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명의수탁한 사람이 허락없이 근저당권을 설정했다가 부동산을 팔았다면 근저당 설정 행위와는 별개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면 횡령죄가 성립하고 그 후에 매각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종래 대법원 판결은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1일 명의신탁받은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뒤 매도한 혐의(횡령)로 기소된 안모(66)씨에 대한 상고심(☞ 2010도10500)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나중에 이뤄진 처분행위가 이미 성립한 횡령죄에 포함되는 것을 넘어 먼저의 처분행위로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위험을 추가함으로써 법익침해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키거나 먼저 이뤄진 처분행위와는 무관한 방법으로 법익침해의 결과를 발생시켰다면 이는 이미 성립된 횡령죄에 의해 평가된 위험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타인의 부동산을 보관 중인 자가 불법영득의사를 가지고 그 부동산에 근저당권설정등기를 경료함으로써 일단 횡령행위가 기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 후 부동산을 매각함으로써 기존의 근저당권과 관계없이 법익침해의 결과를 발생시켰다면 이는 임의경매에 의한 매각 등 근저당권 실행으로 인해 당연히 예상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새로운 법익침해의 위험을 추가한 것이므로 불가벌적 사후행위로 볼 수 없고,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인복, 김신 대법관은 "횡령행위에 의한 법익침해의 결과나 위험은 불법영득의사가 외부에서 인식될 수 있는 경우에 이미 그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 전체에 미치게 되므로, 그 이후 이뤄지는 추가적 법익침해의 결과나 위험은 법논리상 불가능하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어 "먼저 이뤄진 근저당권 설정을 배임행위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매도행위를 처벌할 수도 있으므로, 원심은 근저당권 설정이 횡령인지 아니면 배임행위에 그친 것인지를 추가로 심리판단한 후 유무죄를 따져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종중 총무로 일하던 안씨는 1995년 10월 종중 소유의 파주시 적성면 일대의 답 5000여㎡를 보관하던 중 같은해 11월과 2003년 4월 채권최고액 1400만원과 75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안씨는 이 부동산을 2009년 2월 부동산을 통해 1억9300만원에 팔아 기소됐다.
안씨는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뒤에 매도한 행위는 이미 횡령이 이뤄진 다음의 처분행위이므로 처벌할 수 없는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1,2심은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횡령죄 성립 이후 횡령물의 처분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불가벌적 사후행위' 개념을 명확히 해 일반의 상식에 부합하는 결론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