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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세법상 부동산 재산세 과세표준에 대한 비판적 검토
Ⅰ. 대상 사건 1. 사실관계 청구인은 2010년 7월 15일 고양시 ○○구청장으로부터, 청구인이 소유하고 있는 고양시 소재 상가 건물의 시가표준액 2억676만1086원에 공정시장가액 비율 70%를 적용하여 산출한 과세표준액을 기준으로 하여, 일반건축물분 재산세 36만1830원, 도시계획세20만2620원 등 합계 80만2560원의 부과처분을 받았다. 또한 위 건축물 부속토지 469.89㎡의 개별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 시가표준액 12억9219만7500원에 공정시장가액비율 70%를 적용하여 산출한 과세표준액을 기준으로, 토지분 재산세 251만3610원 등 합계 428만2680원의 부과처분을 받았다. 청구인은 위 각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2012년 4월 17일 기각되었다(의정부지방법원 2011구합3420). 이에 청구인은 항소심 계속 중(서울고등법원 2012누13179) 구 지방세법 제187조, 제111조, 구 지방세법 시행령 제80조, 제138조 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고, 2012년 11월 15일 그 신청이 기각되자, 2012년 12월 13일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청구인의 주장요지 감정평가, 인근 유사 부동산의 평가선례, 거래사례 등을 통하여 과세대상의 시가표준액이 현 시가를 현저히 초과한다고 객관적으로 검증된 경우에는 그 보다 낮은 시가를 기준으로 과세표준을 산정하여 현실적인 재산가액을 계측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장치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은 획일적으로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재산세의 과세표준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청구인의 재산권은 물론 국세와 비교할 때 평등권을 침해한다. 3. 헌법재판소 결정요지 재산세는 매년 일정한 과세기준일이 되면 전국의 모든 부동산에 대하여 일제히 과세해야 하므로, 심판대상조항은 개별 부동산의 실제 가액을 일일이 조사하기보다 획일적인 시가표준액에 의해서 과세표준을 산정함으로써 안정된 세수를 확보하며 실질적인 조세부담의 공평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련 법률에서는 객관적인 평가가치인 시가표준액이 시가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며, 납세의무자는 개별공시지가결정 자체를 다투거나 부과처분취소소송에서 개별공시지가결정의 위법을 독립된 위법사유로 다툴 수 있는 등 시가표준액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한 불이익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에 비하여 크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재산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Ⅱ. 평석 1. 문제의 제기 일반적으로 개별공시지가는 실거래가(시가)보다는 낮게 형성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개별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 과세처분에 대하여 대다수 국민들은 큰 불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본 사안과 같이 거꾸로 개별공시지가가 실거래가 보다 높게 측정된 경우는 문제가 달라진다. 실제 시가보다 훨씬 높게 책정된 개별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조세를 부담해야 하는 국민입장에서는 무척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이웃 일본의 경우 일본 상속세법의 경우 재산의 가액은 그 '취득시의 시가'라고 규정하여, 시가주의를 취하고 있다. 취득당시라는 것은 상속세의 경우는 피상속인 또는 유증자의 사망 시, 증여세의 경우는 증여에 의해 재산권을 취득한 날로 본다. 또한 시가라는 것은 객관적인 교환가치로, 불특정 다수 당사사자 간의 자유로운 거래를 통해 통상적으로 성립되는 가액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별공시지가를 토지의 시가로 간주하는 것은 개별공시지가에 토지의 실거래 시가를 국민이 용인 가능한 범위에서 충분히 반영하고 있거나 시가를 파악할 방법이 따로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개별공시지가 외에는 달리 방안이 없는 경우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연유로 대상 사건처럼 시가를 파악할 수 있는 다른 방법과 수단이 존재한다면 그 시가에 따라야 할 것이지 과세당국의 편의를 위해 개별공시지가를 무조건 적용하는 것은 일본에서 용납되기 어렵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3. 비판적 검토 대상판결에서 설시한 바와 같이 개별 부동산의 실제 거래가액을 일일이 매년 조사한다는 것은 조세행정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 때문에, 재산세 과세의 경우 시가표준액을 원칙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나아가 헌재는 대상판결에서 시가표준액이 시가를 현저히 초과하는 경우 납세의무자는 개별공시지가 결정 자체를 따로 다툴 수 있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일본 판례가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방세법의 하나인 고정자산세의 시가가 문제된 사건 (最判平成15年6月26日民集57卷6723頁)에서 "토지에 대한 고정자산세는 토지의 자산가격에 주목하여, 그 소유라는 사실에 담세력을 인정하여 부과하는 일종의 재산세이며, 개개의 토지의 수익성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소유자에 대해 부과하는 것이므로, 상기의 적정한 시가라는 것은 정상적인 조건 하에 성립하는 당해 토지의 거래가격, 즉, 객관적인 교환가치를 말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토지과세대장 등에 등록된 가격이 부과기일에 있어 당해 토지의 객관적인 교환가치를 상회하면, 당해 가격의 결정은 위법하게 된다"라고 판시하였다. 결국,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모든 과세대상에 대해 개별적인 조사를 하여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정 기준일에 조사한 가격을 부과기일의 산정자료로 사용하는 것 자체는 금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면서도, 시가를 산정한 결과 개별공시지가가 그 시가를 초과하는 한도 내에서는 위법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법인세와 상증세법과 같은 국세의 경우 과세표준으로 시가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바, 국세와 별개로 지방세의 경우 시가표준액을 과세표준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명확한 논거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하는 취지가 시가의 파악이 힘들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가표준액이 실제 시가보다 낮은 금액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과세함으로써 국민경제에 조금이나마 안정을 줄려는 의도가 당초 입법자에게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에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대상판결과 같은 경우가 많아진다면, 국민들의 조세저항은 불가피한 것이다. 4. 결론 지방세 과세기준으로서 표준지공시지가 제도가 일응 운영상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사안과 같은 경우 실거래 시가에 따라 과세를 부과할 수 있는 보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헌법상 조세평등주의 내지 실질과세 원칙에 보다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높은 공시지가를 개별적으로 다툴 수 있고, 현재의 시가표준액이 불합리한 정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과잉금지 위반이 아니라고 판시한 대상 결정은 합리적 이유 없이 과세 당국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결국 조세행정의 한계문제로 보충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시가표준제도가 원칙적으로 적용되고 그 부작용을 해결할 보완제도가 없는 현행 지방세법으로 인해 본 사안과 같은 피해를 보는 국민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이상 하루 속히 이웃 일본의 예를 참고하여 법제를 수정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하겠다.
2014-11-13
보험계약 체결을 위한 간호사의 방문검진 행위가 의료행위인가
1. 사건의 내용 - ○○의원에 재직하는 간호사 A는, ○○의원과 방문검진위탁계약을 체결한 보험회사로부터 방문검진 의뢰가 오면 ○○의원에서 고용한 전국 각지의 방문간호사들에게 연락하여 방문검진을 하도록 하였다. - 위와 같은 연락을 받은 방문간호사들은 보험가입자들의 주거에 방문하여 그들을 상대로 문진, 각종 신체계측, 채뇨, 채혈 등을 실시한 후 채취한 소변과 혈액 등을 ○○의원에 송부하였고, 이를 받은 ○○의원 임상병리사는 검사를 시행하였다. - 간호사 A는 위 검사결과 등을 바탕으로 보험가입자들의 신체부위의 이상 유무와 건강상태를 알 수 있도록 의사 명의의 건강검진결과서를 작성하여 이를 보험회사에 통보하였다. - ○○의원에 소속된 의사 B는 의원에 매일 출근하지는 아니하였고, 위와 같은 건강검진의 실시 여부에 관하여 개별적인 지시를 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 건강검진의 실시 과정이나 검진결과서의 작성·통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의사로서 지시하거나 관여하지 아니하였다. - 검찰은 간호사A와 의사B 등을 무면허의료행위로 인한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기소하였다. 2. 법원의 판단 가. 원심의 판단(서울남부지방법원 2010. 4. 22. 선고 2009노2381 판결) 방문간호사들로 하여금 보험가입자들의 주거에 방문하여 혈압 및 맥박의 측정, 소변검사, 혈당측정 등의 행위를 함과 함께 문진행위를 하게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간호사 A가 건강진단서를 작성한 행위는 보험회사가 보험가입희망자들과 보험계약을 체결할 것인지 여부 등의 판단을 위한 건강검진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사람의 생명, 신체나 공중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고도 보이지 아니하므로, 이는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나. 대상판결의 요지(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0도5964 판결) ○○의원에서 실시한 건강검진은 피검진자들을 상대로 문진, 각종 신체계측, 채뇨, 채혈 등을 행한 후 채취한 소변과 혈액 등을 가지고 과학적 방법으로 검사·분석한 다음, 검사수치와 정상수치를 대비시켜 신체부위의 이상 유무 내지 건상상태를 알 수 있도록 검진결과서를 작성하거나 그 검사 결과나 문진 결과 등에 기초한 의학적소견도 함께 기재하여 이를 통보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위 의학적 소견은 피검진자가 건강검진결과를 통지받을 것을 예정하여 작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보험회사가 ○○의원이 실시한 건강검진결과를 근거로 피검진자의 보험가입을 승낙할 경우 이를 통하여 피검진자는 자신의 특정 신체부위 내지 건강상태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고, 보험회사가 보험가입을 거절할 경우에는 피검진자는 자신의 특정 신체부위 내지 건강상태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므로, 위 건강검진결과는 보험회사뿐만 아니라 피검진자에게도 알려져 그의 건강생활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의원에서 실시한 건강검진은 피검진자의 신체부위의 이상 유무 내지 건강상태를 의학적으로 확인·판단하기 위하여 행하여지는 것으로서 이를 통하여 질병의 예방 및 조기발견이 가능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을 가진 의사가 행하지 아니하여 그 결과에 오류가 발생할 경우 이를 신뢰한 피검진자의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으므로, 이는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비록 위 건강검진이 실시된 이유가 보험회사가 피검진자와 사이에 보험계약을 체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건강검진이 가지는 위와 같은 의료행위로서의 성질과 기능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므로 이러한 사정은 위 건강검진을 의료행위로 보는 데 장애가 되지 아니한다. 3. 평석 가. 방문검진행위가 의료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 의료법 제27조 제1항은 무면허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동법 제12조 제1항에서는 '의료인이 하는 의료, 조산, 간호 등 의료기술의 시행'을 '의료행위'라고 하고 있을 뿐, 의료행위에 관한 구체적인 정의 규정은 없다. 그에 따라 대법원은 '의료행위'를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는 추상적 위험으로도 충분하므로 구체적으로 환자에게 위험이 발생하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1993. 8. 27. 선고 93도153 판결 등). 보통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보험회사로부터 위탁을 받은 간호사가 피보험자를 방문하여 건강검진을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험계약 체결 여부가 결정된다. 그 과정에서 의사는 검진행위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주로 간호사의 주도에 의해 검진행위가 이루어졌다. 보험회사는 보험계약 체결의 편의와 비용 절감을 위해서 간호사에 의한 검진행위가 필요하였고, 감독관청 역시 이를 묵인해 왔다. 한편, 간호사의 이러한 방문검진행위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것인지 여부 등의 판단을 위한 건강검진을 목적으로 한 것일 뿐,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행위와는 상관없기 때문에 의료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 원심판결 역시 같은 이유로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이러한 검진결과가 피검진자의 건강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검진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건강검진행위는 의료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의료행위의 정의에 관한 지금까지 대법원 판례의 입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나. 간호사의 주도에 의한 검진행위가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 방문검진행위가 의료행위에 해당된다면, 1) 간호사도 의사의 지시나 감독하에 검진행위를 보조할 수 있는지, 2) 본 건의 경우 의사의 지도·감독이 있었다고 볼 것인지가 문제된다. 첫째, 간호사가 검진행위를 보조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의료법 제2조 제2항 제1호 및 같은 항 제5호에 비추어 보면, 의사가 간호사에게 진료의 보조행위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위임할 수는 있으나,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요하여 반드시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 자체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위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07. 9. 6. 선고 2006도2306 판결 등 참조). 본 건 검진행위는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요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의사가 직접 할 필요는 없고, 간호사가 의사의 위임이나 지시를 받고 할 수도 있다. 두 번째, 본 건의 경우 의사의 지도·감독이 있었다고 볼 것인지 여부이다. 간호사가 진료 보조를 함에 있어서 모든 행위 마다 항상 의사가 현장에 입회하여 일일이 지도·감독하여야 할 필요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가 진료보조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을 하는 것으로 족한 경우도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보조행위인지 여부는 행위 유형에 따라 일률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고, 구체적으로 그 행위의 객관적인 특성상 위험이 따르거나 부작용 혹은 후유증이 있을 수 있는지, 당시의 환자 상태, 간호사의 자질과 숙련도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3. 8. 19. 선고 2001도3667 판결 등). 본 건 검진행위는 그 자체로 위험이 따르거나 부작용 또는 후유증이 있을 수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없고, 대상자도 '환자'가 아니며,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가 목적이 아닌 보험계약 체결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검진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가 간호사의 검진행위에 일일이 입회하여 지도·감독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의원에서 실시한 건강검진은 건강검진의 실시 여부의 결정단계에서부터 건강검진결과서의 작성·발급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의사의 지시·관여 없이 간호사A 등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다. 이러한 경우, 간호사는 진료보조자의 위치에서 의사의 의료행위를 보조하였다고 할 수 없다. 대상판결도 '의사가 간호사에게 의료행위의 실시를 개별적으로 지시하거나 위임한 적이 없음에도 간호사가 그의 주도 아래 전반적인 의료행위의 실시 여부를 결정하고 간호사에 의한 의료행위의 실시과정에도 의사가 지시·관여하지 아니한 경우라면,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 판시하였다. 4. 이번 판결의 의미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앞으로 보험계약 체결을 위한 방문검진 실무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간호사가 방문검진을 하고 그 결과서를 작성·발급하는 과정에 의사의 지시나 감독이 필요할 것이다. 방문검진을 하는 데까지 일일이 의사가 입회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검진과정이 의사의 주도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검진결과서 작성은 의사가 직접 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앞으로 방문검진행위가 줄어들고, 대신 병원에서의 건강검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그 과정에서 검진비용 상승과 그에 따른 계약 체결 비용의 부담과 관련하여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 사이의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에 의한 정확한 검진과 그에 따른 보험계약 체결은 보험계약자와 보험회사 모두에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 있고, 무면허의료행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12-10-25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가 과연 존재하는가?
Ⅰ. 事案의 槪要와 經過 전통 민간요법인 침·뜸행위를 온라인을 통해 교육할 목적으로 인터넷 침·뜸 학습센터를 설립한 갑이 구 평생교육법(2007. 10. 17. 법률 제864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2조 제2항 등에 따라 평생교육시설로 신고하였으나 관할 행정청이 교육 내용이 의료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사유로 이를 반려하는 처분을 한 사안이다. 원심(서울고법 2005. 8. 25. 선고 2004누13426 판결)은, 이 사건 평생교육을 통하여 교육하고 학습하게 될 침·뜸행위는 의료행위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교육의 결과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경우 원고와 같이 의료법 시행 전에 종전 규정에 의하여 의료유사업자의 자격을 받은 자 외에는 모두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될 것이 명백한 점, 이 사건 교육과정 중에 행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실습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처벌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점, 침·뜸행위는 실제 그 실행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성이 큰 점, 이 사건 평생교육으로 침·뜸 관련과목을 교육받은 수강생들은 자신들이 교육받은 침·뜸행위를 실제 실행하려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원고가 각 단계별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에게 수료증까지 발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게 될 수 있는 점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로서는 신고서에 첨부된 운영규칙에 기재된 교육과정의 내용이 의료법에 저촉되는지 여부, 신고에 따른 교육이 실제 이루어짐으로써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을 고려하여 이 사건 신고를 반려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신고반려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하였다. Ⅱ. 判決要旨 [1] 구 평생교육법(2007. 10. 17. 법률 제864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법'이라 한다) 제22조 제1항, 제2항, 제3항, 구 평생교육법 시행령(2004. 1. 29. 대통령령 제1824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 제1항, 제2항, 제3항에 의하면,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하여 학습비를 받지 아니하고 원격평생교육을 실시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누구든지 아무런 신고 없이 자유롭게 이를 할 수 있고, 다만 위와 같은 교육을 불특정 다수인에게 학습비를 받고 실시하는 경우에는 이를 신고하여야 하나, 법 제22조가 신고를 요하는 제2항과 신고를 요하지 않는 제1항에서 '학습비' 수수 외에 교육 대상이나 방법 등 다른 요건을 달리 규정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제2항에서도 학습비 금액이나 수령 등에 관하여 아무런 제한을 하고 있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볼 때, 행정청으로서는 신고서 기재사항에 흠결이 없고 정해진 서류가 구비된 때에는 이를 수리하여야 하고, 이러한 형식적 요건을 모두 갖추었음에도 신고대상이 된 교육이나 학습이 공익적 기준에 적합하지 않는다는 등 실체적 사유를 들어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는 없다. [2] 관할 행정청은 신고서 기재사항에 흠결이 없고 정해진 서류가 구비된 이상 신고를 수리하여야 하고 형식적 요건이 아닌 신고 내용이 공익적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등 실체적 사유를 들어 이를 거부할 수 없고, 또한 행정청이 단지 교육과정에서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된 행위가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우려만으로 침·뜸에 대한 교육과 학습의 기회제공을 일률적·전면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후견주의적 공권력의 과도한 행사일 뿐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할 공익상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형식적 심사 범위에 속하지 않는 사항을 수리거부사유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처분사유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 처분은 위법하다. Ⅲ. 問題의 提起-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인가? 여기서의 신고는 신고유형 가운데 어떤 신고에 해당하는가? 일반적으로 사인의 공법행위의 경우 의사표시의 방향성을 기준으로 일방당사자의 의사표시만으로 법률효과를 발생하는 것(자기완결적 공법행위)과 쌍방당사자의 의사의 합치에 의해 법률효과를 발생하는 것(행정요건적 공법행위)으로 나뉜다. 이에 연계하여 판례와 대부분의 문헌은 행정법상의 신고유형(자기완결적 신고=수리를 요하지 않는 신고/행정요건적 신고=수리를 요하는 신고)을 정립하였다. 그리고 그 구별의 결과로 전자의 경우 수리의 비처분성을 전제로 수리거부의 비처분성을 논증하고, 후자의 경우 수리의 처분성을 전제로 수리거부의 처분성을 논증한다. 그리고 신고에 대한 심사와 관련해선, 전자의 경우에는 형식적 심사에 국한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형식적 심사만이 아니라 실체적 심사까지도 할 수 있다고 본다(다른 입장이 있음). 기실 대상판결이 사안에서 형식적 심사만이 가능하다고 보기에, 여기서의 신고를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로 봄직한데, 과연 그 본연에 합당한가? Ⅳ. 關聯法規定 구 평생교육법(2007. 10. 17. 법률 제864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2조 (원격대학형태의 평생교육시설) ① 누구든지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하여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에게 원격교육을 실시하거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평생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경우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학습비를 받고 이를 실시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이를 폐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사실을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개정 2001.1.29> ③ 제1항의 경우 전문대학 또는 대학졸업자와 동등한 학력·학위가 인정되는 원격대학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을 설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폐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개정 2001.1.29> Ⅴ. 대상적격상의 問題點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와 관련해서, 판례의 대응은 통일적이지 않다. 일부는 수리 및 수리거부의 무의미성을 견지한다. 적법한 요건을 갖춘 신고의 경우에는 행정청의 수리처분 등 별단의 조처를 기다릴 필요 없이 그 접수시에 신고로서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그 수리가 거부되었다고 하여 무신고 영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1999.12.24. 선고 98다57419판결; 1998.4.24. 선고 97도3121판결; 1995.3.14. 선고 94누9962판결; 1993.7.6.자 93마635결정; 1990.2.13. 선고 89누3625판결; 1985.4.23. 선고 84도2953판결 등 참조). 반면 일부는 수리거부의 위법성을 추가하여 적극적으로 논증하거나(대법원 1999.4.27. 선고 97누6780판결), -대상판결처럼-수리거부의 위법성만을 적극적으로 논증하기도 한다(대법원 1997. 8. 29. 선고 96누6646 판결 등). 그런데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에서 수리 및 수리거부의 무의미성을 견지하기 위해선, 법원으로선 애써 수리거부의 처분성을 부인하고, 신고 그 자체로서 대상평생교육의 적법한 실시라는 형성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판시하여야 했으며, 또한 대상적격의 부인에 따라 각하했어야 하는데, 마치 그것이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인양 수리거부의 처분성을 전제로 그것의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논증하였다. 대상판결의 이런 접근은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와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의 구별도식(수리의 비처분성⇒수리의 거부의 비처분성, 수리의 처분성⇒수리거부의 처분성)을 무색케 한다(수리거부를 금지하명으로 보면 기왕의 틀에 포획되지 않는다). Ⅵ. 行政廳의 審査의 問題點 사적 영역에 대한 행정개입의 차원에서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 이른바 수리를 요하지 않는 신고, 등록제, 허가제의 구분이 문제되는데, 특히 수리를 요하는 신고와 허가제의 구분의 문제에서, 종래 많은 문헌들이 허가제와의 구별의 상실을 우려하여 후자의 경우엔 요건에 관한 형식적 심사뿐만 아니라 실질적 심사까지 행해지는 반면에, 전자의 경우엔 형식적 심사에 그친다고 보았다(그리하여 일부 문헌은 등록제를 수리를 요하는 신고와 동일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건축법 제14조상의 건축신고를 명시적으로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본 대법원 2011.1.20. 선고 2010두14954전원합의체판결을 계기로 전자의 경우에도 실질적 심사가 행해지는 것으로 본다(이에 대한 문제점으로 김중권, 건축법 제14조상의 건축신고가 과연 수리를 요하는 신고인가?, 특별법연구 제9권(이홍훈 대법관 정년퇴임기념논문집), 2011.5.13., 273면 이하 참조). 결국 판례의 입장에 의하면, 이제는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의 경우 형식적 심사만이 허용된다고 하겠다. 대상판결은 처음부터 형식적 심사만이 허용된다는 전제에서, 실질적 심사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였으며, 이에 그것을 신고수리거부의 위법성에 연결시켰다. 나아가 수리거부의 처분사유에 대해서도 원심과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지면관계상 여기선 허용되는 심사의 범위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신고제에서의 행정청의 심사와 관련해서, 종래의 논의에선 신고제에서 행정청의 심사를 원천배제한 것이 문제라면, 대법원 2011.1.20. 선고 2010두14954전원합의체판결의 경우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에서 허가제와의 구별되지 않게 실질적 심사의무를 요구한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신고제의 경우 형식적 심사는 당연히 의무사항이나 실질적 심사는 허가제와는 달리 의무사항은 아니고 일종의 선택사항(option)이자 재량사항이다(이렇게 보면, 대법원 2010.9.9. 선고 2008두22631판결에 대해 -비판의 대상인- 기속재량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따라서 사안에서 실질적 심사의 허용성을 부정하는 전제는 타당하지 않다. 현행 법령의 체제하에서 침·뜸의 시술이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이상, 행정청으로선 형식적 심사를 넘어 의료관련 다른 법률 등에 의거하여 그것의 처리여부를 판단하는, 실질적 심사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 실질적 심사의 가능성을 긍정하면, 관건은 수리거부의 처분사유에 관한 판단여하이다. 처분사유의 당부와 관련해선(상론은 다른 지면에서 하고자 한다), 침·뜸의 시술이 현행 법령하에선 의료행위로 평가가 내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제도화가 되지 않은 채, 그것이 -단순한 알림을 넘어서- 제도화를 가져다 줄 교육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법원은 "침·뜸에 대한 교육과 학습의 기회 제공을 일률적·전면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후견주의적 공권력의 과도한 행사"로 보지만,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중요성이 더할 나위 없이 고조된 오늘날에는 안전법상의 일반법원칙인 국가의 사전대비(사전배려)원칙을 더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의심스러우면 안전에 유리하게"(In dubio pro securitate))(법원칙으로서의 안전성의 원칙에 관해선 김중권, 행정법기본연구Ⅱ, 2009, 503면 이하 참조). Ⅶ. 맺으면서-잘못된 만남의 결과 법원의 논증이 기왕의 자기완결적 신고와 수리를 요하는 신고의 틀에서 일탈하였다는 점에서 기왕의 틀 자체가 대대적인 修理를 필요로 한다. 기왕의 틀은 사인의 공법행위에 관한 논의와 典據가 의심스런 -이른바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로서의- 수리에 관한 논의의 잘못된 만남의 결과물이다. 하루바삐 신고제가 허가제의 대체제도인 점에 착안하여 금지해제적 신고와 정보제공적 신고의 유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사안에서 다툼의 논거는 신고제에 관한 행정법도그마틱이나, 그 본질은 현행법상의 의료행위와 민간에서 널리 전수되고 시행되어 온 침·뜸 의 시술행위의 충돌·간극이다. 대학·주류의 의학·약학에서 벗어난 특별한 치료과정, 예컨대 동종요법, 자연요법 또는 대체의학적 치료법을 법외적 상태에 두는 것은 국가가 여러 상이한 치료견해의 다툼에서 사실상 어떤 한 편을 든 셈이어서 재고가 요구된다. 참고로 우세한 대학(주류)의학·약학과 방법적·지식적으로 경쟁하는 특별한 치료법을 보호하기 위해, 독일 의약품법의 입법자는 유효성확인에 관한 법적·행정적 기준이 학문적 다툼과 치료방법상의 다툼에서 어느 일방의 편을 든다는 점을 나름 막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런 비주류적인 것에 대해선 유효성의 요청보다는 안전성의 요청이 더 강조된다(그리하여 그들은 특별한 치료법의 경우 그 나름의 전문가위원회(평가·승인위원회)에 맡기고, 동종요법적 의약품의 경우엔 선택적으로 단순한 등록절차를 허용하는 식으로 규정함으로써(동법 제38조), 다원성요청과 안전성요청간에 절충적 해결책을 도모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비교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의학은 전통적인 대체요법을 융통성있게 수용·발전시켜 왔다. Vgl. Udo Di Fabio, Risikoentscheidungen im Rechtsstaat, 1994, S.172ff.).
2011-11-17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인정여부
Ⅰ. 서 이혼법에서의 대변혁이 온 것일까? 이혼법에서는 이혼원인과 관련하여 도의관념을 강조하는 유책주의와 부부간 자유의사를 강조하는 파탄주의의 대립이 있다. 유책주의란 이혼원인을 한정하고 피고의 유책성이 존재해야만 이혼을 인정하는 것이고, 파탄주의는 파탄이라는 객관적인 사실만 존재하면 유책성을 따지지 않고 이혼을 인정하는 입법태도이다. 현행 민법은 유책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규정(민법 제840조 제1호~제5호)과 함께 파탄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규정(동조 제6호)을 가미함으로써 해석상 명확하지 않은 입장이어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가능한지에 대해 그 동안 적극설, 소극설, 제한적 적극설의 대립이 있어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그동안 유책주의에 기초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부정하고 다만 특별한 경우에만 인정함으로써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종래에 예외적으로 인정하던 경우보다 광범위하게 허용하면서 파탄주의적 경향을 보인 듯한 판결을 연이어 내고 있어 그 의미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이하에서는 그런 판결의 의미와 그 타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II. 대법원 2010.6.24. 선고 2010므1256 판결 1.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1959.4.9. 혼인신고를 마치고 동거를 하다가 원고는 1964년 고향인 경북에 있는 원고 집에 처를 남겨 두고 혼자 서울로 올라가 일을 하였는데, 그 무렵부터 피고와 별거하면서 소외인과 동거하기 시작하여 그 사이에 3자녀를 두었다. 피고는 경북에 있는 원고 집에서 시아버지를 부양하였고, 현재까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원고와 피고는 별거하면서 원고가 소외인과 사실혼관계를 형성하였고, 별거상태가 46년간 지속되어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자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이혼청구를 하였던 사안이다. 2. 하급심 판단 (대구지방법원 2010.2.10. 선고 2009르873 판결) "원고는 처인 피고를 두고 다른 여자와 동거해 세 자녀를 출산하는 등 혼인관계 파탄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였고, 경북에 있는 원고 집에 머물면서 홀로 시아버지를 부양한 피고에 대하여 남편으로서 최소한의 부양의무도 이행하지 않았으면서도 피고가 자녀를 출산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원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원고에게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피고가 실제로는 혼인을 계속할 의사 없이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도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유책배우자인 원고의 이 사건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여 원고의 이혼청구를 기각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10.6.24. 선고 2010므1256 판결) "원·피고의 혼인관계는 약46년간 장기간의 별거와 원고와 소외인 사이의 사실혼관계 형성 등으로 인하여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고 원고와 피고 각자 독립적인 생활관계가 고착화되기에 이른 점, 원고와 피고 사이의 부부공동생활 관계의 해소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원고의 유책성도 세월의 경과에 따라 상당 정도 약화되고 원고가 처한 상황에 비추어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법적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현 상황에 이르러 원고와 피고의 이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파탄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의 법적·사회적 의의는 현저히 감쇄되었다고 보이는 점, 원고와의 이혼을 거절하는 피고의 혼인계속의사는 이혼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반드시 참작하여야 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원고와 피고가 처한 현 상황에 비추어 이는 혼인의 실체를 상실한 외형상의 법률혼관계만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보이고, 피고의 혼인계속의사에 따라 현재와 같은 파탄 상황을 유지하게 되면, 특히 원고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계속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참작하여 보면, 원고와 피고의 혼인은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할 것이며,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목적과 민법의 지도이념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원고의 유책성이 반드시 원고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아니 될 정도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민법 제840조 제6호 소정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이혼원인이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Ⅲ. 관련 판례 검토 1. 대법원 2009.12.24. 선고 2009므2130 판결 원고와 피고는 약 11년간 서로 떨어져 각자의 주거지에서 별개로 생활을 영위하여 왔는데, 위 기간 동안 피고는 수차례 원고를 찾아왔으며, 사건본인들도 원고를 기다려 왔다. 원고는 소외인을 만나 현재까지 동거하면서 소외인과 사이에서 자녀를 출산하였다. 한편, 피고는 자신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미성년 자녀를 양육한 사안에서 "원고와 피고의 혼인은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목적과 민법의 지도이념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보더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원고의 유책성이 반드시 원고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으므로 민법 제840조6호의 이혼원인이 존재 한다"고 판단했다. 즉 장기간 별거로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가정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여 획기적인 판례로 주목된 바 있다. 2. 최근 하급심 판결 경향 분석 가. 이혼청구를 부정한 경우 하급심에서의 이혼청구를 기각한 사례들을 분석하면 피고는 적극적으로 이혼을 반대하면서 혼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가 많았다. 별거기간이 비교적 짧고 원고의 유책성이 입증된 경우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남편이 이혼을 원하면서 일방적으로 외국으로 건너가 별거를 하면서 이혼청구를 한 사건에서 부인이 한국에서 자녀들을 잘 양육하면서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한 사건에서도 제1심에서는 이혼청구가 인용되었지만 상급심에서 원고의 이혼청구를 기각시킨 사례도 있었다. 5년간 부부관계 단절의 원인이 성격차이라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판결(서울가정법원, 2010.4.23.선고), 부부사이에 7년 이상 성관계 없었더라도 상대방에게 문제해결의지가 있는 경우 이혼청구를 기각한 판결(서울가정법원 2009.4.17. 선고) 등도 그러하다. 나. 이혼청구를 인용한 경우 혼인기간이 짧고 자녀가 없는 경우, 별거기간이 길고 당사자 사이에 혼인을 지속하려는 의지가 약한 경우, 자녀가 성년이 된 경우 등에는 비교적 이혼청구가 인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1) 아내가 7년 이상 식물인간 상태에 있고, 장인, 장모도 이혼에 동의하고 있는 점을 참작하여 이혼청구를 인용한 사례(서울가정법원, 2009드단93582) "피고가 7년이 넘도록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있고 피고 부모도 원고와 피고의 이혼에 동의하고 있어,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보이는바, 이는 민법 제840조 제6호의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하여 이혼청구를 인용하였다. (2) 광주고등법원 2009.6.5. 선고 2008르242 "원·피고의 별거기간은 11년 이상으로 장기간인 점, 원고가 새로이 출산한 신생아는 원고의 보살핌이 필수불가결한 점, 이 사건 이혼청구를 기각할 경우 이러한 현재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보다는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를 적절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신생아의 치료, 양육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 사건본인들을 만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그들과 면접, 교섭을 하면서 경제적 능력이 허용하는 대로 양육비를 부담하는 등 모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사건본인들의 복지와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점 등 이 사건에 나타난 제반사정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와 피고의 이혼으로 인하여 피고나 사건본인들이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심히 가혹한 상태에 처하게 되는 등 이혼청구를 인용하는 것이 현저하게 사회정의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 판결은 대법원 2009.12.24. 선고 2009므2130 판결의 원심으로서, 정면으로 파탄주의에 입각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한 것으로 평가한다. Ⅳ. 판례평석 1. 머리말 대법원은 그동안 유책주의에 입각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기각하면서 예외적으로 ①상대 배우자도 혼인계속의 의사가 없으면서 오기나 보복적 감정으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 ②부부쌍방에게 파탄의 책임이 있는 경우 ③혼인 파탄 이후에 원고에게 유책행위가 존재하는 경우 등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왔다(99므1213, 2004므1033 등). 그러나 혼인파탄의 원인은 사실상 부부 일방의 책임으로 발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파탄에 이른 원인 또한 다양해서 배우자 가운데 과연 누가 이혼원인의 제공자인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어 파탄주의적 사고를 도입해야 하지 않겠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2. 학계 반응 최근의 두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학계는 "대상판결이 명확히 파탄주의를 취한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파탄주의적 사고를 강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이경희 한남대 교수), "유책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판결이자 파탄주의로도 볼 수 있는 판단이라며 상대배우자에게 혼인계속의 의사가 있음에도 이를 인용했고, 혼인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점을 판단근거로 든 점 등은 파탄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이화숙 연세대 교수)며 법원이 사회상의 변화를 받아들여 파탄주의에 근접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법률신문 2010.1.7자 기사 참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대해서도 '원칙적 부정, 예외적 허용'이라는 기존의 판례에서 "원칙적 인정, 예외적 이혼유보"로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하고 있다(이희배 명예교수, 법률신문, 2010. 3. 8자 참고). 3. 사견 (1) 최근 대법원 판결을 놓고 대법원이 기존의 유책주의를 포기하고 파탄주의를 채택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대법원은 과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배제하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그 예외를 조금씩 인정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대법원 판결들은 기본적으로 유책주의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파탄주의 이혼법을 지향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파탄주의적 판례를 낸 것으로 볼 것이지, 전면적으로 파탄주의로 선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닌 점에서도 그러하다. 독일과 같이 명시적으로 파탄주의에 충실한 이혼규정['부부가 3년 이상 별거한 경우에는 그 원인에 관계없이 혼인이 파탄된 것으로 보아서 이혼을 허용한다'(독일민법 제1565조, 제1566조 참조)]이 없는 현행법 하에서는 파탄주의적 사고의 결론을 도출할 사례들의 필요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파탄주의가 당사자들의 자유에는 부합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책배우자의 보호문제, 처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힌 상황에서는 축출이혼 방지 등을 위해 유책주의적 사고도 필요한 만큼 대법원은 유책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 필요성에 따른 파탄주의적 사고를 확대해 나감으로써 이혼과 관련한 당사자의 권리, 의무를 충실히 보호하고자 하는 이상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볼 것이다. 대상 대법원 판결은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원고의 유책성이 반드시 원고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으므로 민법 제840조6호의 이혼원인이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바, 결국 이 사건을 제 6호의 이혼사유를 넓게 해석하여 이혼청구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Ⅴ. 결어 결론적으로 대상 판결들이 파탄주의를 명시적으로 채택하였다고 보기보다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와 파탄주의를 유연하게 채택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혼청구에 대해서 이혼여부를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법원이 이혼청구를 인정할 것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 유책주의에 견지에서 민법 제840조의 이혼사유가 명확히 규정되어 법적안정성을 갖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제6호 기타사유 해석에 대해 법원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유책주의의 법적 안정성의 장점은 희석되고 있다. 특히 유책주의에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주장하고 입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치열한 감정대립으로 불필요한 소모전이 되어 당사자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세계의 이혼법은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가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여러 선진국이 파탄주의를 채택하거나 파탄주의 요소를 병행하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참고할 만하다. 혼인을 유지할 것인지, 혼인을 해소할 것인지는 결국 각 경우의 당사자와 자녀들의 고통과 피해를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파탄주의를 도입하더라도 무제한적인 파탄주의보다는 유책주의와 병행하거나, '이혼으로 인하여 경제적 파멸이나 정신적 고통이 충격이 될 정도라면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가혹조항을 둔다면 파탄주의 폐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혼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구체적인 사건마다 개별적인 이혼원인에 파탄주의를 병행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0-09-20
도산해지조항의 유효성
1. 들어가며 계약의 일방 당사자에 대한 회사정리절차 개시신청 등을 계약해지권의 발생원인 내지 계약의 당연 해지사유로 정한 이른바 '도산해지 조항(ipso facto clause 조항)'의 효력이 실무상 문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도산해지 조항은 임대차 계약, 리스 계약 등에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계약서에서도 널리 해지 내지 기한 이익 상실 요건의 하나로써 규정되어 있는 바, 기업회생 실무에서는 동조항으로 인해 채무자 회사(특히 고가의 장비를 리스하여 사업의 수행하는 기업의 경우 등)의 사업 유지나 회생계획에서 필수적인 자산을 반환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채무자는 그 동안 사용, 수익하여 오던 계약 목적물의 사용수익권을 상실하는 반면 반대 당사자인 채권자는 환취권을 행사하여 계약 목적물의 점유를 회수할수 있게 되므로 그 목적물이 회생절차의 진행에 긴요한 경우 채무자의 회생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동조항의 효력에 대하여는 계약자유의 원칙을 우선하여 동 조항을 유효로 볼 것인지, 또한 어느 범위에서 유효한지여부, 특히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통합도산법')상의 미이행쌍무계약 관리인의 해지선택권(통합도산법 제119조)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으며 이에 대해 대법원 2005다38263 판결을 어떻게 해석할지 여부도 다툼이 있는 듯하므로 먼저 원심판결과 위 대법원판결을 비교한 후 그 유효성을 논하고자 한다. 다만 위 대법원 판결이 종국에 있어 문제된 정리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심판결과 동일하게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있으나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대하여는 상이한 서술을 하고 있어 아래 2. 원심판결 및 대법원 판결의 요지에서는 판결 이유 중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관한 판결이유에 한정하여 서술한다. 참고로 판시 사안에서는 도산해지 조항에 관하여 계약 일방 당사자에 대하여 회사정리절차개시신청의 사유가 발생한 사실 이외에 18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소멸되지 않을 경우 해지권이 발생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원심판결 및 대법원 판결 요지 가. 원심판결(서울고법 2005. 6.10. 선고 2004나87017 판결) 원심판결은 합작투자계약의 일방 당사자에 대한 회사정리절차 개시신청을 약정해지권 발생사유로 규정한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대하여 현재 재정적인 파탄에 직면하고 있을지라도 향후의 계속기업가치를 따져 경제적으로 갱생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법원의 감독 아래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가면서 사업을 계속하게 하여 종국적으로 기업을 재건하고자 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회사정리절차의 목적과 취지에 반하고 또한 회사정리법상 관리인의 회사재산에 대한 관리처분권(구 회사정리법 제53조, 제103조, 현 통합도산법 제119조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무효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또한 해지권이 발생하기 위하여 회사정리절차개시신청의 사유가 발생한 사실 이외에 18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소멸되지 않을 것을 추가요건으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결론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판시하였다. 나. 대법원 판결(2007. 9.6. 선고 2005다38263 판결) 이에 반해 대법원 판결은 도산해지 조항의 일반적 유효성에 대하여 "도산해지 조항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사정을 도외시한 채 도산해지 조항을 회사정리절차의 목적과 취지에 반한다고 하여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침해하고 상대방 당사자가 채권자의 입장에서 채무자의 도산으로 초래될 법적 불안정에 대비할 보호가치 있는 정당한 이익을 무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도산해지 조항이 구 회사정리법에서 규정한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유로 효력이 부정되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 도산해지 조항으로 인하여 정리절차개시 후 정리회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조항이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미이행 쌍무계약의 경우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에 관한 관리인의 선택권을 부여한 회사정리법 제103조 취지에 비춰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무효로 보아야 한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리절차개시 이후 종료시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도산해지조항의 적용 내지는 그에 따른 해지권의 행사가 제한된다는 등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정리법 제103조에 정한 쌍무계약이라 함은 쌍방 당사자가 상호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는 채무를 부담하는 계약으로서, 본래적으로 쌍방의 채무 사이에 성립이행존속상 법률적·경제적으로 견련성을 갖고 있어서 서로 담보로서 기능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위 규정이 적용되려면 서로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는 계약상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이행되지 아니한 것을 의미한다"고 판단한 뒤, 도산해지 조항이 문제된 본 사건 합작투자계약은 조합계약에 해당하고, 계약당사자들로서는 상호 출자하여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조합 구성에 관한 채무의 이행을 마친, 즉 미이행쌍무계약이라고 볼 수 없어 제103조가 적용된다고 할 수 없고, 조합계약은 일반적인 재산상의 계약과는 달리 서로 간에 고도의 신뢰관계를 전제로 하므로 일방 당사자에게 지급정지 등의 사유가 발생하고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되어 장차 계약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관리인이 상대방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다른 당사자로서는 그로 인해 초래될 상황에 대비할 정당한 이익을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따라서 위와 같은 사유에 의한 도산해지 조항을 약정한 경우에는 이를 무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요컨대, 대법원은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대하여는 구 회사정리법에서 규정한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유로 효력이 부정되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없으며 다만 미이행의 쌍무계약의 경우는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을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할 여지가 적지 않다고 판시한 뒤, 종국적으로는 판례 사안처럼 합작투자계약의 경우 조합계약이고 미이행쌍무계약이 아니므로 판시 계약상의 도산해지 조항이 무효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3. 학설의 대립 이러한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대하여 긍정설은 계약 자유의 원칙, 위 대법원 판결이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을 부정하게 되면 상대방 당사자가 채권자의 입장에서 채무자의 도산으로 초래될 법적 불안정에 대비할 보호가치 있는 정당한 이익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한다. 반면 부정설의 경우 동 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하게 되면 기업회생 신청이라는 사실만으로 채무자 회사의 사업 유지나 회생계획에서 필수적인 자산을 반환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회생절차의 목적과 취지에 반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4. 입법례, 외국의 판결례 미국 연방파산법 제365조 (e)(1)은 불이행(혹은 미확정) 계약 또는 만료 되지 않은 임대차계약은 채무자의 파산 혹은 재정적 상황, 파산법상의 절차의 개시시작 등의 사유만으로 종료되거나 변경될 수 없고, 그러한 계약 혹은 임대차 계약상의 권리나 의무는 종료되거나 변경될 수 없다고 규정하여 도산해지 조항을 무효로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최고재판소는 회사갱생절차에서 회사갱생절차 개시신청 사실을 약정해제사유로 한 소유권유보부 매매계약상의 해제권유보 특약조항은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5. 검토 및 결론 위 대법원 판례는 도산해지 조항을 어떤 경우에도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통합도산법에서 규정한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위반된다는 등의 이유로 그 유효성이 부정될 수 있으며 특히 미이행쌍무계약의 경우, 도산해지 조항을 무효로 해석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을 한 바, 미국 연방파산법처럼 도산해지 조항을 무효로 규정한 명시적인 강행규정이 없는 이상 이러한 해석을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있어 미이행쌍무계약의 경우 도산해지 조항이 무효가 되는 범위를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기업회생절차의 취지가당사자 사이의 계약 자유원칙을 제약하면서도 법원의 감독 아래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가면서 사업을 계속하게 하여 종국적으로 기업을 재건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 이러한 도산해지 조항은 자칫 통합도산법상 관리인의 처분권 내지 해지선택권을 무용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도산해지 조항으로 인하여 기업회생신청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핵심적인 자산을 반환하게 되면 기업 경영자가 회생절차 신청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는 점, 채권자가 악의로 채무자에 대한 도산절차 신청을 한 후에 도산해지 조항에 따라 계약해지를 하는 부작용도 상정할 수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건대, 특히 미이행쌍무계약의 경우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을 엄격히 해석해야 할 것이며 도산법에 있어서 국제적 동조화경향 등에 비추어 궁극적으로는 통합도산법상에도 미국연방도산법과 같이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여부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09-12-07
대표자의 횡령과 자세
Ⅰ.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코스닥상장법인인 F 주식회사(이하 ‘대상회사’)의 대주주였던 A는 2001년 7월13일 소유하고 있던 대상회사 주식 5,450,320주(발행주식의 54.8%)를 B에게 금 270억원에 양도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양수인 B는 약정기일까지 위 주식 양수대금 중 일부를 마련하지 못하게 되자 2001년 8월21일 우선 H 주식회사로부터 액면금 84억원의 당좌수표 1매를 빌려 양도인 A에게 교부하였고, 다음날 대상회사의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여 대표이사를 B의 하수인으로 교체한 후 그로 하여금 대상회사의 예금계좌에서 84억원을 인출하여 H 주식회사의 당좌예금계좌에 입금하게 함으로써 위 당좌수표가 결제되게 하는 방법으로 주식 양수대금을 지급하였다. B는 2002년 3월경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혐의로 구속되자 같은 달 22일 보유하고 있던 대상회사 주식 2,794,930주를 C에게 양도하였고, C는 같은 날 대상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2003년 4월3일 해임되기까지 사이에 대상회사의 융통어음을 남발하는 방법으로 약 214억원을 횡령하였다. 이에 과세관청은 B와 C의 횡령액을 익금산입하고 상여처분하여 2005년 7월6일 대상회사에 대하여 2003 사업연도 2억3,500만원의 부과처분 및 2001년 귀속소득 84억원, 2002년 귀속소득 214억원의 각 소득금액변동통지를 하였다. Ⅱ. 판결의 요지 법인의 실질적 경영자인 대표이사 등이 법인의 자금을 유용하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애당초 회수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그 금액에 대한 지출 자체로서 이미 사외유출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9년 12월24일 선고 98두7350 판결, 대법원 2001. 9.14. 선고 99두3324 판결 등 참조). 여기서 그 유용 당시부터 회수를 전제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없는 특별한 사정에 대하여는 횡령의 주체인 대표이사 등의 법인 내에서의 실질적인 지위 및 법인에 대한 지배 정도, 횡령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횡령 이후의 법인의 조치 등을 통하여 그 대표이사 등의 의사를 법인의 의사와 동일시하거나 대표이사 등과 법인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사실상 일치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인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이러한 특별한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법인이 입증해야 한다. Ⅲ.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1. 소득처분 및 원천징수의 개요 결산서상 당기순이익에 대하여는 상법의 이익처분절차에 따라 주주총회에서 그 귀속자가 결정되는바, 이익의 일부는 배당금 등으로 사외로 유출되어 주주 등에게 귀속되며, 일부는 이익준비금이나 임의적립금 등으로 사내에 유보된다. 이와 같이 당기순이익에 대하여 이익처분절차에 따라 귀속자를 결정하는 것처럼 세무상 소득(각 사업연도소득)에 대하여도 그 귀속자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결산서상 당기순이익에 대하여는 상법의 이익처분절차에 따라 귀속자를 결정하였으므로, 당기순이익과 세무상 소득의 차이인 세무조정사항에 대해서만 귀속자를 결정하면 소득 전체에 대한 귀속자의 결정이 완료된다. 이와 같이 세무조정사항의 귀속자를 결정하는 절차를 소득처분(所得處分)이라고 한다. 한편 법인세법에 따른 소득처분도 상법의 이익처분과 유사하게 사외유출(社外流出)과 유보(留保)로 크게 나누어지고, 사외유출은 다시 배당·상여·기타사외유출·기타소득으로 나누어지는데, 특히 세무상 소득이 사외유출된 경우 중에서 그 소득의 귀속자가 법인의 임원 또는 사용인인 경우에는 ‘상여’로 처분한다(실무상으로 이를 「인정상여」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상여로 소득처분하면, 소득처분한 법인은 그 귀속자인 임직원에게 인정상여에 대한 소득세를 원천징수 해야 하고, 동 상여처분 금액은 소득세법상 갑종 근로소득에 해당하므로 그 임직원은 인정상여를 종합소득에 포함하여 신고해야 한다. 2. 사용인의 횡령의 경우 사용인(대표이사가 아닌 기타 임원 포함)의 횡령의 경우, 회사가 당해 사용인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제기 등의 법적 절차를 통해 횡령금액을 회수하려고 하였음에도 횡령인의 무자력 등으로 이를 회수하지 못한 때에는 동 횡령액은 대손처리 등의 방법을 통하여 손비로 인정받을 수 있고, 이때 동 횡령액을 동 사용인의 근로소득으로 보지 아니하므로 이를 상여로 처분하지 아니한다. 이는 법인세법 기본통칙 및 국세청의 유권해석을 통해 과세관청의 일관된 실무 및 관행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대표이사 등 실질적 경영자의 횡령의 경우 가. 대상판결 이전의 판례에 대한 검토 대상판결 이전의 판례(이하 ‘기존 판례’)는 횡령의 주체가 법인의 대표이사 또는 실질적 경영자인 경우에는 그 대표자라는 신분 때문에 일반 임직원이 횡령한 경우와는 달리 “횡령액의 회수를 위하여 법에 의한 제반 절차를 취하였는지” 여부를 묻지 아니하고 단지 “법인의 대표이사 등이 법인의 자금을 유용하는 행위는 애당초 회수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그 금액에 대한 지출 자체로서 이미 사외유출에 해당한다”고 설시하면서 동 횡령금액을 대표이사 등에 대한 상여 내지 임시적 급여로 보아 해당 법인에 원천징수의무를 부과하는 과세처분을 용인해 왔다(대법원 1999. 12.24. 선고 98두7350 판결 등). 한편, 대법원은 대표이사의 직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법인을 지배경영하는 자의 횡령에 관하여도 대표자 횡령에 관한 상기 법리를 동일하게 적용하였고(대법원 2001. 9.14. 선고 99두3324 판결 등), 반대로 형식상 대표이사의 직위에 있는 자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피용자의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사용인의 횡령에 관한 법리(횡령금액에 대한 회수노력의 유무에 따라 사외유출 여부를 판단)에 따라 해당 법인의 원천징수의무 부담 여부 등에 관하여 판단해 왔다(대법원 2004. 4.9. 선고 2002두9254 판결 등). 그러나 대표자 횡령에 관한 위와 같은 기존 판례의 일률적인 해석에 관하여는 ‘횡령의 피해자가 그 의사의 여하에 불구하고 횡령자에게 자발적으로 대가 없이 재산을 제공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현행 조세법상 실정법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의문 및 그 논리구성이 과연 과세이론상 타당한지 여부에 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것이고, 현실적으로 위와 같은해석으로 말미암아 횡령행위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인 법인에게 횡령 당한금액에 대한 원천징수의무까지 부과시키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함은 물론 주식이 고도로 분산된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과세로 인하여 횡령과 전혀 무관한 대다수의 선량한 소액주주들에게 횡령으로 인한 피해나 부담이 부당하게 전이되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비판 등이 있어 왔다. 나.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일반적으로 전문경영인을 대표이사로 둔 회사라면 대표이사의 횡령사실이 노출될 경우 대주주들이 주도하여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임하여 전 대표이사를 고발하고 그의 재산을 가압류 하는 등 일실재산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을 취하는 것이 전형적인 해결방법일 것이다. 대주주가 대표이사인 회사에서도 소액주주들의 대표소송 등을 통해 대표이사의 책임을 추궁하거나, 회사가 파산절차 등에 들어간 이후 관리인이 대표이사의 횡령책임을 추급하는 예도 흔하다. 그런데 기존 판례의 이론에 따를 경우 대표이사의 횡령에 관한 한 이러한 법인의 자구적인 노력은 적어도 과세에 있어서는 무의미한 행위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실무상 자주 접하게 되는 사례는 전문적으로 상장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대상회사의 자산을 오로지 개인적인 용도로 이용하는 세력(이른바 ‘기업사냥꾼’)에 의하여 발생한다. 즉, 일반적으로 기업사냥꾼들은 사채업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여 주권상장법인 또는 코스닥상장법인의 대주주로부터 주식 및 경영권을 양수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인수한 뒤 위와 같이 사채업자로부터 융통한 주식양수대금을 상환하기 위하여 회사의 예금 등 현금성 자산을 임의로 인출하여 사용하거나, 법인 명의의 융통어음을 남발하여 이를 유용하기도 하고, 심지어 회사 중요자산(부동산, 투자유가증권, 무형자산 등)을 제3자 또는 특수관계인에게 담보로 제공하거나 매각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실상 회사를 껍데기로 만든 다음 무책임하게 해외로 도주해 버리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물론 기업사냥꾼 일당은 회사의 고소 등을 통해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을 것이나, 이들은 이미 해외로 도피하거나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많고, 가사 이들에게 실제로 형벌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이미 망해 버린 회사를 되살리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회사가 이들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기업사냥꾼들은 이미 재산을 전부 소비하였거나 제3자의 명의로 은닉한 상태일 것이므로 현실적으로 법인이 입은 재산상 손해를 온전히 회복하기는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기존 판례의 형식 논리에 따라 이미 껍데기만 남아 망하기 일보 직전인 회사에 대하여 횡령금액에 관한 원천징수세액의 과세가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법인의 실질적 경영자인 대표이사 등이 법인의 자금을 유용하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애당초 회수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그 금액에 대한 지출 자체로서 이미 사외유출에 해당한다”라는 기존 판례의 견해를 유지하면서도 이에 부가하여 새롭게 “유용 당시부터 회수를 전제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없는 특별한 사정에 대하여는 횡령의 주체인 대표이사 등의 법인 내에서의 실질적인 지위 및 법인에 대한 지배 정도, 횡령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횡령 이후의 법인의 조치 등을 통하여 그 대표이사 등의 의사를 법인의 의사와 동일시하거나 대표이사 등과 법인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사실상 일치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인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이러한 특별한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법인이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대표자 횡령의 경우 무조건 당해 법인에 대하여 원천징수의무를 부과해 온 기존의 과세관행에 의미 있는 제동을 건 것이다. 특히 대상판결의 사실관계 및 위 법리의 포섭과정을 분석해 보면, 주식이 고도로 분산되어 있어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상장법인의 경우 일반적으로비상장회사의 경우는 사실상 대표이사 등의 의사가 법인의 의사와 동일한 것으로 인정되기 쉬울 것이나 비상장회사라 하더라도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경우라면 대상판결이 판시한 법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이사 등 실질적 경영자의 횡령사실을 인지한 직후 지체없이 횡령금액의 회수를 위하여 해당 대표이사 등을 형사고소 하면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적극적인 회수조치를 취한다면 동 횡령금액 상당의 자산이 사외유출된 것으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 즉 해당 법인은 횡령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법인의 실질적 경영자인 대표이사 등이 법인의 자금을 유용하더라도 일반적으로 그 대표이사 등의 의사를 법인의 의사와 동일시하거나 대표이사 등과 법인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사실상 일치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므로, 이 경우에는 “사용인에 대한 횡령” 사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횡령금원에 대한 회수노력의 유무에 따라 해당 법인의 원천징수의무 부담 여부가 결정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로 최근 서울고법에서도 대상판결의 판시사항을 전제로 대표자의 횡령과 관련된 조세쟁점에 대하여 의미 있는 판단을 한 바 있다(서울고법 2009. 1.14. 선고2006누16504 판결). Ⅳ. 결어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대표이사 등 실질적 경영자의 횡령과 관련하여 대상판결은 현행 세법 규정의 문언적 해석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기존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일률적인 해석 및 과세관행에 합리적인 제한을 가함으로써 형식 논리에 따라 파생된 부당한 결과를 적절히 시정할 수 있는 설득력 있고 구체적 타당성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는 바, 바람직한 입장의 정립인 것으로 판단된다.
2009-10-05
미용성형수술에 있어서의 시술의사의 주의의무
1. 사안의 개요 이 사건 피해자는 2004년 11월 15일경 피고인1 의사로부터 안면 주름 및 오른쪽 볼부위 볼거리 흉터 제거수술 등을 시행받은 뒤, 익일에 전날 성형수술시 묶어놓은 안면부 혈관이 풀려 혈종이 발생하여 얼굴이 부은 상태가 발생하게 되어 재내원했고, 이에 피고인1은 전날 성형수술 당시 절개한 부위를 다시 절개하고 혈종을 제거한 뒤 봉합했으나, 이후에도 피해자가 이상증상을 계속 호소하여 같은 달 19일과 21일 계속하여 절개부위를 다시 절개해서 혈종을 제거하거나 상태를 들여다 본 다음 다시 봉합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같은 달 19일의 1차 봉합수술이후 피고인1은 상피고인이 피해자가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전원 요구에 응하지 않고 간호사도 배치되어 있지 않은 입원실에 피해자를 입원시키는 조치를 하는 등 피해자와 대치하다가 결국 같은 달 22경 피해자측의 강력한 요구에 못이겨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피해자는 안면 오른쪽 귀 근처 수술부위의 창상이 벌어진 채 부종 및 감염상태가 매우 심각한 상태의 상해를 입었던 사안이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들이 업무상과실치상 외에 의료법위반,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부정의료업자), 위증교사·위증 등 여러가지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문제되었고, 대법원에서는 피고인1에 대한 초진기록 미송부에 의한 의료법 위반의 공소사실을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부분은 파기했으나, 업무상과실치상 등 나머지 부분에 대하여는 원심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2. 판결요지 대법원은 이 건에서 업무상 과실치상의 점과 관련하여 “의사가 진찰·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할 때는 사람의 생명·신체·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하고,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하거나 그러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신속히 전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고 하여 일반적인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사의 주의의무를 설시하는 한편, “특히 미용성형을 시술하는 의사로서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에 입각하여 시술 여부, 시술의 시기, 방법, 범위 등을 충분히 검토한 후 그 미용성형 시술의 의뢰자에게 생리적, 기능적 장해가 남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뿐 아니라, 회복이 어려운 후유증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경우 그 미용성형 시술을 거부 내지는 중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해 별도로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하여 논한 뒤, “이 사건에서 피해자를 상대로 피고인1이 시행한 안면 주름 및 오른쪽 볼 부분 볼거리 흉터 제거수술의 목적과 방법, 위 피고인의 위 수술에 대한 지식의 정도와 시술경험, 위 수술 이후 피해자의 상태 변화, 피해자의 증상이 악화된 이후 피해자를 ○○병원에 이송할 때까지 위 피고인이 취한 조치의 내용 등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비록 위 수술로 인한 부작용을 확대시키는 데 있어서 피해자의 과실이 있음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은 미용성형 시술을 하는 의사로서 요구되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가 위와 같은 성형수술 이후 그 회복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수인해야 하는 범위를 초과하여 생리적·기능적 장해를 입게 되었다고 보이므로,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에 대한 판시 업무상과실치상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옳다”고 판시했다. 3. 문제의 제기 이 사건 대법원판결은 미용성형의 경우 요구되는 의사의 주의의무가 의사의 일반적인 주의의무와 비교해 볼 때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에 관한 형사적 관점에서 판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판시 내역에 주목하면서 일반적 의료행위에 관한 의사의 주의의무를 살펴본 뒤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가 어떠한 점에서 차별화되는지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4. 일반적 의료행위에 관한 의사의 주의의무 대법원은 일반적 의료행위에 관한 의사의 주의의무에 관해 ‘의료과오사건에 있어서의 의사의 과실은 일반의 의사가 그 당시 의학상 일반적으로 인정된 지식과 기술에 의해서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발생을 회피하지 못한 과실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여 의사가 행하는 의료행위의 경우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관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불법행위에서 보다는 한층 더 높은 주의의무 또는 최선의 주의의무가 요구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84. 6. 12. 선고 82도3199 판결). 한편, 이러한 일반적인 의료행위에 있어 ‘의사가 기울여야 할 주의의무를 다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기준으로는 추상적이고 애매한 경우가 많으므로 의료행위가 행해지는 주변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법원도 수차례 “의사의 진찰·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사람의 생명겱택펯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고, 의사의 이와 같은 주의의무는 의료행위를 할 당시 의료기관 등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삼되, 그 의료수준은 통상의 의사에게 의료행위 당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또 시인되고 있는 이른바 의학상식을 뜻하므로 진료환경 및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되어야 하며, 또한 진단은 문진·사진 ·촉진·청진 및 각종 임상검사 등의 결과에 터 잡아 질병 여부를 감별하고 그 종류, 성질 및 진행 정도 등을 밝혀내는 임상의학의 출발점으로서 이에 따라 치료법이 선택되는 중요한 의료행위이므로, 진단상의 과실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과정에 있어서 비록 완전무결한 임상진단의 실시는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진단 수준의 범위 내에서 그 의사가 전문직업인으로서 요구되는 의료상의 윤리와 의학지식 및 경험에 터 잡아 신중히 환자를 진찰하고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위험한 결과 발생을 예견하고 그 결과 발생을 회피하는 데에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한다”고 하여 의료과실의 구체적 판단규준에 관해 제시해 왔다(대법원 1987. 1. 20. 선고 86다카1496 판결, 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다20755 판결, 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다33875 판결 등 참조). 5. 미용성형수술 시행 의사의 주의의무 미용성형수술의 경우 피시술자가 정상적인 외관과 기능을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피시술자의 개인적인 심미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되는 것이므로 의학적 적응성과 치료의 긴급성이 질병과 상해에 대한 치료가 주목적인 일반적인 의료영역과는 차별화되고 있다. 또한 미용성형수술의 경우 영리적 목적이 강하고, 적극적으로 행해지는 의료광고를 통해 피시술자가 수술시행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시술 전에 의사와 피시술자 사이에 구체적 결과에 대한 상호협의 후에 이루어지는 등 도급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일반적 의료행위에 있어서 요구되는 것과는 다른 고도의 주의의무가 부과될 필요성이 있다. 대법원 역시 위 판시내역과 같이 미용성형 수술을 시행하는 의사에 대해 보다 엄격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듯 하다. 즉, 미용성형수술의 경우 첫째, 의학적 필요성이 적고 긴급성이 없기 때문에 시술자인 의사로서는 피시술자의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불만감과 피시술자가 원하는 구체적 결과에 관해 충분히 경청한 뒤 현대 임상의학의 발달수준에 맞추어 피시술자가 원하고자 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해 숙고해야하고, 둘째, 피시술자의 특이체질 등에 관하여 면밀한 검사를 거친 뒤 시술 여부 및 시술방법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셋째, 만약 피시술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거나 미용성형수술로 인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사료되는 경우 시술을 중단해야 할 의무까지 부과하고 있고, 넷째, 미용성형수술을 시행하는 의사가 시술을 시행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때 향후 미용성형수술로 남을 수도 있는 피시술자의 생리적·기능적 장해에 관한 예견가능성도 확대되며, 다섯째, 수술 후 피시술자에게 위 장해가 남지 않도록 피시술자가 알아야 할 대처에 관한 요양방법의 지도의무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가 일반 의료행위 시술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와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반론도 있으나, 일반 의료행위의 경우 의학적 적응성과 치료의 긴급성이 있을 경우에는 그 의료행위로 인해 생명에 위험이 야기되는 경우에도 구명(救命)의 가능성이 있다면 시술을 중단해서는 안 되고 시행해야 하며, 또 그 의료행위로 인해 사전에 예상되는 후유증이나 수술자국 등 장해가 남는다고 하더라도 그 의료행위가 추구하는 구명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이를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지칭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보여진다. 6. 이 사건 판례의 검토 및 결론 미용성형을 시술하는 의사가 지녀야할 주의의무에 대해서는 일찍이 민사판결인 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다59304판결에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적시한 법리가 판시된 바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는 그러한 민사상 적시되어 온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를 형사상의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를 판단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명시화한 것으로 보인다.
2008-06-16
의사 설명의무에 있어서 설명의 범위
Ⅰ. 사건의 개요 및 법원판단의 경과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1994. 2. 24. 보건소에서 폐결핵 판정 및 결핵약 복용처방을 받고 보건소 결핵실 담당 의사로부터 결핵환자에게 일반적으로 처방되는 아이나, 에탐부톨(EMB), 피라진아미드, 리팜피신의 4가지 약품을 한 달 단위로 교부받아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원고는 복용후 4개월 후 시신경염(의증)의 진단을 받았고 에탐부톨의 복용 중지에도 불구하고 시력이 회복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애 3급 1호‘의 판정을 받았다. 2. 원심의 판결요지 보건소 결핵담당 의사들로서는 결핵환자에 대한 보건소 의료진으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한편 의사 등 의료 종사자에게 요구되는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부작용 등의 설명의무는 그것이 당해 의료행위로 인하여 예상되는 위험이 아니거나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예견할 수 없는 위험인 경우에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인데, 위 의사는 결핵환자에 대한 보건소 의료진으로서 당시의 의료수준과 여건하에서 요구되는 설명의무를 다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시각이상 등 그 복용 과정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한 우려가 있는 약품을 투여함에 있어서 그러한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 및 그 경우 증상의 악화를 막거나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데에 필요한 조치사항에 관하여 환자에게 고지하는 것은 약품의 투여에 따른 치료상의 위험을 예방하고 치료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하여 환자에게 안전을 위한 주의로서의 행동지침의 준수를 고지하는 진료상의 설명의무로서 진료행위의 본질적 구성부분에 해당한다 할 것이고, 이때 요구되는 설명의 내용 및 정도는, 비록 그 부작용의 발생가능성이 높지 않다 하더라도 일단 발생하면 그로 인한 중대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환자 스스로 판단, 대처할 수 있도록 환자의 교육정도, 연령, 심신상태 등의 사정에 맞추어 구체적인 정보의 제공과 함께 이를 설명, 지도할 의무가 있고, 결핵약인 ‘에탐부롤’이 시력약화등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이상 이를 투약함에 있어서 그 투약업무를 담당한 의사등은 위와 같은 부작용의 발생가능성 및 구체적 증상과 대처방안을 환자에게 설명하여 줄 의료상의 주의의무가 있고 그 설명은 추상적인 주의사항의 고지나 약품설명서에 부작용에 관한 일반적 주의사항이 기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환자가 부작용의 증세를 자각하는 즉시 복용을 중단하고 보건소에 나와 상담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시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Ⅱ. 평석 1. 문제의 제기 의사의 치료행위는 일반적으로 환자의 신체에 대한 침습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정당한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의술적 적정성과 의학적 적응성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환자의 유효한 동의를 얻어야 하고, 의사는 환자의 유효한 동의를 얻기 위하여 질병의 종류, 내용 및 그 치료방법과 이에 따른 위험에 관하여 적절하고 충분한 설명을 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설명의무는 환자는 단순히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는 객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존재라는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오늘날 의료관계에서 의사에게 요구되는 설명의무는 환자보호를 우선 하는 의료직의 윤리로서 고양되고 있으며, 헌법 제10조의 기본적 인권보장에 의해 뒷받침되는 법규범적 요청이다. 대상판결은 의사가 환자에게 부담하는 설명의무에 있어서 그 설명을 어느 정도 범위 까지 하여야할 것인가에 대하여 기존의 판례를 답습하는 한편 하나의 구체적 예시를 제시하였다. 2. 의사의 주의의무 의료과오(醫療過誤)로 인한 법적책임에는 의사의 과실을 요건으로 하는 데, 그 과실 판정의 기초가 되는 것은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注意義務)이다. 의료과오사건에 있어서의 의사의 과실은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발생을 예견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슴에도 불구하고 결과발생을 회피하지 못한 과실이라는 예견의무와 회피의무의 이중구조로 되어있다(대법원 1984. 6. 12. 선고 82도3199 판결). 한편,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기준은 진료당시의 이른바 임상의학(臨床醫學)의 실천에 의한 의료수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대법원 1997.2.11.선고 96다5933 판결). 3. 의사의 설명의무 가. 설명의무의 도입동기 의료분쟁의 요체는 회사가 의료과오를 범하였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으나, 그 과실의 입증은 역시 의료전문가인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것인데, 의사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동료의식으로 환자측에서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의료현실에 직면하여 의사의 전단적 의료행위로부터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상이 대두하게 됨에 따라 의사의 설명의무와 환자의 승낙권이 각국에서 여러 측면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는데 각국의 판례의 태도는 다소 차이는 있으나 의사가 치료에 임하여 환자의 승낙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 나. 설명의무의 법적성질 설명의무의 연혁을 고려해보면,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실행에 도움을 주도록 의사에게 특별히 지워진 의무임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의사의 설명의무는 자기의 독립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의무이며, 의사측의 주된 給付義務인 진료의무를 보다 완전하게 이행하는 데에 이바지할 뿐 어떤 독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의사의 의료행위상의 주의의무와는 구별되므로 주된 급부의무인 진단 및 치료의무와 병존하는 獨立的 附隨義務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 설명의무의 내용 (1) 설명의 주체와 상대방 설명은 處置醫師가 직접 환자에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예외적이고 어려운 수술이어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중요시되는 경우에는 수술 의사가 직접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의사가 설명을 할 상대방은 당해 의료행위에 대하여 동의할 자로서 원칙적으로 患者 자신이 되며, 따라서 어떤 의사도 환자와 의논하지 아니하고 그의 친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질병 및 의료처치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들로부터 동의를 기대하거나 그들에게 동의를 위임받도록 할 권리가 없다. 설명의 상대방으로서의 환자에게 행위능력까지는 요구되지는 않으나, 완전한 의사능력 즉 자신의 결정의 의미와 효과를 인식할 수 있는 辨識力은 갖춰야 하고, 그러한 경우에만 그 설명은 유효하게 된다. (2) 설명의 시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설명은 적시에, 즉 환자가 자신의 인식능력과 결정능력을 완전히 가지고 있고, 행하여질 의료침습시까지 상당한 고려기간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행하여져야 한다. 원칙적으로 代案的인 經過豫後(Verlaufsprognosen)를 형량하여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과 의논하고 충분히 숙고한 후 결정할 시간이 환자에게 주어지면 된다 하겠다. (3) 설명의 방법 설명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이어야 하나 동의와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설명은 환자의 연령과 교육 정도에 맞춰서 이해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일방적이어서는 안되고 환자 쌍방의 대화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취하여진 설명서 또는 동의서에 대한 서명은 환자가 그것을 읽고 이해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서명에 앞서 치료 내지는 수술과 그것의 발생 가능한 결과에 대한 대화가 나누어 졌다는 사실에 대한 정황이 될 수 있을 뿐이다(대법원 1994. 11. 25. 선고 94다35671 판결). 라. 설명의무위반의 입증책임 설명의무 위반의 입증책임에 대하여 의사가 부담한다는 견해, 환자가 부담한다는 견해, 의사의 설명과 환자의 동의를 구분하여 부담한다는 견해가 있으나, 우리나라 대법원은 의사측에 입증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1979. 8. 14. 선고 78다488 판결). 마. 설명의 범위 의사가 환자에게 하여야 하는 설명의 대상을 내용별로 유형화해 보면 ①환자의 症狀, ② 침습의 내용, 정도, ③ 수술등 처치의 전망(효과-증상개선의 정도), ④ 침습의 必要性, 緊急性 및 수술등 처치를 하지 않는 경우의 증상의 정도, ⑤ 다른 치료방법으로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다는 점(補充性), ⑥ 침습의 결과 생기는 危險의 내용, 정도 및 방지가능성, ⑦ 당해 시설에 있어서 과거의 實績 등이다. 또한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의료행위에 따르는 후유증이나 부작용의 발생가능성이 희소하다는 사정만으로 면제될 수 없고, 그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당해 치료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인 경우에는 그 발생가능성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설명의 대상이 된다(대법원 1996. 4. 12. 선고 95다56095 판결, 1995. 1. 20. 선고 94다3421 판결). 바. 설명의 한계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설명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환자의 치유에 위해적인 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癌등 불치병의 진단이나 처치상의 중대한 위험 등에 대한 사실 그대로의 설명은 오히려 공포등 치료에 역효과를 가져오는 심리적 위축을 야기할 수 있어 의사의 설명의무의 이행을 무조건 강제라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일 수는 없다. 이러한 때에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의하여 설명을 피하는 것이 치료상 환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면, 즉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불이익과 설명에 의한 逆作用이 주는 불이익을 비교형량하여 전자보다 후자가 크다면 설명의무를 면제함이 바람직하며, 완전한 설명이 환자의 건강을 현저히 손상케 하거나 환자에게 무거운 부담을 주어 치료효과에 나쁘게 작용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부분설명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의사의 설명의무에 대한 대부분의 대법원판결들이「긴급한 경우 기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설명의무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는 그것이 면제되는 경우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사. 판례에 나타난 설명의 범위 (1) 설명의무를 인정한 사안 ① 뇌경색으로 입원하여 정확한 치료법을 찾기 위하여 뇌혈관조형술을 받다가 동맥내에 형성된 혈전이나 동맥덩어리가 떨어져나가 뇌동맥을 막아 사망한 사안(대법원 2004. 10. 28.선고 2002다45185 판결). ② 미인대회에 출전하고자 이마와 턱을 높이고 상꺼풀 수술 후 턱 부위의 실리콘이 움직인 성형수술 사안( 대법원 2002. 10. 25.선고 2002다 48443 판결). ③ 수혈에 의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된 사안(대법원 1998. 2. 13. 선고 96다7854 판결). ④ 미골절제술을 위한 할로테인 마취제 사용 후 그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안(대법원 1996. 4. 12. 선고 95다56095 판결). ⑤ 개심수술 후에 후유증으로 뇌전색으로 사망한 사안(대법원 1995.1.20. 선고 94다3421 판결.) ⑥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어 뇌압강하와 뇌기능보호를 위한 중증쇼크치료제 솔루메드롤(Solumedrol) 투약하여 정상회복 후에도, 설명없이 우측안면도중증도 마비 치료를 위하여 다시 투약한 사안(대법원 1994. 4. 15. 선고 92다25885 판결). (2) 설명의무를 부인한 사안 ① 안과수술 후 갑자기 나타난 예측불가능한 시신경염으로 환자의 시력이 상실된 경우 의사에게 당해 의료행위로 인하여 예상되는 위험이 아니거나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예견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설명의무까지 부담하게 할 수는 없는 것으로 설명의무 부인한 사안(대법원 1999.9. 3. 선고 99다10479 판결). ②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어 뇌압강하와 뇌기능보호를 위한 중증쇼크치료제 솔루메드롤(Solumedrol) 투약한 것이 생명이 위독한 상태하에서 의식이 회복되기 전까지의 투약에 관한 한 사전의 설명이 불가능하였으므로 긴급한 경우에 해당한다 하여 그 시점까지의 설명의무를 부인한 사안(대법원 1994. 4. 15. 선고 92다25885 판결). ③ 의사의 윌슨(Wilson)씨병을 앓는 환자에 대한 그 병의 치료과정과 치료약제의 투약에 관한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 사안(대법원 2002. 5. 28. 선고 2000다46511 판결). 4. 대상 판결의 검토 대상판결은, 진료행위의 본질적 구성부분에 해당하는 진료상의 설명의무를 함에 있어 요구되는 설명의 내용 및 정도가 비록 그 부작용의 발생가능성이 높지 않다 하더라도 일단 발생하면 그로 인한 중대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환자 스스로 판단, 대처할 수 있도록 환자의 교육정도, 연령, 심신상태 등의 사정에 맞추어 구체적인 정보의 제공과 함께 이를 설명, 지도할 의무가 있다고 보고 있다. 대상 판결에 나타난 사정을 종합하면, 지역이 의료취약지역이고, 결핵관리지침등에는 결핵환자에게 투약하는 4가지 약품의 각종 부작용을 열거하면서 이를 그 대처방안에 따라 ‘투약의 즉시 중단’, ‘투약중단 후 증상완화시에 재투약’, ‘계속 투약’ 등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사안이 중한 즉시 투약중단에 속하는 부작용 중 이 사건 에탐부톨과 관련된 것은 ‘급격한 시력감퇴‘가 유일하며, 에탐부톨은 시신경염이 가장 심각한 부작용으로서 그 외의 부작용은 드물고, 발생률은 투약량과 기간에 비례하며, 시각기능검사에서 이상을 발견하기 전에 증상이 먼저 나타나는 관계로 환자 본인이 가장 먼저 알 수 있으므로 환자에게 시력에 이상이 생기거나 색깔 인지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 반드시 보고하도록 미리 교육시키게 되어 있다. 원고가 이 사건 최초 진료 당시 위 보건소에서 시력측정을 받은 것도 에탐부톨의 부작용과 관련된 보건소의 내부지침에 따른 것이고, 원고는 1999. 2. 24. 에탐부톨이 포함된 결핵약을 처음 복용할 당시 양안 모두 1.0이던 시력이 그 후 시력이상을 느껴, 1999. 6. 26.경 안과에 들렀을때는 우안 0.5, 좌안 0.6으로 약 1/2 수준으로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에탐부톨의 복용 이후 원고에게 발생한 시력약화 및 시신경염과 같은 증상은 에탐부톨 복용에 따른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의료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일 뿐만 아니라 보건소의 보건의료업무에 관한 지침상으로도 결핵환자에 대한 투약 및 관리에 있어 유의하여야 할 항목의 하나로 명문화되어 있고 그 부작용의 내용 및 발생 빈도에 비추어 이를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경미하다거나 희소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이상 원고에 대한 위 투약업무를 담당한 보건진료원으로서는 그 투약에 즈음하여 위와 같은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 및 구체적 증상과 대처방안을 설명하여 줄 의료상의 주의의무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설명을 함에 있어서는 원고가 위 부작용의 증세를 자각하는 즉시 복용을 중단하고 보건소에 나와 상담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설명의 상대방인 원고는 농촌에 거주하며 버섯재배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약품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하여는 문외한이므로 막연히 ‘이상증세가 있으면 보건소에 나와 상담, 검진하라’고 이야기 하거나 혹은 위 약품에 첨부된 제약회사의 약품설명서에 그 부작용에 관한 일반적 주의사항이 기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필요한 설명을 다하였다고 할 수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살피어 보면, 보건소 진료원이 원고에게 에탐부톨을 복용함에 있어 구체적으로 부작용의 발생가능성과 증상 및 대처방안에 대하여 제대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고 본 대법원의 판시는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2005-10-20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의 유효요건
[事案의 槪要] 동해펄프는 홍콩의 한화로부터 카수아리나 우드칩을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원고(한국외환은행)에게 신용장 발행을 의뢰했다. 원고는 1997. 8. 25. 수익자 한화, 상환은행 CMB 뉴욕지점의 일람후 60일 결제조건의 기한부 신용장을 발행했다. 한화는 피고(가와사키기센(川崎汽船))와 중국 해구항에서 울산항까지 운송하는 운송계약을 체결한 뒤, 화물을 피고의 선박에 선적하였고, 피고로부터 지시식 선하증권을 교부받아 CMB 홍콩지점에 양도했다. CMB 홍콩지점은 1998. 2. 18. 선적서류를 매입하여 원고에게 송부했고, 상환은행을 통해 원고에게 신용장대금의 지급청구를 하여 원고는 만기일에 상환은행에 신용장대금을 지급했다. 원고는 신용장대지급금을 상환받지 못한 채 선하증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화물은 1997. 9. 17. 울산항에 도착했는데, 피고는 선장에게 동해펄프의 보증서를 받고 선하증권 없이 화물을 인도할 것을 지시했고, 동해펄프는 이를 인도받았다. 선하증권의 이면약관 제27조는, “본 선하증권에 의하여 입증되거나 규정된 계약은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일본법에 의하여 규율되며, 운송인에 대한 어떠한 소송도 일본국 동경지방재판소에 제기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원고는 선하증권의 소지인으로서 운송인인 피고에 대해 화물의 불법인도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訴訟의 經過] 1. 1심판결: 서울지방법원 2000. 1. 14. 선고 98가합74877 판결은, 한국에 관할권이 없다는 피고의 본안전항변에 대해 한국법에 의하여 동 법원에 관할권이 있다고 판시했으나 대상판결의 선례인 대법원 1997. 9. 9. 선고 96다20093 판결(“1997년 판결”)은 언급하지 않았다. 2.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01. 7. 3. 선고 2000나10002 판결은, 1997년 판결을 따라 관할합의가 무효라고 보았다. 또한 원심판결은, 문제된 관할합의는 운송인인 피고에 대한 소송은 반드시 피고의 본점 소재지인 동경지방재판소에 제기하도록 규정된 반면, 해석상 운송인은 편리한 장소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어 있어,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하여 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았다. 3. 대법원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한국법원의 관할을 배제하고 외국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하는 전속적인 국제관할합의가 유효하기 위하여는, 당해 사건이 한국법원의 전속관할에 속하지 아니하고, 지정된 외국법원이 그 외국법상 당해 사건에 대하여 관할권을 가져야 하는 외에, 당해 사건이 그 외국법원에 대하여 합리적인 관련성을 가질 것이 요구되고, 한편 전속적인 관할합의가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경우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에 해당하는 점에서도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는 1997년 판결을 따른 것이다. 즉, 피고는 전속관할합의조항의 결과 한국에는 관할권이 없고 손해배상채권의 準據法은 일본법이라고 주장했지만, 대상판결은 한국의 관할권을 긍정하고 涉外私法상 불법행위의 準據法은 한국법이라고 보았다. 대상판결은 準據法合意는 불법행위에는 미치지 않지만, 관할합의는 불법행위에도 미치는 것을 전제로 하되 관할합의조항이 무효라고 보았다. - 판 결 요 지 - 한국법원의 관할을 배제하고 외국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하는 전속적인 국제관할 합의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당해사건이 한국법원의 전속관할에 속하지 아니하고 지정된 외국법원이 그 외국법상 당해 사건에 대해 합리적인 관련성을 가질 것이 요구되고 전속적인 관할합의가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경우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에 해당하는 점에서도 무효이다 - 평 석 요 지 - 당초 관할합의는 홍콩기업과 일본기업간에 체결되었는데 관할합의가 불법행위에도 미치고 관련성이 있어서 유효하다면 수하인이자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가 그에 구속되는 이상 불법행위지가 한국이라는 이유로 관할합의가 처음부터 무효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준거법과 병행하는 관할합의는 다른 관련성이 없더라도 유효한지도 의문이다 [硏 究] Ⅰ. 문제의 제기 필자는 과거 평석(“船荷證券에 의한 國際裁判管轄合意의 문제점”, 서울지방변호사회 판례연구 제16집(下)(2003), 174면 이하)에서, 1997년 판결이 당해 사건이 지정된 외국법원에 대해 합리적인 관련성이 있을 것을 요구한 것을 비판하고, 다만 그 사건의 경우 당사자들이 한국법인이고 訴價가 소액인 점을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도출한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일반화할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1997년 판결의 논리를 전형적인 국제사건에, 그것도 일본선사가 자국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합의한 사건에까지 적용한 점에서 충격적이다. 문제의 핵심은, 관할합의가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이 아닌 경우, 법원은 私的自治를 존중함으로써 예측가능성을 보장해야 하는지, 아니면 관할합의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지이고, 후자를 취하면 법원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근거와 요건이 문제된다. 이하 ‘관할합의’는 국제재판관할합의를, ‘관련성’은 ‘합리적인 관련성’을 말한다. Ⅱ. 국제재판관할합의를 하는 이유 국제재판관할은 재판임무를 (개별법원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어느 국가의 법원에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이므로, 어느 국가내의 동종의 1심법원들 중 어느 법원이 법적쟁송을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인 토지관할과는 다르다. 관할합의시 통상 토지관할에 관한 합의도 함께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전자만도 가능하다. 당사자들은 관할합의를 통해 첫째 국제재판관할과 분쟁의 실체에 적용될 準據法에 관한 불확실성을 배제(완화)할 수 있고, 둘째 개별사안에서 一般的?抽象的 規範에 따른 경직된 관할규칙을 수정할 수 있으며, 셋째 관할규칙상의 利益狀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경할 수 있다. 셋째 기능을 보면 관할합의의 남용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특히 소비자의 경우 그러한데 國際私法(제27조)은 이를 위한 것이다. Ⅲ. 관련성을 요구하는 근거 첫째 관할합의와 지정된 외국법원간에 관련성(즉 외국관련성)을 요구하는 견해는, 불연이면 지정된 법원에게 외국법의 적용, 외국에서의 증거조사 등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심리의 적정이나 소송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당사자들에게도 부당한 부담을 지워 사실상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이 사건의 경우 불법행위지인 한국에 관할이 있어야 하는데, 전속관할합의에 따라 동경지방재판소가 재판하면 그러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대상판결은 지정된 외국법원이 외국법상 당해 사건에 대해 관할권을 가질 것을 별도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원하고 지정된 외국법원이 관할권을 행사하는데도 관할합의를 무효라고 할 이유는 없다. 사견으로는, 관련성의 요건은 한국법원에 전속관할을 부여하는 관할합의도 관련성이 없으면 무효임을 전제로, 외국법원에 전속관할을 부여하는 관할합의에도 같은 요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래 이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유럽연합의 「민사 및 상사사건의 국제재판관할과 외국판결의 승인?집행에 관한 협약」(브뤼셀협약)과 브뤼셀규정, 현재 헤이그국제사법회에서 진행중인 「민사 및 상사사건의 전속관할합의협약」의 초안(“헤이그초안”), 1972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The Bremen et al. v. Zapata Off-shore Co., 407 U.S. 1 사건판결(김문환, 미국법연구 (Ⅰ)(1988), 442면 이하 참조)과 일본 최고재판소의 1975. 11. 28. 판결(치사다네호 사건)(이성웅, “日本法上 船荷證券에 의한 國際裁判管轄合意의 要件”, 해사법연구 제15권 제2호(2003, 121면이하 참조)도 관련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둘째 대상판결이 명시하지 않지만, 외국기업과 전속관할합의를 할 경우 협상력이 약한 한국기업이 한국법원의 관할을 배제당할 수 있으므로, 우리 법원이 내국민보호의 필요성에 이끌려 관할합의의 효력을 부정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속관할합의에는 관할을 부여하는(prorogation) 측면과 관할을 배제하는(derogation) 측면이 있는데, 위에서 본 근거는 전자의 문제인데, 내국민보호는 후자의 문제로서 관할합의의 남용통제의 문제이지 관련성의 문제는 아니다. 만일 이런 취지라면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의 소수의견처럼 그 취지를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칼이다. 그런 논리라면 한국선사들도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전속관할법원으로 합의하기는 어렵게 된다. Ⅳ. 지정된 법원과 당사자간의 관련성은 무시되나 1997년 판결에서는 당사자가 모두 한국기업이었고 뉴욕시 민사법원이 지정되었으므로 관련성은 문제되지 않았지만, 대상판결에서는 피고가 일본기업이므로 피고와 일본간에 어떤 관련성이 있음은 명백하다. 대상판결은 당사자는 도외시하고 당해 사건과 지정된 외국법원의 관련성만을 요구한 듯하지만, 관할근거는 人的裁判籍에서 보듯이 사건만이 아니라 당사자와의 관련성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선사로서는 분쟁을 자신의 본점소재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으므로 법정지와 당사자간의 관련성을 긍정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부당하며, 이 사건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당사자와의 관련성을 명시한 國際私法(제2조)에도 반한다. 또한 헤이그초안(제14조)도 지정된 법원이 속하는 국가는 그 국가와 ‘당사자들’ 또는 분쟁간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경우 관할권을 부인할 수 있음을 선언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Ⅴ. 당해 사건과 관련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지정된 법원인가 아니면 그것이 속한 국가인가 원심판결은 사건이 동경지방재판소와 관련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면서, 중요한 증거방법이 모두 한국내 한국인 증인들이거나 문서들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이를 부정했다. 사견으로는 사건이 ‘동경지방재판소’가 아니라 ‘일본’과 관련성이 있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그렇다면 관련성을 긍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토지관할이 아니라 국제재판관할에 관한 합의의 유효성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국제재판관할은 국가(즉 법원 전체)를 단위로 하는 개념이지 개별법원의 문제가 아니다. 헤이그초안(제14조)도 ‘지정된 법원’이 아니라 ‘당해 국가’와 당사자들 또는 분쟁간의 관련의 유무를 문제삼는다. Ⅵ. 대상판결에 대한 그 밖의 비판 첫째, 대상판결은 ‘합리적인 관련성’이라는 애매한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당사자들이 관할합의를 통해 달성하려는 예측가능성을 해하고 결국 법적안정성을 해한다. 그 결과 많은 국제거래의 전속관할합의의 유효 여부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외국인들은 국제재판관할에 관한 한 한국이 私的自治에 대해 적대적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둘째, 당사자는 중립적인 법을 準據法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순수한 국내거래가 아니라면 中立的인 法廷地(neutral forum)를 합의할 정당한 이익을 가진다. 셋째,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선사이므로 문제가 없지만 한국내 재산이 없는 피고에 대한 우리 판결은 관할권이 없는 법원의 판결이라는 이유로 외국에서 집행이 거부될 수 있다. 넷째, 정책적인 문제로, 한국법원이 일본기업과 중국기업간의 분쟁을 재판하기 위하여는 한국법원을 위한 전속관할합의를 허용해야 한다. 이는 동북아법률허브구상과도 관련된다. 다섯째, 한국법원이 이렇게 개입하면 당사자들은 중재지를 외국으로 하는 중재합의를 할 것이다. 관할합의와 중재합의는 많은 점에서 유사한데, 당사자들이 모든 법원의 관할권을 배제하고 중립지를 중재지로 하는 중재합의는 유효라고 보면서 특정국가의 법원에 관할권을 부여하는 관할합의는 무효라고 볼 이유는 없다. 일부 한국선사들의 선하증권 약관도 문제된 관할합의조항과 유사한데, 이들은 관할합의조항을 중재조항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Ⅶ. 대상판결을 따를 경우 남는 문제 당초 관할합의는 홍콩기업과 일본기업간에 체결되었는데 관할합의가 불법행위에도 미치고 관련성이 있어 유효하다면, 수하인(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가 그에 구속되는 이상, 불법행위지가 한국이라는 이유로 관할합의가 처음부터 무효가 될 수는 없다. 또한 準據法과 병행하는 관할합의는 다른 관련성이 없으면 무효인지도 의문이다. 선하증권상의 계약에 관하여는 관할합의가 유효하지만 불법행위에 관하여는 무효인가, 아니면 모두 무효인가(무효는 혹시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전자라면 청구병합시 처리가 문제되고, 후자라면 실무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대상판결처럼 관할의 결정시 여러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영미의 不適切한 法廷地(forum non conveniens)의 법리와 유사하나, 후자는 법원이 諸要素를 고려하여 관할권의 행사를 거부하는 것이지 관할합의가 무효라는 것은 아니다. 외국법원, 그것도 피고에 대해 一般管轄을 가지는 일본법원에 대해 동 법리를 적용하라고 할 수는 없다. 사견처럼 관할합의가 유효하고 불법행위에도 미친다면 문제가 없지만, 관련성을 요구하는 견해는 위의 의문에 답하여야 한다. Ⅷ. 맺음말 대상판결은 관련성을 긍정해야 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간 국제거래의 경우, 그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이 아닌 한, 법원은 관련성을 요구하지 말고 관할합의를 존중해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의 다수의견처럼 우리 법원도 국제분쟁을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편협한 사고(parochial concept)를 버려야 한다. 법원의 역할은 私的自治를 존중하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지, 당사자들의 합리적인 기대를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하기를 희망한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정부의 短見으로 인하여 법과대학에서는 잊혀진 國際私法과 國際民事節次法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를 기대해 본다.
2004-05-27
기소전 체포·구속적부심사단계에서의 수사기록열람·등사청구권
I. 사건 개요 및 판결 요지 사기죄로 구속된 청구외 김○억의 변호인으로서 그로부터 구속적부심사청구의 의뢰를 받은 청구인이 피청구인인 인천서부경찰서장에게 위 김○억에 대한 수사기록 중 고소장과 피의자신문조서의 열람 및 등사를 신청하였다. 피청구인은 위 서류들이 형사소송법 제47조 소정의 소송에 관한 서류로서 공판개정전의 공개가 금지되는 것이고, 이는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 제7조 제1항 제1호소정의 이른바 다른 법률에 의하여 비공개사항으로 규정된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위 비공개결정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이유로 그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이에 2003년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결정을 내린다. 즉, (1) 형사피의사건의 구속적부심절차에서 피구속자의 변호를 맡은 청구인으로서는 피구속자에 대한 고소장과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열람하여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구속적부심절차에서 피구속자를 충분히 조력할 수 없으므로, 위 서류들의 열람·등사는 변호인인 청구인에게 그 열람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핵심적 권리로서 청구인의 기본권이며, 또한 이는 변호인의 알 권리에 속한다; (2) 고소장과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열람이 헌법상 변호인의 변호권 내지 알 권리로 보호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제한이 가능하지만, 이 사안에서는 이 권리를 제한해야 할 사정이 없다; (3) 피청구인은 “소송에 관한 서류는 공판의 개정전에는 공익상 필요 기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라는 형사소송법 제47조를 근거로 하여 열람·등사를 거부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동조의 입법목적은 형사소송에 있어서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을 받아야 할 피의자가 수사단계에서의 수사서류 공개로 말미암아 그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구속적부심사를 포함하는 형사소송절차에서 피의자의 방어권행사를 제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 결 정 요 지 - 변호사가 구속적부심 절차에서 피구속자에 대한 고소장과 경찰의 신문조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피구속자를 충분히 변호할 수 없으므로 수사기록 열람·등사는 변호인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핵심적 권리로서 변호인의 기본권이며 또한 변호인의 알 권리에 속한다 II. 논의의 전제―소송기록열람·등사권과 공소장일본주의의 긴장 형사소송법 제35조는 “변호인은 소송계속중의 관계서류 또는 증거물을 열람 또는 등사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 변호인의 기록열람·등사권은 변호인이 피고인의 혐의 내용, 수사결과 및 증거를 파악하여 검사의 공격을 대비하여 피고인을 변호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권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열람·등사권은 피고인의 권리이기도 하다(법 제55조 1항, 제292조 2항, 규칙 제30조 1항). 근래까지 이러한 소송기록열람·등사권은 ‘공소장일본주의’(규칙 제118조 2항)와의 관련 속에서 볼 때, 공소제기후 증거제출 전까지의 기간 동안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에 대하여도 인정되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다. 특히 검찰측은 ‘공소장일본주의’의 취지를 강조하며 열람·등사권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1997년 헌법재판소는 공소장일본주의는 “어디까지나 법원에 대한 예단 배제의 한도 내에서 운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고, 소송기록열람·등사권열람·등사권가 헌법상 보호되는 권리임을 분명히 하였다(헌법재판소 1997.11.27. 선고, 94헌마60 결정). 공소제기후 증거제출전 단계의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 등사권을 규정한 명문의 법률규정이 없는 입법의 미비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기초로 수사기록 열람·등사권을 도출하였던 것이다. 이후 검찰도 이 결정의 취지에 따라 1997년 대검예규를 개정한 바 있다. - 평 석 요 지 - 1977년 결정이 공소제기 후 증거제출 전 검사 수중에 있는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여 '실질적 당사자주의'를 강화시켰다면 2003년 결정은 이 권리를 일정한 조건하에서 기소 전 단계로 확대시켰다. 현시점에서 두개의 결정과 대검예규의 내용을 취합하여 형사소송법에 열람·등사청구권의 허용범위, 예외, 절차, 구제방법 등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III. 대상판결 분석 대상판결인 2003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기본적으로 1997년 헌법재판소 결정의 입장에 서 있다. 2003년 결정은 수사기록의 열람·등사청구권이 “피구속자를 조력할 변호인의 권리”이자 “변호인의 알 권리”임을 명시적으로 재확인하였고,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에 의거한 피청구인의 수사기록공개거부에 대해서도 1997년 결정에서 제시한 열람·등사의 제한사유에 기초하여 그 정당성을 판단하고 있다. 또한 1997년 결정이 공소장일본주의를 이유로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거부할 수 없다고 밝힌 것처럼, 2003년 결정은 형사소송법 제47조가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03년 결정에서 심판청구 자체의 적법성 판단 문제가 선결적으로 검토되지만 이 점에 대한 검토는 생략하고, 이하에서는 본안 결정의 의미를 1997년 결정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평석하기로 한다. 1. 열람·등사권의 공소제기 이전 단계로의 ‘부분적 확장’ 상술한 1997년 결정은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는 “피고인에 대한 수사가 종결되고 공소가 제기된 이후”에 한하여 허용되며, “공소제기 이전의 수사단계에서도 열람·등사를 허용한다면 수사기밀의 누설 등으로 국가형벌권의 행사가 현저히 방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 판시내용을 반대해석하면 공소제기 이전의 수사단계에서는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될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대상판결인 2003년 결정은―구속적부심사청구를 의뢰받은 경우에 한하지만―기소전에 구속된 피의자의 변호인에게도 수사기록의 열람·등사권을 인정함으로써, 수사기관에 대한 증거개시청구권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렇게 수사기록의 열람·등사권이 인정되는 시간대를 기소전의 단계로 앞당긴 것은, 향후 헌법재판소가 구속적부심사청구라는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도 피의자의 변호인에 대하여 수사기록에 열람·등사권의 인정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는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2. 열람·등사의 대상―고소장에 대한 열람·등사의 허용 확인 1997년 결정은 열람·등사의 대상에 대하여 상세한 지침을 제시하면서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에 대해서는 “제한없이” 열람·등사가 허용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997년 결정은 고소장의 허용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3년 결정에서는 구속적부심사건 피의자의 변호인이 고소장을 열람·등사할 권리가 있느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송인준 재판관은 자신의 반대의견에서, 고소장에는 사실관계 외에도 주요한 증거방법까지 기재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고소장의 열람 및 등사를 피의자나 그 변호인에게 허용하게 되면 수사기관이 아직 조사하지 아니한 증거방법까지 피의자측에 미리 알려주게 되는 결과가 되고, 그로 인하여 주요 참고인이 소재불명이 된다거나 기타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인멸할 경우 실체적 진실발견이 어려워지고 국가형벌권의 행사가 현저히 방해받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수사 초기단계에서 피청구인이 고소장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이러한 우려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고소장에 증거방법이 나열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나열되어 있다 하여도 이를 제외하고 공개하는 것도 가능하며, 증거방법에 대한 불법적 작용은 변호사의 윤리와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인데 변호사와 같은 고도의 윤리적 주체가 범죄적 행위에까지 나아갈 것을 전제로 하여 제도를 설정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위에서 본 우려는 고소장을 피의자신문조서와 달리 취급할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라고 파악하여, 고소장에 대한 열람 및 등사를 거부한 피청구인의 정보비공개결정은 청구인의 피구속자를 조력할 권리 및 알 권리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고소장에 열거된 증거방법이 공개되면 변호인측에 의한 증거인멸 등의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고소장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구속적부를 심사하는 수사의 초기단계에 피고인을 충분히 조력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다수의견이 지적하였듯이 문제가 되는 증거방법을 제외하고 공개함으로써 극복해야지, 고소장 자체의 열람·등사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1997년 결정은 ‘참고인 진술조서’에 대하여 증인에 대한 신분이 사전에 노출됨으로써 증거인멸, 증인협박 또는 사생활침해 등의 폐해를 초래할 우려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명시하였던 바, 고소장을 ‘참고인 진술조서’에 준하여 허용할 수 있다고 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게다가 1999년 대검예규 제296호가 “피고소인·피고발인 또는 변호인은 필요한 사유를 소명하고 고소장 또는 고발장의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담당 검사는 청구인에게 그 요지를 고지함으로써 열람에 갈음할 수 있다”(제3조 제3항)라고 규정하고 있는 마당에, 헌법재판소가 고소장의 열람·등사를 막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할 것이다. IV. 맺음말 1997년 결정은 공소제기후 증거제출전 검사의 수중에 있는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여 ‘실질적 당사자주의’를 강화시켰다면, 2003년 결정은 이 권리를 일정한 조건 하에서 기소전 단계로 확대시켰다. 한편 현 시점에서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두 개의 결정과 대검예규의 내용을 취합하여 형사소송법에 열람·등사청구권의 허용범위, 예외, 절차, 구제방법 등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 헌법적 권리로 인정된 수시기록열람·등사권이 대법원규칙이나 대검예규에 의하여 제약되고 있어 헌법 제12조 제1항 위반이 문제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200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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