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자수했거나 또는 자발적인 의사로 수사관과 동행하는 경우가 아니면 임의동행으로 볼 수 없다는 첫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온 '임의동행'의 적법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수사기관의 피의자에 대한 인신구속의 절차적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임의동행과 관련한 수사기관의 관행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손지열 대법관)는 6일 도주혐의로 기소된 박모(28)씨에 대한 상고심(☞2005도6810) 선고공판에서 검사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관이 수사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형식으로 피의자를 수사관서 등에 동행하는 것은 상대방의 신체의 자유가 현실적으로 제한돼 실질적으로 체포와 유사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도 영장을 요하지 않고 그 밖에 강제성을 띤 동행을 억제할 방법도 없어서 제도적으로는 물론 현실적으로 임의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아직 정식의 체포·구속단계 이전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헌법 및 형사소송법이 체포·구속된 피의자에게 부여하는 각종의 권리보장 장치가 제공되지 않는 등 형사소송법의 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의자가 자수했거나 오로지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수사관서 등에의 동행이 이뤄졌음이 객관적인 사정에 의해 명백히 입증되고, 수사관이 동행에 앞서 피의자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등의 사정에 의해 동행한 피의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동행과정에서 이탈하거나 동행장소로부터 퇴거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그 적법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2004년9월 절도혐의로 화천경찰서에 체포됐다가 경찰이 입감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경찰서를 빠져나간 혐의로 기소됐었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박씨에 대한 경찰의 임의동행이 강제연행에 해당하므로 형법 제145조1항 도주죄의 구성요건인 '법률에 의하여 체포 또는 구금된 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