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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없는 음주운전자로부터 채혈한 혈액 감정서의 증거능력
Ⅰ. 사실관계 (1) 피고인은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가다가 앞 차량의 뒷부분을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내 의식을 잃은 채 119구급차량에 의해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고, 사고 발생 후 약 1시간 뒤 응급실로 출동한 경찰관은 법원 영장 없이 피고인의 아들의 동의를 받고 간호사로 하여금 의식이 없는 피고인으로부터 채혈을 하도록 하고, 이를 임의 제출받았다(혈중알코올농도 0.211%). 검사는 위 채혈에 따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의뢰회보 등을 증거로 피고인을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으로 기소하였으나, 1심은 사전·사후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강제채혈은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하여 적법절차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한 것으로 볼 것이고, 이러한 채혈에 기초하여 얻어진 감정의뢰회보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2)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취지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였고, 이에 검사는 상고하였다. Ⅱ. 판결요지(상고기각) (1) 피의자의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사전 압수영장 또는 감정처분허가장 없이 채혈하고 사후영장도 발부받지 아니한 채 이루어진 혈액 중 알코올농도에 관한 감정의뢰회보는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수집하거나 그에 기초하여 획득한 증거로,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동의가 있더라도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2) 음주교통사고를 야기하여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있는 피의자에 대한 긴급 강제채혈은 ① 호흡측정과 채혈 동의가 불가능하고 법원으로부터 사전 압수영장 등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는 긴급한 상황의 경우에, ② 주취 등 증적이 현저하고 범행 직후에 후송되어 응급실이 준범행장소로 인정되는 등 준현행범인의 요건이 충족되고, ③ 의료인에 의한 의학적 방법을 통한 최소한의 채혈이 있을 때 가능하며, ④ 이때에도 사후 영장은 반드시 '지체 없이' 발부받아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채혈행위의 성질 채혈의 성질에 관하여 종래 검증설, 검증·감정설, 압수수색 및 감정설, 압수수색설 등으로 나뉘었다. 판례는 채혈을 감정을 위한 하나의 처분으로 보아 감정처분허가장을 받아 행해도 되고, 압수의 집행을 위한 처분으로 보아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행해도 된다고 한다. 실무에서는 먼저, 감정인을 위촉해야 하는 감정절차보다는 압수수색절차가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어서 압수수색영장을 받는 실무가 일반적이다. 2. 긴급 강제채혈의 요건 (1) 실무상 문제 의식 없는 음주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고 희석되기 때문에 사전영장 없이 긴급행위로서 채혈을 할 필요성이 있는데 법에 규정된 긴급강제처분 중 어느 규정을 통해서 가능한지 문제되었다. 실무에서는 그간 ①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 제2호의 체포현장에서의 긴급 압수수색에 의한 방법 ② 제216조 제3항에 규정한 범죄 장소에서의 긴급 압수수색에 의한 방법 ③ 증거인멸의 염려를 이유로 긴급체포를 하고 제217조 제1항의 긴급압수수색에 의한 방법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중 현행범 또는 준현행범으로 체포하는 방법은 교통사고 발생 시와 채혈 시까지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경우 현행범 등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되는 사례가 있었다. 제216조 제3항에 따른 사후 압수영장에 대하여도 병원 응급실은 문언상 범죄장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된 사례가 다수 있었다. 한편 긴급체포 후의 압수수색 방법은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음주전과가 2회 이상이거나 혈중알코올농도가 0.2퍼센트 이상인 경우만 법정형이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죄로 긴급체포 대상이고, 그 이외에는 법정형이 장기 3년 미만이어서 긴급체포 대상이 아니라는 문제점이 있다. (2) 대상판결의 의의 본 판례는 사전영장 없이 이루어지는 긴급채혈을 허용하고, 법적 근거가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3항에 의한 범죄장소에서의 긴급압수수색임을 밝히면서, 그 요건을 구체적으로 설시하고 있다. (3) 검토 그런데 본 판례의 기준에 대해서도 사회통념상 범행 직후라고 볼 수 있는 시간 내가 어느 정도인지, 범죄장소에 준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장소가 예로 들어진 병원 응급실 이외에도 인정될 수 있는지 등 '시간적·장소적 근접성'에 대한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제216조 제3항의 포섭범위를 너무 좁히는 해석은 긴급 채혈을 하지 못하는 실무상 공백을 초래하므로 그 적용범위를 합리적으로 확장하여 긴급한 증거수집의 목적을 달성할 필요성이 있다. 현행법은 긴급압수수색에 대해 압수물이 있는 경우 사후에 법관의 영장을 받도록 하여 사법적 통제가 가능하므로 범행직후의 범죄장소에 준하는 상황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인정하여도 될 것으로 본다. 3. 영장주의 위반의 문제 (1) 사전 영장주의 위반 의식 없는 음주운전자가 사고 현장으로부터 원거리 병원으로 장시간 후송되는 경우에는 긴급성 요건이나 준현행범 및 범죄장소에 준하는 상황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사전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채혈을 하여야 함에도, 수사기관이 영장을 받지 않고 긴급을 요하지 않는 강제채혈을 한 때에는 영장주의 규정을 위반한 중대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채혈에 기초한 감정의뢰회보는 독수의 과실로서 증거능력이 배제된다. (2) 사후 영장주의 위반 제216조 제3항의 '범행직후의 범죄장소'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술냄새 등 범죄의 증적이 현저하고 범행 직후에 후송된 응급실이 준범행장소로 인정되는 등 준현행범인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므로, 체포현장은 아니지만 현행범체포에 준하는 정도의 시간적·장소적 근접성을 요구하고 하고 있다. 따라서 제216조 제3항의 헌법적 근거는 헌법 제12조 제3항 단서로서 압수수색에 있어서의 영장주의의 예외에 해당하여, 긴급행위로 사전 영장없이 압수수색을 하되, 압수물이 있는 경우 계속 압수를 위해서는 사후에 영장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긴급채혈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 적법한 채혈임에도, 법원으로부터 사후적 허가장의 성질을 갖는 사후 영장이 기각되어 발부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 혈액채취가 소급하여 위법한 것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즉, 수사기관이 대상 판결에 따라 긴급채혈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채혈한 다음 사후 압수영장을 청구하였으나, 긴급성·현행범성 등 요건 충족에 대한 견해차이, 특히 시간적·장소적 근접성'에 대한 해석상 차이로 법원으로부터 영장이 기각되어 사후영장을 발부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언제나 채혈 자체가 소급적으로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긴급채혈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영장이 기각된 때에는 채혈 자체가 위법이나, 그 요건을 갖춘 적법한 긴급채혈에 대한 사후영장 기각이 부당한 경우에는 채혈 자체가 소급적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4. 사후영장의 부당 기각에 대한 해결책 (1) 먼저, 본질적으로 적법한 긴급채혈에 대한 법원의 사후영장 기각이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검사는 압수한 혈액을 영장기각 후에도 계속 보관하고 있는 형식적 불법상태를 신속히 해소하기 위하여 법원으로부터 사전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에게 혈액을 반환하면서 사전 영장에 의하여 그 혈액을 다시 압수하거나, 임의제출 형식(피의자의 의식 회복시)으로 재압수하는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적법하게 취득한 증거물이 산일(散逸)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 사후영장이 기각되어 채취한 혈액을 즉시 반환(법 제217조 제3항 참조)해야 할 때 이미 혈액 감정이 완료된 경우에는, 감정을 하고 남은 혈액을 계속 보관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즉시 반환하면 된다. 다만, 이 경우에는 혈액을 기초로 하여 취득한 감정의뢰회보의 증거능력이 문제되는데, 기소 후 공판단계에서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에 의하여 압수·수색 방법의 적법성이 다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공판에서 긴급채혈 자체의 적법성 여부를 '채혈시'를 기준으로 실질적으로 심사하여 그 요건을 모두 갖추어 적법한 긴급채혈이어서 사후영장 기각이 부당하였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채혈 자체는 적법하므로 위법수집 증거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혈액 감정서는 적법한 채혈에 기초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로서 독수독과(毒樹毒果)에 해당하지 아니므로 증거능력이 있다고 할 것이다.
2014-03-17
공동피고인의 번복진술은 새로운 증거로 봐야
1. 사실관계의 요약(서울고등법원 2011. 6. 30 자 2010재노75 결정) A와 B는 역전에서 노숙을 하던 지적장애인이다. 2007. 5. 14. 역전에서 30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학교에서 노숙인으로 보이는 변사체가 발견되었고, A와 B는 역전에서 살인혐의로 긴급체포되었다. 이들은 체포당시 혐의를 부인하다가, 자백을 하였는데, 자백의 취지는 'A와 B는 꼬맹이들과 함께 변사자를 데리고 고등학교까지 갔는데, 그곳에서 B는 변사자의 뺨을 2대 때린 후 꼬맹이들과 함께 역전으로 돌아왔고, A는 이들이 돌아간 뒤 현장에 남아 변사자를 수십 분 동안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A와 B는 1심법정에서 자백을 하였고, 1심은 A에게 징역 7년(상해치사혐의), B에게 벌금 200만 원(폭행혐의)을 선고하며, 'A와 B의 법정진술, 사체검안서 등'을 증거로 설시하였다. A는 허위자백을 하였던 것이라며 1심판결에 불복하며 항소를 하였고, B는 항소를 하지 않았다. A에 대한 항소심재판과정에서 B가 증인으로 출석하였고, B는 이전 자백내용과 동일한 증언을 하였다. 물적 증거가 전혀 없는 사안임에도 항소심은 B의 진술을 신뢰하였고, A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며, 증거는 '1심판결의 기재'를 원용하였다. A는 상고를 포기하였고, 판결은 확정되었다. 그런데, 6개월 후 위 꼬맹이들이 잡혔고, 꼬맹이들은 'A, B와 공동으로 범행을 하였다'는 상해치사혐의로 기소되었다. 꼬맹이들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B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신과 A, 꼬맹이들 모두 사건현장에 간 적 없다. 무서워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라는 취지로 증언하였고, 재판부는 'B의 번복 진술의 태도나 내용에 정신지체나 장애로 인한 문제가 있다고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표현을 쓰며, 번복진술을 신뢰한 후 꼬맹이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고, 이 무죄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대법원이 'B의 번복진술을 신뢰한 원심의 증거취사선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최종판단을 하였는데도, 여전히 A는 4년 반가량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한 여타의 문제점은 차치하고, '공동피고인의 진술번복과 재심사유'라는 쟁점만을 놓고 이 사건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의 재심사유는 주장하기 힘든 상황 위에서 B는 A에 대한 항소심법정에서 증인의 지위로 증언을 하였으므로, '원판결의 증거 된 증언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상의 '원판결의 증거 된 증언'이라 함은, 원판결의 증거로 채택되어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데 사용된 증언('증거의 요지'란에 설시된 증거)을 뜻하는 것이고, 단순히 증거조사의 대상이 되었을 뿐,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로 사용되지 않은 증언은 위 '증거 된 증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2003도1080 판결, 95모38 결정 등 참조). 이 사건에서 재심대상판결인 항소심판결은, 'B의 항소심에서의 증언'을 증거로 설시한 것이 아니라, '1심판결의 해당란 기재'를 원용하였는데, 1심판결에서는, '피고인들(A, B)의 각 법정진술'이 증거로 채택·인용되었다. 그렇다면, 위 대법원 판결에 따를 때, B를 위증혐의로 고소하고 유죄확정판결을 받아낸다 한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의 재심사유상의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 할 것이다. 3. 공동피고인의 번복진술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의 새로운 증거로 보아야 가. 대법원의 입장으로 원용되고 있는 판례(93모33결정) 공동피고인의 번복진술을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자주 원용되고 있는 대법원의 결정은 18년 전의 결정인 93모33결정으로 그 요지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서 말하는 '무죄로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때'란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하였거나 발견되었어도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로서 증거가치에 있어 다른 증거에 비하여 객관적으로 우위성이 인정되는 증거를 말하는 것이므로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증거로 조사채택된 공동피고인이 확정판결 후 앞서의 진술내용을 번복하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학계의 동향 학계는, 피고인이나 공동피고인은 좁은 의미의 증거방법이 아니므로 증인의 경우와는 달리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증거자료의 내용이 달라진다면 새로운 증거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는 입장도 있으나, 재심대상판결에서 실질적 판단을 거친 증거와 동질의 증거는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진술번복은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재심사유에 대한 학계의 논의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 집중되어 있긴 하나, 세부적인 쟁점인 '공동피고인의 진술번복과 신규성'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논의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 소결 진술번복의 신규성을 부인하는 견해는, 동일인의 상반된 진술에 대한 평가는, 증거의 증명력에 대한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의 문제라는 점, 실질적인 판단을 거친 증거와 동질의 증거는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점, 허위임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판명되지 아니한 번복·변경된 진술에 대하여 단지 법원에 새롭다고 하여 그 신규성을 인정하여 재심을 허용하는 것은 증거의 신규성 요건을 형식적으로만 파악하여 형해화함으로써 형사소송법의 취지와는 달리 재심사유를 부당하게 확대한다는 점 등을 논거로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위 논거들은, 확정판결 전후로 달라진 증인의 진술이나 이를 내용으로 하는 진술서 등을 새로이 증거로 제출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형식적인 면에서 새로 발견된 증거라고 보아 이 사건 조항에서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게 되면, 이는 확정판결에 의하여 종전 증거들이 허위임이 밝혀진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재심을 허용하려고 한 형사소송법 제420조 및 그 제1, 2호의 취지의 기본 정신에 반하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동피고인의 번복진술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1(서류 또는 증거물), 2호(증인, 감정인, 통역인, 번역인)의 적용을 받을 수 없으므로, 진술번복의 신규성을 부인하는 견해에 따르면, 이 사건 사안에서 공동피고인 B의 번복진술을 재심사유로 주장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공동피고인 B는 '자신도 A처럼 사람을 죽였다는 혐의를 뒤집어쓸까봐 무서워서 거짓진술을 하였다'고 실토하였다. B의 거짓진술의 경위와 관련하여, A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할 것이고, A가 자신의 재판 확정 후에 있었던 B의 번복진술을 근거로 재심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형사사법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일본 형사소송법도 우리나라와 같은 재심사유를 두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공동피고인이 유죄판결확정 후 진술을 번복한 경우나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던 증인이 새롭게 진술한 경우, 이를 새로운 증거로 보는 견해'가 유력한 학설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피고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신규성 인정을 제한하는 사례도 보임, 일본형사소송법 주석서 참고). 필자의 사견도 위와 같이 번복진술을 새로운 증거로 보되 명백성 문제에 대한 검토를 통하여 재심사유를 제한하면 된다고 본다. 한편,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대법원 2009. 7. 16.자 2005모472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위 쟁점과 관련하여 대법관들의 의미 있는 입장표명을 확인할 수 있는바, 번복진술 또는 신용성의 정황적 보장하에 이루어진 번복진술을 새로운 증거로 보는 판례변경을 기대하게끔 한다. 대법원은 위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하여,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법원으로서는 새로 발견된 증거만을 독립적·고립적으로 고찰하여 그 증거가치만으로 재심의 개시 여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재심대상이 되는 확정판결을 선고한 법원이 사실인정의 기초로 삼은 증거들 가운데 새로 발견된 증거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고 모순되는 것들은 함께 고려하여 평가하여야 한다'(종합평가설)면서, 이전의 '새로 발견된 증거의 증거가치만을 기준으로 하여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인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단독평가설)는 판례를 변경하였다. 위와 같이 '명백성의 판단 기준'과 관련한 판례를 변경하면서, 9인의 대법관이 '새로운 증거'의 판단 기준에 대한 의견도 아울러 밝혔는바, 당시 6인의 대법관(대법관 김영란, 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박일환, 대법관 김능환, 대법관 전수안)은, '새로 발견된' 증거인지 여부는 재심대상인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법원이 유죄의 사실인정을 하면서 그 기초로 삼은 증거자료에 의하여 인식하였던 내용과 다른 것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결정되어야 한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 의견은, 종전 소송절차에서 인식한 진술(번복 전 진술)과 다른 진술(번복진술)을 새로운 증거로 보되, 명백성 인정 여부에 대한 심사도 별도로 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리고 3인의 대법관(대법관 양승태, 대법관 이홍훈, 대법관 안대희)은 '진술서 등이 이전과 비교하여 실질적인 차이 없이 단지 증거의 형식만을 달리하여 반대되는 내용이나 태도로 바뀐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확정판결 당시 이미 발견되어 실질적인 판단을 거친 기존의 진술 등과 동질의 것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새로운 증거라고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의견을 밝혔으나, 위 3인의 대법관의 의견을 반대해석하면, '실질적인 차이 있는 진술변경의 경우'에는, 신규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 할 것이다(위 3인의 대법관이 언급한 '실질적인 차이'가 개개 사안에서 어떻게 이해될 것인지 궁금한바, 필자는 '신용성의 정황적 보장 하에 이루어진 진술'로 이해하고 싶다). 이 사건에서 B는 공범사건의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재심대상 소송절차에서의 진술을 번복하였고, 번복진술을 신뢰한 판결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위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새로운 증거의 판단기준'과 관련하여 의견을 개진한 대법관 9인은 이 사건에서 B의 진술번복을 새로운 증거로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 맺음말 형사소송법상의 재심은 피고인에게 한줄기 빛을 제공하는 창의 역할을 하도록 운영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헤르만 헤쎄의 데미안에는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라는 구절이 있다. 껍질을 깨는 과정을 겪지 않고서는 새로운 탄생이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확정판결에 기초한 법적 안정성이라는 껍질을 깨트리는 고통 없이는 실체적 진실에 바탕을 둔 실질적 정의를 확보하는 것은 하나의 신기루에 불과하다(권오걸 교수의 논문 인용). '공동피고인의 진술번복만으로는 재심사유로 볼 수 없다'는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논의를 이 사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18년 전의 93모33결정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변경되어야 하고, 진술번복과 관련한 재심사유에 대한 논의가 깊이 있게 진행되었으면 한다.
2011-10-24
독수과실(毒樹果實)의 원리
I. 들어가는 말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이 1968년 이후 약 40년간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성질·형상 불변론’에 따른 위법하게 수집한 비진술증거의 증거능력 인정입장을 변경했다(대법원 2007. 11.15. 선고 2007도3061 판결). 대법원은 증거배제의 기준으로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제시하였다. 동시에 대법원은 ‘독수과실’, 즉 위법수집증거의 파생증거의 증거능력도 부정되어야 함을 밝히며 그 기준으로는 위법수집증거와 파생증거 사이의 ‘인과관계 희석 또는 단절 여부’를 제시하였다. 대상판결은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독수과실의 원리의 사정(射程)방향과 범위를 가늠케 해주는 중요한 판결이다. II. 사실관계 피고인은 강도신고를 받고 출동한 사법경찰관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체포되었다. 그런데 사법경찰관은 피고인의 또 다른 범행을 의심하여 피고인의 주거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아니한 채, 피고인에게 “이 사건 전의 범행이 있으면 경찰관이 찾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라, 그렇게 해야 너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고는 피고인으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진술을 획득했다. 사법경찰관은 이러한 피고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피해자 소유의 손가방 등을 임의제출 받아 압수하였고, 이 압수물에 대하여 사후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었다. 이후 피고인에 대하여 최초로 진술거부권이 고지된 후, 피고인은 강취 행위를 자백하였다. 그리고 1심 제1회 공판기일에서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나 피해자들에게 강압적이고 의도적으로 심하게 하면서 가방을 빼앗은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은 2심에 이르기까지 계속 피해자에 대한 범행을 시인하였다. 한편 2심 제3회 공판기일에 출석한 피해자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언을 하였다. III. 쟁점 이 사건에서의 쟁점은 이하의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피고인의 주거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루어진 피고인의 진술은 진술거부권을 고지 받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것인지 여부 (2) 피고인의 위 진술을 토대로 수집한 증거인 경찰 압수조서 및 압수목록, 압수품 사진이 위법한 진술을 토대로 획득한 2차적 증거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독수과실원리의 예외에 해당하여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것인지 여부 (3)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중 피해자에 대한 부분이 독수과실원리의 예외 중 오염순화의 예외에 해당하여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것인지 여부 (4) 피고인이 1심 법정에서 한 피해자에 관한 자백 진술의 증거능력 여부 (5) 피해자가 원심 법정에서 한 진술의 증거능력 여부 등. IV.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쟁점 (1)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제1항의 ‘신문’에는 ‘진술 청취’도 포함되므로 쟁점 (1)의 피고인의 차 안 진술은 동조 위반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법원은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 배제에 대한 기준을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보다 상세하게 제시한다. 즉, “법원이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때에는 먼저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1차적 증거 수집과 관련된 모든 사정들, 즉 절차 조항의 취지와 그 위반의 내용 및 정도, 구체적인 위반 경위와 회피가능성, 절차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 또는 법익의 성질과 침해 정도 및 피고인과의 관련성, 절차 위반행위와 증거수집 사이의 인과관계 등 관련성의 정도,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 등을 살피는 것은 물론, 나아가 1차적 증거를 기초로 하여 다시 2차적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한 모든 사정들까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주로 인과관계 희석 또는 단절 여부를 중심으로 전체적·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쟁점 (2)에서 사법경찰관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단지 수사기관의 실수일 뿐 피의자의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적이고 기술적인 증거확보의 방법으로 이용되지 않았고, 그 이후 이루어진 신문에서는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여 잘못이 시정되는 등 수사 절차가 적법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정, 최초 자백 이후 구금되었던 피고인이 석방되었다거나 변호인으로부터 충분한 조력을 받은 가운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였음에도 다시 자발적으로 계속하여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하였다는 사정, 최초 자백 외에도 다른 독립된 제3자의 행위나 자료 등도 물적 증거나 증인의 증언 등 2차적 증거 수집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정, 증인이 그의 독립적인 판단에 의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소환을 받고 임의로 출석하여 증언하였다는 사정 등은 통상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할만한 정황에 속한다라고 판시한다. 대법원은 쟁점 (4)의 경우는 피고인이 1심 법정에서 한 피해자에 관한 자백 진술은, 피고인의 독립된(자발적) 행위가 개입되어 최초의 위법수집증거인 피고인의 차안 진술과의 인과관계를 단절시켰거나 적어도 희석시켰다고 볼 것이어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쟁점 (5)에 대하여 대법원은 피해자가 당심 법정에서 한 진술은 물적 증거와 달리 인격을 지닌 피해자의 자발적인 행위가 개입되어 최초의 위법수집증거인 피고인의 차 안 진술과의 인과관계를 단절시켰거나 적어도 희석시켰으므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V. 평석 쟁점 (1), (4), (5)에 대해서는 필자는 대법원의 견해에 동의한다. 문제는 쟁점 (2)의 압수 증거물과, 쟁점 (3)의 피의자신문조서 중 피해자에 대한 진술부분이다. 이 증거는 위법하게 획득한 자백을 토대로 획득한 2차 증거이다. 필자는 대법원의 논지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첫째, 대법원은 경찰관의 진술거부권 불고지를 ‘실수’라고 평가한다. 대법원의 설시대로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를 고려해야 함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건 전의 범행이 있으면 경찰관이 찾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라, 그렇게 해야 너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발언은 애초에 피고인의 진술거부권 포기를 의도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둘째, 대법원은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고 자백을 획득한 이후 이루어진 신문에서는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여 잘못이 시정되었다, 변호인으로부터 조력을 받은 가운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였음에도 다시 자발적으로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하였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이러한 ‘1차적 증거를 기초로 하여 다시 2차적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한 사정’ 때문에 인과관계가 단절 또는 희석된다고 파악한다. 그러나 위법한 진술획득 이후에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획득한 자백의 증거능력이 부정되지 않는다면 수사기관은 수사 초기에는 진술거부권 고지를 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의 이러한 평가는 수사기관이 일단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고 피의자의 자백을 확보한 후에 진술거부권 고지는 사후에 요식적으로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셈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았다고 지적하나, 기록상 경찰 및 검찰 신문 당시에 변호인이 참여하여 피고인을 조력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참고적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의 2004년 ‘Fellers v. United States 판결’[124 U.S. 1019 (2004)]은 진술거부권, 변호인선임권 등이 고지되지 않은 채 비공식적 신문에서의 자백이 있은 후 미란다 고지가 이루어진 자백을 다시 획득했다 하더라도 이는 ‘독과’로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셋째, 대법원은 최초 자백 외에도 다른 독립된 제3자의 행위나 자료 등도 물적 증거나 증인의 증언 등 2차적 증거 수집의 기초가 되었다고 파악하고 있으나, 이는 기록상 확인되지 않는다. 피고인의 최초 자백이 없는 상황에서 사법경찰관이 물적 증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을 만한 지식 등 ‘상당한 이유’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정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행 형사절차에서 피의자신문시 변호인참여권이 인정되고 있지만, 실제 변호인참여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피의자신문절차에서는 여전히 밀행주의가 관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술거부권은 수사기관의 자백강요에 맞서 시민이 행사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어권인 바, 이 권리에 대한 사전고지 없이는 형사절차에서 이 권리는 제대로 행사되기 힘들다. 따라서 진술거부권의 불고지는 헌법상 기본권이 진술거부권을 즉각적으로, 그리고 중대하게 침해하는 위법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상판결에서 경찰관의 진술거부권 불고지는 고의적으로 이루어졌다. 원심판결인 서울고등법원 2008. 11.20. 선고 2008노1954 판결이 지적하였듯이 독수과실원리의 예외인 불가피한 발견의 예외, 선의의 예외, 임의적 진술에 의한 증거물의 획득의 예외 등이 적용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상의 점을 고려할 때 쟁점 (2)와 (3)의 증거의 증거능력은 부정되어야 한다.
2009-05-25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채택
I. 들어가는 말 지난 11월15일 대법원은 1968년 이후 약 40년간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성질·형상 불변론’(대법원 1968년 9월17일 선고 68도932 판결)에 따른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 인정입장을 변경했다. 이러한 입장변경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는 대물적 강제처분의 영역에서도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채택해야 한다는 학계의 오랜 요청이다. 둘째는 1997년 개정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 배제를 명문화하였다는 점이다. 필자로서는 학계의 요청을 장기간 무시하다가 법개정이 있은 이후에야 판결을 변경하는 법원의 소극적 태도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향후 수사기관의 불법한 대물적 강제처분을 억지(抑止)하여 헌법상 영장주의의 정신을 강화·심화시킬 것으로 예상할 것이기에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번 판결은 신설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를 위한 해석지침을 미리 제공하였다는 의미도 있다. II. 사실관계와 경과 이 판결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피고인 김태환 제주도 지사는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법선거운동을 기획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검사는 도지사 정책특별보좌관이 사용하던 사무실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그 곳을 방문한 도지사 비서관이 들고 있던 각종 문서를 압수하였고, 이는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물로 제출되었다. 그러나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은 압수과정이 헌법 및 형사소송법이 정한 압수수색에 관한 절차 규정을 위반하였고 그 위법 정도가 중대하므로, 위 압수물들은 물론 이를 기초로 획득한 2차적 증거물들도 모두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원심은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압수물의 증거능력을 부정할 수 없는 기존의 판례에 기초하여, 이 사건 압수수색 절차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위법사유가 존재하는지에 관하여 판단하지 않고 이 사건 압수물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하였다. 대법원은 기존의 ‘성질·형상 불변론’을 변경하고 피고인의 유죄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III. 판결 분석 1. 재량적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채택 먼저 다수의견은 “수사기관의 강제처분인 압수수색은 그 과정에서 관련자들의 권리나 법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적지 않으므로 엄격히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를 준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된 증거는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라고 판단한다. 그렇지만 다수의견은 “형식적으로 보아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된 증거라는 이유만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다수의견은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 과정에서 이루어진 절차 위반행위와 관련된 모든 사정을 전체적·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증거의 증거능력의 배제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하여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하여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다수의견은 “절차 조항에 따르지 않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대응책은 이를 통하여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밝힘으로써 ‘독수과실’, 즉 위법수집증거의 파생증거의 증거능력도 부정되어야 함을 밝힌다. 그리고 다수의견은 ‘독수과실’ 배제의 판단은 위법수집증거와 파생증거 사이의 “인과관계 희석 또는 단절 여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이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확립한 독수과실의 원리와 그 예외를 우리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수용했으며, 또한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던 과거 대법원 1977년 4월26일 선고 77도210 판결의 정신이 부활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 한편 별개의견은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채택 자체에는 동의하면서도, 배제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제출한다. 즉 별개의견은 위법수집증거의 배제는 그 증거수집 절차와 관련된 모든 사정을 전체적·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그 증거수집 절차의 위법사유가 영장주의의 정신과 취지를 몰각하는 것으로서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해야 할 만큼 중대한 것이라고 인정될 경우”에는 그 증거능력이 부정되며, 그 위법 사유가 이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압수물의 증거능력이 부정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다. 이상에서 다수의견이건 별개의견이건 미국식의 자동적·의무적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채택하지 않고, 영국이나 캐나다식의 재량적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채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은 자동적 증거배제는 수사기관의 경미한 위법이 발생한 경우도 증거배제를 결과를 낳아 오히려 형사정의에 대한 불신이 조장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견과 별개의견 공히 증거수집의 위법성 판단시 고려되어야 할 사안으로는, “절차 조항의 취지와 그 위반의 내용 및 정도, 구체적인 위반 경위와 회피가능성, 절차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 또는 법익의 성질과 침해 정도 및 피고인과의 관련성, 절차 위반행위와 증거수집 사이의 인과관계 등 관련성의 정도,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 등을 제시하고 있는 바, 이는 향후 수사기관의 실무와 법원의 해석에서 유의해야 할 지점이 될 것이다(별개의견이 적시하는 고려사항에서는 절차위반과 증거수집 사이의 인과관계가 빠져 있지만, 별개의견이 제출된 이유가 이 점 때문은 아니므로 의식적 누락은 아니라고 보인다). 2. 다수의견과 별개의견 간 차이의 함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은 증거배제 판단의 기준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수의견은 위법수집증거는 원칙적으로 배제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수사기관의 절차위반이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 때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별개의견은 다수의견이 말하는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내용인지 알기 어렵다고 비판하며, “중대한 위법”을 배제기준으로 제시하였다. 그런데 평석자가 보기에는 다수의견의 “적법절차의 실질적 내용 침해”와 소수의견의 “중대한 위법”은 표현상의 차이 일뿐, 실제 내용은 공히 헌법과 법률상 영장주의의 정신과 취지의 몰각을 의미한다는 점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평석자가 주목하는 두 견해의 차이는 다수의견은 배제의 원칙을 강하게 강조하면서 예외적 인정의 조건을 서술하고 있는 반면, 별개의견은 배제 단계에서 중대한 위법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별개의견에 따르면 수사기관의 절차위반이 중대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바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지만, 다수의견에 따르면 절차위반이 중대하지 않다는 판단 외에 “그 증거의 증거능력의 배제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하여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하여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판단이 있어야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이 점에서 다수의견이 상정하는 증거배제의 범위는 별개의견이 상정하는 범위 보다 넓으며, 다수의견이 상정하는 증거인정의 요건은 별개의견이 상정하는 요건 보다 까다롭다. 다수의견은 위법수집증거의 파생증거의 증거능력도 원칙적으로 배제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는데 반하여, 별개의견은 이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확인된다. 장기간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채택되지 못하였기에 우리 수사실무에서 대물적 강제처분의 위법성은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지 못하였다. 새롭게 위법수집증거법칙을 채택하는 상황에서는 수사기관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이 법칙의 실효성 보장을 위하여 중요하다. 이 점에서 이 법칙의 예외가 인정되는 조건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 보다는 이 법칙의 근본정신이 강하게 부각되는 것이 옳으며, 이 점에서 필자는 다수의견에 동의한다. IV. 맺음말 수사절차의 위법 때문에 일단 유죄판결이 파기된 김태환 지사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고, 수사기관은 이번 판결이 수사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형사사법의 효율성과 범죄인 필벌사상 만이 강조되던 권위주의 체제는 종식되었으며, 수사기관의 역할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범인을 잡아도 좋다는 관념은 점점 설 땅을 잃고 있다. 곧 광주고등법원은 영장의 효력범위를 초과한 압수수색의 위법, 영장의 제시 및 집행에 관한 사전통지와 참여의 위반, 압수목록 작성·교부와 관련된 위법 등을 검토하고, 이러한 수사기관의 위법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적용될 위법인지, 아니면 그 예외가 적용되어야 할 위법인지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 때 위법한 대물적 강제처분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매우 엄격하게 할 것을 의도한 다수의견의 요청이 반영될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수사기관은 철저한 내부교육과 규칙제정을 통하여, 압수·수색영장 청구시 그 대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명기되도록 하고, 압수·수색 전후의 절차에서 법률이 요구하는 사항을 철저히 준수되도록 해야 한다. 안이하게 영장을 청구하거나, 영장집행시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소중한 증거물이 재판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또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7-11-26
기소전 체포·구속적부심사단계에서의 수사기록열람·등사청구권
I. 사건 개요 및 판결 요지 사기죄로 구속된 청구외 김○억의 변호인으로서 그로부터 구속적부심사청구의 의뢰를 받은 청구인이 피청구인인 인천서부경찰서장에게 위 김○억에 대한 수사기록 중 고소장과 피의자신문조서의 열람 및 등사를 신청하였다. 피청구인은 위 서류들이 형사소송법 제47조 소정의 소송에 관한 서류로서 공판개정전의 공개가 금지되는 것이고, 이는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 제7조 제1항 제1호소정의 이른바 다른 법률에 의하여 비공개사항으로 규정된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위 비공개결정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이유로 그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이에 2003년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결정을 내린다. 즉, (1) 형사피의사건의 구속적부심절차에서 피구속자의 변호를 맡은 청구인으로서는 피구속자에 대한 고소장과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열람하여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구속적부심절차에서 피구속자를 충분히 조력할 수 없으므로, 위 서류들의 열람·등사는 변호인인 청구인에게 그 열람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핵심적 권리로서 청구인의 기본권이며, 또한 이는 변호인의 알 권리에 속한다; (2) 고소장과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열람이 헌법상 변호인의 변호권 내지 알 권리로 보호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제한이 가능하지만, 이 사안에서는 이 권리를 제한해야 할 사정이 없다; (3) 피청구인은 “소송에 관한 서류는 공판의 개정전에는 공익상 필요 기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라는 형사소송법 제47조를 근거로 하여 열람·등사를 거부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동조의 입법목적은 형사소송에 있어서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을 받아야 할 피의자가 수사단계에서의 수사서류 공개로 말미암아 그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구속적부심사를 포함하는 형사소송절차에서 피의자의 방어권행사를 제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 결 정 요 지 - 변호사가 구속적부심 절차에서 피구속자에 대한 고소장과 경찰의 신문조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피구속자를 충분히 변호할 수 없으므로 수사기록 열람·등사는 변호인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핵심적 권리로서 변호인의 기본권이며 또한 변호인의 알 권리에 속한다 II. 논의의 전제―소송기록열람·등사권과 공소장일본주의의 긴장 형사소송법 제35조는 “변호인은 소송계속중의 관계서류 또는 증거물을 열람 또는 등사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 변호인의 기록열람·등사권은 변호인이 피고인의 혐의 내용, 수사결과 및 증거를 파악하여 검사의 공격을 대비하여 피고인을 변호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권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열람·등사권은 피고인의 권리이기도 하다(법 제55조 1항, 제292조 2항, 규칙 제30조 1항). 근래까지 이러한 소송기록열람·등사권은 ‘공소장일본주의’(규칙 제118조 2항)와의 관련 속에서 볼 때, 공소제기후 증거제출 전까지의 기간 동안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에 대하여도 인정되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다. 특히 검찰측은 ‘공소장일본주의’의 취지를 강조하며 열람·등사권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1997년 헌법재판소는 공소장일본주의는 “어디까지나 법원에 대한 예단 배제의 한도 내에서 운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고, 소송기록열람·등사권열람·등사권가 헌법상 보호되는 권리임을 분명히 하였다(헌법재판소 1997.11.27. 선고, 94헌마60 결정). 공소제기후 증거제출전 단계의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 등사권을 규정한 명문의 법률규정이 없는 입법의 미비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기초로 수사기록 열람·등사권을 도출하였던 것이다. 이후 검찰도 이 결정의 취지에 따라 1997년 대검예규를 개정한 바 있다. - 평 석 요 지 - 1977년 결정이 공소제기 후 증거제출 전 검사 수중에 있는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여 '실질적 당사자주의'를 강화시켰다면 2003년 결정은 이 권리를 일정한 조건하에서 기소 전 단계로 확대시켰다. 현시점에서 두개의 결정과 대검예규의 내용을 취합하여 형사소송법에 열람·등사청구권의 허용범위, 예외, 절차, 구제방법 등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III. 대상판결 분석 대상판결인 2003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기본적으로 1997년 헌법재판소 결정의 입장에 서 있다. 2003년 결정은 수사기록의 열람·등사청구권이 “피구속자를 조력할 변호인의 권리”이자 “변호인의 알 권리”임을 명시적으로 재확인하였고,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에 의거한 피청구인의 수사기록공개거부에 대해서도 1997년 결정에서 제시한 열람·등사의 제한사유에 기초하여 그 정당성을 판단하고 있다. 또한 1997년 결정이 공소장일본주의를 이유로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거부할 수 없다고 밝힌 것처럼, 2003년 결정은 형사소송법 제47조가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03년 결정에서 심판청구 자체의 적법성 판단 문제가 선결적으로 검토되지만 이 점에 대한 검토는 생략하고, 이하에서는 본안 결정의 의미를 1997년 결정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평석하기로 한다. 1. 열람·등사권의 공소제기 이전 단계로의 ‘부분적 확장’ 상술한 1997년 결정은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는 “피고인에 대한 수사가 종결되고 공소가 제기된 이후”에 한하여 허용되며, “공소제기 이전의 수사단계에서도 열람·등사를 허용한다면 수사기밀의 누설 등으로 국가형벌권의 행사가 현저히 방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 판시내용을 반대해석하면 공소제기 이전의 수사단계에서는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될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대상판결인 2003년 결정은―구속적부심사청구를 의뢰받은 경우에 한하지만―기소전에 구속된 피의자의 변호인에게도 수사기록의 열람·등사권을 인정함으로써, 수사기관에 대한 증거개시청구권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렇게 수사기록의 열람·등사권이 인정되는 시간대를 기소전의 단계로 앞당긴 것은, 향후 헌법재판소가 구속적부심사청구라는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도 피의자의 변호인에 대하여 수사기록에 열람·등사권의 인정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는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2. 열람·등사의 대상―고소장에 대한 열람·등사의 허용 확인 1997년 결정은 열람·등사의 대상에 대하여 상세한 지침을 제시하면서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에 대해서는 “제한없이” 열람·등사가 허용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997년 결정은 고소장의 허용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3년 결정에서는 구속적부심사건 피의자의 변호인이 고소장을 열람·등사할 권리가 있느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송인준 재판관은 자신의 반대의견에서, 고소장에는 사실관계 외에도 주요한 증거방법까지 기재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고소장의 열람 및 등사를 피의자나 그 변호인에게 허용하게 되면 수사기관이 아직 조사하지 아니한 증거방법까지 피의자측에 미리 알려주게 되는 결과가 되고, 그로 인하여 주요 참고인이 소재불명이 된다거나 기타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인멸할 경우 실체적 진실발견이 어려워지고 국가형벌권의 행사가 현저히 방해받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수사 초기단계에서 피청구인이 고소장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이러한 우려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고소장에 증거방법이 나열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나열되어 있다 하여도 이를 제외하고 공개하는 것도 가능하며, 증거방법에 대한 불법적 작용은 변호사의 윤리와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인데 변호사와 같은 고도의 윤리적 주체가 범죄적 행위에까지 나아갈 것을 전제로 하여 제도를 설정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위에서 본 우려는 고소장을 피의자신문조서와 달리 취급할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라고 파악하여, 고소장에 대한 열람 및 등사를 거부한 피청구인의 정보비공개결정은 청구인의 피구속자를 조력할 권리 및 알 권리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고소장에 열거된 증거방법이 공개되면 변호인측에 의한 증거인멸 등의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고소장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구속적부를 심사하는 수사의 초기단계에 피고인을 충분히 조력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다수의견이 지적하였듯이 문제가 되는 증거방법을 제외하고 공개함으로써 극복해야지, 고소장 자체의 열람·등사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1997년 결정은 ‘참고인 진술조서’에 대하여 증인에 대한 신분이 사전에 노출됨으로써 증거인멸, 증인협박 또는 사생활침해 등의 폐해를 초래할 우려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명시하였던 바, 고소장을 ‘참고인 진술조서’에 준하여 허용할 수 있다고 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게다가 1999년 대검예규 제296호가 “피고소인·피고발인 또는 변호인은 필요한 사유를 소명하고 고소장 또는 고발장의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담당 검사는 청구인에게 그 요지를 고지함으로써 열람에 갈음할 수 있다”(제3조 제3항)라고 규정하고 있는 마당에, 헌법재판소가 고소장의 열람·등사를 막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할 것이다. IV. 맺음말 1997년 결정은 공소제기후 증거제출전 검사의 수중에 있는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여 ‘실질적 당사자주의’를 강화시켰다면, 2003년 결정은 이 권리를 일정한 조건 하에서 기소전 단계로 확대시켰다. 한편 현 시점에서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두 개의 결정과 대검예규의 내용을 취합하여 형사소송법에 열람·등사청구권의 허용범위, 예외, 절차, 구제방법 등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 헌법적 권리로 인정된 수시기록열람·등사권이 대법원규칙이나 대검예규에 의하여 제약되고 있어 헌법 제12조 제1항 위반이 문제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2004-02-20
‘검사의 자의적인 공소권행사’의 의미
Ⅰ. 사 안 1. 공소사실(가스분사기를 허가없이 소지한 범죄사실, 이하 ‘후행사실’로 약칭함)과 본건 공소사실이 기소된 경위 : 피고인 J는 1997. 12. 24. 06:00경 불심검문을 당하여 ‘수회에 걸친 절도행위와 공기호부정사용죄의 혐의’로 긴급체포되어 같은 날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런데 검사가 위 구속영장기재의 범죄사실(이하 ‘선행사실’이라 부른다)로 피고인을 신문할 당시(1998. 1. 5.), 여죄(餘罪)로 ‘후행사실’도 자백하였고 압수물까지 있었음에도 검사는 후행사건은 포함시키지 않은 채 선행사건만을 먼저 기소하였다(1998. 1. 8.). 그 후 곧이어 후행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어 같은 검사에게 배당되었다(1998. 1. 12.). 검사가 후행사건의 기소를 서두르지 않고 있는 도중에 선행사건의 판결이 확정(1998. 3. 11.)되었다. J는 1998. 3. 11. 대전지방법원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상습절도)죄와 형법위반(공기호부정사용)(이하 ‘선행(범죄)사실’로 약칭함)으로 ‘징역 1년6월 및 보호감호’를 선고 받고 청송교도소에서 그 형의 집행이 개시되었다. 검사는 후행사건을 송치받은 후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아니하다가 후행사건 송치일로부터 2개월 8일 후이며, 선행사실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인 1998. 3. 20.에야 비로소 피고인에 대한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다. 이 때 피고인은 ‘가스분사기소지를 포함한 수회에 걸친 절도사실 등’을 자백하였다. 검사는 같은 달 21. 선행기소에 대한 판결확정사실을 확인하고, 같은 달 26. 피고인에 대한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면서 후행사실만 재차 확인하고, 같은 달 29. 대전지방법원에 본건 공소를 제기하였다(이하 이를 ‘후행기소’로 약칭한다. 피고인이 선행기소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바이므로, 후행범죄사실 중 상습절도 부분은 선행기소에 대한 유죄판결선고전에 범한 것으로서 면소의 대상이어서 검사가 추가기소를 하지 못하고 후행범죄사실 중 소지부분만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청송교도소로 이감됨에 따라 후행사건도 의성지원으로 이송되었다). 결과적으로 피고인은 선행사건과 후행사건을 함께 재판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이 된 데에는 후행사건에 8건의 절도죄 여죄가 병합되어 있어 ‘경찰에서 그 여죄 부분의 수사관계로 선행사건과 분리하여 뒤늦게 따로이 송치’한 것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2. 제1심(의성지원 1998.11.7. 선고 98고단200 판결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 하집 1998-2, 687쪽 이하)재판(관여법관 김수일.{법률신문}, 제2747호) : 제1심은 “ ‘피고인이 자신의 판결확정전에 범하여진 일련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동시에 재판을 받지 못함으로써 두번의 형을 선고받게 된 것’이, 검사가 피의자가 범한 일련의 범죄행위 중 일부에 대하여 이미 구속기속된 사실을 ‘알면서도 정당한 이유없이’ 나머지 범죄행위에 대하여 신속한 수사 및 소추권행사를 하지 아니한 것은 ㉮ 검사의 태만 내지 위법한 부작위에 의한 공소권 행사에 기인한 것이고, ㉯ 또한 동시에 재판을 받지 못한 점에 대하여 피고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헌법 제12조 제2항의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제도’에 비추어 ‘중대한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로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에는(대법원 1996. 2. 13. 선고 94도2685 판결참조), ㉰ 이시추가소추권 행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본건의 경우 “㈎ (중략) 선행사건과 후행사건을 함께 담당하였던 검사가 후행사건을 경찰로부터 송치받을 시 이미 피고인이 선행기소 사건으로 구속되어 기소된 상태임을 명확히 알 수 있었던 점, 후행사건 송치 이후 검사가 한 수사로서는 후행공소사실 등의 재확인, 선행기소와 그 판결확정 확인 등에 불과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본건기소는 정당한 이유없이 신속한 수사 및 소추권 행사를 게을리한 ‘검사의 태만 내지 위법한 부작위에 기인’하며 ㈏ 피고인이 최초 체포 당시부터 경찰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자백하였고 그 증거물인 가스분사기마저 압수당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범죄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 형사사건에 대한 수사·소추권 행사 및 재판절차 등에 정통하지 못한 일반인인 피고인으로서는 위 선행기소 사건에 대한 재판 당시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별도의 조사가 진행 중인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할 것이어서 ‘위 재판의 변론기일의 속행이나 선고연기’를 신청할 필요성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중략) 후행공소사실에 대하여 선행기소 사실과 병합재판을 받지 못한 점에 대하여 피고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공소를 기각하였다. 검사가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거의 제1심판결을 지지하면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검사가 상고하였다. Ⅱ. 쟁 점 공소권의 남용으로 공소제기의 효력이 부인되는 ‘검사의 자의적인 공소권행사’의 의미. Ⅲ. 재판요지(파기환송) 검사가 ‘ⓐ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하여 ⓑ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줌으로써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하였다고 보여지는 경우에 이를 ⓒ 공소권의 남용으로 보아 공소제기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 것이고, 여기서 ‘자의적인 공소권의 행사’라 함은 ‘ⓓ 단순히 직무상의 과실에 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미필적이나마 어떤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볼 것이다.(중략) 원심은 ㉠ 검사의 이 사건 기소에 다른 어떤 의도가 있는지에 관하여 더 심리함이 없이 위에서 인정한 사실만으로 곧 이 사건 공소의 제기가 공소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말았으니, 여기에는 ㉡ 기소편의주의와 공소권의 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대법관 이용훈(재판장) 김형선 조무제 이용우(주심)). Ⅳ. N&C(평석) 1. 현재까지 한국에서 공소권 남용 여부가 가장 많이 다투어진 사안유형은 ‘경합범관계에 있는 피고인의 일련의 범죄사실들’이 한꺼번에 기소되지 않고 그 중의 일부만 먼저 기소(이를 ‘선행기소’로 약칭함)되어 유죄판결이 선고된 후 선행기소에서 누락된 범죄사실을 검사가 별도의 공판절차로 기소(이를 ‘후행기소’로 약칭함)하여 결과적으로 피고인이 ‘경합범 조항’(형법 제37조)과 ‘관련사건의 병합관할조항’(형소법 제11조 제1호)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이익이 박탈되는 경우였다. 이런 유형의 사안에 대하여 가장 넓게 공소권 남용을 긍정하려 했던 입장은 대법원 1996.2.13. 선고, 94도2658 판결(공문서위조 공 1996,1017, 이하 ‘96년 판결’로 약칭함)의 원심판결이었던 부산고법 1994.9.7.선고 93노1497 판결이었고 그 다음으로 넓게 긍정하려 했던 입장이 바로 본판결의 제1심(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과 항소심(대구지방법원 본원 합의부) 판결이다. 2. 본판결은 96년 판결이 전제하고 있는 공소권남용의 요건(검사의 후행기소가 ㉮ 검사의 태만 내지 위법한 부작위에 의한 공소권 행사에 기인한 것이고, ㉯ 또한 동시에 재판을 받지 못한 점에 대하여 피고인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한다) 중 ㉮의 요건을 축소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본판결의 재판요지 ⓓ 항이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본판결은 ‘자의적인 공소권의 행사’라 함은 검사가 선행사실과 후행사실을 한꺼번에 기소하지 못한 것이 ‘ⓓ 단순히 검사의 직무상의 과실에 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미필적이나마 어떤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하여 ‘96년 판결의 공소권남용요건’을 축소시키고 있다. 3. 대법원 1990.9.25. 선고, 90도1613 판결(국가보안법위반 공 884,2236)은 “원심이 특정사건에 대한 공소의 제기가 공소권남용으로서 무효라고 하기 위하여는 적어도 그 공소의 제기가 ‘검사의 직무상 범죄를 구성할 정도의 극한적인 경우에 한한다’고 판시한 것은 그 설시가 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시하여 한국의 대법원은 일본최고재판소가 취하고 있는 공소권남용의 인정기준(검사의 직무상 범죄를 구성할 정도의 극한적인 경우에 한한다) 보다는 다소 넓게 긍정하겠다는 설시를 보여 주었었는데 본 판결에서 90년 판결과 96년 판결의 입장을 일보 후퇴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왜 하급심 법관들은 공소권남용을 넓게 인정하려고 하고 대법원은 좁게 인정하려고 하는가? 이 의문의 해답은 ‘사법정책적 관점의 상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4. 한국의 하급심 판사들은 공판사건이 날로 급증하고 있어 ‘검사의 남기소’를 억제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한국의 하급심이 공소권남용론에 적극성을 보이는 물적 토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 한국의 사법경찰관과 검사는 업무부담이 과중한데다 또한 구속기간제한에 쫓겨 본의 아니게 이런 유형의 후행기소가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한편에서 하급심 법원의 ‘실무적 감각’과 ‘피고인의 이익고려’, 그리고 다른 한편 ‘사법경찰관과 검사의 실무적 고충’을 조화시키려고 위와같은 미묘한 ‘사법정책적 동요’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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