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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행위취소와 기초적 법률관계론의 적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
Ⅰ.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甲은 2001년 5월경 소외 주식회사 B의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원고에게 주식회사 B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였고, 이에 따라 2002년 10월 18일경 원고와 甲은 각자 보유한 주식을 서로 또는 서로가 지정한 자에게 양도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하였다. 합의의 이행 결과, 甲은 주식회사 B 발행주식 308,000주를, 乙은 147,000주를, 주식회사 A는 35,000주를 각자 명의로 보유하게 되었다. 이후 甲, 乙, 주식회사 A(이하 '甲 등'이라 한다)는 2006년 9월 5일경 소외 주식회사 C에게 자신들 명의의 주식회사 B 발행주식 합계 490,000주를 444억 6,799만 원에 매도하고, 주식회사 C에게 위 의무이행의 담보를 위하여 각 보유주식에 관한 근질권을 설정하여 주면서 해당 주권을 인도하였는데, 주식회사 C는 2013년 3월 29일경 이 사건 근질권을 실행하겠다는 내용을 통보한 뒤 2013년 4월 5일경 위 주식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다. 이에 원고는 甲 등이 주식회사 C에 매도한 주식회사 B 발행주식 합계 490,000주 중 350,000주(이하 '이 사건 주식'이라 한다)가 원고로부터 甲 등에게 명의신탁되어 있던 것임을 전제로, 원고가 甲 등에 대하여 갖는 불법행위 내지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甲 등이 2011년 5월경부터 2011년 8월경까지 자신들 소유의 부동산에 관하여 피고 1, 2, 3, 4와 체결한 증여계약, 매매계약 등을 모두 취소하고, 그에 기한 각 등기를 말소하라는 취지의 이 사건 사해행위취소의 소를 제기하였다. 2. 제1심 및 원심의 판단 제1심 법원은 이 사건 주식처분 및 근질권 설정행위가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주식회사 C가 이 사건 주식의 소유권을 취득함에 따라 甲의 원고에 대한 주권인도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보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해당 손해배상채권은 사해행위보다 늦게 성립한 것이어서 원칙적으로 피보전채권이 될 수 없고, 기초적 법률관계론을 적용하더라도 손해배상채권 성립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이 있었다고 볼 수 없으며, 가까운 장래에 손해배상채권 발생의 개연성이 현실화된 경우라고 평가하기도 어려워 피보전채권이 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가 항소하였으나, 원심 법원 또한 제1심 판결과 동일한 이유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 파기환송 대법원은 이 사건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이 피보전채권 성립시기의 예외 요건을 갖추었다는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원고의 손해배상채권이 사해행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2006년 9월 5일경의 근질권설정계약에 따른 기초적 법률관계가 존재하였고, 근질권 실행을 통해 가까운 장래에 손해가 발생하리라는 고도의 개연성이 있었으며, 실제로 근질권이 실행되어 이 사건 주식의 소유권이 주식회사 C에게 이전됨으로써 그 개연성이 현실화된 바, 원고의 甲 등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피보전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Ⅱ. 대상판결의 평석 1. 명의신탁된 주식에 대한 담보권 설정과 불법행위책임 대상판결은 피보전채권으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채권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양자 간 부동산 명의신탁에서 수탁자의 처분행위가 갖는 의미를 고려할 때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한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종래의 명의신탁이론에 의하면 대내적 관계에서는 소유권이 신탁자에게 있으나, 대외적 관계에서는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수탁자가 임의로 신탁부동산을 처분하면 그 취득자는 선·악의를 불문하고 적법하게 소유권을 취득한다. 따라서 유효한 명의신탁의 경우, 수탁자의 임의처분 행위는 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고, 횡령이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법질서 위반행위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부동산실명법상 무효인 양자 간 명의신탁관계에서도 수탁자의 임의처분 행위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에 따라 수탁자로부터 신탁부동산을 넘겨받은 제3자는 유효하게 소유권을 취득하는 바, 신탁부동산의 임의처분은 신탁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대법원 2021. 6. 3. 선고 2016다34007 판결).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볼 때, 대상판결에서도 주식양도계약의 체결, 근질권의 설정, 유질계약의 실행을 거쳐 원고가 명의신탁 해놓은 주식의 소유권을 상실하게 된 이상 甲의 행위는 위법하다고 해석할 여지가 크다. 2. 명의신탁된 주식에 대한 명의이전의무의 이행불능 시기 대상판결은 근질권의 실행 시점에 이행불능과 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였으나, 이행불능이란 사회의 일반적인 관념으로 보아 채무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단순히 절대적,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6다200729 판결 등), 이행불능 시기를 근질권 설정 시점으로 앞당겨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등기이전과 관련하여 판례는 제3자 앞으로 된 담보를 말소하거나 가압류, 가처분 집행을 해제할 자력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이행불능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대법원 1991. 7. 26. 선고 91다8014 판결, 대법원 2006. 6. 16. 선고 2005다39211 판결 등). 이 사건 근질권은 주식양도의무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유질계약을 포함하고 있었던 바, 금전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통상의 근질권처럼 피담보채무를 변제함으로써 말소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식에 대한 명의이전청구권이 소멸하여야지만 말소될 수 있는 매우 특수한 성질의 것이다. 그렇다면 담보 설정의 경위와 내용 그리고 양도의 대상이 된 주식의 수 등에 비추어볼 때 이 사건 근질권 설정 당시부터 명의신탁 해지에 따른 주식이전의무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평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3.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시기 손해배상청구권은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 성립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11. 19. 선고 2018다240462 판결 등). 물론 채권적 효력만 있는 이 사건 주식양도계약 내지는 근질권설정계약을 체결한 것만으로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하여 주식의 소유권이 주식회사 C에게 이전되어야만 비로소 재산권에 대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사건 근질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그 설정과 동시에 교환가치가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소유권 상실의 위험이 발생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현대 리스크 매니지먼트에서는 이러한 위험성도 얼마든지 금전적으로 환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으로 볼 여지가 크다. 이후 근질권이 실행되어 재산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더 이상 확대될 손해가 없는 상태로 손해가 확정된 것일 뿐이다. 이와 달리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시기를 주식회사 C가 이 사건 주식의 소유권을 취득한 시점으로 본 대상판결의 판단은 지나치게 보수적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 이행불능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기초적 법률관계 가사 주식회사 C가 이 사건 주식의 소유권을 취득한 시점에 손해배상청구권이 성립하였다고 보더라도, 채권 성립의 기초가 된 법률관계를 근질권 설정으로 본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은 주식에 대한 명의이전의무가 이행불능됨에 따라 발생한 2차적 권리이고, 명의이전청구권을 발생시킨 법률관계는 원고와 甲 사이의 명의신탁 약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피보전채권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존재하는 채권임을 고려할 때, 채무자 甲이 제3자인 주식회사 C에게 근질권을 설정해준 행위는 손해배상채권 성립의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지표이지, 그 자체로 손해배상채권이 발생하게 된 기초적 법률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즉, 기초되는 법률관계는 원고와 채무자 甲 사이의 명의신탁관계로, 채무자 甲의 주식회사 C에 대한 근질권 설정행위는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자료로, 유질계약의 실행으로 인한 소유권 이전은 손해가 현실화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5.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말소될 개연성이 거의 없는 이 사건 근질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근질권의 설정 시점에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규범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기초적 법률관계론이라는 예외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 이 경우 보호의 필요성이 큰 채권자가 피보전채권의 예외 요건까지도 증명하여야 하는 부담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구분의 실익이 있다. 견해를 달리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시기를 근질권 실행 시점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이 주식에 대한 명의이전청구권의 변형물임을 감안할 때, 그 기초되는 법률관계는 주식에 대한 명의신탁관계로 봄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즉, 대상판결의 결론에는 동의하는 바이나, 그러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대하여는 다소 이견이 있다. ※ 위 내용은 필자의 "사해행위취소와 기초적 법률관계론: 명의신탁된 주식에 대한 근질권의 사례 -대법원 2019. 12. 13. 선고 2017다208294 판결-", 저스티스 통권 제186호, 2021. 10. 판례평석을 요약한 것이다. 백명헌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사해행위취소
명의신탁
주식
백명헌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2022-01-17
민사일반
유류분액에서 공제할 순상속분액의 산정방법
[사실관계 및 대법원의 판단] 1. 사실관계 A는 2013년 6월 17일 사망하였고, 사망 당시 망인의 상속인으로는 자녀들인 원고 1, 2, 3과 피고가 있었다. A 사망 당시 적극적 상속재산으로는 상속개시 당시의 시가 4억1000만원 상당의 부동산과 아파트에 대한 임차인으로부터 지급받은 2억4000만원이 있었고, 상속채무는 위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 2억4000만 원이 있었다. A는 원고들과 피고에게 생전증여를 하였는데, 그 증여의 상속개시 당시 액수는 원고 1: 1억5654만6274원, 원고 2: 4억4120만7832원, 원고 3: 1억5091만2518원, 피고: 18억5000만원이었다. 원고들은 피고가 A로부터 생전증여를 받아서 자신들의 유류분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2. 원심판결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액 32억4866만6624원{= 6억5000만원(상속재산액) + 1억5654만6274원 + 4억4120만7832원 + 1억5091만2518원 + 18억5000만원(각 특별수익액)}에서 상속채무액 2억4000만원을 공제한 30억866만6624원이 되고, 원고들 및 피고의 각 유류분액은 3억7608만3328원(30억866만6624원 × 1/8)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원고들의 특별수익액과 순상속액을 공제하여 유류분 부족액을 산정하였는데, 순상속액의 계산에서 원고들과 피고들이 상속재산을 각각 4분의1씩 상속받는 것으로 보아 각 순상속액을 1억250만원{(부동산 시가 4억1000만원 + 임대차보증금 2억4000만원) × 1/4 -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 2억4000만원 × 1/4)}으로 산출하였다. 그리하여 원고 1의 유류분 부족액은 1억1703만7054원(= 3억7608만3328원 - 1억5654만6274원 - 1억250만원), 원고 3의 유류분 부족액은 1억2267만810원(= 3억7608만3328원 - 1억5091만2518원 - 1억250만원)이고, 피고는 원고 1, 3에게 이들의 각 유류분 부족액에 원고 2와 피고의 각 유류분 초과 합계액 중 피고 자신의 유류분 초과액인 14억7391만6672원이 차지하는 비율을 곱한 금액을 반환하여야 하므로, 피고는 원고 1에게 1억1208만4632원, 원고 3에게 1억1747만9996원 및 그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3. 대법원 판결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피고의 원고 1, 3에 대한 패소부분을 파기환송하였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유류분제도의 입법취지와 민법 제1008조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공동상속인 중 특별수익을 받은 유류분권리자의 유류분 부족액을 산정할 때에는 유류분액에서 특별수익액과 순상속분액을 공제하여야 하고, 이때 공제할 순상속분액은 당해 유류분권리자의 특별수익을 고려한 구체적인 상속분에 기초하여 산정하여야 한다. 원심은 유류분 부족액을 산정하면서 원고들과 피고가 특별수익자임에도 이들의 특별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법정상속분에 기초하여 유류분액에서 공제할 순상속분액을 산정한 결과 원고 1, 원고 3에게 유류분 부족액이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유류분 부족액 산정 시 유류분액에서 공제할 순상속분액의 산정방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평석] 1. 유류분에서 공제할 순상속액의 산정에 관한 구체적 상속분 기준설과 법정상속분 기준설 유류분 부족액의 산정은 다음과 같은 공식에 의하여 나타낼 수 있다. 유류분 부족액 = A(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액) × B(그 상속인의 유류분 비율) - C(그 상속인의 특별수익액) - D(그 상속인의 순상속액). 그런데 이 사건에서 문제된 것은 D를 산정할 때 법정상속분에 의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특별수익을 고려한 구체적 상속분에 기초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원심은 법정상속분에 의하였으나, 대법원은 구체적 상속분에 기초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유류분반환청구를 하기 전에 피고를 상대로 상속재산분할을 청구하였다고 하자. 이해를 돕기 위하여 숫자를 약간 바꾸면, 상속재산은 6억5000만원이고, 상속채무는 2억4000만원이며, 원고 1과 원고 3의 특별수익은 각 1억5000만원, 원고 2의 특별수익은 4억4000만원, 피고의 특별수익은 18억5000만원이라고 하자. 이 때 원고 2와 피고는 그 특별수익이 자신의 상속분을 초과하는 이른바 초과특별수익자이므로 이들은 상속재산 분할을 받을 수는 없고(설명 생략), 다만 상속채무 2억4000만원은 원고들과 피고가 각 법정상속분에 따라 분담한다. 그러므로 상속재산 6억5000만원은 원고 1, 3만이 각 3억2500만원을 상속하게 되고, 그들의 상속채무 분담액은 6000만원(2억4000만원 × 1/4)이므로, 순상속액은 각 2억6500만원(3억2500만원 - 6000만원)이다. 유의할 것은 초과특별수익자가 있는 경우에도 상속채무는 초과특별수익자를 포함한 모든 상속인이 법정상속분 비율에 의하여 분담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은 30억원(상속재산 6억5000만원 + 각 생전증여액 합계 25억9000만원 - 상속채무 2억4000만원)이고, 원고 1, 원고 3의 유류분액은 각 3억7500만원(30억원 × 1/8)이다. 여기서 원고 1, 3의 수증액 각 1억5000만원을 공제하면 2억2500만원이 된다. 따라서 유류분액에서 공제되어야 하는 순상속액을 구체적 상속분을 기초로 하여 산정한다면, 원고 1, 3의 순상속액 각 2억6500만원은 2억2500만원보다 많으므로, 이들은 유류분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반면 원심은 순상속액을 법정상속분을 기초로 하여 산정하였기 때문에, 원고 1과 원고 3의 유류분 부족액이 있다고 보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종래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시한 적은 없고, 하급심 판례는 나누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 2009. 9. 10. 선고ㅤ2008두2675ㅤ판결은, 이 점에 관한 사법시험 문제의 정답으로서 채점자가 법정상속분을 기준으로 한 것을 정답으로 한 데 대하여, 유류분권자가 실질적으로 받을 구체적 상속분을 기준으로 하는 견해에 의하면 정답항이 없고, 반면에 법정상속분을 기준으로 하는 견해에 의하면 정답항이 있는 경우에는 정답이 있는 것으로 처리한 것에 잘못이 없다고 하였다. 2. 구체적 상속분 기준설의 타당성 생각건대 구체적 상속분 기준설이 타당하다. 우선 유류분제도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유류분반환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상속인의 상속분이 유류분에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이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속인이 실제 상속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얼마나 이익을 얻는가가 중요하고, 따라서 유류분액에서 공제되어야 할 순상속액은 상속재산 분할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인 구체적 상속분을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성문법상의 근거를 들자면 민법 제1118조가 유류분에 관하여 특별수익에 관한 제1008조를 준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유류분 권리자의 순상속액 산정에 있어서도 특별수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윤진수, 유류분침해액의 산정방법, 서울대학교 법학 제48권 제3호, 2007 참조). 대상판결도 같은 취지이다. 국내의 학설도 대부분 구체적 상속분 기준설을 지지한다. 2018년 개정된 일본 민법 제1046조는 유류분침해액의 산정방법에 관하여 규정하면서, 공제할 순상속액에 대하여는 구체적 상속분을 기준으로 하여야 함을 명백히 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에 대하여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는 대신 파기자판하여 원고 1, 3의 청구를 기각하였더라면 하는 점이다. 이 원고들의 유류분반환청구는 이유 없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초과특별수익자가 있는 경우에 상속재산분할에서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법정상속분 기준설(초과특별수익자 부존재 의제설)과 구체적 상속분 기준설이 있는데(윤진수, 초과특별수익이 있는 경우 구체적 상속분의 산정방법, 서울대학교 법학 제38권 2호, 1997 참조), 현재 하급심 판례상으로는 법정상속분 기준설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관하여 대법원이 법정상속분 기준설에 따라야 한다고 명백한 태도를 밝혀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유류분
공동상속인
상속분
순상속
법정상속분
상속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12-09
민사소송·집행
부동산·건축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지료지급의무
[사실관계]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평석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발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고들은 2014년경 이 사건 임야의 지분 일부를 경매로 취득한 다음,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분묘의 기지(基地) 점유에 따른 원고들의 소유권 취득일 이후의 지료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20년 이상 평온·공연하게 이 사건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여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였으므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1심(수원지법 여주지원 이천시법원 2016. 5. 3. 선고 2015가소53727 판결)은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는 경우에도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으나, 원심(수원지법 2017. 4. 20. 선고 2016나58055 판결)은 분묘기지권자는 적어도 토지 소유자가 지료 지급을 청구한 때로부터는 그 분묘 부분에 대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는 것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에 피고는,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 경우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판시요지] [다수의견] 관습법으로 인정된 권리의 내용을 확정함에 있어서는 그 권리의 법적 성질과 인정 취지,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량 및 전체 법질서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지 않고 성립하는 지상권 유사의 권리이고, 그로 인하여 토지 소유권이 사실상 영구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시효로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사람은 일정한 범위에서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형평에 부합한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 관습법으로 인정되어 온 역사적·사회적 배경, 분묘를 둘러싸고 형성된 기존의 사실관계에 대한 당사자의 신뢰와 법적 안정성, 관습법상 권리로서의 분묘기지권의 특수성, 조리와 신의성실의 원칙 및 부동산의 계속적 용익관계에 관하여 이러한 가치를 구체화한 민법상 지료증감청구권 규정의 취지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시효로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사람은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에 관한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이에 대하여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여 성립하는 토지 이용관계에 관해서도 법정지상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부터 지료를 지급하여야 한다는 대법관 이기택·김재형·이흥구의 별개의견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시효취득한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에게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대법관 안철상·이동원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평석] 1. 대법원 판례에 따른 분묘기지권의 유형은, 토지 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타인 토지에 분묘를 설치하는 경우인 승낙형 분묘기지권, 토지소유자가 그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후 분묘기지에 대한 소유권을 유보하거나 또는 분묘를 따로 이장한다는 특약을 함이 없이 위 토지를 매매 등을 원인으로 처분하여 타인이 위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한 경우인 양도형 분묘기지권,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 경우인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으로 구분된다. 이 사건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 함)은 위 유형중 마지막 유형인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한 사안이다. 다수의 대법원 판결이 분묘기지권을 관습법상 물권으로 인정하였음에도 구 장사등에 관한 법률(법률 제6158호, 이하 '장사법'이라 함) 시행 시점인 2001년 1월 13일을 전후하여 분묘기지권, 특히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관습법으로 여전히 보아야 하는지 또는 종전에 그러한 관습이 있었는지에 관한 꾸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대법원은, 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재차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는 점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관습 또는 관행으로서 법적 규범으로 승인되어 왔으며, 이러한 법적 규범이 장사법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여, 장사법 시행 전 설치된 분묘에 있어서는 분묘기지권에 여전히 관습법적 효력이 있다고 하였고 대상판결 역시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한편,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는 경우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의무 여부에 관하여는 분묘기지권이 성립됨과 동시에 그 지급의무가 발생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1992. 6. 26. 선고 92다13936 판결과 이에 배치되는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1995. 2. 28. 선고 94다37912 판결 등이 정리되지 아니한 채 공존하여 그 지료 지급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었는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인 대상판결을 통하여 이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최초로 이를 판시하였다고 평가되는 1927. 3. 8. 선고된 조선고등법원 1926년민상제585호 판결 이래, 해방 후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거듭됨에 따라 확립된 관습법으로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다수의견의 보충의견도 같은 취지이다). 다만 위 조선고등법원 판결은 당시 조선사회의 분묘 수호와 봉사를 위한 토지 사용권의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관습과 근대적 취득시효 제도를 결합하여 시효에 의한 분묘기지권의 취득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인데(이에 관한 논의는 줄인다), 이처럼 최초 판시된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 관습에만 근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웠던 까닭에,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효력 범위에 관하여 관습의 존재가 확인되지 아니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지료 부분은 분묘기지권의 내용으로 정해지지 아니한 공백으로 보고 해석으로 보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 민법 제1조에서 민사에 관한 법원의 순위를 법률, 관습법, 조리 순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관습법상 권리의 내용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으며 관습법상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충하기 위한 법규범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일 것이다. 대법원은 종전부터 분묘기지권은 지상권과 유사한 물권으로 보고 있으므로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있어서의 지료 부분도 지상권 또는 법정지상권을 유추적용할 것인지 논의되나,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다른 분묘기지권 유형과는 달리 인정되어 온 역사적·사회적 배경 등에 비추어 지상권의 법리를 그대로 차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한편, 유추적용할 법규범 또는 관습법이 없다면 다음으로 조리에 의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높은 지가(地價), 타인 토지를 사용하려면 지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사회구성원의 일반적 관념 또는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제한과 봉제사 등 분묘 수호 목적의 영위 사이의 형평에 관한 사회적 인식 등에 비추어 보면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또한 그 유상성은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4.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유상성이 인정된다면, 지료지급 시기 또는 범위가 문제된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그 성립 시부터 지료 지급의무를 인정하게 된다면 소멸시효를 적용하더라도 언제나 적어도 10년분의 지료를 준비하지 않은 이상 그 분묘기지권의 소멸에 대한 위험을 분묘기지권자가 경황없이 부담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별개의견은, 취득시효가 완성되기 전에는 분묘 소유자가 분묘를 타인 소유 토지에 설치하여 분묘기지를 최초 점유를 할 시점부터 부당이득이 발생하고, 분묘기지권에 대한 취득시효의 완성으로 이미 발생하였던 부당이득반환의무가 지료 지급의무로 변하게 될 뿐이라는 논지를 밝히기도 하는데, 취득시효의 완성으로 적법한 권원이 된 분묘기지권에 부당이득의 면을 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분묘기지권자가 토지 소유자로부터의 분묘기지 사용에 관한 동의를 증명하지 못한 경우 주로 주장되는 사정도 있으므로 시효완성으로 소급하여 인정되는 분묘기지권 성립 시인 분묘기지에 대한 점유 시점부터 모든 지료를 지급하라고 하는 것 또한 분묘기지권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는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견이, 다른 부동산물권과 목적상 구별되는 분묘기지권의 특성 및 지료의 부담에 따른 그 존속 여부 등을 고려하여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지료 지급 발생 시를, 분묘를 설치한 때부터 지료를 정하는 판결이 확정되는 때까지의 다양한 시점 중 지료 지급청구 시점으로 정한 것은, 형평의 원칙 등에 따른 조리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고 달리 자의적이라고 볼 사정을 찾을 수 없다. 5. 결론적으로 다수의견인 대상판결의 판시를 지지한다. 한편, 대상판결로 인하여 지료 지급과 관련한 소가 증가하더라도 분묘의 이전과 관련한 분쟁에서 조정률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있어서 지료 지급을 특별히 인정하지 않았던 실무례에 따라 분묘기지권자가 당장 토지 사용이 아쉬운 토지 소유자의 분묘 이전 요구에 과도한 분묘 이전비용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그 지료 지급이 인정됨으로써 당사자간 분묘 이전과 관련한 협의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 것이다. 김상헌 교수 (제주대 로스쿨)
분묘기지권
시효취등
관습법
토지사용료
지료
토지
김상헌 교수 (제주대 로스쿨)
2021-10-18
형사일반
정당한 이유 없는 증언거부와 참고인진술조서의 증거능력
I. 사실관계 피고인 A는 2017년 3월 27일 오후 7시10분경 고양시 소재 노상에서 甲으로부터 640만 원을 지급받기로 하고 甲에게 필로폰 약 41.5g을 교부하여 필로폰을 매매하였다. 甲은 검찰 수사에서 "피고인으로부터 필로폰을 입수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여 이 사건 참고인진술조서가 작성되었다. 甲은 2017년 4월 24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제1심은 2017년 10월 13일 징역 4년을 선고하였고, 제2심은 2018년 1월 31일 검사의 공소장변경을 이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甲이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상고하였으나, 2018년 5월 15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판결이 선고되었다. 한편 피고인 A에 대한 2017년 11월 24일 제1심 제5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甲은 선서 및 증언을 거부하였다. 현재 자신의 관련 사건이 항소심 계속 중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제1심은 2018년 2월 7일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검사가 항소하였다. 검사는 원심에서 다시 甲을 증인으로 신청하였고, 甲은 2018년 6월 19일 원심 제2회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선서를 거부하기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선서를 거부한다"라고 진술하면서 선서 및 증언을 거부하였다. 이때는 이미 甲 사건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어 甲의 증언거부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Ⅱ. 소송의 경과와 쟁점 1. 원심의 판단 甲의 원심에서의 증언거부는 자신의 관련 사건이 확정된 후이므로 형사소송법 제148조에 따른 증언거부권은 인정되지 않고, 형사소송법 제150조에 의하면 증언을 거부하는 자는 거부사유를 소명하여야 하는데 甲은 "선서를 거부하기로 판단하였다"라고만 하였다. 따라서 甲의 증언거부는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경우는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검사가 작성한 甲에 대한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설령 이와 달리 보더라도 형사소송법 제314조 단서에 따라 甲의 검찰에서의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 2. 대법원의 판단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참고인이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하여 피고인이 반대신문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도, 피고인이 증인의 증언거부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증인이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하여 증언을 거부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에서 그 증인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는 증거능력이 없다. 3. 쟁점 '피고인 유죄' 취지의 진술을 담은 참고인진술조서에 관하여 법정에서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여야 할 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 그 참고인진술조서를 법 제314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Ⅲ. 평석 1. 증언거부를 다르게 보아야 하는 이유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진술조서를 작성한 후에 참고인이었던 증인의 법정증언을 확보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특히 증인이 법정에 나올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이것이 바로 형사소송법 제314조가 규정하고 있는 바다. 제314조는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야 할 자가 "사망, 외국거주, 소재불명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의 예외인정 요건을 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망이나 외국거주, 소재불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판례가 이미 자세하게 설시한 바 있다.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는 그와 같은 판례의 해석론에 기초할 때, 물리적으로 출석이 불가능한 경우나 출석하더라도 진술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기억능력 자체가 없어진 경우라면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 외에 증인이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제314에서 말하는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중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첫째, 사망, 외국거주, 소재불명이라는 사유와 증언거부는 불능의 정도와 의미가 다르다. 앞의 것을 사실적 불능이라고 하면 뒤의 것은 법률적 불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증인의 증언거부 상황은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위험에 속한다. 수사기관 앞에서 진술할 때처럼 증인이 법정에서 같은 진술을 해 줄 것인가는 수사기관의 부담이고, 책임이다. 진술증거만이 존재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특히, 증인의 진술 변경, 은닉 또는 도피뿐만 아니라 증언거부 등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수사기관의 조서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이는 법이 예정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셋째, 참고인이 나중에 진술 태도를 바꿀지 안 바꿀지는 수사기관이 그를 직접 증인으로 부를 때도 마찬가지로 부담해야 할 위험이다. 증인으로 나와서 진술하겠다고 했다가 정작 증언대에서는 증언을 거부하는 경우도 우리는 수사기관에게 불리하게 평가한다. 증언을 못 들은 것으로 간주한다. 증언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참고인진술조서라고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더라도 그 위험은 고스란히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한다. 조건을 못 맞추면 조서는 증거로 쓸 수 없다. 넷째, 제312조 제4항과 제314조에는 한편으로는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신문 결과도 증거로 쓰일 길을 열어두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요건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입법자의 결단이 들어 있다. 두 조항을 해석할 때는 따라서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제312조 제4항 자체가 벌써 예외규정이다. 직접심리주의의 예외이다. 그런데 거기 덧붙여 또 하나 '진술 불능의 예외'를 둔 것이 제314조이다. '예외에 대한 또 하나의 중대한 예외'라고 본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입법자의 의사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다. 요컨대, 증인이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정당한 증언거부권의 행사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제314조의 필요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그 증인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을 적은 참고인진술조서를 제314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2. 판결의 취지 대상판결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증거는 참고인진술조서에서 수사 당시 참고인이었던 증인이 피고인으로부터 마약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법상으로 그 진술을 증거로 쓰기 위해서는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그 진술자가 법정에 나와서 조서의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 주어야 할 참고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는 때이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진술을 해 놓고도 그 진술의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지 않기로 변심한 참고인이 피고인만큼이나 괘씸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조서를 증거로 제출해 놓고 제314조에 따라 증거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사기관의 주장은 우리 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 우리 법은 증인의 진술이 법정에 현출되고 이에 관해서 피고인이 반대신문할 기회를 주는 것을 원칙적인 증인신문의 모습이라고 본다. 참고인을 수사기관 앞에 소환해서 진술을 들은 다음 조서를 작성해 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외다. 그래서 조건이 까다롭다. 성립의 진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반대신문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참고인의 진술을 듣는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따라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참고인을 증인으로 불러서 법정증언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판결처럼 조서를 작성해서 증거자료로 제출하는 것이다. 둘 다 똑같이 위험부담이 있다. 증인이 나중에 진술을 거부할 위험이다. 이 위험은 피할 방법이 없다. 재판장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감치에 처하는 것은 별론이다. 어떻게 하든 실제로 그 증인의 증언을 들을 방법은 없는 것이다. "당신은 말을 안 할 이유가 없어. 말을 해야 돼"라고 증언을 강제할 수 없다. 마찬가지다. 증언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해서 미리 작성한 조서를 증거로 받아달라고 할 수는 없다. 검사가 참고인의 결정적인 진술을 들었다고 해서 유무죄 판단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건 재판준비에 지나지 않고, 법정에서 잘해야 한다. 참고인진술조서의 준비가 다가 아니다. 제312조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그마저 못 갖추면 제314조라는 더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제314조를 좁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314조를 직접주의의 예외에 대한 또 하나의 중대한 예외라고 대상판결이 설시한 것은 이런 취지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희균 교수 (서울시립대 로스쿨)
증언거부
형사소송법제314조
형사소송법
마약류관리법
김희균 교수 (서울시립대 로스쿨)
2021-10-07
행정사건
국민건강보험법 부당이득의 징수규정이 과연 재량규정인가
Ⅰ. 판결요지 구 국민건강보험법(2011년 12월 31일 법률 제11141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52조 제1항은 "공단은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자 또는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급여 또는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라고 규정하여 문언상 일부 징수가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다. 위 조항은 요양기관이 부당한 방법으로 급여비용을 지급청구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바람직한 급여체계의 유지를 통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 그러나 요양기관으로서는 부당이득징수로 인하여 이미 실시한 요양급여에 대하여 그 비용을 상환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므로 침익적 성격이 크다. 법 규정의 내용, 체재와 입법 취지, 부당이득징수의 법적 성질 등을 고려할 때,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이 정한 부당이득징수는 재량행위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요양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비용의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의료기관의 개설명의인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Ⅱ. 논의현황 통상적으로 기속규정인지 재량규정인지 여부는 가능규정(Kann-Vorschriften)인지 의무규정(Muß-Vorschriften)인지 여부에 따른다. 그런데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 부당이득의 징수 규정은 '징수한다'고 하여 논란이 생긴다. 일각에서는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 입법 취지, 입법 목적, 행위의 성질을 고려하여 재량행위, 기속행위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박균성, 행정법론(상), 2021, 328면), 다른 한편으로는 판례가 법정외 거부사유에 따른 거부가능성을 인정하는 상황을 기속재량행위로 받아들여 요양급여처분, 그 거부처분과 환수처분을 기속재량행위로 보고서, 요양급여 기준 위반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예외적 정당화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그 초과한 금액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징수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견해(선정원, 행정법연구 제29호, 2011, 19면)가 있으며, '속임수 기타 부당한 방법'을 형식적·기계적으로 해석하는 상황에서 기속행위로 본다면, 형평과 정의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어서 '일부 징수'의 차원에서 재량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견해(현두륜, 의료법학 제8권 제2호, 2007, 108면~109면)도 있다. Ⅲ. 대상판결의 재량적 접근 및 그에 대한 비판 대상판결은 해당 규정이 일부 징수의 가능성을 두고 있으며, 부당이득의 징수 자체가 침익적 성격이 크다는 점이 든다. 그밖에 법 규정의 내용, 체제와 입법취지를 드는데, 구체적인 논거는 문현호(48·사법연수원 33기) 부장판사의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문 부장판사의 글(사법 제54호, 2020, 846면 이하)에서 전개된 논의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ⅰ) 먼저 문언적 해석의 차원에서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의 '일부'라는 표현이 사용된 이상 재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전액 징수만 가능하다면 굳이 '일부'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는데, 과연 '일부 징수'의 가능성을 지적하였다고 이를 재량의 논거를 삼을 수 있는지 수긍하기 힘들다. '부당이득의 징수'를 규정한 실정법의 현황을 보면, 부당이득의 징수를 의무로 설정할 때 징수권이 부당이득에 한하여 행사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면 그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속행위로 접근하는 것이 '일부'의 어의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수긍하기 힘들다. 그리고 여기서의 '징수한다'의 표현을 중립적이라 지적하는데, 오히려 종래 민사적 방법으로 부당이득환수를 도모하는 것을 공법적으로 대체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ⅱ) 체계적 해석의 차원에서 동 규정은 적용 범위가 넓은 일반조항이기에 실질적 부당이득징수사유를 포착하기 위해서 재량규정이어야 함을 내세우는데, 이는 실제적인 부당이득이 되는지 여부의 문제이고 부당이득의 적정성의 물음이기에, 재량규정의 논거가 될 수 없다. ⅲ) 목적론적 해석의 차원에서 요양급여비용 중 일부 금액만 부당하면 그 금액만큼 행정청의 증명책임이 경감되는데, 만약 기속행위로 보면 부당한 일부 금액 특정의 증명책임까지 행정청이 부담하여 엄격하게 보면 처분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지적하였는데, 과연 이것이 목적론적 해석의 접근방식인지 의문스럽다. ⅳ) 엄격해석의 차원에서 요양급여비용이 유상급부에 대한 대가이어서 그것의 징수는 무상 보조금 환수보다 침익성이 가장 강하기에 재량이라는 것인데, 통상적으로 침익행위를 애써 재량행위가 아닌 기속행위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논증이다. 침익성이 크기에 행정청의 자의가 기속행위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개재될 가능성이 큰 재량행위로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있다. ⅴ) 합헌적 해석의 차원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에서 재량행위로 보아야 한다면서 헌재 2014헌바298 등의 결정이유(심판대상조항들은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당이득으로 징수하도록 정하고 있어, 구체적 사안에 따라 그 금액 전부의 징수가 부당한 경우에는 일부만 징수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금 징수처분으로 인한 의료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가 해당 규정을 재량행위설을 전제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일부'의 의미와 관련해서 헌법재판소가 수급한 요양급여비용 가운데 부당이득에 해당하는 것만을 징수하도록 입법자가 배려한 것임을 지적한 데 불과하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더해서 다양한 일률적인 전액징수가 불공평 또는 책임초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절차적·형식적 규정만 위반한 경우에는 요양급여기준위반보다 징수금액이 더 크게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회생파산절차에 의한 면책이 불가능한 의사들이 경제적 불능상태에 삐지게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음을 든다. 그런데 과도한 징수의 경우는 기속행위인 과세처분에서 일부취소와 같은 방법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부당결부와 같은, 이런 식의 논증이 과연 재량행위적 접근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든다. ⅵ) 다른 법령과의 비교에서 부당이득 성격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기속행위로 볼 수는 없고, 입법정책적 문제일 뿐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는 동 규정의 재량행위성 여부의 논거와는 무관하다. 재량행위라도 전부 징수가 가능하며, 부당이득의 징수(박탈)의 성격이 징수의 재량행위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과연 본 사안에 통용될 수 있는 논증인지 의문스럽다. Ⅳ. 맺으면서-결과적으로 사무장병원이 사실상 용인된 셈이다 대상판결이 해당규정을 재량규정으로 접근하기 위해 내세운 논거 모두가 전혀 수긍하기 힘들다. 비록 익숙한 규정방식(…하여야 한다)을 취하지 않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법 규정의 내용, 체재와 입법취지(동 규정의 원형은 일본 건강보험법 제58조 제1항이다. 일본의 경우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기속행위로 접근하는데, 이는 '할 수 있다'의 의미를 일종의 권한규정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를 감안할 때 부당이득의 징수규정은 기속규정일 수밖에 없다. 징수(환수)처분규정을 기속규정으로 둔 것은 입법자가 연금지급의 적법성을 다른 여지 없이 실현하기 위함이다. 침익적 처분을 재량에 맡겼을 때 생길 수 있는,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법집행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기 위함이다. 부당이득 징수제도의 정당성을 고려하면, 애써 그것을 이익형량의 틀속에서 징수권자의 자의가 개재될 가능성이 있는 재량행위로 접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대상판결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사무장병원을 사실상 용인한 셈이다(김중권, 행정판례연구 제26집 제1호(2021.6.30.), 3면 이하). 법령에서 규정하지 않은 장애를 바람직스럽지 않게 예시적 접근으로 등록장애종류로 확대 인정한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6두50907 판결이 보여주듯이 최근 법원은 사회보장행정 분야에서 권리구제확대를 내세워 이해하기 힘든 전개를 한다(김중권, 사법 제55호(2021. 3. 15.), 955면 이하). 아무리 사회보장행정법이 일반행정법의 실험장인 동시에 혁신의 원동력이라 하더라도, 민주적 법치국가원리를 넘어갈 수는 없고, 사회적인 것 그 자체가 결코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의 예외를 정당화시키지도 않는다.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의사
병원
사무장병원
불법행위
요양급여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2021-09-30
금융·보험
항공·해상
영국 해상보험법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고찰
1. 들어가며 해상보험계약은 국제적 성질이 강하다. 세계 해상보험실무의 경우 영국의 런던보험자협회가 제정한 보험증권 및 표준약관들이 통용되고 있다. 국내 해상보험실무에서 영국의 1906년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은 중요한 법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해상보험계약에서 영국법 준거약관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내국인 간의 해상보험계약에서도 대한민국법이 아닌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영국법 준거약관을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영국 해상보험법의 주요 법리와 우리나라 보험법 법리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으므로 국내 실무가 등에게 생소한 면이 없지 않다. 최근 대법원은 내국인이 계약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영국법 준거약관이 포함된 해상보험계약과 관련한 사건에서 영국 해상보험법상 몇 가지 주요 법리에 관한 판시를 한 바 있다. 이 사건의 쟁점 법리들은 우리 상법의 해상 보험계약의 법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위의 판결에서 쟁점이 되었던 영국 해상보험법의 주요 법리에 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2. 기초사실 및 주장요지 원고는 해상여객운송사업 등에 종사하는 법인으로 131톤 규모의 기선 선샤인호의 소유자이고, 피고는 한국해운조합법에 따라 설립되어 조합원인 해운업자의 공제사업을 수행하는 법인이다. 이 사건 선박에는 공제계약기간을 2012년 1월 13일부터 2013년 1월 13일까지, 보험기간 동안 선박이 운항하지 아니한 채 항내 계선 유지가 조건인 선박공제계약이 체결되어 있었다. 이 사건 선박은 군산항에 정박 중이던 선박의 선미가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기관실 전체가 침수된 것이 2012년 1월 26일 오전 8시경 발견되어 원고 측이 선체 인양 후 폐수 9만3500리터를 배출하였다. 원고는 군산항의 잔교 밑바닥의 준설 문제와 조수 및 북서풍 등의 기상상황으로 인해 이 사건 선박이 침수되었으므로 이 사건 공제계약의 부보대상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피고는 균열 등 기관실 수밀조치 해태와 같은 관리소홀로 인해 해수가 선내로 유입되어 침수한 것으로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사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3. 판결요지 ① 이 사건 선박공제계약을 이루는 공제증권과 표준선박보험약관 적용 특별약관에서 명시한 영국 협회기간약관에 영국법 준거조항과 부보위험이 열거되어 있으므로 보험자의 책임문제는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② 영국 해상보험법에 의하면 손해가 담보위험을 근인(proximate cause)으로 하는지 여부가 보험자의 책임 유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데, 근인이란 손해의 발생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원인(proximate in efficiency)을 말한다. 무엇이 근인이 되는가는 전반적인 관점에서 광범위한 상식에 따른 법원의 사실인정 문제이다. ③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에서 부보위험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해상 고유의 위험(perils of the seas)'이란 해상에서 보험의 목적에 발생하는 모든 사고 또는 재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상에서만(of the seas) 발생하는 우연한 사고 또는 재난만을 의미한다. ④ 영국 해상보험법과 관습에 의하면 손해가 그 부보위험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증명책임은 피보험자가 부담한다. 피보험자는 비일상적인 기상조건 등 우연한 사고로 인하여 선박이 침수되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증명의 정도는 피보험자와 보험자가 서로 상반된 사실이나 가설을 주장할 경우 그 양자의 개연성을 비교하여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에 의한 증명으로 충분하다. 이는 보험사고가 부보위험에 의하여 일어났을 개연성이 그렇지 않을 개연성보다 우월할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보험사고의 근인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경우에는 피보험자가 증명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심은 원고의 주장(가설)은 기본적 증명이 미비한 전제사실들의 연쇄적·우연적 조합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이 사건 선박의 수리 경위, 침수 전력, 초기조사 결과 등에 비추어 제시된 가설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 이를 배척하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서 이 사건 공제계약의 부보위험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사고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을 누락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하였다. 4. 판례평석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① 이 사건 공제계약에서 정한 보험자의 보상사유 중 하나인 '해상 고유의 위험'이 사건 발생 당시 존재했는지, ②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발생한 것인지, ③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발생한 것인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누가 증명책임을 부담하는지, 그리고 증명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느 정도로 증명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영국 해상보험법 제1부칙 '보험증권의 해석규정' 제7조는 "'해상 고유의 위험'이라는 용어는 오로지 우연한 사고 또는 그로 인한 재해에 관한 것으로, 통상적인 바람과 파도의 작용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영국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해상 고유의 위험은 외연의 한계를 일의적으로 규정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영국 판례에 따르면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보험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보험목적에 대한 손해가 해상에서 발생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손해발생의 '우연성(fortuity)'이 증명되어야 한다. 원고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당시 서해상의 기상상황의 악화를 들고 있다. 그러나 사고 당시 해상의 기후 내지 파도와 바람의 상태만을 기준으로 해상 고유의 위험이 존재하였는지 여부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 사건에서 쟁점화 되지는 않았지만 검토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심이 확정한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해수유입 경로를 감안할 때 손해가 선체 등의 '숨은 하자(latent defect)'로 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사건 선박의 균열이 '통상적 마모(ordinary wear and tear)'가 아니라 숨은 하자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영국법상 숨은 하자로 인한 손해의 보상을 위해서는 선박관리 등에 관한 '상당한 주의 의무(a due diligence)' 위반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선박소유자 등의 상당한 주의의무위반에 대한 증명책임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사건에서 오로지 한 가지 원인만이 손해의 발생에 실질적이고 유효한 영향을 미쳤다기 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거나 존재한 다양한 사실이 손해발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않다.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손해로 인정되기 위해 반드시 예외적인 기상조건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영국 판례에 의하면 원고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이 파도와 해풍의 영향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으며, 원심이 확정한 이 사건의 기초사실만으로는 이 사건의 근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영국 판례와 학계는 인과관계의 존부 판단은 해상사업에 종사하는 일반인의 상식적 시각에서 판단하여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피고의 보상책임은 이 사건의 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어느 정도의 증명이 되어야 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영국법이 해상보험계약의 준거법인 경우 해상고유의 위험의 존재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보험보상을 청구하는 원고가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원고는 손해의 발생사실 및 인과관계에 관해서도 소위 'prima facie case(당사자의 충분한 증거제출로 인해 법관이나 배심원이 요증사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상태, 또는 당사자의 주장이 사실일 것이라는 추정이 생긴 상태)'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증명을 하여야 하며, 원고가 이와 같은 정도의 증명을 다하지 못한 경우 보험자는 별도의 항변을 할 필요도 없다. 즉 손해가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하였는지 여부가 원고의 주장과 증명에도 불구하고 명확하지 않을 경우, 해상고유의 위험의 부존재 등을 누구의 불이익으로 돌릴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증명책임의 소재 및 그 증명의 정도의 문제가 발생한다. 소송실무적 측면에서 증명책임의 분배기준에 관해서는 우리 민사소송법과 영국법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어느 나라의 법에 따라 소송당사자 사이에 증명책임을 분배하더라도 결론이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인 경우에도 소송상 증명의 정도의 법적 성질은 절차법적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증명의 정도에 관한 준거법이 무엇인지는 실무상 중요한 문제이다. 일련의 해상보험사건에서 대법원은 별도의 설명 없이 증명의 정도에 대해, 영국법에 따라 '증거의 우월'에 의한 증명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민사소송상 증명의 정도를 절차법적 문제로 파악한다면 증명의 정도에 관해서는 우리 민사소송법을 적용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해상보험
영국
해상보험법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2021-07-26
노동·근로
행정사건
수권규정의 법률유보원칙 위반과 법외노조 통보제도의 적법성
I. 대상판결의 개요 1. 처분의 경위 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교원노조법')에 따라 설립된 노동조합이다. 교원노조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을 폭넓게 준용하고 있는데, 구 노동조합법(2020년 6월 9일 법률 제174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4호 단서 라.목(이하 '본건 조항')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원고는 설립 당시부터 해직 교원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허용하는 취지의 규약을 두고 있었다. 피고 고용노동부는 2차에 걸쳐 원고에게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규약을 시정할 것을 명하였으나, 원고는 이에 응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피고는 2013년 10월 24일 교원노조법 제14조 제1항, 구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라.목,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이하 ‘본건 시행령’)에 근거하여 '원고를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취지의 통보(이하 '법외노조 통보')를 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8인의 다수의견으로 본건 시행령이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한 것으로서 무효이고 이에 기초한 법외노조 통보 역시 위법하다는 취지의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이 각 별개의견을, 대법관 이기택, 이동원이 반대의견을 제기하였고, 대법관 박정화 등 5인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제시하였다.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중대한 침익적 처분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인 단결권의 본질적 사항을 규율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법률의 위임 없이 법외노조 통보 권한을 규정한 본건 시행령은 법률유보원칙 및 의회유보원칙 위반으로 위법·무효라는 것이다. 각 별개의견은 본건 시행령의 적법성을 인정하였으나, 처분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였다. ① 대법관 김재형은 원고가 법률에 의하여 곧바로 법외노조로 '간주'되는 이상 본건 시행령은 법률의 효력을 집행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규정'으로서 적법·유효하나, 단결권 보장을 위하여 본건 조항을 합헌적으로 축소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② 대법관 안철상은 '수익적 처분의 직권철회' 법리에 따라 피고에게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 처분을 철회할 권한이 유보되어 있는 이상 본건 시행령은 적법하나, 피고의 법외노조 통보에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이 있어 취소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반대의견은 본건 시행령 및 이에 근거한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에 의하여 직접 발생한 권리관계를 구체적·확정적인 것으로 선언하는 행정작용으로서 유효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본건 조항의 문언해석상 원고가 법외노조임은 명백하고, 노동조합법의 목적 및 처분의 경위를 고려할 때 헌법합치적 축소해석 등을 통하여 원고를 보호할 필요성도 없다고 보았다. Ⅱ. 대상판결의 평석 1. 대상판결의 쟁점 법외노조 통보를 둘러싼 쟁점은 다양하다. 그 범위는 법외노조 통보의 처분성에서부터 해직 교원의 단결권이라는 헌법적 쟁점에까지 미친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선결 쟁점인 '법외노조 통보의 수권근거'를 부정하는 것으로 판단을 종결하였고, 그 결과 사안의 실체적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본건 조항의 당부 및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구체적 타당성은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에서만 다루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대상판결의 각 의견은 모두 독자적인 의의를 지니나, 본 평석에서는 다수의견의 쟁점이었던 '법외노조 통보의 수권근거'에 한정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2. 법외노조 통보의 법률적 성격과 수권근거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가 형성적 처분이라는 데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본건 조항은 정의 규정으로서 노동조합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고, 노동조합 지위의 변동은 행정청의 형성적 처분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은 위 법률이 '간주 규정'의 형식을 취한 이상 원고의 지위는 법률에 의하여 직접 변동하고,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에 의하여 형성된 권리관계를 통보하는 행정작용에 불과하다고 본다. 생각건대, 노동조합법의 문언 및 행정관청의 개입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후자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볼 여지가 크다. 그러나 본건 조항에 의하여 원고의 지위가 직접 변동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곧바로 본건 시행령의 수권근거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 의하여 종국적·포괄적인 법해석 권한을 위임받은 법원과 달리, 행정관청은 법률로써 위임받은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형성적 처분뿐 아니라 확인적 처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입법자는 행정관청에게 법률에 의하여 형성된 노동조합의 지위를 확인·통보할 권한을 부여할 수도 있고, 이와 달리 종국적 법해석자인 법원을 통하여서만 노동조합의 지위를 확인하도록 규정할 수도 있다. 입법자가 행정관청에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행정관청의 처분은 그 내용이 실체적 법률에 합치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아무런 효력이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본건 조항이 '간주 규정'이라는 점을 근거로 본건 시행령의 수권근거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3. '수익적 행정행위의 직권철회' 법리와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 법외노조 통보가 수익적 처분의 직권철회로서 유효하다는 주장은 각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에서 모두 등장한다. 노동조합 설립신고는 '수리를 요하는 신고'이므로, 피고는 원처분청으로서 그 효력을 사후적으로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노동조합법 개정 당시 입법자에게 행정관청의 일방적 결정으로 노동조합 지위를 박탈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자 하는 의사가 추단되는 이상 수익적 처분의 직권철회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서는 학설의 대립이 있으나, 행정관청에 설립신고 반려 권한이 유보된 점(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행정관청의 심사권이 실질적 요건에까지 미치는 점(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두6998 판결)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운용되고 있다고 보인다. 한편 수익적 처분 직권철회 법리는 확립된 판례이며, 행정기본법 제19조 제1항을 통하여 명문의 법률로 규정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법외노조 통보가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의 직권철회로서 유효하다는 주장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면 수익적 처분 직권철회 법리를 적용하지 아니한 다수의견의 판단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현재 노동조합 설립신고 제도가 사실상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운용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헌법적 정당성은 견고하다고 보기 어렵다. 현행 노동조합 설립신고 제도는 결사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제21조 제2항과 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협약)'에 위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단결권 보장을 위하여 설립신고를 '자기완결적 신고'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이렇듯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를 '수익적 처분'으로 단정할 헌법적 근거가 약한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행정관청의 직권철회 권한까지 인정하는 것은 심대한 단결권 침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둘째, 노동조합 해산제도를 폐지한 뒤 대체 제도를 전혀 마련하지 않은 노동조합법의 입법연혁을 볼 때, 입법자가 행정관청에 의한 사후적 지위 변동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단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셋째, 노동조합에 대한 사후적 심사 제도는 단결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입법 절차를 통해 국민의 여론과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중대한 공익적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 보충적으로 사용된 수익적 처분 직권철회 법리를 원용하기보다는 구체적인 근거 규정의 마련을 촉구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4.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행정청에 의하여 임의로 형성된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효력을 부정하고, 입법부에 대하여 노동조합 사후심사제도를 새롭게 형성할 책무를 지웠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충분한 숙고와 의견 수렴 없이 행정청에 의하여 임의로 형성된 제도라는 점에서 분명한 문제를 가진다. 법원이 그 위법성을 지적하지 아니하였다면 법외노조 통보 제도 및 그에 내재된 위험성은 그대로 고착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상판결로 인하여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효력이 상실된 이상, 국회와 행정부는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노동조합 사후심사제도를 새롭게 형성할 책무를 진다. 이러한 점에서 다수의견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한 편의주의적 판단'이라는 각 별개의견의 비판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다수의견은 행정관청의 사후심사 권한을 배제함으로써 단결권을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곽신재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전교조
해직교사
법외노조
노동조합법
곽신재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2021-07-12
행정사건
재량통제와 직권탐지주의
Ⅰ. 사건의 개요 원고는 가축분뇨를 저장탱크에 일시 저장한 후에 위탁업체가 이를 수거하는 방식으로 가축분뇨 배출시설 설치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이를 가축분뇨를 해당 시설에서 완전히 분해하여 배출하는 방식의 '액비화 처리시설(이하 '이 사건 시설'이라 한다)'을 설치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원고는 가축분뇨 처리를 위한 이 사건 시설 등 공작물을 추가로 설치하기 위하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이라 한다) 제56조 제1항에 따라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피고 행정청은 이 사건 시설이 ○○저수지와 인접하여 수질오염의 우려가 있고 인근 주민들에게 악취 등 피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원고의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거부(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는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원심은 이 사건 처분에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하였다(광주고법 2020. 9. 25. 선고 2019누12288 판결).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를 원심법원에 환송하였다. Ⅱ. 판결 요지 '환경오염 발생 우려'와 같이 장래에 발생할 불확실한 상황과 파급효과에 대한 예측이 필요한 요건에 관한 행정청의 재량적 판단은 그 내용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하였다거나 상반되는 이익이나 가치를 대비해 볼 때 형평이나 비례의 원칙에 뚜렷하게 배치되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폭넓게 존중하여야 한다. 그리고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였다는 사정은 그 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자가 주장·증명하여야 한다. Ⅲ. 평석 1. 문제의 소재 대상판결은 재량통제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주고 있다. 대법원은 법률의 구성요건에 규정된 불확정개념을 근거로 재량행위를 판단하고 있으며,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환경이익의 중요성을 고려한 판단은 이해되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있다. 선행판례도 대체로 같은 입장이다(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9두45579 판결; 대법원 2017. 3. 15. 선고 2016두55490 판결 등).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재량행위의 특성과 환경이익의 우월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허가신청의 거부에 대한 권리구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2. 개발행위허가의 법적 성질과 재량행위의 논증방식 대상판결은 국토계획법상 개발행위허가를 '재량행위'로 보고 있다. 그 논거로 허가기준 및 금지요건이 불확정개념으로 규정된 부분이 많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행위는 건축물의 건축 또는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등이 대부분이다. 국토계획법 제58조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행정청은 상대방의 신청이 이러한 기준에 적합한지를 심사하여 개발행위허가를 발급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소위 '요건재량설'을 따른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러한 논거는 적절하지 않다. 국토계획법상 개발행위허가는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를 억제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면제하는 '예외적 승인(Ausnahmebewilligung)'에 해당한다(상론은 졸저, 한국행정법론, 법문사, 2020, 120면 참조). 예외적 승인은 재량행위에 해당한다. 예컨대 개발제한구역 내의 개발행위허가가 여기에 해당한다(대법원 2004. 3. 25. 선고 2003두12837 판결). 판례는 이를 '예외적 허가'라고 부르고 있다. 재량행위와 재량하자에 관한 이론은 오래전에 한국행정법에 도입되었으나,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자유재량과 기속재량의 구분은 19세기 독일의 고전학파 이론에서 연유하고 있다(Otto Mayer, Deutsches Verwaltungsrecht, Bd. I, 3. Aufl., S. 99 f.). 이러한 이론은 일본을 거쳐 도입된 것인데, 이를 한국 행정법의 고유한 이론으로 보는 것은 오해이다. 판례는 다행히 '재량행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 '기속재량'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독일에서는 '결정재량'과 '선택재량'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Maurer/Waldhoff, Allgemeines Verwaltungsrecht, 19. Aufl., § 7 Rn. 7). 판례 중에는 '선택재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대법원 2015. 11. 19. 선고 2015두295 전원합의체 판결). 이러한 용어 사용이 독일 학설의 입장을 반영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판례에서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재량 구분을 도입하는 것은 재량통제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법리를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3. 재량하자의 판단과 직권탐지주의의 적용 대법원은 재량하자에 관한 치밀한 논증을 하지 않고 있다.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타당한가? 행정소송법 제26조는 직권심리주의(직권증거조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즉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고,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에 대하여도 판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두고 대법원 판례의 주류는 대체로 변론주의의 예외로 이해하고 있다(대법원 1988. 4. 27. 선고 87누1182 판결; 대법원 2000. 3. 23. 선고 98두2768 판결 등). 그러나 일부 판례는 행정소송상 '직권탐지주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적도 있다(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두18035 판결). 행정소송은 민사소송과 달리 권리구제의 기능뿐만 아니라 행정의 적법성 통제의 기능을 수행한다(행정소송법 제1조 참조). 법원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관한 판단에 직권탐지주의를 적용하여 해당 처분의 위법 여부를 적극적으로 심사하여야 한다. 이는 변론주의가 적용되는 민사소송과 구별되는 점이다. 행정소송에서 당사자의 주장이나 사실 등에 의존하지 않고 직권탐지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판결의 정당성 확보라는 공익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심은 원고가 가축분뇨 정화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원고의 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러한 거부처분이 수질오염 방지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도 유효·적절한 수단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피고는 이 사건 시설이 인근 마을의 농업용수 취수원과 관광자원 등으로 활용되는 ○○저수지와 불과 24m로 인접해 있으며, 시설이 노후되거나 시설 관리자가 무단방류하는 경우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거부처분을 하였다. 대상판결은 개발행위허가 또는 그 거부에 대해 재량행위를 인정하는 법적 근거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법원은 해당 처분이 어떠한 재량하자에 해당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판례는 대체로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하는지를 포괄적으로 심사하고 있다. 원고가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거부처분의 재량권 일탈·남용을 주장하였다면, 법원은 원고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이라도 이에 대해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해야 한다. 피고 행정청의 주장에 비추어 재량권의 행사는 존재하며, 재량권의 유월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재량권의 '남용(Mißbrauch)'이다. 재량권의 남용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재량의 수권 목적이 중요하다. 법률이 수권한 재량규정의 취지나 목적에 위배되게 재량권이 행사되었는지를 심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거 법령에서 재량의 수권 목적을 검토해야 한다. 대상판례는 그러한 논증을 하지 않고 환경이익의 우월이나 재량의 성격 등을 포괄적인 근거로 삼아 원심을 파기하였다. 이 사건의 처분은 예컨대 국토계획법 제58조 제1항 제4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하천·호소·습지의 배수 등 주변환경이나 경관과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심사해야 한다. 이 사건의 시설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원심은 이 사건 시설이 기존의 수거 방식보다 환경상 위해 우려가 적다고 판단하였다. 액비화 처리 시설은 가축분뇨를 퇴비나 액비 등으로 자원화하고 자연순환농업을 활성화하여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이다. 이러한 시설이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기존 방식보다 환경상 위해를 더 크게 주는지는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않았다. 대상판결은 이 부분에 대한 논증도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시설의 입지나 무단방류의 가능성만을 고려하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대상판결은 개발행위허가의 성질을 먼저 규명하고 재량행위를 논증하여야 하며,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심사를 원고의 증명책임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직권탐지주의를 적용하여 그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향후 재량행위에 대한 사법심사에 발상(發想)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남철 교수(숙명여대 법학부)
가축분뇨
저수지
악취
수질오염
환경오염
정남철 교수(숙명여대 법학부)
2021-05-27
민사일반
부동산·건축
집합건물 공용부분 무단사용자에 대한 관리단의 부당이득반환청구 가부
Ⅰ. 사안의 개요와 소송의 경과 이 사건 건물은 지상 9층의 상가건물로서 18개의 점포로 구성되어 있는 집합건물이다. 원고는 이 사건 건물의 구분소유자 전원을 구성원으로 한 관리단이다. 피고는 이 사건 건물 1층의 전유부분인 상가 101호, 102호를 매수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다음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다. 피고는 이 사건 건물 1층의 복도와 로비 477.19㎡(이하 '이 사건 공용부분'이라 한다)에 골프연습장의 부대시설로 퍼팅연습시설, 카운터 등 시설물을 설치하고 골프연습장 내부공간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에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공용부분을 배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공용부분의 인도와 이 사건 공용부분의 사용으로 인한 부당이득의 반환을 구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이 사건 공용부분의 인도청구를 인용하였으나 이 사건 공용부분이 타인에게 임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원고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기각하였다. 항소심 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원고와 피고가 모두 상고하였다. Ⅱ. 판결요지 원고의 인도청구를 인용한 원심의 판단에 대하여는 대법관 전원이 찬성하였으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판단에 대하여는 의견이 나뉘었다. 다수의견은, 원고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인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해당 공용부분이 구조상 이를 별개 용도로 사용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더라도, 무단점유로 인하여 다른 구분소유자들이 해당 공용부분을 사용·수익할 권리가 침해되었고 이는 그 자체로 민법 제741조에서 정한 손해로 볼 수 있다."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며 원고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집합건물의 복도, 계단 등과 같이 필수적인 공용부분은 구조상 이를 점포 등 별개의 용도로 사용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므로, 피고가 이 사건 공용부분을 무단점유하였다고 하여 구분소유자들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 Ⅲ. 집합건물 공용부분의 무단사용으로 인한 손해 발생 여부 1. 쟁점의 정리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성립하려면 이득, 손해, 이득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법률상 원인의 흠결의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대상판결에서는 집합건물 공용부분을 무단사용한 경우에 집합건물 공용부분에 대한 임대불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구분소유자들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는지 문제가 되었다. 2. 침해부당이득에서의 손해의 개념 가. 권리귀속설 현재 지배적인 견해가 된 유형론에 따르면 급부부당이득에서의 손해와 침해부당이득에서의 손해는 다르게 파악해야 한다. 급부자가 의식적·목적지향적 급부를 하였으나 실제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급부부당이득이 성립한다(예를 들면 계약이 무효인 경우). 급부부당이득은 재화의 이동에 관한 법(Recht der Guterbewegung)에 속하는 제도로 잘못된 급부를 청산·교정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급부부당이득에서는 '급부'를 중심에 두고 손해를 파악하면 되는바, 급부가 있었으나 법률상 원인이 흠결된 경우에는 그 급부가 수익자의 이득이자 손실자의 손해인 것이다. 그러나 침해부당이득은 이와 다르다. 침해부당이득은 법질서에 의하여 특정인에게 귀속되어 있는 법익을 침해함으로써 이익을 얻은 자에 대하여 그 이득의 반환을 명하는 제도이다. 독일의 경우 권리귀속설에 의해 침해부당이득을 설명하는 것이 지배적이다. 권리귀속설은 권리의 속성 내지 해당 법적 지위의 할당내용이 침해부당이득 성립여부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즉 침해부당이득을 주장하는 자의 권리에 배타적 이익이 할당되어 있는지가 침해부당이득의 성립에 있어서 관건이 된다. 예를 들어 소유권, 지식재산권과 같은 권리는 권리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그 권리자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되어야 하는바, 타인의 소유권, 지식재산권을 무단사용한 경우에는 당연히 부당이득이 성립한다. 권리귀속설은 소유권, 지식재산권과 같은 절대적 권리에 대한 침해에 대하여 부당이득이 성립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다는 점, 급부부당이득과 구별되는 침해부당이득의 독자적 기능(재산보호 또는 소유권 보호)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나. 권리귀속설에 따른 손해의 개념의 재정립 침해부당이득에 있어서 침해자가 이득을 얻은 경우에 소유자에게 발생한 손해가 무엇인지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甲이 자신 소유의 별장을 당분간은 비워놓으려고 하였는데, 그 사이에 乙이 무단으로 위 별장에 들어가 숙박을 한 경우에 乙이 별장 사용으로 인하여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는 있으나 甲에게 과연 손해가 발생한 것인지 문제가 된다. 재산지향적인 관점(vermogensorientierten Sichtweise)에서 보면 손실자로서는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이 있었는데, 손실자의 이러한 이득의 손실로 인해 수익자가 이득을 얻었다는 점, 즉 재산의 이동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재산지향적인 관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첫째, 재산지향적인 관점은 배타적 법적 지위가 할당된 손실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침해부당이득은 배타적 법적 지위가 할당된 권리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물권적 청구권과 논리적 구조를 같이한다. 물권적 청구권의 행사와 관련하여 '점유할 권리가 있음'을 점유자가 입증해야 하듯이, 소유권 침해를 원인으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행사함에 있어 '법률상 원인이 있음'을 수익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소유자는 자신이 소유자임을 입증하면 족한 것이지 그 소유권이 임대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경제적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침해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행사하는 소유자로서는 자신에게 할당된 지위, 즉 소유권을 입증하면 족한 것이다. 둘째, 권리자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된 권리가 침해된 경우에 그 권리의 가치를 금전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바(예를 들면, 위와 같이 비어 있는 별장을 무단 사용한 경우), 손실자의 재산이 수익자에게 이동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재산지향적인 관점으로는 부당이득의 성립을 인정하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재산지향적 관점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권리귀속설은 침해부당이득에서의 손해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파악한다. 즉 법질서에 의해 누군가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되어 있는 이익이 침해된 그 상태를 바로 손해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처럼 침해부당이득에서의 손해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파악하는 권리귀속설은 부당이득이 손해배상과 구별되는 독자성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불법행위법은 피해자의 손해를 배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상당인과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손해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나, 침해부당이득법은 정당하지 않은 이득의 회수를 목적으로 하므로 손해의 개념이 추상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손해배상에서처럼 그 손해의 현존성과 확정성을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3. 소결 결국 침해부당이득에서는 수익자의 이득과 손실자의 손해 사이에 재산의 이동이 문제되지 않으며, 침해부당이득에서의 손해는 침해자가 얻은 이득에 대한 상대적 개념에 불과한 것이다. 소유권을 침해당한 자가 해당 물건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는지, 임대를 하여 차임 상당의 이득을 얻을 수 있었는지는 침해부당이득의 성립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닌 것이다. Ⅳ.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1) 구분소유자들은 이 사건 공용부분에 관하여 지분권을 가지는바, 이 사건 공용부분의 사용·수익으로 발생하는 이익이 구분소유자들에게 배타적으로 할당되어 있다. 따라서 피고가 이 사건 공용부분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 그 자체가 바로 손해를 구성하는 것이다. 반대의견이 공용부분에 대한 별개 용도로의 사용 가능성이나 다른 목적으로의 임대 가능성을 손해의 요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상판결 이전에 대법원은 집합건물의 지분권자라고 하더라도 무단점유자가 사용하고 있는 부분이 임료 상당의 이익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왔다. 대상판결이 침해부당이득의 법리에 맞지 않은 종전의 판결을 변경한 것은 우리 실무에도 유형론이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고, 부당이득의 법리를 세밀하게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 다만,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침해부당이득의 법리를 전면적으로 판시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김재형 대법관)에는 "침해부당이득에서는 권리자가 수익자의 침해행위로 재산을 이용할 가능성이 박탈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손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수익자가 무단으로 타인의 재산을 사용하여 이익을 얻었다면, 소유자에게는 타인이 자기 소유 물건을 무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이용 가능성을 빼앗긴 손해가 있다고 볼 수 있다"는 판시가 담겨 있다. 침해부당이득에서의 손해의 개념을 정확하게 간파한 판시로 향후 침해부당이득 관련 사안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판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계정 교수(서울대 로스쿨)
부당이득
무단점유
공용부분
이계정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05-17
공정거래
행정사건
공정거래법위반행위 종료 전에 조사가 개시된 경우 처분시효 기산점
1. 사안의 개요 공정거래위원회는 2000년 7월부터 2014년 1월까지 기간 중 9개 일본 콘덴서 제조·판매사들이 한국과 다른 나라에 공급하는 알루미늄·탄탈 콘덴서의 공급가격을 공동으로 인상·유지하기로 합의한 행위를 적발하여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을 하였다. 이 회사들 중 A사는 공정위의 위 각 처분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담합회사 중 B사는 부당한 공동행위가 종료하기 전인 2013년 10월 4일 자진신고를 하였고 공정위는 자진신고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2018월 11일 30일에 위 처분을 하였다. 한편 위 처분은 공동행위 종료일(2014년 1월경)로부터 5년이 경과하기 전에 이루어졌다. 2. 원심판결의 요지 2012년 3월 21일 법률 제11406호 개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은 처분시한에 관해 "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조사를 개시한 경우에는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 조사를 개시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7년"으로 규정하였다{참고로 2020. 5. 19. 법률 제17290호(2021. 5. 20. 시행)로 일부개정된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해당 위반행위의 종료일부터 7년이 지난 경우에는 이 법에 따른 시정조치를 명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제5항은 "제4항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난 경우 이 법에 따른 시정조치를 명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 1.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위반행위에 대하여 조사를 개시한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사개시일부터 5년, 2.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위반행위에 대하여 조사를 개시하지 아니한 경우 해당 위반행위의 종료일부터 7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원고는 "B사가 자진신고를 한 2013년 10월 4일 이 사건에 관한 조사가 개시되었다고 보고 공정위의 위 처분은 이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처분시한)이 경과한 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원심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가 종료하지도 않았는데도 처분시한이 진행하여 경과한다는 것은 처분시한 제도의 본질에 반한다", "처분시한 규정의 입법연혁과 개정취지, 처분시한 제도의 본질 등을 종합하면 처분시한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가 종료한 때에 진행하기 시작하고 이는 위반행위 종료 전에 피고의 조사개시가 있었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봄이 타당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 사건 처분시한은 조사개시일이 아닌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이므로 공정위의 위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3. 상고이유의 요지 원고는 "원심판결은 공정거래법 제49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의 각 문언과 달리 위반행위 종료 전에 조사개시가 있는 경우의 처분시한을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5년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서 적법한 근거 없이 새로운 법률을 창안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부당하다"는 이유로 상고를 제기하였다. 4.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에서 정한 처분시효 기간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조치를 명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제척기간을 의미한다(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7두68103 판결 참조). 이와 같은 처분시효 제도의 도입 취지 및 법적 성격에 비추어 보면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에서 정한 처분시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가 종료되어야 비로소 진행하기 시작한다고 보아야 하고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한 경우의 처분시효를 정한 제49조 제4항 제1호가 적용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 조사를 개시하였다고 하더라도 조사 개시일을 기준으로 종료되지 아니하고 그 후에도 계속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조사개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조사개시 시점 이후에 행해진 법 위반행위 부분은 아직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조사의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한 시점에 조사개시 시점 이후 종료된 부당한 공동행위 전체에 대해서 시정조치나 과징금 부과 등 제재처분의 권한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처분시효의 취지 및 성질에 비추어 보아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한 시점을 처분시효의 기산점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와 같이 조사개시 이전부터 계속되어 오다가 조사개시 시점 이후에 종료된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그 위반행위가 종료된 이후에야 공정거래원회가 부당한 공동행위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시정조치나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처분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확정지을 수 있는 사실관계가 갖추어져 비로소 객관적인 조사의 대상에 포함되고 제재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위반행위에 대하여 조사를 개시하여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 제1호가 적용되는 경우 공정위가 조사를 개시한 시점 전후에 걸쳐 계속된 부당한 공동행위가 조사개시 시점 이후에 종료된 경우에는 '부당한 공동행위의 종료일'을 처분시효의 기산점인 '조사 개시일'로 보아야 하고 그 처분시효의 기간은 위 조항에서 정한 5년이 된다. 5. 판결에 대한 검토 본 판결은 '처분시한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 제1호와 제2호의 관계가 문제된 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조사개시 이전부터 계속되어 오다가 조사개시 시점 이후에 종료된 부당한 공동행위'의 처분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로 볼 수 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특히 부당한 공동행위가 종료하기 전이라도 조사를 개시할 수 있는데 조사가 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반행위가 중단되지 아니한 채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당한 공동행위자 중 1인의 자진신고가 있는 경우에 그러하다. 그런데 이 경우 공정거래법 제49조 제5항 제1호의 문언대로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으로 처분시한을 계산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다툼이 있을 수 있다. 만약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이라는 문언만 강조하여 공정위의 조사개시 이후 위반행위가 종료되지 않았더라도 처분시한 기산점을 조사개시일로 본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① 처분시효는 위반행위가 종료한 때에 비로소 진행하기 시작하고 그 위반행위 종료 전에 공정위의 조사개시가 있었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위반행위의 종료 전에 조사가 개시된 경우에도 문언 그대로 '조사개시일'을 처분시효 기산점으로 보아야 한다면 조사개시 이후의 위반행위는 아직 조사가 개시되지 아니한 것이므로 조사개시 이후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사실상 처분시효가 단축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예컨대, 2020년 10월 1일 조사가 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반행위가 2020년 11월 30일까지 계속 유지된 경우 2020년 11월 1일 시점의 위반행위는 2020 년 10월 1일에 조사가 개시되었다고 볼 수 없는데 만약 2020년 10월 1일부터 처분시한이 진행된다고 하면 2020년 11월 1일 시점의 위반행위에 대한 처분시효는 사실상 단축되는 결과에 이르는 불합리가 발생한다. 대법원 판결도 이러한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는 적어도 2020년 11월 30일 위반행위가 종료되어서야 비로소 조사가 개시되었다고 보는 것이 위 규정의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② 부당 공동행위자 중 1인의 자진신고가 공동행위 종료 전에 있는 경우 처분시효 기산점을 자진신고일로 보아야 한다면 자진신고를 하지 아니한 다른 공동행위자들에 대한 처분시효는 부당하게 단축되는 불합리가 발생할 수 있다. 대법원 판결도 "(공동행위자 중 1인인) B사가 자진신고 이후 자료를 제출한 2013년 10월 21일을 피고의 조사개시일로 보더라도 그 당시에는 원고의 공동행위가 계속 중이었으므로 그 처분시효가 진행될 여지가 없었다"는 원심판결을 지지하였다. 원고는 '원심판결의 해석이 적법한 근거 없이 새로운 법률을 창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였는데 대법원 판결은 새로운 법률을 창안한 것이 아니라 조사가 먼저 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반행위가 종료되지 아니한 우연한 사정 때문에 조사개시일을 '위반행위 종료일'로 해석한 것뿐이므로 이는 입법취지를 고려한 논리적 법률해석일 뿐이다. 즉 '조사개시일부터 5년'이라는 규정을 판결에 의해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5년'으로 입법 없이 개정한 것이 아니라 조사가 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반행위가 종료되지 아니한 경우에 한하여 조리상 또는 논리상 '위반행위가 종료된 때에 조사가 개시된 것'으로 해석한 것 뿐이다. 이러한 제반사정을 종합해 볼 때 본 판례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특히 부당한 공동행위 종료 전에 조사가 개시된 경우 '조사개시일 이후의 위반행위에 대한 처분시효'에 관하여 중요한 판단기준을 정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전부개정된 공정거래법에 의할 경우에도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위 판례가 계속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정욱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공정거래
담합
처분시효
조정욱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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