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돈을 되찾는 과정에서 겁을 준 행위를 공갈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A씨는 2009년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벌어들인 40억여원을 금고에 보관하던 중 금고를 통째로 도둑맞았다. A씨는 정모(33)씨에게 '조직폭력배 신모씨를 찾아가 돈을 되찾아오라'고 지시했고, 정씨는 신씨와 함께 돈을 훔쳐간 김모씨를 찾아내 신씨의 몸에 있는 문신을 보여주며 '거짓말해서 열받게 하지 말고 하루종일 나랑 같이 있고 싶으면 거짓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실대로 돈이 어딨는지 얘기해라'는 말로 겁을 줘 돈을 되찾은 혐의(공갈)로 기소됐다.
1,2심은 금전은 일반 물건과는 달리 고도의 유통성을 가지므로 훔친 순간 타인의 소유가 돼 피해자의 물건이 아니므로 공갈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민법도 같은 취지로 제250조 단서에서 도둑맞은 특정 금전을 반환청구할 수 없는 특칙을 두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금전이 고도의 유통성을 지니지만, 그 돈이 다른 돈과 섞이지 않고 피해자의 돈이 명백하다는 정황이 뒷받침되는 경우에는 도둑맞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 돈이 '타인의 물건'이 아닌 자기 물건이기 때문에 공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절도범을 협박해 훔친 돈을 돌려받은 혐의(폭처법상 공동공갈)로 기소된 정씨에 대한 상고심(2012도6157)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취지로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갈죄의 대상이 되는 재물은 타인의 재물을 의미하므로, 사람을 공갈해 자기의 재물의 교부를 받는 경우에는 공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절도범이 절취한 금전만 소지하고 있는 경우처럼 구체적으로 절취된 금전을 특정할 수 있어서 객관적으로 다른 금전과 구분이 명백한 예외적인 경우에는 절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그 금전이 절도범의 재물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정씨와 신모씨가 절도범 김씨에게 겁을 주고 되찾은 금전은 바로 절취 대상인 금전이라고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어 객관적으로 김씨의 다른 재산과 구분됨이 명백하므로, 절취 당시 금전 소유자인 A씨의 사주를 받은 정씨와 신씨가 김씨를 공갈해 돈을 받아냈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이 된 행위로 별도의 범죄가 성립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타인의 재물을 갈취한 행위로써 공갈죄가 성립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