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에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당시 만취해 필름이 끊긴 블랙아웃(black-out)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주취감경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나왔다. 당시 만취상태였다고 보기 어렵고, 만취 상태였더라도 음주로 인한 블랙아웃 증상은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일 뿐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상태로 보기 힘들어 필요적 감경 사유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산지법 형사6부(재판장 김동현 부장판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A(24)씨에게 최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을 명령했다(2017고합446).
A씨는 지난 7월 6일 오전 7시께 부산의 한 모텔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던 B(37·여)씨의 방에 침입해 B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A씨는 자신이 투숙 중인 방에서 나와 복도를 약 15m 걸어간 뒤 잠기지 않은 B씨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가 B씨를 간음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가 놀라 불을 켜자 A씨는 뒤늦게 무릎을 꿇고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만취해 저지른 일이라며 선처를 요구했다.
재판부는 "모텔 내부 폐쇄회로(CC) TV에 찍힌 A씨의 거동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성폭행 과정에서도 B씨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며 "만취 상태로 보이지 않았다는 모텔 업주의 진술 등을 고려하면 A씨는 심신장애 상태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A씨가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더라도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범한 경우 법원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20조에 따라 형의 감면에 관한 형법 제10조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고, A씨가 주취상태를 자초한 이상 심신미약에 따른 형의 감경을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범행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A씨의 주장은 일시적 기억상실증인 블랙아웃 증상에 불과하다"며 "블랙아웃은 알코올이 임시 기억 장소인 해마세포의 활동을 저하할 뿐, 뇌의 다른 부분은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므로 심신장애 상태로 보기 힘들다"고 판시했다.
다만 "A씨가 벌금형을 초과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최근 조두순 사건과 관련해 '주취감경 폐지'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관련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은 지난 6일 청와대 일일 SNS 라이브인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의 페이스북·유튜브 계정을 통해 "현행법상 주취감형이라는 규정은 없지만 때에 따라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로 인한 감경규정이나 작량감경 규정을 적용해 음주를 이유로 형을 감경하는 경우가 있다"며 "해당 조항은 음주로 인한 감경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일반적인 감경사항에 관한 규정이어서 그 규정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