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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금융·보험
민사일반
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민사일반
조세·부담금
국세징수권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조세채권존재확인의 소의 이익
1. 사실관계 피고는 일본에 본점을 둔 외국법인으로 2006년 10월부터 2007년 4월까지 3회에 걸쳐 국내에서 골프장업을 하는 회사의 주식 3만2000주를 양도하였고 위 주식의 양수회사는 원천징수의무자로서 원천징수분 법인세 및 증권거래세 등을 신고·납부하였다. 원고(대한민국) 산하 지방국세청장은 피고가 법인세 신고·납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주식의 취득가액도 적정하지 않다고 보았고 관할 세무서장은 2010년 11월 직권으로 피고를 외국법인 국내지점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후 2011년 3월 납부기한을 2011년 3월 31일로 하여 2006년과 2007년의 법인세를 결정·고지하였다. 이에 불복한 피고가 심판청구를 하였으나 조세심판원은 2012년 7월경 실제 취득가액의 확인자료가 제출되지 않았고 시가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결국 피고의 체납액은 가산금을 포함하여 2015년 5월 약 331억 원에 이르게 되었는데 피고는 국내재산이 없는 한편 일본에서 계속 골프장 사업을 하고 있다. 원고 산하 국세청장은 2015년 6월까지도 일본과의 2010년 이전 과세연도에 대하여 부과한 조세의 위탁징수에 관한 상호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반면, 피고에 대한 국세징수권 소멸시효는 2011년 3월의 납세고지로 중단되었다가 납부기한인 2011년 3월 31일의 다음날부터 다시 진행하게 되었다. 원고는 고액체납자인 피고에 대한 국세징수권 확보를 위해 2014년 12월 일본 소재 피고의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여 납부최고서를 전달하려 했으나 피고가 수령하지 않자 국제등기우편을 통해 송달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조세는 국가존립의 기초인 재정의 근간으로서 세법은 과세관청에 부과권이나 우선권 및 자력집행권 등 세액의 납부와 징수를 위한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여 그 공익성과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다. 따라서 조세채권자는 세법이 부여한 부과권 및 자력집행권 등에 기하여 조세채권을 실현할 수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납세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 다만 납세의무자가 무자력이거나 소재불명이어서 체납처분 등의 자력집행권을 행사할 수 없는 등 국세기본법 제28조 제1항이 규정한 사유들에 의해서는 조세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이 불가능하고 조세채권자가 조세채권의 징수를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충실히 취하여 왔음에도 조세채권이 실현되지 않은 채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 청구는 예외적으로 소의 이익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리고 국가 등 과세주체가 당해 확정된 조세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하여 납세의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조세채권존재확인의 소는 공법상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 3. 평석 가. 확인의 소의 보충성 원칙 위반 여부 각종의 소에서 요구하는 제소의 이익(권리보호이익)은 다른데 민사소송법상 확인의 소의 이익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판례상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함에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일 때에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고(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다14420 판결), 민사상 채권에 대해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로서 그 확정된 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와 청구권 확인의 소 이외에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확인의 소도 허용하였다(대법원 2018. 10. 18. 선고 2015다232316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조세채권의 경우 민사상 채권과 달리 법률에 규정된 과세요건이 충족될 때에 법률상 당연히 성립하고 국세징수법 절차에 따라 자력집행력이 인정되고 있어(헌법재판소 2007. 5. 31. 선고 2005헌바60 결정), 국세징수법은 집행권원 획득을 위한 이행청구의 소 제기와 같은 집행절차는 예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사건 소의 형식이 이행청구가 아니라 확인의 소라고 하더라도 이는 자력집행력을 가지고 있는 조세채권의 본래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서 다른 특별한 사정에 의해 확인의 이익이 인정된다면 소송요건을 갖추는 것이라 할 것이다. 나. 확인의 이익의 존재 여부 확정된 채권을 소멸시효 완성 직전까지 강제집행하지 못한 경우 판례는 강제집행실시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다면 그 이전에 강제집행실시가 가능하였는지에 관계없이 시효중단을 위한 동일 내용의 재판상 청구가 불가피하므로 확정판결이 있었더라도 시효중단을 위한 동일 내용의 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대법원 1987. 11. 10. 선고 87다카1761 판결)고 하여 시효중단을 위한 소제기에 소의 이익을 비교적 넓게 인정하고 있다. 확정된 채권은 판결에 의해 집행권원이 부여된 채권인데 조세채권은 민사집행법에 따른 청구 이의의 소, 제3자 이의의 소와 같이 징수처분에 대하여 불복절차를 마련하고 있고 자력집행권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판결에 집행문을 부여받은 확정된 채권과 법률상 효력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세징수권의 시효중단을 위해 제기된 소에 대해서도 소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국세기본법 제28조는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 ① 납세고지, ② 독촉 또는 납부최고, ③ 교부청구, ④ 압류를 규정하면서 소멸시효에 관하여 제17조 제2항은 이 법이나 세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피고는 납부기한까지 체납액을 완납하지 아니하여 원고가 납부최고서를 송달한 상황이나 이러한 최고 내지 재독촉은 소멸시효 중단사유가 되는 독촉이 아니어서(대법원 1999. 7. 13. 선고 97누119 판결), ①과 ②의 방법에 따른 소멸시효 중단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또한 국내에 소재한 피고의 재산이 없고 한·일간 조세징수 위탁을 통한 징수방법 역시 상호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③과 ④의 방법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국세기본법 제28조에서 열거한 방법을 통한 소멸시효 중단은 불가능하여 소멸시효 완성에 따라 대한민국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함에는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것이다. 다. 당사자소송의 해당 여부 당사자소송은 행정청의 처분 등을 원인으로 하는 법률관계에 관한 소송이나 그 밖에 공법상의 법률관계에 관한 소송으로 그 법률관계의 한쪽 당사자를 피고로 하는 소송이다. 과세처분의 무효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소송의 성격은 처분자체의 무효나 부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로 생긴 조세채무(납세의무)의 부존재확인이고(대법원 1982. 3. 23. 선고 80누476 판결), 납세의무 부존재확인의 소는 공법상의 법률관계 그 자체를 다투는 소송으로서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대법원 2000. 9. 8. 선고 99두2765 판결). 조세채권(부과징수권) 존재확인의 소는 납세의무라는 공법상 법률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이를 다투는 소 역시 당사자소송에 해당할 것이다. 이 사건 소는 국가의 부과처분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확정된 납세의무 또는 징수권한의 확인을 구하는 소송으로 공법상 법률관계에 관한 당사자소송에 해당한다. 라. 당사자 적격의 인정 여부 당사자 적격이란 특정 소송에서 소송을 수행하고 본안판결을 받기에 적합한 자격인데 당사자소송에서 원고와 피고가 될 수 있는 자는 공법상 법률관계의 권리주체이다. 당사자소송의 원고 적격에 관하여 행정소송법에 규정된바 없어 항고소송과 같은 제한 없이 민사소송법이 준용되고 확인의 소에 있어서 원고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불안·위험을 초래하고 있거나 초래할 염려가 있는 자가 피고 적격을 가진다(대법원 2007. 4. 12. 선고 2004두7924 판결). 이 사건에서 대한민국은 국세기본법 제28조 제1항이 열거한 방법을 통한 소멸시효 중단은 불가능하여 대한민국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함에는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원고 적격이 있으며 납세의무자는 그 확인에 대한 반대이익을 가지고 있어 피고 적격이 있다고 할 것이다. 4. 결론 대상판결은 국가가 확보한 국세징수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세기본법상 소멸시효 중단이 불가능하고 조세채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충실히 취하였으나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납세의무자를 상대로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조세채권존재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이 있다고 최초로 판단하였다. 이로써 국가가 더 이상 조세집행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경우 재판상 청구를 통해 조세징수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조성권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민법
조세징수권
국세기본법
법인세법
조성권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2020-05-25
부동산·건축
(15) 이행소송과 추심소송은 중복소송인가
-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3다202120 전원합의체 판결 - 1. 사실 및 쟁점 가) 1) 소외 A는 2010년 11월 10일 피고 보증보험회사에 대하여, 자신은갑회사로부터 아파트를 분양받고 갑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2억여원을 납부하였는데 위 아파트 신축공사가 중단되는 보증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피고는 갑과 체결한 주택분양보증계약에 따른 계약금 및 중도금 반환채권에 기초한 환급이행보증금으로 위 금액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여 환급이행금 청구의 소(전소)를 제기하여 법원의 심리결과, A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는 제1심판결이 선고되었고,현재 상고심에 계속 중이다. 2) 한편 원고는 A에 대하여 별개의 이행청구를 제기하여 승소하였고, 그 승소의 확정판결에 기초하여A를 채무자, 피고를 제3채무자로 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하여 2011년 7월 6일A가 피고에 대하여 가지는 환급이행금청구권에 관하여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고 그 추심명령은 피고에게 송달되었는데, 원고는 이 추심명령을 근거로 2011년 11월 25일 제3채무자인 피고를 상대로 제1심법원에 추심의 소(후소)를 제기하였다. 나) A가 피고를 상대로 제기한 위 환급이행금 청구의 소(전소)가 법원에 계속되어 있는데 압류채권자인 원고가 제기한 추심의 소(후소)는 중복된 소제기의 금지에 위배되는가. 2. 대법원 판결이유의 요지 [다수의견] (가)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이행의 소가 이미 법원에 계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압류채권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추심의 소의 본안에 관하여 심리·판단한다고 하여, 제3채무자에게 불합리하게 과도한 이중 응소의 부담을 지우고 본안 심리가 중복되어 당사자와 법원의 소송경제에 반한다거나 판결의 모순·저촉의 위험이 크다고 볼 수 없다. (나) 압류채권자는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이행의 소에 제81조, 제79조에 따라 승계참가할 수도 있으나, 채무자의 이행의 소가 상고심에 계속 중인 경우에는 승계인의 소송참가가 허용되지 아니하므로 압류채권자의 소송참가가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으며, 또 압류채권자는 채무자가 제기한 이행의 소에 참가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압류채권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추심의 소는 채무자가 제기한 이행의 소에 대한 관계에서 중복된 소제기 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반대의견] (가) 중복된 소제기의 금지는 소송의 계속으로 인하여 당연히 발생하는 소제기의 효과이다. 그러므로 설령 이미 법원에 계속되어 있는 전소가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적법한 소라고 하더라도 취하·각하 등에 의하여 소송 계속이 소멸하지 않는 한 그 소송 계속 중에 다시 제기된 후소는 중복된 소제기의 금지에 저촉된다. (나)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먼저 제기한 이행의 소와 압류채권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나중에 제기한 추심의 소는 비록 당사자는 다를지라도 실질적으로 동일한 사건으로서 후소는 중복된 소에 해당한다. (다) 압류채권자에게는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이행의 소에 소송 참가할 수 있으므로 압류채권자에게 채무자가 제기한 이행의 소와 별도로 추심의 소를 제기하는 것을 허용할 것은 아니다. 다만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이행의 소가 상고심에 계속 중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은 경우에는 압류채권자가 상고심에서 승계인으로서 소송참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나, 이때에도 상고심은 전소에서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인하여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 사정을 직권으로 조사하여 전소에 관한 판결을파기하여야 하므로, 압류채권자는 파기환송심에서 승계인으로서 소송참가를 하면 된다. 3. 논점의 전개 가) 문제의 소재 이 사건은 A가 피고를 상대로 환급이행금 청구의 소(전소)를 제기하여 소송계속 중에 A의 피고에 대한 위 환급이행금 청구권의 추심권자인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추심권을 행사하여 환급이행금의 이행을 구하는 추심의 소를 제기한 것이 중복된 소제기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으면 제3채무자에 대한 추심의 소는 추심채권자만이 제기할 수 있고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므로 전소는 원칙적으로 부적법 각하되어야 할 것인데 법률심인 상고심에 계속 중이어서 문제되었다. 나) 추심명령, 추심의 소 집행법원이 압류채권자에게 피압류채권을 추심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는 명령을 추심명령이라 한다(민집 제232조). 추심명령은 국가가 압류채권자에게 피압류채권의 추심권을 수권한 것이므로 추심권의 재판상 행사방법인 추심의 소(민집 제238조, 제249조)는 본질적으로 재판상 채권자대위권의 행사와 같다. 따라서 이 사건과 달리 먼저 추심의 소가 제기되었다면 그 이후의 이행의 소는 당사자적격의 흠 또는 중복제소를 이유로 부적법 각하되어야할 것이다. 다) 채권자대위권행사의 경우 가. 채권자대위소송이 제기된 후에 채무자가 같은 내용으로 별개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기판력의 모순, 저촉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복된 소제기에 해당된다는 것이 판례(대판 1995. 4. 14. 94다29256)이다. 판례는 일관하여 채권자대위소송의 계속 중에 채무자가 제기한 같은 내용의 소송은 물론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소송 중에 제기된 채권자의 대위소송(대판 1981. 7. 7. 80다2751) 등도 중복된 소제기에 해당된다고 판시한다. 나.추심의 소와 채권자대위소송의 차이점은, 추심의 소는 국가가 채권자에게 부여한 추심권에 기초한 이행의 소인데 대하여 채권자대위소송은 채권자가 민법제404조의 채권자대위권에 기초하여 제기된 이행의 소라는 데 있다. 그 결과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으면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므로 제3채무자에 대한 추심의 소는 추심채권자만이 제기할 수 있는데(대판 2004. 4. 11. 99다23888 등 참조)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소송은 채권자의 채권자대위소송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추심권이나 채권자대위권은 추심의 소나 채권자대위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당사자적격에 불과하고, 추심의 소의 목적이나 채권자대위소송의 피대위채권은 소송목적을 같이 하는 이행소송이다. 따라서 당사자 적격의 차이로 인하여 소송목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소송 중에 압류채권자의 추심소송은 중복제소에 해당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시윤, 288면 : 한충수, 236면 참조). 4.결론 가. 채권자대위소송의 경우에는 채무자의 채권자에 대한 이행소송(전소)이 선행하면 채권자대위소송(후소)은허용할 수 없지만 전소는 아무런 영향이 없이 소송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추심소송의 경우에는 선행하는 채무자의 소송(전소)은 후행하는 압류채권자의 추심소송(후소)에 의하여 채무자의 소송수행권 상실로 당사사 적격에 흠이 생긴다는 재판운영상의 문제가 있다. 따라서 대상판결은 추심명령이 있으면 채무자는 소송수행권을 잃게 되어 채무자가 제기한 이행의 소(전소)를 부적법 각하하여야 하는데, 다시 추심의 소(후소)도 중복제소금지의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부적법 각하해야 한다는 것은 헌법제 27조1항의 재판청구권 보장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바꾸어 말하면 추심명령의 효력이 존속하는 한 소송수행권을 상실하여 부적법 각하될 운명에 있는 채무자의 선행소송이 아직 부적법 각하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후에 제기된 추심의 소를 중복제소라고 하여 각하하여 버리면 법원이 전소와 후소를 모두 부적법 각하함으로써 ‘환급이행금 청구권’이라는 소송목적에 대하여 실체 판단을 거부하는 결과로 된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이 압류채권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추심의 소를 중복된 소제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각하하는 이유로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는 때에 민사집행법 제238조, 제249조 제1항과 대법원판례에 의하여 압류채권자에게 보장되는 추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의 행사와 그에 관한 실체 판단을, 바로 그 압류 및 추심명령에 의하여 금지되는 채무자의 이행의 소를 이유로 거부하는 셈이어서 부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판시한 것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라 하겠다. 나. 다수의견은, 소수의견을 따르면 전소는 소송수행권 상실로 각하, 후소는 중복제소라는 이유로 역시 각하되어서 추심채권자는 다시 추심의 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고 제3채무자인 피고도 3번 응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게 되는데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판청구권(헌 제27조 1항) 행사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는 중복제소금지의 원칙을 적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 하겠다. 다수의견의 취지가 이와 같이 헌법 제27조 1항과 관련된 것이라면 중복제소금지에 관한 법 이론을 떠나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추심명령
채권압류
환급이행금청구의소
중도금
계약금
보증보험회사
2017-02-27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원외처방전 발급행위의 위법성
1. 사건의 개요 및 쟁점 - 2000년 의약분업 시행으로 외래 환자들에 대한 약처방은 의사의 권한으로, 약 조제 및 판매는 약사의 권한으로 각각 분리되었다. 그에 따라 외래 환자가 약(전문의약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의료기관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은 후, 의사가 발행한 처방전을 갖고 약국에 가야 한다. 이러한 경우 의사의 처방을 '원외처방'이라고 하고, 그 처방전을 '원외처방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원외처방전에 의해서 환자가 약국에서 구입한 약값을 '원외처방 약제비'라고 한다. 원외처방 약제비는 주로(약 80% 정도) 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라고 함)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부담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약을 처방하면 건보공단으로부터 진찰료를 받는데, 그 안에는 약 처방에 소요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처방료가 처방한 약품의 양이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고가의 약품을 처방하거나 약품을 많이 처방한다고 하여 의사가 요양급여비용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의사는 약을 처방만 할 뿐 약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므로, 약을 많이 처방한다고 하여 의사가 얻는 이익도 없다. 한편,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여 약을 처방한 경우, 의사가 청구한 진찰료 중의 일부가 삭감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건보공단은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여 약이 처방된 경우 그 약값을 처방한 의사로부터 환수해 왔다. 초기에는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에 근거하여 약제비를 환수해 오다가, 2006년 원외처방 약제비를 처방한 의사로부터 환수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2006. 12. 8. 선고 2006두6642)이 선고된 이후에는 민법 제750조에 따라 약제비를 환수(전산상계 방식)해 오고 있다. 그에 따라 약제비를 환수당한 의료기관들이 건보공단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이를 '원외처방 약제비 소송'이라고 부르기도 함)을 제기하였다. - 이 소송에는 상당히 다양한 법률적 쟁점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하에서는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원외처방전 발급행위가 민법 제750조의 위법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2. 하급심 법원의 판단 1심 법원(서울서부지방법원 2008. 8. 28. 선고 2007가합2036 및 2007가합8006호)은 "요양급여기준의 입법목적, 위 기준에 의한 심사절차의 형식, 의료기관이 가입자에게 부담하는 주의의무의 범위 등에 비추어 볼 때,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처방전의 발급이 보험자에 대하여 위법성을 띠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서울고등법원 2009. 8. 27. 선고 2008나89189)은 "요양기관이 요양급여기준에 정한 바에 따르지 아니하고 임의로 이에 어긋나는 원외처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를 위하여 의학적 근거와 임상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응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3. 대상 판결의 요지 대법원 2013. 3. 28. 선고 2009다78214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함)은 임의비급여에 관한 대법원 2012. 6. 18. 선고 2010두27639 전원합의체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 처방은 어느 경우이든 요양급여대상에 포함될 수 없으므로 요양기관은 이를 요양급여대상으로 삼아 처방전을 발급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럼에도 요양기관이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 처방을 요양급여대상으로 삼아 처방전을 발급하였다면, 그 처방이 비록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으로서 가입자 등에 대하여 위법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보험자로 하여금 요양급여대상이 아닌 진료행위에 대하여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도록 하는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로서, ……보험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민법 제750조의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고 판시하였다. 4. 대상 판결의 문제점 가. 약제비 소송과 임의비급여 사례의 차이점을 간과 소위 말하는 '임의비급여' 사례는 요양기관이 요양급여기준에서 정한 절차(즉, 심평원에 의한 심사절차 또는 신의료기술결정신청절차 등)를 거치지 않고 진료비를 임의로 '환자'로부터 지급받은 경우이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급여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요양기관이 (심사 삭감을 우려하여)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그 비용을 전부 환자로부터 지급받은 경우, 또는 건강보험 관계법령에서 인정한 (합법적) 비급여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진료비를 청구한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구 건보법 제52조 제1항에서 정한 '속임수나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은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고, 만약 부당청구에 해당할 경우에는 요양기관이 받은 진료비는 환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의료기관이 환자와 건강보험법령에서 정한 기준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즉, 건강보험의 틀 밖에서) 그 비용을 환자가 부담하기로 약정한 경우에 그러한 약정의 효력을 인정할 것인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 201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원칙적으로는 부당청구에 해당되나, 예외적 경우(즉, ① 절차적 시급성, ② 의학적 안정성, 유효성, 필요성, ③ 충분한 설명과 동의)에는 부당청구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약제비 사건은 의사가 건강보험 급여대상 환자에게 급여대상 약을 건강보험으로 처방하였는데, 심평원에 의한 심사 결과 해당 약에 대한 세부적인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났다고 판단 받은 경우이다. 즉, 본 건은 임의비급여 사례와는 달리 진료와 처방, 요양급여비용 청구가 전부 건강보험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고, 의료기관이 약제비를 건보공단이나 환자로부터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건보법 제52조와는 무관하다. 본 건의 쟁점은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약을 처방한 의사에게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또는 의료인의 진료행위는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나. 위법성 판단 기준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와 배치됨 민법 제750조의 '위법성'이란 가해행위가 법질서에 반하는 것을 말하며, 여기서 말하는 '법질서'는 실정법뿐만 아니라 사회공동생활관계를 규율하는 기타 규범도 포함된다. 오늘날 위법성은 피침해이익의 성질과 침해행위의 태양과의 상관관계로부터 판단하여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민법주해 제18권, 박영사 2005년판. 제210면). 그리고 위법성은 관련행위 전체를 일체로만 판단하여 결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가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상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1다734). 예를 들어, 집단행동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위법성을 갖는지 여부에 관하여, 대법원 1995. 6. 16. 선고 94다35718 판결은 "그 집단행동의 구체적인 내용, 방법, 정도뿐만 아니라 이에 이른 동기나 목적, 경위, 상황 등을 침해이익과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집단행동이 사회통념상 용인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지 여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제3자의 채권침해가 위법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대법원 2003. 3. 14. 선고 2000다32437 판결은 "침해되는 채권의 내용, 침해행위의 태양, 침해자의 고의 내지 해의의 유무 등을 참작하여 구체적, 개별적으로 판단하되, 거래자유 보장의 필요성, 경제ㆍ사회정책적 요인을 포함한 공공의 이익, 당사자 사이의 이익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원외처방전 발급행위가 위법한지 여부는 요양급여기준 위반 여부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약 처방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하여 약을 처방하게 된 동기와 목적,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하여 약을 처방하게 된 경위와 상황, 그와 관련한 공공의 이익, 관련 당사자들의 사이의 이익 균형 등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다. 법체계에 혼란을 초래 대상판결에서는 원심에서 의학적 정당성을 이유로 불법행위책임을 부정한 5건의 사례도 예외 없이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였다. 참고로, 2012년 임의비급여 판결에서는 비록 의료기관이 건강보험법령에서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환자에게 그 비용을 부담시킨 경우라고 할지라도, 예외적 허용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속임수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받은 때'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대상 판결은 의사가 건강보험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원외처방전을 발행하였고 그 처방내용이 아무리 의학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부적인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경우에는 건보공단에 대한 관계에서는 예외 없이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건강보험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약을 처방한 것이 건강보험법령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보다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고,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위법·부당하지 아니한 행위가 민법에 따르면 위법한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 또한, 민법 제750조의 '위법성'은 전제 법질서에 반한다는 것인데, 동일한 약 처방 행위가 건보공단에 대해서는 위법하고, 환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도 '위법성'의 본질과도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5. 결론 요양급여기준 초과 사실만으로 그러한 원외처방전 발급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한 대상 판결은 임의비급여 사례와 본 건의 차이점을 간과함으로써 건보법상의 '부당이득 징수' 법리와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책임'의 법리를 혼동한 잘못이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위법성의 판단기준에 관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배치될 뿐만 아니라, 의학적 정당성이 인정되는 약 처방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위법성을 인정함으로써 법체계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014-01-09
법정지상권이 성립된 건물의 이전과 연체지료의 승계 여부
Ⅰ. 문제의 제기 1. 지상권 제도는 건물과 토지를 별개의 부동산으로 구성하고 있는 우리 민법에 있어서, 타인 소유의 토지 위에 건물 등을 소유하고자 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불가결한 것이다. 민법은 약정지상권 외에도 민법 제366조 등에서 토지와 건물 중 그 어느 하나의 경매로 인하여 토지소유자와 건물소유자가 분리되는 경우에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2. 법정지상권은 법률상 성립하는 물권이므로 당사자간 약정에 의하여 그 존속기간과 범위, 지료 등이 정하여지는 약정지상권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는 경우, 우리 민법은 제366조, 제305조 단서에서 "지료"는 당사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이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 지료를 2년 이상 연체한 때에는 지상권소멸사유가 된다는 점에서 지료연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법정지상권이 이전된 경우, 법정지상권의 양수인이 어떠한 요건 하에서 종전 법정지상권자의 연체지료를 승계한다고 볼 것인지의 문제는 법정지상권과 법정지상권의 제한을 받는 토지소유권의 합리적 조화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Ⅱ. 사실관계 1. 본래 이 사건 대지와 지상건물은 이현숙의 소유였는데, 다만 건물 중 2층 부분은 준공검사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현숙은 위 대지와 지상건물 1층에만 저당권을 설정하였고, 그 실행에 따른 경매절차에서 원고가 1981. 3. 27. 경락받아 소유권을 취득하였다. 그 후 위 2층 부분에 관하여 준공검사가 나왔고, 이현숙은 1984. 9. 7. 2층 부분에 관하여 보존등기를 마치고, 1986. 5. 17. 저당권을 설정하였으며, 그 실행에 따른 경매절차에서 오운환이 1987. 2. 28. 2층 부분을 경락받아 같은 해 4. 20.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다가, 1990. 2. 1. 피고에게 매도하였다. 2. 원고는 이현숙을 상대로 위 2층 부분에 대한 명도소송을 제기한 바 있으나 1층에 부합되지 아니한 독립된 부동산이라는 이유로 패소하였고, 한편 원고의 이현숙에 대한 지료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판결이 확정된 바 있다. 그러나 지료에 관한 등기에는 이르지 못하였고, 이현숙, 오운환, 피고 그 누구도 원고에게 지료를 지급한 바 없으며, 오운환 자신의 지료연체기간만 하더라도 2년이 넘는다. 3. 이에 원고가 현재 소유자인 피고를 상대로 법정지상권소멸청구 및 2층 부분의 철거를 구한 것이다(조관행, "법정지상권의 취득, 양도, 소멸에 관한 몇가지 문제", 대법원판례해설 25호(1996년 상반기), 43면). Ⅲ. 판결요지 1. 지료액 또는 그 지급시기 등 지료에 관한 약정은 이를 등기하여야만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이므로(부동산등기법 제136조), 지료의 등기를 하지 아니한 이상 토지소유자는 구 지상권자의 지료연체 사실을 들어 지상권을 이전받은 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할 것이다. 2. 다만 위 오운환은 이 사건 법정지상권자로서 이를 승계취득한 이후의 지료를 원고에게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나 민법 제366조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법정지상권의 경우 그 지료는 당사자의 협의나 법원에 의하여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원고와 위 오운환 사이에 지료에 관한 협의가 있었다거나 법원에 의하여 지료가 결정되었다는 아무런 입증이 없음은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바이고, 법정지상권에 관한 지료가 결정된 바 없다면 법정지상권자가 지료를 지급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지료 지급을 지체한 것으로는 볼 수 없으므로 법정지상권자가 2년 이상의 지료를 지급하지 아니하였음을 이유로 하는 토지소유자의 지상권 소멸청구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당원의 견해이다. Ⅳ. 검토의견 1. 대상판결의 사안은 이를테면 건물 2층 부분을 소유하기 위한 법정 구분지상권이 성립한 경우라 할 수 있는바, 그 요지는 지료 등기를 하지 않은 이상 종전 지상권자의 지료연체사실을 들어 지상권을 이전받은 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우리의 학설 역시 대체로 대법원과 같이 이를 대항요건으로 해석하여, 지료에 관한 등기가 있는 경우에만 지상권 이전에 따라 지료지급의무도 이전되고, 지료에 관한 등기를 하여야 그 연체효과를 지상권 양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곽윤직, 물권법[민법강의 Ⅱ], 363면 ; 이영준, 새로운 體系에 의한 한국민법론[物權編], 626면). 3. 본래 지료는 지상권의 요소가 아니므로, 지료는 임의적 기재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지상권의 존속기간, 지료 등은 그야말로 임의적 기재사항에 불과할 뿐이고, 지료 등에 관한 등기를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실체관계가 등기부 기재대로 변경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예컨대, 지상권자가 토지소유자와의 사이에 건물소유를 위한 지상권 설정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서에 그 존속기간을 10년으로 기재하고 다만 등기부에는 지상권 설정의 목적과 범위만을 등기한 경우에, 지상권자가 석조건물을 건축하였다고 하여 그 지상권의 존속기간이 30년으로 늘어난다고 할 수 없고, 이러한 이치는 지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4. 특히 지료의 경우, 당사자간 다른 사항은 등기하면서도, 지료에 대해서만은 지료가 경기변동에 따라 증감변동할 수 있는 사정을 고려하여 매년 정하기로 하고 일부러 이를 등기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료의 연체사실은 이를 등기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지료의 등기를 한 경우에도 실제로 지료가 연체되어 있는지 여부는 개별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전 지상권자의 지료연체를 지상권 양수인에게 주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 지료의 등기여부와 연관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한 것으로 생각된다. 5. 채권의 경우, 그 지위의 이전이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그 권리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당사자 사이의 개별적 약정에 의하여 정하여지는 것이고, 그들 사이에서 발생한 채권 채무는 그 사람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물권은 물건에 대하여 직접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당사자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 이러한 이치는 대물적 행정처분의 경우, 종전 영업자의 위법사유가 승계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대법원 2001. 6. 29. 선고 2001두1611 판결). 다시 말해, 물권은 직접 물건에 대한 권리행사가 가능한 것이므로, 물권의 귀속자가 변동되었다는 사정은 물권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따라서 물권적 지위의 승계가 이루어진 경우 승계인은 종전 당사자 지위를 그대로 승계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민법 307조 참조). 이와 혼동하여서는 아니되는 것은 기판력의 주관적 범위에 관한 변론종결 후의 승계인 논의이다. 이때는 원고가 소송상 구하는 청구권의 성질에 따라 승계인의 범위가 달라진다(구실체법설). 6. 토지소유자와 법정지상권자는 상호 물권자 지위에 있다. 법정지상권자는 법정지상권의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타인의 토지를 이용할 수 있고, 따라서 그 토지이용권을 처분함에 있어서도 토지소유자의 승낙이나 양해를 얻어야 할 필요가 없다. 토지소유자 역시 물권자 지위에서 지상건물을 소유함으로써 토지를 사용하고 있는 자를 상대로 지료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토지소유자는 건물소유권이 변동될 때마다 변동된 건물소유자를 일일이 확인해 가면서 그의 소유권 취득일에 맞추어 지료를 청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의무자별로 연체기간을 별도로 계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권의 처분자유의 관점에서 볼 때, 물권자는 그 물권의 범위 내에서 물권을 직접 지배하고 처분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당연한 결과로서 더욱 강화된 지위승계가 이루어진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7. 뿐만 아니라, 법정지상권 승계인이 지료를 승계하는 것은 우리 민법 제288조의 해석상 불가피하다. 동조는 "지상권이 저당권의 목적인 때 또는 그 토지에 있는 건물, 수목이 저당권의 목적이 된 때에는 전조의 청구는 저당권자에게 통지한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법조의 취지는 지상권자가 지료를 연체하여 지상권이 소멸될 처지에 처하게 된 경우, 지상물의 저당권자에게 그 사실을 알림으로써 저당권자가 연체 지료를 대신 변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 지상권이 소멸되지 않도록 하려 함에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민법주해[Ⅵ] 물권(3), 80면). 본래 지상물을 목적으로 하는 저당권자는 토지를 직접 지배하는 자가 아닐 뿐더러 법률상 지상권자를 대신하여 지료를 지급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자이나, 그 저당권이 지상권(또는 지상물)의 존속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상권(또는 지상물)의 소멸을 면하기 위해서는 저당권자라도 대신 지료를 지급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정지상권의 양수인이 바로 그 지상권의 존속을 위해 종전 법정지상권자의 연체 지료를 지급하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8. 지료지급의무가 2년 이상 연체된 경우 그 결국은 지상권소멸 또는 지상물철거에 이른다는 의미에서, 건물철거의 경우 피고적격자에 관한 법리(대법원 1986. 12. 23. 선고 86다카1751 판결)가 적용되어야 한다. 건물철거소송에서 철거의무는 그 건물에 대한 종국적인 처분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등기부상 소유자 뿐 아니라 건물에 대한 사실상 처분권을 가지는 자도 피고 적격을 갖는다. 이러한 이치는 법정지상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서, 법정지상권이 양도된 경우 토지소유자는 현재 건물을 소유함으로써 토지를 사용 수익하고 있는 자를 상대로 지료를 청구할 수 있고, 이 때 건물의 승계취득자는 종전 건물의 소유자가 보유하고 있던 건물 소유를 위한 법정지상권자의 지위도 그대로 승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일단 지료연체를 이유로 건물소유를 위한 토지사용권이 소멸한 경우에는, 토지소유권에 방해상태를 야기하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 토지소유자에 대한 관계에서 그 제거의무를 부담한다 할 것이다. 이처럼 지료지급의무 또는 철거의무는 방해배제를 구하는 토지소유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9. 이와 관련, 대법원 2001. 3. 13. 선고 99다17142 판결은 "지상권자의 지료 지급 연체가 토지소유권의 양도 전후에 걸쳐 이루어진 경우 토지양수인에 대한 연체기간이 2년이 되지 않는다면 양수인은 지상권소멸청구를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으나, 토지소유권의 변동은 법정지상권자의 지료연체 여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토지소유권이 변동되었다 하여 종전 법정지상권자의 지료연체효과가 소멸되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Ⅴ. 결론 1. 법정지상권의 지료지급의무는 법률상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므로, 종전 법정지상권자와 법정지상권 양수인의 연체기간이 통산 2년을 넘게 되면 법정지상권은 소멸청구의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2. 판례이론에 따르면, 법정지상권의 지료가 등기되지 않으면 지료연체를 대항할 수 없고 법정지상권이 양도된 경우 연체효과도 승계되지 아니하므로, 법정지상권자는 지료결정을 회피하면서 지료연체가 2년에 달하기 전 법정지상권을 양도함으로써 지상권소멸청구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본 사안에서 이현숙, 오운환, 피고 그 누구도 원고에게 지료를 지급한 바 없음에도 철거의무를 면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간교함을 잉태할 뿐이고, 토지소유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가 되어 심히 부당한 것이다.
2011-08-29
건축신고반려행위의 법적 성질
Ⅰ. 사실의 개요 1. 원고는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임야 8,752㎡ 중 500㎡(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의 지상에 건축면적과 연면적을 각 95.13㎡로 하는 1층 단독주택을 신축할 계획으로, 2006.5.19. 경 피고(청주시 상당구청장)에게 이 사건 토지를 대지로 형질변경하여 위 건축을 하겠다는 내용의 개발행위허가신청 및 건축신고를 하였다. 2. 피고는 2006.6.23. '이 사건 토지에 접하는 진입도로가 녹지를 가로지르는 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38조 제1항, 제2항, 같은 법 시행령 제43조, 도시공원 및 녹지의 점용허가에 관한 지침 규정에 의거 건축법상 진입로를 위한 완충녹지점용이 불가하므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58조 및 건축법 제33조의 규정에 의거 진입도로가 미확보되어 개발행위허가 및 건축신고가 불가하다'는 이유로 위 신청 등을 불허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Ⅱ. 당사자의 주장 1. 원고 이 사건 토지로 연결되는 진입로가 이미 개설되어 있으므로 진입로 미확보를 이유로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2. 피고 관련법령 및 도시공원·녹지의 점용허가에 관한 지침에 의하면 녹지점용허가기준에 관하여 건축법상 도로로 사용하기 위하여 점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녹지점용을 허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원고로서는 이 사건 진입도로를 이용하기 위한 녹지점용허가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명백하므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 Ⅲ. 제1심판결(청주지법 2007.7.11, 2006구합1611) 요지 피고가 이 사건 처분의 주된 근거로 삼은 도시공원·녹지의 점용허가에 대한 지침 제4조를 보더라도, 녹지를 가로지르는 진입도로에 대하여는 '건축법상 도로'로 사용하기 위한 경우나 이면도로가 개설된 경우 등을 제외하고 일정한 요건 하에 그 점용을 허가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원고는 이 사건 진입도로를 이 사건 토지에 이르는 진입로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고 도로를 개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따라서, 원고가 이 사건 진입도로에 관하여 녹지점용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Ⅳ. 원심판결(대전고법 2007.12.6, 2007누1536) 요지 제1심 판결은 정당하고 피고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한다. Ⅴ. 상고심판결(2008두167) 요지 1. 직권으로 본다 행정청의 어떤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추상적·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구체적인 경우 행정처분은 행정청이 공권력의 주체로서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관련 법령의 내용과 취지, 그 행위의 주체·내용·형식절차, 그 행위와 상대방 등 이해관계인이 입는 불이익과의 실질적 견련성, 그리고 법치행정의 원리와 당해 행위에 관련한 행정청 및 이해관계인의 태도 등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2. 건축주 등은 신고제하에서도 건축신고가 반려될 경우 당해 건축물의 건축을 개시하면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벌금의 대상이 되거나 당해 건축물을 사용하여 행할 행위의 허가가 거부될 우려가 있어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건축신고 반려행위가 이루어진 단계에서 당사자로 하여금 반려행위의 적법성을 다투어 그 법적 불안을 해소한 다음 건축행위에 나아가도록 함으로써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미리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위법한 건축물의 양산과 그 철거를 둘러싼 분쟁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법치행정의 원리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건축신고 반려행위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Ⅵ. 평 석 1. 판결의 긍정적 측면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건축신고반려행위"를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의 처분"으로 인정하였다. 만시지탄이 있으나, 올바른 판단이다(상세는 김남진, "건축신고반려조치의 법적 성질", 법률신문 2000.12.28. 등 참조). 다른 학자가 본 판례에 대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평한 것에 동조하는 바이다(김중권, 법률신문 2010. 12. 6. 참조). 대법원은 종래에 [건축신고의 반려행위 또는 수리거부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아니어서 그 취소를 구하는 소는 부적법하다]는 취지의 판결(대법원 1967.9.19. 선고 67누71 판결, 대법원 1995.3.14. 선고 94누9962 판결, 대법원 1997.4.25. 선고 97누3187 판결, 대법원 1998.9.22. 선고 98두10189 판결, 대법원 1999.10.22. 선고 98두18435 판결, 대법원 2000.9.5. 선고 99두8800 판결 등)을 하였던 것인데, 본 판결(2008두167 전원합의체 판결)의 견해와 저촉되는 범위에서 모두 변경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2. 판결의 부정적 측면 본 사건에서 문제된 "건축신고반려행위"는 신고를 통해 초래된 건축금지해제의 효과를 배제하는, 혹은 거부하는 "행정청의 개별 구체적 규율"로서의 행정행위 또는 처분에 해당함이 분명하다(이에 관한 상세는 김남진/김연태, 행정법Ⅰ, 제14판, 186면이하 참조). 다른 학자가 이 사건에서의 신고반려행위를 禁止下命으로 보고 있음도 같은 취지이다(김중권, 전게 판례평석 참조). 행정소송법(및 행정심판법)은 "처분"에 대하여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제2조 제1항 2호)으로 정의해 놓고 있다. 본 사건에서의 "건축신고반려행위"가 "처분"에 해당함은 위 실정법규정 및 그에 대한 설명(김남진/김연태, 전게서, 746면이하 참조)에 비추어 볼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건축신고반려행위의 처분성"을 설명하는데 불필요한 長廣舌을 늘어놓고 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아울러, 김남진, "대법원의 처분개념에 대한 의문", 법률신문 1999.12.13. 참조) 3. 확인적 "공법상 당사자소송"의 활용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그 "신고반려행위의 처분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건축신고 반려행위가 이루어진 단계에서 당사자로 하여금 반려행위의 적법성을 다투어 그 법적 불안을 해소한 다음 건축행위에 나아가도록 함으로써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미리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위법한 건축물의 양산과 그 철거를 둘러싼 분쟁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법치행정의 원리에 부합한다]라고도 부연 설명해 놓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설명은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처분성)"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확인소송에 있어서의 확인의 이익 내지 원고적격"에 관하여 논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이 기회에 "확인소송으로서의 공법상 당사자소송"의 활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행정소송과 관련하여 항고소송(특히 취소소송)에만 메달리지 말고, - 특히 처분성이 명확하지 않은 행정작용에 대하여도 - "공법상의 당사자소송(특히 확인소송)을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구제의 길을 넓히자고 하는 것이다(이에 관한 상세는 김남진, "처분성확대론과 당사자소송활용론", 고시연구, 2005.3; 同人, "행정상 확인소송의 가능성과 활용범위", 고시연구, 2005.5. 참조) 아울러 이 문제에 대한 다른 학자의 보다 깊은 연구(김현준, "처분성없는 행정작용에 대한 행정소송으로서의 확인소송", 공법연구 제37집 제3호, 2009. 2)를 참조할 것을 적극 권하는 바이다.
2011-02-10
申告制와 관련한 코페르니쿠스적 轉換에 관한 小考
Ⅰ.대상판결의 요지 행정청의 어떤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추상적·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구체적인 경우 행정처분은 행정청이 공권력의 주체로서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관련 법령의 내용과 취지, 그 행위의 주체·내용·형식·절차, 그 행위와 상대방 등 이해관계인이 입는 불이익과의 실질적 견연성, 그리고 법치행정의 원리와 당해 행위에 관련한 행정청 및 이해관계인의 태도 등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구 건축법(2008.3.21. 법률 제8974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관련 규정의 내용 및 취지에 의하면, 건축주 등으로서는 신고제 하에서도 건축신고가 반려될 경우 당해 건축물의 건축을 개시하면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벌금의 대상이 되거나 당해 건축물을 사용하여 행할 행위의 허가가 거부될 우려가 있어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건축신고 반려행위가 이루어진 단계에서 당사자로 하여금 반려행위의 적법성을 다투어 그 법적 불안을 해소한 다음 건축행위에 나아가도록 함으로써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미리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위법한 건축물의 양산과 그 철거를 둘러싼 분쟁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법치행정의 원리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 건축신고 반려행위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Ⅱ. 기존의 스테레오타입의 終焉의 始作 이상의 전원합의체판결은 그와 다른 취지의 기왕의 판례(대법원 1967.9.19. 선고 67누71 판결, 대법원 1995.3.14. 선고 94누9962 판결, 대법원 1997.4.25. 선고 97누3187 판결, 대법원 1998.9.22. 선고 98두10189 판결, 대법원 1999.10.22. 선고 98두18435 판결, 대법원 2000.9.5. 선고 99두8800 판결 등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판결)를 모두 변경하다고 판시하였다. 이로써 이제까지 스테레오타입일 정도로 견지하여 온 건축신고반려(수리거부)의 비처분성 및 무의미성은 마침내 終焉을 고하게 되었다. 평소 현하의 申告制를 행정법도그마틱으로선 새로운 어려움인 新苦制로 여겨 기왕을 틀(자기완결적 신고, 수리를 요하는 신고)을 타개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여 온 필자로선(졸저, 행정법기본연구Ⅰ, 2008, 109면 이하; 졸고, 행정법상의 신고와 통보, 조해현(편집대표) 행정소송(I), 2008, 683면 이하), -대상판결의 전체 맥락에 대한 매우 한정된 이해를 전제하긴 해도- 법원의 이 같은 태도변화를 적극 환영하고, 신고에 관한 행정법도그마틱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으로 판단한다. 이하에선 대상판결의 의의 및 앞으로의 바람을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Ⅲ.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의 인정근거의 상실 이제까지 대표적인 '자기완결적 신고'로 여겨왔던 건축신고의 경우 행정청의 수리는 물론 수리거부 역시 처분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적법한 신고를 한 이상 수리여하에 상관없이 신고대상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이런 논증을 취하여 온 기왕의 판례(변경대상인 판례)와는 달리, 신고반려의 처분성을 인정하였다. 이제 대상판결로 인해 건축신고인으로선 건축신고반려가 내려지면 금지하명으로서의 그것을 먼저 다투어야지 그것을 무시하고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는 그 인정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 신고의 의제효과를 집중효로 이해하여 건축신고를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설정하여 그 신고수리거부를 거부처분으로 본 하급심(서울고법 2009.12.30. 선고 2009누11975 판결; 서울행정법원 2009.4.9. 선고 2009구합1693 판결: 이들의 문제점에 관해선 졸고, 建築申告의 許可擬制效果에 관한 小考, 법률신문 제3837호(2010.5.3.))과 비교하면, 대상판결이 반려에 따른 즉, 반려를 무시하고 신고대상행위를 행한 경우에 예상된 법효과를 논증하면서 그것의 처분성을 인정한 점은 호평할 만하다. 나아가 대상판결이 반려에 대해 거부처분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점은 매우 돋보이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만약 거부처분이란 표현을 하였으면 신고수리 자체가 의당 처분에 해당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반려의 본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기에, 자칫 이를 기화로 건축신고를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오해할 소지가 있을 수 있다. 반려위반에 따른 법효과의 결부는, 여기서의 반려가 다름 아닌 신고대상행위에 대한 禁止下命에 해당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반려를 -수리를 요하는 신고를 전제로 한- 거부처분으로 인식하여선 아니 된다(다만 여기서 건축신고가 수리된 경우는 건축법상의 허가의제효과로 인해 의제된 건축허가가 다툼의 대상이 됨을 유의하여야 한다. 졸고, 건축허가의제적 건축신고와 일반적인 건축신고의 차이점에 관한 소고, 판례월보 2001.5., 13면 이하 참조). Ⅳ. 신고제에서의 행정청의 심사문제 종래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에선 -적법한 신고를 한 이상- 반려(수리거부)는 아무런 법적 의미를 갖지 않으며, 반려에 상관없이 신고대상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에선 행정청의 심사자체를 상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신고의 적법성은 신고에 대한 행정청의 대응 그 자체에 대한 판단근거이지 그것의 요부에 대한 판단근거는 아니다. 그리고 신고의 적법성은 신고자가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전적으로 행정청과 (궁극적으론) 법원이 확인할 문제이다. 비록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라 하더라도, 그것을 공법관계의 형성을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긴다는 의미에서 이해하여선 아니 된다. 그렇게 신고제를 이해하면, 행정이 자기임무를 방기하는 것을 조장할 수 있다. 행정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신고제·민간화란 이름으로 슬그머니 포기함으로써, 그에 따른 법·행정의 공백은 고스란히 민간상호간의 다툼에 내맡겨진다. 그리하여 필자는 신고제를 행정청의 심사배제로 이해하여선 아니 된다고 주장하였다. 대상판결은 위법한 건축물의 양산이란 측면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건축신고에서의 행정청의 심사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사실 반려의 처분성인정은 신고에 대한 행정청의 심사가능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편 현행 건축법은 건축허가에 대해 다른 허가나 신고의 효과가 의제되도록 하고 있는 동법 제11조 제5항이 건축신고에 대해서도 준용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의제되는 사항의 소관 행정기관의 장과의 협의를 규정한 동법 제11조 제6항 역시 당연히 건축신고의 경우에도 준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건축신고자는 동법 제11조제5항 각 호에 따라 의제되는 허가 등을 받거나 신고를 하기 위하여 해당법령에서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신청서 및 구비서류를 제출하여야 한다(동법 시행규칙 제12조 제1항). 사정이 이럴진대, 건축신고의 경우에 행정청의 심사가 허용되지 않는다든지 그 심사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은 법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건축신고에서 행정청의 심사를 긍정하지 않고선, 건축법제의 이런 매커니즘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Ⅴ. 맺으면서-申告制에 관한 拔本的 改革 건축신고가 기본적으로 허가대상건축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증명하듯이, 건축신고는 물론 신고제 자체는 기본적으로 허가제를 代替한 개시통제의 수단이다. 사실 기왕의 신고제의 틀-자기완결적 신고와 수리를 요하는 신고-은 신고제가 허가제의 대체적 의의를 지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사인의 공법행위에 관한 논의와 -이제는 그 존재이유가 의심스러운- 이른바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로 일컫는 '수리'에 관한 논의를 도식적으로 대입한 것에 불과하다. 요컨대 허가제에 대비된 -절차적 민간화에 해당하는- 신고제의 본질은, 행정법관계의 형성에서 행정은 일단 뒤로 빠지고 私人에게 먼저 이니셔티브(私人主導)를 인정한 것이다. 만약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처럼- 수리 그 자체가 관련 법관계의 형성을 좌우한다면, 그것은 본연의 신고제가 아니라, 변형된 허가제이다. 물론 수리거부에 해당하는 반려만은 금지하명으로서의 의의를 갖는다. 이제까지 신고제에서 수리와 반려(수리거부)를 연계시켜 접근한 패캐이지 논증이 신고제 誤導의 초기조건이었다. 요컨대 신고제의 유형을 (예방적) 금지해제적 신고와 정보제공적 신고로 나누는 것이 그것의 본연의 모습에 부합한다. 건축신고가 신고제의 대표인 점에서 대상판결은 신고제에 관한 패러다임의 교체를 시사한다. 대상판결은 신고제에 관한 拔本的 改革의 시발이다. 다른 영역에서의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에 대해서도 대상판결과 같이 향상된 인식이 반영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제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가 설 자리를 상실한 이상, 다음 수순은 典據가 의심스러운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를 하루바삐 修理하는 것이다. 申告制改革의 바람이 서래골에서 불어오길 仰望한다.
2010-12-06
인사교류 계획에 의한 전출명령의 문제점에 관한 소고
Ⅰ. 사안의 개요 원고는 1978. 11.1. 지방행정서기보 시보로 임용되어 종로구 세종로동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래 종로구 도시정비국 주택과, 강서구 발산동사무소 등을 거쳐 서울특별시 건설행정과에서 근무해 오던 중 1995. 7.1.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개인사정과 출·퇴근 등의 사유로 인사교류를 신청하여 1996. 2.1. 강서구로 발령받아 2006. 10.1.까지 근무해 왔다. 그런데 서울특별시 강서구청장(피고)이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 2 제2항, 제3항, 지방공무원임용령 제27조의5, 서울특별시지방공무원인사교류규칙에 의거하여 서울시인사교류협의회에서 심의를 거쳐 확정된 '시·자치구 4급 이하 공무원 인사교류계획'에 의하여 피고 서울특별시장이 권고한 바에 따라 2006. 10.2. 원고를 구로구로 전출하는 내용의 명령(전출명령)을 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 제2항 규정의 인사교류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소속 공무원을 전출하는 것은 임명권자를 달리하는 지방자치단체로의 이동인 점에 비추어 반드시 당해 공무원 본인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대법원 2001. 12.11. 선고 99두1823판결, 헌법재판소 2002. 11.28. 선고 98헌바101, 99헌바8결정 등 참조), 따라서 위 법 규정의 위임에 따른 지방공무원 임용령 제27조의5 제1항도 본인의 동의를 배제하는 취지의 규정은 아니라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원심이 확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피고는 위 규정에 의한 인사교류의 일환으로 그 소속 공무원인 원고에 대하여 그 동의를 받지 아니한 채 임명권자를 달리하는 구로구로 전출을 명하는 이 사건 전출명령을 한 점을 알 수 있고 사정이 그와 같다면, 이 사건 전출명령은 원고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위법한 처분으로서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 Ⅲ. 원고의 주장 (1) 이 사건 전출명령은 당초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 2 제2항에서 정한 인사교류협의회의 심의절차도 거치지 아니하고 이루어진 것으로서 위법하고 그 후 인사교류협의회가 개최되어 심의절차를 거침으로써 사후 그 절차가 보완되었다 하더라도 그 심의결과에 행정, 기술, 기능직 교류희망자는 반드시 본인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피고 강서구청장은 원고의 동의 없이 원고에 대한 이 사건 전출명령을 행하였으므로, 이 사건 전출명령은 위 인사교류협의회의 심의결과에 위배된 것으로서 위법하다. (2) 이 사건 전출명령의 근거법령인 지방공무원임용령 제27조의5 제1항은 제1호에서 5급 이상 공무원 또는 6급 기술직렬을 교류하는 경우, 제2호에서 인접 자치단체 상호간에 교류하는 경우, 제3호에서 5급 이하 공무원의 연고지 배치를 위하여 교류하는 경우를 각 규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 전출명령은 위 지방공무원임용령 제27조의 5 제1항 각 호의 요건에 모두 해당되지 아니함에도 원고의 동의없이 강제로 이루어졌으므로 인사권남용에 해당되어 위법하다. (3) 이 사건 전출명령은 원고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 아니한 강제전출로서 헌법상 공무원의 신분보장 원칙, 정치적 중립 원칙,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하여 무효이고, 중앙정부가 행하는 부처간, 중앙·지방간 인사교류에는 본인의 신청이나 동의를 받아 인사·급여상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이 사건 전출명령은 아무런 인센티브의 제공없이 출·퇴근시 3시간이나 소요되는 곳으로 강제로 전출시키는 것으로서 헌법상의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여 무효이다. Ⅳ. 관계법령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인사교류) ② 시·도지사는 당해 지방자치단체 및 관할구역안의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에 인사교류의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당해 시·도에 두는 인사교류협의회에서 정한 인사교류기준에 따라 인사교류안을 작성하여 관할구역안의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인사교류를 권고할 수 있다. 이 경우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지방공무원임용령(대통령령) 제27조의5(지방자치단체간의 인사교류) ① 법 제30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에 인사교류를 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 각호와 같다. 다만, 제3호에 의하는 경우에는 본인의 신청 또는 동의가 있어야 한다. 1. 지방자치단체간 인력의 균형있는 배치와 지방행정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5급 이상 공무원 또는 6급 기술직렬공무원을 교류하는 경우 2. 행정기관 상호간의 협조체제증진 및 공무원의 종합적 능력발전을 위하여 인접 지방자치단체간 교류하는 경우 3. 5급이하 공무원의 연고지 배치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Ⅴ. 문제의 제기 원고의 주장에 대해 제1심(서울행정법원 2007. 8.14. 선고 2007구합4919 판결)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08. 3.25. 선고 2007누22452 판결) 역시 그러하였다. 제1심은 지방공무원임용령 제27조의5 제1항을 중심으로 사안이 동항 제2호에 해당하는 즉, 대상자의 동의가 요구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나아가 나름의 근거에 의거하여 대상 공무원의 동의 요구는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인사교류제도의 목적 달성을 저해한다고 하면서, 사안에서 전입지가 그다지 멀지 않기에 원고의 동의 없이 행한 이 사건 전출명령이 헌법상 보장된 공무원의 신분보장, 정치적 중립,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 평등권 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반면 대상판결은 전출명령(결정)에는 대상자의 동의가 전적으로 요구된다는 기조를 취한다(이에 대하 평석으로 박연욱, 대법원판례해설 제78호(2008 하반기)(2009.07), 94면이하). 대상판결의 결론에는 찬동하지만, 논증방식에선 생각을 달리하기에 이하에선 현행 법제상의 전출입제도의 본질에 의거하여 관련 문제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Ⅵ.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 제2항 규정의 인사교류와 공무원의 동의필요 대상판결은 대법원 2001. 12.11. 선고 99두1823 판결과 헌법재판소 2002. 11.28. 선고 98헌바101, 99헌바8 결정을 참조하여 동의필요를 논증하였다. 그런데 참조대상 판결과 결정에서 다툼의 대상은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 제2항이 아니라 동법 제29조의3 조항이었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의 논증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참조대상 판결로 인해 일찍이 수원지방법원 2003. 8.20. 선고 2002구합5079 판결과 그 항소심인 서울고법 2004. 9.15. 선고 2003누15968 판결은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 조항에 의한 전입전출과 동법 제29조의3 조항에 의한 전입전출을 구별하는 태도를 취하였고. 기본적으로 전자의 경우에는 해당 공무원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2003누15968 판결의 상고심인 대법원 2005. 6.24. 선고 2004두10968 판결 역시 드러나진 않지만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한 점에서 동일한 맥락에 서 있다고 봄직하다(2004두10968 판결의 문제점에 관해선 졸고, 人事交流計劃이 결여된 轉出決定(命令)의 效力에 관한 小考, 행정판례연구 제15집 제1호, 2010년 6월 30일 발간예정). 사실 지방공무원임용령 제27조의5 제1항이 당사자의 동의요구를 사실상 예외적 상황에 두고 있기에, 동의요구에서의 이원적 접근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먼저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 조항과 동법 제29조의3 조항의 체계를 정립하지 않고선 이원적 접근에 반론을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요컨대 지방공무원법 제29조의3 조항에 의한 전입전출 역시 인사교류의 한 방식이다. 따라서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 조항에 의한 인사교류를 (일반적)포괄적·개괄적 인사교류로, 지방공무원법 제29조의3 조항에 의한 인사교류를 개별적 인사교류로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인사교류의 방식인 전입전출을 대입하여-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 조항은 인사교류계획에 의한 전입전출로, 지방공무원법 제29조의3 조항은 인사교류계획과 무관한 전입전출로 설정할 수 있다. 이처럼 일원적으로 접근하면서, 동시에 임용을 동의를 필요로 하는 행정행위로 보는 것을 바탕으로 전출결정을 -전입결정자의 '특별임용'이 예정된- 의원면직으로, 전입결정을 특별임용으로 보는 필자의 입장에 서면(졸저, 행정법기본연구Ⅱ, 2009, 235면 이하 참조),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 제2항에 의한 인사교류의 경우에도 당사자의 동의는 필수적 요청이다. Ⅶ. 지방공무원임용령 제27조의5 제1항의 문제점 지방공무원 임용령 제27조의5 제1항이 동의필요사안과 동의불요사안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으며, 제1심과 제2심이 이런 기조에 바탕을 두고서 접근한 이상,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행정상의 전출'이란 '공행정주체가 그 소속 공무원에 대해 -그의 종전의 지위와 신분상의 변화는 주지 않으면서- 다른 공행정주체와의 새로운 신분상의 귀속관계를 설정하도록 이제까지의 신분상의 귀속관계를 해소하는 것'으로, '전입'이란 '공행정주체가 전출에 대응하여 전출대상자에 대해 -그의 종전의 지위와 신분상의 변화는 주지 않으면서- 새로운 신분상의 귀속관계를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찍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당사자 본인의 동의가 명시적으로 요구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방공무원법 제29조의3에 당연히 그의 동의에 관한 요구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볼 정도로, 전출과 전입은 해당 공무원에 대해 그의 신분관계에서 매우 중대한 영향을 준다. 즉, 신분관계에서 그 귀속관계의 해소는 비록 앞으로도 신분관계의 기본에는 변함이 없더라도, 앞으로의 경력관리나 승진 등에서 전출 그 자체만으로도 직업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요컨대 과거의 전통적인 특별권력관계이론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고 하면, 지방공무원법 제30조의2 조항이 명시적으로 당사자의 동의불요가능성을 언명하지 않는 이상, 그것의 위임명령인 지방공무원 임용령 제27조의5 제1항에서 同意要否를 규정한 것은 법치국가원리에 반한다. 따라서 적어도 -비록 설득력있는 논거를 제시하진 않았지만- 대상판결처럼 동항에 대해 본인의 동의를 배제하는 취지의 규정은 아니라고 해석하지 않으면, 동항은 위헌성을 면할 수 없다. 그런데 대상판결의 이런 태도는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상판결의 관점을 지방공무원 임용령 제27조의5 제1항에 바로 대입하면, 규범통제의 문제가 되어 동조항의 위헌·위법성이 바로 도출되고, 이에 동조항의 개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런 과정에서 모법률에서의 명시적인 동의요구까지도 자연스럽게 미칠 수 있다. Ⅷ. 맺으면서-de lege ferenda적 물음 일체의 전출전입에 대해 당사자의 동의를 요구하면, 행정조직의 유연화라는 시대흐름과는 배치될 수 있다. 사실 제1심은 이런 정책적 관점을 논거로 내세웠다. 따라서 현행법을 중심으로 한 de lege lata적 접근이 아닌, de lege ferenda적(입법정책적)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1997년의 공직법개혁법률의 제정을 기화로 그들의 舊 공무원법기본법 제18조는 전출에서 해당 공무원의 동의결여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동법을 대체하여 2009. 4.1.부터 발효한 공무원신분법(Beamtenstatusgesetz) 제15조는 기본적으로 전출에 해당 공무원의 동의를 요구하면서, 아울러 동일한 기본급이 주어지는 경우엔 해당 공무원의 동의가 없더라도 전출이 가능하도록 규정하였다. 새삼 행정조직법의 현대화가 현하의 과제이다.
2010-06-28
저당목적물의 담보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지상권의 효력
Ⅰ. 사안의 개요 1. 사실관계 A는 인접하고 있는 1, 2, 3 토지의 소유자였는데 1998년 10월15일 피고 1 주식회사에게 3 토지를 매도하고 같은 해 11월11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주었다. A는 같은 해 12월14일 원고로부터 돈을 대출받으면서, 위 대출원리금에 대한 담보를 위하여 원고에게 이 사건 제1, 2토지에 관하여 채권최고액을 금 1억 5,000만원으로 하는 근저당권과, 목적을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의 소유로, 존속기간을 1998년 12월12일부터 30년간으로 하는 지상권을 설정해 주었다. 그 후 A는 1999년 1월11일 피고 2(김해시)에게 1 토지를 기부채납하여 같은 해 2월24일 위 토지에 관하여 위 피고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다. 피고 1은 3 토지상에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2000년 10월경 제1토지상에 폭 8m, 연장 89.50m의 아스팔트포장도로를 개설하고 위 토지와 이 사건 제2토지의 경계선상에 길이 89.50m, 높이 2~6m의 콘크리트옹벽을 설치하여 같은 해 11월3일 피고 김해시에게 포장부분과 옹벽을 기부채납하였다. 원고는 2001년 3월경 1, 2 토지에 대한 저당권을 실행하기 위하여 임의경매를 신청하였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을 거듭한 끝에 같은 해 8월30일 원고가 위 임의경매신청을 취하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 1, 2를 상대로 하여 저당권 침해 및 지상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원심은 저당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은 인정하였으나 지상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은 인정하지 않았고, 대법원도 원심판결에 대한 원고와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이유의 요지 가. 금융기관이 대출금 채무의 담보를 위하여 채무자 또는 물상보증인 소유의 토지에 저당권을 취득함과 아울러 그 토지에 지료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지상권을 취득하면서 채무자 등으로 하여금 그 토지를 계속하여 점유, 사용토록 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해 지상권은 저당권이 실행될 때까지 제3자가 용익권을 취득하거나 목적 토지의 담보가치를 하락시키는 침해행위를 하는 것을 배제함으로써 저당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확보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고, 그 경우 지상권의 목적 토지를 점유·사용함으로써 임료 상당의 이익이나 기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그 목적 토지의 소유자 또는 제3자가 저당권 및 지상권의 목적 토지를 점유, 사용한다는 사정만으로는 금융기관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 나. 저당부동산에 대한 소유자 또는 제3자의 점유가 저당부동산의 본래의 용법에 따른 사용·수익의 범위를 초과하여 그 교환가치를 감소시키거나, 점유자에게 저당권의 실현을 방해하기 위하여 점유를 개시하였다는 점이 인정되는 등, 그 점유로 인하여 정상적인 점유가 있는 경우의 경락가격과 비교하여 그 가격이 하락하거나 경매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등 저당권의 실현이 곤란하게 될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저당권의 침해가 인정될 수 있다. Ⅱ. 評釋 1.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저당권과 그 저당목적물의 담보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지상권이 성립한 후에 저당목적물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저당권 침해를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은 인정하면서 지상권 침해를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은 인정하지 않았다. 종래 저당권에 기한 방해배제를 인정하기 위하여는 저당권 실현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주장되기도 하였으나 대상판결은 大判 2005. 4.29, 2005다3243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목적이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저당부동산의 본래의 용법에 따른 사용·수익의 범위를 초과하여 그 교환가치를 감소시킨 경우에도 저당권의 침해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大判 2006. 1.27, 2003다58454도 같은 취지로 보인다. 이 사건에서 피고들에게 저당권 실현 방해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대상 판결은 이를 명백히 재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우선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지상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부정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고자 한다. 2. 판례의 동향 大決 2004. 3.29, 2003마1753은 토지에 관하여 저당권을 취득함과 아울러 그 저당권의 담보가치를 확보하기 위하여 지상권을 취득하는 경우, 지상권자로서는 제3자에 대하여 목적 토지 위에 건물을 축조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하였고 이 판결 이후에 선고된 大判 2008. 2.15, 2005다47205도 같은 취지이다. 이는 저당목적물의 담보가치를 확보하기 위하여 설정된 지상권도 유효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3. 판례에 대한 의문 그런데 과연 저당목적물의 담보가치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지상권을 설정하는 것(이를 병존지상권 또는 담보지상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가능한가? 지상권은 타인의 토지에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토지를 사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물권이다(민법 279조). 따라서 이처럼 지상권의 대상인 토지 위에 지상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지상권의 본질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도 건축물(Bauwerk)을 소유한다는 것은 지상권(世襲建築權, Erbaurecht)의 본질적이고 강행법적인 내용이므로 건축물이 아닌 것을 위한 지상권은 성립할 수 없고, 건축물의 건축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지상권의 설정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은 불능으로 된다고 한다(MunchKomm/von Oefele, 5. Aufl., ErbbauVO §1 Rdnr. 8; Staudinger/Ring, Bearbeitung 1994, §1 ErbbauVO Rdnr. 2). 그러므로 지상물을 소유하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저당목적물의 담보가치를 확보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상권은 민법이 예정하고 있는 지상권에는 해당하지 않으므로 인정될 수 없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말로 한다면 위와 같은 내용의 지상권은 物權法定主義(민법 제185조)에 어긋난다. 법률이 인정하는 물권이라도 법률과는 다른 내용의 물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도 물권법정주의의 한 내용인 것이다. 大判 2009. 3.26, 2009다228, 235는 소유권의 핵심적 권능에 속하는 사용·수익의 권능이 소유자에 의하여 대세적으로 유효하게 포기될 수 있다고 하면, 이는 결국 처분권능만이 남는 민법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유형의 소유권을 창출하는 것으로서, 물권법의 체계를 현저히 교란하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저당권의 담보가치만을 확보하기 위한 지상권을 인정한다면 이는 사용권은 없고 다만 방해배제만을 청구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지상권으로서 우리 민법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이처럼 저당목적물의 담보가치를 확보하기 위하여 지상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지상권 설정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는 저당권의 담보가치 확보인데 반하여 겉으로 드러난 계약 내용이나 그에 따른 지상권의 등기는 지상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현실로 토지사용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경솔히 허위표시라고 볼 것은 아니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지상권설정등기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신청서에 지상권 설정의 목적을 기재해야 하는데(부동산등기법 제136조), 이 때에는 소유의 대상인 공작물 또는 수목을 기재해야 하고 등기부에도 그러한 목적이 기재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저당목적물의 담보가치 확보를 목적으로 하면서 신청서에는 공작물 또는 수목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기재하는 것이 허위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종래 저당권의 담보가치를 확보하기 위하여 지상권을 설정하였던 것은 저당권 자체에 기하여 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 大判 2005. 4.29, 2005다3243이나 2006. 1.27, 2003다58454는 저당권 그 자체에 기하여 방해배제를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으므로 실제로도 저당권의 담보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지상권을 인정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4. 일본의 倂用賃借權 논의 이 문제에 관하여는 일본의 병용임차권에 관한 논의가 참고가 될 수 있다. 2003년 개정 전의 일본 민법 395조는 단기임대차는 저당권의 등기 후에 등기되었더라도 저당권에 대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규정을 악용하여 저당권의 실행을 방해하기 위하여 단기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저당권자는 저당권의 설정과 함께 저당권자를 예약권리자로 하여 채무불이행이 있으면 예약완결권을 행사하거나 또는 이를 정지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기한 임차권설정청구권 가등기를 한 다음 나중에 임차권의 본등기를 함으로써 사후에 설정된 단기임차권을 배제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日最判 1989(平元) 6.5.(民集 43-6-355)는 이러한 경우 예약완결권을 행사하여 임차권의 본등기를 마치더라도, 임차권으로서의 실체를 가지지 않는 이상 대항요건을 구비한 후순위의 단기임차권을 배제하는 효력을 인정할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있었는데 비판하는 견해에서는 저당권 자체에 기하여 방해배제를 청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명백하지 않은 이상, 병용임차권에 의한 단기임차권의 배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이를 긍정하는 견해에서는 위와 같은 병용임차권의 설정은 탈법행위이거나 허위표시로서 무효라고 하면서, 저당권의 보호는 저당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인정하는 방법에 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最判(大) 1999(平成 11). 11.24.(民集 53-8-1899) 및 그 후의 판례가 종래의 판례를 변경하여 저당권에 기한 방해배제를 인정함으로써 병용임차권에 관한 논의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03년 개정 일본 민법은 위와 같은 단기임대차 제도 자체를 폐지하여 버렸다. 5. 이 사건의 경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당해 지상권은 저당권이 실행될 때까지 제3자가 용익권을 취득하거나 목적 토지의 담보가치를 하락시키는 침해행위를 하는 것을 배제함으로써 저당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확보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고 지상권의 목적 토지를 점유, 사용함으로써 임료 상당의 이익이나 기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상권 침해를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하였다. 이는 이 사건 지상권의 내용에는 토지를 점유·사용하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방해배제청구권만을 가진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상권은 지상물의 소유를 위하여 토지를 사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므로 이는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지상권과는 다른 내용의 지상권을 창설하는 결과가 된다. 大判 1974. 11.12, 74다1150 판결은 지상권이 설정된 대지의 소유자는 그 소유권 행사에 제한을 받아 그 대지를 사용·수익할 수 없으므로 불법점유자에 대하여 차임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토지 소유자와 지상권자 모두 불법점유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될 것이다. 위 판결에서도 지상권자가 은행이었던 점에 비추어 마찬가지로 저당목적물의 담보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지상권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사견으로서도 이 사건에서 원고가 지상권 침해를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하지만, 그 이유는 대법원과는 달리 원고의 지상권 취득 자체가 무효라고 하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6. 결론 종래 판례는 법이 인정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물권을 쉽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판례는 당사자가 주로 채권담보의 목적으로 전세권을 설정하였고, 그 설정과 동시에 목적물을 인도하지 아니한 경우라 하더라도 장차 전세권자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전세권의 효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하고(大判 1995. 2.10, 94다18508), 등기부상 채권자는 원래의 채권자 아닌 제3자로, 채무자는 실제의 채권자로 한 근저당권 설정등기도 유효하다고 한다(大判(全) 2001. 3.15, 99다48948). 그러나 물권은 제3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효력을 가지고 있고, 등기에 의한 공시도 이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므로 당사자의 편의에 따라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목적으로 물권을 변칙적으로 설정하는 것을 만연히 허용하여서는 안 된다. 이것이 물권법정주의의 정신이기도 하다.
201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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