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판결의 요지
사건의 내용은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그간 많이 논의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생략한다. 또한 결정의 내용 중 권리침해의 직접성이나 권리보호의 이익 등 요건심사와 관련한 판단에는 이의가 없는 바, 본안판단의 핵심만을 세 가지 논점으로 정리한다.
헌재의 결정은 우선 단순한 국법질서나 헌법체제를 준수하겠다는 취지의 서약을 요구하는 내용의 준법서약은 어떤 구체적이거나 적극적인 내용을 담지 않은 단순한 헌법적 의무의 확인 서약에 불과하고, 따라서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과 관련되지 아니한다는 입장을 전제하고, 이러한 전제 하에 가석방의 수혜를 포기하고 자신의 양심의 자유를 보전할 수 있는 선택의 가능성이 허용되고, 준법서약서의 제출이 처벌 기타 법적 불이익의 부과 등과 연계되어서 강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또한 남북한의 대결상황과 그에 따른 기왕의 법운용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국가보안법 위반 수형자들에 대한 차별취급, 즉 일반적인 가석방심사 방법 외에 ‘국법질서 준수의 확인절차’를 추가하는 것은 정책수단으로서 적합성이 인정되고 또한 차별취급의 목적에 비해 그 수단이 기본권침해를 내용으로 하지 아니하는 ‘국민의 일반적 의무사항의 확인 내지 서약’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차별취급의 비례성이 유지되는 것으로 판단한다. 요컨대, 일반적인 ‘합리성심사’(rational base test)의 결과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는 판단이다.
II. 평 석
1. 개 요
위헌론을 제시한 소수의견에 찬성하는 입장을 전제로 가능한 한 중복을 피하면서 반대의견을 보완 및 심화하는 관점에서 일종의 보충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술한 바와 같이 동 결정에서 핵심적인 논점은 준법서약서제도가 양심의 자유 등 관련 기본권의 보호영역과 관련되고 또한 그에 대한 제한에 해당되는지 여부이다. 헌재는 이를 부인하였지만 준법서약서제도가 아무런 법률의 근거나 법률의 위임이 없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면 헌법 제37조 제2항(기본권제한의 법률유보)과 헌법 제12조 제1항(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됨이 명백한 바, 적어도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과잉금지원칙이나 평등원칙 등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추가로 논할 실익이 없다. 다만 법률에 근거를 둔 제도라는 가정 하에, 실질적인 기본권심사단계에서의 입론(立論)의 출발점과 그에 따라 예견되는 결론의 방향만을 보론으로 간단히 제시한다.
2. 양심의 자유 등의 보호영역 관련성
우선 다수의견은 준법서약서제도가 ‘단순한 헌법적 의무의 확인 서약’에 불과하기 때문에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소수의견이 적시하는 바와 같이 헌재는 이미 헌법 제19조의 ‘양심’에는 개인의 가치적 윤리적 판단과 함께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또한 양심의 자유에는 국가의 개입이 금지되는 양심형성의 ‘내심적 자유’는 물론이고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을 자유’, 즉 ‘양심추지(推知)금지’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우선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서약이 과연 사회주의이념 등의 신념이나 사상과 관련된 ‘어떤 구체적이거나 적극적인 내용’도 담겨있지 아니한 제도인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준법서약제도는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에 규정되어 있던 이른바’전향서제도’의 문제가 장기수의 인권문제와 함께 공론화되면서 규칙개정(1998년 10월 10일 법령 제 467호)을 통해 동 제도를 대신하여 마련된 제도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수형자만을 대상으로 하였던 것을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수형자에게도 확대시킨 장식(粧飾)을 도외시한다면, 개정의 핵심은 사상의 전향에 관한 ‘성명서’ 또는 ‘감상록’이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로 대체된 것이다. 이러한 입법사적 콘텍스트와 인권침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명칭의 변경이나 요구되는 표현의 양식과 내용의 외견상 변화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본질과 성격은 크게 달라진 바 없다고 여겨진다. 구체적으로 어떤 양식으로, 어떤 내용으로 서약하건 적어도 청구인들이 주장하였듯이 해당 수형자들에게는 준법서약서 자체가 사실상 사상의 전향을 강요하는 ‘사상전향각서’로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준법서약서 제출 대상자가 받는 불이익’을 ‘비교적 경미한 것’으로 보는 결정문상 법무부장관의 의견이나 헌법재판소가 ‘준법서약서’를 어떤 취지와 성격의 텍스트로 보는지는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3. 기본권의 ‘제한’ 여부
두 번째로 헌재는 준법서약서가 강제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서약서제출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법적 지위가 불안해지거나 법적 상태가 악화되지 아니하고, 단지 ‘은혜적 조치’인 가석방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을 뿐이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말하자면 제한의 요건의 하나인 강제성 내지는 구속성이 없는, 일종의 행정지도적인 성격의 ‘권고’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선 가석방을 국가의 ‘은혜적 조치’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없지 아니하지만, 어쨌든 가석방의 결정이 재범의 위험성유무 등에 관한 행형기관의 교정정책 또는 형사정책적인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판단에 맡겨져 있는 재량사항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가석방의 결정이 재량판단사항이라는 것과 그 재량의 결과로 주어지는 가석방을 ‘은혜적 조치’로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아무런 연계성이 없다. 그렇다면 헌재의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준법서약서가 재량과정에서 고려되는 여러 가지 판단자료중의 하나에 불과해야만 한다. 즉 가석방결정의 필수적인 절차적 요건으로 요구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동 규칙 제14조제2항은 「국가보안법및집회시위에 관한법률위반 등의 수형자에 대하여는 가석방결정 전에 출소 후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를 제출하게 하여 준법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바,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곧 가석방을 포기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헌재의 견해대로 가석방을 ‘은혜적 조치’로 본다고 할지라도 그 수혜적격을 양심의 판단에 따른 내심의 주의나 신조의 포기와 연계시킨다면, 그것은 바로 헌재가 부인한 바, 즉 “어떠한 가정적 혹은 실제적 상황 하에서 특정의 사유(思惟)를 하거나 특별한 행동을 할 것을 새로이 요구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재범의 가능성 등을 판단기준으로 하는 재량결정에 특정한 법적 제약을 두었다는 점에서, 이른바 ‘사실상의 기본권제한’의 이론을 원용할 필요도 없는 양심의 자유의 제한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른바 사상범과 관련된 가석방의 결정에서 준법서약서에 따른 심사방법이 적용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 즉 사상도 전향하였고 “행형성적이 우수하고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행형법 제 51조 제 1항)고 판단되기 때문에 가석방적격이 인정되는 경우와, ‘수형자의 연령이나 행형성적…재범의 위험성’(행형법 제 51조 제 2항) 등의 관점에서는 가석방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특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붕괴시키려는 세력’으로서의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되지만 사상을 전향하지 아니한 경우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면 기본권침해성 여부와 그 구체적인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 규칙 제14조 제2항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에도 가석방의 결정전에 준법서약서가 제출되어야만 한다. 생각건대 이 경우라면 양심상의 주의 내지는 신념과 법적 요구간의 심각한 갈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석방결정에서 주된 심사기준이 재범의 위험성여부라고 한다면 이러한 상황에서조차도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형사 또는 안보정책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이 인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굳이 생각해 보면 이데올로기 선전 내지는 교육의 수단으로서의 의미와 기능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곧 인간을 객체로 취급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준법서약제도가 문제되는 대부분의 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후자의 경우, 즉 사상을 전향하지는 아니하였지만, 그 외에는 여러 가지 심사사항에 관한 심사결과 재범의 가능성이 없는 등 일반 수형자들의 경우라면 가석방적격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준법서약서를 제출하지 아니하면 가석방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소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준법서약서 한장이 재범의 위험성의 높고 낮음을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자료가 될 수 없다는 문제점을 떠나서도, 어쨌든 이 경우에 당해 수형자의 입장에서는 위선적인 준법서약과 가석방의 포기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에 들게 된다. 외견상 선택의 자유는 주어지지만 이 시험은 사실상 간접적으로 ‘양심’(兩心)을 강제하는 ‘시험’일 수밖에 없다. 헌재는 가석방의 혜택를 포기하면 양심을 유지 보전할 수 있지 않느냐고 강변한다. 그러나 준법서약서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 형식과 내용상 양심과 자유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하건, 선택을 해야하는 수형자들에게 또한 선택을 한 수형자들에게 수인(受忍)기대의 한도를 넘는 번민과 갈등의 고통을 안겨주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위배되는 제도라는 점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자유의 당근과 기약 없이 계속되는 감옥생활의 회초리를 눈앞에 놓고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말(馬)이 되든지 아니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신(神)이 되라는 것을 요구하는 비인간적인 제도이다. 준법서약제도가 적어도 부분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전자의 선택을 하도록 유도 내지는 강요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동 규칙 제14조 제1항에서 수형자의 ‘개전의 정’을 심사할 때에 특히 주의하라고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아첨 기타 위선적 행동’을 오히려 조장 내지는 용인하는 것이고, 이는 바로 적어도 ‘양심의 자유’에 대한 사실상의 제한이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III. 결론 및 보론
결국 준법서약서제도는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적어도 사실상 제한하는 제도일 뿐만 아니라, 그 형식과 내용 자체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위배되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법률의 근거나 법률의 위임이 없이 오로지 법무부령인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만을 근거로 하여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 제37조 제2항 및 헌법 제12조 제1항에 위배됨이 명백하다.
설령 준법서약서제도가 법률의 근거를 가지는 경우라고 가정하여도 과잉금지원칙이나 평등원칙 또는 수인기대가능성 등에 따른 실질적인 기본권심사에서 위헌의 판단을 면하기는 쉽지 아니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기본권심사를 상론할 수는 없고, 다만 기본적인 두 가지 출발점만을 제시한다. 그 하나는 ‘기본권의 초석’으로 불리어지는 양심의 자유와 최고의 국가이념인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정당성의 핵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헌법적 의의와 내용, 특히 ‘관용의 원칙’(Toleranzprinzip)과 ‘애고(愛顧)의 요청’(Wohlwollendesgebot), 기타 비례의 원칙과는 구별되는 하나의 독자적인 헌법해석의 관점(Topos)으로서 ‘수인기대가능성’(Zumutbarkeit)의 원칙 등을 곱씹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체제전복의 ‘세력’이 아니라 단순히 내심의 주의로 남아 있는 반체제 이데올로기의 존재 자체의 안보에 대한 현실적인 위험성의 크기를 현재 우리 사회의 저항력과 자정력의 수준과 연계시켜서 가감 없이 평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내심의 신념과 단순한 말로써 현출되는 한 상당한 정도까지의 반체제 이데올로기의 병원(病源)은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담론의 여과망과 그에 따른 상징과 항체의 자본이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성급한 예단을 해 본다면, 적어도 재범의 위험성 등 일반적인 심사기준에 따르면 가석방적격이 인정된다는 전제 하에, 우선 사상전향을 한 수형자의 경우에는 과잉심사의 관점에서 수단의 적합성이, 전향을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비례성이나 수인기대가능성이, 더 나아가서 두 경우 모두 인간의 존엄성의 침해 등이 문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별심사도 일반적인 ‘합리성심사기준’이 아니라, 이른바 ‘엄격한 심사기준’에 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