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한 망치로 피해자의 머리를 내려쳤다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의사 A(남·30)씨와 간호사 B(여·30)씨는 부산의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다 2008년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이들의 관계는 B씨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러다 결혼 6개월 신혼무렵 B씨가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자 A씨는 복수를 해주겠다며 B씨의 남편을 폭행할 계획을 세웠다. 2009년4월께, A씨는 방범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계단을 이용해 아파트 15층 출입문 뒤에 숨어있다 퇴근하는 B씨의 남편 머리를 미리 준비해간 망치로 내리쳤다. 이후 20여분간 몸싸움이 벌어졌고 A씨는 피해자에게 전치 10주의 상해를 입히고 자리를 벗어났다. 결국 A씨와 B씨는 간통죄로 기소됐고 A씨에게는 살인미수 혐의도 추가됐다.
1·2심은 둘의 간통혐의를 인정해 A씨에게는 징역 2년, B씨에게는 징역 6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A씨의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강도로 위장해 피해자를 혼내주려고 마음먹고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한 것은 인정하지만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최근 A씨에 대한 상고심(2010도5513)에서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범행 당시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모자, 마스크를 착용하고 15층인 피해자의 집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 올라가고 미리 망치를 준비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며 "망치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해를 가할 수 있는 흉기로 피고인이 단순히 피해자에게 상해만을 가할 의도였다면 피해자의 팔이나 다리를 가격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머리를 직접 겨냥해 망치로 내려쳤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가 완강히 거절해서 피고인이 가해행위를 중단하고 도망친 것이고 신경외과 수련의로서 상당한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피고인이야말로 흉기의 종류, 타격부위, 강도 등에 따라 사람의 신체와 생명에 얼마나 큰 위험이 야기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범행 당시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이라는 결과에 이를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서도 위와 같은 행위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에게는 살인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