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낙태·단종(불임) 수술을 받았던 한센인들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날 판결은 현재 대법원(4건)과 서울중앙지법(1건)에 계류돼 있는 총 5건의 한센인 526명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5일 강모씨 등 한센인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4다230535)에서 "낙태 피해자 10명에게 4000만원, 단종 피해자 9명에게 3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국가 소속 의사들이 한센인에 대해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법률상 근거가 없다"며 "한센병 예방이라는 보건정책적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수단의 적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한센인들이 동의했더라도 한센병이 유전되는지, 자녀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치료가 가능한지 등에 관해 충분히 설명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승낙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정부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센인피해사건법에 의해 피해자 결정을 받은 한센인들은 그 결정을 받기까지 객관적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며 "국가가 입법조치를 통해 피해보상을 해주길 기대했으나 국가가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가의 강제 낙태 등의 조치는 한센인들의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자기결정권을 제한한 행위로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판결"이라며 "국가는 그에 대한 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점을 밝힌 첫 대법원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강씨 등 19명은 국가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 수용을 위해 운영해 온 국립소록도병원, 익산병원(소생원) 등 병원에 1950~1970년대에 입원했다. 이들 모두 병원에서 강제로 낙태나 단종 수술을 받았다. 2007년 한센인피해사건법이 제정됨에 따라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됐다. 위원회는 강씨 등 19명을 법에서 정한 피해자로 인정했다. 이에 강씨 등은 2013년 8월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강씨 등 19명에게 3000만~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