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기업 등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납부자들에게 재산세를 공제해줄 때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적용해 환급액을 줄이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공정시장가액 비율은 국세청이 과다한 공제를 줄이겠다며 내놓은 새로운 계산법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종부세 납주자들의 세금 경정청구 등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행정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KT와 한국전력, 신세계, 국민은행 등 25개 기업과 단체가 각 관할 세무서장을 상대로 "중복 과세된 200억원의 종부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종합부동산세부과처분등취소소송의 상고심(2012두2986)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지난달 23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같은 재산에 재산세와 종부세를 이중으로 부과하지 않기 위해 종부세법과 시행령 등 관련 규정을 만들었는데도, 국세청은 종부세법 시행규칙 별지 제3호 서식상에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적용하는 방식의 계산법을 따로 만들어 적용하는 방식으로 시행령 등 관련 법령이 정하고 있는 것보다 공제되는 재산세액 범위를 위법하게 축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제되는 재산세액은 초과금액에서 재산세율만 따지면 되지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따져 80%만 산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종부세법과 시행령 등 관련 규정은 이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재산세를 공제하려는 것이지 공제되는 재산세액의 범위를 축소·변경하려는 취지가 아닌데도, 국세청이 위법하게 산정해 부과한 세액이 적법하다고 본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일정 금액을 초과(주택 6억원, 종합합산토지 5억원, 별도합산토지 80억원)하는 주택·토지에는 재산세와 종부세가 모두 부과된다. 하지만 중복 과세 논란이 잇따르자 국세청은 2009년 종부세 과세 부분에 대해 이미 낸 재산세를 공제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하지만 재산세를 단순히 공제해 준 것이 아니라 여기에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적용해 80%만 공제해주면서 문제가 생겼다. 공정시장가액은 해당 재산이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을 고려해 공시가격의 80%만 계산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100억원짜리 부동산 소유자에게 종부세 20억원을 부과했다면 나중에 이에 대한 재산세를 공제해 줄 때 20억원에 0.8을 곱한 16억원을 기준으로 공제금액을 계산했다는 뜻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 취지에 따르면 소송을 낸 25개 기업과 단체는 모두 180억여원을 환급받게 된다. 추가 소송도 예상된다. 이미 종부세 이중과세 관련 소송은 하급심에서만 50여건이 진행중인데 소송가액이 무려 9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세청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20여만 명에게서 모두 6조7600억원의 종부세를 걷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