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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소송에서 입증의 정도의 성질결정과 준거법
Ⅰ. 사안의 개요 한국보험회사인 피고는 윤OO과 원양통발어업용인 한국선적의 선박에 대해 선체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영국 협회기간약관을 적용하기로 했는데, 위 약관은 영국법준거약관을 두고, "해상 … 또는 기타 항해 가능한 수면에서의 고유의 위험"과, "선장 … 의 과실"을 부보위험 중 하나로 규정한다(제6조 제1항, 제2항 제3호). 당사자는 보험금 중 일정금액을 원고에게 직접 지급한다는 특약을 체결했다. 위 선박은 파퓨아 뉴기니아에 정박하다가 부산항을 향해 항해하던 중 산호초 지대에서 표류한 결과 인도네시아 부근에서 침몰했다. 원고는 보험금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Ⅱ. 소송의 경과 1. 원심판결(부산고등법원 1999.4.2. 선고 97나13696 판결) 원심법원은 사고원인은 협회기간약관 제6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위험에 해당하고, 선장 등이 선박 출항에 앞서 선저부분에 대한 조사·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이 있는데, 이는 선박침몰의 근인 중 하나로서 위 약관 제6조 제2항 제3호 소정의 위험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대부분 인용했다. 원심법원은 영국법준거약관의 효력을 전면 긍정하고 영국 해상보험법 및 관습에 의하면, 보험의 목적에 생긴 손해가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입증책임은 피보험자가 부담한다고 보고, 그 증명의 정도는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로 족하다고 했다. 2. 대법원 판결의 요지 영국 해상보험법 및 관습에 의하면, 보험의 목적에 생긴 손해가 부보위험인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입증책임은 피보험자가 부담하고, 그 증명의 정도는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로 충분하다.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영국법준거약관의 유효성과, 객관적 입증책임(또는 증명책임)이 보험계약의 준거법에 따른다는 점은 대법원판례에 의해 확립되었다. 여기에서는 첫째, 보험계약의 국제성과 둘째, 입증의 정도(또는 증명도)의 준거법을 다룬다. 미리 밝혀둘 것은, 국제민사소송에서 증거에 관한 다양한 문제는 절차의 문제로서 법정지법에 의한다는 점이다. 즉 증명의 대상(자백의 효력 등), 증거방법(허용되는 증거방법, 증거방법에 대한 제한, 증언거부권의 종류와 범위), 증거조사와 증거의 평가(자유심증주의 여부) 등은 법정지법에 따른다. 2. 이 사건 보험계약은 국제계약인가 국제사법상 당사자는 채권계약의 준거법을 자유로이 지정할 수 있는데 이것이 '당사자자치'의 원칙이다. 문제는 순수한 국내계약에서 당사자자치의 허용 여부인데, 국제사법은 이를 허용하지만 그 경우 국내적 강행규정은 여전히 적용된다(제25조 제4항). 이는 당연히 적용되었을 강행규정을 당사자들이 합의로써 잠탈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준거법합의(또는 그것과 관할합의/중재합의) 외에 외국적 요소가 없다면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합의해도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석광현, 법률신문 제3920호 참조). 이 사건에서 보험의 목적은 한국선적의 원양어업용 선박이므로 보험계약의 국제성은 애매하다. 필자는 수입중인 적하에 대한 보험계약의 국제성과, 해외 재보험계약의 체결을 위해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필요성을 긍정했지만, 한국선적 선박에 대한 보험계약에서 그 소재지를 고려하여 국제성을 판단할지는 불분명하다. 필자처럼 비교적 넓게 사안의 국제성을 인정하면 몰라도, "국제사법 제1조에 비추어 … 거래 당사자의 국적·주소, 물건 소재지, 행위지, 사실발생지 등이 외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곧바로 내국법을 적용하기보다는 국제사법을 적용하여 그 준거법을 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을 적용하여 준거법을 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함으로써 명문 근거가 없는 '합리성의 기준'에 의해 국제사법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대법원 2008.1.31. 선고 2004다26454 판결의 취지를 보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건 소재지'는 국제물권법을 상정한 것이므로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① 외국적 요소의 존재와 ② 합리성의 기준이라는 양 요건의 충족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 3. 입증의 정도의 준거법 가. 입증의 정도에 관한 법계의 차이 민사소송법상 어떤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하려면 법관의 의심에 침묵을 명할 정도의 확신, 즉 '고도의 개연성'의 확신이 필요하다(실제로 법관들이 그에 따르는지는 의문이지만). 반면에 영미 민사소송에서 요구되는 통상의 입증의 정도는 '증거의 우월' 또는 '우월한 개연성'이므로 법원은 원·피고 주장의 개연성을 형량하여 어느 것이 50%를 초과하면 이를 증명된 것으로 취급할 수 있다(차이의 유래는 Habscheid/호문혁(역), 서울대 법학 통권 85·86호(1991.8.), 122면 이하 참조). 나. 입증의 정도의 준거법 문제는 입증의 정도의 준거법이다. 독일에는 이를 절차로 보아 법정지법(lex fori)을 적용하는 절차법설과 실체로 보아 당해 법률관계의 준거법(lex causae)을 적용하는 실체법설이 있다. 절차법설의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입증의 정도는 소송에서 법관의 지위 및 확신(또는 심증)의 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둘째, 독일법에서 입증의 정도는 법관의 인적(또는 내부적) 확신의 형성인데, 실체 준거법인 외국법이 다른 기준을 요구하면 독일 법관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외국법의 내용을 확정할 수 없는 경우 더욱 그렇다. 세째, 입증의 정도는 법정지법에 따르는 증거의 평가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네째, 입증의 정도에 관하여 외국법을 적용하면 외국인 원고에게 입증의 정도를 완화하게 되어 내국인 피고에게 불이익을 주고 내국인차별을 초래한다. 실체법설의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입증의 정도는 입증책임처럼 실체법과 상호의존적이고 실체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책임법에서 입증의 정도를 낮추면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이를 높이면 축소되므로 입증의 정도는 결국 책임을 결정한다. 둘째, 어느 당사자가 부담하나라는 경직된 구조를 취하는 입증책임과 달리 입증의 정도는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입증책임보다도 실체법에 더 밀접하다. 독일에서는 과거 절차법설이 우세했으나 근자에는 실체법설도 유력해지고 있다. 모두 일리가 있지만,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법관의 확신의 형성과 그 정도를 다른 법에 종속시키는 것은 부적절하고, 법관에게 입증의 정도를 준거법에 따르게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실제적 이유로 절차법설이 설득력이 있다(우성만, 판례연구 제18집(2007), 459면 동지). 증명의 개념을 법관의 내부적 확신의 형성으로 파악하는 민사소송법 원칙을 법치국가적 관념에 근거한 소송법상 원칙으로 보아 절차법설 취하기도 한다. 소송법에서 당해 법률관계의 준거법이 규율하는 사항의 범위를 너무 확대하면 국제사법이 매우 복잡하게 되어 실무로부터 외면당할 우려도 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준거법의 함의(含意)를 모르고 외국법을 지정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외국법이 규율하는 사항의 범위를 제한할 필요도 있다. 4.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이 입증의 정도의 준거법을 밝힌 것은 큰 의의가 있으나 타당성은 의문이고 ① 외국적 요소의 존재와 ② 합리성의 충족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우리 법원은 영국법준거약관의 효력이 인정되면 입증책임, 사실상의 추정과 입증의 정도가 모두 영국법에 의한다고 보는 듯하다. 대상판결도 입증의 정도의 성질결정에 대한 고민 없이 너무 쉽게 영국법을 적용했다. 더욱이 보험계약의 국제성이 부정되면 영국법이 준거법이더라도 입증의 정도는 한국법에 따라야 한다. 5. 관련문제: CISG와 손해 입증의 정도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UN협약'('CISG' 또는 '협약')상 계약위반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손해의 발생과 범위 및 손해와 계약위반간의 인과관계 등을 입증함으로써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협약은 손해의 확실성의 정도를 명시하지 않으므로 독일 등의 유력설은 이를 손해의 입증의 정도로서 절차로 보아 법정지법을 적용한다. 그러나 협약의 기초를 이루는 일반원칙인 '합리성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Schwenzer도 동지). CISG AC 의견 No. 6과 UNIDROIT 국제상사계약원칙(제7.4.3조 제1항)도 같다. 아니면 협약의 목표인 규범통일이 위태롭다. 우리 판례는 민법상 기발생 손해와 장래 발생할 손해의 입증의 정도를 구별한다. 대법원 1992.4.28. 선고 91다29972 판결은 "장래의 얻을 수 있었을 이익에 관하여는 증명도를 과거사실에 대한 입증의 경우보다 경감하여 채권자가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을 구체적이고 확실한 이익의 증명이 아니라 합리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이익의 증명으로 족하다"고 함으로써 채권자를 위해 일실이익의 입증의 정도를 완화했다(매매계약의 준거법은 한국법이었던 듯하다). 법원이 협약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도 같은 구별을 할지는 불분명하다. 협약 자체로부터 합리적 확실성의 기준을 도출하지 않는다면 이는 성질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대상판결처럼 실체법설을 따르면 입증의 정도는 매매계약의 보충적 준거법에 의하게 되어 법원에 부담스럽다(우리 법원이 다룬 사건에는 보충적 준거법이 중국법, 캘리포니아주법, 퀸즐랜드주법, 스페인법과 싱가포르법인 사건이 있다). 반면에 절차법설은 매매계약의 보충적 준거법에 관계없이 대법원판결의 법리를 따를 수 있으므로 법원의 부담을 덜어 준다.
2011-07-25
사기에 의해 획득한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과 공서위반
Ⅰ. 사안의 개요 동해펄프 주식회사("동해". 정리절차 개시 전의 피고이나 혼용한다)는 원고(MWI)에게 자회사를 매각하면서, 우드칩 독점공급권을 원고에게 주는 대가로 우드칩 공급가격을 할인받기로 하는 독점공급계약("이 사건 계약")을 1994년1월 체결했다. 당사자들은 시차를 두고 한글계약서와 영문계약서를 체결했는데 후자에는 동해의 책임제한조항이 삭제되었다. 원고는 1996년 영문계약서를 기초로 동해의 계약위반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ICC 중재법원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중재신청을 했다. 중재인은 중재지인 홍콩에서 중재절차를 진행했고 당사자들은 충분히 다투었다. 중재인은 1998년1월 영문계약서를 기초로 동해의 계약위반을 인정하고 원고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중재판정("이 사건 중재판정")을 내렸다. 동해는 1998년8월 회사정리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원고는 정리채권 신고기간 내에 정리채권을 신고했으나 관리인이 이의하자 관리인을 상대로 정리채권확정의 소를 제기했다. Ⅱ. 소송의 경과 1. 하급심판결 제1심인 울산지방법원 2003.7.31. 선고 98가합8505 판결은 이 사건 중재판정을 승인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피고는 중재판정의 편취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배척했다. 원심(부산고등법원 2006.2.16. 선고 2003나12311 판결)은, 독자적으로 증거를 종합하여 전면적으로 사실인정을 하고 법률적 판단을 한 뒤, 원고는 허위의 주장과 증거를 제출하여 중재판정을 편취했으므로 1958년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뉴욕협약")상 공서위반이라는 승인거부사유가 존재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 2.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원심판결을 파기했는데 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이 사건은 승인의 문제이므로 승인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1] 외국중재판정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어 기판력이 있으므로, 정리채권확정소송의 관할 법원은 뉴욕협약(제5조)의 승인거부사유가 없는 한 외국중재판정에 따라 정리채권을 확정하는 판결을 해야 한다. [2] 뉴욕협약의 공서위반의 취지는 외국중재판정의 승인이 승인국의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를 해하는 것을 방지하여 이를 보호하는 데 있으므로, 국내적 사정뿐만 아니라 국제적 거래질서의 안정이라는 측면도 함께 고려하여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외국중재판정을 인정한 구체적 결과가 승인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할 경우에 한하여 승인을 거부할 수 있다. [3] 승인국 법원은 뉴욕협약의 승인거부사유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본안에서 판단된 사항에 관하여도 독자적으로 심리·판단할 수 있고, 공서위반에는 중재판정이 사기적 방법에 의해 편취된 경우가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승인국 법원이 외국중재판정의 편취 여부를 심리한다는 명목으로 실질적으로 중재인의 사실인정과 법률적용 등 실체적 판단의 옳고 그름을 전면적으로 재심사한 후 외국중재판정이 편취되었다고 보아 승인을 거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외국중재판정의 집행을 신청하는 당사자가 중재절차에서 처벌받을 만한 사기적 행위를 했다는 점이 명확한 증명력을 가진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명백히 인정되고 반대당사자가 과실 없이 신청당사자의 사기적 행위를 알지 못하여 중재절차에서 그에 대해 공격방어를 할 수 없었으며, 사기적 행위가 중재판정의 쟁점과 중요한 관련이 있다는 요건이 모두 충족되는 경우에 한하여 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이 사건의 쟁점은, 우리 법원이 정리채권을 확정하는 판결을 함에 있어 뉴욕협약이 적용되는 외국중재판정에 구속되는가이다. 구체적으로 ① 외국중재판정은 우리 법원의 승인판결 없이 한국에서 기판력을 가지는지, ②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거부사유인 공서위반의 의미 및 판단 방법과 ③ 사기에 의한 외국중재판정의 편취가 승인거부사유가 되기 위한 요건이다. 사기에 의하여 편취된("사기에 의한") 외국판결의 승인을 다룬 대법원 2004.10.28. 선고 2002다74213 판결("2004년 판결")이 있으므로 양자의 異同도 관심의 대상이다. 대상판결에 대하여는 오영준 판사의 해설(판례해설 79호)과 정선주 교수의 평석(민사재판의 제문제 제18권)이 있다. 필자의 상세 평석은 서울지방변호사회 판례연구에 게재될 예정이다. 2. 외국중재판정의 효력과 승인판결의 요부 외국판결은 민사소송법(제217조)의 승인요건이 구비되는 한 우리 법원의 재판 없이 자동적으로 승인되나(자동승인제), 외국도산절차는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우리 법원의 승인결정에 의하여 승인된다(결정승인제). 그런데 중재법(제37조 제1항)이 중재판정의 승인은 법원의 승인판결에 따른다고 규정하므로 외국중재판정은 승인판결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런 견해가 있다. 그러나 외국판결과, 뉴욕협약이 적용되지 않는 중재판정의 승인에 관한 우리 법제를 보면 뉴욕협약이 적용되는 중재판정의 경우에만 승인판결을 요구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뉴욕협약이 적용되는 외국중재판정도 승인요건이 구비되면 자동승인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은 이를 분명히 한 판결로서 의의가 있다. 승인의 결과 외국중재판정은 한국에서 효력(특히 기판력)을 가지는데 문제는 그 기준이다. 외국판결 승인의 경우처럼 외국중재판정 승인의 경우에도 효력확장설(즉 중재지국법설), 승인국법설과 절충설이 가능하다. 대상판결이 외국중재판정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할 뿐, 그것이 한국 법원의 확정판결인지와 그 근거를 밝히지 않는 점은 아쉽다. 3.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거부사유인 국제적 공서위반 뉴욕협약(제5조)은 승인거부사유를 규정하는데 여기에서 문제는 공서위반이다. 공서는 승인국의 본질적인 법원칙, 즉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 또는 근본적인 가치관념과 정의관념에 반하는 외국중재판정의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국내법질서를 보존하는 방어적 기능을 가지므로 이는 좁게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뉴욕협약상의 공서는 민법(제103조)이 정한 국내적 공서와 구별되는 '국제적 공서'라고 본다. 대상판결이 그런 취지로 판시한 것은 판례를 따른 것으로 타당하다. 다만 승인만이 문제되는 이 사건에서 마치 집행이 문제되는 것처럼 설시한 것은 아쉽다. 4. 사기에 의한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과 공서위반 가. 실질재심사 금지의 원칙과 예외 뉴욕협약상 '실질재심사 금지의 원칙'이 타당하므로 승인국 법원은 원칙적으로 실질재심사를 할 수 없지만, 승인거부사유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실질재심사를 할 수 있고, 그 범위 내에서는 중재인의 사실인정에 구속되지 않는다. 다만 그 경우에도 가능한 한 제한적으로 실질재심사가 허용된다. 여기에서 실질재심사 금지의 원칙과 승인거부사유, 특히 공서위반의 심사 간에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대상판결은 종래의 판례를 따른 것으로서 타당하다. 나. 사기가 공서위반이 되기 위한 요건 외국판결 승인의 맥락에서 전통적으로 영미에서는 사기를 공서위반이 아닌 독립한 승인거부사유로 본다. 미국 통일외국금전판결승인법(UFMJRA)도 같다. 미국에서는 외재적 사기와 내재적 사기를 구분하는데, 전자는 외국 소송절차 외의 원고의 행위로 인하여 피고의 절차 참가가 박탈된 경우이고, 후자는 위조증거의 사용처럼 원고가 외국 소송절차 내에서 행위한 경우이다. 승인거부사유는 외재적 사기에 한정되고, 내재적 사기의 주장은 실질재심사를 요구하므로 허용되지 않으며 이는 판결국에 제출해야 한다. UFMJRA를 개정한 2005년 통일외국국가금전판결승인법(UFCMJRA)은 승인거부사유가 외재적 사기에 한정됨을 명시한다. 한편 2004년 판결은, "… 외국판결의 성립절차에서 공서에 어긋나는 경우도 승인·집행의 거부사유에 포함되나, 민사집행법이 실질재심사금지의 원칙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사기적 방법으로 편취한 판결인지를 심리한다는 명목으로 실질재심사하는 것은 외국판결에 대하여 별도의 집행판결제도를 둔 취지에도 반하므로, 사기적 방법으로 외국판결을 얻었다는 사유는 원칙적으로 승인·집행의 거부사유가 될 수 없고, 다만 재심사유에 관한 민사소송법 …에 비추어 볼 때 ① 피고가 판결국 법정에서 사기적 사유를 주장할 수 없었고, ② 처벌받을 사기적 행위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과 같은 고도의 증명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승인·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유죄의 판결과 같은 고도의 증명" 이라는 생소하고 애매한 개념을 사용한 점과, 재심의 법리에 지나치게 의존한 점을 비판했다. 필자는, 사기에 의한 외국판결의 승인거부에 관한 법리가 사기에 의한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거부에도 원칙적으로 타당하다고 본다(영국의 태도는 특이하다). 흥미로운 것은 사기에 의한 중재판정의 취소에 관한 미국법이다. 연방중재법(제10조(a))에 따르면, 법원은 ① 취소 신청인이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에 의해 사기를 입증하고(the movant must establish the fraud by clear and convincing evidence), ② 상대방이 정당한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중재 이전에 그 사기를 발견할 수 없었으며, ③ 사기가 중재의 쟁점과 중요한 관련이 있는 경우 중재판정을 취소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이를 수용한 것으로 대체로 타당하다. 다만 판결문 중 사기적 행위를 했다는 점이 "명확한 증명력을 가진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명백히 인정되고"라는 부분은 미국의 'clear and convincing evidence'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인데, 이는 미국에서 민사소송에서 통상 요구되는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보다 높은 증명의 정도를 요구하는 개념이다. 우리 민사소송법상 증명은 '고도의 개연성의 확신'을 요구하는 것으로 '증거의 우월'보다 훨씬 높은 증명도를 필요로 하므로, 차라리 사기적 행위를 했다는 점이 "객관적 증거에 의하여 증명될 것"을 요구하는 편이 낫다. 2004년 판결에서 "고도의 증명"을 요구한 대법원이 대상판결에서는 달리 설시하는데, 이것이 판결과 중재판정의 차이에 기인하는지, 좀더 정치하게 진화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5. 맺음말 대상판결은, 외국중재판정은 승인판결 없이 한국에서 기판력을 가진다고 본 점,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거부사유인 공서위반의 의미 및 판단 방법에 관한 종전 판례를 재확인한 점과, 사기에 의한 중재판정의 승인이 공서위반이 되기 위한 요건을 명확히 제시한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대상판결처럼 외국중재판정에 대한 실질재심사를 합리적인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법관들에게 확산될 때 국제상사중재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상판결이 2004년 판결과 달리 설시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점, 미국 판례의 영향을 받아 우리 민사증거법상 부적절한 설시를 한 점과, 미국 판례법리를 차용하면서도 전거를 밝히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필자는 2004년 판결에 대한 평석을 2006년 초 발표했고 뉴욕협약에 관해 2007년 책에서 상세한 글을 썼으나, 이는 개인적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고 법학비전공자의 글보다 못하게도 대법원과 재판연구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아 몹시 부끄럽다.
2010-10-14
미국의 J.D.는 법학박사인가
1. 사실관계 원고는 미국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받은 후, 피고 인천광역시에서 ‘박사’학위를 자격요건으로하는 지방 ‘가’급 공무원 채용시험에 응시하였다. 시험결과는 갑이 최고 득점자로 채용되었고 원고는 차점자로 탈락되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갑이 채용시험에서 요구하는 ‘박사’의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고, 또한 인사청탁에 의하여 면접점수를 높게 받아 합격된 자이므로 합격이 무효이며 나아가 갑이 불합격되는 경우 원고 본인이 당연히 합격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원고는 자신의 주장에 근거하여 피고 인천광역시를 상대로 불합격처분으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제1심에서는 원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원고 승소하였다. 그러나 제2심에서는 갑이 합격자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고, 나아가 원고가 미국에서 받은 J.D. 학위는 박사학위가 아니므로 합격자로서의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하므로 제1심 판결을 뒤엎고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상기 판결에 대하여 본 판례평석은 미국의 J.D. 학위가 박사에 해당하는 지의 여부에 대하여 검토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여타의 논점에 대하여는 부수적으로 간단한 의견만을 덧붙이기로 한다. 2. 불합격자인 원고의 자격요건 가. 미국 J.D. 학위의 박사 해당여부 (1) 개요 및 법원의 판단 지방계약직 ‘가’급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박사학위의 취득이 필요하다. 따라서 원고가 응시자격을 갖추고 있는지의 여부는 미국 로스쿨에서 받은 J.D.학위가 박사인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이에 대하여 제1심에서는 구체적 언급없이 당연히 이를 박사학위로 보았으나, 제2심에서는 이를 부정하여 원고의 응시자격 요건을 부정하고 있다. 우선 지방계약직 ‘가’급 응시의 자격요건 중 경력요건은 아래와 같다. 1. 채용예정직무분야와 관련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 2~6. 중 략 7. 그 밖에 위 각 호의 1에 상당하는 자격 또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 제2심 판결은 상기 경력요건 1호는 ‘채용예정직무분야와 관련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는 바 (i) 여기서 ‘박사’학위라 함은 국내에서의 학사 및 석사학위 취득을 전제로 한 개념으로 보이고, (ii) 원고가 취득한 ‘Juris Doctor’가 일부 법률영어사전에 법학‘박사’라고 번역되어 있는 사실은 인정되나 이는 편의상 그렇게 번역한 것에 불과하고, (iii) 우리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학제를 가진 미국의 ‘Juris Doctor’가 위와 같은 의미로서의 ‘박사’학위와 실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며, (iv) ‘박사’라 함은 기초학문분야에서의 최고 수준의 학위임에 반하여, ‘Juris Doctor’는 전문기술분야에서의 학위로서 국내에서 ‘박사’학위 취득의 필수조건인 박사학위논문(dissertation) 작성 없이도 취득이 가능하며, Juris Doctor과정을 이수한 후에 LL.M.(Master of Law)과정에의 입학이 허용되고 다시 LL.M.(Master of Law)과정을 이수한 후에 J.S.D.(Doctor of Judicial Science 또는 Scientiae Juridicae Doctor)과정에의 입학이 허용된다는 점에서 ‘Juris Doctor’는 형식상으로도 최고 수준의 학위라고 보기 어려우며, 따라서 위 경력요건 1호에서 규정한 ‘박사’학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하였다. (2) 판례평석 제2심의 판결을 분석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2심의 판결과 같이 지방계약직 ‘가’급 응시 자격요건 제1호에 규정된 「박사학위」가 국내에서의 학사 및 석사학위 취득을 전제로 한 것인가? 관련 법률규정 어느 곳에서도 국내 학사 및 석사를 전제로 한다는 규정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이는 법령의 자의적 해석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외국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를 채용하는 경우 국내 학사 및 석사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실제 사례도 거의 존재하지 아니한다. 둘째, 제2심 판결은 J.D.를 취득한 후에 LL.M. 및 S.J.D.를 취득할 수 있으므로 J.D.는 최고 수준의 학위가 아니라고 판결하고 있는 바, 과연 그러한가? 이러한 견해는 미국의 고유한 법학제도를 우리나라식 잣대로 임의로 판단한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에서 J.D.를 이수한 후 LL.M. 및 S.J.D.과정을 순차적으로 이수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J.D.를 LL.M. 및 S.J.D.의 하위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은 미국 로스쿨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J.D.과정은 미국 법학교육과정에서 최고의 학위과정이며, 더 이상의 학위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학위를 갖는 학자로서의 미국 법과대학 교수는 J.D.학위로서 충분하며 더 이상의 LL.M.학위 또는 S.J.D.학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부분 상위 랭킹 법과대학 교수의 대부분이 J.D.학위 밖에 없으며, 오히려 하위 랭킹의 법과대학으로 가면 일부 교수들이 LL.M. 정도를 J.D.에 추가로 갖고 있을 뿐이다. 미국 J.D.학위를 갖고 있는 자가 LL.M.학위를 추가로 갖고 있는 경우는 J.D.과정에서의 부족한 부분을 추가로 보완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보다 높은 차원의 학업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J.D.학위 없이 LL.M. 또는 S.J.D.학위만을 갖고 있는 학자가 미국 로스쿨 교수로 채용되는 경우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미국 로스쿨에서 LL.M. 및 S.J.D.학위 과정은 사실상 외국인을 위한 과정이며 입학생의 99%는 외국인이다. 대부분의 J.D.학위 졸업자는 LL.M.에 진학하지 않는다. LL.M. 및 S.J.D. 학과과정도 J.D. 과정보다 상위의(우리나라의 대학원처럼) 교과과목이 별도로 개설되는 것이 아니라, J.D.과정의 교과과목 중 일부를 선택해서 수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J.D. 교과과목 중 일부 전문과목 및 필수과목은 LL.M.과정 학생들의 경쟁력을 배려하여 수강을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LL.M.과정에서는 일부 학위논문 제출을 요구하는 학교도 있으나, 대부분의 법과대학에서는 세미나 수업에서의 레포트 제출을 논문제출로 대체하여 주고 있다. 이에 반하여 LL.M.과정을 이수하고 진학하는 S.J.D.과정에서는 대륙법제의 엄격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LL.M. 및 S.J.D.학위 과정은 미국인에게는 소위 Post Doc과정 정도에 불과하고, 외국인에게는 미국법을 소개하고 대륙법 계통의 박사학위(S.J.D.)를 주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판단된다.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으나, 필자가 미국 유학생활을 하던(1980~1990년대) 시절만 해도, 미국에서 LL.M. 및 S.J.D.과정을 개설하던 학교는 소수에 불과하였으며, 법과대학생은 물론 교수조차도 LL.M.과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교수들이 대부분이었다. LL.M.학위를 운영하는 로스쿨 중에서도 J.D.를 마친 자가 진학하는 LL.M.과 외국인이 진학하는 LL.M.을 분리하여 별도로 운영하는 로스쿨도 상당수 있다. J.D.를 졸업하면 미국의 50개주 모두에서 변호사 시험을 응시할 자격이 부여되나, LL.M. 또는 S.J.D.학위를 받은 경우 뉴욕주 등 1~2개 주에서만 변호사 시험자격 요건이 부여된다. J.D.학위는 미국에서도 공인된 박사이다. 박사여부는 졸업식장에서의 예우를 보면 쉽게 파악이 된다. J.D.학위 수여시 모든 졸업생은 박사학위 수여 예우에 따라 박사 가운을 입는다. 이에 따라 LL.M. 및 S.J.D. 졸업생도 모두 박사학위 가운을 입는다. 셋째, 제2심 판결에서와 같이 J.D.과정은 전문기술 분야의 학위인가? 이러한 견해는 영미법계인 미국의 법학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견해이다. 불문법국가인 미국의 법학은 판례 자체가 법이므로 판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즉, 판례를 다루는 것이 실무 법조인만의 몫이 아니라 법학자도 당연히 판례를 연구하여야 한다. 일부 국내학자는 J.D.를 「법률」박사, S.J.D.를 「법학」박사로 구분하고 있으나 이러한 견해는 타당하지 아니하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법률이 곧 법학이고 법학이 곧 법률이기 때문이다. 제2심 판결에서와 같이 미국의 J.D.과정이 「전문기술분야」라면 미국의 로스쿨 또는 법학계에서「일반학문분야」가 별도로 존재하는가? 한마디로 존재하지 아니한다. J.D.과정의 전문기술 분야가 곧 일반학문 분야이며 J.D.과정에서 모두 전담한다. 미국 법학에서의 일반학문은 J.D.출신의 교수가 중심이 되고, J.D.학생이 보조하는 각 법과대학의 「Law Review」에 게재되는 논문이 중심이 된다. 한국의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미국 법학에서 J.D.과정을 실무과정, LL.M. 및 S.J.D.과정은 학문과정으로 분류하는 견해는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다. J.D.과정이 박사과정으로서의 최대 약점은 학위논문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J.D.과정은 3년간 90학점을 이수하는 무척 힘든 과정으로서 다른 석사과정의 3배 정도의 학점을 이수하고 있고, J.D.과정 이외의 별도의 상위학위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J.D.학위를 단순히 학위논문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박사학위가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에서 J.D. 학위과정은 영미법계의 박사학위로, S.J.D. 학위과정은 대륙법계의 박사학위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이미 다수의 법과대학 및 국가·지방자치단체에서 J.D.학위를 박사학위로 보고, 이들을 채용하고 있는 바 제2심 판결에 의하면 이들은 무자격자로서 무효인 채용계약에 근거하여 업무방해를 하고 있단 말인가? 나. 합격자가 무효인 경우 차점자가 합격자가 되는지의 여부 원고가 주장하듯이 갑이 무자격자로서 합격이 무효로 되는 경우 성적이 차점자인 원고가 제2순위로서 합격자가 되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 될 수 있다. 사견으로는 제1순위인 갑이 불합격된 경우 제2순위인 원고가 합격되었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는 제1심 판결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계약직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 전형시험 통과자 중에서도 2인을 최종 인사권자에게 복수추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안 사례에서도 마찬가지 경우라면 갑과 원고가 복수추천되었을 것이고 제3순위 이하의 지원자는 합격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므로 갑이 불합격되었다면 원고가 합격되었을 개연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3. 최종합격자 갑의 자격요건 갑이 지방계약직 ‘가’급 채용요건을 갖추기 위하여는 (i) 채용예정직무분야와 관련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에 해당되어야 하고, 만일 동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ii) 그 밖에 위 각호의 1에 상당하는 자격 또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 해당되어야 한다. 사견으로는 갑은 지방계약직 ‘가’급의 채용요건을 갖추고 있지 아니하다는 제1심 판결이 타당하다고 본다. 갑은 시험당시 박사학위 취득예정자로서 설사 최종합격 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할지라도 자격요건 제(i)의「박사」에는 해당하지 아니함이 명백하다. 따라서 갑은 제(ii)의 요건을 충족하여야 하는 바 이를 위하여는 박사취득예정자인「박사에 상당하는 자격 또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 해당되어야 한다. 제2심 판결은「박사취득예정자를 박사에 상당하는 자격 또는 능력이 있는 자로 보는 것」이 단순한 형식적 절차 위반으로 갑의 합격 여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는 타당하지 아니하다. 즉, 동조는 대통령령상의 강행조항으로서 절차규정이라 할지라도 이를 위반하는 것은 위법·무효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입법적으로 규정되지 아니한 상태에서「박사취득예정자가 박사에 상당하는 자격 또는 능력이 있는 자로 보는 것」은 단순한 절차적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체적 법적 내용의 창설로서 법해석이 아니라 법의 제·개정행위에 해당되어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할 것이다. 박사취득예정자는 박사에 「상당」하는 자격 또는 능력이 있는 자가 아니라 박사에 「미달」하는 자로 보는 것이 해석상 타당할 것이다. 또한 갑의 높은 점수는 인사개입에 의한 것으로 무효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제2심판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면접시험위원의 자율적 판단 및 자유재량이 존중되어야 하는 바, B는 면접시험위원으로서 상사 A의 전화지시를 받고 면접에 참여하였으므로 이러한 자율 및 자유재량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의 주요 임무는 사회정의의 실현이다. 어느 쪽으로도 판결할 수 있다면 보다 밝고, 정직하며 합리적인 사회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판결하는 것이 헌법상「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법원의 참모습이라고 판단한다. 시험 채점행위가 자유재량 행위이므로 인사청탁을 받은 면접위원의 시험 채점행위도 자유재량 행위로서 그 효력이 인정된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힘들다 할 것이다.
2009-07-27
국제물품매매협약(CISG)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우리 판결
Ⅰ. 사안의 개요 중국 회사인 매도인(원고)과 한국 회사인 매수인(피고)은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오리털을 공급하기로 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피고는 제3자에게 오리털을 전매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원고도 계약 체결시 이 사실을 알았다. 원고는 일정 기간에 걸쳐 피고에게 오리털을 공급했으나 그 중 일부는 선박운항회사의 실수로 환적되지 않아 도착 예정일이 지나도록 공급되지 않았다. 이를 이유로 피고는 계약을 해지하고 대금의 지급을 거부했다. 원고는 미지급 대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피고는 ① 원고가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른 공급의무의 일부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고 주장하고 ② 소송 중에 가사 원고의 잔존 물품대금채권이 있더라도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가지는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기하여 상계한다는 항변을 제출했다. 이 사건은 2009년 6월9일 현재 항소심에 계속중이다. Ⅱ. 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원고가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라 수차례에 걸쳐 피고에게 물품을 공급했으므로 피고는 미지급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나, 한편 협약상 계약위반은 위반 당사자의 귀책사유를 요구하지 않는데 원고는 물품 일부의 공급을 지연했으므로 피고에게 손해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피고의 상계항변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피고는 잔액을 원화로 지급할 것과 판결 선고일까지는 상법 소정의 연 6%, 그 익일부터 완제시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례법’) 소정의 연 20%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했다. 상계항변에 대하여 대상판결은 피고의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과 원고의 피고에 대한 미지급대금채권은 상계적상에 있었는데, 피고가 준비서면에서 상계의 의사표시를 했으므로 원고의 채권은 상계적상일에 소급하여 소멸했으니 상계항변은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대상판결은 피고의 계약해지 주장은 아래의 이유로 배척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UN협약(CISG)(이하 ‘협약’)이 발효했으므로 가입국인 중국과의 이 사건 매매계약에 관하여는 협약이 민·상법에 우선하여 적용된다. 협약(제49조)은 해제권의 발생사유를 ① 매도인의 본질적 계약위반과 ② 매수인이 매도인의 의무이행을 위해 합리적인 추가기간을 정했음에도 매도인이 물품을 인도하지 않거나 인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경우(제47조)로 제한한다. 한편 협약(제25조)은 본질적 계약위반의 개념을 정의하는데, 이 사건에서 원고의 일부 오리털에 관한 납기부준수만으로 본질적 계약위반이 있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의 해지주장은 근거가 없다.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1980년 국제연합에서 채택된 협약은 2005년 3월1일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발효되었다. 그 결과 협약은 우리 법질서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협약 가입은 우리 私法의 국제화에 획을 긋는 일대사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협약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 대상판결은 필자가 아는 한 협약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우리 판결인데 대체로 무난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항소심에서 좀더 훌륭한 판결을 해줄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코멘트를 한다. 2. 계약의 해제 대상판결은 ‘해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나 협약은 해제와 해지를 구분하지 않고, 협약상 해제는 소급효가 없으므로 협약의 맥락에서는 굳이 양자를 구별할 필요는 없다. 아래에서는 ‘해제’라고 한다. 관보에 공표된 공식국문본도 같다. 대상판결은 원고의 이행지체만으로는 본질적 계약위반이 되지는 않는다고 보아 피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그러나 원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라 여러 차례에 걸쳐 물품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한 것이므로 이는 협약(제73조)이 말하는 ‘분할인도계약(instalment contracts)’ 또는 계속적 공급계약에 해당한다. 그런데 원고는 그 중 일부에 대해서만 이행지체에 빠진 것이므로 피고의 계약해제는 협약(제73조 제1항)이 규정하는 문제된 분할인도부분의 계약해제로 이해된다. 대상판결이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또한 대상판결은 협약상 부가기간의 설정에 의한 계약해제가 가능함을 언급하면서도 이 사건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 이유는 설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고가 인도기일을 맞출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오리털의 재생산과 항공편에 의한 인도 및 선하증권 상의 도착지의 변경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응하지 않았다면, 피고가 부가기간을 설정했는데 원고가 이행을 거절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사실관계를 좀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 사건 매매계약의 해제를 부정한다면 문제된 분할인도부분에 관한 대금지급의무와 인도의무 및 장래의 분할인도부분은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궁금하다. 3. 상계 대상판결은, 피고의 손해배상채권과 원고의 미지급 물품대금채권은 피고의 상계에 의하여 상계적상일에 소급하여 대등액 범위에서 소멸했다고 보았다. 원고와 피고의 채권은 모두 협약에 의하여 규율되는 이 사건 매매계약으로부터 발생한 것인데, 협약은 상계를 규율하지 않으므로 상계의 허용성과 그 요건 및 효과의 준거법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 사건 매매계약에 협약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그 준거법을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 국제사법(제26조)에 따르면 매도인의 주된 사무소 소재지법인 중국법이 준거법이 될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상계의 요건과 효과는 중국법에 의할 사항이다. 다만 독일의 유력설은 이 경우 협약에 내재하는 메커니즘에 따라 상계할 수 있다고 보는데, 만일 이를 긍정한다면 그 메커니즘은 협약의 기초를 이루는 일반원칙으로서 준거법에 우선한다(그러나 상계의 효과를 어느 법에 따라 판단하는지는 애매하다). 대상판결이 유력설처럼 협약에 내재하는 상계의 메커니즘을 따른 것인지 아니면 준거법에 대한 고려 없이 상계의 요건과 효력의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본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후자일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는 잘못이다. 상계의 준거법이 중국법이라면 상계적상의 존부는 중국법에 따를 사항이다. 그때 피고의 손해배상채권의 통화도 문제된다(우리 판례에 따르면 민법상 손해배상채권의 통화는 원칙적으로 원화이다). 이 사건에서 협약상 또는 중국법상 피고의 손해배상채권의 통화가 무엇인지, 만일 그것이 미달러화가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권자의 대용급부청구권이 인정되어 상계적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4. 외화채권과 채권자의 대용급부청구권 이 사건에서 원고의 대금채권은 미달러화채권인데 원고는 원화지급을 청구했다. 대상판결은 채권자인 원고가 민법 제378조의 해석상 대용급부청구권을 가짐을 당연한 전제로 원화지급을 명했다. 이는 대법원 1991. 3.12. 선고 90다2147 전원합의체판결을 따른 것이다. 즉 대상판결은 협약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도 채권자가 대용급부청구권을 가진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① 협약의 해석론상 채권자의 대용급부청구권이 긍정되는지, ② 만일 부정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법 제378조가 협약에 의하여 규율되고 보충적 준거법이 중국법일 개연성이 큰 이 사건 매매계약에 적용되는 근거를 밝혔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의무이행지도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5. 손해배상의 범위 당사자의 관심의 대상은 손해배상의 범위이다. 협약(제74조)에 따르면 손해배상액은 이익의 상실을 포함하여, 위반의 결과 상대방이 입은 손실과 동등한 금액이나 그 범위는 위반 당사자의 예견가능성에 의하여 제한된다. 대상판결은 피고가 다른 곳에서 대체물품을 구하느라 지급한 대금과 이 사건 매매계약상 대금의 차액, 대체물품의 항공운송비용과 피고가 전매수인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의 합계를 손해액으로 인정했다. 대상판결이 이 사건 매매계약의 해제를 부정하면서도 대체거래에 의해 손해액을 산정하는 근거는 협약 제74조에 비추어 설명을 요한다. 해제를 부정한다면 문제된 분할인도부분과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른 당사자의 권리의무는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다. 6. 지연손해금의 비율 대상판결은 피고에게 원고가 구하는 일자부터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선고일까지는 상법 소정의 연 6%, 그 익일부터 완제시까지는 특례법 소정의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첫째, 연 6%의 지급을 명한 것은 채무자 국가의 법을 적용한 것으로 선해할 수도 있으나 아마도 만연히 우리 상법을 적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협약이 적용되고 보충적으로 중국법이 적용될 개연성이 큰 이 사건에서 우리 상법을 적용하는 근거를 제시했어야 한다. 둘째, 연 20%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의 지급도 종래 우리 판례에 반한다. 즉 대법원 1997. 5.9. 선고 95다34385 판결은 지연손해금은 준거법에 따라 판단할 사항이라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종래 필자는 지연손해금은 당사자의 권리·의무에 관한 것이므로 실체(substance)에 속하지만, 특례법상의 지연손해금은 한국에서의 소송 촉진이라는 소송정책적인 고려에 기하여 부과하는 소송상의 제도이므로 법정지법에 따를 사항이라고 본다. 7. 맺음말 대상판결이 이 사건 매매계약에 협약을 적용하고 본질적 계약위반의 개념과 손해배상의 발생요건과 범위 등에 관해 정확히 설시한 점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으므로 항소심에서는 사실관계를 좀더 심리하고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협약이 적용되는 매매계약이더라도 협약이 모든 사항을 규율하지는 않으므로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협약이 규율하는 사항과 아닌 사항을 구별하고, 후자는 국제사법에 의해 결정되는 준거법에 따르고, 전자의 경우 협약이 통일규범을 두고 있으면 그에 의하지만, 협약이 명시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문제는 협약의 기초를 이루는 일반원칙에 의하고 그것이 없으면 비로소 준거법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협약 제7조). 무엇보다도 협약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협약에 대한 연구가 긴요하다. 또한 협약은 Lando 위원회의 유럽계약법원칙과 UNIDROIT의 국제상사계약원칙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결과 이제 협약의 개념과 용어는 국제계약법의 공용어(lingua franca)가 되었는데, 근자에는 위 troika를 기초로 세계계약법원칙(내지 세계계약법)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으므로 우리도 방관해서는 아니 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성안할 민법개정안에는 2004년 개정안과는 달리 협약의 내용 중 취할 바를 가려내어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해둔다.
2009-06-15
명의신탁자동차에 대한 사기죄
1. 들어가는 말 명의신탁에 관한 법리문제는 주로 등기라는 공시방법을 그 소유권변동방법으로 사용하는 부동산물권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물권변동의 공시방법이 등기와 유사한 등록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자동차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등기, 등록제도를 이용한 명의신탁의 문제는 자동차의 경우에도 이용될 수 있다. 이중 자동차 명의신탁관계에서 실소유자인 신탁자가 명의상의 소유자인 수탁자와의 명의신탁계약으로 수탁자명의로 등록된 것을 이용하여 수탁자가 제3자에게 수탁자동차에 대한 처분승락을 하고 이에 제3자가 명의수탁자로부터 인감증명 등을 교부받아 위 자동차를 명의신탁자 몰래 가져가 처분행위의 상대방에게 처분한 경우, 제3자와 명의수탁자에 대해 어떠한 형사법적 문제가 발생하는가이다. 이러한 사례에 놓여있는 본질은 자동차명의신탁의 경우 그 소유권이 신탁자와 수탁자사이에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점이다. 그 소유권의 여하에 따라 수탁자가 행한 수탁자동차에 대한 처분의 승낙의 의사표시가 유효한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에 대해 2006도4498(대법원 2007. 1.11. 선고) 판결에서 다루며, 이 판결은 절도죄와 사기죄의 부분에 대해 각각 판단하고 있으나 사기죄의 부분에 대해 고찰하기로 한다. 2. 사실관계 매그너스 승용차를 공소외 1이 구입해 이의 실질적인 소유이지만, 다만 장애인에 대한 면세혜택의 적용을 받기 위해 피고인의 어머니인 공소외 2의 명의를 빌려 등록한 것에 불과한 것에도, 피고인이 이 사건 당시 공소외 2로부터 위 승용차를 가져가 매도할 것을 허락받고 그녀의 인감증명등을 교부받은 사실이 인정되며, 이 사건 승용차의 구입 및 등록 경위에 비추어 보아 공소외 2는 이 사건 승용차를 등록할 당시부터 위 승용차에 대한 처분권한을 딸인 피고인에게 일임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의 승낙에 기하여 피고인은 2004년 6월16일 16:00경 ○○시 ○○동에 있는 ○○회사 사무실 앞길에서, 열쇠공을 통해 주차해 둔 위 승용차의 문을 연 후 그대로 위 승용차를 운전해 가져가, 피고인이 같은 해 6월23일경 ○○시 ○○동에 있는 피해자 합자회사 ○○자동차매매상사의 사무실에서 위와 같이 절취한 위 승용차를 마치 피고인이 적법하게 처분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세해서 이에 속은 위 회사의 직원에게 위 승용차를 매도하고 즉석에서 그 대금으로 700만원을 교부받아 이를 편취했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해 원심판결은 유죄를 인정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이 이 사건 승용차의 소유자로서 이를 적법하게 처분할 권한이 있는 공소외 2의 허락을 받아 위 승용차를 매도하게 되었음은 앞서 본 바와 같고, 그 판시 증거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위 매도 당시 공소외 2의 인감증명 등 차량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구비해서 합자회사 ○○자동차매매상사의 직원에게 교부했고, 그 후 위 합자회사 ○○자동차매매상사는 위 서류를 이용해 이 사건 승용차의 등록명의를 위 회사의 명의로 이전해서 유효하게 소유권을 취득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이 이 사건 승용차를 매도할 당시 기망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고, 또 위 매매 당시 피고인이 위 승용차를 공소외 1 몰래 가져온 사실을 숨겼다고 할지라도 위 회사가 이 사건 승용차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는 데에 아무런 법적인 장애가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거래관계에서 요구되는 신의칙에 반하는 기망행위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 우선, 원심 판단과 달리 피고인과 공소외 2 모두에게 절도죄의 공모공동정범이 성립될 여지가 있지만 그러나 예컨대 부동산의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하고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쳐 준 경우, 명의신탁의 법리상 대외적으로 수탁자에게 그 부동산의 처분권한이 있는 것임이 분명하고, 제3자로서도 자기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진 이상 실질적인 재산상의 손해가 있을 리 없으므로 그 명의신탁 사실과 관련해 신의칙상 고지의무가 있다거나 기망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없어서 그 제3자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될 여지가 없고, 나아가 그 처분시 매도인(명의수탁자)의 소유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역시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는 자동차의 명의수탁자가 처분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하며, 피고인이 설령 명의수탁자인 공소외 2와 공모하여 절취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명의신탁관계가 종료되는 것은 아니고, 따로 명의신탁자의 명의신탁 해지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종료될 것이며, 명의신탁을 해지하더라도 그 등록이 말소, 이전되기 전까지는 명의수탁자의 처분행위가 유효한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경위로 이 사건 승용차를 가져와, 피고인이 그와 같이 위 승용차를 처분하면서 위 승용차가 명의신탁된 것임을 고지하지 않고, 위 공소외 2의 소유라는 말을 하는 등으로 피고인이 대외적으로 적법하게 처분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여 매도했다고 하더라도 그 매수인을 피해자로 하는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할 수 없다. 3. 평 석 이 사례는 자동차 명의신탁관계에서 실소유자가 자기의 명의로 자동차등록을 하지 않고 타인의 명의로 등록을 한 후 명의상의 소유권자가 자신의 승낙하에 제3자에게 이를 매도하도록 승낙하여 명의수탁자로부터 승낙을 받은 제3자가 이를 다른 사람에 매매한 경우 그 형사책임이 어떠한가에 관하여 논제를 주고 있다. 이 사안은 이미 동일한 판례에 대한 판례평석 중 절도죄부분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제2자형 명의신탁이다. 신탁자와 수탁자라는 2자형 명의신탁에서 신탁자와 수탁자와의 관계는 당자사사이의 대내관계만이 존재하므로 명의신탁계약에 따라 자동차에 대한 소유권은 실소유자인 신탁자에 있으며 명의상의 소유자인 수탁자에게 있지 않으며 피고인과 공소외 2의 행위는 절도죄가 아닌 횡령죄의 공동정범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피고인이 이 사건 승용차의 명의상의 소유자로서 이를 적법하게 처분할 권한이 있는 수탁자인 공소외 2의 허락을 받아 승용차를 매도하는 행위 즉, 피고인이 매도 당시 공소외 2의 인감증명 등 차량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구비하여 합자회사 ○○자동차매매상사의 직원에게 교부했고, 그 후 위 합자회사 ○○자동차매매상사는 위 서류를 이용해 이 사건 승용차의 등록명의를 위 회사의 명의로 이전해 유효하게 소유권을 취득했다는 점에서 수탁자인 공소외 2로부터 적법한 처분권한을 받은 피고인이 한 처분행위는 명의신탁법리상 적법하므로 피고인이 행한 위 회사에 대한 승용차매도행위가 어떠한 형법적 평가를 받는 가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명의신탁의 수탁자가 보관하는 명의신탁 대상물을 처분하는 행위가 과연 처분행위의 상대방에 대해 기망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명의신탁법리를 살펴보면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은 ‘명의신탁약정은 무효로 하며’ 동조 제2항에서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행하여진 등기에 의한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로 한다. 다만,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취득하기 위한 계약에서 명의수탁자가 그 일방당사자가 되고 그 타방당사자는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의 규정에 의해 원칙적으로 명의신탁은 유효가 아니라 무효이며 단지 수탁자가 일방당사자가 되고 타방당사자가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알지 못한 경우, 즉 선의인 때 명의신탁이 유효로 되어 타방당사자가 소유권등을 취득한다. 또한 동법 제8조 제2호의 배우자에 대한 특례규정에서 ‘조세포탈, 강제집행의 면탈 또는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우’ 배우자 명의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등기한 경우에 대하여 동법 제4조 등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조세포탈, 강제집행의 면탈 또는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배우자 명의로 행한 명의신탁은 유효하며 따라서, 수탁자가 행한 상대방에 대한 수탁물의 처분행위는 유효하며 상대방이 비록 수탁자가 행한 행위가 명의신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즉, 악의라 해도 적법하게 소유권등을 취득한다. 이러한 명의신탁법리에 따른다면 수탁자가 행한 수탁대상물의 처분행위는 명의신탁이 무효이지만 수탁자와 계약을 한 상대방이 명의신탁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선의인 경우)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제8조 제2호에 의하여 동법의 적용이 배제되는 경우 적법하게 되며, 상대방은 적법하게 소유권등을 취득한다. 이러한 경우 상대방은 수탁자와 거래에서 어떠한 손해도 있지 아니하며 수탁자가 사실상 명의신탁에 대해 숨기는 등 기망적 행위가 있다고 해도 이를 사기죄에서 요하는 기망행위로 보기 어렵게 된다. 이는 그 처분시 매도인(명의수탁자)의 소유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역시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탁자가 행한 수탁물의 처분행위는 명의신탁이 무효이지만 이러한 수탁자와 계약을 한 상대방이 명의신탁을 알게 되거나(악의의 경우) 또는 이러한 배우자 등 특례규정의 적용이 없게 되는 경우 수탁자는 수탁물에 대한 적법한 처분권한이 없으며 상대방은 적법하게 소유권등을 취득하지 못한다. 이때 수탁자와 거래행위를 한 상대방은 수탁물에 대한 실질적인 손해가 있게 되며 수탁자가 이러한 무효인 명의신탁사실을 제3자에게 알리지 않은 경우 기망행위가 있게 된다. 이에 사기죄의 성립가능성은 존재한다. 명의신탁을 규율하는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비추어 보면 명의신탁이 유효인 경우와 무효인 경우로 나누어지며 따라서 명의수탁자가 상대방에 대해 행한 수탁물처분행위로 인해 상대방이 실질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 견해는 모든 경우에 타당하지 않다. 이 사안은 부부간의 명의신탁이며 그 목적인 단지 장애인에 대한 면세 혜택의 적용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동법 제4조 제2호에 해당해 이러한 명의신탁은 유효하다. 이에 기하여 수탁자가 상대방인 ○○자동차매매상사에 행한 자동차처분행위는 적법하며, 상대방은 당해자동차소유권을 취득하므로 실질적으로 손해가 없다. 그러나 대법원판례가 자동차명의신탁에 대한 전체적인 법리를 언급하지 않고 단지 문제된 이 사례에서 판결이유로서 적시하는 것으로, 수탁자인 공소외 2로부터 상대방에로의 적법한 처분권한을 받은 피고인이 한 처분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기망행위가 아니라는 점, 상대방이 손해가 없다는 점을 일응 수긍해서 대법원판례의 결론을 지지해도 명의신탁의 효력면에서 무효가 돼 상대방이 소유권 등을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명의신탁의 법리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를 논리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대법원판례의 하급심판례에 대한 지도적 입장에 비추어 볼 때 아쉬움이 있다.
2008-04-28
회사정리계획과 어음소지인의 사고신고담보금청구권
[판결요지] 사고신고담보금예치계약은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서 그 계약상 요약자와 낙약자 사이에서 원인관계가 변경되더라도 낙약자의 제3자에 대한 급부의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므로, 회사정리계획으로 어음채권의 내용이 변경되더라도 어음소지인의 지급은행에 대한 사고신고담보금청구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1. 사건의 개요 1) H회사(발행인, 이하 甲이라 칭함)가 발행한 어음을 P(소지인, 이하 乙이라 칭함)가 취득하여 지급은행(이하 은행이라 칭함)에 제시하였다. 그런데 그 제시에 앞서 甲이 은행에 사고신고를 하여, 은행이 사고신고 접수를 이유로 乙에게 지급을 거절하였다. 甲은 신고 당시 은행에 사고신고담보금(이하 담보금이라 칭함)을 예치하였다. 그 뒤 甲이 회사정리절차(이하 정리절차라 칭함)에 들어가 乙이 어음채권을 정리채권으로 신고하였고, 이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여 정리채권으로 확정되었다. 한편 정리계획으로 어음채권의 내용이 일부 변경되었다. 어음채권이 정리채권으로 확정된 것에 기하여 乙(원고)이 은행을 상대로 담보금 전액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은행(피고)은 정리계획으로 어음채권의 내용이 일부 변경되어 담보금청구권도 변경된 내용에 따라 행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항변하였다. 2) 원판결은 乙의 지위를 정리회사의 보증인과 유사하다고 보아 회사정리법(이하 정리법이라 칭함, 이 법은 2005.3.31. 채무자 회생 등에 관한 법률에 흡수됨) 제240조 제2항을 내세워 은행의 항변을 배척하고 乙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즉 담보금 전액을 은행은 乙에게 지급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은행이 불복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원판결이 내세운 이유는 적절하지 아니하지만 결론을 같이 한다면서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위 판결요지가 대법원이 내세운 이유이다. 2. 사고신고의 성질 乙이 어음을 정당하게 취득할 경우도 있고(이하 正일 경우라 칭함), 부당하게 취득할 경우(이하 不일 경우라 칭함)도 있다. 사고신고제도는 乙이 不일 경우를 대비하여 은행들이 자치법규인 어음교환규약(이하 위 규약이라 칭함)을 통하여 마련하여 놓은 제도이다. 乙이 不일 경우 乙은 어음채권을 행사할 수 없다. 사고신고란 乙이 不일 경우 중 분실, 도난 등의 사유로 甲이 항변권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 甲이 은행에 항변권을 신고하는 것이다(졸고. ㉮ “어음항변과 어음교환규약상의 사고신고” 저스티스 통권 제86호 5면이하). 사고신고는 지급사무위탁의 철회나 지급권한수여의 철회가 아니라 항변권의 신고이다. 은행은 사고신고를 접수하면 甲을 대신하여 乙에게 항변권을 행사하여 乙에게 어음금의 지급을 거절한다. 이 제도는 乙이 不일 경우를 대비한 제도인데, 실제로는 乙이 正일 경우에도 甲이 은행에 사고신고를 하는 예가 적지 않다. 이런 허위신고는 무효화하여 乙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乙을 보호하여야 한다. 허위신고가 없었다면 乙이 당시 어음금을 지급받았을 것이므로 당시 지급받는 것과 같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乙을 보호하는 길이다. 3. 담보금예치계약의 성질 1) 담보금예치제도는 正인 乙을 보호하기 위하여 은행들이 역시 위 규약을 통하여 마련한 제도이다. 은행은 甲과 체결한 당좌계약상 어음과 상환으로 甲의 당좌예금 중에서 어음금을 지급하여 주기로 한 어음금의 지급사무담당자이다. 이 예치계약(이하 이 계약이라 칭함)은 위 지급사무의 일환으로 지급사무의 내용에 세 가지 사항을 추가한 것이다. 첫째는 어음과의 상환에 더하여 乙로부터 正임을 증명하는 자료를 받는 것이고, 둘째는 위 예금 대신에 이 담보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며, 셋째는 은행에 대하여 乙이 직접 어음금청구권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였는데, 직접 담보금청구권을 가지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이 계약은 지급사무의 일환이지 별개의 사무를 위임하는 계약이 아니다. 이제까지 살핀대로 이 계약의 성질은 은행으로 하여금 乙에게 직접 담보금을 지급하여 줄 것을 갑이 은행에 의뢰하는 변제공탁계약이다(졸고 ㉮, ㉯ “사고신고담보금과 회사정리개시결정”, 서울변회 판례연구 18집 ⑴ 82면이하). 2) 대법원은 일찍부터 이 계약의 성질을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해석하여 왔고, 대상판결도 그 해석을 따르고 있다. 논자들도 필자 이외에는 이런 대법원의 해석에 동조하고 있다(임채웅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된 경우 어음소지인의 지위…” 상사판례연구 [Ⅵ] 203면이하, 최상열 “정리채권신고를 하지 아니하여 실권된 약속어음소지인…” 법원행정처 판례해설 2001년 하반기 538면이하). 그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이 계약에는 甲과 은행 사이에 보상관계가 따로 없다. 그리고 제3자의 수익의사표시(이하 수익표시라 칭함)도 필요없다. 乙은 바로 담보금청구권을 취득한다. 乙은 어음의 제시로서 이미 어음상의 권리를 행사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따로 수익표시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위 규약상 乙에게 正임을 증명하는 소제기증명을 6개월 내에 은행에 제출할 것이 요구되고 있으나, 이는 수익표시가 아니라 은행업부상 담보금의 권리관계를 빨리 확정짓기 위한 조치로서 마련된 것일 뿐이다. 제3자를 위한 계약에 있어서는 수익표시 이전까지 요약자와 낙약자가 제3자의 권리를 변경 또는 소멸시킬 수 있으나(민법 제541조), 이 계약에 있어서는 乙의 위 증명 제출 이전에도 甲과 은행이 을의 권리를 변경 또는 소멸시킬 수 없다. 뿐만 아니라 乙에게 위 증명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 자체도 부당한 일이다(졸고, ㉮). 이 계약의 성질을 필자와 같이 변제공탁계약으로 해석하면 정리절차에서 어음채권의 내용에 어떤 변경이 생겨도 乙의 담보금청구권에는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아니한다. 대법원이 이 계약의 성질을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잘못 해석하였으나, 乙의 담보금청구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4. 정당한 소지인의 담보금청구권 1) 담보금은 甲이 출재하여 은행에 예치하지만, 乙이 正일 경우 예치 즉시 확정적으로 乙에게 귀속된다. 乙의 담보금청구권은 조건부 권리가 아니라, 확정된 권리라는 말이다. 조건이란 어떤 법률관계의 발생을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에 걸리게 하는 것인데, 乙이 正인 여부는 과거(乙이 어음을 취득할 때)의 확실한 사실이지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乙은 단지 그가 正이라는 증명(승소확정판결 또는 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것)을 갖추기만 하면 된다. 그 증명을 갖추는 일은 물론 조건이 아니다(졸고 ㉮, ㉯). 정리절차에서 乙의 어음채권이 정리채권으로 그대로 확정되거나(정리법 제145조), 정리채권확정의 소에서 판결로 확정된 것은 위의 증명에 해당된다. 乙이 正일 경우, 甲이 출재하였지만 담보금은 이미 甲의 재산이 아니라 을의 재산이다. 乙이 不일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甲은 그 증명을 갖추어 담보금을 은행으로부터 반환받을 수 있다. 그 경우에 한하여만 甲의 재산이다. 그런데 대법원(참고판결)과 위의 논자들은 乙이 正이면 乙이 지급청구권을 가지고, 乙이 不이면 甲이 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된다는 사정을 마치 조건의 성취 여부로 권리관계가 가려지는 것으로 착각하여 乙의 담보금청구권의 성질을 조건부 권리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런 오해는 乙이 正인 여부가 가려지기까지 甲에게도 절반의 권리가 남아있다는 오해로 이어졌다. 5. 어음채권을 정리채권으로 신고하지 아니한 어음所持人의 지위 1) 甲이 정리절차에 들어간 때에 乙이 어음채권을 정리채권으로 신고하는 것을 잊기 쉽다(참고판결의 사안). 그러면 乙의 담보권청구권에 어떤 영향이 미칠까? 법원이 정리절차개시결정(이하 개시결정이라 칭함)을 내리면 어음채권은 정리채권으로 된다(정리법 제102조). 乙은 어음채권으로 소구하거나 집행할 수 없고, 기간 내에 어음채권을 정리채권으로 신고하여 정리계획에 따라 그 변제를 받을 수 있다(동 125조). 신고를 안 하면 정리절차에서 변제받을 수 없고, 정리계획에서 제외된 권리에 대하여는 정리회사가 책임을 면하므로(동 제241조), 어음채권에 대하여 당연히 책임을 면한다. 乙이 정리절차에서 변제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정리회사를 상대로 어음채권으로 소구하거나 집행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2) 이를 두고 대법원은 참고판결에서 乙이 어음채권을 잃고(실권하고), 甲의 어음채무가 자연채무와 유사하게 변경되어 乙이 담보금청구권을 행사할 正인 지위도 잃는다고 판시하였다. 필자가 기왕에 이 판시에 반대하는 평석을 내놓은 바 있다(졸고 ㉯). 개시결정 이후에 신청인이 취하하거나 법원이 취소결정을 내릴 경우, 법원이 정리절차 폐지결정을 내릴 경우에 乙의 어음채권은 마치 동면에서 깨어나듯, 그동안 행사할 수 없던 상태에서 행사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실제로 乙이 권리를 잃지도 아니하고 甲의 채무가 자연채무로 변경되지도 아니한 것이다. 그리고 실권하고 변경되더라도 乙이 正인 지위마저 잃는다는 판시는 잘못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대상판결의 판결요지와 대비하면서 뒤에 설명한다. 3) 실권하고 변경된다는 법원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한 논자가 필자 이외에도 있다(임채웅 전게). 그러면서도 그 논자는 乙이 담보금청구권을 잃는다는 참고판결의 결론에는 찬성하고 있다. 그가 찬성하면서 내세운 두 가지 논거를 들어 살펴본다. 정리절차는 제정법에 의한 것이고 乙의 담보금청구권은 위 규약에 의한 것인데, 규약에 의하여 乙로 하여금 100% 변제받도록 하는 것은 규약을 제정법에 우선하게 하는 것이 되어 부당하다는 것이다. 규약은 자치법규이다. 사적자치의 영역에서는 자치법규가 최우선의 법원이다. 그리고 자치법규에 의한 것이라도 개시결정 이전에 확정된 권리를 뒤에 개시결정으로 변경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부당하다. 둘째로 담보금을 甲의 재산이라고 전제하면서 정리회사의 모든 채권자를 위한 재산으로 삼아야지 乙을 특별히 대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 견해는 담보금에 관하여 甲에게도 절반의 권리가 남아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위에서 필자가 이미 그 오해를 지적하였다. 6. 두 판결요지 사이의 충돌 대상판결의 판결요지(X)에 의하면 정리절차에서 乙의 어음채권이 그대로 확정되거나 정리채권확정의 소에서 판결로 확정된 이후에 정리계획으로 어음채권의 내용이 변경되더라도 乙의 담보금청구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그리고 위 확정의 소 계속 중에 어음채권의 내용이 변경되더라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 것이다. 그 까닭은 정리계획이 乙의 지위를 正에서 不로 변경하는 효력마저 지니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참고판결의 판결요지(Y)에 의하면 乙이 신고를 안하면 乙의 지위가 正에서 不로 변경되어 담보금청구권도 잃는다. Y에 의하면 정리계획이 乙의 지위를 正에서 不로 변경하는 효력마저 지니고 있는 셈이 된다. X와 충돌된다. 乙이 설사 어음채권을 잃고 甲의 채무가 자연채무로 되더라도, 어떻게 그런 사정이 乙의 지위를 正에서 不로 변경되게 할 수 있는가? 과거의 확실한 사실인 乙이 正인 여부를 그런 사정이 변경되게 할 수 없다. Y는 논리의 비약이다. 그리고 乙이 어음채권 일부를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것과 전부를 행사지 못하게 된 것과의 차이는 양적 차이에 그친다. 그런데 일부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그에 불구하고 담보금을 전액 받는데, 전부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그로 인하여 담보금을 전액 못 받게 된다. 양적 차이가 질적 차이로 둔갑한 셈이다. 이 점에서도 X와 Y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대법원은 X를 내놓을 때에 Y는 잘못된 것이라고 밝히고 Y를 변경하였어야 옳았다.
2007-10-08
외국중재판정의 집행과 중재약정의 실효
[사건의 경과] 원고회사는 1988.10.5. 위 피고회사와의 1978.11.8.자 노우하우 실시계약에 따라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에 사건번호 6363/BGD로 중재신청을 하면서, 위 중재절차에서 원고는 자신이 피고회사와의 사이에 위 노우하우 실시계약에 따라 보유한 권리는 소외 사우디회사에게 유효하게 양도되지 아니하였고, 가사 양도되었다면 소외 사우디회사를 대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위 노우하우 실시계약상의 모든 권리, 의무는 소외 사우디회사에게 유효하게 양도되었으므로 원고회사에게는 이 중재절차의 당사자 적격이 없을 뿐 아니라 소외 사우디회사가 사우디국의 위 분쟁해결위원회에 제소함으로써 중재합의조항 자체도 실효되었으며, 또 소외 사우디 회사는 사우디국에서의 위 위원회절차에서 패소하여 피고회사가 승소하였으므로 원고의 이사건 중재청구는 기판력에도 저촉된다고 주장하였다. 위 국제상업회의소 중재의 중재판정부는 피고의 항변을 배척하고 1991.3.19. 피고에게 원고에게 추가실시료에 해당하는 금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중재판정을 선고하였고, 이에 원고회사는 대한민국에서 위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구하기 위해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1심법원인 서울민사지방법원은 원고회사의 위 중재판정에 관한 승인 및 집행 청구를 인용하였고, 이에 피고회사가 항소하였으나 2심법원인 서울고등법원도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으며, 이러한 원심의 판결은 이 사건 대법원판결에서도 유지되었다. [대법원 판결요지] 중재합의의 원시적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재합의와 합체되어 있는 본안계약이 제3자에게 포괄적으로 이전되어 결국 당사자의 지위를 상실하였다거나 원·피고 사이의 중재약정이 실효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는 경우에는, 중재약정의 실효여부의 판단은 본안에 관한 판단과 불가분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므로 본안에 대한 판단에 준하여 그 자체가 중재인(중재판정부)의 판단에 따를 사항인데, 이 문제에 관하여 중재판정부는 다수의견으로 위 채권양도 유효여부를 판단할 준거법은 양도행위와 가장 관련이 많은 사우디법이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사우디국의 분쟁해결위원회 및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입장을 기초로 사우디법 아래에서는 위 양도는 유효하지 아니하다고 판단하였는 바, 그 준거법의 결정 및 사우디법하에서의 이 사건 사실관계에 대한 법적 평가 등이 명확하지 아니한 이 사건에 있어서 중재판정부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도덕과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한 중재판정부의 판정내용은 존중되어야 하고, 집행국의 법원이 그 본안에 관하여 다시 심사할 수 없다. [판례평석] I. 서설 외국에서 내려진 중재판정은 우리나라가 1973.2.8.에 가입한 ‘외국중재판정의승인및집행에관한유엔협약 (The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Recognition and Enforcement of Foreign Arbitral Awards, 통상 뉴욕협약이라고 불린다)’에 의하여 국내에서의 승인 및 집행이 보장된다. 즉, 뉴욕협약 제5조에서 열거된 제한적인 집행거부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중재판정의 집행을 구하는 당사자는 중재판정의 원본 혹은 정본과 중재합의의 원본 혹은 정본을 제출함으로써 그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II. 대상판결의 쟁점에 관한 판단과 분석 - 중재약정의 실효 이 사건에서 피고는 원고회사가 소외 사우디회사에게 이 사건 중재계약이 포함되어 있는 노우하우실시계약을 양도한 바 있고, 원고회사가 소외 사우디회사 명의로 피고회사를 상대로 사우디국 담만 소재 상사분쟁해결위원회에 분쟁해결을 신청함으로써 위 노우하우실시계약에 의한 중재약정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니 원·피고간의 위 노우하우실시계약상의 중재합의는 결국 실효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러한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대법원은 원심판결의 이유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피고의 주장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대법원이 인용하고 있는 원심판결의 내용은 아래와 정리해 볼 수 있다. (1) [피고가] 중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과 같이 중재합의와 합체되어 있는 본안계약이 제3자에게 포괄적으로 이전되어 결국 당사자의 지위를 상실하였다거나 원·피고 사이에 중재약정이 실효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중재약정의 실효여부의 판단은 본안에 관한 판단과 불가분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므로 본안에 관한 판단에 준하여 그 자체가 중재인(중재판정부)의 판단에 따를 사항이다. (2) 이 문제에 관하여 중재판정부는 다수의견으로 위 채권양도의 유효여부를 판단할 준거법은 양도행위와 가장 관련이 많은 사우디법이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사우디국의 분쟁해결위원회 및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입장을 기초로 사우디법 아래에서는 위 양도는 유효하지 아니하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준거법의 결정 및 사우디법하에서의 이 사건 사실관계에 관한 법적 평가가 명확하지 아니한 이 사건에 있어서, 중재판정부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도덕과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한 중재판정부의 판정내용은 존중되어야 하고 집행국의 법원이 그 본안에 관하여 다시 심사할 수 없다. 또한, 대법원 판결에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원심의 판결이유를 보면, 위와같이 해석하는 근거로서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a)는 중재합의가 무효(not vaild)인 경우만을 승인 및 집행의 거부사유로 규정하여 중재계약이 실효(inoperative)된 경우에는 승인 및 집행을 요구받은 법원이 심사할 수 있는 그 승인 및 집행의 거부사유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무효(null and void 또는 not valid)라 함은 중재계약상 처음부터 계약의 성립에 무효원인이 있는 경우를 의미하고, 실효라고 함은 중재계약의 효력이 일정한 사유로 사후에 상실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시하면서 “따라서, 위와같이 중재합의가 후발적으로 실효되었다는 것은 뉴욕협약 제5조가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집행거부사유의 어디에도 해당하지 아니한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와같은 대법원 판결과 대법원 판결이 정당한 것으로 수긍한 원심판결은 아래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뉴욕협약 제5조 제1항의 법리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잘못된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첫째, 대법원 판결은 유효한 중재계약이 없다는 피고의 주장을 무효와 실효를 구분하면서 실효는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a)호의 중재판정 승인 및 집행거절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는 매우 잘못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무효와 실효의 대법원과 원심의 판결처럼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a)호를 해석함에 있어 이 두 가지 개념을 구분하여 다룰 수 있는 것인지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원칙적으로 국내중재와 국제중재를 불문하고, 당사자간에 유효한 중재약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중재약정에 기초하여 내려진 중재판정은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뉴욕협약 제5조 제1항의 취지도 당사자간에 유효한 중재계약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 집행국가의 법원이 외국에서 내려진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중재약정이 처음부터 무효이거나, 나중에 효력이 없어졌거나, 중재약정이 부존재하거나 어떠한 경우이든, 당사자간의 중재약정이 그 규정된대로의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상황이 인정된다면, 당사자간에는 유효한 중재약정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경우 집행국가의 법원은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a)호에 따라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대법원 판결은 중재약정의 실효여부에 관한 판단이 본안에 관한 판단과 불가분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므로 본안에 관한 판단을 할 권한을 가진 중재판정부가 내린 판단을, 공서양속에 반하지 않은 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는데, 이는 중재계약의 독립성(separability) 내지 독자성(autonomy)에 반하는 판단일 뿐 아니라 유효한 중재계약의 존재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법원이 스스로 그 권한과 의무를 방기하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재계약 혹은 중재약정은 그것이 다른 계약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별도의 계약으로서의 독립성 내지 독자성이 인정된다. 즉, 중재계약이 포함된 전체계약이 효력을 무효가 되거나 효력을 상실하는 경우에도 중재계약은 별도의 계약으로서 별도로 그 효력여부가 판단되어야 한다. 따라서, 중재계약이 실시계약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중재계약의 유효성여부의 판단이 실시계약의 효력에 판단과 불가분적으로 결부되어 있다는 법원의 판단은 이러한 중재계약의 독립성과 독자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셋째, 대법원 판결은 중재계약의 유효성을 따지는데 있어 준거법의 결정이나 준거법으로 적용된 사우디법의 해석에 있어서도 중재판정부의 판단을 별도의 검토없이 따라가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법원으로서는 의당 중재계약의 유효성을 판단하기 위한 준거법을 정하고 그 준거법의 적용에 있어서도 독자적인 조사를 하였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재계약은 그것이 전체계약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독립성과 독자성이 인정되어 별도의 계약으로 취급되는 것이고 그 준거법 또한 전체계약의 준거법에 관한 판단과 별도로 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에 있어서도 중재계약의 준거법은 법원이 따로 심리하여 결정하였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이 사건 원고와 피고간의 실시계약의 준거법은 계약상 네덜란드 안틸레스의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중재계약의 준거법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우선적으로 당사자가 전체계약의 준거법으로 정한 네덜란드 안틸레스의 법이 고려되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이 사건 노우하우실시계약이 소외 사우디회사에게 양도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중재판정부가 다수의견으로(이는 소수의견은 이에 반대하였다는 의미로 중재판정부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하였다는 의미이다) 채권양도계약에 적용될 준거법이 사우디법이라고 판단한 부분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부분 판단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 사건에서 피고가 주장하는 바는, 원고가 이 사건 중재계약을 제3자에게 양도하였으니 더 이상 계약당사자로서의 지위에 있지 아니하다는 점과 원고가 스스로(소외 사우디회사의 명의로) 이 사건 중재계약에서 정한 ICC와는 다른 중재기관에 중재신청을 한 바 있으니 더 이상 이 중재계약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재계약이 유효하게 양도되었는지 여부는 채권양도에 관한 준거법에 따라 판단할 사항일지 몰라도 스스로 다른 중재기관에 중재를 제기함으로써 중재약정이 실효되었다는 주장은 중재계약의 준거법에 따라 판단할 사항이라고 할 것이다. III. 결 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국제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에 관련된 여러가지 의미있는 쟁점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 결론의 타당성을 별론하고 하고 판결이유에 설시된 이론적 근거나 분석에 있어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 사건 판결이 국제중재가 그리 활성화되지 아니한 시기에 내려진 판결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뉴욕협약의 핵심조항의 해석에 있어 부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부정확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다루는 법원으로서는 이 판결을 참고하는데 있어 신중한 검토와 주의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2006-09-25
위장납입의 형법상 죄책
I. 사건의 개요와 논점 피고인은 유상증자금 300억 7000만원을 일괄 납입·예치하고, 그 은행으로부터 주식납입금보관증명서를 발급받은 다음, 위 회사 우선주 유상증자를 마친 후, 다음날 증자대금으로 납입한 300억 7000만원을 직접 인출해간 방법으로 위 회사의 증자 대금의 납입을 가장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은 또한 주금을 가장납입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무사를 통해 정을 모르는 등기공무원에게 주금납입보관증명서 등 유상증자등기에 필요한 관계 서류를 제출하게 하였고, 등기공무원으로 하여금 위 회사의 발행주식 총수 및 자본의 총액에 대한 허위사실의 등기를 경료하게 하여 공정증서원본인 상업등기부에 불실의 사실을 기재하게 하고, 같은 일시, 장소에서 위 등기 공무원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불실의 사실이 기재된 상업등기부를 비치하게 하였다. 또한 피고인은 이미 법인의 소유의 돈으로서 회사의 운영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돈에 대해, 보관하는 것을 기화로 다음날 그 돈을 법인의 업무와 아무런 관계없는 용도인 채무변제에 사용하기 위하여 법인계좌에서 인출하여 300억 7000만원을 횡령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상법 제628조의 납입가장죄가 성립하는지 여부, 둘째 위장납입을 한 후 발급받은 주금납입보관증명서를 공무원에게 제출하여 상업등기부에 등기하게 하고 이를 비치한 것이 공정증서불실기재죄(형법 제228조) 및 동행사죄(제229조)에 해당하는지 여부, 셋째 위장납입한 돈을 인출하여 회사의 업무가 아닌 위장납입시의 채무변제를 위해 사용한 경우 업무상횡령죄(형법 제 356조 제1항,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제3조)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이다. 평석대상 전원합의체 판결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쟁점에서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갈렸던 바, 이 차이를 중점으로 검토하기로 한다. II. 상법상 납입가장죄의 성부 가장납입이란 회사를 설립함에 있어서 주금이 납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납입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발기인이 설립등기를 하는 회사범죄의 일종이다. 가장납입 중의 한 형태인 위장납입(=‘견금’)은 발기인이 보관은행 외의 제 3자로부터 금전을 차입하여 주금액을 납입하고, 설립등기를 마친 후 이를 즉시 인출하여 차입금을 변제하는 유형을 말한다. 판례는 견금 등의 행위에 대하여 “납입가장죄는 회사의 자본충실을 기하려는 법의 취지를 유린하는 행위를 단속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므로, 당초부터 진실한 주금납입으로 회사의 자금을 확보할 의사 없이 형식상 또는 일시적으로 주금을 납입하고 이 돈을 은행에 예치하여 납입의 외형을 갖추고, 주금납입증명서를 교부 받아 설립등기나 증자등기의 절차를 마친 다음 바로 그 납입한 돈을 인출한 경우에는, 이를 회사를 위하여 사용하였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사의 자금이 늘어난 것이 아니어서, 상법 제628조의 납입가장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판 1982.4.13. 선고 80도537판결; 대판 1993.8.24, 93도 1200판결). 학계의 통설 역시 가장납입을 한 사안에 대하여 납입가장죄를 인정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당해 사안에서는 피고인이 회사를 위해서 자본금을 사용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데 원심이 이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채증법칙을 위반하였다고 판시하였다. III. 상법상 납입가장죄와 별도로 형법상 공정증서부실기재죄·동행사죄의 성립 여부 공정증서불실기재죄란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신고를 하여 공정증서원본 등에 부실의 사실을 기재하게 하는 것이다. 사안에서의 문제가 되는 상업등기부는 상법에 의하여 등기할 사항을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법원이 등기하게 하는 장부로서, 등기된 사항은 상법상의 여러 효력을 부여받게 되는 바, 권리의무관계를 증명하는 공정증서원본의 일종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가장납입을 한 것이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신고를 한 것인지 여부이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회사를 위하여 사용하였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실질적으로 회사의 자본이 늘어난 것이 아니어서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가 성립하고, 다만 납입한 돈을 곧바로 인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인출한 돈을 회사를 위하여 사용한 것이라면 자본충실을 해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주금납입의 의사 없이 납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여 기존의 판례와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 반대의견은 “견금 방식의 가장납입의 경우에도 납입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하는 종래 대법원의 견해를 따르는 한 납입이 완료된 것은 진실이고, 따라서 등기공무원에 대하여 설립 또는 증자를 한 취지의 등기신청을 함으로써 상업등기부원본에 발행주식의 총수, 자본의 총액에 관한 기재가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이를 두고 ‘허위신고’를 하여 ‘불실의 사실의 기재’를 하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동행사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고 판시한다. 판례의 다수의견은 가장납입의 경우 실질적으로 자본이 늘어난 것이 아니어서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는데, 이러한 논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위장납입을 한 경우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장납입이 유효한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납입이 유효하다고 하다면, “당사자들의 합의 없이 이루어진 소유권이전등기라도 하더라도 민사실체법상의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것이라면 이를 부실등기라고 할 수 없다.”(대판 1980.12.9. 선고, 80도1323판결)는 판례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에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의 성립이 부정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상법학계의 통설인 ‘납입무효설’과는 달리, “위장납입은 금원의 이동에 따른 현실의 불입이 있는 것이고, 주금납입의 가장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주관적 의도에 불과하고, 이러한 내심적 사정은 회사의 설립이나 증자와 같은 집단적 절차의 일환을 이루는 주금납입의 효력을 좌우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일관되게 ‘납입유효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판 1983.5.24 선고 82누522 판결). 그 결과 납입가장죄와 별도로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동행사죄가 성립하다는 다수의견은,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것을 부실의 등기라고 보지 않고, 위장납입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기존의 판례와 긴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점에서 반대의견의 입장이 ‘납입 유효설‘을 취하는 이전의 판례와 논리가 일관된다. 그리고 상사법적으로 유효한 행위를 형법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법질서의 통일성이나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에 타당하지도 않다(단, 학계 통설에 따라 ‘납입무효설’을 취할 경우에는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죄의 ‘부실’을 주장할 근거가 더욱 강해질 것이다). IV. 업무상횡령죄의 성부 이 사안에서 피고인은 위장납입의 형태로, 돈을 회사에서 인출하여 제3자의 채무를 갚는데 사용하였다. 피고인의 이 행위가 업무상횡령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먼저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타인으로부터 금원을 차용하여 주금을 가장납입한 직후 이를 인출하여 차용금변제에 사용한 경우 상법상의 납입가장죄와 별도로 회사재산의 불법영득행위로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한 이전의 대법원 1982. 4. 13. 선고 80도537 판결, 2003. 8. 22. 선고 2003도2807 판결 등을 변경하기로 결정한다. 즉, 다수의견은 이 경우 “피고인에게 회사의 돈을 임의로 유용한다는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할 것이고, 이러한 관점에서 상법상 납입가장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이상 회사 자본이 실질적으로 증가됨을 전제로 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여 업무상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소수의견은 “주금납입과 동시에 그 납입금은 회사의 자본금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기관이 이를 인출하여 자신의 개인 채무의 변제에 사용하는 것은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불법영득의사의 발현으로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파악하면서, 위장납입이 유효한 이상 납입금은 이미 회사의 재물로서 타인의 재물이 되며, 따라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설시하고 있다. 생각건대, 대법원이 위장납입의 유효성을 확고하게 인정하고 있는 한, 위장납입으로 회사에 주금이 입금 되었다면 바로 그 주금은 타인의 재물로 되며, 타인의 재물을 임의로 유용하여 빼가는 경우 불법영득의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리고 반대의견이 지적한대로 납입행위 이후 반환행위 이전에 회사의 채권자가 주금 납입금에 관한 회사의 예금채권에 대하여 압류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납입의 사법적 효력을 인정하되 그와 별도로 납입금을 인출하여 제3자에게 변제하는 행위를 횡령행위로 보는 것이 가장납입을 전후한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V. 맺음말 전원합의체 판례의 다수의견은 ‘납입유효설’을 취하는 기존의 대법원의 판례와 논리적으로 충돌한다. ‘납입유효설’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가장납입행위는 상법상 납입가장죄와 형법상 업무상횡령죄로 의율되는 것이 옳고,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의 성립은 부정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단, 상법학계의 ‘납입무효설’을 취할 경우에는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와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가 성립하고 업무상횡령죄의 성립은 부정되는 결론이 논리적일 것이다.
2005-11-07
근로자에 대한 배치전환명령과 그 한계
1. 서설 가. 최근에 근로자의 전보명령과 관련하여 또다시 주목할 만한 하급심 판례가 나왔다. 필자는 마침 이 부분에 대한 대학원 과제물을 준비하고 있었던 까닭에 매우 흥미롭게 위 판결문을 읽게 되었다. 사실 일반 사기업체의 근로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근로관계에서 조차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하는 전보(배치전환)명령은 노동법분야와 행정법분야를 아우르는 쟁점을 포함하고 있어 이에 관한 학계나 실무의 논의가 보다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나. 서울행정법원 제23부는 최근 2005구합760 사건에서 “이 사건 전보 당시 원고회사에게 배치전환을 실시할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는 반면, 전보 조치된 장모씨는 전보로 인해 작업내용에 질적 변화가 생기는 등 전보의 업무상 필요성보다 전보로 인해 장씨가 입게 될 생활상의 불이익이 훨씬 크므로 원고는 전보를 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장씨와 협의를 하는 등의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라고 밝혔다. 다. 위 최근의 하급심 판례는 과거 대법원 1991. 9. 23. 선고, 90다12366 판결을 그 모태로 삼되 그보다 한 걸음 발전한 판례라고 생각되는바, 이 기회에 위 대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근로기준법 제30조 제1항(이 사건 변경 전 제27조)의 내용인 근로자의 배치전환명령(전보명령 내지 전근명령과 유사 의미)의 근거와 그 한계 및 나아가 바람직한 심사판단 기준까지를 간략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2. 대법원 90다12366판결 사건의 개요 가. 원고는 피고 쌍용양회공업 주식회사가 경영하는 동해시 소재 동양공장에서 환경안전관리 실사원(직급상 4급)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피고회사는 피고회사의 창립자 동상을 건립하여 회사 창립 기념일인 1988. 5. 14. 제장식을 갖기로 하고 사원 중 원고를 포함한 18명을 안내요원으로 선발하였다. 나. 한편, 원고는 1988. 5. 14 강릉에서 실시하는 고압안전관리자 정기교육에 참석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원고의 직속상관인 소외 김용남이 같은 달 12일 원고에게 동상제장식 요원으로 선발되었으니 고압 안정관리자 정기교육을 연기하고, 그 다음 날의 동상제장식 예행연습에 참석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원고는 위 정기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환경안전관리실 차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후 위 정기교육에 참석하고, 예행연습 및 동상제장식에 불참하였다. 원고는 같은 달 16일 원고의 불참을 나무라는 위 김용남에게 정기교육 참석여부를 결정한 결재권이 있느냐고 따지면서 폭언을 하였다. 다. 피고회사가 원고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하여, 인사위원회는 원고가 ① 직속상관인 위 김용남의 동상제장식 및 예행연습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차상급자인 안전 관리실 차장을 상대로 하여 조직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무시하였고, ② 직속상사의 정당한 명령에 불복종하고 폭언, 협박 등의 불손한 언동으로 위계질서를 문란케 함은 물론 근무분위기를 해쳤다는 점 등을 비위사실로 들어 원고에 대하여 견책조치로 다른 공장으로의 전출을 결의한 다음 원고에 대하여 견책처분을 함과 동시에 군산 분공장으로의 전출을 명령하였다가 노동조합에서 위 전출명령이 너무 가혹하다고 반발하자 이를 취소하고 같은 달 29일자로 북평 공장으로의 전출명령을 하였다. 원고가 위 전출명령에 불응하자 피고회사는 원고를 다시 인사위원회에 회부하여 인사위원회에서는 원고를 면직하도록 징계의결하고 동해공장장은 위 인사위원회의 품의에 따라 같은 달 26일 원고를 징계면직하고 같은 달 29일 해고 하였다. 3. 각 심급별 판결 가. 1심 ; 서울 민사지방법원 1989. 12. 28. 선고, 88가합 54331 판결 1심법원은 전출명령은 근로계약의 내용의 변경하는 행위이므로 근로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고 할 것이고, 근로계약에 의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전출의 권한을 위임하기로 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사용자는 그 전출 명령권을 무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령 및 근로계약의 내용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전출명령이 당해 근로자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행사되어야 하고, 그 범위를 넘은 전출명령은 그 권능의 남용에 해당되어 무효라고 전제하고, 설사 원고에게 비위사실이 있어 징계의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피고회사로서는 조업규칙에 정한 절차에 따라 조업규칙에 정한 내용의 징계만을 할 수 있을 뿐이며, 사원의 이동은 사원이 능력과 사업상의 필요성 및 그 이동이 근로자의 생활상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어 징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원을 전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할 것이어서 징계의 일환으로 한 피고회사의 원고에 대한 전출명령은 그 징계사유가 정당한 징계사유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필요도 없이 전출명령권의 한계를 벗어난 전출명령으로서 무효라고 할 것이라고 하여 무효인 전출명령에 대한 불응을 사유로 한 이 사건 면직처분은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나. 2심 : 서울고등법원 1990. 9. 28 선고 90나 70456 판결 2심법원은 근로기준법 제30조 제1항(이 사건 당시는 개정전 제27조 1항)에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전직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고, 근로자에 대한 전직은 피용자가 제공하여야할 근로의 동료와 내용 또는 장소에 변경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불이익한 처분이 될 수도 있으나 이는 원칙적으로 고용자, 즉 인사권자의 권한에 속하고, 업무상 필요한 범위 안에서는 상당한 재량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 사건의 경우 ① 원고에게 피고회사 동해공장에 근무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만한 사정이 있었다거나 원고가 피고회사에 조업함에 있어서 근무지를 동해공장으로 한정하기로 한 약정이 있었다고는 보여지지 아니하고, ② 피고회사는 원고가 그의 직속상사인 위 김용남의 지시를 무시한 채 동상제장식과 그 예행연습에 참석하지 아니 하고, 나아가 이를 추궁하는 위 김용남에 대하여 상사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고 폭언까지 하여 피고회사 내의 인화와 근무 분위기를 크게 훼손하였고 동해공장의 다른 부서에서도 원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회사 내의 질서 유지와 근무분위기 쇄신을 위하여 부득이 군산분공장으로의 전출명령을 하였다가 이것이 가혹하다는 노동조합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거리상으로 보아 불편함이 없는 부평공장으로의 전보명령을 하게 된 것이므로 부정기이동의 요건인 인사관리상 불가피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아니할 수 없으며, ③ 원고가 북평공장에 전출을 가더라도 이사를 하여야 한다거나 출근함에 있어서 불편이 있는 등 생활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여지지 아니하며, ⑤ 원고에 대한 인사권자인 동해공장장 등은 위 전출명령을 함에 있어서 관계 공장장과 협의를 하는 등 피고회사의 인사규정에 정한 절차를 모두 거쳤으므로 결국 동해공장장들이 원고를 북평공장으로 전출시킨 명령은 재량권의 범위내 행위로서 근로기준법 제30조 제1항에 규정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원고가 피고회사의 정당한 전출명령에 불응하였음을 사유로 한 이사건 면직처분은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다. 대법원의 판결요지 (1) 근로자에 대한 면직이나 전보는 피용자가 제공하여야 할 근로의 종류 또는 장소 등에 변경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피용자에게 불이익한 처분이 될 수도 있으나 이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인사권자) 의 권한에 속하여 업무상 필요한 범위 안에서는 상당한 재량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고, 이것이 근로기준법 제30조 제1항에 위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등의 특별한 재량이 없는 한 당연 무효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2) 원고에 대한 해고에 이르기까지의 경위에 관한 원심의 사실인정은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채증법칙을 어긴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고 원심이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전출명령이 무효라거나 원고가 이를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 (3) 근로자에 대한 전출명령이 무효가 아니라면 원고는 이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할 것 이며 원고가 전출명령에 따른 부임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이라 할 것이고, 이를 이유로 피고 회사의 조업규칙이나 이사규정에 따라 원고를 해고한 것이 무효라고 할 수 없다. 4. 평석 가. 들어가는 말 (1) 최근의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대처하거나 근로의욕을 고취하는 등 다양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노동력의 배치상태를 변경하기 위한 인사이동을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 관례로 되고 있다. 인사이동은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근로자 개인의 적성과 능력을 감안한 효율적인 인사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다. (2) 이와 같이 배치전환은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유용한 것이나 반면 근로자의 입장에 서보면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고에 못지않은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수단이 되는 것인데 직장에서 직무내용이 변경됨에 따라 그러한 노력이 좌절될 수도 있다. (3) 또한 작금에는 부당한 해고가 금지되고 해고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확립됨에 따라 이와 같이 배치전환을 통한 탈법적 형태가 보다 심해지는 것으로 보이는바, 우리 근로기준법 제30조 제1항에서 해고 및 징계에 대한 실체적 제한규정과 함께 정당한 이유가 없는 ‘전직’을 금지함으로써 사용자의 자의에 의한 부당한 배치전환을 금지하는 예외적인 규정을 두고 있는바, 이 시간 배치전환령의 자의적 발동을 제한하기 위한 법리문제는 근로계약의 성립, 변동, 소멸을 주된 대상로 하는 노동사법 및 행정공법의 분야에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학계의 논의가 보다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나. 위 판결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위 평석대상 판결은 배치전환명령의 성질에 관하여 이른바 포괄적합의설을 천명한 것으로 현재 주류적인 대법원판결과 그 취지를 같이 하고 있다. (1) 이 사건 사안에서는 직장의 상사가 함께 근무하기를 기피한다는 것이 다른 공장으로 배치 전환할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 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나 이곳 에서는 배치전환의 근거, 배치전환과 관련한 근로기준법 제30조 제1항의 해석, 배치전환의 한계, 그리고 일반론으로서의 배치전환문제에 대한 시각과 사실인정의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한다. (2) 배치전환(전보)명령의 의의 배치전환(전보)이라고 함은 동일 기업 내에 있어서 근로자의 직종, 직무내용, 직급, 근무장소 중 어느 하나를 장기간에 걸쳐 변경하는 전업내의 인사이동의 하나이다. 근무장소의 변경없이 직무내용만이 변경되는 협의의 배치전환과 근무 장소가 변경되는 전근(또는 전직, 전출)을 합쳐 광의의 배치전환이라고 한다. (3) 배치전환(전보)명령권의 근거 (가) 포괄적 합의설 근로계약은 근로자가 개개의 구체적 노동의 일부를 약정하는 것이 아니고 노동력의 사용을 포괄적으로 사용자에게 위임하는 것이므로 노동의 종류, 방법, 태도 또는 장소에 관하여 특히 합의가 없는 한 그 개별적 결정의 권한이 사용자에게 위임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견해로 근로계약에서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아니한 노동의 종류, 방법, 태양 또는 장소 등 노동의 종류를 상세하게 결정 또는 변경하는 사용자의 노무지휘권(지시명령권)을 근로계약의 본질적 내용을 구성하는 사용자의 기본적 권리라고 하고, 다만 인사권이 형식적이라고 하여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고, 당해 인사권의 행사는 전업 운영상의 합리성, 필요성에 근거하여야 할 뿐 아니라, 대상이 된 관여자의 생활상의 이익에 관하여도 적절한 배려를 하여야 하며, 인사권의 행사과정에서도 성실한 절차를 가질 것을 필요조건으로 하고, 그 중 하나라도 결하는 경우에는 권리남용으로 된다고 하기도 한다. (나) 계약설(개별적합의설) 사용자의 배치전환명령은 근로계약에 의하여 약정된 노동의 종류 내지 범위 내에서만 효력을 가지고 사용자가 근로자를 배치전환하여 종전과 다른 근로의 제공을 가지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로 하고, 미리 특약으로 직부내용, 근무 장소 등의 결정, 변경권이 근로자로부터 사용자에 대하여 부여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용자는 매번 근로자의 동의 얻지 않으면 배치전환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견해를 따로 개별적합의설이라고 하기도 한다. (다) 검토 1) 포괄적합의설의 입장에서도 예외적으로 노동의 종류 또는 장소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특정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이러한 견해는 원칙과 판례가 뒤바뀌어 결과적으로 입증책임을 뒤집어버린 잘못이 있다고 생각된다. 2) 근로계약설의 입장에서는 근로계약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 된다. 예컨대 전국에 지점을 갖고 있는 은행에 적용된 대학졸업자의 경우 근로계약상의 근무 장소는 본점 및 전국의 모든 지점 또는 영업소이고 처음 배속된 근무 장소만이 아니라고 해석하여야 하고, 이렇게 해석하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배치 전환하는 것은 계약의 사안의 변경이 아니라 단순히 계약의 이행과정에 불과하고 배치전환명령은 단순한 노무지정권 행사로서 사실행위가 된다. 3) 배치전환은 경영포기 또는 공장이전 등의 경우에 해고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행해지는 경우도 많아 정리해고와 관련하여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바, 정리해고의 요건의 충당하기 위하여 정리 해고를 하기 전에 다른 사업장으로 배치 전환할 수 있을 기회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근로자의 구제 부분에 상당한 배려를 한 절충적 견해) (5) 근로기준법 제30조와 배치전환명령의 한계 (가) 근로기준법 제30조 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 유직, 정직, 전직, 면봉 기타 처벌을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직’은 근무 장소의 변경을 수반하는 배치전환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 위 규정은 해고에 대한 일반적, 실체적 제한규정으로서 위 규정에서의 “정당한 이유”는 독일의 해고제한법이 해고의 실체적 제한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의 일신상의 사유, 근로자의 행태상의 사유, 명백한 경영상의 필요성이라는 세 가지 사유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통설이다. (다) 배치전환은 경영상황의 변화에 따라 노동력의 배치를 효율적으로 변경하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이나 성질이 해고 또는 징계와 전혀 다르고, 실체적 제한 개념인 “정당한 이유”를 통일적으로 해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함께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 그 입법 취지는 현실적으로 전근이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 또는 징계에 못지않은 불이행처분이 될 수 있고, 전근을 가장한 징계 또는 전근을 통한 해직의 강요의 예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해고 및 징계의 제한규정이 실효성을 갖게 할 의도에서 전근의 제한을 함께 규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 따라서 배치전환의 근거와 위 규정의 입법취지를 감안하면 배치전환문제에 관하여 다수 견해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1) 먼저 당해 배치전환명령이 근로계약의 범위 내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 범위를 면탈한 것인지의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 2) 다음으로 당해 배치전환명령에 대한 정당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는지 아니면 경영상의 필요성을 포장한 부당한 목적이 있는지의 여부가 검토되어야 한다. 3) 결과적으로 당해 배치전환명령에 대하여 정당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당해 배치 전환명령으로 인하여 근로자 개인이 입게 되는 생활상의 불이익을 형량 하여 후자가 부당히 크다면 신의칙 위반 또는 권리남용이다. 5. 맺는말 법은 자유롭고 대등한 당사자가 계약을 통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제에 서있다. 그러나 경제적 강자인 사용자와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 사이의 고용계약의 현실은 대등한 당사자라고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근로관계 법률을 통하여 많은 강제규정을 두어 근로자의 이익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근로기준법 제3조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최근의 위 하급심 판결을 기화로 앞으로의 판결은 근로기준법 제3조의 입법목적에 좀 더 접근하여 근로자를 사용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판결을 선고하는 전향적인 자세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2005-06-20
물적분할에 있어서의 연대 책임의 배제
I. 사안의 개요 피고 한국전력공사는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관한법률에 따라 그 발전사업부문을 상법 제530조의12의 규정에 의하여 권역별로 6개의 별도 회사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분할하기로 하고, 분할계획서를 작성하여 2001. 3. 16. 정기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에 의한 승인을 얻은 다음 2001. 3. 30. 산업자원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피고의 발전사업부문을 6개의 신설회사로 분할한 사실, 피고는 상법 제530조의9 제2항의 규정에 기하여 위 각 신설회사가 피고의 채무 중에서 출자 받은 재산에 관한 채무만을 승계하여 부담한다는 원칙에 따라 피고의 분할계획서 제6.1.조(총칙)에서 "피고가 도서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국내의 지역에서 영위하고 있는 기존의 발전사업부문에 속하거나 주로 관련되는 일체의 적극재산(재산적 가치 있는 사실관계를 포함한다.)과 소극재산, 본 분할계획이 별도로 명시하는 소극재산 그리고 동 사업에 주로 관련되는 피고의 권리와 의무 일체는 각 신설회사에 이전되며, 이전되는 적극 및 소극재산 기타의 권리의무와 사실관계 일체에 대한 계산은 설립등기일로부터 신설회사가 한 것으로 간주한다."라고 규정하고, 제6.2.1.조(계약의 승계)에서 "종전의 본부, 처, 발전소, 건설소 등 사업소의 장 명의로 체결된 모든 계약, 약속, 합의, 양해각서, 의향서 또는 입찰, 입찰참가제안, 오퍼 등에 관한 피고의 권리?의무는 당해 신설회사가 승계한다."고 규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피고 산하 하동화력본부에 속하는 재산과 권리?의무는 제4신설회사인 소외 한○남부발전 주식회사(이하 '남부발전'이라 한다)가 이를 승계하기로 정하였고, 남부발전은 같은 해 4. 2. 그 설립등기를 마쳤다. II. 판결의 요지 1. 원심 판결 요지 원심 법원은 피고가 하동화력본부에 속하는 모든 재산을 출자하여 남부발전을 신설하였고, "설립되는 회사가 분할되는 회사의 채무 중에서 출자한 재산에 관한 채무만을 부담할 것을 정할 수 있다."라는 상법 제530조의9 제2항의 규정에 따라 그 분할계획서에서 하동화력본부에 속하는 모든 권리?의무는 남부발전이 승계하는 것으로 정하여 상법 제530조의3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쳐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관한법률에서 정한 산업자원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그 분할절차를 완료한 이상, 피고의 원고 하동군 수산업협동조합에 대한 이 사건 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손실보상채무는 분할로 인하여 설립된 신설회사인 남부발전에 이전되었고, 분할되는 회사인 피고는 이제 그 채무를 면하였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 요지 분할되는 회사와 신설회사가 분할 전 회사의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에는 채무자의 책임재산에 변동이 생기게 되어 채권자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채권자의 보호를 위하여 분할되는 회사가 알고 있는 채권자에게 개별적으로 이를 최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분할되는 회사와 신설회사의 채무관계가 분할채무관계로 바뀌는 것은 분할되는 회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채권자에게 개별적인 최고절차를 제대로 거쳤을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만약 그러한 개별적인 최고를 누락한 경우에는 그 채권자에 대하여 분할채무관계의 효력이 발생할 수 없고 원칙으로 돌아가 신설회사와 분할되는 회사가 연대하여 변제할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하면서, 원심으로서는 마땅히 피고가 회사를 분할함에 있어 원고에 대한 개별적인 최고절차를 다하였는지 여부를 가려본 다음에 피고의 회사분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고가 원고에 대한 변제책임을 지는지 여부를 판단하였어야 할 것인데, 이에 이르지 아니한 채 단순히 피고가 회사분할을 하면서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로써 원고에 대한 이 사건 손실보상채무를 피고로부터 남부발전으로 이전하기로 정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피고가 이제 그 채무를 면하였다고 단정하여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회사분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III. 물적 분할과 연대책임 1. 물적 분할시의 존속 회사와 신설회사의 책임 상법 제530조의 9 제1항은 “분할 또는 분할합병으로 인하여 설립되는 회사 또는 존속하는 회사는 분할 또는 분할합병 전의 회사채무에 관하여 연대하여 변제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대법원이 대상 판결에서 적절히 설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상법은 회사가 분할되고 분할되는 회사가 분할 후에도 존속하는 경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사의 책임재산은 분할되는 회사와 신설회사의 소유로 분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분할 전 회사의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분할되는 회사와 신설회사가 분할 전의 회사채무에 관하여 連帶責任을 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있는 바]’, 만일 이러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분할채무를 부담하도록 하면, 회사의 분할이라는 사정으로 인하여 회사의 채권자는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의 이익이 손상되게 되므로, 분할로 인하여 분할회사의 채권자의 이익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와 같이 규정한 것으로 이러한 태도는 독일의 기업재편법 제133조의 규정에 근접한 것이라고 한다.(권기범, 기업구조조정법 [제3판] 삼지원, 395면) 이와 같이 분할당사회사들이 연대책임을 지는 경우에는 회사가 분할되더라도 채권자의 이익을 해할 우려가 없으므로 알고 있는 채권자에 대하여 따로 이를 최고할 필요가 없도록 하고 있다. ‘반면에, 다만 만약 이러한 연대책임의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한다면 회사분할제도의 활용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연대책임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여 신설회사가 분할되는 회사의 채무 중에서 출자 받은 재산에 관한 채무만을 부담할 것을 분할되는 회사의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로써 정할 수 있게 하면서, 그 경우에는 신설회사가 분할되는 회사의 채무 중에서 그 부분의 채무만을 부담하고, 분할되는 회사는 신설회사가 부담하지 아니하는 채무만을 부담하게 하여 채무관계가 분할채무관계로 바뀌도록 규정하였다고 해석[된다.]’고 할 것이다. 2. 분할당사회사들의 연대책임의 배제를 위한 요건 상법 제530조의 9 제2항에서는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분할되는 회사가 제530조의3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결의로 분할에 의하여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에는 설립되는 회사가 분할되는 회사의 채무 중에서 출자한 재산에 관한 채무만을 부담할 것을 정할 수 있다. 이 경우 분할되는 회사가 분할 후에 존속하는 때에는 분할로 인하여 설립되는 회사가 부담하지 아니하는 채무만을 부담한다.’고 하고 있고, 제3항에서는 ‘분할합병의 경우에 분할되는 회사는 제530조의3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결의로 분할합병에 따른 출자를 받는 존립중의 회사가 분할되는 회사의 채무 중에서 출자한 재산에 관한 채무만을 부담할 것을 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제2항 후단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여, 위와 같은 분할당사회사들의 연대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규정에 대하여, 예외를 두고 있다. 이러한 예외는 회사의 분할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신설되는 회사가 종전 분할 전 회사와의 관계에서 채무를 계속 연대책임을 지게 된다면, 분할을 통한 기업의 구조조정을 선택하여야 할 동기를 현저히 떨어뜨리게 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정한 규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상법 제530조의 9 상의 연대 책임 배제 규정의 문제점 앞에서 본 상법 제530조의 9 제2항 및 제3항에 의한 연대책임의 배제는 분할합병계약서나 분할계획서에 분할회사로부터 승계한 채무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뜻을 기재하여 분할승인주주총회의의 결의를 거친 때에는 연대책임이 배제된다는 것으로 만일 본 대상 판결의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이, 상법 제530조의3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쳐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관한법률에서 정한 산업자원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그 분할절차를 완료하기만 하면, 피분할회사는 연대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새기면, 일견 이러한 해석이 법문의 문리해석에는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분할회사의 채권자로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주주들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어서 이러한 결론은 채권자의 재산권이 타인에 의하여 처분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며, 입법자의 의도로 본 연대책임의 배제 규정을 통하여 이와 같은 결론은 도모하려고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만일의 상법 제530조의 9 제4항 내지 530조의 11 제2항에서 상법이 분할합병이나 물적분할의 경우 허용하고 있는 채권자 이의제출권의 적절한 보장을 위한 최고절차 등이 주주총회의 특별결의 외의 또 하나의 요건으로 요구되지 않는다면, 이를 채권자의 이익을 절차보장 없이 박탈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일부 견해는 이러한 제도가 프랑스 상사회사법 제386조 제1항을 본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법리적으로 볼 때 정작 이해당사자인 회사채권자를 배척하고 주주들이 이를 결정한다는 모순은 있으나 어쨌든 실무상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제도라고 하면서, 입법론으로 이때 채권자이의제출의 공고와 개별최고시에 연대책임이 배제된다는 뜻을 기재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상법 제530조의 7의 규정에 의한 분할계획서와 분할합병계약서의 비치 열람제공만으로는 연대책임배제의 공시방법으로서 불충분하므로, 영업양수인의 면책등기처럼 이를 등기에 의하여 공시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권기범, 앞의 책, 401면) IV. 본 판결의 의의 이러한 관점에서 본 대상 판결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가 이루어 졌으므로, 분할채무를 부담하는 것이라고 하는 원심판결에 대하여, 해석론으로 분할되는 회사와 신설회사의 채무관계가 분할채무관계로 바뀌는 것은 분할되는 회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채권자에게 개별적인 최고절차를 제대로 거쳤을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만약 그러한 개별적인 최고를 누락한 경우에는 그 채권자에 대하여 분할채무관계의 효력이 발생할 수 없고 원칙으로 돌아가 신설회사와 분할되는 회사가 연대하여 변제할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하여, 법문의 흠결을 보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따라서,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의하면, 연대책임 원칙에 대한 예외가 인정되어 연대책임을 배제하기 위하여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 외에 분할되는 회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채권자에게 개별적인 최고절차를 거칠 것이 요구되므로, 이를 통하여 채권자들이 자신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적절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여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는 판결이다. 아울러, 향후 상법 개정 과정에서 입법적으로 좀더 명확한 채권자보호절차를 강구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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