈할 근거가 될 수 없으므로 금지특약의 효력은 제3자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채권적 효력설이 계약법의 기본원리에 부합한다. 2) 민법은 채권의 양도가 가능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므로(제1항) 금지특약은 채권양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3) 채권의 재산권적 성격과 담보로서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어 채권자가 이를 처분하여 투하자본의 조기회수라는 경제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양도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4) 채권양도의 세 당사자의 이익을 형량해볼 때 채무자는 채권자에 대하여 위반책임을 물을 수 있고 채무자는 원래 이행하여야 할 채무를 이행하는 것이므로 불이익이 크지 않다. 3. 금지특약에 반한 채권양도의 효력 금지특약에 반한 채권양도의 효력을 둘러싸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은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고 양 측의 보충의견까지 가세하면서 심도있는 논리들이 전개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지면제한상 핵심적인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서만 간략히 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다수의견의 입장에서 소수의견의 논리를 비판하고자 한다. 1) 흥미롭게도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은 다 사적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다수의견이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합의인 금지특약에 반해 채권의 양도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하는데 비해 소수의견은 금지특약은 특약의 당사자만을 구속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채권자와 양수인의 합의로 채권이 양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수의견대로 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가 단순히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채무불이행책임만을 발생시키고 채권양도의 법률효과에 대하여는 영향이 없다는 논리는 바로 채권의 양도라는 법률행위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형식논리이다. 예컨대 부동산을 이중양도하는 경우와는 달리 지명채권이란 채권 '관계'라는 용어가 말하듯이 당사자 간의 관계로서의 측면이 중요하고 또 장차 채무자의 성실한 이행으로서 완성되는 청구권이다. 이러한 채권의 처분에 대하여 물권의 처분이나 일반채무불이행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우리 민법이 근본적으로 물권과 채권을 구별하는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2) 소수의견은 채권의 양도성이 원칙(제1항)이고 금지특약은 그 예외이므로 이는 채권양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인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채권의 양도성과 양도금지특약은 원칙과 제한이라는 관계에 선다고 보기 어렵다. 제1항은 채권의 양도성을 열어주고 넓혀 주어야 한다는 경제적·당위적 필요성을 선언하는 것이고 제2항은 다른 한편으로 당사자 특히 채무자는 사적자치의 원칙상 양도가능성이 없는 채권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양도성의 원칙에 대한 제한은 채권의 성질에 따른 양도의 제한일 것이고 양도금지의 자유라는 원칙에 대한 제한은 양수인의 보호 즉 거래안전을 위해 이루어질 수 있다. 두 원칙 중 어느 것에 더 중점을 둘 것인가는 당해 채권관계의 특성이나 관련 당사자 간의 이익형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3) 채권양도의 세 당사자 간의 이익형량에서 소수의견은 양도성이 제한되면 무엇보다 채권자가 자산으로서의 채권의 활용범위가 축소되는 불이익을 입는 것을 강조한다. 또 양수인의 권리취득을 위험에 빠뜨리고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증가시킬 것을 우려한다. 이에 비하면 채무자는 양도성이 인정되어도 그다지 큰 불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양도의 목적인 채권을 최종적으로 실현시켜야 할 채무자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너무 부족하다. 채권의 상대방의 변경은 비록 인도채무나 금전채무라 하더라도 채권관계의 성질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단순히 새로운 채권자와의 관계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점, 채권의 양도과정에서 채무의 이중변제 등 번잡한 법률관계에 노출될 위험, 새로운 채권자가 손쉽게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소송상의 분쟁에 빠질 위험 등 다양한 채무자의 고려사항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에 비해 채권의 양도가능성과 그 제한이라는 점에서 보면 양수인은 독립적인 이익형량의 당사자가 아니라 그 결과의 적용을 받는 위치에 있으며 공시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 채권을 신뢰하고 거래했다고 하여 특별한 보호를 받을 근거도 없다. 이런 점에서 양수인의 악의와 과실여부에 따라 금지특약의 효력이 좌우되는 현행의 제도는 금지특약의 유효여부에 대한 예측가능성도 매우 떨어지고 근본적으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4. 결어 소수의견은 전체적으로 현대 거래에 있어 채권의 양도성의 확보가 대세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양도금지특약에 채권적 효과만을 부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채권의 양도로 채무자가 더 불리한 처지에 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채권양도 제도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채무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금지특약으로 정당하게 자신의 채권관계의 안정을 위해 안전장치를 해놓은 것이고 이는 존중되어야 한다. 예고 없이 날라온 양도통지서를 받고 전혀 새로운 채권자와 조우해야 하는 채무자의 당혹감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본래의 채권자와의 사이에서 채무관계를 종결시키고자 하는 것은 채무자의 권리라고 볼 수도 있다. 이를 제한하기 위하여는 이를 압도하는 거래상의 필요성이 있어야 하며 이는 입법적으로 명확히 해결되어야 한다. 독일법에서도 민법에서는 채권의 양도금지를 유효한 것으로 선언하고 상법전에서 쌍방적 상행위에서 발생한 금전채권에 한해서 금지특약에 반한 채권양도를 유효한 것으로 보고 동시에 채무자는 여전히 양도인에게 급부할 수 있도록 한 것(제354a조)은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다. 첨언할 것은 본 사안에서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채권자 측이 금지특약이 무효임을 전제로 하여 채무자에게 본래의 이행을 구하는데 대하여 채무자가 양도금지특약과 관계없이 채권이 유효하게 양도되었다며 채권자의 청구를 거절하고 있다. 이것은 금지특약의 효력과는 핵심 쟁점을 달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일반계약관계에서 채무자가 이행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가 다시 본래대로 이행을 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이 일방 당사자의 의사표시의 번복의 문제로 볼 수 있고 그런 경우에는 상대방을 불리하게 하지 않는 한 다시 원래의 법률관계가 회복된다는 논리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그렇다면 양도금지특약의 효력을 둘러싼 방대한 논쟁의 적실성에 대하여 다소 의문이 드는 사안이다. 김동훈 교수 (국민대 법대)
계약자유
채권양도
양도금지특약
민법
김동훈 교수 (국민대 법대)
2020-04-06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대법원판결의 분석과 향후 논의과제
Ⅰ. 서론 2009년 5월21일 대법원은 타인의 ‘자연스런 사망’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취지의 판결(2009다17417)을 선고했다. 우린 오랫동안 다투어 온 존엄사 내지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논의에 큰 획을 긋는 판결을 맞이했고, 2009년 6월23일 10시21분 그 판결의 실행을 생명경외의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연명장치가 제거된 환자가 자기호흡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연명하자, 다시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논쟁하려는 모습, 즉 논의의 역류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유는 위 판결에 ‘옥의 티’가 있었고 그 티가 너무 부각되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하에서는 지면관계상 위 판결의 다수의견과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양창수의 반대의견(제1 반대의견)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간략하게 평석하고, 상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Ⅱ.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요건에 대한 각 의견의 요지 1. 다수의견 다수의견은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요건을 제시하였고,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한 원심판결을 수긍하였다. 다수의견의 설시 내용은 (1) 연명치료 중단의 법적 성질, (2) 중단의 허용요건, (3) 허용요건의 구비 여부 등 세부분으로 구분된다. (1) 연명치료의 중단을 의료계약의 해지로 보았고 환자에게 원칙적으로 계약 임의해지권과 그 연장선에서 계약내용 변경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중단 내지 변경이 환자의 생명에 직결되는 경우에는 엄격한 요건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그래서 다수의견이 제시한 허용요건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즉 객관적 요건으로서 ‘환자의 상태(狀態)’와 주관적 요건으로서 ‘환자의 의사(意思)’에 관한 것이다. 1) 첫째 요건인 객관적 요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환자의 상태(狀態)’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이 단계에 진입한 것인지 여부를 세 가지 요소로 판단한다. 즉 다음 세 요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인데 ① 의식 회복의 불가능, ② 생명관련 생체 기능 회복의 불가능, ③ 짧은 시간 내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하 ‘사망임박’은 이를 의미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전문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 등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이러한 단계에 진입한 환자에게 시행하는 연명치료는 치료목적이 없는 신체침해행위이고 이는 죽음의 시작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죽음의 종기를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2) 이어서 다수의견은 인간의 생명권이 존엄성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보호되어야 하는데 인격체로서의 활동이 기대되지 않는 위의 단계에 이른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고, 이러한 단계에서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사를 존중하는 것은 사회상규에 부합하고 헌법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부분 설시는 아래 ‘환자의 의사’를 허용요건으로 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이유 내지 논거로도 이해할 수 있다. 3) 둘째 요건인 주관적 요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환자의 의사(意思)’가 연명치료의 중단이어야 중단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이 요건은 환자의 사전의료지시 또는 추정의사로 충족된다고 한다. 다수의견은 사전의료지시(“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치료 거부 내지 중단에 관한 의사를 밝힌” 표시)를 진료중단 시점에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의제(擬制)한다. 이러한 의제의 요건으로 ① 의사결정능력, ② 의사의 설명, ③ 결정의 진지성, ④ 중단시점상 증명가능성(증명수단은 ⓐ 의료인을 상대방으로 환자가 직접 작성한 서면, 혹은 ⓑ 진료과정에서 의료인이 환자의 의사결정을 담은 진료기록 등)이다. 이 ④ 요건에서 다수의견은 위 ⓐ·ⓑ 요소를 통하여 의료인의 관여를 중시하며, 이 점이 결여되면 설사 환자가 직접 작성한 것이라도 사전의료지시는 아니지만, 위 ① ② ③ 등 다른 세 요건이 구비되면 환자 의사를 추정하는 자료가 될 뿐이라고 한다. 한편 사전의료지시가 없는 경우에도 일정한 요소로 환자의 중단 의사를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사회상규에 부합한다고 한다. 다수의견에 의하면, ‘추정의 방법’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추정의 기준’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객관적으로 부합하는지 여부이며 그 ‘부합의 판단기준’은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이다. 환자의 가치관이나 신념 등을 파악하는 자료는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3) 이 사건이 위 허용요건을 구비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이를 긍정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2. 제1 반대의견(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양창수) 제1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제시한 연명치료 허용요건의 기본골격에 대하여 찬성하지만 이 사건이 그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였다고 보아 원심파기 의견을 냈다. (1) 환자의 상태(狀態)에 대한 이견: 제1 반대의견은 우선 ‘환자의 상태(狀態)’에 대하여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본다. 환자 담당의사의 판단을 중시하여 그가 환자의 의식회복가능성이 5% 미만이라고 하였지만 아무튼 그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점, 담당의사를 포함한 전문가의 의견 가운데 최단기인 기대여명이 4개월 이상이라는 점을 든다. (2) 환자의 의사(意思)에 대한 이견: 제1 반대의견은 연명치료의 중단을 구하는 추정적 의사가 환자에게 없다고 한다. 그 논거는 이렇다. 우선 추정적 의사를 가정적 의사 또는 의제된 의사와 구별한다. 추정적 의사는 정황에서 추단된 현실적 의사이며 이 의사표시를 묵시적 의사표시라는 것이다. 가정적 의사를 기초로 한 자기결정은 인정될 수는 없으며, 이 사건에서 원심이 제시한 사정들로는 다수의견이 말하는 위 1.(2). 3)의 ① ② ③ 요건이 구비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가정적 의사에 의한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다면 자기결정의 왜곡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견은 환자 주변사람들이 가지는 중단의사를 관철하기 위하여 그들만이 제시 증명하는 정황만에 기하여 환자의 현실의사가 아닌 “이른바 ‘추정적 의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는 것이다. 한편 원고 대리인이 추정적 의사를 묵시적 의사라고 강조하였으므로, 처분권주의 및 변론주의에 따라 법원은 묵시적 의사 존부에 의해서만 판단해야 하는데 그러한 묵시적 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환자의 의사(意思)’라는 요건의 선택적 대안(代案)으로 “객관적 법질서의 관점”을 제시: 제1 반대의견은 위와 같은 의사추정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즉 다수의견의 둘째 요건인 ‘환자의 의사(意思)’가 없어도 예외적인 엄격요건으로 중단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즉 환자의 자기결정에 의하여서만이 아니라, 법질서 일반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요건의 핵심은 치료중지의무이며 이를 위임 규정인 민법 제681조의 “위임의 본지(本旨)”에서 찾는다. 이를 제1반대의견은 연명치료 강요가 환자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경우라고 하는 다수의견에 상응하는 것으로 본다. 이 존엄성 침해 여부는 환자 및 의사 양측 제반 사정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족의 동의는 독자적 요건일 정도로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따라서 설사 환자의 가정적 의사가 중단에 반대하는 것이라도, 존엄성 침해라는 요건이 구비되면 법질서 일반의 관점에서 이익형량 내지 가치평가의 문제로서 연명치료 중단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3. 제2 반대의견, 보충의견, 별개의견 이 의견들도 검토의 가치가 매우 높지만 분량의 제한상 요지를 지극히 간략하게 본다. 제2 반대의견(대법관 이홍훈, 대법관 김능환)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연명치료의 착수 이전에 그 거부에 대해서만 인정되어야지 이미 착수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하여는 행사될 수 없다는 점 등을 설시하여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연명치료 허용기준에 대한 보충의견(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차한성)은 제2 반대의견의 각 논거를 반박한다. 끝으로 중단절차에 대한 별개의견(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박일환)은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요건 구비 여부에 대한 판단을 신중하면서도 적절한 시기에 내릴 수 있는 법적 절차에 금치산자의 요양감호에 관한 민법 제947조 제2항의 유추적용을 제시한다. Ⅲ. 평석 1. 다수의견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대체로 필자를 포함한 기존의 의료법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대체로 수용하였다. 하지만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라는 객관적 요건에 ‘사망임박’(“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란 티가 붙어있다.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의료법학자들이 존엄사를 허용하는 요건에 ‘사망임박’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곧 사망할 사람’을 ‘바로 사망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엄사의 허용은 이미 사망의 길로 들어서서 못 고칠 사람에게 치료 효과도 없는 호흡기 같은 인공장치를 그 사람의 뜻과 달리 무의미하게 달아 놓지 말자는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에서 장치가 제거된 이후 그 생명은 자연사의 길을 걷는 것이며 남은 기간은 생명 자체의 몫이다. 제거를 신청한 자, 이를 허용한 자, 이를 실행한 자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며 생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자연사(自然死)의 방해를 금지하는 것이지 결코 사망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현상이 신비함을 감안한다면 ‘사망임박’이란 요건이 충족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이 요건에 집착한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판결은 이제 거의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하급심판결에서 이 사망임박이란 요건은 무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무시한 하급심판결이 대법원까지 올라가면 대법원은 판례변경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의 대법원 판결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 환자가 인공호흡기 제거에도 불구하고 바로 사망하지 않고 자기호흡으로 연명하고 있으니 ‘사망임박’ 요건의 충족을 오판했다고 하여, 대법원이 환자에게 호흡기의 제거를 금지하여 장착한 채로 두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매우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2. 제1 반대의견에 대하여 추정적 의사에서 그 추단의 대상인 의사를 현실적 의사로 보고, 이를 묵시적 의사표시의 그것으로 보면서, 이렇게 본 원고 대리인의 주장을 변론주의의 틀로 묶어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논증은, 유력한 학설의 하나로 인정될 수는 있지만, 사견으로는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 묵시적 의사표시와 명시적 의사표시는 의사표시의 방법상 차이이며, 언어에 의한 명시적 의사표시와 달리 묵시적 의사표시는 언어 외의 수단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묵시적’ 의사‘표시’라는 용어에서 ‘묵시적’이 수식하는 대상은 ‘의사’가 아니라 ‘표시’라고 할 것이다. 현실적 의사란 명시 혹은 묵시로 표시된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이 제1 반대의견과 다른 시각에서, 추정적 의사는 현실적 의사와 대립하는 용어로서, 일정한 요건 하에 인정된 추정적 의사가 현실적 의사를 대체하는 것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고, 다수의견은 필자 등 다수 의료법학자들의 견해와 같이 이를 인정한 것이라 하겠다. 이렇다면 ‘환자의 의사(意思)’라는 주관적 허용요건의 대안으로 제시된 법질서 일반의 관점이란 논리는 불필요하게 된다. 더구나 위임인이 환자 자신이라면 “위임의 본지(本旨)”를 탐색하는 것과 환자의 ‘가정적 의사’를 탐구하는 것이 과연 다른 것인지도 의문이다. 결론에 이르는 논리의 차이일 뿐이기는 하지만, 객관적 법질서상 이익형량 등의 이름으로 연명치료의 중단을 환자 아닌 다른 사람의 의사 내지 결정에 맡긴다는 것은 오히려 중단을 쉽게 허용할 우려가 있으며 아울러 생명의 처분에 대한 기본적 시각의 문제라고 하겠다. 그 밖에 현실적 의사와 추정적 의사 및 가정적 의사의 관계, 의료계약에 대한 위임규정의 적용, 허용요건으로서 환자 자신이 아닌 가족의 동의 등 논쟁점들이 많지만 지면관계상 이만 줄인다. Ⅳ. 결론 다수의견에 따라 ‘사망임박’이란 요소가 포함된 요건인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다고 인정되어 인공호흡기가 제거된 환자가 자기호흡으로 연명하고 있음을 놓고, 일견 당황해 하는 주변의 모습은 모두 위 ‘사망임박’이란 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곧 사망할 줄 알았던 환자가 자기호흡을 통해 연명하고 있는 모습에 대하여 우리가 느낄 것은, 생명현상에 대한 경외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판단의 잘못이 이야기되고 있다. 호흡기를 단 의료진의 판단, 제거를 신청한 자녀들의 판단, 연명치료 중단요건의 충족에 대한 법원의 판단 등. 이들을 둘러싼 문제제기, 즉 안달아도 될 호흡기를 달았다고 책임을 주장하는 모습, 곧 돌아가실 줄 알고 제거를 신청한 자녀들과 판결에 따라 제거를 실시한 의료진의 어색한 느낌, ‘사망임박’이란 티로 인하여 판결에 가해지는 설왕설래 등 모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는 방향을 제대로 잡아서 남은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환자의 상태가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며, 환자의 의사가 기계에 의존한 연명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의사를 존중하여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내지 합의는 각종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문제의 ‘사망임박’이란 티를 제외하면 이 대원칙에 따른 것이 이번 대법원 판결의 태도이다. 남은 논제 두 가지는 우선 전문가의 영역이라 하겠다. 먼저 연명치료 중단의 객관적 요건인 ‘환자의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는 방법 내지 절차의 문제, 이는 의학 전문가의 몫이다. 다음으로 존엄사의 주관적 요건인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객관적 요건을 구비한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현실적 의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환자의 의사를 어떻게 추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선 사전의사(living will) 제도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가 이제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과제이다. 사망으로 효력이 비로소 나타나는 유언의 법리를 사전의사에 적용할 수는 없으므로, 관련 제도 없는 사전의사는 역시 추정의 근거일 뿐이다. 위 제1 반대의견도 우려한 추정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논의가 필요한 단계이다. 그리고 법원 판단의 ‘신중’과 ‘신속’을 모두 도모하고자 제시된 법적 절차에 관한 위 별개의견의 제도화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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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년 8월 24일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신동진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층
발행일자
1999년 12월 1일
전화번호
02-347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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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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