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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유류화물의 인도시기
Ⅰ. 사실관계 1. 경유수입계약의 체결 및 신용장의 개설 주식회사 P는 2003년 9월경 싱가포르 소재 무역상 N으로부터 경유 5,600㎘를 수입하기로 하는 내용의 수입계약을 체결하고 수입대금의 지급을 위하여 원고에게 신용장 발행을 신청하였고, 원고는 수익자를 N으로 하는 신용장을 개설하여 주었다. N사는 위 매매계약에 따라 2003. 9.24.경 대만의 마이랴오 항에서 J해운이 운항하는 이 사건 유류 운반선 포천헤베호(Fortune Hebe, 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 함)에 경유 4,678.642메트릭톤(이하 ‘이 사건 화물’)을 선적하고 J해운으로부터 수하인이 도이체 방크 아게 싱가포르(이하 ‘도이체 방크’)가 지시하는 자, 통지처가 P사로 된 선하증권(이하 ‘이 사건 선하증권’)을 발행 받았다. 2. 이 사건 화물의 육상 저장탱크 입고 피고는 온산항에서 액체화물에 대한 보세창고업을 영위하는 회사이며 피고와 P사는 2002. 5.1. 부터 2004. 4.30.까지 온산항 탱크 터미널 내에 위치한 피고의7,000㎘짜리 6기를 전용으로 사용하는 액체화물 저장탱크 사용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P사는 피고의 저장탱크를 사용하여 왔다. 이 사건 화물을 적재한 선박은 약 3일 정도 항해를 한 끝에 2003. 9.27. 온산항에 도착하였으며, 2003. 9.29.경 P사의 요청에 의하여 J해운이 이 사건 화물을 피고 소유의 유류화물 저장탱크(이하 ‘이 사건 탱크’)에 입고하였다. 한편, 이 사건 화물보다 이 사건 선하증권이 양하지에 늦게 도착할 것이 명백하였으므로 2003. 9.26.경 P사는 이 사건 선하증권과 상환함이 없이 이 사건 화물을 P사에게 인도하여 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로 인하여 J해운이 부담하게 되는 채무, 손해 등을 면책시키겠다는 내용의 소위 면책각서(Letter of Indemnity, 이하 ‘면책각서’)를 발행하여 주었으며 J해운은 이의없이 이를 수령하였다. 3. 이 사건 화물의 반출 2003. 9.30.부터 2003. 10.9.까지 사이에 피고가 P사의 요청에 따라 이 사건 선하증권의 원본이나 운송인인 J해운의 화물인도지시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P사에게 이 사건 화물을 모두 반출하여 주었다. 4. 신용장 대금의 지급 N사는 2003년 12월경에 이르러서 이 사건 신용장 기재에 따라 도이체 방크 에게 선적서류 일체를 매도하였고 도이체 방크는 이를 원고에게 송부하였으며 원고는 2003. 12.17. 도이체 방크에게 신용장 대금 1,126,421.32 달러를 지급하고 이 사건 선하증권을 취득하였다. 5.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그런데 P사가 이 사건 화물을 인도 받아가 모두 소비한 뒤 도산하여 버리자 원고는 P사로부터 신용장 대금의 상환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원고는 관련 당사자 중 자력이 있는 피고를 상대로 하여금 447,293,228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2006. 8.경 제기하였다. 이 소송에서 J해운은 원고 승계참가인 겸 보조참가인으로 참가 신청을 하였다. Ⅱ.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2006. 12.15. 선고 2004가합74274 판결) 위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는 보세창고사업자로서 운송인인 J해운으로부터 통관 전의 이 사건 화물을 인도받아 보관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우 피고는 J해운의 인도지시가 있거나 선하증권의 제시되기 이전까지는 이를 보관하는 지위에 있는 것이고 J해운은 피고를 통하여 이 사건 화물에 대한 지배(간접점유)를 계속하는 지위에 있는 것이므로, J해운과 피고의 사이에 이 사건 화물에 관하여 묵시적 임치계약이 성립하며 피고는 J해운이 운송인으로서 선하증권 소지인에게 부담하는 이 사건 화물의 인도의무에 관하여 그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서는 것이다”라고 설시하면서, 대법원 2004. 1.27. 선고 2000다63639 판결, 대법원 2004. 5.14 선고 2001다33918 판결을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1심 판결이 적시한 이 두 대법원 판결은 소위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을 확립시킨 것이다. 위 1심 법원은 계속하여 “따라서 피고는 위 임치계약에 따라 J해운 또는 그가 지정하는 자에게 화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고 J해운의 이행보조자로서 선하증권과 상환하여서 화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으므로, 만약 선하증권을 제출하지 아니하는 실수입자가 화물의 인도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피고는 먼저 운송인인 J해운의 동의를 받거나 화물의 인도를 요구하는 자에게 J해운의 화물인도지시서를 받아 오도록 요구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하면서 피고가 이러한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피고는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피고가 항소를 하였다. 한편 J해운의 승계참가신청에 대하여는 각하를 하였다. 이후 J해운은 보조참가인의 자격으로만 참가를 하였다. Ⅲ. 서울고등법원 판결(2008. 3.27. 선고 2007나11837 판결)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 화물이 피고의 주장과 같이 위 영구호스(필자 주 : 선박측에 고정되어 있는 강관부분으로서 선박 내 탱크와 육상탱크로 가는 고무호스를 연결시키는 부분을 말함) 연결점을 지날 때 또는 늦어도 피고의 저장탱크에 입고된 때 P사에 인도된 것으로 본다면 그 시점에 이미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는 성립하는 것이고, 따라서 인도 후에 이 사건 화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게 되는 피고가 운송인인 J해운의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있지도 아니하며 불법행위 이후 피고가 이를 P사에게 반출하여 주었다고 한들 별도로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고[여기까지가 피고의 주장], 반면 원고 승계참가인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화물이 피고의 저장탱크에서 P사에게 반출되는 시점에서 운송인인 J해운으로부터 P사에게 이 사건 화물이 인도된 것이라고 본다면, 피고는 적어도 운송인인 J해운과 사이의 묵시적인 임치계약에 의하여 이 사건 화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임치인인 J해운의 지시나 선하증권과 상환없이 이 사건 화물을 무권리자에게 인도한 것으로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뒷부분은 원고측의 주장]. 그러므로 이 사건 화물이 언제 운송인의 지배를 떠나 P사의 지배 하에 들어갔는지, 즉 그 인도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지가 이 사건의 쟁점이다”라고 법적 쟁점을 우선 명료하게 정리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그와 같은 정리 아래에서 유류화물 운송의 관행상 인도의 시점이 “화물이 선박의 영구호스 연결점”을 지날 때에 인도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관행, 유류화물과 컨테이너 화물의 보관상의 차이 등 제반요소를 들어 이 사건 화물의 인도는 “영구호스 연결점을 지날 때 또는 늦어도 피고의 저장탱크에 입고된 때”라고 판단한 뒤, 그렇다면 피고가 P사에게 선하증권을 상환함이 없이 이 사건 화물을 반출하여 주었다고 하여도 별도로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하여 불법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즉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원고가 상고를 하였다. Ⅳ. 대법원 판결의 요지 1. 이와 같은 약정에 따라 운송인이 유조선 도착 후 갑판 위의 용구호스 연결점을 통하여 수입업자가 미리 확보한 육상의 저장탱크에 연결된 파이프 라인으로 유류화물을 보낸 경우에, 위 약정에 불구하고 운송인이 수입업자와 별도로 육상의 저장탱크를 관리하는 창고업자에게 수입된 유류화물을 임치하였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없는 한 창고업자는 운송인의 유류화물 운송 내지 보관을 위한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유류화물이 위 영구호스 연결점을 지나는 때에 운송인의 점유를 떠나 창고업자를 통하여 수입업자에게 인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4. 10.15. 선고 2004다2137 판결 참조). 2. 이 경우 그 창고업자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운송인의 유류화물 운송 내지 보관을 위한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인이 창고업자에 대하여 인도하는 때에 수입업자에 대한 인도가 종료되어 운송인은 유류화물에 대한 점유를 비롯한 사실상의 지배를 상실하게 되고, 운송인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유류화물에 대한 점유를 하고 있던 선하증권 소지인 역시 유류화물에 관한 사실상의 지배를 잃게 되는 등 운송물에 대한 권리가 침해된다. 따라서 선하증권 소지인이 유류화물의 인도에 동의하였다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는 이상 운송인은 면책각서의효력을 선하증권 소지인에게 주장할 수 없으므로,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없이 수입업자로부터 위임받은 창고업자에게 유류화물을 인도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 유류화물에 대한 지배를 상실하는 등 운송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하는 손해를 입게 되어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할 것이고, 그 이후 창고업자가 임치물인 유류화물을 수입업자에게 출고하면서 선하증권 등을 교부받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임치인인 수입업자와의 사이에 이루어진 임치 약정에 따른 것이므로 그 사정만으로는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한 새로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3. 대법원은 위와 같은 이유를 설시하면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하며,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Ⅴ. 평석 1. 해상화물의 인도시기 화물의 인도란 화물에 대한 사실상 지배의 이전이다(졸고, 국제항공화물인도와 관련된 법률문제, 한국해법학회지 제22권 제1호263면). 이러한 점은 해상화물이나 항공화물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인도시점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은 세 가지가 주목된다. 첫째, 대법원은 인도 시점과 관련하여 “운송인이 수입업자와 별도로 육상의 저장탱크를 관리하는 창고업자에게 수입된 유류화물을 임치하였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없는 한 창고업자는 운송인의 유류화물 운송 내지 보관을 위한 이행보조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유류화물이 위 영구호스 연결점을 지나는 때에 운송인의 점유를 떠나 창고업자를 통하여 수입업자에게 인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시를 하고 있다. 둘째, 유류화물에 대한 지배와 관련하여 “수입업자로부터 위임받은 창고업자에게 유류화물을 인도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 유류화물에 대한 지배를 상실”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셋째, 창고업자의 불법행위 책임의 성립 가능성에 대하여 “그 이후 [필자 주: 즉, 창고에 인도된 이후] 창고업자가 임치물인 유류화물을 수입업자에게 출고하면서 선하증권 등을 교부받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임치인인 수입업자와의 사이에 이루어진 임치 약정에 따른 것이므로 그 사정만으로는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한 새로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 세 가지의 판시사항은 모두 지극히 타당한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의 사안에 대하여 대법원이 종래 적용하여 오던 소위 “중첩적 임치계약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였다면 보세창고업자인 피고는 운송인인 J해운이나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하여 선하증권을 상환 받고 적법하게 화물을 반출해야 할 계약상 또는 법적인 의무를 지게 되는데, 이를 위반하고 화물을 반출하여 주었으므로 피고는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결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대법원 판결은 피고가 그러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렸는 바, 결론은 물론 위 이유의 측면에서 대법원의 위 판결은 그 이전의 대법원 판결을 광정한 것이라고 본다. 2. 대법원의 판결 이유에서 주목할 판시사항 위 세 가지 판시사항을 가지고 살펴 보면, 첫째의 판시사항은 유류화물에 대하여 인도시기를 화물이 고무 호스를 통하여 육상 탱크로 들어 가기 위하여 선상의 영구호스를 떠나는 순간이라고 판단함으로써 유류화물의 인도시기를 명확히 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보세창고가 수입업자에 의하여 위임을 받았으므로 그 창고로 들어 가게 되면 해상운송인의 점유는 상실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이다. 종래 대법원 판결은 보세창고 설 영인 이 그 화물을 선하증권을 상환하면서 정당하게 인도하는 순간까지 해상운송인은 보세창고 설영인 을 통하여 간접점유를 하는 것이고, 운송인의 화물인도의무는 종료되지 않는 것이라고 이론 구성을 하였었다. 마지막으로 보세창고 설영인 이 임치인의 요청에 따라 화물을 반출한 경우, 비록 선하증권을 상환함이 없이 이를 하였다 하더라도 선하증권의 소지인이나 해상운송인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시한 점이다. 이 사항 역시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그 동안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이 적용된 결과 보세창고 설영인 은 그 동안 선하증권 소지인이나 해상운송인에게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으로 판결이 내려져 왔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내려진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실로 획기적인 전환이다. 3. 중첩적임치계약 이론이 폐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내려진 위 대법원 판결이 종래 적용하여 오던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을 전면적으로 폐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법 형식논리적으로 말한다면 그렇게 단정하기에 이르다. 왜냐하면 이번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도 아니고 마치 대법원의 이 사건 판결이유가 유류화물에 국한하여 적용되는 것과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에 내려진 위 대법원 판결이 종래 적용하여 오던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을 전면적으로 폐지한 것이라고 선언하지 않았어도 앞으로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이 적용될 여지는 없어 졌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은 탄생시부터 문제가 허다하게 많았고, 그로 인하여 왜곡된 판결이 양산되었으며, 왜곡은 또 다른 왜곡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있었는데 졸고, 위 국제항공화물인도와 관련된 법률문제, 263 내지 265면, 졸고, 수입화물의 흐름에 대한 실무적 이해, 국제거래법학회지 제15집 제2호 (2006), 241 내지 244면, 대법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광정할 기회를 기다리다가 위 대법원 판결에 이르러 이러한 중첩적 임치계약이론을 완전히 폐기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2009-10-29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제1항의 위헌여부 심사기준
I. 문제제기 지난 2009년 2월26일 헌법재판소는 차의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 일정한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면 중과실에 의한 중상해사고에 대하여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하 ‘교특법’) 제4조 제1항에 대하여 과거의 합헌결정을 변경하여 위헌으로 결정하였다(결정문 전문은 법률신문 3726호 2009년 3월 2일자 13면 참조). 과거 첫 번째 결정(헌재 1997. 1.16. 90헌마110)에서는 위헌의견이 5인으로 다수였지만 결론적으로는 합헌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지만, 헌법이론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긴 결정이었다. 그 후 종전 판례를 변경하여 이번에 위헌결정이 이루어지자, 무엇이 중과실에 의한 중상해 사고인지에 대하여 명확한 기준을 정립하기 힘들다는 등의 문제점들도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교통안전의식 결여나 인명경시풍조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반기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이번 위헌결정의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헌법적 관점에서 몇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하에서는 쟁점별로 헌법재판소 결정이유의 논거에 있어서 제기되는 헌법적 문제점들을 지적해 보기로 한다. II. 평석 1. 재판절차진술권 침해여부에 대한 심사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교특법 제4조 제1항이 청구인의 재판절차진술권을 과잉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27조 제5항의 재판절차진술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형사피해자에게 보장되는 권리이다. 즉 입법자에 의해서 비로소 구체화되는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다(헌재 1993. 3.11. 92헌마48, 판례집 5-1. 121, 130). 어떠한 기본권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되는 소위 형성유보가 있는 권리인 경우 그에 대한 형성법률이 그 권리를 침해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무엇을 기준으로 심사할 것인가. 이와 같은 경우에는 그 기본권의 인정여부가 법률의 규정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므로, 만일 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해당 기본권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 자가 그 기본권을 침해당했는지 여부가 문제된 경우에는 일단 그 개인의 기본권의 침해여부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법률이 그 기본권의 인정여부를 어떠한 근거와 기준으로 하여 유형화하였는지, 그 유형화 자체에 명백한 잘못은 없었는지의 기준에 입각하여 심사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헌법에 의하여 기본권의 구체화 위임을 받은 입법자가 일정한 집단에 대하여 그 기본권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모든 사례에서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으로 위헌의 결론이 날 수 있으며, 이는 헌법이 기본권의 구체화를 입법자에게 일임한 헌법적 취지에 위반될 수 있다. 그리고 기본권의 구체화와 관련해서는 기본권의 주체, 보호영역, 행사방법 등에 대하여 입법자가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주체, 즉 인적 적용범위와 관련해서는 늘 배제되는 집단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어떠한 한 개인이 적용범위에서 배제된 것 자체만 가지고서 과잉금지위반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보호영역과 관련해서는 입법자가 보호하고자 하는 생활영역의 범위가 명백하게 유명무실하여 거의 실질 내용이 없는 정도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 보호영역과 관련하여 쉽게 위헌의 결론을 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행사방법 역시 기본권의 행사를 위한 절차와 방법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많은 비용이 요구되어, 기본권행사가 사실상 차단 내지는 폐쇄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본권행사방법에 대한 입법자의 결정이 위헌이라고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심사기준을 적용해 본다면, 일부 중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로 중상해의 피해를 당한 자의 경우 가해운전자에 대하여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형사재판절차가 개시될 수 없고, 따라서 형사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입법자가 교통사고과실범의 처벌기준을 유형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고, 정형화된 공소권면제의 예외사유(10가지)에 의한 교통사고피해자의 경우는 여전히 재판절차진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을 고려할 때, 입법자가 명백하게 재판절차진술권이라고 하는 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하였거나 형해화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재판절차진술권의 구체화의 책임을 진 입법자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하여 명백하게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2. 평등권 침해 여부에 대한 심사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결정에서 평등원칙 위반여부의 심사 역시 다른 기본권(재판절차진술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엄격한 심사기준을 택하고 있고, 평등권침해로 결론을 짓고 있다. 필자는 이 경우에 엄격심사기준이 아니라 오히려 완화된 심사기준을 선택했어야 한다고 보며, 이러한 잘못된 적용은 궁극적으로는 제대군인가산점결정 이래 평등원칙 위반여부의 심사기준 적용을 위한 전제를 잘못 정립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헌법재판소는 제대군인가산점 결정에서 헌법이 특별히 평등을 명하는 경우와 차별로 인하여 다른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초래될 수 있는 경우에는 비례의 원칙에 입각한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 판례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소위 ‘새로운 공식’을 불완전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엄격심사기준의 요건을 매우 불확실하게 하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제시하고 있는 평등원칙위반여부의 심사에 있어서 엄격심사기준과 완화된 심사기준의 적용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표지는 ‘인적 집단에 대한 차별’인가 아니면 ‘사항적 차별’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인종, 피부색, 고향, 언어, 출신 등과 같이 헌법이 특별히 평등취급을 명하고 있는 표지들은 천부적으로 사람이 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그것을 이유로 한 차별은 거의 인간존엄에 대한 침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사유들을 근거로 한 인적 집단에 대한 차별은 금지되고 따라서 엄격심사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사항에 관하여 입법자가 유형화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별의 경우에는 자의금지에 입각한 완화된 심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새로운 공식의 핵심인데, 우리 헌법재판소는 그 가운데 ‘헌법이 특별히 평등취급을 명하는 경우’라는 요건만을 따왔을 뿐 ‘인적 차별’인지 아니면 ‘사항적 차별’인지의 구분기준은 간과하고 만 것이다. 다음으로 어떠한 차별이든지 다른 기본권에 대한 제한을 수반하지 않는 차별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평등권제한 사례는 동시에 다른 기본권제한을 동반하므로, 결국 그 기본권의 제한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평등위반여부의 심사에 있어서도 엄격심사기준을 사용하여야 한다. 이로 인하여 평등원칙심사의 독자성은 상실될 수 밖에 없고, 그 결론은 다른 기본권의 침해여부의 결론에 좌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돌아와서 살펴보건대, 공소권면제의 예외사유를 입법자가 유형화하여 구분하고 그러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와 해당되는 경우를 구분하여 공소제기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처음부터 인적 집단에 대한 차별이라고 하기 보다는 사항적 차별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차별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입법자에게 넓은 형성의 자유가 인정될 수 있으며, 위헌여부의 심사도 자의금지를 기준으로 한 완화된 심사기준을 택했어야 마땅하다. 또한 재판절차진술권은 전술한 바와 같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그 배제 자체가 곧 생명·신체에 대한 침해 정도의 중대한 법익침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차별로 인하여 중대한 기본권의 제한이 초래된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완화된 심사가 타당하다. 헌법재판소는 생명과 신체라고 하는 법익과 관련된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관점을 간과한 채 곧바로 엄격심사기준을 택한 것으로 보이나, 심사기준을 택함에 있어서는 단순히 법익의 중요성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헌법이 입법자에게 형성권을 부여하였는지 여부, 입법자의 결정으로 인하여 구체적으로 법익이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이나 정도 등을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신중하게 고려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이 사건에서는 완화된 심사기준을 택하는 것이 타당했다고 보며, 입법자가 명백히 자의적으로 평등원칙에 위반되는 결정을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3.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의 심사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와 관련하여 첫 번째 합헌결정에서와 마찬가지로 과소보호금지원칙에 입각한 완화된 심사를 택한 후, 이 사건 법률조항이 기본권보호의무에는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심사기준의 적용은 타당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 쟁점이 바로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의 문제였다는 점이다. 이 사건과 같은 교통사고의 경우 국가가 아니라, 가해운전자의 피해자에 대한 생명·신체의 법익침해가 문제되는 것이므로 국가가 이러한 가해자의 침해나 침해의 위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의 기본권보호의무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에 대하여 가장 중심적으로 심사하고, 나머지 재판절차진술권이나 평등권침해여부는 오히려 부차적으로 다루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 내지 재판절차진술권의 행사 자체는 자신의 건강회복이나 피해배상에 아무런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아니한 운전자의 중과실에 의한 중상해 사고의 경우, 피해자가 재판절차진술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보험금 등에 의한 피해배상 등을 받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건강회복 등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종합보험가입을 유도하여 가능한 한 교통사고를 민사배상의 문제로 전환하여 피해배상 등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의 생명이나 건강의 보호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III. 결론 생명과 신체에 대한 사전적 보호의 문제는 형벌을 통한 일반예방적 효과는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법적·제도적 장치와 도로교통환경의 개선 및 교통안전행정의 강화와 국민계도 등 형벌외적 측면의 많은 가능한 수단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노력들을 국가가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거나 명백하게 불완전·불충분하게 이행했다고 볼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면 헌법재판소 역시 인정하고 있듯이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은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인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여부를 심사함에 있어서도 구체적 청구인의 ‘안타까운’ 사정에만 치중하여 형성유보가 있는 기본권의 특성과 상관 없이 엄격심사기준을 동원하여 재판절차진술권과 평등권침해의 결론에 이를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쟁점인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에 대한 결론에 의거하여, 종합적으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합헌으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였을 것이다. 만일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바와 같이 교특법의 입법목적(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중과실에 의한 중상해사고 유형을 공소권면제의 예외사유에 추가하는 경우 이러한 입법목적의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입법자는 교특법 제3조 제2항의 단서에 ‘어린이보호구역 내 주의의무 위반’(2007. 12.21 법률 제8718호 시행일 2009. 12.22)을 추가함으로써 나름대로 입법보완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노력들을 감안하되, 특례규정의 도입과 사고율간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입법자가 객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관찰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후, 그 결과에 따라서 입법적으로 상응하는 보완조치를 하도록 명하는 완곡한 경고결정을 내리는 것도 바람직하였다고 생각된다.
2009-03-26
상업(商業)어음할인(割引)의 법률관계
1. 서언 상업어음은 상거래가 원인이 되어 거래상 대금결제를 위하여 발행 또는 교부된 어음을 말한다. 그래서 상업어음을 상거래에 수반하여 발행된 어음이라는 의미에서 진정어음 또는 진성어음이라고 한다. 반면에 실제 상거래 없이 오직 자금융통의 목적을 위하여 발행된 어음을 융통어음이라고 한다. 융통어음은 상거래 없이 발행된 어음이므로 남발되기 쉽고 따라서 부도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은행이 상업어음의 할인을 통하여 기업에게 단기금융을 제공하는 것은 은행의 중요한 업무이고, 또 은행은 한국은행에서 이 할인어음에 대하여 재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은행은 상업어음할인 과정에서 할인의뢰인 또는 어음발행인의 신용이 부족할 경우 물적 담보의 제공이나 연대보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대보증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공적 기관이 바로 신용보증기금이다. 다만 신용보증기금은 은행의 상업어음할인의 경우에 한하여 유효한 보증을 제공하고 융통어음의 경우에는 보증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할인은행과의 보증계약서에서 특약을 맺고 있다. 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특약과 관련한 할인은행의 주의의무에 대하여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다. 2. 사실관계 가. 사실관계 (1) 피고 1 주식회사(어음할인 의뢰인겸 신용보증 의뢰인)는 2002년 5월15일 보증원금 1억 6,000만원, 보증기한 2003년 5월14일까지로 정하여 원고(신용보증기금)와 신용보증약정을 체결하고(이 사건 신용보증약정) 피고 2, 4는 위 신용보증약정에 기하여 피고 1이 원고에게 부담하는 구상금채무에 연대보증하였다. (2)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의 내용은, 원고가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에 따라 보증채무를 이행한 때에는 피고 1은 원고에게 그 대위변제 금액과 이에 대하여 원고가 정한 지연손해금, 위약금, 구상채권의 행사 또는 보전에 지출된 법적절차 비용을 지급하는 것 등이다. (3) 피고 1은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에 의한 신용보증서를 보조참가인(할인은행)에게 제출하고 보조참가인과 2억원을 한도로 한 어음할인 대출약정을 체결한 후, 피고 5 주식회사가 발행한 액면금 9,850만원, 지급기일 2003년 3월5일로 된 약속어음(이 사건 약속어음)에 배서하여 이를 보조참가인에게 교부하고 대출금(어음할인금)을 지급받았다. (4) 보조참가인은 그 후 이 사건 약속어음의 지급기일에 그 지급을 위한 제시를 하였으나 어음금의 지급이 거절되자, 원고에게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하였고, 이에 원고는 2003년 10월23일 대출원금 78,800,000원과 이자 금 3,756,493원을 합한 금 82,556,493원을 보조참가인에게 대위변제하고 보조참가인으로부터 이 사건 약속어음을 교부받았다. (5) 원고가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을 체결하고 보조참가인 앞으로 발행한 신용보증서에 특약 제2항으로 “본 보증서는 사업자등록증을 교부받은 업체 간에 당해 업체의 사업목적에 부합되고 경상적 영업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재화 및 용역거래에 수반하여 발행된 상업어음(세금계산서가 첨부된) 할인에 대하여 보증책임을 부담합니다”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6) 피고 2는 2002년 12월5일 그 소유인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같은 일자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하여 피고 3 앞으로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를 해 주었다. 나. 당사자의 주장 원고는, 피고 2, 4는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의 연대보증인들로서, 원고가 보조참가인에게 대위변제한 금 82,556,493원과 위약금 260,570원, 법적절차비용 금 970,940원을 합한 금 83,788,003원 및 그 중 위 대위변제금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연대하여 원고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 2, 4는, 원고는 상업어음의 할인에 대하여서만 보조참가인에 대하여 보증책임을 부담하기로 하였는데, 이 사건 약속어음은 융통어음이므로 원고는 위 어음에 관한 어음할인 대출금에 대하여 보증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원고가 보조참가인에게 그 대출금을 임의로 대위변제하였더라도 피고 2, 4에 대하여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에 따른 구상청구를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3. 쟁점과 법원의 판단 이 사건의 경우 신용보증기금이 상업어음 할인대출을 대상으로 하는 신용보증을 하였는데, 금융기관이 할인한 어음이 사후에 상업어음이 아니라 융통어음인 것으로 판명된 경우 그래도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가 이 사건 주된 쟁점이다. 가. 항소심의 판단 위 신용보증서 특약 제2항은 그 문언상 보증책임을 부담하는 주채무의 내용을 한정하는 취지로 되어 있고, 달리 대출 금융기관인 보조참가인이 보증채무의 성립 후에 취하여야 할 조치나 의무에 관한 것이 아니며, 보조참가인의 입장에서 이 사건 특약을 준수하기 위하여 상업어음인지를 확인할 필요성은 주채무인 대출채무의 성립 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일 뿐이지 그 성립 후에 어떠한 조치나 의무의 이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이 사건 특약은 보조참가인이 이 사건 신용보증에 기하여 어음할인 대출을 한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니라면 그 대출채무는 이 사건 신용보증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그 대출채무에 관하여는 신용보증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라고 봄이 상당하므로, 어음할인 대출을 한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닌 이상 원고는 위 특약에 기하여 보증책임을 부담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대출 금융기관인 보조참가인이 신용보증에 기하여 어음할인 대출을 할 당시 어음이 상업어음인지 여부에 관한 조사에 있어서 주의의무 위반이 없었다고 하여 원고가 보증책임을 부담하게 된다고 볼 수 없다. 나. 대법원의 판단 신용보증기금이 발급한 신용보증서에 신용보증 대상이 되는 ‘대출과목’이 ‘할인어음’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한편, “본 보증서는 사업자등록증을 교부받은 업체 간에 당해 업체의 사업목적에 부합되고 경상적 영업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재화 및 용역거래에 수반하여 발행된 상업어음(세금계산서가 첨부된)의 할인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는 내용의 특약사항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 신용보증서에 기재된 대출과목과 특약사항의 내용, 신용보증기금의 설립 취지, 신용보증이 이루어지는 동기와 경위, 신용보증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신용보증에 의하여 인수되는 위험 및 상업어음 할인대출 절차의 엄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위 신용보증서의 상업어음할인 특약에 의해 신용보증을 한 당사자의 의사는 금융기관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다하여 정상적인 업무처리절차에 의해 상업어음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상업어음할인의 방식으로 실시한 대출에 대하여 신용보증책임을 진다는 취지로 해석함이 합리적이고, 따라서 금융기관이 상업어음으로서 할인한 어음이 사후에 상업어음이 아님이 드러났다 하여도 그 할인에 의한 대출과정에서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다하였다면 그에 대하여는 신용보증기금이 신용보증책임을 부담한다. 금융기관이 이 사건과 같은 상업어음할인 특약이 있는 신용보증서에 기하여 할인을 한 어음이 사후에 상업어음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경우 그 어음할인 대출채무에 대하여는 신용보증관계가 성립되지 아니하고, 금융기관이 어음할인대출을 할 당시 할인 대상 어음이 상업어음인지 여부에 관하여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의의무 위반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신용보증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2001년 11월9일 선고 2000다23952 판결, 대법원 2002년 1월22일 선고 2001다57983 판결, 대법원 2003년 2월11일 선고 2002다55953 판결, 대법원 2003년 10월10일 선고 2003다38108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4. 결어 기존 대법원 판례 위 2003다38108 판결 등은 “이 사건 신용보증조건에 관한 특약은 그 문언상 보증책임을 부담하는 주채무의 내용을 한정하는 취지로 되어 있고 달리 대출 금융기관이 보증채무의 성립 후에 취하여야 할 조치나 의무에 관한 것은 아니며, 대출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이 사건 특약을 준수하기 위하여 상업어음인지를 확인할 필요성은 주채무인 대출채무의 성립 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일 뿐이지 그 성립 후에 어떠한 조치나 의무의 이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이 사건 특약은 대출 금융기관이 이 사건 신용보증에 기하여 어음할인대출을 한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니라면 그 대출채무는 이 사건 신용보증의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그 대출채무에 관하여는 신용보증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 사실심 판결은 이러한 기존 판례의 취지에 맞춰 할인은행이 상업어음이 아닌 융통어음을 할인한 경우에는 그 은행이 할인해 준 어음이 상업어음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신용보증기금은 신용보증서 특약 제2항에 의하여 신용보증책임은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판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할인은행이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여 정상적인 업무처리절차에 의하여 상업어음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상업어음할인의 방식으로 실행한 대출에 대하여는 신용보증책임을 부담하여야 하고, 가령 할인은행이 상업어음으로 할인한 어음이 사후에 상업어음이 아니라 융통어음임이 드러났다고 해도 그 할인과정에서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였다면 그에 대하여 신용보증기금이 신용보증책임을 진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위 특약은 할인은행에 대하여 사실상 무과실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채무자의 책임은 과실책임이 원칙이고, 이 사건의 경우 신용보증기금이 할인은행에 대하여 무과실책임을 부담시킬 하등의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다. 특히 신용보증기금이나 할인은행 모두 금융기관으로 신용보증기금 역시 신용보증기금법에 의하여 할인 의뢰인의 신용상태·경영상태·사업전망 등을 공정·성실하게 조사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모든 책임을 할인은행에 일방적으로 전가시키는 점에서 위 특약은 그 타당성이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다. 신용보증기금은 일종의 공공기관으로서 우월적 지위에서 부당한 특약을 할인은행에 강요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소수의견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타당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2009-01-01
미용성형수술에 있어서의 시술의사의 주의의무
1. 사안의 개요 이 사건 피해자는 2004년 11월 15일경 피고인1 의사로부터 안면 주름 및 오른쪽 볼부위 볼거리 흉터 제거수술 등을 시행받은 뒤, 익일에 전날 성형수술시 묶어놓은 안면부 혈관이 풀려 혈종이 발생하여 얼굴이 부은 상태가 발생하게 되어 재내원했고, 이에 피고인1은 전날 성형수술 당시 절개한 부위를 다시 절개하고 혈종을 제거한 뒤 봉합했으나, 이후에도 피해자가 이상증상을 계속 호소하여 같은 달 19일과 21일 계속하여 절개부위를 다시 절개해서 혈종을 제거하거나 상태를 들여다 본 다음 다시 봉합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같은 달 19일의 1차 봉합수술이후 피고인1은 상피고인이 피해자가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전원 요구에 응하지 않고 간호사도 배치되어 있지 않은 입원실에 피해자를 입원시키는 조치를 하는 등 피해자와 대치하다가 결국 같은 달 22경 피해자측의 강력한 요구에 못이겨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피해자는 안면 오른쪽 귀 근처 수술부위의 창상이 벌어진 채 부종 및 감염상태가 매우 심각한 상태의 상해를 입었던 사안이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들이 업무상과실치상 외에 의료법위반,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부정의료업자), 위증교사·위증 등 여러가지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문제되었고, 대법원에서는 피고인1에 대한 초진기록 미송부에 의한 의료법 위반의 공소사실을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부분은 파기했으나, 업무상과실치상 등 나머지 부분에 대하여는 원심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2. 판결요지 대법원은 이 건에서 업무상 과실치상의 점과 관련하여 “의사가 진찰·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할 때는 사람의 생명·신체·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하고,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하거나 그러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신속히 전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고 하여 일반적인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사의 주의의무를 설시하는 한편, “특히 미용성형을 시술하는 의사로서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에 입각하여 시술 여부, 시술의 시기, 방법, 범위 등을 충분히 검토한 후 그 미용성형 시술의 의뢰자에게 생리적, 기능적 장해가 남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뿐 아니라, 회복이 어려운 후유증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경우 그 미용성형 시술을 거부 내지는 중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해 별도로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하여 논한 뒤, “이 사건에서 피해자를 상대로 피고인1이 시행한 안면 주름 및 오른쪽 볼 부분 볼거리 흉터 제거수술의 목적과 방법, 위 피고인의 위 수술에 대한 지식의 정도와 시술경험, 위 수술 이후 피해자의 상태 변화, 피해자의 증상이 악화된 이후 피해자를 ○○병원에 이송할 때까지 위 피고인이 취한 조치의 내용 등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비록 위 수술로 인한 부작용을 확대시키는 데 있어서 피해자의 과실이 있음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은 미용성형 시술을 하는 의사로서 요구되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가 위와 같은 성형수술 이후 그 회복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수인해야 하는 범위를 초과하여 생리적·기능적 장해를 입게 되었다고 보이므로,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에 대한 판시 업무상과실치상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옳다”고 판시했다. 3. 문제의 제기 이 사건 대법원판결은 미용성형의 경우 요구되는 의사의 주의의무가 의사의 일반적인 주의의무와 비교해 볼 때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에 관한 형사적 관점에서 판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판시 내역에 주목하면서 일반적 의료행위에 관한 의사의 주의의무를 살펴본 뒤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가 어떠한 점에서 차별화되는지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4. 일반적 의료행위에 관한 의사의 주의의무 대법원은 일반적 의료행위에 관한 의사의 주의의무에 관해 ‘의료과오사건에 있어서의 의사의 과실은 일반의 의사가 그 당시 의학상 일반적으로 인정된 지식과 기술에 의해서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발생을 회피하지 못한 과실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여 의사가 행하는 의료행위의 경우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관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불법행위에서 보다는 한층 더 높은 주의의무 또는 최선의 주의의무가 요구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84. 6. 12. 선고 82도3199 판결). 한편, 이러한 일반적인 의료행위에 있어 ‘의사가 기울여야 할 주의의무를 다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기준으로는 추상적이고 애매한 경우가 많으므로 의료행위가 행해지는 주변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법원도 수차례 “의사의 진찰·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사람의 생명겱택펯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고, 의사의 이와 같은 주의의무는 의료행위를 할 당시 의료기관 등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삼되, 그 의료수준은 통상의 의사에게 의료행위 당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또 시인되고 있는 이른바 의학상식을 뜻하므로 진료환경 및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되어야 하며, 또한 진단은 문진·사진 ·촉진·청진 및 각종 임상검사 등의 결과에 터 잡아 질병 여부를 감별하고 그 종류, 성질 및 진행 정도 등을 밝혀내는 임상의학의 출발점으로서 이에 따라 치료법이 선택되는 중요한 의료행위이므로, 진단상의 과실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과정에 있어서 비록 완전무결한 임상진단의 실시는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진단 수준의 범위 내에서 그 의사가 전문직업인으로서 요구되는 의료상의 윤리와 의학지식 및 경험에 터 잡아 신중히 환자를 진찰하고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위험한 결과 발생을 예견하고 그 결과 발생을 회피하는 데에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한다”고 하여 의료과실의 구체적 판단규준에 관해 제시해 왔다(대법원 1987. 1. 20. 선고 86다카1496 판결, 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다20755 판결, 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다33875 판결 등 참조). 5. 미용성형수술 시행 의사의 주의의무 미용성형수술의 경우 피시술자가 정상적인 외관과 기능을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피시술자의 개인적인 심미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되는 것이므로 의학적 적응성과 치료의 긴급성이 질병과 상해에 대한 치료가 주목적인 일반적인 의료영역과는 차별화되고 있다. 또한 미용성형수술의 경우 영리적 목적이 강하고, 적극적으로 행해지는 의료광고를 통해 피시술자가 수술시행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시술 전에 의사와 피시술자 사이에 구체적 결과에 대한 상호협의 후에 이루어지는 등 도급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일반적 의료행위에 있어서 요구되는 것과는 다른 고도의 주의의무가 부과될 필요성이 있다. 대법원 역시 위 판시내역과 같이 미용성형 수술을 시행하는 의사에 대해 보다 엄격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듯 하다. 즉, 미용성형수술의 경우 첫째, 의학적 필요성이 적고 긴급성이 없기 때문에 시술자인 의사로서는 피시술자의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불만감과 피시술자가 원하는 구체적 결과에 관해 충분히 경청한 뒤 현대 임상의학의 발달수준에 맞추어 피시술자가 원하고자 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해 숙고해야하고, 둘째, 피시술자의 특이체질 등에 관하여 면밀한 검사를 거친 뒤 시술 여부 및 시술방법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셋째, 만약 피시술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거나 미용성형수술로 인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사료되는 경우 시술을 중단해야 할 의무까지 부과하고 있고, 넷째, 미용성형수술을 시행하는 의사가 시술을 시행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때 향후 미용성형수술로 남을 수도 있는 피시술자의 생리적·기능적 장해에 관한 예견가능성도 확대되며, 다섯째, 수술 후 피시술자에게 위 장해가 남지 않도록 피시술자가 알아야 할 대처에 관한 요양방법의 지도의무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가 일반 의료행위 시술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와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반론도 있으나, 일반 의료행위의 경우 의학적 적응성과 치료의 긴급성이 있을 경우에는 그 의료행위로 인해 생명에 위험이 야기되는 경우에도 구명(救命)의 가능성이 있다면 시술을 중단해서는 안 되고 시행해야 하며, 또 그 의료행위로 인해 사전에 예상되는 후유증이나 수술자국 등 장해가 남는다고 하더라도 그 의료행위가 추구하는 구명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이를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지칭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보여진다. 6. 이 사건 판례의 검토 및 결론 미용성형을 시술하는 의사가 지녀야할 주의의무에 대해서는 일찍이 민사판결인 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다59304판결에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적시한 법리가 판시된 바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는 그러한 민사상 적시되어 온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를 형사상의 미용성형수술 의사의 주의의무를 판단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명시화한 것으로 보인다.
2008-06-16
창고업자의 책임
1. 사건의 내용 피고 A선박은 운송인인 B와 주식회사 C가 일본의 D주식회사로부터 수입하는 러시아산 화이트 우드 원목 16,669개(‘이 사건 화물’)의 인도 및 선하증권 회수 등의 업무 수행을 내용으로 하는 선박대리점 계약을 체결한 선박대리점이다. 피고 E해운은 피고 A선박으로부터 같은 업무를 위임받은 회사이다. 이 사건 화물은 마산항에 도착 후 선하증권과 상환됨이 없이 화주인 C의 의뢰를 받은 하역회사에 의해 하역돼 관세법상 지정장치장인 마산항 월영부두 야적장(‘이 사건 지정장치장’)에 반입됐다. 이 사건 지정장치장의 화물관리인인 피고 하역협회는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F은행)나 운송인의 마산항 선박대리점인 피고 E해운에게 알리지 않은 채 화물에 대한 통관절차만 마치고 선하증권은 아직 회수하지 못한 C에게 위 화물을 전부 반출해 주었다. 선하증권의 소지인인 원고는 선박대리점인 피고 A선박, 그로부터 업무 위임을 받은 피고 E해운 및 이 사건 지정장치장의 화물관리인인 피고 하역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 대법원의 판결 선하증권의 상환없이 이 사건 화물이 지정장치장에 반입된 이상 운송인 B 등과 피고 하역협회와 사이에는 화물에 관한 묵시적인 임치계약관계가 성립되었다. 따라서 피고 하역협회는 운송인인 B 등을 위하여 위 화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피고 하역협회가 선하증권이나 화물인도지시서와 상환함이 없이 선하증권상의 통지처에 불과한 C에게 화물을 인도함으로써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반면에 피고 A선박이나 피고 E해운은 B의 선박대리점으로서 이 사건 지정장치장에 화물이 반입된 후에도 피고 하역협회를 통하여 이 사건 화물을 계속 지배하고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화물이 이 사건 지정장치장으로 반입되는 것을 용인·방치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 A선박이나 피고 E해운에게 선박대리점으로서의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 (부산고판 2003.8.1. 2002나9509)은 (1) 이 사건 지정장치장의 화물관리인인 피고 하역협회는 통관절차를 마친 C의 화물 반출을 저지할 권한이나 의무가 없으므로 C에게 화물을 반출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수 없다. (2) 오히려 선박대리점인 피고 A선박과 피고 E해운은 선하증권도 소지하지 않은 C가 화물을 하역해 이 사건 지정장치장에 반입하는 것을 용인·방치함으로써 그 무렵 그 화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가지게 된 C가 이를 반출하는 것을 막지 못했으므로 이로 인해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원심판결은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의 법적 지위나 화물의 인도 시기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 3. 평 석 가. 창고업자 및 선박대리점의 책임 해상운송화물을 하역하여 보관하는 창고는 지정장치장과 보세장치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정장치장은 관세법상 세관장이 지정하는 지정보세구역에, 보세장치장은 세관장의 특허를 받은 특허보세구역에 해당되고 그 설치 절차나 장치 기간 등도 상이하여 관세행정상으로는 서로 구별되는 장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정장치장과 보세장치장은 모두 통관을 위해 물품을 장치하는 장소로서 관세법상 화물의 반입·반출절차가 다르지 않다. 또 운송인이나 선박대리점의 입항 및 하선신고에 의하여 화물이 장치될 보세구역이 특정되는 등 해상운송화물의 보세구역 반입에 관한 관행과 지정장치장과 보세장치장의 실질적 기능 및 운영 실태를 고려하면, 해상화물운송에 관한 법률관계에서 지정장치장과 보세장치장의 법적 지위나 법률적 성질이 다르지 않다. 선하증권이 발행된 화물의 해상운송에 있어 운송인이나 선박대리점은 선하증권과 상환하여 화물을 인도함으로써 그 의무의 이행을 다하는 것이다. 선하증권상의 통지처에 불과한 하역회사가 화물을 양하하여 통관을 위해 지정장치장에 입고시켰다면, 운송인 등은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을 통하여 화물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으로서도 운송인 등으로부터 점유를 이전받은 것이므로, 결국 운송인 등과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 사이에는 화물에 관하여 묵시적인 임치계약관계가 성립한다. 따라서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은 운송인 등의 지시에 따라서 임치물을 인도할 의무를 진다(대판 2004. 5. 14. 2001다33918). 즉 보세창고업자가 운송인으로부터 수입화물을 인도받아 보관하는 경우, 운송인 등의 입장에서는 수입화물을 보세창고업자에게 인도하는 것만으로 화물이 운송인 등의 지배를 떠나 수하인에게 인도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보세창고업자를 통하여 수입화물에 대한 지배(간접점유)를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보세창고업자의 입장에서도 운송인 등으로부터 수입화물의 점유를 이전받는 바, 결국 묵시적으로 운송인 등이 보세창고업자에게 수입화물의 보관을 의뢰하는 임치라는 점유매개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보세창고업자가 운송인의 지시가 없는 한 수입업자에게 운송물을 인도하지 않아야 할 의무는 운송인의 주의촉구나 그러한 내용의 약정에 의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임치계약에 의하여 수치인인 창고업자에게 부과된 자기의 고유한 의무이다. 따라서 운송인의 국내대리점이 선하증권을 포함한 운송서류를 전혀 실수입업자나 수하인에게조차 교부하지 않았는데 화물이 무단반출된다는 것은 정상적인 업무처리방식에서 현저히 벗어난 것으로서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와 같은 불법적인 경우까지 운송인의 대리점이 모두 예상하고 창고업자에게 주의를 촉구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나. 대법원 판결의 평가 해상운송화물은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선하증권과 상환으로 인도되어야 하고 선하증권 없이 화물이 적법하게 반출될 수는 없다. 그리고 선하증권을 제출하지 못하여 운송인 등으로부터 화물인도지시서를 발급받지 못한 화주에게 화물을 인도하면 그 화물이 무단 반출되어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화물을 인도받지 못하게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따라서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이 화물인도지시서나 운송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화물을 인도하여 그 화물이 무단으로 반출되었다면 그로 인해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사안에서, 운송인인 B 등을 위하여 화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는 피고 하역협회는 선하증권이나 화물인도지시서와 상환함이 없이 선하증권상의 통지처에 불과한 C에게 화물을 인도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소지인인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으므로 피고 하역협회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 운송인으로부터 화물의 인도 업무를 위임받은 선박대리점이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화물을 인도한 경우에는 그 선박대리점이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본 사안과 같이 화주의 의뢰를 받은 하역회사가 화물을 양하하여 통관을 위해 지정장치장에 입고시킨 경우에는 선박대리점이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을 통하여 화물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박대리점이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화물을 인도하였다거나 화물을 무단반출의 위험이 현저한 장소에 보관시킨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그 후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이 보관중이던 화물을 화주에게 무단 반출함으로써 화물이 멸실되었다고 하더라도 선박대리점의 중대한 과실에 의하여 선하증권 소지인의 운송물에 대한 소유권이 침해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본 사안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화물이 이 사건 지정장치장으로 반입되는 것을 용인·방치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 A선박이나 피고 E해운에게 선박대리점으로서의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본 건 대법원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불법행위의 당사자인 창고업자(피고 하역협회)에게 책임이 있고 선박대리점은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재확인한 것으로서 타당한 판결이며, 원심판결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2007-08-09
항공운송에서 책임제한 배제사유
1. 사건의 내용 보잉 747-2B5F 항공기(이하 ‘항공기’)는 서울 김포공항에서 타슈켄트를 경유해서 영국 스텐스테드 공항으로 비행한 후 밀란공항과 타슈켄트를 경유해서 서울에 돌아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항공기는 1999년 12월22일 오전 타슈켄트를 출발하여 같은 날 15시경 스텐스테드에 도착였는데, 스텐스테드 도착 전 ADI(항공기 위치, 진행방향, 속도, 고도에 관한 정보 제공장치)에 하자가 발견되어 스텐스테드에서 정비를 하고 밀란공항으로 출발하였는데, 이륙 얼마 후 항공기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항공기 폭발로 운송 중이던 대부분의 화물이 손상되었고, 화주의 보험자인 그린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원고)가 화주에게 손실을 보상한 후, 피고 ㈜대한항공에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자 피고는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규칙의 통일에 관한 협약(이하 ‘헤이그 의정서’)에 기한 책임제한 항변을 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는 책임제한이 배제된다고 주장하였다. 2. 원심 및 대법원의 판결 가. 헤이그 의정서 제25조 전단에는 “제22조의 책임제한규정은 운송인, 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 손해를 가할 의사로써 또는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done with intent to cause damage or recklessly and with knowledge that damage would probably result) 작위 또는 부작위로부터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증명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라 함은 자신의 행동이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결과를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하는 의도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나. 책임제한 배제에 대한 입증책임은 책임제한조항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있고 그에 대한 증명은 정황증거로써도 가능하다 할 것이나, 손해발생의 개연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한 아무리 과실이 무겁더라도 무모한 행위로 평가될 수는 없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1다58269 판결 참조). 다. 항공기를 운행함에 있어서 기장 등의 과실은 중대하다고 할 것이나, 그렇다고 하여 인정된 사실만으로는 그들이 자신들이나 동료들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사고발생의 개연성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인식하였다고는 볼 수 없고, 오히려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출항승무원들은 이 사건 사고 직전까지도 사고발생의 위험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보여지므로 피고 소속 기장 등이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 결과를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한 의도적인 행위에 의하여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 3. 평석 가.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해석 헤이그 의정서 제25조는 ‘가해할 의사로써 또는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나 부작위’ 가 있는 경우 운송인의 책임제한을 배제하고 있다. 여기서 ‘가해할 의사로써 또는 부주의하게 또는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나 부작위’는 바르샤바협약의 ‘willful misconduct’ 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그 의미와 관련하여 각국에서 상당한 논쟁을 야기하여 왔다. 대체로 willful misconduct는 일정한 결과의 발생을 인식하고도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는 경우, 즉 고의 내지는 고의적으로 그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그 행위를 하는 것으로서 행위자의 주관적 의사를 필요로 한다고 보고 있다. 헤이그 의정서 제25조와 관련하여, 사고발생지인 영국에서도 해석상 논란이 있어 왔고, 특히 ‘recklessly’와 ‘with knowledge that damage would result’를 하나로 볼 것인지 아니면 분리하여 볼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해석하든 전체적으로 볼 때 중과실에 주관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는 입장이 우세한데, 통상의 중과실의 개념과는 다른 개념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용어가 없으나, 영국 등에서와 같이 단순한 중과실의 경우가 아니라 중과실에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된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임제한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책임제한 배제사유에는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나. 대법원 판결에 대한 평가 승무원들의 행위에 비추어 볼 때, 승무원들에게 중대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주관적인 의사의 개입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지므로, 책임을 제한한 대법원의 판결은 타당하다. 또한, 책임제한 배제에 대한 입증책임은 배제를 주장하는 자에게 있고, 손해발생의 개연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한 아무리 과실이 무겁더라도 무모한 행위로 평가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도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심과 대법원은 책임제한과 관련하여 지나치게 승무원들의 입장에서만 다루어, 승무원들을 제외한 피고나 피고의 사용인들에 대한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헤이그 의정서는 책임제한과 관련한 운송상 주의의무의 주체를 ‘운송인, 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사고 전후의 사정을 기재한 영국항공조사위원회(AAIB)의 조사보고서에는, 피고를 비롯한 피고의 사용인들의 과실에 대한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었는데도, 원심과 대법원은 이들에 대한 과실판단을 하지 않고 있다. 즉, 본 건 사고는 (1) 피고의 항공운항과 관련한 전체적인 시스템 구축에 있어서의 과실 (2) 정비사들의 정비에 있어서의 과실 (3) 승무원들의 과실 (4) 입항 및 출항 조종사의 과실 (5) 비행 및 지상엔지니어의 과실 등이 경합하여 발생하였고, 특히 타슈켄트 현지에는 상근엔지니어도 배치하지 않는 등 운송에 필수적인 기본적인 운송시스템조차 구축되어 있지 않아 운항능력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허술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 바, 운송인인 피고 또는 사용인들은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 결과를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한 의도적인 부작위를 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원심과 대법원은 승무원들의 과실판단에만 치우친 나머지 주의의무의 주체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켜 판단한 잘못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는 심리가 깊이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7-01-15
FIO 특약과 선상도
1. 사건의 경과 가. 우리나라 수입자 X는 오스트리아 수출자로부터 철제화물을 수입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위 수입자의 의뢰로 신용장개설은행은 수익자를 수출자로 하여 C&F(운임포함조건) FO(하역비 화주부담) 등을 내용으로 하는 취소불능화환신용장을 발행하였다. 나. 원고회사는 위 수출자와 사이에 러시아의 바비노항에서 포항항까지 철제화물을 운송하기로 하는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수하인을 신용장개설은행, 통지처를 수입자 X로 한 선하증권을 발행하여 화물을 포항항까지 운송하였다. 다. 부두운영회사인 피고회사는 수입자 X로부터 하역작업 및 내륙의 자가보세장치장까지 보세운송을 의뢰받고 화물을 하역하여 부두에 일시 야적하였다가 위 수입자로부터 선하증권이나 화물인도지시서 등을 받지 아니하고 화물을 위 수입자의 자가보세장치장까지 보세운송하였고, 수입자가 이를 반출하여 소비하였다. 라. 원고회사는 선하증권을 소지하게 된 신용장개설은행으로부터 화물의 불법반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받아 그 판결금액을 지급한 다음 이 사건에서 피고회사를 상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공동면책에 따른 구상청구를 하였다. 마. 1, 2심 법원 모두 공동불법행위의 성립을 전제로 피고회사의 과실비율에 따른 구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2. 大法院의 판결요지 해상운송에 있어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은 수하인, 즉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함으로써 그 계약상의 의무이행을 다하는 것이 되고, 그와 같은 인도의무의 이행방법 및 시기에 대하여는 당사자 간의 약정으로 이를 정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만약 수하인이 스스로의 비용으로 하역업자를 고용한 다음 운송물을 수령하여 양륙하는 방식(이른바 '선상도')에 따라 인도하기로 약정한 경우에는 수하인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가 운송물을 수령하는 때에 그 인도의무의 이행을 다하는 것이 되고, 이 때 운송인이 선하증권 또는 그에 갈음하는 수하인의 화물선취보증서 등과 상환으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임의로 선하증권상의 통지처에 불과한 실수입업자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로 하여금 양하작업을 하도록 하여 운송물을 인도하였다면 이로써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는 이미 성립하는 것이고,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하역업자가 운송인의 이행보조자 내지 피용자가 된다거나 그 이후 하역업자가 실수입업자에게 운송물을 전달함에 있어서 선하증권 등을 교부받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별도로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3. 평석 가. 문제의 제기 FIO 특약이란 “Free In & Out”의 약어로 일반적으로 항해용선계약에서 용선자가 자체의 비용으로 선적 및 양하작업을 수행하는 조건을 말한다(항해용선계약의 Gencon 표준약관이 대표적이다). 대상사건에서 대법원은 FIO 특약에 의하여 하역업자가 화물을 수령하는 때에 ‘선상도’가 이루어졌다고 하고 있어, FIO 특약과 운송인에 의한 화물인도의무의 이행 또는 그 인도시점의 관련성이 주목되고 있다. 나. FIO 특약의 내용, 그 효력과 운송물인도와의 관련성-대상판결의 문제점 상법 제788조 제1항은 운송인의 운송물의 수령, 선적, 적부, 운송, 보관, 양륙과 인도에 관한 주의의무를 규정하고 상법 제790조 제1항에서 위 제788조의 규정에 반하여 운송인의 의무 또는 책임을 경감 또는 면제하는 당사자간의 특약은 효력이 없다고 하고 있다(선하증권에 관한 국제협약인 헤이그/비스비규칙이나 미국해상운송법도 같은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원의 판례는 없으나 다수의 미국연방항소법원은 미국해상운송법 제3조 제2항에 규정된 운송인의 의무는 위임불가능한(nondelegable) 의무로서 FIO 특약은 그러한 의무를 화주에게 전가하여 운송인의 의무를 면제하는 것으로 같은 조 제8항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한다. 영국의 경우, 최고법원인 귀족원(House of Lords)은 The Jordan II(2005) 사건에서 헤이그/비스비 규칙 제3조 제2항은 운송인이 절대적으로 인수하여야 할 서비스의 범위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운송인이 인수한 서비스의 이행상 주의의무의 기준(“carefully and properly")를 통일적으로 규정하고자 취지의 규정이라는 이유에서 헤이그비스비규칙의 제규정에 반하지 아니하고 유효하다고 보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FIO 특약은 운송인과 송?수하인 사이에 운송용역의 조건이 아니라 그 범위를 한정함에 불과한 것으로 제790조의 규정에 실질적으로 위반되지 아니하여 유효라는 하급심판결들이 있다. 무효설에 의할 경우 FIO 특약은 아무런 법률상 효력이 없고 여전히 운송물의 양륙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운송인이 부담하게 된다면 양륙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법률상 인도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의 판시내용과 같이 운송물이 선창을 떠나 양륙이 개시되는 때에 곧바로 인도가 일어난다고 보게 되면 법률상 인도의무를 이행하려는(또한 인도를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서 양륙의무를 이행하여야 할 법적 이익이 있는) 운송인으로서는 의무이행행위가 곧 불법행위가 되는 불합리한 입장에 처해질 수 있다. 유효설의 경우에도,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용선자 또는 수입자에 의하여 하역작업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운송인은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한 관계에서 여전히 법률상 인도의무를 부담하게 되므로 하역작업이 개시되는 때에 곧바로 인도가 일어난다고 보게 되면 인도를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서 양륙이 선행되어야 할 법적 이익이 박탈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따라서 FIO 특히 양륙 및 인도와 관련되는 FO(Free Out) 계약조건의 구체적 내용을 확정하고 그 효력을 검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사실관계에서 설시한 FO 계약조건의 내용이 비용부담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나아가 의무와 책임까지도 수하인에게 이전한 것인지에 관해 확정되지 아니하고, 또한 운송물의 매매계약 또는 신용장상의 조건을 곧바로 운송계약의 내용으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신용장상에 기재된 C&F FO 조건만을 근거로 “운송물을 하역하는 것은 운송인의 의무가 아니라 수하인의 의무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FIO 특약의 유효성을 당연히 전제한 것으로 판단되나 그 근거를 생략하고 있고 운송물인도와의 관련성에 관한 분석도 찾기 어려워 판결이유의 설득력이 우선 반감되고 추후 유사한 사례에서 선례로서의 지침을 제공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 FIO 계약조건에서의 운송물의 인도시점 (1) 수입화물의 인도시점(=불법행위의 성립시점)에 관한 종래의 판례 태도 모든 수입화물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박으로부터 하역작업을 거쳐 반드시 보세구역에 장치하게 되므로(관세법 제155조 내지 제157조), 해상운송인이 수하인에게 화물을 인도하기까지 하역, 보세장치장 입고, 통관 및 반출 등의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어서 해상운송인이 화물을 인도하고 계약상의 의무를 벗어나는 시기가 언제인가가 논란이 되어 왔다. 대법원은 종래 운송물의 인도시점과 관련하여 화물의 인도는 사법상의 개념으로서 그 화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의 이전”이라는 사실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하여 왔다. 보세구역에 장치되어 있는 화물에 관하여 현실적으로 보세구역의 종류에 따라 관세행정목적상 세관의 감독과 규제의 정도가 다르므로 운송물을 일반보세장치장에 입고하는 경우와 자가보세장치장에 입고하는 경우, 즉 하역된 화물이 누구의 점유하에 들어가는가에 따라 그 인도시기를 달리 보아 왔다. 일반보세장치장에 입고되는 화물은 출고시 운송인의 화물인도지시서등을 제출받는 관행을 근거로 수입자와는 별개로 운송인과 사이에도 중첩적 임치계약이 존재하므로 선하증권상의 통지처(또는 그 지정하역회사)에 의하여 하역되고 창고에 입고된 사실만으로는 화물이 운송인의 지배를 떠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화물의 인도시점은 보세장치장에서 출고된 때로 보고, 선측에서의 하역작업에 의하여 운송물의 점유가 하역회사에게 이전된 때가 아니라고 보았다. 한편, 수하인이 하역업자를 고용하여 운송물을 하역하고 이를 자가보세장치장에 입고한 경우 운송물이 수입자의 이행보조자에 의하여 수령되어 수입자의 보관하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하역업자가 화물을 수령하는 순간(하역시)에 운송물은 수입자의 지배하에 들어가 그 인도가 있었다고 본다. 결국, 대법원은 종래 운송물에 관한 ‘사실상의 지배의 이전’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해 어떤 특정 시점의 당사자의 인식이나 행위가 아니라 사후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양하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이해된다. (2) FIO 특약은 ‘선상도’의 약정인가?-양륙과 인도의 구별 대상판결이 인도의무의 이행방법 및 시기에 대하여는 당사자간의 약정으로 정할 수 있다고 한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판시와 같이 수하인이 운송물을 선상에서 수령하여 ‘양륙’하기로 하는 약정, 즉 FIO 특약이 곧 운송물을 선상에서 ‘인도’하기로 하는 약정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심각한 의문이 있다. 왜냐하면 양륙과 인도가 개념상 구별될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대상판결의 선고 후에도 일관되게 화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가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운송물의 인도 여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거의 확립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설사 FIO 특약에 따라 실수입자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가 양하작업을 완료하였다고 하더라도 화물이 ‘일반보세창고’에 입고된 경우라면 여전히 화물은 운송인의 지배하에 있게 되므로 FIO 특약에 따라 화물이 선상에서 수령되어 양하되었다고 하더라도 양하 당시에 선상에서 인도(‘선상도’)가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대상판결이 ‘수입자에 의한 양륙 이후에도 운송물에 대한 운송인에 의한 사실상의 지배와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즉 화물이 누구의 점유하에 들어가는지와 무관하게 FIO 특약에 의하여 선상에서 양하가 개시되는 시점에 인도가 이루어진다’라는 취지라면 이는 지금까지의 대법원의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의하여 판례를 변경하였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 (3) 대상사건에서 운송물의 인도시점 대상판결은 실수입업자의 의뢰에 따라 하역회사에 의해 양하된 다음 부두에 일시 보관된 다음 보세운송되어 실수입업자의 자가보세장치장으로 입고된 사안이다. 종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화물에 대한 보세운송 신고를 할 수 있는 자는 화주 또는 그 위임을 받은 보세운송업자뿐이므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보세운송 과정 중의 화물은 화주의 사실상의 지배 아래에 있다. 따라서 대상 사건에서 인도시점은 다음의 두 시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첫째, 아무리 늦어도, 보세운송을 위하여 부두에서 반출된 때이거나 둘째, 하역회사가 선상에서 화물을 수령하여 양하를 개시할 때이다. 만약 첫째의 경우라면 하역회사의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할 여지가 있는데, 화물이 언제 운송물이 운송인의 지배를 떠났다고 볼 것이냐에 관한 판단에 달려 있다. 이는 즉, 운송물을 양하하여 부두에 일시보관중인 하역회사와 운송인의 관계가 어떠한지, 즉 하역회사가 운송인을 위하여 운송물을 보관하고 있는 지위에 있는지 여부에 좌우된다. 화주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가 화물을 양하하여 부두에 보관하게 되는 경우라도 운송인과 사이에 임치관계나 보관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운송인은 하역업자를 통하여 운송물을 간접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항항에서 그 화물의 반출시 운송인의 보세운송동의서나 화물인도지시서를 제출받는 부두운영실태나 관행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부두에 보관된 화물에 대한 운송인의 일정한 통제가 이루어져 화물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때 앞서 본 중첩적 임치계약관계 성립의 근거가 갖추어졌다고 볼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소송과정에서 사실조회 등에 의해 입증되어야 할 사실의 문제로 볼 수 있는데, 대상사건의 포항항 제8부두는 보세구역이 아니어서 하역회사의 일반보세창고가 없었고, 하역된 화물은 즉시 다른 곳으로 운송되거나 그대로 적치되어 일시보관된 후 다른 곳으로 운송되기도 하여 왔다는 점에 비추어 위와 같은 관행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대상사건에서 부두에 보관된 화물에 대하여 달리 명시적인 보관위임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이상 하역회사와 운송인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관계도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하역이 개시된 이후에는 화물이 운송인의 지배를 떠나 인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상판결이 “하역회사인 피고가 보세운송을 함에 있어 실수입업자로부터 선하증권등을 교부받는 관행이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그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하역업자는 실수입자의 이행보조자로서 양하시점에 운송인으로부터 운송물을 수령하였을 뿐 원고의 이행보조자 내지 피용자에 해당하지 않다고 본 것은 정당하다. 라. 결론 결론적으로 ‘선상도’가 이루어졌다고 본 대상판결의 구체적 결론은 지지될 수 있으나 판결이유의 설시에 있어서 이론적 근거나 분석이 미흡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대상사건에서 화물은 부두에서의 반출시가 아니라 선상에서의 하역시에 실수입자에게 불법적인 인도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FIO 특약에 따른 약정의 효과라기보다는 운송인이 하역시점에 운송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잃고 운송물의 점유가 실수입업자에게 이전된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적?양하작업의 비용과 책임에 관한 FIO 특약을 ‘인도(선상도)’에 관한 약정으로 등치시켜 FIO 특약이 있으면 하역을 위하여 실수입자의 하역업자가 운송물을 수령하는 때에 곧바로 운송물의 인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단정하는 듯한 설시를 하고 있어 실무상 혼란이 초래될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대상판결이 운송물의 인도시점에 관한 종래 대법원의 견해를 변경하거나 그것과 크게 배치되는 것으로 확대해석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2006-11-06
의사 설명의무에 있어서 설명의 범위
Ⅰ. 사건의 개요 및 법원판단의 경과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1994. 2. 24. 보건소에서 폐결핵 판정 및 결핵약 복용처방을 받고 보건소 결핵실 담당 의사로부터 결핵환자에게 일반적으로 처방되는 아이나, 에탐부톨(EMB), 피라진아미드, 리팜피신의 4가지 약품을 한 달 단위로 교부받아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원고는 복용후 4개월 후 시신경염(의증)의 진단을 받았고 에탐부톨의 복용 중지에도 불구하고 시력이 회복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애 3급 1호‘의 판정을 받았다. 2. 원심의 판결요지 보건소 결핵담당 의사들로서는 결핵환자에 대한 보건소 의료진으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한편 의사 등 의료 종사자에게 요구되는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부작용 등의 설명의무는 그것이 당해 의료행위로 인하여 예상되는 위험이 아니거나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예견할 수 없는 위험인 경우에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인데, 위 의사는 결핵환자에 대한 보건소 의료진으로서 당시의 의료수준과 여건하에서 요구되는 설명의무를 다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시각이상 등 그 복용 과정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한 우려가 있는 약품을 투여함에 있어서 그러한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 및 그 경우 증상의 악화를 막거나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데에 필요한 조치사항에 관하여 환자에게 고지하는 것은 약품의 투여에 따른 치료상의 위험을 예방하고 치료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하여 환자에게 안전을 위한 주의로서의 행동지침의 준수를 고지하는 진료상의 설명의무로서 진료행위의 본질적 구성부분에 해당한다 할 것이고, 이때 요구되는 설명의 내용 및 정도는, 비록 그 부작용의 발생가능성이 높지 않다 하더라도 일단 발생하면 그로 인한 중대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환자 스스로 판단, 대처할 수 있도록 환자의 교육정도, 연령, 심신상태 등의 사정에 맞추어 구체적인 정보의 제공과 함께 이를 설명, 지도할 의무가 있고, 결핵약인 ‘에탐부롤’이 시력약화등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이상 이를 투약함에 있어서 그 투약업무를 담당한 의사등은 위와 같은 부작용의 발생가능성 및 구체적 증상과 대처방안을 환자에게 설명하여 줄 의료상의 주의의무가 있고 그 설명은 추상적인 주의사항의 고지나 약품설명서에 부작용에 관한 일반적 주의사항이 기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환자가 부작용의 증세를 자각하는 즉시 복용을 중단하고 보건소에 나와 상담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시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Ⅱ. 평석 1. 문제의 제기 의사의 치료행위는 일반적으로 환자의 신체에 대한 침습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정당한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의술적 적정성과 의학적 적응성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환자의 유효한 동의를 얻어야 하고, 의사는 환자의 유효한 동의를 얻기 위하여 질병의 종류, 내용 및 그 치료방법과 이에 따른 위험에 관하여 적절하고 충분한 설명을 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설명의무는 환자는 단순히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는 객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존재라는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오늘날 의료관계에서 의사에게 요구되는 설명의무는 환자보호를 우선 하는 의료직의 윤리로서 고양되고 있으며, 헌법 제10조의 기본적 인권보장에 의해 뒷받침되는 법규범적 요청이다. 대상판결은 의사가 환자에게 부담하는 설명의무에 있어서 그 설명을 어느 정도 범위 까지 하여야할 것인가에 대하여 기존의 판례를 답습하는 한편 하나의 구체적 예시를 제시하였다. 2. 의사의 주의의무 의료과오(醫療過誤)로 인한 법적책임에는 의사의 과실을 요건으로 하는 데, 그 과실 판정의 기초가 되는 것은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注意義務)이다. 의료과오사건에 있어서의 의사의 과실은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발생을 예견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슴에도 불구하고 결과발생을 회피하지 못한 과실이라는 예견의무와 회피의무의 이중구조로 되어있다(대법원 1984. 6. 12. 선고 82도3199 판결). 한편,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기준은 진료당시의 이른바 임상의학(臨床醫學)의 실천에 의한 의료수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대법원 1997.2.11.선고 96다5933 판결). 3. 의사의 설명의무 가. 설명의무의 도입동기 의료분쟁의 요체는 회사가 의료과오를 범하였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으나, 그 과실의 입증은 역시 의료전문가인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것인데, 의사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동료의식으로 환자측에서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의료현실에 직면하여 의사의 전단적 의료행위로부터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상이 대두하게 됨에 따라 의사의 설명의무와 환자의 승낙권이 각국에서 여러 측면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는데 각국의 판례의 태도는 다소 차이는 있으나 의사가 치료에 임하여 환자의 승낙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 나. 설명의무의 법적성질 설명의무의 연혁을 고려해보면,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실행에 도움을 주도록 의사에게 특별히 지워진 의무임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의사의 설명의무는 자기의 독립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의무이며, 의사측의 주된 給付義務인 진료의무를 보다 완전하게 이행하는 데에 이바지할 뿐 어떤 독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의사의 의료행위상의 주의의무와는 구별되므로 주된 급부의무인 진단 및 치료의무와 병존하는 獨立的 附隨義務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 설명의무의 내용 (1) 설명의 주체와 상대방 설명은 處置醫師가 직접 환자에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예외적이고 어려운 수술이어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중요시되는 경우에는 수술 의사가 직접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의사가 설명을 할 상대방은 당해 의료행위에 대하여 동의할 자로서 원칙적으로 患者 자신이 되며, 따라서 어떤 의사도 환자와 의논하지 아니하고 그의 친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질병 및 의료처치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들로부터 동의를 기대하거나 그들에게 동의를 위임받도록 할 권리가 없다. 설명의 상대방으로서의 환자에게 행위능력까지는 요구되지는 않으나, 완전한 의사능력 즉 자신의 결정의 의미와 효과를 인식할 수 있는 辨識力은 갖춰야 하고, 그러한 경우에만 그 설명은 유효하게 된다. (2) 설명의 시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설명은 적시에, 즉 환자가 자신의 인식능력과 결정능력을 완전히 가지고 있고, 행하여질 의료침습시까지 상당한 고려기간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행하여져야 한다. 원칙적으로 代案的인 經過豫後(Verlaufsprognosen)를 형량하여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과 의논하고 충분히 숙고한 후 결정할 시간이 환자에게 주어지면 된다 하겠다. (3) 설명의 방법 설명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이어야 하나 동의와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설명은 환자의 연령과 교육 정도에 맞춰서 이해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일방적이어서는 안되고 환자 쌍방의 대화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취하여진 설명서 또는 동의서에 대한 서명은 환자가 그것을 읽고 이해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서명에 앞서 치료 내지는 수술과 그것의 발생 가능한 결과에 대한 대화가 나누어 졌다는 사실에 대한 정황이 될 수 있을 뿐이다(대법원 1994. 11. 25. 선고 94다35671 판결). 라. 설명의무위반의 입증책임 설명의무 위반의 입증책임에 대하여 의사가 부담한다는 견해, 환자가 부담한다는 견해, 의사의 설명과 환자의 동의를 구분하여 부담한다는 견해가 있으나, 우리나라 대법원은 의사측에 입증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1979. 8. 14. 선고 78다488 판결). 마. 설명의 범위 의사가 환자에게 하여야 하는 설명의 대상을 내용별로 유형화해 보면 ①환자의 症狀, ② 침습의 내용, 정도, ③ 수술등 처치의 전망(효과-증상개선의 정도), ④ 침습의 必要性, 緊急性 및 수술등 처치를 하지 않는 경우의 증상의 정도, ⑤ 다른 치료방법으로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다는 점(補充性), ⑥ 침습의 결과 생기는 危險의 내용, 정도 및 방지가능성, ⑦ 당해 시설에 있어서 과거의 實績 등이다. 또한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의료행위에 따르는 후유증이나 부작용의 발생가능성이 희소하다는 사정만으로 면제될 수 없고, 그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당해 치료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인 경우에는 그 발생가능성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설명의 대상이 된다(대법원 1996. 4. 12. 선고 95다56095 판결, 1995. 1. 20. 선고 94다3421 판결). 바. 설명의 한계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설명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환자의 치유에 위해적인 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癌등 불치병의 진단이나 처치상의 중대한 위험 등에 대한 사실 그대로의 설명은 오히려 공포등 치료에 역효과를 가져오는 심리적 위축을 야기할 수 있어 의사의 설명의무의 이행을 무조건 강제라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일 수는 없다. 이러한 때에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의하여 설명을 피하는 것이 치료상 환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면, 즉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불이익과 설명에 의한 逆作用이 주는 불이익을 비교형량하여 전자보다 후자가 크다면 설명의무를 면제함이 바람직하며, 완전한 설명이 환자의 건강을 현저히 손상케 하거나 환자에게 무거운 부담을 주어 치료효과에 나쁘게 작용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부분설명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의사의 설명의무에 대한 대부분의 대법원판결들이「긴급한 경우 기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설명의무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는 그것이 면제되는 경우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사. 판례에 나타난 설명의 범위 (1) 설명의무를 인정한 사안 ① 뇌경색으로 입원하여 정확한 치료법을 찾기 위하여 뇌혈관조형술을 받다가 동맥내에 형성된 혈전이나 동맥덩어리가 떨어져나가 뇌동맥을 막아 사망한 사안(대법원 2004. 10. 28.선고 2002다45185 판결). ② 미인대회에 출전하고자 이마와 턱을 높이고 상꺼풀 수술 후 턱 부위의 실리콘이 움직인 성형수술 사안( 대법원 2002. 10. 25.선고 2002다 48443 판결). ③ 수혈에 의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된 사안(대법원 1998. 2. 13. 선고 96다7854 판결). ④ 미골절제술을 위한 할로테인 마취제 사용 후 그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안(대법원 1996. 4. 12. 선고 95다56095 판결). ⑤ 개심수술 후에 후유증으로 뇌전색으로 사망한 사안(대법원 1995.1.20. 선고 94다3421 판결.) ⑥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어 뇌압강하와 뇌기능보호를 위한 중증쇼크치료제 솔루메드롤(Solumedrol) 투약하여 정상회복 후에도, 설명없이 우측안면도중증도 마비 치료를 위하여 다시 투약한 사안(대법원 1994. 4. 15. 선고 92다25885 판결). (2) 설명의무를 부인한 사안 ① 안과수술 후 갑자기 나타난 예측불가능한 시신경염으로 환자의 시력이 상실된 경우 의사에게 당해 의료행위로 인하여 예상되는 위험이 아니거나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예견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설명의무까지 부담하게 할 수는 없는 것으로 설명의무 부인한 사안(대법원 1999.9. 3. 선고 99다10479 판결). ②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어 뇌압강하와 뇌기능보호를 위한 중증쇼크치료제 솔루메드롤(Solumedrol) 투약한 것이 생명이 위독한 상태하에서 의식이 회복되기 전까지의 투약에 관한 한 사전의 설명이 불가능하였으므로 긴급한 경우에 해당한다 하여 그 시점까지의 설명의무를 부인한 사안(대법원 1994. 4. 15. 선고 92다25885 판결). ③ 의사의 윌슨(Wilson)씨병을 앓는 환자에 대한 그 병의 치료과정과 치료약제의 투약에 관한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 사안(대법원 2002. 5. 28. 선고 2000다46511 판결). 4. 대상 판결의 검토 대상판결은, 진료행위의 본질적 구성부분에 해당하는 진료상의 설명의무를 함에 있어 요구되는 설명의 내용 및 정도가 비록 그 부작용의 발생가능성이 높지 않다 하더라도 일단 발생하면 그로 인한 중대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환자 스스로 판단, 대처할 수 있도록 환자의 교육정도, 연령, 심신상태 등의 사정에 맞추어 구체적인 정보의 제공과 함께 이를 설명, 지도할 의무가 있다고 보고 있다. 대상 판결에 나타난 사정을 종합하면, 지역이 의료취약지역이고, 결핵관리지침등에는 결핵환자에게 투약하는 4가지 약품의 각종 부작용을 열거하면서 이를 그 대처방안에 따라 ‘투약의 즉시 중단’, ‘투약중단 후 증상완화시에 재투약’, ‘계속 투약’ 등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사안이 중한 즉시 투약중단에 속하는 부작용 중 이 사건 에탐부톨과 관련된 것은 ‘급격한 시력감퇴‘가 유일하며, 에탐부톨은 시신경염이 가장 심각한 부작용으로서 그 외의 부작용은 드물고, 발생률은 투약량과 기간에 비례하며, 시각기능검사에서 이상을 발견하기 전에 증상이 먼저 나타나는 관계로 환자 본인이 가장 먼저 알 수 있으므로 환자에게 시력에 이상이 생기거나 색깔 인지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 반드시 보고하도록 미리 교육시키게 되어 있다. 원고가 이 사건 최초 진료 당시 위 보건소에서 시력측정을 받은 것도 에탐부톨의 부작용과 관련된 보건소의 내부지침에 따른 것이고, 원고는 1999. 2. 24. 에탐부톨이 포함된 결핵약을 처음 복용할 당시 양안 모두 1.0이던 시력이 그 후 시력이상을 느껴, 1999. 6. 26.경 안과에 들렀을때는 우안 0.5, 좌안 0.6으로 약 1/2 수준으로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에탐부톨의 복용 이후 원고에게 발생한 시력약화 및 시신경염과 같은 증상은 에탐부톨 복용에 따른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의료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일 뿐만 아니라 보건소의 보건의료업무에 관한 지침상으로도 결핵환자에 대한 투약 및 관리에 있어 유의하여야 할 항목의 하나로 명문화되어 있고 그 부작용의 내용 및 발생 빈도에 비추어 이를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경미하다거나 희소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이상 원고에 대한 위 투약업무를 담당한 보건진료원으로서는 그 투약에 즈음하여 위와 같은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 및 구체적 증상과 대처방안을 설명하여 줄 의료상의 주의의무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설명을 함에 있어서는 원고가 위 부작용의 증세를 자각하는 즉시 복용을 중단하고 보건소에 나와 상담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설명의 상대방인 원고는 농촌에 거주하며 버섯재배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약품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하여는 문외한이므로 막연히 ‘이상증세가 있으면 보건소에 나와 상담, 검진하라’고 이야기 하거나 혹은 위 약품에 첨부된 제약회사의 약품설명서에 그 부작용에 관한 일반적 주의사항이 기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필요한 설명을 다하였다고 할 수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살피어 보면, 보건소 진료원이 원고에게 에탐부톨을 복용함에 있어 구체적으로 부작용의 발생가능성과 증상 및 대처방안에 대하여 제대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고 본 대법원의 판시는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2005-10-20
법률간의 부정합과 금지착오
I. 문제상황 청소년보호법은 종래 ‘청소년’의 정의를 18세 미만의 자에서 19세 미만의 자로 변경하여 규정하고 있으며(제2조 제1호), 또한 비디오물감상실업을 ‘청소년유해업소’를 규정하고[제2조 제5호 가목 (2)] 이러한 업소의 업주 및 종사자에게 청소년의 연령을 확인하여 청소년이 당해 업소에 출입하거나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함을 규정하고(제24조 제2항), 이를 위반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제51조 제7호). 그런데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이하 ‘음반법’으로 약칭) 및 시행령은 비디오감상실업을 영위하는 자를 ‘음반·비디오물·게임물 유통관련업자’로 규정하고[제2조 제5호 나목 (1)], 같은 법 시행령은 같은 법 시행령 [별표 1] 제2항 다호에서는 “출입자의 연령을 확인하여 연소자의 출입을 금지하도록 하고 출입문에는 ‘18세 미만 출입금지’라는 표지를 부착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비디오감상실 출입허용연령에 대한 이러한 양 법률간의 차이는 본 사안과 같이 ‘연소자’가 아닌 ‘청소년’, 즉 18세 이상 19세 미만의 자에 대한 비디오감상실 출입이 허용되는가를 둘러싸고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입법자의 불철저함으로 야기된 이러한 법률간의 ‘체계적 부정합성’은 법해석자에게 어려운 숙제를 던져준다. II. 출입허용 연령에 대한 법률간의 부정합과 해석방법론 첫번째 입장은 제1심 법원의 판결(수원지방법원 2000고단7715)의 입장으로 두 법률 사이의 부정합 문제를 두 법률의 조화적 해석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이 입장은 음반법 및 시행령의 관련 조문을 반대해석하면 ‘연소자’ 아닌 ‘청소년’에 대하여는 비디오 감상실에 대한 출입을 아무런 제한없이 허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이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19조에서 정한 ‘다른 법령에서 청소년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요컨대, 18세 이상 19세 미만의 자에 대한 비디오감상실 출입 허용여부에 대해서는 청소년보호법이 음반법에 맡겨 놓았다고 보는 것이다. 두번째 입장은 제2심(수원지방법원 제3형사부 2001노915) 및 대법원의 입장으로 청소년의 범위를 확장하고 비디오감상실을 청소년 유해업소로 규정한 개정 청소년보호법의 취지를 고려하는 목적론적 해석이다. 항소법원의 해석에 따르면 음반법 및 시행령은 청소년보호법의 개정취지를 반영하지 못한 채 종전의 규정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청소년보호법이 개정·시행됨에 따라 효력을 상실하였으며, 또한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19조의 위임규정은 모법의 위임근거도 없이 새로운 입법사항을 규율하고 있으므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파악한다. 대법원은 상세한 논지전개를 하지 않은 채 항소법원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두 법률을 조화적으로 해석하여 피고인에게 유리한 해석을 도출한 제1심 법원의 문제의식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부정합을 일으키는 법률조문에 대한 해석은 해당 법률의 목적을 전제로 하여 전개되어야 하며, 피고인의 이익도 그 범위 안에서 보장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청소년보호법의 기본목적이 청소년보호라면, 음반법의 기본목적은 관련사업의 촉진에 있다고 할 때, 비디오감상실 출입허용연령에 대한 법률간의 차이 해소는 전자의 입장을 중시하여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청소년유해업소’인 비디오물감상실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청소년보호법의 입법취지임은 분명히 확인되는 바, 청소년보호법이 같은 법 시행령 제19조를 통하여 18세 이상 19세 미만의 자의 경우는 비디오감상실 출입을 허용할 것을 상정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항소법원의 지적처럼 이 시행령 제19조의 모법상 위임근거가 모호함은 물론이고, 시행령 제19조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조문에 의한 타 법률에의 위임이 청소년보호법 자체의 규정을 무색하게 하는 위임까지 포괄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소년보호법이 개정·시행됨에 따라 음반법의 관련 시행령이 바로 효력을 상실하였다는 항소법원에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연령의 혼동을 일으킨다는 점 외에 출입문에 ‘18세 미만 출입금지’라는 표지를 부착하라는 요구가 청소년보호법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음반법 및 시행령의 규정은 청소년보호법 위반행위에 대한 예외사유로서 청소년의 출입을 허용한 특별한 규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항소법원과 대법원의 결론에 우리는 동의한다. III. 법률의 부정합성으로 인한 금지착오와 ‘정당한 이유’의 해석 이상과 같이 비디오감상실 업주는 18세 이상 19세 미만의 청소년에 대해서는 비디오감상실에의 출입 또는 이용을 금지하여야 할 의무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남은 문제는 청소년보호법과 음반법의 체계적 부정합성으로 피고인이 금지착오를 일으킨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금지착오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조국, ‘법률의 부지 및 착오 이론에 대한 재검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형사정책연구} 제12권 제2호(2001/6) 참조]. 1. 형법 제16조의 ‘정당한 이유’의 해석기준 현재 학계의 통설은 형법 제16조의 ‘정당한 이유’를 독일 형법 제17조의 ‘회피가능성’ 개념을 차용하여 설명하는데, ‘회피불가능성’ 유무를 불법통찰의 주의의무 이행 여부에 따라 판단하고, 이 의무의 핵심은 통상 ‘조회의무’라고 파악한다. 우리는 ‘정당한 이유’를 판단할 때, 시민이 국가기관이나 자격있는 전문가에게 자신의 행위의 위법여부를 성실히 조회하여 그 답에 의존하고 행동하였다면 위법성인식의 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통설에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는 ‘회피가능성’이 명문화되어 있는 독일 형법 제17조와는 달리 우리 형법 제16조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라고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형법 제16조에 의하면 행위자에게 위법성을 인식할 능력(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행위자가 ‘조회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에도―달리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면 다시 책임조각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법률의 착오’에서의 과실의 기준은 구성요건단계에서의 과실의 기준과 달리 책임단계에서의 문제이므로 행위자를 둘러싼 구체적 사정이 보다 많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사안 분석 대상판례는 법률간의 체계적 부정합성이 있는 경우 시민이 ‘조회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에도 금지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는데 의미를 갖는다. 먼저 법률전문가인 판사도 비디오물감상실의 출입금지대상에 대하여 음반법 및 시행령의 반대해석으로 18세 이상 청소년에 대하여는 출입금지의무가 없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니 만큼, 법률전문가가 아닌 피고인도 마찬가지 오인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그리고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19조 자체의 문언이 음반법 및 시행령 규정과의 연관해석을 통하여 청소년보호법에 의하여 부과된 18세 이상 19세 미만의 청소년에 대한 출입금지의무는 면제된다고 해석할 여지를 애초에 제공하고 있다. 법률간의 부정합으로 인하여 야기된 착오에 대한 기본책임은 국가이지 시민이 아니다. 충돌하는 두 법률이 피고인에게 착오의 소지를 제공하고 피고인이 이 중 하나의 법률에 대하여 ‘선의’(good faith)의 ‘합리적 의존’(reasonable reliance)을 한 결과 착오가 발생한 경우 그 금지착오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경우 학계의 통설에 따르자면 왜 피고인이 국가기관이나 자격있는 전문가에게 자신의 행위의 위법여부를 조회하여 그 답을 구하지 않았는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국가기관이나 관계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개최된 음반법 개정 공청회에 참석하여 음반법상 출입금지대상을 18세 미만의 자로 유지하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개정안이 마련되어 추진되고 있다는 내용을 통보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술하였듯이 우리는 행위자가 통설에서 요구하는 식의 ‘조회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에도 금지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 면책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으며, 이 때 행위자의 인식능력, 직업수행상황, 행위정황 등을 고려하며 책임조각을 판단하면 족하다고 본다. 특히 국가의 과실로 법률의 부정합이 발생한 경우 국가는 시민에 대하여 과도한 불법통찰의 의무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으로서는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오인한데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피고인을 청소년보호법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항소법원과 대법원의 결론은 타당하다. IV. 맺음말 우리는 (1) 행위자가 국가기관 또는 법률전문가에게 자신의 행위의 위법성 여부에 대하여 성실하게 조회하고 그 회신에 의존하여 행위하였다면 형법 제16조의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로 보아야 하며, 또한 (2) 행위자가 이러한 조회를 다 하지 않았더라도 법률의 내용 또는 법원의 판례, 행정기관의 공문이나 지침 등 국가기관의 결정이나 조치―행위자가 처해 있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서는 사인 또는 사적 기관의 의견―에 대하여 선의를 가지고 신뢰·의존하였던 것이 합리적이었던 경우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 바, 대상판례는 우리의 두 번째 논지를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 중요한 판결이다.
2002-08-15
이사의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Ⅰ. 사실관계 피고 A는 삼성전자로부터 75억원을 받아 이를 당시 대통령인 노태우에게 공여하였고, 또한 삼성전자는 중전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각각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이천전기의 인수, 그 발행신주의 인수, 지급보증 또 그 발행신주의 인수를 하였으나 마침내 이천전기가 퇴출되었으며, 그리고 삼성전자는 주당 액면가인 1만원에 취득한 삼성종합화학 주식 2,000만주를 주당 2,600원에 매각하였다. 이에 甲 외의 21명의 원고들은 A 외 10명의 피고들에 대하여 삼성전자에 손해를 배상할 것을 청구하였다. Ⅱ. 판결요지 및 평석 1. 서 설 이 건에서는 ①피고 A의 뇌물공여, ②이천전기의 인수 및 그 발행의 신주인수, ③삼성종합화학 주식의 저가매각의 세 가지가 문제된다. 위의 ①에서는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상399조)의 요건과 그 해제(상450조) 특히 책임의 요건인 이사의 임무해태 즉 대표이사·업무담당이사·비상근이사의 임무해태가 문제되고, ②와 ③에 있어서도 이사의 임무해태를 비롯하여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이른바 경영판단의 법칙의 도입, 책임을 부담하는 이사의 범위, 감사의 책임 등이 문제된다. 그러나 이 건의 판결에 있어서 책임부담이사의 범위와 이사의 책임의 해제는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므로 논외로 하고, 여기에서는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의 요건으로서의 이사의 임무해태, 경영판단의 법칙, 감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에 관하여서만 고찰하기로 한다. 2. 이사의 책임의 요건 (1) 법령 또는 정관의 위반행위 이사가 개별적·구체적인 법령 또는 정관의 규정에 위반하여야 한다. 이 건의 뇌물공여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A가 삼성전자로부터 75억원을 받아 이를 위 노태우에게 뇌물로 공여한 행위는 형법상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상법 제399조 소정의 법령에 위반한 행위이고 …」라고 판시하여, 형법규정의 위반도 본조의 법령위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본조의 이사의 책임은 이사의 강대한 직무권한의 남용을 방지하고 직무집행의 공정을 확보함으로써 회사의 재산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므로, 본조의 법령은 주식회사법상 회사의 재산의 보전을 위하여 이사의 임무를 정한 규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피고 A가 노태우에게 뇌물을 공여한 것은 본조 소정의 법령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이는 회사의 정관 소정의 목적범위 외의 행위로서 회사의 정관규정의 위반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2) 임무해태 가) 서 설 본조에 있어서 이사의 임무해태는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상382조 2항, 민681조) 내지 충실의무(상382조의 3)에 위반하여 업무집행을 하는 것이다. 이사의 임무는 이사가 대표이사인가, 업무담당이사인가 또는 비상근이사인가에 따라 다르고, 따라서 그 임무해태도 대표이사인가, 업무담당이사인가 또는 비상근이사인가에 따라 다르다. 나) 대표이사의 임무해태 ①선관주의로 업무집행할 의무의 위반 대표이사는 회사의 대표로서(상389조 1항) 회사의 영업에 관하여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상389조 3항, 209조 1항), 또 그 반면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이러한 모든 업무를 집행하여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뇌물공여의 건에 있어서 피고 A가 위 노태우에게 금전을 뇌물로 공여하고 이를 교제비 등의 명목으로 회계처리한 것은 당시 대표이사인 피고 B가 선관주의의무에 위반하여 정관 소정의 목적범위 외의 행위를 하고 이를 부당회계처리한 것이므로, 이 건의 뇌물공여는 피고 B가 그 업무를 집행함에 있어 중대한 임무해태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건 판결이 뇌물공여에 관하여 피고 A에 대하여서만 책임을 추급하고 피고 B에 대하여 아무 책임을 추급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천전기인수의 건에 있어서 삼성전자로서는 중전사업이 필요한 사업인데도 국내에는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게다가 신규로 중전사업을 시행하려면 시장개척·기술도입·제품개발을 하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므로 당시로서는 중전사업의 기존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판단할 수 있고 또한 이천전기의 인수 직후 IMF가 들이 닥쳐 그 경영여건이 악화되어 손실을 입었으나 이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던 불가항력적 상황으로서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당시의 상황하에서 이천전기를 인수한 것은 피고 B가 대표이사로서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결하여 업무집행을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피고 B가 불과 8월 전에 주당 액면가인 1만원에 매입하였고 또 당시 주당 5,733원으로 평가되는 삼성종합화학의 주식 2,000만주를 주당 2,600원에 저가로 매각한 것은 비록 삼성전자의 첨단 설비의 투자자금을 조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대표이사로서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업무집행을 한 것이라 할 수 없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②선관주의로 감시할 의무의 위반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이 적정하게 행하여졌는지 감시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대표이사는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에 대하여 감시권을 가지며, 특히 대표이사는 직제상 하위의 업무집행자인 다른 업무집행자에 대하여 지휘감독권을 가진다. 뇌물공여의 건에 있어서 피고 A가 뇌물을 공여하는 것을 피고 B가 저지하지 못한 것은 대표이사로서 그 감시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인데도, 이 건의 판결에서 피고 B에 대하여 책임을 추급하지 않는 것도 부당하다. 다) 비상근이사의 임무해태 이 건의 이천전기 인수에 관한 판결에서는 “이천전기의 재무상황으로 보아 그 차임규모가 더 증대될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고 또 이천전기의 인수에 따른 위험이 통상 감수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었는데도 이러한 상황을 검토하지 않고 또 자료의 제시도 받지 않고 1시간의 토의로 이천전기의 인수를 결의한 것은 이사들이 합리적인 통찰력을 다하여 적절한 판단을 하였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삼성전자 이사회의 1997. 4. 2 과 같은 해 4. 3. 이천전 발행의 신주인수결의도 위의 제반사정에 대하여 검토하지 않았으므로, 이 결의에 참석한 이사도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다”라고 판시하여, 이천전기의 인수결의와 그 발행신주의 결의는 이사가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천전기의 인수를 결의한 1997.3.14. 삼성전자의 이사회에는 중전사업의 인수의 필요성과 추진방법을 설명한 ‘중전사업참여방안’이라는 자료만 제출되어 있고 다른 자료가 없어, 비상근이사와 다른 업무담당이사는 이천전기의 불량한 재무상황, 장차의 투자예상금액, 퇴출대상기업으로 선정 등을 예상할 수 없었고, 특히 상법상 이사회 결석이사는 책임을 지지않는데도(상399조 3항) 출석이사는 제출된 자료만으로 심의·결의하였다고 하여 책임을 지우는 것은 심히 형평에 반한다. 그러므로 이 건의 판결에서 이천전기 인수의 결의에 참석한 비상근이사가 그 임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것은 부당하다. 그리고 이 건의 삼성종합화학 주식매각에 관한 판결에서 “삼성종합화학의 주식가치는 삼성종합화학의 순자산의 가치의 점에서 보아도 2,600원을 상회하고, 이사회의 결의의 자료가 된 안진회계법인의 삼성종합화학의 주식의 평가는 상속세법시행령에 의한 것이고, 그 주식가치가 1994.4에서 매각시점인 같은 해 12.까지의 기간에 4분의 1의 수준으로 하락할 만한 다른 사정이 없고, 1993.6.에 삼성종합화학의 주식이 삼성전관에 6,600원에 거래된 바 있고, 이사회가 불과 1시간의 토론 끝에 2,000만주를 주당 2,600원에 처분하는 결의를 한 것은 피고 이사들이 이사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다”라고 판시하여, 삼성종합화학 주식의 매각결의는 이사로서의 임무를 해태한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 주당 액면가인 1만원에 매입한 주식의 가치가 그 8월 후에 무려 그 4분의 1에 가까운 2,600원으로 폭락하였다면 마땅히 그 폭락의 원인, 최근의 매각사례, 그 주식의 현재의 거래가액 등을 검토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인데도, 위 이사회가 단지 안진회계법인이 상속세법시행령에 의하여 평가한 자료에 따라 주식매각을 결의한 것은 비상근이사와 업무담당이사로서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그 감시의무를 다한 것이라 할 수 없고, 따라서 이 건의 삼성종합화학 주식매각에 관한 판결에서 비상근이사와 업무담당이사의 책임을 물은 것은 정당하다. 4. 경영판단의 법칙 (1) 의의 ‘경영판단의 법칙’은 이사가 합리적인 정보에 기하여 성실하게 판단하여 한 행위는 비록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인정되더라도 사기, 위법 또는 이익충돌이 없는 한, 법원은 그 이사의 경영판단과 행위에 대하여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영판단의 법칙은 미국의 판례에서 발전된 법리이다. (2)적용상의 문제점 이 건의 이천전기의 인수에 관한 판결에서는 “삼성전자의 이사회가 이천전기의 인수를 결의한 것은 이사들의 충분한 정보에 기하여 합리적인 통찰력을 다하여 적절한 판단을 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위의 인수결의는 경영판단으로 보호될 수 없다”고 판시하고, 또 이건의 삼성종합화학 주식매각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이사들은 합리적인 자료를 토대로 충분히 검토한 후 매각결의에 찬성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경영판단으로 보호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우리 회사법에 경영판단의 법칙의 도입을 인정하면서 다만 피고 이사들의 충분한 정보의 흠결, 합리적인 통찰력의 흠결, 자료검토의 흠결 등의 적용요건의 흠결을 이유로 그 적용을 부정하였다. 물론 경영판단의 법칙을 도입하여 적용하면 이사는 크게 보호될 것이나, 그렇게 되면 이사의 임무해태에도 불구하고 이사가 그 책임을 면하는 경우가 있어 본조의 이사의 임무해태시의 책임의 과실책임성에 반한다. 또한 경영판단의 법칙의 도입론자는 그 논거로서 이사가 경영전문가로서 전문지식을 가지고 내린 판단에 대하여 반드시 그러한 전문지식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법관이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모든 전문적 직업인의 행위에도 이와 같은 법칙의 적용을 확대 인정하여야 하여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경영판단의 법칙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전문경영인체제가 확립되어 있는 미국에서 발전한 법리인데, 기업경영의 형태와 소유구조가 판이한 우리 나라에서 이 법칙을 그대로 도입하는데는 문제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중소기업에서는 물론 재벌계열의 대기업에서도 대부분 지배주주 중심의 가족경영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경영판단의 법칙을 도입하여 이들에게 경영실패의 책임을 면하게 하면, 경영에서 소외된 소수주주와 채권자들의 이익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경영판단의 법칙을 도입하려면, 그에 앞서 그 적용의 근거, 적용요건, 적용범위 등에 관하여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5. 감사의 책임 감사가 그 임무를 해태한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상414조 1항). 감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을 감사하여야 하고(상412조 1항, 415조, 382조 2항), 이 의무에 위반한 때에는 그 임무해태로 된다. 이 건의 판결에서는 감사인 피고 K의 책임을 묻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 건의 뇌물공여와 주식저가매각은 명백히 대표이사의 부적정한 업무집행인데도 문맥상으로 보아 피고 K가 감사보고서나 감사록에 위의 뇌물공여와 주식저가매각이 부적정하다는 기재를 한 것 같지 않고 또 주주총회에 제출할 재무제표·영업보고서를 피고 K가 조사하여 위의 업무집행이 부적정하다는 의견진술을 한 것 같지 않은데 이는 피고 K가 감사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결산감사 내지 상시감사를 하여야 할 감사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고, 또한 피고 K가 이사회에 출석하여 위의 업무집행이 부적정하다는 의견을 진술하지 않고 또 위의 부적정한 업무집행으로 인하여 회사에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는데도 이사회에 보고 또는 이사위법행위유지청구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는데 이것도 감사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감사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다. 그러므로 피고 K는 회사에 대하여 책임이 있고 또는 이사인 피고들과 외부감사인도 책임이 있으므로, 이들 이사·외부감사인과 연대하여 회사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6. 결 론 이 건의 뇌물공여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A에게, 또 이천전기 인수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B, C, D, E, F, G, H, I에게 그리고 삼성종합화학 주식의 매각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J, C, G, H, I에게, 각각 연대하여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것을 판결하였다. 그러나 뇌물공여에 관한 판결에 있어서는 피고 A에 대하여서만 책임을 추급하고 대표이사인 피고 B에 대하여 아무 책임을 추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고, 이천전기의 인수에 관한 판결에 있어서는 대표이사인 피고 B와 결의에 출석한 여타의 피고 이사들이 임무해태를 해태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그 책임을 추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삼성종합화학 주식의 매각에 관한 판결에 있어서는 대표이사와 결의에 출석한 여타의 피고 이사들에게 책임을 추급한 것은 정당하다.
200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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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교수(선장, 고려대 해상법 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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