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공판중심주의'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지난해 공판주의의 큰 방향이 정해지고 법원 내부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졌으므로 이제는 내실을 다질 때가 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6일 사상 처음으로 전국 형사항소심 재판장 회의를 열었으며 26~28일에는 사법연수원에서 형사재판장 연수를 개최했다. 또 5일에는 전국의 수석부장판사들이 대법원에서 모여'공판조서의 정확한 기재를 위한 방안'등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최근 공판중심주의와 관련한 의미있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1심재판 강화된다= 전국 고법부장 5명과 지법부장 18명 등 항소심 재판장 23명은 전국 형사항소심 재판장 회의에서 "공판중심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1심 재판의 강화가 필수적"이라는데 인식을 함께 했다. 이를 위해 현재 지나치게'속심'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항소심 구조에'사후심'적 요소를 강화해 나가기로 하고, 1심 판결과 증거를 살펴 눈에 띄는 하자가 없는 사건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1심 증인의 재신문을 자제하는 방안으로 실무를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데 의견 접근을 이뤘다.
대법원은 이번 회의를 바탕으로 공판중심주의 시행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의 강화는 공판중심주의와 연결된다. 공판중심주의 재판이 정착되면 재판결과에 불복할 확률은 그만큼 줄어든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판중심중의에 의한 1심 재판은 존중될 수 밖에 없다. 항소심에서 양형에 영향을 줄만한 새로운 증거가 없는한 1심 재판의 양형은 그대로 존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1심에서 공판중심주의가 제대로 이루어 진다면 항소심에서 1심과 다른 양형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공판중심주의 재판이 조기에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지나치게 높은 파기율은 1심 공판심리의 형해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폭의 이론'에 따라 1심의 판결이 일정한 폭을 벗어나지 않는 한 파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실무가 운영돼야 한다는 점에도 공감했다. 이는 지난해 서울고법 등 전국 5개 고법에서 파기한 사건 2,291건 중 1,740건이 1심 형량을 변경했으며, 18개 지방법원 항소부의 경우도 총 파기사건 1만3,731건 중 양형 변경을 이유로 파기한 건수가 1만32건에 달해 양형 변경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양형변경률은 고등법원의 경우 36.9%이고 지방법원 항소부의 경우 34.8%에 달해 미국 연방법원의 0.9~1.7%이나 일본의 1.5~1.8% 및 프랑스(경죄사건)의 3.8%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항소심 재판장들은 또 이유없는 항소의 경우 미결구금일수 중 일부를 판결선고전 구금일수에 산입하지 않도록 하고 있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를 적극 활용해 피고인들이 항소를 남발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데도 인식을 함께했다.
장윤기 법원행정처장은 "구두주의와 직접심리주의를 요체로 하는 공판중심주의가 1심에서 충실하게 구현되도록 하기 위해 항소심은 원칙적으로 1심 증거가치 판단을 존중해야 하고, 상소심에서의 감형사유를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온정주의적 양형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판주의 강화판결도 잇따라= 대법원은 최근 공판중심주의를 견인하는 의미있는 판결들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지난 1월25일 마약혐의로 기소된 한모(56)씨 등 2명에 대한 상고심(2006도7342) 선고공판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2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실질적 진정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비록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해진 때에도 증거능력이 부여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판결은 2004년 12월 '검사의 피신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진정성립 뿐만 아니라 실질적 진정성립까지 인정될 것이 요구된다'고 밝힌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학계와 실무계에서 형소법 제312조1항 단서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피고인이 공판기일에 원진술자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조서를 증거로 하는데 동의했더라도 원진술자에 대한 반대신문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는 그 조서를 주된 증거로 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판결(☞2005도9730)을 내렸었다. 원진술자의 법정 출석과 진술에 우월한 증명력을 부여하고, 원진술자의 법정출석 및 반대신문이 이뤄진 경우의 조서와 그렇지 않은 조서의 증명력에 차이를 인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