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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전문
공정거래위원회 '경고'의 법적 근거와 처분성 여부
1. 서론 대법원 1999. 12. 10. 선고 98다46587 판결이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거래행위를 이유로 내린 경고조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독점규제법')에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것으로서 이를 제24조 소정의 '기타 시정을 위한 필요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이래, 서울고등법원 등 다수의 하급심 또한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표시광고법') 또는 독점규제법 등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가 한 '경고'의 처분성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대상 판결은 표시광고법상의 '경고'가 표시광고법 제7조 제4호의 '기타 위반행위의 시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에 해당하는 행정처분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아래에서는 대상 판결이 대법원의 과거 판결과 다소 모순되는 듯한 판결을 한 이유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부당한 표시·광고행위는 독점규제법에서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으로 규제되다가, 1999년 표시광고법이 제정되면서(시행 1999. 7. 1.) 독점규제법상의 불공정거래행위로부터 분리·독립되었다. 2. 대상 판결의 요지 표시광고법 위반을 이유로 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의결은 당해 표시·광고의 위법을 확인하되 구체적인 조치까지는 명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사업자가 장래 다시 표시광고법 위반행위를 할 경우 과징금 부과 여부나 그 정도에 영향을 주는 고려사항이 되어 사업자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 표시광고법 제7조 제4호의 '기타 위반행위의 시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란 '당해 위반행위의 중지 명령' 등 제1호에서 제3호까지 규정한 시정조치 외에 위반행위를 시정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제반조치를 말하는 것이고, 표시광고법 위반행위에 따른 과징금 부과 여부나 그 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고처분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3. 평석 가. 사실 관계 원고들은 고양시 식사동에 분양하는 아파트 주변에 경전철 건설이 예정되어 있다는 내용의 허위·과장광고를 하였음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의결'을 통지받았다. 원고들은 이 사건 '경고의결'이 사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정처분임에도 법률적 근거가 없는 위법한 처분이라고 주장 등을 하며,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나. 공정거래위원회 '경고'의 법적 근거 및 처분성 여부에 관한 여러 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의 법적 근거 및 처분성에 관하여는, 여러 견해가 종래 법원 판결 및 당사자의 주장을 통하여 다양하게 제시되었는데, 이를 이해의 편의를 위해 단순화 하여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표시광고법 제7조 등에 다른 '시정조치'로 보지 않고, 처분성도 부정하는 견해 대법원 1999. 12. 10. 선고 98다46587 판결은 "경고조치는 독점규제법에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것으로서 이를 독점규제법 제24조 소정의 '기타 시정을 위한 필요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1999년 표시광고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하급심 법원에서 계속 확인되었는데, 서울고등법원 2002. 12. 3. 선고 2002누433 판결은 "이 사건 경고는 표시광고법 및 위 법이 준용하고 있는 독점규제법에 정하여진 피고의 처분의 종류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표시광고법 제16조 제1항이 준용하고 있는 독점규제법 제55조의 2를 근거로 법 규정에 위반하는 사건의 처리절차 등에 대하여 피고가 정하여 고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이하 '사건절차규칙') 제50조에 의한 의결의 일종에 불과하며, 그로 인하여 원고의 법률상 지위에 직접적인 법률적 변동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므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으며, 서울고등법원 2001. 8. 23. 선고 2001누3732 판결과 서울고등법원 2006. 10. 12. 선고 2005누27668 판결도 같은 취지의 입장이었다. (2) 시정조치로 보지 않으면서도, 처분성을 긍정하는 견해 대상 판결의 원심인 서울고등법원 2011. 1. 12. 선고 2010누17344 판결은, 이 사건 경고를 표시광고법 제16조 제1항이 준용하고 있는 독점규제법 제55조의 2를 근거로 법 규정에 위반하는 사건의 처리절차 등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사건절차규칙 제50조에 의한 의결이라고 보면서도, 경고를 받은 전력이 과징금 부과에 있어서 참작사유가 되는 법률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았다. (3) 시정조치로 보지 않고, 처분성을 긍정하면서, 법률유보 원칙에 위반된다고 보는 견해 원고들이 상고이유서 등에서 주장한 내용으로, 이 사건 경고는 사업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행정처분인데, 경고의결의 근거가 되는 사건절차규칙 제50조는 위임의 법률상 근거가 없으므로 법률유보 원칙에 위반되어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4) 시정조치로 보면서, 처분성을 긍정하는 견해 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1두4930 판결, 즉 대상 판결의 입장이다. 다. 대상 판결의 타당성 검토 (1) '경고의결'의 행정처분성 여부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이하 '과징금 고시') Ⅱ. 13.은 과징금 부과여부 및 과징금 가중기준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되는 '벌점' 산정에서 사건절차규칙 제50조에 의한 '경고'를 0.5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징금 고시는 2008. 11. 10. 이전까지는 경고의 경우 벌점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았으나, 2008. 11. 10.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8-18호로 개정된 과징금 고시에서 현재와 같이 벌점 규정이 신설되었다. 대법원은 어떠한 처분의 근거나 법적인 효과가 행정규칙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처분이 행정규칙의 내부적 구속력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적인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으로 그 상대방의 권리 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면, 이 경우에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1두3532 판결 등 다수). 따라서 2008. 11. 10. 과징금 고시가 개정되어 현재와 같이 경고에 벌점 규정이 신설된 이상, 경고를 상대방의 권리 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대상 판결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의결'을 행정처분으로 본 것은 합당하다. 참고로 표시광고법 시행령 제15조 제3항은 "이 영에 규정된 사항 외에 과징금의 부과에 관하여 필요한 세부기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하여 고시한다"고 하여 과징금 고시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고, 독점규제법 시행령 제61조 제3항도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2) '경고의결'의 법적 근거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의결'을 국민의 권리 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정처분으로 보는 이상, 당해 표시·광고의 위법성을 확인하되 구체적인 조치까지는 명하지 아니하는 '경고의결'을 표시광고법 제7조 제4호의 '기타 위반행위의 시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 또는 독점규제법 제24조 소정의 '기타 시정을 위한 필요한 조치' 해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이유는 없다고 판단된다. 원고는 상고이유서에서 표시광고법 제7조 제2항은 제1항 제2호 및 제3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음에도, 제4호에 대하여는 이러한 위임 규정이 없고, 제4호의 '기타 위반행위의 시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에 '경고'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예측가능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에 개별사건의 특수성에 따라 위반행위의 시정 또는 그 확보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합리적이고 적절한 시정조치의 내용을 결정할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기타 위반행위의 시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란 '당해 위반행위의 중지 명령' 등 제1호에서 제3호까지 규정한 시정조치 외에 위반행위를 시정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제반조치를 말하는 것이고, 표시광고법 위반행위에 따른 과징금 부과 여부나 그 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고처분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상 판결 내용은 타당하다. 참고로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9두1983 판결도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소비자 이익을 저해하는 남용행위에 관한 구체적 판단기준을 정한 시행령 등이 제정되지 않은 사안에서, 위 규정이 헌법상 법치주의원리에서 파생되는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4. 결론 대상 판결은 논란이 되어 왔던 공정거래위원회가 행하는 '경고'의 법적 근거와 행정처분성 여부에 관한 판단을 명백히 한 것으로, '경고'를 받은 경우 과징금 부과여부 및 과징금 가중기준 등의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벌점이 부여되도록 개정된 과징금 고시 내용을 반영한 타당한 판단으로 보인다.
2014-05-19
임차인의 경매신청만으로 우선변제권 선택 의사로 볼 수 있는지 여부
1.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P는 임대인과 주택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날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치고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았으나, 임대차 만료 후 임대인이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자 임대인을 상대로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를 하여 승소하였다. 확정판결에 기하여 P가 강제경매신청을 하였으나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별도의 배당요구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경매절차에서 집행관이 작성한 부동산현황조사보고서와 매각물건명세서에는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이라는 내용을 나타내는 전입신고 된 주민등록등본이 첨부되어 있었다. 경매법원은 배당기일에서 매각대금을 경매신청권자인 P와 P의 임대차계약보다 후순위로 주택에 가압류를 한 채권자들인 D1, D2, D3, D4에게 채권액의 비율대로 안분배당하는 내용의 배당표를 작성하였고 P는 D1, D2, D3, D4의 배당에 대하여 배당이의를 하였다. (2) 대법원 판결 (2013. 11. 14, 2013다27831 배당이의) 대법원은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하여 보증금반환청구의 확정판결 등 집행권원을 얻어 임차주택에 대하여 스스로 강제경매를 신청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중 우선변제권을 선택하여 행사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 경우 우선변제권을 인정받기 위하여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별도로 배당요구를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였다. 2. 본 사안의 쟁점 (1) 배당요구권자의 범위에 속하는지 여부 배당요구는 다른 채권자에 의하여 집행절차에 참가하여 동일한 부동산의 매각대금에서 만족을 얻기 위하여 하는 채권자의 신청을 말한다. 그런데 이 사건의 채권자는 집행권원에 근거하여 직접 경매를 신청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채권자의 집행절차에 참가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집행절차를 진행하는 자이며 배당요구권자가 아니다. 따라서 별도로 배당요구를 할 필요도 없다. 결국 P는 배당요구권자가 아니라 배당권자라고 할 수 있다. (2) 절차선택권 행사 인정 여부 1) 배당절차 참여의 선택권 행사 여부 그런데 채권자가 스스로 경매를 신청하였다는 사실만을 놓고서 채권자가 일반채권자로서의 배당과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으로서의 배당 중 어느 것을 확정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는 앞의 배당요구권자에 속하는 지와는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는 민사집행절차에 민사소송절차와 유사하게 변론주의(경우에 따라서는 처분권주의)의 원칙의 적용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2) 변론주의(예외원리 포함)의 적용을 긍정하는 견해 민사소송법의 변론주의가 민사집행절차에서도 통용된다고 입장이라면, 채권자가 경매신청만을 하였고 우선변제권을 행사한다는 명시적인 주장을 하지 않았더라도 부동산현황조사서에 우선변제권이 있음을 나타내는 내용이 포함(간접적 주장)이 되어 있다고 해석하여 채권자가 우선변제권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채권자가 경매신청자로서 별도의 배당요구서라는 서면을 제출하지 않고 배당요구종기까지 확정일자 있는 임대차계약서와 주민등록 등본 등 우선변제권이 있음을 소명하는 서류를 경매법원에 제출해도 우선변제권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P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이 견해는 집행법 이론의 측면에서 집행절차에 변론주의나 그 예외원리가 적용되는지에 기준으로 수립된 이론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3) 변론주의 원리의 적용을 부정하는 견해 민사집행절차는 형식주의와 신속주의가 강조되며, 절차의 준수에 대하여 민사소송절차보다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서는 경매법원이 재판예규 제1151호 '경매절차진행사실의 주책임차인에 대한 통지'(재민 98-6)를 통하여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이라고 하더라도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배당요구를 하여야만 매각대금으로부터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다고 고지(통지서 발송)하고, 채권자가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배당을 요구하여야 한다는 견해를 취한다. 제1심과 제2심 법원의 입장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견해에서는 위 고지로 부동산을 경락받고자 하는 자는 매각물건명세서를 보고 우선변제권 있는 임차인이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배당요구를 하였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 불측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특히 경매는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절차준수의 여부에 대하여 보다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고 집행법상의 원칙을 지키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절차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이에 속한다. 다만 위 재판예규에 의한 고지는 집행법원이 당사자의 편의를 위하여 경매절차에서 배당절차(제도)를 안내해 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고 집행법원이 절차진행을 주택임차인에게 통지할 법률상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이 절차에 의존하여 채권자에게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배당요구를 하지 않은 데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법원은 배당요구여부를 알리기 위하여 집행관들이 현황조사를 하고 건물에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나 실제 거주하지 않더라도 건물에 주민등록을 해 놓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배당요구 종기와 배당요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통지서를 우편으로 전달하는데, 임차인이 집을 비워 우편물을 받아보지 못한 경우도 많고 법률지식이 부족한 임차인이 통지서를 받고도 자신은 경매신청을 했기 때문에 별도의 배당요구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우선변제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일반배당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배당요구의 고지 여부와 석명권의 범위 경매법원이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이라고 하더라도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배당요구를 하여야만 매각대금으로부터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다는 고지를 하거나 고지가 전달되기 않은 상태(위 사안의 경우도 고지가 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며 고지는 집행법원의 의무사항도 아니므로 고지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에 있는 경매신청 채권자가 일반채권자로서 배당요구를 한 것인지 임차인으로서 우선변제권을 행사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한 경우에 집행법원에 석명의무가 있다고 볼 것인지가 문제이다. 2심법원은 원고의 강제집행신청은 일반채권자로서 배당요구를 한 것으로 임차인으로서 우선변제권을 행사한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가 아니므로 집행법원에 원고의 주장에 대한 석명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역시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하여 보증금반환청구의 확정판결 등 집행권원을 얻어 임차주택에 대하여 스스로 강제경매를 신청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중 우선변제권을 선택하여 행사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 경우 우선변제권을 인정받기 위하여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별도로 배당요구를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만 판시하여 결국 석명권의 부분은 논외로 하고 있다. 생각건대, 채권자가 단순히 강제경매만을 신청하고 일반채권자로서의 배당을 요구하는지 우선변제권이 인정되는 임차인으로서의 배당을 요구하는지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법원이 임의로 P가 그 둘 중의 하나의 절차를 선택한 것으로 채권자의 의사를 간주할 것이 아니라, 채권자에게 경매절차에 관한 절차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되었는지를 판단한 후,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석명권을 행사하여 절차선택을 명확히 하도록 한 다음, 그것을 판결의 기초로 삼아야 할 것이다. 3. 결어 결론만을 놓고 보면 대법원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하여 보증금반환청구의 확정판결을 얻어 임차주택에 대하여 직접 강제경매를 신청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차인에게 유리하게 우선변제권을 선택하여 행사한 것으로 보고 우선변제권을 인정받기 위하여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별도로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판단은 충분히 수긍된다. 이러한 판단이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도 맞다. 다만, 절차법적 측면에서 보면 P가 명시적으로 어느 절차에 의할 것인지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법원이 P에게 유리하게 우선변제권을 선택한 것으로 간주하는 집행절차상의 판단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집행절차 역시 소송절차와 절차원리가 다르지 않아 민사소송법상의 처분권주의, 변론주의 또는 그 예외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전제가 먼저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이러한 민사집행의 기본원칙이 통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며 제도의 발전이나 절차법상의 원칙에 대한 보다 충분한 규명이 우선인 상황이 아닌가 한다. 다음으로 채권자가 이 사건과 같이 경매신청자가 아니라 배당요구권자인 주택임차인의 경우는 인수와 소제를 선택할 수 있는 지위에 있어, 배당요구 종기 이내에 배당요구를 하면 매수인의 부담이 소멸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매수인이 그 부담을 인수하게 되며(민사집행법 제91조 제4항 단서), 배당요구를 한 채권자는 경매절차의 안정성요청 때문에 배당요구의 종기가 지난 뒤 이를 철회하지 못한다(민사집행법 제88조)는 규정의 적용은 무조건 배제하여 하는 지도 문제이다. 법원이 경매신청자라고 하여 배당요구권자에게 요구되는 절차규정의 적용은 배제하면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정신은 존중하여 P가 우선변제권을 선택한 것으로 간주까지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집행절차의 원칙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이 사건의 경우 집행절차선택의 기회보장, 절차의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 만연히 당사자의 절차선택의사를 간주하기보다 석명권을 적절히 행사하는 것이 절차법의 큰 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실체법의 정신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2013-12-23
파트너십을 세법상 외국법인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1. 사건 개요 케이만 군도에 설립된 A 파트너십(limited partnership)은 1999. 10. 룩셈부르크 등의 법인을 통하여 벨지움국에 B법인을 설립하였으며 B법인은 같은 달 국내 C법인의 사업부분을 인수하여 내국법인인 원고를 설립하였다. 원고는 B법인에 2004년 및 2005년도 배당금을 지급하면서 한·벨 조세조약상의 제한세율을 적용하여 원천징수분 법인세를 납부하였다. 한편, B법인은 2005. 11. 내국법인인 D에게 보유하고 있던 원고의 주식을 양도하여 이 사건 양도소득을 얻었는데, D는 '한·벨 조세조약상 주식의 양도로 인한 소득은 양도인의 거주지국에서만 과세된다'는 이유로 B법인에게 주식 양도대금을 지급하면서 그에 대한 법인세를 원천징수하지 않았다. 그 후 D는 2006. 2. 원고에게 흡수합병되었다. 이에 과세관청은 '2007. 7. 룩셈부르크 및 벨지움국에 설립된 법인은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설립된 명목상 회사이며 이 사건 배당소득 및 양도소득은 모두 케이만 군도에 설립된 A 파트너십이 그 실질적인 귀속자이므로 한·벨 조세조약이 적용될 수 없다'고 보아 원고에게 2004 사업연도 귀속 원천징수분 법인세 약 6억 원, 2005 사업연도 귀속 원천징수분 법인세 약 4억 원, 이 사건 양도소득에 대하여는 D의 납세의무를 승계한 원고에게 2005 사업연도 귀속 원천징수분 법인세로 약 40억 원을 납세고지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위와 같은 사실관계 하에서, '제반 사정에 비추어 B법인 등은 명목상의 회사일 뿐 위 배당소득의 실질적 귀속자는 A 파트너십이므로 한·벨 조세조약이 적용될 수 없고, A 파트너십은 펀드의 일상 업무를 집행하며 무한책임을 지는 무한책임사원(general partner)과 소극적 투자자로서 투자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사원(limited partner)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유한 투자목적을 가지고 자금을 운용하면서 구성원인 사원들과는 별개의 재산을 보유하며 고유의 사업활동을 하는 영리 목적의 단체로서, 구성원의 개인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인적 결합체라기보다는 구성원의 개인성과는 별개로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독자적 존재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외국법인에 해당하여 법인세 과세대상이 된다'고 판시하였다. 3. 판례 평석 가. 외국법인에 대한 원천징수의무 법인세법 제98조 제1항은 '외국법인에 대하여 이자소득, 배당소득, 사용료소득, 양도소득, 기타소득 등 국내원천소득으로서 국내사업장과 실질적으로 관련되지 아니하거나 그 국내사업장에 귀속되지 아니하는 소득의 금액을 지급하는 자는 그 소득을 지급할 때에 각 원천징수세율에 따른 금액을 해당 법인의 각 사업연도의 소득에 대한 법인세로서 원천징수하여 그 원천징수한 날이 속하는 달의 다음 달 10일까지 납세지 관할 세무서 등에 납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규정에 따르면, 예를 들어 내국법인이 국내사업장이 없는 외국법인에게 배당소득을 지급하는 경우에는 법인세법에 따라 지급금액의 20%를 원천징수하여 관할 세무서에 납부하여야 함이 원칙이다. 다만, 그 배당소득의 수익적 소유자가 우리나라와 조세조약이 체결된 국가의 거주자인 경우에는 내국법인의 원천징수는 조세조약상 정해진 제한세율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세법상 높은 세율에 따라 원천징수를 할 수 있는지 여부는 수익적 소유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조세조약이 체결된 국가의 거주자로서의 개인 또는 법인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본 사안에서 배당소득 및 양도소득은 실질적으로 케이만 군도에 설립된 A 파트너십에 귀속되었다고 보아야 하고, A 파트너십은 법인세법상 외국법인에 해당하며, 케이만 군도는 우리나라와 조세조약을 체결한 바가 없으므로, 우리나라 세법상 정해진 세율에 따라 원천징수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파트너십은 소득이 실질적으로 귀속되는 법인에 해당하는 것일까? 나. 미국법상 파트너십의 취급 미국법상 파트너십은 무한책임사원으로만 구성되는 General Partnership, 유한책임사원과 무한책임사원으로 구성되는 Limited Partnership,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무한책임을 지지만 다른 구성원의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는 Limited Liability Partnership, 유한책임회사의 형태이지만 과세상 파트너십과 같이 취급되는 조직인 Limited Liability Company로 구분된다. 파트너십은 미국 국세청의 'Check the box regulation'에 따라 법인으로 취급될 것을 선택하여 파트너십에 법인세가 과세되도록 할 수도 있지만 이를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파트너십을 법인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소득은 그 구성원(partner)에게 흘러가므로 파트너십이 아니라 그 구성원에게 과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 론스타 및 라살레 사건과 본 사건의 차이점 론스타 사건(대법원 2012. 1. 27. 선고 2010두5950판결)은 미국 델라웨어주 법률에 따라 설립된 파트너십이 벨지움국 법인을 설립한 후 그 법인을 통해 한국 내 회사의 주식을 싱가폴 법인에게 양도함으로써 막대한 양도차익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벨지움국 법인은 '한·벨 조세조약상 주식양도로 인한 소득이 양도인의 거주지국에서만 과세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과세관청에 이 사건 주식의 양도소득을 신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과세관청이 주식 양도차익의 실질적 귀속자를 미국 파트너십으로 보아 한·벨 조세조약 및 소득세법을 적용하여 소득세를 과세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파트너십이 고유의 사업 활동을 하는 영리 목적의 단체로서 그 구성원들로부터 독립하여 권리·의무의 주체가 된다면 법인세법상 외국법인으로 보아야 하므로 파트너십에 법인세를 과세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소득세를 과세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 후에도 대법원은 라살레 사건(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0두11948판결) 등 여러 사례에서 위와 같은 논리로 파트너십을 법인세법상 외국법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론스타 사건이나 라살레 사건은 외국 단체 간에 거래가 이루어진 탓에 과세관청이 그 파트너십의 구성원을 밝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서 설립된 파트너십이 구성원에 관한 자료 제공을 거부한다면 그 구성원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세관청으로서는 과세를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론스타 사건에서는 일단 파트너십에 과세를 하되, 파트너십을 법인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단 하에 소득세를 과세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과세관청은 론스타 사건 이후 파트너십을 법인으로 보아 법인세를 과세하였으며 대법원은 이러한 법인세 과세가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대상판결의 사례는 내국법인과 외국법인 간의 거래라는 점에서 위 두 사례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원천징수의무자가 내국법인이다. 그렇다면 파트너십의 구성원을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세관청은 소득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더 이상 파악하지 않고 파트너십에 소득이 귀속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법원은 기존의 논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벨지움국 법인은 도관회사에 불과하므로 수익적 소유자가 될 수 없으며 파트너십을 외국법인으로 보아 원천징수의무자인 내국법인에게 한 이 사건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라. 검토의견 첫째, 조세조약 또는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얼마의 소득이 실질적으로 귀속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파트너십이 고유 사업목적을 가지고 구성원으로부터 독립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과연 영리목적이나 구성원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없는 파트너십이 있을지, 또한 그것이 소득의 실질적 귀속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둘째, 조세조약상 제한세율 등이 적용되는 국가에 설립된 법인은 조세회피목적상 설립된 명목상의 회사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소득의 실질적 귀속자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파트너십의 경우에는 소득이 그 구성원들에게 그대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구성원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법인이 아닌 것을 법인으로 보아 소득의 실질적 귀속자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한지 다소 의문이다. 셋째,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조세조약상 원천징수의무가 면제되거나 제한세율이 적용되는 국가에 파트너십을 설립한다면 그러한 경우에도 파트너십을 법인으로 보아 우리나라가 원천징수를 하지 못하거나 제한세율을 적용해 주어야 할 것인지에 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파트너십을 법인세법상 외국법인으로 볼 수는 있지만 조세조약상 법인과는 다르므로 한·미 조세조약의 제한세율을 적용할 수 없다(대법원 2013. 10. 24. 선고 2011두22747판결)'는 판시를 하였으나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파트너십에 대한 일관성 없는 취급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파트너십을 자국에만 유리하게 해석하여 과세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이는 외국자본의 투자기피현상을 초래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보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3-11-21
제조물 관련 불법행위책임 성립 요건 및 판단기준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농장에서 한우를 사육하고 있고, 피고는 동물용 의약품의 수입, 판매 및 유통업을 영위하는 회사로서 소 코로나바이러스 및 로타바이러스 감염 예방 목적의 생혼합백신(이하 "이 사건 백신"이라고 한다)을 수입, 판매하였다. 이 사건 백신은 어미소들에게 분만 전 2회 접종하여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형성시킨 다음 출생 직후의 송아지들에게 초유를 먹임으로써 어미소들에게 형성된 항체 등 면역물질이 송아지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송아지 설사병은 송아지 폐사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어린 송아지의 경우 로타바이러스 및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설사병이 50% 이상, 대장균 감염에 의한 설사병이 약 20%를 차지한다. 송아지가 외부의 병원체들에 대한 방어능력을 갖추기 위하여 생후 6시간 이내에 1리터 이상의 초유를 먹게끔 하여야 하고, 초유 수유 전 반드시 어미소의 유두를 소독하여야 하며, 송아지가 어미소의 항체가 전달되기 이전인 생후 12시간 이내에 대장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위생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원고는 2007년경부터 이 사건 백신을 타사 백신과 병용하여 어미소들에게 접종하였고 2008년 9월경부터는 이 사건 백신만을 단독으로 사용하였는데, 2008년 10월경부터 송아지 집단 폐사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원고는 2009년 2월경부터 이 사건 백신의 접종을 전면 중지하였고 이후 2010년 이후로 송아지 폐사율이 격감하였다. 한편, 2009년 2월경 폐사한 송아지 사체에서 로타바이러스 및 대장균 감염증이 관찰되었고, 폐사하지 않은 송아지의 설사분변에서도 로타바이러스 감염증이 관찰되었으며, 폐사한 송아지의 어미소 2두의 혈액 및 타사 백신을 접종하고 송아지를 분만한 어미소 2두의 혈액 모두에서 로타바이러스 감염증 항체가 양성(로타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으로 판정되었다. 2. 판결의 요지 가. 제1심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9. 15. 선고 2009가합144512 판결) 제1심 판결은, 어미소에서 로타바이러스 항체가 검출되는 것은 어미소가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와 백신 접종으로 항체가 형성된 경우의 2가지 가능성이 있으므로 항체 검출만으로 어미소가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원고가 이 사건 백신 접종을 중단한 이후에도 7개월 가량 송아지들의 폐사율이 이 사건 백신을 접종할 때와 유사하였고 달리 이 사건 백신으로 인하여 송아지들이 집단 폐사하였다는 공식 보고가 없었던 점, 송아지 폐사체에서 대장균 감염증이 확인되는 등 송아지 집단 폐사에는 대장균 감염증이 적어도 복합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점, 백신을 접종하거나 모유를 수유하였다고 하여 반드시 충분한 면역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항체가 형성되거나 전달되는 것은 아니고 어미소의 수유시기나 수유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나. 제2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11. 9. 27. 선고 2010나95187 판결) 제2심 판결은, 원고가 타사 백신을 사용하던 기간 동안에는 송아지들이 집단 폐사하지 아니하다가 이 사건 백신을 사용한 이후 집단 폐사한 점, 원고가 사용하지 않고 보관 중이던 이 사건 백신을 검사한 결과 백신의 생물학적 효과의 정도를 나타내는 역가(力價)를 인정할 수 없다는 충남대학교 교수의 실험결과가 제시된 점, 송아지 폐사체 등에서 로타바이러스가 검출된 점, 세계적인 규모의 제약회사인 피고가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은 검사 결과는 원고에게 통보하면서 원고로부터 수거한 이 사건 백신들은 기존 샘플과 육안으로 비교한 결과 이상이 없어서 내부 규정에 따라 이를 모두 폐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원고 농장의 송아지들이 로타바이러스병 또는 로타바이러스와 대장균 등의 복합감염에 의하여 집단 폐사한 것은 이 사건 백신이 백신으로서의 효능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 사건 백신의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던 이상 이는 피고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이라고 추인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다.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1다88870 판결) 대법원은 "고도의 기술이 집약되어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에 성능 미달 등의 하자가 있어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제조업자 측에게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책임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소비자로서는 그 제품이 통상적으로 지녀야 할 품질이나 요구되는 성능 또는 효능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등 일응 그 제품에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사실과 제품이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되었음에도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제조업자 측에서 그 손해가 제품의 하자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것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그 제품에 하자가 존재하고 그 하자로 말미암아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지도 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다"고 전제한 후, 이 사건 백신이 정상적인 효능을 갖추지 못한 하자가 있는 것이었음을 일응 추단하게 하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는바, 충남대학교 교수의 실험은 유효기간이 4개월이나 지난 이 사건 백신을 한여름에 통상적인 택배 방식으로 발송 받아 이뤄지는 등 결과의 정확성이 보장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송아지 폐사체에서 병원성 대장균이 검출되었고 폐사하지 아니한 송아지의 설사변에서도 로타바이러스가 검출된 점에 비추어 볼 때 송아지 폐사의 원인이 로타바이러스 감염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원고는 2009년 2월부터 타사 백신을 사용하였고 2009년 3월부터는 로타바이러스 항체를 송아지들에게 직접 투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1년간 송아지 폐사율이 여전히 높았던 점, 피고가 원고로부터 수거한 백신을 모두 폐기하였다는 주장을 하였다고 볼 근거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점, 이 사건 백신에 대하여 법원에 감정 신청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과 같은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백신에 하자가 있다고 추단하기에 충분하다고 볼 만한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3. 평석 제조물책임법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1) 결함의 존재, 2) 손해의 발생 및 3) 결함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존재한다. 그러나 소비자 측에서 제품의 결함 및 그 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과학적·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우므로, 제품을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한 경우 소비자 측에서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고 그러한 사고가 어떠한 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정을 증명하면, 제조업자 측에서 그 사고가 제품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결함의 존재 및 결함과 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다15934 판결). 이 사건의 경우 대법원은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로서 원고가 "제품이 통상적으로 지녀야 할 품질이나 요구되는 성능 또는 효능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등 일응 그 제품에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위요건 중 "사고가 어떠한 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정"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백신 관련 사건의 경우, 과연 해당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감염성 질환 예방의 경우 백신의 성능 이외에도 접종 대상의 위생 상태, 동반 질환 및 유행 균주의 특성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송아지 집단 폐사에는 로타바이러스 감염증 이외에 대장균 감염증, 어미소 및 축사의 위생 상태, 해당 농장 내지 해당 지역에 이 사건 백신이 듣지 않는 바이러스 균주가 분포하였을 가능성 등 이 사건 백신의 성능과는 무관한 요인들이 일정 정도 개입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대법원이 이 사건 불법행위책임의 성립에 있어 송아지 집단 폐사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하였을 것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제조물 관련 불법행위책임의 성립과 관련하여, 제조물의 결함 및 결함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추정을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사실관계가 전제되어야 하고 그러한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은 소비자 측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이는 제조물책임법상 제조물의 결함 등에 대한 입증책임은 소비자 측에 있고, 대법원 판례는 위와 같은 입증책임을 완화한 것이지 이를 전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렇다면 이 사건과 같은 경우에 "일응 해당 제품에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사실"은 어떻게 입증하여야 할까? 대법원 판결에서는 감정 신청 등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을 받기 위한 증거신청이나 증거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지만, 반드시 감정 등을 요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결함을 추단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닌 결함 자체의 입증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경우, 어미소의 혈액에서 로타바이러스 감염증 항체가 검출되었고 송아지 폐사체에서 대장균 감염증이 확인되었으며 타사 백신 내지 항체 직접 투여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송아지 폐사율이 높았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제반 정황이 이 사건 백신의 결함을 추단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사료된다. 이와 같이 제반 정황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에는, 감정 신청 등 보다 적극적인 입증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013-11-11
상표의 외관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사용에 의한 식별력 인정
1. 사건의 개요 학교법인 한마학원은 경상대학교 산학협력단을 상대로, 경상대학교 산학협력단의 등록서비스표(등록번호 제179255호) '경남국립대학교'가 학교법인 한마학원의 등록서비스표(등록번호 제113018호)인 ''(이하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라 함)와 동일·유사하다는 이유로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하였다. 경상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가 식별력이 없다고 다투었고, 이에 대해 학교법인 한마학원은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가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2. 법원의 판단 가. 원심의 판단(특허법원 2011. 7. 8. 선고 2010허8191 판결) 식별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표장이 사용된 결과 수요자 사이에 서비스업의 출처를 표시하는 식별표지로 현저하게 인식되어 식별력을 가지게 되더라도,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하는 것은 실제로 사용된 서비스표와 그 서비스표가 사용된 서비스업에 한하고, 그와 유사한 서비스표 및 서비스업에 대해서까지 식별력 취득을 인정할 수는 없다. 경남대학교라는 학교 명칭 또는 '', ''와 같은 학교 표장은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의 등록결정일인 2005. 1. 7.경 무렵 일반 수요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는 실사용서비스표인 ''와 비교하면 영문 'KYUNGNAM UNIVERSITY' 또는 한자 '慶南大學校' 부분이 부가되어 있고, 실사용서비스표인 '' 와 비교하면 도형 부분이 없는 대신에 한자 부분이 부가되어 있어서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를 위 실사용서비스표들과 동일한 서비스표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의 등록결정시에 위 실사용서비스표들 이외에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도 학교법인 한마학원의 서비스업을 표시하는 것으로 현저하게 인식되기에 이르러 식별력을 취득하였다는 사실을 추인하기 어렵다. 나. 대상판결의 요지(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1후1982 판결: 원심 파기환송) 등록상표의 구성 중 식별력이 없거나 미약한 부분과 동일한 표장이 거래사회에서 오랜 기간 사용된 결과 상표의 등록 전부터 수요자 간에 누구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표시하는 것인가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부분은 사용된 상품에 관하여 식별력을 가지게 되므로, 위와 같이 식별력을 취득한 부분을 그대로 포함함으로써 그 이외의 구성 부분과의 결합으로 인하여 이미 취득한 식별력이 감쇄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등록상표는 전체적으로 볼 때에도 그 사용된 상품에 관하여는 자타상품의 식별력이 없다고 할 수 없고, 이러한 법리는 상표법 제2조 제3항에 의하여 서비스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의 구성 중 '경남대학교' 부분은 그 자체로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인 '경상남도'의 약어인 '경남'과 보통명칭인 '대학교'를 표시한 것에 지나지 않아 식별력이 있다고 할 수 없으나, 오랜 기간 이 사건 지정서비스업에 사용된 결과 이 사건 등록결정일인 2005. 1. 7.경에는 수요자 사이에 그 표장이 학교법인 한마학원의 업무에 관련된 서비스업을 표시하는 것으로 현저하게 인식되기에 이르렀으므로 그 표장이 사용된 이 사건 지정서비스업에 관하여 식별력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위와 같이 식별력을 취득한 '경남대학교' 부분을 그대로 포함한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는 영문 'KYUNGNAM UNIVERSITY' 및 한자 '慶南大學校'와의 결합으로 인하여 이미 취득한 식별력이 감쇄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에도 그 지정서비스업에 대해서 자타서비스업의 식별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3.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상표법 제6조 제2항의 규정 내용 상표법 제6조 제2항은 기술적 표장, 현저한 지리적 명칭, 흔히 있는 성 또는 명칭, 간단하고 흔히 있는 표장과 같이 식별력이 없는 상표라도 상표등록출원 전에 상표를 사용한 결과 수요자간에 그 상표가 누구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표시하는 것인가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다면, 그 상표를 사용한 상품을 지정상품으로 하여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사용에 의해 식별력을 취득한 그 상표, 즉 '동일한 상표'의 상표등록을 허용하고 있다. 그 자체로는 식별력을 갖추지 못한 표장이라 하더라도 사용에 의해 거래상의 식별력을 획득하였다면, 그러한 표장은 이미 거래자나 수요자에게 특정인의 상표로 승인된 셈이어서 사후적으로 상표로서 보호할 필요와 적격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사용에 의해 식별력이 인정되는 '동일한 상표'의 범위에 관한 판단기준 사용에 의해 식별력이 인정되는 '동일한 상표'의 범위에 관하여,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하는 것은 실제로 사용된 서비스표에 한하고, 그와 유사한 서비스표에 대해서까지 식별력 취득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실무적 경향(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5후1356 판결 등 참조)이었다. 법원은 타원형 안에 영문자 'SK'를 표기한 표장과 출원상표 'sk'는 호칭이 '에스케이'로 동일하나 외관상 차이가 있어 일반 수요자의 입장에서 전체적, 객관적, 이격적으로 관찰하여 볼 때 유사한 상표로 볼 수는 있을지언정 동일상표라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러한 유사 상표를 사용한 것을 출원상표의 사용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특허법원 1999. 2. 11. 선고 98허9574 판결)하여, '동일한 상표'의 범위를 외관, 관념 및 호칭이 일치하는 상표에 한정하여 왔다. 한편 그 후 대법원은 소위 'K2 사건'(대법원 2008. 9. 5. 선고 2006후2288 판결)에서, 원고 회사는 '' 등 '' 상표와 동일성의 범위 내에 있는 상표를 20여 년 동안 등산화 등에 대한 광고에 사용하여 왔고, 2002년부터는 고딕화된 형태의 '' 상표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여 등록상표의 등록결정일까지 3년 6개월간 사용하였으므로 등산용품에 관한 거래자 및 수요자의 대다수에게 '' 상표는 원고 회사의 상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어서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하였다고 판시하였다. 즉 외관이 일치하지 않은 상표라 하더라도 사용에 의한 식별력 취득의 고려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K2 사건'은 사용에 의한 식별력이 인정된 상표와 외관이 동일한 상표인 '' 상표를 등록상표의 등록결정시까지 계속하여 사용하여 온 사건이고, 외관이 동일하지 않은 상표의 사용은 부수적으로 고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대법원이 '동일한 상표'의 범위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한 것인지 다소 불명확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2011후1982 판결에서는, 종래의 대법원 입장과는 달리, 상표의 외관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사용에 의한 식별력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즉 등록서비스표가 사용에 의한 식별력이 인정된 상표와 외관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등록서비스표가 사용에 의한 식별력이 인정된 상표를 그대로 포함하고 있고 이에 결합된 부분으로 인해 이미 취득한 식별력이 감쇄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등록서비스표에 대하여도 전체적으로 식별력을 인정한 것이다. 다. '동일한 상표' 판단에 대한 대상판결의 타당성 여부 관념과 호칭을 가지는 '문자상표'의 경우에는 관념과 호칭이 식별력 여부를 판정하는 주요 요소가 될 것이므로 실제 상표를 사용한 결과 관념 또는 호칭의 면에 있어서 식별력을 취득하였고 출원상표와 실제 사용상표가 관념 및 호칭의 면에서 일치한다면 외관이 다소 다르더라도 출원상표를 사용에 의해 식별력을 취득한 상표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상표를 사용한 결과 그 관념 및 호칭이 수요자로 하여금 누구의 업무에 관한 상표인지를 인식하게 하였다면 외관의 차이가 있더라도 다른 상표사용자들이 동일한 관념과 호칭을 갖는 상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므로, 실제 사용상표와 외관에서 차이가 있는 출원상표의 등록을 허용하더라도 그로 인해 다른 상표사용자의 권리가 더 제한되는 결과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원 2011후1982 판결에서,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는 상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는 학교 명칭인 '경남대학교'의 국문, 영문, 한문 표기일 뿐이고, 그 관념 및 호칭은 '경남대학교' 하나뿐이며, 그 외 부가적인 호칭이나 관념은 전혀 생길 수 없었다. 나아가 학교법인 한마학원이 '경남대학교'를 사용한 결과 수요자들이 이 서비스표의 관념 및 호칭이 학교법인 한마학원의 업무에 관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위 서비스표와 외관이 다르더라도 관념 및 호칭이 동일 또는 유사한 서비스표를 사용할 수 없고, 따라서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의 등록을 허용하더라도 그것이 위 서비스표의 등록을 허용하는 것에 비하여 다른 상표사용자의 권리를 더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학교법인 한마학원의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는 원심이 식별력 취득을 인정한 서비스표와 동일한 서비스표로서 상표법 제6조 제2항에 의하여 식별력을 취득한 서비스표에 해당한다고 본 대상판결은 타당하다 할 것이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상표의 외관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사용에 의한 식별력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인정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이에 따라 앞으로 대법원이 '동일한 상표'의 범위를 넓게 인정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다만 외관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인정하는 판단기준을 정립하여 이를 조금 더 상세하게 기술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2-12-20
상표권 침해소송에서 등록무효사유에 대한 심리 판단
Ⅰ. 사실의 개요(법률신문 2012년 10월 25일 5면 보도) 1) 원고와 피고는 동일한 상호를 사용하는 서로 다른 법인이다. `원고는 2006.10.부터 2008.5. 사이에 건축용 비금속제 문틀/창틀/천정판 등과 그 상품들의 판매대행/알선업 등에 대하여 , , 와 같은 상표/서비스표를 등록받았다. 2) 소외 김○○는 1994.4.에 Hi-Wood가 작게 표시되어 포함된 상표를 창문틀, 천정판 등에 대하여 등록받았다. 피고는 2004.3.에 김○○으로부터 영업권과 상표권을 양수하였고(상표권은 그 직후에 관리소홀로 소멸함), , 등의 상표를 원고의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한 상품에 사용하였다. Ⅱ. 판결의 요지 상고 기각. 상표법의 목적과 재산권의 행사에 관한 정의와 공평의 이념에 비추어 볼 때, 등록상표에 대한 등록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그 상표등록이 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 상표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하며, 상표권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으로서도 상표권자의 그러한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항변이 있는 경우 그 당부를 살피기 위한 전제로서 상표등록의 무효 여부에 대하여 심리·판단할 수 있다. Ⅲ. 해설 1. 학설 및 판례 가. 우리나라 특허법의 경우 행정행위의 공정력 이론이나 특허청과 법원의 권한분배론 등에 입각하여 대법원은 특허권 또는 상표권 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이 그 전제로서 당해 특허 또는 상표등록의 무효에 대하여 심리 판단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 원칙을 그대로 따르면 침해소송에서 침해 여부가 다투어지고 있는 당해 특허에 무효사유가 있음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침해행위의 금지와 손해배상 등을 명하여야 하는 불합리가 발생하게 되어 소송경제와 구체적 타당성에 반하게 되고, 판결 후에 특허가 무효로 확정되면 그 판결은 재심사유로 된다. 따라서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에 반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 타당성을 꾀하기 위하여 특허발명의 보호범위에서 공지기술을 제외하거나 확인대상발명이 자유실시기술이라는 이유로 침해를 부정하는 방법을 취해 왔고, 최근에는 침해사건 담당 법원이 권리남용의 항변의 당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특허발명의 진보성 여부까지 심리·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12. 1. 19. 선고 2010다95390 전원합의체 판결). 나. 일본 특허법과 상표법의 경우 상기 전원합의체 판결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소위 킬비 사건의 판결(최고재판소 2000. 4. 11. 제3소법정 판결)을 따른 것이다. 일본은 킬비 판결 이후에 특허법 제104조의3을 신설하여 "특허권 또는 전용실시권의 침해에 관한 소송에서 당해 특허가 특허무효심판에 의해 무효로 될 것으로 인정되는 때에는 특허권자 또는 전용실시권자는 상대방에게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고, 이 규정을 일본 상표법 제39조가 준용하고 있다. 상표법의 영역에서 권리남용을 들어 상표권의 행사를 부정한 것은 대부분 타인이 선취득한 권리 또는 선사용한 상표에 대하여 상표권을 행사하였거나, 부정한 목적으로 불사용 상표를 양수하여 상표권을 행사한 경우, 금반언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경우 등에 그치고, 등록상표가 식별력 흠결을 이유로 등록무효로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상표권의 행사를 권리남용이라고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 우리나라 상표법의 경우 대법원이 상표법의 영역에서 처음으로 권리남용이론을 적용한 것은 1993. 1. 19. 선고 92도2054 판결(소위 사임당가구 사건)에서 이다. 그 후로 대법원은 K2 사건(2008. 9. 11.자 2007마1569결정), 헬로키티 사건(2001. 4. 10. 선고 2000다4487 판결), 캠브리지멤버스 사건(2007. 6. 14. 선고 2006도8958 판결), 비제바노 사건(2000. 5. 12. 선고 98다49142 판결) 등에서, 타인의 선사용 유명상표가 미등록임을 기화로 모방상표를 등록한 자가 자기의 등록상표를 사용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것은 상표법을 악용하거나 남용한 것이 되어 적법한 권리의 행사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대법원은 진한커피 사건(2007. 1. 25. 선고 2005다67223 판결), 에이씨엠파이워터 사건(2007. 2. 22. 선고 2005다39099 판결), 스타스위트 사건(2008. 7. 24. 선고 2006다40461, 40478 판결) 등에서, 타인의 미등록 유명상표를 모방한 상표를 등록받은 자가 그 타인이나 그 타인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상표를 사용하는 자에게 상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처럼 대법원은 주로 모방상표등록에 한하여 상표권의 효력을 부정하여 왔으며, 최근에는 후등록 상표권에 대하여 선등록 상표권자가 무효심판을 청구한 경우에 있어서 그 무효심결 확정 전이라도 후등록 상표권자에 의한 상표의 사용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거나(2009. 6. 11. 선고 2007다65139 판결), 형사상 상표권 침해죄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2012.4.12. 선고 2011도4037 판결). 2. 이 사건 판결의 타당성 여부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어 그 적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상판결은 상표등록이 무효로 될 것임이 '인정'될 것을 넘어 '명백'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것은 행정행위의 공정력 및 특허법원과 일반법원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실무상 명백성의 판단이 쉽지 않고,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당연무효로 되는 것과의 구별도 쉽지 않으므로 이 요건이 불필요하다는 견해가 있지만( 박정희, '특허침해소송 등에서의 당해 특허의 무효사유에 대한 심리판단', 특허판례연구(개정판), 523면), 현 상황에서 명백성의 요건을 폐기하기 보다는 어떤 경우가 명백한 것인지 구체적인 판단요소(factor)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명백성의 요건에 비추어 볼 때, 대상판결이 이 사건 등록상표/서비스표가 무효사유가 있음이 명백하다고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이우드'는 상품의 특성을 직감하게 하기 보다는 암시하는 정도의 상표라고 볼 여지가 있고, 상품류구분 제19류에는 건축용 재료/자재에 대하여 '하이샤시', '하이도어', '하이멘트', '하이패널시스템', '하이텍스' 등의 상표가 다수 등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이 사건 등록상표/서비스표가 '고급 목재, 좋은 목재' 등의 의미로 직감되어 그 등록이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하다'고 판단한 것은 명백성 요건에 비추어 의문이다. 오히려 피고의 상표가 상표법 제51조 제1항 제2호의 상표권의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는 범위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여 원고의 상표권의 행사를 부정하는 것이 간명하지 않았을까? 셋째, 대상판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였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아니하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킬비 판결에서 정정심판이 청구되어 있는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상표 분야에서는 그 의미를 상정하기가 쉽지 않다. 넷째, 선사용 유명상표의 모방상표에 대해서는 권리남용의 항변을 인정할 여지가 있지만 모방상표와 관련이 없는 선원의 존재, 조약위반, 공익적 부등록사유 등의 무효사유가 있는 상표등록에 대해서는 그러한 무효사유 해당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표권의 행사를 권리남용이라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Ⅳ. 결론 대상판결은 특허법에서의 대법원 2012. 1. 19. 선고 2010다95390 전원합의체 판결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등록무효사유가 명백한 상표권의 행사에 대해서 권리남용의 법리를 확대하고 그 기준을 제시한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ⅰ)상표등록 무효사유는 해당성 여부가 명백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 ⅱ)대부분은 상표법 제51조 제1항(상표권의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는 범위)을 적용하거나 또는 상표적 사용의 법리, 불사용 등록상표의 권리행사 제한의 법리 등을 적용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 ⅲ)권리남용이론은 일반조항에 기초한 법리로 성문법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적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 ⅳ)우리나라는 심판전치주의를 취하고 있고, 심결취소소송과 침해소송의 관할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 ⅴ)특허와 달리 상표는 선택의 문제이므로 타인은 계쟁상표와 다른 상표를 선택할 수 있어 상표권의 행사를 부정할 논리필연성이 특허만큼 크지 않다는 점, ⅵ) 2010다95390 판결과 달리 대상판결은 무효사유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 ⅶ)권리남용은 추상적이고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므로 당사자가 쉽게 수긍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상표법의 영역에서 권리남용이론의 확대 적용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유명상표의 모방상표등록과 같은 경우에 한하여 권리남용을 인정하는 것으로 하되, 굳이 대상판결과 같이 상표등록에 무효사유가 있음이 명백하다는 이유를 들어 그 권리행사를 부정하고자 한다면 권리남용이론에 의할 것이 아니라 일본 특허법 제104조의3과 같이 '무효의 항변'을 입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며, 그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소송의 항소심 관할을 특허법원으로 집중하는 조치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일반법원의 심리능력이 강화되고, 상표권 침해소송의 항소심 관할이 집중되면 명백성의 요건을 폐기하는 것도 검토할 여지가 있다.)
2012-11-12
진보성이 부정되는 특허권에 기초한 금지청구의 가부
1. 판결의 요지 특허발명에 대한 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특허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되어 그 특허가 특허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하고, 특허권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으로서도 특허권자의 그러한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항변이 있는 경우 그 당부를 살피기 위한 전제로서 특허발명의 진보성 여부에 대하여 심리·판단할 수 있고, 이와 달리 신규성은 있으나 진보성이 없는 경우까지 법원이 특허권 또는 실용신안권침해소송에서 당연히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1992. 6. 2.자 91마540 결정 및 대법원 2001. 3. 23. 선고 98다7209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2. 해설 가. 문제의 소재 특허법에 있어서도 여타의 법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법적 안정성'과 '정의'의 법이념은 늘 긴장관계에 있다. 즉, 특허청의 심사를 거쳐 설정등록된 특허권 및 그에 따른 법률관계의 안정성과 공공의 영역에 속하는 기술은 공중에게 돌려주어 특허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무효심판제도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특허법의 입법자는 무효심판제도를 도입함은 물론 특허권이 소멸한 후에도 무효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하고, 특허무효의 원칙적 소급효를 인정하는 결단을 하였는 바, 이는 법적 안정성보다는 정의를 더 우선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특허청이 심사절차를 거쳐 특허권을 부여해놓고 다시 다른 절차에서 그 특허를 무효로 하는 것을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특허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출원이었음에도 심사상의 한계나 착오로 인하여 특허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 특허권을 행사하여 공중의 자유실시를 제한하는 것 또한 산업발전의 이바지라는 특허법의 목적에 비추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보이고, 이러한 경우 법적 안정성은 특허정의에 한 발 양보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특허제도가 존재하는 한 특허무효심판 내지 소송이라는 후속적 장치는 논리필연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특허무효심판제도는 특허요건을 완벽하게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적인 이유와 특허청은 심사단계에서 특허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발명을 일차적으로 걸러내고, 특허가 부여된 후에 구체적이고 세밀한 영역에서는 이해관계인과 공중이 담당하여야 한다는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는 법경제학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러한 맥락에서 엄연히 별도의 특허무효심판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침해소송에서 해당 특허에 무효사유가 있음을 이유로 권리자의 청구를 배척할 수 있는지, 배척할 수 있다면 그 무효사유에 제한은 없는지 등에 관한 것이고, 이에 대하여는 과거로부터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나. 견해의 대립 침해소송에서의 '무효의 항변 허용 여부'에 대하여, 특허무효의 심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침해소송에서 특허가 무효이므로 침해로 되지 아니한다는 무효의 항변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부정설과, 침해소송에서 특허가 무효이므로 침해로 되지 아니한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긍정설이 대립하였고, 원칙적으로 부정설을 취하면서 신규성 또는 진보성을 결한 특허발명의 경우 권리범위해석론을 통하여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다. 기존 판례 (1) 대법원 1983. 7. 26. 선고 81후56 전원합의체 판결 "등록된 특허의 일부에 그 발명의 기술적 효과발생에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이 아닌 공지사유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 그 공지부분에까지 권리범위가 확장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등록된 특허발명의 전부가 출원 당시 공지공용의 것인 경우에도 특허무효의 심결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권리범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전부 공지인 경우 권리범위를 부정하였다. (2) 신규성 또는 진보성이 부정되는 경우의 주류적인 판례 대법원은 "특허법은 특허가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별도로 마련한 특허의 무효심판절차를 거쳐 무효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특허는 일단 등록이 된 이상 이와 같은 심판에 의하여 특허를 무효로 한다는 심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유효한 것이며, 법원은 위와 같은 특허를 무효로 할 수 있는 사유가 있더라도 다른 소송절차에서 그 전제로서 특허가 당연무효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고, 등록된 특허발명의 일부 또는 전부가 출원 당시 공지공용의 것인 경우에는 특허무효의 심결 유무에 관계없이 그 권리범위를 인정할 수 없다 할 것이나, 이는 등록된 특허발명의 일부 또는 전부가 출원 당시 공지공용의 기술에 비추어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소위 신규성이 없는 경우 그렇다는 것이지, 신규성은 있으나 그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선행기술에 의하여 용이하게 발명할 수 있는 것이어서 소위 진보성이 없는 경우까지 법원이 다른 소송에서 당연히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여 신규성이 없는 경우 그 권리범위를 인정할 수 없으나, 진보성이 없는 특허발명의 경우 침해소송에서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반면,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이 사건 등록고안을 물품의 형에 대한 기술적 고안 뿐만 아니라 그 고안의 용도, 사용가치나 이용목적 등 작용효과의 점까지 종합하여 고찰한다면 그 기술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인용고안으로부터 극히 용이하게 고안해 낼 수 있는 것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이 사건 등록고안은 실용신안법 제32조 제1항 제1호, 제4조 제2항에 의하여 그 등록이 무효라고 할 것이며, 그렇다면 (가)호 고안은 설사 이 사건 등록고안과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그 권리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고 하여 진보성이 없는 경우에도 권리범위를 부정한 판시를 한 적도 있었다. (3) 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0다69194 판결 대법원은 "특허의 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특허권침해소송을 심리하는 법원은 특허에 무효사유가 있는 것이 명백한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할 수 있고, 심리한 결과 당해 특허에 무효사유가 있는 것이 분명한 때에는 그 특허권에 기초한 금지와 손해배상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본 판결은 특허권침해소송에서 권리남용의 법리를 적용한 최초의 판결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위 판결은 과거의 판례와 달리 권리범위를 부정하는 단계를 거치지 아니하고 곧바로 권리남용이라고 판시하였고, 그 무효사유에 진보성이 없는 경우까지 포함하는지는 다소 불명확하였다. 그러나, 특허침해소송을 심리한 지방법원 및 고등법원은 대체로 위 판결에 따라 진보성이 없는 경우에까지 권리남용의 법리를 적용하여 판시하여 왔다. 라. 대상 판결의 의의 대상 판결은 우선, 특허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이전이라 하더라도 특허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되어 그 특허가 특허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여, 권리남용의 법리를 진보성의 영역에까지 명시적으로 확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 할 수 있다. 대상 판결에 따라 앞으로는 침해소송 본안 및 가처분 법원은 물론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도 진보성 결여로 특허무효사유가 존재한다는 항변이 있는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심리·판단할 것으로 예상되고 진보성이 없는 경우 별도로 특허무효심판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게 되어 소송경제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다음으로, 대상 판결은 소위 무효의 항변을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된다. 대상 판결이 "특허는 일단 등록된 이상 비록 진보성이 없어 무효사유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특허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한다는 심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대세적으로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한 점에 비추어 보건대, 특허가 무효이므로 침해가 아니라는 무효의 항변을 채택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한편, 대상 판결이 공지기술제외설에 입각하고 있는지는 다소 불명확하지만, 기존의 판결들이 신규성의 영역에서 "특허무효의 심결 유무에 관계없이 그 권리범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반면, 대상 판결에서는 이러한 설시 없이 곧바로 권리남용의 법리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는바, 이는 공지기술제외설 등의 권리범위해석론으로 해결하려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마. 대상 판결의 문제점 대상 판결은 위와 같이 중요한 의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첫째, 신규성 및 진보성의 영역은 공지기술의 영역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영역의 특허발명은 특허청구범위의 해석상 공지기술참작의 원칙을 적용하여 그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생소하고 불명확한 권리남용의 법리를 도입하여 이를 해결할 당위나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비록 실제 운용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범위를 부정하든 권리남용의 법리를 적용하든 소송 결과에 있어서는 모두 원고 청구 기각이라는 결과가 도출된다 할지라도 특허법이론상 분명히 이를 구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 "특허발명과 대비되는 발명이 공지의 기술만으로 이루어지거나 그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공지기술로부터 용이하게 실시할 수 있는 경우에는 특허발명과 대비할 필요 없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자유기술의 항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자유실시기술의 항변에 대한 판시가 특허법이론상으로도 훨씬 논리적이고 간결하다고 판단된다. 둘째, 차선으로 권리남용의 법리를 적용한다 할지라도 대상 판결에는 '특허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라든가, '특별한 사정' 등의 불명확한 적용요건이 등장하는바, 과연 이러한 요건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떠한 경우 또는 무엇을 말하는지 등 권리남용의 법리의 적용 요건을 좀 더 명확하게 설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대상 판결의 효시격인 대법원 2000다69194 판결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소위 "킬비 사건"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판시한 것으로 보이고, 일본의 경우 위 "킬비 사건"이후 발생한 문제점을 일본 특허법 제104조의3을 신설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하였는바, 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과 한국 특허법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3. 결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특허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에서 진보성 여부에 대하여 심리·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한 점은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아직 특허를 비롯한 지적재산권침해소송 경험이 다소 부족한 침해담당법원이 동일성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서의 신규성 판단에 비하여 비교적 판단이 어려운 진보성 판단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는 다소 염려스러우나, 대법원 판례의 축적과 법원의 노력으로 충분히 해결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대법원이 무효심판제도의 형해화를 방지하고, 구체적 타당성을 꾀하기 위하여 권리남용의 법리를 도입하고, 이를 진보성의 영역에까지 확대한 점은 분명 과거 판례보다 진일보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권리남용의 법리보다는 특허청구범위해석의 대원칙인 공지기술참작의 원칙을 적용하여 권리범위를 부정하는 형식을 취하지 아니한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신규성 또는 진보성이 없는 특허발명의 경우 공지기술참작의 원칙을 적용하여 권리범위를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고, 이것이 자유기술의 항변과도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2012-03-08
사전수뢰죄에 있어서의 청탁의 법리
Ⅰ. 들어가며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사전수뢰죄로 검찰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을 1999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기각하였다. 필자가 검토한 결과 사전수뢰죄에 대한 판례는 그 사례가 매우 적을 뿐더러, 현실에서 주로 나타나는 '묵시적 청탁'과 관련된 사례는 더더욱 찾기 어려웠던 바, 그러한 이유로 시일이 많이 경과하였음에도 위 판결이 법원 결정의 근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판결을 확인한 결과 법이론의 측면 뿐만 아니라 실무상 형평의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있어 이하에서는 이를 검토해 보도록 한다. Ⅱ. 사안 피고인은 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하여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고, 자치단체장 선거일 며칠 전 B회사의 A사장으로 부터 민원과 관련한 현안에 대하여 최대한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조로 2억원이 든 사과상자를 받았다. 그 후 당선이 되어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와 같은 사안을 형법 제129조 제2항에 규정된 사전수뢰죄로 처벌할 수 있는가가 문제되었다. 당시 B그룹의 A가 조성한 비자금은 수십억원에 이르렀는데, 검찰은 이 비자금의 사용처를 추적하여 비자금이 사용된 내역 중 정치인들 30여명의 명단을 확보한 다음 그 중 일부 정치인들을 수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하였고, 8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기소, 나머지 25명에 대해서는 그들이 받은 돈이 뇌물이 아닌 정치자금, 선거자금 내지 후원금인 것으로 보아 혐의없음 처분을 하였다. 검찰은 피고인을 자치단체장에 취임하기 직전 2억원을 받은 사실로 인한 사전수뢰죄 혐의로 불구속기소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1심 재판부인 서울지방법원 제30형사부는 1997. 12. 29. 사전수뢰죄는 '구체적이고 특정된 직무행위에 대한 청탁과 승낙이 있어야만 성립한다'고 하면서, 피고인이 받은 2억원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부탁의 대가로 전달된 청탁금 또는 정치자금에 불과'하다고 무죄를 선고하였고, 검찰은 항소, 상고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 대법원에서 모두 항소기각, 상고기각되었다. Ⅲ. 판결요지 및 쟁점 사전수뢰죄에서 구성요건으로 규정하는 '청탁'의 구체성과 특정성의 요부 및 그 정도가 문제되는데,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그 법리에 대하여 명확한 구체적 설시를 하지는 아니하였지만 원심이 사전수뢰죄에 있어서의 청탁의 구체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하여 원심(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98노193호 판결도 구체적인 사전수뢰죄의 청탁의 구체성에 대한 법리 설시 없이 1심인 서울지방법원 97고합436호 판결의 취지를 인용하였다)과 1심의 사전수뢰죄에 대한 법리를 그대로 수긍하였는바, 아래에서는 사전수뢰죄에서의 '청탁'의 해석론을 구체적으로 밝힌 1심 판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Ⅳ. 평석 1. 1심 판결의 요지 이 사안에서 1심 법원은 사전수뢰죄의 '청탁을 받고'라는 구성요건을 강조하면서 범죄성립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구체적이고 특정된 직무행위에 대한 부탁과 그에 대한 승낙"이 있을 것을 요하고, 청탁과 승낙은 "반드시 명시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고 묵시적이어도 무방하나, 구체적이고 특정된 직무행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2. 사전수뢰죄의 '청탁'에 대한 해석 일반 1) 학설의 일반적인 설명 이에 대하여 학설은 『청탁이라 함은 공무원에 대하여 일정한 직무행위를 할 것을 의뢰하는 것을 말하며, 「청탁을 받고」란 그러한 의뢰에 응할 것을 수락하는 일체의 행위사정을 말한다. 부정한 직무행위의 의뢰이거나 정당한 직무행위의 의뢰이거나 묻지 않으며, 청탁과 약속이 반드시 명시적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이 경우 직무행위는 특정될 필요는 없으나 어느 정도 구체성은 있어야 하며, 작위, 부작위를 불문한다(김일수, 서보학, 박상기, 정성근, 박광민). 원래 형법전에 「청탁을 받고」라는 용어가 나타난 것은 구 형법이 「전항의 경우에 청탁을 받은 때」라 하여 그 죄책을 무겁게 규정한 데서 비롯되었으나 구 형법의 해석에 있어서도 청탁의 유무는 죄책의 경중에 대한 표준이 되지 못하고 오직 그 직무와 그에 대한 대가관계의 유무를 결정하는 하나의 표준이 되는데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하여 왔는데, 현행법이 일본 형법 가안의 영향을 받아 단순수뢰죄의 경우는 이를 삭제하고 본죄에 있어서는 행위의 주체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될 자이므로 뇌물과 직무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아니하다고 보아 청탁을 하나의 구성요건으로 한 것이다』고 하여 직무행위가 특정될 필요는 없고, 어느 정도의 구체성만으로 족하다고 설명한다. 2) 일본 학설 및 판례의 태도 일본 형법은 제197조 제1항 전단에서 '단순수뢰죄'를, 같은 항 후단에서 "이 경우에 청탁을 받은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하여 '단순수뢰죄'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인 이른바 '수탁수뢰죄'를, 같은 조 제2항에서 "공무원 또는 중재인으로 될 자가 그 담당할 직무에 관하여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 공무원이 된 경우"라고 하여 '사전수뢰죄'를 각각 규정하고, 그 '청탁'의 의미를 '수탁수뢰죄'와 '사전수뢰죄'에서 동일하게 해석하고 있는바, 우리 형법의 해석에 있어서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 위 규정에 대하여 일본의 학설 및 판례는 "청탁이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뇌물의 공여 자체에 따라 묵시적인 의뢰의 취지가 보여지면 족하다"고 하고, "청탁은 반드시 뇌물공여 사전에 명시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뇌물공여하는 것 자체에 의하여 묵시적인 의뢰의 취지를 표시하는 것도 청탁에 다름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다만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행위가 어느 정도 구체성을 갖는 것을 필요로 한다고 하면서, 이는 '수탁수뢰' 가중처벌의 이유라고 설명한다. 결국 일본 형법의 해석에 있어서도, 청탁이 명시적일 것을 요하지 않고, 묵시적이어도 무방하다는 것 그리고 직무행위는 어느 정도만 구체성을 띠면 충분하다는 것은 학설 및 판례가 수용하는 논리라고 할 것이다. 3. 이 사건 판결에 대한 검토 그러나 위 1심 판결은 "청탁과 승낙은 구체적이고 특정된 직무행위에 관한 것이어야 하며, 공무원의 직에 취임한 후 최대한 편의를 봐달라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부탁은 여기에서의 청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해석하면서 일반적인 학설, 일본의 학설 및 판례가 수용하는 "직무행위는 특정될 필요는 없으나 어느 정도 구체성은 있어야 하며, 작위, 부작위를 불문"한다는 해석을 근거 없이 배척하고, '청탁'의 해석을 위하여 '부정한 청탁'에 대한 배임수재죄의 해석을 끌어들였는데, 국가적 법익죄의 해석에 개인적 법익죄의 해석론을 차용하는 것은 전체 형사법체계에 비추어 맞지 않고, 국가적 법익죄에 대한 뇌물죄의 청탁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마땅한 기준이 없다면 같은 국가적 법익죄에 대한 해석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 뇌물죄에서의 다른 대법원 판례와의 비교 오히려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할 것을 구성요건으로 요하는 형법 제130조 제3자뇌물수수죄의 '부정한 청탁'에 대하여 "청탁의 대상인 직무행위의 내용도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묵시적인 의사표시라도 무방하며, 실제로 부정한 처사를 하였을 것을 요하지도 않는다"(대판 2004도1632호)고 판시하고 있다. 위 사안에서 서울고등법원은 1심인 서울지방법원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면서 ① 공여자와 C가 처음 만나게 된 것이 관광지구 신청이 이루어질 무렵인 점(1995. 6.경 선거 무렵), ② C는 도지사로서 관광지구 지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던 점, ③ 불과 1년전에 관광지구에서 제외된 부동산이 별다른 사정 변경 없이 관광지구로 지정된 점, ④ 인근 부동산에 관광지구로 신청된 것 중 공여자의 토지만 관광지구로 지정된 점 등을 비추어 C에게 대가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함이 합리적이라고 하여 "관광지구 지정"이라는 직무행위에 대한 '명시적'이고, '구체적' 청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부정한 청탁'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여 유죄로 인정하였고, 이에 대해 피고인이 이 부분에 상고하였지만 대법원에서 상고기각되었다. 위와 같이 국가적 법익죄인 제3자뇌물수수죄에서의 '부정한 청탁'에 대해서도 '묵시적'이고, '어느 정도의' 구체성만을 갖는 직무행위라면 그 청탁을 인정하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태도인데, 사전수뢰죄에서만 이를 달리 볼 이유는 없다고 하겠다.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이 그대로 받아들인 1심 판결의 사전수뢰죄의 법리해석은 이렇듯 그 이후에 다수 축적된 '청탁'의 법리와 모순을 보이고 있다. 2) 지방자치단체 長인 시장의 직무행위의 포괄성 : '포괄적 직무관련성' 적용의 필요성 또한 다른 공무원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경우에는 그 직무권한이 포괄적이어서 달리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 '직무'와 '뇌물' 사이의 대가관계는 반드시 개개 직무행위에 대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성립할 필요는 없으며, 관련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것인 한 일반적·포괄적인 것이라도 상관 없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김일수, 정성근, 진계호 등)이다. 이러한 해석에 입각하여 대법원은 소위 '포괄적 직무관련성'(내지 포괄적 대가관계)에 대한 법리를 확립하였는데, 이는 대법원이 소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대법원 96도3376호 판결)에서 "뇌물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하여 공여되거나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가 있을 필요가 없으며, 그 직무행위가 특정된 것일 필요도 없다"고 판시한 사례 등에서 확인되는데, 이는 대통령의 업무가 국정 전반에 걸쳐 포괄적이고 막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대통령의 지위를 정확하게 반영한 취지라고 할 것이고 대법원은 국회의원에게도 위 법리를 동일하게 적용(대법원 97도2609호 판결)하고 있다. 이러한 대통령의 포괄적, 광범위한 직무권한에 기초한 '포괄적 직무관련성'의 법리는 행정권에 대한 견제기능이 주권한이 되는 국회의원보다는 관할구역 내에서 대통령 못지 아니한 포괄적이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 학설의 태도이고, 위 견해 역시 평석 대상 사건의 1심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 취지는 ① 사전수뢰죄와 일반수뢰죄가 다를 것이 없는 점, ② 관할구역에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직무권한을 가진 단체장에게 포괄적 직무관련성 적용을 포기하고, '갑자기' 구체적 직무관련성을 요구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점, ③ 부산제강소의 현안문제를 잘 처리해달라는 것이 어찌 구체적 청탁이 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점 등인데, 마지막에서 제시한 것은 사실인정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특히 두 번째 지적사항은 관할구역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지방자치단체 장의 현실 및 그동안의 대법원이 일관되게 판시한 포괄적 뇌물죄 법리에 비추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3) 형평성의 문제 또한 이 사건과 같이 당선개연성이 매우 높은 차기 시장에게 직무행위에 대한 엄밀한 구체성, 특정성을 요구하면, 퇴임을 앞두고 있어 실질적 권한 없는 현직 시장이 금원을 수수한 경우보다 처벌가치가 훨씬 큼에도, 현직 시장은 직무관련성만 인정되어도 처벌가능한 반면 차기 시장은 처벌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Ⅴ. 결론 : 사전수뢰죄에 대한 최초의 판단인 이 사건 대법원 판례는 선례로서의 가치가 극히 낮아 시정되어야 한다. 이 사건 대상 판결은 앞서 인용한 것처럼 서보학 교수가 지적하듯 사실관계 인정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지만, 법리적인 '청탁'의 해석에 있어 수긍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학설의 견해,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 일본 형법과의 비교,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직무권한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장의 현실, 뇌물죄에서 다른 대법원 판례가 견지하는 '청탁'에 대한 해석 등 어떤 것과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법원공보에 실리지 않았을 뿐더러, 법원의 내부전산망에서조차 키워드 검색이 불가능한 관계로 그 동안 학계나 실무계에서 충분히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측면이 있는데, 사전수뢰죄 법리의 정립을 위해서도 위 판례는 조만간 시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2012-02-16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가 과연 존재하는가?
Ⅰ. 事案의 槪要와 經過 전통 민간요법인 침·뜸행위를 온라인을 통해 교육할 목적으로 인터넷 침·뜸 학습센터를 설립한 갑이 구 평생교육법(2007. 10. 17. 법률 제864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2조 제2항 등에 따라 평생교육시설로 신고하였으나 관할 행정청이 교육 내용이 의료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사유로 이를 반려하는 처분을 한 사안이다. 원심(서울고법 2005. 8. 25. 선고 2004누13426 판결)은, 이 사건 평생교육을 통하여 교육하고 학습하게 될 침·뜸행위는 의료행위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교육의 결과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경우 원고와 같이 의료법 시행 전에 종전 규정에 의하여 의료유사업자의 자격을 받은 자 외에는 모두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될 것이 명백한 점, 이 사건 교육과정 중에 행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실습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처벌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점, 침·뜸행위는 실제 그 실행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성이 큰 점, 이 사건 평생교육으로 침·뜸 관련과목을 교육받은 수강생들은 자신들이 교육받은 침·뜸행위를 실제 실행하려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원고가 각 단계별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에게 수료증까지 발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게 될 수 있는 점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로서는 신고서에 첨부된 운영규칙에 기재된 교육과정의 내용이 의료법에 저촉되는지 여부, 신고에 따른 교육이 실제 이루어짐으로써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을 고려하여 이 사건 신고를 반려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신고반려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하였다. Ⅱ. 判決要旨 [1] 구 평생교육법(2007. 10. 17. 법률 제864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법'이라 한다) 제22조 제1항, 제2항, 제3항, 구 평생교육법 시행령(2004. 1. 29. 대통령령 제1824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 제1항, 제2항, 제3항에 의하면,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하여 학습비를 받지 아니하고 원격평생교육을 실시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누구든지 아무런 신고 없이 자유롭게 이를 할 수 있고, 다만 위와 같은 교육을 불특정 다수인에게 학습비를 받고 실시하는 경우에는 이를 신고하여야 하나, 법 제22조가 신고를 요하는 제2항과 신고를 요하지 않는 제1항에서 '학습비' 수수 외에 교육 대상이나 방법 등 다른 요건을 달리 규정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제2항에서도 학습비 금액이나 수령 등에 관하여 아무런 제한을 하고 있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볼 때, 행정청으로서는 신고서 기재사항에 흠결이 없고 정해진 서류가 구비된 때에는 이를 수리하여야 하고, 이러한 형식적 요건을 모두 갖추었음에도 신고대상이 된 교육이나 학습이 공익적 기준에 적합하지 않는다는 등 실체적 사유를 들어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는 없다. [2] 관할 행정청은 신고서 기재사항에 흠결이 없고 정해진 서류가 구비된 이상 신고를 수리하여야 하고 형식적 요건이 아닌 신고 내용이 공익적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등 실체적 사유를 들어 이를 거부할 수 없고, 또한 행정청이 단지 교육과정에서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된 행위가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우려만으로 침·뜸에 대한 교육과 학습의 기회제공을 일률적·전면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후견주의적 공권력의 과도한 행사일 뿐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할 공익상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형식적 심사 범위에 속하지 않는 사항을 수리거부사유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처분사유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 처분은 위법하다. Ⅲ. 問題의 提起-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인가? 여기서의 신고는 신고유형 가운데 어떤 신고에 해당하는가? 일반적으로 사인의 공법행위의 경우 의사표시의 방향성을 기준으로 일방당사자의 의사표시만으로 법률효과를 발생하는 것(자기완결적 공법행위)과 쌍방당사자의 의사의 합치에 의해 법률효과를 발생하는 것(행정요건적 공법행위)으로 나뉜다. 이에 연계하여 판례와 대부분의 문헌은 행정법상의 신고유형(자기완결적 신고=수리를 요하지 않는 신고/행정요건적 신고=수리를 요하는 신고)을 정립하였다. 그리고 그 구별의 결과로 전자의 경우 수리의 비처분성을 전제로 수리거부의 비처분성을 논증하고, 후자의 경우 수리의 처분성을 전제로 수리거부의 처분성을 논증한다. 그리고 신고에 대한 심사와 관련해선, 전자의 경우에는 형식적 심사에 국한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형식적 심사만이 아니라 실체적 심사까지도 할 수 있다고 본다(다른 입장이 있음). 기실 대상판결이 사안에서 형식적 심사만이 가능하다고 보기에, 여기서의 신고를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로 봄직한데, 과연 그 본연에 합당한가? Ⅳ. 關聯法規定 구 평생교육법(2007. 10. 17. 법률 제864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2조 (원격대학형태의 평생교육시설) ① 누구든지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하여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에게 원격교육을 실시하거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평생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경우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학습비를 받고 이를 실시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이를 폐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사실을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개정 2001.1.29> ③ 제1항의 경우 전문대학 또는 대학졸업자와 동등한 학력·학위가 인정되는 원격대학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을 설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폐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개정 2001.1.29> Ⅴ. 대상적격상의 問題點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와 관련해서, 판례의 대응은 통일적이지 않다. 일부는 수리 및 수리거부의 무의미성을 견지한다. 적법한 요건을 갖춘 신고의 경우에는 행정청의 수리처분 등 별단의 조처를 기다릴 필요 없이 그 접수시에 신고로서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그 수리가 거부되었다고 하여 무신고 영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1999.12.24. 선고 98다57419판결; 1998.4.24. 선고 97도3121판결; 1995.3.14. 선고 94누9962판결; 1993.7.6.자 93마635결정; 1990.2.13. 선고 89누3625판결; 1985.4.23. 선고 84도2953판결 등 참조). 반면 일부는 수리거부의 위법성을 추가하여 적극적으로 논증하거나(대법원 1999.4.27. 선고 97누6780판결), -대상판결처럼-수리거부의 위법성만을 적극적으로 논증하기도 한다(대법원 1997. 8. 29. 선고 96누6646 판결 등). 그런데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에서 수리 및 수리거부의 무의미성을 견지하기 위해선, 법원으로선 애써 수리거부의 처분성을 부인하고, 신고 그 자체로서 대상평생교육의 적법한 실시라는 형성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판시하여야 했으며, 또한 대상적격의 부인에 따라 각하했어야 하는데, 마치 그것이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인양 수리거부의 처분성을 전제로 그것의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논증하였다. 대상판결의 이런 접근은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와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의 구별도식(수리의 비처분성⇒수리의 거부의 비처분성, 수리의 처분성⇒수리거부의 처분성)을 무색케 한다(수리거부를 금지하명으로 보면 기왕의 틀에 포획되지 않는다). Ⅵ. 行政廳의 審査의 問題點 사적 영역에 대한 행정개입의 차원에서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 이른바 수리를 요하지 않는 신고, 등록제, 허가제의 구분이 문제되는데, 특히 수리를 요하는 신고와 허가제의 구분의 문제에서, 종래 많은 문헌들이 허가제와의 구별의 상실을 우려하여 후자의 경우엔 요건에 관한 형식적 심사뿐만 아니라 실질적 심사까지 행해지는 반면에, 전자의 경우엔 형식적 심사에 그친다고 보았다(그리하여 일부 문헌은 등록제를 수리를 요하는 신고와 동일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건축법 제14조상의 건축신고를 명시적으로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본 대법원 2011.1.20. 선고 2010두14954전원합의체판결을 계기로 전자의 경우에도 실질적 심사가 행해지는 것으로 본다(이에 대한 문제점으로 김중권, 건축법 제14조상의 건축신고가 과연 수리를 요하는 신고인가?, 특별법연구 제9권(이홍훈 대법관 정년퇴임기념논문집), 2011.5.13., 273면 이하 참조). 결국 판례의 입장에 의하면, 이제는 이른바 자기완결적 신고의 경우 형식적 심사만이 허용된다고 하겠다. 대상판결은 처음부터 형식적 심사만이 허용된다는 전제에서, 실질적 심사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였으며, 이에 그것을 신고수리거부의 위법성에 연결시켰다. 나아가 수리거부의 처분사유에 대해서도 원심과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지면관계상 여기선 허용되는 심사의 범위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신고제에서의 행정청의 심사와 관련해서, 종래의 논의에선 신고제에서 행정청의 심사를 원천배제한 것이 문제라면, 대법원 2011.1.20. 선고 2010두14954전원합의체판결의 경우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에서 허가제와의 구별되지 않게 실질적 심사의무를 요구한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신고제의 경우 형식적 심사는 당연히 의무사항이나 실질적 심사는 허가제와는 달리 의무사항은 아니고 일종의 선택사항(option)이자 재량사항이다(이렇게 보면, 대법원 2010.9.9. 선고 2008두22631판결에 대해 -비판의 대상인- 기속재량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따라서 사안에서 실질적 심사의 허용성을 부정하는 전제는 타당하지 않다. 현행 법령의 체제하에서 침·뜸의 시술이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이상, 행정청으로선 형식적 심사를 넘어 의료관련 다른 법률 등에 의거하여 그것의 처리여부를 판단하는, 실질적 심사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 실질적 심사의 가능성을 긍정하면, 관건은 수리거부의 처분사유에 관한 판단여하이다. 처분사유의 당부와 관련해선(상론은 다른 지면에서 하고자 한다), 침·뜸의 시술이 현행 법령하에선 의료행위로 평가가 내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제도화가 되지 않은 채, 그것이 -단순한 알림을 넘어서- 제도화를 가져다 줄 교육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법원은 "침·뜸에 대한 교육과 학습의 기회 제공을 일률적·전면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후견주의적 공권력의 과도한 행사"로 보지만,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중요성이 더할 나위 없이 고조된 오늘날에는 안전법상의 일반법원칙인 국가의 사전대비(사전배려)원칙을 더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의심스러우면 안전에 유리하게"(In dubio pro securitate))(법원칙으로서의 안전성의 원칙에 관해선 김중권, 행정법기본연구Ⅱ, 2009, 503면 이하 참조). Ⅶ. 맺으면서-잘못된 만남의 결과 법원의 논증이 기왕의 자기완결적 신고와 수리를 요하는 신고의 틀에서 일탈하였다는 점에서 기왕의 틀 자체가 대대적인 修理를 필요로 한다. 기왕의 틀은 사인의 공법행위에 관한 논의와 典據가 의심스런 -이른바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로서의- 수리에 관한 논의의 잘못된 만남의 결과물이다. 하루바삐 신고제가 허가제의 대체제도인 점에 착안하여 금지해제적 신고와 정보제공적 신고의 유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사안에서 다툼의 논거는 신고제에 관한 행정법도그마틱이나, 그 본질은 현행법상의 의료행위와 민간에서 널리 전수되고 시행되어 온 침·뜸 의 시술행위의 충돌·간극이다. 대학·주류의 의학·약학에서 벗어난 특별한 치료과정, 예컨대 동종요법, 자연요법 또는 대체의학적 치료법을 법외적 상태에 두는 것은 국가가 여러 상이한 치료견해의 다툼에서 사실상 어떤 한 편을 든 셈이어서 재고가 요구된다. 참고로 우세한 대학(주류)의학·약학과 방법적·지식적으로 경쟁하는 특별한 치료법을 보호하기 위해, 독일 의약품법의 입법자는 유효성확인에 관한 법적·행정적 기준이 학문적 다툼과 치료방법상의 다툼에서 어느 일방의 편을 든다는 점을 나름 막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런 비주류적인 것에 대해선 유효성의 요청보다는 안전성의 요청이 더 강조된다(그리하여 그들은 특별한 치료법의 경우 그 나름의 전문가위원회(평가·승인위원회)에 맡기고, 동종요법적 의약품의 경우엔 선택적으로 단순한 등록절차를 허용하는 식으로 규정함으로써(동법 제38조), 다원성요청과 안전성요청간에 절충적 해결책을 도모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비교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의학은 전통적인 대체요법을 융통성있게 수용·발전시켜 왔다. Vgl. Udo Di Fabio, Risikoentscheidungen im Rechtsstaat, 1994, S.172ff.).
2011-11-17
행정소송 집행정지 판례와 관련한 심각한 행정혼선
1. 문제의 대법원판례 보통 영업정지와 같은 행정처분을 받은 국민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으로부터 제1심 판결선고시까지 집행정지결정을 받는다. 그런데, 위 집행정지결정의 효력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는 "집행정지결정의 주문에서 정한 대로 판결선고즉시부터 당초의 영업정지처분의 효력이 부활되어 정지기간이 이때부터 다시 진행한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대법원 1993.8.24, 92누18054 판결, 1999. 2. 23. 선고 98두14471 판결 등). 그러나, 행정현실을 고려하지 아니한 위 대법원판례 때문에, 현재 행정현장에서는 전국 각종 행정기관 사이에 행정소송후의 행정처분 재집행방식이 제각각인 등 심각한 행정난맥상이 초래되고 있다. 2. 판례로 인한 행정현장의 혼란 즉 이번에 필자가 나름대로 조사한 결과, 전국 일선 시군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청 등 대부분의 행정기관은 판례에 불구하고 판결선고 즉시 집행되는 것으로 처리하지 아니하고 그 이후에 다시 영업정지기간을 지정 통보하여 집행하는 반면, 보건복지부 등 일부 중앙행정기관은 이와 달리 집행정지결정문의 형식상 표시그대로 판결이 선고된 다음날부터 자동집행되는 것으로 서로 다르게 행정처리를 하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판결선고일부터 고의없이 영업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무면허행위로 의사면허취소등 처분을 하여오고 있고, 매년 이런 피해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물론 집행정지결정을 내린 법원이나 행정처분을 한 행정기관의 어느 누구도 판결선고당일부터 바로 영업을 정지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행정당국이 새로 영업정지기간을 지정하여 통보하는지에 관하여 사전에 안내설명을 해주는 기관도 없다. 3. 대법원판례의 문제점 위 대법원 판례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즉, 위 판례대로라면, 당사자들은 판결에서 이길지 질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1심 판결선고일부터는 영업정지를 할 준비를 하여놓아야 한다. 또 현재 판결문이 선고즉시 교부되지 않고 며칠 후에 나오므로, 당사자가 판결내용의 당부를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또 행정기관의 실무상으로도 판결선고즉시부터 자동적으로 영업정지를 이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현재 법원-행정기관-당사자간 판결결과를 통보 등록하여 단속하는 행정시스템도 갖추어져 있지 않아 무면허행위를 확인 단속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또 법원은 원고가 1심에서 패소할 경우에는 집행정지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있는데, 이 경우 만약 상소심에서 행정처분이 취소되더라도 당사자는 이미 영업정지집행을 당해버린 후가 되어 사실상 사후구제가 불가능하게 되므로, 당사자는 항소해도 별 의미가 없어 행정소송이 사실상 단심제와 같은 결과가 되어 버리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현재의 1심 판결선고시까지로 하는 법원의 집행정지결정 관행을 판결 확정시까지 연장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집행정지되었던 행정처분이 판결선고시부터 자동진행한다는 문제의 위 판례들은, 집행정지기간 경과이후에 새로이 영업정지기간을 지정처분한 사례등에 관한 사안(즉 현재 대세로서 통용되고 있는 판례위반의 행정실무관행)이므로, 이와 약간 다른 사안인 판결선고즉시부터 새로 정지기간을 지정할 때까지 영업을 한 사안에 대하여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의문도 있다. 위 판례를 법리적으로 보더라도, 행정처분이 판결선고시부터 자동진행한다는 법논리도 논리필연적인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면허등정지기간을 정한 행정처분은 시기와 종기를 지정하여 처분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지정한 기간(즉 처분의 구성요소)에 한하여 효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정처분이 법원의 집행정지결정에 의하여 실제 집행되지 않고 지정된 면허정지기간이 지나버렸다면, 이제 추상적으로 집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일 뿐, 아직 면허정지기간이 정해진 것이 없어 바로 판결선고당일부터 집행이 현실적으로 개시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면허정지처분은 기간을 다시 정하는 조치가 없는 이상 집행할 수가 없는 것이 되므로(물론 집행정지기간 다음날부터 면허정지기간이 자동으로 진행된다는 논리도 가능하나), 행정기관이 판결선고후 다시 면허정지기간을 지정하여 통보할 때까지의 영업행위는 위법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4. 판례 변경 및 처분재집행의 통일기준 마련되어야 현재의 대법원판례대로 적용한다면, 현재 행정처분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지방자치단체, 경찰청등의 경우 판결선고일로부터 정지기간 재지정시까지 사실상 허용하는 영업이 모두 무면허, 무허가영업이 되는 결과가 된다(연간 수천 건 이상이 될 것임). 아마 경찰청 등이 위 판례대로 판결선고즉시부터의 영업을 전부 무허가영업으로 처리 단속한다면, 보통 행정처분의 집행에 관하여는 별로 지식이 없는 국민들은 행정당국의 안내와 통보에 따르기 마련인 현실을 고려하면, 당장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 지방자치체, 경찰청에서 판례 위반의 불법도 감수하고 새로 정지기간을 지정하여 집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현재 이러한 불법관행이 국민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 불리하지 않으므로 이의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것임). 또 국민들이 문제의 근본원인인 위 대법원판례의 존재를 안다면, 아마 비난의 화살이 법원으로 쏟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의 위 판례는 법논리에도 맞지 않다고 볼 수 있고, 또 국민의 영업현실과 행정현실을 도외시한 것으로 변경되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본다. 또 동시에 문제의 위 판례와 관련하여 현재 일어나고 있는 행정의 혼선에 대하여는 통일된 처리기준을 제시하고 사전에 충분히 안내하여 국민들이 혼란과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 통일된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는 판결선고당일부터의 절차부지로 인한 무허가영업행위에 대하여 행정기관마다 제각각인 처벌여부에 관하여도 잠정 처분보류등 통일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1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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