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에 걸친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하고 도주하는 차량 절도범에게 쏜 총에 동승자가 맞아 다쳤다 하더라도 경찰관의 총격이 시민의 안전을 위해 급박한 상황에서 이뤄졌다면 국가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범죄가 날로 흉폭해지면서 경찰의 총기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주목된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李勇雨 대법관)는 지난달 23일 차량 절도범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함께 타고 있다가 경찰이 쏜 총에 허벅다리 관통상을 입은 신모씨(20 · 여)와 가족들이 “경찰의 총격은 무기사용 허용 범위를 벗어난 위법행위”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2003다27146)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경찰관은 수차례의 정지명령과 경고사격에도 불구하고 도주하는 차량 절도범 박모씨를 체포하고 도주를 방지하는 목적 외에도 중앙선을 침범하는 질주와 난폭운전으로 인해 일반 시민의 생명과 신체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었으므로 이를 방호하기 위해서라도 긴급하게 승용차의 운행을 막아야 했고, 정지대를 설치하거나 양쪽 차선 모두를 봉쇄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점 등이 인정된다”며 “따라서 당시로서는 무기 사용 외에는 승용차 운행을 막을 다른 수단이 없었으며, 목적달성을 위해 필요한 한도 내에서 무기를 사용한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밝혔다.
신씨는 지난 98년 8월 차량 절도범 박모씨가 운전하던 소나타 승용차에 함께 타고 있다가 박씨가 경찰의 수차례에 걸친 정지명령에도 불구하고 중앙선을 넘어 도주하는 바람에 경찰이 쏜 총에 오른쪽 허벅다리를 맞아 1개월의 치료를 요하는 관통상을 입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1심에서는 패소했으나, 2심에서는 “국가는 6천8백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승소판결을 받았었다.
원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 경찰의 총격은 형법상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등의 요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군이 흉악범이나 강력범이 아닌 차량절도범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이 동승하고 있었음에도 실탄을 발사한 행위는 사회통념상 무기 사용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원고 승소 이유를 밝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