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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부담금
행정사건
위탁자와 수탁자가 합의한 목적신탁 해지의 위법성
[ 요 약 ] 원고는 B 법인을 2020년에 흡수합병한 법인으로서, B의 주주였던 C는 2017년 3월 B 명의의 계좌로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100억 원을 기부했다. 이 자금은 B에 의해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21개 중소기업에 총 38억 원이 지급되었고, 나머지 62억 원은 2019년 12월 C에게 반환됐다. 과세관청은 이 100억 원을 B의 익금으로 간주하여 2017년도에 26억 원의 법인세를 부과하였고, 반환된 62억 원을 B가 C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2020년에 소득금액변동통지를 하였다. 원고는 불복하여, 기부된 자금이 B의 실질적인 자산으로 귀속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익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기부금 100억 원이 B의 자산으로 회계 처리되지 않고, 외부에 공시된 바도 없으며, B가 자체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 기부금이 B의 익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기부금은 목적에 따라 집행되었으며, 남은 정산금도 C와 B의 합의해지에 따라 반환되었으므로, 신탁재산의 귀속을 재단하는 기준에 따라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원고에 대한 2017년도 법인세 26억 원의 부과처분과 2020년도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을 모두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기부금이 특정 목적을 위해 신탁된 것으로 보아, 신탁법과 신탁법리를 적용하여 법률관계를 판단한 중요한 사례다. Ⅰ. 사건의 개요 1. 원고는 2020년 5월 B를 흡수합병한 법인이다. C는 B의 주주이었던 자이다. 피고는 과세관청이다. C와 B는 중소업체 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C는 2017년 3월 B 명의의 H라는 계좌로 100억 원을 기부하였다. B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총 6회에 걸쳐 21개의 중소업체에 38억 원을 지급하였다. C와 B는 2019년 12월 양해각서를 합의해지하고, B는 같은 날 C에게 100억 원 중 중소업체에 지급된 38억 원을 공제한 나머지 정산금인 62억 원을 반환하였다. 2. 피고는 위 100억 원은 B의 익금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에게 2017년도 법인세 26억 원을 경정·고지하였고, 정산금으로 반환한 62억 원도 B의 익금에 산입할 금액으로서 B가 C에게 배당한 것으로 보아 원고에게 2020년도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를 하였다. 이에 원고는 위 100억 원은 B에 실질적으로 귀속되었다고 볼 수 없어 익금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26억 원의 부과처분은 위법하고, 반환금 62억 원이 익금에 산입할 금액임을 전제로 한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도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3. 제1심은 피고에게 법인세 26억 원의 부과처분과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하였다. 제2심도 원고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여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Ⅱ. 법원의 판단 1. 양해각서의 성격 양해각서에 ‘신탁’, ‘수탁’, ‘수익자’라는 형식적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가 신탁의 성질을 가졌음을 부인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양해각서는 수익자가 없는 이른바 ‘목적신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유형의 신탁은 신탁법 제3조 제1항 단서에 의하여 허용되고 있으므로, 양해각서와 같이 수익자가 구체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신탁의 본질에 반하지는 않는다. 결국 양해각서의 형식과 실질이 모두 신탁 또는 그와 유사한 법률관계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2. 기부금 100억 원이 익금에 해당하는지 여부 기부금 100억 원은 B가 대내외적으로 이를 소유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B의 자산수증이익이나 그 밖의 수익 등 익금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B는 양해각서에서 정한 목적에 따라 100억 원을 관리·집행할 수 있었을 뿐이고, 자기를 위한 용도로는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100억 원은 B의 고유재산과 분리되어 별도로 집행·관리되었고, B의 자산으로 회계 처리되지도 않았으며, 그와 같은 사실이 외부로 공시되어 표시되었다. ② 구법인세법 제5조(2020. 12. 22. 법률 제1765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는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해서는 그 신탁의 이익을 받을 수익자(수익자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신탁의 위탁자 또는 그 상속인)가 그 신탁재산을 가진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③ 100억 원은 양해각서에 따라 중소PP를 위하여 지출되었고, 남은 정산금도 B와 C의 합의해지에 따라 C에게 반환되었다. 당사자의 합의로 양해각서를 해지하는 행위가 신탁의 성질에 반한다거나, 단지 일방의 임의해지를 제한하는 취지의 양해각서 제4조(발효)의 문언을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Ⅲ. 대상 판결에 대한 평석 1. 묵시적인 법률관계를 신탁 법률관계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 대상 판결은 ‘신탁’, ‘수탁’, ‘수익자’ 등과 같은 신탁을 나타내는 형식적 표현이 양해각서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양해각서의 내용이 신탁 법률관계가 가지는 성격인 ‘소유권의 이전’, ‘수탁자의 배타적 관리·처분권’, ‘신탁재산의 분별관리의무’라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보아,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를 신탁법 제3조 제1항 단서의 ‘수익자가 없는 특정의 목적을 위한 신탁’ 이른바 ‘목적신탁’으로 보았다. 즉 C가 B에게 기부한 100억 원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C가 B에게 신탁한 것으로 보았고, 기부금 100억 원에 관한 법률관계에 신탁법과 신탁법리를 적용 또는 유추적용하여 판단하고 있다. 2. 신탁법상 목적신탁의 설정 신탁법은 신탁의 설정방식으로 계약, 유언, 신탁선언 3가지 유형을 정하고 있다(제3조 제1항). 이 3가지 방식 모두 위탁자의 신탁설정 의사표시를 필수요건으로 하고 이러한 신탁설정행위(당사자 간에 신탁이라는 법률관계를 성립시키는 행위)를 신탁행위라고 한다. 법률행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탁행위에 있어서도 의사표시는 명시적으로도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 또한 의사표시가 명시적인지 묵시적인지에 따라 신탁행위의 종류를 구분하지는 않으며, 그 효과에서도 차이가 없다. 당사자들의 언어를 통해서 신탁설정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전체 정황을 통해서 당사자들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고, 이때 신탁설정의사는 특정 용어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행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목적신탁은 공익신탁이 아닌 한 신탁선언에 의해서는 설정할 수 없다(제3조 제1항 단서). 신탁선언에 의해 목적신탁을 설정할 수 있게 한다면, 채무자인 위탁자가 종래 자신의 채권자의 책임재산에 속하던 재산을 이제부터는 독립한 재산으로서 직접 관리하게 된다. 그래서 채무자가 집행면탈 등의 목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탁선언의 방식으로는 목적신탁을 설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3. 목적신탁에서 법인세 납세의무자 구법인세법 제5조 제3항에 의하면,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해서는 수익자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신탁의 위탁자가 법인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 즉 수익자가 없는 목적신탁의 경우 법인세 납세의무자는 위탁자이다. 따라서 위 100억 원의 거래가 B의 익금이 될 수 없다는 원고의 주장은 정당하다. 4. 신탁법상 목적신탁의 종료 신탁이 종료되기 위해서는 우선 종료의 원인이 있어야 한다. 신탁법은 여러 유형의 종료사유를 정하고 있는데, 위탁자가 신탁이익의 전부를 누리는 경우 위탁자는 언제든지 신탁을 종료할 수 있다(제99조 제2항). 신탁의 설정자이면서 신탁재산의 이익을 모두 향수하는 위탁자 겸 수익자가 신탁의 종료를 의욕하는 이상 이를 금지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 위탁자가 별도로 해지권을 유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위탁자에게 신탁의 해지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신탁계약을 통해 독립된 신탁재산이 구성되고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법률관계가 형성되므로, 신탁을 설정한 위탁자라고 하더라도 이를 자의적으로 종료시킬 수는 없다. 또한 신탁행위로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위탁자와 수익자는 합의에 의하여 언제든지 신탁을 종료할 수 있다(제99조 제1항, 제4항). 그러나 이들 규정은 수익자신탁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수익자가 없는 목적신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목적신탁의 경우 위탁자의 임의해지와 위탁자와 수익자의 합의에 의한 종료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신탁관리인이 선임된 목적신탁의 경우 위탁자와 신탁관리인의 합의에 의한 종료는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당사자의 의사에 기한 신탁의 종료에서 어느 경우에 의하건 수탁자는 종료의 합의권자의 범위에서 제외된다. 신탁은 수익자의 이익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신탁재산을 관리하는 제도이므로 수탁자는 합의에 의한 신탁종료시 관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신탁 법률관계를 해석함에 있어 위탁자가 별도로 해지권을 유보하거나 신탁법상 종료사유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탁자와 수탁자가 임의로 합의하여 목적신탁을 해지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은 C와 B의 합의로 양해각서를 해지하는 행위가 신탁의 성질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으나, 사안에서 해지 당사자는 위탁자와 수익자가 아닌 위탁자 C와 수탁자 B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양해각서는 C와 B 사이의 합의해지로 종료될 수 없으므로, B가 C에게 지급한 62억 원은 신탁재산의 반환이나 잔여재산의 귀속이 아니라 B의 자산을 C에게 지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피고가 원고에게 한 2020년도 귀속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은 정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Ⅳ. 대상 판결의 의미 대상 판결은 법인이 아닌 재단을 갈음할 수 있는 목적신탁의 실제 활용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현행 우리법체계에서는 사익 또는 영리를 도모할 목적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사익을 위하여 재단법인에 버금가는 독립재산체를 신탁의 이름으로 창설할 수 있다. 신탁재산의 독립성을 본질로 하는 신탁은 재단법인과 기능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대상 판결을 계기로 목적신탁의 스킴이 제공하는 장점과 매력을 활용하여 그 이용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안성포 교수(전남대 로스쿨)
익금
목적신탁
법인세
기부금
신탁
양해각서
안성포 교수(전남대 로스쿨)
2024-04-14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⑨ 행정처분의 이유제시와 하자의 치유
불법에 가담한 원장에게도 책임을 묻고 있는 대상판결은 그 방향성 측면에서 타당하고 의미가 적지 않다. 다만, 이유제시의 하자에 대한 판단은 법리적 관점에서 정치성이 아쉬워 보인다. 이러한 논리적 불완전함은 치유 규정의 미비에도 기인함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입법론적으로 조사 시기나 자료수집의 한계가 존재하고 그럼에도 처분을 늦출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 제1심 변론 종결 시까지 처분 근거의 보완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I. 사실관계 원고들 6인은 사립유치원의 각 원장이며, 모든 유치원은 설립자 1인에게 귀속되어 있다. 피고(부산광역시 교육감)는 2017. 2. 감사를 통해 2014∼2016년 원장들이 거액의 비자금을 설립자의 계좌로 전달한 정황을 확인한 후, 2017. 3. 설립자와는 별도로 원고들에게 다음 각호의 처분을 하였다(이하, 사안을 단순화함). 1. 방과 후 과정 운영비를 학부모에게 환불할 것 2. 정원 외 원아 운영으로 수령한 지원금을 교육청에 반환할 것 3. 미지급된 보결수당을 해당교원에게 환불할 것 4. 직원(설립자의 친인척)에게 부적절하게 지급한 금액을 교비회계로 회수할 것 5. 허위 또는 과다 회계서류를 작성하여 주거래업체로부터 부당하게 수령한 금액을 교비회계로 회수할 것 (항소심은 1∼5 모두 위법, 상고심은 1∼2는 위법, 3∼5는 적법으로 판단함) II. 대법원판결의 요지 원심(항소심)은 피고가 처분 시 총액만 제시하였고 금액 산정의 자료가 부족한 경우 추정을 가미하여 공백을 메우는 방식을 사용하는 등,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절차적 위법으로 보았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원고들이 그 산정방식 등을 충분히 알 수 있어서 불복하는 데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처분의 근거와 이유제시가 불충분하여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절차상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 추산의 방식으로 위반 금액을 특정하였다는 사정은 그 액수의 타당성 등에 관한 실체적 위법 사유에 해당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에 따른 위반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원심은 설립자가 자발적으로 응하지 않을 경우 원고들에 대한 시정명령은 이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립자에 대한 처분으로 족하다는 점에서 위법하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교비회계에 속하여야 할 수입이 결과적으로 설립자에게 귀속되었다고 하여 그 결과를 초래한 원장의 교비회계 관리 업무가 소멸되지는 않는다.… 설립자에 대한 시정명령으로 원장에 대한 시정명령이 실익이 없거나 법령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III. 대상판결의 평석 1. 이 사건 판결의 의미 일반적으로 조세사건에서는 실질과세의 원칙에 따라서 형식적 명의자의 경우 구제를 해주는 것이 대법원의 기본입장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명의자인 유치원 원장이 불법에 적극 가담하였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항소심에서 원고들에 대한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고 본 점에 비추어, 종래의 판례는 설립자에게만 책임을 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말미암아 과거 양자의 관계는 종속성이 강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 판결을 계기로 어느 정도 대등해짐으로써 유치원의 회계는 더욱 투명해질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시정명령의 대상에서 원장을 제외할 경우 불법 편취의 관행이 더욱 만연될 수 있음을 고려한 대법원의 판결은 의미가 크고 타당하다. 다만, 처분의 절차적 위법이 명확해 보임에도 적법하다고 결론지은 것은, 다분히 방향성 제시의 필요에 의한 정책적인 판단이라 평가할 수 있을듯 하다. 이하에서는 논제에 따라서 절차 하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 행정절차로서 이유제시제도와 하자에 대한 판례의 기본입장 처분의 이유(제시)는 “이유제시 사후추완”과 “처분 사유 추가변경”의 문제영역에서 공통분모에 해당한다. 이는 절차법과 실체법의 경계영역에 위치하며, 법도그마적 관심뿐만 아니라 실무상으로 중요성을 띠고 있다. 이유제시의 절차적 하자와 실체적 하자가 결합하는 경우도 충분히 상정 가능하나 본 판결은 전자와 관련된다. 불이익 처분에 대한 이유제시는 법치국가의 본질적 요소이다.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은 처분에 있어 근거와 이유가 제시되어야 함을 예정하고 있다. 다만 이유제시의 정도, 하자가 있는 경우 치유가 가능한지 여부,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시기는 언제까지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판례는 처분이 실체적으로 적법하여도 절차의 하자만으로 취소되는 것으로 보는 한편, 이유제시 하자의 치유는 행정쟁송제시 전까지로 제한함으로써, 판례가 행정절차를 중시한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인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법원이 행정절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음을 본 판결에서 엿볼 수 있다. 3. 절차적 하자에 대한 비교법적 검토 절차의 하자로 위법하게 된 처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각국의 법체계마다 상이하다. 독일의 경우 실체적으로 올바른 결정이 있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그 결정에 도달하는 방법과 형태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 법원은 우선적으로 행정청이 헌법과 수권 규범상의 내용을 준수하였는지를 심사한다. 독일 행정절차법상 절차의 하자는 사실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 치유될 수 있고(제45조 제2항), - 더 나아가 치유되지 않거나 치유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 종국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이 명백할 경우에는 절차의 위반만을 이유로 한 취소를 인정하지 않는다(제46조). 다만, 절대적 절차 하자는 행정절차법 제46조가 적용되지 않는다. 예컨대, 환경영향평가 실시되지 않았고 치유되지 않은 경우, 사안 결정에 영향을 주었는지와는 무관하게 취소청구권이 존재한다(환경권리구제법 제4조 제1항). 이와 함께, 치유로 말미암아 인용되지 못해 발생한 손해는 행정청 측에서 부담토록 하여 행정능률 및 소송경제와 권리구제의 균형을 일정부분 도모하고 있다(행정절차법 제80조 제1항, 행정법원법 제155조 제4항, 제161조 제2항). 이에 반해 미국의 경우 절차를 통해 정의를 추구하며, 권리보호는 실체법보다는 권한 행사 때 요구되는 절차적 사항을 통해 실현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수권 규범에는 행정청이 유념하여야 할 실체적 요구사항들이 거의 담겨져 있지 않으므로, 결국 행정 결정에 대한 법원의 감독은 내용에 대한 적법성 심사가 아니라 절차의 엄격한 통제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어느 법체계에서도 절차법과 실체법 양자에 대한 통제를 동시에 극대화하기는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에서는 인과관계의 요소를 고려하여 절차상의 하자가 없었더라도 계쟁 처분이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명백히 존재할 때에는 권리 침해가 인정되지 않으며, 다만 그 입증책임은 행정청이나 법원이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유럽사법재판소 2020.5.20.(C-535/18): 2013.11.7(C-72/12) 참조]. 이는 독일의 입장과 괘를 같이 하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4. 절차적 하자에 대한 이 사건 판결의 평가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산출 근거를 누락함은 물론이고 몇몇 항목은 추산에 의한 방식으로 총액만을 제시한 처분에 이유제시의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수긍키 어려우며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물론 대법원의 이와 같은 접근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만일 이유제시의 하자를 인정하고 절차적 위법만을 이유로 처분을 취소할 경우 소멸시효의 문제에 직면한다. 지방재정법상 금전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며 이는 부정수급액을 지급한 때부터 진행한다는 점이다. 즉, 반환명령일을 기준으로 이미 시효가 지난 경우 회수가 불가능하게 된다. 사정판결의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절차의 하자가 종국적 처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명백히 인정될 경우에는 이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서만 처분의 취소를 구하지 못한다는 논리에 입각하여 결정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판례가 절차하자의 독자적 위법성을 인정하고 행정절차를 중시한다는 인식이 정착되어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에 배치되는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근래 불충분한 이유제시가 문제 된 대표적 사안에서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치의 의미를 알 수 있어서 불복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으므로 처분의 이유제시 의무를 위반한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판지를 이어오고 있다(2007두20348: 2019두49359). 즉, 하자를 인정한 후 치유의 문제로 해결하는 대신, 아예 이유제시 하자의 위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회수조치 시 총액만을 제시하였음에도 위 2007두20348판결을 인용하며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단정하였다. 이러한 상투적 논리라면 그 어떠한 처분도 이유제시에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적법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와 같은 법리구성이 적절하지 않음은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의 입법 취지를 살려서 절차의 하자가 있음을 전제하고, 치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올바르다. 즉, 본 사안에서는 제1심 변론 중반 이후 산출 근거가 제시되었으므로, 이유제시의 하자를 인정한 후 - 추완된 자료가 적정하다는 전제하에 - 그 하자가 치유되었다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제시 하자의 치유 시기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82누420판결 이후로 행정쟁송제기시까지인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에 따를 경우 이 사건에서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하자의 치유 시기를 쟁송제기시까지로 하는 것이 모든 사안에서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행정청이 이유제시를 위한 자료확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사건의 경우 편취금액의 항목이 다양하고 수십억에 이르는 등 사안이 복잡하여 산출 근거를 위한 처분청의 조사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반면 소송단계에서 법원이 증거를 보강하는 것은 용이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멸시효의 문제 등을 감안할 때 처분을 마냥 방치해 둘 수도 없다. 지출된 총액만을 기재하여 불가피하게 한 번에 처분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안에서는 소송 과정에서도 치유를 인정함으로써 그 시기를 늦추어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 소송의 어느 단계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문제 된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처럼 절차 하자의 치유 시기를 사실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를 하나의 대안으로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항소심 단계에서도 이유제시를 허용하자는 것인데 소송경제 또는 행정능률의 측면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1심부터 심리가 충실히 되어 당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1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가 적절하다고 보인다. IV. 맺음말 “니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원님재판이 떠올려진다. 이 사건 대법원판결을 이에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무엇보다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은 별개로서 상호 구분되는 것이 마땅하다. 일벌백계의 명목으로 추산방식으로 총액만 기재한 행정처분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유제시의 하자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절차의 하자를 인정하고 치유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논리적, 법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이 사건에서 절차 하자에 대한 대법원의 무리한 해석은 하자의 치유에 대한 명문 규정이 흠결된 점에 기인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입법적인 해결이 바람직하다. 치유 시기를 - 1심 변론 종결 시까지로 - 늦추는 한편, 치유로 패소한 원고의 손해는 피고가 부담하게 하는 보완이 필요하다. 이로써 일회적 분쟁 해결의 절차경제와 권리구제의 양 이념이 다소간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 단서에, 이유제시를 위한 자료수집이 어렵고, 그럼에도 처분을 해야 할 부득이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 1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 보완하여 제출 가능하다는 규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요컨대, 추산에 의한 처분으로 불가피하게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법 위반의 정도와 비난 가능성의 경중을 떠나서- 행정청은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에 관한 법적 분쟁의 판단에서도 법원 역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이상학 교수(대구대 법학부)
이상학 교수(대구대 법학부)
2023-11-26
노동·근로
민사일반
적법한 쟁의행위로 인한 공연 취소에 관해 업무방해 및 조업방해를 불인정한 판결
비록 파업으로 공연을 취소하였더라도 적법한 쟁의행위로 보아 업무방해 및 조업 방해를 불인정한 판결쟁의행위 과정에서 취소된 공연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최초 판결 1. 사실관계의 요지 원고 재단법인 강동문화재단은 지방출자출연법 및 강동구 조례에 의거 강동구가 출연·설립한 재단으로서 강동아트센터와 강동구 관내 공공도서관의 운영을 주 사업으로 하고, 피고들은 원고 재단의 근로자로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강동문화재단분회(이하 ‘이 사건 노동조합’)의 분회장 및 강동아트센터에 근무하는 무대·조명·음향·기계감독들이다. 이 사건 노동조합은 2020. 1. 강동문화재단 출범 이전의 호봉제 임금체계 복구 등을 주장하며 2021년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해 교섭을 진행했으나 교섭이 결렬되자, 당시 상급단체인 서울일반노동조합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해 2021. 6. 21.자로 조정 종료 결정을 내렸고, 그 직후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행위가 가결되어 있었다. 이후 이 사건 노동조합은 2021. 11. 11. 오후경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11. 12. 18:30시에 파업전야제 소집 공고를 올린 후, 2021. 11. 12. 오전경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소식지로 11. 13. (토)부터 11. 14. (일)까지 양일간 전면 파업에 돌입할 것을 공고했다. 한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및 소극장에는 2021. 11. 12. (금) 저녁부터 같은 달 14. (일) 오후까지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파업전야제가 예고된 2021. 11. 12. (금) 저녁 19:30시에는 각각 발레 <돈키호테>, 뮤지컬 <두근두근 움스프렌드> 공연이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피고들은 위 11. 12. (금) 저녁 파업전야제 참석에 관해 확답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18시경 대극장 및 소극장의 음향·조명·기계 등 장비 전원을 끄고 모두 퇴근했고, 원고 재단은 같은 날 15시경 ‘공연이 불완전한 상태로 진행되고 110% 환불을 하겠다’고 문자메시지로 공지했다가 17:58시경 발레 <돈키호테>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공지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이후 피고들은 2021. 11. 13. (토) 오전 11:30시경 노동조합의 양해 하에 파업을 중단하고 사업장에 복귀했으나 원고 재단은 이날 공연도 모두 취소한 상태를 유지했고(소극장 공연 1회차는 비공식 초청 공연으로 진행했다), 11. 14. (일) 예정된 공연도 모두 취소되었다. 해를 넘겨 2022. 1. 3. 원고 재단은 피고들에게 이 사건 소 제기를 하는 한편, 거의 동시에 업무방해죄 혐의로 피고들을 고소했다. 2. 원·피고 주장의 요지 원고는 변론 전 과정에서 피고 1. 분회장이 파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나머지 피고들(공연감독들)과 순차 공모해 예정된 공연을 불가능하게 하도록 대극장과 소극장의 무대 메인 구동장치를 잠그고 철수함으로써 업무방해죄를 저지르고 원고 재단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가, 이후 이유없이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고 퇴근함으로써 이를 다시 켜기 어렵도록 하는 방식으로 극장 장비의 사용을 불능케 했다고 주장했고, 이로 인해 공연 제작비용·티켓 환불 비용·재공연비용·지원금 반납금·장소변경에 따른 손해 등 합계 345,760,020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피고들은 파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극장 장비를 조작하는 등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상 ‘조업방해’를 저지른 바가 전혀 없고, 공연이 있다는 이유로 피고들이 연장근로를 할 의무 없이 퇴근하는 것은 위법하지 아니하며, 퇴근 시 각자 담당하는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는 것은 극장 장비의 전문적인 유지·관리의 일환으로 적법하고, 이는 ‘점유를 배제’하거나 ‘폭행·협박’ 등 노동조합법이 정하는 ‘조업방해’의 요건을 충족하지도 못하며, 원고 재단은 피고들이 18시경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하기 전에 이미 공연 취소 결정을 내렸으므로 손해를 야기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주장하였다. 변론과정에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극장 장비의 전원을 다시 켤 수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피고들이 각자 담당한 장비 전원을 켜서 시연하는 동영상도 제출했다. 담당 재판부는 변론 막바지에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관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양측 주장을 정리해보라’는 취지로 지휘했고, 이에 원고 재단은 다수의 근로자가 상호 의사연락 하에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해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저해하는 것 자체로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며, 피고들은 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판결에 의거 이 사건 쟁의행위가 예측불가능하게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지 아니했으므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불성립한다고 주장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가. 피고들이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정시퇴근한 행위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이 사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돌입 경과에 비추어 원고 재단이 당시 파업전야제 개최 및 전면파업 돌입이나 피고들의 파업 참여를 전혀 예측할 수 없지 않았고, 파업전야제 참가시에는 극장 장비 전원을 끄는 조치도 예상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각 공연이 취소되었고 원고 재단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체행동권의 핵심인 쟁의행위에 의한 것이고 실제 재공연이 이루어진 점 등에 비추어 원고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가 초래되는 등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피고들의 행위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나. 피고들이 집단적으로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을 한 것 자체가 위법한 조업방해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피고들이 공연을 앞두고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한 행위는 쟁의행위의 일환에 해당하고 이 사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절차적으로나 실체적으로 정당성이 인정되며 피고 또한 이것이 적법한 쟁의행위임을 다투고 있지 아니하는 점, 피고들이 극장 장비 전원을 끄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무력행사나 원고의 소유권 침해 등이 수반되지는 않았던 점, 극장 장비의 전원을 다시 켜는 데는 특별한 용법이나 장애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고 원고 측이 이를 다시 켜서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쟁의행위의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피고들이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고 공연 직전에 퇴근했다고 하더라도 불법쟁의행위로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지 아니했다. 다. 선고 이후의 경과 대상판결은 증인신문 등을 거쳐 소 제기일로부터 약 1년 6개월만에 판결이 선고되었고, 선고 직후 원고 재단이 항소했다가 이를 취하해 확정되었다. 위 민사소송이 계속될 동안 동일한 사실관계로 고소된 업무방해죄 형사사건은 2022년 말 불송치결정이 내려졌지만 원고 재단의 이의신청으로 재수사를 거친 후 2023년 8월 현재 아직도 기소여부가 결정되지 아니했다. 이는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및 업무방해죄 기소가 제도적이고 현실적인 위력 행사의 수단으로서 여전히 유효한 실태를 확인해 주었다. 4. 대상판결의 의의 가. ‘공연 취소’로 인해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에 대한 선례 이 사건 변론과정 및 관련 형사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원고 재단은 쟁의행위로 인해 발레·뮤지컬 등 공연이 취소된 경우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고, 이 사건과 같이 공연 직전인 약 1시간 30분 이전에 공연이 취소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파업중이라도 적어도 공연 진행만큼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공연을 장기간 준비한 공연단체 구성원들의 노력 등을 고려하면 그러한 주장에 일견 공감할 부분도 있고, 공연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공연 자체가 취소된다면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고도 보는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주장이 타당하다면 공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경우 쟁의행위가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사용자의 업무 지장의 일환으로서 공연의 취소 내지 불완전한 진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치 공연만큼은 헌법상 단체행동권으로부터 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부당성을 피할 수 없다. 대상판결은 비록 노무제공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면서 설시한 부분이기는 하나, ‘쟁의행위는 사용자의 업무에 어느 정도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헌법상 기본권 행사에 본질적으로 수반되는 것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는 업무의 지장 초래가 당연히 불법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고, 이에 기초해 비록 예정된 공연들이 취소되었더라도 원고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가 초래되었다고 인정하지 아니했다. 이와 같은 대상판결의 설시는, 업무방해죄의 위력 판단에 있어 헌법상 기본권 행사인 쟁의행위로 초래된 결과를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도 보인다. 또한 적어도 앞으로 공연노동자의 노무제공 거부로 인해 공연 진행에 지장이 발생해 취소가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또는 불법한 쟁의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선례로서 의의가 있다. 나. 근로자가 관리하는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한 행위가 ‘조업방해’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원고 재단의 주장으로 인해 특이하게도 민사소송에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면서도, 결국 피고들이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고 정시에 퇴근한 행위가 노동조합법상 금지되는 쟁의행위의 방법으로서 ‘조업방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의의가 있다. 변론과정에서 피고들 또한 이 사건 쟁의행위의 정당성·적법성에 기초해 이로 인한 공연 취소에 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어야 하고(노동조합법 제3조), 피고들의 구체적인 행위가 노동조합법상 금지되는 ‘조업방해’의 요건 즉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거나(제37조 제3항),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 또는 근로를 제공하고자 하는 자의 출입·조업 기타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방법(제38조 제1항)에 해당될 수 없음을 구체적으로 주장·입증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노동조합법 제38조 제1항의 조업방해는 그 대상이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 또는 근로를 제공하고자 하는 해당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출입·조업 기타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해야 성립할 것인데(대체근로자는 대상의 예외로 보아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 사건 피고들의 행위는 본래 자신이 관리하는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고 퇴근한 것일 뿐 노동조합법이 규정하는 조업방해의 방법 또는 이에 준하는 방식의 방해에 이를 수 없음을 강조했다. 다.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 인정 범위의 제한 비록 대상판결은 원고 재단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면서 원고가 구하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해 구체적으로 판단하는데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판단하면서 원고가 구하는 손해배상의 범위를 일부 제한하는 듯한 판시를 남겼다. 원고는 이 사건 공연 취소로 인해 ① 기 투입된 제작비용, ② 취소된 공연의 판매액 및 추가 환불금, ③ 재공연 비용, ④ 반환해야 할 공연 지원금 상당을 손해로 주장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재공연이 이루어졌거나 예정되어 있는 이상 이 사건 각 공연의 순수 제작비용이 원고의 손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재공연으로 인한 수익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이는바 위 금액 전부를 원고가 입은 손해로 보기 어려워 보이는 점’이라고 판시하면서 제작비용을 손해로 불인정하는 한편 재공연 수익까지 손해 산정에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는 향후 유사한 공연 취소의 경우 뿐만 아니라 일정한 인적 용역의 결과물을 대상으로 한 쟁의행위의 손해 범위 판단에 관해 시사점을 제공하면서도, 만약 사용자가 임의로 재공연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로 인해 손해의 범위가 변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잔존가치가 측정될 수 있는 일정한 ‘재화’가 아닌 점에서 제작비용 전액이 손해로 계상되는 특성은 불가피할 수 있으나, 재공연을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소극적 손해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전부 손해로 인정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있다. 라. 원고 재단이 공연 취소를 스스로 결정한 점에 관한 판단의 한계 한편 피고들은 변론과정에서, 2021. 11. 12. (금) 오후경 원고 재단이 피고들의 파업 전야제 참여 ‘가능성’만을 인지한 상태에서 이미 당일 19:30시에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고 17:58경 관객들에게 공지했으므로, 이러한 원고의 결정과 피고들이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한 행위는 선후관계로나 인과관계상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이러한 사실관계 판단에는 구체적으로 나아가지 않은 채, 다만 피고들의 적법한 쟁의행위의 일환인 파업전야제 참석으로 인해 원고 재단이 공연을 취소하게 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전제하고 손해배상책임을 판단했다. 원고 재단이 스스로 내린 공연 취소 결정은 피고들의 일부 내지 전부 근로제공 거부 가능성을 예상해 공연의 정상적인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고, 이는 사용자로서 내린 일종의 경영판단으로서 그에 대한 손해를 노동자들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당연히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에 관해 구체적으로 판단되지 아니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5. 결어 대상판결은 소극적 근로제공의 거부 및 이에 수반되는 관리행위로써 사용자가 예정된 공연을 취소해야 하는 등 업무상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이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또는 노동조합법상 조업방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단체행동권의 행사에 의한 적법한 쟁의행위의 보장 차원에서 업무방해 및 조업방해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설시한 의의가 있다. 향후 공공영역·문화계 뿐만 아니라 다른 업무영역에서도 적법한 행의행위와 조업방해를 구분하는 하나의 선례가 마련되었다고 보인다.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동쟁의
파업
업무방해
조업방해
공연취소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2023-10-22
민사일반
제3자의 채무변제
I. 사건의 소개 대상결정은 공탁관의 불수리처분에 대하여 재단법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신청한 이의를 기각한 결정이다. 신청인의 청구취지는 ‘민법(법률이름을 생략한다) 469 I 단서의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관하여 민법의 다른 규정과의 통일적 해석, 제2항과의 체계적 해석과 ‘당사자 일방’의 의사표시로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실 등을 비추어, 채권자와 채무자가 합의로 금지한 경우에만 제3자변제가 제한된다’로 요약된다. 1. 대상결정의 판단: 대상결정은 ‘① 법정채권의 경우 반대의사의 표시에 의한 제3자변제의 금지에 관하여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없다. ② 469 I 단서의 ‘의사표시’라는 법문을 이유로 이 조항이 법률행위만을 전제한다고 해석할 법적 근거가 없다. ③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과 같은 법정채권의 경우 채권자가 반대의사를 표시하면 제3자변제가 금지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469의 취지와 부합한다. ④ 이 사건 판결금은 제3자변제가 가능한 금전채권이나 채권자의 반대의사가 명백하면 이를 금지하는 것이 손해배상제도의 취지와 위자료의 제재적, 만족적 기능을 충족한다’는 이유로 이의신청을 기각하였다. 제3자변제에 관한 이후의 결정례들도 대상결정을 거의 그대로 모사·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2. 대상결정의 쟁점: 469 I 단서의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핵심쟁점이다. 대상결정은 ① 채권자의 우선보호가 민법 채권편의 원칙이고, ② 제3자변제는 채권의 상대효의 예외로서 그것이 대체로 채권자에게 이익이 되고 채권자의 의사에 합치하는 것을 전제로 채무자와 제3자 사이의 이해관계와 경제적 필요 등을 고려하여 일정한 요건 아래 법률이 승인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이로써 순진하고 소박하게(?) 법문을 있는 그대로 읽어 ‘당사자 일방의 의사표시’가 제469조 제1항 단서에 포함된다는 결론을 연역한다. 하지만 ①은 생경하다: 민법은 채무자를 약자로 설정하고 그의 보호를 우선한다(특히 607와 608, 652). 그리고 ②는 469의 해석·적용이 아니라 있는 법을 왜곡하고 ‘없는 법’을 만든 것이다. 법관은 법을 제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법률을 준수하여야 하는 전문직업인이다(독일기본법 97 I 참조). II. 채권의 존재와 469의 해석 1. 채권의 존재=변제요건: 대상결정은 이 사건 채권이 채무자를 제재하면서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가 현저한 불법행위채권임을 들어 피해자(채권자)에게 결정권(처분권)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채권자에게 지배권을 수여하는 대상결정은 법적 판단이 아니라 국민정서법(?)과 부화뇌동하는 것이다. 469가 위치하는 민법 제3편 제1장 제6절 <채권의 소멸>은 ‘유효한 채권의 존재’만을 전제하고, 약정·법정채권관계와 채무자의 고의·과실을 묻지 않는다. 채권은 가치중립적(wertneutral) 재산권이고 변제는 급부실현이므로 변제자는 중요하지 않다. 469 I 본문도 제3자변제를 당연시한다: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 다만 채무가 성질상 또는 제3자변제를 금지하는 의사표시로 당사자의 인격과 결합된 때에는 그렇지 않다(I 단서). 제3자변제가 채권의 상대효의 예외이고 법률적인 평가에서 ‘제3자변제’를 채무자변제와 ‘등가물’로 볼 수 없다는 대상결정은 469 I 본문에 실린 입법자의 결단을 무시한 것이다. 2. 469의 해석 (1) 469 I 단서의 「당사자의 의사표시」의 의미·내용: 당사자의 의사는 채권발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제3자의 변제를 금지하는 의사이다. 교과서와 주석서는 곽윤직, 채권총론, 1999 [97] (330)을 본받아 “계약으로 발생하는 채권은 계약에 의하여, 그리고 단독행위로 발생하는 채권은 단독행위로 각각 제3자의 변제를 금지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기술한다. 계약과 단독행위가 흔히 채권·채무의 발생원인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유언외에 단독행위로 고유한 의미의 채권관계가 성립하는 경우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스스로 채무를 지는 단독행위는 가능하지 않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의사에 반하여 이익이 강제될 수 없다. 더욱이 표의자가 그의 의사만으로 권리를 취득하고 타인에게 의무를 지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법학과 실무가 단독행위를 형식상 논함에 그치는 이유이다. 채권·채무는 취소, 해제 또는 해지 등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한 형성권의 행사로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새로운 것의 창설이 아니라 이전의 법률관계의 청산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형성권자는 단독으로 제3자의 변제금지효를 만들지 못한다. 형성권은 원칙적으로 조건과 친하지 않고 제3자변제금지는 조건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무권대리행위의 추인은 사후에 대리권을 수여하여 유권대리행위로 전환하는 단독행위이다. 그러나 제3자변제금지를 덧씌운 추인은 변경을 가한 승낙(534)으로 해석된다. (2) 469 II=469 I의 연장 : 「이해관계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는 469 II는 I 본문의 이념을 그대로 계승한 조항이다. 이는 심지어 채무자조차 의사표시만으로는 제3자변제를 막을 수 없음을 천명한다. II는 제3자가 변제를 빌미로 약한 지위의 채무자를 압박하는 불행한 사태의 방지를 규범목적으로 한다. 대상결정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은혜를 거부하는 봉건적 관념이 II의 배경이라고 하지만, 이해관계있는 제3자의 변제도 역시 채무자에게 이익을 준다. 제3자는 제한없이 보증채무를 부담할 수 있고 채권양도와 채무인수로 사실상 변제효를 얻을 수 있는 등 민법상 II의 규정취지가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다(이진기, 민법에서 채무자 아닌 제3자의 행위에 의한 채무변제제도의 연구, 민사법학 66 [2014] 575-618). 교과서와 주석서도 II의 입법태도에 대한 비판일색이다. III. 대상판결의 분석과 평가 1. 사적자치의 왜곡: 의사표시는 표의자만을 구속하는 것이 법의 대원칙이다(111 I). 이를 애써 외면하고 함부로 채권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제3자변제금지효를 긍정한 대상결정은 그가 힘차게 외친 사적자치의 실현과 정반대결과를 부른다. 이는 법원이 주도하여 힘과 복수가 판치는 반문명사회로 돌리고 무법천지를 조장하는 반법률적 조치이다. 2. 제3자변제금지의 이익: 금전채권을 비롯한 대체물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채권에서 제3자변제금지의 이익이 분명하지 않다. 제3자변제금지를 약정하더라도 채무자는 얼마든지 이를 우회할 수 있다. 채무자가 그의 금전으로 직접 변제하는 것과 제3자가 증여한 금전 또는 제3자가 대여한 금전으로 변제하고 제3자가 사후에 금전채무를 면제하여도 외관의 차이가 없고 채권자의 이익상황도 같다. 채권자의 이익은 채권의 실현에 집중되며, 불법행위채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채권자[피해자]의 감정을 엮어 제3자변제를 금지하는 것은 보복이다. 실무도 ‘할아버지’의 지팡이 또는 ‘할머니’의 은비녀 등 감정적 애착이익(Affektionsinteresse) 배상을 배제한다. 3. 제재와 보복: 민사불법행위는 예방, 손해전보와 제재[처벌]를 목적으로 하며, 법원이 그 담당자이다(MunchKomm/Wagner, Vor §823 Rn.38-44). 제재는 가해자에게 위법한 손해의 결과를 귀속하는 것, 즉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이며, 손해전보는 피해자가 손해배상채권의 만족을 얻어 채권이 소멸하는 때에 완결된다. 제재와 감정이 실린 보복은 다른 것이다. 피해자가 직접 행사하는 제재는 법이 금지하는 복수이다. 법은 적법한 권리행사만을 보호한다. 제재기능은 정신적 손해의 배상책임에서 뚜렷하다. 하지만 차액설이 민법의 기본이므로 재산적 손해배상만을 명하여도 제재효가 없다고 할 것이 아니다. 한편 대상결정은 고의의 불법행위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금지를 담은 496을 인용하지만, 이는 오히려 채권자의 보복행위를 막고 피해자가 현실의 손해배상을 얻도록 배려하는 규정이다. 4. 힘든 일반화: 대상결정은 애당초 일반화와 거리가 멀다. 악의로 이행하지 않는 나쁜 채무자도 곳곳에 차고 넘친다. 게다가 대상결정을 동기화하면, 모든 채권자가 일방적 의사표시로 제3자변제를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는 보험금수령을 거부하고 가해자를, 그리고 손해배상책임을 개별화한 대판 2023.06.15., 2017다46274 등[노란봉투판결]이 선고된 지금, 사용자는 불법파업에 주된 책임이 있는 근로자를 끝까지 괴롭힐 수 있게 된다. 이는 채권자의 전횡을 방조하는 무책임한 처사이다. 법원은 대상결정이 구체적 사건에서 예외를 인정한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런데 예외를 만들려면 이를 합리화·정당화하는 사정이 있어야 하나 그러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예외를 위하여 법률과 법리를 비틀어서도 곤란하다. 법원은 법을 어기는 주체가 아니라 법을 지키는 기관이다. IV. 대상결정의 평가: 창의적 재판 또는 함부로 재판? 469 I 단서의 「당사자의 의사표시」를 ‘채권자와 채무자의 합의’로 읽어야 한다(이진기, 읽기 쉬운 민법, 2022, 16 이하). 법률은 채권관계의 구속(vinculum iuris)에서 당사자의 조속한 해방과 자유의 회복을 추구한다. 그리고 채권자의 만족은 채무이행으로 실현된다. 그럼에도 대상결정은 469 I 단서의 적용범위를 넓히기 위하여 짜맞춘 궁색한 변명으로 가득하다. 법관은 법을 말하고 법으로 설득하는 사람이다. 법률을 떠난 법관은 법관이 아니다. 이것이 재판을 정치라고 한 판사가 지탄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좋은 판결은 개인의 사상과 신념이 아니라 법률과 굳건한 법이론을 바탕으로 합리적 상상력을 전개하여야 하는 법관의 숙제이다. 끝으로 대상결정과 같은 식이라면 등기관, 가족관계등록관, 공탁관 등 형식적 심사권을 가진 공무원은 이제 법관이다. 그 선택은 법원의 몫이다. 이진기 교수(성균관대 로스쿨·법학박사)
채무
제3자변제
이진기 교수(성균관대 로스쿨·법학박사)
2023-09-10
산재·연금
형사일반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중대산업재해 사이의 인과관계 문제
이정훈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 임인영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대상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위반 사건에 관한 첫 판결로 다단계적 인과관계 법리를 적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인과관계의 존재를 규범적으로 넓게 해석하는 것은 자칫 수범자에게 결과책임을 지울 위험이 있다. 의무위반행위가 결과발생에 기여한 내용이나 과정을 구체적으로 논증하지 않은 채, 위반행위의 중대성만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한 결과 책임주의원칙에서 벗어난 듯한 아쉬움이 있다. 1. 사안 A사는 ○○병원 증축공사를 시공하는 회사인데, 위 공사 중 일부를 B사에 도급하였다. 이 사건 중대산업재해는 B사에 소속된 근로자인 망인이 공사현장에서 건축자재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던 중 16.5m 바닥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한 사안이다. 이 사건 중대산업재해 당시 A사의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 등이 적절한 작업계획을 작성하지 않았고, 추락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안전 난간이 작업편의를 위하여 해체되고, 추락 방호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며, 망인에게 안전대가 지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실행되었다. A사의 경영책임자인 피고인이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 제1호에 정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중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위반한 사실은 인정되었다. 즉, 피고인은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 절차와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전혀 마련하지 아니 하였고(시행령 제4조 제3호와 같은 조 제5호 나목 의무위반),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 조치에 관한 매뉴얼을 마련하지 아니한 상태였다(시행령 제8호 가목 의무위반). 2. 쟁점 및 대상판결의 요지 책임주의원칙상 중대재해처벌법위반의 형사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중대산업재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 사안에서 위와 같은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는데, 대상판결은 피고인이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으로 하여금 산업안전보건법에 정한 의무를 위반하게 하였고, 그 결과 망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 사고를 당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고 판단함으로써 인과관계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3. 검토 및 전망 현행 중대재해처벌법령에 정한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는 매우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관리의무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례에서 그와 같은 관리의무 불이행과 중대산업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1호에 정한 대로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하였다고 하여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상, 해당 의무를 위반하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대상판결에서 인정한 것처럼 경영책임자가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업무나 안전보건관리책임자나 관리감독자를 평가하는 업무를 게을리하면 해당 사업장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는 그 법적 성격이 결과범이므로 해당 의무위반과 결과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더구나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아니하는 부작위가 형법적으로 부작위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보호법익의 주체에게 해당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행위자가 구성요건의 실현을 회피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행위를 현실적·물리적으로 행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아니하였다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함이 원칙이다. 그런데 경영책임자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게을리하였다고 하여 이를 곧바로 중대산업재해의 발생을 회피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들을 현실적·물리적으로 행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경우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대상판결도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으로 인하여 해당 사업장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커졌고, 그 위험이 현실화되어 중대사업재해가 발생하였다고만 하여 곧바로 그 의무위반과 중대산업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다만, 대상판결은 위와 같은 인과관계 인정의 어려움을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 및 보건 조치의무 위반을 매개로 중대산업재해 발생에 기여한다고 봄으로써 해결하였다. 대상판결의 논리구조는 다음과 같다. ① 피고인이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게을리하여 ㉮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 절차와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지 아니 하였고, ㉯ 사업장에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 조치에 관한 매뉴얼을 마련하지 아니하였다. ② 피고인은 위와 같은 의무해태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으로 하여금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위반하여 ㉮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안전대의 지급 및 부착설비가 설치되지 못하도록 하였고, ㉯ 안전난간을 해체하여 작업이 이루어짐에도 안전대가 지급되지 않았고, 안전대를 연결할 수 있는 부착설비도 설치되지 않아 언제든지 추락에 의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급박한 위험이 있음에도 작업을 중지하거나 즉시 추락위험을 제거하도록 하지 못하였다. ③ 그 결과 피고인은 망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 사고를 당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위와 같은 대상판결의 논리에는 다음과 같은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경영책임자의 안전확보의무 위반을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의 의무위반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점이다. 사안에서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 등이 경영책임자의 의무위반과 무관하게 적절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추락사고 방지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경영책임자가 대상판결에서 판시하는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하더라도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 등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정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둘째, 경영책임자가 그 의무를 게을리하였기 때문에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가 쉽게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할 수 있었다는 막연한 사유로 규범적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보아 중대산업재해라는 결과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지우는 것은 종래의 상당인과관계를 지나치게 확장하여 위험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경영책임자의 의무해태와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의 의무해태가 경합하여 발생한 재해로 보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법체계에도 맞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은 그 자체로 처벌의 대상이 되고, 중대산업재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결과적 가중범으로 처벌된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은 자체로는 처벌의 대상이 아니고 중대산업재해와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된다. 나아가 경영책임자는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 등의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의 공범이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의 정범으로 처벌되므로 정범의 요건이 인정되어야 한다. 셋째, 만약 대상판결처럼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과발생에 기여하였는지를 확인하지 아니한다면, 사실상 경영책임자의 의무위반과 중대산업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요구하지 아니하고 결과책임을 지우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이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형벌을 가하는 것이 되어 책임주의원칙에 반한다. 대상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 사건에 관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대상판결은 형사처벌에 필요한 인과관계와 관련하여 다단계적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판시하였다고 볼 수 있어, 향후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에서 일반적 판례로 정립될 것인지 그 추이가 주목된다. 이정훈·임인영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안전보건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재해
이정훈·임인영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2023-05-31
금융·보험
민사일반
마이너스 통장에의 착오 송금에서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상대방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1. 원고가 2014년 9월에 A가 피고 은행에 그의 명의로 개설한 예금계좌로 3000여만 원을 이체송금하였다. 그 계좌는 통상 ‘마이너스 통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잔고가 마이너스인 경우에는 은행이 그 상당액을 자동적으로 대출한 것으로 하되(이른바 ‘종합통장 자동대출’) 계좌에의 입금이 있으면 이로써 그 대출금에 충당하기로 미리 약정되어 있었다. 위 이체 당시 계좌의 잔고는 마이너스 8400여만 원이었다. 2. 그런데 원고는 B에게 금전을 지급할 의사이었고 A에 대하여는 그 지급의 법적 원인 및 의사가 없음에도 착오로 행하여졌다. 사실 A는 동년 3월에 B와 이혼하면서 자신의 사업을 B에게 양도하였고 그때부터 B는 같은 내용의 사업을 운영하면서 한편 그 상호도 바꿨다. 그리하여 원고는 물품대금으로 B에게 지급할 금전을 위와 같이 A의 계좌에 이체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원고는 다음날 피고에게 위의 이유를 들어 금전의 반환을 구하였으나 피고는 이를 거부하였다. 3. 원고는 이 사건 소송에서 피고에 대하여 위 이체된 금전의 반환을 부당이득을 이유로 청구하였다. 제1심(수원지법 평택지원 2015가단6215 판결)은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항소심(수원지법 2016나50495 판결)도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판결 취지] “종합통장 자동대출에서는 은행이 대출약정에서 정하여진 한도로 채무자의 약정계좌로 신용을 공여한 후 채무자가 잔고를 초과하여 약정계좌에서 금원을 인출하는 경우 잔고를 초과한 금원 부분에 한하여 자동적으로 대출이 실행되고 그 약정계좌에 다시 금원을 입금하는 경우 그만큼 대출채무가 감소하게 된다(대법원 2015. 3. 12. 선고 2013다207972 판결 등 참조). 종합통장 자동대출의 약정계좌가 예금거래기본약관의 적용을 받는 예금계좌인 경우에 그 예금계좌로 송금의뢰인이 자금이체를 한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이 수취은행에 대하여 위 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다만 약정계좌의 잔고가 마이너스로 유지되는 상태, 즉 대출채무가 있는 상태에서 약정계좌로 자금이 이체되면, 그 금원에 대해 수취인의 예금채권이 성립됨과 동시에 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의 대출약정에 따라 수취은행의 대출채권과 상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결과 수취인은 대출채무가 감소하는 이익을 얻게 되므로, 설령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없더라도,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이체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될 뿐이고, 수취인과의 적법한 대출거래약정에 따라 대출채권의 만족을 얻은 수취은행에 대하여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한다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송금한 이 사건 금원은 설령 착오송금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관계없이 A 명의의 종합통장 자동대출의 약정계좌인 이 사건 계좌가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입금됨으로써 종합통장자동대출에서 실행된 A의 대출채무가 감소하게 되었으므로, 이로 인해 피고가 부당한 이득을 취득한 것이 없다고 본 원심판결은 정당하다.” 은행은 단지 송금의뢰자가 행하는 금전 지급의 ‘통로’ 내지 ‘수단’일뿐이고 그 상대방이라고 할 수 없고, 그의 법적 지위를 성질결정하자면 민법 제391조에서 정하는 ‘이행보조자(수령보조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급된 금전의 반환이라는 급부의 원상회복이 문제 되는 법적 장면에서 그는 급부자의 급부 반환청구의 상대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대상 판결이 비록 이른바 마이너스 통장에 입금된 금전의 반환청구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원고의 이 사건 이체 송금으로 인한 급부 관계는 피고 은행이 아니라 A와의 사이에서 성립한 것이므로, 그 급부의 원인이 없음을 이유로 하는 반환청구도 그를 상대로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나고, 이체된 금전의 그 후의 운명(채권채무의 성립, 자동적 상계 등)은 애초 이를 문제 삼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평석] 1. 필자는 이번 대법원판결(이하 ‘대상판결’)의 결론에 찬성한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하여는 쉽사리 수긍할 수 없다. 2. 은행 계좌에 ‘착오로’(이는 대체로 비채변제에 관한 민법 제742조의 적용 또는 유추에 기하여 반환청구가 배제되는 경우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체송금이 이루어진 사안유형에서 송금의뢰인이 부당이득을 이유로 그 반환을 청구할 권리를 가지는 상대방이 은행인가, 아니면 그 송금의 ‘수취인’(금융실명제 이후에는 그야말로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계좌명의인, 즉 예금주)인가의 법문제에 대하여는 2007년 이래로 판례의 태도가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다. 은행이 아니라 수취인이라는 것이다. 지도적 선례는 대상판결도 인용하고 있는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7다51239판결(대법원판례집 55권 2집, 360면)이다(그 전에 이미 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5다59673판결이 결국 같은 뜻을 판시하고 있었다). 그 후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판례집 66권 형사편, 647면; 공보 하권, 1801면)을 거쳐 최근의 대법원 2019. 9. 26. 선고 2017다51504 판결(법고을)에 이르기까지 법고을에 '따름판례'로 인용된 것만을 찾아보더라도 9개의 대법원판결이 같은 취지를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예를 들면 독일에서도(이에 대하여는 우선 민법주해[XVII](2005), 206면 이하(양창수 집필) 참조), 일본에서도(무엇보다도 最高裁 1996(平成 8). 4. 26. 판결(民集 50권 5호, 1267면), 그리고 森田宏樹, “振込取引の法的構造 —「誤振込」事例の再検討”, 中田裕康 등 編, 金融取引と民法法理(2000), 123면 이하 등 참조), 판례 및 학설상으로 두루 지지되고 있다. 3. 그런데 이들 대법원의 재판례는 예외 없이 그 판결이유 중에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이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는 것, 즉 은행은 그에 상응하는 예금채무를 부담한다는 것을 내세운다. 그리하여 은행은 이익을 얻은 것이 없으므로 은행에 대하여는 송금의뢰인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에서와 같은 이른바 ‘마이너스통장’, 즉 계좌 잔고에 전혀 예금이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당해 계좌에 입금된 것이 있으면 이를 당연히 그 부족액에 충당하게 되는 통장에 있어서는 과연 그 입금으로 애초 수취인이 은행에 대하여 무슨 예금채권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는 게 과연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이러한 의문에 대응하기 위하여 대상판결은 앞서 인용한 ‘판결 취지’에서 보듯이 먼 길을 돌아서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마이너스통장에서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면 은행은 자동적으로 대출을 실행한 것이 되어 예금주에 대하여 대출채권을 가지게 된다. 둘째, 그 상태에서 입금이 있으면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수취인은 은행에 대하여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셋째, 이 두 개의 대립하는 채권은 “수취인과 은행 사이의 대출약정에 따라” 상계로 소멸한다. 넷째, 이로써 수취인은 대출채무가 감소하는 이익을 얻는다. 이로써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한편 은행은 수취인과의 적법한 대출거래약정에 따라 대출채권의 만족을 얻은 것이어서 그에 대하여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한다고 할 수 없다. 4. 그러나 은행 계좌에의 착오 송금의 사안유형에서 은행이 아니라 수취인이 송금의뢰인이 취득하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상대방이 된다고 하여야 하는 이유를 애초 예금채권의 발생 여부 또는 그 귀속에서 찾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송금의뢰인은 일정한 목적으로 ―예를 들면 채무의 이행을 위하여 또는 대여나 증여의 목적으로(causa solvendi, credendi, donandi. 이 셋이 전통적으로 어떠한 급부의 원인이다)― 금전을 인도(‘지급’)하였지만 결국 지급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는 것, 그것이 부당이득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정이다(이는 이른바 과다지급의 경우에도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하에서는 이 유형은 따로 논의하지 않는다). 거기서 은행은 단지 송금의뢰자가 행하는 금전 지급의 ‘통로’ 내지 ‘수단’일 뿐이고 그 상대방이라고 할 수 없고, 그의 법적 지위를 성질결정하자면 민법 제391조에서 정하는 ‘이행보조자(수령보조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급된 금전의 반환이라는 급부의 원상회복이 문제되는 법적 장면에서 그는 급부자의 급부 반환청구의 상대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은행 계좌에의 이체를 통한 금전 지급이 적법한 것으로 효력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계좌 번호를 일반적으로 또는 특정한 제3자에게 개시(開示)하는 것에 의하여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 지급의 당사자 사이에 합의된 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판단 기준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이익형량은 이 사건의 사안과 유사한 이른바 ‘삼각관계에서의 급부부당이득’에 관한 지도적 선례인 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1다46730판결(대법원판례집 51권 2집, 375면)(앞에서 든 대법원 2007. 11. 29. 판결과 함께 이들이 다름아닌 '대법원판례집'에 수록된 것은 물론 우연이 아니다)에서 적절하게 제시된 바 있다(자기 행위로 인한 위험의 자기 부담 및 각자의 계약상 항변사유의 관철 등). 따라서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기로 한다. 5. 앞의 지도적 선례 대법원 2007. 11. 29. 판결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그러한 취지가 주장되었다. 즉 착오 송금의 부당이득법 처리에서는 그 이유를 수취인의 예금채권의 성립 등을 들어 은행에는 이익이 없다는 것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송금 의뢰로 인한 급부관계는 송금의뢰인와 수취인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급부의 원인 결여로 인한 부당이득(이른바 급부부당이득)도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만 성립한다”는 것이다(양창수, 일반부당이득법의 연구, 1987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224면 이하; 김형석, “지급지시·급부관계·부당이득”, 서울대 법학 47권 3호(2006), 308면 이하. 위 2007년 판결에 대하여 윤진수, “2007년 주요 민법판례 회고”, 서울대 법학 49권 1호(2008), 379면). 이에 따른다면, 대상판결이 비록 이른바 마이너스통장에 입금된 금전의 반환청구에 관한 것이었다고 해도, “원고의 이 사건 이체송금으로 인한 급부관계는 피고 은행이 아니라 A와의 사이에서 성립한 것이므로, 그 급부의 원인이 없음을 이유로 하는 반환청구도 그를 상대로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나고, 이체된 금전의 그 후의 운명(채권채무의 성립, 자동적 상계 등)은 애초 이를 문제 삼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양창수 전 대법관(한양대 로스쿨 석좌교수)
마이너스통장
착오송금
부당이득반환청구
양창수 전 대법관(한양대 로스쿨 석좌교수)
2022-08-25
헌법사건
개성공단 사업 중단조치와 공용제한 문제
1. 서론 개성공단에서 사업하려는 사업자에게 정부가 중단조치를 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할까? 사업자의 손실은 보상해야 할까 혹은 개성공단은 북한 지역에 위치한 특수성이 있으므로 언제든지 사업이 중단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보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검토함에 있어 중단조치를 한 주체별로 그리고 피해 유형별로 구분하여 보상 문제를 검토해 보면서 최근의 헌법재판소 결정을 평석한다. 2. 사안의 개요와 결정 요지 청구인은 북한 내 개성공업지구에서 상업시설 신축 및 분양, 임대 등의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기 위하여 2007년 6월 25일 한국토지공사로부터 상업업무용지의 토지이용권을 분양받고, 통일부장관으로부터 협력사업자 승인 및 영업소 설치 승인을 각 얻었으며,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로부터 근린생활시설 신축에 관한 건축허가를 받았다. 청구인은 이 사건 사업부지 지상 시설에 관한 설계비로 1억 원을 지급하였다. 2010년 3월 26일 해군 소속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부장관은 2010년 5월 24일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및 진행 중인 사업의 투자확대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북조치(5.24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청구인은 토지이용권을 사용·수익할 수 없게 되자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나 패소판결을 받은 후 보상입법을 제정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가 청구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16년 2월 3일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의 청구를 아래와 같은 이유로 각하하였다. "이 사건 대북조치는 개성공단 내에 존재하는 토지나 건물, 설비, 생산물품 등에 직접 공용부담을 가하여 개별적, 구체적으로 이용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개성공단이라는 특수한 지역에 위치한 사업용 재산이 받는 사회적 제약이 구체화된 것일 뿐이므로, 공익목적을 위해 이미 형성된 구체적 재산권을 개별적,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헌법 제23조 제3항 소정의 공용 제한과는 구별된다. 또한 이 사건 대북조치로 인한 재산권 제한에 대하여 보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하여야 할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입법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는 아니하다…북한에 대한 투자는 그 본질상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변화하는 남북관계에 따라 불측의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당초부터 있었고, 경제협력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들은 이러한 사정을 모두 감안하여 자기 책임하에 스스로의 판단으로 사업 여부를 결정하였다고 볼 것이다." 3. 공용제한 해당 여부 공용제한이란 공공필요를 위하여 재산권에 가해지는 공법상의 제한을 말한다. 재산권자가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는 점에서 공용수용과 구별되며, 행정주체가 타인의 재산권을 사용하는 공용사용과도 구별된다. 또한 공용제한은 공공필요를 적극 실현하기 위해 가해지는 제한이라는 점에서 소극적인 질서유지를 위하여 가해지는 경찰상의 제한(위험건축물의 사용금지 등)이나 재정목적을 위한 재정상의 제한(강제징수를 위한 재산압류로 인한 처분제한 등)과 구별된다. 서울고등법원(2013. 5. 3. 선고 2012나34247 손실보상등 사건)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이 일정한 공익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공용침해'라 하는데, 이러한 공용침해는 공용수용, 공용사용, 공용제한으로 분류된다. '공용제한'이란 특정한 공익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개인의 재산권에 과하여지는 공법상의 제한을 말하는 것이다"고 했다. 위 판례는 해상시험사격이라는 특정한 조건하에서는 어업이 제한되는 것을 공용제한으로 본 것인바, 이 사건에서 국가안보위기상황에서 신규투자자의 현장출입을 제한한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이 사건에서 통일부가 취한 조치는 '이미 개성공업지구 내에 토지이용권을 취득하고 건축허가를 받은 경우에도 건축공사의 착공과 이를 위한 자재의 반입을 사실상 억제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청구인은 토지이용권을 전혀 사용·수익할 수 없게 되었다. 청구인에 대한 이 사건 조치는 국가안보라는 공공필요를 위하여 청구인의 토지이용권이라는 재산권에 가하는 공법상의 제한이다. 이 사건 조치는 북한의 위협 조치에 대응하는 정책수단이란 점에서 '공공필요를 위하여' 행해진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미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사업에 대해 토지이용권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재산권에 가해지는 공용제한이다. 4. 개성공단 사업 중단의 유형별 검토 주체별로 그리고 사업단계별로 유형을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북한에 의한 제한인 경우이다. 개성공단은 북한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바, 재산권 제한이 북한의 조치로 생길 수 있다. 2013년 개성공단 중단 사태의 경우 북한에 의한 출입제한 조치로 수개월간 조업이 중단된 경험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헌법상 공용제한이 문제되는 경우에 제한의 주체는 국가 등인바, 남한 헌법의 적용영역에서 북한을 공용제한행위의 주체로 볼 여지는 없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남한 정부에 손실보상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이런 경우는,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한 사회적 제약이라고 볼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언급한 '개성공단이라는 특수한 지역에 위치한 사업용 재산이 받는 사회적 제약이 구체화된 것일 뿐이므로'라는 표현은 이런 경우에 적합하다. 다음으로, 남한에 의한 제한인 경우이다. 개성공단 사업을 계획하고 기반시설을 구축한 것은 남한 정부이며, 현지기업은 남한의 기업이나 개인이 출자하여 설립한 북한법인이다. 개성공단의 지리적 특성상 그리고 국가안보적 특성상 정치적 이유로 공단운영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공단운영을 제한할 경우에 손실보상이 필요한지 여부를 단계별로 검토한다. 첫째, 기왕에 현지기업을 설립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사업자 유형이다. 만일 정부가 현지기업의 사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이는 '공익목적을 위해 이미 형성된 구체적 재산권을 개별적,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공용제한'에 해당할 것이다. 둘째, 신규 투자를 위해 토지이용권을 매수하고 건축허가 등 행정절차를 거친 사업자 유형으로 이 사건 청구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도 상당한 자금이 투입되었고, 행정절차도 거친 상황이므로 구체적 재산권이 형성되었다 할 것이다. 만일 남한 내의 산업단지에 토지를 구입하고 건축허가를 받았는데 감염병 등의 사유로 출입자체를 제한하여 재산권 행사가 장기간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면 손실보상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셋째, 신규 투자를 모색하고 준비하는 사업자 유형이다. 이 경우는 통일부장관의 사업승인 등 구체적인 권리가 형성되지 않은 단계인바, 이 단계에서 개성공단 사업이 중단되었다면 이는 재산권의 사회적 제약에 해당할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재산권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실보상이 문제될 여지도 없다. 5. 평석 가. 이 사건 조치는 청구인에게 공용제한임 이 사건 조치는 이미 발생한 청구인의 구체적인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고, 그 제한의 이유는 국가안보라는 공공필요다. 또한 행위의 주체는 남한 정부이므로 공용제한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따라서 이 사건 조치는 공용제한이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나. 이 사건 조치는 법률에 의한 것이 아님 이 사건 조치의 근본 문제는 법률의 근거도 없이 행해졌다는 점이다. 정부가 공용제한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법률이 있어야 함에도 법률의 근거 없이 이 사건 조치가 행해졌다. 따라서 다음 단계인 보상 법률에 대한 규정도 없다. 이 사건을 심리함에 있어 헌법재판소는 법률적 근거 없는 공권력행사로 피해를 입은 청구인의 권리보호에 소홀하였다. 향후 남북경협이 재개될 경우에는 남한 정부의 사업중단조치 및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업자에 대한 보상절차를 규정하는 입법적인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성공단 사업뿐만 아니라 북한지역에서 행해지는 남북경협 사업 전반에서 예상되는 공용침해를 유형별로 구분하고 각 경우별로 공용침해의 요건과 절차, 손실보상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다. 보상에 대한 입법적인 조치가 없는 입법부작위는 위헌임 헌법재판소의 선례(1998. 12. 24. 선고 89헌마214)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사건 조치로 인해 청구인이 입은 피해는 보상이 필요하다. 선례의 기준인 '실질적으로 사용·수익을 전혀 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도 아무런 보상없이 이를 감수하도록 하고 있는 한,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어 당해 토지소유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은 이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6. 결론 5.24 조치 이후 대북경협을 하던 다수의 사업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하였다. 법원은 손해배상의 요건인 위법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자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한편 손실보상 청구에 대하여는 손실보상에 관한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결국 사업자들은 경협중단의 위험을 자신들이 전부 부담하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법적 판단이다. 사법부에 의한 권리구제가 어렵게 되자, 사업자들은 입법부에 손실보상을 포함하는 법률을 제정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아직까지 입법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 개성공단지원법에 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는 근거조항을 추가하는 정도의 소폭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필자는 헌법이 정한 공용제한의 법리를 남북경협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입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대북사업과 관련하여 헌법이 정한 공용침해의 유형을 구분하고, 각 유형별로 보상의 기준과 절차를 정한 입법을 해야 한다. 당초 개성공단이 만들어질 때 논의했어야 할 문제지만 지금이라도 제정해야 한다.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향후 남북경협이 재개될 경우에 대비한 입법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 권은민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북한
개성공단
손실보상
남북경제협력
권은민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2022-08-02
공정거래
행정사건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의 부당성 요건
[사건의 경과] 1. 사안의 개요 원고들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기업집단 H에 속하는 회사들이다. 원고2와 원고3은 모두 기업집단 H의 특수관계인이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38조 제2항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회사다. 피고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 1월 10일 원고들에 대하여 ①원고1이 국제선 기내면세품 인터넷 사전예약 주문접수 및 결제 사이트인 '싸이버스카이숍'의 인터넷 광고수입 전액을 원고2에게 귀속시킨 행위, ②원고1이 원고2에 대하여 제동목장상품, 제주워터에 대한 통신판매수수료를 면제해준 행위, ③원고1이 원고2로부터 판촉물을 구매하여 오면서 두 차례에 걸쳐 판촉물 구입가격을 인상해줌으로써 원고2의 마진율을 기존 4.3% 수준에서 2013년 5월 9.7%, 2013년 9월 12.3% 수준으로 높여 준 행위, ④원고1이 원고3과 체결한 대한항공 국내선 콜센터 등 업무대행 도급계약에 따라 콜센터 관련 시스템사용료와 유지보수비를 지급하면서 SK브로드밴드가 무상으로 제공한 시스템 장비에 대해서도 비용을 지급한 행위가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로서 공정거래법 제23조의2(2020. 12. 29. 법률 제17799호로 전부 개정된 법 제47조, 이하 전부 개정 전 조문에 따라 표기한다) 제1항 제1호 및 제3항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을 하였다. 2. 원심의 판단과 피고의 상고이유 원심은,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제1호에서 금지하는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①행위 요건(‘정상적인 거래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과 ② 부당성 요건(‘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킬 것’)이 각각 별도로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 사건 각 행위는 위 요건이 충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들 전부 승소로 판단하였다. 이에 피고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에 별도의 ‘부당성’요건에 관한 규범적 평가가 필요 없고, ‘행위주체’, ‘행위객체’, ‘행위요건’이 모두 충족되면 일응 ‘부당한 이익의 귀속’에 해당하며, 다만, 같은 조 제2항, 시행령 제38조 제3항 [별표 1의3]에 규정된 정당화 사유를 원고가 입증하면 부당성이 부정된다고 주장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공정거래법 제23조의2의 규정 내용, 입법 경위 및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면,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제1호에서 금지하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해당하려면, 제1호의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그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 이익이 ‘부당’한지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아울러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당성'이란, 이익제공행위를 통하여 그 행위객체가 속한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되거나 경제력이 집중되는 등으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을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행위주체와 행위객체 및 특수관계인의 관계,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의 경위와 그 당시 행위객체가 처한 경제적 상황, 거래의 규모,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되는 이익의 규모, 이익제공행위의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변칙적인 부의 이전 등을 통하여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될 우려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이익이 '부당'하다는 점은 시정명령 등 처분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피고가 증명하여야 한다. [판결요지] 대상판결은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각호에서 금지하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에 해당하려면, 각호의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그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 이익이 ‘부당’한지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아울러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여 부당성이 별도의 요건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해당조항의 문언체계나 입법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한 판단이다. [평석요지] 여기에서 말하는 ‘부당성’이란, 행위 주체와 행위 객체 및 특수관계인의 관계,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의 경위와 그 당시 행위 객체가 처한 경제적 상황, 거래의 규모,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되는 이익의 규모, 이익제공행위의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변칙적인 부의 이전 등을 통하여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 될 우려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평석] 1. 부당성 요건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은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총액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는 특수관계인이나 특수관계인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회사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경우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의 유형 또는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규정하면서, '1.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2.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하여 수행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3. 특수관계인과 현금, 그 밖의 금융상품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4. 사업능력, 재무상태, 신용도, 기술력, 품질, 가격 또는 거래조건 등에 대한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즉,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각호에서 정한 행위의 결과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이 귀속되어야 하고, 그것이 부당하여야 한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귀속되는 이익의 부당성인데, ‘부당성’이 독자적 요건으로서의 지위를 가지는지, 가진다면 그 의미와 판단기준은 무엇인지 문제된다. 2. 공정거래법 제23조의2의 신설 경위 종래 부당지원행위를 금지하는 구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는, 사업자가 아닌 특수관계인 개인을 지원하는 경우 공정거래저해성을 입증하기 곤란하여, 총수 일가의 부당한 사익편취행위까지 규제하기는 곤란한 한계가 있었다. 대법원은 2001두6364 판결에서 "제3장에서 대규모기업집단의 일반집중을 규제하면서도 부당지원행위는 제5장의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의 한 유형으로서 따로 다루고 있으며, 변칙적인 부의 세대간 이전 등을 통한 소유집중의 직접적인 규제는 법의 목적이 아니"고, "원고의 이 사건 행위로 인하여 부의 세대간 이전이 가능해지고 특수관계인들을 중심으로 경제력이 집중될 기반이나 여건이 조성될 여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8월 13일 법률 제12095호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공정거래법 제23조의2를 신설하였다. 공정거래법 제23조의2는 공정한 거래를 저해하는지 여부가 아닌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3. 별도의 요건으로서 부당성 당초 개정법률안 발의시에는 해당 조항을 '정당한 이유 없이 특수관계인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제상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로 규정했었다. 그런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위 조항이 내부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고, 총수일가에게 부당하게 귀속된 이익만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며, 그러한 사항에 대한 증명책임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있다는 점 등을 나타내기 위해서, '부당한 이익'이라는 표현으로 수정되었다. 또한 제23조의2 제1항 각호에 해당하면 부당성이 당연히 인정된다는 견해에 의하면 각호의 행위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 제23조 제1항 제7호와 제23조의2에 모두 해당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이를 구별하여 신설한 입법취지에 반하는바, 입법취지를 살리려면, 제23조 제1항 제7호는 ‘공정거래저해성’을 기준으로, 제23조의2는 ‘경제력 집중’을 기준으로 각각 위법성 판단을 하도록 함이 합리적이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입법경위, 입법취지, 규정내용 등을 고려하여 부당성을 별도의 요건으로 판단하였다. 4. 공정거래법 제23조의2의 부당성의 의미 및 판단기준 부당성을 별개의 요건으로 보는 경우에 그 의미는, 공정거래법의 목적이 경제력집중 억제에 있는 점, 공정거래법 제23조의2의 입법경위 및 입법취지가 변칙적인 부의 세대간 이전 등을 통하여 소유집중의 우려가 있더라도 사실상 공정거래저해성을 입증하는 것이 곤란하여 규제가 어려웠던 점에 대한 반성적 고려로 신설된 점 등을 참고하여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부당성이란, 이익제공행위를 통하여 그 행위객체가 속한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되거나 경제력이 집중되는 등으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을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행위주체와 행위객체 및 특수관계인의 관계,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의 경위와 그 당시 행위객체가 처한 경제적 상황, 거래의 규모,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되는 이익의 규모, 이익제공행위의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변칙적인 부의 이전 등을 통하여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될 우려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여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다. 5.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각호에서 금지하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에 해당하려면, 각호의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그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 이익이 ‘부당’한지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아울러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여 부당성이 별도의 요건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해당조항의 문언체계나 입법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한 판단이다. 또한 대상판결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부당성의 의미와 중요한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제시한 개개의 판단 기준들이 실제 사안에 어떻게 포섭, 적용 될지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에서 관련 사례가 축적되면서 구체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인석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공정거래법제23조의2
특수관계인
부당한이익
이인석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2022-07-14
민사일반
친권자가 아닌 부모의 미성년자 불법행위에 대한 감독의무자 책임
1. 사실관계 A(당시 17세)는 2018년 8월 3일 망인과 성관계를 하던 중 휴대전화 카메라로 망인의 나체 또는 속옷 입은 모습을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였다. A는 같은 달 19일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망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위 사진을 전송하면서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였다. 망인은 같은 달 20일 새벽 1시 A가 보낸 메시지와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하여 자신의 SNS에 게시하였고,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 친구를 만나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다음, 12시 25분 투신하여 자살하였다. A는 망인에 대한 사진 촬영 및 협박 행위에 관하여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 B는 A의 아버지로 A가 2세 때 A의 어머니 C와 협의이혼을 하였고, A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C가 지정되었다. 망인의 부모와 여동생은 A의 협박으로 망인이 사망하였으므로, A는 민법 제750조에 따라, B와 C는 A의 부모로서 미성년자 A가 위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보호감독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게을리하였으므로 A와 공동하여 제750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소를 제기하였다. 2. 하급심의 판단 가. 제1심의 판단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A에 대하여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다만, A가 미성년자인 점, 사망에 대한 고의까지는 없는 점, 망인이 다른 성추행 사건 등으로 심리적으로 힘들어 불안장애 및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점 등을 참작 A의 책임을 60%로 제한). B와 C에 대하여는 부모(특히 C는 A와 같이 살았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A가 의존하면서 C의 전면적인 보호감독 아래 있었음)로서 평소 A가 올바른 성관념을 가질 수 있도록 성교육 등을 실시하고 그외 타인에게 불법행위를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이나 학교생활을 하도록 일반적·일상적인 지도·조언 등 감독교육의 의무가 있는데, 이를 게을리하여 망인의 사망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다만, ① C에 대하여는 A의 책임이 60%로 제한된 점, A가 다른 학교생활에서는 큰 문제없이 지내온 점 등을 고려 책임을 40%로 제한, ② B에 대하여는 C와 같은 사정 외에도 B가 A와 함께 살지 않아 A의 일탈을 사전에 감지하기는 쉽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 B의 책임을 10%로 제한). B는 C와 이혼하여 친권자로 지정되지 않아 A를 감독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자의 보호교양에 관한 권리의무가 친권자의 권리의무로 지정되어 있지만(제913조) 이는 친권자의 권리의무 이전에 부모로서의 권리의무이고, 부모가 이혼한 경우에도 자녀에 대한 양육자와 양육에 필요한 사항은 부모의 협의에 따라 정하고(제837조), 양육권을 가지지 않는 부모 일방은 면접교섭권을 행사하여 자의 보호교양에 일정 정도 관여할 수 있으므로(제837조의2) 이혼을 하면서 친권자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미성년 자녀에 대한 감독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할 수는 없어 피고 B는 친권자인 C와 함께 A를 감독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주장을 배척했다. 나. 항소심의 판단 제1심 판결에 대하여 피고들(A, B, C)이 모두 항소하였다. 그러나, 수원고등법원은 망인의 손해액을 일부 줄여 피고들의 항소를 일부 인용하면서도, 피고들의 책임의 성립여부 및 그 범위에 대하여는 제1심과 같은 취지로 판단하였다. 3. 상고심의 판단 항소심 판결에 대하여 B가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심 판결 중 B의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친권자는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며 교양할 법적인 의무가 있고, 부모와 함께 살면서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미성년자는 부모의 전면적인 보호감독 아래 있으므로, 그 부모는 미성년자가 타인에게 불법행위를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학교 및 사회생활을 하도록 일반적·일상적으로 지도와 조언을 할 보호감독의무를 부담하므로 그러한 부모는 미성년자의 감독의무자로서 미성년자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그런데, 이혼으로 인하여 부모 중 한 명이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된 경우 그렇지 않은 부모에게는 자녀의 보호교양에 관한 제913조 등 친권에 관한 규정이 적용될 수 없다. 비양육친은 자녀와 상호 면접교섭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이는 이혼 후에도 자녀가 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원만한 인격 발달을 이룰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녀의 복리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제3자와의 관계에서 손해배상책임의 근거가 되는 감독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라고 할 수 없다. 양육비 분담 의무만으로 비양육친이 일반적·일상적으로 자녀를 지도하고 조언하는 등 보호감독할 의무를 진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비양육친도 부모로서 자녀와 면접교섭을 하거나 양육친과의 협의를 통하여 자녀 양육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① 자녀의 나이와 평소 행실, 불법행위의 성질과 태양, 비양육친과 자녀 사이의 면접교섭의 정도와 빈도, 양육 환경, 비양육친의 양육에 대한 개입 정도 등에 비추어 비양육친이 자녀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지도·조언을 함으로써 공동 양육자에 준하여 자녀를 보호·감독하고 있었거나, ② 그러한 정도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면접교섭 등을 통해 자녀의 불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자녀가 불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부모로서 직접 지도·조언을 하거나 양육친에게 알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등과 같이 비양육친의 감독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비양육친도 감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피고 B는 A의 아버지이지만 A가 어릴 때 C와 이혼한 이후로 A의 친권자 및 양육자가 아니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망인의 유족인 원고들에 대하여 감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4. 평석 민법 제755조 1항 본문은 '다른 자에게 손해를 가한 사람이 제753조 또는 제754조에 따라 책임이 없는 경우에는 그를 감독할 법정의무가 있는 자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여 책임의 주체를 '미성년자를 감독할 법정의무가 있는 자'라고 명시하고 있고, 대법원 1994. 2. 8. 선고 93다13605 판결에서도 "미성년자가 책임능력이 있어 그 스스로 불법행위책임을 지는 경우에도 그 손해가 당해 미성년자의 감독의무자의 의무위반과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면 감독의무자는 일반불법행위자로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여 책임의 주체가 '미성년자를 감독할 법정의무가 있는 자'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현행법상 미성년자를 감독할 법정의무가 있는 자는 친권자(제913조 등)와 미성년후견인(제945조, 제946조, 제949조)이다. 친권은 부모가 미성년자의 친권자로서 갖는 권리와 의무 및 권한과 책임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민법은 단순히 부모로서 갖는 권리의무(성년후견개시청구권, 생명침해로 인한 위자료 청구권, 혼인동의권, 미성년자 입양동의권, 친권자지정 청구권, 부양을 받을 권리와 부양의무, 상속권 등)와 친권자로서 갖는 권한(미성년자의 법률행위에 대한 동의권, 미성년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독자 책임, 보호 및 교양의 권리의무, 법률행위대리권, 미성년후견인 지정권)을 구별하여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혼이나 혼인취소 또는 혼인외의 출생자가 인지되는 경우 등 친권자로 지정되지 않은 부모는 원칙적으로 미성년자를 감독할 법정의무가 있는 자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이혼 등으로 부모 일방이 친권자로 지정된 경우 부모 사이에 친권자 변경에 관하여 합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가정법원의 심판 등 재판이 있어야 변경될 수 있는 점, 부모 사이의 명시적인 합의가 아니더라도 친권자가 아닌 부모가 사실상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점, 친권자가 아닌 부모에게 포괄적인 보호감독권한이 아니더라도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보호감독권한을 인정할 필요할 필요가 있을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이혼 후 친권자로 지정되지 않은 부모라도 예외적으로 감독의무자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법의 이념에 비추어 타당한 결론으로 보인다. 한편, 종래 '친권'과는 별도로 '양육권'이라는 표현이 관행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현행 민법상 기본적으로 친권 외에 양육권이라는 개념을 별도로 쓸 필요는 없다(친권자나 미성년후견인의 권한의 일부). 다만, 친권자가 부모 공동으로 지정되었지만 부모 일방이 미성년자를 직접 보호양육하는 등 신상보호를 하는 경우, 부모가 친권자이지만 조부모 등 제3자가 사실상 미성년자의 신상보호를 하는 경우, 부모가 친권자인데 부모의 친권이 일부 제한되거나 재산관리권 등을 사퇴하여 미성년후견인이 선임되고 그 미성년후견인이 제한되거나 사퇴한 권한과 함께 미성년자의 신상보호를 맡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양육자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성년자의 부양의무는 친권자로서 부담하는 의무가 아니라 부모(직계혈족)로서 지는 의무이고, 양육비청구권은 부양료에 대한 구상권이다.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미성년자녀
감독의무
양육자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2022-07-11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가업의 승계와 상속세 공제
Ⅰ. 사실관계 A 주식회사 대표이사로서 이 회사를 20년 이상 경영한 B와 B의 모(母)인 C가 A회사의 발행 주식총수의 약 70%, 30%의 주식을 각각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B가 C로부터 주식 일부를 증여받았는데, 증여 이후 10년이 경과하기 전에 B가 사망하자, B의 배우자인 원고가 B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 전부(B 보유주식 + C로부터 증여받은 주식)를 상속받았다. 원고는 A회사의 대표이사에 취임하여 상속세 신고를 하면서 상속 주식 중 B가 10년 이상 보유하던 기존 주식에 대하여만 가업상속 공제를 적용하였다가, 증여받은 주식 부분도 가업상속 공제의 대상임을 주장하며 상속세 감액을 구하는 경정청구를 하였다. 그러나 관할 세무서장은 이를 거부하였다. 원고는 거부처분에 불복하여 2019년 4월 24일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하였으나 2019년 7월 11일 기각되어 이 사건 소를 제기하게 되었다. Ⅱ. 쟁점과 판결의 내용 1. 사건의 쟁점 이 사안의 경우 B가 스스로 10년 이상 보유한 주식은 당연히 가업상속공제를 위한 대상이 되지만, 모(母)인 C로부터 증여를 받아 10년이 경과하지 않은 주식도 함께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본인이 증여받은 주식 전부를 직접 10년 이상 보유하지 않아도 증여세 과세특례 대상에 속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2020. 5. 28. 선고 2019두44095 판결)는 있었으나 상속세와 관련해서는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지 않았다. 2. 법원의 판단(서울행정법원 2020. 7. 7. 선고 2019구합83052 상속세경정거부처분취소) 가. 가업승계와 상속세 공제 구 상증세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이하 '상증세법'이라 한다) 제18조 제2항 제1호는 '가업'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소기업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견기업(이하 '중소기업 등'이라 한다)으로서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하여 경영한 기업'으로 정의하면서 가업상속에 해당하는 경우 가업상속 재산가액에 상당하는 금액을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 상증세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에 따른 구 상증세법 시행령 제15조 제3항 제1호 (가)목은 구 상증세법 제18조 제2항 제1호에 따른 가업상속의 적용을 위한 피상속인의 요건 중 하나로 '중소기업 등의 최대주주 또는 최대출자자(이하 '최대주주 등'이라 한다)인 경우로서 피상속인과 그의 특수 관계인의 주식을 합하여 해당 기업의 발행 주식총수 등의 100분의 50(상장법인인 경우 100분의 30)이상을 10년 이상 계속하여 보유할 것'을 정하고 있다. 위 시행령 조항의 '최대주주 등'은 주주 또는 출자자 1인과 그의 특수 관계인의 보유주식 등을 합하여 그 보유주식 등의 합계가 가장 많은 경우의 해당 주주 등 1인과 그의 특수 관계인 모두를 말한다(구 상증세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 참조). 나. 피상속인 10년 보유 요건 여부 위 규정을 두고, 원·피고는 '피상속인이 상속재산인 해당 주식을 10년 이상 계속하여 보유할 것'이 가업상속 공제를 적용하기 위한 요건인지 여부에 관하여 다투었다. 1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며, '피상속인이 상속재산인 해당 주식을 10년 이상 계속하여 보유할 것'이 가업상속 공제를 위한 요건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① 가업상속 공제요건 중 피상속인의 주식보유에 관한 구 상증세법 시행령 제15조 제3항 제1호 (가)목은 '피상속인이 중소기업 등의 최대주주 등인 경우로서 그의 특수 관계인의 주식 등을 합하여 발행 주식총수 등의 100분의 50 이상을 10년 이상 계속 보유할 것'을 정하고 있으므로 위 요건만 충족되면 될 뿐, 피상속인이 해당 주식을 10년 이상 보유할 것을 요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② 위 시행령은 2017년 2월 7일 대통령령 제27835호로 개정되면서 계속 보유 기간에 대해 '10년 이상'을 명시하게 되었는데, 이 취지는 '가업'에 관한 정의에 맞추어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 보유기간이 10년 이상일 것을 명확히 하는 데 있는 것일 뿐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③ 구 상증세법이 가업의 상속에 관하여 상속세 과세특례를 규정한 취지는 중소기업 등의 영속성을 유지하고 경제 활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가업 상속에 대하여 세제지원을 하고자 함인데, 특수 관계인의 보유 주식이 피상속인에게 이전 된 후 가업상속을 위해 상속되는 경우에도 중소기업 등의 영속성 유지에 기여하므로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 보유한 주식의 상속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결국 중소기업 등의 최대주주 등인 피상속인과 그의 특수 관계인이 10년 이상 계속하여 보유한 주식에 대해 가업상속 공제를 적용하더라도 가업상속에 관한 과세특례 규정의 입법취지가 몰각된다거나 조세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다. 결론 1심은 B가 그 특수 관계인인 C로부터 10년 이상 보유하던 이 사건 주식을 증여받았고, 소외 B의 사망으로 인한 상속개시로 위 증여 전에 보유하던 B와 C의 주식이 함께 원고에게 상속되었으므로, 이 사건 주식은 가업상속 공제대상인 주식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여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하였다. 2심(서울고등법원 2021. 3. 26. 선고 2020누52889판결, 원고 승) 및 대법원(2021. 8. 26. 선고 2021두38741 판결,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원고 승)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Ⅲ. 검토 이 사건에서 피고는 조세심판 및 재판과정에서 '가업을 경영하는 자가 가업을 경영하지 아니한 자로부터 증여받아 10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주식에 대하여는 가업상속 공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예규(기획재정부 재산세과-385, 2014. 5. 14.)를 근거로 가업상속 공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규상의 내용은 관련 법률 및 시행령에 규정되지 않는 요건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결국 법원은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법률에 규정되지 않는 요건을 확장해석 또는 유추 해석할 수 없다고 보았다. 탈법적인 가업상속 공제 제도의 이용은 봉쇄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피상속인이 상속재산인 '해당 주식'을 10년 이상 보유할 것"이라는 요건의 해석은 전혀 새로운 법률상의 근거를 만드는 것으로 법률해석을 통하여 창설해 내는 일종의 입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어 권력분립원칙에 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이번 판결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① 가업의 승계는 경영승계와 함께 소유승계가 수반될 필요가 있으므로 상속인이 가업에 계속하여 종사하여할 뿐만 아니라 주식 등의 지분도 일정 정도 유지되어야 하는 점을 확인하였다. ② 피고의 주장과 같이 법령 문언을 넘어서 확장해석하거나 유추 해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즉, 가업승계 상속세 공제에 있어, 피상속인 스스로 상속재산인 해당 주식을 10년 이상 계속 보유할 것이 요건이 될 수 없다. ③ 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9두44095 판결에서 가업승계를 위해 주식양도가 이뤄진 경우, 증여자와 특수 관계인이 해당 회사 주식의 50% 이상을 10년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면, 직접 10년 이상 보유하지 않아도 증여세 과세 특례를 적용할 수 있다고 최초로 판시한 바 있다. 이 사건은 법원이 상속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입장을 취한 것이다. ④ 법원이 납세의무자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조세법률주의에 입각함과 동시에 가업 승계를 위한 상속세 공제제도를 조화롭게 해석 및 적용한 사례이다. 박성태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
상속세
가업상속
승계
박성태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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