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재외국민보호'를 천명한 헌법규정이 있더라도 보호방법을 규정한 구체적인 법률이 없으면 정부에게는 특정한 방법으로 재외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없다는 헌재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재외국민보호라는 헌법정신을 따르지 않고 있는 정부에게 오히려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韓大鉉 재판관)는 지난달 30일 석성기씨(79·일본 요코하마 거주) 등 5명이 "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의 애매한 규정으로 인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보상을 위한 중재요청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낸 중재요청불이행위헌확인 헌법소원(98헌마206)을 각하했다.
[발단]
석씨등은 일제시대 징용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갔다 부상당한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와 그 유가족들로서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가 65년 발효된 한·일청구권협정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는 것은 일본 정부가 "65년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이들에 대한 보상이 이미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청구권협정 때 이들에 대한 보상은 제외됐기 때문에 보상책임은 일본측에 있다"고 주장하며 보상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석씨등은 양국정부가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내려달라며 우리 정부에 중재를 요청했으나 정부가 이를 외면하자 헌법소원을 냈었다.
[결정내용]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과 같은 행정권력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구체적으로 규정돼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나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허용된다"며 "정부에게는 한·일협정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양국의 분쟁을 중재라는 특정 수단에 회부해야할 의무가 없는 만큼 청구인들에게도 이를 청구할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헌재는 행정권력의 부작위와 관련한 89헌마163 사건 등에서 취했던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 재정부담이 따르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도 위임법률이 없으면 공권력주체에게 작위의무가 없다는 견해를 견지한 것이다.
[반응]
석씨등의 대리인인 崔鳳泰변호사(대구회)는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헌법에 명문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에게 법적인 의무가 없다고 한다면 이는 법률이 헌법을 형해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