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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증권상 정당한 소지인 관련 운송물 불법인도사건
I. 사실관계 한국의 피고 갑(매수인)은 을(매도인)로부터 석탄을 구입하고(제1계약), 을은 이행을 위해 다시 E로부터 석탄을 구입하게 되었다(제2계약). E는 해외에 있는 원고와 매매계약을 최종적으로 체결했다(제3계약). 갑은 운송을 위하여 K와 운송계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K는 원고로부터 석탄을 선박에 실었다. 운송인인 K는 선하증권을 발급하게 되는데, 원고가 처음 이를 수령하여 가지고 있었다. 선하증권에는 송하인란에 “을을 대리한 E”로 되어있다. 석탄이 한국에 도착하자 피고 갑은 선하증권의 상환 없이 K로부터 운송물을 수령해갔다. 매매대금은 을이 E에게 주었다. 잔금을 받지 못한 원고는 손해배상청구를 매수인 갑과 운송인 K에게 제기했다. 원고는 자신이 실질적인 소유자이자 송하인이고 제3매매계약에서 E에 대한 대금 지급을 담보 받기 위하여 선하증권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선하증권에 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피고는 이 화물의 송하인은 을인데 원고는 을의 배서 없는 선하증권을 소지한 자이므로 정당한 소지인이 아니므로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급심은 송하인은 원고가 아니라 을이라고 확정하면서 원고가 송하인으로서 선하증권을 소지했다는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원고는 E로부터 대금을 수령할 필요가 있었고, 송하인의 대리인인 E는 운송인과 상의하여 선하증권의 발행을 원고에게 해주라고 한 것으로 보아, 담보의 목적상 정당한 권리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II. 대법원의 판단 1. 선하증권에 대한 정당한 권리자가 되는 방법 “운송인이 송하인에게 선하증권을 발행·교부하는 경우 송하인은 선하증권 최초의 정당한 소지인이 되고, 그로부터 배서의 연속이나 그 밖에 다른 증거방법에 의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음을 증명하는 자는 그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 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70064 판결 등 참조). 이때 그 소지인이 담보의 목적으로 선하증권을 취득하였다고 하더라도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므로(대법원 1997. 4. 11. 선고 96다42246 판결 등 참조), 송하인으로부터 담보의 목적으로 선하증권을 취득한 자는 그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에 화체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송하인과의 법률관계, 선하증권의 문언 등에 따라 송하인을 대신하여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을 교부받을 권한이 있는 자가 선하증권에 관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경우에도 위와 같은 법리가 동일하게 적용되고, 그로부터 담보의 목적으로 선하증권을 취득한 자도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 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2. 선하증권과 상환하지않은 운송인의 책임 “한편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운송물을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인도함으로써 운송물에 관한 선하증권 소지인의 권리를 침해하였을 때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고(대법원 2001. 4. 10. 선고 2000다46795 판결 등 참조), 이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선하증권에 화체되어 그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이전된다(대법원 1992. 2. 14. 선고 91다4249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은 선하증권과의 상환 없이 운송물이 인도됨으로써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 운송인 또는 운송인과 함께 그와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3. 사안의 경우 원심은, 을에게 이 사건 각 석탄을 매도한 E는 매매대금을 지급받기 위한 수단으로 선하증권을 교부받기로 되어있었고, 이를 위해 선하증권의 문언에 송하인을 대신한다고 표시된 것이므로 이 선하증권을 교부받을 권한이 있는 자로서 그 정당한 소지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사건 각 석탄의 소유자로서 E에게 위 석탄을 매도한 원고가 그 매매대금을 지급받기 위한 담보로 선하증권을 취득한 이상 원고도 그 정당한 소지인에 해당하므로, 위 선하증권이 무단으로 인도됨으로써 성립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을로부터 석탄을 매수한 피고로서는 선하증권을 교부받은 다음 그와 상환하는 방법으로 석탄을 인도받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그와 같은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운송인으로부터 석탄을 인도받아감으로써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의 권리를 침해하였으므로 피고는 운송인과 함께 원고에게 공동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 원심의 판단에 선하증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상고를 기각한다. III. 의견 1. 선하증권의 기능 선하증권은 운송계약을 증명하는 기능을 한다. 개품운송에는 특별하게 운송계약서가 발행되지 않는다. 선하증권의 내용이 운송계약을 대신하는 기능을 한다. 선하증권은 운송물에 대한 수령증으로서 기능을 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운송물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기능이다. 이를 소지하면 소유자와 유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선하증권은 상환성이 있기 때문에 소지하고 있는 사실이 수하인으로 하여금 대금을 지급할 것을 강요하게 되어 담보로서의 성질도 가진다. 운송인은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한다. 선하증권이 발행되면 소지인이 수하인이 되고 운송인은 선하증권소지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선하증권은 송하인에게서부터 수하인에게로 인도된다. 2. 선하증권상의 송하인-CIF의 경우 송하인은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된다. CIF 계약에서는 매도인이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된다. 매도인과 선적인이 일치한다. 선하증권의 송하인란에는 매도인이면서 선적인이 기재된다. 운송인은 이런 선하증권을 매도인에게 넘겨준다. 선하증권을 손에 넣은 매도인은 이를 화환 신용장과 함께 은행에 제시하고 대금을 매수인으로부터 수령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선하증권은 운송물이 화체된 것으로 운송물인도청구권이 표창되어있고 이와 상환하여서만 운송물을 운송인이 소지인에게 넘기도록 되어있다. 운송인은 선하증권을 은행에게 넘겼고 그 대신 수하인이 지급할 대금을 은행으로부터 수령한다. 은행은 수하인이 대금을 가지고 올 것으로 기대한다. 만약 나타나지 않으면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해서 운송물을 자신이 찾아오게 된다. 이렇게 선하증권은 담보로서 기능한다. 3. 선하증권상의 송하인-FOB의 경우 FOB 계약에서는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송하인은 매수인이 된다. 운송물을 선적한 자는 FOB 계약에서는 매도인이 된다. 송하인과 선적인이 분리된다. 이 경우에도 선하증권을 매도인이 수중에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는 상품의 대금을 매수인으로부터 수령할 수 있다. 선하증권의 상환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1) 송하인이 매수인이므로 송하인란에 매수인을 적고, 매수인이 이를 수령하여 매도인에게 배서양도하는 방법이 있다. (2) 송하인란에 매도인을 적는 방법이다. 매도인에게 처음부터 선하증권이 발급되게 하는 것이다. (3) 송하인란에는 매수인을 적고, 실제로 수령은 매도인이 하게 하는 것이다. (1)의 방법은 정상적인 방법이다. (2)는 송하인은 매수인임에도 불구하고 매도인이 적히는 것은 맞지 않지만, 실무에서 흔히 보는 예이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매도인은 송하인인 매수인의 대리인의 지위에 있다고 보았다. (1)의 경우 매도인은 위 CIF의 경우와 같이 선하증권을 은행에 제시하고 대금을 받게 된다. (2)의 경우는 선하증권의 첫 소지인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양도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서양도가 필요 없다. (3)의 경우는 송하인은 매수인이 되어있는데 은행에 선하증권을 들고 온 사람은 매도인이 되어서 문제가 발생한다. 배서양도가 안되어있다면, 매도인은 자신이 선하증권의 권리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4. 선하증권관련 대리권의 행사 선하증권은 운송물을 선적한 다음 선장이 발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선장은 선박소유자 혹은 운송인(용선자)의 대리인이다. 임의대리인으로 선박소유자나 운송인으로부터 지정을 받게 되고, 그는 법정 된 범위의 대리권을 가진다. 재판상 재판 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 재판 외의 행위에는 법률행위뿐만 아니라 선하증권의 발급과 같은 사실행위도 포함된다. 현실적으로 선박이 떠난 다음에야 선적된 화물량 등이 확정되므로 선장은 선하증권에 서명할 권한을 선박대리점에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복대리가 되는 것이다. 선하증권을 건네줄 당사자를 택할 대리권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5. 사안의 경우 (1) 송하인적격 이 사안은 FOB 계약이다. 선하증권에 송하인란에 기재된 것은 “매도인의 대리인 E”라고 적혀있었다. 위의 예에서 (2)를 택한 것이다. 그러면서 선하증권의 발급은 E에게 석탄을 제공한 자인 원고에게 된 것이다. 지시식 선하증권이기 때문에 E가 배서하고 서명하여 원고에게 선하증권이 이전되었어야한다. 송하인으로부터 원고에게 본 선하증권을 넘긴다는 내용의 배서를 받지 않았으니까 원고는 효력이 없는 선하증권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의문이 생긴다. (2) 적법한 선하증권 소지인인가? 대법원은 유통선하증권이라도 반드시 배서양도가 아니라도 달리 실질적으로 권리를 양도받았음이 입증된다면 충분하다고 보았다(2003. 1. 10. 선고 2000다70064 판결). 1992년 피배서인의 이름이 없는 약식배서도 유효한 배서라고 대법원은 보았다. 본 판결에서 FOB 계약임에도 왜 수출자(매도인)가 송하인란에 기재되었는지는 다투지않았다. 다만, 송하인으로 기재된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송인이 선하증권을 곧바로 원고(송하인에게 석탄을 매각한 자)에게 발급해도 수령자는 정당한 소지인이 되는지를 보았다. 원고는 송하인들에게 운송물을 제공할 의무가 있고 대금확보를 위해서 선하증권이 필요한 자였고, 당사자들이 선하증권을 원고에게 건네줄 합의를 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비록 배서양도가 송하인으로부터 없었지만 정당하게 선하증권을 소지할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3) 대리권 송하인의 대리인 자격을 가진 E가 원고에게 선하증권을 넘기는 합의에 관여되었다. 이 선하증권의 권리행사와 관련 그가 송하인과 같은 권한이 있는지? 원매도인에게 선하증권을 발급해줄 것을 운송인과 합의할 권한이 있다고 보았다. 하급심에서 다루어졌고 대법원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이다. (4) 선하증권의 상환성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그 상환성 때문에 운송인은 반드시 선하증권과 상환하여 운송물을 넘겨야 한다. 선장이나 대리점은 매수인(수입자)이니까 운송물의 인도를 요구하면 그자가 소유자이니까 덜컥 운송물을 내어준다. 운송계약의 뒤에는 항상 매매계약이 있다. 수출자는 매매대금을 받기 위해 선하증권을 발급받아 담보로 가지고 있다. 그냥 운송물을 내어주면 매도인은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대금을 납부하고 선하증권을 찾아가기를 소지인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이를 확인해야 한다. (5) 요약 및 결론 FOB계약에서 송하인은 수입자가 된다. 그러나, 실무상 통상 수출자가 송하인난에 적힌다. 대법원은 이 때 수출자는 수입자의 대리인의 지위에 있다고 한다. 수출자에게 운송물을 제공한 자가 바로 선하증권을 소지한다고 해도 정당한 소지인이 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대법원은 소지할 이유가 충분하다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매도인으로서 대금수령확보를 위하여 선하증권을 담보로 소지하고 있을 필요성이 있다는 점, 당사자들이 선하증권을 그에게 발급해주기로 했다는 약정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반드시 배서양도가 아니라도 적법한 소지인이 될 수 있고, 운송계약에서 송하인이 아니어도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첫 수령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준 점에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통상 선하증권관련 운송물의 불법인도 사건은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창고업자나 선박대리인의 과실이 개입된 것이지만, 이 사건은 수하인 자체가 불법을 저지른 사안인 점에서 특이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선하증권을 상환하지 않은 운송인과 수하인은 정당한 선하증권소지인에게 공동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 주의해야할 사항이다. 이 사안은 신용장이 개입되지않은 거래이다. 만약 신용장이 발행되었다면, 대금지급의무자가 명확하게 기재되었을 것이다. 수출자 혹은 E는 대금을 수입자로부터 받는 구조하에서 선하증사권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본 사례와 같이 운송계약 선하증권을 가지고 원 수출자(매도인)인 원고가 대금을 수령하는 구도는 만들기 어렵다고 보인다. 김인현 교수(고려대 로스쿨)
운송
선하증권
운송물
김인현 교수(고려대 로스쿨)
2023-11-19
금융·보험
민사일반
마이너스 통장에의 착오 송금에서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상대방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1. 원고가 2014년 9월에 A가 피고 은행에 그의 명의로 개설한 예금계좌로 3000여만 원을 이체송금하였다. 그 계좌는 통상 ‘마이너스 통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잔고가 마이너스인 경우에는 은행이 그 상당액을 자동적으로 대출한 것으로 하되(이른바 ‘종합통장 자동대출’) 계좌에의 입금이 있으면 이로써 그 대출금에 충당하기로 미리 약정되어 있었다. 위 이체 당시 계좌의 잔고는 마이너스 8400여만 원이었다. 2. 그런데 원고는 B에게 금전을 지급할 의사이었고 A에 대하여는 그 지급의 법적 원인 및 의사가 없음에도 착오로 행하여졌다. 사실 A는 동년 3월에 B와 이혼하면서 자신의 사업을 B에게 양도하였고 그때부터 B는 같은 내용의 사업을 운영하면서 한편 그 상호도 바꿨다. 그리하여 원고는 물품대금으로 B에게 지급할 금전을 위와 같이 A의 계좌에 이체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원고는 다음날 피고에게 위의 이유를 들어 금전의 반환을 구하였으나 피고는 이를 거부하였다. 3. 원고는 이 사건 소송에서 피고에 대하여 위 이체된 금전의 반환을 부당이득을 이유로 청구하였다. 제1심(수원지법 평택지원 2015가단6215 판결)은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항소심(수원지법 2016나50495 판결)도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판결 취지] “종합통장 자동대출에서는 은행이 대출약정에서 정하여진 한도로 채무자의 약정계좌로 신용을 공여한 후 채무자가 잔고를 초과하여 약정계좌에서 금원을 인출하는 경우 잔고를 초과한 금원 부분에 한하여 자동적으로 대출이 실행되고 그 약정계좌에 다시 금원을 입금하는 경우 그만큼 대출채무가 감소하게 된다(대법원 2015. 3. 12. 선고 2013다207972 판결 등 참조). 종합통장 자동대출의 약정계좌가 예금거래기본약관의 적용을 받는 예금계좌인 경우에 그 예금계좌로 송금의뢰인이 자금이체를 한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이 수취은행에 대하여 위 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다만 약정계좌의 잔고가 마이너스로 유지되는 상태, 즉 대출채무가 있는 상태에서 약정계좌로 자금이 이체되면, 그 금원에 대해 수취인의 예금채권이 성립됨과 동시에 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의 대출약정에 따라 수취은행의 대출채권과 상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결과 수취인은 대출채무가 감소하는 이익을 얻게 되므로, 설령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없더라도,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이체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될 뿐이고, 수취인과의 적법한 대출거래약정에 따라 대출채권의 만족을 얻은 수취은행에 대하여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한다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송금한 이 사건 금원은 설령 착오송금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관계없이 A 명의의 종합통장 자동대출의 약정계좌인 이 사건 계좌가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입금됨으로써 종합통장자동대출에서 실행된 A의 대출채무가 감소하게 되었으므로, 이로 인해 피고가 부당한 이득을 취득한 것이 없다고 본 원심판결은 정당하다.” 은행은 단지 송금의뢰자가 행하는 금전 지급의 ‘통로’ 내지 ‘수단’일뿐이고 그 상대방이라고 할 수 없고, 그의 법적 지위를 성질결정하자면 민법 제391조에서 정하는 ‘이행보조자(수령보조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급된 금전의 반환이라는 급부의 원상회복이 문제 되는 법적 장면에서 그는 급부자의 급부 반환청구의 상대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대상 판결이 비록 이른바 마이너스 통장에 입금된 금전의 반환청구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원고의 이 사건 이체 송금으로 인한 급부 관계는 피고 은행이 아니라 A와의 사이에서 성립한 것이므로, 그 급부의 원인이 없음을 이유로 하는 반환청구도 그를 상대로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나고, 이체된 금전의 그 후의 운명(채권채무의 성립, 자동적 상계 등)은 애초 이를 문제 삼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평석] 1. 필자는 이번 대법원판결(이하 ‘대상판결’)의 결론에 찬성한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하여는 쉽사리 수긍할 수 없다. 2. 은행 계좌에 ‘착오로’(이는 대체로 비채변제에 관한 민법 제742조의 적용 또는 유추에 기하여 반환청구가 배제되는 경우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체송금이 이루어진 사안유형에서 송금의뢰인이 부당이득을 이유로 그 반환을 청구할 권리를 가지는 상대방이 은행인가, 아니면 그 송금의 ‘수취인’(금융실명제 이후에는 그야말로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계좌명의인, 즉 예금주)인가의 법문제에 대하여는 2007년 이래로 판례의 태도가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다. 은행이 아니라 수취인이라는 것이다. 지도적 선례는 대상판결도 인용하고 있는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7다51239판결(대법원판례집 55권 2집, 360면)이다(그 전에 이미 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5다59673판결이 결국 같은 뜻을 판시하고 있었다). 그 후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판례집 66권 형사편, 647면; 공보 하권, 1801면)을 거쳐 최근의 대법원 2019. 9. 26. 선고 2017다51504 판결(법고을)에 이르기까지 법고을에 '따름판례'로 인용된 것만을 찾아보더라도 9개의 대법원판결이 같은 취지를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예를 들면 독일에서도(이에 대하여는 우선 민법주해[XVII](2005), 206면 이하(양창수 집필) 참조), 일본에서도(무엇보다도 最高裁 1996(平成 8). 4. 26. 판결(民集 50권 5호, 1267면), 그리고 森田宏樹, “振込取引の法的構造 —「誤振込」事例の再検討”, 中田裕康 등 編, 金融取引と民法法理(2000), 123면 이하 등 참조), 판례 및 학설상으로 두루 지지되고 있다. 3. 그런데 이들 대법원의 재판례는 예외 없이 그 판결이유 중에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이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는 것, 즉 은행은 그에 상응하는 예금채무를 부담한다는 것을 내세운다. 그리하여 은행은 이익을 얻은 것이 없으므로 은행에 대하여는 송금의뢰인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에서와 같은 이른바 ‘마이너스통장’, 즉 계좌 잔고에 전혀 예금이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당해 계좌에 입금된 것이 있으면 이를 당연히 그 부족액에 충당하게 되는 통장에 있어서는 과연 그 입금으로 애초 수취인이 은행에 대하여 무슨 예금채권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는 게 과연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이러한 의문에 대응하기 위하여 대상판결은 앞서 인용한 ‘판결 취지’에서 보듯이 먼 길을 돌아서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마이너스통장에서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면 은행은 자동적으로 대출을 실행한 것이 되어 예금주에 대하여 대출채권을 가지게 된다. 둘째, 그 상태에서 입금이 있으면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수취인은 은행에 대하여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셋째, 이 두 개의 대립하는 채권은 “수취인과 은행 사이의 대출약정에 따라” 상계로 소멸한다. 넷째, 이로써 수취인은 대출채무가 감소하는 이익을 얻는다. 이로써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한편 은행은 수취인과의 적법한 대출거래약정에 따라 대출채권의 만족을 얻은 것이어서 그에 대하여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한다고 할 수 없다. 4. 그러나 은행 계좌에의 착오 송금의 사안유형에서 은행이 아니라 수취인이 송금의뢰인이 취득하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상대방이 된다고 하여야 하는 이유를 애초 예금채권의 발생 여부 또는 그 귀속에서 찾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송금의뢰인은 일정한 목적으로 ―예를 들면 채무의 이행을 위하여 또는 대여나 증여의 목적으로(causa solvendi, credendi, donandi. 이 셋이 전통적으로 어떠한 급부의 원인이다)― 금전을 인도(‘지급’)하였지만 결국 지급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는 것, 그것이 부당이득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정이다(이는 이른바 과다지급의 경우에도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하에서는 이 유형은 따로 논의하지 않는다). 거기서 은행은 단지 송금의뢰자가 행하는 금전 지급의 ‘통로’ 내지 ‘수단’일 뿐이고 그 상대방이라고 할 수 없고, 그의 법적 지위를 성질결정하자면 민법 제391조에서 정하는 ‘이행보조자(수령보조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급된 금전의 반환이라는 급부의 원상회복이 문제되는 법적 장면에서 그는 급부자의 급부 반환청구의 상대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은행 계좌에의 이체를 통한 금전 지급이 적법한 것으로 효력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계좌 번호를 일반적으로 또는 특정한 제3자에게 개시(開示)하는 것에 의하여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 지급의 당사자 사이에 합의된 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판단 기준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이익형량은 이 사건의 사안과 유사한 이른바 ‘삼각관계에서의 급부부당이득’에 관한 지도적 선례인 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1다46730판결(대법원판례집 51권 2집, 375면)(앞에서 든 대법원 2007. 11. 29. 판결과 함께 이들이 다름아닌 '대법원판례집'에 수록된 것은 물론 우연이 아니다)에서 적절하게 제시된 바 있다(자기 행위로 인한 위험의 자기 부담 및 각자의 계약상 항변사유의 관철 등). 따라서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기로 한다. 5. 앞의 지도적 선례 대법원 2007. 11. 29. 판결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그러한 취지가 주장되었다. 즉 착오 송금의 부당이득법 처리에서는 그 이유를 수취인의 예금채권의 성립 등을 들어 은행에는 이익이 없다는 것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송금 의뢰로 인한 급부관계는 송금의뢰인와 수취인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급부의 원인 결여로 인한 부당이득(이른바 급부부당이득)도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만 성립한다”는 것이다(양창수, 일반부당이득법의 연구, 1987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224면 이하; 김형석, “지급지시·급부관계·부당이득”, 서울대 법학 47권 3호(2006), 308면 이하. 위 2007년 판결에 대하여 윤진수, “2007년 주요 민법판례 회고”, 서울대 법학 49권 1호(2008), 379면). 이에 따른다면, 대상판결이 비록 이른바 마이너스통장에 입금된 금전의 반환청구에 관한 것이었다고 해도, “원고의 이 사건 이체송금으로 인한 급부관계는 피고 은행이 아니라 A와의 사이에서 성립한 것이므로, 그 급부의 원인이 없음을 이유로 하는 반환청구도 그를 상대로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나고, 이체된 금전의 그 후의 운명(채권채무의 성립, 자동적 상계 등)은 애초 이를 문제 삼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양창수 전 대법관(한양대 로스쿨 석좌교수)
마이너스통장
착오송금
부당이득반환청구
양창수 전 대법관(한양대 로스쿨 석좌교수)
2022-08-25
노동·근로
민사일반
사내하도급과 근로자파견의 구별
Ⅰ. 대상판결의 내용 1. 사실관계 피고는 자동차용 엔진을 생산하여 완성자동차 회사에 납품하는 회사이다. 원고들은 피고와 자동차용 엔진 조립 업무에 관한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 피고의 평택 1공장 및 2공장에서 자동차용 엔진 조립 등 업무를 담당한 근로자들이다. 원고들은 피고와 사내협력업체 사이에 체결된 도급계약의 실질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라 한다)'상의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는데, 원고들이 행한 업무는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사업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이고, 피고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거나 근로자파견사업 허가를 받지 않은 사내협력업체로부터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은 이상 피고가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로서 원고들을 직접 고용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1심은 원고들 청구를 전부 인용하였으며, 원심은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피고는 상고를 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① 피고가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면서, ② 이들을 자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시켰다고 보이고, ③ 사내협력업체는 그 소속 근로자들의 전반적인 노무관리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며, ④ 도급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었거나 그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⑤ 사내협력업체가 이 사건 도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원심 판단을 수긍하였다. Ⅱ. 평석 1. 근로자파견의 의의와 그 판단기준의 모호성 파견법 제2조 제1호에 의하면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은 사용사업주가 근로자파견 대상 업무에 해당하는 아니하는 업무에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거나, 객관적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2년을 초과하여 계속해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등 다섯 가지 사례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직접고용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를 상대로 고용 의사표시를 갈음하는 판결을 구할 사법상의 권리가 있고, 판결이 확정되면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에 직접 고용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견해이다(대법 2016. 7. 22. 선고 2014다222794 판결 등 참조).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법률효과(사실상 직접고용관계의 강제)를 고려하면 파견법 제2조 제1호의 근로자파견 개념은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법률에 의한 근로관계 성립의 강제 또는 사용자의 일방적 교체는 당사자의 사적자치, 계약자유의 원칙이라는 헌법상의 요청과 조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계약자유에 대한 침해는 파견근로자의 보호 필요성이 그 이상으로 인정되어야만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 대법원의 판결 내용에는 이 점에 대한 고려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파견법은 근로자파견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대법원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와 제3자인 원청 사이에 직접 고용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한 근로자파견의 성립요건과 그 판단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대법원은 그 판단기준으로 다섯 가지 요소를 병렬적으로 나열할 뿐, 각 요소가 실제로 근로자파견 판단구조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각 요소의 상호관계 및 개별 요소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무엇인지는 침묵하고 있다. 특히 구체적 검토가 필요한 쟁점은 다음과 같다. 수급인은 언제나 그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어야 하고, 도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원청이 '부분적으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를 지휘·명령하는 경우에까지 파견법의 적용이 확대될 수 있는가? 원청의 지시가 계약의 목적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근로자를 상대로 노무제공의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인지 나누어 검토하고 있는가? 2. 파견법의 취지와 도급계약의 목적 파견법은 '사용자'로서 신뢰도 낮은 협력업체에 고용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원청의 직접고용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다. 물론 전문성·기술성이 없거나 독립적인 사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지 않은 협력업체는 근로자의 고용안정이나 근로조건 보호에 미흡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같은 업무를 원청 소속 근로자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혼재되어 공동으로 수행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특정 업무를 분리시켜 협력업체에 발주하고 그 결과를 수취하는 도급계약이 다수라고 할 수 있다. 업무의 성격상 사업설비와 부품 등을 원청이 직접 제공하고 협력업체가 이를 완성하여 납품하는 방식도 얼마든지 도급계약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원청이 마련한 사업설비와 부품을 이용하여 원청의 사업장에서 도급업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도급계약이 부인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협력업체가 전문성·기술성이 있거나 독자적인 사업조직을 갖추고 있다면 사실상 도급계약의 실질을 가진 것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전문성·기술성이 부족하거나 독립적인 사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도급계약관계가 쉽게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3. 사용사업주에 의한 지휘·명령권의 독점 원청과 협력업체가 도급계약 또는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하고 협력업체가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근로자를 이행보조자로 투입하였다면, 그 근로자가 고용주인 협력업체의 통제를 받으며 근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원청의 지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도급업무의 개별적 특성이나 사내하도급의 성격을 감안하면 협력업체가 도급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원청의 개입이나 지시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를 통해 불량률을 낮추고 작업속도를 적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도급계약의 목적 달성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원청이 협력업체의 노무수행과정에 개입할 수 있고, 또한 어느 단계의 개입부터 근로자에 대하여 사용사업주로서의 지위에 서게 되는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직접고용의무의 발생 등 법률효과를 고려하면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사용사업주의 사업조직에 전적으로 편입되어 오로지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하에서만 근로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분적으로 원청의 지시나 개입 또는 지휘·명령이 있다고 해서 근로자파견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파견사업주는 자신이 직접 이행보조자를 이끌고 사용사업주가 요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주체가 아니다. 이는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의 개념을 벗어나는 것이다. 원심과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4. 사용자의 지휘·명령권 행사 원청의 지휘·명령 또는 지시는 그 성격상 두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 그 하나는 도급계약의 당사자 사이에 합의된 계약의 목적을 좀더 구체화하는 것으로서 이를 계약목적을 구체화하는 도급인의 지시권(gegenstandsbezogene Anwesiungen)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근로자의 근로제공의무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노동법상의 지휘·명령권, 즉 직접 근로자에 대한 지시권(personenbezogene Weisungen)이다. 당연히 양자는 구별되어야 한다. 원청은 도급인의 지시권을 행사하여 도급계약의 목적인 급부의 내용을 세밀하게 정할 수 있다. 도급인의 지시가 원청과 협력업체가 합의한 계약목적의 구체화에 관련된 것이면 노동법적 관련성이 약화된다. 이 사건에서 원청이 작성한 작업표준서, 중점관리표, 작업공정 모니터 또는 부품조견표에 따라 조립공정에 투입할 부품 및 조립방법을 정하게 되는 바, 원심과 대법원은 이를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지휘·명령이라고 보고 있으나, 오히려 원청과 협력업체 간에 도급계약의 목적을 구체화하는 도급인의 지시로 볼 여지도 있으므로 좀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판단이 필요했다. 5. 맺음말 파견법의 법률효과를 고려하면 근로자파견 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헌법상의 요청에 부합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애초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서 같은 업무를 원청 소속 근로자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공동으로 작업한 사례에 대하여 근로자파견을 인정한 후 이른바 간접공정업무나, 비제조 업무에 대해서도 근로자파견을 인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근로자파견과 그밖의 법률관계를 구별하기 위해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기준이 지나치게 넓게 형성되어 있는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다수의 협력업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파견법은 이와 같은 기업의 대응이 명백히 파견법을 회피하기 위한 것인 때에 한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한편, 반복되는 불법파견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국제적 추세에 발맞춰 파견대상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입법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박지순 교수 (고려대 로스쿨)
현대자동차
근로자
파견근로자
직접고용의무
박지순 교수 (고려대 로스쿨)
2021-08-23
소유물 반환의무 위반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법적 성질
1. 사실관계 X의 선대가 사정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 미등기 토지에 관하여 1974년 6월 26일 Y(대한민국) 앞으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되었다가 1988년 1월 22일 B, C 앞으로 각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X는 Y를 상대로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B, C를 상대로 위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하였는데, 법원은 2009년 4월 2일에 Y에 대한 청구는 인용하고, B, C에 대한 청구는 2008년 1월 22일 등기부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하였다. 그러자 X는 다시 Y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심은 Y의 말소등기절차 이행의무는 이행불능이 되었으므로 그 이행불능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고, Y는 X의 B, C에 대한 소송에서 X의 패소판결이 최종 확정된 때인 2009년 4월 30일 당시의 이 사건 토지의 시가 상당액을 지급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래의 판례를 변경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2. 대법원의 판결 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함으로써 물권적 청구권으로서의 방해배청구권의 성질을 가지는 등기말소 등을 청구할 수 없게 되었다면, 위와 같은 청구권의 실현이 객관적으로 불능이 되었다고 파악하여 등기말소 등 의무자에 대하여 그 권리의 이행불능을 이유로 민법 제390조상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진다고 말할 수 없으며, 원고가 불법행위를 이유로 소유권 상실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애초 피고의 등기말소의무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채무불이행책임을 논할 여지는 없다. 대법원 2008년 8월 21일 선고 2007다17161 판결, 대법원 2009년 6월 11일 선고 2008다53638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와 저촉되는 한도에서 변경한다. 이 판결에는 종전 판례를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 별개의견 및 양창수 대법관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있었다. 3. 검토 대상판결에 대하여는 이미 지원림 교수가 법률신문에 다수의견을 지지하는 평석을 발표한 바 있다(법률신문 2012년 6월 11일자). 이 글도 기본적으로는 지원림 교수와 의견을 같이하지만, 다소 방향을 달리하여 위 판결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대상판결에서는 처분권주의 위반이 직접적인 파기사유가 되었지만, 이하에서는 이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가. 종래의 판례 여기서 문제되고 있는 "말소등기의무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청구"에 관하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판례가 있었다. 그 하나는 증여계약의 취소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사건과 같이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계약관계가 없었는데 법률상 무효인 등기가 경료된 경우였다. 앞의 판결들(대법원 2005년 9월 15일 선고 2005다29474 판결 등)의 사실관계는 대체로 유사하다. 원고가 1980년 무렵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의 강박으로 인하여 국가에 부동산을 증여하였다가 나중에 그 증여계약을 취소하였는데, 증여된 부동산이 이미 제3자에게 이전되었고, 원고의 제3자에 대한 등기말소청구는 제3자의 등기부취득시효 완성 또는 제3자가 선의의 제3자라는 이유로 기각되자, 원고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이다. 대법원은 소유권이전등기 말소등기의무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말소등기의무가 이행불능 상태에 돌아간 때로부터 진행되고, 그 손해액은 원칙적으로 그 이행불능이 될 당시의 목적물의 시가 상당액이며, 그 이행불능의 시기는 원고의 제3자에 대한 청구의 패소판결 확정시라고 보았다. 뒤의 판결들은 무권리자가 아무런 근거 없이 원고 소유의 부동산에 관하여 자신 명의로 등기를 마치고 이를 제3자에게 양도하였으며, 원고의 제3자에 대한 등기말소청구는 제3자의 등기부취득시효 완성을 이유로 기각된 경우였다. 대법원은 앞의 판례들을 인용하면서 같은 취지로 판시하였다. 대상판결은 뒤의 판결들은 변경하였으나, 앞의 판결들은 변경하지 않았다. 나. 학설상의 논의 종래 이 문제는 학설상 그다지 많이 논의되지는 않았다. 교과서 가운데에는 물권적 청구권에는 채무불이행 등에 관한 채권법규정이 유추적용된다고 설명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의 주심이었던 양창수 대법관은 이행지체나 이행불능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부인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民法注解 Ⅴ, 188~189면). 그리고 金濟完 교수는 2005다29474 판결에 대한 판례평석에서, 소유권에 기한 등기말소청구권이 불능으로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채무불이행으로서의 이행불능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民事裁判의 諸問題 15, 2006, 102면 이하). 다. 방해제거와 소유물반환 우선 종래의 판례가 인정하고 있는 "말소등기의무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청구"라는 개념은 문제가 있다. 이 사건에서 X의 손해는 소유권 상실로 인한 것인데, X의 소유권 상실은 제3자가 등기부취득시효에 의하여 소유권을 취득한 반사적 효과이고, 말소등기의무가 이행불능된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말소등기의무의 이행불능이 X의 소유권 상실 때문이라고 하여야 한다. 즉 제3자가 소유권을 취득하여 X가 소유권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X로서는 제3자뿐만 아니라 Y에 대하여도 말소등기를 청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X의 말소등기청구는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인데, 방해배제를 갈음하는 전보배상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방해배제로서의 등기말소가 이루어진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소유자가 바로 소유권 상당의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핵심은 제3자의 소유권 취득으로 인하여 Y의 소유물 반환의무가 불능으로 된 경우에 이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별개의견은 소유물반환의무와 방해제거의무에 대하여 다같이 언급하고 있으나, 양자를 명확히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라. 소유물반환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질 다수의견은 이 사건에서 X가 Y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이유로 소유권 상실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겠지만, Y의 등기말소의무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채무불이행책임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별개의견은 소유권 상실이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외에도 물권적 청구권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도 인정될 수 있다고 한다. 독일 민법은 소송계속 후의 점유자나 악의의 점유자는 자신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물건이 손상되거나 멸실하거나 다른 이유로 물권을 반환할 수 없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손해에 관하여 책임을 지며, 악의의 점유자의 경우에는 지체로 인한 책임도 물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제989조, 제990조). 이러한 점유자의 책임에 관하여 입법자의 의도나 대다수의 학설은 이를 일종의 법정채권관계(gesetzliches Schuldverha˙˙ltnis)로 파악하고 있다. 즉 소송계속 후 또는 악의의 점유자는 소유자에 대하여 보호와 가치유지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우에는 면책가능성이 없는 채무불이행에 관한 법정대리인 및 이행보조자의 행위에 대한 책임 규정(제278조)이 적용된다는 것이다(Staudinger/Gursky, 2006, Vorbem zu §§ 987~993 Rdnr. 37). 그러나 우리 민법의 해석으로서는 역시 이러한 채무불이행 내지 채무불이행에 준하는 관계는 인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별한 관계가 없는 타인의 소유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타인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이 아닌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할 필요는 없고, 불법점유로 소유권을 침해당한 피해자를 다른 불법행위의 피해자보다 더 우대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러한 책임을 인정한다면, 예컨대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고 그 반환을 거부하는 자의 차임 상당 지급의무는 불법행위책임이나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넘어서 반환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채무불이행책임이 될 것이지만, 이와 같이 주장하는 견해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민법 제202조가 규정하는 점유자의 소유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도 종래 불법행위책임으로 해석되고 있었다(金炯錫, 註釋民法 物權 1, 제4판, 380면 등). 참고로 제202조 제1항은 선의 점유자에 대하여 현존이익의 배상책임만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에서 Y가 선의라면 손해 전부의 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유력한 학설은 위 규정이 적용되기 위하여는 점유자는 선의일 뿐만 아니라 과실도 없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梁昌洙, 民法注解 Ⅳ, 404면 등). 마. 소유물반환의무의 이행불능에 따르는 법적 효과 대상판결과 같은 사안에서 손해배상책임의 성질을 불법행위책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채무불이행 유사의 책임으로 볼 것인가는 결과적으로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별개의견은 소유권의 상실과 소유물 반환의무의 이행불능을 달리 볼 경우에는 소유권 상실 시점과 그 이행불능 시점이 달라질 수 있어 소멸시효의 기산점 내지는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이 달라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소유물 반환의무의 이행불능이라는 개념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그것만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을 제3자에 대한 패소 확정시로 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다. 이 점에 관하여는 대상판결이 변경하고 있지 않은, 증여계약이 취소된 경우에 관한 일련의 판례를 살펴본다. 보충의견은 위 판례들을 변경하지 않는 이유로서, 계약 등이 강박 등으로 취소된 경우에는 법률상 원인의 소멸로 인하여 그 '반환'을 구하는 채권적 성질의 원상회복청구권도 인정되고, 위 판례가 물권적 등기말소청구권에 관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별개의견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러한 경우에는 당사자는 소유권에 기한 물권적 청구권뿐만 아니라 소유물 반환과 같은 원상회복을 위한 급부부당이득의 반환청구권이라는 채권적 청구권을 아울러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尹眞秀, 民事裁判의 諸問題 17, 2008, 76~77면 등 참조).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소유물반환의무 위반으로 인한 전보배상이라는 채무불이행책임도 인정될 수 있다. 그렇지만 위 변경되지 않은 판례들도 "말소등기의무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청구"라는 법적 구성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변경된 판례들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수증자가 부담하는 소유물반환의무가 채권적인 의무라고 하더라도, 그 이행불능 시점 내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은 제3자가 소유권을 취득한 시점이지 제3자에 대한 패소판결 확정시로 볼 수는 없다. 위 2005다29474 판결은 대법원 2001. 1. 30. 선고 2000다18196 판결을 인용하고 있고, 위 판결은 타인의 권리매매에 관한 대법원 1973. 3. 13. 선고 72다2207 판결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타인의 권리매매의 경우에는 민법 제570조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시점인 "매도인이 그 권리를 취득하여 매수인에게 이전할 수 없는 때"를 일의적으로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매도인의 진정한 소유자에 대한 패소판결 확정시를 기산점으로 삼는 것도 합리성이 있다. 그러나 계약 취소와 같은 경우에는 제3자가 소유권을 취득하는 때에 소유물 반환의무가 불능인 것으로 확정되는 것이고, 제3자가 소유권을 취득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 그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3자의 소유권 취득 후 계약이 취소된 때에는 金濟完 교수의 주장과 같이 계약취소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金濟完, 위 논문, 116 ~117면). 4. 나가면서 대상판결은 종래 판례가 인정하고 있던, 물권적 청구권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채무불이행으로서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판시만으로는 그러한 법률구성의 차이가 실제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에서 어떠한 차이를 가져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대상판결이 계약 취소의 사례들을 포함하여 이 점을 명백히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2012-08-13
해상 유류화물의 인도시기
Ⅰ. 사실관계 1. 경유수입계약의 체결 및 신용장의 개설 주식회사 P는 2003년 9월경 싱가포르 소재 무역상 N으로부터 경유 5,600㎘를 수입하기로 하는 내용의 수입계약을 체결하고 수입대금의 지급을 위하여 원고에게 신용장 발행을 신청하였고, 원고는 수익자를 N으로 하는 신용장을 개설하여 주었다. N사는 위 매매계약에 따라 2003. 9.24.경 대만의 마이랴오 항에서 J해운이 운항하는 이 사건 유류 운반선 포천헤베호(Fortune Hebe, 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 함)에 경유 4,678.642메트릭톤(이하 ‘이 사건 화물’)을 선적하고 J해운으로부터 수하인이 도이체 방크 아게 싱가포르(이하 ‘도이체 방크’)가 지시하는 자, 통지처가 P사로 된 선하증권(이하 ‘이 사건 선하증권’)을 발행 받았다. 2. 이 사건 화물의 육상 저장탱크 입고 피고는 온산항에서 액체화물에 대한 보세창고업을 영위하는 회사이며 피고와 P사는 2002. 5.1. 부터 2004. 4.30.까지 온산항 탱크 터미널 내에 위치한 피고의7,000㎘짜리 6기를 전용으로 사용하는 액체화물 저장탱크 사용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P사는 피고의 저장탱크를 사용하여 왔다. 이 사건 화물을 적재한 선박은 약 3일 정도 항해를 한 끝에 2003. 9.27. 온산항에 도착하였으며, 2003. 9.29.경 P사의 요청에 의하여 J해운이 이 사건 화물을 피고 소유의 유류화물 저장탱크(이하 ‘이 사건 탱크’)에 입고하였다. 한편, 이 사건 화물보다 이 사건 선하증권이 양하지에 늦게 도착할 것이 명백하였으므로 2003. 9.26.경 P사는 이 사건 선하증권과 상환함이 없이 이 사건 화물을 P사에게 인도하여 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로 인하여 J해운이 부담하게 되는 채무, 손해 등을 면책시키겠다는 내용의 소위 면책각서(Letter of Indemnity, 이하 ‘면책각서’)를 발행하여 주었으며 J해운은 이의없이 이를 수령하였다. 3. 이 사건 화물의 반출 2003. 9.30.부터 2003. 10.9.까지 사이에 피고가 P사의 요청에 따라 이 사건 선하증권의 원본이나 운송인인 J해운의 화물인도지시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P사에게 이 사건 화물을 모두 반출하여 주었다. 4. 신용장 대금의 지급 N사는 2003년 12월경에 이르러서 이 사건 신용장 기재에 따라 도이체 방크 에게 선적서류 일체를 매도하였고 도이체 방크는 이를 원고에게 송부하였으며 원고는 2003. 12.17. 도이체 방크에게 신용장 대금 1,126,421.32 달러를 지급하고 이 사건 선하증권을 취득하였다. 5.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그런데 P사가 이 사건 화물을 인도 받아가 모두 소비한 뒤 도산하여 버리자 원고는 P사로부터 신용장 대금의 상환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원고는 관련 당사자 중 자력이 있는 피고를 상대로 하여금 447,293,228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2006. 8.경 제기하였다. 이 소송에서 J해운은 원고 승계참가인 겸 보조참가인으로 참가 신청을 하였다. Ⅱ.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2006. 12.15. 선고 2004가합74274 판결) 위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는 보세창고사업자로서 운송인인 J해운으로부터 통관 전의 이 사건 화물을 인도받아 보관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우 피고는 J해운의 인도지시가 있거나 선하증권의 제시되기 이전까지는 이를 보관하는 지위에 있는 것이고 J해운은 피고를 통하여 이 사건 화물에 대한 지배(간접점유)를 계속하는 지위에 있는 것이므로, J해운과 피고의 사이에 이 사건 화물에 관하여 묵시적 임치계약이 성립하며 피고는 J해운이 운송인으로서 선하증권 소지인에게 부담하는 이 사건 화물의 인도의무에 관하여 그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서는 것이다”라고 설시하면서, 대법원 2004. 1.27. 선고 2000다63639 판결, 대법원 2004. 5.14 선고 2001다33918 판결을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1심 판결이 적시한 이 두 대법원 판결은 소위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을 확립시킨 것이다. 위 1심 법원은 계속하여 “따라서 피고는 위 임치계약에 따라 J해운 또는 그가 지정하는 자에게 화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고 J해운의 이행보조자로서 선하증권과 상환하여서 화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으므로, 만약 선하증권을 제출하지 아니하는 실수입자가 화물의 인도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피고는 먼저 운송인인 J해운의 동의를 받거나 화물의 인도를 요구하는 자에게 J해운의 화물인도지시서를 받아 오도록 요구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하면서 피고가 이러한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피고는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피고가 항소를 하였다. 한편 J해운의 승계참가신청에 대하여는 각하를 하였다. 이후 J해운은 보조참가인의 자격으로만 참가를 하였다. Ⅲ. 서울고등법원 판결(2008. 3.27. 선고 2007나11837 판결)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 화물이 피고의 주장과 같이 위 영구호스(필자 주 : 선박측에 고정되어 있는 강관부분으로서 선박 내 탱크와 육상탱크로 가는 고무호스를 연결시키는 부분을 말함) 연결점을 지날 때 또는 늦어도 피고의 저장탱크에 입고된 때 P사에 인도된 것으로 본다면 그 시점에 이미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는 성립하는 것이고, 따라서 인도 후에 이 사건 화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게 되는 피고가 운송인인 J해운의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있지도 아니하며 불법행위 이후 피고가 이를 P사에게 반출하여 주었다고 한들 별도로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고[여기까지가 피고의 주장], 반면 원고 승계참가인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화물이 피고의 저장탱크에서 P사에게 반출되는 시점에서 운송인인 J해운으로부터 P사에게 이 사건 화물이 인도된 것이라고 본다면, 피고는 적어도 운송인인 J해운과 사이의 묵시적인 임치계약에 의하여 이 사건 화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임치인인 J해운의 지시나 선하증권과 상환없이 이 사건 화물을 무권리자에게 인도한 것으로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뒷부분은 원고측의 주장]. 그러므로 이 사건 화물이 언제 운송인의 지배를 떠나 P사의 지배 하에 들어갔는지, 즉 그 인도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지가 이 사건의 쟁점이다”라고 법적 쟁점을 우선 명료하게 정리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그와 같은 정리 아래에서 유류화물 운송의 관행상 인도의 시점이 “화물이 선박의 영구호스 연결점”을 지날 때에 인도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관행, 유류화물과 컨테이너 화물의 보관상의 차이 등 제반요소를 들어 이 사건 화물의 인도는 “영구호스 연결점을 지날 때 또는 늦어도 피고의 저장탱크에 입고된 때”라고 판단한 뒤, 그렇다면 피고가 P사에게 선하증권을 상환함이 없이 이 사건 화물을 반출하여 주었다고 하여도 별도로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하여 불법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즉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원고가 상고를 하였다. Ⅳ. 대법원 판결의 요지 1. 이와 같은 약정에 따라 운송인이 유조선 도착 후 갑판 위의 용구호스 연결점을 통하여 수입업자가 미리 확보한 육상의 저장탱크에 연결된 파이프 라인으로 유류화물을 보낸 경우에, 위 약정에 불구하고 운송인이 수입업자와 별도로 육상의 저장탱크를 관리하는 창고업자에게 수입된 유류화물을 임치하였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없는 한 창고업자는 운송인의 유류화물 운송 내지 보관을 위한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유류화물이 위 영구호스 연결점을 지나는 때에 운송인의 점유를 떠나 창고업자를 통하여 수입업자에게 인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4. 10.15. 선고 2004다2137 판결 참조). 2. 이 경우 그 창고업자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운송인의 유류화물 운송 내지 보관을 위한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인이 창고업자에 대하여 인도하는 때에 수입업자에 대한 인도가 종료되어 운송인은 유류화물에 대한 점유를 비롯한 사실상의 지배를 상실하게 되고, 운송인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유류화물에 대한 점유를 하고 있던 선하증권 소지인 역시 유류화물에 관한 사실상의 지배를 잃게 되는 등 운송물에 대한 권리가 침해된다. 따라서 선하증권 소지인이 유류화물의 인도에 동의하였다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는 이상 운송인은 면책각서의효력을 선하증권 소지인에게 주장할 수 없으므로,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없이 수입업자로부터 위임받은 창고업자에게 유류화물을 인도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 유류화물에 대한 지배를 상실하는 등 운송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하는 손해를 입게 되어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할 것이고, 그 이후 창고업자가 임치물인 유류화물을 수입업자에게 출고하면서 선하증권 등을 교부받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임치인인 수입업자와의 사이에 이루어진 임치 약정에 따른 것이므로 그 사정만으로는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한 새로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3. 대법원은 위와 같은 이유를 설시하면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하며,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Ⅴ. 평석 1. 해상화물의 인도시기 화물의 인도란 화물에 대한 사실상 지배의 이전이다(졸고, 국제항공화물인도와 관련된 법률문제, 한국해법학회지 제22권 제1호263면). 이러한 점은 해상화물이나 항공화물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인도시점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은 세 가지가 주목된다. 첫째, 대법원은 인도 시점과 관련하여 “운송인이 수입업자와 별도로 육상의 저장탱크를 관리하는 창고업자에게 수입된 유류화물을 임치하였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없는 한 창고업자는 운송인의 유류화물 운송 내지 보관을 위한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유류화물이 위 영구호스 연결점을 지나는 때에 운송인의 점유를 떠나 창고업자를 통하여 수입업자에게 인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시를 하고 있다. 둘째, 유류화물에 대한 지배와 관련하여 “수입업자로부터 위임받은 창고업자에게 유류화물을 인도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 유류화물에 대한 지배를 상실”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셋째, 창고업자의 불법행위 책임의 성립 가능성에 대하여 “그 이후 [필자 주: 즉, 창고에 인도된 이후] 창고업자가 임치물인 유류화물을 수입업자에게 출고하면서 선하증권 등을 교부받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임치인인 수입업자와의 사이에 이루어진 임치 약정에 따른 것이므로 그 사정만으로는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한 새로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 세 가지의 판시사항은 모두 지극히 타당한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의 사안에 대하여 대법원이 종래 적용하여 오던 소위 “중첩적 임치계약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였다면 보세창고업자인 피고는 운송인인 J해운이나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하여 선하증권을 상환 받고 적법하게 화물을 반출해야 할 계약상 또는 법적인 의무를 지게 되는데, 이를 위반하고 화물을 반출하여 주었으므로 피고는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결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대법원 판결은 피고가 그러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렸는 바, 결론은 물론 위 이유의 측면에서 대법원의 위 판결은 그 이전의 대법원 판결을 광정한 것이라고 본다. 2. 대법원의 판결 이유에서 주목할 판시사항 위 세 가지 판시사항을 가지고 살펴 보면, 첫째의 판시사항은 유류화물에 대하여 인도시기를 화물이 고무 호스를 통하여 육상 탱크로 들어 가기 위하여 선상의 영구호스를 떠나는 순간이라고 판단함으로써 유류화물의 인도시기를 명확히 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보세창고가 수입업자에 의하여 위임을 받았으므로 그 창고로 들어 가게 되면 해상운송인의 점유는 상실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이다. 종래 대법원 판결은 보세창고 설 영인 이 그 화물을 선하증권을 상환하면서 정당하게 인도하는 순간까지 해상운송인은 보세창고 설영인 을 통하여 간접점유를 하는 것이고, 운송인의 화물인도의무는 종료되지 않는 것이라고 이론 구성을 하였었다. 마지막으로 보세창고 설영인 이 임치인의 요청에 따라 화물을 반출한 경우, 비록 선하증권을 상환함이 없이 이를 하였다 하더라도 선하증권의 소지인이나 해상운송인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시한 점이다. 이 사항 역시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그 동안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이 적용된 결과 보세창고 설영인 은 그 동안 선하증권 소지인이나 해상운송인에게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으로 판결이 내려져 왔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내려진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실로 획기적인 전환이다. 3. 중첩적임치계약 이론이 폐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내려진 위 대법원 판결이 종래 적용하여 오던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을 전면적으로 폐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법 형식논리적으로 말한다면 그렇게 단정하기에 이르다. 왜냐하면 이번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도 아니고 마치 대법원의 이 사건 판결이유가 유류화물에 국한하여 적용되는 것과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에 내려진 위 대법원 판결이 종래 적용하여 오던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을 전면적으로 폐지한 것이라고 선언하지 않았어도 앞으로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이 적용될 여지는 없어 졌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은 탄생시부터 문제가 허다하게 많았고, 그로 인하여 왜곡된 판결이 양산되었으며, 왜곡은 또 다른 왜곡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있었는데 졸고, 위 국제항공화물인도와 관련된 법률문제, 263 내지 265면, 졸고, 수입화물의 흐름에 대한 실무적 이해, 국제거래법학회지 제15집 제2호 (2006), 241 내지 244면, 대법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광정할 기회를 기다리다가 위 대법원 판결에 이르러 이러한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을 완전히 폐기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2009-10-29
운송인의 법인격이 부인되면서 포장당책임제한이 배제된 사례
Ⅰ. 事實關係 한국의 을 회사가 선박소유자인 선박을 갑이 정기용선을 하였다.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운송인 갑은 甲板積(운송물을 선박의 갑판하의 안전한 선창이 아니라 갑판위에 적재하는 것)에 대한 약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송물을 갑판에 적재하게 되었고, 이 화물이 파도에 의한 손상을 입게 되었다. 한편, 갑은 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에 회사를 둔 편의치적회사로서 을 회사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다. 원고는 갑이 아니라 을 회사를 피고로 소를 제기하였다. 을 회사는 자신은 단순히 갑의 국내대리점일 뿐으로 손해배상청구는 운송인 갑을 상대로 제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편 상법상 향유하는 포장당책임제한의 이익을 향유하고자 하였다. 원고 화주는 포장당책임제한이 운송인 자신의 무모한 행위가 있으므로 책임제한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2003나481765)은 (1) 피고적격에 대하여 갑 회사는 피고 을 회사가 만든 종이회사로서 동일한 법인격처럼 운영되었고, 회사가 형식상 법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실질상 완전히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 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배후자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쓰이는 경우에는 회사는 물론 배후자에게도 회사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을 회사도 운송계약에 따른 채무를 부담한다고 하였다. (2) 운송인이 갑판적을 한 행위는 상법의 책임제한배제사유가 되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행위에 해당한다. (3) 운송인 갑회사의 대리 및 차장이 갑판적에 대한 결정을 하였고, 비록 차장의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가 실질적으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면 운송인 자신의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 (4) 따라서 운송인인 갑회사의 행위는 회사자신의 무모한 행위로서 상법 제789조의2 제1항 본문에 따라 운송인은 책임제한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을 회사는 대법원에 상고하게 되었다. Ⅱ. 大法院의 判示內容 대법원은 법인격부인여부에 대하여, “원심이 갑은 해상운송에서 운송인의 책임을 부당하게 회피할 목적으로 피고와 영업상 실질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형식상으로만 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소위 paper company)로서 피고와 동일한 법인격처럼 운영되어왔다. 이 사건 운송계약이 외관상 원고와 갑 사이에 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갑의 배후자인 피고는 갑과 별개의 법인격임을 주장하며 이 사건운송계약에 따른 채무가 갑에만 귀속된다고 주장할 수 없고, 피고역시 운송계약에 따른 채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상법 제789조의2의 제1항 단서의 포장당책임제한의 적용이 배제되는지에 대하여, 대법원은 “위 조항의 문언 및 입법연혁에 비추어, 단서에서 말하는 운송인 자신은 운송인 본인을 말하고 운송인의 피용자나 대리인 등의 이행보조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 단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겠으나, 법인 운송인의 경우에 있어, 그 대표기관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만을 법인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면, 법인의 규모가 클수록 운송에 관한 실질적 권한이 하부의 기관으로 이양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 단서조항의 배제사유는 사실상 사문화되고 당해 법인이 책임제한의 이익을 부당하게 향유할 염려가 있다. 따라서 법인의 대표기관뿐 아니라 적어도 법인의 내부적 업무분장에 따라 당해 법원의 관리 업무의 전부 또는 특정 부분에 관하여 대표기관에 갈음하여 사실상 회사의 의사결정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이사회의 구성원 또는 임원이 아니더라도 그의 행위를 운송인인 회사 자신의 행위로 봄이 상당하다. 같은 취지에서 원심이 이 사건 수출화물을 원고와의 합의 없이 임의로 갑판에 선적하도록 지시한 피고의 관리직 담당직원은 대외적으로 대표권을 갖는 갑의 대표기관은 아니더라도 이 사건 운송계약의 체결과 그 이행과정에 있어서 갑의 직무분장에 따라 회사의 의사결정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대표기관에 준하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사건 화물을 갑판에 선적한 행위는 운송인 자신의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조치는 기록에 비추어 정당한 것으로 수긍된다. 따라서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시하였다(판례공보, 2006, 1966면). Ⅲ. 評釋 1. 法人格否認論 영미에서 판례법으로 발전되어온 법인격부인론이 1988년 11월 22일의 대법원판결에서 처음으로 인정될 때의 사안도 편의치적선이 관련되어있다. 편의치적선이란 선박에 국적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자국 국민의 선박소유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지만, 단지 서류상의 연결만 있어도 국가가 자국의 국적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제경쟁에 노출되어있는 선주들이 싼 임금, 저렴한 세금 등을 목적으로 선박을 파나마 등 행정규제가 느슨한 국가에 선박의 국적을 옮겨둔다. 실무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편의 치적된 회사와 배후의 회사(실질 선주)가 동일하다는 점을 밝혀내는 것이다. 원심에서 법인격부인론을 적용하기 위하여 사용된 사실로서는 (i)사무실의 주소가 동일한 점, 직원들의 이메일 주소도 피고를 의미하는 sevenmt.co.kr로 동일하게 사용한 점 (ii)직원들의 월급명세서 및 근로소득원천징수 증명서의 사업자명의도 피고인 점 (iii)피고의 명칭 내지 갑회사의 명의로 된 운임청구서를 사용한 점 (iv)대표자 역시 동일인이라는 점 등이었다. 이는 법인격부인을 위한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2. 責任制限排除事由로서의 甲板積과 無謀한 行爲 해상법에서는 선주와 운송인을 보호하는 제도로서 책임제한제도가 있다. 연혁적인 이유와 함께 운송인의 안정적인 보험부보가 가능하도록 하고 이것이 낮은 운임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 유력하다. 현재의 추세는 이를 폐지하기보다는 책임제한액수를 증액하여 운송인이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게 하면서 책임제한이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유류오염손해배상제도가 좋은 예임). 한편, 운송인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책임을 운송물의 포장 수에 따라 일정한 액수로 제한할 수 있는 제도를 포장당 책임제한제도라고 한다. 그런데 운송인이 고의에 가까운 행위를 하여 운송물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까지 예외적인 책임제한 제도를 인정할 필요는 없다. 상법 제789조의2 제1항 단서는 운송인 자신의 고의 또는 그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책임제한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책임제한배제 여부에서 운송인 ‘자신’과 무모한 행위가 쟁점이 된다. 책임제한이 배제되는 사유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극히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갑판적은 선창이 아니라 갑판위에 적재되어 운송됨으로써 파도와 바람에 노출되어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통상 갑판 하에 운송되는 화물을 화주와의 합의 없이 갑판 상에 선적하게 되면, 손해발생에 대한 인식이 있는 무모한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각국의 판례와 학설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포장당책임제한 제도는 책임제한의 인정으로 얻는 운송인의 이익과 이에 비례한 운임의 인하가 상관관계를 갖도록 구조화되어있다.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책임제한의 배제는 극히 어렵도록 구성되고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장치로서 운송인의 과실은 제외되고 고의에 가까운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운송인은 책임제한을 할 수 없게 하였다. 또한 운송인의 사용인이나 대리인의 무모한 행위는 배제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하였고, 운송인 ‘자신’의 무모한 경우에만 책임제한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되었다(상법의 책임제한제도의 모법이 되는 1976년 선주책임제한조약 및 1968년 헤이그 비스비규칙이 이전의 조약에 비하여 이런 점들이 다른 점이다). 외국의 판례와 학설은 운송인 자신이라고 할 때 자신은 운송인의 분신(alter ego)에 해당하는 자라고 한다. 이는 회사의 임원에 해당하는 자라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원심판결에 의하면 대리와 차장이 갑판 적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다른 의사결정자들이 없는 경우에는 차장이라도 임원과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이 원심과 대법원의 판시내용이다. 이러한 경우에 항상 대표기관을 운송인 자신이라고 한다면 책임제한이 배제되는 경우는 없어 사실상 사문화될 우려가 있다고 대법원은 설시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제한제도의 입법취지가 선주 혹은 운송인은 책임제한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향유하게하면서 책임제한액수는 높여 화주를 보호할 것에 선주 혹은 운송인과 화주의 합의가 이루어져 발전되어 왔고, 따라서 책임제한의 배제는 가능하면 허용되지 않도록 입법화되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운송인의 책임제한배제가 인정된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에서도 이것은 확인된다. 3. 結 본 사안은 법인격부인론과 책임제한배제가 함께 인정된 사안이다. 법인격이 부인되는 회사는 종이회사일 것이므로 경영조직이 느슨할 것이므로 편의치적회사인 운송인의 법인격이 부인되면 운송인의 포장당책임제한권이 부인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운송인 자신으로 인정되는 범위를 일반적으로 차장에까지 확대 적용하여 책임제한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입법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법원도 차장급으로 운송인 자신의 범위를 일반적으로 확대한 것이 아니라, 차장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적어도 법인의 내부적 업무분장에 따라 당해 법원의 관리 업무의 전부 또는 특정 부분에 관하여 대표기관에 갈음하여 사실상 회사의 의사결정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자라는 조건을 붙여서 운송인 자신으로 본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상법상 운송인의 책임제한배제사유는 화주로서는 여전히 입증하기 어려운 사항으로 이해된다.
2007-03-26
FIO 특약과 선상도
1. 사건의 경과 가. 우리나라 수입자 X는 오스트리아 수출자로부터 철제화물을 수입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위 수입자의 의뢰로 신용장개설은행은 수익자를 수출자로 하여 C&F(운임포함조건) FO(하역비 화주부담) 등을 내용으로 하는 취소불능화환신용장을 발행하였다. 나. 원고회사는 위 수출자와 사이에 러시아의 바비노항에서 포항항까지 철제화물을 운송하기로 하는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수하인을 신용장개설은행, 통지처를 수입자 X로 한 선하증권을 발행하여 화물을 포항항까지 운송하였다. 다. 부두운영회사인 피고회사는 수입자 X로부터 하역작업 및 내륙의 자가보세장치장까지 보세운송을 의뢰받고 화물을 하역하여 부두에 일시 야적하였다가 위 수입자로부터 선하증권이나 화물인도지시서 등을 받지 아니하고 화물을 위 수입자의 자가보세장치장까지 보세운송하였고, 수입자가 이를 반출하여 소비하였다. 라. 원고회사는 선하증권을 소지하게 된 신용장개설은행으로부터 화물의 불법반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받아 그 판결금액을 지급한 다음 이 사건에서 피고회사를 상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공동면책에 따른 구상청구를 하였다. 마. 1, 2심 법원 모두 공동불법행위의 성립을 전제로 피고회사의 과실비율에 따른 구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2. 大法院의 판결요지 해상운송에 있어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은 수하인, 즉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함으로써 그 계약상의 의무이행을 다하는 것이 되고, 그와 같은 인도의무의 이행방법 및 시기에 대하여는 당사자 간의 약정으로 이를 정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만약 수하인이 스스로의 비용으로 하역업자를 고용한 다음 운송물을 수령하여 양륙하는 방식(이른바 '선상도')에 따라 인도하기로 약정한 경우에는 수하인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가 운송물을 수령하는 때에 그 인도의무의 이행을 다하는 것이 되고, 이 때 운송인이 선하증권 또는 그에 갈음하는 수하인의 화물선취보증서 등과 상환으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임의로 선하증권상의 통지처에 불과한 실수입업자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로 하여금 양하작업을 하도록 하여 운송물을 인도하였다면 이로써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는 이미 성립하는 것이고,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하역업자가 운송인의 이행보조자 내지 피용자가 된다거나 그 이후 하역업자가 실수입업자에게 운송물을 전달함에 있어서 선하증권 등을 교부받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별도로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3. 평석 가. 문제의 제기 FIO 특약이란 “Free In & Out”의 약어로 일반적으로 항해용선계약에서 용선자가 자체의 비용으로 선적 및 양하작업을 수행하는 조건을 말한다(항해용선계약의 Gencon 표준약관이 대표적이다). 대상사건에서 대법원은 FIO 특약에 의하여 하역업자가 화물을 수령하는 때에 ‘선상도’가 이루어졌다고 하고 있어, FIO 특약과 운송인에 의한 화물인도의무의 이행 또는 그 인도시점의 관련성이 주목되고 있다. 나. FIO 특약의 내용, 그 효력과 운송물인도와의 관련성-대상판결의 문제점 상법 제788조 제1항은 운송인의 운송물의 수령, 선적, 적부, 운송, 보관, 양륙과 인도에 관한 주의의무를 규정하고 상법 제790조 제1항에서 위 제788조의 규정에 반하여 운송인의 의무 또는 책임을 경감 또는 면제하는 당사자간의 특약은 효력이 없다고 하고 있다(선하증권에 관한 국제협약인 헤이그/비스비규칙이나 미국해상운송법도 같은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원의 판례는 없으나 다수의 미국연방항소법원은 미국해상운송법 제3조 제2항에 규정된 운송인의 의무는 위임불가능한(nondelegable) 의무로서 FIO 특약은 그러한 의무를 화주에게 전가하여 운송인의 의무를 면제하는 것으로 같은 조 제8항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한다. 영국의 경우, 최고법원인 귀족원(House of Lords)은 The Jordan II(2005) 사건에서 헤이그/비스비 규칙 제3조 제2항은 운송인이 절대적으로 인수하여야 할 서비스의 범위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운송인이 인수한 서비스의 이행상 주의의무의 기준(“carefully and properly")를 통일적으로 규정하고자 취지의 규정이라는 이유에서 헤이그비스비규칙의 제규정에 반하지 아니하고 유효하다고 보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FIO 특약은 운송인과 송?수하인 사이에 운송용역의 조건이 아니라 그 범위를 한정함에 불과한 것으로 제790조의 규정에 실질적으로 위반되지 아니하여 유효라는 하급심판결들이 있다. 무효설에 의할 경우 FIO 특약은 아무런 법률상 효력이 없고 여전히 운송물의 양륙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운송인이 부담하게 된다면 양륙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법률상 인도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의 판시내용과 같이 운송물이 선창을 떠나 양륙이 개시되는 때에 곧바로 인도가 일어난다고 보게 되면 법률상 인도의무를 이행하려는(또한 인도를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서 양륙의무를 이행하여야 할 법적 이익이 있는) 운송인으로서는 의무이행행위가 곧 불법행위가 되는 불합리한 입장에 처해질 수 있다. 유효설의 경우에도,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용선자 또는 수입자에 의하여 하역작업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운송인은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한 관계에서 여전히 법률상 인도의무를 부담하게 되므로 하역작업이 개시되는 때에 곧바로 인도가 일어난다고 보게 되면 인도를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서 양륙이 선행되어야 할 법적 이익이 박탈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따라서 FIO 특히 양륙 및 인도와 관련되는 FO(Free Out) 계약조건의 구체적 내용을 확정하고 그 효력을 검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사실관계에서 설시한 FO 계약조건의 내용이 비용부담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나아가 의무와 책임까지도 수하인에게 이전한 것인지에 관해 확정되지 아니하고, 또한 운송물의 매매계약 또는 신용장상의 조건을 곧바로 운송계약의 내용으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신용장상에 기재된 C&F FO 조건만을 근거로 “운송물을 하역하는 것은 운송인의 의무가 아니라 수하인의 의무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FIO 특약의 유효성을 당연히 전제한 것으로 판단되나 그 근거를 생략하고 있고 운송물인도와의 관련성에 관한 분석도 찾기 어려워 판결이유의 설득력이 우선 반감되고 추후 유사한 사례에서 선례로서의 지침을 제공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 FIO 계약조건에서의 운송물의 인도시점 (1) 수입화물의 인도시점(=불법행위의 성립시점)에 관한 종래의 판례 태도 모든 수입화물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박으로부터 하역작업을 거쳐 반드시 보세구역에 장치하게 되므로(관세법 제155조 내지 제157조), 해상운송인이 수하인에게 화물을 인도하기까지 하역, 보세장치장 입고, 통관 및 반출 등의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어서 해상운송인이 화물을 인도하고 계약상의 의무를 벗어나는 시기가 언제인가가 논란이 되어 왔다. 대법원은 종래 운송물의 인도시점과 관련하여 화물의 인도는 사법상의 개념으로서 그 화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의 이전”이라는 사실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하여 왔다. 보세구역에 장치되어 있는 화물에 관하여 현실적으로 보세구역의 종류에 따라 관세행정목적상 세관의 감독과 규제의 정도가 다르므로 운송물을 일반보세장치장에 입고하는 경우와 자가보세장치장에 입고하는 경우, 즉 하역된 화물이 누구의 점유하에 들어가는가에 따라 그 인도시기를 달리 보아 왔다. 일반보세장치장에 입고되는 화물은 출고시 운송인의 화물인도지시서등을 제출받는 관행을 근거로 수입자와는 별개로 운송인과 사이에도 중첩적 임치계약이 존재하므로 선하증권상의 통지처(또는 그 지정하역회사)에 의하여 하역되고 창고에 입고된 사실만으로는 화물이 운송인의 지배를 떠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화물의 인도시점은 보세장치장에서 출고된 때로 보고, 선측에서의 하역작업에 의하여 운송물의 점유가 하역회사에게 이전된 때가 아니라고 보았다. 한편, 수하인이 하역업자를 고용하여 운송물을 하역하고 이를 자가보세장치장에 입고한 경우 운송물이 수입자의 이행보조자에 의하여 수령되어 수입자의 보관하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하역업자가 화물을 수령하는 순간(하역시)에 운송물은 수입자의 지배하에 들어가 그 인도가 있었다고 본다. 결국, 대법원은 종래 운송물에 관한 ‘사실상의 지배의 이전’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해 어떤 특정 시점의 당사자의 인식이나 행위가 아니라 사후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양하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이해된다. (2) FIO 특약은 ‘선상도’의 약정인가?-양륙과 인도의 구별 대상판결이 인도의무의 이행방법 및 시기에 대하여는 당사자간의 약정으로 정할 수 있다고 한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판시와 같이 수하인이 운송물을 선상에서 수령하여 ‘양륙’하기로 하는 약정, 즉 FIO 특약이 곧 운송물을 선상에서 ‘인도’하기로 하는 약정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심각한 의문이 있다. 왜냐하면 양륙과 인도가 개념상 구별될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대상판결의 선고 후에도 일관되게 화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가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운송물의 인도 여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거의 확립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설사 FIO 특약에 따라 실수입자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가 양하작업을 완료하였다고 하더라도 화물이 ‘일반보세창고’에 입고된 경우라면 여전히 화물은 운송인의 지배하에 있게 되므로 FIO 특약에 따라 화물이 선상에서 수령되어 양하되었다고 하더라도 양하 당시에 선상에서 인도(‘선상도’)가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대상판결이 ‘수입자에 의한 양륙 이후에도 운송물에 대한 운송인에 의한 사실상의 지배와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즉 화물이 누구의 점유하에 들어가는지와 무관하게 FIO 특약에 의하여 선상에서 양하가 개시되는 시점에 인도가 이루어진다’라는 취지라면 이는 지금까지의 대법원의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의하여 판례를 변경하였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 (3) 대상사건에서 운송물의 인도시점 대상판결은 실수입업자의 의뢰에 따라 하역회사에 의해 양하된 다음 부두에 일시 보관된 다음 보세운송되어 실수입업자의 자가보세장치장으로 입고된 사안이다. 종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화물에 대한 보세운송 신고를 할 수 있는 자는 화주 또는 그 위임을 받은 보세운송업자뿐이므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보세운송 과정 중의 화물은 화주의 사실상의 지배 아래에 있다. 따라서 대상 사건에서 인도시점은 다음의 두 시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첫째, 아무리 늦어도, 보세운송을 위하여 부두에서 반출된 때이거나 둘째, 하역회사가 선상에서 화물을 수령하여 양하를 개시할 때이다. 만약 첫째의 경우라면 하역회사의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할 여지가 있는데, 화물이 언제 운송물이 운송인의 지배를 떠났다고 볼 것이냐에 관한 판단에 달려 있다. 이는 즉, 운송물을 양하하여 부두에 일시보관중인 하역회사와 운송인의 관계가 어떠한지, 즉 하역회사가 운송인을 위하여 운송물을 보관하고 있는 지위에 있는지 여부에 좌우된다. 화주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가 화물을 양하하여 부두에 보관하게 되는 경우라도 운송인과 사이에 임치관계나 보관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운송인은 하역업자를 통하여 운송물을 간접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항항에서 그 화물의 반출시 운송인의 보세운송동의서나 화물인도지시서를 제출받는 부두운영실태나 관행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부두에 보관된 화물에 대한 운송인의 일정한 통제가 이루어져 화물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때 앞서 본 중첩적 임치계약관계 성립의 근거가 갖추어졌다고 볼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소송과정에서 사실조회 등에 의해 입증되어야 할 사실의 문제로 볼 수 있는데, 대상사건의 포항항 제8부두는 보세구역이 아니어서 하역회사의 일반보세창고가 없었고, 하역된 화물은 즉시 다른 곳으로 운송되거나 그대로 적치되어 일시보관된 후 다른 곳으로 운송되기도 하여 왔다는 점에 비추어 위와 같은 관행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대상사건에서 부두에 보관된 화물에 대하여 달리 명시적인 보관위임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이상 하역회사와 운송인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관계도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하역이 개시된 이후에는 화물이 운송인의 지배를 떠나 인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상판결이 “하역회사인 피고가 보세운송을 함에 있어 실수입업자로부터 선하증권등을 교부받는 관행이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그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하역업자는 실수입자의 이행보조자로서 양하시점에 운송인으로부터 운송물을 수령하였을 뿐 원고의 이행보조자 내지 피용자에 해당하지 않다고 본 것은 정당하다. 라. 결론 결론적으로 ‘선상도’가 이루어졌다고 본 대상판결의 구체적 결론은 지지될 수 있으나 판결이유의 설시에 있어서 이론적 근거나 분석이 미흡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대상사건에서 화물은 부두에서의 반출시가 아니라 선상에서의 하역시에 실수입자에게 불법적인 인도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FIO 특약에 따른 약정의 효과라기보다는 운송인이 하역시점에 운송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잃고 운송물의 점유가 실수입업자에게 이전된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적?양하작업의 비용과 책임에 관한 FIO 특약을 ‘인도(선상도)’에 관한 약정으로 등치시켜 FIO 특약이 있으면 하역을 위하여 실수입자의 하역업자가 운송물을 수령하는 때에 곧바로 운송물의 인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단정하는 듯한 설시를 하고 있어 실무상 혼란이 초래될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대상판결이 운송물의 인도시점에 관한 종래 대법원의 견해를 변경하거나 그것과 크게 배치되는 것으로 확대해석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2006-11-06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사건 개요] 1996년 5월 19일 원고는 피고가 소유하는 3층 건물의 1층 방 2칸을 보증금 20,000,000원, 월차임 400,000원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그 임대 목적물인 방 2칸은 반 지하로서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지도 않고 주위 담장이 낮을 뿐만 아니라 대문도 없이 바로 길에 연하여 절도범이 쉽게 침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1996년 6월 15일 새벽 4시에서 5시 50분 사이에 임차인(원고)이 거주하고 있는 방에 절도범이 침입하여 10만원권 자기앞 수표 7매 등 도합 2,000,000원 상당의 금품을 도난당하였다. 또한 임차인이 거주하는 임대 목적물인 방에 대한 차면시설이 불량하여 지나가는 행인들이 수시로 임차인과 임차인의 딸들이 거주하고 있는 방안을 들여다 보곤하여 정신적 고통을 겪는 등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임차인은 임대차 기간 만료 전부터 수 차례 임대인(피고)에게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의사가 없음을 통고한 바 있다. 그러나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계약금 정도의 금원만 제공하면서 방을 비워 주면 그 후에 나머지 보증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임차인은 소액의 금원만 지급받고 방을 임대인에게 명도할 경우,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거주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보증금 전액을 회수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증금 전액을 다 받을 때까지 임대 목적물인 방에 거주하고 있던 중 1997년 11월 30일 또 다시 절도범이 침입하여 수표와 현금 등을 도난 당하였다. 임차인이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임대인은 여전히 임대 목적물에 대한 임대차가 묵시적으로 갱신되었으므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하여 임대기간이 1998년 5월 19일 까지라고 주장하면서 보증금의 반환을 거부해왔다. 이에 임차인은 임대인에 대하여 보증금반환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원심 판결(서울지법 1999. 1. 14. 선고 98나42737) 요지] 피고(임대인)는 임대 목적물(방 2칸)을 원고(임차인)에게 임대하면서 임대인으로서, 임차인이 정상적으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할 안전배려의무에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고의 지배 영역하에 있는 임대목적물에서의 생활에 고통을 느끼고 이주를 원하는 원고에게 임대차계약 기간이 종료되지 아니하였음을 내세우면서 보증금의 반환을 거부하여 원고로 하여금 임대목적물에 강제적으로 거주하여야 하는 등으로 심적인 고통을 주었다 할 것이고, 이로 인하여 원고가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음이 명백하므로 피고는 이러한 원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금전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고, 그 수액은 금 5,000,000원 정도로 봄이 상당하다. [대법원 판결 요지: 원심 파기] 통상의 임대차관계에 있어서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순히 임차인에게 임대목적물을 제공하여 임차인으로 하여금 이를 사용·수익하게 함에 그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임차인의 안전을 배려하여 주거나 도난을 방지하는 등의 보호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임대목적물을 제공하여 그 의무를 이행한 경우 임대목적물은 임차인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어 그 이후에는 임차인의 관리하에 임대목적물의 사용·수익이 이루어지는 것인 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원심 판시와 같은 임차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연구]Ⅰ. 본 판결의 문제점 본 판결의 주된 쟁점은 임대인이 임차인에 대하여 안전배려의무 또는 도난방지 등의 보호의무를 부담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즉, 임대차계약에 의한 임대인의 의무로서 임차인에 대한 보호의무도 인정되는 것인지, 인정된다면 그 내용과 한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임대인이 부담하게 되는 임대목적물의 사용·수익의무에는 임차인의 안전을 배려하거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내용의 임차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즉 보호의무를 부담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가? 과연 임대인은 임대 목적물을 제공하여 임차인이 이를 사용·수익하도록 하면 그 의무를 완전하게 이행한 것으로 인정되는가? 본 사안의 원심 판결은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보호의무로서 도난 방지 의무를 인정하였으나, 본 연구의 대상판결인 대법원 판결(이하 본 판결이라고 한다)은 이를 배척하고 있다. Ⅱ. 임대인의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민법 제618조). 임대인이 부담하게 되는 이 의무는 임대차 관계의 가장 핵심적인 의무로서, 임차인이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 것을 인용하는데 그치는 소극적인 의무가 아니라, 임차인이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적극적인 의무이다(김상용, 채권각론(상), 358). 즉, 임차인에 의한 사용·수익을 가능하게 하는 임대인의 이러한 의무는 물적인 시설에 관한 것이 중심이 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임차인의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平野裕之, 契約法, 383). 임차인이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임대인이 적극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첫째 임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여야 할 목적물 인도의무, 둘째, 임대차기간 동안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데 방해가 되는 제3자의 침해를 적극적으로 방지·제거하여야 할 방해제거의무, 셋째 임대 목적물을 임차인이 사용·수익하는데 필요한 상태로 유지하여야 할 수선의무(민법 제623조)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부가하여 임대인의 의무로서 임차인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1. 임대 목적물 인도의무 임대인은 임대차계약에서 약정된 사용 목적에 적합한 상태로 임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목적물 인도의무는 주물뿐만 아니라 종물에도 미친다. 그 밖에도 임대 목적물의 진입로를 확장하기로 한 경우나 주위 환경을 정비하기로 하는 등 목적물의 상태에 관한 특별한 합의가 이루어 진 경우에는 그러한 상태를 조성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이은영, 채권각론,306). 2.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 유지 및 방해제거의무 임대인은 임대차계약 존속기간 중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적극적인 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의무는 임대차가 유상계약이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상태가 임대 목적물의 사용·수익에 적합한 상태인가에 대한 판단은 임대차의 유형, 거래관습 또는 특약에 의한 임대차계약의 해석문제가 된다. 또한 임대인은 임대차 기간동안 임차인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임대인 스스로 임차인의 사용·수익을 방해하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되며, 타인의 방해행위에 대하여는 그 방해상태를 제거해 줄 의무가 있다. 임대인의 방해제거의무는 임차인 스스로 방해제거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임차인이 대항요건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물론 임차인이 점유보호청구권에 의하여 구제될 수 있는 경우에도 면책되지 않고 부과된다. 3. 수선의무 임대인이 부담하는「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라는 포괄적인 의무 가운데 주된 문제가 되는 것은 임대인의 수선의무라고 할 수 있다. 구민법에서는 「임대인은 임대물의 사용 및 수익에 필요한 수선을 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으나(구민법 제606조), 현행 민법은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할 의무라고 하여 포괄적인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임대인이 부담하게 될 수선의무의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 및 정도는 결국 임대차계약의 내용과 거래의 관행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판례는 임대인의 수선의무를 매우 좁게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임대 목적물인 방에 약간의 균열이 생기고 벽에 금이 간 정도의 파손상태는 임대인에게 수선의무가 있는 대규모의 것이라 할 수 없고, 임차인이 부담하는 통상의 임차물의 수선 및 보관, 관리의무에 속한다고 한다(대판 1989.9.26, 89도703). 그러나 임대인의 수선의무가 인정되는 경우란, 임대 목적물을 수선하지 아니하면 임차인의 사용·수익이 불능으로 될 정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임대인의 이러한 수선의무는 특약으로 면제되거나 감경될 수 있다는 견해가 통설적 입장이지만, 이 특약은 신중하게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대수선에 이르는 부분까지 임대인의 의무를 면제시키는 특약은 결국 임차인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판례 역시 대규모의 수선은 임대인이 그 수선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판시하고 있다(대판 1994. 12. 9, 94다34692).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민법 제390조),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민법 제544조). 또한 임차인은 차임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4. 보호의무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데 큰 불편이 없도록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을 보증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임차인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도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 생각컨대 계약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권리의무로서의 보호의무는 급부의무와 독립된 존재로서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채무자의 의무를 주된 급부와 부수적 급부로 구분하여, 부수적 의무의 내용으로서 신의칙상 보호의무를 인정할 것이 아니라 이와 동등한 내용으로서 적극적으로 보호의무를 인정할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 근거는 민법 제2조 신의칙에서 구할 수 있다. 따라서 보호의무란 단지 채무이행과정에서 비롯되는 부수적인 의무라고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채권자와 채무자 상호간에 서로 상대방이 현유하는 생명·신체·소유권 기타 이익(안전성 이익)의 안전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배려하여야 할 주의의무라고 해석하여, 채무자의 행위의무로서 독립된 보호의무로서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호의무를 규정할 때, 보호의무는 급부이익이나 계약목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안전성 이익의 보호를 향하고 있다는 점 및 채무자 뿐만 아니라 채권자에게도 부과되는 내용이며, 계약이 무효가 되어도 일정기간 존속된다는 점 등에서 계약상의 다른 내용의 의무와 그 성질을 달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潮見佳男,債權總論,14). 특히 계약체결 준비단계에서부터 장래의 계약 당사자(future contractant) 또는 계약 후보자(candidat au contrat)라고 할 수 있는 당사자는 성실한 분위기에서 계약을 체결할 신의칙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私見에 따르면 이미 이 단계에서부터 신의칙상의 보호의무는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보호의무는 채무자 뿐만 아니라 그 이행보조자에게도 인정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Ⅲ. 본 판결의 검토 먼저 결론부터 언급한다면,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의무는 단순히 임차인에게 임대 목적물을 제공하여 임차인이 이를 사용·수익하게 하는데 그치고, 더 나아가 임차인의 안전을 배려하여 주거나 도난을 방지하는 등의 보호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는 본 판례의 논지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임차인 보호라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민법의 태도는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점은 해석론으로서 그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본 판례의 검토에 앞서 일반적으로 임대차계약에 관한 법규 및 판례의 기본적인 자세부터 살펴보면 다분히 임대인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려 한다는 취지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써, 민법상 규정된 임대인의 의무(제618조, 제623조, 제626조, 제567조, 제570조 등)에 비하여 임차인의 의무(제618조, 제374조, 제610조, 제624조, 제634조, 제654조, 제616조, 제615조 등) 내용이 두배 정도 부과되고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임대인이 임차목적물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은 확실하게 보장해 주면서, 임차인에게는 차임증감에 관한 권리 주장과 임대차 계약 종료시의 부속물 처리에 관한 보호 정도에 그치고 정작 중요한 임대차 계약 체결 후 임차인의 임대 목적물 사용에 관한 규정은 사용·수익이라는 지극히 포괄적인 내용만 두고 있을 뿐이며 보증금 반환에 대한 규정도 전혀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입법상의 불비에 대한 판례의 태도 역시 임대인측에서의 해석론을 전개하고 있음은 본 판례의 내용 이외에도 다수 발견된다. 앞에서 소개한 내용처럼 임대인에게 요구되는 수선의무의 인정범위를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판례는 임차 건물이 원인불명의 화재로 소실되어 임차물 반환채무가 이행불능이 된 경우, 「그 화재의 발생원인이 불명인 때에도 임차인이 그 책임을 면하려면 그 임차 건물의 보존에 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을 입증하여야 한다」하여 임차인에게 그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대판 1999.9.21, 99다36273). 이는 곧 임차인의 선관주의의무는 추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동등하게 법률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러나 대립하는 두 당사자로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에는 사회정책상 임차인의 보호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러하지 않은 듯하며, 본 판례의 내용도 이러한 맥락에서 도출된 결론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사회정책적인 입장에서도 본 사건의 원고인 임차인과 그 딸들의 실질적인 보호를 도외시하고 임대임측의 형식적인 의무만을 강조하고 있는 본 판례의 판시 내용에는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둘째, 임대인에게 부과되고 있는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에 관한 내용의 해석론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임대인의 목적물 인도의무, 사용·수익케 할 의무 및 그 유지의무를 인정하고 있음은 앞에서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규정을 문리 그대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임대인에게는 「계약 존속 중」그러한 의무가 계속된다는 점에 주목을 요한다. 즉 임대인은 임대차계약 체결 후 임차인에게 목적물을 사용·수익 할 수 있도록 인도함으로써 그 의무이행을 다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임대차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임대인은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임대차기간 동안 임차인의 실질적인 사용·수익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즉 단순히 임대 목적물을 인도하여 임차인이 사용·수익하도록 하면 임대인의 의무는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용·수익의 보장, 예컨대 임차인의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의미에서의 사용·수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서는 절도범이 쉽게 침입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 또는 적절한 차면시설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여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임차인이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의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채무자의 채무 내용으로서 주된 급부의무(본 사안에서는 임대 목적물의 인도의무) 이외에 독립된 의무로서 보호의무를 인정하고 있는 사견에 따른다면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위와 같은 의무는 더욱 요구되는 내용이라고 할 것이며, 부수적인 의무로서도 그러한 임대인의 보호의무는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본 판례에서 밝히고 있는 판시 내용은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민법 제623조가 규정하고 있는 임대인의 의무는 임차인이 정상적으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보장해줄 의무로서 보호의무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또한 신의칙상 요구되는 독립된 의무(또는 부수의무)로서도 임대인은 임차인의 안전을 배려할 보호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본다.
2001-09-10
주차장에서의 차량도난에 대한 숙박업자의 책임 대법원 1922년2월11일 선고 91다21800판결
法律新聞 第2179號 法律新聞社 駐車場에서의 차량盜難에 대한 宿泊業者의 責任 大法院 1922年2月11日 宣告, 91다21800判決 金星泰 ============ 14면 ============ 【사실개요】 ㅊ (소외)은 1990년2월5일 23시40분경부터 피고 ㄱ(피고,상고인)이 경영하는 국화장여관에 투숙하면서 위 여관 건물 건너 정면 길(노폭6미터)건너편에 있는 주차장에 그 소유의 소나타 승용차를 주차시켜 놓았다. 그런데 이 주차장은 ㄱ이 위 여관의 부대시설의 하나로 설치한 것으로서 그 출입구가 위 여관의 계산대에서 마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는 하나, 시건장치가 부착된 출입문도 없고 도난방지를 위한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아니한채 그 입구에 「국화장 주차장」이라는 간판을 세운 정도이다. 주차장의 외곽은 천으로 된 망을 쳐놓고 차를 세울 부분에 비와 눈에 대비한 지붕을 설치하여 만든것에 불과한 것이고, 위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을 경비하는 일을 하는 종업원이 따로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ㅊ은 투숙할 때 여관종업원에게 주차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문제의 자동차는 투숙중 도난당하였다. 그후 ㅊ은 보험회사인 ㄷ (원고, 피상고인)으로부터 도난차량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받았으며, ㅊ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원고가 여관측을 상대로 상법 제152조1항에 의한 공중접객업자의 책임을 물어 代位權을 행사한 것이 본건이다. 【판결요지】 1, 원심(서울고법1991년5월24일선고, 90나52816판결) ㅊ이 ㄱ경영의 위 여관에 투숙하기 위하여 위 여관주차장에 그가 타고 온 승용차를 주차시킨후 위 여관에 투숙함으로써 공중접객업자인 ㄱ은 客인 ㅊ으로부터 위 승용차를 任置받았다고 할 것이므로 ㄱ으로서는 상법 제152조1항에 따라 위 도난사고가 불가항력으로 인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이 사건에서 위 승용차의 소유자인 위 ㅊ에게 그로 말미암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2, 대법원 상법 제152조1항의 규정에 의한 任置가 성립하려면 우선 공중접객업자와 客사이에 공중접객업자가 자기의 지배영역내에서 목적물 보관의 채무를 부담하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바, 여관부설 주차장에 자물쇠장치가 된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거나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인이 배치되어 있거나 기타 여관측에서 그 주차장에의 출입과 주차사실을 통제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조치가 되어있다면, 그러한 주차장에 여관투숙객이 주차한 차량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위탁의 의사표시가 없어도 여관업자와 투숙객 사이에 任置의 합의가 있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위와같은 주차장 출입과 주차사실을 통제하거나 확인하는 시설이나 조치가 되어있지 않은채 단지 주차의 장소만을 제공하는데 불과하여 그 주차장 출입과 주차사실을 여관측에서 통제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 부설 주차장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위배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그러한 주차장에 주차한 것만으로 여관업자와 투숙객사이에 任置의 합의가 있은 것으로 볼 수 없고, 투숙객이 여관측에 주차사실을 고지하거나 차량열쇠를 맡겨 차량의 보관을 위탁한 경우에만 任置의 성립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심확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주차장에 자물쇠장치가 된 출입문을 설치하거나 주차된 차량을 경비하는 종업원이 배치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고, 또 주차장의 출입구가 위 여관의 계산대에서 마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는 하나 이곳에서 차량을 일일이 통제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므로, 위 원심확정사실만으로는 주차사실을 전혀 고지하지 아니한 ㅊ과 ㄱ사이에 주차차량에 관한 임치의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ㅊ과 ㄱ사이에 주차차량에 관한 임치가 성립된 것으로 판단하였음은 상법 제152조1항 소정의 임치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으로서 이점에 관한 논지는 이유있다. 【評 釋】 본건에서 任置계약의 성부 이외에도 「불가항력」의 의미, 상법 제152조2항의 책임 또는 불법행위책임의 성부등 여러 가지 논점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지면상 任置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논하고, 아울러 宿泊業者의 책임에 관하여 우리와는 달리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는 大陸法에서의 처리 예를 간단히 살피기로 한다. 1,「任置」의 의의 상행위법 각칙상 任置가 문제되는 경우는 공중접객업자 이외에도 창고업(제155조 이하), 운송업(제125조 이하), 운송주선업(제114조 이하)등 여러가지 예가 있다. 그리고 상행위법 통칙(제62조)에는 任置를 받은 상인의 책임에 관하여, 상인이 그 영업범위내에서 물건의 任置를 받은 경우에는 보수를 받지 아니하는 때에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상거래의 요청과 상인의 신용유지를 위하여 民法에 비하여 상인의 의무를 가중하고자 하는 취지이다.(최기원, 상법총칙, 상행위, 241∼242면). 그러나 주의할 것은 우리 법제상 상사任置에 관한 규정을 적용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어떻든 상법상 任置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으므로, 민법상의 任置에 관한 일반론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민법상 任置란 「당사자의 일방(임치인)이 상대방에 대하여 금전이나 유가증권 기타의 물건의 보관을 위탁하고, 상대방(수치인)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을 가리킨다(제693조).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것을 하나의 「계약」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일은 아주 드물고, 신뢰를 기초로 하여 호의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민법상의 任置는 단순한 「好意關係(Gefalligkeitsverhaltnis)는 아니며, 민법이 규율하는 임치관계는 법률관계에 한한다. 따라서 단순한 호의관계가 아닌 法律關係로서의 任置가 아닌 法律關係로서의 任置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당사자에게 법률관계를 성립시키고자 하는 의사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봄이 정설이다(곽윤직,459면). 그리고 그러한 의사의 유무는 구체적인 경우에 사회통념 또는 거래관행이나 그 때 그때의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본다. 본건에서 大法院도 任置계약의 성부에 관하여 전통적 민법논리에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商事任置에 관해서 보자면, 客이 공중접객업자(또는 그 이행보조자)에게 카운터등에서 자기의 물건을 명시적으로 맡기는 경우에 任置를 인정함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목욕탕의 옷장 또는 골프장의 락카에 客이 자기의 물건을 넣어두는등 물건이 客의 현실적 지배를 떠나지만 명시적 합의가 없는 경우에도 任置를 인정할 것인가?(정찬형교수는 이를 긍정한다. 공중접객업자의 책임, 법률신문 1992년5월 18일자 판례평석 참조) 민법학자도 이러한 경우 任置를 인정한다. 즉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거나 수영장, 목욕탕에서 옷을 맡기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이용되는 任置의 형태라고 한다(이은영, 채권각론 (박영사, 1989년), 432면).「고가물임을 명시하지 않고 목용탕 자기옷장에 로렉스시계를 넣어두었다가 도난당한 사건(부산지법 1976년 3월9일 75합1531)」과 관련하여,「공중접객업소의 공통된 특징은 시설의 이용을 위하여 다수의 客이 출입하며 상당한 시간을 체류하고 시설의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물건이외의 소지품을 이용자가 직접 管理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공중목용탕은 동일한 공중접객업자라도 다방, 극장, 음식점등과 달리 목욕에 필요한 물건 이외의 소지품을 스스로 관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업소이다 ...손님이 수인의 종업원이 있는 탈의실의 옷함에 소지품을 넣고 자물쇠를 잠근 것은 목욕탕에 소지품을 任置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최기원 교수의 평석(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판례회고 제5호(1976), 146-147면참조)도 「任置」개념을 사회통념과 거래실정을 직시하여 넓게 이해한 견해라 하겠다. 2, 본건에서의 任置契約의 성부 ㅊ이 여관에 투숙하면서 여관의 부대시설인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시키면서 이를 여관측에 고지하지도 않고 차량열쇠를 맡기지도 않았는데도 양자간에 상법 제 152조1항의 任置가 성립하는가 여부에 관하여, 大法院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주차사실을 여관측에 알리거나 자동차의 열쇠를 맡긴 사실이 없음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사안에서는 오히려 여관측에 주차여부를 손님에게 적극적으로 물어 차량, 주차상태의 확인이나 자동차 열쇠의 보관을 요구하고, 심야근무자에게 주의를 환기시켰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게을리한 이상 객실을 배정하고 방열쇠를 교부한 시점에서 문제의 자동차에 관한 任置契約이 「默示的으로」 成立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숙박업소 이용객에게는 자동차에 대한 관리, 감시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객은 피고의 영업장에 휴식과 취침을 목적으로 들어왔을 뿐이며, 요금을 지급하고 방에 들어가면, 자동차에 대한 관리가능성이 여관측에 이전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주차사실을 알리지 아니한 점을 過失相計로 고려하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비록 자물쇠장치도 없고 별도의 관리인을 둔것도 아니라고는 하지만, 독립한 주차장을 설치하고 안내판을 만들어 게시한 여관만이 주차된 자동차를 사실상 監視, 管理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고 할 것이다. 더우기 계산대에서 주차장의 출입을 확인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고 한다면 여관 주차장이라는 팻말을 보고 차를 주차시킨후 투숙한 객으로서는 여관측에서 자동차의 관리를 사실상 맡았다고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손님측에만 적극적인 주차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는 듯한 전제하에 「투숙객이 여관측에 주차사실을 고지하거나 차량열쇠를 맡겨 차량의 보관을 위탁한 경우에만 任置의 성립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시한 것은 합리적 근거를 갖춘 논리로 보기 어렵다. 둘째, 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별도의 전용주차장을 가진 숙박업자로서는, 그 편리함을 이유로 더 높은 宿泊料를 받거나 더 많은 客을 유치하여 영업상의 이익을 누릴수 있을 것이고, 특히 숙박업이 客에 대한 서비스를 본령으로 하는 만큼 이런 정도의 客의 期待는 당연히 보호되어야 하며 「任置」의 뜻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풀이하는 것이 앞서 본 任置의 개념에 관한 통설적 이해와도 부합한다고 하겠다. 셋째, 나아가 상법제152조의 문언에도 불구하고 「不可抗力」의 의미를 완화해석함이 통설(다수설인 절충설은 「불가항력」을 「특정사업의 외부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통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예방수단을 다하더라도 이를 방지할 수 없었을 위해」로 풀이한다. 최기원, 상법총칙, 상행위, 442면, 이기수, 상법(총칙, 상행위), 549-551면, 채이식, 상법강의 上, 309-310면, 그러나 이들이 절충설을 채택하는 이유는 각기 다르다.) 판례(이러한 견해를 취한 예로는 도둑이 호텔비상문을 부수고 침입하여 그 호텔 숙직실창고에 들어가 유숙객의 물건을 절취한 경우에 호텔측의 책임을 부인한 대판 1965년2월23일 64다1724판결 참조)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태도가 균형에 맞고, 본조의 입법취 ============ 15면 ============ 지에도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후술하는 프랑스법에서와 같이 연혁적으로 볼 때 숙박업자의 任置는 통상의 任置와 구별하여 특별히 다루어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우리 민법상의 任置는 원칙적으로 무상, 편무계약이므로 본건과 같은 商事任置에 있어서는 그 성립범위를 民法처럼 좁게 잡을 것이 아니다. 3, 比較法的 검토 프랑스에서는 客의 물건에 대한 宿泊業者(Hotelier)의 책임에 관하여 民法 제1952조∼제1954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주목을 끄는 것은 숙박업자의 任置를 통상의 任置(depotvolontaire제1921조 이하)와 구별하여 특수사정하의 任置 (depotnecessaire)로 구분하여 다룬다는 점이다. (양자를 합하여 고유의 任置(depot propre-ment dit)라 부른다. 후자 즉 특수사정하의 任置는 화재, 건물도괴등의 재해 또는 예견불가능한 사고로 인한 부득이한 任置이며(제1949조), 여관, 호텔주는 투숙하는 객이 지참하는 물건에 대해 책임을 지며, 이 경우 任置는 특수사정하의 任置로 간주된다. (제1952조). 그 내용을 보면 任置되었거나 숙박업자가 정당한 사유(motiflegitime)없이 수치를 거절한 客의 물건이 도난·멸실된 경우 무한책임을 지며 다른 책임경감특약을 인정하지 않는다.(제1953조 제2항). 그러나 객이 명시적으로 任置하지 아니한 물건 및 호텔주차장에 주차한 차량에 발생한 손해에 관하여는 일일숙박료(Ieprix de location journalier)의 일정배수를 한 도로만 책임을 지지만(차량내에 둔 물건의 멸실·훼손의 경우에는 숙박료의 50배(제1954조제2항), 그 밖의 경우에는 100배(제1953조제3항)를 한도로 한다. 다만 이책임한도는 당사자간의 약정으로 경감할 수 있다. 제1953조 및 「객실내에 게시된 안내문으로는 책임을 감경할 수 없다」는 Cour de paris 1982년10월12일판결참조. Genevieve Viney, Traite de droit civil (Les obligation La responsabilite : effets(Paris:L.G.D.J. 1988), N210), 客이 그 손해가 숙박업자 또는 그 이행보조자의 과실로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는 때에는 손해 전부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1953조3항). 한편 獨逸에 있어서도 宿泊業者(Gastwirt)의 객 소유물건에 대한 책임을 民法의 각별한 조문으로 규제한다는 점(BGB제701조이하) 및 일정한 책임제한을 인정한다는 점(제702조1항)에서 그 태도는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법도 숙박업자의 책임을 로마법원칙에 따라 結果責任(Erfolgshaftung)(그 내용이 위험책임(Gefardungshaftung)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는냐에 관해서는 다툼이 있다. Munchener Kommentar, S.371, R.N. 4.)으로 하고 있다. (제701조1항). 그러나 제701조 이하의 규정들은 車輛 및 차내에 둔 물건 및 動物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제701조4항). 이는 1966년부터 시행된 개정법에 따른 것으로서, 종래의 판례의 태도를 전면부인하는 내용인 셈이다. 이처럼 책임의 대상적 범위를 제한한 까닭은 숙박업이 특별한 위험시설(besondere Gefahrenlage)이라 할 수 없다는 점 및 이들 물건에 대해서는 손해보험으로 별도의 위험대비책(Risikovorsorge)을 강구할 수 있다는 점등을 든다(Ibid., Rn. 35, 36) 4. 結 論 앞서 본 대륙법적 문제해결방식은 숙박업자만을 대상으로 民法의 테두리내에서 규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논리가 아닐수 없으며, 그 연혁과 내용을 정사하여 장차 입법적으로 고려해 볼만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규정을 갖지 아니한 우리로서는 불법행위책임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商法제152조1항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위 2에서 언급한 것처럼 任置約定을 묵시적으로 인정할 여지가 있고, 이를 전제로 宿泊業者의 責任은 인정된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任置의 성립을 부정한 大法院의 설시 및 대법원의 결론을 지지하는 장찬형교수의 견해에는 반대한다. 5, 관련문제 다만 大法院의 견해를 취한다면 문제의 自動車는 客이 任置한바 없으므로, 더 이상 商法제 152조1항의 논의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는 任置를 받지 아니한 물건에 대한 공중접객업자의 책임을 규정한 동조 2항의 문제가 된다. 아울러 이른바 請求權競合說을 취하는 우리 법제하에서 불법행위책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大法院은 『…위와 같은 주차장출입과 주차사실을 여관측에서 통제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 「부설주차장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위배여부는 별론으로 하고」그러한 주차장에 주차한 것만으로 여관업자와 투숙객사이에 任置의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별도의 논의여지를 배제하지는 않으나, 大法院의 표현만으로는 여관측에게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점은 별개문제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任置받지 아니한 공중접객업자의 책임(제152조2항)도 별론으로 한다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이점을 분명히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만약 후자를 가리킨다면,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여 「환송」한 것은, 「자판」하기에는 사실관계가 숙성(민사소송법 제407조1호)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장의 전취지를 감안하여 제152조2항의 책임추궁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는 없는지 의문의 여지도 있다. 또한 상법 제152조1항과 2항의 소송법상의 관계도 궁금하다. 이를 별개의 소송물로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공격방어방법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로 客이 여관주인에게 자동차의 보관을 위탁하고 여관주인이 이를 승낙하여 客이 그 자동차를 여관의 마당에 세워두었는데 자동차가 분실된 사안에서 우리 대법원은 「여관주인은 민법 제695조에 의하면 자기 재산과 동일한 주의로써 이를 보관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상법제 62조에 의하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이를 보관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상법 제152조1항에 의하면 불가항력으로 인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하지 못하는바, 원심으로서는 응당 원고의 청구가 위의 어느것에 속하는가를 규명하고 그에 대하여 피고(여관주인)가 책임을 져야하는 주의의무위반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므로 결국 원심의 조치는 심리미진의 위법이 있다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大法院 1964년7월14일선고, 64다470판결), 그러나 정찬형교수에 따르면 이 경우에는 상법 제152조가 민법 제695조와 상법 제62조에 대한 特則이므로 마땅히 상법 제 152조1항에 의하여 여관주인의 책임유무를 판단했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199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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