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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권 양도와 부당행위계산부인 적용문제
1. 서론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 간에 영업권을 양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영업권의 가격을 얼마로 할 것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당사자 간에 합의한 금액이라고 하더라도 과세관청의 입장에서는 시가가 불분명한 경우 그 가격이 적정한지 여부를 조사할 것이다. 조사 결과 그 가격이 과세관청이 계산한 것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으면 “자산을 시가보다 높은 가액으로 매입하거나, 시가보다 낮은 가액으로 양도한 경우”(법인세법시행령 제88조 제1항)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과세관청은 거래가격을 부인하고 법인세를 추징한다. 한편 영업권 양도거래는 시가로 인정할 만한 “해당 거래와 유사한 상황에서 해당 법인이 특수관계자 외의 불특정다수인과 계속적으로 거래한 가격 또는 특수관계자가 아닌 제3자간에 일반적으로 거래된 가격”(법인세법시행령 제89조 제1항)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므로 과세관청과 사이에 마찰이 자주 발생하는 분야이다. 대상판결은 자산보다 부채가 많고, 거래 당시에도 순손실이 나는 기업의 영업권 평가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으로서 선례적 가치가 있다. 2. 사실관계 및 판결요지 언론사가 계열사로부터 잡지사의 영업권을 9억원에 양수한 계약이 문제되었다. 대법원이 인정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① 이 잡지는 10여년 전에 창간된 이래 매주 3만부 이상 발간되고 유효 독자비율이 80%에 이르러 다른 주간지에 비해 우월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② 원고가 영업권을 인수한 이후 계속하여 당기순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③ 영업권 평가를 내부손익자료에 기초한 관리회계방식에 따랐다고 하여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④ 만일 장부상의 순자산가치만을 기준으로 청산대금을 산정했더라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관계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하였다는 지적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 ⑤ 법원이 시행한 감정결과상 감정가액도 이 사건 거래가액을 상회한다. 이러한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원고가 상표권이 포함된 이 사건 영업권의 가치를 9억원으로 산정하여 인수한 것은 고가매입이라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은 상속세및증여세법상의 영업권 평가액이 0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거래대상이 경제주간지로서 매주 3만부 이상 발간되는 경쟁력 있는 영업권이라는 특수성, 거래시 회사내부손익자료를 바탕으로 영업권 가액을 산정한 경위, 영업권 인수 이후 당기순이익을 달성하는 실제 영업실적, 재판과정에서 의뢰한 영업권에 대한 감정결과가 거래가액보다 높게 평가되는 점을 종합하여 영업권을 9억원으로 한 거래가 경제적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3. 평석 가. 영업권의 의미와 평가방법 영업권은 “그 기업의 전통, 사회적 신용, 그 입지조건, 특수한 제조기술 또는 특수거래관계의 존재 등을 비롯하여 제조판매의 독점성 등으로 동종의 사업을 영위하는 다른 기업이 올리는 수익보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초과수익력이라는 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말한다”(대법원 1985. 4.23. 선고 84누281 판결 등). 따라서 영업권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실제 거래도 빈번하다. 통상 영업권의 평가는 회계법인이 한다. 이 사건에서도 1심 법원의 감정촉탁에 따라 회계법인이 잡지사에 대한 영업권을 평가하였고, 그 결과 영업권 가액은 12억원이었다. 영업권 평가방법은 일반적으로 초과이익환원법과 현금흐름할인법이 많이 이용된다. 초과이익환원법은 장래의 초과이익을 자본화한 현재가치로 영업권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이고, 현금흐름할인법은 기업의 장래 영업활동에 의한 추정현금흐름을 일정한 할인율을 적용하여 계산한 현재가치로 전체 기업가치를 산정한 다음 여기에서 당해 기업 순자산의 공정가치를 차감하여 영업권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이다. 이 사건에서는 초과이익환원법이 적용되었다. 즉 영업권의 가치=[예상평균순이익-(순자산×정상이익률)]÷초과이익환원율의 공식이다. 판례도 초과이익환원법 적용이 적법하다는 전제하에,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합병하여 그 영업상 기능 내지 특성을 흡수함으로써 합병 전의 통상수익보다 높은 초과수익을 갖게 된다면 합병 후 높은 수익률을 가져올 수 있는 피흡수회사의 무형적 가치는 영업권이라 보아 무방하다”(대법원 1986. 2.11. 선고 85누592 판결)고 함으로써 영업권 평가시점 이후에 발생할 수익을 초과수익력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 부당행위계산부인의 법리와 실무 부당행위계산부인이란 “법인이 특수관계에 있는 자와의 거래에 있어 정상적인 경제인의 합리적인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법인세법시행령에서 정한 여러 거래형태를 빙자하여 남용함으로써 조세부담을 부당하게 회피하거나 경감시켰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과세권자가 이를 부인하고 법령에 정하는 방법에 의하여 객관적이고 타당하다고 보이는 소득이 있는 것으로 의제하는 제도”이다. 이는 경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거래형식을 취함으로 인하여 경제적 합리성을 무시하였다고 인정될 때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실무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은 경제적 합리성 유무에 대한 판단인데, 판례는 “거래행위의 여러 사정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여 과연 그 거래행위가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상관행에 비추어 경제적 합리성을 결한 비정상적인 것인지의 여부에 따라 판단하되 비특수관계자 간의 거래가격, 거래 당시의 특별한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7. 12.13. 선고 2005두14257 판결 등). 이러한 법리는 확립된 판례의 입장이고, 실제 소송에서는 구체적 사건의 특수성에 대한 해명과 그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합리성이 없다는 과세관청의 주장이 교차된다. 다. 시가가 불분명한 경우의 처리 특수관계자 간에 거래가 발생하였으나 시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법인세법령상 시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감정평가법인이 감정한 가액에 의하고, 그마저도 없는 경우에는 상증세법에 의한 평가가액에 의한다. 과세관청은 거래가액을 감정가액이나 평가가액과 비교하여 차이가 발생하면 부당행위계산부인제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령에서 시가를 산정하는 방법을 규정한다고 하여 이를 부당행위계산부인과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부당행위계산부인은 경제적 합리성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하는 바, 이에 대한 판단 없이 평가가액과 거래가액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만으로 문제 삼는 것은 부당행위계산부인제도를 둔 취지와 맞지 않고 확립된 판례의 입장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과세관청의 이러한 논리는 시가는 어떤 특정한 절대수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오해한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과세관청은 과세처분 당시에는 감정가액이 존재하지 않았고 상증세법으로 영업권을 평가하면 0원으로 평가되는데 당사자들이 영업권을 9억원으로 평가하여 거래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과세관청은 처분 당시를 기준으로 당기 순손실이 수년간 발생하고 있었고, 자산보다 부채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하였으나 이러한 판단은 영업권의 특성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즉 과세관청으로서는 이 사건 거래가 경제적 합리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영업권 인수 이후의 사정까지 고려하여 종합적인 검토를 했어야 했음에도 평가시점을 기준으로 한 검토에 그친 잘못이 있다. 라. 당기순손실 발생과 영업권 가치 영업권의 본질이 다른 기업이 올리는 수익보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초과수익력이라는 무형의 재산적 가치라면 점을 고려하면 수년간 당기순손실을 본다고 하여 곧바로 영업권 가치가 없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회사는 경제사정의 급격한 변화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특정기간에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장래 그 회사의 전망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시점을 기준으로 나타난 결과만으로 영업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영업권의 특성에도 맞지 않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 설시한 바와 같은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영업권을 평가해야 할 것이고 거래 이후 실제로 발생한 영업실적도 고려될 수 있다. 이러한 평가를 할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외부 감정기관을 활용해야 할 것이지 상증법상의 평가가액과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바로 과세할 것은 아니다. 마. 다른 법령에 대한 종합적 고려 부당행위계산부인의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조세법적인 측면 이외에 공정거래법 등 다른 법령의 측면에서 검토해 볼 필요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이 특정한 거래를 하면 그 거래효과는 특정한 법률이나 특정한 정부기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과세관청이 고가매입이라고 보는 경우에도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기관은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국가기관간에 특정 기관의 평가가액을 다른 기관이 존중해 준다는 법령상 근거가 없는 이상 거래가액 산정에 대한 위험을 회사에 부담시키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대상판결도 과세관청 주장대로 거래하였더라면 오히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특수관계자를 부당하게 지원하였다는 제재를 받을 위험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잡지사를 영업권 0원으로 양수하는 경우에 거래의 공정성이 의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사건에서 과세관청은 당해 거래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지 못하고 과세처분이라는 일면에서 본 잘못이 있다. 바. 소송시 유의점 처분 당시에는 시가로 볼 만한 거래가액이나 감정가액이 없는 경우라도 소송과정에서 이러한 가격을 찾을 수 있다. 판례는 소송 중에 소급 감정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감정신청을 통하여 새로운 가액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감정신청을 할 경우에는 대상판결에서 설시한 바와 같은 제반 사정을 주장하여 이를 감정결과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최근 판례를 소개한다. 조세를 부과함에 있어 과세관청이 시가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충적 평가방법에 의하여 평가하여 과세처분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과세처분 취소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시까지 시가가 입증된 때에는, 그 시가에 의한 정당한 세액을 산출한 다음 과세처분의 세액이 정당한 세액을 초과하는지 여부에 따라 과세처분의 위법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여기에서 시가라 함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평가한 가액도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의 감정가격도 시가로 볼 수 있고, 그 가액이 소급감정에 의한 것이라 하여도 달라지지 않는다(대법원 2008. 2.1. 선고 2004두1834 판결). 4. 결론 대상판결은 영업권이 무형의 재산적 가치라는 성질을 고려하여 부당행위계산부인제도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과 이 경우 부당행위계산부인에서는 거래 이후의 사정까지 고려하여 경제적 합리성이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판결의 이유와 결론에 모두 찬성한다. 법치주의 확립 및 납세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타당한 판결이라 생각한다.
2009-11-02
경영판단의 원칙상 배임죄의 고의와 그 제한
Ⅰ. 판결요지 기업의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하고 있어서 경영자가 아무런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없이 선의에 기하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바…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은 유지돼야 할 것이고,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Ⅱ. 경영판단의 원칙의 인정 근거(이상돈, 경영실패와 경영진의 형사책임, 법조, 2003년 5월호 88쪽~92쪽 참조)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기업의 경영자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이해관계없이, 그리고 성실히 회사의 이익에 합치한다는 믿음을 갖고 회사의 경영에 관한 판단을 한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회사에 대해 손해를 초래했더라도 그러한 판단을 한 기업의 경영자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경영판단 원칙의 인정 근거로는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있지만 결국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법적 판단과 기업 경영자의 경영판단은 상이하다는 데 있다. 우선 경영판단은 합리적 경영과 비합리적 경영의 구분이 법적 판단에서의 합법과 불법의 차이만큼 뚜렷하지 않다. 즉, 아무리 충실하게 정보를 수집해 경영에 관한 판단을 내리더라도 실패할 수 있는 반면, 부실한 경영판단도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평균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기업 경영자가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더라도 그것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경우 그 기업 경영자의 결정을 비합리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창의성과 도전정신은 경영인의 중요한 덕목으로 권장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법적 판단은 평균적인 행위자의 입장에서 합법과 불법의 판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영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은 자칫 경영 성패에 따라 그 결론을 달리 할 위험을 안고 있다. 다음으로 경영판단에는 ‘위험감수원칙’이 적용되는 데에 반해 법적 판단에는 ‘위험회피원칙’이 적용된다는 점 역시 경영판단의 중요한 특성이다. 현대사회에서 법은 개인들에게 법익침해의 위험을 회피하도록 요구한다. 위험을 창출하거나 증대시키는 것 혹은 위험을 방치하는 것은 법적 책임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경영판단은 장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에서는 위험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고수익, 고위험’이라는 말처럼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감수할 것까지 요구된다. Ⅲ. 업무상 배임죄의 가벌성 확대와 제한의 필요성 1. 업무상 배임죄의 가벌성 확대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기업의 경영자들이 업무상 배임의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해야 한다. 그런데 판례는 업무상 배임의 구성요건을 완화해 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업무상 배임죄의 처벌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이 같은 판례에 따를 때 기업 경영자들은 경영상의 결정이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가. 임무위배 개념의 불명확성과 손해개념의 확장 현재 통설 및 판례는 신의칙에 의한 사실상의 신임관계를 위배하는 경우까지 업무상 배임죄의 임무위배 행위에 포함시키고 있고, 이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의 신임관계라는 개념은 그 한계를 명백히 하는 것이 쉽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태도에 의할 경우 법률관계가 신속하게 변화하고 그 내용이 복잡다기한 상거래 분야에서는 기업의 경영자로 하여금 어떠한 행위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인지 예측할 수 없게 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한편, 형법 제355조 제2항은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손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하여 손해개념을 확장하면서 자금 유동성의 장애까지 손해로 파악하고 있다(대판 1989. 11. 28. 선고 89도1309, 대판 2001. 11. 13. 선고 2001도3531). 그런데 경영상의 결정은 장래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에 항상 손해 발생의 위험이 수반된다. 따라서 손해발생의 위험까지 업무상 배임죄의 손해개념에 포함시키게 되면 결국 거의 모든 경영상의 결정이 업무상 배임죄의 적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대법원에 의한 고의의 인정 범위 확대 고의란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를 인식하고, 구성요건을 실현하려는 의사이다. 그리고 고의에는 확정적 고의뿐만 아니라 미필적 고의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업무상 배임의 경우에도,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손해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고 경영상의 결정을 내린 경우에는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게 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최근 “배임의 범의는 배임행위의 결과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염려가 있다는 인식과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의 이득을 얻는다는 인식이 있으면 족하다”고 판시해 결과발생의 가능성 혹은 위험에 대한 인식만 있으면 고의가 인정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판 2004. 7. 9. 선고 2004도810). 대법원의 이러한 태도는 고의의 두 가지 요소인 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 중 의지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인식있는 과실을 모두 미필적 고의에 포함시키게 되고, 결국 미필적 고의의 인정범위를 기존의 판례보다 더욱 확대한 것이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따를 경우 기업경영인들에게는 사실상 자동적으로 업무상 배임의 고의가 인정될 수밖에 없다. 2. 업무상 배임의 처벌범위 제한의 필요성 위에서 본 것처럼 현재의 대법원의 태도에 따를 경우, 기업의 경영인은 업무상 배임죄의 구성요건요소 중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본인의 재산상 손해’, ‘고의’라는 요건을 이미 충족한 상태에서 기업 경영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임무위배행위’라는 개념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경영인의 경영상의 실패에 대한 처벌이 강력하게 요구될 경우, 법원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임무위배’가 손쉽게 인정될 위험이 있다. 결국 기업 경영인의 경영판단에 업무상 배임죄에 관한 대법원의 태도를 그대로 관철시킨다면, 기업 경영인의 경우 업무상 배임죄의 처벌범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게 된다. 게다가 기업 경영인에 대해 업무상 배임이 문제되는 것은 주로 그의 경영이 실패했을 경우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영상 결정의 성공여부에 따라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여부가 달라질 우려가 있다. 이는 사실상 기업 경영인에게 책임주의에 반하는 결과책임을 묻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업무상 배임죄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는 기업 경영인의 경영실패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때에는 어떻게든 수정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을 고려할 때 기업 경영인의 경영실패의 책임은 먼저 사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고, 형법에 의한 처벌은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 3. 미필적 고의와 경영상 ‘위험감수원칙’의 충돌 이렇게 기업 경영에 있어서 업무상 배임의 처벌범위가 극도로 확대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미필적 고의와 경영상 위험감수의 요구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즉, 미필적 고의에 대해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 외에 의지적 요소로서 결과발생의 위험을 감수할 것까지 요하는 통설의 견해에 따르더라도 기업 경영자에게는 대부분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영에는 항상 위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자들 중에서 자신의 경영상 결정으로 회사가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경영자는 이윤추구를 위해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험의 감수는 자유경쟁과 이윤추구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 경영자들에게는 당연히 요구되는 자세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감수’는 형법적으로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를 의미하고, 이는 업무상 배임이 문제된 기업 경영인에게 대부분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게 된다. 왜냐하면 형법은 법익침해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경영인에게는 위험을 감수하라는 경영상의 요구와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는 법적 요구가 충돌하게 된다. Ⅳ. 경영판단 원칙에 의한 미필적 고의의 배제 결국 경영상 판단에 적용되는 ‘위험감수원칙’과 미필적 고의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둘 중의 어느 한쪽을 제한해야만 한다. 그런데 만약 기업 경영에서 미필적 고의의 개념을 관철한다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업 경영인들에게 자동적으로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기업 경영자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적게는 한 기업의 몰락, 크게는 국가경제의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에, 합리적인 경영판단에 대해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를 배제하는 것은 형법의 보충성에도 부합하며업무상 배임죄의 처벌 범위 확대에 제동을 거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경영인에게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미필적 고의 이상의 의도적 고의가 필요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법원 역시 본 판결에서 “이러한 경우에까지 고의에 관한 해석기준을 완화해 업무상 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볼 때도 영업이익의 원천인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돼 당해 기업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하여 미필적 고의를 경영판단에까지 관철하는 경우 발생하는 위와 같은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대상 판결에서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진 경영판단에 대해서 업무상 배임의 고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의도적 고의가 필요하다고 판시하면서 미필적 고의를 배제하였다. 그리고 그 요건으로 ‘첫째, 경영자가 개인적 이익을 취할 의도가 없을 것. 둘째,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 셋째, 선의에 기하여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Ⅴ. 맺음말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해 그동안 상법학계에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대법원 역시 2002. 6. 14. 선고 2001다52407판결에서 이 원칙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상법학계와는 달리 형법학계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대법원은 본 판결에서 최초로 형사법에서도 경영판단 원칙을 정면으로 인정하면서 위 원칙의 도입의 필요성 및 그 요건 등을 상세하게 설시하고 있고,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 판결을 출발점으로 해서 앞으로 형법학에서도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2006-06-19
리스물건의 소유권 귀속
1. 사실관계 가. 시설대여(리스)회사인 A리스 주식회사(이하 ‘A리스’라고 한다, 1999. 11. 6. 원고 회사에 합병됨)는 소외 B자동차 주식회사로부터 이 사건 자동차를 구매하여 1995. 8. 25. 소외 주식회사 해당(이하 ‘소외 회사’라고 한다)과 사이에 이 사건 자동차를 소외 회사에 대여하는 내용의 리스계약을 체결하였다. 나. A리스와 소외 회사는 위 1995. 8. 25.자 계약체결시 대여시설이용자인 소외 회사는 자기의 책임과 비용으로 관련 법령에 의거 자동차를 등록하고, 관할관청의 검사 등 행정지시를 철저히 이행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여 자동차가 항상 충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지ㆍ관리하여야 하고, 위 자동차에 대한 소유권은 그 등록명의가 소외 회사일 경우에도 A리스에게 있다고 약정하였다. 다. A리스는 1995. 8. 31. 소유자 명의를 소외 회사로 하여 이 사건자동차에 관한 등록을 하였다. 라. 한편, 피고는 소외 회사에 대한 부산지방법원 98카합4878호로 자동차가압류결정을 받아 그결정정본에 기하여 1998. 5. 19. 이 사건 자동차에 관하여 가압류집행을 하였다. 2. 대법원 판례의 요지 특정 물건의 소유권은 시설대여회사에게 남겨두고 시설이용자에게 일정 기간 대여하는 방식을 통하여 담보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시설대여(리스)의 특성과 시설대여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구 시설대여업법(1997. 8. 28. 법률 제5374호 여신전문금융업법 부칙 제2조로 폐지)의 입법취지를 염두에 두고 같은 법 제13조의2 제1항, 제13조의3 제1항, 제13조의4, 자동차관리법 제6조, 제8조 제1항, 자동차등록령 제18조의 각 조항들을 종합해 보면, 차량의 시설대여의 경우에도 대여 차량의 소유권은 시설대여회사에 유보돼 있음을 전제로 하고, 다만 현실적경제적 필요에 따라 차량의 유지관리에 관한 각종 행정상의 의무와 사고발생시의 손해배상책임은 시설대여이용자로 하여금 부담하도록 하면서 그 편의를 위해 차량등록을 소유자인 시설대여회사 아닌 시설대여이용자 명의로 할 수 있도록 자동차관리법에 대한 특례규정을 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고, 따라서 구 시설대여업법(1997. 8. 28. 법률 제5374호 여신전문금융업법 부칙 제2조로 폐지) 제13조의2에 의하여 시설대여이용자의 명의로 등록된 차량에 대한 소유권은 대내적으로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시설대여회사에게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3. 종전의 판례 가. 이 사건 원심판결 원심은, 구 시설대여업법 제13조의2 제1항(1998. 1. 1. 위 법률이 폐지되고 여신전문금융업법 제33조 제1항에 위조항과 같은 내용이 규정됨)은 시설대여회사가 차량의 시설대여 등을 하는 경우에는 자동차관리법의 규정에 불구하고, 대여시설이용자의 명의로 등록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를 같은 법 제13조의3 제1항, 자동차관리법 제8조 제1항, 제11조 제1항, 제12조 제1항과 종합하여 볼 때, 구 시설대여업법 제13조의2 제1항의 규정형식상 자동차관리법의 특정조항(원고 주장대로 한다면 적용이 배제돼야 할 자동차관리법 제6조)이 명시적으로 적시돼 있지 않은 점, 또한 위 규정은 위와 같은 등록방식을 허용하는 허용규정일 뿐 강제규정이 아닌 점, 앞서 본 약정 등 이 사건 자동차를 소외 회사 명의로 등록하게 된 경위, 등록명의를 신뢰한 자에 대한 거래의 안전보호 등을 고려하면, 자동차관리법상 차량의 등록은 그 관리의 목적과 사고발생시 손해배상책임문제 등을 원활히 해결하기 위해서 원칙적으로 그 소유자의 명의로 하도록 돼 있으나, 시설대여 등의 경우 비록 차량의 법적 소유권자는 시설대여회사이지만 실제 차량의 점유사용자는 대여시설 이용자이고, 또한 대여시설 이용자가 시설대여기간 동안 당사자가 돼 차량의 소유자에게 부과되는 검사 등 그 물건의 유지관리에 관한 각종 의무를 이행하거나 공과금 통지서의 수령 등에 있어 그 편의상 대여시설 이용자의 명의로 등록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예외적으로 구 시설대여업법 제13조의2 제1항과 같이 차량의 이용자의 명의로 신탁하여 등록할 수 있고, 이와 같은 경우 자동차관리법 제6조에 따라 차량에 대한 소유권은 등록명의자에게 있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며, 따라서 이 사건 자동차는 비록 원고와 소외 회사 사이의 내부관계에 있어서는 원고의 소유라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소외 회사의 소유라고 할 것이므로, 원고로서는 집행채권자로서 대외관계에 있는 피고에 대해 내부적인 소유권으로써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부산고등법원 2000. 6. 28. 선고2000나4159 판결). 나. 세무서가 체납처분후 수령한 배당금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판결 리스계약체결후 리스이용자를 소유자로 등록하고 리스회사는 근저당권을 설정하였고, 세무서가 동 리스물건을 경매해 경락대금에서 체납액을 우선 배당금으로 수령하자, 리스회사는 세무서를 상대로 소유권확인청구소송과 리스물건가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한 사안이다. 첫번째 소송(소유권확인소송)의 담당재판부는 등록원부상의 등록명의에도 불구하고 리스물건은 리스회사의 소유라 판시하고 소유권확인청구를 인용하였으나(광주지방법원 1988. 5. 25. 선고 88가합1177 판결), 두번째 소송(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의 담당재판부는 중기관리법제3조 제1항, 제2항과 자동차관리법 제4조 및 제5조 등록규정에 의거하여 중기 및 자동차의 적법한 소유권을 취득하려면 상기 법규에 따라 등록을 마쳐야 할 것인바, 리스회사가 비록 리스물건에 대한 소유권확인 승소판결을 받았더라도 소정의 절차에 따른 등록을 마치지 아니한 이상 소유권자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적법한 소유자임을 전제로 한 부당이득반환청구는 기각한다고 판시하였다(광주지방법원 1989. 11. 2. 선고 89가합3603 판결). 4. 판례 평석 가. 대상판결의 검토 대법원 판결은 금융리스의 물적 금융으로서의 특성을 고려한 판결로서, 여신전문금융업법 제33조 제1항의 입법취지, 리스물건의 경우 등록명의와 관계없이 리스회사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래의 관념인 점, 소유명의가 리스이용자에게 있음을 기화로 무단양도하는 경우에 있어서 리스회사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금융리스이용자가 리스물건을 제3자에게 임의로 매각하더라도 등기 및 등록에 대한 공신력은 인정되지 않고 등기 또는 등록의 대상이 되는 동산은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보아 선의취득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통설적 견해이므로, 제3자가 리스물건이 리스이용자 명의로 등록돼 있음을 신뢰하여 소유권이전등록을 하더라도 물건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는 없다고 본다. 또한 건설기계등록원부 및 건설기계등록증에 소유자가 리스이용자로 등록돼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고, 리스이용자의 명의로 등록된 사실 없이 제3자 명의로 최초 등록되었다 하더라도 등록의 공신력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마찬가지의 결론에 도달한다. 임의매각된 리스차량에 대한 회수방법으로는 소유권에 기한 반환청구, 인도단행가처분, 근저당권 실행을 통한 강제경매개시결정 및 인도명령, 원인무효인 제3자 명의 등록말소청구 등이 있다. 나. 운용리스의 소유권 귀속 금융리스의 경우 등록명의와 관계없이 대내외적 소유권은 리스회사에 귀속하나, 운용리스의 경우 소유권을 리스이용자의 명의로 등록한 경우에 대한 판례가 없어 이 또한 여신전문금융업법상의 시설대여에 포함되어 여신전문금융업법 제33조의 등록상의 특례가 적용된다는 견해와 민법상 임대차 규정이 적용된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검토하건대, 운용리스와 실질이 유사한 임대차(렌트카)의 경우 이용자 명의로 소유권 등록이 불가능하고 ‘허’자 번호판을 사용하므로 무단양도의 가능성이 없고 렌트회사의 물건에 대한 소유권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 실질이 유사한 운용리스와 임대차(렌트카) 사이의 소유권 귀속 측면에서의 형평성을 고려하여야 하는 점, 여전전문금융업법 제33조의 규정이 금융리스와 운용리스를 구별하고 있지 아니한 점, 운용리스의 경우 이용자 명의로 소유권 등록이 가능하여 무단양도의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리스회사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아니할 경우 리스회사는 소유권을 회복할 수 없게 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운용리스의 경우에도 여신전문금융업법 제33조의 특례를 적용하여 리스회사에게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본다. 다. 미등록 리스물건의 소유권 귀속 판례는 등기 또는 등록의 대상이 아닌 리스물건에 대한 선의취득이 인정됨을 전제로 하여, 고가의 기계로서 중소기업에서는 리스 내지 소유권유보부 할부매매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 상례인 점, 취득자가 중고기계전문취급상으로 이러한 실태를 잘 알고 있는 점, 시가의 1/5 정도의 가격으로 수차례 전매된 점, 원고는 매도인의 소유권에 대하여 동 물건의 설치경위 및 제작회사와 매도인간의 매매계약서, 영수증, 매매대금의 완납 여부 등을 제작회사에 조회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사할 의무가 있음에도 단순히 매매계약서만 확인하였으므로 매수인에게 과실이 있는 점을 이유로 선의취득을 부정하였다(서울고등법원 1990. 4. 13. 선고 89나44536 판결). 검토하건대, 여신전문금융업법 제33조의 특례규정은 등기 또는 등록의 대상이 아닌 리스물건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것이므로, 등기 또는 등록의 대상이 아닌 리스물건의 경우 선의취득이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2006-04-24
임용결격자 임용행위의 문제점에 관한 소고
Ⅰ. 對象判決의 要旨 1. 대법원 2003.5.16. 선고 2001다61012판결 공무원 연금법에 의한 퇴직급여 등은 적법한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을 취득하여 근무하다가 퇴직하는 경우에 지급되는 것이고, 임용당시 공무원임용결격사유가 있었다면 그 임용행위는 당연무효이며, 당연무효인 임용행위에 의하여 공무원의 신분을 취득할 수 없으므로 임용결격자가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사실상 근무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적법한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을 취득하지 못한 자로서는 공무원연금법 소정의 퇴직급여 등을 청구할 수 없고, 또 당연퇴직사유에 해당되어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을 상실한 자가 그 이후 사실상 공무원으로 계속 근무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당연퇴직 후의 사실상의 근무기간은 공무원연금법상의 재직기간에 합산될 수 없다.(대법원 1995. 9. 15. 선고 95누6496 판결, 2002. 7. 26. 선고 2001두205 판결 참조) 2. 대법원 1987.4.14. 선고 86누459판결 가. 국가공무원법에 규정되어 있는 공무원임용 결격사유는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위한 절대적인 소극적 요건으로서 공무원 관계는 국가공무원법 제38조, 공무원임용령 제11조의 규정에 의한 채용후보자 명부에 등록한 때가 아니라 국가의 임용이 있는 때에 설정되는 것이므로 공무원임용결격사유가 있는지의 여부는 채용후보자 명부에 등록한 때가 아닌 임용당시에 시행되던 법률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나. 임용당시 공무원임용 결격사유가 있었다면 비록 국가의 과실에 의하여 임용 결격자임을 밝혀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 임용행위는 당연무효로 보아야 한다. 다. 국가가 공무원임용결격사유가 있는 자에 대하여 결격사유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공무원으로 임용하였다가 사후에 결격사유가 있는 자임을 발견하고 공무원 임용행위를 취소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원래의 임용행위가 당초부터 당연무효이었음을 통지하여 확인시켜 주는 행위에 지나지 아니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의미에서 당초의 임용처분을 취소함에 있어서는 신의칙 내지 신뢰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고 또 그러한 의미의 취소권은 시효로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라. 공무원연금법이나 근로기준법에 의한 퇴직금은 적법한 공무원으로서의 신분 취득 또는 근로고용 관계가 성립되어 근무하다가 퇴직하는 경우에 지급되는 것이고, 당연무효인 임용결격자에 대한 임용행위에 의하여서는 공무원의 신분을 취득하거나 근로고용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므로 임용결격자가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사실상 근무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피임용자는 위 법률소정의 퇴직금 청구를 할 수 없다. - 판 결 요 지 - 임용당시 공무원임용결격사유가 있었다면 그 임용행위는 당연무효이며, 임용결격자가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사실상 근무해 왔다고 하더라도 적법한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을 취득하지 못한 자로서 공무원 연금법 등에 의한 소정의 퇴직급여 등을 청구할 수 없다 - 평 석 요 지 - IMF 환란때 공직사회의 구조조정차원에서 결격사유가 있는 공무원을 대거 해직 시키자 해당공무원은 결격사유로 인한 당연퇴직 보다는 퇴직연금청구권 불인정에 더 반발했으며 정부는 특례법 제정을 통해 정치적 해결을 하였던 바 비록 공무원연금법이 결격자의 당연퇴직을 규정하고 있지만 법문에 내재하는 입법취지에 따라 임용결격자에게도 퇴직금청구권을 인정하면 공무원 연금법 제64조 등이 규정한 급여제한이 당연히 통용돼 특례법에 의한 무차별적 보상이 제어될 수 있다. Ⅱ. 問題의 提起 공무원임용결격자의 임용행위의 무효 문제가 충분하게 논의되지 않다가, 이것이 IMF患亂때 첨예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에서 공공부문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는데, 당시 국민의 정부는 정부조직의 축소와 공직사회의 구조조정차원에서 전 공무원에 대한 신원조회작업을 통하여 1998. 3. 경부터 임용결격사유가 있는 공무원 2,400여명에게 임용취소통보를 하여 해직시켰다. 결격사유로 인한 당연퇴직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퇴직연금청구권의 불인정을 용납하지 못하는 해당 당사자의 반발을, 정부는 89누459판결을 효시로 한 대법원의 판례를 들어 물리쳤다. 그 이후 당사자들의 물리적인 반발이 격화되어 급기야는 1999.8.31.에 ‘임용결격공무원등에대한퇴직보상금지급등에관한특례법’(법률 제6008호)의 제정을 가져 왔다. 당사자의 반발로 인한 사회문제가 특례법의 제정을 통해 일거에 해소되어 버림으로써 과연 법적 평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가? 특례법의 명칭에 나타난 ‘퇴직보상금’이 시사하듯이, 이는 법적 물음에 대한 정치적(정치적) 해결책일 뿐이다. 그리고 공무원임용결격자의 임용행위의 무효 문제는 여전히 법적 조명을 받지 못한 채, 또 다른 政變시에 불쑥 등장할 법하다. 그런데 비록 정치적 해결책일 망정 관련 법체계와의 조화를 충분히 고려하였을까 의문스럽다. 즉, 기왕의 공무원연금법이 제64조에서 예정하고 있는 급여제한이 이 특례법의 대상자에겐 처음부터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평등의 원칙에 대한 이런 단순 명백한 위반은 결코 정치적 정당성만으로 불식시킬 순 없다. 그런데 이런 체계위반적 입법의 등장까지 초래한 그 淵源이 바로 대법원의 89누459판결이다. 따라서 공무원임용결격자의 임용행위와 관련한 여러 문제점은 추후에 충분한 지면에서 살펴보기로 하되, 여기선 그것의 무효성 여부와 이에 따른 퇴직연금청구권 인정 여부에 대해 간략히 論究하고자 한다. Ⅲ. 公務員任用缺格者의 任用行爲의 無效性 與否 공무원임용결격자의 임용행위가 당연 무효라는 점이 문제발생의 연원이다. 그리하여 86누459판결에 대해서 맨먼저 김남진 교수님이 ⅰ) 사안상의 흠이 임용을 무효로 만들만큼 중대한지 의문스럽다는 점, ⅱ) 그런 임용행위의 취소에 신의칙을 전적으로 배격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법치주의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면서 비판하셨는데, 동인, 공무원임용의 취소와 신의칙, 고시연구, 1987.8 및 동인/이명구, 행정법연습, 2001, 427면 이하 참조. 김성수 교수 역시ⅰ) 무효와 취소의 구별기준에 대한 법적인 부담을 행정객체에게 일방적으로 미루어 버렸다는 점, ⅱ) 임용행위 무효론에 입각하여 신뢰보호원칙의 배제는 임용처분이라는 행정행위의 존속을 신뢰한 개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치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무효도그마를 강하게 비판한다. 동인, 일반행정법, 2001, 310면 이하. 그런데 임용결격자의 임용행위의 무효성 여부에 관한 논의의 출발점은 국가공무원법 제33조와 제69조이 되어야 한다. 동법 제33조가 일정한 자는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다고 결격사유를 규정한 점만을 갖고서 이를 판단의 기초로 삼을 순 없고, 오히려 소정의 결격사유에 해당할 때에는 ‘공무원이 당연히 퇴직한다’고 규정한 동법 제69조가 방향추이다. 이 점은 가령 의료법 제8조와 제52조처럼 ‘결격자의 당연퇴직’을 규정하고 있지 않는 입법상황과 비교하면 여실하다. 따라서 1949년 8월 12일에 법률 제44호로 제정된 국가공무원법 제40조가 규정한 것에 변함이 없는 현행의 입법상황에선 임용결격자의 임용행위는 무효로 볼 수밖에 없고, 여기에선 임용취소를 제한하는 데 동원될 수 있는 신뢰보호의 원칙이란 애초부터 통용될 수가 없다. 다만 국가공무원법 제33조와 제69조가 과연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신뢰보호의 원칙에 비추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의문을 표할 순 있지만, 다른 법률상의 ‘결격사유’ 규정과의 相違함의 정당성을 특별신분관계로서의 공무원근무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국가공무원법 제33조 제1항이 입법자의 재량을 일탈하여 직업선택의 자유나 공무담임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재산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의 법률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 고 타당하게 판시하였다. 헌법재판소 1990. 6. 25.선고, 89헌마220결정. Ⅳ. 公務員任用缺格者의 退職金請求權 認定 與否 임용결격자의 임용행위를 당연무효로 판시한 86누459판결 이래로 이런 입장은 지금까지 전혀 변함없이 고수되고 있다. 그리하여 무효인 행정행위에 하자의 치유를 인정하지 않는 일반적 논의도 여기에 통용된다. 서울행정법원 1999. 2. 2.선고 98구15275판결 그런데 공무원임용결격자의 임용행위의 무효성 인정이 그 공무원임용결격자와 관련한 모든 법적 물음에서 가늠자가 되어야 하는지 숙고해야 한다. 공무원임용결격자에 대한 퇴직연금청구권의 부정이 바로 이런 논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대표적 경우이다. 즉, 판례에 의하면, 공무원연금법이나 근로기준법에 의한 퇴직금은 적법한 공무원으로서의 신분 취득 또는 근로고용 관계가 성립되어 근무하다가 퇴직하는 경우에 지급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설정을 처음부터 용인하지 않을 경우에 그 결격자가 행한 여러 행위의 효과가 문제가 된다. 물론 국가배상책임법의 영역에선 이른바 ‘사실상의 공무원’이론을 매개하여 국가책임의 성립이 열려있다. 그리고 ‘사실상의 공무원’이론을 임용결격자의 법적 지위 인정에 접목시켜 그의 旣 受領給與를 대상으로 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은 부정된다고 한다. 류지태, 행정법신론, 2003, 598면; 김성수, 개별행정법, 2001, 55면. 그러나 86누459판결 등은 ‘사실상 공무원’이론이 퇴직금청구권의 인정에 동원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상의 공무원’이론이 국가책임법상 외관주의의 지배의 산물이어서 임용결격자와 피해국민간에 발생한 법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임용결격자의 퇴직금청구권의 인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한다. 따라서 여기선 퇴직급여와 퇴직수당의 법적 성격의 규명이 관건이며, 이를 위해 공무원연금법 제1조상의 목적이 가늠자가 된다. 동법은 기본적으로 공무원 및 그 유족의 생활안정과 복리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데, 이는 적법한 공무원관계의 성립의 전제를 다소 약화시킬 수 있는 모멘트이다. 법해석자는 법문의 상호관계, 법문에 규정된 사안과 정상 및 기타 법문의 의미 중에서 중요한 증표로서 평가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의미내용을 선택해야 한다. 金亨培, 法律의 解釋과 欠缺의 補充, 고대 법률행정논집 제15집(1977), 13면. 그리하여 역사적 사실로서 존재하는 立法者 등의 主觀的 意思가 아니라, 그것과 무관하며 경우에 따라선 벗어나는 客觀的인 規範目的에 바탕을 두고서 법률을 해석하고자 한다. 즉, 法律의 解釋에 있어서 法文에 내재하는 立法趣旨(ratio legis)를 추구한다. 따라서 목적론적 법률해석을 취함으로써 임용결격자에게도 퇴직금청구권을 일단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퇴직금청구권을 인정하면 그에 따라 공무원연금법 제64조 등이 규정한 급여제한이 당연히 통용될 수 있기에, 특례법에 의한 무차별적 보상이 제어될 수 있다.
2004-03-08
제조물책임법상 설계상의 결함
[판결요지] [1] 일반적으로 제조물을 만들어 판매하는 자는 제조물의 구조, 품질, 성능 등에 있어서 현재의 기술 수준과 경제성 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제조하여야 하고, 이러한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으로 인하여 그 사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고, 그와 같은 결함 중 주로 제조자가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채용하였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아니하여 제조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 즉 설계상의 결함이 있는지 여부는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내용,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의 가능성, 대체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설계의 상대적 장단점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 [2] 제조업자 등은 표시상의 결함(지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하여도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이 인정될 수 있고, 그와 같은 결함이 존재여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제조물의 특성, 통상 사용되는 사용형태,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의 내용,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및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의 가능성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 1. 사실관계 주식회사 대한항공 소속 헬기의 조종사들이 시계가 불량한 관계로 시계비행방식을 포기하고 계기비행방식으로 전환하여 기온이 영하 8°C 까지 내려가는 고도 6,000피트 상공을 비행할 때 피토트 튜브(pitot/static tube, 動靜壓管)의 결빙을 방지하기 위한 피토트 히트(pitot heat)를 작동시키지 아니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피토트 튜브가 얼어 헬기의 실제 속도와 달리 속도계에 나타나는 속도가 감소하고, 또한 속도계와 연동하여 자동으로 작동하는 스태빌레이터(stabilator)의 뒷전이 내려가면서 헬기의 자세도 앞쪽으로 기울어졌으나 조종사들이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속도계상 헬기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속도를 증가시키려고 출력을 높임으로써 헬기가 급강하하게 되었으며, 조종사들이 뒤늦게 헬기의 자세를 회복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헬기의 주회전날개 중 하나가 후방 동체에 부딪혀 헬기가 추락하게 되었다. 피해자들은 대한항공(주)에 대하여 제조물에 대한 설계상의 결함 등을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서 주요쟁점은 제조물의 결함 존재 여부였고, 원심은 설계상의 결함 존재에 대한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였으며 대법원에서도 판결요지에서 보는 이유로 설계상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통상적인 안전성을 갖추었다고 하면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 판 결 요 지 - 제조물의 설계상 결함여부는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내용, 예상되는 위험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대체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설계의 장단점 등 여러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 평 석 요 지 -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책임은 제조자의 기대 가능성을 전제로 한 과실 책임의 일환이라고 하고 있지만 제조물책임법 제정이후 설계상의 결함으로서 '합리적 대체설계'의 판단기준과 표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2. 제조물책임과 결함 제조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전제로 하지 않는 엄격책임으로서의 제조물책임은 불법행위법의 특별법으로서 제조물책임법(2000.1.12. 법률 제6109)의 제정으로 새로이 도입되었고 같은 법 부칙 규정에 의하여 2002.7.1. 이후 공급된 제조물에 대하여 적용되는 것이어서 이 사건 헬기에는 적용될 여지는 없다. 다만 제조물책임법의 시행 후의 판단이기 때문에 제조물책임법상의 결함에 대해 염두에 두고 판단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같은 법에서는 결함의 종류로 제조상의 결함과 설계상의 결함, 표시상의 결함을 규정하고, 결함이란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위 사건에서 문제된 것은 설계상의 결함과 표시·경고상의 결함이다. 설계상의 결함에 대하여 제조물책임법 제2조 제2호 나목은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채용하였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아니하여 당해 제조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설계상의 결함을 판단할 때는 어떤 면에서 ‘합리적인 대체설계’라고 평가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할 것이며, 합리적인 대체설계가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체설계에도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와 합리적인 대체설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결함이 부정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업자의 고의 또는 과실 유무와는 관계없이 제조물의 결함만 존재하면 제조업자는 무과실책임으로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제조물에 결함이 있고 그 결함으로 인하여 피해(확대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해당 제조물의 제조업자는 책임을 지게 된다. 제조물책임법은 제2조에서 결함을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어서 제조상의 결함, 설계상의 결함, 지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해 각각 정의하고 있는데 결함의 판단기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3. 결함의 판단기준 제품의 결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표준일탈기준, 소비자기대수준, 위험효용기준, 바커기준(Barker test) 등이 있다. 소비자기대기준은 소비자가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안전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에 결함의 존재를 인정한다. 누가 통상적인 소비자인가가 문제되는데, 그 사회의 통상적인 지식을 구비한 자를 말한다. 따라서 합리적인 소비자가 제조물의 위험한 상태를 예견하고 그로부터 발생가능성 있는 사고의 위험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에 부당하게 위험한 제조물이 되지 않게 된다. 예컨대 예리한 칼과 같이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는 판단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기대수준은 그 기준이 애매하고 주관적이어서 결함판단기준으로서나 책임의 근거로서 그 가치가 점점 감소되고 있으며, 제조자가 명시적·묵시적으로 표시한 제조상의 결함에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소비자기대수준은 현재 독자적인 기준은 되지 않고 위험효용기준의 한 요소로서 이용되고 있다. EC지침은 소비자기대기준을 채택하고 있다(EC지침 제6조). 결함의 판단기준에서 특히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설계상의 결함과 경고상의 결함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위험·효용기준은 제조물의 위험성과 효용성을 비교하여 위험성이 효용성을 능가할 때 그 제품이 결함이 있다고 한다. 위험?효용기준은 결함판단기준으로서 현재 미국 법원의 압도적 견해이다. 바커기준은 캘리포니아 최고법원이 1978년 바커사건에서 엄격책임에 있어서의 ‘부당한 위험’이라는 요건을 배제하면서 새로운 ‘결함의 판단기준’을 보인 것에서 유래한 기준이다. 동법원은 ① 의도된 방법 또는 합리적으로 예상 가능한 방법에 의한 제품사용에 관하여 그 제품이 소비자가 기대하는 통상의 안전성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원고가 입증, ② 제품의 설계가 손해의 원인임을 원고가 입증, ③ 현재의 설계에 의해 초래되는 위험의 중대성 및 개연성, ④ 안전한 대체설계의 기술적 가능성, ⑤ 개선설계에 소요되는 비용, ⑥ 대체설계에 의해 제품 및 소비자에게 생기는 악영향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것을 고려한 후 현재 사용 중인 설계에 의한 이익이 그 설계에 본래 따르는 위험을 상회한다는 사실을 피고가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 설계상의 결함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바커기준은 1차적으로는 소비자기대기준을 고려하고, 이러한 소비자기대기준으로 결함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2차적으로 위험·효용기준을 채택한 것이다. 4. 제조물책임의 결함에 대한 종전 판례의 태도 종전 우리나라의 판례는 제조물책임과 관련하여 과실 책임에 근거한 불법행위의 범위를 이탈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견지해왔고, 결함의 개념이나 유형, 결함의 판단기준을 제시한 사례를 찾기도 어려웠다. 다만 결함에 대하여 대법원은 1992년 변압변류기 폭발사건에서 “제품의 구조, 품질, 성능 등에 있어서 현대의 기술수준과 경제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 또는 하자로 인해 소비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제조업자는 계약상의 배상의무와 별개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대판 1992.11.24, 92다18139). 또한 1995년의 TV 폭발사건(속초지방법원 1995.3.24, 94가합131)에서는 “현대의 기술수준과 경제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이라고 하여, 결함판단기준에 관하여 표면상으로 소비자기대수준을 언급하였다. 우리나라는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고 그에 관한 소송도 그렇게 많지 않고 아직까지 제조물책임법이 적용된 판례도 축적되어 있지 않아서 이번 판결이 향후 제조물책임에서 설계상의 결함에 대한 하나의 잣대 역할을 하리라 본다. 5. 대상판결의 검토 대상판결은 설계상 결함여부는 제품의 특성 및 용도, 제조물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내용, 예상되는 위험 내용, 위험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사용자에 의한 위험회피 가능성, 대체설계의 가능성 및 경제적 비용, 채택된 설계와 대체설계의 상대적 장단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 사회통념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 판결에서의 제조물은 제조물책임법 이전에 공급된 것이어서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의 결함으로 인한 책임은 제조자의 기대가능성을 전제로 한 과실 책임의 일환이라고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제조물책임법 제정 이후 설계상의 결함으로서「합리적 대체설계」의 판단기준과 표시·경고상의 결함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만 제조물책임법은 2002.7.1. 이후 공급된 제품에 적용되기 때문에 제조물 계속 감시의무(동법 제4조 제2항)가 동법 시행 이전에 판매된 제품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가 검토되어야 한다. 제조물 계속 감시의무는 제조자가 부담하는 안전에 대한 기본의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므로 제조물책임법 시행 전에 판매된 제품에 관하여도 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설계상의 결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합리적’이라는 용어 속에는 합리적 인간의 행동관점에서 대체설계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또한 합리적인 대체설계라는 것은 결국 위험과 효용을 비교형량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기준에 의한 설계상의 결함을 판단함에는 몇 가지의 요소들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대체설계의 효용성의 문제로서 효용성이 우수하다면 해당제조물에 다소의 결함이 있다고 하여도 이를 결함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지시·경고상의 결함의 문제가 된다. 둘째, 개발위험의 항변과 관련하여 대체설계는 당시의 최고수준의 기술적 가능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대체설계에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하여야 한다. 기술적으로 대체설계의 채용이 가능하다고하여도 경제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넷째, 대체설계에 따른 새로운 위험에 대해서도 평가하여야 한다. 다섯째, 해당 제품에 부착된 지시 및 경고의 정도도 고려하여야 한다. 설계상의 위험에 대한 결정 여부는 제조물의 위험성과 효율성을 비교·교량하여 결정하는 위험·효용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고, 결함 있는 제품을 공급한 제조자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개발, 설계과정에서부터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거래의무에 대한 위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험효용기준에 관해 제품의 효용이 위험을 상회하는데 따른 입증책임은 제조자 측에서 부담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설계상의 결함은 제조상의 결함과는 다른 별도의 이익과 불이익의 평가가 요구되고, 이는 과실에 근거한 책임과 동일한 일반적인 목표를 성취한다고 설명되기도 하는 것이다.
2004-02-09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사건 개요] 1996년 5월 19일 원고는 피고가 소유하는 3층 건물의 1층 방 2칸을 보증금 20,000,000원, 월차임 400,000원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그 임대 목적물인 방 2칸은 반 지하로서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지도 않고 주위 담장이 낮을 뿐만 아니라 대문도 없이 바로 길에 연하여 절도범이 쉽게 침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1996년 6월 15일 새벽 4시에서 5시 50분 사이에 임차인(원고)이 거주하고 있는 방에 절도범이 침입하여 10만원권 자기앞 수표 7매 등 도합 2,000,000원 상당의 금품을 도난당하였다. 또한 임차인이 거주하는 임대 목적물인 방에 대한 차면시설이 불량하여 지나가는 행인들이 수시로 임차인과 임차인의 딸들이 거주하고 있는 방안을 들여다 보곤하여 정신적 고통을 겪는 등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임차인은 임대차 기간 만료 전부터 수 차례 임대인(피고)에게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의사가 없음을 통고한 바 있다. 그러나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계약금 정도의 금원만 제공하면서 방을 비워 주면 그 후에 나머지 보증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임차인은 소액의 금원만 지급받고 방을 임대인에게 명도할 경우,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거주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보증금 전액을 회수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증금 전액을 다 받을 때까지 임대 목적물인 방에 거주하고 있던 중 1997년 11월 30일 또 다시 절도범이 침입하여 수표와 현금 등을 도난 당하였다. 임차인이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임대인은 여전히 임대 목적물에 대한 임대차가 묵시적으로 갱신되었으므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하여 임대기간이 1998년 5월 19일 까지라고 주장하면서 보증금의 반환을 거부해왔다. 이에 임차인은 임대인에 대하여 보증금반환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원심 판결(서울지법 1999. 1. 14. 선고 98나42737) 요지] 피고(임대인)는 임대 목적물(방 2칸)을 원고(임차인)에게 임대하면서 임대인으로서, 임차인이 정상적으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할 안전배려의무에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고의 지배 영역하에 있는 임대목적물에서의 생활에 고통을 느끼고 이주를 원하는 원고에게 임대차계약 기간이 종료되지 아니하였음을 내세우면서 보증금의 반환을 거부하여 원고로 하여금 임대목적물에 강제적으로 거주하여야 하는 등으로 심적인 고통을 주었다 할 것이고, 이로 인하여 원고가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음이 명백하므로 피고는 이러한 원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금전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고, 그 수액은 금 5,000,000원 정도로 봄이 상당하다. [대법원 판결 요지: 원심 파기] 통상의 임대차관계에 있어서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순히 임차인에게 임대목적물을 제공하여 임차인으로 하여금 이를 사용·수익하게 함에 그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임차인의 안전을 배려하여 주거나 도난을 방지하는 등의 보호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임대목적물을 제공하여 그 의무를 이행한 경우 임대목적물은 임차인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어 그 이후에는 임차인의 관리하에 임대목적물의 사용·수익이 이루어지는 것인 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원심 판시와 같은 임차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연구]Ⅰ. 본 판결의 문제점 본 판결의 주된 쟁점은 임대인이 임차인에 대하여 안전배려의무 또는 도난방지 등의 보호의무를 부담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즉, 임대차계약에 의한 임대인의 의무로서 임차인에 대한 보호의무도 인정되는 것인지, 인정된다면 그 내용과 한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임대인이 부담하게 되는 임대목적물의 사용·수익의무에는 임차인의 안전을 배려하거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내용의 임차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즉 보호의무를 부담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가? 과연 임대인은 임대 목적물을 제공하여 임차인이 이를 사용·수익하도록 하면 그 의무를 완전하게 이행한 것으로 인정되는가? 본 사안의 원심 판결은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보호의무로서 도난 방지 의무를 인정하였으나, 본 연구의 대상판결인 대법원 판결(이하 본 판결이라고 한다)은 이를 배척하고 있다. Ⅱ. 임대인의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민법 제618조). 임대인이 부담하게 되는 이 의무는 임대차 관계의 가장 핵심적인 의무로서, 임차인이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 것을 인용하는데 그치는 소극적인 의무가 아니라, 임차인이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적극적인 의무이다(김상용, 채권각론(상), 358). 즉, 임차인에 의한 사용·수익을 가능하게 하는 임대인의 이러한 의무는 물적인 시설에 관한 것이 중심이 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임차인의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平野裕之, 契約法, 383). 임차인이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임대인이 적극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첫째 임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여야 할 목적물 인도의무, 둘째, 임대차기간 동안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데 방해가 되는 제3자의 침해를 적극적으로 방지·제거하여야 할 방해제거의무, 셋째 임대 목적물을 임차인이 사용·수익하는데 필요한 상태로 유지하여야 할 수선의무(민법 제623조)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부가하여 임대인의 의무로서 임차인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1. 임대 목적물 인도의무 임대인은 임대차계약에서 약정된 사용 목적에 적합한 상태로 임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목적물 인도의무는 주물뿐만 아니라 종물에도 미친다. 그 밖에도 임대 목적물의 진입로를 확장하기로 한 경우나 주위 환경을 정비하기로 하는 등 목적물의 상태에 관한 특별한 합의가 이루어 진 경우에는 그러한 상태를 조성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이은영, 채권각론,306). 2.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 유지 및 방해제거의무 임대인은 임대차계약 존속기간 중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적극적인 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의무는 임대차가 유상계약이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상태가 임대 목적물의 사용·수익에 적합한 상태인가에 대한 판단은 임대차의 유형, 거래관습 또는 특약에 의한 임대차계약의 해석문제가 된다. 또한 임대인은 임대차 기간동안 임차인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임대인 스스로 임차인의 사용·수익을 방해하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되며, 타인의 방해행위에 대하여는 그 방해상태를 제거해 줄 의무가 있다. 임대인의 방해제거의무는 임차인 스스로 방해제거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임차인이 대항요건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물론 임차인이 점유보호청구권에 의하여 구제될 수 있는 경우에도 면책되지 않고 부과된다. 3. 수선의무 임대인이 부담하는「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라는 포괄적인 의무 가운데 주된 문제가 되는 것은 임대인의 수선의무라고 할 수 있다. 구민법에서는 「임대인은 임대물의 사용 및 수익에 필요한 수선을 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으나(구민법 제606조), 현행 민법은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할 의무라고 하여 포괄적인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임대인이 부담하게 될 수선의무의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 및 정도는 결국 임대차계약의 내용과 거래의 관행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판례는 임대인의 수선의무를 매우 좁게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임대 목적물인 방에 약간의 균열이 생기고 벽에 금이 간 정도의 파손상태는 임대인에게 수선의무가 있는 대규모의 것이라 할 수 없고, 임차인이 부담하는 통상의 임차물의 수선 및 보관, 관리의무에 속한다고 한다(대판 1989.9.26, 89도703). 그러나 임대인의 수선의무가 인정되는 경우란, 임대 목적물을 수선하지 아니하면 임차인의 사용·수익이 불능으로 될 정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임대인의 이러한 수선의무는 특약으로 면제되거나 감경될 수 있다는 견해가 통설적 입장이지만, 이 특약은 신중하게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대수선에 이르는 부분까지 임대인의 의무를 면제시키는 특약은 결국 임차인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판례 역시 대규모의 수선은 임대인이 그 수선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판시하고 있다(대판 1994. 12. 9, 94다34692).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민법 제390조),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민법 제544조). 또한 임차인은 차임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4. 보호의무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데 큰 불편이 없도록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을 보증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임차인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도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 생각컨대 계약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권리의무로서의 보호의무는 급부의무와 독립된 존재로서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채무자의 의무를 주된 급부와 부수적 급부로 구분하여, 부수적 의무의 내용으로서 신의칙상 보호의무를 인정할 것이 아니라 이와 동등한 내용으로서 적극적으로 보호의무를 인정할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 근거는 민법 제2조 신의칙에서 구할 수 있다. 따라서 보호의무란 단지 채무이행과정에서 비롯되는 부수적인 의무라고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채권자와 채무자 상호간에 서로 상대방이 현유하는 생명·신체·소유권 기타 이익(안전성 이익)의 안전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배려하여야 할 주의의무라고 해석하여, 채무자의 행위의무로서 독립된 보호의무로서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호의무를 규정할 때, 보호의무는 급부이익이나 계약목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안전성 이익의 보호를 향하고 있다는 점 및 채무자 뿐만 아니라 채권자에게도 부과되는 내용이며, 계약이 무효가 되어도 일정기간 존속된다는 점 등에서 계약상의 다른 내용의 의무와 그 성질을 달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潮見佳男,債權總論,14). 특히 계약체결 준비단계에서부터 장래의 계약 당사자(future contractant) 또는 계약 후보자(candidat au contrat)라고 할 수 있는 당사자는 성실한 분위기에서 계약을 체결할 신의칙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私見에 따르면 이미 이 단계에서부터 신의칙상의 보호의무는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보호의무는 채무자 뿐만 아니라 그 이행보조자에게도 인정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Ⅲ. 본 판결의 검토 먼저 결론부터 언급한다면,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의무는 단순히 임차인에게 임대 목적물을 제공하여 임차인이 이를 사용·수익하게 하는데 그치고, 더 나아가 임차인의 안전을 배려하여 주거나 도난을 방지하는 등의 보호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는 본 판례의 논지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임차인 보호라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민법의 태도는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점은 해석론으로서 그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본 판례의 검토에 앞서 일반적으로 임대차계약에 관한 법규 및 판례의 기본적인 자세부터 살펴보면 다분히 임대인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려 한다는 취지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써, 민법상 규정된 임대인의 의무(제618조, 제623조, 제626조, 제567조, 제570조 등)에 비하여 임차인의 의무(제618조, 제374조, 제610조, 제624조, 제634조, 제654조, 제616조, 제615조 등) 내용이 두배 정도 부과되고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임대인이 임차목적물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은 확실하게 보장해 주면서, 임차인에게는 차임증감에 관한 권리 주장과 임대차 계약 종료시의 부속물 처리에 관한 보호 정도에 그치고 정작 중요한 임대차 계약 체결 후 임차인의 임대 목적물 사용에 관한 규정은 사용·수익이라는 지극히 포괄적인 내용만 두고 있을 뿐이며 보증금 반환에 대한 규정도 전혀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입법상의 불비에 대한 판례의 태도 역시 임대인측에서의 해석론을 전개하고 있음은 본 판례의 내용 이외에도 다수 발견된다. 앞에서 소개한 내용처럼 임대인에게 요구되는 수선의무의 인정범위를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판례는 임차 건물이 원인불명의 화재로 소실되어 임차물 반환채무가 이행불능이 된 경우, 「그 화재의 발생원인이 불명인 때에도 임차인이 그 책임을 면하려면 그 임차 건물의 보존에 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을 입증하여야 한다」하여 임차인에게 그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대판 1999.9.21, 99다36273). 이는 곧 임차인의 선관주의의무는 추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동등하게 법률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러나 대립하는 두 당사자로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에는 사회정책상 임차인의 보호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러하지 않은 듯하며, 본 판례의 내용도 이러한 맥락에서 도출된 결론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사회정책적인 입장에서도 본 사건의 원고인 임차인과 그 딸들의 실질적인 보호를 도외시하고 임대임측의 형식적인 의무만을 강조하고 있는 본 판례의 판시 내용에는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둘째, 임대인에게 부과되고 있는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에 관한 내용의 해석론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임대인의 목적물 인도의무, 사용·수익케 할 의무 및 그 유지의무를 인정하고 있음은 앞에서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규정을 문리 그대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임대인에게는 「계약 존속 중」그러한 의무가 계속된다는 점에 주목을 요한다. 즉 임대인은 임대차계약 체결 후 임차인에게 목적물을 사용·수익 할 수 있도록 인도함으로써 그 의무이행을 다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임대차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임대인은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임대차기간 동안 임차인의 실질적인 사용·수익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즉 단순히 임대 목적물을 인도하여 임차인이 사용·수익하도록 하면 임대인의 의무는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용·수익의 보장, 예컨대 임차인의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의미에서의 사용·수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서는 절도범이 쉽게 침입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 또는 적절한 차면시설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여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임차인이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의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채무자의 채무 내용으로서 주된 급부의무(본 사안에서는 임대 목적물의 인도의무) 이외에 독립된 의무로서 보호의무를 인정하고 있는 사견에 따른다면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위와 같은 의무는 더욱 요구되는 내용이라고 할 것이며, 부수적인 의무로서도 그러한 임대인의 보호의무는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본 판례에서 밝히고 있는 판시 내용은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민법 제623조가 규정하고 있는 임대인의 의무는 임차인이 정상적으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보장해줄 의무로서 보호의무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또한 신의칙상 요구되는 독립된 의무(또는 부수의무)로서도 임대인은 임차인의 안전을 배려할 보호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본다.
2001-09-10
주민투표법 미제정의 위헌여부
Ⅰ. 사건의 개요 등 1. 事件의 槪要 (1) 정부는 1998. 12. 울산 울주군 등지에 핵발전소 8기의 건설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였고 울주군수는 세수증대 등을 이유로 이를 적극 지지하였는데, 정작 그곳에 사는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격렬하게 핵발전소의 유치를 반대하여 왔다. (2) 정부는 2000. 9. 산업자원부 고시제2000-88호로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신리 일대를 4기의 가압경수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전원개발사업예정구역으로 지정·고시하는 한편, 위 서생면 비학리에 신고리원전 1호기를 건설하기로 최종 확정하였다고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라 울산광역시 주민 13만여명은 국회에 그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3) 위 서생면 주민들인 청구인들은 이 사건 원전유치 문제가 주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라 보고 지방자치법 제13조의2 소정의 주민투표에 붙이고자 하였으나, 주민투표의 대상·발의자·발의요건·기타 투표절차 등에 관하여 아무런 입법조치가 없어 그 실시가 불가능하자 2000. 11. 이와 같은 입법부작위가 청구인들의 주민투표권(참정권), 주민자치권, 환경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위헌확인을 구하여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審判의 對象 지방자치법 제13조의2 제2항에 따라 주민투표의 대상·발의자·발의요건·기타 투표절차 등에 관한 법률을 따로 제정하지 아니하는 입법부작위가 위헌인지의 여부 지방자치법 제13조의2(주민투표) ①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방자치단체의 폐치·분합 또는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 등에 대하여 주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② 주민투표의 대상·발의자·발의요건·기타 투표절차 등에 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 3. 決定의 要旨 (1)<입법자가 주민투표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여야 하는 것이 「헌법상 의무」인지 여부(소극)> 헌법 제117조 및 제118조가 보장하고 있는 본질적인 내용은 자치단체의 존재의 보장, 자치기능의 보장 및 자치사무의 보장으로 어디까지나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이다. 따라서 「헌법」은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이 선출한 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를 통하여 자치사무를 처리할 수 있는 대의제 또는 대표제 지방자치를 보장하고 있을 뿐이지 주민투표에 대하여는 어떠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이러한 대표제 지방자치제도를 보완하기 위하여 현행 「지방자치법」은 주민에게 주민투표권, 조례의 제정·개폐청구권, 주민감사청구권을 부여함으로써 주민이 지방자치사무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지만 이러한 제도는 어디까지나 입법에 의하여 채택된 것일 뿐 헌법이 이러한 제도의 도입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방자치법 제13조의2가 주민투표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주민투표에 관련된 구체적 절차와 사항에 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하도록 하였다고 하더라도, 주민투표에 관련된 구체적인 절차와 사항에 대하여 입법하여야 할 헌법상 의무가 국회에 발생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2)<주민투표권이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우리 헌법상 참정권은 국민이 국가의 의사형성에 직접 참여하는 직접적인 참정권(국민투표권)과 국민이 국가기관의 형성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국가기관의 구성원으로 선임될 수 있는 권리인 간접적인 참정권(공무원선거권, 공무담임권)으로 나눌 수 있는바, 지방자치법 제13조의2에서 규정한 주민투표권은 그 성질상 이를 ‘법률이 보장하는 참정권’이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 Ⅱ. 평 석 1. 住民投票權이 憲法上 參政權이 아닌지 與否 헌법재판소는 주민투표권을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는바, 그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헌법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성문규정에서 참정권의 근거를 찾는 형식논리에 의존하고 있을 뿐 그 실질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 결정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어떠한 이유로 주민투표권을 국민투표권과 달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하나(참정권)로 보지 않는지 및 헌법상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로서 기본권적 수준의 권리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먼저 헌법에서 인정된 참정권으로서의 선거권, 공무담임권 및 국민투표권은 ‘국민’으로서 갖는 정치적 기본권이고, 이들 각 기본권은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 국민인 지방자치단체 ‘주민’으로서도 당연히 갖는 정치적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투표는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한 헌법 제1조 제2항과 조화로운 해석하에서 헌법 제118조에 의하여 인정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인정되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대한 주민투표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하나인 ‘참정권’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주민투표권은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정치)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므로 정치적 기본권(참정권)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주민참정권의 하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투표권은 참정권의 내용에 포함되는 권리로서 그 자체로서 이미 기본권에 해당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정한 지방자치단체 구역의 범위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국민인 주민’으로서 지역 차원의 투표권 즉, 주민투표권을 갖는 것은 헌법상의 정치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과 성질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헌법 제37조 제1항의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다만, 주민투표권의 구체적 내용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는 개별 법률에 의하여 정하여질 것이지만, 그 개별법률 역시 기본권(참정권) 내지 헌법상의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로서의 주민투표권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2. 眞正立法不作爲에 대한 憲法訴願의 許容與否 (1) 眞正立法不作爲訴願의 許容要件 넓은 의미의 입법부작위에는 진정입법부작위와 부진정입법부작위가 있는바, 청구인들이 지방자치법 제13조의2 제2항에 따라 제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주민투표에 관한 법률은 아직까지 전혀 입법이 없는 상태이므로, 이 사건 입법부작위가 진정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는 의문이 없다. 그런데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① 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이거나 ②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판례태도이다. (2) 眞正立法不作爲訴願 許容要件의 充足 그렇다면 ‘따로 법률로 정’하지 않고 있는 이 건 입법자의 부작위가 이같은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의 허용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것인가? 먼저 주민투표법의 제정을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입법위임한 것이 아니므로 위 ①의 요건은 당연히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는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지방자치법 제13조의2 제2항과 같은 형식의 입법인 경우에 있어서는 ‘헌법상의 명시적 입법위임’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은 다소 유연하여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주민투표에 관한 권리는 헌법상의 지방정치에의 참정권의 하나 내지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점, 지방자치법 제13조의2 제2항에서 ‘따로 법률로’ 정하도록 한 것은 그에 관한 헌법위임규정인 헌법 제117조 및 제118조의 근거규정에 따라 제정된 것인 점에서, ‘헌법상의 명시적인 입법위임’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래의 여러 논거에 따르면 ②의 요건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헌법 제118조 및 제1조 제2항의 해석상 특정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관하여 (범위를 획정할 수 있는) 이해관계 있는 주민에게 기본권인 참정권에 포함되는 권리로서 지방의회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미치는 구체적인 주민투표권이 발생하여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헌법에 의하여 발생하였음이 명백하다고 할 것임에도, 입법자가 주민투표법의 제정이라는 입법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입법 당시의 논의과정을 살펴볼 때, 구체적인 근거법률인 지방자치법 제13조의2에서 ‘다른 법률’로 정하도록 위임한 것이 1994년 3월 16일이고 보면 이미 그 입법조치의 불이행상태가 7년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므로, 이는 정도 이상의 지체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즉, 동 조항의 신설 당시는 총선거와 맞물려 공직선거법,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의 제정 또는 개정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법률과 함께 진행되던 지방정치 영역에서의 개정안의 핵심내용 중 하나였던 주민투표 조항의 형성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시급한 정치일정에 쫓겨 추후 계속 논의하자는 취지에서 이를 따로 정하기로 하고 지방자치법 제13조의2의 형식으로 규정하는데 그쳤던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지방자치법상의 주민투표 조항의 신설논의가 위 정치관계법과 달리 지방선거 등에 있어서는 비교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같은 합의가 가능하였던 것임을 고려한다면 7년이상의 입법의 지체는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의 허용요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입법실제를 볼 때, 지방자치법 제13조의2 제2항은 이미 입법과정에서 시급히 제정할 것이 예정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따로 법률로 정’하는 입법형식은 단일 법률로 제정하기는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의 규율을 별개 법률로 독립시키고자 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라 할 것이므로 당해 ‘다른 법률’은 입법상태의 공백이 없도록 가능한 한 동시에 또는 신속하게 제정함이 타당한 것이다. 따라서 동 조항의 제정으로부터 7년이상 입법이 지체되었다는 것은 합리적 기간을 넘어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예컨대, 최근 2000년 7월 1일 도시계획법이 전면 개정 시행되었는바, 동법 제34조 및 제56조에서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행위제한 등에 관하여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함과 동시에, 같은 날에 개발제한구역의지정및관리에관한특별조치법을 공포 시행하고 있는바, 이러한 ‘다른 법률’로 정하도록 하는 입법의 형식이 곧 이를 합리적 기간을 넘어설 정도로 장기간 방치함을 허용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제까지 입법부작위가 위헌임을 인정하는 「위헌확인」결정을 2건 판시한 바 있다(1994. 12. 29, 89헌마2; 1998. 7. 16, 96헌마246). 특히 헌법재판소는 전문의자격시험불실시 위헌확인등 사건(96헌마246)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의료법과 대통령령의 위임에 따라 치과전문의자격시험제도를 실시할 수 있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하거나 필요한 조항을 신설하는 등 제도적 조치를 마련하지 아니한 것은 헌법소원대상인 진정입법부작위로서 위헌”이라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시한 바 있다. 『① 삼권분립의 원칙, 법치행정의 원칙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는 우리 헌법하에서 행정권의 행정입법 등 법집행의무는 헌법적 의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행정입법이나 처분의 개입 없이도 법률이 집행될 수 있거나 법률의 시행여부나 시행시기까지 행정권에 위임된 경우는 별론으로 하고, 이 사건과 같이 “치과전문의제도의 실시를 법률 및 대통령령이 규정하고 있고 그 실시를 위하여 시행규칙의 개정 등이 행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정권이 법률의 시행에 필요한 행정입법을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행정권에 의하여 입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장관에게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행정입법의 작위의무”가 있다. ② 상위법령을 시행하기 위하여 하위법령을 제정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함에 있어서는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하며 “합리적인 기간내의 지체”를 위헌적인 부작위로 볼 수 없으나, 이 사건의 경우 현행 규정이 제정된 때(1976. 4. 15)로부터 이미 20년이상이 경과되었음에도 아직 치과전문의제도의 실시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합리적 기간내의 지체”라고 볼 수 없고, 법률의 시행에 반대하는 여론의 압력이나 이익단체의 반대와 같은 사유는 지체를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 이 사건은 시행규칙의 문제인 점을 제외하고는 본 사안과 관련하여 그 입법실제, 입법당시의 상황 등에 비추어볼 때 논리적 및 법리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와 달리 결론에 이른 본 사안의 결정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3. 結 論 이 사건 결정은 유사한 선판례가 있음에도 그에 대한 어떠한 입장표명도 없이 선판례를 뒤엎는 듯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결정문을 보면 비록 각하 결정이기는 하나 그 논리적 정치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논의의 순서상 진정입법부작위 소원의 허용요건과 관련하여 법령에의 명시적 입법위임 여부에 대한 판단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헌법재판소 스스로 제시한 허용요건에의 해당 여부에 대한 검토조차 엄밀히 하지 아니하고 있으며 또한 주민투표권의 기본권성에 대하여도 형식논리에만 입각하여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입법부작위가 위헌이라고 판단함이 옳았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적어도 진정입법부작위소원의 허용요건을 인정한 후 본안판단에 이르러 - 행정자치부장관의 의견과 같이 - 주민투표입법의 곤란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재량의 범위를 넘어선 위헌적인 입법부작위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로 기각결정을 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2001-07-23
보험약관설명의무의 범위 및 무면허운전
【사 실】 소외 홍인의는 1997.3.3 피고회사와의 사이에 자신이 이 사건 화물자동차를 구입하여 피고회사 명의로 등록하고 피고회사의 업무수행을 위한 廢엔진오일 운반용 차량으로 제공하되, 운전사의 고용 및 급여의 지급, 보험계약의 체결, 차량관리 등에 관한 일체의 사항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피고회사는 홍인의에게 이 사건 화물자동차의 운송물량에 따른 운송비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차량운용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홍인의는 피고회사명의로 1997.4.14 피고회사를 기명피보험자로 하여 원고와 이 사건 화물자동차에 관하여 업무용자동차종합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원고회사 소속 보험모집인 소외 정창화가 보험계약자인 피고에게 보험계약의 성질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하지 아니하고 이 사건 피보험자동차를 제1종 보통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고지하였으며, 원고회사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조차도 그렇게 알고 이 사건 보험계약을 정당한 보험계약으로 인정하는 등의 잘못을 범하였다. 홍인의가 고용한 운전사 정명화가 제1종 보통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인 이 사건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본건 사고를 내었다. 원고인 보험회사가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을 근거로 보험금지급채무의 부존재에 관한 확인청구의 소를 제기한데 대하여, 피고는 1. 보험모집인 정창화 및 원고회사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가 잘못을 범하였다는 이유로 원고회사에게 신의칙상 또는 보험계약상 손해배상책임이 있고, 2. 정창화의 잘못된 고지로 인하여 피고회사가 이 사건 피보험자동차를 제1종 보통운전면허 소지자가 운전하는 것이 무면허운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므로 이 사건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신의성실의 원칙 및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6조 제1항, 제2항, 제7조 제2호, 제3호의 규정에 위반되어 무효가 되며, 3. 본건 무면허운전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승낙이 없으므로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적용될 수 없다고 항변하였다. 【판 지】 1. 상법 제638조의3 제1항 및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보험자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에 보험계약자에게 보험약관에 기재되어 있는 보험상품의 내용, 보험료율의 체계, 보험청약서상 기재 사항의 변동 및 보험자의 면책사유 등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지고 있다고 할 것이어서, 만일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위반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한 때에는 그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를 운전하여야 무면허운전이 되지 않는지는 보험자의 약관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2. 자동차종합보험 보통약관상의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은 사고 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시에 무면허운전중이었다는 법규위반 상황을 중시하여 이를 보험자의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유로 규정한 것으로서, 운전자가 그 무면허운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책약관상의 무면허운전에 해당된다. 3. 자동차보험에 있어서 피보험자의 명시적·묵시적 승인하에서 피보험자동차의 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하였을 때 생긴 사고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은 무면허운전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지배 또는 관리가능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으로서,…무면허운전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 승인하에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와 무면허운전자의 관계, 평소 차량의 운전 및 관리 상황, 당해 무면허운전이 가능하게 된 경위와 그 운행 목적, 평소 무면허운전자의 운전에 관하여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취해 온 태도 등의 제반 사정을 함께 참작하여 인정하여야 한다. 기명피보험자의 승낙을 받아 자동차를 사용하거나 운전하는 자로서 보험계약상 피보험자로 취급되는 자(이른바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인 승인이 있다고 할 수 없어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사 명의로 차량을 등록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후 그 업무수행을 위해 차량을 제공하되 운전사의 고용 및 급여 지급 등 일체의 사항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지기로 약정한 자동차 소유자의 승낙 하에 그 피용자가 무면허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해 설】 서론 : 본 판결에는 피보험자의 승낙과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의 관계에 관하여 대체로 3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아래에 판시의 순서에 따라 설명하기로 한다. 1. 보험약관명시설명의무의 범위 보험자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지고 있다(상법 제638조의3,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위반하여 체결한 보험계약도 약관을 보험단체의 법규범으로 보아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법규범설). 상법 제638조의3 제2항이 이 위반에 대하여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계약이 성립한 날부터 1월내에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게 하는데 그친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는 약관 일반에 관한 규정인데 대하여 상법 제638조의3은 보험계약의 약관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보는 것이 법체계상 온당하므로 이 견해도 현행법의 해석으로서 논리에는 맞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약관을 규제하여 특히 보호해야할 보험계약자에게 너무 불리하다. 그래서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에 기하여 이에 위반한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정된 판례이다(대법원 1998.6.23.선고 98다14191판결 ; 대법원 1998.11.27.선고 98다32564판결 ; 대법원 1999.3.9.선고 98다43342, 43359판결 참조). 그러나 본 판결이 어떤 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를 운전하여야 무면허운전이 되지 않는지는 보험자의 약관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점에는 의문이 있다. 이 판결의 태도에는 상술한 법규범설의 영향이 엿보인다. 이 판시에 따르면 어떤 것이 보험자의 약관명시 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될까. 무면허운전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약관의 명시는 될 수 있더라도 약관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은 될 수 없다. 약관의 명시 설명의무는 약관이 당사자간의 계약내용이므로 이 계약에 의해서 어떤 권리의무가 발생하는지를 당사자가 알고 동의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험자에게 부담시킨 것이다. 그런데 보험자측의 보험모집인과 보험자의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조차도 그 내용을 잘못 알고 있었다. 보험자측 스스로도 알지 못한 내용을 보험계약자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계약에 당사자가 내용을 알고 합의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무면허운전에 대한 처벌은 법률의 규정(도로교통법 제109조)에 의한 것이지만 이로 인하여 보험자가 면책되는 것은 당사자가 합의한 보험계약의 조항에 따른 것이다. “보통보험약관이 계약당사자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가 법규범 또는 법규범적 성질을 가진 약관이기 때문이 아니라 보험계약당사자사이에서 계약내용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라는 대법원의 지론(대판 1985.11.26, 84다카2543 ; 동 1986.11.26, 84다카122 ; 동 1989.11.14, 88다카29177 등 다수)에 따른다면, 이러한 약관은 보험계약의 일부로서 당사자를 구속할 수 없을 것이다. 대판 1992.7.28, 91다5624는 은행거래약관을 “설명하여 주지 아니하였다 하여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으나, 이 판결을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약관을 작성한 사업자측도 그 내용을 잘못 이해한 본 판결의 사안과는 역시 다른 경우이었다. 2. 무면허운전의 인식 이 면책약관이 유효하다고 전제한다면, 운전자가 그 무면허운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책약관상의 무면허운전에 해당된다는 것도 대법원의 판례에 따른 것이다(대법원 1991.12.24.선고 90다카23899전원합의체판결 ; 대법원 1993.3.9.선고 92다38928판결 ; 대법원 1997.9.12.선고 97다19298판결 ; 대법원 1998.3.27.선고 97다6308 판결 참조). 그러나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은 사고 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 시에 무면허운전 중이었다는 법규위반상황을 중시하여 이를 보험자의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유로 규정한 것”이라는 설명은 부당하다.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이 사고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원인에 의한 보험사고의 위험을 보험에 의한 보호에서 배제하였다면 보험자는 그 사고로 인한 손해를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 대판 1993.11.23, 93다41549에 의하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차량의 관리자 내지 운전자의 사용자로서 그에게 요구되는 통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에도 운전자의 무면허사실을 알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면책약관은 적용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의견은 보험자의 면책을 피보험자에 대한 제재로 보는 태도로서 무면허운전을 보험금지급의무에서 제외한 보험자측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사법이론과 조화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보험자는 보험계약자에게 제재를 가할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3. 승낙피보험자의 승낙에 의한 무면허운전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을 아무런 제한 없이 적용한다면 무단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한 경우에 자동차보유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면서도 자기의 지배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무단운전자의 운전면허소지의 여부에 따라 보험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어 피보험자에게 너무 가혹하여 불합리하므로 피보험자의 명시적 묵시적 승인 하에 피보험자동차의 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하며, 기명피보험자의 직접적인 승낙이 없고 이로부터 운전승낙을 받은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인 승인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설시도 대법원의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판 1993.12.21, 91다36420와 1994.1.25, 93다37991에 의하면, “승낙피보험자는 원칙적으로 보험계약자나 기명피보험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제3자로 하여금 당해 자동차를 사용, 운전하게 승인할 권한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양승규 교수는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례“라고 비판한다(보험법 제3판, 412면 주19). 그러나 이 판례는 그후에도 이어졌다(대법원 1994.5.24.선고 94다11019판결 ; 대법원1995.9.15.선고 94다17888판결 ; 대법원 1996.2.23.선고 95다49776 ; 대법원 1996.10.20.선고 96다29847판결 ; 대법원 1997.6.10.선고 97다6827 ; 대법원 2000.2.25.선고 99다40548판결 참조). 그러나 본 판결의 사안에서는 기명피보험자인 피고회사가 홍인의에게 운전자의 고용을 인정한 이상 운전자에 대한 운전승인권도 부여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판 1993.1.19, 92다32111에서도 “기명피보험자와 자동차를 빌리는 사람과의 사이에 밀접한 인간관계나 특별한 거래관계가 있어 전대를 제한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추인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전대의 추정적 승낙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다만 이 판결에서는, 무면허운전면책약관이 적용되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기명피보험자의 간접적 승인을 받은 자의 사고에 대하여도 보험자는 보상의무가 있는지가 문제였다. 그런데 위의 대판 2000.2.25, 99다40548에서는 무면허운전면책조항에 관하여 “기명피보험자인 이글렌터카의 영업소장인 김태영은 자동차종합보험약관상 피보험자동차를 운행한 자격이 없는 만 21세 미만자인 김승우 또는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는 최보국을 임차인으로 하여 이 사건 자동차를 대여하고 21세 미만자인 김승우에게 이 사건 차량을 현실적으로 인도해 주었다는 것이므로, 이는 김태영이 그 대여 당시 21세 미만의 자가 김승우 또는 최보국으로부터 지시 또는 승낙을 받아 이 사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승인할 의사가 있었음을 추단할 수 있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 표현이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이웅의 이 사건 자동차의 운전은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아니라 기명피보험자의 묵시적 승인도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위의 97다6827판결에서는 “지입차주의 승낙 아래 무면허로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에는 무면허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는데, 사고를 낸 무면허운전자가 지입차주의 우발적 승인을 받고 운전한 자가 아니고 이 화물자동차를 상시 운전하는 자였다면 기명피보험자인 지입회사의 양해가 있었다고 보아 면책조항의 적용을 인정한 판지는 타당하다. 그리고 홍인의가 실질적으로 본건 화물자동차의 차주이고 피보험자임을 기준으로 하면 그가 고용한 운전자 정명화는 승낙피보험자가 될 것이다. 반대로 형식을 기준으로 피고회사가 차주이고 피보험자라고 한다면 피고회사소유의 본건 화물자동차를 상시로 운전하는 정명화는 적어도 그의 묵시적 승낙을 받은 승낙피보험자가 될 것이다. 본 판결도 제시하고 있는 묵시적 승인 하에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여러 기준들에 의하더라도 최소한 회사의 묵시적 승낙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닐까. 결어 : 본 판결은 보험자의 약관명시 설명의무 위반을 부당하게 부인하고 나서, 그 결과를 승낙피보험자의 개념에 의하여 무리하게 시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에는 찬성하지만 이 결론은 2중의 이론상 오류에 의하여 도달한 것이다.
2000-09-04
중재판정 이유
〈事件槪要 및 經過〉 用役契約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 관한 大韓商事仲裁院의 仲裁判定에 대해 仲裁判定의 손해배상범위에 관한 이유에 모순이 있다며 仲裁判定取消의 訴가 제기되었다. 제1심 법원은 仲裁判定에서 소극적 손해에 대해 被告가 주장하는 기대이익의 額數에 관해 아무런 이유를 기재하지 않고 그 金員 相當額이 예상된 영업이익의 損失이라고 판단한 것은 이유가 不明瞭하여 判定이 어떤 사실상 또는 법률상의 판단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判明할 수 없거나 이유가 모순인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仲裁判定에 이유를 붙이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 取消되어야 한다고 判示하였다. 이에 대해 原審은 大韓商事仲裁院이 損害額을 算定할 때 기대이익에 대한 算定期間이나 기대이익의 구체적인 數額에 대해 제시된 證據를 기초로 公平에 근거하여 판단하였으며 그 판단에 다소 부당한 점이나 불완전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 점만을 이유로 중재법 제13조 제1항 제4호의 取消事由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大法院判決要旨〉 이러한 原審法院의 판단에 대해 大法院은 仲裁判定의 이유는 仲裁人이 결론에 도달한 판단과정을 대강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또한 仲裁人의 판단은 實定法에 근거하지 않고 公平을 근거로 삼을 수 있고, 비록 판단에 부당하거나 불완전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仲裁判定 取消事由인 이유를 붙이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判示하였다. 1. 들어가며 중재법 제11조 제3항에서 따르면 仲裁判定에는 主文과 理由의 要旨가 기재되어야 하며, 仲裁判定에 이유를 붙이지 않은 경우에는 제13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仲裁判定取消의 訴가 제기될 수 있다. 大法院의 이번 判決은 종전의 판례 입장, 즉 仲裁判定 取消事由 중 이유의 기재가 없는 때를 전혀 이유의 기재가 없거나 기재되어 있더라도 不明瞭하기 때문에 判定이 어떠한 사실상·법률상의 판단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明時할 수 없는 경우 그리고 이유가 모순된 경우라고 해석한 종전의 判例(대법 1989.6.13 선고, 88다카183판결)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1985년 國際商事仲裁에관한 國際貿易法委員會모델법(UNCITRAL Model Law, 이하 모델법이라 한다) 제정 이후 각국의 중재법 개정 움직임에 따라 중재법 개정을 앞두고 있다. 大法院이 이번 判決을 계기로 仲裁判定理由에 관해 검토해 봄으로써 중재법 개정에 참고가 되고자 한다. 2. 仲裁判定理由의 기재 1) 이유 기재의 필요성 현행 중재법은 仲裁判定에 이유를 기재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私人을 위한 仲裁判定에 법원의 判決에 의한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다투어지고 있다. 이유기재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이유 기재가 중재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한다(Rodman, Commercial Arbitration with Forms, pp.450-451.). 법률전문가가 아닌 仲裁人에게 이유를 기재하도록 함으로써 법원에서 仲裁判定에 대한 도전이 가능하도록 하여 중재의 신속성과 종국성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敗訴한 당사자로 하여금 법원에 不服을 제기하도록 부추기는 결과가 되어 결국 법원의 업무를 경감시키려는 ADR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질 만큼 仲裁判定取消事件이 법원에 몰릴 수 있다. 또한 仲裁人은 특정산업이나 기술분야의 전문적 지식인으로서 이들에게 법률가에 준하는 이유 기재 의무를 부담시킨다면 중재인 수락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유기재를 의무화하지 말고 당사자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만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한다(김홍규, 정기인, 정규상, 이강빈, 중재법 개정 시안 및 해설, 중재학회지, 1992, 36쪽 이하). 그러나 仲裁判定에 법원의 確定判決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고 중재제도가 법원의 裁判을 진정으로 대체할 수 있기 위해서는 仲裁判定을 법원의 判決에 준하는 수준으로 끌어 올릴 필요가 있다. 특히 單審을 원칙으로 하는 중재제도에서는 당사자가 仲裁判定을 납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데 仲裁判定의 이유는 바로 이러한 당사자의 이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특히 당사자가 직접 審理에 참석하지 않고 변호사에 의해 代理된 경우에는 仲裁判定理由가 당사자와 仲裁判定部의 대화 창구의 역할을 한다. 判定理由를 통해 당사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당사자로부터 신뢰받지 못한다면 중재제도가 대체적 분쟁 해결 방안으로 발전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仲裁判定에 이유를 기재하도록 한 현행법의 태도는 타당한 것이며 중재법 개정에서도 이 부분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2) 입법동향 仲裁判定의 이유 기재여부에 대한 각국의 입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모델법 제31조(仲裁判定의 형식 및 내용) 제2항이다. 여기서는 영미법과 대륙법의 절충으로서 仲裁判定에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되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생략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Yearbook of the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 1985, Volume XVI, p.135). 지금까지 仲裁判定의 이유 기재여부에 대해서는 대륙법과 영미법 사이에 차이가 나 대륙법 국가에서는 이유 기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 반면 영미법 국가에서는 이를 의무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理由不記載가 실무관행이었던 영미법 국가에서도 오늘날 仲裁判定에 이유를 기재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대부분 이유를 기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중재를 私法作用의 하나로 간주한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법원이 仲裁判定을 불신하여 적극적으로 중재에 개입해 왔다. 이에 따라 중재인들은 법원의 司法審査에서 흠이 잡히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유 기재를 회피하게 되었고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1979년 영국의 개정 중재법에서부터 이러한 관행은 깨어지기 시작하여 당사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 이유를 기재하도록 규정하였으며 만일 중재인이 이를 따르지 않은 때에는 법원은 仲裁判定을 중재인에게 환송하고 충분한 이유를 밝히도록 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김선정, 이유 기재 없는 중재판정, 중재학회지, 1994, 75쪽 이하). 1996년 중재법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제54조 제4항에서 모델법을 그대로 받아들여 和解仲裁나 당사자가 이유 생략을 합의한 경우를 제외하고 仲裁判定의 이유 기재를 원칙으로 하였다(강병근, 1985년 UNCITRAL 모델법이 영국 중재법에 미친 영향, 중재학회지, 1997, 243쪽). 모델법을 가장 먼저 수용한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림비아 주법(B.C 주법 제31조 제3항) 역시 모델법처럼 仲裁判定에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였다(장문철, UNCITRAL 모델중재법이 캐나다 중재법에 미친 영향, 중재학회지, 1997, 175쪽). 미국은 國內仲裁 대부분에서 理由不記載를 원칙으로 하였으나 모델법을 수용(대표적으로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오하이오, 오리건, 텍사수 주)함에 따라 國際仲裁에서는 이유를 기재하려고 하고 있으며 1991년 AAA의 國際商事仲裁規則(제128조)은 이유기재를 요구하고 있다. 독일은 1998년 모델법을 광범위하게 수용하여 중재법을 개정하면서 모델법과 같이 이유 기재를 仲裁判定의 有效要件(제1054조 제2항)으로 규정하고, 理由不記載를 더 이상 取消事由로 명시하지 않았다. 종전의 법은 이유 기재를 仲裁判定의 要件이라고 명시하지 않고 단지 이유 기재가 없는 것을 仲裁判定의 取消事由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개정법은 이유기재없이 宣告된 仲裁判定은 제1054조를 위반하는 것으로서 제1059조 제2항 제1호 (d)의 중재절차가 本法의 규정에 따르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므로 理由不記載를 굳이 별도의 仲裁判定 取消事由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3) 이유 기재의 정도 모델법의 영향으로 각국의 중재법에서 仲裁判定의 이유 기재를 명시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이유를 기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 점에서 우리 중재법이 이유의 要旨를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다른 立法例보다 앞선 것이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仲裁判定에는 법원의 判決에 상응하는 수준의 이유 기재를 기대하지는 않는다.(BGHZ 96, 40; Schwab, Schiedsgerichtsbarkeit, S.181 ff.). 대부분 非法律家인 仲裁人에게 전문 법조인에게 기대되는 수의 이유 작성을 요구한다면 중재 제도 자체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BGHZ LM§1 a KWVO Nt)그리고 仲裁判定에 이유를 가하는 것은 당사자의 이익을 위해서이지 법원의 事後審事를 가하게 하거나 쉽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仲裁判定理由는 上級審의 事後審事를 예상해야 하는 법원의 判決과는 달라 어느 정도 최소한의 요구 수준에 달하는 정도로 충분하다(BGHZ 96, 47). 즉 仲裁判定理由는 당사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BGHZ 3. 89), 仲裁判定의 승인이 公序良俗에 반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작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유가 완전히 생략되거나 명확히 서로 모순되거나 主文과 상충된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적으로 이유가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仲裁判定理由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그 내용이 법적으로 옳은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지 이유가 기재되 었는 것으로 충분하다. 仲裁判定을 정당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정도로 설명을 덧붙이는 정도면 되는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仲裁判定理由 모두를 取消事由로 인정한다면 중재제도 자체가 의문시될 것이다. 따라서 大法院이 仲裁判定이 다소 부당하거나 불충분한 이유라도 기재되어 있으면 理由不記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타당하다. 3. 입법론적 고찰 1) 독립된 取消事由로서 理由不記載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델법은 仲裁判定의 이유 기재를 仲裁判定의 有效要件으로서 규정할 뿐 理由不記載를 별도의 取消事由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判定에 이유가 기재되지 않은 것은 중재절차를 위반한 것으로서 일반적인 取消事由(제34조 제2항 a iv)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독일의 1998년 개정 중재법도 모델법의 이러한 태도를 받아들여 取消事由중 종전에 단순히 不適法한 節次라고만 표현하였던 것을 擊防禦方法에 대한 방해, 仲裁判定의 내용이 중재부탁의 범위를 벗어난 경우, 仲裁判定部의 성립과 중재절차가 법규정이나 당사자의 합의에 반하는 경우로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仲裁判定에 이유를 붙이지 않은 것은 중재절차가 중재법에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우리 중재법 개정을 앞두고 지금 모델법의 전면적인 수용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仲裁判定의 이유와 관련하여서는 중재제도에서 判定理由가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모델법과는 달리 현행법처럼 理由不記載를 별도의 仲裁判定 取消事由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不適法한 절차에는 仲裁判定部가 適法하게 구성되지 않은 것처럼 중재절차 전체가 不適法한 경우와 개별적인 행위가 不適法한 경우와 개별적인 행위가 不適法한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後者는 항상 取消事由가 되지는 않는다. 개별적인 행위는 不適法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중요한 절차원칙에 반하는 경우에만 取消事由로 인정되며(BGH KTS 1956, 141; Schutze/Tschernign/Wais, Handbuch des Schiedsverfahrensrechts, Rdnr. 541.), 또한 仲裁判定이 그 절차 위반에 기인하여야 한다(BGH NJW 1959, 2213). 따라서 절차위반이 있었다 하더라도 仲裁判定이 여기에 근거하지 않은 경우, 즉 절차위반이 없었더라도 동일한 내용의 仲裁判定이 행해졌을 경우에는 取消事由가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理由不記載를 명시적인 取消事由로 규정해 두지 않으면 이유 기재가 없는 仲裁判定이 절차위반에 기인하였는지에 대해 다툼이 생길 수 있다. 모델법에서 理由不記載를 取消事由로 명시할 수 없었던 것은 이유 기재에 대한 각국의 태도가 다른 점을 고려한 때문이므로 이유 기재를 당연시 하는 오늘날의 國際仲裁實務에서는 理由不記載를 독립된 取消事由로 규정하는 것이 명확성의 면에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2) 이유 기재의 정도에 대한 명시적 규정 仲裁判定의 이유를 어느 정도 기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 일률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프랑스처럼 법원의 判決에 적용되는 원칙이 仲裁判定에도 적용된다고 보는 국가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법원의 判決理由에 준하는 수준의 이유 기재를 요구하지는 않는다(BGH RIW 1985, 970;NJW 1986, 1436). 仲裁判定의 이유 기재는 당사자로 하여금 仲裁判定部가 判定을 내리게 된 결정과정을 알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MK-Maier, 1040§V. Rdnr.7.). 중재제도에 대해 매우 자유로운 입장을 취한 독일에서는 심지어 급박한 경우에는 중요한 단어를 열거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判示하기도 하였다(RG SeuffA66, 298). 우리 중재법 개정에서 현행법처럼 理由不記載를 독립된 取消事由로 규정하는 때에는 이유 기재의 정도에 대해 大法院 判例를 참조하여 「仲裁判定理由는 사실상·법률상 판단과정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재하면 충분하다」는 취지의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며, 이는 仲裁判定理由를 원인으로 한 取消訴訟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998-09-14
건축허가서의 사법상 효력
I. 序 說 1. 大法院은 1997년3월28일에 建築許可書의 법적 성질과 관련하여 『建築許可는 行政官廳이 건축행정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受許可者에게 일반적으로 행정관청의 許可없이는 건축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相對的 禁止를 關係法規에 적합한 일정한 경우에 解除하여 줌으로써 일정한 건축행위를 하여도 좋다는 자유를 회복시켜 주는 行政處分일뿐 受許可者에게 어떤 새로운 權利나 能力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建築許可書는 허가된 건물에 관한 실제적 권리의 得失變更의 公示方法이 아니며 推定力도 없으므로 建築許可書에 建築主로 기재된 者가 건물의 所有權을 취득하는 것은 아니다』(96다10638)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바 있다. 원래 이 판결에는 이러한 쟁점 이외에도 占有取得時效가 완성된 자에 대한 不動産 所有名義者의 義務範圍와 不法行爲에 대한 損害賠償으로 原狀回復請求를 할 수 있는지의 與否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建築許可書의 사법상의 효력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2. 行政官廳의 處分行爲중의 하나인 建築許可는 相對的 禁止를 해제하여 자연적 自由權을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여기서 許可를 받은 개인에게 許可權이 어떠한 법적 성질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된다. 우선 公法的인 차원에서 현재 판례와 통설적인 견해는 허가를 公法上의 權利가 아닌 反射的 利益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에 반해 私法上으로는 許可가 어떠한 효력을 지니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예컨대 許可權이 때로는 讓渡되기도 하고, 때로는 제3자에 의해 침해되기도 하는데, 이 때의 법적 성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판례는 새로운 권리의 창설은 물론, 어떠한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더 나아가 권리를 변동하는 공시방법도 아니며, 추정력도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허가의 사법상의 효력에 대한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행정법상 허가제도의 意義와 法的 性質 그리고 效果에 대해 槪觀해 보고, 이어서 본 판결에 대한 필자의 斷想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구태여 사실관계를 적시하지 않은 것은 지면관계 뿐만 아니라 이 판결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법상의 효력 부분은 사실관계의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이미 대법원은 이에 대해 일관된 견해를 보여 주고 있기(大判 1989년5월9일, 88다카6754) 때문이다. II. 許可의 法的 性質과 效果1. 許可의 意義 許可란 法令에 의해 개인의 자연적 자유가 일반적으로 금지되고 있는 경우에 그 금지를 解除하여 자연의 자유를 適法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는 行政行爲를 말한다. 許可는 허가를 유보한 相對的 禁止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解除될 수 없는 절대적 금지에 대하여는 허가할 수 없다. 2. 許可의 法的 性質 許可의 법적 성질과 관련하여 두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許可가 命令的 行爲인가 形成的 行爲인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속行爲인가 裁量行爲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첫 번째 문제만 살펴본다. 원래 許可는 상대방에게 금지를 해제하여 자연적 자유를 회복시켜 주는 행위이므로 下命이나 免除와 함께 命令的 行爲에 속한다는 것이 통설적 견해이다(金南辰, 行政法 1,237면).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許可는 私人이 어떤 행동을 사실상 하고 안하고를 규율할 뿐 그의 법적 효과에 대해서는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法的 地位나 法律關係를 창설하는 形成的 行爲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여 『許可도 단순한 자유회복 이상으로 적법하게 어떤 權利·利益을 향유할 수 있는 지위의 설정으로 보는 견해』나(金道昶, 一般行政法論(上), 371면) 『許可도 法令 또는 行政行爲에 의하여 일정한 행위를 할 수 있는 權利(自由權的 權利)가 제한되고 있는 경우에 그 제한을 해제하여 적법한 권리행사를 가능하게 하여 주는 행위이므로 命令的 行爲라기 보다는 形成的 行爲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나타났다(朴윤흔, 最高行政法講義(上), 344면). 許可가 特許와 같은 形成的 行爲와 똑같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단순한 자연적 자유의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制限을 解除하여 적법한 權利行使를 가능케 해 주며 때로는 새로운 법적지위를 향유하거나 새로운 법률관계를 창설할 수도 있는 행위이므로 형성적 행위의 성질을 가질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같은 견해로 洪井善, 行政法原論, 285면; 金東熙, 行政法I, 232∼233면). 그러나 판례는 유기장영업허가와 관련한 사건에서 『유기장영업허가는 유기장경영권을 설정하는 설권행위가 아니고 일반적 금지를 해제하는 영업자유의 회복이라 할 것이므로 그 영업상의 이익은 反射的 利益에 불과하다』라고 판시하여(大判 1986년2월8일, 84누369) 命令的 行爲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3. 許可의 效果 1) 禁止의 解除 許可의 效果는 일반적 금지를 해제함에 그치고 배타적 독점적 권리 또는 능력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허가의 결과 상대방이 사실상 어떤 사업의 독점 혹은 기타 이익을 얻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수적 反射的 效果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大判 1963년8월22일, 63누97; 1971년6월29일, 69누91). 그러나 許可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특정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금지된 자연적인 권리가 회복됨으로써 일정한 자유를 누릴수 있는 지위가 부여되고, 이러한 지위를 법률이 보호해 주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즉 이것은 사실상의 이익이 아닌 법률상의 이익인 것이다. 판례도 주류제조면허와 관련하여 『주류제조면허는 재정허가의 일종으로서 일반적 금지의 해제로 자유의 회복일뿐 새로운 권리의 설정은 아니지만 일단 이 주류제조업의 면허를 얻은 자의 이익은 단순한 사실상의 반사적 이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주세법의 규정에 따라 보호되는 이익』이라고 판시하여(大判 1989년12월22일, 89누46), 免許權이 가지는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허가의 효과와 관련하여 국민의 권리구제의 확대를 도모하기 위한 차원에서 공권의 성립요소를 완화하여 단순한 反射的 利益이 아니라 法律上 利益 내지는 公權으로 인정될 수 있는 폭의 확장이 요구되고 있다. 2) 許可의 承繼 許可의 效果가 승계되는지의 여부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對人的 許可인가, 對物的 許可인가 兩者를 혼합한 혼합허가인가에 따라 다르다. 대인적 허가는 承繼가 불가능하며, 대물적 허가는 그의 承繼가 가능한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反해 혼합허가의 경우는 인적 요소의 변경에 관해서는 새로운 허가를 요하고, 물적요소의 변경에 관해서는 신고를 요하는 등 제한이 따르는 것이다. 건축허가는 대물적인 허가로서 그의 승계가 인정되고 있다. 3) 許可主變更의 訴의 利益 건축중의 건축물을 양수한 자는 건축공사를 진행함에 있어 장차 건축주 명의로 허가에 갈음하는 신고(건축법 제5조 제2항)를 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고, 중간검사(동법 제7조의2)를 신청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으며, 공사를 완료한 날로부터 7일이내에 준공신고(동법 제7조)를 하여야 하고, 이에 위반할 때에는 처벌을 받게되어 있으므로 건축공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건축주의 명의를 변경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하여 건축주 명의의 변경을 구하는 소이외에 달리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또한 건축중인 건축물을 양도한 자가 건축주 명의변경에 동의하지 아니한 때에는 양수인은 그 의사표시에 갈음하는 판결을 받을 필요가 있고 이 때에는 그 訴의 利益이 있음을 否認할 수 없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大判 1989년5월9일, 88다카6754). III. 本判決에 대한 斷想 1. 本判決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건축허가는 명령적인 행정처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권리나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실체적 권리의 득실변경의 공시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추정력이나 허가서에 기재된 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축허가를 그 성질상 행정법상의 명령적 처분으로 이해하는 통설적인 견해에 의하면 異論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허가는 反射的 效力만이 아니라 법률상 보호해야 할 이익이 있는 것으로 때로는 새로운 法的地位도 지니게 된다. 이 때 공법상의 이익 이외에 사법상의 어떠한 새로운 法的地位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2. 本判決의 결론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찬동한다. 따라서 건축허가서의 사법상의 효력이 본판결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어떤 새로운 권리」를 창설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실제 건축을 담당하지 않은 제3자 이름으로 허가를 받아 건축한 경우 허가받은 자의 이름으로 보존등기를 했다고 해서 소유권자로 인정될 수 없는 것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판례는 보존등기의 추정력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大判 1996년7월30일, 95다30734). 그러나 새로운 권리를 창설해 주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점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한다. 우선 공법상의 권리와 관련하여 오늘날 학계에서는 철저한 命令的處分으로 이해하는 견해는 거의 없고, 허가에 權利 形成的인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법상의 차원에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許可主變更의 訴에서 訴의 利益을 인정하고 있다. 또 건축할 수 없는 도로예정지상에 행정관청의 착오로 건축허가를 내줌으로 인하여 건물을 준공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건물전체를 철거해야만 하는 사건에서 행정관청의 不法行爲로 인한 損害賠償請求權을 인정하였다(大判 1980년3월11일, 79다1687). 즉 허가로 인하여 재산적인 손해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행정관청의 職權取消에 의한 損失報償이 아니라 不法行爲로 인한 損害賠償請求를 건축주에게 인정하고 있다. 또한 건축주이면서 許可權을 보유하고 있는 者가 許可權을 讓渡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許可가 건축허가와 같은 대물적인 경우에는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許可權의 讓渡나, 不法行爲로 인한 損害賠償請求權등은 모두 건축허가로부터 야기되는 것으로 이러한 경우에 사법상의 효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대법원은 이러한 효력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許可가 자연적인 권리의 회복으로 이해되는데, 이러한 회복이 때로는 사법상 중요한 財産權의 객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에는 許可 역시 財産權의 客體로서 그의 법적지위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論究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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