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거래를 한 경우라도 상대방이 선의이고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거래 상대방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기존 대법원 판결은 이 경우 거래 상대방이 보호 받기 위해선 '선의·무과실'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는데, 판례를 변경해 거래 상대방 보호 범위를 넓힌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8일 A사가 B사를 상대로 낸 보증채무금소송(2015다45451)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사는 B사 대표이사 C씨의 소개로 D사에 30억원을 대여해주면서 'D사가 30억원을 갚지 못하면 B사가 대신 갚겠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받았다. B사 이사회 규정은 '보증행위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한다'고 규정했는데, 대표이사인 C씨는 당시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 이후 D사가 돈을 갚지 않자 A사는 B사에 "C대표이사가 작성한 확인서를 토대로 B사는 보증인으로서 30억원을 변제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B사는 "회사 정관상 확인서 작성을 위해서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C씨가 이를 거치지 않았다"며 "확인서 작성은 효력이 없다"고 맞섰다.
상고심에서는 대표이사가 이처럼 이사회 결의 사항을 거치지 않고 거래를 한 경우 거래 상대방이 선의이고 과실이 없는 경우에만 보호했던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상법 제209조는 '대표사원의 권한에 대한 제한은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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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대표이사가 회사 정관 등 내부 규정에 위반해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는 물론, 상법에 따라 요구되는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에도 선의인 거래 상대방은 보호된다"며 "다만 거래 상대방에게 중과실이 있다면 신뢰를 보호할 가치가 없으므로 거래행위는 무효"라고 밝혔다.
이어 "이사회 결의는 회사 내부적 의사결정 절차에 불과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 상대방으로서는 회사 대표가 거래에 필요한 회사 내부절차를 거쳤을 것으로 신뢰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며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할 대외적 거래행위에 관해 이를 거치지 않은 경우 거래 상대방인 제3자가 보호받기 위해서는, 선의 이외에 무과실이 필요하다고 본 기존 대법원 판결들을 모두 변경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사가 C씨로부터 확인서를 작성받을 때, B사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음을 알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A사가 이를 알지 못한 데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박상옥·민유숙·김상환·노태악 대법관은 "다수의견과 같이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는 기준을 '선의·무과실'에서 '선의·무중과실'로 변경하는 것은 거래안전 보호만을 중시해 회사법의 다른 보호가치를 도외시하는 것"이라며 "결국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결과가 돼 개별 사건을 해결할 때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타당성을 기하기 어렵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들은 또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거래 상대방인 A사의 악의 또는 과실을 인정할 만한 사정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앞서 1,2심은 "A사가 C씨로부터 확인서를 작성받을 당시, B사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문은 대법원 홈페이지(https://www.scourt.go.kr/sjudge/1613634580986_164940.pdf)에서도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