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만나는 자연 그대로의 숲, 대체 불가능한 숲과 집의 가치 - 르엘 어퍼하우스
logo
2024년 4월 29일(월)
지면보기
구독
한국법조인대관
판결 큐레이션
매일 쏟아지는 판결정보, 법률신문이 엄선된 양질의 정보를 골라 드립니다.
전체
한국외대
검색한 결과
7
판결기사
판결요지
판례해설
판례평석
판결전문
소비자·제조물
제조물책임법의 적용범위와 소비자로서의 양계업자
이병준 교수(한국외대 로스쿨) · 김세준 교수(경기대 법학과) Ⅰ. 대상판결 1. 사실관계 원고 양계업자는 피고 동물의약품 제조사로부터 의약품을 공급받아 사육하고 있는 닭들에게 투여하였는데, 해당 의약품에 계란에 있어서는 안 되는 성분이 들어 있었고 이로 인하여 결국 원고는 계란을 공급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어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2. 대법원 판시 내용 대법원에서는 일단 "제조업자 등이 합리적인 설명, 지시, 경고 기타의 표시를 하였더라면 당해 제조물에 의하여 발생될 수 있는 피해나 위험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때에는 그와 같은 표시상의 결함(지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하여도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그와 같은 결함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 때에는 제조물의 특성, 통상 사용되는 사용형태,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의 내용,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및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의 가능성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존의 법리를 전제로 하였다(대법원 2003. 9. 5. 선고 2002다17333 판결, 대법원 2008. 2. 28. 선고 2007다52287 판결 등 참조). 그러면서 해당 사안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피고가 제조·판매한 엔로트릴은 가축의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동물약품으로, 주된 소비자는 원고와 같은 양계업자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가축 사육업자들이지만 최종적인 소비자는 일반 시민들이므로, 이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축산식품의 잔류 동물약품에 의한 오염 여부는 그에 따른 상당한 책임 문제가 수반되는 사육업자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 사항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동물약품의 전문 제조·판매업자인 피고로서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것으로, 휴약기간 미준수의 경우 식육 등 축산식품에 약물이 잔류될 수 있어 '시간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준수'하도록 한 엔로트릴의 권고사항에 비추어도 그러하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동물약품 안전사용을 위한 10대 수칙'에서 휴약기간 동안 사료 통, 축사, 사료저장고 등을 완전히 청소한 후 약제가 들어있지 않은 사료와 물만 먹이라는 주의사항을 둔 것도 잔류 동물약품으로 인한 축산식품 오염의 위험성이 축산식품의 생산·판매 및 그 전제 되는 동물약품의 구입·이용에 있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됨을 나타낸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위와 같은 사유들은 그 직접 소비자인 사육업자들로서도 엔로플록사신에 표시된 휴약기간의 철저한 준수 외에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계분을 통한 간접 섭취 등 구체적 사육환경 하에서 휴약기간 준수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관리상 주의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정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내용의 소비자 측 귀책사유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앞서 본 엔로플록사신의 특성, 예상 가능한 사용형태, 그 안전성 혹은 위험성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와 인식의 정도,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및 그 위험회피를 위한 표시 등 조치의 난이도 및 신뢰 혹은 기대 가능성 등에 비추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나마 그 간접 섭취(투약)에 따른 휴약기간의 변동(조정) 가능성을 전혀 언급하지 아니함에 따른 '제조물 책임법'상 표시상의 결함 및 피고의 책임을 전적으로 배제할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Ⅱ. 평석 대표적인 소비자 불법행위법으로서 제조물책임법이 있다. 그런데 제조물책임법을 살펴보면 어디에도 소비자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대상 판결에서는 양계업자를 달걀을 낳는 닭에 사용된 의약품의 소비자로 표현하면서 피고 제약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다른 요건이 충족되었다는 전제하에 양계업자가 제조물책임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와 양계업자를 소비자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1. 제조물책임법상 손해배상청구권자 제조물책임법 제3조 제1항은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그 제조물에 대하여만 발생한 손해는 제외한다)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정의규정도 제조업자에 관해서만 규정할 뿐(제2조 제3호), 동법에 따라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자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통상 매수인은 민법의 매매계약에 규정된 하자담보책임에 기해 충분한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자와 계약관계에 놓이지 않은 제3자, 즉 소비자를 보호대상으로 생각한다. 제3조 제1항에서 제조물에 대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를 제외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매매계약관계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는 하자담보책임이 적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대부분의 국내문헌은 특별한 고찰 없이 제조물책임법상 손해배상청구권자를 소비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제조물책임법이 소비자 안전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라는 사고를 기초로 하는 결과이지만 특별한 근거는 없는 해석이다. 제조물책임법에서 주된 보호대상이 소비자라고 하여, 소비자가 아닌 자가 보호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즉 제조물책임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대상이 주로 소비자일 뿐 그 범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유의하여야 한다. 이에 더하여 법문언상으로도 아무런 제한이 없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정이유에서도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한 생명, 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해에 대하여 제조업자 등이 무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조물책임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도모하고 국민생활의 안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며 제품의 안전에 대한 의식을 제고하여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려는 것"라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취지에 따르는 경우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이기만 하면 제3조 제1항의 책임을 제조업자에게 물을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대법원 판시내용에서 손해배상책임의 청구자 지위를 소비자로 표현하는 부분은 의문이 든다. 즉 대법원에서는 동물약품의 주된 소비자는 양계업자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가축 사육업자들이지만 최종적인 소비자는 일반 시민들이라고 보고 있다. 2. 유럽연합과 독일법의 시각 유럽연합과 독일 제조물책임법에 의하면 하자 있는 제조물에 기하여 다른 물건에 대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 물건이 통상적으로 사적인 이용 내지 소비를 위한 것이고 손해를 입은 자가 이를 위하여 실제로 사용한 경우에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 즉 생명과 신체에 대하여 발생한 손해와 달리 재산상 손해에 대하여 소비물이고 실제로 소비하였을 것을 요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양 요건이 중첩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므로 영업상 사용하는 제품인 경우에는 비록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 내지 소비를 하였더라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적인 목적의 제품이더라도 영업상 사용한 경우에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 규정의 입법목적을 쉽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입법이유에서는 영업 또는 직업상 제조물을 사용하는 자는 그 법률관계를 계약법적으로 제대로 규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자의 계약상대방뿐만 아니라 계약관계에 놓이지 않은 제3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위 입법이유가 모든 경우에 타당한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 법과 달리 이 규정을 통하여 재산상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는 사적인 이용 내지 소비로 제한된다. 그리고 사적 이용 내지 소비가 인정하기 위해서는 제조물이 영업 또는 직업목적이 아닌 영역에서 이용 내지 소비되어야 한다. 이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지위가 인정되기 위하여 피해자가 소비자이어야 하는지에 관하여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연합 내지 독일법상으로는 양계업자는 영업목적으로 이용한 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조물책임법에 기한 책임을 묻지 못한다. 3. 결론 제조물책임법에서는 손해배상청구의 주체를 특별히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기만 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지위에 있게 된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해당 사안에서 표시상의 결함을 인정하는 한편 사업을 목적으로 의약품을 구입한 양계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다만 판시내용에서 양계업자를 소비자로 표현한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의약품을 구매하여 사용 내지 소비하였더라도 그 목적이 영리적인 것에 있는 한 사업자이지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사용 내지 소비하는 행위가 이루어지더라도 사업 내지 직업 목적으로 한 경우에는 사업자이고 사적인 목적으로 한 경우에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무리 방론적인 설명에서 사용된 것이라도- 양계업자를 법률적 개념인 소비자로 표현한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제조물책임법을 대표적인 소비자 불법행위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마치 소비자인 경우에만 청구주체가 되는 것으로 오인할 여지가 있다. 한편 비교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유럽연합과 독일의 입법자는 재산상 손해의 경우 영리목적으로 사용한 경우에는 보호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소비재를 소비목적으로 실제로 사용 내지 소비한 경우에 대하여만 제조물책임을 긍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은 입법차원의 문제이므로 대상 판결에서 고민해야 할 사항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병준 교수(한국외대 로스쿨)·김세준 교수(경기대 법학과)
제조물책임
표시상결함
소비자
이병준 교수(한국외대 로스쿨)·김세준 교수(경기대 법학과)
2022-09-19
민사일반
'사정변경의 원칙' 적용론
[사실관계] 원고들은 2015년 8월 26일 해외이주 알선업체인 피고와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을 위한 이민알선업무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은 계약서 작성일부터 원고들의 이민비자 취득일까지 유효하고, 국외알선 수수료는 미화 3만 달러로 하되, 계약 시, 노동허가 취득 시, 이민허가 취득 시로 나누어 미화 1만 달러씩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당시 업무 관행상 통상 2년 정도면 비자발급 절차가 마무리되었는데, 이러한 점은 계약 당시부터 당사자들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원고들은 2016년 5월 미국 이민국의 이민허가를 받고, 국외알선 수수료를 모두 지급하였다. 그런데 기존에는 이민허가를 받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민비자가 발급되었으나, 주한 미국대사관이 갑자기 비숙련 취입이민 신청에 대해 추가 행정검토(AP) 및 이민국 이송(TP) 결정을 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원고들의 비자발급도 중단되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나 비자발급 절차 재개 여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원고들은 2017년 12월 1일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 등을 주장하며 피고에 대하여 이미 지급한 수수료의 반환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의 해지를 인정하였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결정으로 당초 예상했던 기간보다 훨씬 장기간 비자발급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어 원고들이 언제 비자를 발급받을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므로,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았던 원고들의 비자발급 여부에 관하여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이 생겼고,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들에게 최종적인 결정을 기다려서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하였다. [평석] 1. 사정변경의 원칙의 의미 이른바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의 성립 당시에 있었던 환경 또는 그 행위를 하게 된 기초가 되는 사정이 그 후 현저하게 변경되어 당초 정해진 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하는 것이 신의칙과 공평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법률행위의 효과를 신의, 공평에 맞도록 변경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계약준수의 원칙(pacta sunt servanda)에 대한 예외라고 일컬어진다. 대상판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근 대법원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 원칙을 정면으로 적용하여 계약의 해지를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제 사정변경의 원칙에 대한 고민은 그 이론적인 규명을 넘어, 구체적인 사안에서 그 적용을 고려할 수 있는지, 실제 계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실질적으로 논의로 이어져야 하는 시점이다. 근래에 전염병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회 상황이나 기술이 예측할 수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원칙은 향후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2. 인접 개념과의 경계 사정변경의 원칙은 신의칙의 파생 원칙이므로, 민법의 규정과 계약법의 원칙들에 비해 보충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사정의 변경으로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면,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될 국면이 아니다.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의 이행이 여전히 가능한 것을 전제로, 그 내용대로 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부당한지를 따져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행불능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는 것이 종국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는데, 법적으로 이행이 가능한지 여부가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니다. 대상판결에서는 1년 반이 넘도록 비자 업무가 중단된 이유나 절차 재개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비자발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평가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비자가 최종적으로 발급되거나 거절되기 전까지는 일시적, 사실적 불능 상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민국이 재심사를 통해 이민허가를 철회하기 전에 종국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계약 체결 이후의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계약위험의 분배에 대해 당사자들이 합의하였거나 위험의 인수가 계약에 내재되어 있다면, 사정변경의 원칙이 그에 우선할 수는 없다. 사정변경은 계약의 해석으로는 그 위험에 관한 분배를 정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소 고려되는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에 AP/TP 결정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기존에는 2년 정도면 문제없이 비자가 발급되어 왔다는 점을 당사자들이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AP/TP 결정을 받아 절차가 지연됨으로써 발생하는 위험배분에 대해 묵시적으로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는 통상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사정의 변경으로, 어느 일방이 위험을 인수하였다고 할 수 없다. 3. 적용 요건 대상판결이 언급하는 사정변경의 원칙의 요건은 대체로 ① 현저한 사정변경, ② 예견불가능, ③ 계약유지의 부당성으로 요약된다. 이들 세 가지 요건은 독립적이라기보다 상호 연관성이 있다. 현저한 사정변경의 대상은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은 사정으로, 일방 당사자의 주관적이거나 개인적인 사정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상판결에서 2년 정도면 비자발급 절차가 마무리되는 업무 관행은 당사자들이 계약을 체결하며 전제로 한 사정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이른바 동기의 착오로 보아야 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으나, 이 사안은 계약 당시 존재하는 사정에 대한 착오가 아니라 계약성립 이후 객관적인 외부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여 당사자들의 기대가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예견불가능성을 요하는 것은, 당사자가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면 당사자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그에 대비하여 계약을 다른 내용으로 체결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에서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업무처리가 변경된 이유나 비자발급이 언제 재개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었으므로, 이는 당사자들이 계약 당시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이다. 계약을 체결한 시점에 따라 비자업무의 중단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적어도 당사자들의 계약 체결 시점에서는 예견가능성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부당성에 대해 판례는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이는 사정변경의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계약의 구속력을 고집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는 경우를 등가관계의 파괴나 계약목적의 달성 불가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므로, 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부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계약 내용대로라면 원고의 권리구제 방안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비자발급을 기다렸다가 종국적으로 이민비자 취득이 불가능해지면 기납입 수수료의 80%를 환불받는 것이었다. 종국적으로 비자발급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면, 계약의 목적달성이 어렵거나 그로 인한 이익이 상당히 반감될 것이다. 따라서 계약 내용을 강제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4. 인정 효과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으로 인해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계약을 해제·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사정변경의 효과에 관한 논의는 실제 사안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다소 원론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경향이 있는데, 이는 최근까지도 법원이 이 원칙을 인정하는 것에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는 것에 그칠 뿐, 구체적으로 계약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지를 검토한 예는 많지 않다. 대상판결은 계속적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인바, 원고의 수수료 지급에 비해 피고의 급부 이행이 완결되지 않았으므로 원고들이 지급을 완결한 수수료의 일부를 원상회복하여야 한다. 법원은 계약에서 이민허가가 나지 않으면 수수료의 80%를 환불하도록 규정한 것에 비추어 원고들이 기지급한 3만 달러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반환하도록 하였다. 피고가 급부를 이행하기 위해 실제로 지출한 비용이 아니라 그 가치에 대한 당사자들의 평가를 반영한 것은 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쟁점이 된 것은 아니지만, 학설은 대체로 사정변경의 효과로서 계약의 해제·해지 외에 계약의 수정을 인정한다.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전부 해소하는 것 외에 유연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정권의 행사 요건, 절차나 방식, 해제권과의 관계 등 세부적인 검토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이 글에서 이를 모두 다루기는 어려우나, 계약 내용의 수정에는 당사자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고 법원의 자의적인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자 한다. 향후 판례가 축적되고 이를 토대로 한 연구가 계속되어, 사정변경의 원칙이 일반 원칙으로서의 유연성은 유지하되, 그 요건과 효과는 더욱 구체화되어 실효성 있는 규범으로 자리하기를 기대한다.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취업이민
국외알선수수료
사정변경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22-02-14
민사일반
헬스클럽의 회비 임의변경조항에 관한 약관법적 문제
[사안의 개요] 1. 피고는 1985년경부터 종합 스포츠센터(이하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원고들은 센터 개관 무렵 또는 그 이후 피고와 사이에 특별회원 가입계약을 체결하면서 입회비 및 보증금을 납부하거나, 입회비 및 보증금을 납부한 자로부터 회원권을 양수받아 이용권한을 취득한 특별회원들이다. 피고는 2011년 2차례에 걸쳐 센터 회원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실시한 후 센터 본관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를 시행하였고, 위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된 2012년 초 원고들을 포함한 특별회원을 대상으로 2차례의 공청회를 실시하여 위 리모델링 공사의 실시 및 물가상승 등 제반 경제적 여건의 변화로 인하여 센터의 특별회원에 대한 보증금을 추가로 부과할 것임을 통지하였다. 이 사건 관련 센터 회칙(이하 '이 사건 회칙') 규정은 아래와 같다. 제17조(회비의 변경조정) 스포렉스의 각종 회비는 공과금의 증액과 물가 및 기타 경제적 여건의 변동 등을 고려하여 조정할 수 있다. 단, 기 납부된 회비에 대하여는 그 권리를 인정한다. 제20조(발효) 본 회칙은 1984년 11월 20일부터 그 효력을 발생한다. 원고들은 이 사건 회칙 제17조가 약관으로서 피고로 하여금 채무의 이행에 관하여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조항이자,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하고 고객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이므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이라 한다)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원고들은 설령 피고가 이 사건 회칙 제17조에 기하여 원고들에게 추가 회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고지한 금액이 지나치게 과다하여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센터가 클럽시설 이용의 대가인 회비를 임의 조절할 수 있도록 클럽규약에 규정되어 있더라도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만 그 회비의 인상 여부 및 인상 범위를 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시설주체가 특별회원들에게 추가로 부과한 회비는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하였다. [연구] Ⅰ. 들어가며 가격조정조항에 따른 사업자의 가격조정은 일방적 급부변경에 해당하고 계약법의 대원칙인 계약준수(pacta sunt servanda)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고객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 사업자가 가격조정을 통해 계약적 등가관계를 훼손하면서 후발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의 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오남용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조정조항에 대하여는 일정 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 제10조 제1호는 채무의 이행과 관련하여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을 무효로 선언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센터 회비 임의변경조항(가격조정조항)의 약관법적 유효성 여부에 관해 다툼이 있는바, 특히 그것의 유효성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이 문제된다. Ⅱ. 가격조정조항이 약관 내용통제의 대상인지 여부 센터 시설의 회비는 회원제 센터이용계약의 급부 또는 반대급부에 해당하므로 약관법에 따른 내용통제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닌지가 문제된다. 계약체결 당시의 회비는 이용자의 회원제 센터이용에 대한 반대급부에 해당하고, 따라서 내용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조정조항에 기반하여 새롭게 형성된 회비는 원래의 계약과는 내용을 달리하는 가격에 관한 부수적 약정이며, 그에 관한 조항은 부수적 대가조항으로서 항상 약관법에 따른 내용통제의 대상이 된다. 일방적 급부변경권은 채권관계의 발생 또는 내용 변경을 위해서는 법률에 정함이 없는 한 당사자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문의 법원칙인 '계약준수의 원칙'을 일탈하는 급부변경조항 내지 가격조정조항은 내용통제를 받아야 한다. Ⅲ. 약관법 제10조 제1호의 '상당한 이유' 상당한 이유의 존부를 판단하기 위해 4가지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가격조정조항이 투명해야 한다. ② 고객이 원래 약정된 급부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보호의 가치가 있는) 이익을 가져서는 안 된다. ③ 사업자 측에 변경을 정당화하는 실체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 ④ 변경이 결과적으로 본래적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성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 1. 가격조정조항의 투명성 상당한 이유의 존부와 관련하여 투명성이 요청되는 이유는 가격'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약관사용자가 나중에 일방적으로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하여 본래의 계약적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투명성과 관련하여 법학 교육을 받지 아니한 평균적인 고객이 '계약체결 시'에 약관조항의 문언을 통해 어려움이 없이 언제 변경을 예상해야 하는지, 약정된 급부의 어떠한 변경이 허용되는지를 쉽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급부변경을 위한 사정이 어느 정도로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야 하는지는 개별 분야의 특수한 사정과 계약기간의 장단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이다. 다만 계속적 계약관계에서는 변경의 사유 및 범위를 확정적으로 정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센터 개장 후 25년여가 지난 시점의 비전형적인 장래사를 약관조항을 통해 사전에 정밀하게 규율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가격조정조항의 투명성과 관련하여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포괄할 수 있고 개별 사안에서 전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구체화할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다. 2. 고객의 본래적 급부수령에 대한 이익 사업자가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시장 여건의 변동으로 인해 급부의 사양(仕樣)을 일관하기 어려운 경우 급부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반면 고객은 여하한 변경 없이 계약상의 급부를 그대로 받는 것에 대한 이익을 가질 수 있다. 급부내용이 변경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가 그러하다. 3. 실체적 변경사유 약관법상의 일반적 투명성 요청과 급부내용의 변경유보는 계약준수의 원칙 및 그로부터 파생되는 계약적 합의는 양 당사자의 합의로만 변경할 수 있다는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이룬다는 점으로부터 약관에 실체적 변경사유가 추상적이나마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4. 등가관계의 유지 가격조정이 계약체결 당시에 존재하던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성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사업자는 가격조정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 가령 계약체결 당시에 고객이 누렸던 가격 관련 유리한 지위는 특약이 없는 한 사용자에 의한 후발적이고 일방적인 가격 인상으로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 등가관계의 파괴는 계약당사자의 이익의 균형을 도모하고자 하는 계약법적 메커니즘을 교란함과 동시에 계약의 실체적 정당성을 위태롭게 한다. 따라서 사업자 측의 원가변동 및 그 밖의 가격변동요인의 기회와 위험은 계약의 양 당사자에게 동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Ⅳ. 나오며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계속적 계약관계로서의 성질을 가진 회원제 센터이용계약에서 사정변경에 따른 가격조정이 문제되었다. 거래당사자는 특약이 없는 한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애초의 가격이 영구적으로 고정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특별회원에 대한 평생무료이용계약이 체결된 바 없다면, 센터의 증·개축으로 인한 회비 인상은 기본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회칙에서는 급부변경의 기본적 요건이 명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비 인상에 즈음하여 수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변경의 사유 및 범위가 통보되었다. 따라서 센터의 일방적 급부변경을 위한 약관조항의 투명성 요청은 물론 실체적 사유도 충족된 것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들이 원래 약정된 급부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특별히 보호의 가치가 있는 이익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센터 시설의 증·개축으로 인한 시설의 편리성 증가는 일반적으로 그 회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센터 시설의 증·개축 관련 비용은 센터와 회원이 분담해야 하고, 회원의 부담부분은 애초의 계약적 등가관계에 해당하는 비율적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회비 인상은 가능하지만, 특별회원에 대한 회비 인상의 범위가 과도하여 본래의 등가관계를 해치고 있다. 결국,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센터 측의 회비조정조항 자체는 약관법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없지만, 센터 측은 특별회원이 부담부분을 잘못 산정하여(실제로 발생한 비용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특별회원에게 전가함으로써) 애초의 계약적 등가관계가 파괴되었다. 필자는 대상판결의 결론에 대하여는 대체로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대법원이 센터 시설의 증·개축과 이로 인해 특별회원이 새롭게 누리게 된 이익을 고려해 적정히 인상된 회비의 '테두리'를 정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이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이 파기환송한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 회비변경조항에 의해 인상된 회비는 본래의 반대급부라고 할 수 없고 부수적 대가이기 때문에 법원에 의한 적정한 회비 인상분 결정은 가능하다고 하겠다. 김진우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가입비
스포츠센터
연회비
헬스클럽
김진우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21-09-27
기업법무
상사일반
계속적 계약에서 교부된 계약이행보증금에 관한 소고
[사실관계] 피고 서울특별시 버스운송사업조합은 원고와 3년간의 시내버스 외부광고 대행계약을 체결하면서, 매체사용료는 3개월 단위로 선납하기로 하였다. 원고는 계약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3개월분의 매체사용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이행보증금으로 예치하고, 계약 해지시 잔여계약기간에 관계없이 이행보증금은 피고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정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에게 보증보험증권을 제출하였다. 이후 원고가 매체사용료 선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자, 피고는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이에 원고는 오히려 자신이 적법하게 해지 통지를 하였다고 주장하며 피고의 보증보험금 지급청구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 및 손해배상을 구하는 한편, 예비적으로 이행보증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해당하는 것을 전제로 감액된 금액에서만 보증보험금 지급청구권이 존재한다는 확인을 구하였다. 피고는 이행보증금은 위약벌에 해당하여 감액될 수 없다고 하면서, 추가로 계약해지일 이후 원고가 얻은 이익을 부당이득 또는 손해배상으로 반환할 것을 청구하였다. [법원의 판단] 이 사안에서는 계약의 해지 사유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와 이행보증금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 되었다. 이 중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 법원은 입찰공고의 내용이나 계약 조항 등을 종합하면 "당사자들의 의사는 이행보증금을 통하여 계약 이행을 강제하는 한편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함께 해결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이 사건 계약에서 보증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고 하였다. 나아가 "이행보증금은 낙찰자의 사정이나 귀책사유로 계약이 중도 해지된 이후에 발생할 모든 손해를 담보한다고 볼 수 있다"는 전제에서, 피고의 손해배상 또는 부당이득청구는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평석] 1. 계약이행보증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대상판결에서는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들 간에 채무자의 계속적인 급부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계약이행보증금 약정이 부가되었다. 이는 민법에 규정된 개념은 아니지만, 실제 거래계에서는 다양한 명칭과 형태의 보증금이 교부된다. 특히 공사도급계약이나 대규모 인수합병과 같이 계약의 체결과 이행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인 간극이 있거나 이행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 상당한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 보증금 약정이 빈번하게 활용된다. 이러한 계약이행보증금의 법적인 성격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초기 상당수 판례들은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벌로 보았으나, 현재 판례는 대체로 보증금을 일종의 위약금으로 보아 그 법적인 성격을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 중 하나로 이해한다. 그 구별 실익은 주로 민법 제398조 제2항이 적용되는지, 즉 법원에 의한 감액이 가능한지 여부에 있다. 그런데 계약이행보증금을 통상의 위약금과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한가? 당사자들이 단순히 계약 불이행시 손해배상액을 정해둔 것이 아니라 보증금을 사전에 교부하고 이를 몰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면, 그 현실적인 필요성이나 이에 관한 당사자들의 의사를 보다 진지하게 탐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국면에서 교부되는 보증금을 통일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개별 사안에서의 보증금 약정을 검토하는 것이 용이할 수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특히 계속적 계약에서 교부된 계약이행보증금이 문제되었다. 이는 장기간 상호 관계를 형성하는 당사자들의 계약 관계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대상판결은 그 외에도 계속적 계약의 해지 사유들을 다루었고 이 또한 흥미로운 주제이나, 이번 글에서는 보증금 약정을 위주로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다. 2.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의 의미와 기능 계속적 계약에서 당사자들은 장기간 계약을 유지하면서 해당 거래와 관련된 협력을 거듭하고, 이를 통하여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계약을 체결하는 시점에는 아직까지 이러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장기 계약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시험기간을 두는 등의 노력이 동원될 수 있다. 계약이행에 대한 물적, 인적 보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대상판결에서의 보증금 약정도 장기간 채무자의 급부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계약이행보증금은 채무자가 보증금을 채권자에게 미리 지급하고 자신의 귀책사유로 계약기간 내에 자신이 이행하기로 한 의무를 불이행하면 해당 금원이 채권자에게 귀속되는 구조이므로, 일반적인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비해 계약 이행에 대한 심리적 강제가 한층 강화된다. 특히 보증금이 상당한 금액으로 책정되었다면, 계약기간 동안 계약이 파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행되는 것을 담보하고자 하는 강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당사자들은 거래비용이 높은 계약을 체결하거나 거래를 위한 추가 투자에 나아갈 수도 있다. 채권자와 거래 경험이 없거나 신규로 시장에 진입하는 사업자가 상호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단가를 낮추는 방법으로만 경쟁해야 한다면, 경쟁에서 불리한 구도에 놓이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게 된다. 이때 채무자는 보증금을 교부함으로써 자신이 계약이행에 대하여 진지한 의지와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은 경쟁을 촉진하는 면이 있다. 3. 계약이행보증금의 감액과 추가 청구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이행보증금과 관련하여 감액과 추가 청구 가능성이 문제되었다. 우선 판례는 보증금을 일반적인 위약금과 다름없이 취급하는데, 민법 제398조 제4항에 의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하고 직권감액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보증금 약정이 위약벌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주장·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이 계속적 급부를 담보하고 채무자에 대한 신뢰를 보완하여 계약을 유지하는 기능이 있음을 고려하면, 이러한 위약금 법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법원이 당사자가 예정한 손해배상액을 감액하는 것은 그 액수가 과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속적 계약에서의 보증금은 일반적인 손해배상액의 예정과는 달리 계약불이행시 예상되는 손해액과 비례성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선 계속적 계약에서는 잔여기간이나 기대수익을 예측하여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또한 비례성만을 중시하여 보증금을 정하면 채무자에게는 계약을 이행하는 것과 보증금이 몰취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므로, 계약이행을 선택할 유인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호 이해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당사자들이 정한 보증금 액수는 가급적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법원의 개입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법원이 이를 쉽게 감액하면, 당사자들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져 거래 비용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보증금 금액보다 실손해가 더 큰 경우 추가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한지 여부도 일반적인 위약금과는 달리 보아야 한다. 보증금 약정을 하는 주된 이유가 장기간 계약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면, 언제 어떻게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계약이행보증금만 몰취하면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거나, 계약이행보증금만 포기하면 언제든지 계약이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의사인 경우는 드물 것이다. 추가 청구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약정 액수를 넘어서는 손해에 대하여 배상을 인정하는 것이 의사해석에 부합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계약 해지시 이행보증금과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보증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의 성격을 가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통해 당사자들의 의사를 "이행보증금을 통하여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한편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함께 해결하고자 하였던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계약 공고의 내용이나 계속적 계약의 특성을 고려하면 추가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청구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기보다는 적어도 보증금만큼은 실제 손해액과 무관하게 몰취하겠다는 의사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손해배상액의 예정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피고에게 실제로 보증금을 초과하는 손해가 발생하였는지를 살피어 추가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면 이중배상의 결과가 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였을 것이다. 4. 결어 장기간 계약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계약이행보증금이 교부되었다면, 일반적인 위약금 법리에 따라 해결하기보다는 해당 계속적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경위와 관행, 계약의 존속기간 동안 급부의 이행과 당사자들의 신뢰관계 및 제반사정의 변화, 계약의 종료와 그 이후의 법률관계의 청산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당사자들의 의사를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상판결의 최종 결론에는 반대하지 않으나,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러한 점을 더욱 염두에 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계속적 계약과 여러 보증금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그 성과가 거래 실무에도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매체사용료
보증보험금
이행보증금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21-08-19
민사일반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의 압류·추심명령 및 추심소송
[사실관계] 소외 회사는 피고를 상대로 임대료지급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일부승소 판결을 선고받았다. 원고는 위 사건 소송계속 중 소외 회사를 채무자, 피고를 제3채무자로 하여 위 임대료채권에 관해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고 위 사건 항소심에서는 소외 회사에게 당사자적격이 없음을 확인하는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져 2017년 5월 16일 확정되었다. 그 후 원고는 2017년 8월 11일 위 추심명령을 근거로 제3채무자인 피고를 상대로 추심의 소를 제기하였다. 피고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항변하였고 원고는 선행사건 화해권고결정 확정시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소를 제기하여 민법 제170조에 따라 선행사건 소 제기 시부터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는 등으로 재항변하였다. [법원의 판단] 제1심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으나, 항소심은 원고의 시효중단 재항변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대법원은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더라도 이는 추심채권자에게 피압류채권을 추심할 권능만을 부여하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게 가지는 채권이 추심채권자에게 이전되거나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금전채권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 후 채권자가 위 금전채권에 대하여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아 제3채무자를 상대로 추심의 소를 제기한 경우 채무자가 권리주체의 지위에서 한 시효중단의 효력은 집행법원의 수권에 따라 피압류채권에 대한 추심권능을 부여받아 일종의 추심기관으로서 그 채권을 추심하는 추심채권자에게도 미친다"고 하면서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금전채권의 이행소송이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인한 당사자적격의 상실로 각하되더라도 위 이행소송의 계속 중에 피압류채권에 대하여 채무자에 갈음하여 당사자적격을 취득한 추심채권자가 위 각하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내에 제3채무자를 상대로 추심의 소를 제기하였다면 채무자가 제기한 재판상 청구로 인하여 발생한 시효중단의 효력은 추심채권자의 추심소송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하여 "원심의 이유설시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평석] 1.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고 또 이를 기초로 추심의 소를 제기한 경우 소멸시효 중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이 문제된다. 우선 (1)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는 경우 추심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피압류채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될 수 있는지 및 중단된다면 민법 제168조의 어느 중단사유에 해당하는지 문제된다. 다음으로 (2) 추심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먼저 피압류채권의 이행에 관한 소('이행소송')를 제기하였다가 각하, 기각 또는 취하된 후 다시 추심채권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추심의 소('추심소송')를 제기하는 경우 또는 반대로 추심소송이 각하 등으로 종결된 후 이행소송이 제기되는 경우 양 소송의 관계가 문제된다. 2. 먼저 위 (1)에 관하여는 이미 대법원 2003. 5. 13. 선고 2003다16238 판결을 통해 정리된 바 있다. 압류 및 추심명령은 민사집행법상 금전채권에 대한 강제집행 방법으로 일종의 '권리의 행사'에 해당하므로 이를 통해 소멸시효 중단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압류 및 추심명령은 추심채권자가 추심채무자에 대하여 갖는 집행채권의 만족을 위한 강제집행 방법이기 때문에 집행채권과 관련하여서는 문언 그대로 민법 제168조 2호 '압류'로서 확정적인 시효중단의 효력이 발생한다. 반면 채무자가 다시 제3채무자에 대하여 갖는 피압류채권에 대하여도 시효중단 효력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다수설과 위 2003다16238 판결은 집행채권에 관하여는 민법 제168조 제2호의 압류로서 확정적인 중단 효력이 생긴다고 할 수는 없고 다만 채권자가 확정판결에 기한 채권의 실현을 위하여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아 그 결정이 제3채무자에게 송달이 되었다면 거기에 단지 '최고'로서의 효력은 인정된다고 본다. 다만 추심채권자가 법원을 통하여 집행행위에 나아갔으므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로 보기 어렵고 압류 및 추심명령에 잠정적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최고보다는 좀 더 강력한 효과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압류 및 추심명령은 어디까지나 집행채권에 대한 권리행사로 피압류채권은 권리행사의 대상물에 불과하다. 피압류채권을 현실화하기 위하여는 다시 추심소송을 통한 집행권원 확보 등 추가적 권리행사절차가 요구되므로 피압류채권에 대해서까지 '압류'로서 확정적인 중단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추심채권자로서는 보다 빠른 시일 내에 추심소송 등 적극적인 집행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3. 대상판결은 위 2003다16238 판결과 같이 압류 및 추심명령이 피압류채권에 대하여는 '압류'로서의 확정적인 시효중단 효력은 없다는 전제에서 위 (2)에 대하여 즉 먼저 추심채무자의 이행소송이 각하 등으로 종결된 후 그로부터 6개월 내에 추심채권자의 추심소송이 제기되는 경우에 이행소송의 시효중단 효과가 민법 제170조에 의해 추심소송에도 유지되는지에 대하여 판단한 것이다. 재판상의 청구에 관하여 소송의 각하, 기각 또는 취하의 경우에는 소급하여 시효중단의 효력이 소멸하나(민법 제170조 제1항) 이 경우에 6월내에 재판상의 청구 등을 한 때에는 최초의 재판상 청구로 인한 시효중단 효력이 유지된다(동조 제2항). 그런데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는 경우 추심채무자가 제기한 이행소송과 추심채권자가 제기한 추심소송 사이에서도 위 제2조의 관계가 인정될 수 있을지 문제된다. 원심과 대상판결 모두 결론적으로는 이행소송의 소멸시효 중단 효과가 추심소송에도 지속된다고 보았으나 이유 구성은 서로 다르다. 원심은 시효중단이 당사자 및 그 승계인간에 효력이 있다는 민법 제169조를 들면서 원고가 추심채권자로서 소외 회사의 권리승계인에 해당하여 소외 회사의 소제기 효과가 원고에게도 미친다고 보았다. 이에 반하여 대상판결은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더라도 이는 추심채권자에게 피압류채권을 추심할 권능만을 부여하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게 가지는 채권이 추심채권자에게 이전되거나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고 하여 원고가 소외 회사의 권리승계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시하면서 "채무자가 권리주체의 지위에서 한 시효중단의 효력은 집행법원의 수권에 따라 피압류채권에 대한 추심권능을 부여받아 일종의 추심기관으로서 그 채권을 추심 하는 추심채권자에게도 미친다"고 하였다. 대상판결은 추심채권자에게 시효중단 효력이 유지되는 이유에 관하여 상세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추심소송의 일반적인 법적 성질에 근거하여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생각된다. 채권자의 추심할 권능은 추심명령에 의하여 창설적으로 취득하는 것이고 채무자로부터 승계하는 것은 아니므로 추심채권자를 추심의무자의 승계인으로 볼 수는 없다. 추심소송은 채권자대위소송과 마찬가지로 제3자인 추심채권자가 타인인 추심채무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므로(법정소송담당설) 추심소송의 대상은 결국 추심채무자의 권리 자체이고 실체법상 권리의무의 당사자는 추심채무자와 제3채무자로 고정된 채 단지 당사자적격자만이 추심채무자에서 추심채권자로 변경된 것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채권의 성질과 특성, 상태가 모두 유지된 채 추심채권자는 추심채무자를 대신하여 추심권능을 갖게 되는 것이므로 추심채권자가 추심채무자가 한 소멸시효 중단행위의 효과도 적용받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4. 대상판결은 추심채무자의 이행소송이 먼저 있은 후 추심소송이 나중에 제기된 사안인데 반대로 추심소송이 먼저 있은 후 이행소송이 나중에 제기되는 경우에도 민법 제170조 제2항이 적용될 수 있는지도 문제된다. 채권의 원래의 성질과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추심명령의 특성상 소제기 순서 전후를 불문하고 이행소송과 추심소송 사이에서는 민법 제170조 제2항을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상판결 사안에는 물론 추심소송이 각하, 기각 또는 취하된 후 이행소송이 있는 경우에도 양 소송의 관계는 서로 제170조에 규정된 재판상 청구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5. 대상판결은 이행소송과 추심소송 사이에서 민법 제170조에 관해 판단한 최초로 사례로 향후 추심소송과 소멸시효 중단에 관한 실무지침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수십 년간 국내에서는 소멸시효 중단사유를 비롯한 제도 전반에 관한 개정 논의가 계속되고 있고 독일이나 일본 등에서도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 문제된 쟁점은 이러한 개정 논의에서 다소 빗겨나 있는 것이어서 설령 향후 소멸시효 중단사유 등이 대폭 개정되더라도 대상판결은 여전히 실천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신지혜 교수(한국외대 로스쿨·변호사)
채권자
시효중단
채무자
신지혜 교수(한국외대 로스쿨·변호사)
2020-08-27
기업법무
이사의 충실의무와 회사기회유용금지
I. 사실관계 甲은 스포츠용품 수출입업을 운영하는 A회사에서 1981년부터 2011년까지 30년간 이사 또는 대표이사를 지냈다. 甲은 A회사에 속해 있던 기간 중인 1987년 별도의 회사를 설립해 1990년까지 대표이사로 지냈다. 甲은 최소 1987~1990년에는 두 회사의 대표이사로 있었다. 그런데 甲이 신설한 B회사는 종전까지 A회사가 운영하던 골프용품 수입업에 손을 댔다. A회사가 외국 골프용품 제조사와 체결한 독점 판매 계약이 끝나는 기간에 B회사는 해당 제조사에 접근했던 것이다. A회사가 종전까지 10년간 독점 판매했던 골프용품의 국내 판매권은 전적으로 B회사에 귀속됐다. 이 여파로 A회사는 결국 경영난을 겪다가 해산됐다. 甲은 B회사의 지분을 해외 유명 스포츠브랜드에 200억원 이상을 받고 팔았다. 이에 A회사의 주주가 甲을 상대로 경업금지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II. 판결요지 원심은 甲 측(甲은 소송 진행 도중 사망해 그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받았다)이 A회사 주주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도, B회사가 침해한 A회사의 '영업권' 가치가 손해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였다. 원심 재판부는 "A회사가 외국 제조사 제품의 수입, 판매업을 하지 못함으로써 일실이익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골프용품 사업부문 영업권'에 손해를 입었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B회사가 매각한 골프용품 사업부문의 영업권은 B회사가 그간 형성한 자본을 재투자하고 고유의 노력을 기울여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등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甲 측이 A회사 주주에게 물어줘야 할 손해배상액에 '영업권'가치를 배제한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甲이 A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해 B회사로 하여금 그 사업을 영위하게 한 것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내지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회사 이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회사의 사업기회 유용행위에 해당한다"며 "B회사가 골프용품 사업을 제3자에게 매각해 얻은 영업권 상당의 이익에는 B회사가 직접 형성한 가치 외에 A회사가 상실한 독점판매 계약권의 가치도 포함돼 있다고 봐야한다"고 판시했다. 또 "원심으로서는 B회사가 골프용품 사업부문을 제3자에게 양도하고 받은 양도대금 중 A회사의 사업기회를 이용해 수년간 직접 사업을 영위하면서 스스로 창출한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A회사가 빼앗긴 사업기회의 가치 상당액을 산정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이를 A회사의 손해로 인정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III. 평석 1. 경업금지의무 위반 경업금지에 관하여 상법 제397조 제1항에 의하면, 이사는 이사회의 승인이 없으면 ① 자기 또는 제삼자의 계산으로 회사의 영업부류에 속한 거래를 하거나, ② 동종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회사의 무한책임사원이나 이사가 되지 못한다. 강학상 ①은 경업금지, ②는 겸직금지라고 부른다. A회사의 대표이사 甲은 문제되는 기간 중 2003년 4월 11일 이후에는 경쟁업체인 B회사의 이사로 재직하지 않았으므로 ②의 겸직금지의 적용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대법원은 "이사는 경업대상 회사의 이사, 대표이사가 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회사의 지배주주가 되어 그 회사의 의사결정과 업무집행에 관여할 수 있게 된 경우에도 자신이 속한 회사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기존 판례(대법원 2013.9.12. 선고 2011다57869 판결, 신세계 주주대표소송)를 확인하면서 상법 제397조 제1항 위반으로 보았다. ①의 경업금지 위반으로 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회사기회유용금지 회사기회유용과 관련하여 위 행위 당시에는 2011년 개정 상법 제397조의2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일반적인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로 회사기회 유용금지의무가 도출되는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사는 이익이 될 여지가 있는 사업기회가 있으면 이를 회사에 제공하여 회사로 하여금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회사의 승인 없이 이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기존 판례(대법원 2013.9.12. 선고 2011다57869 판결)를 확인하면서 이를 긍정하였다. 결국 甲이 "1999년경부터 2005년 말경까지 상법 제397조 제1항이 규정한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하고, 2006년경부터 2011년경까지 일본 던롭 제품의 독점 수입, 판매업이라는 A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함으로써 A회사 이사로서 부담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를 위반한다"고 보았다. 2005년 말을 기준으로 한 것은 그 시점에 A회사와 일본 던롭사간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기 때문이고, 2011년경을 기준으로 한 것은 2011년 2월경 B회사가 골프용품 사업부분을 제3자에게 양도하였고, 같은 해 8월 A회사가 해산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3. 손해배상의 범위 원고는 경업금지의무 위반에 따른 개입권(상법 제397조 제2항) 대신 일반적인 손해배상을 주장하였다. 또한 2011년 상법 개정 이전 사안이므로 회사기회유용금지 의무위반에 대하여는 손해추정 조항(현행 상법 제397조의2 제2항)도 적용되지 않았다. 쟁점이 된 것은 ① 일실 영업수익의 범위와 ② 영업권의 가치였다. 먼저 ① 일실 영업수익 계산방식은 경업금지 위반 및 회사기회유용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원심은 A회사의 매출액 감소분은 B회사의 매출액 상당액이라 할 것이므로, 여기에 A회사 고유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甲의 임무위배행위 이전 기간을 기준으로 산정)을 곱하여 산정하였다. 실제로는 손해분담의 공평을 고려하여 손해배상책임을 60%로 제한하였다. 대법원은 이 부분 원심 판단을 수긍하였다. 한편 ② 영업권 상당 손해액은 회사기회 유용에 관하여만 문제되었다. 원심은 A회사가 2011년 8월 4일 해산함으로써 그 이후 영업을 통해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 B회사가 2011년 2월 제3자에 골프용품 사업부분을 매각하고 수령한 대금 중 영업권 상당액은 실제 B회사의 고유 노력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어 별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영업권 중 B회사가 스스로 창출한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A회사가 빼앗긴 사업기회의 가치 상당액을 산정하는 방법으로 A회사의 손해를 인정했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타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4. 손해배상액 산정 2심 법원은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 구간을 나누지 않고 'A회사의 매출액 감소분 × A회사 매출액 대비 순이익율'의 산식에 따라 A회사의 일실손해액을 산정하였다. 이 방식은 비교적 타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2심 법원은 상법 제397조의2 제2항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이러한 2심 법원의 입장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상법 제397조의2가 신설되기 이전에 발생한 것은 맞지만, 2011년 개정 상법 부칙 제3조에 의하면 동 규정은 시행 전에 발생한 사항에도 개정상법규정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어, 이 사건의 손해배상액 산정에 상법 제397조의2가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2심 법원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상법 제397조의2를 직접 근거로 하는 손해배상사건이 아니고 이 사건과 같이 상법 제399조에 근거하여 이사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에는 상법 제397조의2 제2항을 직접 적용할 수 없다는 형식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상법 제397조의2 제2항의 입법취지를 생각해 볼 때, 회사기회유용이라는 충실의무 위반사건에서 상법 제399조를 근거로 제기한 소송과 상법 제397조의2를 근거로 제기한 소송을 구분하여 다른 증명책임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만일 상법 제397조의2 제2항을 적용했다면, 회사기회 유용금지 위반에 해당하는 구간의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서는 이사 甲 이나 제3자(B회사)가 얻은 이익을 손해로 추정하면 된다. 만일 상법 제397조의2가 온전히 적용되었다면 대법원이 원심과 달리 손해배상액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결정한 골프용품 사업부분 매각 대금 중 영업권의 상당액을 추정의 법리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IV. 결언 본 판례와 관련하여 회사기회유용금지 제도의 올바른 운영방안을 정립하기 위하여는 현행 상법규정을 다음과 같이 개정·보완할 것을 제안한다. ① 현행 상법은 회사기회유용금지 규정의 적용대상을 이사와 집행임원으로만 한정하고 있으나 회사기회유용은 지배주주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을 고려하여 지배주주도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② 우리나라 상법에는 미국과 독일에서 인정되는 피소된 경영자의 항변사유와 관련된 명확한 규정이 없으므로 법해석상 회사가 법적·재정적·구조적 능력 등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에는 경영자의 항변사유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③ 회사기회유용금지 위반이 있는 경우 실질적인 구제를 위해서는 위반의 효과로서 경업금지 위반의 경우처럼 개입권을 도입·인정할 필요가 있다. 최완진 명예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경업금지의무
영업권
회사기회유용
최완진 명예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19-10-17
민사일반
엔터테인먼트계약,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실관계] 연예인인 원고들은 각각 2005년 3월경 S연예기획사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여 2006년 3월 1일부터 5년간 연예활동과 관련한 교섭 및 계약 체결 등에 관한 권리를 위임하기로 하였다. 특히 이 전속계약에는 원고들의 연예활동으로 인한 모든 수익금은 원칙적으로 S가 수수한 후 사후정산을 거쳐 일정 비율을 원고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에 의한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후 원고들은 여러 방송사의 프로그램들에 출연하였고, 이에 따라 출연료채권이 발생하였다. S는 원고들의 출연으로 인한 출연료채권이 자신에게 귀속한다는 전제 하에, 2010년 6월경 피고 1에게 출연료채권을 비롯한 각 방송사에 대한 일체의 채권을 양도하고 확정일자 있는 양도통지를 마쳤다. 한편, S의 채권자인 피고 2, 3은 2010년 6월 및 7월경 위 각 출연료채권에 대하여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또는 채권가압류결정을 받아 그 무렵 각 명령과 결정이 각 방송사에 도달하였고, 피고 대한민국은 2010년 8월경 S에 대한 국세채권에 기초하여 위 채권 중 일부를 압류하여 그 무렵 압류통지가 해당 방송사에 도달하였다. 원고들은 2010년 10월경 각 방송사에 전속계약 해지를 알리면서 S가 아닌 자신에게 출연료채권을 지급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각 방송사는 2010년 12월경부터 2011년 11월경까지 진정한 권리자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각 미지급 출연료를 혼합공탁하였다. 이에 원고들은 각 출연료채권에 대한 공탁금출급청구권이 각 원고들에게 있다는 확인을 구하였다. [법원의 판단] 1심과 2심 법원은 원고들이 이 사건 출연계약의 당사자라거나 계약주체라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원고들이 방송 3사의 각 프로그램에 출연한 데 대하여 방송 3사는 출연료를 지급할 의무가 발생하였다. 이때 그 출연료지급채무의 상대방, 즉 출연료채권의 귀속 주체는 방송 3사와 사이에 체결된 방송프로그램 출연계약의 내용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 출연계약의 특성, 이 사건 출연계약 체결 당시 연예인으로서 원고들이 갖고 있었던 영향력과 인지도, 연예기획사와의 전속의 정도 및 출연계약서가 작성되지 아니한 사정 등을 고려하면, 방송 3사는 연예인인 원고들을 출연계약의 상대방으로 하여 직접 프로그램 출연계약을 체결한다는 의사로써 행위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원고들은 업무처리의 편의를 위해 전속기획사에게 계약의 체결을 대행하게 하거나 출연금을 수령하게 하였을지라도, 어디까지나 출연계약의 당사자는 원고들 본인인 것으로 인식하였고, 전속기획사는 방송 3사와 사이에 원고들을 위하여 출연계약의 체결 및 출연금의 수령 행위를 대리 또는 대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평석] 1. 문제의 제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전문화, 다각화되면서 다양한 계약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연예인과 관련된 계약들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인 연예인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러한 연예인 관련 계약들은 민법이 정한 전형계약이 아니므로, 기존에는 이들 계약을 해석하기 위하여 가장 유사한 전형계약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데에 학설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연예인 관련 계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형계약의 틀에 무리하게 끼워 맞추기보다는 관련 산업의 특징과 현황을 파악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상판결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빈번하게 문제가 되는 출연계약과 전속계약의 해석 문제를 다루고 있는바,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 출연계약의 당사자 확정의 문제 대상판결은 원고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발생한 출연료채권의 귀속 주체는 출연계약의 내용에 따라 정해질 것이라고 전제하고, 처분문서로서 출연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계약의 당사자를 확정하는 것을 계약 해석의 원칙에서 접근한다. 즉, 기존의 학설과 같이 출연계약을 연예인이 직접 체결하였는지, 전속계약에 근거하여 연예기획사가 체결하였는지를 도식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출연계약의 내용, 출연계약 체결의 동기와 경위, 출연계약에 의해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계약의 당사자를 합리적으로 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이 사건 계약의 체결 경위를 살펴보면, 원고들은 유명 연예인들로 전속매니지먼트계약을 통하여 자신의 연예업무 수행을 포괄적으로 연예기획사에 위탁하였다. 이 전속매니지먼트계약에 따라 연예기획사는 방송사들과 원고들의 프로그램 출연계약을 교섭하고 체결하였으며, 그 출연료를 수수해왔던 것이다. 방송국에서는 매니지먼트사, 오디션, 외주제작사, 공채 등 여러 경로를 통하여 연예인들과 출연계약을 체결하는데, 관행적으로 다수의 연예인들과 일상적인 출연계약을 매번 서면으로 체결하지 않고 출연할 프로그램과 시간 등을 협의한 다음 합의된 출연료를 지급하기도 한다. 서면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협의된 연예인 아닌 다른 연예인이 출연하도록 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방송 출연계약상 연예인의 출연의무는 비대체적인 일신전속성을 가지므로, 연예인이 임의로 다른 연예인이나 제3자에게 자신의 출연을 대행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연예인이 직접 출연계약을 체결한 경우뿐만 아니라, 연예기획사가 전속계약에 따라 연예인을 대신하여 출연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동일하다. 대상판결은 특히 원고들과 같이 인지도가 매우 높고 그 재능이나 인지도에 비추어 타인이 대신 출연하는 것으로는 계약 체결 당시 의도하였던 것과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없는 연예인의 경우, 원고들이 부담하는 출연의무는 부대체적 작위채무라고 하였는데, 이를 원고들과 같은 유명 연예인으로만 한정하여 해석할 것은 아니다. 연예인 출연계약에서는 개별 연예인의 개성과 기예가 중시되고, 실제 임의로 제3자가 급부를 할 수 없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연예인의 출연의무는 부대체적 작위채무가 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이해하여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부대체적 출연의무를 부담하는 주체가 연예인이 아니라 연예기획사가 된다면, 연예기획사가 사업자에 대하여 연예인을 출연시킬 의무를 부담한다는 취지인데, 출연의무의 특성상 연예인의 자율과 개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부자연스럽다. 연예인 측의 채무불이행 책임과 그 구제 수단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연예인의 강제노동을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등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연예인 출연계약의 당사자는 연예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연예기획사는 전속매니지먼트계약에 따른 포괄적인 위임에 따라 계약에 대한 협상 및 체결 권한을 가지는 것이 된다. 3. 연예인 출연계약에 따른 출연료 지급채권의 귀속 연예인 출연계약의 당사자를 연예기획사가 아니라 연예인이라고 하면, 출연의무 이행에 따른 출연료 지급채권은 연예인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연예기획사가 사업자로부터 연예인의 출연에 대한 출연료를 직접 수수하는 것도 일반적인 연예인 전속매니지먼트계약의 내용에 따른 것으로, 연예인의 출연료 등을 수령하고 관리할 연예기획사의 의무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연예기획사가 사업자로부터 연예인의 출연료를 수령한다고 하여 연예기획사가 출연료채권을 가진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연예기획사가 출연료채권을 가진다고 하려면, 연예인으로부터 채권을 양도받았거나 사업자와 연예인간에 출연계약이 연예기획사를 수익자로 하는 제3자를 위한 계약의 형태로 체결되었고 연예기획사가 그에 따른 수익의 의사표시를 하였다는 등의 추가적인 사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는 의사표시 해석의 문제로 환원될 것이지만, 특별한 정함이 없다면, 일반적으로 전속매니지먼트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의 의사는 개별 출연계약을 연예기획사에 위임함으로써 연예인의 출연료채권을 연예기획사에 귀속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출연료의 수령, 정산 등의 관리 업무도 연예기획사에 위임하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결론 대상판결은 연예인 관련 엔터테인먼트계약을 해석하고 관련 분쟁을 해결함에 있어서 민법상 전형계약의 틀에 얽매이거나 도식적인 법리 구성에 안주하지 않고, 계약의 내용, 체결의 동기와 경위, 계약에 의해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합리적이고 유연한 해석 방안을 마련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향후 비전형계약을 해결하는 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에 예상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유형의 다양한 계약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계약들을 분석하기 위하여 기존의 계약법에서의 전형계약들을 꺼내어 그 유사성을 따져 보는 것은 유용성과 적정성 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들 계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약이 체결되는 산업과 업계의 관행,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을 체결하는 동기와 계약의 목적 등을 고려하여 그 실질에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방송프로그램
출연료
출연계약서
공탁금출급청구권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19-09-26
1
banner
주목 받은 판결큐레이션
1
[판결] 법률자문료 34억 원 요구한 변호사 항소심 패소
판결기사
2024-04-18 05:05
태그 클라우드
공직선거법명예훼손공정거래손해배상중국업무상재해횡령조세노동사기
달리(Dali)호 볼티모어 다리 파손 사고의 원인, 손해배상책임과 책임제한
김인현 교수(선장, 고려대 해상법 연구센터 소장)
footer-logo
1950년 창간 법조 유일의 정론지
논단·칼럼
지면보기
굿모닝LAW747
LawTop
법신서점
footer-logo
법인명
(주)법률신문사
대표
이수형
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년 8월 24일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신동진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층
발행일자
1999년 12월 1일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인터넷 법률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인터넷 법률신문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