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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유동화 전문회사에게 지급한 수수료가 이자소득인가
1. 서론 자산유동화거래(asset-backed securitization, ABS)와 관련한 조세판결이 최근 선고되었다. 자산유동화거래는 대출채권, 리스채권, 외상매출채권 등 동질성을 가진 다수의 자산을 보유한 회사가 이런 자산을 집합(pooling)하여 자산보유자(originator)로부터 특수목적법인(SPC, 유동화전문회사)에게 양도함으로써 자산보유자의 일반재산으로부터 이를 법적으로 구분하고, 이러한 집합자산을 기초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이런 거래를 하는 이유는 양도자산을 자산보유자의 일반재산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유동화증권의 신용등급을 자산보유자 자신의 신용등급보다 높일 수 있어 자금조달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거래의 핵심은 자산보유자의 도산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진정한 매매(true sale)"로 인정받는 것이다. 자산보유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그냥 제3자에게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하고 차입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으나, 이런 방식은 보유자산이 부동산이나 공장기계, 예금 등과 같은 경우에 주로 적용된다. 그런데 다수의 채무자를 상대로 한 매출채권의 경우에는 매각이나 담보제공이 어렵기 때문에 자산유동화라는 방식을 이용하여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대상판결에서는 자산보유자가 자산유동화거래를 한 이후 자산관리회사에게 지급한 수수료 등이 이자소득의 과세대상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이와 관련한 판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대상 판결을 통해 자산유동화거래에서 발생하는 조세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대상 판결의 요지 아래와 같은 제반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채권매매의 실질을 양도담보로 볼 수 없고, 원고가 이 사건 채권을 해외 회사에게 매각한 다음 그 회사와 자산관리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이 사건 채권의 관리·회수 등의 자산관리업무를 하면서 그 회수대금에서 지급한 펀드비용(CP rate)과 마진(usage fee) 등의 지급액은 법인세법 제93조 제1호가 규정한 국내원천 이자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원고가 신탁약정에 따라 특정한 조건하에서 금융수익자 이익을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은 이 사건 거래를 계속 유지함에 따른 이익보다는 그 유지에 따른 비용이 더 크게 되는 경우에 이 사건 거래를 청산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이를 이유로 이 사건 채권매매의 실질을 양도담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없는 점, 원고가 자산관리수수료와 주선수수료 등 이 사건 거래에 관하여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이 사건 거래에 참여하는 다수 당사자 사이에서 경제적 이득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그 비용도 매각대금 중 매우 적은 부분에 불과한 점, 원고가 채권매매이후의 위험을 일부 부담하는 구조이지만 이 사건 채권매매계약이 이 사건 채권의 반환을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고가 이러한 위험을 부담하는 것은 채권매각대금결정 방식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점 등을 판단의 근거로 하였다. 3. 평석 (1) 자산유동화거래의 필요성과 구조 유동화증권의 기본발행구조는 자산보유자가 SPC에 유동화자산을 양도하고, SPC는 유동화증권을 발행하여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형식이다. 유동화자산의 추심 및 회수업무는 자산보유자가 관리업무위탁계약을 통해 SPC를 대리하여 수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산유동화거래는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국내거래와 국외거래가 혼재하여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되지만 통상 유동화자산의 관리는 자산보유자가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투자자에게 발행된 채권에 대한 이자는 유동화자산으로부터 회수되는 금전으로 지급하게 되며, 이자지급업무는 자산보유자가 자산관리자의 지위에서 채권발행회사를 대행하여 수행하게 된다. 대상판결에서 처분청은 이 사건 거래를 차입거래로 보았다. 즉 자산보유자로부터 SPC 등이 지급받은 수수료를 이자소득으로 보아 15%의 세율로 원천징수하는 처분을 한 것이다. (2) 채권의 진정한 매매 판단기준 이 사건 소송의 쟁점은 법인세법 제93조에 따라 자산보유자인 원고에게 원천징수의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쟁점 수수료가 이자소득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반면에 원고가 운임채권인 이 사건 매출채권을 자산유동화방식으로 매각한 것이라면 차입거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게 되어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산유동화거래의 핵심이라고 할 '진정한 매각'인지 여부가 심리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자산유동화거래는 자산보유자의 도산위험으로부터 절연하는 것이 본연의 목적이므로 거래구조를 짤 때 해당 거래가 '금전대차를 위한 담보목적의 양도'가 아니라 '진정한 매매 또는 양도'가 되도록 법률구성을 한다. 통상 해당거래가 매각거래에 해당한다는 법무법인의 법률의견서와 기업회계기준에 의하더라도 매각거래이며 회계처리상으로도 매각으로 인한 채권처분손실이 발생한다는 취지의 회계법인의 검토의견서가 첨부된다. 대상판결에서도 자산유동화거래와 관련된 계약서의 문구를 대상으로 진정한 매매인지 혹은 담보목적의 양도인지가 다투어졌다. 한편 미국에서도 진정한 매매와 관련한 논의가 있다. 미국 통일상법 제9조는 금전채권(account receivable)의 양도에는 완전한 지배권이전을 수반하는 매매와 담보목적의 이전 두 가지가 있다고 구분하고 있고, 미국도산법원의 실무에서도 미국 도산법 제541조에 규정된 도산재단(bankruptcy estate)에 속하는 자산의 범위를 해석함에 있어, 비록 매매의 형식으로 양도된 금전채권이라 하더라도 그 실질적인 법률관계를 매매로 볼 수 없는 경우에는 그 금전채권은 여전히 도산재단에 속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 판례에 따르면, 자산이전의 성격규명은 당해 거래 당시의 사실 및 상황에 비추어 당사자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는 작업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5가지의 요소를 기준으로 당사자의 진의가 진정한 매매를 의도한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자산에 대한 손실부담위험, 소유권의 효익(benefit of ownership) 이전여부, 거래후 자산의 지배 및 관리에 관한 권한의 귀속, 당사자의 진정한 의도, 각 당사자의 회계처리를 기준으로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3) 진정한 매매와 담보부 차입거래의 구별방법 해당 거래가 진정한 매매인지 담보부 차입거래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다. 대상 판결에서 쟁점이 된 이슈를 보면, 채권양도통지나 채무자의 승낙이 없었으므로 매각거래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그런데 채권양도는 당사자 합의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며 민법 450조의 통지나 승낙은 대항요건에 불과함), 양도인, 양수인이 계약상의 권리 및 의무를 상대방의 동의없이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으니 매각채권의 권리는 원고에게 있다는 주장(거래 상대방이 계약상의 권리 의무를 양도하지 못하도록 구속하는 것은 일반적인 계약조건임), 양도처리된 미수채권에 대해 상계하는 것은 양도자에게 실질적인 권리가 남아있는 것이라는 주장(담보책임으로 구성하는 대신 상계로 소멸된 금액은 회수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담보책임이행의 효과가 발생함), 매각채권의 회수를 원고가 하는 것은 매각 후에도 원고가 통제권을 행사한다는 주장(양도인의 지위가 아니라 자산관리위탁계약에 의한 자산관리자의 지위에서 회수업무를 수행하는 것임), 재매입옵션을 가지고 있으므로 진정한 매매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90%이상이 상환 완료되어 자산유동화 거래가 소기의 목적을 거의 달성하면 유동화거래를 조기에 종결하기 위한 것임, 소위 'clean up call' 규정을 오해한 것임) 등의 쟁점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판례가 정한 기준과 유사한 방법으로 주장되었고, 쟁점별로 심리가 진행되었다. 4. 결론 대상 판결은 자산유동화거래와 관련된 조세소송으로 선례적 가치가 있다. 자산유동화거래는 특수한 금융조달기법으로 국내거래와 국외거래가 혼재하고, 법률문제와 회계문제가 중첩되고 있어 관련한 조세소송에서도 이런 점이 모두 검토되었다. 이 사건 소송의 진행과정에서는 조세소송 변호사를 주축으로 자산유동화거래 전문가와 기업회계에 밝은 회계사 등이 팀을 이루어 쟁점별로 거래구조와 그러한 거래를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또한 관련된 거래계약서들이 영문으로 되어 있어 해당 조항을 정확히 해석하는 것도 쟁점을 해명하는데 중요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자산유동화거래를 통하여 자신의 신용등급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금융을 조달할 수 있었다. 원고가 법률 및 회계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적법한 자산유동화거래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대상 채권에 대해 '진정한 매매' 거래가 있었음에도 이러한 사법상 유효한 매각거래를 차입거래로 재구성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단을 한 점에서 대상 판결은 자산유동화거래과정의 조세문제에 대해 판단기준을 제시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처분청은 이 사건 자산유동화의 실체가 원고의 매출채권을 이용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을 빌려 쓰는 동안 발생하는 사용대가를 지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거래의 경제적 효과만을 가지고 그 거래의 법적 성격을 규정하는 것으로 법리상으로 허용될 수 없음이 밝혀졌다. 판결의 취지에 찬동한다.
2013-11-07
횡령죄의 미수범 성립 여부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법률신문 9월 6일 자 5면) (1) 사실관계 갑과 A는 "A가 자금을 출연하여 소나무 39주, 팥배나무 1주(이하 P수목으로 약칭함)를 구입하고, 갑이 노동력을 제공하여 P수목에 대한 가식·관리를 하여 쌍방의 협의 하에 제3자에게 처분한 다음 그 수입을 분배한다."는 동업계약을 체결하였다. A는 P수목을 대금 1,200만 원에 매수하였고, 갑은 이를 M토지에 가식(假植)하여 관리해 왔다. 그런데 갑은 A의 허락 없이 C에게 P수목을 대금 1억 9,000만 원에 매도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즉석에서 계약금 명목으로 5,000만 원을 교부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하였다. 갑의 계약체결 사실을 알게 된 A는 C에게 P수목과 관련한 동업계약 사실을 알렸다. 갑과 C와의 P수목 매매는 이로써 무산되었다. (2) 사건의 경과 검사는 갑을 횡령죄와 사기죄로 기소하였다(이하 횡령죄 부분만 고찰함). 제1심은 횡령죄의 기수를 인정하였다. 갑과 검사의 항소에 대해, 항소심법원은 직권으로 판단하여 횡령미수를 인정하였다. 항소심은 횡령 미수의 인정근거에 대해 학술논문에 준하는 정도로 상세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데(춘천지방법원 2010노197), 지면관계로 필자가 임의로 이를 요약한다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가) 판례는 횡령죄를 위험범으로 보고 있다(2008도10971 등). (나) 횡령행위는 정당한 소유자의 본권 침해에 관한 구체적인 재산상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로서 구체적 위험범으로 보아야 한다. (다) 동산과 달리 부동산의 경우에는 소유권의 권리변동에 등기나 명인방법 등의 공시방법이 필요하다. (라) 부동산의 경우에 계약금의 수령만으로는 아직 구체적 위험발생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마) 따라서 갑의 행위는 횡령죄의 실행의 착수에는 해당하나 기수에 이른 것은 아니다. 검사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은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피고인이 보관하던 이 사건 수목을 함부로 제3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수령·소비하여 이 사건 수목을 횡령하였다는 공소사실에 관하여 횡령미수죄를 인정한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횡령죄의 기수시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2. 판례평석 본 판례는 대법원이 횡령죄의 미수범 성립을 긍정한 예로서 특별히 주목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항소심판단의 타당성을 긍정하고 있을 뿐, 독자적인 관점에서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대법원은 단지 '관련 법리'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그 동안 학계의 다수의견과 판례는 횡령죄를 위험범으로 파악해 왔다. 즉 재물에 대한 사실상 또는 법률상 지배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영득의사를 외부로 표현하는 순간 횡령죄는 기수에 이른다는 것이다(소위 표현설). 이에 대해 소수의견은 불법영득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실행의 착수에 해당하며 실제로 재물을 소유권자에 준하여 처분할 수 있게 될 때 기수에 이른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소위 실현설). 본 판례의 사안에서 항소심법원은 종래의 표현설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실현설의 입장에서 피고인의 행위를 횡령죄의 미수범으로 처벌하고 있다. 항소심법원은 점유의 이전이 소유권 이전에 영향을 미치는 동산과 달리 등기나 명인방법에 의하여 소유권 이전이 일어나는 부동산의 경우에는 종래의 위험범설로는 적절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본 판례의 사안에서 갑이 함부로 P수목을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수령하는 행위는 불법영득의사의 발로로서 실행의 착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 명인방법에 의하여 P수목에 대한 소유권이전이 일어나고 있지 않으므로 기수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항소심법원은 이러한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횡령죄를 추상적 위험범과 구체적 위험범의 경우로 나누어 설명한다. 동산의 경우에는 점유가 이미 행위자에게 있으므로 추상적 위험범으로 포착할 수 있지만, 부동산의 경우에는 등기이전이나 명인방법에 의한 인도가 있을 때 비로소 위험발생이 구체화하여 이때에 기수에 이른다는 것이다. 생각건대 항소심법원의 태도 및 이를 유지한 대법원의 태도는 결론에 있어서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논리구성에 백 퍼센트 찬성할 수는 없다. 우선 횡령죄를 구체적 위험범으로 파악하려는 태도는 구체적 위험범의 개념정의에 반드시 부합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구체적 위험범이란 입법자가 법익침해의 위험을 구성요건요소로 명시해 놓은 경우를 말하는데(예컨대 형법 167조 1항의 일반물건방화죄의 경우 참조), 횡령죄의 경우에 이를 나타내는 구성요건표지는 없다. 지금까지 횡령죄를 위험범으로 파악하여 왔던 학계나 판례의 입장은 외국의 해석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독일 형법의 경우 횡령죄는 그 객체가 동산으로 한정된다(독일형법 246조 1항 참조). 독일 형법은 횡령죄의 미수범 처벌규정을 두고 있으나(동조 3항) 동산만을 객체로 하는 관계로 횡령죄의 미수범은 자기 소유의 재물을 타인 소유의 재물로 오인하여 횡령하는 불능미수의 경우에 예외적으로 상정할 수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Nomos Kommentar StGB, 2. Aufl. § 246 Rn. 43). 한편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일본 형법은 횡령죄의 가중형태로 업무상 횡령죄를 처벌하고 있으나 미수범 처벌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또한 횡령죄에는 징역형만 규정되어 있고 벌금형은 배제되어 있다(동법 252조, 253조 참조). 요컨대 독일 형법이나 일본 형법의 경우에는 모두 횡령죄의 미수범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 형법은 횡령죄와 배임죄를 같은 조문(형법 355조)의 제1항과 제2항으로 배치하여 그 법적 성질이 유사함을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업무상 횡령 및 업무상 배임을 같은 조문에서 같은 형으로 가중처벌하고(형법 356조), 미수범도 같은 조문(형법 359조)에 의하여 처벌하고 있다. 또한 횡령죄의 객체는 '재물'로서 동산과 부동산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우리 형법의 구조를 보면, 동산을 객체로 하는 독일 형법의 횡령죄에 관한 해석론이나,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는 일본 형법의 횡령죄에 관한 해석론을 그대로 차용할 수 없음을 즉시 알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민법은 소유권 변동과 관련하여 형식주의를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되는 것이 부동산 물권변동이다(민법 186조 참조). 부동산의 횡령과 관련하여 독일 형법의 해석론은 우리에게 아무런 시사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처럼 부동산을 횡령죄의 객체에 포함시키고 있는 일본 형법의 해석론도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다는 점에서는 참고할 바가 별로 없다. 요컨대 우리 형법 제359조가 규정하고 있는 횡령죄의 미수범 처벌규정은 우리 민법의 물권변동 법리에 맞추어서 새롭게 그 의미가 부각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항소심법원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으며, 대법원 또한 '관련 법리'라는 표현을 통하여 이러한 태도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횡령죄의 미수범 성립을 긍정한 본 판례는 앞으로 실무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횡령죄의 미수감경을 허용한 본 판례는 특히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의 횡령죄 처벌과 관련하여서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본 판례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의문점 한 가지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 형법은 횡령죄와 배임죄의 성질이 유사하다고 보고, 그 처벌을 가능한 한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잘 아는 바와 같이 부동산 이중매매에 관한 배임죄 판례를 보면, 계약금의 수령단계에서는 아직 배임죄의 실행의 착수가 인정되지 않는다(2009도14427). 적어도 중도금 수령단계에 이르러야 미수가 되고, 본등기 또는 가등기가 경료될 때 기수에 이른다(2008도3766). 그런데 본 판례에서는 계약금의 수령만으로 횡령죄의 미수를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차이점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설명할 것인가는 앞으로 연구를 요하는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2012-09-17
스탠딩 법리의 부정
Ⅰ. 사안 D(S유흥주점의 영업실장), D2(S유흥주점의 업주)는 식품위생법(제44조, 제97조)위반혐의로 기소되었다. D는 2008. 1. 30. 22:25경 위 S유흥주점 4호실에서 위 업소 종업원인 O2로 하여금 손님으로 온 O와 함께 일명 티켓영업을 나가도록 한 후 그 대가(20만 원으로 추정)를 받은 혐의로, D2는 종업원인 D가 위와 같은 위반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감독의무를 다하지 못한 혐의였다. 괴산경찰서 생활안전계는'S유흥주점'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소속 경사 2명이 2008. 1. 30. 21:30경부터 같은 날 22:25경까지 위 유흥주점 앞에서 잠복근무를 하던 중, 같은 날 22:24경 위 유흥주점 입구에서 O(남, 손님)와 O2(여, S유흥주점의 종업원)가 같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미행하여 위 남녀(O, O2)가 위 주점에서 100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M여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였다. 경사로부터 위와 같은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위 P등 4명의 경찰관은 여관 카운터에 있던 업주를 상대로 위 남녀가 몇 호실로 들어갔는지를 문의하며 협조를 요청하였고, 여관 업주는 예비열쇠를 이용하여 O, O2가 들어간 여관방의 문을 열어 주었다. 당시 O와 O2는 침대에 옷을 벗은 채로 약간 떨어져서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경찰관들은'성매매의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는 점과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음'을 고지하고(다만, P는 제1심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당시 본인이 미란다원칙을 고지하였는데, 진술거부권은 고지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위 둘을 서로 분리하여 상호간의 관계 및 여관에의 입실 경위 등을 구두로 조사하였다. O와 O2는 경찰관들의 위 질문에 '성행위를 한 사실은 없다'고 답하였다. 당시 O와 O2가 실제 성행위를 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고, 방 내부 및 화장실 등에서 성관계를 가졌음을 증명할 수 있는 화장지나 콘돔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관들은 위 둘을 성매매의 현행범으로 체포 하지 못하고(성매매 미수는 그 처벌규정이 없으므로, 성교행위에 나가지 않은 이상 성매매로는 처벌할 수 없다), 괴산경찰서 증평지구대로 임의동행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동행을 거부할 수도 있으나,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이에 대하여 경위 P는, O와 O2를 분리하여 조사할 당시 O와 O2는'성행위는 아직 안하였으나 2차를 나온 사실'은 인정하였기 때문에 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여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고 고지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O와 O2는 증평지구대로 가서 각 자술서를 작성한 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자술서에서 O는'양주 1병을 같이 먹고 여관에 들어가 누워서 서로 이야기 하던 중이었고, 대금은 45만 원을 결제하였으며, 그 내역 확인은 안 했으나 2차비가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기재하였다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는'성행위는 안하였고, 양주 2병을 마시고, 대금 45만 원을 결제하였으며, 아가씨를 데리고 나가는 비용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45만 원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한편, O2는 일관하여 '양주 2병을 마시고 서로 맘에 들어 여관에 온 것일 뿐, 대가를 받고 여관에 온 것은 아니고, 성행위는 안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경찰은 술값과 테이블 봉사료 이외에 대가를 수수하였는지에 관하여 보완수사를 하였으나, 추가 증거를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였다. 검사는'양주를 1병만 시켰다'는 O 작성의 자술서와 경찰이 O를 상대로 작성한 참고인진술조서를 주된 증거로 삼아 공소를 제기하였다(공소사실에는'시간적 소요의 대가가 약 20만 원으로 추정된다'고 되어 있다. 이는 O가 계산한 45만 원 중 양주 1병 값 20만 원과 테이블 봉사료 5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그 대가로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O 작성의 자술서와 경찰이 O를 상대로 작성한 참고인진술조서의 증거능력 여부'가 주요쟁점이 되었다. 제1심과 항소심은 "이 사건 당시 경찰관들이 O와 O2를 임의동행 함에 앞서 '동행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고지한 사실은 있으나, 그에 부가하여 '동행을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O2가 화장실에 가자 여자 경찰관이 O2를 따라가 감시하기도 하였으므로, 사법경찰관이 O, O2를 수사관서까지 동행한 것은 적법요건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채 사법경찰관의 동행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행하여진 사실상의 강제연행에 해당"하여 "위 각 증거들은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가 상고하였다. Ⅱ. 쟁점 절차적 기본권을 침해(O)당하지 아니한 자(D, D2)에게도 위법수집증거는 배제되는가?(긍정) Ⅲ. 재판요지(상고기각)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은 '수사에 관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 다만, 강제처분은 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안에서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임의수사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는바, 수사관이 수사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형식으로 피의자를 수사관서 등에 동행하는 것은, 상대방의 신체의 자유가 현실적으로 제한되어 실질적으로 체포와 유사한 상태에 놓이게 됨에도,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고 그 밖에 강제성을 띤 동행을 억제할 방법도 없어서 제도적으로는 물론 현실적으로도 임의성이 보장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직 정식의 체포·구속단계 이전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헌법 및 형사소송법이 체포·구속된 피의자에게 부여하는 각종의 권리보장 장치가 제공되지 않는 등 형사소송법의 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므로, 수사관이 동행에 앞서 피의자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 주었거나 동행한 피의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동행과정에서 이탈 또는 동행장소로부터 퇴거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등 오로지 피의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수사관서 등에의 동행이 이루어졌음이 객관적인 사정에 의하여 명백하게 입증된 경우에 한하여, 그 적법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대법원 2006. 7. 6. 선고 2005도6810 판결 참조). 또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수사기관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므로(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수사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O)를 상대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원칙적으로 피고인(D, D2)에 대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대법원 1992. 6. 23. 선고 92도682 판결, 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8도8213 판결 참조). (중략) 비록 사법경찰관이 O와 O2를 동행할 당시에 물리력을 행사한 바가 없고, 이들이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법경찰관이 이들을 수사관서까지 동행한 것은 위에서 본 적법요건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채 사법경찰관의 동행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행하여진 사실상의 강제연행, 즉 불법 체포에 해당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불법 체포에 의한 유치 중에 O와 O2가 작성한 위 각 자술서와 사법경찰리가 작성한 O, O2에 대한 각 제1회 진술조서는 헌법 제12조 제1항, 제3항과 형사소송법 제200조의2, 제201조 등이 규정한 체포·구속에 관한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하여 수집된 증거로서 수사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를 상대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도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의하여 그 증거능력이 부정되므로 피고인들에 대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 Ⅳ. 평석 1. 이 판결은 미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스탠딩(standing) 법리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있어 주목되는 판결이다. 사안에서 문제되고 있는 사건은 D, D2의 식품위생법위반피고사건(이하 분석의 편의를 위하여 'D'만 문제삼겠다)이다. O, O2(이하 분석의 편의를 위하여 'O'만 문제삼겠다)는 피고인이 아니다. 피고인 D의 입장에서 볼 때 O는'피고인 아닌 자'이다. 스탠딩(standing) 법리란 '위법수집증거배제규칙은 절차적 기본권이 침해된 자에 대하여만 적용된다' 는 취지의 발상이다. 이 법리를 위 사안에 적용하여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된다. 사안에서 경찰의 O에 대한 임의동행이 실질적으로 강제연행이라면 이 강제연행으로 기본권침해를 받은 사람은 O이지 D가 아니다. 따라서 경찰이 O를 조사하여 채집한 진술증거는 O의 형사피고사건에서는 위법수집증거가 될 수 있지만, 스탠딩 법리를 인정하면 O의 형사피고사건과 무관한 D의 형사피고사건에서 O를 조사하여 채집한 진술증거는 위법수집증거가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여 D는 자신의 절차적 기본권을 침해당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경찰의 O에 대한 강제연행과 그 이후의 채증활동을 탄핵할 지위(standing)에 있지 아니하고 따라서 경찰이 O를 조사하여 채집한 증거는 D의 형사피고사건에서 위법수집증거가 아니라는 것이 스탠딩 법리의 요점이다. 대법원 1992.6.23. 선고 92도682 판결(이른바 한국형 미란다 판결)은 대법원의 '스탠딩 법리의 불채용' 입장이 간접적으로 표출된 판결인데 본 판결에서 그 취지가 다시 한 번 선명하게 재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2. 위법수집증거배제규칙을 창안해 낸 것은 미국연방대법원인데 1990년대 이후에 모습을 드러낸 한국대법원의 그것은 미국의 그것보다도 훨씬 그 포섭범위가 넓다. 피고인측의 동의가 있어도 증거능력을 배제하고, 사인의 불법수집증거도 경우에 따라 증거능력이 배제될 가능성이 있게 한 것이 그 예이다. 이제 그 목록에 스탠딩 법리의 불채용이라는 지침이 명시적으로 덧붙여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대법원이 주도하는 형사사법혁명이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이 이 형사사법혁명을 지속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1-11-14
자동차종합보험상 플러스보험 관련 보험사기
I. 대상판결 서울서부지법 2009. 9.30. 선고 2009고합128 가. 사안의 개요 피고인은 2007. 10.2.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로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2008. 12.4. 같은 죄 등으로 금고 4월을 선고받은 자인데,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해차량의 운전자에게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운전자보험’에 가입한 다음 노인들을 상대로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후 허위로 교통사고 신고를 해 보험금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1) 살인미수 피고인은 2008. 3.4. 충남 서천군 소재 도로에서 액센트 차량을 운전하여 피해자 최모(여, 69세)씨를 들이받아 살해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에게 약 8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뇌진탕 등의 상해를 가하고 미수에 그쳤다. (2) 사기, 사기미수 피고인은 2007. 5.14. 충남 보령시 소재 도로에서, 티코승용차를 운전하여 김모(여, 74세)씨를 들이받아 사망하게 한 후, 3개의 보험사로부터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1억2,800여만원(그 중 7,370만원이 피고인에게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지급됨)을, 2008. 3.4. 충남 서천군 소재 도로에서 위와 같이 액센트 차량을 운전하여 최모씨를 들이받아 약 8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뇌진탕 등의 상해를 입게 한 후, 3개의 보험사로부터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1,740여만원을, 2008. 9.5. 충남 서천군 소재 해안도로에서 싼타페 승용차를 운전하여 박모(여, 66세)씨를 들이받아 사망하게 한 후 3개의 보험사로부터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1억700여만원(그 중 4,000만원이 피고인에게 형사합의지원금으로 지급)을 각 편취하였고, 2008. 9.12.경 다른 보험회사에 허위로 교통사고 신고를 하였으나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여 미수에 그쳤다. 나. 법원의 판단 피고인의 김모씨, 박모씨에 대한 각 살인의 점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로 이미 처벌받아 다시 처벌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살인미수, 사기, 사기미수의 죄질이 불량한 점 등을 들어 피고인에게 징역 합계 15년을 선고하였다. II. 자동차종합보험상의 플러스보험의 문제점과 관련 보험사기 억제 1. 서설 이 글은 최근의 위 대상판결에 대한 판례 평석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위 판결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이목을 끄는 위 판결을 소개하는 정도를 넘지는 아니하였다. 필자는 서울남부지법에서 1년 동안 교통사고 관련 형사사건을 전담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느낀 소회와 위 대상판결을 접하면서 느낀 당혹감과 충격이 어우러져 위 대상판결 보험사기 범행과 같은 모방범죄를 규제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생각하여 이에 관한 입법적 대안까지 포함하여 대책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만약 피고인이 단 한 건의 교통사고를 저지르는 데 그쳤다면 가해자의 고의를 밝히는 것이 극히 어려운 교통사고의 특성상 완전범죄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 이르면, 이 사건 보험사기 범행과 같은 모방범죄의 위협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급박한 양상을 띤다고 본다. 2. 일반적인 교통사고 관련 보험사기 범죄와 이 사건 보험사기 범죄의 구별 일반적인 교통사고 관련 보험사기는 보험회사의 재산적인 피해, 더 나아가서는 보험가입자 일반에의 피해 전가, 음주운전, 중앙선침범 등의 약점을 가진 피해자의 형사처벌 등의 사회적 해악이 발생하나 범죄자 자신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다치는 것을 예상하고 저지르는 범죄인 경우가 많아 교통사고 자체로 인한 피해자의 인명피해는 그다지 중하지 않은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 사건 보험사기는 피해자의 생명이 침해되어 형사합의금이 많이 책정되는 상황일수록 범죄자의 범죄로 인한 이득이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다르다. 3.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로 처벌받은 경우 다시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일사부재리원칙과의 관계 위 대상판결이 적절하게 판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보험사기, 살인 또는 살인미수 피의자가 이미 같은 교통사고에 관하여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때에는 확정판결의 효력에 의하여 동일한 교통사고의 원인이 운전자의 과실이 아니라 보험사기를 노린 계획적 살인임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사기죄로 추가 의율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재차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사정책적인 면에서 이러한 처벌의 흠결은 더더욱 이 사건 보험사기 유사범죄에 대한 대처가 더욱 절박한 문제가 되게 하며 이에 대한 대처가 즉각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강구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할 것이다. 4. 자동차보험상 플러스보험의 의의와 그 실태 가. 플러스보험의 의의 자동차보험상 플러스보험(이하에서는 ‘플러스보험’이라고만 한다)은 피보험자가 피해자에게 부담하는 손해배상액을 초과하여 피보험자가 피해자 측에게 지급하는 형사합의금을 지원하는 형사합의지원금, 자동차보험료 할증지원금, 방어비용(민사소송상의 방어비용 제외, 상법 제720조 제1항), 면허정지위로금 등을 추가로 지급하는 보험을 통칭하며 법률적 용어가 아니라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보험상품군을 통칭하는 것이며 보험자가 보험사고로 인하여 생길 피보험자의 재산상의 손해를 보상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보험료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인 손해보험계약의 일종이다. 손해보험으로서의 특성을 가지므로 실제 발생한 손해를 조사하여 그 손해만을 보상하며 보험가액이나 실제손해 이상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이득금지원칙이 적용된다. 나. 플러스보험의 실태 보험금 지급의 실태와 관련하여 주된 항목인 형사합의지원금의 경우를 보면 그 특성상 피해자 측과의 합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어서 피보험자로서는 피해자 측과의 합의를 통하여 보험계약상 인정되는 최고금액까지 금액을 늘릴 수 있게 되어 보험자로서는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기 위하여 실제 지급한 형사합의금을 따지지 아니하고 보험계약상 인정되는 최고한도의 금액을 지급하게 된다.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는 플러스보험의 실태를 보면 형사합의지원금, 자동차보험료 할증지원금, 방어비용, 면허정지위로금 명목으로 피보험자에게 추가로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는데 형사합의지원금으로 피해자 사망시 최대 2,000만원 내외, 방어비용으로 대개 500만원 정도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5. 형사합의금의 의의와 관련 실무 가. 형사합의금의 의의 형사합의금이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과는 별도로 형사사건에서의 선처를 위하여 가해자가 피해자 측에 지급하는 금원을 말한다. 형사실무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선처를 호소하면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얼마의 금원을 지급하며, 이 금원은 피해자 측이 민사상 지급받는 손해배상액 또는 보험회사에 대한 보험금지급청구권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형사위로금으로 지급되는 것이다’라는 등의 문구로 표시되며, 이러한 형사합의금은 법적으로 강제되는 돈이 아니라 오로지 가해자가 형사사건에서 선처를 받기 위하여 지급되는 것이다. 나. 형사합의금 관련 실무 피보험자가 피해자 측을 위하여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지급하는 경우 이를 보험회사에 구상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피해자 측은 형사합의금이 손해배상금의 일부가 아니라 오로지 형사위로금임을 표시하여 피해자 측이 보험회사로부터 지급받을 보험금에서 가해자로부터 직접 지급받은 금원을 공제당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다만, 가해자가 피해자 측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여 법원에 금원을 공탁한 때에는 가해자가 보험회사에 공탁금액 상당의 금원을 구상할 채권을 피해자 측에 양도하고 위 금원이 오로지 형사위로금임으로 표시하며, 제3채무자인 보험회사에 이를 통지함으로써 공탁된 금원이 사실상 형사위로금으로 기능하게 하여 형사재판에서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편, 법원 실무에서 민사상 손해배상액 중 보험자가 피해자 측에 지급할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받은 형사합의금 액수를 고려하는 예가 보이는데, 이는 피보험자의 재산 출연을 통하여 부당하게 보험자가 면책되는 결과가 되고, 형사합의금의 기능을 저해하는 것이 되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6. 이 사건 보험사기 유사범행의 억제방안 가. 피보험이익과 초과보험의 무효 규정 초과보험이 보험계약자의 사기로 체결된 경우 그 보험계약은 전부 무효가 된다(상법 제669조 제4항). 그런데 플러스보험은 피보험자가 피해자 측에 지급하는 형사합의금 등을 부보하는 것이므로 형사합의금은 당사자의 합의, 협상력에 의하여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는 것이 되어 형사합의금 항목에 관하여는 초과보험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논할 실익이 별로 없다. 중복보험에 있어 보험금액의 합계가 보험가액을 초과하는 경우 마찬가지로 초과보험이 되고, 중복초과보험이 보험계약자의 사기로 체결된 때에는 그 보험계약 전부가 무효로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상법 제672조 제3항, 제669조 제4항), 형사합의금 항목의 위와 같은 특성상 중복보험의 경우에도 초과보험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으므로, 피보험이익을 따져 중복보험을 규제하려는 노력은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한편, 중복보험의 경우 보험계약자는 각 보험자에 대하여 각 보험계약의 내용을 통지하도록 되어 있는데(상법 제672조 제2항), 이를 어긴 경우 어떠한 효과가 발생하는지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이 없다. 그 효과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는 터에 그것만으로 보험계약을 무효로 볼 수는 없다. 나. 약관규제당국에 의한 규제 가능 여부 이 사건 플러스보험에 따른 보험가입자의 두터운 보호와 플러스보험의 중복가입으로 인한 폐해가 위 판결의 사안과 같이 일반인을 상대로 한 무자비한 보험사기 및 살인 범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약관규제당국이 형사합의지원금 액수에 제한을 가하고, 중복보험의 경우 미통지시 플러스보험 부분에 한하여 무효화하는 규정 등을 두도록 행정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 법원실무상의 주의사항 앞으로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면책 여부나 양형상의 고려를 위하여 ‘종합보험가입사실원’을 제출받음에 있어, 특히 교통사고의 발생 원인이 비전형적이고 중과실로 판단되는 경우 가해자가 플러스보험에 추가로 가입되어 있는지와 플러스보험상의 형사합의지원금 상당액이 피해자에게 실제로 지급되었는지를 살피고, 플러스보험이 중복가입된 경우에는 과실 여부의 판정에 있어 특별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라. 신속한 양형기준 설정 대상판결의 사안에서와 같은 신종 보험사기 범행이 가능하게 한 자양분 역할을 한 요인 중의 하나로 교통사고사범에 대한 온정적인 양형을 들 수 있겠다. 피해자가 노인인 경우에는 그 합의금이라는 것도 1,000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피해자 측과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의 중과실로 인한 교통사고 범행에 대하여도 온정적인 양형을 한다면 극단적으로는 이 사건 보험사기 범행과 같은 행위가 가능하게 된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살인죄, 뇌물범죄, 성범죄, 강도범죄, 횡령겧窩達滑? 위증범죄, 무고범죄에 관하여 양형기준을 설정하였고, 순차적으로 다른 범죄에 대하여 양형기준을 준비하고 있는데, 교통사고범에 관한 양형기준도 시급하게 필요하다. 마. 입법론적 해결방안-피해자의 직접청구권 인정의 필요성 책임보험에 있어서 보험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인하여 생긴 손해에 대하여 제3자가 그 배상을 받기 전에는 보험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피보험자에게 지급하지 못하며(상법 제724조 제1항), 제3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입은 손해에 대하여 보험금액의 한도 내에서 보험자에게 직접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상법 제724조 제2항).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도 피해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법 제9조). 한편,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보험계약 체결시에 그 타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상법 제731조 제1항). 이 사건 플러스보험은 보험계약자가 지출하는 형사합의금 등을 부보하는 것이고, 형사합의금이라는 것이 민사 손해배상금과는 구별되어 지급이 강제되는 것도 아니어서 별도의 근거규정 없이 보험계약자가 보험자로부터 받게 되는 형사합의지원금 등에 대하여 피해자가 바로 지급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타인의 사망 등으로 인하여 교통사고 가해자가 받게 되는 형사합의지원금은 마치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사망으로 인하여 이득을 취득하는 것이 되고, 그 금액도 상당한 액수에 이르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플러스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에는 피해자 측이 보험자에 대하여 직접 형사합의지원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형사실무에서는 피해자 측이 그러한 직접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피해자 측과 합의한 것으로 보아 양형을 하는 방안이 적절해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책임보험의 절이라 체계상 부적절한 면이 있으나 상법 제724조에 별도의 항을 두어, ‘자동차종합보험에 부가하여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형사합의금, 형사위로금, 형사보상금 등 민사상 손해배상금 외에 형사재판 등에서의 유리한 처분을 받기 위하여 지급되는 명목의 금원의 지급을 부보하는 경우에는 피해자 또는 그 상속인은 약정 보험금 한도 내에서 보험자에게 직접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입법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7. 결어 위 판결이 위 신종 보험사기와 그 수단으로서의 살인범행에 대하여 엄정한 양형을 한 것과 일사부재리원칙에 근거하여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으로 처벌받은 부분에 대하여 재차 살인죄로 의율할 수 없다고 본 것은 타당하다. 실정법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법원의 주된 임무여서 범죄의 진압과 관련하여 입법론을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아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실정법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목적이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본다면, 이 또한 법원의 임무라고 본다. 불특정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여 생명권 침해라는 중대한 법익침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이 사건 신종 보험사기 범죄를 접한 마음의 충격을 전하면서 부족한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2009-11-30
불능범(형법 제27조)의 처벌근거와 성립요건
1. 들어가는 글 형법 제27조가 규정하고 있는 불능미수에 대하여는 종래 별로 논의가 없었고 판례도 적었다. 그러던 중 1990년대부터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혼란과 논쟁은 해소되지 않았다. 판례의 입장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대법원 2007. 7.26. 선고 2007도3687 판결(소송비용편취 사건)이나 대법원 2005. 12.8. 선고 2005도8105 판결(초우뿌리 사건) 등과 관련하여도 논란이 있다. 제27조가 규정하는 ‘결과발생의 불가능’과 ‘위험성’표지가 서로 모순된다고 비판하거나, 위험성은 모든 미수범에 해당되므로 불필요한 요소로서 삭제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주장되고 있다. 법무부와 형사법학회에서 중단된 형법개정작업을 재개하였고,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의 내년 출범과 함께 형사법의 판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금까지의 학설과 판례에 아쉬운 점도 있어 부족하나마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2. 대법원판례의 입장 많은 판례 중 대표적인 최근의 판례 2개는 다음과 같다. <소송비용 편취 사건> 대법원 2005. 12.8. 선고 2005도8105 판결(사기미수) 【판결요지】 [1] 불능범의 판단 기준으로서 위험성 판단은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이것이 객관적으로 일반인의 판단으로 보아 결과 발생의 가능성이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2] 소송비용을 편취할 의사로 소송비용의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 경우, 사기죄의 불능범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초우뿌리 사건> 대법원 2007. 7.26. 선고 2007도3687 판결(살인·살인미수·살인음모) 【판결요지】 [1] 불능범은 범죄행위의 성질상 결과발생 또는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2] 일정량 이상을 먹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초우뿌리’나 ‘부자’ 달인 물을 마시게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행위가 불능범이 아닌 살인미수죄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3. 형법 제27조의 입법경위 먼저 우리형법의 입법과정을 보면, 1951년 형법정부초안 제27조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때에는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하여 불능미수도 원칙적으로 처벌하되, 다만 감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1927년 독일형법초안 제26조 제3항과 동일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1952년 국회 법사위 수정안 제27조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 단,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하여, 불능미수의 경우에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만 처벌하고 형은 임의적으로 감면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이 수정안이 결국 형법의 규정으로 제정된다. 불능미수의 형법규정에 ‘위험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입법례는 대단히 드물다. 그럼에도 우리 형법이 위험성을 규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1953년 6월26일 제16회 국회임시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던 엄상섭 의원은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법전편찬위원회에서는 많이 논의가 되다가 ‘불가능한 때에는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위험성이 있고 없고 간에 처벌하기로 하되 형은 감경도 하고 면제도 하여서 구체적인 사정에 맞추자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결국 미신범 즉 ‘자기가 증오하는 사람을 신불(神佛)에게 죽게해 달라고 기도하는 방법으로 하는 살인죄’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처벌하게 되는 것으로서 가혹할 뿐 아니라 가벌미수와의 한계가 명확하지 못하다. 그래서 ‘사후의 판단으로 해서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명확하다. 그러나 여러가지 점으로 보아서 도저히 그 결과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되면, 혹은 형을 감해주기도 하고 혹은 면제해주기도 하자 이렇게 고친 것이다.” 이러한 설명으로 볼 때, 위험성표지를 추가함으로써 불능미수의 처벌범위를 객관적으로 제한하고, 이를 통하여 처벌되지 않는 미신범과의 구별을 명확하게 하고자 의도하였음이 분명하다. 즉 객관주의적 형법의 관철, 형법의 보장적 기능의 강화, 민주적 인권보장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신동운/허일태 편저, 효당 엄상섭 형법논집 참조). 4. 독일, 일본의 비교법적 고찰 불능미수에 관한 독일과 일본의 입법례나 개정안은 일관되지 않고 임의적 감경이나 불처벌의 입장 등으로 변화가 심하다. 1871년의 독일제국형법에는 불능미수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 1922년 라드부르흐 독일형법초안 제24조 제4항은 행위자의 중대한 무지로 인한 불능미수는 불벌의 입장을 취하였다. 1927년 독일형법초안은 중대한 무지라는 표현을 포기하고 다시 불능미수에 대한 임의적 감면으로 돌아갔다. 1975년에 개정된 현행 독일형법 제23조는 불능미수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미수범의 일반규정에 포함시키면서 현저한 무지인 경우에 감면할 수 있는 규정을 두었다. 일본의 경우 1907년에 개정된 현행 일본형법 제43조는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여 그 기수에 이르지 못한 자는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 단 자기의 의사에 의하여 범죄를 중지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고 규정하여 장애미수, 중지미수는 규정하지만 불능미수에 대하여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1927년 일본형법 예비초안 제23조는 현저한 무지로 인한 불능미수는 불벌하는 1922년 라드부르흐형법 초안의 태도를 따르고 있다. 1931년의 일본형법가안 총칙 제22조는 ‘결과의 발생함이 불능한 경우에 있어서 그 행위가 위험한 것이 아닌 때에는 이를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였다. 형법 제27조는 이전에는 독일이나 일본에서 단지 형법개정초안에만 사용된 적이 있던 ‘위험성’ 표지를 명시적으로 입법한 최초의 형법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러한 점에서 비교법적으로 그 의미가 크다. 5. 해석상의 쟁점과 私見 우리형법 제27조의 특유한 법문언은 해석상의 쟁점을 제공하고 있다. 모든 미수범은 위험성이 있으므로 동조의 위험성표지는 독자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견해도 있고, 결과발생의 가능성이 없다면 위험성이 없다는 것이므로, 동조는 그 자체로 모순되어 ‘위험성’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그러나, 형법 제27조의 불능미수는 당해 법익의 침해에 대한 현실적 위험성(actual dangerous-ness)은 없지만, 당해법익의 침해에 대한 잠재적 위험성(potential dangerous ness)이 있어서 처벌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당해법익의 침해에 대한 ‘현실적 위험성’은 없지만, 법익침해의 ‘잠재적 위험성’이 있으면 불능미수로 처벌한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잠재적 위험성(poten-tial dangerousness)’이란, 법익침해의 위험성이 행위를 통하여 표출되었으나 착오와 같은 우연적 사정으로 인하여 현실화되지 않은 위험성을 말한다. 즉, 객관적 측면에서는 법익침해의 위험이 없는 행위이나, 행위자의 의사를 고려할 때 법익을 침해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표출된 경우이다. 예를 들어, 설탕을 흰 독약이라고 착각하고 커피잔에 넣어 먹게 한 경우, 객관적으로는 설탕이 든 커피를 마시게 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현실적·구체적 위험도 없지만, 행위자는 독약이라고 생각하고 먹게 한 것이므로 범인의 의도적 행위를 통하여 법익에 대한 잠재적 위험성이 표출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 때, 불능미수는 법문상의 모순 없이 그 처벌근거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6. 대법원판례의 모호성 대법원판례는 형법 제27조의 불능(미수)범에 대하여 모호하게만 판시하고 있으며, 때로는 이중기준을 적용하는 것처럼 보여 논란이 된다. 전술한 ‘소송비용편취 사건’의 요지는 “불능범의 판단 기준으로서 위험성 판단은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이것이 객관적으로 일반인의 판단으로 보아 결과 발생의 가능성이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므로, 학설상 추상적 위험설과 동일하다. 이에 반하여, ‘초우뿌리 사건’의 요지는 “불능범은 범죄행위의 성질상 결과발생 또는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는 것이므로, 구객관설의 기준과 같다. 그렇다면 이 두 판결의 판시사항은 서로 모순되거나 다른 입장을 취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건대 소송비용편취 사건은 불능미수의 ‘위험성’표지에 대한 것이지만, 초우뿌리 사건은 ‘결과발생의 불가능’ 표지에 대한 판시내용으로 볼 수 있고, 아무런 모순도 발생하지 않는다. 판례는 이 점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판례가 사용하는 ‘불능범’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불분명하고 다의적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위험성이 없어 처벌되지 않는 ‘협의의 불능범’을 의미할 때도 있고(소송비용편취 사건의 경우), 단지 결과의 발생만이 불가능한 ‘광의의 불능범’을 의미하기도 한다(초우뿌리 사건의 경우). 같은 용어를 아무런 설명 없이 다른 의미로 혼동하여 사용하는 것은 판례의 공신력과 법적 안정성,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종래 학설은 가벌적인 ‘불능미수’와 불가벌적인 ‘불능범’을 구별하고 있다. 판례는 주로 불능범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의미는 모호하다. 사견으로는 용어의 통일을 기할 필요가 있으며, 그 방향은 불능범과 불능미수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한다. 즉 형법 제27조의 표제이기도 한 ‘불능범’은 불능미수범의 축약으로 보는 것이다. 형법 제26조의 표제가 ‘중지범’이지만 ‘중지미수’로 이해하는 것과 동일하다. 7. 결론 형법 제27조의 불능범 또는 불능미수(범)는 착오로 인하여 당해법익의 침해에 대한 현실적인 위험성은 없지만 행위자의 범행의도로 표출된 잠재적 위험성이 있어서 처벌되는 미수범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법익침해의 현실적 위험성이 있으면 장애미수(가능미수)로 형법 제25조에 의하여 처벌되고, 잠재적 위험성도 없으면 처벌되지 않음은 형법 제27조의 규정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정한 법익에 대한 결과발생의 가능성인 현실적 위험성은 객관적, 사전적으로 판단하고, 결과발생의 잠재적 위험성은 행위자가 인식한 사정에 대하여 과학적 일반인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족할 것이다.
2008-11-24
법조경합과 실질적 불이익설
Ⅰ. 사안 군인인 D에게 “소속 군부대 내에서 현금을 19회 절취하고 야간에 취사병 생활관에 침입하여 현금을 2회 절취한 혐의”의 조사가 진행되었다. 군검찰관은 D를 형법상의 상습절도죄위반(형법 제332조, 제329조, 제330조, 법정형 15년 이하의 징역) 혐의로 기소(항소심에 이르러 공소장변경이 허가된 결과이고 법정형은 ‘징역 15년 이하’)되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으로 약칭함) 제5조의4 제1항은 형법상의 상습절도와 구성요건이 동일하고 법정형만이 가중(법정형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되어 있다. 항소심은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은 형법상의 상습절도와 구성요건이 동일하고 법정형만이 가중되어 있어서 피고인 D의 방어권 행사에 아무런 불이익을 초래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공소장변경절차를 경유하지 아니하고 D에게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 형법 제329조, 제330조를 적용하여 형을 선고하였다. D가 상고하였다. Ⅱ. 쟁점 검사가 형이 가벼운 일반법의 법조를 적용하여 그 죄명으로 기소하였는데 법원이 공소장변경절차의 경유없이 형이 무거운 특별법의 법조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할 수 있는가? Ⅲ. 재판요지(파기환송)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는 경우에는 법원이 공소장변경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일부 다른 사실을 인정하거나 적용법조를 달리한다고 할지라도 불고불리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지만, 방어권행사에 있어서 실질적인 불이익 여부는 그 공소사실의 기본적 동일성이라는 요소 외에도 법정형의 경중 및 그러한 경중의 차이에 따라 피고인이 자신의 방어에 들일 노력겱챨즯비용에 관한 판단을 달리할 가능성이 뚜렷한지 여부 등의 여러 요소를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 사건과 같이 일반법과 특별법이 동일한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고 어느 범죄사실이 그 구성요건에 해당하는데 검사가 그 중 형이 보다 가벼운 일반법의 법조를 적용하여 그 죄명으로 기소하였으며, 그 일반법을 적용한 때의 형의 범위가 ‘징역 15년 이하’이고, 특별법을 적용한 때의 형의 범위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서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비록 그 공소사실에 변경이 없고 또한 그 적용법조의 구성요건이 완전히 동일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적용법조의 변경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법원은 공소장변경 없이는 형이 더 무거운 특별법의 법조를 적용하여 특별법 위반의 죄로 처단할 수는 없다. Ⅳ. 평석 1. 공소장변경 요부의 판단기준 공소장변경요부의 판단기준에 관하여는 종래 공소사실의 사실적 측면을 중시하는 입장(사실기재설)과 법률적 측면을 중시하는 입장(동일벌조설·법률구성설)이 경쟁하고 있었다. 사실기재설은 법률적 구성에 차이가 없더라도 법원이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하려면 공소장변경을 요하지만 모든 미세한 사실의 변경에도 공소장변경을 요구함은 번잡하고 무의미하므로 피고인의 방어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 염려가 없는 때에는 공소장변경 없이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종래의 통설·판례)로서 공소사실의 사실적 측면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이에 반하여 동일벌조설·법률구성설은 “구체적 사실관계가 다르더라도 구성요건 혹은 법률구성(작위범인가 부작위범인가 등)에 영향이 없는 한 공소장변경 없이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대로 구체적 사실관계에 변함이 없다 하더라도 적용법조가 달라지면 공소장변경이 필요하다”는 견해로서 공소사실의 법률적 측면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체로 1990년 이후의 문제상황은 사실기재설(실질적 불이익설) 내부에서 ‘피고인의 방어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 염려’를 어떻게 판정할 것인가 하는 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2. 방어권행사의 실질적 불이익 여부의 판단기준 이에 관하여는 구체적인 소송의 경과를 고려하지 않고 공소사실과 인정사실(판명사실)을 일반·추상적으로 판단하여 피고인에게 방어상의 불이익을 줄 것인가 여부를 판정하려는 추상적 방어설과 특정사건의 구체적인 공판심리과정, 피고인의 범행과 관련한 주장 등을 종합하여 공소장변경절차의 생략이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으로 지장을 줄 것인지 여부를 가려서 판단하려는 구체적 방어설이 있다. 본 사안에서 기소된 D에 대한 공소사실과 항소심이 인정한 범죄사실은 사실의 차원에서는 전혀 동일하다. 검사가 공소장에서 특정한 공소사실과 항소심이 인정한 범죄사실은 실체법상의 법조경합관계에 있고 양자(공소사실과 범죄사실)는 법조경합 중에서도 일반특별관계에 해당한다. 양자의 관계가 이런 관계라면 공소사실의 사실적 측면을 중시하는 입장(사실기재설)에서는 본 사안이 사실관계에는 변동이 없고 법원이 법률적용만 달리할 수 있는 사안이므로 법원이 공소장변경절차 경유없이 특가법을 적용하여도 문제될 일이 없다고 볼 여지가 있다. 본 사안의 항소심은 이런 견지에서 검사의 공소장변경신청절차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특가법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비록 그 공소사실에 변경이 없고 또한 그 적용법조의 구성요건이 완전히 동일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적용법조의 변경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한다”며, 법원은 “공소장변경 없이는 형이 더 무거운 특별법의 법조를 적용하여 특별법 위반의 죄로 처단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안의 항소심과 대법원은 모두 사실기재설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결론을 도출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처럼 본 판례는 공소장변경요부의 판단기준이 이동된 사정을 보여주고 있고 그 중에서도 추상적 방어설의 견지가 응용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3. 검사의 기소재량의 긍정 본 판례는 소폭이나마 검사의 기소재량을 긍정하려는 사고를 전제하지 아니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실체법의 ‘일반특별관계의 법조경합’ 이론은 법정형이 무거운 법조를 법정형이 가벼운 법조에 우선하여 적용할 것을 요구하지만([대법원 2004. 1.15. 선고 2001도1429 판결공(2004, 368)] 참조), 대법원은 “검사가 모종의 합리적인 이유로 법정형이 가벼운 법조를 적시하여 기소한 경우에 법원은 검사의 공소장변경허가신청을 경유하지 아니하고 법정형이 무거운 다른 법조를 적용하여 피고인을 처단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일정한 범위에서 검사의 기소재량을 긍정하고 있다. 이 점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판례는 [대법원 2008.7.10. 선고 2008도3747 판결(공2008하, 1217)]이다. 이 판결의 사안은 피고인들이 공모하여 피해자(15세)를 약취한 다음, 피해자의 안전을 염려하는 그의 모친의 우려를 이용하여 재물을 취득하고자 그 모친에게 3억원을 요구하였으나 피해자가 탈출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안이다. 이 사안에서 검사는 피고인들을 ‘미성년자 약취 후 재물취득 미수’ 혐의(가벼운 처단형)로 기소하였는데 항소심은 공소장변경 없이 ‘미성년자 약취 후 재물요구 기수’에 의한 특가법 위반사실(무거운 처단형)을 인정하여 처단하였다. 피고인이 상고하자 대법원은 “‘미성년자 약취 후 재물취득 미수’에 의한 특가법 위반죄에 대하여는 형법 제25조 제2항을 적용하여 감경을 할 수 있으므로 법원의 감경 여부에 따라 처단형의 하한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미수감경 및 작량감경에 의하여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검사도 피고인3에 대하여는 미수감경과 작량감경을 한 형기범위 내에서 징역 3년을 구형하였다) 공소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피해자측과의 합의를 위해 노력한 결과 제1심판결 선고 이후 피해자측과 합의까지 한 사실을 엿볼 수 있으므로, ‘미성년자 약취 후 재물취득 미수’에 의한 특가법 위반죄로 공소가 제기된 이 사건에서 법원이 공소장변경 없이 ‘미성년자 약취 후 재물요구 기수’에 의한 특가법 위반죄로 인정하여 미수감경을 배제하는 것은 피고인들에게 예상외의 불이익을 입게 하는 것으로서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법조경합’이라는 실체법이론은 특정한 법조가 다른 법조에 우선하여 적용되어야 하는 논리적 관계를 긍정하는 이론이지만 소송상으로는 그런 이론의 기계적 적용을 유보하고 검사의 합리적 기소재량(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하면 법정형이 가벼운 법조를 적용하여 기소하는 행위등)을 긍정하여야 할 경우가 있다. 상상적 경합의 경우에도 검사의 합리적 기소재량을 존중하여야 할 때가 있다. 4. 추상적 방어설의 원칙과 구체적 방어설의 예외 그러나 대법원이 방어권행사의 실질적 불이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의 구체적 방어설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강간치상사실로 기소되었지만 판명사실이 준강제추행사실인 경우에 법원이 공소장변경절차 없이 준강제추행죄를 인정하는 것이 허용될 것인가’가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하여 이 사건 범행 자체를 부인하여 왔고, 가사 피해자의 진술과 같은 내용의 실행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정도의 행위만으로는 강간의 범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변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준강제추행죄는 강간치상죄의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고,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에 포함되어 있어 원심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심리되었”으므로 “이와 같은 사정 하에서라면 피고인을 공소장변경절차 없이 준강제추행죄로 처벌하더라도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08.5. 29. 선고 2007도7260 판결(공2008하, 954)]고 판시하여 구체적 방어설의 견지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또 공소사실의 축소인정인 경우와 죄수판단만을 다르게 인정할 경우 등에는 굳이 검사의 공소장변경신청절차의 경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판례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본 판결 이전에는 구체적 방어설의 견지에 선 판결이 주류를 형성하였으나 본 판결을 계기로 추상적 방어설의 입지가 조금씩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소장변경요부의 문제를 오로지 ‘실질적 불이익’이라는 ‘포착하기 어려운 구체적 개념’을 판단기준으로 삼아 처리하는 것은 당사자, 특히 피고인의 예측가능성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구체적 방어설의 견지에 추상적 방어설의 견지를 첨가·강화시키는 것은 당사자주의적 소송운영 방향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본 판결의 결론은 이미 1962년에 제시[대법원 1962. 6.28. 62도66(국가보안법위반 집10(3)형,007]된 바 있지만 본 판결은 그 이유를 상세히 명시한 점에서 새롭게 주목할 가치가 있다.
2008-11-20
준강도죄의 기수시기에 대한 대법원판결의 문제점
[다수의견] 형법 제335조에서 절도가 재물의 탈환을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죄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한 때에 준강도로서 강도죄의 예에 따라 처벌하는 취지는, 강도죄와 준강도죄의 구성요건인 재물탈취와 폭행·협박 사이에 시간적 순서상 전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질적으로 위법성이 같다고 보기 때문인바, 이와 같은 준강도죄의 입법 취지, 강도죄와의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준강도죄의 기수 여부는 절도행위의 기수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별개의견] 폭행·협박행위를 기준으로 하여 준강도죄의 미수범을 인정하는 외에 절취행위가 미수에 그친 경우에도 이를 준강도죄의 미수범이라고 보아 강도죄의 미수범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함이 상당하다. [반대의견] 강도죄와 준강도죄는 그 취지와 본질을 달리한다고 보아야 하며, 준강도죄의 주체는 절도이고 여기에는 기수는 물론 형법상 처벌규정이 있는 미수도 포함되는 것이지만, 준강도죄의 기수·미수의 구별은 구성요건적 행위인 폭행 또는 협박이 종료되었는가 하는 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법규정의 문언 및 미수론의 법리에 부합한다. <사실관계> 피고인이 공소외인과 합동하여 양주를 절취할 목적으로 장소를 물색하던 중, 2003. 12. 9. 06:30경 부산 부산진구 부전2동 522-24 소재 5층 건물 중 2층 피해자 1이 운영하는 주점에 이르러, 공소외인은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서 피고인과 무전기로 연락을 취하면서 망을 보고, 피고인은 위 주점의 잠금장치를 뜯고 침입하여 위 주점 내 진열장에 있던 양주 45병 시가 1,622,000원 상당을 미리 준비한 바구니 3개에 담고 있던 중, 계단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공소외인을 수상히 여기고 위 주점 종업원 피해자 2, 이윤룡이 주점으로 돌아오려는 소리를 듣고서 양주를 그대로 둔 채 출입문을 열고 나오다가 피해자 2 등이 피고인을 붙잡자, 체포를 면탈할 목적으로 피고인의 목을 잡고 있던 피해자의 오른손을 깨무는 등 폭행하였다. <평 석> 1. 문제의 소재 준강도죄(형법 제335조)에 관하여 최근 논란이 많다. 특히 준강도죄의 기수시기에 관하여 대상판결은 종래의 ‘폭행협박시설’을 폐기하고, ‘절취행위시설’로 입장을 변경하였다. 이는 일부학설의 태도와 괘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수의견의 절취행위시설은 그 논리와 결론에 있어서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 무엇보다 준강도죄의 본질과 관련하여 본죄를 신분범으로 볼 것인지, 결합범으로 볼 것인지에 관하여 학설과 판례는 논란이 있다. 주로 준강도죄를 신분범으로 보는 판례에 의할 때, 대상판결은 내재적으로 모순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 판례평석에서는 준강도죄의 본질과 관련하여 다수의견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2. 준강도죄의 본질 준강도죄의 기수시기에 대하여 논하기 이전에 먼저 준강도죄의 본질 또는 성격이 무엇인지 정리하여야 한다. 판례와 학설의 일부는 준강도죄를 신분범으로 본다. 즉 절도범인이라는 행위주체가 탈환의 항거, 체포의 면탈 또는 죄적의 인멸이라는 목적으로 폭행, 협박을 가할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신분범설이라고 하자. 신분범설에 의하면, 준강도죄의 행위주체는 절도범인이고, 절취는 절도범인이라는 행위주체를 성립하는 선행행위에 불과하다. 준강도죄의 실행행위는 폭행·협박이 될 뿐이다. 이에 반하여, 준강도죄는 절도라는 제1의 실행행위와 폭행·협박이라는 제2의 실행행위가 결합하여 준강도죄를 구성한다는 견해는 결합범설이다. 결합범설에 의하면, 준강도죄는 두 개의 실행행위가 결합된 것이고 누구나 준강도죄를 범할 수 있으므로 신분범이 아니다. 필자를 포함한 일부 학설은 준강도죄를 결합범이라고 보고 있다(한상훈, 결합범의 구조와 신분범과의 관계, 법조, 2005.1, 96면; 한상훈, 형법상 결합범의 유형과 입법론적 검토, 형사법연구, 22호 특집호, 2005, 88면). 3. 신분범설과 결합범설의 구별실익 신분범설과 결합범설은 일견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분석하면 많은 차이점이 있다. 첫째, 사후적 가담자에 대한 법리가 달라진다. 갑이 절도를 범하고 체포를 면탈하기 위하여 폭행할 때에 을이 가담한 사례를 예로 들어 보자. 신분범설에 의하면, 갑의 절도사실을 인식하고 폭행에만 가담한 을에 대하여 절도범인이라는 신분자의 범행에 가담한 비신분자의 행위로 파악된다. 즉 공범과 신분에 관한 형법 제33조가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와 동일한 사후강도죄(일본형법 제238조)에서 일본판례와 학설은 공범과 신분의 문제로 해결한다. 이에 반하여 결합범설에 의하면, 사후에 가담한 을은 승계적 공동정범의 문제가 된다. 신분범설에 의하면, 준강도죄가 진정신분범인지 부진정신분범인지, 그리고 형법 제33조의 본문과 단서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준강도죄를 부진정신분범으로 보고 형법 제33조에 대한 판례의 입장에 의하면, 사후가담자인 을은 준강도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하되 그 처벌은 폭행죄에 의하게 된다. 준강도죄를 독립된 범죄로서 진정신분범으로 보면, 갑과 을은 모두 준강도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된다. 이와 달리 결합범설의 입장에 서면, 승계적 공동정범의 학설에 따라 을은 폭행죄로 처벌되거나 폭행죄와 준강도죄의 방조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두 번째 차이점은 미수와 기수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중 기수시점에 대하여 먼저 살펴본다. 4. 준강도죄의 기수시점 준강도죄를 신분범으로 보는 판례와 일부학설은 준강도죄의 기수시점을 인정함에 있어서 폭행·협박시설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논리적, 체계적으로 불가피한 귀결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범죄의 기수라는 것은 당해 범죄의 구성요건요소가 모두 충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성요건요소는 행위주체, 객체, 실행행위, 결과, 인과관계 등을 말한다. 거동범이라면 행위객체에 대한 실행행위가 존재하여야 하며, 결과범이라면 행위객체에 대한 실행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가 발생하여야 기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행위주체도 그러한 구성요건요소 중에 하나일 뿐이다. 행위주체가 결여되어 있으면 기수에 이를 수 없겠지만, 반대로 행위주체가 존재한다고 언제나 기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행위주체 이외의 다른 구성요건요소가 충족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행위주체는 범죄가 기수에 이르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판례와 같이 신분범설에 의할 때, 준강도죄에서 절도는 행위주체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행위주체인 절도가 기수인지 여부가 준강도죄의 기수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정작 실행행위인 폭행·협박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점에서 대상판결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여 버렸다. 대상판결의 논지를 일관되게 적용하면, 위증죄는 증인이 되는 때에 기수에 이르고 진술여부는 관계가 없다. 수뢰죄의 기수시기는 공무원이 되는 시점이고 뇌물을 수수, 약속했는지 여부는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결론의 오류는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5. 준강도죄와 강도죄의 관계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이러한 기수시점에 대한 체계적, 논리적 원칙보다는 준강도죄와 강도죄의 규범적 동일성에 주목한다. ‘강도죄와 준강도죄의 구성요건인 재물탈취와 폭행·협박 사이에 시간적 순서상 전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질적으로 위법성이 같고’, 강도죄와의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준강도죄의 기수 여부는 절도행위의 기수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강도죄와 준강도죄가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고 양형의 균형성을 고려한다면, 다수의견과 같은 절취행위기준설이 아니라 별개의견과 같이 절도와 폭행·협박이 모두 기수에 이르러야 한다는 종합설을 취해야 한다. 강도죄는 폭행·협박에 의해 외포된 상태에서 강취하여야 기수에 이른다. 즉 폭행·협박과 절취가 모두 기수에 이르러야만 기수에 이른다.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 미수인 상태에서 절취하였다면 강도미수나 공갈죄가 성립할 뿐이다. 강도죄는 폭행·협박이라는 실행행위와 절취라는 실행행위가 결합된 결합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도죄의 본질을 시간순서상의 전후만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절취라는 실행행위와 폭행·협박이라는 실행행위가 모두 기수에 이르러야만 준강도죄도 기수에 이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강도죄와 준강도죄의 동가치성을 역설하고 나서는 오히려 준강도죄는 폭행·협박에 관계 없이 절도만 기수에 이르면 성립된다고 결론짓는다. 이는 다수의견 자신의 전제에 의할 때에도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6. 준강도죄의 미수시점 준강도죄는 미수범을 처벌한다(형법 제342조). 준강도죄의 실행의 착수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지는 학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신분범설에 의하면, 실행행위가 개시되거나 이에 밀접한 행위를 개시한 시점이라고 볼 것이다. 준강도죄의 실행행위는 폭행·협박이다. 즉 절도범인이 폭행·협박을 개시할 때에 준강도의 미수가 성립된다고 볼 것이다. 결합범설에 의하면, 전체 결합범의 고의로 제1의 실행행위를 개시할 때에도 결합범 전체에 대한 실행의 착수가 인정된다. 야간주거침입절도의 의사로 주거에 침입할 때에 이미 야간주거침입절도죄의 미수가 성립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준강도의 의사로서 절취를 개시할 때에 준강도죄의 미수가 성립한다고 볼 것이다. 대상판결에 의하면, 준강도죄의 실행의 착수를 언제 인정할지 문제된다. 준강도죄를 신분범으로 보는 판례에 의하면, 실행행위는 폭행·협박인데, 기수시점은 이미 절도가 기수에 이르면 인정된다. 즉 절도기수에 이른 범인은 폭행·협박이라는 실행행위를 아직 하기 이전에도 준강도죄의 기수에 이르러 버린다. 준강도죄의 미수에도 이르지 않았는데 기수가 성립한다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7. 맺음말 준강도죄의 본질과 관계, 그리고 다수의견 자신의 논리로 보아도 다수의견의 결론은 부당하다.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준강도죄는 강도죄와의 관계에서 보아도 결합범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만 준강도죄는 단순히 강도죄의 시간적 변형 이외에 체포면탈, 죄적인멸이라는 국가적 법익에 대한 보호도 포함하고 있는 범죄라고 할 것이다(문제가 있다면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절도와 폭행·협박 모두의 기수를 요구하는 별개의견보다는 절도는 미수이든 기수이든 폭행·협박을 기준으로 기수여부를 판단하는 종래의 판례나 반대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2007-03-12
준강도의 예비
1. 사실관계 피고인이 강도예비, 특가법위반(절도)의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대상판례에서 문제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현행범으로 체포될 당시 칼과 포장용 테이프 등을 휴대하고, 등산용칼과 회칼을 피고인의 차량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이 절도 범행이 발각되는 경우 그 체포를 면탈하는 등의 목적으로 이를 휴대한 것임을 시인한 점등을 고려하여 피고인이 준강도의 예비에 해당한다고 보아 이를 강도예비죄로 기소하였다. 원심(대구지법 2004. 7. 6. 선고 2004고단3287 판결)은 이에 무죄를 선고하자 검사가 항소하였다. 항소이유로 강도예비죄를 처벌하는 이유가 강도죄의 흉폭성에 비추어 강도범행의 결의가 객관적·외부적으로 드러난 이상 실행의 착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이고, 준강도의 경우에도 그 흉폭성과 행위의 불법성이 강도와 같다고 보아 강도죄와 동일하게 처벌하고 있는 점, 강도상해, 강도살인, 강도강간죄 등에는 준강도가 포함되는 점을 감안하면 강도예비의 강도에 준강도가 포함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하여, 원심은 강도예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점을 들었다. 2. 판결요지 피고인이 야간에 등산용칼, 후레쉬, 포장용 테이프를 휴대하고 배회한 사실만으로는 피고인이 강도할 목적으로 예비하였다고 인정하는데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필자 부기: 가사 절도와 함께 체포면탈 등을 목적으로 위와 같은 물거을 휴대하고 피해대상을 물색하며 배회한 점이 충분히 입증되었더라도,) 원심 판시와 같은 이유로 준강도만을 예비한 행위를 강도예비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인정된다. 3. 판례의 검토 1) 준강도의 예비죄 성립가능성 대상판례의 사실관계가 다소 불명확한데, 피고인이 절도를 위하여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고 나아가 범행도중 발각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체포면탈 등의 목적으로 흉기를 휴대한 상태로 피해대상을 물색하던 중,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안이다. 검사는 피고인에 대하여 준강도죄가 통상의 강도죄와 폭행, 협박 등이 재물강취 등의 수단이 아니고, 재물의 탈취행위에 후행함으로 그 행위구조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폭행, 협박과 재물탈취 등의 순서만 역전되어있을 뿐, 전체적으로 유사한 행위태양과 불법성을 이유로 강도죄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어, 준강도를 목적으로 한 일종의 준비행위로 파악, 강도예비(형법 제343조)를 적용, 기소하였다. 원심 및 대상판결(항소심)은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체포면탈 등을 목적으로 흉기를 휴대하였는지의 입증이 명확하지 않고, 설사 입증되었더라도, 준강도를 예비한 행위를 강도예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하는데, 그 논거가 불분명하다. 이하에서는 준강도죄의 구조와 함께 준강도의 예비행위에 대한 강도예비죄 적용가능성을 살펴본다. 2) 준강도죄의 구조와 강도예비죄의 적용가능성 (1) 준강도죄의 성격과 구조 먼저, 준강도죄의 성격에 대하여 ① 강도죄의 특수한 유형, ② 절도죄의 가중유형, ③ 폭행, 협박죄의 가중적 구성요건 또는 ④ 절도나 강도죄의 가중유형이 아니라 독립된 구성요건으로 파악하는 견해 등이 있다. 한국의 지배적 시각은 ① 또는 ④라고 하겠는데, 어떠한 견해에서든지, 준강도죄는 폭행, 협박과 재물탈취행위의 결합형식이 통상 강도죄와 다르지만, 불법내용을 강도죄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점에서 강도죄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따라서, 폭행, 협박의 정도도 강도죄와 같이 평가하고, 그 시기도 절도의 기회시 행하여질 것을 요구한다(이재상, 형법각론 제4판, 박영사, 2001, 294면; 임웅, 형법각론, 법문사, 2001, 301면 등. 판례도 유사한 입장이다. 대법원 2004. 11. 18. 선고 2004도5074 전원합의체 판결). 아울러, 준강도죄의 구조에 대하여, ① 절도와 폭행·협박의 결합범으로 보는 입장(결합범설. 임웅, 전게서, 300~301면; 山口厚, 刑法各論 補訂版, 有斐閣, 2005, 227~229頁), ② 절도에 의한 폭행·협박이라는 신분범으로 보는 입장(신분범설. 박상기, 형법각론, 박영사, 1999, 269면; 참고로, 진정신분범설로 前田雅英, 刑法講義各論 第3版, 東京大學出版會, 1999, 203頁; 부진정신분범설로, 大谷實, 新版刑法講義各論, 成文堂, 2000, 238頁)이 있다. 주로 준강도죄의 성격을 위의 ② 내지 ③으로 보는 입장에서 ②설을 취한다. 준강도죄에 대한 견해 차이에 따라 준강도죄의 기수·미수 판단기준 및 폭행, 협박행위만 관여한 후행자의 처리방식 등이 달라진다. 즉, 신분범설에서는 폭행, 협박을 기준으로 기수, 미수를 판단하게 되지만, 결합범설에서는 절도의 기수, 미수여부를 기준으로 하게 된다. 또한 폭행, 협박에만 관여한 후행자에 대하여 신분범설에서는 준강도죄의 공범(진정(구성적)신분범설) 내지 폭행, 협박의 공범(부진정(가감적)신분범설)로 파악하지만, 결합범설에서는 승계적 공범의 문제로 파악하여, 승계적 공범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단지 폭행, 협박죄의 공범만이 성립하게 된다(이재상, 전게서, 295면. 한국에서는 결합범설이 상대적으로 다수적 입장이다). (2) 강도예비죄의 적용가능성 그렇다면, 준강도죄에 있어서도 강도예비죄의 적용이 가능한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사례를 확인하기 어렵다. 대체로 학설의 다수입장에서는 부정적 견해를 취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수견해는 준강도죄의 절도는 적어도 절도미수단계에 도달할 것을 요구하고 예비행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절도의 예비행위만 하고, 폭행, 협박에 나아가 경우는 단순히 폭행, 협박죄만 구성하게 되는데, 만일 준강도의 예비를 긍정하면 폭행, 협박이 예비행위 만에 그친 때에도 강도예비를 구성하게 된다. 나아가 결합범설에서는 준강도죄의 예비를 인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절도예비나 폭행, 협박의 예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음에도 이를 결합하여 준강도의 예비로 파악하기는 논리적으로 곤란하다(특히, 동일한 결합범설에서도, 준강도죄를 강도죄의 특수한 유형이 아닌 독립된 범죄로 이해하는 경우, 준강도의 예비를 인정하기 더욱 어렵다). 또한 준강도죄는 절도행위 이후, 사후적으로 폭행, 협박에 나아가게 됨으로서 그 구조가 강도죄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강도죄와 동일하게 평가, 처벌하는 범죄인데, 절도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단계에서 강도예비로 포착하여 처벌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곤란하고, 현실적으로도 생각하기 어렵다. 아울러, 만일 준강도의 예비죄가 가능하다면, 대부분의 절도예비행위가 강도예비죄로 파악되는 결과가 야기될 것이고, 목점범인 예비죄에 있어서 목적은 기본범죄에 대한 확정적 인식을 그 내용으로 하는데, 준강도의 예비사례는 대부분, 절도가 1차적인 목적이고, 사후의 폭행, 협박은 조건부, 불확정적인 형태에 그치는 점도 문제이다. 신분범설에서도 준강도죄의 예비를 인정하기에는 난점이 있다. 준강도죄는 절도의 신분을 갖춘 행위자만이 주체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신분을 갖추지 못한 자가 준강도예비죄의 행위주체가 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西田典之, 刑法各論 第2版, 弘文堂, 2002, 178頁; 참고로, 일본형법의 준강도죄 규정은 강도예비죄 보다 뒤에 위치함으로써, 법문상으로도 준강도의 경우 예비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는 점도 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한국형법은 준강도죄의 규정 이후에 강도예비죄 규정을 둠으로, 이러한 논란은 문제될 것이 없다). 반대로 준강도의 예비를 긍정하는 견해와 그 논거도 생각할 수 있다. 즉, 첫째, 준강도죄가 강도죄와 같이 처벌되는 것은 준강도죄가 강도죄에 필적하는 불법을 갖춘 점에 있는데, 이를 준강도 예비의 경우에 특별히 다르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둘째, 현실적으로 절도행위 외에 그 이후의 사태전개에 따라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할 의사로 이를 준비하는 행위는 충분히 가능하고, 단순히 절도만을 준비하는 행위와 구분할 수 있다. 일본 판례사안이지만, 피고인들이 보석점으로부터 보석을 절취하기로 계획하고 범인 중 일부가 쇼윈도를 부수어 보석을 절취, 도주하고 다른 공범이 만일 범인들을 추적하여 오는 점원 등이 있다면, 이에 폭행을 가하여 체포를 면탈하기로 범인들 간 상호 역할분담을 한 사안도 있다(大阪高判平成4·6·30判例集未登載). 셋째, 폭행, 협박의 의사가 조건부라 하더라도 조건부 의사가 반드시 불확정적 의사를 지칭하지 않는다. 절도가 범행 중, 발각되면 폭행, 협박을 가할 확정적 의사를 갖는 예도 가능하다. 넷째, 신분범설에서 분명히 행위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신분이 필요하지만, 신분이 없더라도 예비죄를 구성할 수는 있는 점 등을 논거로 들 수 있다(山口厚, 前揭書, 227頁, 前田雅英, 前揭書 220頁, 大谷實, 前揭書, 250頁. 참고로, 일본의 경우, 다수견해는 준강도의 예비를 긍정한다. 大谷實 編, 判例講義 刑法 II, 悠悠社, 2002, 69頁).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대상판례 외에 준강도의 예비를 언급한 판례는 없다. 참고로, 일본 最高裁判所 판례에서 피고인이 사무실에 침입, 절도를 계획하고 펜치 등 필요한 도구와 함께 만일 범행도중 발각된 경우, 체포면탈에 사용하기 위하여 등산용 나이프 등을 준비하고, 범행대상을 물색 중, 불심검문에 의하여 검거된 사례에서, 준강도죄의 예비를 인정한 예가 있다( 最判昭和54·11·19刑集33卷7·710頁,判時953·131頁). 4. 결 론 현재 대상판례는 상고 중으로, 대법원이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 매우 흥미롭다. 사견으로는 준강도의 예비가 긍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준강도의 예비행위도 현실사례에서 충분히 상정할 수 있으며, 통상 강도예비행위와도 그 위험성 등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준강도죄를 결합범으로 파악하는 입장(사견으로는 준강도의 기·미수판단기준, 공범문제등을 고려할 때, 결합범설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에서는 준강도에 있어서 강도예비죄를 인정함에 앞서 지적한 난점이 문제이다. 그러나 준강도죄는 강도죄의 특수한 형태로, 결합범으로서의 구조를 절도행위과정에서 발생하는 폭행·협박행위의 결합이 아니고, 절도행위와 폭행, 협박행위가 일정한 관련성을 갖고 혼합된 결합 형식으로 이해한다면, (결합범설에서도) 준강도에 있어서도 강도예비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6-10-30
부동산소유권 보존등기말소청구를 통한 소송사기 실행의 착수시기와 기수시기
Ⅰ. 사건경과와 논점 소송사기란 민사소송에서 “법원을 기망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 등을 얻고 이에 기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피기망자와 피해자가 다른 ‘삼각사기’(Dreieckbetrug)의 대표적인 예이다. 대상판결에서 피고인들은 한국전쟁 당시 등기부와 지적공부가 멸실돼 무주 부동산이 된 국유지를 가로채기로 공모하고, 일당 한 명을 원고로 내세워 허위로 위조한 매도문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위 토지가 원고의 피상속인의 소유이고 국가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는 원인무효라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보전등기말소의 소송을 제기하였고 대법원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았다. 대상판결의 1심과 원심은 이러한 피고인들의 행위가 소송사기 기수에 해당한다고 보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기)의 유죄를 인정하였고, 대법원은 대상판결을 통해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확정하였다. 이는 소유권보존등기 명의자를 상대로 그 보존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경우, 설령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소유권보존등기가 말소될 뿐이고 이로써 원고가 당해 부동산에 대하여 어떠한 권리를 회복 또는 취득하거나 의무를 면하는 것은 아니므로 법원을 기망하여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편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한 대법원 1983. 10. 25. 선고 83도1566 판결을 변경한 것이다. 대상판결은 몇 가지 점에서 소송사기와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는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한 경우 원고(피고인)는 그로 인해 어떠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인지 여부이다. 둘째는 부동산소유권 보존등기말소청구를 통한 소송사기의 경우 그 실행의 착수시기와 기수시기의 문제이다. 이하에서는 이상의 쟁점을 중심으로 대상판결을 분석하기로 한다. II.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 존재 여부 대상판결과 같이 소송사기의 피고인이 원고가 되어 피고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말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확정판결을 받는 경우, 원고(피고인)는 부동산등기법 제29조에 따라 등기명의인의 등기 말소를 신청하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승소확정판결문을 가지고 부동산등기법 제130조 제2호에 따라 소유권보존등기를 신청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렇지만 확정판결의 주문에는 피고인(원고)에게 부동산등기법 제130조 제2호에 따른 소유권보존등기를 신청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변경판결과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은 바로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 변경판결인 대법원 1983. 10. 25. 선고 83도1566 판결은 “피고인이 그 자신이 아닌 타인명의로 등기명의인들을 상대로 그들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 및 이전등기의 말소등기소송을 제기한 경우, 가사 그 타인이 승소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등기명의인들의 등기가 말소될 뿐이고 이로써 그 타인이 위 부동산에 대하여 어떠한 권리를 회복 또는 취득하거나 의무를 면하는 것은 아니므로 법원을 기망하여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편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니 위와 같은 말소등기청구소송의 제기만으로는 사기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는 바, 소유권보전등기말소소송의 승소만으로는 재물이나 재산상의 편취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상판결의 반대의견도 이 점에 대하여 동의를 표하고 있다. 그렇지만 소송사기에서 원고(피고인)가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된다. 대상판결의 경우 원고(피고인)은 승소판결을 통하여 자기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를 신청할 ‘지위’, 즉 “타인의 협력 없이 자신의 의사만으로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었고, 이것이 판결주문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이를 통하여 원고(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사실상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형법상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 개념은 사법(私法)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실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해석은 허용되는 확장해석이다. III. 실행의 착수시기 사기죄의 실행의 착수시기는 편취의 의사로 기망행위를 개시한 때이다. 변경판결은 타인이 소유권보존등기 및 이전등기의 말소등기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하여도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편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사기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 이에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법원을 기망하여 “타인의 협력 없이 자신의 의사만으로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면 사기죄의 기수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는 바, 당연히 소송사기의 실행의 착수를 있었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반대의견은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확정판결을 얻어낸 경우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없지만, 재물인 부동산을 편취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하나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으로는 평가할 수 있고, 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비로소 피고인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가 가능하게 되므로 실행의 착수시점은 소송을 제기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생각건대, 피고인은 말소등기의 확정판결을 부동산등기법 제130조 제2호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판결로 이용하여 최종적으로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할 것을 목표로 하면서 말소등기를 구하는 소를 제기한 것인 바, 피고인의 범행계획에 의하면 소 제기 시점에서 범죄적 의사가 당해 구성요건의 보호법익을 위태롭게 할만 행위 속에 명백히 드러났으므로 바로 이 때를 소송사기죄의 실행의 착수로 보아야 할 것이다. IⅤ. 기수시기 1.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차이 그런데 소송사기의 기수시기와 관련하여 대상판결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은 나뉘게 된다. 반대의견은 사기죄의 기수를 부정하고 미수만을 인정하는데, 그 근거로는 첫째,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확정판결문은 별도의 등기신청절차를 통하여 부동산등기법 제130조 제2호의 서류로 삼아 소유권보존등기를 신청할 수 있지만, 이는 확정판결 자체의 효력이 아니므로 이러한 지위를 사기죄의 객체인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다음으로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에 따를 경우 자기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함으로써 부동산을 편취할 범의가 있는 자가 상대방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승소확정판결을 얻은 후 더 이상 범행이 불가능해진 경우 또는 스스로 범행을 포기한 경우에도 미수가 아니라 기수로 처벌해야 하므로 이는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수의견은 말소등기청구의 승소판결확정을 통해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할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면 이미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기수가 된 것으로 파악한다. 명시적 언급은 없지만, 이후에 별도로 등기신청절차를 거쳐서 피고인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를 얻는 것은 넓은 의미의 재물편취를 위한 행위로 파악하는 듯 하다(대법원 1970.12.22. 선고 70도2313 판결 참조). 2. 평가―반대의견 비판 반대의견의 지적처럼, 소유권이전등기청구나 금전지급청구를 명하는 승소확정판결과는 달리, 말소등기청구의 승소확정판결 자체는 등기말소의 효과만을 가진다. 그러나 말소등기의 승소확정판결을 가지고 등기소에 가서 등기를 신청할 경우 등기소는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피고인 명의의 보존등기를 경료하여 주어야 할 것이고, 판결 자체로서 갖는 효력, 즉 기판력, 집행력 및 형성력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실질적인 판결의 효력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판결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전등기청구를 명하는 확정판결의 경우에도 등기소에 등기의 이전을 신청해야 등기부상의 등기명의가 이전되고(부동산등기법 제29조), 집행권원을 부여하는 확정판결의 경우에도 집행법원에 집행을 청구해야 현실적으로 금원을 취득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소유권이전등기청구나 금전지급청구를 통한 소송사기와 말소등기청구를 통한 소송사기의 기수시기를 다르게 보려는 반대의견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반대의견이 주목하는 피고인이 상대방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승소확정판결을 얻은 후 더 이상 범행이 불가능해진 경우 또는 스스로 범행을 포기한 경우와, 이전등기청구 승소확정판결을 받아 내고 등기소에 이전등기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범행이 불가능해지거나 스스로 범행을 포기한 경우, 또는 금전지급청구 소송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아내고 집행법원에 집행을 신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범행이 불가능해지거나 스스로 범행을 포기한 경우 사이에 차이를 두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상의 사정은 양형에서 고려하면 될 것이고, 말소등기청구에 의한 소송사기의 경우에만 특별히 그 미수를 인정할 필요는 없다. Ⅴ. 결 보존등기와 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한 소송사기에 관해서 실행의 착수조차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한 기존의 83도1566판결은, 피고인의 범행계획이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을 등기하는 것이고 말소등기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이를 위한 직접적인 행위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친 처벌의 공백을 만든 판결이었다. 이 점에서 대상판결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모두 피고인의 말소등기청구의 소제기를 소송사기의 실행의 착수로 본 것은 타당하다. 그리고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이 이전등기청구소송이나 금전지급청구소송과 말소등기청구소송의 판결의 내용의 차이를 주목하며 당해 사건에서 사기죄의 기수를 부정하였지만, 부동산 편취의 의사로 허위로 부동산소유권 보존등기말소청구를 하여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아직 자신의 명의로 부동산 보존등기를 경료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대상 토지의 소유권에 대한 방해를 제거하고 그 소유명의를 얻을 수 있는 지위라는 재산상 이익을 이미 취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점에서 승소확정판결이 확정된 때에 소송사기가 기수가 되었다고 본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타당하다.
2006-10-09
테러범과 정치범 불인도 원칙
I. 시작하면서 2006.7.27. 서울고등법원 제10형사부는 서울고등검찰청이 청구한 베트남인 우엔 우 창(Nguyen Huu Chanh)에 대한 범죄인인도심사청구 사건에서 범죄인의 인도를 허가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범죄인인도심사 및 그 청구와 관련된 사건은 서울고등검찰청 및 서울고등법원 전속관할이고 대법원에 상소할 수 없는 결정이므로 우엔 우 창은 곧바로 석방되었다. 위 결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범 인도 청구 사건에 관한 결정이어서 선례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범죄자 인도와 관련한 정치범죄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 국제분쟁 적용법령의 해석 원리, 국제법원(國際法源)으로서의 UN-Resolution에 대한 평가를 충실히 내리고 있는 점 등 우리나라 국제법 실무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될 좋은 결정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와의 외교적, 국제형사법적 공조와 관련될 뿐만 아니라 향후, 유사범죄를 저지른 대한민국 국적인 혹은 북한 국적인의 처벌을{혹은 베트남으로 도망한(?) 동원호 선원을 억류한 소말리아 해적의 처벌을}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대한 베트남의 대응 등은 물론,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소위 ‘정치범 불인도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는 필자와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어 이하에서는 사건 개요와 결정이유를 간략히 소개한 후 이에 대하여 논점 위주로 개인적 견해를 적어본다. II. 사건의 개요 1. 범죄인의 범죄사실 범죄인 우엔 우 창은 1950년 베트남에서 출생하여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가 미국영주권을 취득하고, 1992년 Vinamoto Company의 임원 신분으로 베트남에 입국한 후 1995.4. 자유베트남 혁명정부를 조직하여 자신을 내각총리로 지칭한 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전복을 목적으로 13개항에 이르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고, 범죄사실은 그 내용상 아래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 1999년부터 자유베트남 혁명정부의 조직원을 훈련시키고 테러를 위해 각종 폭발물을 운반하고 반베트남 선전을 유포하고 호치민 방송국 등의 공공시설에 폭탄을 장치하였으나 발각되어 미수에 그치고 대중이 운집하는 광장에 폭탄을 투척할 것을 모의하였으나 테러계획이 공안당국에 알려져 미수에 그친 점 등의 다수의 테러를 기도하고 2) 2001.6.19. 태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에 폭탄을 넣은 핸드백 2개를 던져 넣고 휴대폰을 이용하여 원격 조정하여 대사관을 폭발시키려고 하였으나 뇌관 조립과정상의 문제로 폭탄이 터지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2. 불인도 결정 이유 가. 위의 범죄사실이 인도대상범죄에 해당하나, 자유베트남 혁명정부의 성립 배경 및 활동 내용을 고려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범죄는 정치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후, 대한민국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간의 범죄인 인도조약(2005.4.19. 발효, 이하 ‘이 사건 인도조약’이라고 한다)과 범죄인 인도법(2005.12.14. 일부 개정)의 정치범 불인도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정이 없는 한 범죄인을 청구국에 인도할 수 없다. 나. 대한민국은 2004.2.9. 폭탄테러범죄를 범죄인 불인도 대상인 정치범죄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였고, 범죄인 인도법 제8조 제1항 제2호 “다자간 조약에 의하여 대한민국이 범죄인에 대하여 재판권을 행사하거나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범죄”는 정치범 불인도 예외사유로 정하고 있어 폭탄테러행위를 저지른 범죄인을 예외사유에 해당되는 듯 하나 신법우선의 원칙, 특별법 우선의 원칙 등 법률해석 원칙은 물론 범죄인 인도법 제3조의2 “범죄인 인도에 관하여 인도조약에 이 법과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규정에 따른다”는 규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인도 조약 제3조 제2항 나목 ‘양 당사국이 모두 당사자인 다자간 국제협정에 의하여 당사국이 관할권을 행사하거나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가 있는 범죄’만을 정치범 불인도 예외사유로 하고 있고 다자간 국제협정인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에 베트남은 가입하지 않아 위 조약은 양 당사국이 모두 당사자인 다자간 국제협정이 아니므로 이를 근거로 범죄인을 인도 할 수는 없다. 다. 테러범죄자에 난민의 지위가 악용되거나 테러행위에 정치적 동기가 있다는 이유로 범죄인 인도요청이 거부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 등을 규정한 미국 9·11 테러 직후에 채택된 ‘UN 안보리의 2001.9.29.자 결의’에 대한민국과 청구국은 모두 서명하여 위 결의의 당사자가 되었으나, 위 결의는 당사국에게 구체적인 범죄인 인도의무를 부과하는 국제협정이 아니다. 라. 범죄인 인도법 제8조 제1항 제3호의 ‘다수인의 생명·신체를 침해·위협하거나 이에 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범죄’를 정치범불인도 예외사유로 열거하고 있으나 이 사건 인도조약은 이를 예외사유 중의 하나로 열거하지 않고 있으므로 범죄인 인도법 제8조 제1항 제3호를 적용하여 인도를 허가할 수는 없다. III. 평석을 위한 몇 가지 논점 정리 1. 정치범죄와 테러행위 ‘정치범죄’는 그 동기와 목적, 해당국가의 정치 상황, 행위양상, 성질 등을 기준으로 정의하여야 하나 현재까지 국제사회가 합의한 일의적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범죄인 인도와 관련하여 정치범죄 여부에 대한 판단은 피청구국의 사법당국에 맡겨진다고 하지만 청구국이 행하는 구체적인 사법조치를 전제로 하여 판단하므로 실체적, 절차적으로도 엄격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한편 ‘테러’는 1983년 Axel P. Schmid가 펴낸 ‘Political Terrorism’에 당시까지의 테러 개념이 109개로 정리되어 있고, 1988년 같은 저자가 펴낸 증보판에 수십개의 정의가 추가된 상황이고 보면 테러의 정의는 테러 연구자 수만큼 많아져 개념정의에 어려움이 있다. 국제법 발전역사상 정치범죄자는 난민대우 혹은 범죄인 불인도 등으로 국제적으로 보호해야 하고, 테러범죄는 국제적 범죄로서 보편적 사법권의 형식으로라도 처벌해야 할 범죄이지만 테러범죄 또한 많은 경우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어 소위 ‘정치범죄’에서 ‘테러’를 분리해 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2. 테러행위와 정치범불인도 원칙 정치범불인도는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일부국가들이 도망정치범을 비호할 권리의 근거로서 주장한 것으로 자코뱅당의 테러적 지배(테러의 어원은 자코뱅당의 억압적 지배방식에서 유래한다)를 피하여 이웃 나라로 도망친 많은 국가테러 피해자들이 정치범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이러한 정치범은 19세기 이래 많은 범죄인 인도조약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으나, 개념적으로 정치범불인도가 국제관습법상 정치범죄인을 인도하여서는 안 된다는 국가의 의무인지 그렇지 않으면 범죄인도조약에 의거하여 조약상 발생한 인도의무를 거부할 권능을 인정함에 불과한 것인가에 관하여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3. 반테러협약과 보편적 테러행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정치범 인정 여부는 피청구국이 판단하므로 자국의 이해에 따라 정치범불인도 원칙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러한 해석에 따른 범죄인 불인도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없지 않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소위 반테러협약을 통하여 국제사회가 합의하는 일정한 범죄양상에 대하여는 정치적 성향을 띠는 정치범죄라 하더라도 aut dedere aut punire(인도 혹은 처벌)에 따라 처리하는 국제적 컨센서스를 이루어, 반테러협약상의 범죄행위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국제테러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예컨대, 항공기테러억제협약(1970), 외교관등에대한테러방지협약(1973), 인질방지협약(1979) 등 반테러협약에 관해서는 http://untreaty.un.org 참조} 4. 국제분쟁의 적용 법리 범죄인 인도 등 국제성을 보유한 사건에 대하여는 국내 법원도 국내법은 물론이고 국제법 원리에도 부합하는 판단을 하여야 한다. 특히, 국제테러는 해당 국가에 대한 범죄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로 인식되는 중요한 국제법적 사건이므로 헌법과 해당 법률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 성문 국제법은 물론이고 관습법 그리고, 국제법의 일반원칙, ILC 등이 확인하고 있는 강제규범으로서의 ius cogens 혹은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의무로서의 erga omnes 와의 조화적 해석 등까지 면밀히 검토하여야 한다. IV. 결정의 평석 1. 국제테러행위 재판부는 청구인의 폭탄테러행위가 정치범 불인도 예외범죄인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상 범죄이나, 청구국이 위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으므로 위 범죄인을 인도하게 되면 이 사건 인도 조약을 위반하게 된다고 하고 있는 바, (재판부의 견해에 의하더라도) 최소한 위 범죄인의 폭탄테러행위가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의 테러행위임은 인정하고 있다. 위 테러행위는 미수에 그쳤고 베트남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실제 기수에 달하였다면) 위 폭탄테러는 자국민 타국민을 가리지 않는 피해를 야기할 국제테러행위이다. 이러한 국제테러범죄는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행위이고, 이를 억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한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국제사회 전체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이 사건 인도 조약의 해석에 따라 청구국이 폭탄테러억제협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테러행위자를 자유롭게 놓아준다면 대한민국은 (결과적으로) 소극적으로 테러를 지원하는 국가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일 수 있다. 2. 외교관 등에 대한 테러행위 위와 견해를 달리 하더라도, 이 사건 범죄인의 많은 범죄행위 중 태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에 폭탄을 투척한 행위는 1973. 12. 14 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외교관등 국제적 보호 인물에 대한 범죄의 예방 및 처벌에 관한 협약’ 제2조 제1항 (라)목 위반의 국제테러범죄이다. 위 조약은 대한민국이 1983.5.25. 가입하였고, 베트남 또한 2002.5.2. 가입하였다. 따라서, 재판부가 밝힌 것처럼 대사관 폭탄 투척 이외의 폭탄테러는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과 관련하여 정치범죄로서 정치범 불인도 예외 사유인 ‘양당사국이 모두 당사자인 다자간 국제협정에 의하여 당사국이 관할권을 행사하거나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가 있는 범죄’가 아니지만, 외국 주재 자국 대사관에 폭탄을 투척한 행위는 재판부의 견해에 의하더라도 ‘양당사국이 모두 당사자인 다자간 국제협정에 의하여 당사국이 관할권을 행사하거나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가 있는 범죄’로서 정치범죄라고 하더라도 정치범 불인도의 예외사유로서 대한민국에 aut dedere aut punire 의무가 있는 범죄이다. 3. 테러행위의 전단계 범죄화 및 형법의 세계주의 도입 폭발물을 사용한 범죄, 공공시설과 다수 인명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범죄에 대하여는 현실적 피해발생(구성요건적 기수)을 범죄의 구성요건 사실로 보고 이를 처벌하게 된다면 형사법의 보호적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없다. 따라서 테러행위는 예비, 음모 등의 구성요건 실행 착수 이전 단계에서 적절한 범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위 전단계 범죄화(Vorfeldstrafe)가 필요한 분야임에도 결정 이유에서 폭발물 사용의 대상이 사람인지 시설인지조차 특정되지 않아 ‘다수인의 생명·신체를 침해·위협하거나 이에 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범죄’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해석은 해당국가와 국민의 법익 침해를 너무 과소평가한 해석으로 볼 수 밖에 없고, 피청구인이 테러행위를 중단하겠다는 의사 또한 어디에도 읽을 수 없다. 지금껏 미수에 그친 그의 테러행위가 후일 어디에선가 기수에 이르게 되는 순간, 대한민국의 부적절한 대응은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끝으로, 정치범 불인도 원칙을 가장 먼저 입법화한 벨기에가 국제적 테러는 delicta juris gentium으로 간주하고 범죄지, 범인이나 피해자의 국적, 범죄지국의 법률 등을 묻지 않고 자국법에 의하여 재판하겠다는 절대적 세계주의(Weltrechtsprinzip)를 규정함은 이번 인도 청구 사건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0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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