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엘 l Return To The Forest
logo
2024년 5월 12일(일)
지면보기
구독
한국법조인대관
판결 큐레이션
매일 쏟아지는 판결정보, 법률신문이 엄선된 양질의 정보를 골라 드립니다.
전체
화물
검색한 결과
47
판결기사
판결요지
판례해설
판례평석
판결전문
보험금청구의 소멸시효 기산점
Ⅰ. 사실관계 1. 인·허가보증보험계약 체결 복합운송주선업자인 A는 1996년 9월3일 보증보험업을 영위하는 피고와 피보험자를 건설교통부장관, 보증내용을 ‘화물유통촉진법(1999년 2월5일 법률 제580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화물유통촉진법’)에 의한 복합운송주선업자 영업보증금 보증’으로 정하여 인·허가보증보험계약 이하 ‘본 건 보험계약’)을 체결하였고, 이때 피고 보조참가인은 A가 본 건 보험계약과 관련하여 피고에게 부담하는 구상금채무에 대해 연대보증하였다. 2. 운임등청구소송의 진행경과 원고는 A로부터 미지급 운임을 지급받기 위해 1996년 11월22일 부산지법에 A와 피고를 상대로 운임등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피고에 대한 소송은 1심진행 도중 취하함), 제13차 변론기일에 이르러 변론이 종결되어 1998년 2월12일 원고의 운임청구는 전부인용 되었고, A가 항소한 후 다시 상고를 하였으나 1999년 9월3일 상고가 기각되었다. 3. 보험금청구소송 제기경위 및 진행경과 (1) 원고는 피고에 대한 운임등청구소송을 취하할 즈음에 건설교통부장관으로부터 본 건 보험은 복합운송주선업자의 도산 등으로 인하여 그 등록이 취소되거나 폐지신고 되는 등의 경우에 지급되는 것이므로, A와 같은 등록업체의 경우에는 변제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2) 운임 등 청구소송 확정 후에도 A는 원고에게 운임을 지급하지 않았으며, 원고의 재산관계명시신청에 따라 진행된 2000년 5월29일 재산명시기일에 A는 책임재산이 없다는 재산목록을 제출하였고, 부산지법은 2000년 6월3일 A를 채무불이행자명부에 등재하는 결정을 하였다. (3) 원고는 A의 채무불이행자등재결정 이후 부산광역시장으로부터 (1)항과 같은 취지의 답변을 받고, 2002년 2월22일 피고를 상대로 보험금청구소송을 제기하였는데 1·2심법원은 소멸시효완성을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으나, 대법원은 ‘채권신고 마감절차를 거치는 데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시간이 경과한 때’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하면서 파기환송판결을 하였고, 파기환송 취지에 따른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 보조참가인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같은 이유로 상고가 기각되었다. Ⅱ. 대법원 판결의 요지 가. 보험사고나 보험금액의 확정절차는 보험증권이나 약관에 기재된 내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보험증권이나 약관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에 더하여 당사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하게 된 경위와 과정, 동일한 종류의 보험계약에 관한 보험회사의 실무처리 관행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해야 하고 특히 법령상의 의무이행을 피보험이익으로 하는 인·허가보증보험에서는 보험가입을 강제한 법령의 내용이나 입법취지도 참작해야 한다. 나. 원고가 보험사고의 발생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원고의 운임채권이 확정되고 A에게 책임재산이 없어 채무불이행자명부에 등재된 때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게 되므로, 그로부터 복합운송주선업 영업보증금 및 보증보험가입금 운영규정(이하 ‘운영규정’)에서 정한 채권신고 마감절차를 거치는 데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시간이 경과 때에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Ⅲ. 평석 1.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 가. 소멸시효 규정 소멸시효란 권리자가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일정 기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 경우에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민법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상법 제662조는 보험금청구권의 소멸 시효 기간을 2년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보험금청구권은 보험사고가 발생함으로써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것이나, 보험금 청구권자가 권리의 존재를 알았거나 알지 못한 것이 소멸시효 기산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보험사고발생요지시설과 보험사고발생시설이 대립하고 있다.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보험사고 발생시부터 진행이 개시된다고 할 것이나, 소멸시효의 취지에 비추어 청구권자가 보험사고의 발생 또는 보험계약의 존재를 알았는지 여부도 고려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청구권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보험금청구상 절차적인 요건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절차상 요건이 충족될 때까지는 소멸시효가 개시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 보증보험의 성격과 특수성 보증보험은 보험계약자가 주계약에 따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피보험자가 입게 되는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을 말한다. 보증보험에 있어서 피보험자의 지위는 책임보험에 있어서의 피해자의 지위와는 다른 것으로 피보험자는 자기 고유의 권리로서 직접 보험금청구권을 취득하는 것이며(대법원 1981년 10월6일 선고 80다2699판결), 책임보험에 있어서 직접청구권을 행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보증보험에 있어서 보험사고는 단순히 채무불이행사유만으로는 부족하고 주계약의 해제(해지) 등의 요건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리스보증보험계약에 있어서 리스료의 연체사실만으로 보험사고로 볼 수 없고, 이로 인해 리스계약이 해지된 때 비로소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며(대법원 1997년 2월13일 선고 96다19666판결), 또한 지급보증보험계약에서 보험사고는 주계약이 해제되어 중도금 등 반환채무가 발생한 때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대법원 1998년 11월27일 선고 98다39404 판결). 인·허가보증보험은 보증보험의 일종으로 허가나 인가 등 출원자가 허가관청에 예치해야 할 각종 인·허가보증금에 대신하여 체결하는 보험으로서, 보험사고에 있어서 단순한 채무불이행 외에 추가적 요건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보험금지급 청구에 있어서 특별한 절차를 요하고 있는 등 특수성이 있으므로 이러한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2. 소멸시효 기산점 등에 대한 검토 본 건 보험계약과 관련하여 보험사고 발생시점, 보험사고발생을 안 시점 그리고 소멸시효 기산점 등이 언제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는 바 (i) 운송사고가 발생한 시점 (ii) 운임 등 청구사건 확정시점 (iii) A가 객관적으로 자력이 없게 된 시점 (iv) A의 채무불이행자 등재시점 (v) 채권신고 마감절차를 거치는 데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시간이 경과 때 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보험사고 발생시점을 (i), (ii)로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i), (ii)는 단순히 채무불이행 상태에 있는 것 또는 채권이 확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므로 추가요건을 요하는 본 건 보험에 있어서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 건 보험약관이나 관련법령에 비추어 볼 때 A가 객관적으로 자력이 없게 된 시점인 (iii)을 보험사고 시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은 ‘도산 등’을 넓게 해석하고 있음). 한편, 원고가 보험사고를 알 수 있었던 시점은 (iv) 또는 A가 책임재산이 없다는 재산목록을 제출한 시점으로 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실제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운영규정에 따라 보험금청구 절차가 종료될 것을 요구하므로 (v)로 보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3. 대법원 판결에 대한 평가 대법원은 보험사고의 발생시점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설시하고 있지 않으나 A가 도산 등의 사유로 변제불능의 상태가 되는 시기로 보고 있는 듯하며, 원고가 보험사고 발생을 인식할 수 있었던 시점은 A의 채무불이행자 등재시점으로 보고, 소멸시효 기산점은 ‘채권신고 마감절차를 거치는 데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시간이 경과 한 때’로 보고 있다. 이는 필자의 견해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여진다. 대법원이 확정판결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보지 않고, 본 건 보험계약상 필요한 보험금청구 절차를 고려하여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정한 것은 본 건 보험의 특성에 비추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인·허가보증보험과 같은 보증보험의 경우 보험사고의 발생시점은 단순한 채무불이행 외에 추가적인 요건을 요구하는것이 일반적이라는 점,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정함에 있어 보험금청구절차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 등은 대법원판례로 인정되고 있기는 하나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입법적으로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 할 것이다.
2009-02-23
갑판적 운송과 운송인의 책임제한배제
I. 문제제기 2004다27082(대법원 2006.10. 26. 선고)판결은 갑판적과 관련해 운송인의 책임제한이 배제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판결로 관심을 모았었다. 본 판결도 위 대법원 판결과 궤를 같이 한다. 이에 대해 찬성하는 판례평석이 지난 4월7일자(김현 변호사)에 게재됐다. 필자는 이러한 경향에 반대하는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해상운송인에게는 포장당 책임제한권이 주어진다(상법 제789조의2 제1항). 본 사안에서 운송인에게 책임제한이 허용되면 운송인은 원고에게 약 900만원(포장 13개x500SDR)만 지급하면 되지만, 책임제한이 배제되면 4억원의 손해를 배상해야만 했다. 따라서 동 제1항 단서의 책임제한배제 사유(운송물에 관한 손해가 운송인 자신의 고의 또는 그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해 생긴 때에는 책임제한을 할 수 없다)가 중요한 쟁점이 됐다. II. 사실관계 1. 원고는 로봇 제조 회사이고, 피고 B는 복합운송주선업자, 피고 C는 외항해상운송사업자이다. 2. 원고는 2005년 4월1일 일본에 로봇을 수출하기로 하고, 피고 B에게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의뢰하고 운임으로 약 1,700만원을 지급했다. 피고 B는 C와 부산에서 일본 나고야까지의 운송계약을 체결했다. 피고 C는 화물을 선적하면서 원고를 대리한 피고 B에게 무하자 마스터선하증권을 발행했고, 피고 B는 원고에게 무하자 하우스 선하증권을 발행했다. 3. 화물은 플랫트 랙 컨테이너(Flat-Rack Container) 7대(34개 포장단위)에 넣어져 4월1일 부산항에서 선적됐고, 4월6일 나고야 항에 도착해 같은 달 14일 D에게 인도됐다. 갑판적을 했던 컨테이너 4대(13개 포장단위)에 해수로 인한 침수손이 발생했다. 4. 원고는 피고 B에게 화물의 운송주선을 맡기고 피고 B는 피고 C에게 화물운송을 맡겼는데 화물 일부를 임의로 갑판적으로 운송해 해수에 노출시키는 등 손상시켰으므로 피고들은 손해액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피고 C가 피고 B에게 발행한 선하증권 이면약관에 갑판적 화물운송을 허용한다고 기재돼 있어 화물 일부를 갑판적 운송한 것이 피고 C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로 볼 수 없으므로 그 배상책임은 포장 단위당 500SDR로 제한된다고 피고는 주장한다(이상 판결문에 의함). III. 법원의 판시내용 1. 청구원인 피고들은 화물을 안전하게 선창에 적부해 운송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여 화물을 갑판적으로 운송해 손상을 야기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 B는 운송주선인으로서, 피고 C는 운송인으로서 원고에게 이로 인한 손해 전부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상법 제115조, 제788조). 2. 책임제한여부 (i) 화물은 직교 좌표형 로봇으로서 정밀하고 예민한 제품인 점, (ii) 화물은 부산항에서 나고야 항까지 4일 동안 해상으로 운송되었는데 갑판적은 선창 내 적부에 비하여 강한 바람이나 파도, 해수,… 태양열, 극심한 온도변화 등에 의해 용기나 화물이 손상될 위험이 큰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별도의 갑판적 운송 약정없이 화물 일부를 임의로 갑판적으로 운송한 것은 위 제789조의2 제1항 단서에서 말하는 무모한 행위로 평가된다. 3. 결 론 피고들은 원고에게 각자 약 4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 IV. 평 석 1. 청구원인과 B(운송주선인)의 법적 입지 법원은 B는 운송주선인으로서 C는 운송인으로서 원고에게 연대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한다. 실무적으로 명칭은 운송주선인이지만, 주선인은 (i) 순수한 주선인이거나, (ii) 운송인이거나, 또는 (iii) 대리인으로 기능한다. 위 판결의 내용에 따르면 동일한 사건에서 한 사람이 세 가지 기능을 모두 한 것으로 보이는 오해를 자아낸다. B가 순수한 운송주선인인 경우이거나 B가 운송인인 경우에 원고가 실제운송인인 C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면 청구원인은 불법행위일 것이다. 그렇다면 선하증권의 기재내용은 본 사안에서 언급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상법의 책임제한규정을 실제운송인이 이용하여 책임제한을 주장했을 것이고 법원은 이에 따라 판단하면 되었을 것이다. 만약 B가 원고의 대리인이었다면 C가 발행한 선하증권상 운송인의 상대방은 원고가 되는 것이고 선하증권의 기재내용이 바로 효력을 미치게 된다. 하우스 선하증권과 마스터 선하증권이 발행됐다면, B는 명칭은 운송주선인이지만 그가 원고와의 사이에서는 계약운송인이 되고 다시 이번에는 그가 화주의 입장에서 실제운송인 C와 운송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2. 갑판적 운송의 쟁점 갑판적(on-deck)의 반대되는 개념은 갑판하 선적이다. 화물창 안에 화물을 싣고 갑판에 있는 화물창 덮개를 닫게 되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안전하다. 그런데 비바람을 맞아도 문제가 없는 화물, 예컨대 원목·컨테이너 등에 대해서는 갑판적 선적이 관행이 됐다. 이들 선박은 이러한 화물의 적재가 가능한 장치들을 갑판에 하고 있다. 일반 화물을 갑판적하게 되면 화물이 손상을 입을 위험성이 증대된다. 그러므로 갑판하 선적이 약정된 경우에는 갑판적을 하게 되면 중대한 계약위반이 된다. 그런데 아무런 약정이 없는 경우에는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서 달라지게 될 것이다. 예컨대 컨테이너만 적재하는 컨테이너 선박에서는 약정이 없어도 갑판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이해되고 선하증권에도 갑판적 약관이 있다. 약정에 위반해 갑판적한 경우 화물에 발생한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에 관한 다양한 법제도가 발전돼 왔다. 미국법은 準離路의 법리로서, 영국은 계약의 근본위반의 법리로서 갑판적을 엄격하게 처리해 왔다. 운송인은 처음부터 책임제한 등의 이익을 향유할 수 없다. 그런데 컨테이너 운송의 발달로 갑판적을 하더라도 침수로 인한 손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됐다. 헤이그 비스비 규칙과 우리 상법은 원칙적으로 갑판적한 경우에도 운송인은 책임제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다음 단계에서 책임제한배제사유가 있다면 책임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한다. 결국 우리 법제 하에서는 운송인에게 책임제한배제사유가 있었는지, 즉 갑판적을 결정할 당시에 ‘운송인 자신’이 고의 혹은 ‘운송물에 관한 손해가 발생할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작위 혹은 부작위를 했는지’가 쟁점이 된다. 3. 무모한 행위 무모한 행위의 법률적 의미에 대해서는 학설상 중과실설, 인식있는 중과실설, 미필적 고의설 등이 있다. 위 2004다27082(대법원 2006.10.26.선고)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이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는 ‘willful misconduct’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인식있는 중과실’로 이해한다(인권과 정의 2007. 6.).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갑판적한 운송물에 손해가 발생할 개연성(가능성이 아니라)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갑판적을 결정하는 마음상태가 필요하다. 이러한 마음 상태가 운송인 자신에게 있은 경우에는 운송인은 책임제한을 할 수없다. 법원은 무모한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789조의2 제1항 단서규정을 본 사안에 적용하여 무모한 행위로 평가받을 행위가 진정 운송인에게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법원이 했는지 의문이다. III. 2(ii)에서 단순히 4일 동안 해상으로 위험이 높은 갑판적 운송을 했다는 것이 인식있는 중과실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할 수는 없다. 부산항에서 나고야 항까지의 4일 동안의 해상운송은 일본의 內海인 세도 나이가이를 거쳤다면 거의 일본연안을 따르는 항해로서 큰 위험은 없다. 또한 일기가 상대적으로 좋은 4월의 항해이다. 따라서 운송인은 단기간의 항해이고 4월의 연안항해이므로 침수될 정도의 해수를 컨테이너가 맞을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있다. 겨울의 북태평양 항해시에 운송인이 갑판적을 한 경우와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또한 III. 2.(i)에서 예민한 운송물이라는 것이 무모한 행위로 바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우선은 예민한 물건임을 운송인이 알았어야 할 것이다. 송하인은 예민한 물건이면 갑판하에 선적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 때 송하인은 더 높은 운임을 지급해야 한다. 또 송하인은 이렇게 함으로서 책임제한의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높은 운임을 내지 않으려고 송하인은 이를 고지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위 (i)(ii)에 제시된 근거를 보면, 임의로 갑판적으로 운송한 것이 무모한 행위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시는 객관적인 사항에 대한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평가돼야 하는 것은 운송인의 주관적인 심리상태이다. 과연 손해발생의 위험이 개연성에 이를 정도로 위험함을 인식하였는지가 우선 판단돼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가 또 평가돼야 한다. 4. 운송인 자신 위에서 말한 무모한 행위는 운송인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위 대법원 판결에서는 법인의 대표기관이 아닌 차장 및 대리의 직에 있는 자의 행위까지를 운송인 자신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필자는 이는 지나친 확장해석으로 생각한다. 법원이 인정한 무모한 행위가 ‘누구의 것’인지 이 판결에서 읽을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5. 결 론 본 판결은 청구원인부분에서 운송주선인의 지위에 대해 법원이 실무에서 일어나는 법 현상을 명확히 구별해 설시하지 않아 법률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 운송인의 포장당 책임제한이 배제되는 사유로서의 인식있는 중과실(혹은 무모한 행위)에 대해 사실관계를 운송인 자신의 갑판적 결정에 투시하여 파악하지 않은 점, 운송인 자신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점 등에 미흡함이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항소가 됐다면 필자의 위와 같은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하는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 본 판결이 갑판적 운송에서 위 대법원의 판결의 뒤를 이어 운송인에게 책임제한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법원의 경향으로 자리 잡지 않기를 바란다. 운송인의 책임제한권이 배제되는 사유는 ‘운송인 자신’의 손해발생에 대한 고의에 근접하는 ‘인식있는 중과실’이라는 심리상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인정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2008-05-05
갑판적 자유약관
1. 판결의 요지 가. 사실관계 2005년 4월1일 부산에서 선적된 컨테이너 화물 7대는 같은 달 6일 나고야에 도착했는데, 같은 달 14일 개봉해 보니 갑판적 컨테이너 4대에 적입됐던 화물에 침수손과 녹손이 발견됐다. 이는 갑판적 운송 중 해수노출로 인해 발생된 것으로 밝혀졌고, 선창 내 적부 운송된 컨테이너 3대의 화물은 손상을 입지 않았다. 피고 1은 복합운송업자이고 피고 2는 해상운송업자였는데, 피고 1, 2의 선하증권 표면에는 화물을 갑판적 운송한다는 유보문구가 기재돼 있지 않았다. 피고 2가 발행한 마스터 선하증권 이면약관에는 “제15조. 갑판적: (1) 운송인은 컨테이너 화물을 선창 이외에 갑판 위에 선적할 권리가 있다. (2) 화물이 갑판적 운송될 때, 운송인은 선하증권 표면에 이를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명시돼 있었다. 피고 1 발행의 하우스 선하증권에는 갑판적 관련 규정이 없었다. 나. 판결요지 법원은 피고들이 화물을 선창에 안전하게 적부해서 운송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하면서 피고들의 책임을 인정했다. 한편 피고들은 포장당 책임제한을 항변했으나, 법원은 (1) 화물이 로봇으로서 정밀하고 예민했고, (2) 갑판적은 강한 바람이나 파도, 비, 해풍, 직사광선, 태양열, 극심한 온도변화에 의해 용기나 화물이 손상될 위험이 크며, (3) 갑판적 화물이 손상된 경우 이를 공동해손액에 산입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별도 갑판적 약정없이 화물을 갑판적 운송한 것은 무모한 행위에 해당해 포장당 책임제한 배제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피고 2는 갑판적 자유약관이 있으므로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1) 피고 2가 피고 1이나 원고에게 갑판적 자유약관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았고, (2) 피고 2 발행의 선하증권 표면에 갑판적 규정이 없으며, (3) 피고 1이 원고에게 발행한 선하증권 표면과 이면에 갑판적 규정이 없으므로 피고 2는 원고에 대해 선하증권 이면약관을 원용할 수 없다고 하면서 피고2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의 청구 중 물건 가액에 대해서는 전부 인용하고, 원고 직원들의 해외출장비용 부분은 기각했다(현재 본 사건은 쌍방이 항소해 서울고법에 계속 중이다). 2. 평 석 가. 갑판적의 의미 갑판적은 화물을 선박의 갑판에 적부하는 것으로서, 선창 내 적부하는 것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갑판적 운송은 다수 국가의 법률에서 금지돼 왔고, 다만 운송인이 운송물을 갑판적으로 할 수 있다는 당사자의 특약이 있거나 관습이 있는 경우 등에 인정돼 왔다. 최근 컨테이너 운송과 더불어 갑판적이 일반화되고 있으나, 컨테이너 형태에 따라 갑판적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나. 운송약관 조항 설명의무 법원은 피고 2가 갑판적 자유조항에 대해 화주에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그간 이면약관의 내용이 상관습 내지 그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운송약관에 대한 설명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던 운송업계의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통상 갑판적의 경우 적하보험에서 담보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화주들이 사전에 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또한 운송업계 종사자들은 약관에 대한 설명의무가 비교적 광범하게 인정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대상판결에서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특수한 성격의 제품(고가의 정밀 제품)이면 단지 이면약관에 의존하지 말고 개별 운송계약서를 별도로 체결해서 쌍방간 권리의무 관계를 명확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 판례의 경향 대법원은 운송인이 화주의 동의 없이 로우어 쉘 1상자를 갑판적으로 운송한 사안에서 운송인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가 있다고 보아 운송인의 책임제한을 배제한 바 있다(대법원 2006.10.26. 선고 2004다27082 판결). 위 대법원 판결의 원심법원에서는 화주가 갑판적으로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 점을 중요한 논점으로 언급하고 있다. 영국법원은 화주의 동의없는 갑판적을 근본적 계약위반의 유형으로 논의해 왔으나, Photo Production v. Securicor Transport 판결이 근본적 계약위반의 이론을 폐기하고 개개의 계약내용의 의미를 해석해서 운송인의 면책여부나 책임제한 적용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한 이후 확립된 견해가 없는 듯하다. 다만 하급심판결로 화주의 동의없는 갑판적 운송에 대해 헤이그-비스비규칙에 규정하고 있는 포장당 책임제한 조항을 원용할 수 없다고 한 것이 있으나(Wibau Maschinenfabric Hartman v. Mackinnon Mackenzie(챤다호 사건)(1989) 2 Ll.R.494.), 영국법원(The Commercial Court of London)은 운송인이 임의로 갑판적 하여 항해하던 중 황천으로 화물이 멸실된 사건에서 헤이그규칙상의 책임제한권을 인정해 위 챤다호 판례의 취지와 다르게 판단한 바 있다(The Kapitan Petko Voivoda [2002] EWHC 1306 COMM). 한편 함부르크규칙 제9조에는 갑판적에 대한 화주와 운송인의 계약관계나 관습이나 법령의 존재 여부에 따라 그 법률 효과를 달리 규정하고 있다. 즉 당사자의 의사나 갑판적 관습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고의나 무모성 등을 판단해 책임면제 또는 책임제한 여부를 정하고 있으며, 운송인이 화주와 명시적으로 선창에 선적해 운송하기로 한 약정에 반해 갑판적 운송을 한 경우에는 운송인은 포장당 책임제한규정을 원용할 수 없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함부르크규칙이 화주의 입장을 고려한 국제협약임에 비추어 볼 때, 향후 갑판적의 효과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특히, 당사자간의 명시적인 갑판적 약정이 없는 경우 개별사안에 따라 책임제한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영국법원의 판례경향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보여진다. 라. 평 가 대상판결의 경우는 당자자간에 명시적으로 갑판적으로 운송할 것으로 또는 운송하지 않을 것으로 약정한 경우가 아니므로, 함부르크규칙과 관련해 살펴본 바와 같이,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해 운송인의 책임면제 또는 책임제한 배제여부를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우리 상법 책임제한규정은 화주에게 심히 불리해 책임제한 배제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운송인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필요가 있다는 점, 통상의 컨테이너에 비해 Flat-Rack 컨테이너의 경우 갑판적에 적합하지 않아 화물이 손상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 본 건 화물이 정밀한 제품이라는 점, 갑판적의 경우 보험에 부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불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대상판결에서 설시하고 있는 갑판적으로 인해 증가하는 위험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운송인이 갑판적 자유조항을 이면약관에 부동문자로 인쇄하는 것만으로 책임제한 항변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화주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러므로 대상판결이 운송인의 책임제한을 배제한 것은 타당하다. 마. 결 론 이 판결은 이전의 대법원 판결과 비교해 볼 때, 갑판적을 이유로 고의 또는 무모성이 인정된다고 설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그 외에도 설명의무나 갑판적 표시방법 등을 다루고 있어 실무상 의미있는 판결이다. 입법론적으로는 갑판적과 관련하여, 함부르크 규칙과 같이 각 당사자들의 합의나 관습의 존재 등을 고려해 사안별로 나누어 상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함부르크규칙에 의하더라도 개별적인 적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바, 판례 축적 등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2008-04-07
창고업자의 책임
1. 사건의 내용 피고 A선박은 운송인인 B와 주식회사 C가 일본의 D주식회사로부터 수입하는 러시아산 화이트 우드 원목 16,669개(‘이 사건 화물’)의 인도 및 선하증권 회수 등의 업무 수행을 내용으로 하는 선박대리점 계약을 체결한 선박대리점이다. 피고 E해운은 피고 A선박으로부터 같은 업무를 위임받은 회사이다. 이 사건 화물은 마산항에 도착 후 선하증권과 상환됨이 없이 화주인 C의 의뢰를 받은 하역회사에 의해 하역돼 관세법상 지정장치장인 마산항 월영부두 야적장(‘이 사건 지정장치장’)에 반입됐다. 이 사건 지정장치장의 화물관리인인 피고 하역협회는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F은행)나 운송인의 마산항 선박대리점인 피고 E해운에게 알리지 않은 채 화물에 대한 통관절차만 마치고 선하증권은 아직 회수하지 못한 C에게 위 화물을 전부 반출해 주었다. 선하증권의 소지인인 원고는 선박대리점인 피고 A선박, 그로부터 업무 위임을 받은 피고 E해운 및 이 사건 지정장치장의 화물관리인인 피고 하역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 대법원의 판결 선하증권의 상환없이 이 사건 화물이 지정장치장에 반입된 이상 운송인 B 등과 피고 하역협회와 사이에는 화물에 관한 묵시적인 임치계약관계가 성립되었다. 따라서 피고 하역협회는 운송인인 B 등을 위하여 위 화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피고 하역협회가 선하증권이나 화물인도지시서와 상환함이 없이 선하증권상의 통지처에 불과한 C에게 화물을 인도함으로써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반면에 피고 A선박이나 피고 E해운은 B의 선박대리점으로서 이 사건 지정장치장에 화물이 반입된 후에도 피고 하역협회를 통하여 이 사건 화물을 계속 지배하고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화물이 이 사건 지정장치장으로 반입되는 것을 용인·방치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 A선박이나 피고 E해운에게 선박대리점으로서의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 (부산고판 2003.8.1. 2002나9509)은 (1) 이 사건 지정장치장의 화물관리인인 피고 하역협회는 통관절차를 마친 C의 화물 반출을 저지할 권한이나 의무가 없으므로 C에게 화물을 반출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수 없다. (2) 오히려 선박대리점인 피고 A선박과 피고 E해운은 선하증권도 소지하지 않은 C가 화물을 하역해 이 사건 지정장치장에 반입하는 것을 용인·방치함으로써 그 무렵 그 화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가지게 된 C가 이를 반출하는 것을 막지 못했으므로 이로 인해 선하증권 소지인인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원심판결은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의 법적 지위나 화물의 인도 시기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 3. 평 석 가. 창고업자 및 선박대리점의 책임 해상운송화물을 하역하여 보관하는 창고는 지정장치장과 보세장치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정장치장은 관세법상 세관장이 지정하는 지정보세구역에, 보세장치장은 세관장의 특허를 받은 특허보세구역에 해당되고 그 설치 절차나 장치 기간 등도 상이하여 관세행정상으로는 서로 구별되는 장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정장치장과 보세장치장은 모두 통관을 위해 물품을 장치하는 장소로서 관세법상 화물의 반입·반출절차가 다르지 않다. 또 운송인이나 선박대리점의 입항 및 하선신고에 의하여 화물이 장치될 보세구역이 특정되는 등 해상운송화물의 보세구역 반입에 관한 관행과 지정장치장과 보세장치장의 실질적 기능 및 운영 실태를 고려하면, 해상화물운송에 관한 법률관계에서 지정장치장과 보세장치장의 법적 지위나 법률적 성질이 다르지 않다. 선하증권이 발행된 화물의 해상운송에 있어 운송인이나 선박대리점은 선하증권과 상환하여 화물을 인도함으로써 그 의무의 이행을 다하는 것이다. 선하증권상의 통지처에 불과한 하역회사가 화물을 양하하여 통관을 위해 지정장치장에 입고시켰다면, 운송인 등은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을 통하여 화물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으로서도 운송인 등으로부터 점유를 이전받은 것이므로, 결국 운송인 등과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 사이에는 화물에 관하여 묵시적인 임치계약관계가 성립한다. 따라서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은 운송인 등의 지시에 따라서 임치물을 인도할 의무를 진다(대판 2004. 5. 14. 2001다33918). 즉 보세창고업자가 운송인으로부터 수입화물을 인도받아 보관하는 경우, 운송인 등의 입장에서는 수입화물을 보세창고업자에게 인도하는 것만으로 화물이 운송인 등의 지배를 떠나 수하인에게 인도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보세창고업자를 통하여 수입화물에 대한 지배(간접점유)를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보세창고업자의 입장에서도 운송인 등으로부터 수입화물의 점유를 이전받는 바, 결국 묵시적으로 운송인 등이 보세창고업자에게 수입화물의 보관을 의뢰하는 임치라는 점유매개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보세창고업자가 운송인의 지시가 없는 한 수입업자에게 운송물을 인도하지 않아야 할 의무는 운송인의 주의촉구나 그러한 내용의 약정에 의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임치계약에 의하여 수치인인 창고업자에게 부과된 자기의 고유한 의무이다. 따라서 운송인의 국내대리점이 선하증권을 포함한 운송서류를 전혀 실수입업자나 수하인에게조차 교부하지 않았는데 화물이 무단반출된다는 것은 정상적인 업무처리방식에서 현저히 벗어난 것으로서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와 같은 불법적인 경우까지 운송인의 대리점이 모두 예상하고 창고업자에게 주의를 촉구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나. 대법원 판결의 평가 해상운송화물은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선하증권과 상환으로 인도되어야 하고 선하증권 없이 화물이 적법하게 반출될 수는 없다. 그리고 선하증권을 제출하지 못하여 운송인 등으로부터 화물인도지시서를 발급받지 못한 화주에게 화물을 인도하면 그 화물이 무단 반출되어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화물을 인도받지 못하게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따라서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이 화물인도지시서나 운송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화물을 인도하여 그 화물이 무단으로 반출되었다면 그로 인해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사안에서, 운송인인 B 등을 위하여 화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는 피고 하역협회는 선하증권이나 화물인도지시서와 상환함이 없이 선하증권상의 통지처에 불과한 C에게 화물을 인도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소지인인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으므로 피고 하역협회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 운송인으로부터 화물의 인도 업무를 위임받은 선박대리점이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화물을 인도한 경우에는 그 선박대리점이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본 사안과 같이 화주의 의뢰를 받은 하역회사가 화물을 양하하여 통관을 위해 지정장치장에 입고시킨 경우에는 선박대리점이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을 통하여 화물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박대리점이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화물을 인도하였다거나 화물을 무단반출의 위험이 현저한 장소에 보관시킨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그 후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이 보관중이던 화물을 화주에게 무단 반출함으로써 화물이 멸실되었다고 하더라도 선박대리점의 중대한 과실에 의하여 선하증권 소지인의 운송물에 대한 소유권이 침해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본 사안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화물이 이 사건 지정장치장으로 반입되는 것을 용인·방치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 A선박이나 피고 E해운에게 선박대리점으로서의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본 건 대법원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불법행위의 당사자인 창고업자(피고 하역협회)에게 책임이 있고 선박대리점은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재확인한 것으로서 타당한 판결이며, 원심판결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2007-08-09
空선하증권의 효력
I. 사실관계 가. 원고는 소외 甲으로부터 甲과 브라질 소재 乙과의 섬유원단 수출거래에 대한 수출신용보증의 인수를 요청받고 이를 승낙하여 2000. 1. 4. 신용보증서를 발급하였다. 나. 甲은 사실상 乙과의 사이에 섬유원단수출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음에도 乙에게 원단을 수출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선하증권 등의 선적서류들을 구비한 후 2000. 6. 10. 丙은행에 수출환어음의 매입을 신청하였고 위 은행은 원고가 발행한 신용보증서를 담보로 수출환어음과 선적서류를 매입함으로써 甲에게 미화 98,430달러를 대출하였다. 다. 한편 피고는 甲과 해상운송주선계약을 맺고 甲으로부터 원단이 적입되었다는 봉인 컨테이너를 수령한 뒤 2000. 6. 9. 甲에게 이 사건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 이 사건 선하증권에는 “다음의 화물이 실렸다고 들었음(said to contain)”이라고 하는 소위 부지문언이 부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피고가 甲으로부터 수령한 컨테이너에는 이 사건 원단이 적입되어 있지 아니하였다. 또한 이 사건 선하증권에는 위 컨테이너가 2000. 6. 9. 산토스(Santos)호에 선적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위 컨테이너는 실제로는 2000. 6. 24. 라 보니타(La Bonita)호에 선적되었다. 라. 한편 丙은행은 위와 같이 매입한 환어음을 추심하고자 하였으나 乙로부터 섬유원단수출계약이 체결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서류를 반송받자 2000. 9. 23. 신용보증서에 기해 원고에게 위 미화 98,430달러의 상환을 요청하였다. 원고는 丙은행에 위 금원 중 일부를 지급한 뒤 동 은행을 대위하여 피고를 상대로 허위의 선하증권을 발행한 불법행위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II. 소송의 경과 및 대법원 판결 요지 제1심 법원은 이 사건 컨테이너 안의 내용물에 관하여 검사, 확인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없는 경우에 부지문언을 부기하여 선하증권을 발행한 것은 허위의 선하증권을 발행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 원고가 항소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제1심 법원의 판시 이유를 그대로 원용하는 외에 추가로, 선하증권 상의 선적일자와 선박 이름이 실제의 선적일자와 선박 이름과 달라 피고가 발행한 선하증권이 허위의 선하증권이라고 하더라도 乙이 환어음의 지급을 거절한 것은 乙과 甲과의 사이에 계약관계가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피고의 허위 선하증권 발행과 원고의 손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 원고가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항소심 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1) 선하증권은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인바, 이는 운송계약에 기하여 작성되는 유인증권으로 상법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실제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고 있는 것을 유효한 선하증권 성립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으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였는데도 발행된 선하증권은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목적물의 흠결이 있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고, 이러한 경우 선하증권의 소지인은 운송물을 수령하지 않고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에 대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할 것이다. (2) 丙은행이 비록 수출환어음과 함께 선하증권을 매입하였다고 하더라도 선하증권이 운송물을 수령하지 않고 발행된 선하증권으로 무효인 경우, 은행이 선하증권의 소지인으로서 입은 손해는 반드시 그 수출환어음의 지급거절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선하증권이 담보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됨으로써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원심은 운송품을 수령하지 않고 발행된 선하증권을 취득한 소지인의 손해에 관해서도 더 심리겿풔洑臼㈍?할 것인데도 이 점에 관하여 심리겿풔洑舊?아니한 채 이 사건 선하증권의 사실과 다른 선적일과 선박명의 기재는 丙은행의 손해와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하였는바, 원심의 위와 같은 법리오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할 것이다. III. 평석 1. 문제의 제기 1991년 개정 전의 우리 舊상법은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에 관하여 화물상환증의 문언증권성에 관한 상법 제131조를 준용하고 있었다(舊상법 제820조). 이러한 舊상법하에서의 空선하증권의 효력과 관련하여 空화물상환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요인증권성을 강조하는 견해(요인증권성설), 문언증권성을 강조하는 견해(문언증권성설), 그리고 절충설의 대립이 있었으며 판례는 요인증권성설에 따라 공선하증권이 무효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대법원 1982. 9. 14. 80다1325판결). 그런데 1991년 해상법을 개정하면서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에 관하여 상법 제131조의 준용규정을 폐지하고 헤이그 비스비 규칙의 내용을 수용하여 제814조의 2를 신설하였다. 이러한 현행 상법하에서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이 舊상법 시대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으며 현행 상법하에서 空선하증권이 어떠한 효력을 가질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위 대법원 판결은 이 점을 다룬 최초의 판결이다. 2. 현행 상법의 해석론 가. 선하증권 기재의 추정적 효력 현행 상법은 제814조의 2 본문에서 “제814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운송인이 그 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추정적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운송인이 선하증권에 기재된 운송물의 종류, 중량 또는 용적, 포장의 종별, 개수와 기호, 운송물의 외관 상태이다. 따라서 운송인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도 알 수 없는 운송물의 품질이나 밀봉된 컨테이너 내부의 운송물의 상세에 관하여는 추정적 효력이 미치지 아니한다. 또한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혹은 선적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空선하증권의 경우에 운송물을 수령하지 아니하였더라도 운송인은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 선하증권 기재의 확정적 효력 한편 현행 상법 제814조의 2 단서는 “그러나 운송인은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운송인은 선하증권의 선의의 소지인에 대하여 반대의 증거를 들어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였음을 대항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선하증권의 기재가 확정적 효력을 갖는다. 통설은 현행 상법이 舊상법에 비해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을 강화한 것으로 본다(소수설 있음). 이러한 통설에 의할 때 空선하증권의 경우에도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에 따라 운송인은 선의의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하여 空선하증권임을 주장하지 못하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라 운송물을 인도할 채무를 부담하며 이를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한편 현행 상법상 운송인이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하므로 선의의 소지인 측에서 선하증권의 기재와 다른 사실을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空선하증권의 경우 선의의 소지인은 空선하증권임을 들어 동 선하증권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 이 경우 운송인에게 空선하증권을 발행한 데 대해 귀책사유가 있으면 소지인은 운송인에게 불법행위책임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상법상 운송인은 불법행위책임에 관하여도 채무불이행 책임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제한할 수 있으므로(상법 제789조의 3 제1항), 소지인으로서는 구태여 운송인의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실익이 없다할 것이다. 3. 대법원 판례의 검토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空선하증권의 효력에 관하여 선하증권의 요인증권성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고 발행된 空선하증권은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목적물에 흠결이 있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설시는 舊상법 시대에 空선하증권의 효력에 관하여 요인증권성설을 취한 대법원 1982. 9. 14. 선고 80다1325 판결과 동일한 취지이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현행 상법은 제814조의 2 본문에서 선하증권의 추정적 효력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악의의 소지인에 대한 관계에서도 일응 空선하증권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효력을 가지며 운송인이 운송물이 수령 또는 선적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야 선하증권이 무효로 되는 것이다. 또한 운송인은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는 대항하지 못하므로 空선하증권의 경우 비록 선하증권으로서의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무효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의의 제3자가 空선하증권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이 사건에서 空선하증권의 소지인의 권리를 대위하는 원고가 피고의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한 것으로 보아 원고는 선하증권 기재의 효력에 따른 채무불이행 책임을 묻지 아니하고 스스로 선하증권의 무효를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록 원고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고 하더라도 대법원은 만연히 “선하증권의 요인증권성에 비추어 볼 때 空선하증권이 무효이고 이러한 경우 소지인은 운송인에 대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할 것이 아니라, 현행 상법의 입장을 반영하여 空선하증권은 원칙적으로 선의의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 유효이나 선의의 제3자 측에서 스스로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점을 명백히 한 뒤 이 사건에서는 선의의 제3자인 원고가 선하증권의 무효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이 사건 空선하증권이 무효로 된다고 판시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더구나 空선하증권의 무효를 설시하는 판시내용이 舊상법 시대의 요인증권성설을 취한 대법원 판례의 판시내용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마치 대법원이 현행 상법하에서도 舊상법 시대와 마찬가지로 요인증권성설에 따라 空선하증권이 선의의 소지인에 대한 관계에서도 당연히 무효라는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닌가하고 오해할 여지를 만든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IV. 맺음말 현행 상법은 헤이그 비스비 규칙에 따라 선하증권 기재의 효력에 관한 舊상법 규정을 개정하였다. 헤이그 비스비 규칙을 수용한 영국과 일본에서는 선의의 소지인에 대한 관계에서 운송인은 空선하증권이 무효임을 주장하지 못하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 상법의 해석으로도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空선하증권의 효력을 둘러싸고 발생했던 舊상법 시대의 학설 대립은 그 의미가 없어졌다. 또한 空선하증권의 효력에 관한 舊상법 시대의 대법원 판례도 현행 상법 하에서는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이 현행 상법의 규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선하증권의 요인증권성을 강조하며 空선하증권이 무효라고 판시한 것은 마치 대법원이 舊상법 시대와 마찬가지로 요인증권성설에 따라 空선하증권이 당연히 무효라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오해될 여지가 많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현행 상법 제814조의 2에 의할 때 원칙적으로 空선하증권은 유효이나 이 사건의 경우 소지인 측에서 空선하증권의 무효를 주장했으므로 선하증권이 무효로 되었다는 점을 명백히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생각된다. ※이 글은 한국해법학회지 제29권 제1호(2007. 4.)에 실린 필자의 “공선하증권의 효력”이라는 논문 중 일부를 발췌해 정리한 것임.
2007-07-09
항공운송인의 책임제한 배제사유
1. 사건의 내용 원고는 피고 항공사의 항공편을 이용하여 대한민국을 출발, 파리를 중간기착지로 하여 밀라노에 도착하기로 하는 항공여객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의 여행목적은 이탈리아 가구업자로부터 수입한 장식장 가구들의 금장식 막대에 하자가 있어 그 보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함이었는데, 원고는 위 금장식 막대를 수화물로 부치려다가 피고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귀중품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이를 휴대하고 탑승하려 하였다. 그러나 막상 검색대에서는 기내반입제한 물품이라는 이유로 탑승이 저지되어 부득이 파리행 비행기편의 피고 항공사 승무원에게 맡기고 탑승하였다. 그 후 중간 기착지인 파리공항에서 원고는 착오로 최종 목적지에서 수령하면 되는 것으로 여겨 수령을 하지 않았고, 물건을 맡은 피고 항공사 직원 또한 파리공항에서 이를 수령하여 가라는 통보를 하지 않았다. 원고는 피고 항공사를 상대로 분실신고를 하였으나, 피고 항공사는 결국 이 사건 물건의 소재를 찾지 못하였다. 원고가 화주에게 손실을 보상한 후, 피고 항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자 피고는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규칙의 통일에 관한 협약(이하 ‘헤이그 의정서’)에 기한 책임제한 항변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책임제한이 배제된다고 주장하였다. 2. 대법원의 판결 헤이그의정서 제25조 전단에서는 ‘책임제한규정은 운송인, 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 손해를 가할 의사로써 또는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부터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증명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라 함은 자신의 행동이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결과를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하는 의도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입증책임은 책임제한조항의 적용배제를 구하는 자에게 있고 그에 대한 증명은 정황증거로써도 가능하지만, 손해발생의 개연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한 아무리 과실이 무겁더라도 무모한 행위로 평가될 수는 없다(대판 2004. 7. 22. 2001다58269). 원심이 ‘손해를 가할 의사로써 또는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가 있었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책임제한 조항의 적용이 배제된다는 원고의 주장을 배척한 것은 정 당하다. 3. 평석 가.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해석 헤이그의정서 제25조의 책임배제사유인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나 부작위(recklessly and with knowledge that damage would probably result)’는 영미법에서 발전된 개념이고, 대륙법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구체적인 해석에 있어 중과실과 같이 보는 등 해석상 논란이 되어 왔다. 항공운송인의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연혁에 관하여 보면, 1929년 바르샤바 항공협약에서는 책임제한배제사유를 고의적 위법행위(willful misconduct)라고 정하고 이에 관한 해석원칙을 제소법원의 법에 따른다고 규정하였는데, 이에 관한 해석이 여러가지로 나뉘어 국제항공운송의 법적 안정성을 해하였다. 1955년 헤이그의정서에서는 바르샤바항공협약을 개정하여 ‘고의로서’(with intent to)와 ‘무모하게 그리고 결과를 인식하면서’를 책임제한사유로 채택하였다.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위 개념과 친하지 않으므로 대륙법이론 내에서 해석하여 중대한 과실로 보았다. 그러나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나 부작위는 손해발생의 위험을 현실적으로 인식할 것을 요소로 하므로 ‘과실’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과실은 행위자가 약간의 주의를 함으로써 결과발생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경우를 이르는바, 부주의로 결과발생을 예견하지 못한 점은 단순한 과실과 마찬가지이므로 위 책임제한배제사유를 중과실과 같이 받아들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므로 위 책임제한배제사유는 손해의 발생을 의도하였을 것은 요구하지 않는 점에서 고의와 다르고, 결과발생의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인식하였을 것은 요한다는 점에서 과실과도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손해발생의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대책을 취하지 아니한 데서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고의에 가까운 개념(그리하여 준고의라고 칭하자는 의견도 있다)이라고 본다. 나. 대법원 판결에 대한 평가 분실된 물건을 맡게 된 승무원으로서는 원고가 최종 목적지에 수화물로 부치려던 상황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원고가 최종 목적지 공항에서 찾으면 되는 것으로 착오하여 파리공항에서 물건의 인도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미리 인식하기 어려웠다고 보인다. 따라서 손해발생의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승객에게 수령을 최고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책임을 제한한 대법원의 판결은 타당하다. 그런데 원고는 밀라노 공항에 도착한 직후 화물의 소재에 관하여 피고 항공사에 곧바로 문의하였음에도 물건을 찾지 못하였다. 원고가 출국장에서 승무원에게 물건을 맡겼으므로 위 승무원은 화물고가 아닌 기내 다른 곳에 이를 보관하였을 것인데, 위 승무원은 원고가 물건을 수령하여 가지 않았음을 인식하였다면 분실한 화물을 처리하는 수화물처리센터에 맡겼어야 하고(항공사가 수화물위탁을 거절한 귀중품이므로 분실되었을 경우 승객이 소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인식가능하다), 만약 수화물처리센터에 맡겨지지 않았다면 원래 보관된 장소에 있어야 할 것이나 없어졌으므로 누군가가 무단으로 가져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항공운항의 특성상 항공기에는 항공사의 피용인이나 조업사 외에는 접근이 가능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원고는 피고 항공사가 파리 공항에서 수령을 고지하지 아니한 점에 근거하여서만 책임을 추궁하였다. 그런데 해당 항공편의 승무원이 승객이 수령하지 아니한 화물을 수화물처리센터에 맡기지 아니하고 방치한 점이나 항공사의 피용인이나 조업사 직원이 절취하였다는 점에 근거하여 책임을 추궁하였더라면 어떠한 판결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한편 프랑스, 독일의 판례에서는 항공운송인의 사용인에 의한 절취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책임제한을 배제한 것이 많다. 수하인으로서는 화물이 언제, 어디서, 왜 없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황에 비추어 절취추정이 가능하다는 정도로 입증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경우에는 책임제한을 배제하는 것인데 수하인이 할 수 있는 입증노력의 한계상 바람직한 판시태도이다. 항공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한 우리나라의 판례를 살펴보면, (1)수하인에게 확인하지 아니한 채 위조된 수입화물인도승낙서를 제출받고 화물을 인도한 사례에서 피고 항공사의 업무담당자들에게 손해발생의 개연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대판 2004. 7.22. 2001다58269), (2) 운항 중 항공기 ADI(항공기 위치, 진행방향, 속도, 고도에 관한 정보 제공장치)에 하자가 발견되어 중간 기착지에서 정비를 하였는데 중간 기착지에서 이륙 후 곧바로 항공기가 폭발한 사례에서, 기장 등이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 결과를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한 행위에 의하여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있다(대판 2005.9.29. 2005다26598). 하급심 판례로는 운송할 나무상자에 비하여 용량이 작은 지게차를 사용하여 지게차 운전자의 시야를 화물이 완전히 가리는 상태에서 신호수의 구두신호에 따라 작업하다가 화물이 파손된 사고에서 항공운송인의 책임제한을 인정하지 않았다(서울지판 1998. 4.21. 96나45817). 절취가 상당한 정도로 추정되는 사례에 관한 판례를 찾아볼 수 없는 등 항공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한 판례가 빈약한 편인데 향후 풍부한 판례의 축적을 기대한다.
2007-05-07
운송인의 법인격이 부인되면서 포장당책임제한이 배제된 사례
Ⅰ. 事實關係 한국의 을 회사가 선박소유자인 선박을 갑이 정기용선을 하였다.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운송인 갑은 甲板積(운송물을 선박의 갑판하의 안전한 선창이 아니라 갑판위에 적재하는 것)에 대한 약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송물을 갑판에 적재하게 되었고, 이 화물이 파도에 의한 손상을 입게 되었다. 한편, 갑은 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에 회사를 둔 편의치적회사로서 을 회사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다. 원고는 갑이 아니라 을 회사를 피고로 소를 제기하였다. 을 회사는 자신은 단순히 갑의 국내대리점일 뿐으로 손해배상청구는 운송인 갑을 상대로 제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편 상법상 향유하는 포장당책임제한의 이익을 향유하고자 하였다. 원고 화주는 포장당책임제한이 운송인 자신의 무모한 행위가 있으므로 책임제한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2003나481765)은 (1) 피고적격에 대하여 갑 회사는 피고 을 회사가 만든 종이회사로서 동일한 법인격처럼 운영되었고, 회사가 형식상 법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실질상 완전히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 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배후자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쓰이는 경우에는 회사는 물론 배후자에게도 회사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을 회사도 운송계약에 따른 채무를 부담한다고 하였다. (2) 운송인이 갑판적을 한 행위는 상법의 책임제한배제사유가 되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행위에 해당한다. (3) 운송인 갑회사의 대리 및 차장이 갑판적에 대한 결정을 하였고, 비록 차장의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가 실질적으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면 운송인 자신의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 (4) 따라서 운송인인 갑회사의 행위는 회사자신의 무모한 행위로서 상법 제789조의2 제1항 본문에 따라 운송인은 책임제한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을 회사는 대법원에 상고하게 되었다. Ⅱ. 大法院의 判示內容 대법원은 법인격부인여부에 대하여, “원심이 갑은 해상운송에서 운송인의 책임을 부당하게 회피할 목적으로 피고와 영업상 실질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형식상으로만 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소위 paper company)로서 피고와 동일한 법인격처럼 운영되어왔다. 이 사건 운송계약이 외관상 원고와 갑 사이에 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갑의 배후자인 피고는 갑과 별개의 법인격임을 주장하며 이 사건운송계약에 따른 채무가 갑에만 귀속된다고 주장할 수 없고, 피고역시 운송계약에 따른 채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상법 제789조의2의 제1항 단서의 포장당책임제한의 적용이 배제되는지에 대하여, 대법원은 “위 조항의 문언 및 입법연혁에 비추어, 단서에서 말하는 운송인 자신은 운송인 본인을 말하고 운송인의 피용자나 대리인 등의 이행보조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 단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겠으나, 법인 운송인의 경우에 있어, 그 대표기관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만을 법인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면, 법인의 규모가 클수록 운송에 관한 실질적 권한이 하부의 기관으로 이양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 단서조항의 배제사유는 사실상 사문화되고 당해 법인이 책임제한의 이익을 부당하게 향유할 염려가 있다. 따라서 법인의 대표기관뿐 아니라 적어도 법인의 내부적 업무분장에 따라 당해 법원의 관리 업무의 전부 또는 특정 부분에 관하여 대표기관에 갈음하여 사실상 회사의 의사결정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이사회의 구성원 또는 임원이 아니더라도 그의 행위를 운송인인 회사 자신의 행위로 봄이 상당하다. 같은 취지에서 원심이 이 사건 수출화물을 원고와의 합의 없이 임의로 갑판에 선적하도록 지시한 피고의 관리직 담당직원은 대외적으로 대표권을 갖는 갑의 대표기관은 아니더라도 이 사건 운송계약의 체결과 그 이행과정에 있어서 갑의 직무분장에 따라 회사의 의사결정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대표기관에 준하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사건 화물을 갑판에 선적한 행위는 운송인 자신의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조치는 기록에 비추어 정당한 것으로 수긍된다. 따라서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시하였다(판례공보, 2006, 1966면). Ⅲ. 評釋 1. 法人格否認論 영미에서 판례법으로 발전되어온 법인격부인론이 1988년 11월 22일의 대법원판결에서 처음으로 인정될 때의 사안도 편의치적선이 관련되어있다. 편의치적선이란 선박에 국적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자국 국민의 선박소유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지만, 단지 서류상의 연결만 있어도 국가가 자국의 국적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제경쟁에 노출되어있는 선주들이 싼 임금, 저렴한 세금 등을 목적으로 선박을 파나마 등 행정규제가 느슨한 국가에 선박의 국적을 옮겨둔다. 실무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편의 치적된 회사와 배후의 회사(실질 선주)가 동일하다는 점을 밝혀내는 것이다. 원심에서 법인격부인론을 적용하기 위하여 사용된 사실로서는 (i)사무실의 주소가 동일한 점, 직원들의 이메일 주소도 피고를 의미하는 sevenmt.co.kr로 동일하게 사용한 점 (ii)직원들의 월급명세서 및 근로소득원천징수 증명서의 사업자명의도 피고인 점 (iii)피고의 명칭 내지 갑회사의 명의로 된 운임청구서를 사용한 점 (iv)대표자 역시 동일인이라는 점 등이었다. 이는 법인격부인을 위한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2. 責任制限排除事由로서의 甲板積과 無謀한 行爲 해상법에서는 선주와 운송인을 보호하는 제도로서 책임제한제도가 있다. 연혁적인 이유와 함께 운송인의 안정적인 보험부보가 가능하도록 하고 이것이 낮은 운임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 유력하다. 현재의 추세는 이를 폐지하기보다는 책임제한액수를 증액하여 운송인이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게 하면서 책임제한이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유류오염손해배상제도가 좋은 예임). 한편, 운송인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책임을 운송물의 포장 수에 따라 일정한 액수로 제한할 수 있는 제도를 포장당 책임제한제도라고 한다. 그런데 운송인이 고의에 가까운 행위를 하여 운송물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까지 예외적인 책임제한 제도를 인정할 필요는 없다. 상법 제789조의2 제1항 단서는 운송인 자신의 고의 또는 그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책임제한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책임제한배제 여부에서 운송인 ‘자신’과 무모한 행위가 쟁점이 된다. 책임제한이 배제되는 사유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극히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갑판적은 선창이 아니라 갑판위에 적재되어 운송됨으로써 파도와 바람에 노출되어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통상 갑판 하에 운송되는 화물을 화주와의 합의 없이 갑판 상에 선적하게 되면, 손해발생에 대한 인식이 있는 무모한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각국의 판례와 학설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포장당책임제한 제도는 책임제한의 인정으로 얻는 운송인의 이익과 이에 비례한 운임의 인하가 상관관계를 갖도록 구조화되어있다.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책임제한의 배제는 극히 어렵도록 구성되고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장치로서 운송인의 과실은 제외되고 고의에 가까운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운송인은 책임제한을 할 수 없게 하였다. 또한 운송인의 사용인이나 대리인의 무모한 행위는 배제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하였고, 운송인 ‘자신’의 무모한 경우에만 책임제한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되었다(상법의 책임제한제도의 모법이 되는 1976년 선주책임제한조약 및 1968년 헤이그 비스비규칙이 이전의 조약에 비하여 이런 점들이 다른 점이다). 외국의 판례와 학설은 운송인 자신이라고 할 때 자신은 운송인의 분신(alter ego)에 해당하는 자라고 한다. 이는 회사의 임원에 해당하는 자라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원심판결에 의하면 대리와 차장이 갑판 적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다른 의사결정자들이 없는 경우에는 차장이라도 임원과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이 원심과 대법원의 판시내용이다. 이러한 경우에 항상 대표기관을 운송인 자신이라고 한다면 책임제한이 배제되는 경우는 없어 사실상 사문화될 우려가 있다고 대법원은 설시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제한제도의 입법취지가 선주 혹은 운송인은 책임제한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향유하게하면서 책임제한액수는 높여 화주를 보호할 것에 선주 혹은 운송인과 화주의 합의가 이루어져 발전되어 왔고, 따라서 책임제한의 배제는 가능하면 허용되지 않도록 입법화되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운송인의 책임제한배제가 인정된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에서도 이것은 확인된다. 3. 結 본 사안은 법인격부인론과 책임제한배제가 함께 인정된 사안이다. 법인격이 부인되는 회사는 종이회사일 것이므로 경영조직이 느슨할 것이므로 편의치적회사인 운송인의 법인격이 부인되면 운송인의 포장당책임제한권이 부인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운송인 자신으로 인정되는 범위를 일반적으로 차장에까지 확대 적용하여 책임제한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입법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법원도 차장급으로 운송인 자신의 범위를 일반적으로 확대한 것이 아니라, 차장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적어도 법인의 내부적 업무분장에 따라 당해 법원의 관리 업무의 전부 또는 특정 부분에 관하여 대표기관에 갈음하여 사실상 회사의 의사결정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자라는 조건을 붙여서 운송인 자신으로 본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상법상 운송인의 책임제한배제사유는 화주로서는 여전히 입증하기 어려운 사항으로 이해된다.
2007-03-26
항공운송에서 책임제한 배제사유
1. 사건의 내용 보잉 747-2B5F 항공기(이하 ‘항공기’)는 서울 김포공항에서 타슈켄트를 경유해서 영국 스텐스테드 공항으로 비행한 후 밀란공항과 타슈켄트를 경유해서 서울에 돌아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항공기는 1999년 12월22일 오전 타슈켄트를 출발하여 같은 날 15시경 스텐스테드에 도착였는데, 스텐스테드 도착 전 ADI(항공기 위치, 진행방향, 속도, 고도에 관한 정보 제공장치)에 하자가 발견되어 스텐스테드에서 정비를 하고 밀란공항으로 출발하였는데, 이륙 얼마 후 항공기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항공기 폭발로 운송 중이던 대부분의 화물이 손상되었고, 화주의 보험자인 그린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원고)가 화주에게 손실을 보상한 후, 피고 ㈜대한항공에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자 피고는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규칙의 통일에 관한 협약(이하 ‘헤이그 의정서’)에 기한 책임제한 항변을 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는 책임제한이 배제된다고 주장하였다. 2. 원심 및 대법원의 판결 가. 헤이그 의정서 제25조 전단에는 “제22조의 책임제한규정은 운송인, 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 손해를 가할 의사로써 또는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done with intent to cause damage or recklessly and with knowledge that damage would probably result) 작위 또는 부작위로부터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증명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라 함은 자신의 행동이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결과를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하는 의도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나. 책임제한 배제에 대한 입증책임은 책임제한조항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있고 그에 대한 증명은 정황증거로써도 가능하다 할 것이나, 손해발생의 개연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한 아무리 과실이 무겁더라도 무모한 행위로 평가될 수는 없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1다58269 판결 참조). 다. 항공기를 운행함에 있어서 기장 등의 과실은 중대하다고 할 것이나, 그렇다고 하여 인정된 사실만으로는 그들이 자신들이나 동료들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사고발생의 개연성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인식하였다고는 볼 수 없고, 오히려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출항승무원들은 이 사건 사고 직전까지도 사고발생의 위험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보여지므로 피고 소속 기장 등이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 결과를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한 의도적인 행위에 의하여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 3. 평석 가.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해석 헤이그 의정서 제25조는 ‘가해할 의사로써 또는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나 부작위’ 가 있는 경우 운송인의 책임제한을 배제하고 있다. 여기서 ‘가해할 의사로써 또는 부주의하게 또는 손해가 생길 개연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무모하게 한 작위나 부작위’는 바르샤바협약의 ‘willful misconduct’ 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그 의미와 관련하여 각국에서 상당한 논쟁을 야기하여 왔다. 대체로 willful misconduct는 일정한 결과의 발생을 인식하고도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는 경우, 즉 고의 내지는 고의적으로 그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그 행위를 하는 것으로서 행위자의 주관적 의사를 필요로 한다고 보고 있다. 헤이그 의정서 제25조와 관련하여, 사고발생지인 영국에서도 해석상 논란이 있어 왔고, 특히 ‘recklessly’와 ‘with knowledge that damage would result’를 하나로 볼 것인지 아니면 분리하여 볼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해석하든 전체적으로 볼 때 중과실에 주관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는 입장이 우세한데, 통상의 중과실의 개념과는 다른 개념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용어가 없으나, 영국 등에서와 같이 단순한 중과실의 경우가 아니라 중과실에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된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임제한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책임제한 배제사유에는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나. 대법원 판결에 대한 평가 승무원들의 행위에 비추어 볼 때, 승무원들에게 중대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주관적인 의사의 개입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지므로, 책임을 제한한 대법원의 판결은 타당하다. 또한, 책임제한 배제에 대한 입증책임은 배제를 주장하는 자에게 있고, 손해발생의 개연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한 아무리 과실이 무겁더라도 무모한 행위로 평가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도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심과 대법원은 책임제한과 관련하여 지나치게 승무원들의 입장에서만 다루어, 승무원들을 제외한 피고나 피고의 사용인들에 대한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헤이그 의정서는 책임제한과 관련한 운송상 주의의무의 주체를 ‘운송인, 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사고 전후의 사정을 기재한 영국항공조사위원회(AAIB)의 조사보고서에는, 피고를 비롯한 피고의 사용인들의 과실에 대한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었는데도, 원심과 대법원은 이들에 대한 과실판단을 하지 않고 있다. 즉, 본 건 사고는 (1) 피고의 항공운항과 관련한 전체적인 시스템 구축에 있어서의 과실 (2) 정비사들의 정비에 있어서의 과실 (3) 승무원들의 과실 (4) 입항 및 출항 조종사의 과실 (5) 비행 및 지상엔지니어의 과실 등이 경합하여 발생하였고, 특히 타슈켄트 현지에는 상근엔지니어도 배치하지 않는 등 운송에 필수적인 기본적인 운송시스템조차 구축되어 있지 않아 운항능력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허술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 바, 운송인인 피고 또는 사용인들은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 결과를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한 의도적인 부작위를 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원심과 대법원은 승무원들의 과실판단에만 치우친 나머지 주의의무의 주체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켜 판단한 잘못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는 심리가 깊이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7-01-15
FIO 특약과 선상도
1. 사건의 경과 가. 우리나라 수입자 X는 오스트리아 수출자로부터 철제화물을 수입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위 수입자의 의뢰로 신용장개설은행은 수익자를 수출자로 하여 C&F(운임포함조건) FO(하역비 화주부담) 등을 내용으로 하는 취소불능화환신용장을 발행하였다. 나. 원고회사는 위 수출자와 사이에 러시아의 바비노항에서 포항항까지 철제화물을 운송하기로 하는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수하인을 신용장개설은행, 통지처를 수입자 X로 한 선하증권을 발행하여 화물을 포항항까지 운송하였다. 다. 부두운영회사인 피고회사는 수입자 X로부터 하역작업 및 내륙의 자가보세장치장까지 보세운송을 의뢰받고 화물을 하역하여 부두에 일시 야적하였다가 위 수입자로부터 선하증권이나 화물인도지시서 등을 받지 아니하고 화물을 위 수입자의 자가보세장치장까지 보세운송하였고, 수입자가 이를 반출하여 소비하였다. 라. 원고회사는 선하증권을 소지하게 된 신용장개설은행으로부터 화물의 불법반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받아 그 판결금액을 지급한 다음 이 사건에서 피고회사를 상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공동면책에 따른 구상청구를 하였다. 마. 1, 2심 법원 모두 공동불법행위의 성립을 전제로 피고회사의 과실비율에 따른 구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2. 大法院의 판결요지 해상운송에 있어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은 수하인, 즉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함으로써 그 계약상의 의무이행을 다하는 것이 되고, 그와 같은 인도의무의 이행방법 및 시기에 대하여는 당사자 간의 약정으로 이를 정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만약 수하인이 스스로의 비용으로 하역업자를 고용한 다음 운송물을 수령하여 양륙하는 방식(이른바 '선상도')에 따라 인도하기로 약정한 경우에는 수하인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가 운송물을 수령하는 때에 그 인도의무의 이행을 다하는 것이 되고, 이 때 운송인이 선하증권 또는 그에 갈음하는 수하인의 화물선취보증서 등과 상환으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임의로 선하증권상의 통지처에 불과한 실수입업자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로 하여금 양하작업을 하도록 하여 운송물을 인도하였다면 이로써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는 이미 성립하는 것이고,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하역업자가 운송인의 이행보조자 내지 피용자가 된다거나 그 이후 하역업자가 실수입업자에게 운송물을 전달함에 있어서 선하증권 등을 교부받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별도로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3. 평석 가. 문제의 제기 FIO 특약이란 “Free In & Out”의 약어로 일반적으로 항해용선계약에서 용선자가 자체의 비용으로 선적 및 양하작업을 수행하는 조건을 말한다(항해용선계약의 Gencon 표준약관이 대표적이다). 대상사건에서 대법원은 FIO 특약에 의하여 하역업자가 화물을 수령하는 때에 ‘선상도’가 이루어졌다고 하고 있어, FIO 특약과 운송인에 의한 화물인도의무의 이행 또는 그 인도시점의 관련성이 주목되고 있다. 나. FIO 특약의 내용, 그 효력과 운송물인도와의 관련성-대상판결의 문제점 상법 제788조 제1항은 운송인의 운송물의 수령, 선적, 적부, 운송, 보관, 양륙과 인도에 관한 주의의무를 규정하고 상법 제790조 제1항에서 위 제788조의 규정에 반하여 운송인의 의무 또는 책임을 경감 또는 면제하는 당사자간의 특약은 효력이 없다고 하고 있다(선하증권에 관한 국제협약인 헤이그/비스비규칙이나 미국해상운송법도 같은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원의 판례는 없으나 다수의 미국연방항소법원은 미국해상운송법 제3조 제2항에 규정된 운송인의 의무는 위임불가능한(nondelegable) 의무로서 FIO 특약은 그러한 의무를 화주에게 전가하여 운송인의 의무를 면제하는 것으로 같은 조 제8항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한다. 영국의 경우, 최고법원인 귀족원(House of Lords)은 The Jordan II(2005) 사건에서 헤이그/비스비 규칙 제3조 제2항은 운송인이 절대적으로 인수하여야 할 서비스의 범위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운송인이 인수한 서비스의 이행상 주의의무의 기준(“carefully and properly")를 통일적으로 규정하고자 취지의 규정이라는 이유에서 헤이그비스비규칙의 제규정에 반하지 아니하고 유효하다고 보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FIO 특약은 운송인과 송?수하인 사이에 운송용역의 조건이 아니라 그 범위를 한정함에 불과한 것으로 제790조의 규정에 실질적으로 위반되지 아니하여 유효라는 하급심판결들이 있다. 무효설에 의할 경우 FIO 특약은 아무런 법률상 효력이 없고 여전히 운송물의 양륙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운송인이 부담하게 된다면 양륙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법률상 인도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의 판시내용과 같이 운송물이 선창을 떠나 양륙이 개시되는 때에 곧바로 인도가 일어난다고 보게 되면 법률상 인도의무를 이행하려는(또한 인도를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서 양륙의무를 이행하여야 할 법적 이익이 있는) 운송인으로서는 의무이행행위가 곧 불법행위가 되는 불합리한 입장에 처해질 수 있다. 유효설의 경우에도,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용선자 또는 수입자에 의하여 하역작업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운송인은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한 관계에서 여전히 법률상 인도의무를 부담하게 되므로 하역작업이 개시되는 때에 곧바로 인도가 일어난다고 보게 되면 인도를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서 양륙이 선행되어야 할 법적 이익이 박탈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따라서 FIO 특히 양륙 및 인도와 관련되는 FO(Free Out) 계약조건의 구체적 내용을 확정하고 그 효력을 검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사실관계에서 설시한 FO 계약조건의 내용이 비용부담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나아가 의무와 책임까지도 수하인에게 이전한 것인지에 관해 확정되지 아니하고, 또한 운송물의 매매계약 또는 신용장상의 조건을 곧바로 운송계약의 내용으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신용장상에 기재된 C&F FO 조건만을 근거로 “운송물을 하역하는 것은 운송인의 의무가 아니라 수하인의 의무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FIO 특약의 유효성을 당연히 전제한 것으로 판단되나 그 근거를 생략하고 있고 운송물인도와의 관련성에 관한 분석도 찾기 어려워 판결이유의 설득력이 우선 반감되고 추후 유사한 사례에서 선례로서의 지침을 제공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 FIO 계약조건에서의 운송물의 인도시점 (1) 수입화물의 인도시점(=불법행위의 성립시점)에 관한 종래의 판례 태도 모든 수입화물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박으로부터 하역작업을 거쳐 반드시 보세구역에 장치하게 되므로(관세법 제155조 내지 제157조), 해상운송인이 수하인에게 화물을 인도하기까지 하역, 보세장치장 입고, 통관 및 반출 등의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어서 해상운송인이 화물을 인도하고 계약상의 의무를 벗어나는 시기가 언제인가가 논란이 되어 왔다. 대법원은 종래 운송물의 인도시점과 관련하여 화물의 인도는 사법상의 개념으로서 그 화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의 이전”이라는 사실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하여 왔다. 보세구역에 장치되어 있는 화물에 관하여 현실적으로 보세구역의 종류에 따라 관세행정목적상 세관의 감독과 규제의 정도가 다르므로 운송물을 일반보세장치장에 입고하는 경우와 자가보세장치장에 입고하는 경우, 즉 하역된 화물이 누구의 점유하에 들어가는가에 따라 그 인도시기를 달리 보아 왔다. 일반보세장치장에 입고되는 화물은 출고시 운송인의 화물인도지시서등을 제출받는 관행을 근거로 수입자와는 별개로 운송인과 사이에도 중첩적 임치계약이 존재하므로 선하증권상의 통지처(또는 그 지정하역회사)에 의하여 하역되고 창고에 입고된 사실만으로는 화물이 운송인의 지배를 떠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화물의 인도시점은 보세장치장에서 출고된 때로 보고, 선측에서의 하역작업에 의하여 운송물의 점유가 하역회사에게 이전된 때가 아니라고 보았다. 한편, 수하인이 하역업자를 고용하여 운송물을 하역하고 이를 자가보세장치장에 입고한 경우 운송물이 수입자의 이행보조자에 의하여 수령되어 수입자의 보관하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하역업자가 화물을 수령하는 순간(하역시)에 운송물은 수입자의 지배하에 들어가 그 인도가 있었다고 본다. 결국, 대법원은 종래 운송물에 관한 ‘사실상의 지배의 이전’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해 어떤 특정 시점의 당사자의 인식이나 행위가 아니라 사후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양하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이해된다. (2) FIO 특약은 ‘선상도’의 약정인가?-양륙과 인도의 구별 대상판결이 인도의무의 이행방법 및 시기에 대하여는 당사자간의 약정으로 정할 수 있다고 한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판시와 같이 수하인이 운송물을 선상에서 수령하여 ‘양륙’하기로 하는 약정, 즉 FIO 특약이 곧 운송물을 선상에서 ‘인도’하기로 하는 약정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심각한 의문이 있다. 왜냐하면 양륙과 인도가 개념상 구별될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대상판결의 선고 후에도 일관되게 화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가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운송물의 인도 여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거의 확립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설사 FIO 특약에 따라 실수입자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가 양하작업을 완료하였다고 하더라도 화물이 ‘일반보세창고’에 입고된 경우라면 여전히 화물은 운송인의 지배하에 있게 되므로 FIO 특약에 따라 화물이 선상에서 수령되어 양하되었다고 하더라도 양하 당시에 선상에서 인도(‘선상도’)가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대상판결이 ‘수입자에 의한 양륙 이후에도 운송물에 대한 운송인에 의한 사실상의 지배와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즉 화물이 누구의 점유하에 들어가는지와 무관하게 FIO 특약에 의하여 선상에서 양하가 개시되는 시점에 인도가 이루어진다’라는 취지라면 이는 지금까지의 대법원의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의하여 판례를 변경하였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 (3) 대상사건에서 운송물의 인도시점 대상판결은 실수입업자의 의뢰에 따라 하역회사에 의해 양하된 다음 부두에 일시 보관된 다음 보세운송되어 실수입업자의 자가보세장치장으로 입고된 사안이다. 종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화물에 대한 보세운송 신고를 할 수 있는 자는 화주 또는 그 위임을 받은 보세운송업자뿐이므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보세운송 과정 중의 화물은 화주의 사실상의 지배 아래에 있다. 따라서 대상 사건에서 인도시점은 다음의 두 시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첫째, 아무리 늦어도, 보세운송을 위하여 부두에서 반출된 때이거나 둘째, 하역회사가 선상에서 화물을 수령하여 양하를 개시할 때이다. 만약 첫째의 경우라면 하역회사의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할 여지가 있는데, 화물이 언제 운송물이 운송인의 지배를 떠났다고 볼 것이냐에 관한 판단에 달려 있다. 이는 즉, 운송물을 양하하여 부두에 일시보관중인 하역회사와 운송인의 관계가 어떠한지, 즉 하역회사가 운송인을 위하여 운송물을 보관하고 있는 지위에 있는지 여부에 좌우된다. 화주의 의뢰를 받은 하역업자가 화물을 양하하여 부두에 보관하게 되는 경우라도 운송인과 사이에 임치관계나 보관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운송인은 하역업자를 통하여 운송물을 간접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항항에서 그 화물의 반출시 운송인의 보세운송동의서나 화물인도지시서를 제출받는 부두운영실태나 관행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부두에 보관된 화물에 대한 운송인의 일정한 통제가 이루어져 화물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때 앞서 본 중첩적 임치계약관계 성립의 근거가 갖추어졌다고 볼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소송과정에서 사실조회 등에 의해 입증되어야 할 사실의 문제로 볼 수 있는데, 대상사건의 포항항 제8부두는 보세구역이 아니어서 하역회사의 일반보세창고가 없었고, 하역된 화물은 즉시 다른 곳으로 운송되거나 그대로 적치되어 일시보관된 후 다른 곳으로 운송되기도 하여 왔다는 점에 비추어 위와 같은 관행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대상사건에서 부두에 보관된 화물에 대하여 달리 명시적인 보관위임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이상 하역회사와 운송인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관계도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하역이 개시된 이후에는 화물이 운송인의 지배를 떠나 인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상판결이 “하역회사인 피고가 보세운송을 함에 있어 실수입업자로부터 선하증권등을 교부받는 관행이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그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하역업자는 실수입자의 이행보조자로서 양하시점에 운송인으로부터 운송물을 수령하였을 뿐 원고의 이행보조자 내지 피용자에 해당하지 않다고 본 것은 정당하다. 라. 결론 결론적으로 ‘선상도’가 이루어졌다고 본 대상판결의 구체적 결론은 지지될 수 있으나 판결이유의 설시에 있어서 이론적 근거나 분석이 미흡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대상사건에서 화물은 부두에서의 반출시가 아니라 선상에서의 하역시에 실수입자에게 불법적인 인도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FIO 특약에 따른 약정의 효과라기보다는 운송인이 하역시점에 운송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잃고 운송물의 점유가 실수입업자에게 이전된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적?양하작업의 비용과 책임에 관한 FIO 특약을 ‘인도(선상도)’에 관한 약정으로 등치시켜 FIO 특약이 있으면 하역을 위하여 실수입자의 하역업자가 운송물을 수령하는 때에 곧바로 운송물의 인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단정하는 듯한 설시를 하고 있어 실무상 혼란이 초래될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대상판결이 운송물의 인도시점에 관한 종래 대법원의 견해를 변경하거나 그것과 크게 배치되는 것으로 확대해석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2006-11-06
포장당 책임제한
1. 사실관계 해상운송인인 피고 흥아해운은 삼보컴퓨터(‘삼보’)와의 사이에 개인용 컴퓨터 2,496대 (‘이 사건 화물’)에 관하여, 송하인인 삼보가 컨테이너에 이 사건 화물을 직접 컨테이너에 집어넣고 (적입) 계량하는 조건 (Shipper Load Stowage & Count)으로 부산항에서 일본 요코하마항까지 운송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피고는 선하증권을 발행함에 있어 삼보가 제시한 선적의뢰서에 따라 ‘컨테이너 또는 포장의 수’ 란에 ‘40피트 컨테이너 4개 (104 팰리트)’, ‘포장의 종류 및 화물의 내역’ 난에 ‘송하인이 화물을 집어넣고 배치하고 계량하며 송하인에 의하면 화물 104 팰리트 (2,496 유니트)가 실렸다고 함’ 이라고 기재하였다. 삼보는 모니터, 키보드를 포함하여 컴퓨터 한 세트마다 1개의 종이상자 (1 유니트/카톤)로 포장한 다음, 운송의 편의 등을 위하여 1개의 팰리트 위에 24개의 종이상자를 올려놓은 후 (한 층에 네 상자씩 여섯 층을 쌓았다) 사방에 모서리 보호용 섬유판을 대고 투명한 비닐로 감싼 다음 1개의 컨테이너 당 26개의 팰리트씩 4대의 컨테이너에 나누어 적재하였다. 그런데 운송 도중 1개의 컨테이너 안에 든 화물 전체 (26팰리트=624상자)가 침수되어 이 사건 화물의 적하보험자인 원고 동부화재해상보험이 선하증권 소지인에게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였다. 원고는 자신의 손해를 보전받기 위하여 운송인에게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2심 서울지법에서 청구액의 극히 일부에 대하여만 승소 (사실상 패소)하였으나 3심에서는 청구액의 훨씬 많은 부분에 대하여 승소하였다. 2. 원심 판결 원심 서울지법 2002.7.4. 선고 2001나 16110판결은 상법 제789조의2에 의한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제한의 기준이 되는 ‘포장’이 무엇인지 결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객관적 증거자료는 선하증권상에 나타난 포장의 기재 특히 포장의 수라고 보았다. 그리고 선하증권의 작성경위 및 기재 내용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화물의 포장단위는 선하증권의 ‘포장의 종류 및 화물의 내역’ 란에 ‘송하인이 이 사건 화물을 직접 컨테이너에 집어넣고 계량하는 조건’ 이라는 유보문구와 함께 기재된 유니트라기 보다는 선하증권의 ‘컨테이너 또는 포장의 수’ 란에 기재된 팰리트라고 보았다. 즉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손상된 팰리트의 숫자에 상응한 13,000 계산단위 (=26 팰리트x500 계산단위) 로 제한된다고 판단하였다. 1계산단위는 현재 약 1.5달러이므로 13,000계산단위는 약 2천만원 상당이다. 3. 대법원 판결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하였다. 상법은 제789조의2에서, “제787조 내지 제789조에 의한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당해 운송물의 매 포장당 또는 선적단위당 500 계산단위로 제한”하되, 그 포장 또는 선적단위의 수와 관련하여서는 “컨테이너 기타 이와 유사한 운송용기가 운송물을 통합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경우 그러한 운송용기에 내장된 운송물의 포장 또는 선적단위의 수를 선하증권 기타 운송계약을 증명하는 문서에 기재하는 때에는 그 각 포장 또는 선적단위를 하나의 포장 또는 선적단위로 본다.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운송용기 내의 운송물 전부를 하나의 포장 또는 선적단위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포장’이란 운송물의 보호 내지 취급을 용이하기 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서 반드시 운송물을 완전히 감싸고 있을 필요는 없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포장인지는 운송업계의 관습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선하증권의 해석상 무엇이 책임제한의 계산단위가 되는 포장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선하증권에 표시된 당사자의 의사를 최우선적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선하증권에 대포장과 그 속의 소포장이 모두 기재된 경우에는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소포장단위에 해당하는 소포장을 ‘포장’으로 보아야 한다. 비록 ‘포장의 수’ 란에 최소포장단위가 기재되어 있지 아니 하더라도 거기에 기재된 숫자를 결정적인 것으로 본다는 명시적 의사표시가 없는 한 선하증권의 다른 난의 기재까지 모두 살펴 그 중 최소포장단위에 해당하는 것을 당사자가 합의한 책임제한의 계산단위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포장의 수와 관련하여 선하증권에 ‘Said to Contain’ 또는 ‘Said to Be’ (송하인에 의하면… 이 들어있다고 함 또는… 라고 함)와 같은 유보문구가 기재되어 있더라도 포장당 책임제한 조항의 해석에 대하여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이 사건 선하증권의 ‘포장의 종류 및 화물의 내역’ 란에 기재된 유니트는 운송물의 개체 수를 세는 단위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포장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포장의 수’란의 옆에 기재된 봉인번호 란에 ‘팰리트 번호 1-104, 종이상자 번호 1-2,496’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에서 유니트(종이상자)의 숫자가 기재된 것은 당사자의 의사해석상 이를 포장의 숫자로 볼 수 있다. 그 숫자 대신에 팰리트의 숫자가 ‘컨테이너 또는 포장의 수’란에 컨테이너의 수와 함께 병기되어 있더라도 거기에 기재된 숫자를 다른 난의 기재보다 우선하여 결정적인 것으로 본다는 명시적 의사표시가 있었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이상자의 숫자가 최소포장단위의 숫자로서 책임제한의 계산단위가 된다. 대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금액은 624상자x500계산단위= 312,000 계산단위 약 4억 7천만원 상당이다. 4. 평석 서울지법은 손상된 팰리트의 숫자를 포장으로 본 반면, 대법원은 손상된 유니트의 숫자를 포장으로 보아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정하였다. 참고로 포장의 정의에 관하여 미국법원이 수립한 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하증권에 기재된 당사자간 합의내용이 가장 중요하다. 둘째, 포장의 의미는 융통성있게 해석하여야 하며, 반드시 운송물을 밀폐하거나 운송물 전부를 내포하지 않더라도 운송상 취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운송물 다발이면 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컨테이너 속에 적재된 포장 또는 선적단위의 내용 및 수량이 공표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포장으로 보아야 한다. 넷째, 선하증권에 당사자간의 특별한 약정이 기재되어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컨테이너를 포장으로 본다 (Schoenbaum, Admiralty and Maritime Law, 603-611쪽(1994).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위 원칙 중 특히 셋째 원칙을 수용하여 최소포장단위를 포장으로 보아 책임제한의 계산기준으로 삼았는 바, 이는 타당한 것으로 보이며 국제해상법의 조류와도 부합하는 선진적인 판결로 생각된다. 5. 입법론/상법개정안 한국해법학회가 해상법개정문제연구회를 두어 2001.9.28.부터 2004.3.27.까지 작업하여 개정시안을 작성하였는바, 개정시안에 의하면 상법 제789조의2 제1항을 “제787조 내지 제789조의 규정에 의한 운송인의 손해배상의 책임은 당해 운송물의 매포장당 또는 선적단위당 666.67 계산단위 또는 총중량 1킬로그램 당 2계산단위의 금액중 큰 금액으로 이를 제한할 수 있으며….” 로 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국해법학회 해상법개정연구회, 해상법(상법 제5편) 개정문제연구보고서, 15-17쪽 (2004)). 우리 상법이 1991년 개정시 전반적으로 1968년 헤이그-비스비규칙을 받아들이면서도, 포장당 책임제한만은 이해관계자의 요청에 의하여 포장당 500계산단위로 제한하고 중량당 책임제한을 삭제함으로써 세계에서 예가 없는 특이한 입법을 하였다. 이번에 이를 바로잡아 헤이그-비스비규칙에 충실하고 국제해상법의 조류에 따라가기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법무부가 상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해상법 개정을 심의중인 바 여기에서도 한국해법학회 개정시안을 수용하여 포장 중량병용방식을 채택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해상법의 국제적 통일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국제조약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부 조항만을 임의로 변형시켜 받아들이는 것은 지양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2005-04-18
1
2
3
4
5
bannerbanner
주목 받은 판결큐레이션
1
[판결] 대법원 "일용근로자 월 근로일수, 22일 아닌 20일"
판결기사
2024-04-25 11:44
태그 클라우드
공직선거법명예훼손공정거래손해배상중국업무상재해횡령조세노동사기
사해행위취소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는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을 할 때 납부하는 등록면허세의 과세표준 및 이와 관련한 문제점과 개선방안
김창규 변호사(김창규 법률사무소)
footer-logo
1950년 창간 법조 유일의 정론지
논단·칼럼
지면보기
굿모닝LAW747
LawTop
법신서점
footer-logo
법인명
(주)법률신문사
대표
이수형
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년 8월 24일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신동진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층
발행일자
1999년 12월 1일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인터넷 법률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인터넷 법률신문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