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만나는 자연 그대로의 숲, 대체 불가능한 숲과 집의 가치 - 르엘 어퍼하우스
logo
2024년 4월 28일(일)
지면보기
구독
한국법조인대관
판결 큐레이션
매일 쏟아지는 판결정보, 법률신문이 엄선된 양질의 정보를 골라 드립니다.
전체
조합원
검색한 결과
40
판결기사
판결요지
판례해설
판례평석
판결전문
민사일반
주택법 시행령 제20조 제3항 및 주택법 시행규칙 제7조 제5항 제3호가 강행법규(효력규정)인지 여부
1. 사실관계 원고 A주식회사(이하‘원고 회사’라 함)는 2018년 11월 29일 B주식회사(이하‘B회사’라 함)에 2억5000만 원을 대여하였고, 피고 C지역주택조합(이하 ‘피고 조합’이라 함)은 같은 날 B회사의 차용금 채무에 대한 보증(이하 ‘본건 보증약정’이라 함)을 하였다. 2. 본 사안의 쟁점 주택법 제11조 제7항은 관할 자치단체장으로부터 인가를 받는 지역주택조합의 설립방법·절차와 운영 관리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주택법 시행령 제20조 제3항은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반드시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택법 시행규칙 제7조 제5항 제3호는 반드시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사항으로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의 체결’을 정하고 있다. 피고 조합은 본건 보증약정이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에 해당함에도, 원고 회사와 피고 조합은 조합원 총회의 의결 없이 본건 보증약정을 체결하였으므로, 본건 보증약정은 주택법 시행령 제20조 제3항과 주택법 시행규칙 제7조 제5항 제3호(이하 ‘쟁점조항’이라 함)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본 사안은 쟁점조항이 강행법규(효력규정)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다툼이 되었다. 3. 원심판결의 요지 쟁점조항과 유사하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라 함) 제45조 제1항 제4호는 재건축정비사업조합 등이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을 체결할 때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재건축정비사업조합 등이 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제4호를 위반하여) 조합원 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그 효력이 없다”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0다64112 판결 등). 원심판결은 강행법규(효력규정)인 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제4호와 비교하며, (i) 쟁점조항은 도시정비법과 달리 위반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 (ⅱ) 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제4호는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반면에, 쟁점조항은 시행규칙에서 비로소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 (ⅲ) 도시정비법상 재개발·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행정주체인 공법인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석되는 반면, 주택법상 주택조합은 민법상 비법인사단의 지위를 갖는 것에 그치는 점 등을 고려하여 쟁점조항은 단속규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원심은 피고 조합이 조합원 총회의 의결 없이 본건 보증약정을 체결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본건 보증약정은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4. 대상판결 요지 대상판결은 (i) 쟁점조항은 필수적인 총회의결사항을 사전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입법적 조치인 점, (ⅱ) 주택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쟁점조항과 같은 법령상 제한이 규정되어 있었고 이는 일반에 공지된 사항이라는 점, (ⅲ) 이러한 제한은 통상 민법상 법인 아닌 사단의 경우와 다르다는 점, (ⅳ) 지역주택조합 대표자의 대표권 범위는 법률상 정해진 바가 없다는 점, (v) 거래상대방은 사전에 총회의결의 존재를 확인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관련 법령의 해석상 예정된 것이자 당연히 기대된다는 점, (ⅵ) 지역주택조합의 특성·목적·역할·기능에 내재된 공공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쟁점조항은) 단순히 비법인사단의 자율적·내부적인 대표권 제한의 문제가 아니라 그 법률행위의 상대방인 제3자와의 계약 해석에 있어서도 그 제3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원칙적으로 그 조항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판단하였다. 대상판결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과 계약상대방이 쟁점조항을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경우 원칙적으로 그 계약은 무효이지만, 예외적으로 계약상대방이 총회의결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였음에도 무과실로 총회의결의 부존재를 알지 못한 경우, 그 계약은 유효하게 된다. 5.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상반된 종전 하급심 판례 대상판결이 선고되기 전, 하급심 법원들은 쟁점조항이 강행법규(효력규정)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11. 28. 선고 2016가합559303 판결, 수원지방법원 2020. 1. 8. 선고 2019가합11398 판결, 광주지방법원 2021. 3. 18. 선고 2020가합52066 판결 등 하급심 판례들은 (i) 지역주택조합의 구성원인 조합원은 기본적으로 수분양자로서의 지위뿐만 아니라 주택건설사업의 사업주체인 조합의 구성원으로서 사업의 진행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점, (ⅱ) 주택건설사업의 과정에서 사업비용이 증가하게 되면 구성원인 조합원 개개인이 추가 분담금을 납부하게 되는 점, (ⅲ) 주택법 시행규칙 제7조 제5항에서 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한 취지는 조합원들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하여 조합원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절차적 보장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쟁점조항을 강행법규(효력규정)로 판단하였다. 반면에, 서울고등법원 2015. 4. 24. 선고 2014나51185 판결, 부산고등법원 2020. 10. 15. 선고 2019나56220 판결, 대구지방법원 2021. 9. 2. 선고 2020나316490 판결, 수원지방법원 2021. 1. 26. 선고 2019가단547593 판결 등 하급심 판례들은 대상판결의 원심판결과 같은 이유로 쟁점조항을 단속규정으로 보았다. 다만, 쟁점조항을 단속규정으로 본 하급심 판례들은 지역주택조합이 쟁점조항에 따라 조합규약에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의 체결’을 총회의 의결 사항으로 정한 경우, 이를 대표권 제한 문제로 보아 거래상대방이 그와 같은 대표권 제한 및 그 위반 사실을 알았거나 과실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하였다면 그 거래행위가 무효로 된다고 판단하였다. 나. 대상판결이 쟁점조항을 강행법규(효력규정)로 본 것인지 여부 대상판결은 쟁점조항을 위반한 계약이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i) 쟁점조항이 강행법규(효력규정)에 해당한다고 명확히 판시하지 아니한 점. (ⅱ) 쟁점조항이 강행법규(효력규정)라면 이를 위반한 계약은 절대적 무효이므로, 예외적으로 그 계약이 유효가 되는 경우를 인정할 수 없음에도 이를 인정하였다는 점. (ⅲ) ‘쟁점조항은 대표권 제한의 문제가 아니라 그 법률행위의 상대방인 제3자와의 계약 해석에 있어서…쟁점조항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판시한 점을 고려하면, 쟁점조항을 강행법규(효력규정)로 본 것인지 아니면 계약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규정으로 본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이와 같은 대상판결의 불분명함으로 인해 아래와 같은 의문점이 생긴다. 다. 대상판결에 대한 의문점 만약 대상판결이 쟁점조항을 강행법규(효력규정)가 아니라 계약의 해석에 효력을 미치는 규정으로 본 것이라면, 지역주택조합과 계약상대방이 계약을 체결하면서 쟁점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조항을 둘 경우, 쟁점조항보다 이를 배제하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우선하여야 하는지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계약의 해석은 쌍방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이고(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8다275017 판결), 계약의 해석에 있어서 가장 우선하는 것은 당사자의 의사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역주택조합과 계약상대방이 쟁점조항을 인지하고 이를 배제하는 합의를 하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을 계약상대방의 악의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보아 해당 계약을 무효로 볼 것인지가 문제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제4호 위반이 문제 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에 해당하는 이 사건 용역계약에 관하여 조합 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도 이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원고가 그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 사건 용역계약은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0다64112 판결). 만약 대상판결이 쟁점조항을 강행법규(효력규정)라 본 것이라면, 상기한 바와 같이 쟁점조항을 위반한 계약은 절대적 무효이므로 제3자는 선의인지를 불문하고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인데, 계약상대방이 선의·무과실인 경우 계약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무엇인지가 의문이다. 대상판결은 종전 하급심 판례들의 상반된 판결을 정리하고, 쟁점조항을 위반한 계약의 효력과 이에 관한 판단기준 등을 판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판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상판결과 쟁점조항을 강행법규(효력규정)로 본 하급심 판례에서 설시한 이유(주택법의 문언, 지역주택조합의 공공성,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을 보호하려는 쟁점조항의 입법취지 등)와 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제4호와의 유사성, 균형 등을 고려했을 때, 쟁점조항을 강행법규(효력규정)로 보아 계약상대방의 선의·악의, 무과실여부와 관계없이 쟁점조항을 위반한 계약은 절대적 무효로 보는 것이 보다 명확한 판단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배상현 변호사(주식회사 OCI)
주택법
지역주택조합
조합원총회
배상현 변호사(주식회사 OCI)
2022-12-21
민사일반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사실관계] 평석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에서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원고 회사는 A 자동차 회사와 사이에 배기가스 촉매제(‘촉매제’)를 제조·납품하는 계약을, 피고 회사도 A와 사이에 촉매제를 가공하여 촉매정화장치를 제조·납품하는 계약을 각 체결하였다. 2. 2012년경부터 2017년경까지 원고는 A와의 합의 아래 촉매제를 피고에게 직접 인도하였고, 피고는 그것을 사용하여 정화장치를 제조해서 A에 납품하였다. A는 원고가 인도한 촉매제의 수량이 아니라 A가 피고로부터 납품받은 정화장치에 들어간 촉매제의 수량에 따라 원고에게 촉매제 대금을 지급하였다. 3. 원심이 인정하고 대법원이 그대로 수긍한 바에 의하면, 원고가 인도한 촉매제 중 피고가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보관하고 있는 촉매제 1만9천여 개에 대하여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묵시적으로 임치계약이 성립하였다. [소송의 경과] 원고는 이 사건에서 위 남은 촉매제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중 일부에 대하여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하였다. 즉 “위 남은 촉매제에 대한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촉매제 인도시점부터 진행”하므로, 이 사건 소 제기로부터 소급하여 상사소멸시효기간인 5년보다 전에 인도받은 촉매제에 대한 임치물반환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원심은 그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임치계약관계가 종료하여 수치인이 반환의무를 지게 되는 때, 즉 임치기한이 도래하거나 임치인이 해지권을 행사하여 그 반환청구권이 발생한 때부터 진행”하는데, “임치계약은 이 사건 소 제기 이후에 해지되었으므로,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판결 취지] “임치계약 해지에 따른 임치물의 반환청구는 임치계약 성립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이고, 임치계약에서 임치인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임치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임치계약이 성립하여 임치물이 수치인에게 인도된 때부터 진행하는 것이고, 임치인이 임치계약을 해지한 때부터 진행한다고 볼 수 없다.”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잔여 촉매제에 대한 임치계약의 성립시점이 언제인지, 이 사건 잔여 촉매제가 피고에게 인도된 날이 언제인지, 그로부터 소멸시효기간이 도과하였는지 등을 심리한 다음, 소멸시효 완성 여부에 관하여 판단했어야 했다. 원심판결에는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평석] 1. 대상판결의 취지에는 찬성할 수 없다. 임치계약 자체에 관한 법리를 보다 실제에 맞게 전개한다는 관점, 특히 유상 또는/및 기한부 임치계약의 보편화 등의 관점에서도 문제될 수 있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아래의 두 가지 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대상판결은 형성권의 제척기간과 그 권리의 행사로 발생하는 청구권의 소멸시효에 대한 종전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으로서 그 타당성을 쉽사리 발견하기 어렵다(아래 2. 및 3.). 나아가 대상판결은 그 문언으로 보면 임치계약 외에도 당사자가 처음부터 계약을 해지할 권리를 가지고 그 권리가 행사되면 해지자가 원상회복청구권, 즉 계약상 급부의 반환청구권을 가지는 다른 계약유형들에 관하여도 그대로 발언력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러한 귀결은 타당하지 아니하다(아래 4. 및 5.). 2. 해지권을 포함한 형성권 일반의 존속기간과 그 행사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에 대하여 보기로 한다. (1) 해지권을 포함하여 이른바 형성권 그 자체에 대하여는 ―뒤의 3.에서 보는 대로 유류분반환청구에서와 같이 명문의 규정이 있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제척기간의 법제도에 의하여 그 존속기간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 이유는, 최근의 문헌에 의하면, “형성권은 상대방의 채무 이행 등 협력 없이도 당사자 일방의 의사표시만으로 목적하는 법률관계가 형성되므로 형성권의 행사에 의하여 권리행사기간이 중단된다는 것은 관념할 여지가 없다. 또한 너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상대방과 제3자의 지위가 극히 불안해지므로 일정 기간 내에 이를 행사할 것이 요청된다. 이러한 특성상 형성권을 규율하는 데에는 대체로 제척기간이 어울”린다는 것이다(양창수 편집대표, 민법주해[IV], 제2판(2022), 358면(오영준 집필부분)). 그리하여 그 권리의 행사 없이 제척기간이 도과하면, 그 권리는 당사자의 원용이 없어도 당연히 소멸한다. 즉 취소, 해제·해지, 상계 등의 형성권은 권리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에 의하여 직접 권리 변동이 일어나므로, 중단 등을 문제로 삼을 것도 없이 행사만 있으면 목적을 달하여 소멸한다. 한편 그 권리의 행사로 인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장래를 향한 원상회복청구권, 즉 당해 계약관계의 ‘청산’을 청구할 권리(민법 제550조, 제549조 제1항 참조. 이하 민법의 조항은 법명을 제시함이 없이 인용한다)에 대하여는 소멸시효의 제도가 적용된다. 그리고 그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당해 청구권이 발생한 때, 즉 일반적으로는 형성권이 그 권리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로 유효하게 행사된 때(이로써 형성권은 소멸하고 이제 당사자의 법률관계는 종국적으로 앞서 본 원상회복청구권으로 변화한다)로부터 기산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단지 “임치계약 해지에 따른 임치물반환청구는 임치계약 성립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 운운하는 것 외에 별다른 이유 제시 없이 종전의 법리를 기초에서부터 뒤엎고 있다. (2)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해지권을 포함하여 형성권의 특성은 그것을 행사하는 의사표시에 의하여 직접 법률관계(이하에서는 계약관계에 논의를 한정하고자 한다)의 변동이 일어나고 이로써 그 권리 자체는 소멸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권리자는 이를 행사하여 자신의 계약관계의 새로운 ‘형성’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널 것인지 여부를 정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 그 권리의 특징이다. 그러한 권리가 어떠한 기간만큼 존속하는가는 결국 어떠한 기간만큼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이는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결정하여 이를 실행한 후에 발생하는 법률관계, 특히 그 일부로서의 계약정산청구권을 어떠한 기간 내에 행사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라는 것이 통설의 이해이다. 이는 임치계약의 해지에서도 다를 바 없다. 임치인이 ‘언제라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제699조, 제698조 단서)은 임치관계의 유지 여부에 관한 의사결정 가능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이를 해소하는 것으로 결정한 다음에 그로써 발생하는 임치물반환청구권을 어떠한 기간 내에 행사하여야 하는가와는 별개인 것이다. 대상판결은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해지권이 있다고 하여 바로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이 기산된다고 한다. 우선 해지권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제척기간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그것은 돌연 소멸시효의 문제에 해소되어서 후자만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더욱 결정적인 난점은 위와 같은 의사결정 가능성과 그 권리를 행사하는 방향으로의 결정 후의 계약관계 처리문제를 그 존속기간의 점에서 뒤섞고 있다는 데 있다. 3. 종전의 판례도 형성권의 제척기간과 그 행사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은 태도를 취하여 온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대법원 1991. 2. 22. 선고 90다13420(대법원판례집 39권 1집, 172면)은 '징발재산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0조 소정의 환매권(“이 법에 의하여 매수한 징발재산의 매수대금으로 지급한 증권의 상환이 종료되기 전 또는 그 상환이 종료된 날로부터 5년 이내에 당해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가 군사상 필요 없게 된 때에는 피징발자 또는 그 상속인은 이를 우선매수할 수 있다”)에 대하여 “이는 형성권으로서 그 존속기간[위 법률상 일반적으로 10년]은 제척기간으로 보아야 한다”(다수의 대법원 판결을 인용한다. 꺾음괄호 안은 인용자가 가한 것이다)고 전제한 다음, “환매권의 행사로 발생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위 기간 제한과는 별도로 환매권을 행사한 때로부터 일반 채권과 같이 민법 제162조 제1항 소정의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진행되는 것이지 위 제척기간 내에 이를 행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다. 또한 판례는 유류분반환청구권은 민법의 법문(제1117조 : “시효에 의하여 소멸한다”)에 좇아 소멸시효에 걸리는 것으로 보는 듯한데, 그 행사의 효과로 발생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등에 대하여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1다55092 판결(법고을)은 “유류분반환청구권을 행사함으로써 발생하는 목적물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등은 전자의 청구권과는 다른 권리이므로, 그 이전등기청구권 등에 대하여는 민법 제1117조 소정의 유류분반환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적용될 여지가 없고, 그 권리의 성질과 내용 등에 따라 별도로 소멸시효의 적용 여부와 기간 등을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리고 위 이전등기청구권이 제1117조에 정하는 1년의 기간 내에 행사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그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4. 그런데 앞서 본 대상판결의 판시는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 그 판결의 문언은, 이 사건에서 문제된 임치계약뿐만 아니라 계약의 성립 당시부터 원칙적으로 일방 또는 쌍방의 당사자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다른 계약유형에서도 그 해지로 인하여 발생하는 원상회복청구권의 소멸시효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1) 그러한 계약유형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기간의 약정이 없는 임대차계약을 들 수 있다. “임대차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 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다.”(제635조 제1항) 결국 그 경우에도 임대인의 목적물반환청구권은 “임대차계약 해지에 따른 임대차목적물반환청구는 임대차계약이 성립한 때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이고,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인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목적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임대인의 목적물반환청구권은 임대차계약이 성립하여 애초 목적물이 임차인에게 인도된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할 것인가? 임대차계약관계가 ―이 사건에서와 같이 그 계약이 상행위에 해당한다면― 5년, 아니라도 민법상의 원칙적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을 이미 넘긴 경우에 이는 명백히 부당하지 아니한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대상판결이 임치관계의 존속기간 유무 등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그 법리를 일반적인 형태로 설시하고 있으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어떠한 경우가 그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말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의 통설은 동산뿐만 아니라 부동산도 임치의 목적물이 될 수 있다고 하므로, 그 점에서는 임대차계약과 다를 바 없다. (2) 나아가 조합계약에서는 어떤가? 조합계약은 “존속기간을 정하지 아니하거나 조합원의 종신까지 존속할 것을 정한 때”에는 각 조합원은 원칙적으로 언제든지 탈퇴, 즉 자신과의 관계에서 계약의 효력을 장래를 향하여 소멸시킬 수 있다(제716조 제1항. 동항 단서는 그 경우의 예외를 “부득이한 사유 없이 조합에 불리한 시기에 탈퇴하지 못한다”라고 정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조합계약에서도 “계약의 해지에 따른 정산청구는 계약 성립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으로서, 각 조합원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정산, 즉 조합재산의 지분의 계산(제719조 참조)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조합원의 정산청구권도 조합계약이 성립하고 이제 탈퇴하는 조합원이 애초 출자한 때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하는가? 이 역시 조합계약관계가 5년 또는 10년 이상 유지된 경우에는 명백히 부당하지 아니한가? (3) 이러한 문제는 역시 무상임이 원칙으로 민법상 정하여진 위임계약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 위임계약은 일반적으로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제689조 제1항) 그러므로 이 경우에도 해지에 의하여 계약상 급부의 반환청구권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만일 위임인이 수임인에게 위임사무의 처리에 필요한 서류 기타 물품을 제공한 경우라면, 그것이 해지 당시 수임인에게 남아 있는 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임인에게 반환되어야 할 것이다. 위임인의 그 반환청구권도 대상판결의 판시가 요구하는 대로 역시 위임계약이 체결되고 물품이 인도된 때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할 것인가? 위임계약이 그때로부터 기산하여 5년 또는 10년 이상 존속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어서, 그 기간의 경과로 위 반환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는가? 이와 같은 의문은 고용계약에 관하여도 제기될 수 있는데, 거기에서는 다른 측면의 난점도 있다. 고용기간의 정함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 해지의 의사표시가 있으면 그 의사표시가 도달한 때로부터 1개월의 경과로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제659조 제1항, 제2항). 고용계약이 해지되고 1개월이 경과하여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노무자에 대하여 그가 제공 또는 인도받은 공간이나 도구 등의 반환을 계약상 급부의 원상회복으로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계약(아마도 보다 통상적이리라)에서 사용자가 가지는 그러한 계약상 급부의 원상회복청구권은 언제부터 기산된다고 할 것인가? 대상판결의 취지대로 계약이 체결되고 계약상 급부로서 공간이나 도구 등이 인도된 때로부터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는 시기로 법이 정하는 그 1개월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하여 해지의 의사표시가 있었던 때로부터가 아니라 위 급부가 있고 1개월이 경과한 때로부터 소멸시효는 기산된다고 할 것인가? 5. 앞의 4.에서 본 계약유형들에서 계약 성립의 당초부터 그 일방 또는 쌍방에 해지권을 부여하는 규정은 일반적으로 임의규정의 성질을 가진다. 그러므로 그 외의 계약유형들에서도 당사자들은 그 일방 또는 쌍방에게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약정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민법 제543조 제1항은 법률의 규정 외에도 계약에 의하여 해제 또는 해지의 권리, 즉 약정해제권과 약정해지권이 발생할 수 있음을 정면에서 정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가장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경우, 즉 매매계약에서 매도인에게 약정해제권이 부여된 경우를 전제로 하여 논의하여 보자.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도 ―대상판결의 문언을 그대로 빌리자면― “매매계약 해제에 따른 매매목적물의 반환청구는 매매계약 성립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이고, 매도인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하고 목적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는 것”임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도 매매계약의 해제에 따른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매매계약이 성립하고 목적물이 매수인에게 인도된 때로부터 기산된다고 할 것인가? 만일 해제권의 발생이 일정한 요건에 걸려 있는 것으로 약정된 경우(아마도 이것이 보다 통상적이라고 하여야 할는지도 모른다)라고 하더라도, 그 요건이 충족되어 해제권이 발생한 때로부터는 매도인은 역시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하고 목적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상판결의 취지에 의하면 이번에는 ―계약상 급부가 전부 또는 일부 행하여진 것을 전제로 한다면― 해제권이 발생한 때로부터 해제로 인한 급부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이 기산된다고 하는 말이 된다. 과연 그렇게 보아야 할까? 6. 결론적으로 종합하면, 이상의 여러 계약유형의 경우에 역시 임대인, 조합원, 위임인 및 노무자 등은 계약 성립 후(또는 그로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해지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은 계약 해지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발생한다. 또한 약정해제권 또는 약정해지권이 부여된 경우에는 그 권리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여 해제 등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비로소 원상회복청구권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새로 발생한 원상회복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원칙으로 돌아가 응당 그 발생시부터 기산된다고 할 것이다. 임치의 경우라고 해서 달리 볼 이유는 쉽사리 찾을 수 없다. 양창수 석좌교수(한양대 로스쿨·전 대법관)
임치물반환청구권
소멸시효
임치계약
양창수 석좌교수(한양대 로스쿨·전 대법관)
2022-10-27
노동·근로
민사일반
단체협약상 특별채용 조항의 법적 효력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소외 망인은 자동차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다. 자동차회사가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하여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월 이내 특별 채용하도록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망인의 자녀인 원고는 단체협약에 근거하여 채용에 대한 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 법원과 항소심 법원은 단체협약 특별채용 조항은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현저하게 제한하며,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채용의 공정을 현저하게 침해하여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원고의 채용청구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1. 다수의견 11인의 대법관은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이 민법 제103조에 위배되지 않아 그 효력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다수의견을 개진하였다(파기환송). 첫째,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의 효력에 대한 사법심사는 신중하여야 한다. 둘째, 업무상 재해로 인한 보상책임을 보완하는 특별채용은 근로조건의 기준에 해당한다. 셋째, 사용자는 결격사유에 대한 심사를 통하여 최소한의 업무수행능력을 검증한다. 넷째,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하여 채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법질서에서 예정되어 있다. 다섯째, 별도의 특별채용 절차를 통하여 소수의 인원을 채용한 것으로 인하여 구직희망자들의 현실적 불이익이 크다고 볼 수 없다. 2. 반대의견 2인의 대법관은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이 민법 제103조에 위배되어 무효라는 반대의견을 개진하였다(상고기각). 첫째, 사용자가 장차 새로운 근로관계를 창설할 상대방을 정하는 문제는 근로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하여는 헌법상 특별한 보호가 인정되지 않는다. 둘째,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은 구직희망자들이나 다른 조합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사회질서에 반한다. 셋째, 취업보호에 관한 특별법은 일정한 경쟁을 전제로 하는데, 특별채용조항은 그렇지 않다. 넷째,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은 국제기준이나 정책 방향과 거리가 있다. 다섯째,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의 혜택이 일부에게만 돌아간다. [평석] 1. 단체협약의 법적 성격 단체협약의 법적 성격에 대한 학설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계약설, 법규범설, 복합설). 우선 노동조합과 사용차측의 계약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협약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교섭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을 순수한 법규범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효력에 관하여 민법상 법률행위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고, 사적 자치의 원칙이 존중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에 비하여 열악한 지위를 가지는 노동자인 조합원을 대변하여 근로조건에 협상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본질에 해당한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인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협상하고 그 효력이 조합원에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단체협약의 효력은 조합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근로자보호를 위한 노동법의 정신에 비추어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비조합원에게도 확대된다. 비조합원에 대하여도 단체협약의 효력이 확대되는 국면에서 법규범성을 지닌다. 결국 단체협약의 법적 성격은 협약당사자의 계약이라는 점에서 출발되어야 하고, 근로자보호를 위한 노동법의 정신에 비추어 예외적으로 범규범성이 가미된 것이다(소위 복합설). 사용자와의 대등한 협상력을 보유하기 위하여 법인된 노동조합의 위상에 비추어 노동조합이 현행 재해보상제도의 한계를 의식하고 협상력을 발휘하여 특별채용조항을 얻은 것이므로 특별채용의 혜택이 극소수에게 돌아간다고 하여 그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조합의 기능과 위상만을 강조하여 다양한 형태의 특별채용 조항들의 효력이 곧바로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2.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와 단체협약의 대상 사용자가 다양한 채용방식(공개채용, 제한경쟁, 특별채용)을 선택하여 채용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용자는 원만한 노사관계를 위하여 경영상 판단에 따라 채용의 자유의 일부를 포기할 수 있으며,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전개되는 특별채용으로 인하여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는 채용에 관한 사항을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임의적 교섭사항), 이 부분에 대하여도 협약자치의 효력이 미친다. 따라서 채용에 관한 사항을 단체교섭의 대상에서 전면적으로 배제할 것은 아니다. 3. 특별채용조항의 법적 성격 단체협약상 특별채용조항은 재해보상의 내용을 보충하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므로 규범적 부분이라고 할 것이고, 근로자와 유족은 사용자를 상대로 직접 그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재해보상의 내용을 보충하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라는 단체교섭의 대상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규범적 부분이라고 보아야 하고, 비조합원의 확대 적용의 국면을 감안하더라도 규범적 부분으로 보는 것이 일관성 있는 해석이다. 4. 채용의 공정 고용정책기본법과 직업안정법은 차별금지와 균등한 기회보장을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합리적 사유 있는 차별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마련된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이 위 법률들의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 채용에 관한 공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 원칙을 고수하면 차별적 효과가 영속화되므로,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세밀하게 전개된 적극적 우대조치가 요망된다는 미국의 논의는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의 관점에서도 매우 시사적이다. 5. 특별채용조항의 효력에 대한 판단기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에 대한 유형론은 특별채용조항의 효력의 판단에 있어 유용하지 못하며, 다수의견이 제시한 구체적 사정 요소도 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지침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특별채용조항의 효력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비례의 원칙을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법익균형성과 상당성으로 귀결된다. 보호법익과 피해법익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법익균형성), 피해법익의 정도가 목적, 동기, 방법에 의하여 최소화되어야 한다(상당성). 법익균형성이 충족되는 경우에 비로소 상당성의 판단에 들어가고, 법익균형성이 충족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상당성의 판단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채용의 공정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현실에 있어 보호법익의 중대성이 긍정되어야 비로소 법익균형성의 요건이 충족되고, 특별채용의 비율이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상당성 요건이 충족된다. 기회의 평등의 원칙에 대한 예외는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세밀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6. 특별채용조항에 대한 구체적 검토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은 비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첫째, 산재유족의 생계보호는 사회적 약자의 배려 차원에서 인정되는 압도적 이익이며, 채용의 공정이라는 공익도 압도적 이익이다. 따라서 양자의 법익균형성이 긍정된다. 둘째, 특별채용의 비율이 매우 적어 구직희망자가 감수하여야 할 희생이 그리 크지 않으므로 상당성 요건을 충족한다. 비교법적 이례성이 산재유족 특별조항의 효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며,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노동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노사가 마련한 부득이한 조치이다.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은 비례원칙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왜냐하면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의 보상이라는 이익은 압도적 이익이라고 볼 수 없으나, 채용의 공정이라는 공익은 압도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업무외 사고·질병·사망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은 비례원칙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왜냐하면 업무외 재해에 대한 보상은 사용자의 법적 책임의 영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압도적 이익이라고 볼 수 없으나, 채용의 공정이라는 공익은 압도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노조 추천인 우선채용 조항은 비례원칙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의 조직 강화라는 이익은 압도적 이익이라 보기 어려우나, 채용의 공정은 압도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산재유족 이외의 자에 대한 특별채용 조항은 모두 법익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7.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의 일반적 구속력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의 근거인 비조합원의 보호필요성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한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의 취지에 비추어 노동조합법 제35조의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하더라도 산재유족 특별채용조항의 효력이 비조합원에게도 인정되어야 한다. 8. 소결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의 효력을 긍정하는 다수의견의 태도는 타당하다. 사회적 약자인 산재유족을 배려하기 위하여 세밀하게 전개된 특별채용조항은 실질적 평등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대상판결로 인하여 다수의 사업장에서 특별채용 조항의 체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져 단체교섭 차질 및 노사관계의 경색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으나,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상판결은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의 효력에 대한 판단이며 그 밖의 경우에 대한 특별채용 조항의 효력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창현 교수 (서강대 로스쿨)
산업재해
산재
특별채용
유족
기아차
현대차
이창현 교수 (서강대 로스쿨)
2022-06-07
금융·보험
항공·해상
영국 해상보험법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고찰
1. 들어가며 해상보험계약은 국제적 성질이 강하다. 세계 해상보험실무의 경우 영국의 런던보험자협회가 제정한 보험증권 및 표준약관들이 통용되고 있다. 국내 해상보험실무에서 영국의 1906년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은 중요한 법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해상보험계약에서 영국법 준거약관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내국인 간의 해상보험계약에서도 대한민국법이 아닌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영국법 준거약관을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영국 해상보험법의 주요 법리와 우리나라 보험법 법리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으므로 국내 실무가 등에게 생소한 면이 없지 않다. 최근 대법원은 내국인이 계약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영국법 준거약관이 포함된 해상보험계약과 관련한 사건에서 영국 해상보험법상 몇 가지 주요 법리에 관한 판시를 한 바 있다. 이 사건의 쟁점 법리들은 우리 상법의 해상 보험계약의 법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위의 판결에서 쟁점이 되었던 영국 해상보험법의 주요 법리에 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2. 기초사실 및 주장요지 원고는 해상여객운송사업 등에 종사하는 법인으로 131톤 규모의 기선 선샤인호의 소유자이고, 피고는 한국해운조합법에 따라 설립되어 조합원인 해운업자의 공제사업을 수행하는 법인이다. 이 사건 선박에는 공제계약기간을 2012년 1월 13일부터 2013년 1월 13일까지, 보험기간 동안 선박이 운항하지 아니한 채 항내 계선 유지가 조건인 선박공제계약이 체결되어 있었다. 이 사건 선박은 군산항에 정박 중이던 선박의 선미가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기관실 전체가 침수된 것이 2012년 1월 26일 오전 8시경 발견되어 원고 측이 선체 인양 후 폐수 9만3500리터를 배출하였다. 원고는 군산항의 잔교 밑바닥의 준설 문제와 조수 및 북서풍 등의 기상상황으로 인해 이 사건 선박이 침수되었으므로 이 사건 공제계약의 부보대상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피고는 균열 등 기관실 수밀조치 해태와 같은 관리소홀로 인해 해수가 선내로 유입되어 침수한 것으로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사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3. 판결요지 ① 이 사건 선박공제계약을 이루는 공제증권과 표준선박보험약관 적용 특별약관에서 명시한 영국 협회기간약관에 영국법 준거조항과 부보위험이 열거되어 있으므로 보험자의 책임문제는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② 영국 해상보험법에 의하면 손해가 담보위험을 근인(proximate cause)으로 하는지 여부가 보험자의 책임 유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데, 근인이란 손해의 발생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원인(proximate in efficiency)을 말한다. 무엇이 근인이 되는가는 전반적인 관점에서 광범위한 상식에 따른 법원의 사실인정 문제이다. ③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에서 부보위험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해상 고유의 위험(perils of the seas)'이란 해상에서 보험의 목적에 발생하는 모든 사고 또는 재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상에서만(of the seas) 발생하는 우연한 사고 또는 재난만을 의미한다. ④ 영국 해상보험법과 관습에 의하면 손해가 그 부보위험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증명책임은 피보험자가 부담한다. 피보험자는 비일상적인 기상조건 등 우연한 사고로 인하여 선박이 침수되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증명의 정도는 피보험자와 보험자가 서로 상반된 사실이나 가설을 주장할 경우 그 양자의 개연성을 비교하여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에 의한 증명으로 충분하다. 이는 보험사고가 부보위험에 의하여 일어났을 개연성이 그렇지 않을 개연성보다 우월할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보험사고의 근인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경우에는 피보험자가 증명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심은 원고의 주장(가설)은 기본적 증명이 미비한 전제사실들의 연쇄적·우연적 조합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이 사건 선박의 수리 경위, 침수 전력, 초기조사 결과 등에 비추어 제시된 가설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 이를 배척하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서 이 사건 공제계약의 부보위험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사고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을 누락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하였다. 4. 판례평석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① 이 사건 공제계약에서 정한 보험자의 보상사유 중 하나인 '해상 고유의 위험'이 사건 발생 당시 존재했는지, ②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발생한 것인지, ③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발생한 것인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누가 증명책임을 부담하는지, 그리고 증명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느 정도로 증명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영국 해상보험법 제1부칙 '보험증권의 해석규정' 제7조는 "'해상 고유의 위험'이라는 용어는 오로지 우연한 사고 또는 그로 인한 재해에 관한 것으로, 통상적인 바람과 파도의 작용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영국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해상 고유의 위험은 외연의 한계를 일의적으로 규정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영국 판례에 따르면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보험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보험목적에 대한 손해가 해상에서 발생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손해발생의 '우연성(fortuity)'이 증명되어야 한다. 원고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당시 서해상의 기상상황의 악화를 들고 있다. 그러나 사고 당시 해상의 기후 내지 파도와 바람의 상태만을 기준으로 해상 고유의 위험이 존재하였는지 여부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 사건에서 쟁점화 되지는 않았지만 검토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심이 확정한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해수유입 경로를 감안할 때 손해가 선체 등의 '숨은 하자(latent defect)'로 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사건 선박의 균열이 '통상적 마모(ordinary wear and tear)'가 아니라 숨은 하자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영국법상 숨은 하자로 인한 손해의 보상을 위해서는 선박관리 등에 관한 '상당한 주의 의무(a due diligence)' 위반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선박소유자 등의 상당한 주의의무위반에 대한 증명책임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사건에서 오로지 한 가지 원인만이 손해의 발생에 실질적이고 유효한 영향을 미쳤다기 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거나 존재한 다양한 사실이 손해발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않다.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손해로 인정되기 위해 반드시 예외적인 기상조건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영국 판례에 의하면 원고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이 파도와 해풍의 영향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으며, 원심이 확정한 이 사건의 기초사실만으로는 이 사건의 근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영국 판례와 학계는 인과관계의 존부 판단은 해상사업에 종사하는 일반인의 상식적 시각에서 판단하여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피고의 보상책임은 이 사건의 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어느 정도의 증명이 되어야 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영국법이 해상보험계약의 준거법인 경우 해상고유의 위험의 존재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보험보상을 청구하는 원고가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원고는 손해의 발생사실 및 인과관계에 관해서도 소위 'prima facie case(당사자의 충분한 증거제출로 인해 법관이나 배심원이 요증사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상태, 또는 당사자의 주장이 사실일 것이라는 추정이 생긴 상태)'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증명을 하여야 하며, 원고가 이와 같은 정도의 증명을 다하지 못한 경우 보험자는 별도의 항변을 할 필요도 없다. 즉 손해가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하였는지 여부가 원고의 주장과 증명에도 불구하고 명확하지 않을 경우, 해상고유의 위험의 부존재 등을 누구의 불이익으로 돌릴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증명책임의 소재 및 그 증명의 정도의 문제가 발생한다. 소송실무적 측면에서 증명책임의 분배기준에 관해서는 우리 민사소송법과 영국법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어느 나라의 법에 따라 소송당사자 사이에 증명책임을 분배하더라도 결론이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인 경우에도 소송상 증명의 정도의 법적 성질은 절차법적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증명의 정도에 관한 준거법이 무엇인지는 실무상 중요한 문제이다. 일련의 해상보험사건에서 대법원은 별도의 설명 없이 증명의 정도에 대해, 영국법에 따라 '증거의 우월'에 의한 증명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민사소송상 증명의 정도를 절차법적 문제로 파악한다면 증명의 정도에 관해서는 우리 민사소송법을 적용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해상보험
영국
해상보험법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2021-07-26
노동·근로
행정사건
수권규정의 법률유보원칙 위반과 법외노조 통보제도의 적법성
I. 대상판결의 개요 1. 처분의 경위 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교원노조법')에 따라 설립된 노동조합이다. 교원노조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을 폭넓게 준용하고 있는데, 구 노동조합법(2020년 6월 9일 법률 제174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4호 단서 라.목(이하 '본건 조항')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원고는 설립 당시부터 해직 교원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허용하는 취지의 규약을 두고 있었다. 피고 고용노동부는 2차에 걸쳐 원고에게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규약을 시정할 것을 명하였으나, 원고는 이에 응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피고는 2013년 10월 24일 교원노조법 제14조 제1항, 구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라.목,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이하 ‘본건 시행령’)에 근거하여 '원고를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취지의 통보(이하 '법외노조 통보')를 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8인의 다수의견으로 본건 시행령이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한 것으로서 무효이고 이에 기초한 법외노조 통보 역시 위법하다는 취지의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이 각 별개의견을, 대법관 이기택, 이동원이 반대의견을 제기하였고, 대법관 박정화 등 5인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제시하였다.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중대한 침익적 처분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인 단결권의 본질적 사항을 규율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법률의 위임 없이 법외노조 통보 권한을 규정한 본건 시행령은 법률유보원칙 및 의회유보원칙 위반으로 위법·무효라는 것이다. 각 별개의견은 본건 시행령의 적법성을 인정하였으나, 처분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였다. ① 대법관 김재형은 원고가 법률에 의하여 곧바로 법외노조로 '간주'되는 이상 본건 시행령은 법률의 효력을 집행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규정'으로서 적법·유효하나, 단결권 보장을 위하여 본건 조항을 합헌적으로 축소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② 대법관 안철상은 '수익적 처분의 직권철회' 법리에 따라 피고에게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 처분을 철회할 권한이 유보되어 있는 이상 본건 시행령은 적법하나, 피고의 법외노조 통보에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이 있어 취소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반대의견은 본건 시행령 및 이에 근거한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에 의하여 직접 발생한 권리관계를 구체적·확정적인 것으로 선언하는 행정작용으로서 유효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본건 조항의 문언해석상 원고가 법외노조임은 명백하고, 노동조합법의 목적 및 처분의 경위를 고려할 때 헌법합치적 축소해석 등을 통하여 원고를 보호할 필요성도 없다고 보았다. Ⅱ. 대상판결의 평석 1. 대상판결의 쟁점 법외노조 통보를 둘러싼 쟁점은 다양하다. 그 범위는 법외노조 통보의 처분성에서부터 해직 교원의 단결권이라는 헌법적 쟁점에까지 미친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선결 쟁점인 '법외노조 통보의 수권근거'를 부정하는 것으로 판단을 종결하였고, 그 결과 사안의 실체적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본건 조항의 당부 및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구체적 타당성은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에서만 다루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대상판결의 각 의견은 모두 독자적인 의의를 지니나, 본 평석에서는 다수의견의 쟁점이었던 '법외노조 통보의 수권근거'에 한정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2. 법외노조 통보의 법률적 성격과 수권근거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가 형성적 처분이라는 데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본건 조항은 정의 규정으로서 노동조합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고, 노동조합 지위의 변동은 행정청의 형성적 처분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은 위 법률이 '간주 규정'의 형식을 취한 이상 원고의 지위는 법률에 의하여 직접 변동하고,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에 의하여 형성된 권리관계를 통보하는 행정작용에 불과하다고 본다. 생각건대, 노동조합법의 문언 및 행정관청의 개입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후자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볼 여지가 크다. 그러나 본건 조항에 의하여 원고의 지위가 직접 변동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곧바로 본건 시행령의 수권근거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 의하여 종국적·포괄적인 법해석 권한을 위임받은 법원과 달리, 행정관청은 법률로써 위임받은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형성적 처분뿐 아니라 확인적 처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입법자는 행정관청에게 법률에 의하여 형성된 노동조합의 지위를 확인·통보할 권한을 부여할 수도 있고, 이와 달리 종국적 법해석자인 법원을 통하여서만 노동조합의 지위를 확인하도록 규정할 수도 있다. 입법자가 행정관청에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행정관청의 처분은 그 내용이 실체적 법률에 합치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아무런 효력이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본건 조항이 '간주 규정'이라는 점을 근거로 본건 시행령의 수권근거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3. '수익적 행정행위의 직권철회' 법리와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 법외노조 통보가 수익적 처분의 직권철회로서 유효하다는 주장은 각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에서 모두 등장한다. 노동조합 설립신고는 '수리를 요하는 신고'이므로, 피고는 원처분청으로서 그 효력을 사후적으로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노동조합법 개정 당시 입법자에게 행정관청의 일방적 결정으로 노동조합 지위를 박탈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자 하는 의사가 추단되는 이상 수익적 처분의 직권철회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서는 학설의 대립이 있으나, 행정관청에 설립신고 반려 권한이 유보된 점(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행정관청의 심사권이 실질적 요건에까지 미치는 점(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두6998 판결)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운용되고 있다고 보인다. 한편 수익적 처분 직권철회 법리는 확립된 판례이며, 행정기본법 제19조 제1항을 통하여 명문의 법률로 규정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법외노조 통보가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의 직권철회로서 유효하다는 주장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면 수익적 처분 직권철회 법리를 적용하지 아니한 다수의견의 판단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현재 노동조합 설립신고 제도가 사실상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운용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헌법적 정당성은 견고하다고 보기 어렵다. 현행 노동조합 설립신고 제도는 결사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제21조 제2항과 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협약)'에 위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단결권 보장을 위하여 설립신고를 '자기완결적 신고'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이렇듯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를 '수익적 처분'으로 단정할 헌법적 근거가 약한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행정관청의 직권철회 권한까지 인정하는 것은 심대한 단결권 침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둘째, 노동조합 해산제도를 폐지한 뒤 대체 제도를 전혀 마련하지 않은 노동조합법의 입법연혁을 볼 때, 입법자가 행정관청에 의한 사후적 지위 변동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단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셋째, 노동조합에 대한 사후적 심사 제도는 단결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입법 절차를 통해 국민의 여론과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중대한 공익적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 보충적으로 사용된 수익적 처분 직권철회 법리를 원용하기보다는 구체적인 근거 규정의 마련을 촉구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4.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행정청에 의하여 임의로 형성된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효력을 부정하고, 입법부에 대하여 노동조합 사후심사제도를 새롭게 형성할 책무를 지웠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충분한 숙고와 의견 수렴 없이 행정청에 의하여 임의로 형성된 제도라는 점에서 분명한 문제를 가진다. 법원이 그 위법성을 지적하지 아니하였다면 법외노조 통보 제도 및 그에 내재된 위험성은 그대로 고착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상판결로 인하여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효력이 상실된 이상, 국회와 행정부는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노동조합 사후심사제도를 새롭게 형성할 책무를 진다. 이러한 점에서 다수의견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한 편의주의적 판단'이라는 각 별개의견의 비판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다수의견은 행정관청의 사후심사 권한을 배제함으로써 단결권을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곽신재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전교조
해직교사
법외노조
노동조합법
곽신재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2021-07-12
민사일반
단체협약상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의 의미 및 한계
Ⅰ. 문제의 제기 대상판결은 단체협약에 '쟁의기간 중에는 징계나 전출 등의 인사 조치를 아니 한다'는 이른바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을 두는 경우 이 규정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즉 당해 규정이 징계의 원인이 된 비위사실이 쟁의행위와 무관한 근로자의 개인적 일탈행위에 불과하고 이 징계로 인해 단체행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도 사용자는 징계 등 일체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이 쟁점이 된 사안이다. II. 대상판결의 판단요지 이 사건 단체협약의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은 "회사는 정당한 노동쟁의 행위에 대하여 간섭방해, 이간행위 및 쟁의기간 중 여하한 징계나 전출 등 인사조치를 할 수 없으며 쟁의에 참가한 것을 이유로 불이익 처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문언 자체로 징계사유의 발생시기나 그 내용에 관하여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므로 위 규정은 그 문언과 같이 정당한 쟁의행위 기간 중에는 사유를 불문하고 피고가 조합원에 대하여 징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만일 이와 달리 비위사실이 쟁의행위와 관련이 없는 개인적 일탈에 해당하거나 노동조합의 활동이 저해될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정당한 쟁의행위 기간 중에도 피고가 징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여 해석하게 되면 위 규정의 문언 및 그 객관적인 의미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근로자에게 불리한 해석은 쟁의기간 중에 쟁의행위에 참가한 조합원에 대한 징계 등 인사 조치에 의하여 노동조합의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위 규정의 도입 취지에 반한다.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이 앞서 본 취지에 따라 도입된 것임에도 쟁의행위와 무관하다거나 개인적 일탈이라 하여 징계가 허용된다고 새기게 되면 사용자인 피고가 개인적 일탈에 해당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한 쟁의행위 기간 중에 임의로 징계권을 행사함으로써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요컨대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정당하게 개시된 쟁의행위의 기간 중에는 일체의 징계를 금지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므로 피고가 이 사건 쟁의행위 기간 중에 원고를 징계해고한 것은 위 규정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 III. 평석 - 단체협약상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의 의미 및 한계 '쟁의 중 신분보장'규정에 대한 대상판결의 판단(해석)에 대해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1. 협약자치의 한계와 단체협약의 해석 단체협약이란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자주적으로 노사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협약자치의 산물로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쳐 체결되는 협정 즉 계약을 말한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내용에 관하여 계약 당사자 사이에 해석상 견해의 차이 내지 다툼이 생긴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을 명백히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논리와 경험칙에 따른 합리적 해석과 단체교섭의 실질적 의미를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할 수 없다는 두 가지 해석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09다102452 판결;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다86287 판결 등). 이에 따르면 단체협약은 문언에 따라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해당 규정의 적용을 받는 조합원과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내용의 명료성과 법적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협약자치는 헌법 제33조 제1항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적자치의 한 영역이므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이라는 단체협약의 목적도 헌법과 노조법 이외에 사법상의 일반원칙 예컨대 민법 제2조, 제103조 등에 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허용된다. 그렇다면 대상판결이 쟁의행위와 무관한 개인의 비위사실을 이유로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까지 쟁의행위 기간 중 일체의 징계를 금지한다고 해석한 것은 위 단체협약 해석 기준 중 후자 즉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할 수 없다는 기준은 준수하였지만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인 해석이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단체협약의 해석에 있어서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헌법에 부합하도록 해야 하며 아울러 단체협약에서 당사자의 의도, 단체협약 체결 경위, 단체협약이 규율되어 온 노사관계 등에 맞게 강행법규나 사회적 타당성을 결여하지 않도록 해석하여야 함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특히 판례는 협약 당사자인 사용자의 징계권의 근거를 사용자의 고유권 내지 경영권에서 구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경영권은 전속적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헌법 제119조 1항, 제23조 1항 및 제15조를 그 법적 기초로 하고 있다(대법원 2000. 9. 29. 선고 99두10902 판결 등). 이러한 경영권은 근본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 사항이 아니며 인사권의 본질적인 내용은 협약으로 제한 또는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는 사회생활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일반국민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일반규범이면서 사적자치·계약자치에 대한 부당한 개입금지 또는 개입의 정당화에 대한 법적 근거로 이해할 수 있다. 정의 관념에 반하는 행위, 인륜에 반하는 행위,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행위 등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에 해당된다. 신분보장 규정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위한 제반 상황이 이와 같다면 신분보장 규정의 도입 취지인 단체행동권의 실질적 보장 영역을 벗어난 범위에까지 사용자의 헌법상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민법 제103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일체의 징계를 금지한다는 해석은 적어도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은 신분보장 규정을 해석할 때 근로자에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사용자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도록 한계를 보다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2. 기본권 충돌의 해결- 과잉금지의 방법 적용 이처럼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이 일체의 징계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사용자의 경영권의 본질적 내용을 제한·침해할 여지가 있다. 즉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으로 인하여 근로자의 근로3권(구체적으로 단체행동권)과 사용자의 경영권(구체적으로 징계권)이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기본권의 충돌에 관한 헌법상의 해결방법이 논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기본권 사이의 충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른바 실제적 조화(Praktische Konkordanz)론이 원용되어야 한다. 문제는 조화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인데 실제적 조화론은 '과잉금지의 방법'을 구체적 해석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과잉금지의 방법'이란 충돌하는 기본권 모두에게 일정한 제약을 가함으로써 모든 기본권을 양립시키되 기본권에 대한 제약을 필요한 최소한에 그치도록 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제한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고(필요성), 제한의 방법은 적합하여야 하며(적합성), 제한된 기본권 간에는 비례관계(비례성)가 성립되어야 한다{허영, 헌법이론과 헌법, 457면; 계희열, 헌법학(中), 128면}. 그러므로 이 해석기준에 따라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을 둘러싼 사용자의 징계권과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이 모두 최대한으로 그 기능과 효력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적정한 조화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검토 결과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에 대해 문제는 단체행동권의 실질적 보장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 예컨대 쟁의행위와 무관한 개인적 비위 내지 일탈행위까지 일체의 징계를 금지함으로써 단체행동권의 보장을 극대화한 결과 사용자의 징계권에 대한 제한의 정도가 최소한도에 그치는지(필요성), 즉 제한의 정도가 비례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필요성 및 비례성의 의미는 달리 표현하면 충돌하는 두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두 기본권의 원심영역(Randzonen)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 결과 어느 한 기본권이 절대적인 효력을 나타내거나 반대로 완전히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이 '정당한 노동쟁의에 대해 쟁의기간 중' 사용자의 징계권을 제한함으로써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사용자의 기본권의 침해는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의 해석처럼 단체행동권의 실질적 보장과 관계없는 개인의 비위행위에 대해서까지 일체의 징계를 금지하는 것은 사용자의 징계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 필요성 및 비례성에 반한다고 할 수 있다. 김희성 교수 (강원대 로스쿨)
노동조합
신분보장
쟁의행위
김희성 교수 (강원대 로스쿨)
2020-11-23
노동·근로
행정사건
전교조 법외노조통보의 법적 성질과 문제
Ⅰ. 사실관계 2013년 9월 23일 당시 노동부장관(현재는 고용노동부장관)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라 한다)에 대하여 "두 차례에 걸쳐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을 시정하도록 명하였으나 이행하지 않았고 실제로 해직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이 사건 부칙 조항을 2013년 10월 23일까지 교원노조법 제2조에 맞게 시정하고 조합원이 될 수 없는 해직자가 가입·활동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전교조는 시정요구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았고 이에 피고는 2013년 10월 24일 교원노조법 제14조 제1항, 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제1호, 제2조 제4호 라.목 및 교원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에 의하여 원고를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였다('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라 한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1. 법외노조통보는 이미 법률에 의하여 법외노조가 된 것을 사후적으로 고지하거나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통보로써 비로소 법외노조가 되도록 하는 형성적 행정처분이다. 이러한 법외노조 통보는 단순히 노동조합에 대한 법률상 보호만을 제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헌법상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한다. 그런데 노동조합법은 법상 설립요건을 갖추지 못한 단체의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도록 규정하면서도 그보다 더 침익적인 설립 후 활동 중인 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통보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이를 시행령에 위임하는 명문의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더욱이 법외노조통보제도는 입법자가 반성적 고려에서 폐지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와 실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결국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법률이 정하고 있지 아니한 사항에 관하여 법률의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위임도 없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에 대한 본질적인 제한을 규정한 것으로서 법률유보원칙에 반한다. 2. 피고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유효함을 전제로 이에 근거하여 이 사건 법외노조통보를 하였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어 그 자체로 무효이다. 따라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 기초한 이 사건 법외노조통보는 그 법적 근거를 상실하여 위법하다. Ⅲ. 문제의 제기 하급심(서울고법 2016. 1. 21 선고 2014누54228판결; 서울행정법원 2014. 6. 19 선고 2013구합26309 판결)에서의 판단과는 달리 대상판결은 법외노조통보의 위법성을 확인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 12인의 대법관이 참여하여 10인의 대법관은 이 사건 법외노조통보가 위법한 것으로 본 반면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은 그것이 적법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고용노동부가 법외노조통보를 취소하였고 전교조가 교원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의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근 7년의 소송 끝에 국가 전체를 달구었던 오랜 숙제가 해소되었다. 대상판결의 판시와 관련해서 특기할 만한 점은 다수의견 및 별개의견, 반대의견이 각기 법학방법론, 해석론 및 입법론에 바탕을 두고서 매우 상반된 입장을 개진하였는데 특히 상호 간에 매우 비판적이고 직설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가령 반대의견이 "다수의견의 입장은 이 사건 법률 규정이 그 자체로 완결적인 규정임을 간과한 것이거나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무효라는 결론을 위하여 법규정의 의미를 임의로 축소하는 편의적 해석일 뿐"이라고 지적하였는데 종래 대법원 판례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개개의 행정법, 공법적 쟁점에 관한 상론은 다른 곳에서 하고 여기선 법외노조통보의 처분성 여부 및 그 법적 성질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하고자 한다. Ⅳ. 법외노조통보의 처분성 여부 다수의견 8인의 대법관은 법외노조통보의 직접적 근거가 된 교원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 및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의 위헌성을 적극적으로 논증하여 법률유보의 차원에서 법외노조통보의 위법성을 접근하였는데 반면 김재형·안철상 대법관은 별개의견으로 법외노조통보 그 자체의 위법성을 논증하였다. 다만 기본적 시간에서 헌법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입장(김재형 대법관 별개의견)과 수익적 행정처분의 취소철회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입장(안철상 대법관 별개의견)으로 나뉜다. 법외노조통보의 처분성 여부는 하급심에서 피고측이 본안전 항변으로 "교원노조법 제1조, 제2조, 제14조 제1항,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 단서에 의하여 원고를 교원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는 효과가 곧바로 발생한다. 따라서 이 사건 통보는 원고에 대하여 교원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는 효과가 발생하였음을 단순히 확인해 주는 사실 또는 관념의 통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주효하지 않았다. Ⅴ. 법외노조통보의 법적 성질 법외노조통보의 법적 성질과 관련해서 다수의견은 그것을 형성적 행정처분으로 보는 반면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의견은 확인적 행정처분으로 보는데 이는 사안을 법률유보의 원칙 및 위임입법의 법리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낳는다. 반대의견 역시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의견과 마찬가지로 확인적 성질을 인정하기에 다수의견의 입장에 대해 매우 강한 비판을 하였다. 결국 이 문제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의 성격의 문제이다. 여기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그것의 타당성은 차치하고서-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조합이 될 수 없다는 입법자의 의사를 표방한 것이다. 즉 노동조합의 적격성(허용성)의 물음이다. 이 점에서 논증의 출발점을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둔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의견과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바람직하다. 확인적 행정행위의 기능은 개별사건과 관련하여 법적으로 중요한 특성을 구속적으로 확인하거나 부인하는 데 있는데 그것은 행정청과 수범자를 위해 법효과를 증명하는 의사(意思)로써 행해진다(김중권, 행정법, 235면).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한다는 자체는 이미 법효과가 발생하였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법외노조통보에 의해 비로소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된 것이 아니다. 다수의견의 지적처럼 현재의 법외노조 통보제도가 설령 사실상 폐지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와 그 주체, 대상, 절차 및 효과 등이 모두 동일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법률상의 노동조합의 적격성 규정에서 비롯된 이상 법률 자체의 문제이지 결코 시행령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법외노조통보를 하기 전에 시정명령을 통해 노동조합의 부적격 상황을 해소할 기회를 제공하는 점과 설령 마치 수리를 요하는 신고인양 취급되나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설립이 신고제에 해당하는 점에서 법외노조 통보를 창설적인 설권적 처분으로 보는 것은 체계에 반한다. 이처럼 법외노조통보를 확인적 처분으로 접근하는 이상 법외노조통보의 법적 성질을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의 철회로 보고서 이익형량과 비례원칙의 차원에서 검토하는 안철상 대법관의 별개의견 역시 수긍하기 힘들다. 특히 법외노조통보가 기속행위인 점에 더욱 그러하다. Ⅵ. 관견(管見): 어떻게 접근하여야 하는가? 법원은 과거사를 다루지만 과거분석과 과거평가로부터 현재는 물론 미래를 결정하는 권력이다. 판례(Rechtsprechung)는 법(Recht)을 말하는 것(Sprechen)이다. 실현되고 있는 법의 타당근거(妥當根據)는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다(김형배, 법학방법론, 1981, 41면). 따라서 법을 말한다는 것은 민주적 법치국가에서는 개별사례를 위해 법률의 언명을 현재에 맞게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판례는 사전에 규정된 것(입법)을 사후에 말하는 것 이상(以上)이며 항상 불완전한 규정을 숙고하여야 한다. 결국 법원은 법률에 의한 미래선취의 범주에서 법치국가의 미래개방성을 보장한다. 다만 법률흠결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인 법형성을 통해 '창조적 법발견'이 강구되더라도 그것이 입법이 되어선 곤란하다. 일찍이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두6998 판결을 평석하면서 필자는 "사안에서 쟁점대상은 신고제에서 실질적 심사의 문제가 아니라 법규정{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라)목}을 중심으로 해직자가 완전히 배제된 현재의 근로자만이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본 해석의 문제이다. 처음부터 근로자가 아닌 경우에는 그 비근로자를 조합원으로 하는 조합의 설립을 불허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지만 해직자의 경우에는 그리고 사안처럼 기왕의 조합을 합병하여 조합을 설립하는 경우에는 나름의 (판례의) 법형성적 접근도 강구할 만하다. 나아가 사안에 대한 노동조합법 차원의 문제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김중권, 안암법학 제47호, 2015.5., 9면).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고 현실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현재의 법상황이 문제인데 이런 문제인식을 어떻게 구현하는지가 관건이다. 비록 서울고법 2016. 1. 21 선고 2014누54228 판결의 재판부가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한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단이 내려졌지만(헌법재판소 2015. 5. 28. 선고 2013헌마671 결정 등) "만일 법에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본다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거나 국회에 법개정을 청원하여야 할 것"이라고 반대의견이 지적한 것처럼 위헌법률심판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정도이다. 일찍이 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1도6294 판결은 별다른 추가적 요건을 설정하지 않고서 집회미신고를 집회해산명령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상황에 즈음하여 추가적 요건을 더해서 집회해산명령을 정당화시켰다. 이처럼 현행법의 해석의 차원(de lege lata)에서 기본권과 노동조합의 본질 등에 의거하여 새로운 해석의 방법으로 현안의 문제점을 타개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전교조
법외노조
해직교사
노동조합법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2020-09-21
민사일반
협동조합원총회의 결의무효
[판결요지] 피고의 이 사건 결의(관리·운영비의 9% 인상안) 및 추인결의는 피고가 협동조합기본법상의 협동조합으로서 정관에 정해진 바에 따라 조합원들이 부담할 운영관리비의 책정기준을 결의한 것에 불과할 뿐이고 노인복지법, 집합건물관리법, 공동주택관리법 등 관계법령상의 관리주체로서 운영관리비의 책정기준을 결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사건개요] 1. 피고 조합은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는 K회사의 부정 비리를 이유로 시행사를 몰아내고 일부 입주자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노인복지주택을 관리운영하면서 K의 사업을 폐지시켰으나 조합은 신고도 하지 못한 위법한 상태에서 시설을 관리운영하고 있다. 2. 조합은 2018년 2월 24일 조합원총회에서 그 소집공고에 안건으로 밝히지 않은 '관리·운영비 9% 인상안'을 상정하여 Y는 불공정한 운영비를 바로잡지 않고 인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대하였고 몇분이 이에 동조하였으나 아무런 토론도 없이 P가 박수로 찬성하자고 하여 10여명이 박수를 친 것을 결의가 성립된 것으로 꾸며 그 집행을 강행하였다. 3. 이에 원고 J는 운영비의 인상결의는 절차상의 하자로 무효일 뿐아니라 이 사건 건물은 구분소유권을 가진 182세대의 주거시설과 상가 59개 및 제1종 근린시설 2개로 구성된 집합건물로서 피고조합이 이 건물의 노인복지시설의 운영권도 없이 관리비·운영비를 인상할 권한이 없으므로 그 결의는 당연히 무효라는 이유를 들어 총회결의 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4. 이에 원심(서울남부지법 2019. 4. 12. 선고 2018가합108187 판결)은 이 사건 총회결의의 하자를 들어 원고의 주장이 이유있어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는 이상 나머지 원고의 주장에 관하여는 나아가 판단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 관리·운영비 등 9% 인상결의는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판시했다. 5. 이에 피고 조합은 원심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고 2019년 5월 17일 '2018년 2월 24일자 정기총회관리규약변경에 대한 추인(관리·운영비 등 9% 인상)을 안건으로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그 총회에서 추인을 받았으므로 9% 인상 결의는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6. 이에 원고는 2019년 5월의 총회에서 이를 추인하였다고 하나 '무효인 법률행위는 추인하여도 그 효력이 생기지 아니하고(민법 제139조) 그 추인하는 총회 자체도 이에 반대하는 일부 조합원의 주장을 강압적으로 차단하고 적법한 표결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여 당연 무효'라고 항변하였다. [평석]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이 사건 소를 각하한다는 서울고법 민사20부(김상우·송석봉·김유경 판사) 판결은 법리 또는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 까닭을 살핀다. 1. 원심판결 취소의 부당성 원심판결은 피고 조합원총회에서 2018년 2월 24일 관리·운영비 등 9% 인상결의를 다투는 원인과 결의절차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그 사유를 밝히고 무효를 확인하고 있다. 항소심에서 이를 취소하려면 적어도 그 하자가 치유되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여기서는 절차의 흠결도 문제지만 그 결의내용에 담긴 9% 인상안이 위법부당하다는 데 있다. 조합에서 징수하고 있는 시설운영에 소요되는 운영비는 입주자 모두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행사인 K회사로부터 다음 표(1인 기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차등지급하도록 한 불합리한 운영비체계를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징수하다가 이를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안에 반대하여 다툼이 생긴 것이고 그것을 심화시킨 결의를 유효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차등금지의 원칙에 위배되고 불공정 거래를 용인하는 것으로 법리위반이라 할 수 있다. 무효인 법률행위는 추인하여도 그 효력이 생기지 않는데(민법 제139조) 이 판결에서 원심이 무효라고 판단한 결의가 추인의 대상인지도 따지지 않은 것은 법리위배라 할 수 있다. 2. 관리비와 운영비를 왜곡한 법리위배 이 사건 집합건물은 지하 3층, 지상 15층 연면적 8048평 규모의 건물로서 242명의 구분소유자의 사유재산이고 182세대의 주택과 상가 및 근린시설로 구성되어 공동주택관리법 제2조 제1항 제2호에 의한 의무관리대상건물이므로 전문주택관리사가 관리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 건물의 시행사 K의 사업권이 폐지된 후에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조합이 정관규정에 의하여 노인복지시설을 관리·운영한다는 것은 위법이다. 그리고 100명 내외의 구분소유자와 세입자로 구성된 조합원총회에서 그 집합건물의 관리·운영비를 책정하여 결의할 권한도 없다(집합건물관리법 제14조 참조). 이에 원고는 이 사건 피고 조합원총회에서 관리·운영비의 9% 인상안을 결의 또는 추인하는 것은 그 결의 자체의 하자 뿐아니라 무권한자에 의한 것으로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법원이 이에 대한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심리미진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사건 항소심은 '피고의 이 사건 결의(관리·운영비의 9% 인상안) 및 추인결의는 피고가 협동조합기본법상의 협동조합으로서 정관에 정해진 바에 따라 조합원들이 부담할 운영관리비의 책정기준을 결의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는 관리비와 운영비의 개념도 파악하지 못한 졸속 판결이라 할 수 있다. 노인복지시설의 사업운영권을 가진 K회사는 노인복지시설의 운영과 집합건물의 관리를 위하여 입주자로부터 운영비와 관리비를 징수하여 왔고 운영비의 차등부과에 대하여는 꾸준히 이의가 제기되어 왔다. 피고조합은 시행사인 K 회사가 철수하고 그 사업권이 폐지된 후에도 '모범적인 노인복지시설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심신이 약한 노인들을 꾀어서 K사가 징수하여 오던 관리·운영비를 그대로 징수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원총회에서 2018년 2월 24일 관리·운영비 등 9% 인상안을 제시하여 반대에 부딪치고 결의가 성립되지 않아 무효인 결의를 추인하였다는 이유로 항소한 사건에서 서울고법이 노인복지법 등의 규정에 따른 조합의 권한 유무는 따지지 않고 '조합원들이 부담할 운영관리비의 책정기준을 결의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판시했다. 이는 법리는 물론이고 건전한 상식에도 어긋난다. 왜냐하면 조합원이 부담할 운영관리비라 하더라도 조합원에 따라 차등부과하는 것은 형평의 관념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노인복지시설의 운영비와 집합건물의 관리비는 관리규약 등에 의하여 책정되고 사업비로 징수하는 것이지 조합의 운영관리비로 둔갑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판결에서 '이 사건 소를 각하한다'고 한 것은 원고 J가 조합원으로서 소를 제기할 권한이 없다는 뜻인지 이해할 수 없으나 조합원은 조합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하여 소를 제기할 권한이 없다는 법리는 있을 수 없다. 요컨대 이 사건 서울고법 판결은 노인복지시설의 운영실태는 물론 노인복지법, 공동주택관리법 등을 들어 무권한자에 의한 관리·운영비의 인상결의는 무효라는 원고의 주장을 무시하고 게다가 총회결의의 하자를 들어 원심에서 승소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총회의 추인을 인정하여 이 사건 소를 각하한 것은 사회부패의 구조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억지를 부리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법원의 신뢰에 금 가게 한 잘못된 판례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의 공정한 판단을 기다려 본다. 양승규 명예교수 (서울대 로스쿨)
협동조합
노인복지시설
협동조합원총회
양승규 명예교수 (서울대 로스쿨)
2020-06-15
부동산·건축
행정사건
사업시행기간이 도과한 경우 사업시행계획 실효여부
1. 대법원 판결 요지 및 문제의 소재 가. 대법원 판결 요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설립된 정비사업조합에 의해 수립된 사업시행계획에서 정한 사업시행기간이 도과했더라도, 유효하게 수립된 사업시행계획 및 그에 기초해 사업시행기간 내에 이뤄진 토지의 매수·수용을 비롯한 사업시행의 법적 효과가 소급해 효력을 상실해 무효로 된다고 할 수 없다. 나. 문제의 소재 위 판결 사안에 기초해서 사업시행계획의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된 경우 사업시행인가의 실효 여부 및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된 이후 사업시행기간을 연장하는 사업시행변경인가 신청서가 접수된 경우 사업시행변경인가를 처리해야 하는지 여부 등이 실무적으로 문제되는데, 이에 대해서 다소 상반되는 판례의 경향을 확인해보고, 이에 대한 법리적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2. 사업시행계획의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된 경우 사업시행인가가 실효된 것인지 여부 가. 정비사업 시행기간의 제규정 도시정비법은 제52조 제1항 각 호에서 사업시행계획서 작성 시 기재해야 할 사항을 규정하고 있고, 본 항 제5호는 ‘사업시행기간 동안 정비구역 내 가로등 설치, 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 등 범죄예방대책’을, 제13호는 ‘그 밖에 사업시행을 위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도조례로 정하는 사항’을 각 규정하고 있는데,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47조 제2항 제1호는 ‘사업시행기간’을 다시 시·도 조례로 정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관련 시·도 조례인 충청남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는 제8조에서는 '사업시행기간'이 아닌 '사업시행 예정시기'를 규정하고 있다. 나. 사업시행기간에 대한 판례의 동향 1)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된 경우 사업시행인가가 실효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7월 3일 "정비사업의 사업시행인가는 사업시행기간 경과로 실효되며, 그 후에 실효된 사업시행인가를 변경 인가해 그 시행기간을 연장했다고 하여 실효된 사업시행계획의 인가가 효력을 회복해 소급적으로 유효하게 될 수는 없고, 다만 사업시행변경인가도 시행자에게 정비사업을 실시할 수 있는 권한을 설정해 주는 처분인 점에서는 당초의 인가와 다를 바 없으므로 사업시행인가고시에 정해진 사업시행기간 경과 후에 이뤄진 변경인가고시도 그것이 새로운 인가로서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그에 따른 효과가 있다 할 것"이라고 했다(2013구합18018). 이 판결에 대한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도 "사업시행기간은 제1차 사업시행계획에서 정한 사업시행기간(2007년 9월 3일부터 48개월)의 경과로 종전 사업시행계획(제1차 내지 제5차 사업시행계획)의 인가처분은 실효됐다고 판단된다"고 해 사업시행계획은 사업시행기간의 경과로 실효된다는 제1심과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2014누58558). 이 사건에 대한 상고심인 대법원은 2015년 8월 27일 심리불속행 기각결정을 했다(2015두41920). 2) 반면, 2015년 8월 21일 선고된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사업시행계획은 추후 수립될 관리처분계획과는 달리 조합원의 재산권과 관련된 사항을 직접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추후 장기간에 걸친 정비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변경될 것이 어느 정도 예정돼 있다. (중략) 도시정비법 제30조에서 '사업시행기간'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직접 규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는 점, 또한 '사업시행기간'은 시·도 조례가 정하는 사항이므로 지역에 따라서는 사업시행계획서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도 있는 점,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41조 제2항 제1호에서 '사업시행기간'을 '정비사업의 종류·명칭'과 병렬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정비사업의 종류·명칭'은 사업시행계획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춰볼 때, 도시정비법 및 같은 법 시행령은 '사업시행기간'을 사업시행계획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예정하고 있지 않다. (중략) 사업시행계획에서 정한 사업시행기간이 도과하는 경우 당해 사업시행계획이 실효되고 그 이후에는 사업시행기간을 연장하는 사업시행변경계획을 수립할 수도 없다고 한다면 사업시행계획이 유효함을 전제로 이뤄진 후속행위들까지 모두 무효가 됨으로써 정비사업의 계속 추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수 이해관계인들의 권리관계에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사업의 시행을 원하는 조합원들의 의사에 반할 뿐만 아니라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로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 관할관청의 인가가 있어야 비로소 사업을 폐지할 수 있도록 한 도시정비법 제24조 제3항 제9호의2, 제6항 본문, 제28조 제1항, 제5항의 규정에도 반한다. 따라서 사업시행계획에 있어서 사업시행기간은 사업시행자가 당해 사업시행계획에 따라 장차 정비사업을 시행할 예정기간을 의미할 뿐이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업시행계획 자체의 유효기간까지 의미한다고 볼 법령상·해석상 근거는 없다"고 판시했다(2015구합52845).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1심의 사유에 더해 "사업시행계획에서 정해진 사업시행기간은 향후 시행될 사업에 관한 일응의 예정기간을 의미하고, 사업시행계획 자체의 유효기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2015누57118). 또한 상고심인 대법원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설립된 정비사업조합에 의해 수립된 사업시행계획에서 정한 사업시행기간이 도과했다 하더라도, 유효하게 수립된 사업시행계획 및 그에 기초해 사업시행기간 내에 이뤄진 토지의 매수·수용을 비롯한 사업시행의 법적 효과가 소급해 그 효력을 상실해 무효로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해 사업시행기간이 도과했다 하더라도 사업시행기간의 만료로 인해 사업시행계획 자체가 실효된다고 볼 수 없고, 유효하게 수립된 사업시행기간 내에 이뤄진 토지의 매수·수용을 비롯한 사업시행의 법적 효과가 소급해 그 효력을 상실해 무효로 된다고도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2016두34905 판결). 이후 대법원은 2017. 6. 19. 선고 2015다70679 판결에서도 "사업시행기간이 사업시행계획의 효력기간을 정한 것이 아니므로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됐다는 것만으로 사업시행계획이 실효됐다고 볼 수 없고, 2차 분양신청과 제2차 관리처분계획이 무효라고 볼 수도 없다"고 해 이를 다시 확인했다. 다. 소결 1) 위 나. 1)항의 판례와 2)항의 판례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2)항의 판례의 입장에 아래와 같은 추가적인 이유로서 사업시행계획의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된 경우라도 사업시행인가가 실효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2) 도시정비법은 '사업시행기간'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두지 않고, 동법 시행령에서 사업시행기간을 대해 시·도 조례에 위임하는 규정을 뒀는데, 관련 시·도 조례인 충청남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를 보더라도 제8조에서 '사업시행 예정시기'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사업시행기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즉, 도시정비법은 ‘사업시행기간’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직접 규정하지 않고 대통령령 및 시·도 조례에 위임하고 있는 바, 지역에 따라서는 사업시행계획서에 사업시행기간을 포함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업시행기간은 정비사업에 있어 중요한 사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3) 또한, 정비사업 표준정관은 제6조에서 '사업기간'을 규정하면서 사업기간을 '조합설립인가일부터 법 제57조에서 규정한 청산업무가 종료되는 날까지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도시정비사업은 조합설립인가부터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존재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도 모두 사업시행과정이라고 볼 수 있음에도,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사업시행계획 작성 시 사업시행자가 명시해 둔 사업시행기간만을 유독 유효기간이 있는 독자적 사업시행기간이라고 보고 이 기간이 지나면 기존의 사업시행계획이 실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정비사업의 성질과도 맞지 않다 할 것이다. 4) 위 나.항에서는 판례가 대립하고 있으나, 나. 1)항의 대법원 2015두41920 결정은 심리불속행 결정으로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되는 경우 사업시행계획이 실효되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아니했는 바, 도시정비법상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되는 경우 사업시행계획이 실효되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되는 경우라도 기존의 사업시행계획은 실효되지 않는다는 나. 2)항의 '대법원 2016두34905 판결' 및 '대법원 2016두34905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3. 사업시행계획이 실효되지 않고 법적 효력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 사업시행변경인가를 처리해야 하는지 여부 위 다.항에 따라 사업시행계획이 실효되지 않고 법적 효력을 유지한다면 유효한 직전 사업시행변경계획에 기초해 수립된 차후의 사업시행변경계획에는 어떠한 하자가 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사업시행기간 연장만을 위한 사업시행계획 변경신청’이라고 하더라도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사업시행변경인가를 처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4. 마무리 사견으로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된 경우 사업시행계획 자체의 효력이 소멸한다고 가정할 때 정비사업조합이 사업을 진행하던 중 임직원의 실수로 사업시행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사업시행기간이 만료되는 경우 지금까지의 사업시행계획을 폐지해야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이러한 결과는 정비사업시행의 구성원인 정비사업 구역의 조합원들조차 원치 않는 결과라고 할 것이며, 오히려 도시정비법상 필수적·의무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사업시행기간을 정해 사업시행기간을 준수하지 못한 경우 새로운 사업시행계획을 다시 작성해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기존의 사업시행 계획의 재작성 및 사업시행기간 연장 등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만을 가중시킬 뿐, 시의성이 중요한 정비사업에 있어 사회·경제적인 비용을 낭비하게 된다고 할 것이다. 김래현 변호사 (법무법인 현)
사업시행기간
도시정비사업
김래현 변호사 (법무법인 현)
2020-01-30
민사일반
부동산·건축
주택재건축정비사업에 있어서 이주지연 조합원의 손해배상 범위
1. 사실관계 A조합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고, B는 사업시행구역 내에 있는 일부 토지와 건물(이하 '종전 부동산')의 소유자로서 A조합의 조합원이었다. A조합은 2012년 1월경 조합설립인가를, 2014년 3월경 사업시행인가를, 2015년 6월경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았고, 관할 행정청은 2015년 6월 18일 위 관리처분계획인가처분을 고시하였다. 이후, B는 2015년 7월경 A조합을 상대로 위 관리처분계획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법원은 2016년 6월경 B의 위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고, 이에 대해 B가 항소하였으나 2016년 12월경 항소기각 판결이 선고되어 그 무렵 확정되었다. 한편 조합원이었던 B의 이주기한은 2015년 10월경까지였으나, B는 2016월 7월경에야 A조합에게 종전 부동산을 인도하였으며, A조합은 B의 종전 부동산 인도지연으로 재건축정비사업 시행이 지연되었고, 이로 인하여 사업비용이 증가되는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B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2. 법원의 판단 1심 법원은 피고 B의 무변론으로 원고 A조합의 승소판결을 선고하였으나, 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어 그 판결을 취소하고, A조합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A조합의 청구를 기각한 주된 이유는 주로 이 사건 사실관계의 특수성에 근거하였는데, 구체적으로 B가 제기한 행정소송의 결과에 따라 종전 부동산 인도의무 부담 여부가 달라질 수 있었던 점, 통상인인 B가 위 행정소송의 결과를 쉽게 알기는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여 B의 인도지연에 위법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또한 B의 종전 부동산은 사업지구 내 공원부지로 될 것이 예정되어 있었고, B가 종전 부동산을 인도하기 전에 철거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이주기한이 도과하고 나서도 철거되지 않은 건물이 많았던 사실 등을 고려하여, A조합의 손해와 B의 인도지연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도 그 판결이유로 고려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환송판결에서는 B가 다툰 처분이 당연무효이거나 취소된 바가 없으므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나 A조합 정관에 의거하여 B의 인도지연 행위 자체로 위법성이 인정되고, B의 인도지연과 A조합의 사업지연 사이 인과관계를 부정할 것은 아니라고 보면서, B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으며, 특히 '손해액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석명권을 행사하고 증명을 촉구하여 이를 밝히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관련된 모든 간접사실을 종합하여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액을 판단하였어야 한다'라는 취지로 환송하였다. 파기환송심에서는 환송판결의 취지대로, B의 인도지연으로 인하여 A조합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인정하였는데, 특기할 만한 점은 B 외에 다른 부동산 소유자들이 인도를 거부하였던 사정이나 A조합이 예정된 사업기간 내에 정비사업을 마친 사정 등을 손해배상액에 대한 '책임제한 사유'로 고려하였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총계 5억 2000여만 원의 사업비용 증가분을 모두 B의 인도지연에 의한 A조합의 손해액으로 보면서도, B의 책임을 10%로 제한하였으며, 이러한 파기환송심 판결(서울남부지방법원 2019. 5. 10. 선고 2018나56334 판결, 이하 '대상판결')에 대하여 B는 재상고하였으나, 대상판결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의 송달로 확정되었다. 3. 평석 가. 환송판결은 B의 인도지연에 의한 인과관계 있는 손해액은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요지의 법리를 설시하였다. 하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A조합에게 법원이 손해액에 관하여 석명하도록 명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증명을 촉구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증명이 사안의 성질상 곤란한 경우 적어도 인과관계 있는 손해액의 최대한도인 액수가 드러날 정도의 증명은 이루어지도록 한 후 간접사실을 종합하여 법원이 손해액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 취지에 따라 대상판결은 제반 간접사실을 종합하여 손해액을 판단하였는데, 특별히 B의 인도지연 외에도 A조합 사업지연에의 공동 원인이 있었다고 보이는 여러 사정 등을 고려하여 '손해배상액의 제한 법리'로 B의 책임범위를 10%로 제한하였다. 그리고 이는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수긍할 만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의 결론은 구체적인 입증 없이 인과관계 있는 손해액 판단을 법원의 재량 사항에 도맡겨 버리는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어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나. 특히, 사안에 따라 부동산 소유자의 인도지연에 의한 손해와 다른 요인에 의한 손해를 구분할 수 있는 경우도 가능할 것인데, 바로 이 사건의 경우가 위와 같이 손해의 구분이 능히 가능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사건에서는 B의 인도 이전에 이미 사업구역 내에서 공사가 진행된 사실이 확인되었고, 예정 사업시행기간 내에 준공, 사용허가, 조합원 입주까지 사업이 모두 완료되었으며, B의 인도지연 외에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 4000여 명의 교통영향평가 재심의 요청이 있는 등 다양한 사정이 개입되기도 하여, A조합이 주장하는 사업비용 증가의 손해액이 모두 B의 인도지연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에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는 사정들이 있었고, 여기에 더하여 시공사는 종전 부동산 철거지연 등에 따른 추가비용을 특정하여 A조합에 청구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하였으므로, 시공사가 언급한 위 추가비용에 대한 석명이 이루어졌다면 B의 인도지연에 따른 특정 손해액이 밝혀질 여지도 없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그러한 입증과정을 확인하는 것보다 손쉬운 '손해배상책임의 제한 법리'로 결론을 내렸다. 다. 대상판결이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여 결론을 내리고자 하였더라도, 위와 같이 인과관계 있는 손해액에 대한 증명이 가능해 보이는 이 사건에서마저 구체적 손해액에 대한 석명 없이 판단한 결론이 확정되었는바, 이후 정비사업과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는 언제나 부동산 소유자의 인도지연이 있기만 하면 (인과관계에 대한 구체적 심리 없이) 조합이 주장하는 손해 및 그 손해액은 존재하는 것이 되고, 다만 법원의 재량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의 제한 법리로써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는 방식으로 후행 판결례들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러한 결론이 반드시 불합리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고 하겠으나, 법원이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손해 발생 경위, 손해의 성격 등 관련된 모든 간접사실을 종합하여 손해액을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 때는, 인과관계 있는 손해액에 대하여 심리 노력을 다 하였음에도 손해액 입증이 곤란한 경우에 한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하지 아니하고 그 때 그 때 법원의 재량으로 손해액을 적절히 제한하는 판단을 하게 된다면, 이러한 판단은 임의성을 떠나서 사회정의와 형평에 기초하는 자유심증주의에 위반될 여지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법원이 석명권을 행사하지 않고 재량에 기초하여 손해배상책임 범위를 제한하고자 한다면, 손해배상을 구하는 조합의 입장에서는 인도지연에 의한 손해액의 입증부담을 상당히 더는 반면,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려는 피고에게 입증 부담이 전도되는 결과에 이르게 될 우려가 있을 수 있고, 조합측은 우선 손해를 과장하여 청구하고자 할 유인도 가지게 되므로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정비사업에서 부동산 소유자의 인도지연이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대상판결이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사료되며, 법원이 손해배상책임 법리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에는 입증 노력을 다하여도 인과관계 있는 손해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임을 심리하고 이를 판결에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그러하지 아니한다면, 손해배상액 제한 법리의 재량성을 축소하기 위하여 손해배상 제한의 기준을 구체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겠으나, 정비사업에 개입되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할 때 이러한 방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4. 결론 대상판결은 정비사업이 시행될 때에 부동산 소유자의 인도지연으로 인한 손해액을 판단함에 있어서, 사업 진행 과정의 제반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전체 손해액을 산정하고, 손해배상책임의 제한 법리로 인도지연한 소유자의 책임범위를 정하였다. 이러한 판결 내용은, 정비사업에서 사업의 지연을 가져오는 요소에는 수없이 다양한 것들이 있어 일부 소유자의 인도지연과 인과관계에 있는 손해를 가려내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고, 구체적 타당성 있는 판단을 도모하였다는 데에도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손해액에 대한 입증이 가능한 경우에까지 손해배상책임 제한의 법리로 해결하고자 하는 결과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고, 이 경우 자유심증주의에 반하거나, 주장하는 자의 입증책임을 부당히 경감시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정비사업 부동산 소유자의 인도지연에 의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있어서 손해배상책임 제한의 법리는 손해액 입증이 노력을 분명하게 다 하였음에도 이러한 손해액 산정이 어렵다고 밝혀진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오경빈 변호사 (법무법인 KCL)
재건축정비사업
이주지연
오경빈 변호사 (법무법인 KCL)
2019-10-24
1
2
3
4
banner
주목 받은 판결큐레이션
1
[판결] 법률자문료 34억 원 요구한 변호사 항소심 패소
판결기사
2024-04-18 05:05
태그 클라우드
공직선거법명예훼손공정거래손해배상중국업무상재해횡령조세사기노동
달리(Dali)호 볼티모어 다리 파손 사고의 원인, 손해배상책임과 책임제한
김인현 교수(선장, 고려대 해상법 연구센터 소장)
footer-logo
1950년 창간 법조 유일의 정론지
논단·칼럼
지면보기
굿모닝LAW747
LawTop
법신서점
footer-logo
법인명
(주)법률신문사
대표
이수형
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년 8월 24일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신동진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층
발행일자
1999년 12월 1일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인터넷 법률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인터넷 법률신문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