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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평석
판결전문
지목변경신청반려의 법적 성질
Ⅰ. 사실관계 (1) 원고(이00)는 2001. 11. 28. 경기도 화성시장에게 "화성시 봉당읍 소재 토지의 지목을 田에서 대지로 변경해 줄 것"을 신청하였으나, 신청이 반려되었다(2002. 1. 9). 화성시장이 “원고에 대하여 현재 이용현황대로 토지 분할측량 후 토지분할 및 지목변경을 신청하도록 2차에 걸쳐 보완요구를 하였으나, 원고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청반려의 이유가 되었다. (2) 원고는 2002. 1. 24. “지적현황을 점유자별로 정리하여 예상되는 분쟁을 예방하고 토지의 효용을 높이고자 이 사건 지목변경신청을 하였음에도 화성시장이 위법?부당하게 이 사건 지목변경신청을 반려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경기도지사에게 이 사건 반려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하였다. (3) 피고(경기도지사)는 2002. 3. 4. 원고의 위 행정심판청구를 각하하는 행정심판의 재결(이하 "재결"이라 한다)을 하였는데, “지적도 등 지적공부에 일정한 사항을 등재하거나 등재된 사항을 변경하는 행위는 행정사무집행의 편의와 사실증명의 자료로 삼기 위한 것으로, 화성시장이 이 사건 지목변경신청을 반려하였다고 하여도 이는 행정심판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되었다. (4) 원고는 이 사건 행정심판의 재결청인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위 "재결"의 취소소송을 수원지방법원에 제기하였다. Ⅱ. 제1심법원판결(수원지법 2002. 9. 18, 2002구합2018)의 요지 행정소송법 제19조에 의하면, 취소소송은 행정청의 원처분을 대상으로 하되, 다만 ‘재결 자체에 고유한 위법이 있음을 이유로 하는 경우’에 한하여 행정심판의 재결도 취소소송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여기에서 말하는 '재결 자체에 고유한 위법'이란 재결청의 권한 또는 구성의 위법, 재결의 절차나 형식의 위법, 내용의 위법 등을 뜻하는데, 행정심판청구가 부적법하지 않음에도 각하한 재결은 심판청구인의 실체심리를 받을 권리를 박탈한 것으로 원처분에 없는 고유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러한 경우 위 재결은 취소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 Ⅲ. 항소심판결(서울고법 2003. 6. 26, 2002누17042)의 요지 (1) 원고의 행정심판청구를 각하한 이 사건 각하재결에 원처분에 없는 고유한 하자가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보건대, 토지대장 등 지적공부에 일정한 사항을 등재하거나 등재된 사항을 변경하는 행위는 행정사무집행의 편의와 사실증명의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고, 그 등재나 변경으로 인하여 당해 토지에 대한 실체상의 권리관계에 어떤 변동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어서, 소관청이 그 등재사항에 대한 변경신청을 거부한 것을 가리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대법원 1995. 12. 5. 선고 94누4295 판결, 대법원 1993.6.11. 선고 93누3745 판결 등 참조), 원고의 이 사건 지목변경신청을 반려하여 거부한 화성시장의 이 사건 반려처분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2) 그렇다면 이 사건 각하재결 자체에 고유한 위법이 있음을 전제로 하여 위 재결의 취소를 구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인바, 제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기로 한다. Ⅲ 상고심(대법원) 판결의 요지 (1) 구 지적법(2001. 1. 26. 법률 제6389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20조, 제38조 제2항의 규정은 토지소유자에게 지목변경신청권과 지목정정신청권을 부여한 것이고, 한편 지목은 토지에 대한 공법상의 규제, 개발부담금의 부과대상, 지방세의 과세대상, 공시지가의 산정, 손실보상가액의 산정 등 토지행정의 기초로서 공법상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토지소유자는 지목을 토대로 토지의 사용?수익?처분에 일정한 제한을 받게 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지목은 토지소유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한 전제요건으로서 토지소유자의 실체적 권리관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지적공부 소관청의 지목변경신청 반려행위는 국민의 권리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달리 지목변경(정정이나 등록전환 등 포함, 이하 같다)신청에 대한 반려(거부)행위를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1981. 7. 7. 선고 80누456 판결, 1991. 2. 12. 선고 90누7005 판결, 1993. 6. 11. 선고 93누3745 판결, 1995. 12. 5. 선고 94누4295 판결 등과 지적공부 소관청이 직권으로 지목변경한 것에 대한 변경(정정)신청 반려(거부)행위를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1971. 8. 31. 선고 71누103 판결, 1972. 2. 22. 선고 71누196 판결, 1976. 5. 11. 선고 76누12 판결, 1980. 2. 26. 선고 79누439 판결, 1980. 7. 8. 선고 79누309 판결, 1985. 3. 12. 선고 84누681 판결, 1985. 5. 14. 선고 85누25 판결 등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이를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3) 따라서 이 사건 반려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Ⅳ. 평 석 1. 대법원 판례변경의 중요한 의미 이 사건은 대법원의 部(대법관 3인이상)에서 심판한 사건이 아니라, 대법관전원의 3분의 2이상의 合議體에서 심판한 사건이다. 대법원이 종전의 의견(판례)을 변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참조) 대법원은 이 사건 이전에는 “지적공부 소관청의 지목변경(정정이나 등록전환 등 포함)신청에 대한 반려(거부) 행위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던 대법원이 - 종전과는 180도 다르게 - “지적공부 소관청의 지목변경신청 반려행위는 국민의 권리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판단과 배치되는 종전의 다수의 판례를 변경하게 되었음은 이 사건 대법원의 판결문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다. 대법원이 종전 판례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판례변경"은 매우 드믈게 보는 현상이기에, 대법원의 이 판결은 그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판례변경의 동기와 효과 대법원이 이 사건에서 판례변경을 한 직접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아마도, "지목병경 또는 지목병경신청거부의 처분성"을 부인한 결과, 사람들이 행정소송(일반법원의 소관사항)이 아니라 헌법소원(헌법재판소의 소관사항)을 구제의 수단으로 택하는 것(헌재 1999. 6. 24, 97헌마315 등 참조)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한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3. 의문점 대법원이 판례변경을 통하여 “지목변경거부 등”에 대한 행정소송의 길을 열어 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거부의 처분성”의 문제를 - 여전히 - 행정소송법(제2조)에 명시되어 있는 처분개념, 즉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에 비추어 판단하지 아니하고 있음은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이에 관한 상세는 拙稿. 法律新聞 제3261호 참조).
2004-08-23
발암 가능성 위자료 소송
석면은 중피종이라는 악성폐암을 유발한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주말연속극 ‘저 푸른 초원 위에’의 남자주인공이 리얼하게 보여주듯이 중피종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주면서 흉막전체로 확대되어 85%가 1년반에서 2년내에 사망하고, 15%는 3∼4년밖에 생존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암이다. 통계적으로 이와 같은 중피종은 폐에 석면이 침투하여 발병시키는 asbestosis(석면침착증)에 걸린 피해자 중 약 10%가 걸리고 있다. 석면은 중피종이라는 악성폐암 유발, 1년반에서 2년내 85% 사망 州하급심은 석면피해자의 발암가능성에 대한 정신적 고통 보상 판결 연방대법원도 암 발생 따른 신체상해와 정신적 피해 보상 판시 최근 미연방대법원은 철도회사에 근무하면서 석면에 노출되어 asbestosis에 걸린 직원들이 중피종 발병가능성으로 인하여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보상을 받을 수 있다라고 판시하였다.(Norfolk & Western Railway Co. v. Ayers et al) 이 사건에서 60∼77세 사이의 6명의 원고들은 West Virginia주 법원에서 1인당 52만3천5백불 내지 1백20만9천93불 상당의 승소판결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중피종 발암가능성으로 인한 정신적고통에 대한 보상도 포함되었다. 피고인 Norfolk철도회사는 West Virginia주 항소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된 후 미연방대법원에 심리신청(Certiorari)을 했다. 이 사건 쟁점과 관련하여 2개의 미연방대법원판결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연방대법원은 무리한 작업지시를 좇아 무더운 여름날 선로교체작업을 하던중 동료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끝내 숨지는 것을 목격했던 철도회사 직원인 원고가 제기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원고가 위험영역밖에 있었다고 보아 이를 부인하였다.[Consolidated Rail Co. v. Gottshall, 512 U.S. 532 (1994)]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신체적 충격(physical impact)을 받을 즉각적인 위험에 처했으나 이를 피한 경우에 원고가 신체적 충격의 위험영역내에 있었으므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이 위험영역테스트(Zone-of-Danger Test)이다. 뉴욕 중앙철도역에서 배관공으로 근무하면서 석면에 많이 노출된 원고가 발암 가능성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에 대하여 석면에 노출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위험영역테스트의 요건인 신체적 충격(physical impact)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면서 원고가 석면노출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Metro-North Commuter R. Co. v. Buckley, 521 U.S. 424(1997)] 한편으로는 몇몇주 하급심판결들이 asbestosis가 걸린 석면피해자의 경우에 발암가능성에 대한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Hoerner v. Anco Insulations, Inc. 812 So. 2d 45 등) 미연방대법원은 혼선을 빚는 듯한 상황을 정리하고자 피고의 심리신청을 받아 들여 이번 판결을 내렸는데, 다수의견은 신체상해가 있고 그로 인하여 초래된 정신적 피해의 경우와 신체상해는 없고 정신적 피해만 유일하게 있는 경우로 나누어 전자는 손해배상이 허용되고 후자는 위험영역에 있었던 사람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원고들이 asbestosis라는 신체상해가 있고 이로 인하여 중피종 발생가능성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어 전자인 신체상해가 수반된 정신적 고통에 해당하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한편 소수의견은 이 사건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은 asbestosis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초래된 것이 아니라 의사들로부터 10% 발암가능성을 알게되면서 갖게된 근심이어서 이는 직접적으로 초래된 정신적 고통으로 볼 수 없어 보상받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 때문에 앞으로 발암가능성 위자료 소송이 많이 제기될 것 같다. jasonha@lawdw.com
2003-07-03
공해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합의의 구속력이 미치는 범위
I. 事案의 槪要 한국전력공사는 1983. 3.경부터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소재 서해안 부근에 서천화력발전소를 설치, 가동하여 오고 있다. 피해자들은 서천화력발전소로부터 2 내지 8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서면 앞바다인 비인만 해역에서 김양식어업에 종사하여 왔다. 서천발전소에서는 발전기를 냉각시키는 공정에서 온배수를 배출한다. 서천발전소는 1983. 3. 가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온배수를 배수구를 통하여 인근 바다로 배출하여 왔고, 그 배출량은 발전량의 증가와 함께 매년 점진적으로 증가하여 왔다. 김은 저온성 생물로서 수온상승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피해자들 주장에 의하면, 위 온배수가 해류를 따라 밀물시에 하루 6시간씩 피해자들의 김양식어장에 유입되어 해수온도를 상승시켰고, 그로 인하여 수온상승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아 그곳의 김수확량이 현저히 감소되었다. 서천발전소의 온배수 배출로 인한 김수확량 감소가 처음 문제된 것은 1986년이었다. 당시의 피해자들(이하 ‘1987년 피해자들’이라 함)은 1983. 3. 서천화력발전소의 가동이 시작된 이후 김수확량이 감소되었다는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요구하였고, 가해자는 1987년 피해자들의 동의 하에 군산수산전문대학교 부설연구소에 용역조사를 맡겨, 1987년 당시 상황을 기준으로 피해액이 산정되었다. 그리고 이 용역조사결과에 따라 1987년 피해자들은 원고로부터 피해배상금 및 지원금으로 1,520,000,000원을 지급받으면서 비인만 해역 김양식 피해를 원인으로 한 나머지 일체의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권리포기조항을 포함한 합의서를 작성하였다(이하 ‘1987년 손해배상합의’라 함). 그런데, 1987년 피해자들을 포함하여, 피해자들은 그 후 온배수 배출량이 증가하고 이로 인한 피해지역이 확대되어 왔다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을 요구하여 왔다. 특히 1993년산 수확량의 급격한 감소를 문제삼았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러한 온배수 배출량 증가와 피해지역 확대는 1987. 11. 24.자 합의 당시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추가손해에 해당하므로, 1987. 11. 24.자 합의에도 불구하고 배상청구할 수 있다고 다투었다. 판결요지 과거는 물론 앞으로 영구적으로 피해보상에 관하여 일체의 민형사상의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위 권리포기조항은 합의당시 실제로 예측이 되었던 손해만을 포기한 것으로 한정해석, 합의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추가손해에 해당하는 것은 그 실 손해액을 배상청구 할 수 있다. 연구요지 대상판결은 예견가능성까지 정면으로 부정하기 곤란하므로 실제 예견여부를 기준으로 제시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과연 이것이 타당한 기준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또 연도에 따라 책임액 제한을 달리 인정한 것이 타당한 지도 역시 의문이다 . II. 各級法院의 判斷 대상사건의 심리에 있어서는 인과관계의 유무도 문제되었는데, 각급법원은 피해자의 과실 내지 자연력의 기여분에 대한 판단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였으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 있어서는 일치된 태도를 보였다. 그 근거는 원인물질의 배출, 원인물질의 유해성, 원인물질의 피해물건에의 도달, 그리고 손해의 발생이라는 간접사실이 각각 입증되었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사실상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1. 一審判決(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1995. 12. 22. 선고 93가합1753, 2428) 1심법원은 1987년 손해배상합의에 의하여 ‘……과거분은 물론이고 앞으로 영구적으로 원고를 상대로 하여 위 비인만 해역의 김양식장에 대한 피해보상에 관하여 일체의 민, 형사상의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한 사실은 인정이 된다……’고 하면서도, 1987. 11. 24.자 합의서에 포함되어 있는 권리포기조항은 그 합의 당시에 실제로 예측하였던 손해만을 포기한 것으로 한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위 1987. 11. 24.자 합의는 당시의 온배수 배출량을 고정적으로 유지할 경우 나타날 김수확량감소율을 전제로 한 합의에 불과하……’다고 판시하였다. 즉, 1993년산 김양식 흉작은 1987. 11. 24.자 합의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추가손해에 해당하므로,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그 실손해액 전부를 배상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결과, 1심법원은 원고의 채무부존재확인청구를 전부기각하고, 피고(반소원고)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과실상계 및 손익상계를 인정하여, 일반적으로는 총 10%의, 1987년 합의서에 의하여 배상받은 해당 어장에 관해서는 총 20%의 책임제한을 인정하였다. 즉, 그 근거의 하나로서 ‘……피고들은 위 1차 분쟁 당시 위 군산수산전문대학 수산과학연구소의 용역조사결과에 따라 위 발전소로부터 배출되는 온배수가 위 비인만 해역에 유입되어 김의 생육에 치명적인 요인이 되는 해수온도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그후 원고가 위 발전소의 발전량을 늘릴 경우에는 온배수 배출량이 증가하여 위 온배수의 영향권 즉 피해해역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사정을 들었다. 2. 原審判決(대전고등법원 2000. 10. 25. 선고 96나738, 745 판결) 항소심에서는 인과관계 및 손해배상합의의 구속력의 범위에 관한 1심법원의 법률론 및 사실판단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였다. 다만, 책임액을 제한함에 있어서는 손익상계에 대한 언급을 없애고, 과실상계만을 근거로 하였다. 그리고, 과실상계의 근거로서, 자연적 요인과 함께 피해자들이 손해발생가능성을 ‘이미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사항의 하나로 언급하였다. 그리고, 책임제한의 비율을 다소 높여, 대개 20%(1987년 손해배상합의에서 문제되었던 어장의 경우에는 30%)로 정하였다. 3. 對象判決 대법원에서도 인과관계 및 손해배상합의의 구속력의 범위에 관하여 1심법원과 항소심 법원의 태도를 지지하였다. 원고의 상고는 기각되었다. 손해배상합의에 포함된 권리포기조항의 구속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해서는 항소심법원의 판시를 인용하면서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책임액제한에 관해서도 항소심판결의 결론을 그대로 지지하되, 근거설시에 있어서는 자연적 요인만을 근거로 하고, 피해자들의 예견 내지 예견가능성이라는 점은 고려대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과실상계’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III. 評釋 1. 損害賠償合意의 拘束力이 미치는 法律關係의 범위에 관한 일반론: 교통사고·의료사고에 관한 판례의 태도를 중심으로 (1) 문제제기 교통사고나 의료사고가 발생한 후 당해 교통사고나 의료사고 등으로 인한 일체의 손해에 관한 배타적 합의손해배상의 합의를 작성하는 예가 많다. 그런데, 그 합의 당시에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후유증에 대해서도 그 손해배상합의의 구속력이 미치는가 라는 문제가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교통사고나 의료사고에 관해서는, 손해배상합의 당시 피해자가 예견할 수 없었고 따라서 실제로도 예견하지 못한 후유증에 대해서는 손해배상합의의 구속력이 미치도록 한다는 의사 없이 손해배상합의에 이르는 것이 보통이라는 의사해석의 원칙이 판례에 의하여 확립됨으로써 이 문제가 해결되어 왔다. 公害不法行爲의 경우에도 이미 벌어진 공해물질 배출행위로 인한 후유증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의사해석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가해자의 영업행위에 수반되는 등의 사유로 인하여 유해물질이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사안유형에서는 문제상황이 다르다. 손해배상합의의 당사자는 향후에 동일양상으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손해배상합의를 한 것으로 의사해석할 것인가? 이와 같이 의사해석되는 경우에도, 손해배상합의 이후 유해물질의 배출량이 늘어나는 등의 이유로 인하여 손해발생의 정도가 확대되는 경우에 관해서는 손해배상합의를 어떻게 의사해석해야 할 것인가? 아래에서는 교통사고와 의료사고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판례의 법률론을 먼저 개관한다. (2) 權利抛棄約定의 制限的 解釋: 不測의 後發損害論 교통사고와 의료사고 인한 후유증에 관해서는, 판례의 법률론이 매우 유효적절한 도구로서 이용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즉, 교통사고나 의료사고에 대하여 손해배상합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측의 후유증에 대하여 추가로 손해배상청구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배상액의 합의당시에 당사자 사이에 배상범위내에 들어갈 손해에 관하여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의사일치가 있었어야 하며, 후발손해는 합의 당시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에게 예견불가능하였어야 하며, 그 후발손해는 객관적으로 볼 때 피해자가 그 사실을 당시에 알았더라면 그러한 금액으로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될 정도로 중대한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1970. 8. 31. 선고 70다1284 판결; 대법원 1997. 4. 11. 선고 97다423 판결 등). (3) 權利抛棄約定의 解釋上 否定: 損害賠償金의 一部支給論 손해배상합의에 권리포기약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할 것인지 문제되는 경우 이를 해석에 의하여 부정하고, 당해 손해배상합의에 근거하여 지급된 손해배상금은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미리 지급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론이 타당한 경우도 있다. 대법원 1994. 10. 14. 선고 94다14108 판결은 이러한 해석론을 적용한 예이다. (4) 錯誤를 이유로 한 取消 손해배상합의도 화해의 일종이므로 민법 제733조 단서의 소정범위 내에서 착오를 이유로 한 취소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상사건과 같이 가해자가 장래에 새로 행하는 가해행위가 문제되는 경우에는, 그런 후발손해의 발생 여하는 가해자의 의사라고 하는 주관적인 요소에 달린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가해자의 의사 여하에 대하여 일방당사자가 착오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취소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추가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5) 不公正行爲 대상사건에서 1987년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하여 공동보조를 취하고, 가해자로 하여금 가해자의 비용으로 조사용역을 의뢰하게 하였으며, 가해자, 피해자 쌍방이 모두 조사용역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하여 손해배상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법 제103조의 불공정행위를 주장하기는 어려운 경우로 보인다. 2. 對象判決의 檢討 가. 實際 豫見與否를 기준으로 하는 不測의 後發損害論 대상판결은 不測의 後發損害論에 따라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1987년 손해배상합의에 의하여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요건에 대한 설시는 교통사고 및 의료사고에 대한 기존 판례의 설시와 지극히 흡사하다. 다만, 1987. 11. 24.자 합의서에 포함되어 있는 권리포기조항은 그 합의 당시에 실제로 예측하였던 손해만을 포기한 것으로 한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대상판결의 태도이다(1심법원, 항소심법원도 동지). 따라서, 손해배상합의 당시 피해자의 예견가능성 여하는 문제되지 않는다. 1심법원에서는 피해자들의 예견가능성이 있었음을 지적하여 과실상계의 이유로 삼은 부분이 있기는 하나, 항소심법원 및 대법원은 과실상계가 아니라 자연적 요인을 고려한 책임액 제한이라고 성질규정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논리적 일관성을 기하고자 한 듯하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기존의 손해배상합의시에 나타나고 있던 온배수배출량이 ‘고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만 예상하였고, 결코 그 이상 조금도 온배수배출량이 증가하리라고 예상하지 않았다는 의사해석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서천화력발전소의 온배수배출량은 차차 증가하여 왔으며 그 점을 1987년 피해자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상판결은 예견가능성까지 정면으로 부정하기 곤란하므로 실제 예견여부를 기준으로 제시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이 타당한 기준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나. 責任額制限論 대상판결은 책임액제한을 인정하는 방법에 의하여 우회적으로 공해불법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형평을 기하고자 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대법원의 판지를 선해한다면, 다음과 같은 법률론으로 볼 수도 있다. 첫째, 이 사건과 같이 장래 가해행위(특히 그 폭)가 가해자의 의사에 달려 있는 경우에는 피해자의 예견 내지 예견가능성을 이유로 한 과실상계는 인정할 수 없다. 둘째, 이처럼 인과관계 여하가 다소 불분명한 경우에는 인과관계를 일단 긍정하되, 자연적 요인을 비율적으로 배제하여 책임액을 제한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근거에 기한 책임액 제한은 1987년 피해자와 기타의 피해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인데, 이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한편, 대법원은 1987년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30%의 책임액 제한을, 기타의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20%의 책임액 제한을 인정하였는데, 책임액제한이 자연적 요인에만 근거를 둔 것이라면, 이는 그 타당성은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온배수 배출지점으로부터 가까운 곳(1987년 피해자들 해당구역)일수록 자연적 요인이 작용할 여지가 적고, 먼 곳(기타 피해자들 해당구역)일수록 자연적 요인이 작용할 여지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3. 對象判決의 意思解釋論에 대한 代案 향후 가해자의 계속적 영업활동 등으로 인하여 지속될 것임이 예상되고, 따라서 향후의 배출량의 지속적 증가가 예상되는 공해불법행위에 대해서 손해배상합의를 하면서 향후의 손해배상청구를 영구적으로 포기한다는 명시적인 합의가 있을 때 이러한 손해배상합의를 어떻게 의사해석할 것인가? 이러한 형태의 공해불법행위의 경우에는 손해배상합의에 표시된 당사자의 효과의사 자체를 보다 면밀히 해석하는 일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며, 또한 실제 사례의 해결에 있어서도 유효적절한 해결방법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의사해석이 유력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첫째, 손해배상합의 당시의 공해물질 배출량이 고정적으로 유지되는 한(또는 그로 인한 손해의 범위가 손해배상합의 당시의 수준으로 고정적으로 유지되는 한) 일체의 향후손해의 배상청구권은 포기한다. 둘째, 그 범위내인 한 향후손해가 그보다 적게 발생하거나 아예 방지된다 하더라도 가해자는 이 손해배상합의에 여전히 구속된다. 셋째, 반면에 그 범위를 넘는 손해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손해배상의 합의도, 권리포기의 약정도 아직 성립되어 있지 않다. 다만, 손해배상합의의 의사해석 여하는 구체적인 사례별로 상이할 수 있음은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2003-06-26
‘공연음란죄(公然淫亂罪)’재검토
I. 들어가는 말 최근 대법원은 한 농부의 고속도로상에서의 알몸시위에 대하여 공연음란죄를 적용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로써 통상 알몸시위의 경우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처벌해왔던 실무관행에 반하는 판결로 대법원이 어떠한 근거에서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그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검토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현행 경범죄처벌법이 ‘음란성’을 내포하지 않는 ‘알몸노출행위’를 별도로 처벌하고 있으므로 이와 구별되는 공연음란죄의 규율대상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II. ‘공연음란죄’의 구성요건 재검토1. ‘사회유해성’에 기초한 ‘음란성’의 재정의(再定義) 필요성 현재 우리나라의 판례와 학설은 ‘음란성’을―일본 최고재판소의 영향[日最判, 昭和 27. 4. 1; 32. 3. 13] 아래―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 또는 흥분케하여 성적 수치심과 성도덕을 침해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대판 1982. 2. 9, 81도2281; 대판 1987. 12. 22, 87도2331; 대판 1995. 2. 10, 94도2266; 대판 1995. 6. 16, 94도2413; 대판 1997. 8. 22, 97도937). 그런데 이러한 정의에는 ‘보통인’, ‘수치심’, ‘성도덕’ 등 쉽게 확정짓기 어려운 개념을 포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의 성적 수치감과 도덕감 보호라는 측면만이 부각되어 있고 ‘사회유해성’의 정도와 구체적 발현양태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음란성’(obscenity)에 관한 미국 판례의 입장은 참조할 가치가 있다. 이에 대한 지도적 판결인 1973년 ‘Miller v. California 판결’[413 U.S. 15 (1973)]에 따르면 ‘음란성’은 ‘성행위를 명백하게 노골적인 방식으로(in a patently offensive way) 묘사 또는 서술’하는 ‘하드 코어’(hard core)적인 요소가 있을 때 인정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a) “정상이건 변태이건, 그리고 실제이건 가장된(simulated) 것이건 간에 궁극적인 성행위를 명백하게 공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는 것, (b) 자위행위, 배설기능, 생식기의 음란한 노출 등을 명백하게 공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41호는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함부로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속까지 들여다보이는 옷을 입거나 또는 가려야 할 곳을 내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을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그렇다면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상의 알몸노출죄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우리는 성욕의 자극 또는 충족이라는 ‘경향’이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알몸노출이나 알몸질주(‘streaking’) 등은 공연음란죄의 대상이 아니라 경범죄처벌법의 대상이며, 공연음란죄는 사람의 성욕을 자극·흥분시키는 것으로 보통인의 성적 수치심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 , 예컨대 동성·이성간의 성행위 또는 자위행위로 제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성행위 또는 자위행위는 정상이건 변태이건, 실제적이건 가장된 것이건 상관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2.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 입법형식 한편 공연음란죄의 구성요건이 단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라고만 되어 있어, 그 구성요건표지의 내포와 외연이 어디까지인지 법문 그 자체로는 파악할 수 없고 전적으로 해석적용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이 점은 외국 입법례와 비교를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다. 먼저 독일 형법은 타인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노출행위’를 처벌함(제183조)과 동시에, 공연히 성행위를 하여 의도적 또는 의식적으로 성적 수치심의 침해를 야기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183a조를 두고 있다. 우리 형법상의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는 제183a조는 공연한 성행위로 그 적용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한편 미국 ‘모범 형법전’(Model Penal Code)은 성적 욕망의 유발 또는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성기노출’(indecent exposure: 제213.5조)과 성적 욕망의 유발 또는 충족의 목적이 행위자에게 결여되어 있더라도 객관적으로 보아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 즉‘공연음란행위’(open lewdness: 제251.1조)를 경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전자는 성적 욕망의 유발 또는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목적범’으로 규정되어 있고, 양자 모두는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목도되어 그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또는 그를 경악시킬 수 있음을 알면서 행해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의 점을 고려할 때 현행 공연음란죄의 문언은 포괄적이고 불명확하여 죄형법정주의의 하위원칙인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연음란죄의 구성요건에서 공연음란행위가 영리의 목적으로 행해지거나 공공의 또는 타인의 혐오감을 현저히 일으킬 것이라는 구성요건요소가 부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형사법개정특별심의위원회, 『형사법개정자료 (VI), 형법개정의 기본방향과 문제점』, 1985. 12. 30, 62-63면; 임웅, 『비범죄화의 이론』, 법문사 (1999), 93면]. III. 판례검토1. 1996년 ‘연극 미란다 사건’―대판 1996. 6. 11, 96도980 이는 ‘미란다’라는 명칭의 연극공연행위가 공연음란죄의 음란행위에 해당하느냐에 관련한 판결이다. 문제의 연극에서 완전나체의 여주인공과 팬티만 입은 남자주인공은 침대 위에서 격렬하게 뒹구는 장면을 연기하고, 이어 폭행 당한 여주인공이 음부까지 노출된 채 창틀에 묶인 상태에서 남자주인공이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을 7 내지 8분간 연기하였다. 대법원은 먼저 여주인공의 완전나체행위, 주인공간의 가학적·노골적 성행위 묘사 등을 볼 때 정상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그 호색적 흥미를 돋구기에 충분하다고 보았고, 주인공이 보여주는 삶의 몰가치성과 삶에의 의지라는 사상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에 대하여 원작에도 없는 장면의 각색·과장이 위 주제를 표현하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파악하면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확정하였다. 상술하였듯이 판례가 근거하고 있는 ‘음란성’에 대한 정의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판례의 결론은 타당하다고 본다. 문제의 연극에서 가상의 것이기는 하나 분명한 성행위와 자위행위가 연기되었다는 점, 영화나 연극에서 통상 전개되는 배우들간의 정사 장면과 달리 문제의 연극의 경우 연기가 관객석과 4-5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졌기에 자극 정도가 매우 높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연극은 ‘명백하게 노골적인 방식으로’(Miller, 413 U.S. at 24) 성행위와 자위행위를 묘사하였기에 음란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2000년 ‘알몸시위 사건’―대판 2000. 12. 22, 2000도4372 그런데 최근 한 농부의 고속도로상의 알몸시위에 대하여 공연음란죄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어 주목을 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고속도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던 도중 앞에 운전하던 사람이 진로를 비켜주지 않자 그 차를 추월하여 정지시킨 후 그 차의 운전자를 때려 상해를 가하였는데,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자 피고인은 시위조로 사람이 많이 있는 가운데 완전 알몸상태로 바닥에 드러눕거나 돌아다녔다. 원심은 공중 앞의 알몸노출은 음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공연음란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이 부분을 파기·환송하였다. 앞에서 보았듯이 대법원은 ‘음란성’ 여부를 보통성인의 성적 수치감과 도덕감 보호라는 관점에서만 판단하기에, 공연히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 성기를 노출하면 당연히 공연음란죄가 성립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타당하지 못하다. 대법원의 논지에 따르면 형법상의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상의 알몸노출죄의 구별이 모호해진다. 피고인의 알몸시위와 성기노출이 보통인의 성적 수치감을 해쳤을지는 모르나, 사회유해성이 심각한 성적 욕망의 유발 또는 자극행위, 즉 ‘음란행위’라고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의 알몸시위는 공연음란죄의 행위태양에 포괄될 수 없으며, 단지 경범죄처벌법의 대상일 뿐이라고 본다. IV. 맺음말 사회의 기층에서는 성개방이 만연하고 있지만, 법과 제도적으로는 보수적 성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성문화 속에서 ‘성풍속에 관한 죄’를 어떻게 해석·적용할 것인가는 미묘한 문제이다. 형법의 도덕형성적 역할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역할은 특정 행위의 ‘사회유해성’과 실정법체계상의 구성요건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상의 ‘알몸노출죄’가 우리 법체계에서 병립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자는 분명히 사회유해성의 양과 질에서 상이한 행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성욕의 자극 또는 충족이라는 ‘경향’이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알몸노출이나 알몸질주 등은 경범죄처벌법의 대상이며, 공연음란죄는 사람의 성욕을 자극·흥분시키는 것으로 보통인의 성적 수치심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 예컨대 동성·이성간의 성행위 또는 자위행위로 제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대법원 2000. 12. 22, 2000도4372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
2001-02-01
음식점영업허가와 공물관리권과의 관계
Ⅰ. 事實關係 ① 원고(신0금)는 대전시 중구에 소재하는 지하상가의 C구역 나열 61호 점포(이하 ‘61호 점포’라고 한다)에서 일반음식점 영업을 하여 오던중 나열 62호 점포(이하 ‘62호 점포’라고 한다)로 영업장소를 확장하고자 1997. 2. 13. 피고(대전광역시 중구청장)에게 위 일반음식점의 영업장소를 기존의 61호점포에서 61, 62호 점포로 확장하는 내용의 일반음식점허가사항 변경허가신청을 하였다. ② 피고(중구청장)는 이에 대해, 이 사건 지하상가는 시민건강을 보호할 목적 등을 위하여 지하상가에 설치하는 업종을 제한하고 있고, 62호 점포는 지정업종이 서점으로서, 일반음식점과 업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위 변경허가신청을 반려하였다. ③ 이 사건 지하상가는 본래 소외 주식회사 대우와 주식회사 영진유통이 건설하여 1994. 7월에 대전광역시에 기부채납한 것으로서, 대전광역시는 이 사건 지하상가의 용도를 지하상가 및 지하도로로 지정하는 한편, 지하상가를 건설한 위 회사들(대표 ‘영진유통’)에게 기부채납일부터 20년간 무상으로 사용 수익할 수 있게 하였다. ④ 한편, 대전광역시는 이 사건 지하상가 건축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던 1993. 2. 19. 장차 이 사건 지하상가를 관할하게 될 피고(중구청장)와 지하상가 시공사인 소외 영진건설 등에게 이 사건 지하상가 ‘운영관리지침’을 시달하였는데, ㉠ 이 사건 지하상가의 모든 시설물은 대전시소유재산이므로 관리청인 피고가 허가 또는 승인하는 이외의 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제3조 1항), ㉡ 점용자는 점포영업을 목적으로 관리자와 점용계약을 체결한 후 점용권을 관리자의 사전승인없이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제3조 3항), ㉢ 관리청인 피고는 지하상가 매장에 대한 영업허가시 본 지침에 의거한 임차인의 준수사항을 허가조건으로 부여하여야 한다(제4조 3항) 등이 그의 주된 내용이다. ⑤ 소외 영진유통은 1994. 7. 23. 피고로부터 이 사건 지하상가에 관하여 시장개설허가를 받았는데, 위 개설허가 당시 제61호 점포의 업종은 식음료점으로, 62호 점포의 업종은 서점으로 각 지정되었다. ⑥ 한편 피고는 이 사건 지하상가내 점포에 음식점 허가가 늘어나면서 음식조리 과정에서 발생되는 하수발생, 이산화탄소 등으로 지하상가 전체의 대기오염도가 상승하자 1996. 6. 24. 자체처리지침을 정해, 종전에 식음료 점포로 지정된 33개 점포에 한해 숫불 . 가스불 등 불꽃이 직접 피어나는 조리를 금하는 조건을 붙여 식품접객업영업허가를 하여 왔다. Ⅱ. 原審判決(대전고법 1997. 7. 25선고, 97구735)의 要旨 ①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면 행정재산에 대해서는 일정한 범위에서 사권의 행사가 제한되고, 대전광역시장은 지하도로 이용시민의 편익을 도모하고 통행인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여 시민건강의 증진에 기여할 목적으로 건축된 공공용재산인 이 사건 지하상가의 특성과 이용현황을 참작하고 상거래질서의 확립을 위하여 지하상가 점포의 이용기준을 정할 수 있다 할 것이고, 시장개설자인 영진유통 또한 상거래질서의 확립과 주변환경 개선을 위한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며, 이 사건 지하상가와 같은 대규모상가를 분양하는 경우 각 점포별로 업종을 지정하는 것은 지하도로 통행시민 및 지하상가 이용시민들의 편의도모는 물론 인접상인들의 공동이익의 증진 및 지하상가의 특성상 자칫 심화될 수 있는 대기오염을 사전에 차단하여 지하상가 본래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정한 것으로서, 그 업종제한약정의 효력은 분양자인 영진유통과 수분양자는 물론 수분양자로부터 점포를 다시 임차한 전차인에게도 모두 미친다 할 것이므로, 관할관청으로서는 이에 위배되면 비록 식품위생법상의 영업허가 기준에 적합하다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② 62점포는 시장개설허가 당시부터 현재까지 서점으로 업종이 지정되어 있고, 이 사건 변론종결일에 비교적 가까운 1997. 3. 7. 위 61호 점포 부근에서 측정한 이산화탄소가 1,200ppm에 이르는 등, 지하상가내의 대기오염이 점차 악화되고 있어 공공복리상 이산화탄소의 주발생원인이 되고 있는 음식점영업을 규제할 필요성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이 사건 변경허가신청을 반려한 처분은 업종제한의 효력 등에 근거한 적법한 처분이라 할 것이고, 달리 이 사건 처분에 위법이 있음을 찾아볼 수 없다. Ⅲ. 大法院의 判決要旨 ①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영업허가는 성질상 일반적 금지의 해제에 불과하므로 허가권자는 허가신청이 법에서 정한 요건을 구비한 때에는 허가하여야 하고, 관계법령에서 정하는 제한사유 외에 공공복리 등의 사유를 들어 허가신청을 거부할 수는 없고(대법원 1993. 5. 27.선고 93누2216 판결 참고), 이러한 법리는 일반음식점 허가사항의 변경허가에 관하여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② 원심이 확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더라도 대전광역시장이 피고와 소외 영진유통에게 시달한 지하도로관리운영지침은 소외 영진유통이 임의로 시설물의 기능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바, 이러한 조항이 점포로 사용허가된 지하상가의 업종을 변경하는 것까지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고, 업종제한을 규정하고 있는 관리규정과 분양계약서는 모두 소외 영진유통과 이 사건 지하상가를 분양받거나 임차한 입정상인 사이를 규율하는 것으로서 피고가 일반음식점 영업허가를 할 때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할 법령상의 요건에 해당한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이를 근거로 일반음식점허가사항 변경허가를 거부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③ 구 지하도로시설기준에관한규칙(1999. 1. 15. 건설교통부령 제16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조 제3호는 지하도로에는 숯불· 가스불 등 불꽃이 직접 피어나도록 연료를 연소시켜 조리하는 일반음식점은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기록에 의하면 61호 점포에 대한 일반음식점 영엄허가에 이미 숯불·가스불 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건이 붙어 있고 이 사건 변경허가신청은 영업장소를 확장하되 주방을 새로 설치하지 않고 62호 점포를 객석으로만 사용하겠다는 것이므로 위 규칙의 제한사유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④ 식품위생법 제24조 제1항 제4호는 공익상 허가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어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영업 또는 품목에 해당하는 때에는 그 허가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보건복지부장관이 위 허가제한대상으로서 일반음식점영업을 지정하고 있지는 아니하며 달리 관계 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위 변경허가를 제한할 근거가 없는 이상, 지하도로 대기오염의 심화를 방지하자는 공익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사건 거부처분은 위 관계법령의 규정 취지에 반하여 위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Ⅳ. 大法院判決에 대한 疑問 (1) 이 사건에서 원심은 식품위생법, 지방재정법, 대전시의 지하도로관리운영지침(관리규정) 등에 의거하여 ‘원고의 점포확장허가신청에 대한 피고의 불허가처분(이하 ‘불허가처분’이라고 한다)’을 적법한 것으로 판시한데 대하여, 대법원은 피고의 ‘불허가처분’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였다.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영업허가는 성질상 일반적 금지의 해제에 불과하므로 허가권자는 허가신청이 법에서 정한 요건을 구비한 때에는 허가하여야 하고,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제한사유외에 공공복리 등의 사유를 들어 허가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 ], [관리규정은 피고가 음식점 영업허가를 할 때 그 기준이 되지 않는다] 등이 그 이유가 되어 있다. (2) 그러나 앞의 ‘사실관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관리규정’은 관리자인 영진유통 및 입점상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관리권자인 피고의 권한과 의무에 관하여도 여러 가지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이 위 ‘관리규정’이 [점포로 사용허가된 지하상가의 업종을 변경하는 것까지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한 것은 큰 오해로 볼 수밖에 없다. (3) 이 사건 지하상가(지하도로)가 대전광역시장 및 피고의 관리하에 있는 공물(행정재산)임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피고에게는 지하상가의 업종지정을 포함한 많은 내용의 ‘공물관리권’이 인정되고 있는 바(‘공물관리권’의 상세에 관하여는 졸저, 行政法 Ⅱ, 2000년판, 389면 이하 참조), 대법원이 이점을 간과하고, 식품위생법에 근거한 영업허가의 관점에서만 문제를 고찰함으로 인하여 판단을 그르친 것으로 생각된다.
2000-10-02
신용장에 있어서 비서류적 조건의 유효성
1. 머리말 대법원은 최근 신용장의 이른바 비서류적 조건(Non-Documentary Conditions)의 유효성에 대해서 주목할 만한 판결들을 선고하였는바, 대법원 2000. 5. 30. 선고 98다47443 판결과 대법원 2000. 6. 9. 선고 98다35037 판결이 그것이다. 위 두 판결은 거의 같은 취지의 것이므로, 여기서는 선례가 되는 대법원 2000. 5. 30. 선고 98다47443 판결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2. 사안 가. 미국 회사인 웨어훼브 인코퍼레이티드(웨어훼브)는 국내 회사인 주식회사 코드(코드)와 사이에, 직물류를 미국으로 수입하되 그 대금결제를 위하여 미국 회사인 피고 보조참가인 효성 아메리카에게 요청하여 피고 보조참가인은 1992. 4. 9. 피고 한일은행 뉴욕지점에 신용장개설을 의뢰하였고, 피고 은행 뉴욕지점은 1992. 4. 11. 수익자를 코드로 한 취소불능신용장을 개설하였는데, 그 특수조건(Special Conditions) ⑸항은,”최종매수인이 선하증권의 선적일로부터 75일 내에 신용장에 언급된 상품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인수된 어음과 서류들은 만기일에 지급되지 않는다 (In case final buyer fails to pay merchandise referred to under this letter of credit within 75 days from the on board date of the B/L, the draft and documents accepted shall not be paid on maturity date)로 규정되어 있고, 한편 위 신용장에는 특별히 명시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신용장은 국제상업회의소의 1983년 제4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에 따른다고 기재되어 있다. 나. 원고 대구은행 남일동 지점은 위 수출입계약에 따라 직물류를 선적한 위 코드로부터 위 선적분에 대한 화환어음 및 선적서류를 모두 매입하고 이를 모두 피고 은행 뉴욕지점에 송부하여 위 뉴욕지점은 원고 은행에 이들의 인수(acceptance)사실 및 그에 따른 만기일을 통보하고, 그 신용장대금 중 곧 만기가 도래하는 일부의 신용장대금 8건에 대하여는 위 특수조건 ⑸항에 기하여 그 만기가 각 연장되어 총 44건 중 30건에 대한 신용장대금이 원고 은행에 지급되었으나, 나머지 14건에 대한 신용장대금에 대해서는 최종매수인인 위 웨어훼브가 물품대금을 피고 은행에 입금하지 아니하여 위 특수조건 ⑸항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대금 지급을 거절하였다. 3. 판결요지 위 특수조건 (5)항은 비록 신용장 첨부서류에 의하여 조건의 성취 여부를 판정할 수 없는 비서류적 조건에 해당하지만 그 내용이 신용장 기재의 문언 자체에 의하여 완전하고 명료하다고 할 것이고, 수익자를 포함한 이 사건 신용장 개설 당사자 사이에 그 조건에 따르기로 합의가 성립되어 있으며, 나아가 비록 이 사건 신용장의 수익자인 코드가 위 특수조건 (5)항 조건의 성취에 관하여 책임이 있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코드는 신용장 개설시부터 그러한 사정을 알고 이를 용인하면서 이 사건 수출 거래나 신용장 거래에 임하여 온 사정을 알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은 신용장 개설 및 비서류적 특수조건이 삽입된 경위, 비서류적 특수조건의 내용, 수익자가 그 비서류적 특수조건을 응락하였는지의 여부, 그 특수조건의 성취에 관하여 수익자가 관여할 수 없는 사정을 용인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신용장에 부가된 이와 같은 비서류적 특수조건은 신용장의 본질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기는 하지만 사적자치의 원칙상 이를 무효라고는 할 수 없고, 일단 그 유효성이 인정되는 한 그 이후에 그와 같은 조건의 존재를 인식하거나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신용장 매입은행에게도 그 특수조건의 효력은 미친다고 볼 것이다. 4. 평석 가. 비서류적 조건의 의의 은행은 제시된 신용장의 요구서류가 신용장의 조건과 일치하는 지의 여부를 심사하여 일치하는 경우에는 신용장대금을 지급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용장의 조건은 의당 은행이 심사하여야 할 서류를 명시하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장에 있어서 서류의 지정 없이 조건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비서류적 조건(Non-Documentary Conditions) 또는 서류 없는 조건(Documentless Conditions)이라고 한다. 예컨대 신용장의 조건이 「수익자는 선적 후 선적통지를 하여야 한다」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 구체적으로 그것을 표시하는 서류(shipping advice)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때에는 위 조건을 비서류적 조건이라 한다. 이 비서류적 조건의 허용여부에 대해서는 1983년 제4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UCP 400)에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었으나, 이는 신용장의 독립·추상성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계속되던 중 1993년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UCP 500) 제13조 c항은, “신용장에 제시되어져야 할 서류에 관하여는 명시하지 않은 조건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은행은 그러한 조건이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무시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게 되었다 나. 비서류적 조건의 취급례 비서류적 조건의 허용 여부 및 그 취급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으나(상세는 서울지방법원 발행 국제거래·상사소송의 실무 58-60쪽 참조), 여기서는 국제상업회의소와 그 동안의 우리 하급심 법원들의 실무례를 살펴본다. ⑴ 국제상업회의소 은행위원회 (ICC Banking Commission)의 입장 국제상업회의소 은행위원회는, 신용장에 제4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의 준수문구가 기재되고, “이 신용장 대금은 수출신용장에 따라 의류가 전량 수출되고 그 대금이 회수되는 경우에 지급된다(payment against subject L/C will be made as and when full quantity of garments under export L/C. … dated, is exported and proceeds repatriated)”라는 특수조건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 이러한 신용장의 대금지급을 거절당한 인도 회사가 보낸 질의에 대한 유권해석에서, ‘그와 같은 신용장은 발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신용장을 수락한 것은 선하증권상 수하인이 신용장개설은행으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설은행의 개설의뢰인에 대한 물품인도를 허락한 것을 의미한다. 위 사건은 신용장의 문구 및 그 실제 의미가 면밀히 검토되지 않은 사안으로서, 위 신용장은 수익자에게 아무런 담보(security)를 제공하지 못하고, 이 신용장을 사용함으로써 수익자는 물품과 대금의 손실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부담한다’는 취지의 해석을 내린 바 있고(ICC Publication NO. 494, Opinions of the ICC Banking Commission 1989-1991, Case R 179.),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UCP 500)이 시행된 이후에도 유사한 질의에 대하여 위 상환조건조항에 대한 종전의 해석을 다시 원용하고 있다(Case Studies on Documentary Credits under UCP 500-Charles del Busto p 104-105.). ⑵ 하급심의 실무례 그 동안 우리 하급심 판결들은 대체로 비서류적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여 무시하거나, 비서류적 조건을 삽입한 개설은행에게 불리하게 신용장을 해석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그러한 조건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론이 되게 하는 입장을 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원심 판결인 서울고법 1998. 8. 19.선고 95나39313 판결을 비롯하여 그 제1심 판결인 서울지법 1995. 8. 24. 선고 93가합85407 판결과 위 대법원 2000. 6. 9. 선고 98다35037 판결의 원심 판결인 서울고법 1998. 6. 12. 선고 97나42160판결과 그 제1심 판결인 서울지법 1997. 7. 31. 선고 96가합4126 판결 등이 그것이다. 반면에 같은 특수조건이 붙은 유사한 사안에서{원고 중소기업은행, 피고 (주)한일은행, 피고 보조참가인 효성아메리카인코포레이티드}, 서울지법 항소부 1999. 12. 10. 선고 95나54180판결은 결론을 달리 하여, 위 조건은 비서류적 조건에 해당하지만 그 뜻이 완전하고 명료한 이상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여 결론을 달리하였다. 결국 상급심의 최종판결이 주목되던 중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다.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의미 ⑴ 대법원 판결의 의의 비서류적 조건의 허용범위를 명백히 한 점에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의의가 있다. ㈎ 즉 비서류적 조건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사적자치의 원칙상 그 내용이 신용장 기재의 문언 자체에 의하여 완전·명료하고, 수익자를 포함한 신용장 개설 당사자 사이에 그 조건에 따르기로 한 합의가 있으면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 때 주의할 것은 비서류적 조건의 내용이 신용장개설의뢰인의 의사에 따라 좌우될 여지가 있는 경우라 할 지라도 그 사유만 가지고 그 내용이 불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 수익자는 그 비서류적 조건의 성취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하지만 관여할 수 없는 경우라 할 지라도 수익자가 그러한 사정을 용인하면 역시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4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 하에서의 비서류적 조건의 유효성에 관한 대법원의 입장은 앞서 본 국제상업회의소 은행위원회의 입장과도 일치된다 할 것이다. ㈏ 그리고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어 일단 비서류적 조건의 유효성이 인정되는 한 그 이후에 그와 같은 조건의 존재를 인식하거나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신용장 매입은행에게도 그 특수조건의 효력은 미친다는 것이다. 즉 매입은행은 신용장 개설 당사자는 아니지만 비서류적 조건의 존재를 알았거나 알 수 있는 제3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그가 특수조건의 성립에 합의를 하였는지 여부 또는 그 조건의 성취에 관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지 여부 등을 묻지 않고 비서류적 조건의 유효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매입은행은 스스로 비서류적 조건의 유효성을 용인하고 신용장 요구서류를 매입한 것인 만큼 나중에 비서류적 조건의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⑵ 문제점 ㈎ 그러나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이 서류거래를 원칙으로 하는 신용장제도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사건 신용장의 개설은행은 피고 한일은행 뉴욕지점인 만큼 그 준거법은 미국법 내지 미국뉴욕주법이 되므로 최소한 위 준거법 하에서 비서류적 조건이 어떻게 취급되는지에 대한 언급도 있었어야 할 것이다. ㈏ 한편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제13조 c항을 신설하여 비서류적 조건은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무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통일규칙의 명문규정을 준수한다고 보아야 할 매입은행이 비서류적 조건이 명시되어 있는 신용장을 취득했다는 점만 가지고 바로 매입은행이 그러한 비서류적 조건을 용인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고, 더욱이 국제상업회의소(ICC)는 이 신설규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는 신용장에 비서류적 조건을 삽입하는 전적으로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the specific purpose of eradicating the totally wrong practice of incorporating nondocumenttary condition(s) into documentary credits)을 가진 것이고,… 따라서 은행은 다른 신용장 조건에 일치하는 서류를 제시받았을 때에는 적법한 것으로 접수하여야 한다. …’ 는 지침을 내리고 있으므로(The 3rd ICC Position Paper of September 1, 1994.), 제4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 하에서 내려진 이 사건 대법원의 판단이 과연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 하에서도 타당한 것인지가 문제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국제상업회의소 은행위원회는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 하에서도 비서류적 조건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질의회답을 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위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의 신설규정은 강행규정이 아니라는 전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만약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이 이러한 은행위원회의 입장을 수용하는 취지라면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상의 위 신설규정의 의미는 반감된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0-09-14
보험약관설명의무의 범위 및 무면허운전
【사 실】 소외 홍인의는 1997.3.3 피고회사와의 사이에 자신이 이 사건 화물자동차를 구입하여 피고회사 명의로 등록하고 피고회사의 업무수행을 위한 廢엔진오일 운반용 차량으로 제공하되, 운전사의 고용 및 급여의 지급, 보험계약의 체결, 차량관리 등에 관한 일체의 사항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피고회사는 홍인의에게 이 사건 화물자동차의 운송물량에 따른 운송비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차량운용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홍인의는 피고회사명의로 1997.4.14 피고회사를 기명피보험자로 하여 원고와 이 사건 화물자동차에 관하여 업무용자동차종합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원고회사 소속 보험모집인 소외 정창화가 보험계약자인 피고에게 보험계약의 성질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하지 아니하고 이 사건 피보험자동차를 제1종 보통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고지하였으며, 원고회사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조차도 그렇게 알고 이 사건 보험계약을 정당한 보험계약으로 인정하는 등의 잘못을 범하였다. 홍인의가 고용한 운전사 정명화가 제1종 보통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인 이 사건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본건 사고를 내었다. 원고인 보험회사가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을 근거로 보험금지급채무의 부존재에 관한 확인청구의 소를 제기한데 대하여, 피고는 1. 보험모집인 정창화 및 원고회사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가 잘못을 범하였다는 이유로 원고회사에게 신의칙상 또는 보험계약상 손해배상책임이 있고, 2. 정창화의 잘못된 고지로 인하여 피고회사가 이 사건 피보험자동차를 제1종 보통운전면허 소지자가 운전하는 것이 무면허운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므로 이 사건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신의성실의 원칙 및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6조 제1항, 제2항, 제7조 제2호, 제3호의 규정에 위반되어 무효가 되며, 3. 본건 무면허운전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승낙이 없으므로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적용될 수 없다고 항변하였다. 【판 지】 1. 상법 제638조의3 제1항 및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보험자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에 보험계약자에게 보험약관에 기재되어 있는 보험상품의 내용, 보험료율의 체계, 보험청약서상 기재 사항의 변동 및 보험자의 면책사유 등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지고 있다고 할 것이어서, 만일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위반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한 때에는 그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를 운전하여야 무면허운전이 되지 않는지는 보험자의 약관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2. 자동차종합보험 보통약관상의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은 사고 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시에 무면허운전중이었다는 법규위반 상황을 중시하여 이를 보험자의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유로 규정한 것으로서, 운전자가 그 무면허운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책약관상의 무면허운전에 해당된다. 3. 자동차보험에 있어서 피보험자의 명시적·묵시적 승인하에서 피보험자동차의 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하였을 때 생긴 사고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은 무면허운전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지배 또는 관리가능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으로서,…무면허운전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 승인하에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와 무면허운전자의 관계, 평소 차량의 운전 및 관리 상황, 당해 무면허운전이 가능하게 된 경위와 그 운행 목적, 평소 무면허운전자의 운전에 관하여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취해 온 태도 등의 제반 사정을 함께 참작하여 인정하여야 한다. 기명피보험자의 승낙을 받아 자동차를 사용하거나 운전하는 자로서 보험계약상 피보험자로 취급되는 자(이른바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인 승인이 있다고 할 수 없어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사 명의로 차량을 등록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후 그 업무수행을 위해 차량을 제공하되 운전사의 고용 및 급여 지급 등 일체의 사항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지기로 약정한 자동차 소유자의 승낙 하에 그 피용자가 무면허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해 설】 서론 : 본 판결에는 피보험자의 승낙과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의 관계에 관하여 대체로 3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아래에 판시의 순서에 따라 설명하기로 한다. 1. 보험약관명시설명의무의 범위 보험자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지고 있다(상법 제638조의3,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위반하여 체결한 보험계약도 약관을 보험단체의 법규범으로 보아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법규범설). 상법 제638조의3 제2항이 이 위반에 대하여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계약이 성립한 날부터 1월내에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게 하는데 그친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는 약관 일반에 관한 규정인데 대하여 상법 제638조의3은 보험계약의 약관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보는 것이 법체계상 온당하므로 이 견해도 현행법의 해석으로서 논리에는 맞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약관을 규제하여 특히 보호해야할 보험계약자에게 너무 불리하다. 그래서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에 기하여 이에 위반한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정된 판례이다(대법원 1998.6.23.선고 98다14191판결 ; 대법원 1998.11.27.선고 98다32564판결 ; 대법원 1999.3.9.선고 98다43342, 43359판결 참조). 그러나 본 판결이 어떤 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를 운전하여야 무면허운전이 되지 않는지는 보험자의 약관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점에는 의문이 있다. 이 판결의 태도에는 상술한 법규범설의 영향이 엿보인다. 이 판시에 따르면 어떤 것이 보험자의 약관명시 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될까. 무면허운전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약관의 명시는 될 수 있더라도 약관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은 될 수 없다. 약관의 명시 설명의무는 약관이 당사자간의 계약내용이므로 이 계약에 의해서 어떤 권리의무가 발생하는지를 당사자가 알고 동의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험자에게 부담시킨 것이다. 그런데 보험자측의 보험모집인과 보험자의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조차도 그 내용을 잘못 알고 있었다. 보험자측 스스로도 알지 못한 내용을 보험계약자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계약에 당사자가 내용을 알고 합의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무면허운전에 대한 처벌은 법률의 규정(도로교통법 제109조)에 의한 것이지만 이로 인하여 보험자가 면책되는 것은 당사자가 합의한 보험계약의 조항에 따른 것이다. “보통보험약관이 계약당사자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가 법규범 또는 법규범적 성질을 가진 약관이기 때문이 아니라 보험계약당사자사이에서 계약내용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라는 대법원의 지론(대판 1985.11.26, 84다카2543 ; 동 1986.11.26, 84다카122 ; 동 1989.11.14, 88다카29177 등 다수)에 따른다면, 이러한 약관은 보험계약의 일부로서 당사자를 구속할 수 없을 것이다. 대판 1992.7.28, 91다5624는 은행거래약관을 “설명하여 주지 아니하였다 하여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으나, 이 판결을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약관을 작성한 사업자측도 그 내용을 잘못 이해한 본 판결의 사안과는 역시 다른 경우이었다. 2. 무면허운전의 인식 이 면책약관이 유효하다고 전제한다면, 운전자가 그 무면허운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책약관상의 무면허운전에 해당된다는 것도 대법원의 판례에 따른 것이다(대법원 1991.12.24.선고 90다카23899전원합의체판결 ; 대법원 1993.3.9.선고 92다38928판결 ; 대법원 1997.9.12.선고 97다19298판결 ; 대법원 1998.3.27.선고 97다6308 판결 참조). 그러나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은 사고 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 시에 무면허운전 중이었다는 법규위반상황을 중시하여 이를 보험자의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유로 규정한 것”이라는 설명은 부당하다.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이 사고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원인에 의한 보험사고의 위험을 보험에 의한 보호에서 배제하였다면 보험자는 그 사고로 인한 손해를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 대판 1993.11.23, 93다41549에 의하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차량의 관리자 내지 운전자의 사용자로서 그에게 요구되는 통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에도 운전자의 무면허사실을 알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면책약관은 적용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의견은 보험자의 면책을 피보험자에 대한 제재로 보는 태도로서 무면허운전을 보험금지급의무에서 제외한 보험자측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사법이론과 조화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보험자는 보험계약자에게 제재를 가할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3. 승낙피보험자의 승낙에 의한 무면허운전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을 아무런 제한 없이 적용한다면 무단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한 경우에 자동차보유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면서도 자기의 지배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무단운전자의 운전면허소지의 여부에 따라 보험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어 피보험자에게 너무 가혹하여 불합리하므로 피보험자의 명시적 묵시적 승인 하에 피보험자동차의 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하며, 기명피보험자의 직접적인 승낙이 없고 이로부터 운전승낙을 받은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인 승인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설시도 대법원의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판 1993.12.21, 91다36420와 1994.1.25, 93다37991에 의하면, “승낙피보험자는 원칙적으로 보험계약자나 기명피보험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제3자로 하여금 당해 자동차를 사용, 운전하게 승인할 권한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양승규 교수는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례“라고 비판한다(보험법 제3판, 412면 주19). 그러나 이 판례는 그후에도 이어졌다(대법원 1994.5.24.선고 94다11019판결 ; 대법원1995.9.15.선고 94다17888판결 ; 대법원 1996.2.23.선고 95다49776 ; 대법원 1996.10.20.선고 96다29847판결 ; 대법원 1997.6.10.선고 97다6827 ; 대법원 2000.2.25.선고 99다40548판결 참조). 그러나 본 판결의 사안에서는 기명피보험자인 피고회사가 홍인의에게 운전자의 고용을 인정한 이상 운전자에 대한 운전승인권도 부여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판 1993.1.19, 92다32111에서도 “기명피보험자와 자동차를 빌리는 사람과의 사이에 밀접한 인간관계나 특별한 거래관계가 있어 전대를 제한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추인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전대의 추정적 승낙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다만 이 판결에서는, 무면허운전면책약관이 적용되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기명피보험자의 간접적 승인을 받은 자의 사고에 대하여도 보험자는 보상의무가 있는지가 문제였다. 그런데 위의 대판 2000.2.25, 99다40548에서는 무면허운전면책조항에 관하여 “기명피보험자인 이글렌터카의 영업소장인 김태영은 자동차종합보험약관상 피보험자동차를 운행한 자격이 없는 만 21세 미만자인 김승우 또는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는 최보국을 임차인으로 하여 이 사건 자동차를 대여하고 21세 미만자인 김승우에게 이 사건 차량을 현실적으로 인도해 주었다는 것이므로, 이는 김태영이 그 대여 당시 21세 미만의 자가 김승우 또는 최보국으로부터 지시 또는 승낙을 받아 이 사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승인할 의사가 있었음을 추단할 수 있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 표현이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이웅의 이 사건 자동차의 운전은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아니라 기명피보험자의 묵시적 승인도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위의 97다6827판결에서는 “지입차주의 승낙 아래 무면허로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에는 무면허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는데, 사고를 낸 무면허운전자가 지입차주의 우발적 승인을 받고 운전한 자가 아니고 이 화물자동차를 상시 운전하는 자였다면 기명피보험자인 지입회사의 양해가 있었다고 보아 면책조항의 적용을 인정한 판지는 타당하다. 그리고 홍인의가 실질적으로 본건 화물자동차의 차주이고 피보험자임을 기준으로 하면 그가 고용한 운전자 정명화는 승낙피보험자가 될 것이다. 반대로 형식을 기준으로 피고회사가 차주이고 피보험자라고 한다면 피고회사소유의 본건 화물자동차를 상시로 운전하는 정명화는 적어도 그의 묵시적 승낙을 받은 승낙피보험자가 될 것이다. 본 판결도 제시하고 있는 묵시적 승인 하에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여러 기준들에 의하더라도 최소한 회사의 묵시적 승낙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닐까. 결어 : 본 판결은 보험자의 약관명시 설명의무 위반을 부당하게 부인하고 나서, 그 결과를 승낙피보험자의 개념에 의하여 무리하게 시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에는 찬성하지만 이 결론은 2중의 이론상 오류에 의하여 도달한 것이다.
2000-09-04
판결확정후 그 범행수단인 행위의 추가기소와 확정판결의 기판력
I. 판결이유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은 종전에 판결이 확정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 일부에 대한 범행수단으로서, 그 공소사실에 그 범행수단 및 태양으로 설시되어 있기는 하나, 종전사건의 공소장 등에 비추어 종전사건에서 검사가 이를 기소하지 아니하였음이 명백하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와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죄는 실체적경합범의 관계에 있을 뿐, 포괄일죄나 과형상일죄의 관계에 있지 아니하므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후에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을 추가 기소하여도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지 아니한다. II. 판례평석 (1) 처음의 기소대상에서 누락된 사실을 검사가 판결이 확정된 후 추가로 기소하는 경우 소송법상으로는 크게 두가지 점이 문제된다. 첫째는 ‘검사의 公訴權 濫用與否’이다. 우선 검사의 누락기소에 대해 피고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즉 피고인이 범죄를 부인했기 때문에 검사에게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기소가 누락된 경우에는, 누락기소를 검사의 직무태만이나 위법한 부작위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그러나 피고인이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자백하였고 다른 합리적인 이유가 없음에도 검사가 사실의 일부를 누락기소하고 판결확정후 추가 기소하는 것은 ‘병합심리에 의한 양형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피고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공소권의 남용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비록 검사가 관련사건을 수사할 당시 이 사건 범죄사실이 확인된 경우 이를 입건하여 관련사건과 함께 기소하는 것이 상당하기는 하나 이를 간과하였다고 하여 검사가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하여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대판 1998.7.10, 98도1273)고 하여 공소권남용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을 따르거나 검사에게 모든 범죄사실에 대한 동시소추의 의무는 없다고 보는 입장에 서면, 본 평석의 대상이 된 사안에서 검사가 피고인을 ‘사기죄’로 기소하면서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을 누락했다가 차후에 추가 기소했다 할지라도 공소권남용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 (2) 두 번째로 범죄사실의 누락기소와 확정판결 후의 추가기소는 ‘確定判決의 旣判力’ 및 ‘一事不再理의 原則’을 침해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본 평석의 대상이 된 대법원 판례는 이 점에 대해 심판하고 있다. 재판이 형식적으로 확정되면 그 판결의 의사표시도 확정되는데 이를 재판의 내용적 확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有·無罪의 실체재판이나 免訴判決의 경우 내용적 확정이 있게 되면 사실관계를 둘러싼 형벌권의 존부와 범위가 확정되는데 이후로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再訴가 금지되는 특별한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을 確定判決의 旣判力 또는 一事不再理效果라고 한다. 有·無罪 또는 免訴判決이 확정된 후 동일사건에 대해 再訴를 금지하는 이유는 1) 동일범죄에 대한 형사절차의 반복이 시민들에게 가져다줄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방지하고(二重危險禁止), 2) 형사사법기관의 업무 및 비용의 효율성을 높이며(訴訟經濟), 3) 형사피고인의 법적 지위의 안정성을 도모하며, 4) 동일사건에 대해 전후 모순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을 방지하여 형사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에 있다. 그런데 확정판결의 기판력 또는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해 판례와 다수설은 법원의 현실적 심판대상인 공소사실은 물론 그 공소사실과 單一하고 同一한 관계에 있는 사실의 전부(잠재적 심판범위)에 대해 그 효력이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법원의 심판범위에 대한 二元說의 입장). 이처럼 公訴事實의 同一性이 인정되는 범위까지 기판력이 미치는 것으로 보는 이유는 1) 공소제기의 효력은 공소사실뿐만 아니라 그와 동일성이 있는 범죄사실 전부에 대해서 미치고(형사소송법 제247조 2항 참조), 2) 피고인의 법적 지위의 안정과 피고인보호를 위해 二重危險을 금지하고자 하는 一事不再理原則의 취지에 비추어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는 위험이 미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3) 헌법 제13조 1항의 “동일한 범죄”는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죄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확정판결의 기판력 또는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형사소송법 제29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소장의 변경이 허용되는 범위와 일치하게 되며 그 구체적인 범위는 결국 ‘公訴事實의 同一性’에 관한 학설에 의해 정해질 수밖에 없다. 본 평석의 대상이 된 사건에서 사기죄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후에 그 판결의 기판력이 사기죄의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에게까지 미치는냐도 결국은 ‘사기죄’와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죄’ 사이에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3) ‘公訴事實의 同一性’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현재 다수설은 ‘基本的 事實同一說’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기본적 사실동일설’은 비교되는 양 범죄사실을 각각 그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로 환원하여 그러한 사실들이 다소간의 차이점을 보이더라도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하면 양자간에 동일성을 인정하는 견해이다. 즉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자연적·전법률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하나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범죄사실들에 대해서 동일성을 긍정하는 입장이다. 판례도 역시 종래에는 기본적 사실동일설의 입장에 서 있었으나 최근에는 ‘자연적·사회적 사실관계나 피고인의 행위가 동일한 것인가 외에 그 규범적 요소도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에 관한 실질적 내용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판 1994.3.22, 93도2080; 1996.6.28, 95도1270; 1998.6.26, 97도3297)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자연적·사실적 관계 외에 피해법익과 죄질 등의 규범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라 대법원은 앞의 93도2080 판결에서 ‘강도상해죄’와 ‘장물취득죄’ 사이에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부인한 바 있다. 대법원의 이러한 입장변화는 사건개념의 해석에 정의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피고인이 경한 범죄사실(장물취득죄)로 심판을 받고 판결이 확정된 후 중한 범죄사실(강도상해죄)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양 범죄사실 사이에 동일성이 인정되고, 따라서 확정판결의 기판력 때문에 중한 범죄사실인 강도상해죄에 대한 죄책을 물을 수 없다면 이는 정의관념에 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규범적 관점이 언제나 명쾌한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닐뿐더러, 이런 방법으로 사회의 처벌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補正訴訟을 인정하는 것은 형사피고인의 법적 지위를 안정시키고 두 번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기판력과 일사부재리원칙의 기본취지를 몰각시키는 것이 된다. 따라서 기판력과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설정하는 ‘公訴事實의 同一性’은 다수설과 같이 基本的 事實同一說에 의해 전법률적·자연적·사실적 관계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4) ‘기본적 사실동일설’에 의할 경우 공소사실의 동일성은 각각의 범죄사실을 그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로 환원하여 일반인의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동일한 사건)’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경우에 인정된다. 그리고 일반인의 생활경험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될 수 있는 경우들을 법률적 개념으로 구체화하는 데는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1) 수개의 범죄사실이 하나의 행위로 평가될 수 있을 때 그 범죄사실들은 소송법상으로 ‘하나의 사건’이다. 예컨대 수뢰와 공갈의 범죄사실은 동일인이 동일인으로부터 동일한 일시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재물을 교부받았다는 행위의 단일성이 인정된다면 하나의 사건이다. 절도와 장물보관의 범죄사실에서는 동일인이 다른 동일인 소유의 재물을 절취하여 그 재물을 운반·보관한 일련의 행위 전체를 1개의 범죄행위로 본다면 재물의 절취와 보관은 1개의 범죄행위의 부분적 행위이므로 결국 양 범죄사실 사이에 행위의 단일성이 인정되어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된다. 고의살인과 과실치사의 범죄사실도 하나의 행위(사건)를 놓고 법적 평가만 다른 경우이므로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된다. 2) 다음으로 수 개의 범죄사실이 각각 별개의 행위이면서 별개의 구성요건을 실현하는 경우에는 소송법상 원칙적으로 수 개의 사건이 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이 경우에도 ① 수 개의 범죄사실 사이에 포괄일죄 또는 과형상 일죄의 관계가 성립하거나, ② 수 개의 범죄사실 사이에 연결효과에 의한 상상적 경합(대판 1983.7.26, 83도1378 참조)이 인정되는 경우, 그리고 ③ 수 개의 범죄사실이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경우에는 소송법상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하여야 한다(배종대/이상돈, 형사소송법, 제3판, 402면 참조). 이런 경우에는 수 개의 범죄사실 사이에 행위의 다수성이 인정되고 각각 별개의 구성요건이 침해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될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5) 본 평석의 대상이 된 사안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와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범죄사실 사이에는 행위의 다수성이 인정되고 각각 별개의 구성요건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실체적경합범의 관계에 있을 뿐, 포괄일죄나 과형상 일죄의 관계에 있지 아니함이 인정된다. 그러나 양 범죄사실 사이에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인정된다. 즉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범죄사실은 사기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따라서 양 범죄사실은 실체적 경합의 관계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의 생활경험상 ‘하나의 사건’, 즉 동일한 사건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의 공소사실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그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사기죄의 범죄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즉 ‘하나의 사건’(=동일한 사건)으로 취급될 수 있는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범죄사실에도 당연히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검사가 피고인에 대해 특경법상 사기죄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후에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을 추가 기소하는 것은 확정판결의 기판력과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면소판결이 내려져야 한다. 사기의 범죄사실로 유죄의 형을 선고받고 판결이 확정된 피고인에게 또 다시 사기범죄의 ‘部分’행위로 인해 형사법정에 서는 일이 없도록 보장하는 것이 헌법상 피고인의 이중위험을 금지한 일사부재리원칙의 기본취지에 부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2000-06-12
설명의무 있는 약관의 중요한 내용
[사 안] 피고 제삼특장 주식회사(이하 제삼특장이라 한다)의 피용인인 소외 박현○는 1993. 1. 13. 19:30경 미금시 도농동 소재 주차장에서 제삼특장 소유의 유류수송용 12톤 카고트럭을 주차시키기 위하여 후진을 하던 중 위 주차장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순차로 설치되어 있던 피고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이라 한다) 소유의 전봇대 1개를 충격하여 넘어뜨리는 바람에 위 전봇대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던 전봇대 2개를 연쇄적으로 넘어뜨려 파손케 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일반수용가로의 전력 공급이 중단되었다. 원고는 미금시 지금동 소재 답 2,000㎡에서 비닐하우스 2동을 설치하여 서양란, 벤자민 등을 재배하고 있었고, 위 화초들은 모두 최저온도 영상 7도 내지 8도, 최고온도 영상 30도의 기온을 유지하여야 하는 바, 원고는 한전으로부터 공급받는 전기를 이용하여 겨울철이던 이 사건 사고 당시 전기온풍기를 가동하여 위 비닐하우스 내의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 사고로 위와 같이 정전됨으로써 원고가 약 12시간 30분 가량 전기온풍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복구가 완료되어 다시 전기가 공급될 무렵에는 위 비닐하우스 내의 온도가 이 사건 사고 당시의 외부 온도인 영하 1.4도 내지 4.4도와 비슷하게 되어 위 화초의 적정 최하온도 이하로 떨어짐으로써 위 화초들이 동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원고는 제삼특장 및 한전을 상대로 위 동해로 인한 손해배상(약 3천만원)을 청구하였다(이 평석에서는 제삼특장에 대한 부분은 생략하고 한전에 대한 부분 중 약관법 관련 사항만을 다루기로 한다). [판례요지] (1) 원고는 한전과 이 사건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한전의 전기공급규정을 준수하기로 약정하였는데, 위 전기공급규정 제51조 제3호, 제49조 제3호에는 한전의 전기 공작물에 고장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 한전은 부득이 전기의 공급을 중지하거나 그 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한전은 수용가가 받은 손해에 대하여 그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바, 이러한 규정은 면책약관의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서 한전의 고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경우까지 적용된다고 보는 경우에는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이하 약관법이라 한다) 제7조 제1호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나, 그 외의 경우에 한하여 한전의 면책을 정한 규정이라고 해석하는 한도내에서는 유효하다. (2) 위 면책규정을 한전의 고의·중대한 과실이 아닌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보는 한 객관적으로 보아 원고가 이 사건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할 당시 위 면책규정의 내용에 관하여 한전으로부터 설명을 들어 이를 알았더라면 위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인정할 만한 사정도 엿보이지 않는 이 사건에서 위 면책규정의 이러한 사항은 약관법 제3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약관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평석]1. 약관의 설명의무 약관이라 함은 그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를 불문하고 계약의 일방당사자가 다수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이 되는 것을 말하며(약관법 제2조 제1항), 사업자는 약관에 정하여져 있는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여야 한다(동법 제3조 제2항). 사업자에게 이러한 약관의 설명의무를 부여한 것은 상대방인 고객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약관에 정하여진 중요한 사항이 계약내용으로 되어 고객이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대판 1998. 11. 27. 98다32564, 대판 1999. 2. 21. 98다51374·51381, 대판 1999. 9. 7. 98다19240 등 참조). 2. 중요한 내용 약관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만 설명의무가 있고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설명의무가 없기 때문에 어떤 사항이 중요한 내용인지가 고객의 입장에서 상당히 중요한 데, 대법원판례는 고객이 당해 약관내용에 관하여 설명을 들어 알았더라면 당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리라고 인정되는 사실을 중요한 내용으로 보고 있다(대판 1994. 10. 25. 93다39942, 본건 대법원판결도 이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은영 교수도 당해 고객의 이해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계약체결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으로서 사회통념상 당해 사항의 知·不知가 계약체결의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을 설명의무있는 약관의 중요한 내용으로 보고있다(이은영, 약관규제법, 박영사, 1994, 118면). 3. 중요한 내용에 해당되는 사항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내용을 판례를 중심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보험상품의 내용·보험료율의 체계·보험청약서상 기재사항의 변동사항·보험계약자 또는 그 대리인의 고지의무(대판 1995. 8. 11. 94다52492). (2) 보험자의 면책사유(대판 1999. 3. 9. 98다43342·43359) (3) 보험계약의 승계절차(대판 1994. 10. 14. 94다17970) (4) 안전설계보험약관 소정의 자동차 소유자에 자동차의 등록명의자만이 포함된다는 사실((대판 1996. 6. 25. 96다12009). 4. 중요한 내용에 해당되지 아니하는 사항 중요한 내용에 해당되지 않아 설명의무가 없다고 본 것을 대법원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자동차종합보험보통약관(대인배상보험)상 면책조항의 배우자에 사실혼관계의 배우자가 포함된다는 사실(대판 1994. 10. 25. 93다39942). (2) 한국수출보험공사의 수출어음보험계약 약관에 규정된 수출계약의 의미(대판 1999. 9. 7. 98다19240). 5. 설명의 방법 설명은 현실적으로 하여야 하며, 보험약관의 내용이 추상적·개괄적으로 소개되어 있는, 보험계약의 청약을 유인하는 안내문의 송부만으로는 약관에 대한 사업자의 설명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이와 같은 보험약관의 설명의무에 관한 법리는 보험료율이 낮다거나(납입보험료가 소액) 보험계약의 체결방식이 통상의 경우와 다르다(통신판매 방식)고 하여 달라지지 아니한다(대판 1999. 3. 9. 98다43342, 43359). 권오승 교수는 「대법원은, 납입보험료가 소액이라거나 보험계약 체결의 방법이 통신판매의 방식을 취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보험자에게 요구되는 설명의무를 다른 통상의 경우와 달리 볼 수 없다고 하였다」고 하면서 98다43342·43359 판례를 인용하지 않고 다른 판례(대판 1999. 2. 23. 97다53588)를 인용하고 있는데(권오승, 경제법, 법문사, 1999, 482면), 의문이다. 왜냐하면 97다53588 판결의 내용은 약관의 설명의무에 관한 것이 아니고 아파트분양계약에 있어서 지체상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6. 설명의무의 예외 약관의 중요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계약의 성질상 설명이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에는 설명의무가 없다(동법 제3조 제2항 단서). 즉, 이 경우에는 설명하지 아니하여도 된다. 어떤 경우가 「계약의 성질상 설명이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에 해당되는지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계약관계별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설명의무의 예외는 명시·교부의무와는 달리 계약체결당시는 물론 그 후의 설명의무도 면제된다는 점에서(동법시행령 제2조 제2항 참조) 예외인정에는 신중한 판단을 요한다. 7. 설명의무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약관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하고, 계약의 성질상 설명이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가 아니라도 사업자에게 약관의 설명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 (1) 보험계약자나 그 대리인이 약관의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경우(대판 1999. 2. 21. 98다51374·51381, 대판 1999. 3. 9. 98다43352, 43359) (2)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보험계약자나 그 대리인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사항(대판 1999. 2. 21. 98다51374·51381). (3) 약관내용이 당해 보험계약에 있어서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조항(대판 1999. 3. 9. 98다43342, 43359) (4)보험약관에 정하여진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대판 1998. 11. 27. 98다32564) (5)이미 법령에 의하여 정하여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조항(대판 1999. 3. 9. 98다43342, 43359, 대판 1998. 11. 27. 98다32564) (6)당해 거래계약에 당연히 적용되는 법령에 규정되어 있는 사항은 그것이 약관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업자가 이를 따로 명시·설명할 의무는 없다(대판 1999. 9. 7. 98다19240). (7) 어느 약관 조항이 당사자 사이의 약정의 취지를 명백히 하기 위한 확인적 규정에 불과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별도로 설명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그것이 약관법 제3조 제2항에 위반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대판 1998. 2. 27. 96다8277). 8. 설명의무위반의 효과 사업자가 설명의무에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때에는 당해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동법 제3조 제3항). 따라서 보험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에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에 관하여 설명하지 않았으면 보험계약자나 그 대리인이 그 약관에 규정된 고지의무를 위반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대판 1995. 8. 11. 94다52492). 또한, 약관의 설명의무에 위반한 사업자에 대하여는 500만원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동법 제34조 제2항). 9. 결 론 본건 대법원판례는 전기수용가가 한전과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할 당시 그 면책규정의 내용에 관하여 한전으로부터 설명을 들어 이를 알았더라면 그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인정할 만한 사정이 엿보이지 않으므로 한전의 전기공급규정상의 면책규정은 약관법 제3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설명의무 있는 약관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이 판시내용은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 판례의 경우 전기수용가가 한전과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할 당시 그 면책규정의 내용에 관하여 한전으로부터 설명을 들어 알았다 하더라도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은 면책규정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전이 전기의 독점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만일 전기공급자가 한전 외에 또 있었다면 전기수용가는 위와 같은 면책조항에 관하여 설명을 듣고도 한전과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원은 약관의 불공정성 또는 설명의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약관을 작성·사용하는 사업자가 독점 공급자인지 여부를 가려서 사업자가 독점공급자인 경우에는 그 점을 판단에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즉, 본건에서 전기수용가는 한전의 전기공급규정상 면책조항의 내용이 부당하다 하더라도 전기공급에 관한 한 한전 외에 다른 공급자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전과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며, 법원은 위 면책조항의 내용을 설명의무 있는 약관의 중요한 내용으로 보고 한국전력공사가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위 면책조항이 전기공급계약의 내용이 되지 않았다고 판시하는 것이 타당했다고 본다. 만일 전기공급자가 한전 외에 또 있고(예컨대, A, B, C) 이들의 전기공급계약서 또는 전기공급규정에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면책조항과 같은 조항이 있다면 이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상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될 수 있으며(동법 제19조 제1항), 부당한 공동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한 시정조치(동법 제21조)와 과징금납부명령(동법 제22조)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사법상으로도 무효가 된다(동법 제19조 제4항).
2000-05-22
주식회사 전무이사의 표현대표이사성
I. 事案의 槪要 원고 산업횡하렌탈주식회사는 제1심 공동피고 주식회사 동방산업과 사이에 동방산업이 구입하는 컴퓨터 테스트기 등의 구입자금 2,525,342,600원을 렌탈형식으로 대여하는 내용의 렌탈계약을 체결하기로 하였다. 이 즈음 동방산업이 원고에게 부담하게 될 렌탈계약상의 채무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소외 서린기획이 액면금, 발행일 및 지급일을 백지로 하여 발행한 백지어음에 동방산업이 배서한 다음에 피고 서광건설산업 주식회사(舊商號: 서광산업주식회사)의 ‘전무이사/주택사업본부장’인 박신흠(동방산업의 대표이사 김동환의 장인)이 ‘서광산업주식회사 대표이사 박상근’ 명의의 배서를 하여 이를 원고에게 교부하였다(현재 동 어음은 박신흠에 의하여 파기되어 實存하지 아니한다). 동방산업이 렌탈료를 지급하지 아니하므로 원고는 렌탈계약을 해지하였고, 피고에 대하여는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의 법리에 따른 연대보증인으로서의 책임을 묻는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전무이사 박신흠에게 피고회사를 대표권한이 있는 것으로 원고가 믿은 데에는 중대한 과실이 있으므로 피고회사는 면책된다고 주장한다. II. 大法院 判決要旨 제1심과 원심(서울고등법원 1999. 3. 2. 선고, 97 나 47523 판결)은 원고의 주장을 옳게 여겨, 이 사건에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의 법리에 따른 피고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는데, 그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i)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기타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한 이사가 자기 명의로 법률행위를 한 경우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이사가 다른 대표이사(진정한 대표이사)의 명칭을 사용하여 행위한 경우에도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의 법리가 적용된다. (ii)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등의 명칭이 표현대표이사의 명칭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 일반의 거래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것인데, 상법은 모든 이사에게 회사의 대표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이사회 또는 주주총회에서 선정한 대표이사에게만 회사 대표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제도는 상법이 시행된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변함없이 계속하여 시행되어 왔고, 그 동안 국민일반의 교육수준도 향상되고 일반인들이 회사 제도와 대표이사 제도를 접하는 기회도 현저하게 많아졌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그와 같은 상법의 대표이사 제도를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며,…위와 같은 각 명칭에 대하여 제3자가 그 명칭을 사용한 이사가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있다고 믿었는지 여부, 그와 같이 믿음에 있어서 중과실이 있는지 여부 등은 거래통념에 비추어 개별적·구체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iii) 금융기관 임직원이 상장회사의 ‘전무이사/주택사업본부장’에게 회사를 대표하여 백지어음에 배서할 권한이 있다고 믿은 데 중과실이 있으므로 회사의 금융기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 III. 論 點 위 사안에는 여러 가지의 논점들(예컨대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지는 사용인의 권한을 넘은 행위의 효력, 회사의 사용자책임, 회사의 목적범위외의 행위의 효력, 이사의 자기거래, 이사회결의를 거치지 아니한 대표행위의 효력 등)이 있으나, 본고에서는 편의상 다음 두 가지의 논점만을 다루기로 한다. (i)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한 이사가 자기 명의가 아닌 다른 대표이사(진정한 대표이사)의 명칭을 사용하여 행위한 경우에도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의 법리가 적용되는지 여부. (ii) 금융기관의 임직원이 ‘전무이사/주택사업본부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자에게 대표권이 있는 것으로 오인한 것이 중과실인지 여부. IV. 硏 究 1. 진정한 대표이사의 명칭을 사용한 경우 상법 395조는 표현대표이사가 자신의 명칭(박신흠)이 아닌 다른 대표이사의 명칭(박상근)을 사용하여 거래한 경우에도 적용되는가 의문이다. 이에 관하여는 부정설과 긍정설이 있고, 대법원 판례는 긍정설을 취하였다. 긍정설은 상법 제395조의 적용범위를 타인명의로 법률행위를 한 경우까지로 넓히는 견해이고, 부정설은 상법 제395조의 적용범위를 자기명의로 행위한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견해이다. 생각건대 표현대표이사가 자기명의로 법률행위를 한 경우, 상대방의 신뢰는 대표권에 대한 것인 데 반하여, 타인의 명의로 행위한 경우 상대방의 신뢰는 대행권에 대한 것이므로 후자의 경우에는 민법 제126조를 적용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민법 제125조·제126조에 의할 경우 거래상대방의 선의·무과실을 요하는데 비하여 상법 제395조가 적용될 경우에는 선의·무중과실만 요한다고 보므로 상법에 의하는 것이 제3자보호에 더욱 유리하다. 긍정설이 타당하다고 본다. 2. 商法 제395조의 適用要件 (1) 表見的 名稱 상법 제395조(표현대표이사의 행위와 회사의 책임)는,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기타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한 이사의 행위에 대하여는 그 이사가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없는 경우에도 회사는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 그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상법 제395조가 명기한 명칭들은 표현대표이사의 명칭으로 오인될 수 있는 직함을 예시한 것으로서, “그와 같은 명칭이 표현대표이사의 명칭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 일반의 거래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고 판시한 것은 정당하다. 전무나 상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고 하여 무조건 표현대표이사로 인정하여야 할 것은 아니며, 또 반대로 총재, 총무, 회장 등의 명칭을 사용한 경우에 오히려 표현대표이사를 인정할 수도 있다. (2) 善意의 제3자 상법 제395조에서 말하는 ‘선의’라 함은 표현대표이사가 실제로는 대표이사가 아니라는 것, 즉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3자의 선의에 과실이 있는 경우에 관하여는 악의면책설(소수설)과 중과실면책설(다수설)이 있다. 대법원의 판례는 1994. 12. 2. 선고, 94 다 7591 판결에 이어, 이번 사건에서 ‘전무이사/주택사업본부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자에게 대표권이 있다고 믿은 거래상대방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어서 회사는 면책된다는 내용의 판결을 함으로써 중과실면책설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중과실면책설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에서는 특히 상법 제395조에 표현대표이사로 인정될 만한 명칭으로서 명문으로 예시하고 있는 ‘전무이사’라는 명칭을 사용한 경우에 대하여까지 거래상대방의 중과실을 이유로 회사의 면책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판단을 함에 있어서는 ① 그동안 국민 일반의 교육수준도 향상되고 일반인들이 회사제도와 대표이사제도를 접하는 기회도 현저하게 많아졌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그와 같은 상법의 대표이사제도를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된 점, ② 거래상대방인 원고는 대표이사제도를 잘 이해하는 금융기관인 점, ③ 원고가 백지어음발행(연대보증)에 관한 이사회 결의서를 요구하지 아니한 점, ④ 피보증인(동방산업)과 보증인 건설업체인 피고 간에 사업상 아무런 거래관계가 없는 점, ⑤ 보증금액이 매우 거액인 점, ⑥ 등기부 등본의 열람을 게을리한 점, ⑦ 회사의 경리담당부서 등에 필요한 확인을 하지 아니한 점 등의 사실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근자에 와서 일반인들도 대표이사제도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전제는 그 타당성에 의문이 있다. 오히려 일반인들은 大會社의 전무이사라면 실제로 그 권한도 막강할 것으로 믿는 것이 보통이며, 中小會社의 전무이사는 사실상의 권한은 없는 대외적인 목적상 또는 명목상의 직함이라고 믿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거꾸로 대회사의 전무이사라는 직함에 표현대표이사성을 인정함에 있어 신중함을 필요로 한다는 취지의 설시를 하였다. 이는 자칫 상법이 명문으로 규정한 ‘전무이사’라는 직함을 가진 자도 특히 상장회사(또는 대규모의 주식회사)의 경우 표현대표이사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을, 검증되지 않은 ‘일반인들의 교육수준 향상’을 근거로 일반화한 판결이라는 인식을 주게 된다. 이와 같은 견해는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제도는 상법상의 주식회사제도 내지 대표이사제도를 일반대중이 잘 이해하지 못하였던 시대에 선의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대적 산물로서, 그 적용에 있어 현대적 변용이 불가피하다는 일부 학자의 견해와 一脈相通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인들의 교육수준이 향상되었음을 전제로 표현대표이사제도 자체 또는 상법 제395조의 존재가치를 의심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일반인의 교육수준이 아니라 거래상대방의 전문성 내지 교육수준을 기준으로 상대방의 중과실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표현대표이사와 관련하여 거래상대방의 중과실이 인정된 예가 거의 없었다(서울고등법원 1993. 12. 10. 선고, 93 나 13201 판결에서는 중과실이 인정되었으나 대법원에서 파기된 바 있다). 대법원의 판결내용은 긍정적으로 보면 매우 진보적이고 획기적인 판단이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너무 앞서 가는 판결이다. 표현대표이사제도의 존재의의는 인정하되,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상대방의 중과실 여부를 판단하여 회사를 면책시키면 충분하지 않을까. 상법 제395조는 의용상법 제212조를 그대로 존치시킨 것인데, 의용상법상 이사는 모두 대표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본조의 취지는 소극적으로 제3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졌을 뿐이나, 대표권 없는 이사의 존재를 인정하는 현행상법하에서는 제3자의 적극적 신뢰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므로 의미 있는 규정이다. V. 結 語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구체적인 사실을 모두 검토하여 거래상대방인 원고의 중과실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언제나 구체적 타당성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여 왔으므로, 이 점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 사건에서 거래상대방이 금융기관(렌탈회사)의 과장과 상무이사 정도의 금융관계법 전문가인 점에 비추어 그들의 중과실을 인정한 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또한 박신흠의 ‘주택사업본부장’이라는 직함만 보면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사용인으로 볼 수도 있고, 그와 같이 볼 경우에는 그 권한을 넘은 행위에 대하여는 회사에 대하여 효력이 없으므로 결론은 같다. 판결은 결론적으로는 타당하다고 생각되나, 다만 그 설시부분에는 의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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